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그랜트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로트 형제님. 정말 반갑습니다... 설마 댁에서 여기까지 직접 운전해 오신 건 아니겠지요? 오늘 밤에요? 아니, 이런!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로트 형제님은 제가 가장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십니다. 기도 줄에서 밤낮으로 여드레를 보내고 막 쓰러졌을 때였지요. 그 뒤 약 여덟 달 동안 제가 땅 위에 있는지, 세상 밖에 있는지, 어떻게 된 건지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은 한결같이 제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자매님은 함께 안 오신 모양이군요. 혼자 오셨습니까? 아버님이 함께 오셨나요? 제가 여기 강단에서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저기 와 계신 게 보이는데, 따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그렇습니다. 제 오랜 친구가 한 분...
여러분 모두 이렇게 오셔서 무척 기쁩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참 친절하셨습니다. 제가 묵는 곳의 분들도 친절하시고, 식당에 내려가도 사람들이 친절합니다. 이곳에는 참 좋은 분들이 모여 계십니다. 언젠가 그 큰 천막을 가져와서 여기 세우고 아주 오래 머물러도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회중이 아멘 한다.] 그러면 참... 감사합니다.
오늘 그 생각을 하면서 지도를 보니, 이곳은 주위에 큰 도시들이 많이 있는 중심지 같더군요. 아주 좋은 곳입니다. 한두 달쯤 머물면서 정말 길고 좋은 부흥 집회를 하는 겁니다. 그런 집회에서 열매가 맺힙니다. [회중이 다시 아멘 한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옛날식 시골 설교도 받아 주신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쁩니다. 제 학식이란... 학식 있는 분들의 말씀을 듣고 나서도 저를 그렇게 환영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참 친절하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쪽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곳에 있다가 낡은 천막으로 가서 펄럭이는 천막 아래 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좀 내키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해서 자리를 조금 더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 달 전부터 알리는 큰 집회라면 말입니다. 그러면 미네소타와 아이오와, 노스다코타와 캔자스 등 사방에서, 주위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겠지요. [불분명한 말] 그렇게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시간이 되겠지요? 잡지에서 제 환상을 읽어 보셨습니까? 여기 읽으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많은 분이 읽으셨군요. 그렇습니다. 보즈 형제님이 실으신 것으로 알고 있고, 「그분의 오심의 전령」에도 실렸습니다. 「치유의 소리」에는 다음 달에 실릴 것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제 큰일을 행하려 하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그 천막에 들어갈 날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바로 전에 그 일을 행하실 줄 저는 분명히 압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 빛이 나타난 일도 그렇습니다. 저 뒤에 형제들이 책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책 장사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책을 사서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다닙니다. 겨우 원가를 받을 수 있는 가격에 드리는 겁니다. 사진도 제가 제작을 의뢰해야 합니다. 워싱턴에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어서 그렇게 구해야 합니다. 사 온 값 그대로 드립니다. 그렇게 널리 전하려는 것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 그것이 사람들에게 줄 격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저와 함께 사진에 찍히신 것은 단지 저라는 사람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라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렇게 사진에 찍히신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가 함께 말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그 자녀들을 인도했던 불기둥 말입니다... 아마 출애굽기 13장일 텐데,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 내용을 읽은 것이 기억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지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실 때, 그것은 아버지로서 역사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덮으신 자기 아들, 그 육신의 몸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 그분은...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떠나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몸을 일으켜 영광 가운데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히신 뒤, 성령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께서 광야에 계실 때와 같은 모습으로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아셨습니까? 다시 불기둥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분이 바울을 만나셨을 때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큰 빛이었습니다. 그렇지요? 바울이 그 빛을 바라보다가 거의... 아니, 실제로 눈이 멀었습니다. 그 빛이 너무나... 둘러서 있던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 큰 빛이 그곳에 있었고 바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바울이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뒤, 그분이 승천하여 올라가신 후 처음이자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은 큰 빛의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이 동일한 빛이 오늘날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일한 예수님이라고 믿을 믿음이 우리에게 없겠습니까? 분명히 그분이십니다. 그 빛은 모두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전체와 함께 있습니다. 그분께서 마침 그런 때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창문으로 들어왔던 바로 그 빛이라는 것을 입증하신 것이지요. 저 뒤에 있는 책에서 그 이야기를 읽으셨을 겁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켄터키에 가시면 지금도 그곳 여러 곳에서 그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건 심리 작용일 뿐이야. 집단 심리이지.” 그런데 그 빛이 수백 명, 수천 명 앞에 계속 나타났습니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신문 기자들이 카메라로 두세 번 그 모습을 찍었고, 그 사진을 책에 실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협회, 미국 사진가 협회에서 아주 가까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먼저 워싱턴 D.C.로 가져갔습니다. 지문과 문서 감정 분야의 FBI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는 자외선 등에 비추어 검사했습니다. 그 검사 결과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작용을 찍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빛이 렌즈에 닿았던 것입니다.
