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좋습니다. 이번 집회에서 이처럼 귀한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들과 베일 박사님, 그리고 저와 동행하는 레오와 진에게도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한동안 참석했던 집회 가운데 이번 집회가 가장 영적인 집회 중 하나라고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정말로... 형제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분들입니다. 그저 예의를 차리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든 제 마음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그렇게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진심으로 말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위선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쪽에 계신 동역자 목사님들께도 이번 집회에서 보여 주신 충실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주셨고, 오늘 밤에도 각자의 교회 예배를 쉬고 마지막 밤인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와 힘을 모아 주셨습니다. 형제님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처럼 충실하게,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용감히 지켜 온 이 일을 도우려고 애써 주셨으니, 지금부터 여러분의 사역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더욱 고귀해지도록 하나님의 복을 빕니다. 언젠가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기를 바랍니다. 다시 와서 여러분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아침 식사라도 함께하면서 여러분과 악수를 나눌 수 있을까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제가 다시 오면, 우리 함께 낚시를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러고 싶으십니까? 저는 낚시를 좋아합니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지만 낚싯대를 잡고 있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줄 압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와서 잠깐 낚시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충실한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마 어제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빌리인지 베일 박사님인지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문사까지도... 신문에 60달러짜리 광고인가가 실렸는데... 아니, 65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광고비를 절반으로 깎아 주어서 30몇 달러만 받았다는 것입니다. 참 좋은 신문사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편집장님이나 신문사 직원분이 이 자리에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모르고, 이 일도 최근에야 알게 되어 직접 말씀드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 대신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신문을 구독하시는 분은 짧게라도 편지를 보내셔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맙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은... 도시에 그런 신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신문사를 가진 것입니다. 많은 신문사는 애초에 광고를 실어 주지도 않고, 싣더라도 비판적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그곳은 좋은 신문사입니다. 그 일을 해 주신 분들을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이 강당, 이 농구 체육관을 사용하도록 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곳을 아머리 건물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주유소에 있는 어떤 분이 제 친구 펑크 형제님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어젯밤에 우리 동네에서 올라오셨는데, 이제 여러분 가까이에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 정부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분 말씀이, “차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서 아머리가 어디냐고 묻는지, 그분은 그저 밖에 서 있었답니다. 차를 몰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휘발유를 사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어디 어디로 가십시오... 아머리는 이쪽입니다’ 하고 알려 주었습니다. 다음 차가 들어오면 ‘아머리는 저쪽입니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하고 가곤 했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가 식사한 식당들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저희는 여기 애시 론 모텔에 묵고 있습니다. 주인은 정말 훌륭한 분,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자기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잘 대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이며 믿는 분입니다. 그런 일이 정말 많습니다. 또 베일 박사님이 계신 모텔에서는 숙박비까지 깎아 주었다든가, 뭔가를 해 주었답니다. 박사님이 묵으신 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11번 도로로 들어오다 이 아래 철길을 건너기 직전입니다. 여러분이 이처럼 잘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경비가 모두 충당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밤 저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걷었다고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역을 시작한 지 27년이 되었지만, 평생 한 번도 헌금을 걷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헌금을 걷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제퍼슨빌의 침례교 태버내클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형편이 좀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수입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처지가 된 적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 그런 적이 있지요? 그래서 아내에게 “교회에 가서 헌금을 걷어야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헌금 접시도 없었습니다. 교회를 지을 때 뒤쪽에 작은 상자 하나를 놓고 작은 표지판을 붙였는데, 거기에 “너희가 이들 곧 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내게 행한 것이니라”라고 썼습니다. 그런 식으로 건축비를 다 갚았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헌금을 주기는 했지만, 저는 젊었고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일주일에 엿새씩 육체노동을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도저히 수입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 갚아야 할 돈이 있어. 오늘 밤에는 교회에 가서 헌금을 부탁해야겠어.”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나도 가서 볼게요.” “그래요.” 우리는 교회 바로 건너편에 살았습니다. 작은 방이 두 개였고, 집세는 한 달에 6달러쯤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비쌌습니다. 우리는... 그저 조그마한 오두막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건너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에게 우리... 갚겠다고 약속한 빚이 있습니다. 가구와 몇 가지 물건값으로 거의 90달러를 빚지고 있고, 식료품값도 조금 밀려 있습니다. 제가 버는 돈은 시간당 37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좀... 오늘 밤 제 모자를 돌리겠습니다. 5센트 동전 몇 개라도 있으시면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러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 나이 드신 짐 와이즈하트 아저씨가... 저는 그분을 잊지 못합니다. 집사님 중 한 분이었는데,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제 모자를 가지러 갔습니다. 제가 보니 바로 앞에 작은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참으로 정겨운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오늘 밤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안쪽에 주머니가 달린 작은 앞치마를 두르곤 했습니다.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야 주머니에 닿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시겠지요. 그런데 그분은 정말 성도다운 분이었습니다. 성함은 웨버 부인이었습니다. 그분이 낡은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설교하면 그분은 고개를 숙인 채 앉아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곤 했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성도였습니다. 그분은 그 안으로 손을 넣어 위쪽 잠금쇠를 딸깍 열게 되어 있는 작은 지갑을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안을 더듬으며 5센트 동전들을 꺼내려 하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아, 여러분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려고 그저 농담을 해 본 것입니다.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 아니었어요.” 아, 그 가난한 할머니에게서 5센트 동전들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제 마음속에서는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찾아오시던 나이 드신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진, 머리가 길었던 라이언 형제님 기억하지요? 벤턴 하버에서 오시는 분인데,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머리카락을 뒤로 휘날리며 그 자전거를 타고 예배에 오시는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그 낡은 자전거를 제게 주셨습니다. 자전거가 그분에게서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침례교인이 하기에는 참 별난 말이지요? 하지만 그랬습니다. 그저 고장이 났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타이어를 때우고 10센트 잡화점에 내려가 두 가지 색의 페인트를 샀습니다. 20센트를 들여 페인트칠을 한 다음 5달러에 팔아서 그 빚을 갚았습니다. 결국 헌금을 걷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헌금에 관한 제 첫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헌금을 받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비는 아주 적습니다. 라디오 방송도 하지 않습니다. 작은 사무실 일을 제외하면 돈이 들어갈 만한 일이 없습니다. 사무실과 집에 드는 경비가 평균 하루에 100달러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적게 모이는 곳에도 갈 수 있습니다.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하루에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하루에 7천에서 8천 달러 정도였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형제님은 방송할 때 1분에 몇천 달러씩 들었습니다. 오럴 로버츠 형제님도 이런 작은 곳에 와서 부흥회를 열고 싶어 합니다.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참으로 좋은 형제입니다. 훌륭한 분입니다. 제가 오럴 형제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분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한쪽에 작고 낡은 천막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대편에 큰 강당을 얻어 놓고 있었는데, 그날 밤 오럴 형제님이 와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저 젊은 설교자였지요. 우리는 바깥뜰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제 기도도 들어주실까요?” 저는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든 들어주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럼 저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분의 집회 옆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런 규모의 일을 맡을 만한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 텔레비전이며 그 밖의 모든 것 말입니다. 제가 나가서 돈을 걷어야 하고, 그만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신이 나갈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도 작은 곳에 오고 싶지만... 저는 얼마 전 20명이 들어가는 곳에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경비가 많이 들지 않습니다. 제가 일하는 방식은 그저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20명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시면, 저는 세상이나 라디오 방송이나 그 무엇에도 매여 있지 않아서 못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서 부흥회를 엽니다. 그곳이 그래블 스위치든 어디든 괜찮습니다.
