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어제 목사님께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그만... 하루 종일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뭔가... 모든 게 이렇게 조용하네.” 그런데 얼마 후 우즈 자매님이 전화 연락을 한 아름 들고 올라오셨습니다. 제 전화가 고장이 났던 겁니다. 그러니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전화를 하신 분이 계시다면... 거는 쪽에서는 신호가 갔지만 집 안에서는 벨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교환대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젯밤 여덟 시쯤, 어쩌면 그보다 조금 전에 수리를 해서 지금은 전화가 걸려 옵니다.
오늘 아침 예배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감기에 몹시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대개 이렇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허리까지 차는 눈을 헤치고 다니고 밤에 밖에서 자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뉴올버니의 저 언덕만 넘어 이 골짜기로 들어오면 그만 심한 감기에 걸립니다. 이 골짜기에는 뭔가 낮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제 몸에는 영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렇게 교회에 와서, 사랑하는 우리 좋은 목사님이 우리를 위해 주 예수님께 간구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기쁩니다. 그리고 듣고 보니...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이토록 많고, 마귀가 날뛰면서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저 뒤에서 어느 작은 부인 한 분이 일어나 자기 자매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도 그곳의 사이어스 자매님을 압니다. 함께 있었지요. 의사는 이제 죽음을 맞으라며 그분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자기가 치유될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제 장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일흔 살이신데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십니다. 이 나라 곳곳에 참으로 병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곳곳에는 성령님도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은총을 입을 수만 있다면 우리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목이 아파서... 아픈 것이 아니라 목이 헐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려고 하지는 않고, 말씀을 가지고 잠시 여러분께 이야기한 다음, 약속드린 대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집회 몇 곳을 더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제 집회와 관련해서 조금 반대가... 반대가 아니라, 작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역을 하는 다른 여러 형제님들처럼 라디오나 텔레비전, 잡지 같은 집회 소식 전달 수단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이 이곳에 오십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 제가 온다고 광고된 곳이 세 군데나 됩니다. 바로 오늘만 해도 서로 다른 세 곳입니다. 제가 아는 곳만 해도 켄터키에 한 곳, 캘리포니아에 두 곳입니다. 그런데 달리 공식적으로 알릴 수단이 없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좀 어렵습니다.
혹시 켄터키주 매디슨빌 근처에서 오신 분이 여기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주에 제가 그곳에 간다고 광고가 났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와 보니 그렇게 광고를 해 놓았더군요. 에핑스라는 형제님이 그렇게 하셨는데, 그분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순전히 선의로 그러셨습니다. 제게 전화해서 잠깐 들러 자기 교인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고 저도 복을 받을 수 없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분이 전화하셨을 때 저는 무어 형제님께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바로 그날 떠나야 한다고 그분께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무어 형제님이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니, 저나 제 아내에게 알려 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다호에 갔다가 막 돌아왔는데, 집회는 이미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루이지애나에서 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 일정을 제가 직접 맡아 정하기로 했습니다. 제 집회가... 제가 좀... 모르겠습니다. 고백은 혼에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런 일들을 너무 미루어 왔습니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맡기고 되는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여러분은... 뭔가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일정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널드 부인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제가 여기서 집회할 때 아주 잘해 주신 분이 루이빌에 한 분 계십니다. 더번 형제님인데, 하루나 이틀 저녁 집회를 원하셨습니다. 이번 주 중에 아널드 부인의 어린 테디, 이름이 테디 아널드인 것 같은데, 만나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가능하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면 매디슨빌에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는 목사님 스물다섯 분에서 서른 분이 와 계셨습니다. 모두 육백에서 칠백 마일이나 달려와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으니... 제가 없었던 겁니다. 제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오해가 생기거나 그분께 전화하는 것을 소홀히 한 탓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다음 주말에는 그곳에 가려고 합니다. 그다음 5일부터 6일까지는 뉴욕주 브루클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14일, 15일, 16일에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커즈버그에 있습니다. 이 두 일정은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막 정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은 일단 명단에 올라와 있지만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다음 명절 철이 다가오면 서부 해안으로 갑니다. 거기서는 큰 강당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집회들은 고등학교 같은 곳에서 열리는 작은 집회들입니다. 서부 해안 집회는 두 도시가 함께,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가 연합해서 여는 집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피닉스 대표단에서는 로버츠 형제님이 올해 그곳에 오실 수 없기 때문에, 제가 피닉스와 마리코파 전 지역의 집회에서 그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하는 일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일어서기만 하면 마귀가 지옥의 모든 총구를 그쪽으로 겨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조금 읽고 성경을 가지고 잠깐 이야기한 다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이제 성경에서 열왕기하 2장 12절의 일부를 읽겠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보고... 