약 여섯 달 전 독일에서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던 어린 소녀가 강단에서 치유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강단으로 달려왔고, 소녀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들이 내려왔을 때 커다란 롤러식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렌즈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만큼쯤 모인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국교회와 여러 초교파 교회, 오순절 교회 사람들이 모두 모인 큰 아침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날 아침 열한 시에... 점심 식사였군요.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동안, 거기 앉은 독일 사람들과 스위스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 모두가 계속 제게 질문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글쎄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제 말을 믿어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오실 때 어떤 느낌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저 다른, 다른 세계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보니까... 그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철자만 하나씩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 독일어를 발음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도시 이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는 텔레파시일 수가 없겠군. 왜냐하면... 텔레파시는 그런 식으로 작용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잘못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은 점쟁이들의 우두머리인 바알세붑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볼 것이라는 건 저도 예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만 안다면, 알고 믿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큰 카메라가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쪽에는 뒤로 돌린 로만 칼라를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 제 왼쪽에 앉은 분...” 저는 식탁 이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왼쪽에 앉은 분, 여기 앉아 계신 이분은 식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위궤양이 있어서 드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음식을 드시지 못했습니다. 이분은 지난 이삼 년 사이에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다. 독일 사람이 아닙니다. 프랑스 사람도 아닙니다.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이만 이천 명의 공산주의자를 이끌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만 식탁 위로 쓰러져 기절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뒤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다. 지금은 자기 나라의 종교인들, 가톨릭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내며, 저 높은 산속에서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그 독일 사람은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지 보려고 그곳에 앉아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들은 곧장 사진을 현상하는 곳으로 가져가 현상했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주의 천사가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러가서 떠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 일이 독일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나 계시지요? 그분은 어느 한 장소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에나 계시고 언제든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은 모든 곳, 온 공간을 가득 채우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어젯밤은 좀 특별했습니다. 시작하려던 본문까지 제대로 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오늘 밤에 마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성경을 참 사랑합니다. 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구약을 좋아합니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의 모형을 대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거든요. 많은 분들은 총명하시고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저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요. 그런 분들은 어려운 명칭들을 들어 설명할 줄 알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제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형을 통해 살펴보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구약은 신약의 모형, 곧 그림자였습니다. 제가 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사람도 본 적이 없는데 제 그림자를 보고 팔과 다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그림자를 통해 제 모습이 어떨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듯 구약의 그림자가 어떤 것이었는지 보면, 실체가 어떤 것인지도 꽤 잘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것을 가져오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약이 참으로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에서 제 타버내클, 곧 침례교회를 목회할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 우리는... 예를 들어 출애굽기를 공부하는 데 일 년을 쓰곤 했습니다. 오, 정말! 금덩어리로 가득한 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출애굽기 전체나 창세기가 그렇습니다. 한번은 욥기만 가지고 이 년 넘게 머문 적도 있습니다. 욥기 하나만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거기에 들어가서 그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성경 전체에 연결시킬 수 있었거든요. 아마 욥을 잿더미 위에 육 주쯤 앉혀 두었을 겁니다. 그랬더니 어느 부인이 친절하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목사님의 가르침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쯤 욥을 잿더미에서 내려오게 하실 건가요?”
제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혼들을 사로잡으려고 모든 것을 그 지점에 모아 두었거든요. 욥이, 정말로 하나님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하시려던 것이 마침내 그에게 깊이 스며들자 그는 영 안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욥을 잿더미에서 내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부활까지 데려갔지요. 저는 욥이 그 부활에 참여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구약을 파고듭니다. 탐광자는 언제나 보석을 얻으려고 아래로,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갈고닦습니다. 구약에서 찾은 금덩어리도 조금만 닦으면 하나같이 곧장 갈보리를 가리킵니다. 모든 것이 갈보리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보물을 캐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서 모형과 그림자들을 하나씩 캐내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창세기 22장을 읽고 거기서 시작해서, 가능하면 조금 일찍 마쳐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늦게까지 붙잡아 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여러분은 참 좋은 청중입니다. 꼭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정말 좋은 청중입니다. 그리고 하루 저녁을...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녁 집회를 원하셨습니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녁 집회를 원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봅시다. 여러분이 원하시면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밤은 어떻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나가서 모든 병자를 데려오십시오. 내일 밤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어디 봅시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우리가... 누가 먼저 줄에 설지 정해야 하니까요. 빌리나 진, 아니면 그중 한 사람이 여기 내려오게 하겠습니다. 참, 여기 계신 고드 씨, 진 고드와, 조금 전까지 저 뒤에 앉아 있던 리오 머시에가 저와 함께 집회에 다니는 녹음 담당 형제들입니다. 이 메시지들과 기도 줄에서 하는 일 등을 테이프에 녹음합니다. 테이프를 원하시면 그분들을 만나시면 됩니다.
내일 밤 여섯 시 반쯤 이곳에 오셔서 기도 카드를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병자가 있으신 분들은 그분들을 데려오십시오. 기도 카드는, 카드를 가져가지 마시고 여기 와서 자기 카드를 받으십시오. 서로 바꾸어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셔서 카드를 받으셔야 하고, 그 카드에 따라 기도 줄로 호명될 겁니다. 큰 은혜의 시간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내일을 위해 금식도 해야 하겠습니다. 내일 밤 주님께서 길을 여셔서 놀라운 치유 집회를 허락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창세기 22장 7절과 8절, 그리고 14절에서 말씀의 일부를 읽어 오늘 밤의 본문으로 삼겠습니다. 그런 다음 어젯밤 멈춘 곳으로 돌아가 창세기의 배경을 조금 더 파 보겠습니다. 이 책은 이 년을 계속 살펴보고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읽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그가 이르되, 보소서,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렇게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서 이제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들이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오늘 본문으로 삼을 제목은 “여호와이레”입니다.
주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 복합 명칭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여호와이레는 그중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희생물을 예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지금도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주의 천사의 사진이 찍혔던 그날 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보스워스 씨가 침례교 목사와의 논쟁에서 이긴 것도 바로 이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호와이레이십니까?” 상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복합 명칭들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동일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제가 지난번 밤에 말씀드렸듯이, 처음에 그분이 취하신 태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여호와이레셨는데 지금은 여호와이레가 아니시라면, 애초에 여호와이레셨던 것이 잘못이 됩니다. 그분이 여호와이레, 곧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시고 그 모든 복합 명칭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면, 그분이 여호와이레,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셨다면 여호와라파, “너를 치유하는 주”이시기도 합니다. 반드시 그러셔야 합니다. 그분이 치유자가 아니시라면 구원자도 아니십니다. 그분의 일부만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부여야 합니다. 구속을 나타내는 그 복합 명칭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그때 여호와이레셨고, 그때 치유자 여호와라파셨는데 오늘은 여호와라파가 아니시라면, 그때 자신을 여호와라파라고 소개하신 것이 잘못이 됩니다. 오늘도 여전히 여호와라파가 아니시라면 말입니다. 여호와라파, “너를 치유하는 주”입니다.
오늘 그분이 동일하지 않으시다면, 그때 그들을 치유자로 만나신 것이 잘못입니다. 다시 말해 그때는 치유자로 만나셨는데 오늘은 치유자로 만나 주시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때 그 사람들에게 잘못하신 것이 됩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오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동일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그분은 동일하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어젯밤 우리는 진리인 이 복된 옛 성경에서 이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키실... 여러분이 그 약속을 굳게 붙들면, 그 약속은 말씀한 바로 그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한 것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복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밤 여러분도 그것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멘” 해 보십시오. 좋습니다. 복된 확신입니다.
