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이 강당에 다시 오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저녁 이 집회의 뜻은 성령의 인도를 의지하여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대로 주님의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며 그분의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는 데 있습니다. 첫날 저녁부터 강당이 가득 찬 것을 보니 기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이 집회를 매일 저녁 계속해 나가는 동안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오후에도 여기서 집회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분이 확인하셨는데... 맞습니까, 파울러 형제님? 두 시입니까? 두 시 반이군요. 가르침을 받는 집회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제가 들은 바로는, 이번 집회 기간 중 하루를 정하여 아파치 인디언 보호구역에 올라가자고 제가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그분들 중 몇 분이 집회에 오신 것이 보입니다. 아파치 보호구역에서도 다시 집회를 열려고 합니다.
저는 아파치 사람들과 가졌던 집회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그 날짜를 잡으려고 합니다. 보호구역의 선교사와 관계자들을 만나 이번 집회를 준비할 것입니다. 어느 날 그곳에 올라갈지 발표할 때까지는, 주님의 뜻이면 매일 오후와 저녁에 이곳에서 집회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할 수 있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아마 처음 오신 분들일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보지 않으신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보지 않으신 분들입니다. 저 손들을 보십시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전에 집회에 참석하셨던 분들과 저 모두 여러분을 이 첫 집회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히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시작할 때 그저 와서 복음 전도 집회를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집회를 하면서 많이 느낀 것이 있습니다. 이 놀라운 현상... 성령께서 집회에서 이런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현상이 미국 사람들에게는 몹시 낯설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교파가 너무 많고, 믿는 방식에도 서로 다른 양상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들의 믿는 바를 너무 깊이 주입받아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도 거의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의 바빌론이 된 곳이 있다면 바로 미국입니다. 이런 것이 아프리카나 다른 이교 국가들의 해안에는 결코 닿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곳 사람들을 위해 정말 견실한 복음 교사들이 먼저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깁니까? 갈급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을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보면 곧바로 달려가 그것을 쟁점으로 만듭니다. 그러면 형제들 사이가 갈라지고 교회가 찢어집니다. 그것이 미국의 모습입니다. 저는 돌아온 뒤로 미국 집회에서 이렇게 하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제게는 온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수만 명의 귀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 중 일부가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수천수만 명이나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 한 분 한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 나라를 이리저리 다니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집회에서 제가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 어려움 중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은사는 제가 병자를 고치는 은사가 아닙니다. 제게는 병자를 고칠 권능이 없으며,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권능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갈보리에서 여러분의 구속과 치유의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가리켜 드리는 것뿐입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여기 몸이 불편한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아이를 고쳐 주십시오. 그러면 형제님을 믿겠습니다.” 마침 가까이에 불신자가 한 사람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낫는 것이 죄인 한 사람이 주님께 나오는 것보다 어떻게 더 큰 영광이 되겠습니까? 여기 전혀 믿지 않는 사람, 철저한 불신자가 서 있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을 구원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아이를 고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어린아이는 이런 상태로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지금 상태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신이 저 사람을 구원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아이를 고치겠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근거합니다. 여러분이 죄인으로 오늘 저녁 여기에 온다면, 오늘 저녁에 새로 구원이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천구백 년 전에 여러분을 위해 값이 치러진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시겠죠?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을 때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실 때 여러분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자신의 구원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으며,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과 똑같은 근거 위에서 치유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복음이 아니라면 저는 이 여러 해 동안 복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것이 가장 분명한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합니다. 신유도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의사들조차 자신들이 여러분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원인, 곧 감각으로 보거나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의사는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팔이 잘렸을 때 이렇게 팔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어딘가를 베이고 병원에 들어가면, 의사가 조직을 만들어 주어서 완전히 새 몸으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팔이 부러져 병원에 들어가면 의사가 뼈를 맞추고, 붙이고, 아물게 해서, 몇 분 뒤에는 완전히 온전한 팔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딘가를 베였다면 꿰매 줄 수 있고, 뼈가 부러졌다면 맞추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불분명한 단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주이십니다. 시편 103편 3절은 “나는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을 통해 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문제에 분별 있게, 경건하게, 성경적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이거나 집회가 철저히 성경에 따라 성경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꾸며 낸 이야기, 허구일 뿐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따라야 합니다. 분별 있고 경건하게 다가가며, 신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저는 왜 제가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력이 쇠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제 몸은 아주 튼튼합니다. 설교를 하거나 제가 하는 일에서는... 기력이 쇠하는 문제라면, 하루에 서너 번 집회를 하며 설교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환상은 한 번만 보아도 제 생명력이 빠져나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분명 이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 일을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그분의 종으로 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서 끌어내는 데 이르면...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제 입술을 사용하여 여러분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전하실 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 여인이 선생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을 때, 그 여인은 마음속으로 ‘그렇게만 하면 내가 온전해지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군중 속으로 슬며시 빠져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사도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분께 손을 대려고 합니다... 선생님께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기력이 쇠한 것을 아노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고, 기력이 쇠하였느니라.” 이해하시겠습니까? 단 한 사람 때문에 기력이 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흐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기 시작하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권능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가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믿는 “네 믿음”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이 천으로 가려져 있을 때 뺨을 때렸던 사람은, 그분의 머리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자, 너는 예언하는 자지.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 그들은 효능이 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효능이 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은 불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느니라.”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나아갑니까? 중재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의 말을 듣고 그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여러분 마음속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것은... 그것 때문에 기력이 쇠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매일 저녁, 매일 우리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립니다. 날마다 새로 드리므로 누구나 기도 카드를 받아 앞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회에 들어오셨든지, 혹은 여러분이... 하지만 가르침을 받으려면 오후 집회에 오셔야 합니다. 기도 카드는 받은 본인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집회에 와서 가르침을 받아야 기도 카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직접 받아야 합니다. 