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오후에 이렇게 나오게 되어 참 기쁩니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군요. 이 안에도 축복의 소나기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후에 이곳에 오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는 주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저 좋습니다. 제 통역자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브래넘 형제님이 웃는다.] 방금 한 말로 이분을 한번 놀렸습니다. 사실 줄곧 아주 잘해 주셨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프랑스어를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이상한 게 뭔지 아십니까? 오늘 아침에 아기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영어로 울더군요. 또 작은 독일산 닥스훈트 한 마리를 보았는데, 그 개도 영어로 짖었습니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도 들었는데, 여러분도 모두 영어로 웃으시더군요. 그런 것은 어디서나 다 똑같습니다. 아, 바빌론에 있던 그 사람들! 우리를 온통 뒤섞어 놓았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교제의 시간을 참으로 즐겁게 보냈습니다.
저는 언제나 일요일 오후 집회를 좋아합니다. 편안하게 말씀을 전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녁 집회에 나올 때는 보통 오후 두세 시쯤부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제 가까이 계심을 믿으면서 계속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그때부터는 아무도 제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습니다. 저를 데리러 오는 사람들은 그저 들어와 저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러면 저는 곧바로 강단으로 옵니다. 강단에 서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그 일이 실제로, 그러니까 자연계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프랑스어 단어들을 말하지 못합니다. 할 수 있다면, 아,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그러나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치유받는 것을 보고, 그 이름도 알지만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보이지만, 전부 다른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발음을 할 수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가리킬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꽤 걸리면 환상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멘.
저는 여러분을 무척 사랑하며, 여러분의 믿음은 제게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간이침대와 들것에 계신 분들에게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밤 한 작은 체구의 부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매일 밤 여기 오셨습니다. 그 부인은 치유받기 바로 직전까지 이른 적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치유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전에는 제가 그분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잘 지켜보십시오. 치유를 말할 때는 언제나 먼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 환상이 진행되는 동안을 지켜보십시오. 저는 보고 있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해 보시면,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서 아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일들을 말해 줍니다. 지켜보시면 그 사람들이 “아!” 하고 말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잊어버렸던 일이 여기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바로 지금까지 쭉 올라옵니다. 거기서 멈추면, 제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되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여 주면, 여러분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보스워스 형제님과 다른 분들이 여러분에게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믿어야 합니다. 아멘.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제 어머니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부인,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드님 빌리에 관한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는 내게도 당신에게만큼이나 신비로운 사람이랍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제 아내에게 갔습니다. “브래넘 자매님, 빌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아무도 몰라요” 하고 말했습니다. “집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그이가 여기 앉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다가도, 그냥 나가 버려요. 그러고는 이삼 일 동안 아무 소식도 없지요. 나중에 신문 같은 데 기사가 날 때도 있어요. 그이가 멀리 다른 도시의 산속으로 보냄을 받아 갔는데, 거기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치유받았다는 거예요.” 보십시오, 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주님을 따릅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주님을 믿는 것이 좋습니다. 아, 얼마나 승리하는 삶입니까! 제게 영생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고 다시 태어난 저의 사랑하는 모든 친구들에게도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든 모든 분들이 변화되어 다시 젊어질 것입니다. 아멘. 성경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제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말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설명한다.] 저는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머리가 희어진 어머니와 어깨가 굽은 아버지가 변화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다시 아름다운 젊은 처녀가 되고, 아버지는 건장한 청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여러분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지만,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분을 이 삶에서 데려가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돌아올 때는 그런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아멘. 아, 얼마나 놀라운 소망입니까! 그것이 성경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아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참으로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기 계신 분들에게 한 말씀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말을 믿어 주시겠습니까? 잘 보시면, 이따금 몸을 못 쓰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하고 물으시겠지요. 지금 세상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적 보기를 좋아합니다. 자, 다른 질병에 비해 몸을 못 쓰는 사람들이 치유받는 일이 더 많이 보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가 아프거나,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나는 치유받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많이 아픈 것은 아니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의 믿음이 곧바로 뻗어 나가 그것을 붙잡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몸을 못 쓰게 되면 소망을 잃습니다. “아, 나는 안 될 거야. 도저히 안 될 거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을 낫게 하시는 것과 똑같이 여러분도 낫게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이 얼마나 심하게 불편한지는 바라보지 마십시오. 누가 약속하셨는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시간을 많이 빼앗고 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작은 예를 들고 싶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읽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옛 대속의 법에 따르면... 자, 가령 어미 말이 있다고 합시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설명한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그 말의 새끼가... 노새입니다. 귀는 축 늘어졌고, 무릎은 서로 부딪치며, 눈은 사시입니다. 참 볼품없는 노새지요! 이 작은 녀석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꼴 좀 봐! 나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이 집 주인이, 임자가 밖에 나와 나를 보면 머리를 때려 죽일 테니까. 주인은 절대로... 절대로 나를 먹여 주지 않을 거야. 돌봐 주지도 않을 거야.” 몸이 불편하신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어미 말이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배웠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잠깐 기다리렴, 아가. 있잖니, 대제사장은 너를 보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너는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가지고 있단다. 너는 내 새끼이고, 내 첫 새끼야. 그래서 너에게는 태어나면서 얻은 권리가 있단다.”