또 주님께서 저를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으로 보내셔서 50만 명에게 설교하게 하시려면, 언제나 경비를 대 줄 사람을 마련해 주십니다. 저는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면 모든 일이 잘됩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나 그분들과 같은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대학을 졸업했고 심리학을 4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 똑똑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할 만큼 똑똑하지 않고, 주님도 그것을 아셨습니다. 어떤 분들이 제게 무슨... 포스퀘어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좋은 분들입니다. 그곳에서 제게 박사학위를 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들, 저는 그런 것을 받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람들도 그 정도 분별은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일어나 저처럼 느릿느릿한 옛 남부 말투로 ‘히즈, 헤인트, 토트, 페치, 캐리[불분명한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도 그 정도는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저도 그걸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 만큼 지각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차피 그 학위를 받는다고 제가 설교를 더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 더 진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맙지만 저는 그저 빌리 브래넘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대로 있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학위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훌륭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적 능력이 있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적어도 문법은 잘 아는 분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저는 아주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조금 전에 제 어린 아들 조셉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정말 대단한 녀석입니다. 제가... 제 집회에 오셨던 분들 가운데, 그 아이가 태어나기 6년 전에 제가 그 아이가 오는 환상을 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그 이름이 조셉이 될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의사는 “부인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낳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태어난 아이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컷 놀림을 받았습니다. 사역자들이 사방에서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조세핀을 말씀하셨던 거겠지요.” 저는 “아닙니다. 조셉이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부인은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낳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한 명은 더 낳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4년 뒤에 아내가 다시 어머니가 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엾은 아내를 위해 저는 제 처소로 올라가 아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주님께서 방금 말씀하셨어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아버지들이 어찌나 왔다 갔다 하는지 바닥의 페인트가 다 닳을 지경인 것을 아시지요.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고, 저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간호사 한 분이 내려와 “브래넘 목사님?” 하고 불렀습니다. 저는 “예”라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7파운드 3온스의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저는 “조셉, 네가 여기 오기까지 오래 걸렸구나. 하지만 아빠는 너를 만나서 기쁘단다”라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아기를 조셉이라고 부르셨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이 아이 이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래서...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갓난아기였을 때 네 살과 여덟 살 된 어린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사라와 리브가입니다. 누나들은 아이를 깨물어 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가 하나도 없고 잇몸뿐인 것을 보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아주 재미있었던 것입니다. 이가 없으니 잇몸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도 그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요즘은 키나 몸통 너비나 거의 비슷한 녀석이 집 안을 돌아다닙니다. 여자아이들은 의자 위로, 침대 밑으로, 어디로든 올라가고 숨습니다. 그 녀석도 깨무는 법을 압니다. 이제는 다른 아이들의 잇몸이 드러나게 합니다. 조금 전에 통화했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집에 와요. 나 지렁이를 파고 있어요. 우리 낚시 가요.” 아, 갈 시간은 없겠지만 이야기는 할 수 있지요.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저 이야기하고, 제 품에 안고, 잠시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어린 조셉과 사라와 리브가는 제게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아이는 우리가 나이 들어 얻었습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이고, 아이는 두 살입니다.
브래넘 가족에게 칭찬할 것이 있다면 왕비인 제 아내, 브래넘 부인에게 돌려주십시오. 서른여덟 살인데 머리가 세었습니다. 저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여성 중 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면 아내에게 돌려야 합니다... 제가 보니 장거리 전화가 한 시간에 64통씩, 밤낮없이 울렸는데 아내는 그 전화를 받으며 버팁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저희 집으로 전화하실 때 들으시는 그 다정하고 조용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브래넘 가족의 왕비이며 제 마음의 왕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좋은 가정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좋은 가족이 고맙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집을 떠날 때면 율법과 은혜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은혜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해외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브래넘 부인, 한 가지 말하겠소. 내가 없는 동안에는 너는 나 외에 다른 남편을 두지 말지니라.” 아내도 맞받아서 “이보시오, 젊은이, 당신도 나 외에 다른 아내를 두지 말지니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가정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가족을 축복하고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 저를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작별 입맞춤을 하며 “잘 있어요, 여보”라고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디에 있든, 저는 부부의 사랑으로 이 세상 무엇보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가 아내를 그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제가 사랑하듯 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충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안식일을 얼마나 지키느냐, 고기를 먹느냐,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해결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면 그것이 다 해결해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서서 제 개인사를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도 여러분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으며, 우리가 다 하나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로 이곳에 왔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여러분도 원하시며 주님의 뜻이 된다면, 이 근처 어느 곳에 와서 천막을 세우고 6주쯤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면 사역자 모임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는 형제들을 가르치는 모임을 갖고 싶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제가 이해하는 영적인 일들에 관해서만 말입니다. 저는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형제들을 지도하며 이 영 안으로, 더 영적인 길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집회를 열며 오랫동안 머물고 싶습니다. 막 서로 알 만해지면 작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가 싫습니다. 이제 막 여러분을 잘 알기 시작했는데, 또 작별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강을 건너기 전에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 혼인 만찬이 차려지고 우리가 식탁 너머로 서로 바라볼 때가 올 것입니다. 제가 말할 것입니다. “제가 형제님을 뵌 것... 아는 것 같은데요.” “예, 저는 해리슨버그 집회에 있었지요.” 그러면 기쁨의 눈물이 우리 뺨을 타고 흐를 것입니다. 그때 왕께서 그 모든 아름다움 가운데 나오셔서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울지 말아라.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준비가 되었느니라.” 저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주님, 이 귀한 집회를 주신 것을 얼마나 감사드리고 싶은지요. 저 밖의 자동차 안에 앉아서 ‘오직 믿으라’가 들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왔다가 되돌아갔습니다. 들어올 수 없어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오 하나님, 그들의 마음에 풍성히 복을 내려 주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주님. 들어오지 못한 가엾은 병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쳐 주옵소서.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저는 그들을 대신하여 이 간구를 드립니다. 주님, 이 훌륭한 사역자들과 그들의 교파와 교단을 축복해 주시고, 교단에 속하지 않은 분들도 축복해 주옵소서. 주 하나님, 교파가 무엇이든 우리는 형제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주님의 아들 예수님 안에서 모두 하나입니다. 모든 평신도, 이 교회들의 모든 교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 이 지역 전역에 옛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 수만 명을 왕국으로 이끌어 들이게 하옵소서. 그렇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
제가 지난번 밤에 한 말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제가 떠난 뒤에 다리를 쓰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눈먼 사람들이 보며,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이 나았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며 그들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면 너희가 말한 것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산이 옮겨지도록 말입니다. 산에게 옮겨지라고 했을 때 모래 한 알만 떨어졌을지라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일은 한 숟가락만큼 떨어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수 톤이 떨어져도 여전히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평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 사람이 아직 발조차 움직일 수 없을지라도, 그는 이미 거기서 벗어나는 길에 있습니다. 그가 믿었습니다. 아픈 사람은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주님, 우리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이 헛되이 주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뜻하신 일을 이룰 것입니다. 주님, 모두가 낫게 하옵소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주님의 종에게 이 헌금을 주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저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푼도 빠짐없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하옵소서, 주님. 그들에게 두 배로 돌려주시고, 그들이 영광에 이를 때 그곳의 집에도 더해 주옵소서.