집회의 가르침을 한 번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집회에 와서는 치유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치유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직접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사역은 몸에 직접 손을 대기 위한 사역이 아닙니다. 이것이 미국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사역에도 해가 된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안수를 받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순복음 교인들이 그렇습니다. 나사렛교회, 필그림 성결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의 사람들은 기름을 바르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바라보고 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 일을 보면 조금 이상하게 여깁니다. 외국에서는 초자연적인 일이 한 가지만 일어나도 무리 전체가 한마음으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서로 다른 것들을 주입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것을 보고 초자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여러분이 말해 주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텔레파시도 있고, 점쟁이도 있고, 생각을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신학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바알세붑이다. 마귀이며 그들의 우두머리다. 이 나라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다.” 온갖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믿고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강당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경건하게 다가가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마음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그렇게 하겠다고 그분께 약속하면서 한번 해 보십시오. 그 말이 맞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저는 이 나라를 두루 다니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도무지 없습니다. 기름부음이 임해 있을 때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곧바로 그 사람 곁에서 다시 그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녁이 되면, 아니 저녁이 오기도 전에 저는 기진해 버립니다. 하지만 피닉스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이 계속 제게 말합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앤젤러스 템플 집회를 마친 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저는 그곳에서 며칠 저녁 집회를 해야 합니다. 그다음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흘리신 피를 근거로 그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지나가는 동안 기도만 해 주려고 합니다. 몇 주 전에 제 교회에서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기도 줄을 지나며 기도를 받은 백여 명 가운데서, 사람들이 건물을 나서기도 전에 뚜렷한 기적이 열여섯 건 일어났습니다. 아시겠죠? 단지 손을 얹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열여섯 건이었습니다. 소아마비, 불편한 팔, 뒤틀린 몸, 그 밖의 온갖 상태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이 방식으로는 이따금 그런 사람을 한 명 만나게 됩니다. 저는 그저... 이끄심을 느끼는 대로 몇 사람을 앞으로, 이곳으로 불러서 시작합니다. 저기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문제가 있군. 그것이 보이는군.’ 하지만 그에게 말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치유를 받을 믿음이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계속합니다. 이쪽에서도 보이고 저쪽에서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한 무언가를 보고 나서야, 때로는 그 사람에게 말을 합니다. 아시겠죠? 그 점은 그렇습니다. 그 근거 위에서... 치유를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옵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도들, 선지자들, 신유의 은사들, 기적들, 방언을 말하는 것, 방언을 통역하는 것을 두셨습니다. 그 모든 은사를 교회에 두신 것은... 다시 말해서 함께 모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교사, 복음 전도자, 선지자로 세우셨고, 기적들을 행하는 것과 신유의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몸의 지체들이 활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순절 때만이 아닙니다. 오순절로부터 삼십삼 년 뒤, 고린도 교회에 질서가 세워질 때에도 그랬습니다. 아시겠죠? 그런 것들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오셔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여러분을 돕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여러분이 사는 지역을 악을 행하기에는 끔찍하고 바른 일을 하기는 더 쉬운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치시는 것은 단지 치유의 권능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석양을 보십시오.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심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어디서나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치유 간증이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말하고 그 사람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이제 이 복된 말씀을 펴면서, 우리를 이곳에 초청한 위원회의 위원장 중 한 분으로 생각되는 밸러드 형제님과 이야기했는데... 조금 전 집회에 오기 직전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며칠 저녁 동안은 무언가를 조금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라고 믿습니다. 자, 먼저... 우리는 이렇게 책장을 펼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말씀을 열어 주시려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눈먼 자들이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나아가기 전에... 아니, 그분의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의 저자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처럼 조용하고 분별 있게, 근본에 충실하게 말씀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것을 열어 주시기를 구합시다. 잠시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동안 함께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우리 구주여, 오늘 저녁 저희는 참으로 기쁩니다. 말씀과 성령의 증언을 통해 주님께서 저희의 구주이심을 마음으로부터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영이 주님의 영과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증언합니다. 이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끝날 때 저희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이며 마음의 기쁨인지요. 그것을 믿는데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저희는 그분을 만나 뵙고, 그분께 손을 대며, 함께 걷게 될 것입니다. 혼인 만찬에 앉아 있다가 나와서 그분의 못 자국 난 손을 잡고, 그분께서 저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모든 고통과 슬픔을 없애 주시면, 세상의 창건 때부터 예비된 주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이곳의 모든 남녀가 그 약속을 붙들고 온 마음을 다해 믿게 하옵소서. 그렇게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잠깐 동안 유다서에서 읽고자 합니다. 한 장으로 된 책입니다. 지금 성경 본문으로 읽으려는 말씀은 그 장의 3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내가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가 생겼나니 주님께서 읽은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잠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을 통해 각 사람의 마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대로 전해 주시도록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유다는 그리스도교 경륜이 처음 시작된 지 약 삼십 년 뒤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과, 첫 번째 경륜이 시작되어 들어온 때... 아니, 그리스도교 경륜이 시작된 때를 말합니다. 좀 더 분명히 설명하자면, 누가복음 16장 16절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요한까지였고, 그때부터 하늘의 왕국이 선포되어 왔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육 개월 동안 설교하며 사역했습니다. 그다음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했고, 그가 말한 대로 자신은 쇠하고 예수님은 흥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유다는 교회에 편지를 쓰려고 모든 열심을 냈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그들이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인들은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 침례교인들도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장로교인들도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인들도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오순절 교인들도 그것이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교회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논리적이고 분별 있으며 근본에 충실한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때로 돌아가 그들이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 교회에 그런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위해 싸웁시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성경적인 방법이며, 제가 아는 한 이 주제에 접근하는 유일한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잘 보십시오.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믿음을 위해 싸우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싸우자.”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되려면 그것이 그리스도교 경륜에 적용되어야 했습니다. ‘성도’라는 말이 ‘성결하게 된’, 곧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결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과 13절은 “예수님께서도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성도들은 신약에 속해야 합니다. 그 믿음을 위해 싸우십시오. 그것은 율법의 경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경륜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 곧 그 믿음을 처음 소개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입니다. 요한은 다만 주 예수님을 소개했으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위해 싸우라고 뜻하신 바로 그것을 구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믿음의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이 어떤 믿음을 가르치셨고 어떤 믿음을 실천하셨는지만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똑같은 것을 실천했다면, 우리도 그런 믿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계속하라고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굳게 붙드십시오.