자, 주인이 밖에 나와 그 새끼를 보는데, 그곳에 아주 흉하게 생긴 노새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주인은 가서 어린양 한 마리, 흠이 없는 완전한 어린양 한 마리를 데려다가 대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린양의 목을 베고, 노새를 살리기 위해 어린양이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노새가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노새를 검사하지 않습니다. 어린양을 검사합니다. 제사장은 어린양을 봅니다. 성경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이것을 아십니다. 신약의 대속의 법에 따르면,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지 여러분 자신을 보지 말고 여러분의 어린양을 보십시오. 아멘. 그분에게서 어떤 흠이라도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시지 않고 어린양을 보십니다. 그러니 어린양에게 흠이 없다면 여러분에게도 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믿음을 가지십시오. 일어나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누리십시오. 겉으로 어떻든, 얼마나 아프게 느껴지든,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든, 여러분은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제 집, 제가 사는 도시에 메이요의 간호사 한 사람이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설명한다.] 암 환자 한 사람을 보고 있는데요. 메이요 형제가 포기했을 때 이 여자의 몸무게는 겨우 30파운드였습니다.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왔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자를 집회에 데려왔습니다. 24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자매와 남편이 데려왔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동안 환상을 보았는데, 그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 주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것이 10년 전 일입니다. 일 년이 지나자 그 여자는 몸무게가 170파운드가 되었고,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건강해졌습니다. 그것은 수백 건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거기서는 무언가를 창조해야 합니다. 믿음이 창조해야 합니다. 장기들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암이 얼마나 심하게 파먹었던지 창자에 구멍까지 뚫렸습니다. 암이 그 여자를 다 파먹었는데, 오늘날 그 여자에게는 아무런 흠도 없습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자,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보십시오. 하지만 몸을 못 쓰는 여러분에게는 그런 일까지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영은 이미 나갔습니다. 소아마비나 마비의 경우 말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집 안에 들어와 등잔을 깨뜨리고 침대를 망가뜨린 다음 나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남긴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집을 돌보시는 분으로서 들어오셔서 다시 바로잡아 주십니다. 아멘. 그러니 주님을 믿으십시오. 오늘 밤에는 여러분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자, 이제 제게 삼십오 분이나 사십 분쯤 시간이 있습니다. 밖에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이 안에도 소나기가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서 계셔서 죄송합니다. 비를 맞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가능하면 편안히 자리 잡으십시오. 이쪽 바로 뒤에도 자리가 있으니 원하시면 오십시오. 이쪽 구석에도 빈자리가 있으니 오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뒤쪽에 계신 분들, 저기 구석에도 자리가 더 있습니다. 아무 부담 없이 편히 오십시오. 모두를 위한 자리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통역자에게 누가복음 7장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36절부터 시작해서 그 장의 나머지를 읽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말한다.]
이제 말씀을 읽을 때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바리새인들 중 하나가 그분께서 자기와 함께 잡수실 것을 그분께 구하매 그분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음식 앞에 앉으시니라. 보라, 그 도시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신 것을 알고는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분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 곁에 서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여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발에 부으매 이때에,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대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이 여자가 누구이며 또 어떤 여자인지 알았으리라. 그 여자는 죄인이니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말씀하소서,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그가 그들 두 사람에게 그들의 빚을 너그러이 탕감해 주었나니 그러므로 내게 말해 보라.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시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탕감해 준 사람이니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하시고 그 여자를 향해 돌아서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그녀의 많은 죄들이 용서되었느니라. 이는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적은 것을 용서받은 자, 바로 그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시고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죄들이 용서되었느니라, 하시니 그분과 함께 음식 앞에 앉아 있던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죄들도 용서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더라.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말씀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지금은 좀처럼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아버지께서는 아십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버지.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주님의 말씀과 함께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취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각 사람의 마음에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말한다.]
