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저는 좀 말이 긴 설교자인 것 같습니다. 교육도 받지 못해서, 어떤 분들에게는 설교자답게 들리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설교자라고 자처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분의 타이어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게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가 있다고 느끼며,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제가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세상에 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그 메시지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는 배신자가 되고 여러분에게는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말하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른 사람, 그것이 위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비록 우리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정직한 남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참된 것을 마음으로부터 말하는 사람들이 되고자 합니다.
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었는지, 이곳 라마다에서 그리스도인의... 아니, 실례했습니다. 성탄 메시지를 전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여기였는지 피닉스였는지, 「왜 작은 베들레헴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이곳에서 「우리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라는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그런 ‘왜?’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이 잠시 참아 주시고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신다면 제 성탄 메시지를 전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성탄절 뒤에 또 성탄절이 있다면, 다음 성탄절에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상에 함께 앉게 될 때까지, 이번이 우리가 함께 앉는 마지막 성탄절일 수도 있습니다. 그 상은 이런 상이 아니라, 이 길 끝에서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가 그분과 새롭게 성만찬을 먹고 마실 때의 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 앉아 듣는 마지막 성탄 메시지인 것처럼, 마음 깊이 신실한 자세로 임합시다.
오늘 저녁에는 좀 색다른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색다른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은 색다른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평범한 방법이 아니라, 색다른 방법, 색다른 때, 색다른 광경 가운데 일하십니다. 그분은 평범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이것을... 주님의 뜻이라면 「왜 목자여야 했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제 말씀을 대하기에 앞서, 저는 말씀이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지난주인지 지지난주인지 피닉스에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이 땅의 존재들, 곧 사람들이 이 건물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에 있어서 우리의 육안과 오감으로는 포착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이는 그 어떤 동작도 영원히 기록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제가 서 있을 수도... 혹은 어떤 사람이 호주에 있고, 여기 텔레비전 화면이 있다면,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을 깜빡이는 것, 심지어 입은 옷의 색깔까지도 여기 벽에 비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프리카나 호주,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시겠죠? 에테르파가 순환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누구도 그것을 정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은 어떤 장치들을 통해 이것을 끌어들여 실제로 볼 수 있게 하고, 벽에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것이 아담이 이곳에 있을 때에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앉아 있을 때에도 텔레비전은 있었습니다. 젊은 사제 마르틴 루터가 성만찬의 떡을 바닥에 내던지며 “이것은 코셔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했을 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있었지만 우리가 이제야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저녁 우리 가운데 하나님과 천사들,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지금의 텔레비전처럼 실제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만큼 흔한 일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성경에 한 말씀을 더하거나 거기서 한 말씀을 빼면, 생명책에서 그의 몫이 제거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읽기에 앞서 머리를 숙입시다. 참으로 엄숙합니다! 육체에 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그것을 계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지음받았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그 흙을 향해 머리를 숙인 채, 저는... 성탄절을 앞둔 이 엄숙한 순간에, 여기 계신 분 중 자신이 참으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느끼며 이 기도에서 기억되기를 바라는 분이 계시다면, (머리를 들지 마시고) 그저 하나님께 손을 들어 “주님, 이번 성탄절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별 하나나 원자 하나나 분자 하나도 있기 전, 처음부터 계셨던 분이시여. 주님은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만드셨고,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주님, 오늘 저녁 우리에게 함께 모여 성령의 경고와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 일들을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도, 이 땅 위에도 주님의 말씀을 해석하려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로이 해석할 것이 아니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늘 저녁 성령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몫을 주시어, 주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기를 갈망하는 우리 마음의 배고픔을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부적합하고, 부정하고, 합당하지 못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가장 완전한 삶을 사셨고 이 땅 위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사람이셨던 그 아이, 우리 부정한 죄인들을 깨끗하게 하고 아버지와의 관계 안으로 이끌어 주시려고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신 그분께서, 오늘 저녁 그분의 성령으로 (말씀의 선포를 통해) 우리에게 그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 오늘날 이 땅에는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치료에 사용한 것 중 가장 좋은 약이 있고, 가장 좋은 약과 가장 좋은 병원들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과학이 그토록 위대한 발견들을 이루었는데도 세상이 일찍이 알지 못한 만큼 질병이 많습니다. 세상이 일찍이 알지 못한 만큼 죄와 불신이 많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의사여, 오늘 저녁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가운데 있는 병든 사람들을 치유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영, 참된 성탄의 영을 주십시오. 오늘날... 이교 의식과 숭배의 대상이 된 성탄 나무, 산타클로스라는 사람에 대한 꾸며 낸 이야기, 부활절 토끼, 그리고 상업 세계가 돈벌이에 이용해 온 온갖 풍조를, 하나님, 다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말씀 되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함께 성경을 펴서 누가복음 2장을 읽겠습니다.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마이크 소리가 뒤섞여 들리지는 않습니까? 뒤에서도 잘 들리십니까? 들리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2장입니다. 그 당시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이 조세 등록을 하게 하였는데 (이 조세 등록은 처음 알려졌으며...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였더라.) 모든 사람들이 조세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지방으로 가매 요셉도 갈릴리에서 나사렛이라는 도시로, 유대로...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도시로 올라갔으니 (이는 그가 다윗의 집과 혈통에 속하였기 때문이더라.) 