외치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것의 기병들이여! 이제 본문으로... 아니, 주제로 「물려받은 겉옷」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동안 주님께서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스라엘이 그 땅을 다스리던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강대한 나라였고 군사적으로는 비교적 평온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흉내 내기가 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구약을 돌아보면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의 본보기를 언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늘날 있는 것들은 언제나 태초에 있었던 것들의 실체일 뿐입니다. 창세기에서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 가운데 창세기에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창세기가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주의가 그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된 모든 것이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참 교회도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짓 신자도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관심도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시작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다스리던 동안... 아니, 이 땅에서 순례하던 동안, 그는 그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자신을 증언할 사람을 두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딘가에 손을 얹으시고 증인으로 세우실 수 있는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러니 창세기 곧 시작부터 그렇게 해 오셨다면,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 하나님께서 손을 얹으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뿐이 아닙니다. 손을 얹으실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거두는 때, 곧 추수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씨를 심는 것이었고, 이 육천 년은 곡식이 익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씨가 다시 씨가 되었습니다. 꽃으로 돌아갔다가, 꽃에서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시작되었던 모든 큰 것들을 이제 거둘 때, 추수할 때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참 교회는 열매를 맺는 때, 곧 성령의 열매를 맺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적그리스도도 그 열매를 맺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전체 경륜이 마감되는 때에 와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지금은 사람이 살아 본 가장 위대한 때입니다. 뒤흔들리는 때입니다. 죄인들에게는 괴로운 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놀라운 때입니다. 우리가 짐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아니,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서 본향으로 돌아가 주님을 만나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위를 둘러보면 나라들이 직면한 큰 곤경과 고통이 보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밤에 경계를 맡아 감시하는 요원 가운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제는 폭탄이 떨어져도 창문을 피해 바닥에 엎드리거나 지하실로 들어가라고 사람들에게 권하지 말라는 지시가 정부에서 막 내려왔습니다. 새 폭탄은 모스크바에서 무선으로 유도하여 루이빌 4번가에, 바로 그 거리에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쏘아 올리면 안에 든 장치들이 폭발하면서 수천씩, 수천씩 올라가게 합니다. 별과 레이더로 유도하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루이빌 4번가에 정확히 떨어뜨리는 겁니다. 그곳에 떨어뜨리는 데 비행기 같은 것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쏘아 보내면 바로 거기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땅에 구덩이를 파놓는데, 그 면적이... 깊이는 백칠십오 피트이고 어느 방향으로든 십오 제곱마일에 이릅니다. 십오 제곱마일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위로 날아 올라갈 준비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할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오십 발이나 백 발을 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육십이나 팔십 분... 아니, 초 안에 모두 끝나 버릴 것입니다.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데, 그리고 모든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 그 정도면 됩니다. 루이빌과 헨리빌 사이에도, 루이빌과 바즈타운 사이에도, 그 일대에는 먼지만 잔뜩 쌓인 구덩이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남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길이 그 밖으로도 수 마일, 수 마일, 또 수 마일까지 뻗어 나가 태워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폭탄 하나가 그곳에 떨어지는 동안 다른 하나가 또 다른 곳에 떨어져 서로 맞닿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 폭탄이 얼마나 많든, 다른 무엇이 얼마나 많든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합니다. 그러니 이 피난처가... 이 안전한 곳이 없는 세상과 죄인들에게는 뒤흔들리는 때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정신이 나갔을 것 같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집 안에는 어린아이들이 가득하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집에 서서 어떤 폭탄도, 다른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는 피난처를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주 예수님께서 보호하시는 날개 아래입니다.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그것이 우리의 보호입니다. 모든 죄와 삶의 싸움과 시련이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것을 아는 이때가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때입니까.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는 본향으로 가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을 이 위대한 망대로 데려올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보기, 곧 엘리야가 다스리던 동안... 아니, 이 땅에서 순례하던 동안을 보면, 그는 위대하고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크나큰 권능으로 놀랍게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야를 흉내 내려고, 엘리야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하려고 애쓰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려는 사람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워 선지자 학교라고 불렀습니다. 