뭔가 이상합니다.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무슨 볼일이 있었을까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미워했는데, 여기서는 자기와 함께 저녁을 먹자며 그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뭔가 이상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여덟 살쯤 된 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 곁에만 붙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뭔가 이상하지요. 나이 차이가 너무 큽니다. 물론 할머니가 유난히 귀여워하는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설명한다.] 어쩌면 할머니 주머니에 사탕이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큰데도 이 어린아이가 줄곧 할머니 곁에만 붙어 있으니까요. 보십시오, 어린아이들에게는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노는 것입니다. 공통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사야서에서 그것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놀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자들에게는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어울립니다. 나이 든 여자들도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 나이 든 남자들, 친목 단체들, 도시의 남자들에게는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 도시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독일인이든, 스위스인이든, 미국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오후에 나오신 것은 제가 미국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의 형제이고,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갖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오신 것입니다.
제 어머니가 즐겨 쓰시던 옛 미국 속담이 있습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함께 모인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비둘기와 말똥가리는 교제를 나누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똥가리는 죽은 것을 먹지만, 비둘기는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먹으면 죽고 맙니다. 비둘기에게는 쓸개가 없어서 그것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보여 주는 아주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여러분이 회심하면 하나님께서 수술을 하십니다. 쓸개를 빼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더 이상 말똥가리가 먹는 것을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쓸개를 전부 빼냈기 때문에 세상의 것들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똥가리나 까마귀를 유심히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저기 앉아 죽은 짐승의 사체를 먹다가도, 이리 와서 비둘기와 함께 밀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선자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저쪽으로 가서 까마귀와 함께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무슨 볼일이 있었을까요? 무슨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봅시다. 히브리어로... 아니, 그리스어로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배우’, 곧 어떤 사람인 척 연기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그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미국에는 배우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할리우드에는 말입니다. 그들은 늘 카메라 앞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와서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자신과는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좋지 않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과 영화에 빠져 있습니다. 밖에 나가 보면 그런 곳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밖에 나와서 그 배우처럼 행동합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가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설교자들도 배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강단에 올라서면 강단용 목소리를 씁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거드름 피우는 목소리를 흉내 낸다.] “자, 형제들이여, 우리가 오늘 이곳에...” 강단에 있다는 이유로 그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구원받으십시오! 그런 가식은 그만두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배우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성령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행동하시게 하십시오. 아멘.
이렇게 꾸미는 것을 보십시오... 여기서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우리 자매들이 때때로 연기를 많이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아,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는지요. 형제들도 그렇습니다. 집에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거친 목소리를 흉내 낸다.] “존, 존, 서둘러! 어서 움직여!” 그러다가 전화가 울리면, [브래넘 형제님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 여보세요!” 이 배우 같은 사람! 하나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와 같이 집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십시오. 아멘. 우리가 그토록... 그리스도인이 되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성숙해져서 연기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저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느 때는 이렇게 행동하고 다른 때는 저렇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아멘.
이 바리새인에게는 이런 일을 하려는 이면의 속셈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명망이 높았습니다. 박사였거나, 어쩌면 문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법학박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잔치를 열려고 했습니다. 향기가 가득한 멋진 거실에서, 훌륭한 페르시아 양탄자 위를 이리저리 거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 그는 부자였습니다. “나, 나, 나, 나!” 들리는 말이라고는 그것뿐입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야. 내 교회가 가장 크지. 내게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들,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있어. 모두 나를 우러러보지. 나, 나, 나.” 그래서 그는 조금 더 얻고 싶었습니다. 통통하고 살찐 두 손을 비비며 이리저리 걷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뚱뚱하고, 뚱뚱하고, 둥글둥글한 바리새인이 말했습니다. “뭘 하면 좋을까? 모두 내 연회에 올 텐데. 그래, 누굴 불러야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까?” 문득 그가 말했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사람을 보내 그 신유자를 데려와야겠어. 호, 호, 호, 호! 자기가 선견자라고 하지. 우리는 그가 광신자라는 것을 알고, 별것 아니라는 것도 알아. 신학교에서는 그런 것이 심리 작용이나, 어쩌면 정신적 텔레파시라고 배웠지. 그 광신자를 내 잔치에 오게 할 수만 있다면, 아, 내가 교회에서 화제의 인물이 될 거야. 그래, 그를 데려올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를 여기 데려오는 거야. 일단 데려오면 정체를 폭로하겠어. 내 생각에 그것은 심리 작용이야. 호, 호, 호! 존스 박사는 뭐라고 할까? 그도 나만큼이나 그자를 미워하지. 바리새인 시므온은 뭐라고 할까? 아, 웃음거리가 될 거야! 정말 멋지겠지? 이 모든 일이 내 집에서 벌어지는 거야.” 그 큰 위선자! 그런 자들이 모두 죽은 것도 아닙니다. 모두 그 옛날에만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아멘.