자기의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조세 등록을 하려 하였는데 그녀가 아이를 배어 배가 불렀더라. 일이 이러하여 그녀가 거기 있을 때에 그녀가 해산할 날들이 차매 그녀가 자기 맏아들을 낳아 싸매는 천으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더라. 바로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 거하며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라,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오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더라. 그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져오노라. 이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라. 싸매는 천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너희가 볼 터이니라. 갑자기 거기에... 갑자기 거기에... 그 천사와 함께... 하늘 군대의 무리가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들어가니 목자들이 서로 이르되, 이제 우리가...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일 곧 일어난 이 일을 보자, 하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발견하니라. 그들이 아기를 보고 이 아이에 대하여 자기들에게 말해진 그 말을 널리 알리니 그것을 들은 자들은 다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그 일들을 이상히 여겼으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깊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일러 준 대로 자기들이 듣고 본 그 모든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며 돌아가니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은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것은... 왜 이 위대한 사건이 목자들에게 계시되었을까요? 우리에게는 좀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여기 적어 둔 성경 구절들과 몇 가지 메모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넘겨 가며 제가 아는 데까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오늘 저녁 주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우리의 ‘왜?’라는 의문들을 없애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한 번쯤, 왜 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건이 목자들에게 계시되었는지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왜 그 시대의 신학자들이 아니라 목자들에게 계시되었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듣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부자들을 지나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왔을까요? 또 왜 학식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지나쳐, 비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왔을까요? 여기에 몇 가지 ‘왜?’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잘 보십시오. 그 아기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두 해 전 이곳에서 살펴보았듯이, 베들레헴을 히브리어로 풀면 ‘하나님의 빵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다른 어느 곳으로도 오실 수 없었다는 것을 성경으로 입증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라합과 그녀의 남편이 세웠습니다. 라합은 창녀였는데,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를 점령한 뒤에 그 군대의 한 장군이 그녀에게 구혼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처지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믿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수아가 각 사람이 거할 땅을 나눌 때...
그 히브리 어머니들이 아기들을 낳는 일에 관해, 언젠가 투산에서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진통으로 신음하며 아기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이름이 약속의 땅에서 그 아기, 그 지파의 위치를 정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서로 꼭 들어맞습니다. 들어맞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각이 말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은 모두 서로 들어맞습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였는지 지지난주였는지 피닉스에서 가르쳤듯이, 그분은 생명의 빵이셨습니다. 생명의 빵이시므로 ‘하나님의 빵집’ 외에 다른 곳으로는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제 여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베들레헴에는 회당이 있었고,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 베들레헴에 살았습니다. 위대한 왕이며 목자였던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 이새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 오벳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도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바로 그 거대한 대성당들의 그늘 아래에서 태어나십니다. 그 사람들이 훈련을 받았고 그 오랜 세월 메시아를 기다려 왔다면, 사천 년 동안 메시아가 오시리라고 예언되어 왔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대성당의 그늘에서 태어나셨는데, 왜 그 위대한 메시지, 최초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저 산속까지 거슬러 올라가 배우지도, 훈련받지도 못한 목자들 무리를 찾아가야 했을까요? 그리고 목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지혜롭고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목자들에게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어딘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가 있고, 이제 왜 그랬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답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답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메시아는 이미 그 도시에 계셨고, 그 도시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대제사장... 큰 제사장들과 신학자들, 지혜로운 사람들과 훈련받은 사람들이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그 거대한 대성당들 바로 곁에서 말입니다. 그분은 바로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천사들은 그... 유대 언덕으로 나가, 배우지도 훈련받지도 못하고 교양도 없으며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갔을까요? 메시지를 계시하고, 그들을 보내 그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그런 임무에는 가장 부적합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제 생각이 어떤지 아십니까? 별로 대단한 생각은 아닐지 몰라도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메시지가 그렇게 왔을 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아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배운 것의 구미에 맞지 않았습니다. 달랐습니다. 그분은 이런 모습이실 것이라고 그들이 배우고 믿어 온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적 이해와 반대였습니다. 그들의 모든 훈련과 학문이 제쳐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아신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여기 계셨고, 누군가는 그것을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그런 것들에 뒤얽히지 않은 사람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 방식에 너무 굳어져서 아무것도,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돌이키게 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무리보다, 배우지 못한 무리에게 메시지를 더 쉽게 전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온전한 신실함과 사랑으로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저녁 똑같이 행하셔서, 이 세대를 위해 약속된 말씀을 이 세대에 사는 우리에게 보내신다면, 우리의 신학자들과 교육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도 그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메시지를 거절하지 않을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천사들이 와서... 천사들이 와서 그렇게 낮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거기에는 이 가난하고 글도 모르는 목자들보다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훨씬 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목자는 누구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양에 관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학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자를 쪼개는 법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학문도 필요 없었습니다. 