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네빌 형제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이곳에 와서 목사님의 소개를 받으니 참 기쁩니다. 참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아, 말 이야기를 하셨지요. 말에게 굴레를 씌우면 일을 하게 될 줄 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우리를 일하는 말로 삼아 주셔서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러니 주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우리에게 맡겨지면 아무리 피곤해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무척 피곤하기는 하지만요...
지난 며칠 동안 정말 몹시 힘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갈 때 좌석 객차를 타야 했는데, 가는 내내 덜컹덜컹하는 게 얼마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가는 데 쉰세 시간이 걸려서 새벽 두 시에 도착했습니다. 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라디오 예배에서 설교하러 가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국제 모임에서 또 설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어느 큰 침례교 예배당에서 설교했고, 그날 밤에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마다 계속 말씀을 전하다가 마침내 월요일 밤 앤젤러스 템플에서 마쳤습니다. 그리고 열한 시에 기차를 타고 집에 오는 데 예순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그저께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리고 어제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러 와 달라는 전화를 아내가 기록했는데, 어제 아침에만 쉰 통이 넘었습니다. 아시겠죠. 쉰 통이 넘었습니다. 물론 모두 이 근처에서 온 전화는 아니었습니다. 전국에서 온 전화였지요. “플로리다에 오실 수 있습니까?” “여기로 오실 수 있습니까? 여기는 루이빌입니다.” 이런 전화들이었습니다. 자, 아침 한나절에만 온 그 쉰세 통 가운데 어디를 골라 가겠습니까? 그러니 짐작이 가실 겁니다. 어제 오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 보면서 병이 얼마나 악마 같은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알던 한 청년은 건강의 표본과도 같았습니다.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청년이었지요. 지금은 제 나이쯤 되었는데 아흔 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헨리빌에 누워 죽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저의 좋은 형제, 네빌 형제님의 친구인 커밋 스퍼전이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복음 전도자이자 학교 선생님으로,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네빌 형제님이 그 아들이 죽어 간다고 말씀해 주신 뒤 그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혼이 구원을 받도록 그를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귀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암이 그의 몸을 먹어 들어가 이백몇 파운드였던 체중이... 지금은 육십 파운드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그의 아내와 저는 마음을 합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치유하실 것을 믿고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 아들을 위해 기도해 온,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가엾은 늙은 아버지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짐작해 봅니다. 그 모든 세월이 지나서...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아이를 길러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에게는 올바른 본이 있었음을 저는 압니다. 그곳을 떠나 뉴올버니로 내려가, 바로 이 근처에 사셨던 슬로터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의사들은 그분이 여섯 시까지만 사실 거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돌봐 드리는 일이며, 또
여러 곳이며. 전에 제 옆집에 살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저 걸어 다니던 평범한 청년으로 벨 전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스물몇 살에 어린 자녀 서넛을 둔 아버지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그의 어린 딸이 넘어져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 젊은이는 손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하더니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저쪽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 형편입니다. 하나가 지나면 또 하나가 닥치고, 사방에 질병이 있습니다. 빠져나갈 길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여기서 영원히 살지 않아도 된다니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이 전염병 수용소 같은 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열린 문이 있다는 것이 참 기쁩니다. 이 땅이란 그저 전염병 수용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이 잘 풀린다 싶자마자 또 무슨 일이 닥쳐옵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일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빠져나갈 길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길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오늘 아침 제가 사랑하는 콕스 자매님이 누군가 오실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근처 사람들에게 기도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어쩌면 몇 분밖에 머물지 못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돌아가셔야 하는 분들은 가실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남아서 듣고 싶은 나머지 분들을 위해서는 오늘 아침 메시지를 좀 짧게 전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목도 쉬었고, 이제 곧 다른 집회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고 시카고 집회는 다음 토요일에 시작됩니다. 또 이번 주에 우리의 훌륭한 빌리 그레이엄 형제님이 루이빌에 오시니, 이제 이 지역에 큰 은혜의 방문이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루이빌에서 집회를 시작하시는 때와 제가 시카고에서 시작하는 때가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돌아와서, 그분이 여기 계시는 동안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저를 그분에게 소개해 주기로 했습니다. 해외 여러 곳에서 같은 도시에 머문 적은 있었지만, 그저... 그래서 서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에 모인 이 교회와 여러분 모두가 루이빌의 그 집회를 마음에 품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마시는 모든 술의 팔십칠 퍼센트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팔십칠... 모든 담배와 그런 것들의 약 구십 퍼센트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곳이 사탄의 자리라는 것을 아십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이 근방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이 이 지역을, 이 폭포 주변 도시들을 주 예수님께 돌이키려 애쓰다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습니까? 보십시오. 에릭슨과 그 모든 분은 애쓰고, 애쓰고, 또 애썼지만 울면서 떠나갔습니다. 존 스프롤은 거기 글로리 반에서 주 예수님을 위해 이 장벽을 깨뜨리려고 온 힘을 다하다가 신경쇠약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 폭포 주변 도시들의 강단에 서서 애썼지만, 주 예수님을 위해 그 장벽을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빌리 그레이엄이 오늘날 종교계에서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분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물론 감독들과 대주교들도 있지만, 제 생각에 그분은 복음 전도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힘과 마음을 모아 그 집회를 위해 전보다 더욱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우리에게 혼들을 주시고 사탄의 자리를 무너뜨리셔서, 모든 양조장이 문을 닫고 담배 공장들이 불타 없어지며 교회들이 가득 차고, 옛날처럼 성령께서 참으로 쏟아져 내리시기를 구합시다. 주님께서 복을... 자, 시작하기 전에 조금 다르고 조금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제 형제가 여기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주님께 봉헌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려고 합니다. 거티 자매님은 피아노 앞으로 나와 주시고, 어린 아기가 있는 모든 분은...