보십시오. 그래서 그는 심부름꾼, 곧 전령을 불러 그분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러 보냈습니다. 전령은 산에 오르고 골짜기를 내려가며 사막을 건넙니다. 이제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는 발끝으로 서서 저편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먼지투성이입니다. “아,” 하고 그가 한숨을 내쉽니다. “저분이구나. 저 많은 사람들을 봐. 모두 그분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잖아.” 아, 저도 그곳에 서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여러분도 그곳에 서 있고 싶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말씀을 하시는 그 입술의 소리를 듣는다면 말입니다.
그가 서서 듣는 동안 예수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해는 지고 있고, 전령은 지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마치시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전령이 팔꿈치로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옵니다. 예수님께 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빌립과 마주칩니다. 그가 말합니다. “선생님, 당신의 선생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은 바빴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기에, 그도 전령을 뒤로 밀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령이 다시 다가옵니다. “선생님, 당신의 선생님께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분께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침내 빌립이 그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갑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주님께서 “말해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 주인인 바리새인께서 큰 만찬을 마련하셨습니다. 아, 아주 훌륭한 분이십니다! 주인께서 선생님을 손님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가지 마십시오, 주님. 안 됩니다! 주님, 안 됩니다. 그 바리새인에게 가지 마십시오. 그에게는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 잠깐이라도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 바리새인에게 가지 마십시오. 속셈이 바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부자이고,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초대받으신 곳에는 언제나 가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은 누구든 자신을 초대하는 사람에게 가십니다. 전령이 몸을 굽혀 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선생님, 제 주인의 전갈과 초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가겠다.” 그러자 전령은 돌아서서 달려갑니다. 아,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이에서 그분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다른 이야기를 더 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서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바리새인의 전갈만 전하고 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제 혼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을 것입니다. 그분의 발에 손을 얹고 살짝 어루만져 보고 싶습니다. “아,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들으십시오. 그때는 참 많은 사람이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십니까, 오늘날에도 그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주님 앞에 왔다가 그냥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자기 혼을 쏟아 놓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기회입니까. 그러나 그 전령에게는 더 중요해 보이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오늘날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일과 집안일, 내일 해야 할 빨래, 우리가 끼어 있는 조그만 카드놀이 모임이나 우리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중요해서, 옛날식 제단에 나와 예수님 앞에서 울며 그분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지 못합니다. 아, 땅의 일들, 이 땅에 얽매인 관계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우리에게 얼마나 더 크게 보이는지요. 이 전령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크고 뚱뚱한 바리새인의 전갈을 예수님께 전하는 것이 자기 혼이 어디로 갈 것인지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바로 생명의 샘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땅에서 해야 할 일들에 너무 얽매여 있어서,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을 넘어 팔레스타인 땅을 지나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놀라운 기회를 얻고도 놓아 버리다니,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죄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가 오늘 다시 살아나 똑같은 기회를 얻는다면 어떨까요?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여러분은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에게 돌아오자 바리새인이 물었습니다. “그를 찾았느냐?” “예, 주인님. 오시겠답니다.” “아, 잘됐군! 이제 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겠어. 그 신유자까지 설득해서 내 잔치에 오게 했으니 말이야. 그렇고말고!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잔칫상을 차릴 수 있어. 가장 좋은 하인들도 고용할 수 있지. 내 아름다운 정원을 봐. 자, 어디 보자. 식사는 실내에서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밖으로 옮겨야겠어. 잔디밭에 차리는 거야. 아, 주렁주렁 달린 저 아름다운 포도들! 저녁이 되어 시원해지면 사람들이 모두 몰려오겠지. 온 도시 사람들이 나와서 이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내 가장 좋은 식탁을 내놓고, 유명 인사들을 모두 초대해야겠어. 아, 모두들 기꺼이 오겠지. 최고의 요리사들을 구해야겠어. 내게는 살진 어린양들과 가장 좋은 포도주가 있지. 아,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부자니까. 그리고 여흥으로는 이 광신자, 그 신유자를 내세우는 거야. 그의 속임수를 밝혀내겠어.” 오늘날 그런 사람들 중 하나와 똑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하려는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때로 여러분은 교회를 유흥 장소로 사용하여 춤을 추거나 잔치를 벌이고 그 밖의 일들을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십시오.