오늘 밤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성경의 책장을 펼쳤지만,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기록하신 성령님이십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 곁에 계셔 주옵소서. 오늘 밤 예배가 은혜의 절정에 이르게 하옵소서. 모든 두려움과 모든 공포와 모든 초조함, 그 모든 것이 지금 사람들의 생각에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영께서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어느 집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은혜의 절정을 허락해 주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주님. 우리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교회를 위해 구합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복된 말씀에서 오늘 밤 짧은 구절 하나를 읽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 장 전체를 읽으십시오. 서기 96년에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을 펴겠습니다. 3장 20절을 읽고자 합니다. 기도받는 줄로 제때 넘어갈 수 있도록 잠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참으로 놀라운 초대가 아닙니까? 그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녹음 끊김.] 20절에서 주님은 이 교회 시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부유하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가난하고 가련하고 비참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오늘날 그리스도교회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건물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학자들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교회가 우뚝 서 있고 그 거대한 첨탑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습니다. 50만 달러짜리 파이프 오르간과 가운을 입은 성가대가 있고, 신학교에서 최신 지식의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교육받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단에 올라가 문법 실수 하나 없이 말하며, 심리학을 적절히 활용해 자신이 전하려는 생각에 사람들의 생각을 붙들어 놓으면서 설교를 정해진 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가 가난하고 비참하며 눈멀고 벌거벗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거리에 있다면...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비참하며 벌거벗은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자기 상태를 안다면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자기가 그것을 모를 때입니다. 자기가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오히려 부유하고 옷도 잘 입었으며 더없이 좋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 마지막 날의 교회를 그렇게 묘사하신다면... 저는 이 모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은... 전 세계적으로, 교회 전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장 비참한 상태 가운데 있는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올해만 해도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얼마를 냈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볍게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자신도 선교사입니다. 그러나 참담한 것은, 연로한 어떤 어머니가 선교지의 선교사를 후원하려고 빨래판에 빨래를 문지르며 일하는데, 막상 그곳에 가 보면 선교사들은 냉방 장치가 있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면서 선교 시설 구내에서 설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데이비드 리빙스턴 같은 사람을 몇이나 만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제가 선교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로디지아 출신의 몸이 불편한 작은 청년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는 개신교계의 가장 큰 교회들 중 하나가... 제가 남로디지아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집회를 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여권이 보였습니다. 젊은 여자 세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여권을 가지고 계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이 돌아보더니 “아, 영어를 하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미국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아, 저희는 선교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우리 집 뒤뜰이나 다름없는 가까운 곳, 큰 신학교가 있는 곳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좋군요. 저는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서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제가 “이곳에 오신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2년이 다 되어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신 뒤로 몇 사람의 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들은 이곳에 오신 뒤로 몇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바로 전에, 그 청년이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브래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아프리카 저 아래, 남아프리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는 분이시군요.” 저는 “소동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선생님이 성령파 광신자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저께만 해도 순전한 이교도 3만 명이 그리스도께로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교회가 그곳에서 150년 동안 선교하여 이룬 것보다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교사... 아니, 현지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찰을 목에 걸고 팔에는 우상을 안은 채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반 시장인 시드니 스미스 씨가 저를 경마장, 호야 파크 경마장으로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15만에서 20만 명쯤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스미스 씨, 저 사람들이 목에 건 표찰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데 우상을 들고 다닙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저는 저 사람이 쓰는 송하이어를 할 수 있습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이야기를 해 보지요.” 그분은 차를 길가에 세웠습니다. 저는 “안녕하세요, 존?”이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는 자기 말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아, 예.” 저는 “그 우상은 왜 가지고 다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아,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다니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 저는 아모야를 믿습니다.” 아모야는 그들이 사용하는 말로,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힘’을 뜻합니다. “저는 아모야를 믿습니다.” 제가 “그런데 그 우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루는 사자가 우리 아버지를 쫓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이 우상을 내려놓고 작은 불을 피운 뒤 주술사가 가르쳐 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사자가 달아났습니다. 아모야가 실패하더라도 이것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들이 전한 남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가 그 정도인 것입니다. 저는 “저는 야크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크타는 ‘사냥꾼’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사자를 사냥합니다. 그 사자를 쫓아낸 것은 그 우상이 아닙니다. 불이 사자를 쫓아낸 것입니다. 그 우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그것을 들고 다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오후, 사람들은 목에 쇠사슬을 걸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 한 사람이 강단으로 이끌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말씀하셨고, 그의 형제가 목발을 짚고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바로 저런 뒤쪽에 앉아 있다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목발을 머리 위로 들고 올라왔습니다. 그는 몇 년 전에 누런 염소를 타다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때 제가 이 사람에 관한 환상을 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춤을 추라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옷도 입지 않은 채 그 아래에 있었습니다. 아,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두 손과 두 발로 걸었고, 사람들은 그를 개처럼 끌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 가엾은 사람에게 다가가 쇠사슬을 잡고 그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십만... 십오만 명쯤 되는 사람들 앞에서 목격된 일입니다. 모두들 그가 치유되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기서 일어섰습니다. 제정신으로 일어나 눈물이 검은 배 위로 떨어지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순전한 이교도 3만 명이 우상을 땅에 던져 깨뜨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전 키와니스 모임에서, 제게 미셔너리 침례교 목사 안수를 주셨던 데이비스 박사님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성령파 광신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박사님이 성령파 광신자라고 부르시는 것, 광신주의라고 부르시는 것이 5분 만에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혼이, 여러분의 모든 신학과 지난 150년 동안 해 오신 전도지 배포로 얻은 혼보다 더 많습니다.” 벌거벗고 가련하고 눈멀었으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아,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저는 그 젊은 남녀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설거지를 해 드리고 아기를 돌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곳에 내려가, 선교 시설 구내에 내려가서 현지인들이 춤을 출 때 몇 마디 하고 전도지나 나누어 줍니다. 오른손과 왼손도 구분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무지한 현지인이 전도지를 보고 무엇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참담하게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교회를 세우라”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가서 학교를 세우라”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가서 신학교를 세우라”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문을 두드리며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십니다. 여러분과 이야기하실 일이 있으십니다. 시대를 거쳐 위대한 사람들도 그렇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위대한 카이사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한 평민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평민이 문을 열었는데, 위대하고 막강한 카이사르가 직접 자기 문 앞에 와서 영광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아, 그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위대하신 카이사르여, 들어오십시오! 제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원하시면 폐하의 것입니다.”
또 지금은 죽은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한 보병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하급 병사, 우리가 말하는 풋내기 신병이 문으로 가서 열었는데, 그곳에 독일 총통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는 차렷 자세로 독일식 경례를 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총통 각하, 제 집에 와 주시니 영광입니다. 아, 위대한 독일의 총통 각하, 누추한 제 집으로 들어오십시오. 각하의 종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원하시면 가지셔도 좋습니다.” 환영받을 때는 그렇게 초대를 받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집에 갔는데 “어서 들어오세요,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하시면 저도 들어가고 싶어질 것입니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가로누워 쉬고 싶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냉장고에 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싶으면 가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환영해 주시면 저는 여러분의 한 식구처럼 느낄 것입니다. 제가 환영받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보십시오. 무엇이 그렇게 만듭니까? 누가 두드리느... 문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 두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해리슨버그에 와서 이 도시에서 가장 열렬한 민주당원의 집을 찾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맞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자기 집 문 앞에 찾아오는 영예는 어느 훌륭한 민주당원에게나 영광일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인물입니다.
또 얼마 전 이 나라를 방문한 영국 여왕은 어떻습니까? 자매님, 여왕이 자매님 집에 찾아왔다고 합시다. 여왕이 문을 두드려서 자매님이 열고 “누구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영국 여왕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신민도 아니고, 그분이 여러분과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그분은 중요한 여성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여왕입니다. 누구나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신문마다 그 소식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영국 여왕이 자신을 낮추어 어느 가난한 사람의 집 문을 두드렸다고 텔레비전에도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께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 여왕 폐하,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시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작은 장신구 같은 것이 있다고 합시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물건이라고 해도, 여왕이 달라고 하면 드릴 것입니다. 여왕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분이 제 집이나 여러분의 집에 오셨으니, 그렇게 드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큰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 누가 예수님보다 더 중요합니까? 그리고 누가 예수님보다 더 많이 문전박대를 당합니까? 여왕은 무엇인가 원할지 모릅니다. 히틀러도 무엇인가 원할지 모릅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여러분에게서 무엇인가 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여러분에게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도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많이 문전박대를 당하는 분은 없습니다. 그분은 거절당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여왕의 얼굴 앞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면... 또 히틀러의 그 하급 병사가 히틀러의 얼굴 앞에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면, 히틀러는 그를 처형했을 것입니다. 여왕은 여러분을 모욕했을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라면 여러분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거절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것입니다. 아,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면 사람들은 그분을 거절하면서 자기가 무슨 잘난 일이라도 하는 줄 압니다. 사랑스러운 예수님을 자기 문 앞에서 돌려보내는 것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실 수 있는 분 가운데 영원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분이십니다. 아이젠하워가 여러분 집에 들어온다면 고작 질문을 하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고 혼을 구원하시거나,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오십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거절당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저는 여러 해 전에 예수님을 제 마음에 모셔 들였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니 기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들어가면... 예수님께서 마음에 들어오시면 그것이 첫 번째 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집 안에는... 마음속에는 그 밖에도 작은 문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작은 비밀 벽장이 있고, 이쪽에는 작은 방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들어오셔도 좋지만, 저 문은 절대로 열지 마십시오. 이쪽 문에도 가지 마십시오. 여기에는 서 계셔도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환영받는다고 느끼겠습니까? 여러분 교인 중 일부가 바로 그렇게 합니다. 그저 주님을 들어오게만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의 구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러분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인이란 다스리는 분입니다. 주님은 단지 구주만이 아니라 여러분을 다스리는 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구주로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다스리고,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과... 여러분의 모든 부분을 다스리는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래전에 주님을 모셔 들인 어떤 사람이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모셔 들여 여러분을 다스리는 분, 여러분의 주인이 되시게 하십시오.