자, 성경은 여기서 우리에게... 많은 분은 아기에게 물을 조금 뿌리는 것을 “침례를 준다”고 하며 유아 침례라고 부릅니다. 그래요, 괜찮습니다. 아기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가능한 한 성경의 방식에 가깝게 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방식은... 성경 어디에도 아기들에게 그렇게 했다는 곳은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할례를 행했습니다. 장로님 두 분이 이 자매님을 여기 한쪽으로 조금 옮겨 주시겠습니까? 봉헌식을 마칠 때까지요. 여기 들것에 누워 계신 자매님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괜찮으시지요? 잠깐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아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아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신약에서 그들이 한 방식은 어린아이들을 주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아이들을 팔에 안고 축복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자, 여기 자기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고 싶은 다른 어머니가 계시면, 지금 기꺼이 해 드리겠습니다. 자, 이제 마음을 모아... 이 아기 이름이 무엇입니까? 로버트 린. 아주 좋군요. 자, 이것은... 이것을 보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분들은 자녀가 없었지만 아이를 기르고 싶어서 이 아기를 입양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입양된 자녀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입양하셨으니, 우리는 모두 입양된 자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갈 집이 없는 이 아기를 생각하여, 아기를 기르고 돌볼 가정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돌아갈 집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입양한 아들입니다. 이름은 로버트 린 브래넘입니다. 아주 예쁜 아기입니다. 자, 고개를 숙일까요? 귀하신 하늘 아버지, 지난날 얼마나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 어린아이들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렸는지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이 없던 이 아기가 한 가정에 맡겨졌고, 주님께서는 이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분들의 가슴에 심어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이가 기도하는 가정에서 자라고, 교회에 다니며 주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가르침을 받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이 아이에게 복을 주옵소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오늘 아침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신다면, 이분들은 아기를 주님의 품에 안겨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천국으로 가셨고,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사역을 계속하도록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아버지, 제 친형제가 이 아기를 제 손에 맡기니, 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기를 주님께 드립니다. 이 아이를 축복하셔서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며 자라서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정에 복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이를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애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어머니가 되십시오. 그리고 형제님도 이 아기에게 참된 아빠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수고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불명확한 말.]
안녕하십니까? 아기 이름이 무엇입니까? [자매가 “로버트 대럴”이라고 말한다.] 또 로버트군요. 좋습니다. 로버트 대럴. 성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이름이 같군요. 성은요? [“매클렐런드.”] 매클렐런드. [녹음 공백.] 곡식 단을 거두어, 곡식 단을 거두어, 기뻐하며 돌아오리, 곡식 단을 거두어. 아침에 씨 뿌리며, 친절의 씨 뿌리며, 한낮에도 이슬 내린 저녁에도 뿌리네. 머지않아 수확하고 거두는 때 이르면, 기뻐하며 돌아오리, 곡식 단을 거두어. 곡식 단을 거두어, 곡식 단을 거두어, 기뻐하며 돌아오리, 곡식 단을 거두어. 곡식 단을 거두어, 곡식 단을 거두어, 기뻐하며 돌아오리, 곡식 단을 거두어. 참 좋습니다. 곡식 단을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을 주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이지요.
들것에 누워 있는 자매님이 우리가 보기에는 가장 위중해 보입니다. 들것에 누워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누가... 이분은 기도받기 전에 몇 분만 기다려서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참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기다릴 수 없어서 가셔야 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기도받고 싶으시면 기꺼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없으시면 짧게 메시지를 전한 직후에 치유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일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고 짧게 메시지를 전한 뒤, 기도받는 줄에서는 시간을 충분히 쓰겠습니다. 자, 시작하기 전에 오늘 아침 건강하신 여러분 모두가 병든 분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그 예배당들에 들어갔을 때 참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밀려 나올 정도로 가득했고, 클리프턴스에서는 거리의 한 블록이 넘도록 서 있었습니다. 다들 그저 간증하고 싶어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전에 암을 앓았습니다. 형제님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거리 끝까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마음이란!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건너가 저편에 이를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곳에는 수만 명씩 모여 서 있을 텐데, 그때는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이 작은 수고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고, 거의 탈진하여 앞으로 쓰러질 지경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일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와서 말합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 참.” 그러나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것이... 상황을 다르게 보게 해 줍니다.
자, 말씀을 대하기 전에 잠깐 다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 주님,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됨됨이를 아십니다. 그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얼마나 힘이 없는지 아십니다. 사람이란 주님의 종이라 하기에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요.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우리가 합당하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우리를 받아 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으셔서, 여기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서 하신 위로의 말씀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성령께서 모든 말씀을 마음에 꼭 필요한 그 자리에 바로 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곳에 말씀이 뿌리를 내려 큰 기쁨으로, 구원의 나무들로 자라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치유하옵소서. 그분들이 여기 앉아 있는 줄 압니다. 먼 길을 와서 기도받을 기회를 기다리며 호텔 같은 곳에 누워 지낸 분도 많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병든 사람을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심을 아는 이 큰 특권이 우리에게 있어 참 기쁩니다. 하나님, 우리가 아는 가장 중한 병자 가운데 하나는 죄로 병든 남자와 여자입니다. 하늘 아버지, 오늘 특별한 방법으로 기름부으셔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잃어버린 모든 남자와 여자가 은혜의 보좌로 온유하게 나아와 구원받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 말씀을 읽으려 하니 주님께서 그 말씀을 읽는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늘 말씀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전 밤에도 어디선가 예언하러 올라간 선지자들에 대해 말씀을 전했는데, 미가야는... 사백 명의 선지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똑같이 말했는데도 여호사밧은 “한 사람 더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사백 명이 이미 말씀을 전했는데 또 한 사람이라니요? 그러나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을 들으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어딘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며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그곳 앤젤러스 템플 부흥회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곳의 첫날 저녁에는... 거기는 오천오백 명, 오천오백 명밖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육천 명을 들여보내자 제가 도착하기 한 시간 반 전에 소방 책임자가 앤젤러스 템플의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주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전에 이곳에서 일요일 학교 교사였던 우리 힉스 자매님도 만났습니다. 자매님의 자녀들과 남편도 만났고, 벤 브라이언트 형제님과 이 교회에서 서부로 가 그곳에서 교제하는 모든 분도 만났습니다. 그분들을 모두 다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 재회였는지요.