그 말을 생각하면 제 친한 친구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혹시 여기 보험을 하시는 분이 계셔도 제 말을 언짢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번은 저희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보험을 드셨습니다. 십 년 뒤에 보험금을 받는 종류라고 했습니다. 가엾은 아버지는 그 보험료를 다 내려고 하루에 칠십오 센트를 받으며 일하셨습니다. 셔츠가 등에 눌어붙을 만큼 일하셨지요. 그런데 다 내고 보니, 보험 직원이 내용을 잘못 읽어 드렸던 것입니다. 오백 달러를 받아야 했는데 겨우 이 달러 칠십오 센트의 가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저는 보험에 정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보험은 아예 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험 직원이 저희 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한 친구였습니다.) “빌리, 이제 보험 좀 들지 그래? 자네가 그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조금도 그럴 필요 없어. 이것 봐. 자네에게는 여기 가족이 있잖아.” 제가 말했습니다. “가족은 괜찮아.” 그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보험이 필요해.” 저는 “이미 가지고 있어.”라고 했습니다. “아, 보험이 있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 물론이지. 보험이 있어.” 그러자 그는 돌아서서 저를 보았고, 아내도 저를 보았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빌리, 무슨 보험에 들었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복된 확신이여, 예수님은 나의 것! 오,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봄이여! 하나님이 값 주고 사신 구원의 상속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고 그분의 피로 씻겼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그건 좋아. 하지만 그게 자네를 저기 묘지에 묻어 주지는 못해.” 제가 말했습니다. “알아. 하지만 거기서 나를 꺼내 줄 거야. 나는 거기 들어가는 건 걱정하지 않아. 나는 원치... 들어가는 건 잘 들어갈 거야. 문제는 나오고 싶다는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해.”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으며,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셨...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보험입니다. 오,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모든 것이, 모두 확실하다는 증거로 성령께서 그 증서에 서명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까지입니까? 여러분이 구속받는 날까지입니다. 짐을 모두 싣고 화차에 봉인을 했으니, 이제 영원한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오, 오늘 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그 증서를 가지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장으로 보증받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하신 그분은 신실하시고 언젠가 오실 것이며, 그때 우리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그분을 뵙게 될 줄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지만, 그분의 얼굴을 마주 대하여 뵐 때에는 우리가 알려진 것같이 우리도 알려질 것입니다.
어젯밤에는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엘샤다이라는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대목에서 멈추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샤다이”라고 발음합니다. 정확한 발음이 어떤 것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늘 “샤다이”라고 발음합니다. 그 단어를 찾아보고 조사한 끝에 그것이 “젖가슴”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젖가슴을 지니신 분”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백 세가 된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 참으로 놀라운 이름이 아닙니까? 그의 힘은 사라지고, 피의 흐름도 말라 버려, 몸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의 태도 죽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께서는 양육하시는 분, 생명을 주시는 분, 힘을 주시는 분으로서 그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네 힘이다.” 오, 병드신 분들, 오늘 밤 그 말씀을 믿으실 수 있습니까? 그러면 누워 있던 사람이 성령의 힘으로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그대로 걸어 나갈 것입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의 팔이 펴지고 다리가 펴져서 곧장 걸어 나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심을, 하나님의 계시로 확신하며 느끼고 알게 될 때 그렇게 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십 년 넘게 일어서지도 못하고, 팔다리가 이만큼도 안 될 정도로 가늘고, 암으로 몸이 쇠약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그들은 건강합니다. 주님의 힘, 하나님의 힘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이상해져 날뛰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평소의 다섯 배쯤 되는 힘을 냅니다. 정신병원에서 그들이 몸싸움을 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입니다. 평소 힘의 두 배에서 세 배, 네 배가 됩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 두 배의 힘을 줄 수 있다면, 여러분이 성령께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성령께서는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걷지... 여러분은 말합니다. “아, 불가능해. 나는 못 해. 일어날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느끼는 동안에는 아직... 아직 그 약속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한번 여러분의 마음 깊이 스며들어 여호와를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는 분으로 붙들게 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오래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곧장 거기서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오,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시험하신다고 믿습니까? 그분은 저를 여러 번 시험하셨습니다. 누구든 그분께 오는 아들은 모두 시험하실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분께 오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시험을 받고, 자녀로서 훈련받으며, 자라나야 합니다. 때로 아이에게 작은 시험을 주는 것이 좋은 아이로 자라게 하지요. 아버지는 이만한 히커리나무 회초리로 제게 그 시험을 주시곤 했습니다. 거기에 십계명이 다 적혀 있었지요. 제가... 모두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집의 황금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회초리를 제대로 쓰실 줄도 정말 잘 아셨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무덤 곁을 지나 그 자리를 바라볼 때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를 바른길에 붙들어 주신 분은 아버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험하고 단련하는 것입니다.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지 않지만, 시험을 견디기만 하면 나중에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주십니다. 아브라함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뒤, 그는 집과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여러 해 동안 나그네와 체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어린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를 사가랴와 비교해 보십시오. 성전에 있던 사가랴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성전에서 분향하며 섬기는 날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있게 되면, 출산할 나이가 지난 아내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출산할 나이가 지났다는 점에서는 조금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많은 선례가 있었습니다. 여기 사라도 있었고 성전의 한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장은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자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천사가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기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기뻐하며 다녔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전에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오, 오늘 밤 이곳의 모든 마리아들이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참 좋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옳습니다. 모든 권위에 대한 최종 말씀은 그분께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권위가 그분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믿었을 때 아브라함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가 말해 주겠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자다. 나는 네 어머니이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너는 내게 갓난아기일 뿐이다. 네 나이가 백 세이지만, 너는 그저 갓난아기다. 네게서 자연적인 생명의 흐름은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네게 생명을 주는 자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네 어머니다.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 그저 내 젖을 먹어라. 그러면 젊은이 같은 힘을 얻을 것이다.” 잠시 후 그 대목에 가서 실제로 그랬는지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아브라함아, 그저 내 곁에 머물러 내 젖을 먹어라. 나는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모든... 네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는 네게 영생을 줄 수 있다. 네가 여기 땅에 있는 동안 네 몸을 치유하고 다른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 네 날들을 늘여 줄 수 있다. 네게 건강을 줄 수 있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자이므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를 보십시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유가 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또 병이 들어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고 몸을 치유하시기 위해 엘샤다이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엘샤다이, “젖가슴을 지니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양쪽 어느 곳에서든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오,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사탄은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면 사탄은 끝장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치유자가 지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저에게는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을 얻은 것입니다. 