자기 양만 알면 되었고, 그가 알아야 할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지혜이시며 모든 지혜의 샘과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아니, 그런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 일을 알도록 잘 훈련받은 학자들은 모두 지나쳐 가셨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를 말해 줍니다. 그들은 잘못된 분야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땅의 모든 중요한 사람들을 지나쳐 가셨습니다. 중요한 사람들, 위대한 선생들, 대제사장 가야바, 그 밖의 많은 위인들, 이스라엘의 모든 대단한 학자들, 모든 교파와 모든 자랑하는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지나쳐 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보십시오. 지극히 높은 하늘이 이 땅에서 가장 비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존귀하게 하려고 서둘러 옵니다.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이 땅의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려고 내려오셨습니다. 그 사이의 모든 사람들을 지나쳐 평범한 목자들에게 자신을 알리시고, 이 평범한 목자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메시지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위대한 사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를 생각할 수도 있고, 지나간 시대들에 있었던 선지자들과 위대한 제사장들 등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학자들과 왕들, 권력자들과 군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그분은 모든 메시지 중 가장 위대한 메시지를 가지고 오십니다.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메시아가 지금 여기 계신다!” 아시겠죠? 그것을 알리기 위해 훈련받은 모든 사람들을 지나쳐 비천한 목자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성직자, 모든 교회 사람, 모든 선생, 모든 신학 교육, 들인 모든 돈, 모든 교회와 교리와 교파를 다 지나쳐 가셨습니다! 그들이 모든... 모든 선교사에게 쏟아부은 모든 교육, 모든 개종 활동, 모든 교인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그들을 지나쳐 갔습니다. 이상합니다! 왜일까요? 아시겠죠?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그런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장소였습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메시지가 어디에 있었는지 보십시오. 누구도 그 메시지가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할, 가장 뜻밖의 장소에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주 예수님의 참된 메시지를 찾는다면, 뜻밖의 무리 가운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위대하고 교양 높은 세상과 교회가 보기에... 오, 이단자들의 무리라고 여길 그런 곳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곳에서 그분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가장 뜻밖의 장소, 그리고 말하는 데 가장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왔습니다. 목자들은 양을 부르는 것 외에는 말하는 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에게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속된 말씀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땅의 모든 고귀한 사람들을 지나쳐 갔습니다. 모든 고귀한 사람들을 지나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훌륭한 신학박사 학위와 심리학 학위, 높은 교육과 거대한 대성당 등으로 치장한 모든 고귀한 사람들을 다 지나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 무한한 지혜가 그렇게 하셔서, 일찍이 없었던 가장 위대한 메시지, “메시아가 지금 이 땅에 계신다.”라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지혜를 아시는 하나님께로부터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지혜와 모든 학교 교육,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제쳐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깊이 새겨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제가 이 말을 계속 반복합니다.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고,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앞서 나아가도록 그 모든 것을 지나쳐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하여 무언가를 만드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고 요한에 대해 말할 수도 있습니다. 멈추고 엘리야에 대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그저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뿐입니다. 지난 시대들의 선지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취하여... 교회의 예법과 가르침을 지나쳐...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하여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취하여 그렇게 하심으로 그분의 지혜와 신성을 보여 주십니다.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그분은 그저 흙덩이를 취하여 그것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흙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취하여 무언가를 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배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위대한 성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잊어야 했다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모든 학교 교육과 모든 가르침 등이 오히려 그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침내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그분을 믿기 위해 받았던 바로 그 교육이 도리어 그분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원수가 되었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역사가 때때로 되풀이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 바로 곁에서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 내가 그때 살았더라면...”이라고 합니다. 자, 그때 여러분이 어떻게 했을지 알고 싶다면 지금 여러분의 상태를 보십시오. 그러면 그때 어떻게 했을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가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도록 훈련받았지만, 정작 그 말씀이 바로 눈앞에서 입증되자 그들은 입증된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입증하시고, 행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또 행하시겠다고 입증하시자, 그들은 도리어 이분을 “악한 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일로 그들 모두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받은 교육 때문에, 그들은 자기 시대를 위해 육신이 된 바로 그 말씀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선생들에게 자기 학교에서 받았던 바로 그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오늘날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선생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아니, 우리의 선생들보다 우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날 우리처럼 서로 다른 조직이 996개나 있지 않았습니다. 세 개쯤 있었습니다. 그 세 개, 내려가 보면 세 개였는데, 그 셋 중 어느 곳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임을 보여 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똑같이 할 것입니다. 사람은... 의도는 좋습니다. 언제나 의도는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자세를 바꾸지 않으며, 자기 방식을 크게 바꾸지도 않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그분을 찬양하고, 앞으로 행하실 일을 늘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면서, 정작 지금 행하고 계신 일은 무시합니다! 아시겠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고, 늘 그래 왔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계신 성경을 읽는 여러분은 이것이 말씀에 따른 이야기임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고, 앞으로 행하실 일을 말하면서, 지금 행하고 계신 일은 무시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습성입니다.