이제 우리의 마음속을 조금 들여다봅시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곳에 작은 문 하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작은 문입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사생활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주님, 제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사생활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저는 이 아래에서 수요일 오후마다 카드놀이를 하는 모임에 속해 있습니다. 제 작은 친목 모임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신다면, 다시는 그 사람 설교를 들으러 가지 않겠습니다.” 사생활이라니요!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참 많습니다. 내 사생활 말입니다. “제가 머리를 남자처럼 하고 싶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 사생활입니다. 설교자가 그 일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면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 내 사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왜곡된 생명이고, 그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겉모습을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죽음과 출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그 영을 정죄하셨습니다.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자기 존재의 주인이자 통치자가 되시게 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사생활을 건드리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작은 문이 있습니다. 시간이 몇 분밖에 없으니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 ‘이기심’이라는 작은 문입니다.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겠습니다.” 아, 그런 동기라니요. “이것을 약속해 주시면 모셔 들이겠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는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에 다니게 해 주시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 더 높아지게 해 주신다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이용합니까? 그렇게 이용하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다음에는 ‘편견’이라는 작은 문이 있습니다. 아, 사람들은 그것을 얼마나 감추어 두고 싶어 하는지요.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여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여자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기 때문에, 나는 길에서 만나도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안 합니다. 날마다 나와서 빨래를 널지만, 저 못돼먹은 여자에게는 말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아, 이런!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길 아래에 사는 설교자가 있는데, 너는 그 사람에게 한 번도 말을 건네지 않았구나. 지난번에 그 사람이 길을 걸어올 때도 피하면서 말을 건네지 않았구나.” “주님, 이것 보십시오. 그 문제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제 교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저는 48년 동안 브래넘 가족의 일원이었지만, 그들이 제게 가족에 가입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브래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무도... “저는 제 신앙 때문에 편견이 조금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신앙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편견이 조금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저 아래 작은 선교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옷을 좀 더 잘 입거든요.”
사람들은 작은 선교 예배당을 얼마나 조롱하고 싶어 하는지요. “아, 저 사람들은 저 아래 선교 예배당에 다니는 무리야.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더라고.”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 학생이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노모는 자기 아들이 사역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되는 법을 배우도록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세탁 일을 했는데, 어느 날 폐렴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양쪽 폐에 모두 울혈이 있습니다. 부르실 가족이 있으면 오시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아들에게 연락했습니다. “대기하고 계십시오. 내일 아침까지 어머니 열이 내리지 않으면 오셔야 합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청년은 기다렸지만 더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아들아, 나는 아주 괜찮단다.” 한 1년 뒤 청년이 집을 찾았습니다.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춘 다음 말했습니다. “어머니, 줄곧 여쭙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어요. 폐렴으로 그렇게 심하게 앓으셨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다 나으셨잖아요. 의사가 무슨 약을 주었나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의사는 나를 포기했단다.”
청년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으셨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할 이야기가 있단다. 저 아래 골목 옆에 작은 가게가 있던 자리 알지?” “예.” “거기에 자기들을 순복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들어왔단다. 어느 날 밤 그곳에서 기도회를 열고 있었는데, 내가 아주 심하게 앓던 바로 그날 밤이었어. 그들에게 여기 위에 아픈 여자가 있다는 말씀이 왔다더구나.” “그중 한 여자분이 올라와서 내가 신유를 믿느냐고 물었어. 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든 믿는다고 했지. 그분이 말했단다. ‘우리 목사님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좋겠습니까? 그럼 제가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물론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올라와서 내게 기름을 발라 주셨어. 그리고 모두 침대 둘레에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했단다. 아들아,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나았어.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어. 아,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자꾸나.” 이런 방부제가 주입된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아, 어머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어머니도 그런 건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어머니는 “아니다, 아들아. 나는 그렇지 않단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치유라는 것은 없어요. 우리는 신학...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묘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신학교에서 신유 같은 것은 없다고 배웠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내게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구나. 나는 벌써 나았으니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의사를 찾아갔더니 의사도 놀라더구나. 그러더니 ‘다른 의사에게 가셨습니까?’ 하고 물었어.” 어머니는 “예”라고 했습니다. “어느 의사에게 가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예수 의사 선생님께요.” 그러자 그 의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분은 어디에서 진료하시나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들은 그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들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런 것은 절대로 믿지 마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 설교자가 어디를 읽었는지 아니? 마가복음 16장이었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가 말했습니다. “아, 어머니, 그 사람들은 무식한 무리예요. 그 설교자들은 아는 게 별로 없어요.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어요. 우리는 대학에서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영감을 받은 말씀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말했습니다. “아, 어머니, 행동까지 그 사람들처럼 하시네요.” 어머니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머니,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방금 생각이 나서 그런다. 아들아, 네가 대학에서 3년 동안 배웠다는 것이 마가복음 16의 9장부터는 영감받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에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영감받지 않은 성경 말씀으로도 나를 고치실 수 있다면, 참으로 영감받은 말씀으로는 무슨 일을 하실 수 있겠니?” 실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벌거벗었으면서도 부유하다고 말합니다. 그 작은 사적인 부분,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내려가고 싶지 않은 그것입니다. 거만한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옛 신앙은 턱시도를 입은 사람이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껴안고 “형제님!”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비단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무명옷을 입은 여성을 껴안고 “자매님!”이라고 하게 합니다. 분명히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으로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우리 모두는 같은 자리에 섭니다. 물론입니다. 아, 제가 살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작은 문이... 한번 들여다봅시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문입니다. F-a-i-t-h,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되시면, 주님의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실제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회의 교인이면서도 신유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문간에만 모셔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작은 믿음의 문에 서실 수 있다면 주님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 돌아서서 성경을 부인하고 자기 글을 부인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이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들은 그 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기 전에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눈이라는 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멀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안약을 사서 네 눈에 발라 볼 수 있게 하라.” 여러분의 눈이 한번 열리기만 한다면,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설교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신유 같은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눈멀게 해 보시오.” 저는 “당신은 이미 눈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도 바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 주님께서 당신의 아비에게 하셨던 말씀을 저도 그대로 하겠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한 그 사람은 육체의 눈이 멀었잖소.” 저는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도단에 내려갔을 때, 다음 날 아침 게하시가 깨어나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시리아의 온 군대가 우리를 둘러쌌습니다.’” 그 늙은 선지자가 잠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물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저 군대를 보십시오. 도시 전체가 포위되었습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자들보다 더 많으니라.” “아니, 선생님과 저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요.”
그때 늙은 선지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청년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여셨을 때, 그 늙은 선지자 둘레에 불의 천사들이 서 있었고, 산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으며 불 병거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얼마나 쉬운지 알겠느냐? 내가 저기 나가서 저 사람들을 모두 쳐서 눈멀게 하겠다.” 그리고 나가서 그들을 쳐 눈멀게 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엘리야를 찾고 있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예, 우리가 찾는 사람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들은 눈멀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수염이 긴 노인장, 엘리야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오.” “그 사람을 찾고 싶으냐?” “예.” 그가 “따라오너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지만 눈멀어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나를 따라오너라. 그가 있는 바로 그곳으로 데려가겠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가 어디에 매복해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 한가운데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 내가 엘리야다. 너희 눈을 떠라.” 눈멀었으면서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교회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눈멀었으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제 할아버지는 나이 든 사냥꾼이었습니다. 덫을 놓고 미국너구리를 사냥하곤 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10센트 잡화점에서 어린 아미시 소녀에게 작은 미국너구리 꼬리 하나를 샀습니다. 제 조셉에게 가져다주어 작은 자전거에 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미국너구리를 잡아 지방을 녹여 어떤 기름을 만드셨고, 어머니는 그것을 깡통에 담아 두셨습니다.