모두 그 선지자 학교에 올라갔고 거기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곳의 설교자들이 모두 엘리야가 입던 것과 똑같은 옷을 입었으리라고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며 말하는 방식이며 처신하는 모습까지 그를 흉내 내려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위대한 사람이었기에 모두 똑같이 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것을 봅니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루이빌에 다녀간 뒤로 이 나라 온통 빌리 그레이엄들입니다. 거의 모두가 똑같이 흉내 내려 합니다. 머리를 똑같이 빗고, 같은 것을 입고, 목소리도 같게 내는 식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 자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때에도 아마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날수가 정해져 있음을 보시고... 미리 보시고, 누구나 그렇듯 그도 이 땅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후계자를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 일을 하실 때 하나님은 이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신학교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겨릿소로 밭을 갈며 일을 하고 부모를 봉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엘리사의... 아니, 엘리야의 후계자로 부르셨습니다. 아마 학교에 있던 많은 사람은 자기가 틀림없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엘리야가 더 이상 그 겉옷을 입지 않게 되면 자기가 입으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리에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교사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또 목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우리는 머리털 하나도 검거나 희게 할 수 없고, 염려한다고 키를 조금이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 가운데 자신의 택하심과 미리 아심으로 이런 일들을 제자리에 두십니다. 그래서 모든 바퀴가 정확히 돌아갑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믿지 않았다면 오늘 아침 저는 낙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결말이 인간의 힘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조차 한 번 언급하지 않는 4대국이나 유엔 같은 곳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낙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말이 어떻게 될지 그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여기 이 오래된 책, 하나님께서 기록해 두신 책장을 내려다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니 제가 할 일은 그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편에 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맞추십시오.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르십시오. 일이 아무리 저런 식으로 될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다른 결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을 아시고 모든 것이 그분을 찬양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용기를 줍니까! 무엇도 잘못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이것은 우리의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경입니다. 우리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거기에 믿음과 신뢰를 두고 가만히 앉아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뿐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향해 움직이고 모든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정확히 제자리로 움직여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을 아셨습니다. 누구를 택하실지도 아셨습니다.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자리를 맡을 것을 아셨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히 들어맞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며 과연 그들이 들어올까 하고 걱정합니다. 그들의 이름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들은 그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증언하고 빛을 비춥니다. 그들을 그 빛으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가 자기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져 입혀 본 뒤에... 다시 말해서, 어깨에 하나님의 겉옷을 걸치고 있던 선지자 엘리야가 내려와 농부 엘리사에게 그 옷을 걸쳐 주어 맞는지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겉옷에 맞도록 다듬어지는 데는 십 년쯤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대개 우리를 작업장에 넣고 다듬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맞도록 겉옷을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겉옷에 맞도록 엘리사를 고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맞도록 겉옷을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겉옷에 맞도록 우리를 고치십니다. 우리는 때로 겉옷을 우리에게 맞추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겉옷에 맞도록 여러분 자신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겉옷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겉옷이 우리에게 맞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경지로 이끄셔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해질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셨습니다. 곧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입니다. 우리 자신의 거룩함, 사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될 우리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주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에 의지하는 데서 완전함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땅에 보내셨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아는 한, 그 여러 해 동안 그가 받은 침례는 겉옷이 그에게 덮인 그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해에 걸쳐 하나님은 그 사람의 성품을 빚으셔서, 부름 받은 뒤 그 겉옷에 맞는 사람이 되어 주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가 지나가다가 그에게 겉옷을 던져 주고, 그들이 길갈과 다른 여러 곳을 향해 출발했을 때, 그들은 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선지자 학교로 갔습니다. 마침내 엘리야는 엘리사를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그 점을 보셨습니까? 그를 돌려보내려고 하면서 “나는...” 하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얘야, 이 길이 네게는 좀 너무 가파를지 모르겠구나. 네가 걷기에는 좀 너무 좁을지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있는 곳에서는 타협 없이 곧게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이 복음을 전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곳에서 전해지는 복음은 곧고 순수한 복음입니다.