오늘 아침 읽을 말씀은 마태복음 17장입니다. 여기서 일부만 본문으로 읽으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 속에서 그 문맥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니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에게 나타나 그분과 이야기하므로, 그때에 베드로가 응답하여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게 하옵소서, 하더라.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는데, 보라, 그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므로.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는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의논하는 여러 모임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과 의논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구약으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만나신 일을 얼마나 많이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몇 명이든 하나님은 사람들과 만나십니다. 한 번은 오백 명과 만나셨고, 또 한 번은 칠십 명과, 또 한 번은 열두 명과 만나셨습니다. 한 번은 세 명과 만나셨고, 또 한 번은 단 한 사람과 만나셨습니다. 의논하는 모임의 인원이 몇 명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과 만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 이 교회의 회중 수나 규모가 오늘날의 많은 큰 대성당만큼 크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만나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겠노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내가 그 두세 사람 가운데 있겠노라.”
오늘 성령을 통해 여기 펼쳐 볼 수 있는 이 장면, 이 본문은 몇 시간이고 깊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주라도 걸릴 것 같습니다. 여러 해 동안 깊이 살펴보았는데도 이 놀라운 본문의 절반조차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다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 표현과 말한 때에 따른 특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따라 계속 흘러가며 영원한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세대가 동일한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영원하고 영속하며 쇠하지 않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자기 시대에 읽었어도 그들에게 의미가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자기 시대에 읽었고, 루터가 자기 시대에, 칼뱅이 자기 시대에 읽었어도, 오늘날 그 말씀은 그들에게 주어졌던 바로 그날과 똑같이 찬란하고 밝으며 똑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은 그저 이런 것입니다. “존, 우리 집에 오세요. 당신을 만나면 반갑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말입니다. 그저 “존, 우리 집에 오세요”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은 영원합니다. 불멸하시고 영원하신 창조주 그분 자신의 호흡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그 의미를 온전히 다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시대와 모든 세대를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아침 우리가 대하는 이 사건에서는 하나님께서 세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우선, 셋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완전의 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셋을 택하셨고, 셋은 하나님의 완전의 수입니다. 일곱은 그분의 경배의 수입니다. 오십은 그분의 희년의 수입니다. 사십은 그분의 시험의 수입니다. 그리고 이날 함께 올라가도록 택하신 수는 셋입니다.
자, 셋은 완전의 수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완전해지시며, 한 분이신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시는 세 경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완전해지신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 분의 개별적인 신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그 셋 안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셋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신성이 세 번 나타나는 것, 곧 땅 위의 세 시대에 걸친 경륜이 한 분이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완전하게 합니다. 그분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습니다. 성막 위에 머물러 그들의 여정을 인도한 빛,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다음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
얼마 전에 제가 이곳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마 지난번에 이 교회에서였을 겁니다. 「비둘기와 어린양」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홀로,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그 일을 하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온순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타내셨고, 자신은 하늘을 나는 모든 새 가운데 가장 온순한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은 온유함은 오직 온유함과 함께 거하며, 겸손은 겸손과 함께 거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맞아야 합니다. 목수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우리가 제비촉 이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판자를 완전히 이어 붙이려면 한쪽에 홈을 파고 다른 쪽에 촉을 만들어 맞춥니다. 홈과 촉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맞추면 아주 단단히 들어맞아서, 물이 닿아 부풀면 공기조차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신자와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완전하시므로, 신자를 깎고 다듬어 그 둘이 함께할 때에는...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아시겠죠. 그들을 그렇게 완전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와 어린양 위에 앉으시고 어린양 안에 거하시며 결코 그 어린양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둘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경험한 가장 위대한 강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잠깐 그것을 살펴봅시다. 제 본문에서 벗어납니다만, 하늘과 땅이 어떻게 서로를 끌어안았는지요.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 화해하게 되었는지요. 사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과 하나님이 화해했을 때, 하늘을 나는 생물과 들을 돌아다니는 짐승들까지도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지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머물려면 온유하게 지내십시오. 하나님은 온유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려면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겸손하게 지내고, 자신을... 아니, 결코 자기 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자기 생각을 사용하지 말고 그분의 생각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이 되게 하십시오. 그 생각들을 여러분의 육적인 생각 속에 받아들여 거듭 되새기며 말하십시오. “오 하나님, 제 모든 의심을 거두어 주시고, 제 생각이 주님의 생각이 되게 하옵소서.” 병든 여러분도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그렇게 하십시오. 질병에 대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떨쳐 버리십시오. 치유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생각이 되게 하십시오. 성경은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칭찬이 되는 것이나 덕이 되는 것이 있거든...”
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셋은 확증을 뜻합니다. 그분께서는 베드로, 곧 믿음과 야고보, 곧 소망과 요한, 곧 사랑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셋... 여러분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왕국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위대한 것,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확증으로 삼으셨습니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아들을 제자리에 세우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구약에서 한 가정에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를 기르고 보살필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영지를 다스리느라 몹시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영지 하나하나를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킹제임스 번역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내 아버지 집에 저택들이 많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서양 사람들은 저택과 집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 말이 좀 맞지 않게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저택이 집 안에 있었습니다. ‘집’이 ‘영지’를 뜻했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의 농장에는 곳곳에 수십 명의 소작인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그는 학식 있고 겸손한 사람을 골랐습니다. 자기와 마음이 통하고 자기 영지에 속한 사람을 골라 가정교사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는 오직 그런 사람에게만 자기 아들을 맡겼습니다. 오늘날 아버지께서도 그분의 아들들인 여러분과 저에게 얼마나 적합한 가정교사를 붙여 주셨는지요. 하나님의 훈계로 우리를 기르시려고 택하신 분, 바로 주 예수님의 마음과 혼이신 분입니다. 이 가정교사는 얼마나 신중히 선택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분은 명석한 분, 선택된 분,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이에게 오직 올바른 원칙만 가르칠 분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께서 오시면 다른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한번 그런 말을 마주해 보십시오. 그분은 오직 참된 것만 가르치십니다. 그분은 오직 아버지에 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저라면 성령이 없는 세상의 모든 교수보다, 알파벳도 모르지만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 제 아이를 가르치게 하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에 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성령은 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이가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아버지께서 정해 주신 원칙을 받아들이고 믿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에게 신유는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그는 성령에게서 모든 것을 믿으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창조주의 말씀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들 재료를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그저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지금 여기 있는 이 피조 세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라는 나무들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에 닿는 산들도... 아름다움을 보고 싶으면 산을 올려다보게 합니다. 산을 높이 올라갈수록 더 순수하고 깨끗해집니다. 저기 브리티시컬럼비아 북부의 빙하 지대에 서서 바라보면, 여기에는 늪이 있고 조금 높이 올라가면 더 깨끗한 물이 흐릅니다. 더 푸르고 맑아집니다. 나무들이 차츰 사라집니다. 온 자연이 “위를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높은 곳에는 햇빛처럼 빛날 만큼 찬란한 거대한 빙하의 얼음이 있어 여러분은 위를 바라보게 됩니다. 온전하고 참되고 순수한 것을 보고 싶으면 언제나 위를 보십시오. 산이 그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산들을 향해 눈을 들리니 나의 도움이 거기서 오는도다. 나의 도움이 주로부터 오는도다.”