먼저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부터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크고 기적적인 사역이 시작되는 대목까지, 곧 침례를 받으신 뒤 가르치기 시작하신 때까지의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이제 잠깐 주의 깊게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자신을... 아니,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예수가 인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알아보아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친히 변화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태도를 가지시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죄인과 병자, 매춘부와 도박꾼과 거지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태도를 보이셨는지 알 수 있다면, 오늘날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태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표현하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타락한 자기 피조물을 향한 자신의 태도를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2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아주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나사렛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서 표적들과 이적들로 하나님께 확증받으신 사람이시니라. 그분께서 이것들을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셨고, 너희 자신이 그 증인이니...” 아시겠죠? 베드로는 “너희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알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시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시고, 아담의 타락한 인류를 향한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지 입증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교회에 잘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이 주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주 잘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밤에 그분을 찾아왔던 지도자, 바로 그 니고데모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가 밤에 왔다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그분께 왔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를 비웃는 여러분은 그만큼이라도 하셨습니까? 그는 마침내 그곳에 왔습니다. 밤에 와서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 산헤드린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나이다.” 그러나 편견 때문에, 소속 교회 때문에, 미신 때문에, 영적 지식의 부족 때문에 그들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우리는 알고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일들을 행할 수 없나이다.” 그 말은 산헤드린의 태도를 대중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무엇을 제시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눈에 띄게 보이려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옷을 입으셨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셔도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피닉스에서 참된 예수님을 찾으려 한다면, 특별한 성직자 옷을 입은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보통 사람처럼 옷을 입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은 그저 사람들 사이를 걸으셨습니다. 이름 뒤에 수많은 명예 학위 같은 것을 붙인 위대한 신학자나 학자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분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나아온 니고데모를 보십시오. 니고데모는 학위가 없는 사람을 찾아온 학자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온 귀족이었습니다. 젊은이를 찾아온 나이 든 교사였습니다. 그 차이가 보이십니까? 하지만 그가 왔을 때는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며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오십시오.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며 똑같이 오십시오.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요,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으리라.”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아오라고 말씀하신 근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을 때, 그분은 겸손하고 평범한 분이셨습니다. 대단히 불같이 설교하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거리에서 들리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저 평범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 안에 있는 그런 것들, 그 특성들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세우신 본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셨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셨으며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제시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분을 봅시다... 아, 저는 이 대목을 참 좋아합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떤 다른 일을 하셨습니까? 사역을 처음 시작하셨을 무렵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회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가서 곧바로 나다나엘을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만난 분을 보아라.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귀족적인 품위를 지닌 올곧은 사람이며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아, 여러분,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이유로 큰 교회에만 가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얼마나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든 그곳에는 오려고 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생명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썩는 것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의 육신의 생명조차 썩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먹는 모든 것은 혈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죽은 물질입니다. 오늘 저녁 스테이크를 드신다면, 여러분이 살 수 있도록 소 한 마리가 죽은 것입니다. 감자를 드신다면 감자가 죽었습니다. 케일 잎을 드신다면 그것이 죽었습니다. 생명을 낳으려면 무언가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차갑고 형식적이며 지적인 믿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 다시 살려면 여러분이 죽어야 합니다.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썩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아니, 나다나엘이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얼마나 형편없는 도시였습니까. 나다나엘이 그 질문을 했을 때, 빌립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와서 보아라.” 여기 멀찍이 서서 비판하지 말고, 와서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직접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결론이 나지 않습니까? 와서 직접 보십시오. 참 좋은 대답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다나엘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빌립을 따라갔습니다. 그가 왔을 때... 아,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지만, 시간 때문에...
보십시오. 그가 와서 줄에 들어섰을 때... 아니, 군중 속으로 들어왔을 때 말입니다. 기도 줄에 서 있었을 수도 있고, 군중 속 저 어딘가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다가오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할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다.’ 저는 나다나엘이 속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가 군중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서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하시거나, 평소에 하시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사역은 약 팔십 퍼센트가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겠지요.
그러다가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봅니다. “저분은 보통 서기관들과는 조금 다르군. 그렇게 화려하게 차려입으려고 하지 않으시는군.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분이군.” 어쩌면 “말씀하시는 것이 마음에 드는군.”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쓰는 영어로 표현하면 “보라, 저기에 정직한 신자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생각했습니다. ‘잠깐만. 나는 저쪽 산 너머에서 막 왔는데.’ 어쩌면 전날 출발했을 것입니다. ‘회심한 내 친구 빌립이 찾아와서 내게 말해 주었지. 이제 내가 여기 서 있는데, 저분이 내가 신자이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하시는군. 그 말은 맞아.’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선생님께 낯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이 갖기를 원하시는 것, 곧 유다가 그것을 위해 싸우라고 했던 믿음을 세상에 소개하고 계셨습니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하, 저 사람의 생각을 읽었군. 그렇게 한 거야.” 아시겠죠? 그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습니까?” 이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텔레파시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분이 그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저기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 말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 말로 결론이 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자, 저 사람이 그것을 알았군. 그런데 어딘가 속임수가 있어. 뭔가가 틀림없이 있어.” 그 사람은... 마침내 그들이 내린... 그들은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머리로 풀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 모든 단어를 알아도 여전히 잃어버린 자일 수 있습니다. 머리로 풀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자는 그 놀라운 현상을 보자마자 곧바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네가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가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다시 살펴봅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소개하고 계셨던 믿음입니다. 제가 읽은 어디에서도 그분은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이 사람을 내게 데려오너라. 내가 고칠 수 있음을 보여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모순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라.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은 사마리아로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아니, 여리고로 내려가셔야 했습니다. 여리고로 곧장 내려가는 대신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그곳에 이르셨을 때가 열한 시쯤이었는데, 제자들을 성 안으로 보내 먹을 것을 사 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 있는 동안, 이곳에서 우리가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는 한 여자가 물 한 항아리를 길으러 그곳에 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려면 동양에 한 번쯤은 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여자는 낮 열한 시쯤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벽 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마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여자가 왔을 때, 아마 그것으로 아버지께서 그 길로 가라고 하신 일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여자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 그때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인종 간의 분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관례가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네게 물을 주어서 네가 여기로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게 하였을 것이다.” 그 여자가 곧바로 그분을 꾸짖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제 솔직한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려 하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분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심령술로 마음을 읽는 사람처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마귀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을 본떠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유일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춤도 있지요. 그것도 처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가진 모든 것을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을 모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와 말씀을 나누시다가 문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시고, 곧바로 그 원인을 짚으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너라.”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맞다. 네게는 다섯이 있느니라.” 이제 그 여자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니고데모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소개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저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 압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마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시고, 모든 것을 저희에게 말씀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바로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런 일들을 하실 것이며,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일 줄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라면...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까?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까? 그렇다면 같은 일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아시겠죠?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 여자는 성 안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냐?” 그분은 그 여자의 모든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보여 주실 수 있다면 모든 일을 보여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였습니다.
그 작은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군중 속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이 하나님의 그 은사를 끌어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입술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시겠죠? 아버지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을 때는 그분의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믿음이 그분을 통해 그것을 끌어냈을 때는 기력이 쇠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내가 기력이 쇠한 것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둘러보시다가 그 여인을 보시고, 피가 흐르는 것이 멎었으며 치유받았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고쳤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고 그것이 그분께서 가르치신 믿음이었다면,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오늘 저녁에도 같은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여리고 성벽 곁에 바디매오라는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 앉아 외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아마 수천 명의 사람이 그분을 따라가고 있었을 텐데, 그분께서 어떻게 들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소리쳤습니다. “꺼져라, 이 점쟁이야. 저자를 내쫓아라. 저자는 바알세붑이다.” 제사장들이 그분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시고, 얼굴을 갈보리로 향하신 채 그 무리를 헤치고 가고 계셨습니다. 세상의 죄를 위해 죽으시려고 곧장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심을 아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의 왕 만세,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사방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사장들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미쳤다. 저자는 마술쟁이다. 바알세붑, 마귀다. 점쟁이다. 저런 자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온 무리가 그렇게 아우성쳤습니다.