아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하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복음의 가르침, 교회는 그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세상이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물론 그것을 기뻐하며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롯의 목자들과 다툼이 생겼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밤 이 대목을 살펴보는 김에 주님의 오심에 관해 한 가지 작은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늦어지지 않도록 빨리 요점에 이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세상의 상속자였습니다. 롯은 미지근한 신자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는 신자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나그네로 살려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늘 온전히 내어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밤 순복음 교회도 다른 교회들과 함께 바로 그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 세상을 멀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도박이나 술이나 방탕한 일에 빠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신자이지만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긴 적은 없습니다. 오, 그 안에 감추어진 삶을 여러분이 알기만 한다면!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모든 벽이 여러분 둘레로 내려온 삶 말입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여정을 통해 그 감추어진 삶의 모형이 아름답게 나타나 있습니다. 보십시오. 매일 밤 만나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나가서 그것을 거두었습니다. 옛 성막의 뜰에는 바깥뜰이 있었고, 거기에 놋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일곱 가지 촛대에 불이 켜진 성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만나가 내렸을 때 그들은 그것을 거두어 금 항아리에 담아 지성소 안에 두었습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도 안에서 먹는 것과 같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잠시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같은 종류의 만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 이제 막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참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은 이 작은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그것은 성령, 곧 내려오셔서 세상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아홉 시나 열 시만 되어도 배가 고파졌습니다. 해가 이미 만나를 녹여 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각도 그와 같습니다. 큰 부흥 집회에서는 아주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부흥 집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가라앉습니다. 다시 돌아와 회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로 돌아와 서약을 새로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를 다시 받거나, 그와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합니다. 무슨 종교 의식을 받아 자신을 북돋우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쪽에 있던 사람, 이 금 만나의... 만나 항아리가 있는 곳에 있던 사람에게는 그것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코 오래되어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결코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은 언제나 승리했습니다. 아멘.
이제 빛의 차이를 보십시오. 뜰에 있는 사람들은 햇빛과 달빛과 별빛, 곧 태양계가 주는 빛으로 걸었습니다. 그곳에는 때로 어두운 날도, 흐린 날도, 비 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밖에는 온갖 날씨가 있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 가까이, 제단 곁에 살던 사람은, 우리가 이를테면 “그것이 칭의다.”라고 부르는 것 아래 있었습니다. 지금 설명을 위해 그렇게 불러 봅시다. 뜰은 칭의라고 합시다. 제단은 성화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빛이 있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빛을 내는 일곱 촛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자주 그을음이 끼고 꺼졌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에 들어가, 일 년에 한 번 아론 뒤로 그 휘장들이 내려오면, 그들은 달빛이나 별빛이나 일곱 금 촛대의 빛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서로 맞닿은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셰키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약해지거나 꺼지지 않는 그 빛 가운데 살았습니다. 만나 항아리 곁에서 살았습니다.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결코 오래되어 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삶입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고, 남김없이 바치고, 거룩히 구별하여 드린 헌신된 삶이었습니다. 아멘. 우리가 성화라고 부르는 것에서, 감리교인들과 나사렛교인들은 환호를 외치면 정말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바로 그거야. 외치기만 하면 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말하면 정말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외치는 데나 방언을 말하는 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모시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 것들은 그분의 속성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남김없이 헌신하여 날마다, 시간마다, 언제나 그분과 함께 셰키나 영광 가운데 사는 것을 뜻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외치는 것이나 방언을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런 것들은 성령의 속성 등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감추어진 헌신의 삶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뜰에 있던 사람들도 여기 금 오멜 뒤, 지성소 안쪽에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만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롯도 신자였으므로 아브라함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함께 머무르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다투기 시작하자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형제니 다투지 말자. 네가 동쪽을 택하면 나는 서쪽으로 가고, 네가 서쪽을 택하면 나는 동쪽으로 가겠다. 네가 어느 쪽으로 가든 나는 반대쪽으로 가겠다.”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 그 말이 아주 깊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주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롯은 물론 세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의 평야 쪽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그 도시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 봅시다. 늘 재판관이 앉던 성문에 앉았습니다. 그 도시의 재판관이나 시장이 된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아마 그곳의 온갖 바느질 모임에 다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상류층에 어울리게 되었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무리와 어울렸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분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세상의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지도 않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자기 아내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을 모두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여자분들은 “아멘”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시기를 정말 바랐습니다. 형제들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했거든요.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자신을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분리되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갈림길의 때라고 부릅니다. 아십니까? 우리는 지금 그 일곱 번째 갈림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분리하시는 그 분리의 때에 우리가 와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회중이 “아멘” 한다.]
몇 시간 동안 양자 됨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따로 이끌어 내셨는지 보여 드릴 시간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들이 가족 안에서 양자로 세워졌습니다. 이미 그 가족 안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그 가족 안에서 양자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그 가족 안에서 양자로 세워졌습니다. 따로 데리고 나가 흰옷을 입힌 뒤 그렇게 세웠습니다. 성년이 될 때까지 훌륭한 사람임을 입증하고 아버지의 일을 올바르게 돌보았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아들에게 똑같이 하셨습니다. 그분을 따로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 그곳에서 그분을 덮으셨습니다. 그분의 옷이 힘차게 빛나는 해처럼 빛났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그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기 자녀들을 자신의 교회 안에 세우십니다. 양자로 세우시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홍수 이전의 세상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손을 펴서 세상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기적을 이루시는 그 위대한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셨으며,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있었습니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것을 믿었지만, 죄가 그를 분리시켰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건축에 건축을 거듭했고, 어느새 거대한 건물과 도시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시와 건물들이 생기고 사람들이 한데 모이면 폭력이 들어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오늘날을 보십시오.
주님이 오실 표적을 말하자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십시오. 세상에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표적입니다. 홍수 전 사람들이 금속 등을 다루기 시작했던 것을 보십시오. 그것도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또 하나의 표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정표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람들이 형식적이고 무관심해져 하나님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자, 그 갈림길 직전에 땅 위에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천사들이 나타나고, 초자연적인 일이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천사가 나타나고, 선지자가 나타나고, 초자연적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구출될 때에 말입니다.