가정교사는 언제나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사는 훈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어린 아들이 식탁에서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침을 먹이려고 정성껏 준비한 달걀 같은 음식이 작은 그릇에 담겨 있었고, 아내는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먹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잘못된 쪽 손을 쓰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손으로 먹게 놔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아이가 양손잡이나 왼손잡이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엄마는 제대로 훈육하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싫어해도 손을 바꾸게 했습니다. 엄마는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훈육자이신 성령께서도 여러 번...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때로는 고통의 병상에 눕기도 하고, 때로는 의사가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올바른 손을 쓰도록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십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 아십니다. 그분은 훈육자이십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린 조셉이 그 손을 쓰려 하지 않으니 엄마가 손을 뻗어 이만한 길이의 회초리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초리로 옆을 톡톡 두드리자 아이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해 그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이를 훈육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동정을 구하거나 지나치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자녀를 훈육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은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십니다. 때로 우리는 복음이 전해질 때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나는 그냥 내 교회에 가겠어. 거기는 그러지... 나는 그냥 이런 식으로 믿겠어.” 아시겠죠.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령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때로는 회초리를 톡톡 두드리며 여러분을 바로잡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교회의 자녀 훈육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아버지를 사랑하시며 언제나 아버지를 가리키실 것입니다.
이제 아이가 훈육받으며 자라는 동안, 그렇다고 아이가... 그 아이는 분명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아이라면, 가정교사는 늘 그 아이 때문에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늘 이랬다저랬다 하고 갈팡질팡했다면, 아버지가 “내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느냐?”라고 물을 때 그런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그리 잘하고 있지 못합니다”라고 말해야 했지요. 그러면 물론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우리의 기록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셔야 할 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정해 주신 모든 일에 합당하게 걸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훈육하고, 자녀로 훈육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지는 요즘의 어떤 아버지들과는 달랐습니다. 제 아버지는 매를 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정말 매를 드셨습니다. 우리가 잊을 수 없을 만큼 때리셨습니다. 저는 마흔일곱 살인 지금도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게 유익했습니다. 저를 훈육했습니다. 오늘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아버지를 일으킬 수 있다면, 제일 먼저 그 손을 잡고 아버지가 해 주신 일 때문에 안아 드릴 것입니다. 제가 육신의 아버지에게도 그런 마음이라면, 그날 우리가 그분 앞에 서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 유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분은 이쪽에서 우리를 조금 깎으시고, 자녀로 훈육하시며, 세상에 속한 것들을 잘라 내셔서 그분 앞에서 겸손한 자녀로 걷게 하셔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다. 분명히 그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렇게 성령께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그 자녀가 성숙해져 성년이 되었는데도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 자녀는 물론 여전히 아들입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잃습니다.
여기서 제가 꼭 마음에 새겨 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말씀을 신자인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물론 여러분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이 말한 것처럼 겨우 잇몸만 가지고 빠져나오듯 간신히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아버지께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주신 달란트를 소홀히 하여 쓰지 않거나, 다른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둔 채 아버지 앞에 나아가고 싶으십니까? 결국 여러분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소한 것들, 작은 다툼과 속 끓이는 일과 언쟁과 교회의 의견 차이 때문에 여러분의 삶에서 겸손과 온유함이 사라지게 두겠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고 싶으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러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잘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기를 얼마나 바라는지요. 겨우 잇몸만 가지고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맡은 일을 잘하였으니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라”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주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녀의 선생님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일을 잘하십시오.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잘하십시오. 보십시오. 그 아이가 아버지의 영지에 있는 것들을 맡기에 참으로 합당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정말 신실한 자녀였다면, 가정교사는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 아드님은...” 저는 그분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이런 소식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아드님은 온통 아버지만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애쓰는 것은 오직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뿐입니다. 아버지의 일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말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왕국을 향한 열심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조금 지나치게 열심을 내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차라리 지나치게 일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그리스도의 교회 전도자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저는 녹슬어 못 쓰게 되느니 닳도록 일하겠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네빌 형제님 말씀처럼, 저는 마구 쓰기를 거부하느니 차라리 닳도록 일하다가 마구를 멘 채 죽겠습니다. 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교사이신 성령께서 그 소식을 아버지께 전하실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 아이가 훌륭한 자녀가 되면 아버지에게 그렇게 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아, 저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정하신 때가 되면, 그 아이는... 그의 영광과 영예가 사람들 앞에 드러났습니다. 아버지는 축하 행사를 열어 자기 아들을 사람들 앞에 데리고 나갔습니다. 자기 집에서 태어난 친아들이었지만,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상속받도록 그 아들을 가족 안에서 제 지위에 세운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도 바르게 처신하면 어느 영광스러운 날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정해진 날에, 신실했던 자들에게 상을 주시고 신실하지 못했던 자들을 물리치실 때가 올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떠나시기 바로 전, 하나님께서는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비둘기가 어린양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뜻을 행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영의 인도를 받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이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 회중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을 이렇게 많이 쓰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산을 떠나 내려오신 뒤 이런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에게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느냐? 자, 사람들은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보십시오. 오늘날의 모습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여 줍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뒤, 영으로 충만해진 뒤, 사람들은 여러분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마음이 너무나 뜨거워져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기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며, 시온의 노래를 부를 때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보며, 죄를 보면 잠자코 있을 수 없어 사람들에게 평화롭고 조용히 말을 건네야 하는 여러분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 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러분이 비참하고 괴로운 가운데 죽어 가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어떤 하나님의 자녀에게 치유를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그 일을 아버지 앞에 내놓으며 “아버지, 저를 용서하옵소서. 이제 저는 그리스도를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낫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제가 지금 바라보는 회중 가운데, 여러 해 전에 말기 암으로 비참하게 죽어 가던 분들이 계신 것을 압니다. 온갖 상태와 모습으로 고생하고, 앞을 보지 못하던 분들도 계셨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여러분을 치유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간증할 때,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합니까? 