어느 날 그가 선지자 학교를 방문하러 올라갔는데, 그들은 그에게 떠나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너무 엄격해서 우리가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곧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갈라놓는, 더 많은 타협 없는 복음 설교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온갖 경험을 갖추고 그런 사람들이었는데도, 그저 먹을 것을 구하러 사람을 내보냈다가, 그중 한 사람이 야생 덩굴을 발견하고 야생 박을 따 와서 그들의 교회라는 솥에 죽음을 끓여 넣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외쳤습니다.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그러나 두 몫을 받은 엘리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솥에 가루 한 움큼을 넣고 “이제 그대로 먹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오늘날 이것을 하나의 모형으로 보면, 수많은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 오순절 교인과 다른 온갖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통째로 내쫓고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가루 한 움큼이 더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대로 두십시오. 그 가루는 그곳 학교 건물에 있던 것으로,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 헌물용 가루였습니다. 수확한 첫 열매를 특정한 맷돌로 빻아서 가루 알갱이가 모두 똑같았습니다. 이 가루가 모두 같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가루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인 그 가루를 빻았을 때 모두 같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 가루와 음식 헌물입니다. 그들이 이 가루를 거기에 넣었을 때, 곧 죽음 속에 그리스도를 넣었을 때 생명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것이 차이를 만듭니다. 우리의 죽은 형식과 의견 차이, 교회 안의 논쟁과 그 모든 것 속에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기만 한다면, 죽음과 분열이 생명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미국에는 침례교인이 천구백만 명 있습니다. 미국에는 감리교인이 천삼백만 명 있습니다. 미국에는 루터교인이 천백만 명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인이 천만 명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어느 교단보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루 한 움큼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생명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논쟁과 학교와 신학과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길이 좀 힘들지 모르니 너는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한 번 그것을 대면했다면... 아니, 하나님의 의와 권능의 겉옷이 한 번 그 어깨에 걸쳐졌다면, 그렇게 쉽게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오늘 아침 목사님이 많은 분들이 낙심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형제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련은 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시련을 뚫고 나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산이 너무 높아 넘을 수 없고, 너무 깊어 밑으로 갈 수 없고, 너무 넓어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산을 뚫고 지나갈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시선을 두십시오. 우리를 통과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이십니다.
이제 그들이 길을 가다가 학교에 이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너는 여기 머물러라. 이곳에 자리 잡고 좋은 신학 선생이 되어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대학의 학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내려가야 한다.”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 자기가 서 있는 곳 주변에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대학 학장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목사님이 아무리 낙심시키더라도 끝까지 붙드십시오. 그분 곁에 머무르십시오.
그들은 계속해서 요르단으로 갔습니다. 강을 건넌 뒤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영의 두 몫이 제 위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몫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체험이나, 반갑게 나누는 악수나, 다른 교인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는 것만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지금 가장 좋은 것의 두 몫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한 과업에 한 사람을 세우실 때, 그에게는 세상이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두 몫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두 몫이 필요한 때가 있다면 바로 오늘입니다.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이 필요합니다. 콩과 옥수수빵도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때로는 조금 더 높은 것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큰일을 구하였구나. 그러나 내가 갈 때 네가 나를 보면 네가 구한 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동기가 하나여야 하고, 마음이 하나여야 하고, 시선이 한곳을 향해야 합니다. 약속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병들었거나 고통받고 있다면, 위대한 약속 하나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든, 이런 일이 어떻게 되고 저런 일이 어떻게 되든, 오직 약속에만 시선을 두십시오. 엘리야는 그에게 조건을 주었습니다. “내가 갈 때 네가 나를 보면 그것이 네게 임할 것이다.”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저는 때때로 제 자신을 보며 평생 얼마나 줏대 없는 해파리처럼 살아왔는지 생각합니다. 저는 기다리다가 수천의 혼을 왕국으로 이끌 기회를 놓쳤습니다. 너무나 영적인 은사에만 의존한 채 기다리면서 “하나님,”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게 보여 주시기만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환상을 보여 주시기만 한다면”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주시면, 그러고도 돌아서서는 다른 사람의 말에 넘어가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렇게 느끼는 데까지 이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믿음이며, 약속이 있으니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들, 베푸신 치유와 기적들, 심지어 내려오셔서 우리 곁에서 사진까지 찍히신 것과 같은 일들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해파리처럼 우물쭈물 서 있으니 제 자신 때문에 저도 낙심이 됩니다. 