우리는 널빤지 지붕을 얹은 낡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널빤지 지붕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밤에 눈이 오면 얼굴에 눈이 떨어지지 않도록 천막천을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그 낡은 널빤지 틈으로 별들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독한 감기에 걸리면 눈에까지 그 기운이 내려앉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침대로 오시면 우리 눈은 온통 눈곱으로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눈곱이라고 불렀습니다. 눈에 온통 눈곱이 끼었는데, 눈에 감기가 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려가 할아버지의 미국너구리 기름을 가져와 우리 눈에 바르고 그 기름으로 문질러 주셨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몇 분이 지나면 눈곱이 다 없어지고 우리가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십니까? 너무 차가워져서 영적인 감기에 걸렸습니다. 여러분의 눈을 열려면 미국너구리 기름보다 더한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냉랭함을 없애고 눈을 열어 주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하려면 성령의 기름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여시게 하십시오. 그분은 성령님, 삼위일체의 셋째 위격이십니다. 오늘 밤 이곳에 오셔서 하나님의 안약을 여러분의 눈에 발라 주시려 합니다. 여러분의 눈을 뜨십시오. 아십니까? 미국 사람들은 즐겁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곱슬머리에 무슨 차림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게 꾸민 작은 할리우드 스타가 나와서 여흥을 펼쳐 주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치료제가 없다고 믿는 구식 설교자 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미국의 이런 할리우드식 복음 전도에 정말 신물이 납니다. 다이아몬드 반지에,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들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단을 피우고, 어디선가 북을 두드리며 펄쩍펄쩍 뛰는 그런 복음 전도 말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옛 사도 바울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성령께서 교회로 돌아오셔야 하며, 사람들의 눈을 열어 줄 참으로 좋은 성령의 안약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런데 진짜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너무 눈멀어서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자비롭게 대해 주셨는데, 이제 우리는 그것을 흔한 일로 여깁니다. 우리가 온통 냉랭하고 무관심한데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십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감동을 얻고 싶어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바다에서 돌아오는 늙은 뱃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아온 노련한 선원이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어디로 가십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감동을 얻으려고 바다로 내려갑니다. 아, 짭짤한 바닷바람 냄새를 맡고 싶습니다. 큰 하얀 소금물 파도를 일으키는 거대한 바다를 보고, 푸른 바닷물에 비치는 하늘을 보고 싶습니다. 갈매기 울음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아, 바다에 가면 분명히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평생 바다를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바다를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늙은 뱃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바다에서 태어나 일곱 바다를 항해했지만, 바다에 감동을 줄 만한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왜 그랬습니까? 너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오순절 교회와 다른 교회들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과 선하심을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와 인도, 그런 나라들에서는 하나님께서 처음 어떤 일을 행하시기만 해도, 아, 수천 명씩 그리스도께로 나아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날들은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이것이 이곳을 떠나 그 땅들로 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루이지애나에 게이브라는 나이 든 흑인이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게이브라고 불렀지만 본명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도무지 교회와 성경에 맞추어 꾸준히 살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었고, 늘 남편 게이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목사님도 좋은 분이었습니다. 흑인 목사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성령을 받은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냥꾼이었고 게이브도 사냥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게이브는 사격 솜씨가 너무 형편없어서 아무것도 맞히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과 게이브가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날 사냥하면서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저녁에 돌아오기 시작할 때는 새와 토끼와 온갖 사냥감으로 짐이 가득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익숙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앞서 걷는 목사님은 겨우 발걸음을 옮겼고, 게이브는 사냥감을 잔뜩 짊어지고 뒤에서 걸었습니다. 얼마 뒤 목사님은 어깨 위에 그의 커다란 손이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게이브가 “목사님!” 하고 부르자 목사님이 멈추었습니다. 게이브는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게이브,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제가 저 회개석에 나와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그리고 그 회개석에서 일어나면, 교회 안에 있는 제 거룩한 아내 곁에 제 자리를 잡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곳의 교인으로 있겠습니다.” 목사님은 잠깐 멈추었다가 말했습니다. “게이브, 그 말을 들으니 참 기쁘네. 내가 자네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이 교회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아는가. 우리가 자네를 돌보며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었나. 자네는 교회에 앉아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들었지. 자네는... [녹음 끊김.]”
그렇기 때문에 메시지가 그렇게 강하고 핵심을 곧바로 찌르는 것입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리라.” 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얼마나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까. 주 하나님께서는 밤마다 이곳에 오셔서 주 예수님의 부활로 자신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이루시고 행하십니다. 이제는 성령의 모습으로 미국 전역에서 같은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들어와 앉아서 껌을 씹으며 “예, 꽤 괜찮군요,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합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그 정도입니다. “아,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를 너무 심하게 꾸짖으면 기다렸다가 오럴 로버츠 집회에 가겠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나무라면 빌리 그레이엄 집회로 가면 되지요.” 그저 즐기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얼마나 선하게 대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모습을 나타내실 의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자비가 충만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대하든 다시 문 앞에 와서 또 두드리십니다. 아, 오늘 밤 주님께서 오시게 합시다. 오늘 밤 우리 마음의 문을 한 번 더 두드리시게 합시다. 그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예, 주 예수님, 제가 이제 믿습니다”라고 합시다. 잠깐 고개를 숙입시다. 이제 엄숙한 마음으로, 깊이 기도하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지금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기 전에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 생애에서 여러분을 다시 뵙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아프리카와 세계 여러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의 형제로 이곳에 있는 동안, 이번 집회 중 어느 때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이야, 내가 네 방에 들어가게 해 다오.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해 다오. 만약 내가 이미 들어가 있다면, 이제 내가 어디든 갈 수 있게 해 다오. 그 모든 무관심과 교만을 내게 맡겨라. 그 사생활을 내게 맡겨라. 네 믿음의 문에 내가 서게 해 다오. 그러면 네가 이런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신비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여러분은 말합니다. “글쎄요,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안약을 여러분의 눈에 발라 주시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채로, 얼마나 많은 분이 손을 들어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님, 제 눈에 안약을 발라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싶습니다.”
그곳에 앉아 훌쩍이며 우시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눈물을 닦으며 앉아 계신 자매님, 예,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누가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하시겠습니까? 여기 뒤에 계신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쪽에 계신 형제님, 여기 작은 형제님, 자매님, 그리고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쪽, 맨 뒤에 계신 분, 예,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내가... 앞에 서서.” 위층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바로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여기 아래에 앉아 있는 청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으리라. 식탁에 앉아 내 모든 신비를 그에게 알려 주리라.”
하루 종일 주님과 함께 걸었던 데오빌로와 그 일행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으로 들이실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온종일 그들을 가르치고 설교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여러분을 안에 모아 두신 것처럼, 주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비로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보았습니다. 바로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눈이 열렸고,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즉시 돌아가 “참으로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눈이 열려 지금이 마지막 날이며 이 시대의 끝이라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방인들을 다루고 계십니다. 이번이 마지막 차례가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심판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청년, 인생이 한창인 십 대 소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얘야, 너는 지금껏 택한 길 가운데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있다. 아들이 손을 들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면 엄마와 아빠가 정말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언젠가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죽음이 소매를 타고 올라오고, 몸이 차가워질 때가 올 것입니다. 친구들이 모두 주위에 서 있어도 그때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자동차 사고로 피를 흘리며 죽어 갈 수도 있고, 차 밑에 깔릴 수도 있고, 불길에 몸이 타들어 갈 수도 있으며, 물에 빠지거나 무언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예수님께 손을 들었지.” 그것은 여러분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용감한 일입니다. 마치기 전에 또 누가 계십니까? 다른 분은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에 또 계십니까?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손을 바로 드십시오. 저 위층에 계신... 예, 자매님, 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뒤쪽 청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쪽에 계신 여러분, 이 뒤쪽, 저 뒤쪽, 위층 바깥쪽에 계신... 아니, 위층이 아니라 현관 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여러분이 저 문 뒤에 있어서 제게는 저 작은 창 하나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은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오늘 밤 이곳의 문 앞에 서 계셨습니다. 50명 이상, 어쩌면 75명쯤 되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자기 문을 두드리셨다는 것을 알고, 주님을 영접하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게 오는 모든 자를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주님, 이들은 마음의 문 앞에 서 계신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의 열매입니다. 이번 부흥회에서 제가 이곳에서 맡은 순서는 이제 끝나 갑니다. 하나님, 이들이 손을 들어서 너무 기쁩니다. 이제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위대하신 성령께서 이들이 이곳 어딘가에 있는 교회, 성경을 가르치는 좋은 교회, 자신들이 선택한 교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게 하옵소서. “목사님, 제가 지난번 밤 집회에 갔습니다. 그리스도께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제게 침례를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저는 곧고 좁은 길을 걸으며 이웃과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섬기고 싶습니다.” 오 하나님, 그 목사님은 그 말을 들으면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 그 목사님은 주님의 아이를 잘 돌볼 줄 믿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여관에 데려가서 “무엇이든 부족하면 내가 다시 올 때 갚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저는 정말 이 집회를 떠나기가 싫습니다. 오늘 밤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번 집회에는 제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제가 다시 뵙지 못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1년 뒤에 다시 와도 여러분 중에는 이곳에 계시지 않을 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말입니다. 저도 1년 뒤에는 여기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저는 제 간증을 가지고 심판대에서 여러분 모두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간증을 해서 제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오늘 밤 집에서 어린 조셉과 놀아 주거나, 제 교회에서 그저 서서 설교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 건물 안에 계신 분들 중 제 집회에 처음 오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다음 날 밤의 군중이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어젯밤에는 수천 명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들이 한꺼번에 다 온다면 어딘가에 큰 천막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제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으셨군요. 여러분, 저는 제가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을 드셨던 사랑하는 여러분 한 분 한 분, 즉시 좋은 목사님을 찾아가십시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이곳에는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 회개하도록 초청할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저는 제단 앞으로 나오는 일을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믿는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더해졌다”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사람이 앞으로 나와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일어서서 공개적으로 간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렇게 할 공간이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는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말을 믿었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어느 교회든 찾아가 그분들과 악수하고... 목사님의 손을 잡고, 그 교회의 교인이 되어 침례를 받고 싶다고 말씀하십시오.