그 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때도 어두웠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오늘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어떤 사람은 광신주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비엘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정신 감응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흥분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광신주의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러분은 이 일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급한 베드로는 보통 나설 때가 아닌데도 말을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들으십시오.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계속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저주하고 조롱할지라도, 여러분을 성령에 취해 구르는 광신자라고 하고 온갖 이름으로 부를지라도,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네 아버지... 자, 바로 이것입니다.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이것을 어떤 독단적인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고, 어떤 사람의 신학적 선언에서 배우지도 않았느니라.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시겠습니까? 가정교사이신 성령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계시로 그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 작은 돌이라. 나는 큰 반석이요 모퉁잇돌이라. 그러나 너는 내 위에 놓인 작은 돌이라. 건축자들이 너를 택했느니라. 네가 스스로 택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건축자들이 너를 택했느니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어느 날 밤 채석장에서 일하다가 너를 불러냈고, 너는 자신을 내게 내어 맡겼으며, 나는 내 방식대로 너를 다듬었느니라. 나는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너를 만들었느니라. 내가 톱질했고, 너는 그저 가만히 서 있었느니라. 이제 내가 너를 다른 돌과 맞물려 그 돌을 이끌 작은 돌로 놓노라. 이 돌은 저 돌을, 저 돌은 또 다른 돌을 이끄느니라. 사랑의 시멘트가 너희를 하나로 묶어, 내 이름을 고백하고 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모든 돌이 기초인 나와 맞물리게 하느니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깎이도록 가만히 서 있게 하는 하나님의 계시, 그 계시로 다듬어지는 돌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모든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은 분명히 지옥의 모든 문들이 교회를 대적하겠지만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친구 여러분, 이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온 교회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계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배웠든, 얼마나 똑똑하든, 성경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든, 사탄은 여러분보다 훨씬 더 잘 압니다. 그러나 오직 계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교사이신 성령을 통해, 그분이 은혜로 여러분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아침 계시를 통해 이것이 여러분의 고통의 끝이요 질병의 끝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다면... 고통의 처소에서 나오는 모든 마귀도 그 기초를 흔들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의사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대적하겠지만 이기지는 못합니다. 원수가 홍수같이 올 때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대적하여 군기를 들어 올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이해가 되십니까?
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시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가인이 아벨과 똑같이 경배의 예물을 가져왔을 때, 그는 경배했고 교회에 예물을 바쳤으며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모든 종교적 행위를 아벨보다 더 빛나고 더 훌륭하고 더 그럴듯하게 행했습니다. 더 좋은 제단을 쌓고 더 아름답게 꾸미며 자기 경배를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성향이 아직도 아담의 아들들 가운데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그는 밭의 열매들과 커다란 백합꽃들로 경배를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그뿐 아니라 경배도 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지식을 통해 경배한 것이었습니다. 계시로 경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 이것을 이해하십시오.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지식을 통해 경배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야 한다는 지식을 가지고 교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교회에 가는 것은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 교회에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쓸 종이나 석판조차 없었습니다. 교육을 받을 학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벨은 계시를 통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것이 아름다움이나 밭의 열매나 사과가 아니라 피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계시되자 그는 가서 어린양을 데려왔습니다. 계시로 그는 의로운 어린양이 오실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그에게 계시되었으므로 어린양을 가져와 계시로 하나님께 드렸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온 교회는 영적 계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들은 산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는 자녀로 살아오신 뒤였습니다. 육신, 곧 어린양은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나는 내 뜻을 행하러 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러 왔느니라. 나를 보내신 분,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고 나와 함께 가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분은 보내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함께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사람을 교육하여 어떤 신학교에서 얻은 경력을 내세우게 하고 내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가 준비되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가십니다. “내가 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노라.”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 말씀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요. 성령께서 주 예수님에 대한 계시와 사랑으로 그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단단히 붙여 주시는지요.
자세히 보십시오. 그곳에서 순종하신 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땅 위에 서 있던 가장 훌륭한 증인들인 사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소망의 증언 아래, 믿음의 증언 아래, 사랑의 증언 아래,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알게 될 가장 위대한 세 가지 나타남인 소망과 믿음과 사랑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제 지위에 세우셨습니다. 옛날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나가 겉옷을 입히고 의식을 치렀으며, 그 뒤에는 아들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이 효력을 지니고 아들이 모든 것의 상속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증인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 구름으로 덮으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의 옷이 해같이 빛났고,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늘 그랬듯이 몹시 흥분했습니다. 그는 아주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열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말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고 몹시 흥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내려간 뒤 조금 후에 그에게 그 간증을 하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니 여기에는 셋,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기 산 위에도 세 분이 서 계셨습니다. 여기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저기에는 모세와 엘리야와 그리스도께서 서 계셔서 여기 있는 이 셋을 확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보니 먼저 모세가 서 있었고, 그다음에는 선지자 엘리야가 서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거기에 가면 우리가 서로 알아볼까요?” 엘리야와 모세는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뿐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알아볼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모세를 본 적이 없었지만, 전능자의 그늘 아래 서 있었을 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서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생키를 보면 알아볼 것입니다. 한 번도 듣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알아볼 것입니다. 웨슬리를 알아볼 것입니다. 무디와 칼뱅과 녹스를 알아볼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그들 모두를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상태... 아니, 영화롭게 된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랬습니다.
그러니 그런 예표 속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고 사진조차 본 적 없으며,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 된 사람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알아볼 수 있었다면, 예표 속에서도 순식간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알아볼 수 있었다면, 우리가 영화롭게 되어 그분 앞에 서 있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서로 알아볼까요? 물론입니다. 모두를 알아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하시니, 우리에게도 약간의 무한함이 임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마쳐야겠습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을 때 베드로가, 정말 훌륭한 신학생이라면 할 법한 말을 했습니다. “있잖습니까, 저는 모든 교회가 옳다고 믿습니다.” [녹음 공백.]