그 선생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제 제 의견입니다만, 그들이 말씀을 해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믿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분의 메시지가 그들의 종교적 틀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말씀을 해석하여 메시아가 이런 식으로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방식대로는, 메시아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고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말씀을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해석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715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선지자가 “처녀가 수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자기 딸이 그 여인이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그것은 700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는 언제 그것을 행하실지, 어떻게 행하실지 그분의 말씀을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은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이사야에서도, 아마 28장 18절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요엘서 2장 28절에서도, 마지막 날들, 곧 마지막 이천 년 동안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행하실 일에 관하여 이사야는 “내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이 백성에게 말하리니, 이것이 안식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지나쳐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상이 토한 것으로 가득하고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가 오실 당시의 예루살렘과 그 시대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면, 오늘날의 모습도 똑같습니다. 그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면, 그분은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친히 해석하실 책임이 있으십니다. 그분이 말씀을 입증하시는 것이 곧 그분 자신의 해석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의 메시아의 메시지를 입증하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실지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오셨을 때...
동방의 지혜자들이 자신들이 있던 바빌론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다가 장엄한 별을 보았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느 관측소에서라도 그 별을 보았다는 역사 기록은 어디에도 단 한 조각도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시에는 별들로 시간을 재기까지 했으며, 별을 연구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그 별을 보았다는 역사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들은 그런 것을 찾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지혜자들은 야곱에게서 별이 하나 떠오르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때로부터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전통은 우리의 교회들처럼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여기 나가 보면 지혜자들이 아기에게 경배하러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평원을 지나 티그리스강을 건너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이 년 뒤였습니다. 그들은 갓난아기가 아니라 두 살쯤 된 어린아이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같은 때에 헤롯이 왜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였겠습니까? 메시아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이 지혜자들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 별은 그들을 세계 종교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별은 (그들을 인도하던 초자연적인 것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를 오가던 이 훌륭한 사람들, 멋진 천을 걸친 낙타들을 거느린 부유한 사람들 등이... 거리를 오가며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노라.” 목자들의 메시지가 전해진 지 이 년이 지났는데도, 그 위대한 종교의 수도는 여전히 답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모든 교파의 우두머리에게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 일로 산헤드린이 소란해졌고, 그들은 서기관들을 불러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미가 선지자가 말한 기록을 읽었습니다. “베들레헴아, 네가 유다의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아니하냐? (가장 작도다.) 그러나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리라.” 성경이 읽히고, 그들 눈앞에서 계속 입증되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랬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시대를 위해 약속된 성경 말씀이 나타난다면, 그들이 받아들일지 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다시는 설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지혜는 사람의 지혜를 너무나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사람을 작아지게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하게 될 지경에 이르지만,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할 만큼 마음이 크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말씀이 참되며 자신이 약속하신 바로 그 일을 행하고 계심을 아무리 입증하셔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 주장을 고수합니다. 사람은 자기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자기 지혜에 맞게 오지 않으면 “글쎄,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라고 합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제 이 모든 일이 얼마나 꼭 들어맞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목자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었겠습니까! 천사들이 내려와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목자들 무리에게 말하러 왔습니다. 여러분이 목자와 이야기하거나 한동안 함께 지내는 기회를 가져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으시다면, 잠시 후에 할 말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목자는 양들과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 지내서 웃는 것까지 양과 같고 (매애 하고 웁니다), 말하는 것도 양과 같으며, 냄새까지 양 냄새가 납니다. 그렇습니다. 양들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자기 양들뿐입니다.
이제 입증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목자들, 비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목자가 갓 태어난 양에 관한 메시지를 받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어울리는 일입니까! 그것은 목자 외에 누구에게도 올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집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양은 집이나 분홍색으로 꾸민 병실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외양간이나 들에서 태어납니다. 그분께서 갈보리로 이끌려 가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양은 도살장으로 가는 통로를 억지로 걷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도살장에는 양을 이끄는 염소가 있습니다. 염소는 죽이는 곳에 이르면 옆으로 뛰어나가고 양들은 그대로 가게 둡니다. 양은 이끌림을 받아야 하며, 스스로 자신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양을 찾아오는 이는 반드시 목자여야 했습니다. 사자가 그 아기가 있으리라고 말한 바로 그곳에서 그들이 하나님이신 아기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천사들이 있으리라고 말한 바로 그곳, 구유에서 그 사자의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천사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러이러하다.’라고 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모릅니다.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했다는 사람들의 말도 들었습니다. 천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에게서는 거짓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기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메시지를 전해 준 천사가 말한 그대로였고, 천사가 아기가 있으리라고 말한 바로 그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습니까! 구유 안에, 왜일까요? 그 목자들이 마구간에서 얼마나 편안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신학자였다면 그 안에서 어땠을 것 같습니까? 집게로 코를 막고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시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곳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에게는 자기 집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메시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아십니다. 