눈먼 늙은 바디매오가 물었습니다. “누가 지나갑니까?” 그리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긍휼을 베푸소서.” 아마 저 멀리 길 위에 계셨을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외침을 들으실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아우성치는 무리 속에서는 들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그의 믿음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서 딱 멈추게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여인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로 예수님께서 멈추셨습니다. 돌아서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짐과 염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혼의 운명이 그분의 어깨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아셨으며, 가장 큰 희생을 치르러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이 그분을 짓누르는 가운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누더기를 걸친 눈먼 거지의 믿음이 그분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서 딱 멈추게 했고, 그 사람은 구한 것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눈멀고 누더기를 걸친 거지, 바로 그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다. 아, 자신을 낮추시고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그 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사람까지 돌아보시는 이런 구주를 주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난을 통해 우리가 부요하게 되도록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아, 오늘 저녁 여기 계신 남녀 여러분,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어느 날 그분은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니, 성경이 말하기를, 큰 무리가... 잘 들으십시오. 이제 제 말을 따라오십시오. 허약한 사람들의 큰 무리가 거기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 허약한 사람들이 어떠했는지 살펴봅시다. 어디가 아팠습니까? 다리가 불편하고, 눈멀고, 다리를 절고,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었습니까.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지 얼마 되지 않아, 효능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곳을 지나오십니다. 오늘 저녁 이 강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열 배쯤 될지도 모르는 이들이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두증에 걸린 아기를 안은 어머니, 가엾은 눈먼 늙은 아버지, 관절염으로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사람, 눈먼 사람, 나병 환자, 그 밖의 온갖 사람이 있었습니다. 몸이 뒤틀리고 다리가 불편하고 다리를 절고 몸이 오그라든 채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하나님, 임마누엘께서는 효능과 사랑과 긍휼로 충만하셨지만 그 무리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도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최고 수준의 신학자이면서도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호텐토트인이 이집트 기사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성경에 관한 것은 이해하지만 영적인 것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매우 근본에 충실하고 정통적이었지만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심령술사, 혹은 마귀라고 했습니다. 심령술사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 놀라운 현상을 보면서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글로만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리의 근본에는 충실했지만, 실제로 입증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처럼 사랑을 가지고 다가오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가파오 사랑과 필레오 사랑입니다. 필레오 사랑, 아가파오 사랑과 필레오 사랑, 하나는 신성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속한 사랑입니다. 아가파오 사랑은 이렇게 하게 할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다가가 여러분의 아내를 껴안는 것을 보면, 아가파오 사랑은 그 남자에게 총을 쏘아 쓰러뜨려 죽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레오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이 그를 껴안고 잃어버린 형제로 여기며 그의 잃어버린 혼을 위해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랑과 긍휼로 충만하셔서, 사랑과 긍휼을 지닌 채 그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누워 있는 이 가엾은 사람. 죽어 가는 이 가엾은 아이. 이 사람, 저 사람.’ 그것은 아가파오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지닌 긍휼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필레오 사랑은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사랑입니다. 그분은 몸이 뒤틀리고 다리가 불편하고 다리를 저는 그 모든 사람들 사이를 지나, 작은 깔개에 누워 있는 한 사람에게로 곧장 가셨습니다. 잘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던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둘러보셨던 것처럼, 그 무리를 두루 살피시다가 그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찾으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저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걸을 수 있습니다. 다리를 못 쓰는 것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삼십팔 년 동안 진행이 더뎠던 병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제게 병이 있는데...” 죽을 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제가 물로 가는 동안 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다시 말해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 그는 자리를 들고 떠났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예수님을 데려와 캐물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캐물었을 때... 들어 보십시오. 오늘 저녁 신유 집회에서 이 도시의 시장이 몸이 기형이 된 채 고침을 받으려고 여기 누워 있고, 미국 대통령과 주지사, 국회의원과 그런 사람들이 모두 암이나 결핵을 앓으며 몸이 뒤틀리고 꼼짝 못한 채 간이침대에 누워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흑인 여자나 소년을 고치신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이곳 아파치 보호구역에 올라가 한 사람을 고치십니다. 그는 알파벳조차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명성을 보지 않으십니다. 단순한 믿음을 보십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그분께 “내려가서 이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여 주시오. 그러면 믿겠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께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 그분의 얼굴에 천을 두르고 말했습니다. “자, 너는 생각을 알아차리지. 사람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이런저런 것을 말해 주지.” 그분의 머리에 천을 두르고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선지자임을 믿겠다.” 그분은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앞에서 광대 노릇을 하지 않으십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무대 공연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런 일이 있은 직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을 아들에게 보이시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집에 가시면 요한복음 5장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진실을 말씀하셨습니까? 반드시 진실을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이시려면 진실을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스스로 단 한 사람도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환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 주시느니라. 그러면 내가 가서 그 일을 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하노라.”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하루 길을 더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모시러 사람을 보냈지만, 그분은 또 하루 길을 더 가셨습니다. 계속 가셨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버지께서 환상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모두 알려 주신 그때가 된 것을 아시고, 그분께서 돌아서셨습니다.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그분께서 무덤에 이르셨을 때를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보여 주셨다는 것을 나타내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 때문에, 곁에 서 있는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 말을 하나이다.” 그러고는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두 발로 일어서서 다시 걷고 살아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분께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전달된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이 그 믿음을 지켰는지 살펴봅시다. 그들은 그것을 전달했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셨습니다.”라고 하시겠지요.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세상이라는 말은 코스모스, 곧 ‘세상의 질서’를 뜻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때 누군가는 “물론이지요. 그것은 제자들을 말한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분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인칭 대명사입니다. “이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며, 세상의 끝까지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볼 ‘너희’에 속한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원리에서도 동일하시고, 권능에서도 동일하시며, 사랑에서도 동일하시고, 긍휼에서도 동일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으며, 우리는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은 지금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죽은 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잠깐 주목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일들,” 곧 내가 하는 바로 그 일들을 말합니다. “너희도 할 것이며, 이것보다 더 많이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여러분은 그 단어가 ‘더 큰’이라고 하시겠지요. 찾아보고 무슨 뜻인지 보십시오. ‘더 많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뿐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곳에... 