그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먹는 방식은 우리와 달라서, 우리처럼 앉아 먹지 않습니다. 누워서 먹습니다. 작은 소파 같은 간이침대를 내다가 식탁에 붙입니다. 그러면 환자가... 아니, 그 사람이 와서 앉았다가 뒤로 누워서 손을 이렇게 하고 음식을 먹습니다. 몇 시간씩이나 말입니다. 아, 얼마나 호사스럽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거창하게 차렸겠습니까! 최고의 시중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옷에는 음악까지 있었습니다. 작은 방울들을 달아서 걸을 때마다 음악이 울려 나왔습니다. 아, 팔레스타인에 가 보셔야 합니다.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제 그가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아, 바리새인이 종교 예복을 모두 갖춰 입고 나옵니다. 아,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가 걸어 나오는데 마차 한 대가 도착합니다. “아, 존스 박사로군!” 그가 걸어 나갑니다. “존스 박사님, 제 잔치에 와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자, 팔레스타인에서 손님을 제대로 맞아들이려면... 여행하는 사람은 걸어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팔레스타인의 속옷은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고, 그 위에 긴 겉옷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을 때 길에서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흙과 티끌이 섞여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길은 우리 길처럼 포장되어 있지도 않았고, 기름을 뿌려 놓지도 않았습니다. 먼지가 많고 아주 울퉁불퉁했습니다. 말이나 낙타 행렬 같은 짐승들이 그 길로 다녔습니다. 길에는 짐승의 배설물이 있었고, 새들이 그것을 쪼아 흩어 놓았습니다. 그 배설물이 다시 먼지가 되었는데, 사람이 걸어가면 그 먼지가 다리에 올라와 묻었습니다. 땀이 나면 다리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래서 냄새가 났고, 안에 들어오기 전에 씻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대개 하인들을 여럿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발을 씻겨 주는 하인이, 잘 들으십시오, 가장 품삯을 적게 받았습니다. 다른 모든 하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일을 맡았습니다. 제 주님께서 가장 낮은 하인의 자리를 맡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닙니다. 영광의 왕께서는 사람들의 발을 씻으시며 가장 낮은 하인의 자리를 맡으셨는데 말입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긴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여섯 피트의 땅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자, 들으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깨끗한 물을 한 대야 가져왔습니다. 하인은 그 사람의 발을 들어 자기 다리 위에 올려놓고, 물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의 샌들을 가져다가 작은 선반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서 주인을 대신해 좋은 공단 실내화 한 켤레를 가져와 발에 신겨 주어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떠날 때면 샌들을 돌려주었습니다. 들으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사람은 다음으로 다른 작은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손에 나드 향유를 부어 주었습니다. 아주 잘 알려진 것으로, 향이 강하고, 아라비아에서 나는 작은 것으로 만듭니다. 기름은 변질되면 악취가 납니다. 하지만 나드를 섞으면 여러 해 동안 보존됩니다. 냄새도 아주 좋습니다. 저도 그것을 작은 덩어리로 두 개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는, 세상에 잘 알려진 나무에서 나온 것입니다. 손에 문질렀더니 이 주 동안 향기가 났습니다. 그것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에게 가져온 보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주 비쌌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강한 직사광선 아래서는 여행자의 얼굴이 탔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조금 주면 얼굴과 목 뒤에 문질렀습니다. 그런 다음 깨끗한 수건을 받아 닦아 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순서입니다.
이제 그는 큰 방으로 들어갑니다. 자, 이것을 보시면 그가 어디서 대접을 받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나와 그를 이렇게 맞습니다. 여기 제 형제님처럼 말입니다. 먼저 그의 손, 오른손을 잡고 몸을 굽힙니다. 그런 다음 반대편 손을 잡고 몸을 굽힙니다. 그리고 그를 잡고 손을 이렇게 했다가, 이렇게 하고, 양쪽 뺨에 입을 맞춥니다. 양쪽 뺨에 입을 맞추면서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온전히 형제가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발을 씻었고, 기름을 발랐고, 상쾌해졌고, 환영의 입맞춤을 받았으니 이제 그저 형제입니다. 그는 환영받는 사람입니다. 안에 들어가 앉아도 되고,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어도 됩니다. 형제니까요. 그들은 그렇게 환영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은 아무런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들어오셨습니다. 바리새인이 너무 바빴습니다. 박사들과 가장 유명한 인사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오늘날도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자기 일과 다른 일들에 너무 바빠서 예수님을 대접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 세상에! 그분이 들어오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분은 초대받으신 곳으로 오려고 하시던 일도 놓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접받으십니다. 여러분의 집에서도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교회에서도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도 그렇습니까? “주 예수님, 오십시오” 하고 기도합니까? 그런데 막상 오시면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제 주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어떻게 그 하인이 그분을 그냥 지나가게 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제가 그 하인이었더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알았다면 저는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존스 박사나 저 거드름 피우는 바리새인들은 모두 안중에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을 예우하고 환영해 드리려고, 그분을 기다리고 눈여겨 살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주님 외의 모든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씻지 않은 발 그대로,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 틈의 뒤편으로 밀려나 계셨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실상이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가정이 그렇습니다.