이제 약속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지옥의 모든 마귀가 거기에 총을 쏘아 댈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약속에 시선을 고정하려고 합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내가 갈 때 네가 나를 보면 네가 구하는 것을 받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것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만약 학교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그가 뒤돌아서서 “여보게들, 내가 지금 선지자 바로 뒤를 잘 따라가고 있나?”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어쩌면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선생들이 모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들이 어떤지, 누가 자기를 보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을 약속에 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느 형제님이 말한 것처럼, “어느 목사에게 말을 못 하는 딸이 둘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신유를 비판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고침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약속에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시리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 사람을 듣게 하실 수 있다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도 듣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확실한 증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약속에 둡시다. 눈도 한곳에, 귀도 한곳에, 마음도 한곳에 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깨달으면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생각을 고정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떠나갈 때 네가 나를 보면 그 약속을 받을 수 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양옆에서 무슨 소리를 지르든, 양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앞이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약속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약속에 시선을 두십시오. 지난번 밤에 찾아뵌 그 부인, 스타일러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의사는 그분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회복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말씀드리지 않고 그분의 가족에게 말씀드렸습니다.) 형제님... 그분의 사위가 제게 그 일을 물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약속에서 눈을 떼지 않으실 수 있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약속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몇 주 전의 일입니다. 여기 계신 우즈 자매님과 우즈 형제님은 이 교회에서 저희와 아주 가까운 두 친구입니다. 저는 제 친구들인 리오와 진과 함께 미시간에 있었습니다. 시카고 집회를 마치고 활과 화살로 사슴 사냥을 하려고 이틀 동안 그들의 친지들을 찾아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연락이 닿았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즈 부인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암이 얼굴을 파먹고 있대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즈 자매님이 이렇게 놀라시는 건 처음 봤어요. 울고 계세요.” 하나님께서 다리를 못 쓰던 아들을 고쳐 주시고 자매님의 결핵도 고쳐 주시고 그 밖의 일들을 해 주신 뒤로, 우즈 자매님은 줄곧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기운이 꺾이신 겁니다. 그날 밤 우리는 방에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돌아오자 우즈 부인이 “브래넘 형제님, 그리로 가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이빌에 계신 그분의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코 옆에 암이 있었는데, 의사가 잘못 건드려서 코 옆의 작은 고리 모양으로 번져 눈에서 겨우 팔분의 일 인치쯤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습니다. 뼈만 드러난 채, 암이 닥치는 대로 빠르게 파먹고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그분과 단둘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과 함께 기도하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환상을 보여 주시기만 한다면.” 우즈 부부는 밖에 앉아서 환상이 무엇을 말해 줄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곳에 있는 동안 가책을 느꼈습니다. 환상을 기다리고 있다는 데 가책을 느꼈습니다. 마치 무언가가 되짚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부르심이 아니었다. 이미 약속이 주어졌는데 무슨 환상이 필요하냐?” 그래서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내면에서 무언가가 응답했습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우즈 부인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자 그분이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보셨나요?” 저는 “정확히 무언가를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의 약속이 참되며 그분이 그 일을 하실 것이라고 알려 주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분이 하시리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채 스물네 시간이 지나기 전에 암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위에 딱지가 생겼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암은 죽지 않는 한 딱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고, 지금 그 부인은 고침을 받고 집에 계십니다. 얼마나 놀라우신 그리스도이십니까! 약속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기도를 받고 나서 돌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다시 가 보는 편이 낫겠어.” 그러지 마십시오. 약속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약속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십오 년 동안 불가능한 것을 붙들고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분명히 엘리야는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아니,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계속 가는데... 얼마 후 병거가 와서 그들을 한 사람은 이쪽으로, 다른 사람은 저쪽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들어 올려... 그가 병거에 올라타고 올라가면서, 어깨에서 겉옷을 벗어 뒤에 있는 엘리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엘리사가 자라서 그 옷에 맞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꼭 맞을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목이 간질거리는데, 제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엘리사가 이 겉옷을 주워 자기 어깨에 걸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벅찼겠습니까!