모든 교회에, 어디에나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것보다 더 많이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은 성령의 모습으로 다시 내려오시기 전에 하나님께로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속죄를 이루신 다음 성령의 모습으로 돌아오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은 그 사명을 자신의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했는지 봅시다.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베드로가 한번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불기둥, 곧 빛의 천사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베드로의 손발에 채워진 사슬을 풀고 그 앞의 문을 열어 감옥에서 구해 냈습니다. 또 베드로는 지붕 위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어울리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정오 무렵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에게 어떻게 가야 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과 같은 일입니까?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던 길에 쓰러지게 되었고, 눈이 멀었습니다. 다마스쿠스에는 이미 복음이 전파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성령을 받은 아나니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야라는 보잘것없는 순복음 목회자가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자기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야야.”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올라가라.” 그에게 환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사울에게 안수하여 그가 시력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라.”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그에 대한 큰일들을 들었습니다. 그가 교회를 위협하고 사람들을 체포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느니라.” 그 말씀으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야가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아마 다른 큰길을 지나다가 곧은 거리라는 곳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도시의 분수 곁을 따라 내려가며 주위를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 보자. 환상대로라면 내가 찾아야 할 집이 이러이러한 집이었지. 바로 저기 있군.” 그는 곧장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누워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떠 있던 불기둥에 의해 쓰러져 눈이 멀었던 사람입니다. 그 불기둥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아나니야가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이여,” 아멘. “주 예수님께서 길에서 그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이여, ‘아니오.’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환상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내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와서 그대에게 안수하여 그대가 시력을 받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의 신조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봐요, 길 건너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도 손을 얹어서 시력을 되찾게 해 주시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그대에게 손을 얹어 그대가 시력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사명에 순종하여 그에게 안수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그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들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작고 낡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크레타에서 출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로 나갔고, 십사 일 밤낮이 지나자 살아남을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배에는 물이 잔뜩 들어찼습니다. 배는 물결에 이리저리 튕겨 다녔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먹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다시는 아내와 가족을 보지 못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두려워하며 사슬에 묶인 채 걸어 다녔습니다. 그 낡은 배가 언제라도 뒤집혀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끝장이었습니다. 십사 일 밤낮 동안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는 폭풍 속에서 앞뒤로 심하게 흔들렸고, 붙잡아 둘 방법도,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바울은 아마 기도의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리 가까이 지냈어도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바울은 배 아래 격벽이 있는 어느 곳으로 내려가 기도하며 밤새 머물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 작은 유대인이 뛰어나와 말했습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이 밤에 제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르 앞에 가야 하리라. 보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느니라.’ 제가 지난밤 환상에서 본 이 작고 낡은 배가 어떻게... 반드시 어느 해안에서 부서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그가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입니다. 바울은 설교하는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보고 그에게 믿음이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당신을 온전하게 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에 그런 믿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역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을 위해 싸우십시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십시오.
교회 여러분, 저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저녁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그분은 바로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드시 하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 믿음으로는 그분께서 오늘 저녁 어떤 식으로든 갈릴리 해변을 걸으시던 때와 같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아는 한 그것이 그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그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도 장애물에 부딪히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보여 주시면 가서 그것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입니다.
이제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귀하고 사랑하는 주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오늘 저녁 이 회중 가운데 살아 계신 분으로 오신다면, 곧... 성령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 땅에서 하셨던 일들을 여러분과 저를 통해 다시 행하신다면,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시겠다면 손을 들어 말씀해 주십시오. 손을 드는 것으로... 여러분 중 삼분의 일만 믿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정죄받는 것 외에 무슨 길이 남아 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다 해도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 하겠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0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으면,” 곧 죄를 지으면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믿지 않으면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대적들을 삼킬 심판과 불같은 격노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을 처음 말씀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약속드린 바로 그 일들을 그분께서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우리가 피닉스에 있는 동안 그분께서 그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분께서 하신다면 어떻겠느냐고 여러분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와서 그분을 잘못 판단하며 “그는 바알세붑을 힘입어 이 일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너희가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내가 죽었다가 다시 일어난 뒤에 너희가 그렇게 말하며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같은 진리를 거부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것이 복음입니까? 그것이 성도들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진리가 제시되었을 때 믿지 않는 것에는 결코 용서가 없습니다. 기도할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그분께서 부활하셔서 여기 계신다는 증거를 근거로 이제 아버지께 나아가 저와 이 회중을 위한 용서와 긍휼을 구합니다. 아버지의 신성한 은혜를 통해 저희의 모든 죄와 불... 잘못 이끌려 간 일들을 너그럽게 보아 주옵소서. 아버지, 죄가 불신임을 압니다... 하나님, 저희 마음에서 모든 불신을 지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압니다. 저희가 나온 곳이며 다시 돌아갈 곳인 흙을 향하여 지금 얼굴을 숙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침에 해가 뜨기 전에 저희가 주님 앞에 서서, 이 땅에서 한 모든 쓸데없는 말과 모든 행동에 대해 회계 보고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얼마 안 있어 끝이 올 것을 압니다. 참으로 지금은 과학조차 그 끝이 눈앞에 보인다고 말합니다. 머지않아 어느 날 피닉스 전체와 이 땅 전체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원자폭탄으로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날에 온 하늘과 땅이 불에 휩싸이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땅의 원자들이 터지고 폭발하며, 비명이 들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붙잡으려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너희의 재난을 볼 때에 다만 조롱하고 웃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때입니까.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녁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여기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이 계시다면 손을 들고 “하나님께 손을 들며 ‘이제 받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다른 분도 “지금 예수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입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래층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어린 소녀야. 네 손이 보이는구나. 저 뒤에 계신 작은 흑인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도 보입니다. 다른 분도 “지금 손을 들고 ‘주님, 이제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저 뒤에 방금 손을 드신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이쪽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입니다. 