여기 아브라함을 다시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 그 분리의 때에 천사들이 나타나고 선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멸망은 지금 다가오는 멸망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후 재판관들의 시대 등을 거치며 사람들이 어떻게 멀어졌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를 보십시오.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났고, 마리아에게도 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땅에 선지자 요한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작은 기적으로 시작하여 점점 더 큰 일을 행하시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하늘이 검어졌고 해가 빛을 내기를 거절했으며 달과 별도 빛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는, 정말이지, 세상이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처럼 얼마나 심하게 떨었는지 죽은 몸들이 무덤에서 흔들려 나왔고, 해도 경련을 일으키며 빛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멘.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지극히 큰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엘서 2장 2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하리라. 내 여종들과 계집종들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내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서 표적들을 보이고 땅에서는 이적들과 그런 것들을 보이리라.” 오늘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우리에게 다시 선지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시 치유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광경들을, 비행접시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땅에서는 민족들 사이에 곤경이 있고, 땅이 불안하게 떨며 거대한 해일을 토해 내기 시작하여 수천 명이 죽어 갑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치유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반대하는 이 모든 박해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갈림길의 때에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그것이 나타나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오, 형제여, 머지않아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아담이 이브를 흔들며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이브, 여보, 일어나요. 여보, 그때가 왔어요.” 이브가 가서 셋을 흔들며 “셋아!”라고 부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셋은 가서 노아를 조금 흔들며 “노아, 일어나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거쳐 무덤에 있는 마지막 성도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말입니다. 땅이 터져 열리고 구속받은 모든 사람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 갈림길의 때에 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옳고 그른 것이 갈라졌던 이 갈림길을 보십시오. 얼마나 중대한 때였습니까! 아브라함은 불리한 몫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도 세상의 것들에서 자신을 분리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라. 정해진 때에 거두리라.”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계속 앞을 바라보십시오. 천천히라도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십니다. 서두르는 쪽은 우리뿐입니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새 내용을 쓰시려고 한 장을 넘기시기도 전에 히브리 아이들이 타는 불가마 속까지 걸어 들어가게 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실지 아십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이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제 그분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다가가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메마른 땅에 앉아 있었고 가축은 모두 여위어 갔습니다. 사라는 온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한때는 그랬지요. 그런데 이제 늙어 거의 백 세가 된 채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늙어 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갈림길의 때가 오기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천사들이 땅에 나타났습니다. 아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천사들과 함께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너무 어려워 그냥 지나가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붙잡으십시오.
얼마 전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날 옷에 먼지를 잔뜩 묻힌 채 걸어와 아브라함과 이야기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믿으십니까?”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여러분은 “아니,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고요?”라고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마 그분과 가브리엘이었을 겁니다. 또 미가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웜우드나 다른 천사들 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제 우리가 잠시 땅으로 내려가자. 자, 가자.” 그때 그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 곧 약간의 석유와 우주의 빛, 원자 등을 움켜쥐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저 입김을 불어 그것들을 한데 모으셨습니다. 옆으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브리엘아, 여기 있다. 여기 들어가거라. 미가엘아, 여기 있다. 여기 들어가거라.”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한 움큼 취하신 뒤, 땅으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어차피 여러분은 저를 광신자라고 하실 테니, 차라리 익숙해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 그것을 생각하면 저도 그런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부르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제 아버지께 그것이 무슨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오, 그렇습니다! 애초에 여러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그저 약간의 기름과 약간의 빛, 얼마간의 원자가 한데 모인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의사와 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그는 훌륭한 과학자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제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음식으로 들어오는 피를 통해 제 생명이 새로워진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는 “정확히 그렇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왜 이렇습니까? 열여섯 살 때에도 지금과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때는 먹을 때마다 더 크고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먹어도 더 늙고 약해집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또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과학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컵에 물을 부으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는 계속 붓는데도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한때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어떤 존재로든 어디에든 있지 않을 때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몸은 흙, 석유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 낡은 원자들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져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제가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말입니다.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여보, 당신 대머리가 되어 가네요.” 저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오. 나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았소.”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말해 봐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하면 나도 대답하겠소. 내가 머리카락을 갖기 전에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 보시오.” 그때 어디에 있었든, 지금도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분명히 그렇습니다! 없다가 생겼고, 지금은 없지만 다시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흥분해서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기쁜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도 잃어버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내가 그것을 다시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그것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려오십니다. 그것이 그분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저 작은 육신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게 육신이었습니까?”라고 하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여기 계신 한 시간쯤 동안 그 몸으로 배고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분과 그 천사들이 여기 머무르신 시간은 한 시간쯤이었습니다. 천사들은 할 일이 있어서 밤새 다음 날 아침까지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낡고 먼지 묻은 옷을 입은 육신의 몸으로, 잠시 땅 위를 걸으려고 내려오셨을 뿐입니다.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리고 소를... 송아지를 잡수시고, 그 암소의 젖을 마시고, 옥수수빵, 철판에 구운 빵을 잡수셨습니다. 정말 그러셨습니다! 버터와 우유와 송아지 고기와 구운 빵을 잡수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주의 물질로 된 몸 안에 계시는 동안 배가 고프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 아버지 하나님께 부활이 무슨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십니다. 아멘.
“후우” 하시고는 그 몸속으로 훌쩍 들어가 내려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말입니다.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일이 그분께 무엇이겠습니까? 아멘. 그분이 하신 일은 단지 그 모습을 그리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모습일지 여기서 그려 보신 것입니다. 아멘. 보십시오. 이 몸은 연약해서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잘 돌보아도 되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몸을 참 아낍니다. 오, 정말 그렇습니다! 얼마 전 저는 아주 큰 박물관에 서 있었습니다. 젊은 남자 두 명이 거기 서서 인체를 보고 있었습니다. 몸무게가 백오십 파운드인 사람을 화학 성분으로 따지면 팔십사 센트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팔십사 센트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여러분은 팔십사 센트에 백 달러짜리 양복을 입힙니다. 그 머리에는 십 달러짜리 스테트슨 모자를 씌웁니다. 어떤 자매들은 팔십사 센트에 이백 달러짜리 밍크코트를 두르고 거리를 걷습니다. 비가 오면 익사하겠지요. 그 팔십사 센트를 돌보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몸의 가치는 그것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천만 개의 세상보다 값진 혼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아멘. 그 혼은 어떻습니까? 팔십사 센트는 분명히 잘 돌보겠지만, 만 개의 세상보다 값진 혼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제여,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고 그분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직 그때에... 화학적인 것들을 살펴볼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입증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혼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부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휘발유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반드시 휘발유가 있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보니 저쪽 덤불에 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였습니다. 그쪽을 보고 “오!” 하더니 달려 나가 엎드려 말했습니다. “내 주여, 이 길을 지나오셨으니, 이제 오셔서 발을 씻으시고 잠시 앉아 계십시오. 제가 드실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사라, 어서 빵 반죽을 해서 화덕에 놓고 빨리 구워요.” 밖으로 나가 살진 어린 송아지를 잡고 말했습니다. “자, 어서 이것을 손질하여 고기를 구워라. 준비하자.”