이것을 제 개인 이야기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십 년쯤 전에 바로 여기 이 강단에서 “손에 물매를 들고 앞에는 골리앗이 서 있는 전사 다윗”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알기로 어디에서도 치유 대전도 집회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신유를 얼마나 비판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존재를 만난 뒤로 제게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정신이 나가고 있다면서 그럴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여기 이 설교대에서 다윗에 대해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라는 이 군대가,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이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그냥 두겠다는 말입니까?” 어깨가 약간 굽고 곱슬머리를 한 어린 소년이 양가죽 옷을 입고 손에 물매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군대가 뒤로 물러서 있는데, 그 소년 혼자 앞으로 나갔습니다. 맞선 사람의 창은 길이가 십구 피트쯤 되었고, 그 끝에 달린 것은 몇 세겔이나 나갔습니다. 아마 날카롭게 벼린 강철이 이십 파운드는 되었을 것입니다. 십구 피트짜리 창이었고, 그 사람의 손가락은 십사 인치나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마 몸무게가 구십 파운드 정도였을 것이고, 조그만 수탉처럼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세상에,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그냥 두겠다는 말입니까?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냥 두어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아, 얼마나 용감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모두 싸우러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게 맡기십시오.” 아! 그는 말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제가 이 물매로 사자를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 물매로 곰도 죽이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제 손에 넘겨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첫 승리를 거두어 골리앗이 쓰러지자 이스라엘 온 군대가 다윗을 따라 나갔습니다. 그들은 적의 머리를 베고 이스라엘을... 아니,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그들의 땅까지 몰아붙였습니다. 궁지에 몰아넣고 죽였으며 그들의 도시와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승리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초자연적인 영역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신유는 효력이 있을 수 없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했습니다.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면 하나님의 시대도 지나간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 교회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교회를 떠나실 것입니다... 떠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아가씨들이 라듐을 다루며 붓을 찍어 시곗바늘에 라듐을 칠하고 있었습니다. 제 이 시계에도 조금 발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 아가씨가 실수로 붓을 입에 넣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수많은 해가 흐른 뒤 그 아가씨의 두개골에 현미경을 대어 보았는데, 라듐이 여전히 “부르르, 으르르, 으르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작용합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형제님, 라듐에도 그런 작용이 있다면, 끝이 없으시고 영원하시고 초자연적이시며 모든 권능을 가지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는 반드시 같은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시작하신 그대로 줄곧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권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굳센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와,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원수에게 맞서고 그 말씀이 참되다고 선언할 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큰 치유 대전도 집회들이 시작되자마자, 오럴 로버츠나 토미 힉스와 오늘날 사역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다른 여러 사람처럼 작은 교회에 물러나 있던 하나님의 사람들, 수천 명의 병사가 칼을 뽑고 나아갔습니다. 이 검은 오갈 때도, 위아래로도, 안팎으로도 베며, 생각을 분별하고 심지어 뼛속 골수에까지 이릅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자기 성경, 곧 자기 검을 뽑아 들고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를 쳐서 마침내 온 세상에 치유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주 조그만 교회들을 맡고 있던 작은 목회자들이 불이 붙고 비전을 보아, 검을 빼 들고 나아가 원수에게 맞섰습니다. 그것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업쇼 하원의원, 영국의 조지 왕, 그리고 병들고 고통받으며 누워 있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때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엘리야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모든 것이 그 약속을 받는 것이었으니, 그 약속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동기였습니다. 그의 전부였습니다.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뜻이었습니다. 모든 것, 전부, 모든 것이 그 약속을 받는 데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 일에 그다지 진지하지 않다고 믿게 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모든 동기가 “나의 치유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에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고침 받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 가운데 걷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든, 교회가 뭐라고 하든, 목사님이 뭐라고 하든,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내 마음이 오직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진전을 이룰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그가 마음을 정한 것을 보고, 받으라고... 엘리야가 엘리사가 마음을 정한 것을 보고 그에게 약속을 주었습니다. 그 약속은 “내가 갈 때 네가 나를 볼 수 있다면. 내가 떠날 때 네가 나를 볼 수 있다면”이었습니다. 이제는 엘리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는 약속을 듣고 싶어 했고, 이제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만일”이 있습니다. “내가 갈 때 네가 나를 볼 수 있다면.” 오늘 아침 여러분이 아프고 고침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을 주셨다는 것을 제가 입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패배하지 마십시오.