여기 아래쪽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입니다. “이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어린 소년아. 아래층에서 또 고백하실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성령께서 지금 보고 계십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손을 드실 분... 여러분에게 지적인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 여러분의 혼 속에서 성령께서 여러분을 그곳으로 부르신 적이 있습니까? 생각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여러분의 혼 속의 무언가가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밖에,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어 범법들과 죄들 가운데 죽어 있고, 지옥으로 향하는 죄인입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지금 손을 드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제 마음속 무언가가 바로 지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손을 드시겠습니까? 아래층에 다른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자매님. 보입니다. 아래층에 한 분만 더 계십니까? 바로 지금 결단하십시오. 이제 제 왼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저에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주님, 손을 들며 이제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지는 용서를 받아들입니다. 지금 저의 구원을 위해 그것을 받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왼쪽 발코니에서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손이 보입니다. 스페인계 형제님, 하나님의 평안이 형제님 위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테이프의 빈 부분]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신비롭고 허구 같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바로 그 생명이 여러분 안에 들어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영생, 조에,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대로 믿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밤새 설교하는 것보다 일 분 동안 더 많은 일을 하셔서 사람들을 확신시키실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아이들을 가까이 두시고, 예배의 이 순서 동안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말아 주십시오. 불신자라면 여기 머물지 마십시오. 신자라면... 그리고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불신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제 모두 자리를 찾아 앉으시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하루 저녁일 뿐입니다. 하룻밤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경건하게 자리를 찾아 앉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 강당에 기도 카드를 가진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늘 그 청년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좋습니다. 여기, 바로 이곳에 앉아 계시는군요. 이곳은... 좋습니다. 병자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까? 좋습니다. 1번부터 100번까지입니까? 좋습니다. 그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앞면에는 제 사진과 여러분의 이름과 주소를 적는 칸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뒷면에는 A라는 글자와 번호가 있을 것입니다. 번호는 1번에서 시작하여 100번까지입니다. 이제 몇 분을 여기에 줄 세워 기도해 드립시다. 제가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사람들을 고칠 수 있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고칠 것입니다. 이제 저는...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이 누구십니까? 어디 봅시다... 1번 기도 카드를 가진 분이 계십니까? 1번, 1번... 처음 다섯 분을 부르겠습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모두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그곳으로 올라올 수 있는지 보십시오. 못 올라오시겠다면 누군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이 계시면, 다른 분을 좀 살펴보십시오... 다섯 분이 모두 일어나지 않으시는군요. 세 분입니다. 4번과 5번은 어디 계십니까? 다른 두 분이 저기 계시군요. 자매님들,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여기 제 오른쪽으로 와 주십시오. 좋습니다. 5번입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기도 카드 6번을 가진 분이 누구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6번, 7번, 8번, 9번, 10번, 일어나시는 것을 보겠습니다. 다섯 분이 더 됩니다. 6번, 7번, 8번, 9번, 10번, 지금 바로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어디 계신지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디 계신지 볼 수 있도록 일어나십시오. 6번, 7번, 8번, 다른 두 분은 어디 계십니까? 9번과 10번은요? 뭐라고요? 아, 거기... 죄송합니다, 자매님. 모두 이곳에 앉아 계신 줄 알았습니다. 좋습니다. 9번과 10번, 나오십시오. 좋습니다.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하나, 둘, 셋, 넷. 아직 한 분이 빠졌습니다. 기도 카드 6번에서 10번 사이를 가진 분은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다른 분을 좀 살펴보십시오. 귀가 들리지 않아 자기 번호를 부르는 것을 못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누군가... 누군가... 봉사자나 다른 분이 여기 있는 이 두 의자를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그분들이 일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아, 저기 계시는군요. 가지고 계십니까? 좋습니다. 잘됐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6번, 7번, 8번, 9번, 10번. 좋습니다. 이제 기도 카드 11번을 가진 분은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11번? 12번, 12번은 누구십니까? 13번, 14번, 기도 카드 14번. 15번? 좋습니다.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봅시다. 잠시 기다렸다가 이분들부터 시작합시다. 먼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오래 서 계시지 않아도 됩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기도받을 번호가 불렸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나오십시오.
이제 모두 아주 경건하게 계셔 주시겠습니까? 한없는 긍휼을 지니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격 없는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리라고 믿으십시오. 강당에 몇 분이나 계십니까? 아주 경건하게 계시면서 잘 들으십시오. 기도 카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 강당에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손을 들어 주십시오. 강당에 계신 분들 중 누구든지요. 기도 카드가... 온통 손이 올라오는군요. 사방에서, 위층 발코니에서도 손을 드셨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 보십시오. 성령께서 오셔서 여기 우리 가운데서 주 예수님의 일을 시작하시면,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여기 계신 이분들이 기도 줄에 들어온다고 해서 반드시 치유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 뒤쪽 끝에 있든, 이쪽에 있든, 어디에 있든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있습니다. 단순한 복음, 곧 예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시고 이곳 어디에 계시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실 줄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발코니 위에 있든 어디에 있든, 주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일을 입증해 주시지 않는지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면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조용히 찬송합시다. 좋습니다. 아주 경건하게, 아주 조용히 계십시오. 여기 있는 제 아들과 제 사역을 맡아 돕는 무어 씨, 다른 보조자인 브라운 씨, 그리고 단 위의 사람들이 지켜봅니다. 잠재의식의 상태가 됩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며칠 저녁이 지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능한 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 여러분을 다시 뵙고 싶습니다. 모두 경건하게 계십시오. 그 사람들이 지켜보다가 제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면 단에서 데리고 내려갑니다.
이분들을 줄 세운 유일한 이유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역사하기 시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아시겠죠? 기름부음이 여기 내려오면 여러분의 믿음이 그것을 움직이게 합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줄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가 아는 사람은 한 분도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기서 알아보는 분은...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여기 목회자 한 분을 보고 제가 아는 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앉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분이 그 교회를 맡고 계신 형제님입니다. 여기 계신 작은 체구의 형제님, 풀러 형제님이시지요? 풀러 형제님... 제가 아는 다른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지금은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제가 실제로 알아보는 분은 이분뿐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제게 낯선 분들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친히 이곳에 서 계시고, 여러분이 병들어 있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고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하신 일을 어떻게 다시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내가 이미 그 일을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사역은... 무엇이든 끝났으면 끝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역, 구속의 온전한 계획은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질병을 다루지 않고 죄만 다룬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질병은 죄의 한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역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영감을 받은 좋은 설교자를 보내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가진 누군가를 통해 말씀하시며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가 가서 이것을 돌려놓거나, 무엇을 하거나, 어떤...” 그런 식으로 통역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언과 같습니다. 혹은 그분께서는 예언의 은사들을 교회 안에 두셔서 자신을 크게 드러내고 높이며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치유받습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조용히 한 번만 찬송합시다. 모두 경건하게 계십시오.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으라.