이제 기도받는 줄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시작했습니다. 12분이 있지만 전부 다 쓰지는 않겠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저는 이 세상에 신유의 치유자인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고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지요? 물론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또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맞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은 병자를 고치거나 어떤 일을 하실 때 아버지께서 먼저 기적을 통해, 환상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 자신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그 말은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라는 뜻입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이것은 영감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 민족에게 자신을 어떻게 알리셨습니까?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적이라고 우리가 이해하는 일 가운데 처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적이라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니, 나중에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늙은 어부였습니다. 그의 형제 안드레가 그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잠깐만 잘 들으십시오.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안드레가 그를 예수님께 데려왔고, 그가 예수님 앞에 이르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나 게바라 불리리라.” 또 “너는 요나의 아들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기적을 경험한 그 사람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왕국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름조차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자가 아니라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가 사는 도시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열의에 넘쳐 산을 돌아 30마일쯤 가서 나다나엘이라는 친구를 찾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는 것은 그가 구원받았다는 좋은 표적입니다. 그가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 나다나엘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분을 와서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이 확고한 히브리인은 옷을 털면서 말했습니다. “잠깐만, 빌립. 그 도시에서, 그 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나? 그 성령파 광신자들이라고 하든 무엇이라고 하든 말이야. 거기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나?” 그러자 빌립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했습니다. “와서 보게. 자네가 판단하게.”
그런 다음 길을 돌아서 오면서 빌립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일 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30마일이나 되었으므로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꼬박 하루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계신 기도받는 줄로 왔을 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진정으로 확고한 히브리인이 다가옵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앞에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요한복음 1장에 있습니다. 처음 오신 여러분 중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가 예수님을 보며 물었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본 적이 없으십니다. 제 옷차림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고 아랍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정통 신앙을 지키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며,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습니까? 저를 한 번도 보지 않으셨잖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맞습니까?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제 이 유대인의 태도를 보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은 참으로 선택받은 유대인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선택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이 선택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와서 조금 가르쳐야겠군요. 선택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1장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 아심으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누가 구원받을지 모두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뒤 불쌍한 처지가 되어 “누군가가 나를 불쌍히 여겨서 ‘저분이 죽으셨으니 나도 가야겠군’ 하고 말하겠지”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저라도 사무실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올 줄 아셨던 사람들을 부르려고 예수님을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하지 않으시다면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하셨다면, 이 땅에 생겨날 모든 파리와 모든 벼룩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이 무한하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시다는 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무한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이 땅에 존재했던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 전에 알지 못하셨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아십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지만, 미리 아심으로 누가 멸망하고 누가 멸망하지 않을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아니, 로마서에서 그 일을 말하며 이렇게 한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둘 다 선하고 거룩한 부모를 둔 이 두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선택이 참되게 서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읽어 본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런데 선택을 믿을 수 없다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아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지만, 미리 아심으로 아십니다. 단지 “이 사람은 구원하고 저 사람은 잃어버리겠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누가 그럴지를 미리 아십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심에 따라 예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마지막으로 구원받을 사람들까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들이 말입니다. 그리고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이제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려왔고, 나다나엘이 와서 예수님을 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오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유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영생을 얻도록 선택받은 참된 유대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러나 주위에는 학자들도 많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저자는 바알세붑이다. 점쟁이다.” 그분이 바알세붑이라고 불리셨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보십시오. 그들은 알고... 그는 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이 일을 행하실 때, 그것을 대적하는 말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렇게 하심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자신을 어떻게 알리셨습니까? 인류는 세 부류뿐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입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는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실 때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돌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여리고로 곧장 내려가지 않고 산을 돌아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 앉아 계시는데 한 여자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 여자가 매춘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에게는 남편이 여섯 있었습니다. 여자가 나와서 물을 길으려고 물통을 내리려 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납니다. 여기에는 분리하는 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내게 마실 물을 구했으리라.”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여자와 예루살렘의 산에서 드리는 경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여자의 영을 파악하실 때까지 대화를 이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입니다.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옳게 말하였도다. 네게 다섯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이제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저 사람은 점쟁이야”라고 했습니까?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러자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주님은 금하셨습니다... 그 기적을 이방인에게는 단 한 번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의 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일은 행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방인들의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어떤 상황에서 행하신 방식이 있다면, 같은 상황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때에도 처음과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 잘못 행하신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를 고쳐 주신 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 자리에 불려 오실 때에도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고치신 것이 잘못이 됩니다. 사람을 차별하시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에게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셨고, 참된 유대인은 믿었으나 다른 사람은 믿지 않았다면, 또 사마리아인에게도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셨다면,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라면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돌아가서... 여러분 학자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런 일이 행해진 적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지금이 그날입니다. 이것이 미국에 오는 마지막 방문입니다. 자비를 거절한 뒤에는 심판만 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한 여자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그분께 손을 댈 수만 있다면 나으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데 모두 그분을 안거나 악수를 하거나 무엇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신체적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옷은 헐렁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주님의 옷 한 부분에 손을 대고 돌아가 앉거나 서 있거나, 어쨌든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자가 “제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제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약해졌도다.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모든 무리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지만 내가 약해졌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여자를 찾을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고쳤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을 아는 분은 “아멘” 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이”, 여기 쓰인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상 질서’를 뜻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 주님께서 동일하시다면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포도나무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에 어떤 열매가 맺히느냐는, 그 열매의 종류는... 줄기에서 얻는 생명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호박 줄기라면 호박이 열립니다.
여러분이 죄의 줄기에 연결되어 있다면 죄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교회라는 줄기라면 교회주의를 맺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면 그리스도의 일을 맺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이제 주님의 손은 제 손과 여러분의 손뿐이며, 주님의 눈은 제 눈과 여러분의 눈뿐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늘 밤 떠나면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이 미국의 때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2년 전에 미국에 다시는 부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책에 기록해 두고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십시오. 미국은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짓고 믿지 않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이 위선자 무리와 함께 미국을 그냥 넘어가게 두신다면, 공의로우시려면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일으켜 그들을 멸망시키신 것에 대해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을 쳐서 눈멀게 했는데도 그들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렸습니다. 왜곡된 영입니다. 오늘 밤 미국도 같은 상태로 서 있습니다. 불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주목해 주십시오. 그들을 그곳에서 나오게 하려고 찾아온 천사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잠깐 곁들여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왔을 때 사라는 뒤쪽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천사는 장막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사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그리스도였음을 압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그때 그분은 아브라함을 보고 계셨습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장막 안에 있던 사라가 [브래넘 형제님이 킥킥 웃는다] 웃었습니다. 그분의 등 뒤에서 말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었느냐?”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소돔이 불타기 전에 전해진 천사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도 불을 맞게 될 것입니다. 불이 내리기 전에 같은 천사가 같은 표적과 이적을 가지고...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확인해 보십시오. 교회에 마지막 경고를 전하는 천사라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이제 이것을 이해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분명하게 설명했습니까? 아시겠지요. 같은 천사는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분이 계십니다. 같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오늘 밤 이곳에서 같은 일을 행하고 계시는데 미국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독수리들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에 기름을 발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이 강단에서 갈릴리를 걸으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데오빌로와 그 일행처럼 집으로 돌아가며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제가 아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나머지 예배를 주님께 맡깁니다. 이제 저기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주님,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주님, 제가 그들에게 그토록 엄하게 대하려 했던 것은 그들이 엄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경고하는 것입니다, 주님. 다만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이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다만 경고를 내놓으며, 지금이 미국의 때,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임을 이해하게 해 주옵소서. “서둘러라!” 롯이 말했습니다... 아니, 천사가 롯에게 말했습니다. “나오너라. 속히 나오너라. 네가 먼저 나오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오늘날 천사의 경고도 그것입니다. 같은 천사가 같은 일을 행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허락하옵소서, 주님. 그들의 마음을 두드려 주시고 눈을 열어 주셔서 오늘 밤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기에 손수건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제 손수건에 기름을 발라 주세요”라고 하십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일이라면 무엇이든 저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증언해 주시겠지만,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손수건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갔습니다. 저는 바울이 성경의 기본 진리에 아주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가 어디서 그것을 배웠는지 아십니까? 그 여자, 수넴 여자의 일이 있을 때, 그가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이 지팡이를 가져다가 아기 위에 놓아라”라고 했습니다. 게하시는 그가 손댄 것에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자도 똑같이 믿기만 하면 말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갔고, 그들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손수건을 내놓지 못했는데 한 장을 원하시면, 제퍼슨빌에 있는 제 사무실로 연락하십시오. 우편요금까지 부담하여 완전히 무료로 보내 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매달 수천 장을 전 세계로 보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간증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떠나기 전에 이 손수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 하나님,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지시를 따르려다가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 있었고, 양옆에는 산과 광야가 있었으며, 파라오의 군대가 뒤에서 몰아붙였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향해 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기록자는 주님의 눈이 불기둥을 통해 내려다보시자 홍해가 겁을 먹고 벽처럼 일어섰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주 하나님, 이제 사람들의 믿음의 표시로 이 손수건들을 보내오니, 하나님의 눈이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를 통해 내려다보시기를 바랍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위에 이 작은 표시가 놓이는 것을 보실 때, 마귀 곧 질병이 떠나가고 환자는 건강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게 하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주님. 이 목적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수건들을 보냅니다. 아멘.