여러분이 정통 신앙을 가졌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이슬람교도들도 불교도들도, 모두 함께 모으면 됩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장막 셋을 지읍시다. 여기에는 모세를 위해 신학교를 짓겠습니다. 엘리야를 위해서도 신학교를 짓고, 율법 아래서 경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그렇게 경배하게 합시다.” 자, 우리는 그들이 바라보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이 모세를 보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주신 까닭은 그들이 율법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율법을 갖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그들은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할 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율법을 주시면 우리가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계획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분의 계획을 사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그분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에는 율법인 모세가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율법을 지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육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그곳에 선 다음, 그다음으로 서 있는 사람은 엘리야였습니다. 그렇게 차례대로 나타났습니다. 모세 다음에 온 엘리야가 그다음에 서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공의, 곧 선지자들을 나타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끌어 내려 오십 명씩을 죽였다는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냈습니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공의를 원했습니다. 아무도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키지 못하여... 율법을 범하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죽음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의 의로운 율법은 반드시 공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베드로가 이 장막들을 짓고 싶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그렇게 해도 되는지 묻고 있을 때, 그들이 다시 바라보니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율법은 실패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자기 의나 우리가 행한 어떤 일에서 눈을 돌립시다. 저는 율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저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므로 율법으로 심판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역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치유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간적인 의지로 율법을 그 계획에 끌어들이려 했다면, 여러분이 실패했을 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공의뿐입니다. 공의는 정죄받아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완전한 소멸을 요구합니다. 율법의 한 조목을 어기는 자는 모든 율법에 유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를 보고 있을 때...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려 봅시다. 이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율법도 공의도 아닌, 그분 안에서 율법과 공의 모두가 충족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더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을 붙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정교사에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래서 베드로가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과 공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되었고, 그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아침 이 회중을 위해 간구하면서 우리는 율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어떤 율법도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로로 심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주님의 심판이 제게 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결코 아닙니다. 저는 주님의 긍휼에 호소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구원을 지니신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다른 모든 성도는 위대한 사람들이었지만, 오직 그분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분이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왜 제가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까? 율법은 제게 평안을 줄 수 없었지만 그분은 주실 수 있습니다. 공의는 정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그분은 제게 평안과 화해를 주십니다. 율법은 저를 정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병들면 율법은 제가 자연의 법칙을 어겼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제게 집행되므로 저는 그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저는 율법과 공의 모두에서 제 마음과 눈을 돌려, 은혜로 저를 다시 하나님과 화해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율법이나 공의로가 아니라 화해를 통해, 그분께서는 사람과 하나님을 서로 만나게 하여 하나 되게 하시려고 값을 치르셨습니다.
얼마 전 저기 스위스에서...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여러분 어린이 가운데 많은 분은 아마 아직도 그 이야기를 배울 것입니다.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잊혀 가지만, 그 일이 일어난 스위스에서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 읽기 교과서에 나왔던 스위스의 위대한 영웅,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를 기억하십니까? 오늘날 스위스 알프스에서 그의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의 얼굴이 상기되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여러 해 전... 스위스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 초기 세기에 광석도 아무것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간 독일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들였... 그들에게는 독일인의 지성이 있었습니다.
독일인은 자신이 우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지성으로 온 세상을 정복할 총이나 폭탄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반면 스위스 사람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는 내려가서 자기에게... 재료를 좀 구해 이웃에게 시계를 만들어 주며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오래전, 높은 스위스 산속에서 그들이 자기 왕국을, 아니 정부라고 해야겠군요, 세웠을 때... 그들은 군사 국가가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략자들이 그 땅에 들어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짓밟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쌓아도 소용없었고, 산에서 돌들을 굴려 내려도 적들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위스 군대를 산기슭의 들판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스위스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지대에서는 농사를 짓고, 그 위에서는 소를 기르며, 더 높은 산에서는 양을 기르고, 맨 꼭대기에서는 염소를 기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요들이 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의 이른바 요들 가수들이 하는 것은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것일 뿐,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들은 나팔을 불고,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모든 이웃이 함께 달려와 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것을 재즈 밴드나 로큰롤에 씁니다. 아, 그것은 참... 얼마나 더럽혀졌습니까. 친구 여러분, 들으십시오. 제 매니저가 한 말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음란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속히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일으켜 불태우신 일을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니 달리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긍휼이 팔을 벌리고 있는 동안 그 품으로 피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
그 산에서 이 작은 군대는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무장했습니다. 방패와 막대기와 톱날과, 그 밖에 가진 것들과 쇠스랑을 들고 물러나 있었습니다. 거대한 외국 군대는 견고한 벽돌담처럼 다가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훈련된 군인이었고 큰 창을 들고 가까이 행진해 왔습니다. 산을 등지고 몰려 있는 이 작은 스위스 군대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시도했던 모든 일이 캄캄하고 어두웠으며, 아무것도 그들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였습니다. 그가 앞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오늘 나는 스위스와 그 자유를 위해 죽겠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싸워 지킨 것과 우리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것을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의 훌륭한 경제가 위태롭습니다.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기 산 너머에는 내 아름다운 집과, 나를 사랑하는 다정한 아내와 어린 자녀들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죽겠습니다.” 그는... 그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 그는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적군의 대열을 깨뜨리겠습니다. 그들의 진을 무너뜨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이든 가진 것을 들고 힘껏 싸우십시오. 군인으로서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십시오.” 그는 두 팔을 치켜들고 조금씩 앞으로 다가가면서, 가장 많은 창이 빽빽하게 다가오는 곳이 어디인지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자유를 위해 길을 열라!” 그는 다가오는 벽돌담 같은 대열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유를 위해 길을 열라!” 하고 외쳤습니다. 창이 가장 빽빽한 곳으로 달려가, 두 팔로 창들을 끌어안아 자기 가슴으로 끌어모으고 죽었습니다.