저는 그분의 기름부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압니다. 저 멀리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보입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왜 저 사람이 노래하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시겠죠? 바로 이것입니다. 음악을 연주했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때까지는 한 사람이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일 가운데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그 선지자는 몹시 낙심해 있었고, 자기 곁에 서 있는 거짓된 사람들을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가 “음악하는 자를 데려오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하는 자가, 음악이 시작되자 엘리야가 영 안으로 들어가 환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죠? 오늘날도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때 음악을 사랑하셨다면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십니다. 같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저는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여러분은 경건하고 조용히 앉아 주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마이크를 다루는 기사님, 음량을 조금만 높여 주십시오. 때로는 이것이 시작되고 나면 제가 얼마나 크게 말하는지, 얼마나 작게 말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지금 이곳으로 올라오신 이 여자분, 우리는 서로 처음 뵙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자매님? 자매님과 저는 서로 낯선 사이입니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매님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매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제가 그것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저는 잔인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자매님을 아십니다. 저도 아십니다. 자매님은 여자이고 저는 남자인데, 하나님께서 자매님께 임하여 믿음을 위해 자매님을 사용하시고, 여기 제게 그분의 영을 부으셔서 자매님에게 그것을 말하도록 저를 사용하실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물론 그분께서 자매님을 돕는 무언가를 제게 보여 주시도록 제게 기름을 부으실 수 없다면, 그것은 제 잘못이거나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든지, 아니면 그분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의 믿음이 그 일을 일으키도록 자매님께 기름을 부으실 수 없다면, 그러면 할 수 없... 그때는 자매님의 잘못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모릅니다. 자매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아십니다. 우물가의 그 여자처럼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 여자의 영을 감지하고 계셨다고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자매님도 저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이... 그것이... 무엇이든지요. 짐을 지고 계시든, 죄를 짓고 계시든, 삶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든, 병들었든, 무엇이든 주 예수님께서는 제게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바로 그 주 예수님, 이 땅에 계셨던 그분이 아니시겠습니까? 회중 여러분은 그것이 같은 주 예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여기 피닉스에 사십니까? 그렇다면 여기 자매님을 아는 분들이 계시겠군요. 아시겠죠?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자매님을 아십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이니, 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바로 그 문제를 짚어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거기 서 계시는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자매님은 그분을 자신의... 구하러 오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주실 분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렇습니까? 나머지 회중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이 여자분과 제 손을 보고 계십니다... 저는 평생 이 여자분을 본 적이 없고 그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은 그분을 자신의 치유자와 구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지금 자매님께 그저 말을 건네는 것은 자매님의 영과 생각이... 자매님의 영에는 믿음이, 제 영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서, 아시겠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분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회중 여러분에게 아직 제 말이 들린다면 말입니다. 이분은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과 저 사이에 빛이 있습니다. 아주 밝고 에메랄드처럼 보이는 빛이며, 그것은 주님의 천사입니다. 이분은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분은 제게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이분의 문제는 우울한 정신 상태가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병으로 아주 심하게 앓기도 했습니다... 폐에 있었습니다. 폐렴이었습니다. 폐렴에 걸려 몹시 앓았고, 그것이... 자매님, 이것들이 사실이지요?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믿으십니까? 그때 말하던 목소리는 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제 목소리였지만 제가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여자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든 여기 아래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으니 내일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든 진실입니다. 진실입니다. 이 여자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참인지 아닌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무엇이 있었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증인입니다. 자매님, 사실이었습니까? 말씀한 모든 말이 하나하나 사실이었습니까? 제가 말하는 동안, 혹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무언가가 자매님께 닿았지요? 자매님 주위에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은 치유받으셨습니다. 자매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불분명한 말] 아주 경건하게 계시면서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이제... 선생님, 온 마음을 다해 믿고 계십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환자분은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까? 그렇습니까, 선생님?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 이쪽으로 조금만 더 가까이 와 주십시오. 전에 저를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습니까? 기억하시는 한 저를 한 번도 보신 적이 없군요. 예, 예, 그렇군요.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들이 서로 도움을 청합니다. 최근에 신경이 몹시 예민하셨습니다. 부비동에 문제가 있어서 고생하고 계십니다.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바로 저기에 앉은 분도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비동 질환이 낫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자매님의 믿음이 그 일을 합니다. 그 영들이 서로 부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마음을 쓰고 계신 다른 분도 있지요?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슨 문제인지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조카딸을 위한 것이지요? 조카딸에게 신장 질환이 있지요? 맞습니까? 그때 무언가가 선생님께 닿았지요? 그것은 성령의 증언이었습니다. 가셔서 믿으신 그대로 되어 있음을 확인하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테이프 중단] 치유받은 그분이 여기 회중 속 어딘가로 돌아가셨습니까? 또 다른 무언가가 방금... 어떤 여자가 나타나... 아, 여기 있군요. 이것이... 바로 여기 계신 여자분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목에 병이 있습니다. 이 여자분은 목에 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일어나 그것을 받아들이시고 온전해지십시오. 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기도 카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분이 환자분입니까?
죄송합니다, 자매님. 제가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제게 너무나 강하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자매님? 제가 아는 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 제가 자매님을 위해 기도해 드린 적이 있군요. 지난번 제가 여기 왔을 때 기도해 드렸군요. 아, 지난번 제가 여기 왔을 때 암을 치유받으셨군요. 그 말을 들으니 참 기쁩니다. 어쩌면 그것이 나중에 그 일을 말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일이 무엇이었든 말입니다. 그 점은 제가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그저... 물론 자매님이 기도 줄을 지나가시면... 내일이면 저는 자매님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알게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기도 줄에 계셨습니까? 바로 이런 줄이었습니까? 그것이 자매님께 말씀한 그대로,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까? 그리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한 일이, 치유받으리라고 말씀한 그대로 일어났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아, 회중 가운데 의자에 앉아 계실 때 불러 주셨군요. 아, 의자에서, 의자에 앉아 계실 때였군요... 그 일에 감사드립니다, 자매님.