좋습니다. 기도 카드 Y-1번부터 100번입니까? Y-1번부터 100번이군요. 그동안 여기저기 여러 번호에서 시작했으니, 이번에는 그냥 1번부터 시작합시다. 한 번에 아주 적은 사람만 줄에 설 수 있으니, 이 작은 통로가 찰 때까지 한 분씩 부른 다음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모든 분이 자리를 지키며 최대한 경건하게 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제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18분 정도밖에 없습니다. Y-1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생긴 작은 카드입니다. 청년들이 내려와 카드를 모두 뒤섞은 다음,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한 장씩 나누어 줍니다. 그런 다음 그날 밤 어느 번호에서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을 이곳에 올라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믿기 시작하십시오. 여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그 대제사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드려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주 하나님, 저 사람이 제게 진실을 말했다면, 제게는 기도 카드가 없지만 저 사람이 돌아서서 주님께서 그때 하셨던 것처럼 제게도 같은 일을 말해 주게 하옵소서. 저는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 보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어젯밤에는 기도받는 줄을 세우면서 기도 카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이곳에 계셨던 분들 중 기도 카드가 없는 사람들만 받았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똑같습니다. 이것은 단지 유지하려는... 누군가 이곳에 올라오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누가 오는지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진행되고, 경기장처럼 서로 올라타며 몰려들지 않습니다. 먼저 올라오려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카드를 주고 줄을 서게 해야 했습니다. Y-1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누구든 그 카드를 가진 분, 기도 카드 Y입니다. 맞습니까? 아니면 B라고 하셨습니까? V요. V. 그렇다면 V-1번인가 봅니다. V-1번인 모양입니다. 기도 카드 V를 가진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빅토리’ 할 때의 V입니다. 아, 예, 물론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V입니다.
그렇다면 V-1번부터 시작합시다.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V-1번이요? 좋습니다. 바로 여기 계시군요. 좋습니다, 형제님. V-2번은요? V-2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저 뒤에 어떤 분이 계시군요. 자매님, 바로 저기 계신 여자분입니까? V-2번이요? 좋습니다. 이리로 오시겠습니까? V-3번. 지금 건물 전체에 골고루 계십니다. 카드를 건물 어디에서든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V-3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희가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흔들어 주십시오... 저 뒤에 계십니까? 감사합니다, 자매님. 잠깐 이리로 오십시오. 이제 바로 여기에 줄을 서겠습니다. V-4번은요? 누가 4번을 가지고 계십니까? 좋습니다, 자매님. 바로 이리로 오십시오. 5번은요? 옆 사람의 카드를 살펴보십시오. 귀가 들리지 않거나 일어날 수 없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5번은요? V-6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바로 여기 계시군요. 7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여기 계시군요. 좋습니다. 8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V-8번입니다. 8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V-8번. 저 뒤에 계십니까?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9번은요? 9번? V-9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10번은요? 좋습니다. 이제 앞으로 오십시오. 10번, 빨리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10번. 11번? 좋습니다. 12번? 12번? 제가 보았나요? 순서를 놓치시겠습니다. 12번, 좋습니다, 형제님. 13, 14, 15, 16, 17, 18, 19, 20번. 상관없습니다. 다른 분들도 서고 싶으시면 저는 계속 불러도 괜찮습니다. 몇 분 더 불러 드릴까요? 말씀만 하십시오. 상관없습니다. 다만 너무 오래 서 계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20번? 21번? 2, 3... [녹음 끊김.] 우리는 아마 태어난 곳도 멀리 떨어져 있고 태어난 해도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 만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신다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러 가서 그를 데려왔을 때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달리 말하면 정직하고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는 곧바로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는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일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 우리 앞에 성경 두 권이 놓여 있고,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손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처음 만났습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생각하면 그들이 받은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나다나엘처럼 생각하면 그가 받은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영원히 분명해져야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신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직 한 번도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된 지 12년쯤 되었습니다. 저는 생후 18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환상을 보았습니다. 처음 환상을 보았을 때 어머니에게 우리가 인디애나주 뉴올버니 근처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수백 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가 살아온 평생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여기 강단에서 일어나는 이것만 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함께 다니는 동역자 베일 박사님과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시고 큰 환상들을 지켜보십시오. 지금 이것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사를 향해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셨지만, 여자는 믿음으로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권능을 끌어냈습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바로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떠나가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오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때는 약해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그분을 들어 올리셔서 “이렇게 될 것이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로 예수님께서 약해지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한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댔을 때, 그 여자는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기도하고 지켜봅시다. 형제님, 우리가 이 땅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땅에서 처음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번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 지금 오신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형제님도 이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저는 형제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 하나님께서 참인지 아닌지 형제님 자신이 알 수 있는 어떤 일을 제게 밝혀 주신다면...
제가 “형제님은 아프십니다”라고 말한다면, 형제님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추측일 수 있지만, 그래도 사실일 수는 있습니다. 또 제가 “형제님은 나으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여전히 제 말만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실인지 아닌지 형제님 자신이 아는 어떤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아시겠지요? 그것은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다른 길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회중 여러분, 제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리고 주님의 천사 사진을 보신 분들이라면, 그분이 이곳에 임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지금 임해 계신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곳의 모든 영을 제 통제 아래 둡니다. 이분은 신경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제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맞습니까, 형제님?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것은 추측이 아니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무엇이었습니다. 그분의 목소리였다고 믿으십니까?
보십시오. 제가 이분과 더 이야기할수록 더 많은 것이 말씀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분과 조금 더 이야기하면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더 확실해지겠습니까? 제가 무엇을 말했는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길은 이 녹음테이프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분이 어떤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분과 조금만 더 이야기해 봅시다. 믿는 분인 것 같습니다. 이제 이분과 이야기하고 그분이 판단하시게 합시다. 이분은 지금 눈을 감고 서 계십니다. 저를 향해 눈을 뜬 적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보고 계십니다. 예, 이분이 보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십니다. 신경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분을 불안하게 하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분이 죽음 직전에 있습니다.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더 젊은 남자입니다. 아, 아들입니다. 그 아들은 아주 심각한 상태입니다. 폐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폐에 암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 앞에 계신 이분은 설교자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오셨습니다. 산을 넘어, 아니면 무언가를 지나 오... 웨스트버지니아주 찰스턴이라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죽어 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도를 받으려고 응답을 구하며 이곳에 오셨습니다. ‘영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형제님, 구하신 것을 받으셨다고 믿으십니까? 집으로 돌아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저기 계신 분들, 기도 카드가 없고 이 줄에 서지 않을 여러분도 이제 이쪽을 바라보며 “주님, 저도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건물 안 어디에 계시든 모두 그렇게 하십시오.
자매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 하나님께서 이곳에 서셔서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분께서 제게 밝혀 주신다면... 지금 이것은 우물가의 여자,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장면입니다. 보십시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처음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또 사실인지 아닌지 자매님 자신이 알 수 있는 어떤 일을 제게 밝혀 주신다면, 형제인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은 그리스도교 신자이십니다. 자매님의 영이 반갑게 맞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심을 압니다. 이분은 극심한 신경과민과 쇠약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이 쇠약은 수술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 수술은 여성 생식샘에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술한 자리에서 아직도 분비물이 나옵니다. 사실입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끝났습니다, 자매님. 나으실 것입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고쳤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아멘.