스위스 병사들이 가진 것을 들고 그의 뒤를 따르자, 적군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대열이 무너졌습니다. 모두 자리를 벗어나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스위스 병사들은 그 틈으로 뛰어들어 승리를 거두었고, 스위스는 그 뒤로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스위스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스위스가 있는 한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도 기억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영웅적 행동입니다. 그에 견줄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작은 일, 그저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아담의 아들들이, 율법이 실패하고 선지자들의 공의가 실패했을 때, 세상이 약하여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구원할 수 없었을 때... 짐승의 피와 짐승의 영이 돌아올 수 없었기에 그것은 실패했습니다... 사탄은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여전히 불을 내려 오십 명씩 태우고, 선지자들이 땅에 심판을 내리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멸망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내셨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영광의 영역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 앞으로 나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아담의 아들들을 해방하러 가겠노라.” 그분께서 그곳에 서 계실 때, 모든 희망이... 마귀가 우리에게 질병을 주고 죄를 씌우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야 했습니다. 율법의 공의가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율법에 의해 정죄받으므로, 공의만이 집행될 수 있었습니다. 빠져나갈 길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천사가 “무엇을 하시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아담의 아들들아, 너희 모두는 내가 싸우라고 주는 것을 가지고,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싸워라.” 그분은 신학이나 신학교를 짓는 일, 혹은 교회를 세우는 일을 통해 적의 약한 지점을 찾아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창이 가장 빽빽한 곳으로,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통과하여 가셨습니다. 두 팔로 죽음과 질병을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손에 맡기시고, 아담의 아들 각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싸우도록 요구하셨습니다. 조롱받고 박해받으며 성령에 취해 구르는 광신자라는 말과 온갖 다른 말을 듣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우십시오. 그러면 승리는 확실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원수는 패주했습니다. 그들의 진은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구원의 대장께서 오늘 성령 침례로 앞장서 이끌고 계십니다.
아, 아담의 아들딸들이여, 어찌하여 죽을 때까지 여기 앉아 있습니까? 일어나 무언가를 합시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사용합시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이 죽을 육신의 입술밖에 없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구원해 주신 그분께 감사합시다. 여러분이 죄인이라면 이 세상의 채석장에서 스스로를 불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바위를 깨뜨려 여러분을 꺼내셨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건물에 놓으시려고 톱질하게 하십시오. 병들었다면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실 때 죽음과 지옥과 질병과 무덤, 그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싸웁시다. 고개를 숙여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매님에게 피아노로 좋은 찬송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분별 있고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로서...
오늘 아침 우리 주 예수님의 죽음을 감사히 여기십니까? 여러분의 교회들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학교들이 아무리 좋아도 참담하게 실패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참담하게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눈길을 돌립시다. 교회의 법과 교단과 의사의 진료실에서 눈을 돌립시다. 그 모든 것이 좋기는 하지만, 오늘 아침 우리를 덮고 있는 그 그늘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읍시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나아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받아 주옵소서. 오,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령님, 오늘 주님의 자녀들을 가르쳐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옵소서. 많은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더는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두워지고 캄캄해졌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꺾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죽음이라는 원수와 질병이라는 원수, 슬픔이라는 원수, 온 인류의 원수가 쏜 불화살을 붙잡으신 갈보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옵소서. 거기서 주님은 그것을 주님의 가슴에 받아 안으시고 길을 뚫으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그 어두운 그늘을 지나 영광 가운데 있는 우리의 집을 봅니다. 폰 빙켈리트는 “산 너머에 집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주님께서는 “그들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가서 한 곳을 준비하고 돌아와 너희를 데려다가 내게로 받아들이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빙켈리트의 용감한 죽음을 깊이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죽고 뒤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어 구속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데려가시려고, 우리 집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데려가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어둠을 뚫고 길을 내셔서, 하나님의 복들이 있는 휘장 너머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생명의 채석장에서 복음으로 바위를 깨뜨려 꺼내신 주님의 자녀가 여기 있다면, 주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빚기 원하셔서 오늘 아침 깎고 다듬으며 그들의 습관과 악한 생각과 뒤에서 헐뜯는 일과 뒤로 물러가는 삶을 톱질해 잘라 내고 계셨다면, 이제 그들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 건물에 맞추어 넣기 원하신다면, 바로 지금 그들의 마음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여기 길을 벗어난 자녀가 계십니까? 혹은 아직 그 길에 들어선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자신도 그 안에 들고 싶고, 하나님의 건물에 들어맞는 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까? 그리스도께 손을 들어 “그리스도여, 제게서 세속적인 것들을 잘라 주옵소서”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저기 뒤에 계신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이제 고개를 숙이고 성령을 기다립시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실망시켰는지 아닌지 압니다. 여러분의 위대한 정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따라가지 못했습니까? “와서 나를 따르라. 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라. 나를 따라오라. 내가 원수의 대열을 깨뜨리겠노라. 죄의 대열을 깨뜨리겠노라. 질병의 대열을 깨뜨리겠노라. 너희는 나를 따라 최선을 다해 싸워라. 내가 그 한가운데로 길을 뚫을 것이며, 우리의 집들은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보존될 것이기 때문이라.”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이방인입니까? 그저 손을 드십시오... 어린 친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다른 분 가운데 손을 들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 저는 이제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의 기계로 깎이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무언가가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제 속 깊은 곳이 흔들렸습니다. 저는 세상 습관들에 묻혀 뒤처져 있었습니다. 땅의 먼지와 진흙이 저를 드러냈... 저를 덮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저를 드러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죄 있는 자로 서 있고, 저도 그것을 압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를 돌처럼 취하여 깎아 주시고, 주 예수님을 고백하게 하시고 성령을 주시며, 그분의 왕국에 놓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드러난 지금, 톱으로 다듬어져 그분의 왕국에 놓이기를 원합니다.”
죄인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전에 그분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네다섯 분이 더 손을 드셨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금은 아마 앞으로 나오시라고 초청할 여건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시면 제가...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한 뒤에 여러분도 이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먼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특별한 것을 허락하시도록 말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서기관인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 5장 24절에 따르면,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손을 든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드리는 주님의 종의 겸손하고 미약한 간구를 들어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주님께서 이끌고 계셨고, 그들은 듣고 손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옵니다. 오늘 이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고, 오늘 아침 세상의 것들을 비워 내어 주님의 건물에 꼭 맞는 돌로 깎이기를 바라는 굶주린 마음을 가진 이들을 성령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마음이 달라진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솔처럼 사용하여 세상의 것들을 깨끗이 씻어 내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새로워진 것을 느낍니다.