들으십시오. 미국에서 우리가 보낼 때... 대통령이 어떤 도시에 오면, 그가 환영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양탄자를 깔고, 깃발을 드리우고, 곳곳에 꽃을 놓고, 악대가 연주를 하고, 온갖 것을 합니다. 모두들 그를 환영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면 여러분은 그분을 선교관 한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위해서는 준비합니다. 그 바리새인이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들으십시오. 이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 여러분의 집에 오시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아멘 하십시오.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오셨을 때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다락방에 조그만 자리 하나를 내드립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그날, 어쩌면 집에서 바느질 모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울고 싶고, 소리 내어 울고 싶고, 그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어떻게 합니까? 다락방에 모셔 둡니다. 여러분은 다락방에 올라가거나, 작은 방으로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그곳에 엎드려 말합니다. “예수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들 앞에서는 그분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회개해야 합니다. 아멘. 예수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십시오. 첫째 자리에 말입니다. 삶에서 첫째로, 여러분의 가장 좋은 것을 첫째로 드리십시오. 둘째가 아닙니다. 첫째입니다.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 것들이 더해질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분을 뒷자리에 앉혀 두십니까? 여러분이 상사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여러분이 상사에게 간증하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부끄럽습니까? 그분께 작은 구석 자리 하나만 내드립니까? 제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쭤볼 수도 있겠지요. “예수님, 둘째 자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래.” “셋째 자리도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래.” “다섯째 자리도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래도 나는 가겠다.” 여러분의 이웃에게 다섯째 자리를 내주면 그가 오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주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분은 사람이 내드리는 자리라면 어떤 자리든, 할렐루야, 받아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 년에 한 번 교회에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 세상에! 부활절 아침이 되면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자를 쓰고, 교회에 가서 이십 분 동안 앉아 있다가 돌아와 말합니다. “이제 내년까지는 됐어.”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아멘. 예, 받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를 내드리든 그분은 받아 주실 것입니다. 결코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녹음 공백]. 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다른 일들도 있습니다. 나의 형제님, 나의 자매님,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저는 어느 누구의 삶에서든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대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경배에서 첫째 자리에, 삶에서 첫째 자리에, 모든 일에서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리에 합당하십니다. 아멘.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분은 둘째 자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실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 그분을 부끄러워하여 아무도 보지 못하는 지하실로 내려가더라도, 그분은 여전히 오실 것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그분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둘째 자리에, 예수님이 넷째 자리에, 예수님이 열째 자리에 계셔도, 그분은 여전히 오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그렇게 할 때가 많습니다. 들으십시오.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부흥회를 열자고 하고 [녹음 공백]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시면 그것을 내쳐 버립니다. “난 저런 건 싫어! 저건 광신자들이야.” 여러분은 자존심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치유받았다고 간증하면 여러분은 부끄러워합니다. “아, 나는 저 여자를 몰라. 저 여자와 한편이 되지 않을 거야.”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 첫째 자리를 내드리고 그 사람의 편에 서야 합니다. “저 사람은 내 형제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첫째 자리를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십시오. 아멘. 그것이 우리가 언제나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은 저쪽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아, 불편해 보이셨습니다! 동방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모두들 입을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고, 수백 명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이쪽에서는 거드름 피우는 바리새인이 존스 박사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예수님은 더러운 발, 기름을 바르지 않은 얼굴, 입맞춤을 받지 못한 입술로 저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 얼마나 잘 보여 주는 모형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발이 더럽습니다. 예수님의 발이 더럽습니다. 아, 제 마음에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저 거드름 피우는 바리새인이 제 주님을 오시라고 해 놓고는, 발에 배설물이 묻은 채 저쪽에 앉아 계시게 했습니다. 기름도 드리지 않고, 냄새가 나고, 불편하고, 상쾌하지도 않고, 환영받지도 못한 채 앉아 계시게 했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 그분을 보십시오! 아, 하나님, 이 죄 많은 세상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교만은 얼마나 끔찍한 저주입니까. 아, 여러분은 대단히 훌륭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 교회에 다닙니다. 신유는 믿지 않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이여! 예수님이 여러분의 도시에 계십니다. 아멘. 그분을 대접하고, 사랑하십시오. [말이 불분명함]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아, 그분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신 모습이 보입니다. 그분은 대개 부자들 가운데서 환영받지 못하십니다. 그들은 세상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께 내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종교성이 아주 강한 단체들도 그분께 내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씻지 않은 발로 그곳에 앉아 계셨고, 아무도 그분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마치기 전에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 도시에 매춘부,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가엾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그 여자를 손가락질합니다. 