오시겠습니까? 이제 경건하게 계십시오. 그저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것입니까? 이 집회에 오신 적은 있으시군요. 하지만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요? 모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주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자매님 마음속의 비밀이나, 사실인지 아닌지 자매님이 알 수 있는 어떤 것을 밝혀 주시면, 그것이 맞는지 아실 것입니다. 목사님, 목사님께는 방광 질환과 선 질환이 있고, 그곳에 앉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바로 저기 붉은색으로 보이는 셔츠에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앉아 계신 분입니다. 다 끝났습니다. 목사님의 믿음이 목사님을 낫게 했습니다. 그분은 무엇에 손을 대었습니까?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에 안약을 발라 주고 계십니까? 눈이 열리고 있습니까? 여기 있는 여러분의 형제가 그 일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은사이며, 그저 자신을 성령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여기 서 있는 자매님은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가 그것은 신장결석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자매님이 나을 것을 믿으십시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 넘어져서 갈비뼈 몇 대가 부러졌습니다. 자매님의 삶은 숨길 수 없습니다. 자매님을 고치는 일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자매님은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다. 엘크턴이라는 도시 근처에 사십니다. 그레이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젊은 자매님, 믿으십니까?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자매님이 그분 앞에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자매님의 형제인 제가 이런 느낌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켜보시면,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 강단에 올라올 때 그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보십시오. 제게는 여러분이 사진에서 보시는 그 빛이 보입니다. 그 빛이 바로 이 여자분 둘레에 있습니다. 젊은 자매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형제인 제가 곁에 있다고 해서 이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요? 지금 자매님 주위에 참으로 다정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바로 그 빛이 자매님 둘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이곳에 서 계십니다. 맞습니다. 따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따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피부병입니다. 이제 집으로 가셔서 지금 들고 있는 그 손을 따님 위에 얹으십시오. 따님은 나을 것입니다. 그 병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을 모두 아십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이 도시 밖에서 오셨군요. 한 50마일쯤 떨어진 곳입니다. 치질이 있습니다. 탈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광이 내려앉아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가셔서 나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를 전에 한 번 본 적은 있지만, 제가 당신을 모른다는 것은 아시지요. 누구신지 모릅니다. 저는 누구신지 모릅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관절염도 나을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은 월턴입니다. 이름은 릴리입니다. 이제 돌아서서 집으로 가십시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로 돌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게 대해 주셨는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여러분은 믿고 계십니까?
방금 저 뒤에 있는 여자분에게 무언가 임했습니다. 빛이 이 여자분에게서 저 여자분에게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도시가 떠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저 멀리 뒤에 앉아 계신 그분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오셨습니다. 자매님은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아들은 모텔에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심장병이 있습니다. 그를 리치먼드로 데려가십시오. 그가 나을 것입니다. 믿으시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말입니다. 이분은 누구에게 손을 대었습니까? 이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대제사장께 손을 대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눈을 닦고 있는 한 여자분이 보입니다. 어디선가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곳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다. 체스터라는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름은 릴리언 부시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고치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자매님, 믿으십니까?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자매님은 자신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두 사람입니다. 그들은 어디선가 바다나 큰 길이 있는 곳 근처에 삽니다... 그렇습니다. 대서양입니다. 버지니아주 노퍽이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밝혀 주시면, 제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믿고 그분께서 자매님의 간구를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으시겠습니까? 한 사람에게는 폐에 종양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뇌에 암이 있습니다. 뇌에 암이 있는 사람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으십니까? 믿으신 그대로 될 것입니다.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믿고 계십니까? 이제 다음 분을 데려오십시오. 지금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보십시오. 이따금 여기 어딘가에서 조금씩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숨길 수 없습니다. 텔레파시라고 생각하십니까? 텔레파시가 아닙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제정신을 가지고 텔레파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 이 자매님을 보십시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자매님, 제 손에 손을 대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자매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밝혀 주시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이 판단하십시오. 저는 이쪽을 보고 그분 쪽은 보지 않겠습니다. 이 여자분은 부인병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사실이라면 제 손에서 손을 떼고 들어 보십시오. 이제 돌아가십시오. 치유받으셨습니다. 텔레파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만두십시오. 그런 생각을 믿지 마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그건 추측이었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제 손에 손을 대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매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여자가 “예”라고 말한다.] 그러면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십시오. 위장병이 떠났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얹기만 해도 나으실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좋습니다. 형제님, 오십시오. 형제님께도 그대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시라고, 그동안 앓던 신경성 소화성 궤양이 사라졌다고 말한다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그대로 돌아가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당뇨병이 떠나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대로 돌아가셔서 나으십시오.
관절염이 떠나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그렇게 믿고자 하신다면, 바로 저 계단으로 내려가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 병이 떠나고 건강해지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합시다.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실제로는 심장병이 아닙니다. 위장병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허리 질환을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곧바로 강단에서 내려가시면서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아, 여러분 모두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강단에서 내려가십시오. 그 여자분을 잠깐 그곳에 있게 두십시오. 그분을 이끌어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분에게는 관절염이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을 찬양하며 저쪽으로 돌아가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나아서 집으로 가십시오. 이제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하십시오. 가십시오. 괜찮아질 것입니다. 형제님도 같은 병이 있었으니, 그분과 함께 그대로 내려가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관절염이 사라졌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심장병입니다. 그런 병이 있기에는 아주 젊으십니다. 강단에서 내려가십시오. 이제 그 병이 떠났습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시다. 믿으십니까? 잠깐만요. 바로 여기 끝에 앉아 계신 방광 질환이 있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낫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바로 이 아래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고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집으로 가십시오. 손수건을 입에 대고 계신 분입니다. 나으십시오. 할렐루야! 바로 여기 줄 끝에 계신 분에게 신경성 질환과 부비동 질환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저 뒤 세 번째 분, 이 좌석 줄 끝에 앉아 계신 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나아서 집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그분의 종이고 여러분에게 호의를 얻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모두 고치셨습니다. 1,900년 전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일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제 여러분이 믿으시면 제가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나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잠깐 고개를 숙이십시오. 제가 하는 말을 여러분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도록 그대로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회중이 브래넘 형제님을 따라 한 구절씩 반복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주님의 종인 제가 저의 죄들을 고백합니다. 오늘부터 참되고 충실한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요한 고비마다 하셨던 것처럼 이 땅에 천사들을 보내셨음을 믿습니다. 노아의 날들과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하던 날들, 주 예수님 자신이 계시던 때,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제 저의 모든 불신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죄와 질병의 빚을 값없이 갚아 주셨음을 믿습니다. 주님을 저의 구주로 받아들이며,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밤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가 치유받은 것을 간증하겠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마귀가 더 이상 저를 지배할 힘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치유받았음을 믿습니다.
이제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계속 고개를 숙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기도입니다. 진심이라면 조용히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이제 제가 보고 있는 것처럼 위대하신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내려앉으시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바로 여기 서 계신 그분입니다. 제 말을 믿으신다면, 지금 건물 안 곳곳에서 사람들이 치유받고 있습니다. 저는 위선자가 아닙니다. 속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치유받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다시는 불신하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죄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가서 다시는 불신하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영존하는 생명의 창시자,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고백을 들으셨습니다. 주 하나님, 제 보잘것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을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1,900년 전 주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이들을 고치셨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이 진실을 증언해 주옵소서. 주님은 모든 약속을 지키십니다.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든 지키십니다.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인 곳이면 어디든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면...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약속을 지키셨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님, 참으로 저는 믿습니다. 이들의 형제로서, 이들이 믿으며 주님을 자신의 치유자와 구주로 받아들였다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도 들으셨습니다.
주님, 이제 이들이 완전히 온전해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불신입니다. 사탄이 이들을 붙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줄에 서지 않았어”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 줄이 무슨 상관입니까? 주님께서 그 줄에 서셨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십니다.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골고다까지 피의 줄을 만드신 그분, 바로 그 줄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피의 줄입니다. 하나님, 이제 제게 믿음을 주옵소서. 제게 권능을 주옵소서. 주님, 제가 기도할 때 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사람들을 위해 마귀를 물리쳐 주옵소서. 사탄아, 너는 속이는 자일 뿐이다. 너는 더 이상 어떤 그리스도인도 붙들어 놓을 법적 권리가 없다. 이들은 기도 가운데 자기 죄를 고백했다. 더 이상 네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 곧 여호와의 소유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곳에 계셔서 자신이 살아 계심을 그분의 자녀들, 그분의 유업인 백성에게 입증하고 계신다. 너는 더 이상 이들을 붙들 수 없다. 내가 네게 엄히 명한다. 이 사람들을 붙들고 있는 의심의 마귀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한다. 이 사람들 속에서 나와서 이들을 놓아주어라. 나와라,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졌다. 여기서 밤마다 네 정체가 드러났다. 너는 거짓말하며 속이는 마귀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맞선다. 이 사람들이 나을 수 있도록 그들 속에서 나와라. 이제 치유받았다고 믿는 분은 모두 일어나 크게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이 일어설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