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영광스러운 옛 찬송을 한 번 더 부릅시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이 있습니다. 이제 다 함께 부릅시다. 좋습니다.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흐른 피. 그 물결 아래 잠긴 죄인들은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그 물결 아래 잠긴 죄인들은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지금 한 가지 묻겠습니다. 자기 죄가 모두 그 피 아래 있다고 느끼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하시며 제가 그분의 자녀임을 믿습니다.” 아, 참으로! 죽어 가던 강도는 자기 생전에 그 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자기 생전에 그 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처럼 악한 저도 거기서 제 모든 죄를 씻게 하옵소서. 이 절을 부르다가 후렴에 이르면, 곁에 앉아 계신 분과 악수하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말해 주십시오. 누구든지요. 자, 이제 주님께 첫 절을 부릅시다. 할 수 있으면 손을 들고 “죽어 가던 강도”를 부릅시다. 그리고 후렴에서 악수하십시오. 죽어 가던 강도는 보고 기뻐했네, (아버지, 우리가 지금 주님을 경배합니다.) ... 그 생전에 그 샘을. 그처럼 악한 나도 거기서 내 모든 죄를 씻게 하소서. 내 모든 죄를 씻게 하소서, 내 모든 죄를 씻게 하소서. (이제 서로 손을 잡으십시오.) 그처럼 악한 나도 거기서 내 모든 죄를 씻게 하소서.
그리스도인 신자로서, 왕국의 동료 시민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으니 오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자, 여러분은 주님으로 인해 기쁘십니까? [회중이 “아멘”이라고 말한다.] 참 좋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저녁에도 여기서 다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이 예배 직후에 약속이 있어 사랑하는 여러분 몇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밤 예배에 돌아왔을 때, 저녁으로 그 약속을 미룰 수 있을까요? 제가 그만... 열한 시면 마칠 줄 알았는데 이제는... 기도받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해 드릴 분이 많습니다. [녹음 공백.]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쪽에 있는 루터교인 한 분이 제게 그런 편지를 써서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처럼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사람이 마귀는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하다니,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온유하게 답장을 썼습니다. 그는 다시 편지를 보내 “실업인 대집회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어 형제님에게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형제님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루터교 신학교로 데려갔고, 그곳에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그분은 학장이었고 제 옆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식사했습니다. 그들은 독일인들이었습니다. 훌륭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고, 여자분들이 모두 시중을 들어 주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이 루터교 대학의 루터교 학장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한 가지 목적 때문에 형제님을 이곳에 모셨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령 침례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그를 보았고, 무어 형제님을 보았습니다. 무어 형제님도 저를 보았습니다. 학장이 말했습니다. “제가 형제님을 비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옳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성령 침례를 원합니다. 의자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물건을 부수는 모습은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성령을 원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가 말하기를... 제가 물었습니다. “루터교 신학... 루터교 교단은 어떻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루터교 교단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그리고 밥 슐러와 그들, 「크리스천 헤럴드」의 편집장인, 빌리의 절친한 친구와 그들도 막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모든 형제들이 성령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말하기를... 그가 물었습니다. “루터교인들도 받을 수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면 됩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정말 마음을 다해 원하십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두 손을 들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접시를 뒤로 밀어 놓고, 긴 의자를 들어 벽 쪽으로 옮기십시오.” 둘러앉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무릎을 꿇고 벽을 향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기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어 형제님에게 서서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했습니다. 학생 일흔두 명 모두와 학장이 성령 침례를 받았고, 그들은 기적과 하나님의 역사로 저쪽 그 지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치유 예배도 드리고 그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루터교 신학교에서 말입니다. 아, 저는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주리고 목마를 때...
암으로 죽어 가며 여기 누워 있는 이 가엾은 여인... 분명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 주시기를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거기 앉아 계신 여러분 가운데 심장병이 있는 분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지 않으시면 여러분은 곧 죽을 것입니다. 다른 몹시 심한 질환이 있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친구 여러분, 공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공의가 요구하는 값을 치를 수 없습니다. 율법도 바라보지 마십시오. 율법은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구속하신 분은 그분이시며,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오늘 아침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루터교 목사 칠십 명을 보내셔서 성령 침례로... 안수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싸울 것을 주실 때, 폰 빙켈리트가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싸우십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악한 영들 곧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에게 물릴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지금 온 세상을 돌아 뚫린 이 큰 길을 보십시오. 복음은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인 아담의 아들들은 싸우며 길을 내고, 지금 원수 가운데로 길을 뚫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건강의 소중함을 아는 건강한 여러분은, 우리가 이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분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병든 분들은 여기 제 오른쪽으로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님들은 오셔서 이분들을 도와주시겠습니까? 복음의 사역자들께서는 여기 가까이 서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할 수 있는 대로 잠시 뒤에 다시 앞으로 나오시도록 초청하려고 합니다. 이 치유 예배로 예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이쪽에 줄을 서십시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인 네빌 형제님에게 평소의 진행대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분들이 할 수 있다면...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녹음 공백.]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어디를 바라봅니까?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의사들도 실패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요. 두려워 말라, 작은 양 떼여, 십자가에서 보좌까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분 홀로 가셨네. 땅의 모든 권능과 위에 있는 모든 권능이 그분이 사랑하시는 양 떼를 위해 그분께 주어졌네. 질병을 다스리는 모든 권능, 모든 것이 그분께 주어졌습니다. 믿기...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율법이 실패하고 의사가 실패하며 모든 것이 실패할 때, 그분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녹음 공백.] 한 백 명쯤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휠체어를 타고 오고, 여기 한 분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것에 누워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의사들은 인간으로서 몸을 절개하고 해부학적 구조를 살펴, 자기 지식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봅니다.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그분을 덮고 있던 이 빛나는 영광의 구름에서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는 말씀이 나왔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율법이 실패하고 공의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믿기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우리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옵소서. 이제 복음의 사역자로서 우리는 병든 사람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러 갑니다. 이 교회의 헌신한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에 복 주시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이제 고개를 숙여 기도하시고, 회중이 조용히 「믿기만 하라」를 부르는 동안 네빌 형제님은 기름을 바르고 저는 병든 분들에게 안수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방금 뒤에서... 우리가 죽음과 생명 사이에, 죄인과 심판 사이에 서서 그들에게 피할 길을 가리키는 강단... 저는 [불명확한 말.] 주님... 이제 저 뒤에서, 그리고 이 병든 여인에게 안수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서 이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도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제가 이분에게 안수하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