아시겠죠? 꼭 알맞았습니다. 그때 목자들은 그런 상태로, 자신들의 마구간에서 자신들의 어린양과 함께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들은 메시지가 입증된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메시아 앞에 있었습니다. 그들 메시지의 입증된 말씀 앞에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메시아가 이 땅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바로 자신들의 환경 속에서 그분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 메시지가 참되며 거기서 입증되었음을 발견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이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학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금방 떠나 버렸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 사자는 평범한 목자들에게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이 목자들 중에는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쓸 줄 알았을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양을 돌보도록 택하신 목자들을 아시지요. “베드로야,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들을 먹이라.” 그런데 성경은 베드로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목자들을 택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그 시대의 교인들과 제사장들, 교육을 잘 받은 그 시대의 사람들은 마구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얼마나 많은 분이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도시 사람들이실 테니까요.) 유대의 마구간이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떻게 생겼으며, 그 안의 짐승들 때문에 그곳이 어떠했겠는지 말입니다. 오늘날의 점잖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곳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문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지혜로,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시대의 학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은 분명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 있는 것이 발각되면 몹시 수치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자기 교회로 돌아가 그런 모임에 참석했고 그런 놀라운 일을 전하는 교육받지 못한 목자들 무리의 말을 믿었다고 간증했다면, 교회에서 출교당했을 것입니다. 이 목자들처럼 배우지 못한 무리의 말을 듣는 것이 발각되었다면 베들레헴 사회에서 쫓겨났을 것입니다. 분명 수치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들은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하나님께서 교육받지 못한 목자들 무리에게 메시지를 전하시리라고 믿는 그런 이단을 받아들였다면 말입니다. 그들은 소속을 잃고, 자격증서를 반납해야 했을 것이며, 그 시대 자기 집단의 사회 안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 나은 지성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그런 일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감히 네가! 제대로... 학교에 가지도... 초급 독본도 떼지 못한 저 시골의 무식한 사람들 이야기를, 그런 이단, 그런 어리석은 이야기를 가지고 내 성소에 들어와? 천사가 내려와 그들에게 말했다는 그런 메시지를 믿다니!” 그런데 그 사람이 “저는 그 메시지가 입증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당장 당신 증서를 돌려주겠소. 이 사회에서 나가시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시대는 변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마 같은 일이 벌어져서, 그들은 자기 교회에서 쫓겨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하며 완전히 편안했습니다. 선한 목자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가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분명히 드러나고 입증되는 것을 보면, 그 목자는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영의 침례라는 것은 없다. 성령의 침례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참된 말씀의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부활의 권능 안에서 전하게 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어디에서든 그분이 부르시면 그 약속과 똑같은 복이 유효합니다. 말씀을 먹이는 참된 목자가 그것이 입증되는 것을 보게 해 보십시오. 온 세상의 신학자들이라도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일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들 가운데 거하고 계셨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이 시대에도 같은 일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지 모르겠습니다. 교만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계시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자기 교파에 오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기 집단이 받아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옳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집단에 있지 않으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집단에서 누구도 택하지 않으시고, 그 어느 것에도 관계없는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집단이 “우리가 한 일을 보셨습니까?”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분이 목자를 택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목자들은 자신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신 어린양, 그들 가운데 육신이 되신 그분의 말씀과 함께 완전히 편안했습니다. 교만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은 그들을 지나쳐 갔습니다.
오늘날에 대해서도, 어느 시대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시대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존 웨슬리 시대에도 같았습니다. 오순절 사람들의 시대에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조직 때문에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말씀을 입증하시기 위해 그분의 영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들로서는 자기들 협의회 부류 안에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와야만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오늘날도 모든 교회가 고집스럽게 “이러이러한 일을 하여 모든 교회를 하나로 연합시키겠다.”라고 합니다. 이제 그들이 모든 개신교인과 가톨릭교인과 정교회 교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큰 교회를 만들 수 있는 사자를 찾고 있다면 말입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수백 가지 다른 종교에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누렸고, 그 모두 안에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십시오. 저는 예언합니다. “모든 조직은 이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조직이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늘 투산 신문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안수를 돕는다는 기사를 읽으셨습니까? 신문에... 미주리주에서 개신교 성직자의 안수를 도왔다는 기사 말입니다. 누가 그것을 인정했습니까? 장로교, 침례교, 루터교, 하나님의 성회였습니다. 오늘 투산 신문에 나와 있습니다. 오, 충격적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일을 그렇게 비틀어 놓는 교권과 행정의 수장들이 문제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분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 제도입니다. 더 이상 조직으로 남아 있으면서 이 땅에 임하는 진노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그 일이 일어날 때 저는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이 녹음테이프들 중 하나를 다시 들어 보십시오.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저는 거짓 증인입니다. 일어났다면 저는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의 긍정적인 사고에 맞서는 어떤 악한 영의 역사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요즘 긍정적인 사고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무엇이든 마음에 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하나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은 버리십시오.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메시아가 그런 장소, 그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발견될 리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하고 위대한 대제사장이나 신학으로 말끔히 다듬어진 성직자가 거름으로 가득한 마구간에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교육도 받지 못한 가난하고 비천한 목자가 와서 “보십시오. 제가 입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분이 그 아기이고, 이분이 그 사자입니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정직하고, 자기가 하는 말에 매우 신실하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하게 살아서 그에 대해 아무런 흠도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는 신실하지만 틀렸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아.”