이제 자매님은 다시 오셨습니다. 저는 자매님께 낯선 사람입니다. 자매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때 외에는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으며, 그때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 회중 여러분이... 이 여자분은 피닉스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분을 아십니다. 여기서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를 각각 듣고 계십니다. 이 마이크가 소리를 받아 줍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분이 제게 치유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었습니까, 자매님? 암이군요. 다른 집회에서 의자에 앉아 계실 때였습니다. 아마 저 여자분들이나 다른 분들, 저쪽에서 치유받은 분들처럼 말입니다. 이분이 여기 살아 있는 증인으로 서 계십니다. 이제 성령께서 그 여자분에게 드러내 주신다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습니까? 재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저는 모릅니다. 이분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제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매님? 이분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저는 전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계신 어떤 분은 알고 계십니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믿음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여자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여전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 백 퍼센트, 한 분도 빠짐없이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 조금만 더 가까이 오십시오. 지금 사방에서 영들이 다가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이것이...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환상이 시작되면 어디에서 오는지 제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관련된 사람의 영과 접촉해야 합니다. 이제 자매님과 잠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를 바라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원하시는 어느 쪽이든 보십시오. 제가 자매님의 영을 감지할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제 말은 그것입니다. 믿고 계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고쳤습니다. 자매님은...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아래 안쪽, 장에 있습니다. 그것은... 자매님은... 어떤 곳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곳은... 자매님 위로 하얀 것이 덮여 있습니다. 병원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술입니다.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습니다. 장, 대장입니다. 꺼내서 자릅니다. 그런 다음 그 자리에 무언가를 다시 넣는 모습이 보입니다. 대장에 재건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이 다시 보입니다. 이렇게 뒤틀려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 오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든, 그 일들이 사실입니까, 자매님? 그렇다면 손을 들고 사실이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분 앞에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자매님의 형제인 제가 그런 일을 알 방법이 없음을 아시지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잠시 이리 오십시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이곳에서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시는 동안 저는 제 주님의 지시를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이 일을 행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믿으십니까?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영이 이곳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렇게 움직이면 제가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그분께서 계속 회중 가운데로 움직이고 계십니다. 아시겠죠? 돌아서서 회중을 향하면 그것이 그저 이렇게 느껴집니다... 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분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어머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렇지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좋습니다. 잠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사람 외의 어떤 존재 앞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자매님은 믿는 분이므로 그것을 느끼십니다. 여기 서 있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 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자매님 자신의 상태는 가볍지만, 제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습니다. 예, 그것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입니다. 아, 이런. 자매님은 어머니이며 딸이 있으십니다. 그 딸이 나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딸을 위해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딸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딸을 위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말씀드린 이 일들이 사실이지요? 잠시 이리 오십시오. 오,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 하늘의 하나님이여, 우리가 사랑하는 이분에게 긍휼과 평안을 주옵소서. 그 마음 깊은 곳의 소원이 무엇이든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그저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돌아다니지 말아 주십시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까? 서로 만난 적이 없고,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매님이 태어날 때부터 자매님을 아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저를 아셨습니다. 어쩌면 그 옛날 우리 두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오늘 저녁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록 미리 예정하셨고,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모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가 알도록 도와주신다면, 그분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낯선 사이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자매님께 기도 카드를 주었고 번호가 불렸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제 자매님이... 그저 믿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시오. 제가 자매님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자매님을 사랑하시며 자매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신다고 제가 말씀드린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이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매님이 구하러 온 것을 받을 만큼 믿음이 높아지게 하는 무언가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매님께 실제로 크게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신경이 예민하고 마음이 몹시 불안정합니다. 잠깐만요, 어두워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것은... 사막의 골짜기가 보이고, 그 옆 뒤쪽으로 언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일입니다. 딸입니다. 그 딸이...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지금 제 앞에 보이는 그 언덕은 애리조나주 투산에 있습니다. 그 딸은 몹시 불행합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미쳐 가며 제정신을 잃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방 안을 아주 많이 서성거리고 여러 가지 행동을 합니다.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줄곧 그쪽, 저 아래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사실입니다. 이제 손에 들고 계신 손수건을 제게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여, 주님, 이분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이 일이 행해질 때 주님의 크신 영께서 믿음을 귀히 여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자매님의 그 마음 깊은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젊은이, 믿고 있습니까? 제게 닿으려고 애쓰고 있지요? 그 믿음이... 조금 전에 불리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군요. 그렇게 할 필요 없습니다. 무언가를 없애려고 하고 있지요? 정확히 말하면 병이 아니라 성질입니다. 금방 발끈하고 화를 냅니다. 제 말이 주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임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손을 심장 위에 얹으십시오. 다른 손은 하나님께 드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소년의 믿음이 주님께 닿았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문제를 제가 꾸짖습니다. 다시는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잠시 이쪽을 보십시오. 믿으십니까? 자매님 자신이 아니라 아기를 위한 것이군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 어린 아기의 상태를 제게 보여 주셔서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게 하신다면, 그 아기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죽으셨음을 믿으시겠습니까? 어떤 병이 보입니다. 그 아기는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폐에 있습니다. 그 아기에게는 갈비뼈 세 개와 폐의 일부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이 아이에게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거부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가십시오.
믿고 계십니까? 잠시 이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치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지금 그 심장병에서 치유받는 것을 받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아버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며 가십시오. 믿으십니까? 저 여자분이 기침할 때 무언가 이상했지요.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드셨지요? 자매님도 밤에 기침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천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이제 그분을 자신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매님의 믿음을 근거로 자유롭게 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옆구리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요? 옆구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기 줄에 계신 두 분입니다. 예. 자매님 바로 앞에 계신 여자분도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건강해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쪽에 앉아 계신 자매님, 손을 입에 대고 계신 여자분, 그 관절염에서 낫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저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자신의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자매님,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제가 자매님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방법이 없음을 아시지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신다면, 그분의 종으로서 제가 하는 말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셔서 저녁 식사를 하십시오. 위에 있던 궤양과 위장병이 떠났습니다. 가셔서 저녁 식사를 하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낯선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주위에 아주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으며, 선생님의 영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암으로 죽어 가고 계십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고쳐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셔서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이쪽을 보십시오, 자매님. 저를 바라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 당뇨병에서 벗어나 온전해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분께서 이미 하셨음을 믿고 지금 온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기뻐하며 가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얘야.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너도 기도를 받고 싶니? 예수님께서 네게 새 피를 주시고 그 빈혈을 없애셔서 너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다고 믿니?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아버지 하나님, 아직 온전히 자라지 못한 이 아이에게, 이 어린 소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이를 제 품에 안아 갈보리로 데려갑니다. 수혈을 받도록 데려가오니,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복 받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이야. 할머니가 치유받으셨음을 확인하거라.
온 마음을 다해 믿고 계십니까? 선생님, 믿으십니까? 저 뒤에 있는 분이 아드님이군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아드님이 선생님 건너편에 앉아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아드님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게 알려 주시고, 그런 다음 선생님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알려 주신다면, 치유를 위해 주 예수님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심장병이 있지요? 아드님은 사시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기뻐하며 가십시오. 믿으십니까? 사람들이 제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를 기도 줄에서 데리고 내려가겠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싶은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전에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 믿게 된 분들은 모두 잠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불신자였다가 이제 신자가 되어 예수님을 받아들인 분들은 모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잠시 그대로 서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다른 일들을 위한 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분명 이 기도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서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층 발코니에서도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제단 주위에서도요. 이제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듯합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모두 일어서십시오. 이제 성령 침례를 받고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분들은 모두 잠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잠시 일어서십시오.
목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기도실이 어디인지 여쭤보십시오. 이제 제가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차례로 기도실에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 사랑하는 주님, 주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곳의 모든 병자의 몸을 치유해 주옵소서. 여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 삶에 있는 모든 질병에서 온전히, 완전히 놓임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종으로서 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병자의 질병과 고통을 정죄하며, 예수님을 통해 그것이 오늘 밤 제거되기를 구합니다. 마귀의 모든 저주가 제거되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구원과 성령 침례를 받아들이려고 서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주님 보시기에 은혜를 입었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이 갈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서 계신 분들은 곧바로 기도실로 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