그가 밖으로 나와 나무 곁에 앉아 보니, 두 천사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 앉아서 송아지 고기를 잡수시고 우유를 마시시며 버터를 바른 옥수수빵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성경이 이같이 말하노라!”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갈림길에 이르기 바로 전,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이 오늘날 내려오셔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오, 정말! 사람들이 왜 그러는 겁니까?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갈림길은 이미 여기 와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이 어떻든 그분은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지 않았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들은 그것들의 때에 성취되리라. 그때까지 너는 말을 하지 못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휴거되어 본향으로 가는 것을 볼 때까지 밖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이 거기 앉아 있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생명의 때에 따라 내년 이맘때쯤 내가 너를 찾아오겠다.”
사라는 안에 있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브래넘 형제님이 킥킥 웃는다.]” 했습니다. 사라가 있는 곳은 그분의 등 뒤였습니다. 그분은 사라에게 등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아브라함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왜 사라가 웃었느냐?” 영으로 분별하셨지요? “왜 사라가 웃었느냐?” 사라가 말했습니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웃었다. 그래, 너는 웃었다. 너는 웃었다.” 사라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는 거의 죽을 만큼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소돔으로 갔고 소돔은 멸망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아름다운 한 가지를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우리가 나눈 이야기에 조금 보태 주고, 우리 모두에게 큰 격려를 주는 것입니다. 그 요점, 그 대목에 이르기 전에 몇 분만 더 있다면 말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그 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 땅에 기근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블레셋 땅에 있는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그곳에 내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약 육 년 전에 어떤 곳에서 한번 이것을 설교했는데, 한 사람이 그것을 책으로 썼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지가 모두 글자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있습니다. 아셨습니까? 연애편지도 모두 그렇게 씁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아내가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빌리, 오늘 밤 여기 앉아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아내는 그것을 종이에 쓰지만, 저는 그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저는 압니다... 성경은 “나는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고 배우려는 아기들에게 드러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학식을 쌓으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학식은... 그것도 괜찮습니다. 좋은 것이고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 무지를 정당화하려고 학식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친구여,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생명을 얻으려면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많은 경우 그것은 행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근처 어딘가에 큰 천막을 세우게 되면, 시간을 넉넉히 갖고 그 행간을 하나씩 살펴볼 것입니다. 거기서 부활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십시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저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니...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을 다시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그건 터무니없습니다!”라고 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젊은 남자와 여자로 되돌리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이리저리 걸으며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사라, 여보, 그거 알아요? 당신 머리카락이 갈수록 검어지고 있소.” 사라가 말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아브라함, 당신도 어깨가 전처럼 굽지 않았어요. 펴지고 있어요.” 며칠 만에 두 사람은 각각 스물다섯 살쯤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학식 있는 분들, 이제 이것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 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만, 들어 보십시오.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 가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셔야 했습니다. 그렇지요? 사라는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가 죽어 있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도 사십오 년이나 오십 년쯤 지났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아마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 때부터 남편과 함께 살았을 겁니다. 아직 어린 소녀일 때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이복누이였습니다. 그는 사라가 젊은 여인이었을 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남녀가 함께 모인 자리입니다만, 의사의 말이라면 들으시겠지요.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우리가 진료실에 있는 것처럼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 아이를 낳으려면, (당시에는 젖병이나 위생적인 젖꼭지가 없었습니다.) 아기를 위해 새 젖샘을 만들어 주셔야만 했습니다. 아기가 젖을 먹어야 했으니까요. 또 백 세 된 여인이 그렇게 진통을 겪을 수는 없으므로 심장도 새것으로 주셔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땜질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라를 다시 완전히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늙고 지쳐 가는 여러분과 제게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있던 곳, 소돔의 들판과 역청 구덩이가 있던 곳을 떠나 길을 갔습니다. 지도에서 재어 보십시오. 그랄까지 얼마나 멉니까? 약 삼백 마일입니다. 그곳까지는 아주 먼 길입니다. 백 세 된 노인과 아흔 살 된 작은 할머니가 내려가기에는 대단한 여행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내려가자, 그곳 왕 아비멜렉이 그 많은 아름다운 블레셋 처녀들 가운데서 사랑할 사람을 찾다가 사라, 그 할머니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작은 먼지... 성경은 그가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사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백 세 된 여인을 보고 자기가 여태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작은 먼지 막는 모자를 쓰고 말입니다. 그가 그 여자와 사랑에 빠져 말했습니다. “내가 기다려 온 사람이 바로 이 여자다.” 우스운 이야기지요! 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언젠가 그분이 오실 때 여러분과 저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머리가 희어지고 늙어 가는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땅에 있는 이 장막이 해체되면, 우리를 기다리는 장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모든 자녀에게 무엇을 하실지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오, 브래넘 형제님, 그때 사람들은 그저 더 오래 살았던 것 아닙니까?”라고 하십니다.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몇 절 앞에서 성경은 “그들은 나이가 매우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늙었습니다. 할머니였습니다. 그분이 그들을 다시 젊게 만드셨습니까? 물론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를 보십시오. 그들은... 이삭이 스무 살쯤 되었을 때, 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사라가 죽었습니다. 사라가 죽은 뒤 아브라함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제 기억으로는 딸들 외에도 아들을 아홉 명이나 낳았습니다. 영광입니다!