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증거를 보인 뒤에는 “저 마구간에 가서 그 아기가 거기 누워 있는지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어떤 악한 영에게 홀려 그런 말을 하는 거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이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그런 곳에서 발견된다고?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마구간에서?” 그들은 그분이 오실 아름다운 장소를 갖추었고, 오시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았는데, 그분이 내려오셔서 (가시면서) 자기들의 선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시다니요. “그리고 배우지 못한 목자들 무리에게 그것을 주신다고? 게다가 그분의 아들을 데려다가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신다고? 보통 말을 맡겨 두는 마구간에서? 그것도 건초를 담는 구유에서? 그럴 리가 없어!” 너무나 비천했기 때문에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해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늘 놓치고 맙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그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 계시는데도 그들은 저 멀리서 찾았습니다. 아시겠죠? 지금 바로 자기들 곁에 있는데도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들의 모든 대단한 것들은 제쳐졌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거기 계셨다.”라는 것은 분명한 진리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번 성탄절을 위해 무언가를 약속하시고, 이 시대를 위해 무언가를 약속하시며,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시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외면하고 떠나간다면, 우리는 그때 그것을 지나쳐 버린 사람들과 똑같은 부류입니다. 그것이 우리 교파의 구미에 맞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 우리가 이렇게 혼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계십니다. 오늘 이곳에 계십니다! 성경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믿는 체하는 자나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많이 하리라.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저는 제 삶에서 그분께서 그때 행하신 것과 같은 일들을, 이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이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가며,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게 계시됩니다. 참말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셨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저는 제 시대에, 삼십삼 년 동안 사역하면서, 성경에서 그분이 하셨다고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그분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일들을 더 많이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분이 무슨 일을 행하셨든, 산헤드린이 그분을 믿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당신은 홀렸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살펴보십시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알아내는 일에서... 자기들의 신조가 무엇이라고 하는지가 아니라, 자기 시대에 메시아가 무엇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이 말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못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을 탐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너희에게 알려 주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바로 그래서 그것을 목자들에게 가져가셔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이제 왜 목자여야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왜 목자입니까? 신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왜 목자입니까? 그것이 그분의 말씀에 어긋나게 오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목자였고 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양, 어린양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일 사람들은 그들뿐이었습니다. 어린양을 받아들일 사람은 목자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린양의 메시지를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놀라운 점을 보십시오! 가장 비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마구간에서 임마누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가장... 같은 때에 저 밖에는 자기들의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많은 무리를 끌어모으고 있었으며, 온 땅에서 사람들이 희생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내 콧구멍에 악취가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비천한 목자들이 마구간에서 임마누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이 되시어 마구간에 누워 계셨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많은 학문을 갖고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지나쳐 가십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행하시며,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저 마구간에서 임마누엘을 경배하는 이 비천한 목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놀랍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그분을 경배하고, 자신들이 전해 온 메시지가 입증되었음을 깨달은 뒤, 그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천사의 메시지를 가지고 밖에 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오늘날과 비교해 보십시오.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지적인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메시지를 가지고 밖에 나가, 자신들이 보고 듣고 참되다고 아는 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교권의 생각과 반대였지만 진리였습니다! 진리입니다!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 보십시오! 또 천사 성가대가 자기들에게 첫 성탄 찬송을 불러 주었다고 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고 양 우리 냄새를 풍기는 목자가 거리를 걸으며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저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군. 명부를 보고 우리 교인인지 확인해 보시오. 예법에 어긋나는 저 가르침으로 우리를 참으로 난처하게 만드는군. 우리에게서 떼어 놓으시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서는 수치를 당하되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시대 교권의 구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습니다. 말씀에는 서로 다른 969가지 구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구미, 하나의 말씀,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천사들이 자기들에게 첫 성탄 찬송을 불러 주었다고 하고, 또 “천사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라고 합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메시지를 주었고, 그들은 가서 그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천사가 우리에게 첫 성탄 찬송을 불러 주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상상이 되오?” 사람들은 “저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들 가운데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으므로, 그들에게는 좀 낯선 교리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찾도록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체험은 그들에게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진리였습니다. 진리이고,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첫 회심자들과 첫 회중은 성직자들이 아니라 양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치는 사람들, 목자들이었습니다. 왜 목자였을까요?
보십시오! 그들은 밖에 나가 자기들이 보고 들은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천사들이 사람에게 노래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천사들이 사람에게 노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가대들을 보십시오. “메시아가 태어나시면 노래하겠다.”라며 서서 목소리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그들 모두가 제쳐졌습니다! 천사들이 내려와 평범한 양치는 사람들에게 노래했습니다. 성직자의 옷이 아니라 목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누가 첫 메시지를 받았는지 보십시오.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어디에서 주어졌습니까? 대성당들이 아니라 광야에서였습니다. 주의 천사가 온 곳은 저 밖 광야였습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환영조차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환영한다고 생각했고, 자기들에게 그것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맞습니다.