그 여자도 어떤 어머니의 딸이라는 사실을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타락한 남자 없이 타락한 여자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둘 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떤 연인이 그 여자를 이런 생활로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남자 친구가 말입니다. 그 여자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놓고, 그다음 이런 생활로 끌어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성경은 그 여자가 타락한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들은 그 여자를 받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와는 아무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거리를 걸어오며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어디 갔지? 도시가 텅 빈 것 같네.” 그때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포도주 잔으로 술을 마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여자는 말합니다. “저 위 바리새인, 그 목사 집에서 나는 소리인가 봐.” 그래서 그리로 올라가 몸을 일으켜 내다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 여자가 다가오자 한쪽에 서 있던 남자들이 스스로 의로운 체하며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것 봐! 누가 오는지 봐.” 아, 바리새인이여! 그 여자는 몸을 세워 저편을 바라보다가, 그분이 더러운 발로 환영받지 못한 채 앉아 계신 것을 봅니다. 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분을 봐!” 하고 말했습니다. 아, 그 여자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 저러면 안 돼.”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분을 봐. 얼마나 슬퍼 보이시는지. 초대를 받으셨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저기 계시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저 모습을 봐. 불편해하시고, 발은 더럽고, 얼굴에는 기름도 바르지 않았어. [말이 불분명함] 아직도 얼굴에 남아 있어. 너무나 환영받지 못하고 계셔.”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견딜 수가 없어. 언젠가 저분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고 하셨어. 그 말씀에는 분명 나도 들어 있을 거야.”
그 여자가 급히 갑니다. 따라가 봅시다. 거리를 따라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가, 삐걱거리는 작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여자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작은 보물 상자를 열어 돈을 꺼내 내려놓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저분은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어떻게 얻었는지 아실 거야. 저분은 선지자이시고 선견자이시니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도저히 안 돼.” 그래서 돈을 다시 넣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야. 그리고 저분의 모습을 봐. 아, 저분께 무언가 해 드리고 싶어.”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무관심하게 앉아 있습니다. 무언가를 합시다. 그분이 환영받으신다는 것을 보여 드립시다.
자, 그 여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여자는 울고 있습니다. 자기 삶을 뉘우치고 있지만, 모두 그 여자를 거절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분명 괜찮다고 하실 거야.” 여자에게는 남자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개 직감이 뛰어납니다. 그 직감을 하나님을 위해 쓴다면 좋겠습니다. 그 여자는 돈을 꺼내 양말 속에 넣습니다. 그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옷자락을 추스르고 거리를 내려갑니다. 향료 가게에 들어가니 나이 든 주인이 앉아 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에이! 오늘은 장사가 정말 안 됐어. 임대료도 못 벌었군.” 그때 이 여자가 들어오고 주인이 나옵니다. 그는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친절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그래, 뭘 원하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나드 향유 한 병을 주세요.” 그러고는 돈을 내려놓습니다.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자, 아,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가 말합니다. “얼마나 있는지 봅시다.” 그 여자는 로마 돈 280데나리온을 세어 놓았는데, 딱 맞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것을 내줍니다. 주인이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저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걸까?” 그것은 그 여자가 가진 마지막 한 푼까지 전부였습니다. 그 여자도 그것을 알았지만, 그분이 가장 좋은 것을 받기에 합당하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여자는 “좋은 것으로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설명한다.] “여기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삶의 젊은 시절, 여러분 삶에서 가장 좋은 것, 여러분 입술의 찬양을 말입니다 [녹음 공백].
보십시오. 이제 갑니다. 그 여자가 다가와 안을 들여다봅니다. 저쪽에 몹시 처량하게 계신 그분을 봅니다. 그 여자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그들이 내쫓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예수님께 가려고 팔꿈치로 사람들을 헤치며 들어갑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했습니까? 비난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 가서 잘 대접해 드리려고 불신을 헤치고 나아가겠습니까? 모든 것, 모든 비난과 모든 불신을 밀쳐 내고 헤치고 나아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와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사람들을 헤치고 마침내 그분께 이르러, 그 자리에 서서 울었습니다.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일어서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눈물! 그러다가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봐.” 아, 여러분도 그렇게 자신을 잊어버리면 좋겠습니다! 들으십시오, 형제들이여! 저는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구원받을 만큼만이라도 자신을 잊어버리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여자는 모든 규칙을 어겼습니다. 규칙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스도께 나아갑시다! 교회 규칙은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아, 제가 그분께 왔을 때도 모든 교회 규칙을 어겼습니다. 저는 울었고, 소리를 질렀고, 저 자신을 잊어버렸고,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이 가엾은 여자가 바로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아, 하나님, 우리도 그곳에 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여자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자기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앞에 말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일 기회였고, 어쩌면 일생의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얼룩을 씻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샘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몹시 뉘우치며 울고 있었고,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눈물이 그분의 발 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 여자는 그분의 발을 문질렀습니다. 아, 얼마나 뉘우쳤는지요! 자기의... 그분의 발을 자기 눈물로 씻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바리새인이 그 여자에게 줄 수 있었던 물보다 더 좋은 물입니다. 회개한 죄인의 눈물이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말입니다.