오, 여러분이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시는 줄 압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이렇게 하니 좋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아무 소망도 없었는데, 이쪽에서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아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머니. 그것은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아버님이,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여러분을 데리고 가서 결혼했던 그날이 기억나십니까?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아버님, 기억나시지요? 아내가 얼마나 예뻤습니까? 어머님은 남편이 얼마나 힘차 보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어느 날 남편의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또 결혼할 때 비둘기 같던 여러분의 아름다운 눈은 어떻습니까? 그 빛이 바래 갑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장미처럼 자라 완전히 피고 꽃봉오리가 가장 아름다운 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 뒤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거든 기억하십시오. 그 모습이 그분의 생각 속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활 때 여러분은 그 모습이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일정한 나이, 스물다섯 살쯤 되자 쇠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희어지고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늙고 떨리고 주름진 자신을 보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죽음이 하는 일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여러분의 이전 모습에 있던 죽음이 잊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음식을 먹고 자라 아름다운 젊은 여자나 남자가 되는 것, 그것이 부활 때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음화만 그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음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양화로 현상될 때에는... 아멘.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아멘.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우리에게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아멘. 나는 계속 길을 가고 싶네. 아멘. 이해하셨습니까? 오, 놀랍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위해 이 음식을 주신 것 말입니다. 장밋빛 뺨을 가진 아이가 자라며 아름다운 검은 머리나 금발을 갖게 됩니다. 어떤 색이든 말입니다. 여러분은 “부활 때도 저는 여전히 검은 머리일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면 제가 금발이었다면 그때도 금발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다시 창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쓰러진 것을 다시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어머님, 스물다섯 살 때 어머님은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셨습니다. 지금은 계속 쇠하고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가장 좋았던 그 모습으로 여러분을 그대로 되돌린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그때까지 여러분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후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사탄아. 여기 있다.” 그 몸은 가져갈 수 있지만 그 생명은 멸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마음껏 놓고 잠시 설교하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기쁩니다. 여러분은 그 생명을 멸할 수 없습니다. 그 뒤 죽음이 들어오고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얼마 후에는 여러분이 내려갑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해서 그 자리에 이것을 대신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노란 밀알이 땅에 들어가면 노란 밀알을 냅니다. 붉은 옥수수 알이 땅에 들어가면 붉은 옥수수 이삭을 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시어스 로벅에서 파는 똑같은 제복이 아니십니다. 결코 아닙니다.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주 큰 산도 만드시고 아주 작은 산도 만드십니다. 사막과 평야를 만드십니다. 작은 시내와 큰 강, 흰 꽃과 초록 꽃과 파란 꽃, 분홍 꽃을 만드십니다.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검은 머리, 붉은 머리, 흰 머리를 가진 사람들을 두십니다.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두십니다. 다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부활의 하나님이시며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마지막 날에 내가 그것을 다시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리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바로 지금, 현재형으로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들에 내가 그를 다시 일으키리라.” 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 믿음을 여러분 안에 가지십시오. 그러면 질병과 곤란 같은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그저 사라져 버립니다. 더는 거기에 신경조차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라는 다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몸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이삭, 아름다운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라는 그 아이를 사랑했습니다. 그때는 젊은 어머니였으므로 아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도 언젠가 다시 그렇게 되실 것입니다. 다시 젊어지실 것입니다. 아버님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시다면 부활 때 똑같이 그렇게 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을 것이요, 자기 생명을 지키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자기 생명을 드리려 한다면... 자기 생명을 지키고 계속 자기 뜻대로 하면서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어. 그냥 내 마음대로 하겠어. 성경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라고 한다면, 좋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으면 그것을 찾을 것입니다. 바로 그대로 말입니다. 그것이 다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을 잃도록 합시다.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나 자신을 잃고 그것을 찾게 하소서, 주여, 주 안에서. 아멘. 보십시오.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얼마나 멋진 젊은이가 되었습니까! 사라는 사랑스러운 아들, 어린 이삭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긴 노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변화시키고 되돌리셔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부활 때 아브라함의 모든 씨에게 무엇을 하실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갈림길은 무엇을 나타내는 표적이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말입니다. 갈림길의 때를 알리는 표적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천사들이 나타나고,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표적과 이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변화될 갈림길의 때, 바로 그때에 와 있습니다. 오, 정말! 그것을 생각하면 참 기쁩니다.
보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시험을 주셨습니다. 삶은 온통 시험으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가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마무리하면서 말씀드리니 들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유일한 아들, 네 독생자를 데리고 내가 네게 보여 줄 어떤 산으로 가거라. 거기서 그를 죽여 희생물로 드려라.” 아브라함이 흔들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 성경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받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를 얻었던 그 모형으로부터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사라에게는 이 말을 할 수 없어. 오, 그 아름다운 눈과 장밋빛 뺨이 다시 눈물로 젖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 나는 못 해. 그러니 그냥 아이를 데리고 가자.” 그는 노새 한 마리를 끌어다가 나무를 쪼갰습니다. 그리고 태워 드릴 희생... 번제 헌물을 위해 그 나무를 노새에 실었습니다. 어린 이삭의 손을 잡고 종 두 명도 데리고 갔습니다. 사흘을 걸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순찰대원이었습니다. 언제든 일주일에 엿새는 걸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숲속으로 삼십 마일가량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사람은 오늘날 우리처럼 자동차로 다니지 않고 어디든 걸어갔기 때문에, 하루에 이를테면 이십오 마일 정도는 쉽게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매일 이십오 마일씩 사흘을 갔다면 칠십오 마일입니다. 그때 그가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산이 보였습니다. 이제 적어도, 거의 백 마일쯤 떨어진 것입니다. 산은 오십 마일이나 칠십오 마일 밖에서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백 마일이었다고 합시다. 그가 산에 가까이 갔을 때... 저는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가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어라.” 노새에서 나무를 내려 아들의 등에 지웠습니다. 여기 갈보리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모형이 있습니다. 이삭의 등에 지웠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이삭이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는 이삭을 통해 이어졌고,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과 제가 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님께 이끄시고, 그들과 같은 약속, 같은 소망, 같은 생명, 같은 영을 주십니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주십니다. 같은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입니다. 이제 여기 이 모형을 보십시오.