천사들이 처음으로 축하하며 노래한 곳은 하늘이었습니다. 욥기 38장 7절을 보시면, (메모하시는 분들이 보이는군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첫 창조물인 땅을 만드실 계획을 세우셨을 때였습니다. 욥은 위대하고 영리한 사람이었으며 온갖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시장에 올라가면 젊은 통치자들이 모두 내 앞에 절하며, 잠깐이라도 내 지혜를 듣고 싶어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남자답게 네 허리를 동이라. 내가 내려가 너와 이야기하겠노라.”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욥아,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기 전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 질렀을 때, 욥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때 그는 기가 꺾였습니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 아시겠죠? 천사들이 처음으로 축하하며 노래한 곳은 하늘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 땅에서 노래한 것은 하나님, 임마누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에게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천사의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비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반바지를 입은 여자들을 데려다가 무슨 교회 가운을 둘러 입히고, 세워서 거창하게 노래하게 한 다음,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분께는 사람을 만드시기 전부터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었던 천사들이 저 위에 있습니다. 나가서 그렇게 살고, 하나님께 가증한 옷을 입으면서,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글쎄요, 저는 ...에 속해...”라고 말합니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그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했는지 말해 보라. 그것들이 도는 축은 어디 있느냐? 그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혜를 좀 빌려 달라고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지혜는 그분께 어리석은 것일 뿐입니다. 그분은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하십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창조를 하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유한한 땅,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생명, 사람을 위한 영생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통해 그분께 속한 자들에게 노래하고 계십니다.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말입니다. 하늘에는 영생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노래하셨... 그들은 유한한 창조물이 생겨났을 때 하늘을 향해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죽지 않는 창조물이 생겨나고 있으므로, 이제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목자들에게 노래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분 자신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창조되셨습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살과 뼈로 자신의 성막을 세우시고 그 성막 안에 사셨습니다. 하나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그 안에 사시려고 자신을 위해 집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분께 속한 자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비추어 보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왕이 태어날 때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셨던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물론 아셨겠지요. 자, 그렇다면 이 왕이 그곳에서 태어나실 때, 어떤 여자가 어디 대성당으로 달려 들어와 “어서 침대를 준비하고 의사들을 부르세요. 제가 임마누엘을 이 땅에 낳을 테니까요.”라고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 낮은 도시, 그... 투산이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더 천한 나사렛에서 온 가난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보잘것없는 여자가 대제사장에게 달려가 “제가 곧 임마누엘을 낳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 그런 이단이 들어오는 것을 그는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보십시오.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왕들은... 그분께 노래해 드릴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 노래해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핵심이 나옵니다. 잘 들으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합니다! 거대한 대성당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적 방식에 너무 굳어져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찬양할 누군가를 찾으실 것입니다. 다시 요한의 말을 인용하면, “그분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보십시오. 그분께 속한 자들이 그분께 노래해 드려야 합니다. 그때 그분께 속한 자들은 그분의 천사들이었고, 그들은 그분의 메시지를 전할 목자들에게 노래했습니다.
누가 먼저 들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분께 속한 자들입니다. 왕을 위한 노래를 처음 들을 사람들은 그분께 속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 속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좀 놀랍지 않습니까, 형제 여러분? 그분의 성직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교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목자들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양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 속한 자들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믿으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한 지혜이십니다. 메시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누가 믿을지 아십니다.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이 땅의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성경 구절을 적고 계시다면 그것은 마태복음 5장입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을 적고 계시다면... 제가 여기 적어 둔 것은 성경 구절들입니다.
누가복음 1장 52절에서 마리아는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을 때 “그분께서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높이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높이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도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즐겁게 듣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엘리트들이나 신학자들, 율법과 신학의 박사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낮은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룩한 성경 전체에 걸쳐 구속의 메시지는 목자들에 의해, 그리고 양들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이제 마칠 시간이 되어 가니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이 생각으로 여러분을 이끌기 위해 많은 성경 구절을 건너뛰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구속은 목자들과 양들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거기에 동의합니다. 왜입니까? 그것이 그림자와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든... 제가 제 손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더라도, 여기 아래에 드리운 손의 그림자를 보고 손가락이 다섯 개 있는 것을 보면, 그 그림자가 무언가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림자가 실물을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지는 언제나 양을 통한 구속으로 왔습니다. 맨 처음부터... 그분께서 양을 통해, 목자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두 그림자와 모형이었습니다.
이제 처음을 살펴봅시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그분 앞에 서 있었을 때, 그들은 허리에 양가죽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처음 들은 메시지는 죽은 양의 가죽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잡으시고 그 가죽으로 아담과 이브를 감싸 주셨습니다. 그들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들 나름의 종교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맨 처음부터 속죄를 위해 양을 희생물로 드리도록 정해졌습니다. 양의 희생이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마무리하면서, 왜 목자여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했는지, 왜 그분이 양이어야 했는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양가죽을 둘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완전한 어린양에 관한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표시였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랬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자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이 바로 신학자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여러분은 “이 사람은 신학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그 사람을 말씀에서 더 멀리 떼어 놓습니다. 아시겠죠?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말씀, 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선지자들에게 왔습니다. 신학자들이나 박사들이 아니라 선지자들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언제나 거절당하고 배척당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대개 목자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양가죽을 두른 것은 자신들이 치던 양의 가죽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정죄받은 세대에게 주어진 최초의 메시지는 양가죽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선지자들은 양가죽을 몸에 둘렀습니다. 그것으로 자신들이 그 희생을 위해 완전한 어린양이 오시리라는 것을 믿는다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가죽 너머로 그들에게 왔습니다. 이 목자들은... 아니, 이 선지자들은 대개 목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자였습니다. 이삭은 목자였습니다. 야곱은 목자였습니다. 모세는 목자였습니다. 다윗은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대리인들은 대개 목자였습니다.