이제 엘리사는 선지자 엘리야의 겉옷을 두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한 정복자의 행진입니까! 정복자처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는 약속을 들었습니다. 권능을 느꼈습니다. 전사처럼 곧장 요르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모든 신자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요르단으로 가는 길을 향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자폭탄이 오게 두십시오. 어떤 식으로 되든 두십시오. 여러분은 그 옷을 입고 정복자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멘.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렇습니다. 무엇을 기억하라고요?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는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정복자가 된 듯한 심정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르단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여러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심이라는 좀이 먹어, 그 모든 속임수와 미신과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 때문에 구멍이 나서 온통 새는 다른 사람의 겉옷을 입지 마십시오. 정복자이신 그리스도의 겉옷을 입으십시오. 한때는 성령 침례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고 한때는 신유를 가르쳤지만, 이제는 그것을 부인하며 의심과 그 밖의 온갖 좀에 먹혀 버린 여러분의 교회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한 번도 싸움에서 패하지 않으신 분의 겉옷을 입으십시오. 여러분은 요르단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가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아침 많은 사람도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르단에 이르렀을 때, 그는 겉옷만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장로교에는 학교도 있고, 우리는 성경의 모든 윤리를 훤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짜인 겉옷, 곧 약속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물에 내려가고, 아주 사도적입니다. 사도적 믿음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유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들을 믿습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성경이 말씀하는 방식대로 침례를 줍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방언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필요한 것이 그것뿐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도 요르단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똑똑할 수도 있습니다. DD, 곧 신학박사 학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PhD, 곧 철학박사 학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LLD, 곧 라틴어박사 학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온갖 학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겉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 교회의 겉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나 일신교파나 삼위일체파, 무엇이든 그 겉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그저 물려받은 겉옷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교리들과 그런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었고, 교회가 그리스도인의 교회였으며, 올바른 옷을 입고 있었다 해도... 엘리사가 눈에 띄게 서 있었을 때, 강둑을 가득 메운 선지자들과 비판자들이 그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엘리야의 겉옷을 입고 걸어왔습니다. 보십시오! 다른 면에서는 제대로 훈련을 받았고, 교육도 받았고, 순종했고, 믿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가 요르단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날 우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훈련과 교육을 받은 학자들은 많습니다. 성경을 분해하여 수학처럼 정확히 다시 맞춰 놓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르치는 일에서 큰일을 할 수 있고 성경의 역사를 한순간까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옥에 불이 붙은 시각과 그 불이 꺼진 시각까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침례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침례라고 부르는 것도 받았습니다. 그 겉옷 말입니다. 모든 것을 질서정연하게 갖추어 놓았습니다. 엘리사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세상과 마주하려고 요르단으로 내려왔을 때 그는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그 일을 한 것은 엘리야의 겉옷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한 것은 엘리야의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세상에 필요한 것은 엘리야의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여러분이 방언을 하고 외치고 바닥을 뛰어다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순절의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때, 사도들의 시대에 살았던 삶과 그때의 일들이 다시 나타나게 하는 권능입니다. 물려받은 겉옷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부르심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어 주시는 기름부음이 필요했습니다. 강에 왔을 때 그는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있었지만, 기적을 행하려면 하나님께 직접 받는 아주 새로운 부르심과 하나님께 직접 받는 권능이 필요했습니다.
제 형제님,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 요구해야... 아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든 구해야 합니다. 제가 전능하시고 모든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면,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게 할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 내라고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께 구해야 합니다. 그분을 부르고, 거기에 서서 “하나님,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오신 뒤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옷을 입은 뒤에, 여러분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선 뒤에, 그때 여러분이 권능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아침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십 년 전 제가 이 강단에 서서 다윗과 골리앗을 설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저를 가로막는 것은 골리앗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 앞에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저를 가로막는 것은 믿음의 부족이며,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무언가가 제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이 작은 태버내클 앞에서 다시 외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나아와 주셔서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제게 힘을 주십시오. 무슨 일이 오가든 흔들리지 않는 결연한 마음을 주십시오. 어두워 보이든, 어떻게 보이든... 어떻게 보이든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약속은 참됩니다.”