세상은 물러서서 말합니다. “저 광신자들 좀 봐.” 하지만 죄인들의 눈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 주님! 예, 주님!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온전한 복음을 믿습니다.” 그 여자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녹음 공백]. 가진 것을 전부, 돈을 모두 써 버렸고, 여기서 울며 그분의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여자는 머리를 단정히 올려놓았는데, 그 머리카락이 풀려 내려왔습니다. 아,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그 여자는 자신을 잊어버렸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있었습니다. 아십니까? 오늘날 어떤 여자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 버린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물구나무를 서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은 여자의 머리털이 그 여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영광을 잘라 버리다니 안타깝습니다. 이곳에 필요한 것은 참된 옛날식 성령의 부흥입니다. 아멘. 여기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필요합니다. 옛 복음으로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것이 그 여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엾은 거리의 여자를 보십시오. 가지고 있던 돈은 전부 여기 나드 향유 한 병에 들어갔고,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씻을 물이 되었습니다. 그 여자에게 그나마 제대로 남아 있던 것은 자기 영광인 머리카락뿐이었고, 그것이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왔습니다. 아, 하나님! 여러분의 영광, 모든 것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도시에,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께 무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믿고 사랑하십시오! 그 여자는 그분의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습니다. 이제 나드 향유병을 집어 들고 깨뜨립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머리는 숙여져 있습니다. 바로 그때 바리새인의 머리가 하얗게 변하더니,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그 여자가 그의 잔치를 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사람들이 충분히 신실하고, 예수님을 충분히 사랑하여, 저 차갑고 형식적인 예배를 깨뜨리고 예수님께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분이 필요합니다!
그 여자가 거기 있었고, 바리새인은 말했습니다. “자, 봐라. 그는 선지자가 아니야.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 스스로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저 여자가 저 사람의 평판을 망쳐 놓을 거야.” 실상은 얼마나 달랐습니까. 들으십시오. 예수님은 죄인들이 있는 곳에서 명성을 얻으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가운데서 명성을 얻으십니다. 죄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길을 잃었다는 것,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자신을 잊고 그분을 경배하게 됩니다. 그분이 명성을 얻으시는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얼마 전 밤에 이 마비된 여자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명성이 드러난 것도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거기 가지 마. 허튼소리야!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잊고 그래도 옵니다. 예수님께 이를 때까지 모든 상황을 헤치고 밀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분의 명성이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그곳에서 그분의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나드 향유병을 깨뜨렸습니다. 조금만 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부,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예수님 위에 부었습니다. 그러는 내내 그 여자는 자신을 완전히 잊은 채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시몬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아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너는 나를 네 집에 초대하고도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내 얼굴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환영의 입맞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엾은 여자는 여기 들어온 때부터 계속 내 발에 입을 맞추고, 눈물로 내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그런 다음 그분은 자신을 바라보는 가엾은 매춘부에게 몸을 돌리십니다. 그 여자는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채 서 있습니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했습니다. 자기를 꾸짖으실까요? “이 몹쓸 여자야, 여기서 나가라” 하실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그 여자를 향해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많은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 나를 믿는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다.” 아, 하나님, 저도 그곳에 서게 해 주십시오! 그 여자가 섰던 곳에 저도 서게 해 주십시오. 저도 자신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아, 하나님, 이 죄 많은 세상이 그것을 보고 그렇게 주님을 경배하기만 한다면, 똑같은 말씀이 돌아올 것입니다. “네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 저는 아마 그 여자가 섰던 자리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저도 마지막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땀방울이 제 몸에서 떨어지고, 눈물이 제 눈앞을 흐리게 하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다가가고 싶습니다... 궁전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귀한 발 앞에 기어가 살짝 어루만지고, 한 번 입을 맞춘 다음 돌아서고 싶습니다. 그것이면 제가 해 온 모든 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발이 더럽습니다! 아, 하나님! 오늘날 세상은 주님을 똑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초대하고는 조롱합니다. 아, 하나님, 어쩌면 그토록 오래 참으실 수 있습니까? 사랑스러운 분,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이신 주님. 땅에 오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으며 우리 가운데 거니시는데, 사람들은 주님을 부끄러워합니다. 아, [말이 불분명함] 생명의 샘, 사랑스러운 분, 오직 한 분이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