어린 이삭의 등에 나무가 지워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종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어라.”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말투나 그런 단어는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나와 아이는 저기 가서 경배하겠다. 그리고 나와 아이는 돌아오겠다.” 아멘. 어떻게 돌아오겠습니까? 그를 죽이러 올라가는데 어떻게 돌아오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지 그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여호와이레, 주님께서 예비하시리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이 나무를 지고 가는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희생물을 드리는 곳을 향해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정상까지 높이 올라가, 그 거칠고 바위투성이인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거기서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이쪽에 나무를 내려놓고, 불을 피웠습니다.
그때 어린 이삭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말했습니다. “여기 나무도 있고 제단도 있는데, 번제 희생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희생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실 것이다.” 그 모습을 보십시오. 거기 있는 그 아버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결정이 눈앞에 다가온 중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죄인인 친구여, 오늘 밤 여러분도 그 자리에 있습니까? 몇 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중대한 순간에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이다.” 그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다음 아브라함은 자기의 유일한 아들을 데려다가 두 손을 묶어 뒤로 놓았습니다. 아이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집에서 칼을 뽑았습니다. 아마 목이 메는 눈물을 억누르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입니까? 예입니까, 아니오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는 칼을 뒤로 젖히고 손을 내밀어 아들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아이의 고개를 뒤로 젖힌 뒤, 자기 아들의 목을 찌르려고 칼을 들어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므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그의 손을 붙드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이제 알겠다.” 바로 그때 그의 뒤에서 작은 숫양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수컷 양입니다.) 광야에서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 숫양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먹을 것도 물도 없는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 숫양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리스도였습니다. 숫양이 필요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숫양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환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숫양을 올려놓고 칼로 베자 그 목에서 피가 흘렀고, 그것은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숫양이었습니다. 거기서 죽은 것은 어린양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숫양이 필요한 것을 보시고 말씀하셔서, 일 분 만에 숫양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 분 뒤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입니까?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라고 부르겠다.”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희생물로 드릴 숫양을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영생을 위한 길을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부활을 위한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가져다가 다시 새로운 남자와 여자로 되돌리기 위한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굽은 손을 펴기 위한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암으로 인한 죽음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생명을 넣어 주실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희생물은 이미 예비되었습니다. 기도할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 여호와이레,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는 그 말을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지금도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에도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힘이 필요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자다. 그저 여기서 젖을 먹어라. 내가 보여 주겠다. 아브라함아, 너를 다시 젊은이로 되돌릴 것이다. 너는 늙었지만 나는 하나님이다.” 오, 아버지, 희생물이 필요해졌을 때 주님은 이미 하나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삭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바로 그때, 말씀하셔서 그것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여기 복음을 들으려고 눈을 헤치고 온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더 확실히 희생물을 예비해 주셨겠습니까. 지금 이들을 위해 희생물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들의 생명을 살리시고 두려움을 끝내시려는 것입니다. 죽음과, 오늘 밤 눈보라가 그 위를 스쳐 가는 저 차가운 무덤에 대한 공포를 끝내시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년 이맘때 자신도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위한 희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늙은 이들을 위해 한 분을 예비하셨습니다. 죄 많고 부정한 이들을 위해 한 분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분은 준비되어 계십니다. 희생물로 드려지셨고, 그 피는 아낌없이 흐릅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치유를 위한 희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이들의 모든 걱정과 곤란과 초조함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희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호와이레이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오늘 밤 이 모인 사람들에게 기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무익한 종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시오. 내일 밤에는 놀라운 치유 집회가 시작될 것을 믿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위대한 권능이 눈먼 이들의 눈을 열고, 다리 못 쓰는 이들을 다시 온전하게 하여 이곳으로 걸어 내려오게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이 집회를 시작하는 길은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그분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모든 마음에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각 사람에게 부드럽고 겸손한 영으로 기름 부어 주십시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인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들이 지금 나아와 제단에 엎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이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제 죄를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희생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동안, 오늘 밤 여기 죄인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그것이 진리임을 온 마음으로 믿는 분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신다면, 그분께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이제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림자로 보여 주신 그 모든 것이, 저의 희생물이신 예수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죽으셨을 때 갈보리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위해 고통의 처소인 지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셋째 날 그분을 다시 일으키심으로 저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 제가 가진 전부인 제 마음과 손을 주님께 들어 올립니다. 갈보리에서, 아니 부활절 아침에 저를 위해 일으키신 그분을 받아들이려고 들어 올립니다. 이제 그분께 손을 듭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밤 여기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여기 제 손이 있습니다. 저를 위해 예수님을 일으키셨음을 믿기에 제 손을 듭니다. 주님의 손을 향해 제 손을 들어 주님의 희생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이제 믿습니다. 여기 제 손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 모습 그대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 모습 그대로, 다만 주님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졌음을 의지하여.” 손을 드시겠습니까? 여기 믿음에서 뒤로 물러난 분이 계십니까? 이렇게 말할 분 말입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주님에게서 너무 멀리 떠났습니다. 뒤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 손을 들겠습니다. 주님, 있는 이 모습 그대로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광스러운 약속들을 보고도 그분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모형과 그림자들이었습니다. 아버님, 오랫동안 헤매셨습니까? 어머님, 어머님을 보십시오. 아이들이 모두 여기 있습니다. 어쩌면 그중 몇은 먼저 떠났을 수도 있겠지요. 자매여, 형제여, 어쩌면 연로한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낡은 체크무늬 무명옷을 입은 어머니 바로 곁에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손을 들겠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제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잡고 싶습니다.” 한 분이라도 계십니까?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주님께 부르짖네 주님의 피로 나를 씻어 깨끗하게 하소서 갈보리에서 흐르는 그 피로. (머리를 숙인 채 다시 부릅시다.) 주여, 내가 갑니다, 갑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지금 기도하십시오. 죄인인 친구여, 믿음에서 뒤로 물러난 분이여, 손을 드시겠습니까? “지금 갑니다.” 주님의 피로 나를 씻어 깨끗하게 하소서 갈보리에서 흐르는 그 피로. [회중 가운데서 방언과 통역이 나온다. 이 부분은 받아 적을 만큼 명확하지 않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계십시오. 제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알지 못하는 언어의 은사와 통역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한 분들은 그것이 그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면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성경에 따라 주어졌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들으신 메시지에 따라, 예수님은 곧 오십니다. 지금은 긍휼의 날입니다. 긍휼을 저버리면 심판밖에 남지 않습니다. 한 번 더 “주여, 내가 갑니다, 지금 주님께 갑니다”를 부르는 동안, 지금 깊이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