형제님, 자매님, 언젠가는... 오늘 아침 이곳에 계신 죄인인 친구 여러분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흉내 내려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속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것을 반대해서 할 말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훌륭한 학문 교육이나 신학을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결국 엘리야가 아니었습니다. 그 강을 가른 것은 엘리야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겉옷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그것을 어깨에서 벗어 엘리야가 했던 것과 똑같이 접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 권능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어딘가 계신다는 것을 알고 그는 외쳤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때 무언가가 그 선지자에게 임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그 겉옷을 휘둘러 물을 치자,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성직자들 앞에서, 그 시대의 비판자들 앞에서, 그는 자기보다 앞서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요르단을 걸어서 건넜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엘리야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엘리야의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를 굳게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말하게 해 주는 권능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요르단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그가 요르단에 이르렀을 때... 여러분도 어느 아침이나 어느 밤에 그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요르단으로 오면서 그는 정복자처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르단에 이르자 사정이 달랐습니다. 그는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입니다. 하지만 좋은 겉옷이었고, 그는 그 옷을 입었던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았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저도 어느 아침에는 요르단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오늘 오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라이트 형제님과 자매님 댁에 갈 것입니다. 그분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은 그분들의 금혼식 날입니다. 저는 여기 교회를 나서서 그분들과 식사를 하러 갈 예정입니다. 며칠 전 “오십 년이라”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분 모두 연로하고 쇠약해지신 모습을 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 나이가 마흔일곱인데, 내가 태어나기 불과 삼 년 전에 결혼하셨구나.” 마흔일곱 살인 저는 요르단을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내려가야 합니다. 거기에 가야 합니다. 거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길에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마귀의 화살에 꿰뚫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떠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르단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곳에 이를 때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저도 물려받은 겉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옷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저는 제 옷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들자마자 자기 옷을 조각조각 찢어 내던졌습니다. 저도 그리스도를 발견했을 때 그랬습니다. 제 자신, 제 생각, 제 어리석은 것들, 사소하게 붙들던 것들을 찢어 버렸습니다. 저는 조그만 침례교 설교자였을 때 제가 거의...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찢어 버렸습니다. 그분의 겉옷을 입었습니다. 요르단에 이를 때 저는 그분의 겉옷에 싸여 있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따라오실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그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는 정복자로서 요르단을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요르단 앞에, 곧 죽음 앞에 무언가를 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건너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곳에 이르렀을 때 엘리사의 겉옷을... 엘리야의 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가 겉옷을 벗었을 때, 그... 엘리야는 주님 보시기에 매우 기쁨이 된 사람이었고, 주님은 그를 받아 주셔서 주님과 함께 있도록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겉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요르단, 곧 죽음 앞에 엘리야의 겉옷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져 요르단이 갈라졌고 그는 걸어서 건넜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도 언젠가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내놓으려고 애쓰고 싶은 마음조차 없습니다. 다만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주님은 그분을 받아 주셨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 이끌려 가셨고, 그곳에 영원히 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그분을 믿는다는 것을 주님께 내놓고 싶습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은혜로 우리에게 자신의 겉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 싸움의 날들에 이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겉옷, 곧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그분 안에 사셨던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머리를 숙인 채로 계십시오. 오늘 아침 이곳에 이 겉옷을 입지 않고 요르단으로 걸어가려 하는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을 입지 않은 분이 계신지요.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 한때 입으셨던 옷이지만, 오늘 아침 그것을 입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께 손을 들고 “사랑하는 하나님, 이 시간 제가 이제 그것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손을 드실 분...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드실 분이 또 계십니까? 꼬마야,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손을 드실 분 계십니까? 저 뒤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오늘 아침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 자신의 의와 제 생각을 버리고, 제가 누리며 살아온 쾌락과 흥청거림과 죄에 대한 생각들을 버리기 원합니다. 오늘 아침 그리스도께서 제게 그분의 겉옷을 입혀 주시기 원합니다. 그분의 겉옷이 완전한 것임을 알기에 저는 그 옷을 쓰겠습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저도 들겠습니다...” 하실 분 계십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이제 제 삶에 성령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그분의 의로 옷 입기 원합니다. 그날 그곳에 이를 때 제 자신을 내세워 ‘아시다시피 저는 누군가에게 석탄을 사 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살 수 있도록 무언가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 일이 행해짐으로써만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여, 이제 제 길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길 끝에 이르렀을 때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원합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의로우신 하늘 아버지, 일곱, 여덟, 열 분가량이 손을 드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형편을 모릅니다. 주님은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그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고, 그들 스스로 도움이 필요함을 알고 있으며, 어려운 때에 기꺼이 나아와 도움을 받으려 합니다. 이제 가까이 다가온 이 엄청난 때, 원자폭탄과 우리를 기다리는 큰 일들을 바라보며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오늘 그들 위에 손을 얹으셔서 그들의 모든 불법과 의심을 없애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자기 의라는 낡고 좀 먹은 겉옷을 벗어 던지게 해 주십시오. 거기에는 미신과 형식적인 교회 생활의 자벌레와 귀뚜라미와 좀이 구멍을 내어, 더는 버티지 못합니다. 그것을 그냥 내던지고 손을 뻗어 주 예수님의 겉옷을 붙잡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을 의지합니다. 제 자신의 의나 제 생각으로 제 몸을 감싸지 않고, 이 시간부터 주님을 의지합니다”라고 말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그들이 그것을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