이제 왜 그것이 목자들에게 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들은 인도하는 목자가 없으면 양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양은 완전히 무력하며, 혼자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자녀들을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들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여러분을 인도하는지 조심하십시오! 염소를 따르지 마십시오. 염소는 여러분을 도살장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소를 주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도록 그분의 아들,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사람이 만든 목자가 아니라, 양들에게 양의 먹이를 먹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목자이십니다.
돼지 한 마리를 데려다가 “너를 어린양으로 만들겠다.”라고 한다고 합시다. 돼지를 씻기고, 발톱에 색칠도 해 줍니다. 양처럼 먹을 것도 주고, 어떤 식단도 마련해 줍니다. 그리고 마룻바닥에 내놓거나, 밖으로... 양 떼가 있는 곳, 알팔파 밭 같은 곳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어디든 진흙탕이 있으면, 그 돼지는 곧장 그 진흙탕으로 가 버릴 것입니다. 아시겠죠? 왜입니까? 본성이 여전히 돼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세상 것들에 빠져드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본성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교권의 구정물이든, 신학의 구정물이든 다 먹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견디지 못합니다. 들어와서 말씀을 듣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위선자는 저 까마귀입니다. 성경에서 두 마리가 방주 밖으로 내보내졌습니다. 까마귀는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썩은 고기를 먹는 새, 청소하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체들 위에 앉아 그 사체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냈을 때에는, 비둘기는 그 악취를 견딜 수 없어 아버지의 집, 노아에게 돌아와 노아가 들여보내 줄 때까지 문을 두드렸습니다. 까마귀는 여기 앉아 하루 종일 죽은 말을 먹다가, 저 들로 날아가 비둘기와 함께 곡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저리 날아가 죽은 말을 먹은 뒤 곡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죽고 맙니다. 아시겠죠? 비둘기에게는 쓸개가 없어서 그것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둘기, 말씀을 먹는 비둘기나 양, 정결한 짐승에게 세상 것들을 주려고 하면, 그들은 자기 주인께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없느니라.”라고 하신 것을 압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주면 그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그것도 받고 세상도 받으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름과 물은 섞을 수 없습니다. 도무지 섞이지 않습니다.
이 목자들은 모두 목자가 없으면 양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목자였고, 양은 반드시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양에게 구정물을 먹이려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양은 그것을 먹지 않습니다.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그때에도 그들은 양에게 구정물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왔을 때에는 구정물에 너무 익숙해져서 말씀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입증되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리라는 것이 증명될 때,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구정물에 너무 익숙하고 구정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여러분이... 글쎄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들으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개는... 성경은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고 돼지가 진흙탕으로 돌아가듯이, 그들도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서도 곧장 예전의 그 진흙탕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아, 그것은 광신주의야. 그런 것은 믿지 마.”라고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양식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다른 양식은 받지 않습니다. 참된 양들에게는 교권의 양식을 줄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이제 보십시오. 우리 모두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얼마 전, 며칠 전에 여러분은 투산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그분께서 어떻게... 어떻게 말씀이 스스로를 정죄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스스로에게 맞서는 것이라면 하나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감리교와 침례교, 장로교와 가톨릭을 한데 넣어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까? 사람을 머리로 삼아 그 아래서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께서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말씀 되신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지와 하나.”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시며, 동일하신 분입니다. 또 같은 말씀이며, 나타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가 되도록, 다른 모든 시대에 그러했듯이 이 시대에도 자신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그렇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는 말씀을 확증하시려고 그분 안에서 함께 가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을 보내시는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보내시는 사람들 안에서 함께 가십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조직과 하나가 아니라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제도와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하나이고,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셨으며, 여러분과 저와 말씀도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동의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누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은 사사로이 해석할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쓰인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시고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의 말씀을 믿고, 한번 행해 보십시오. 그분의 약속대로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구정물을 먹지 않습니다. 양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은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라고 선언합니다. 그분이 말씀이시라면, 그분의 음성은 어떤 음성이겠습니까?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며, 낯선 자들은 따르지 아니하느니라.” 아시겠죠? 예수님은 “그들이 낯선 음성은 따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양들은 낯선 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따르지 않습니다. 선지자들과 목자들과 양들이 모두 그분의 오심을 증언합니다.
이제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한 그분 말씀의 변함없는 계획 안에 계신 것을 보십시오.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변함없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모세가 노아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이 모세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의 메시지나 노아의 메시지를 가지고 오셨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웨슬리가 루터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순절이 웨슬리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방금 그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말씀만 지켜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목자에게 첫 소식이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선지자, 이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목자였다면,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왜 여기서 방법을 바꾸셔서 신학자들에게 가져가셔야 하겠습니까? 목자들이었습니다. 완전한 어린양, 죄를 위한 헌물의 도래는 목자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목자만큼 양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일에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들이 어떤 먹이를 먹는지도 알았습니다. 목자는 양이 무엇을 먹는지 알았으며, 먹는 것을 보고 자기 양을 알아봅니다. 어떤 양이 구정물을 주는 우리에 들어가 구정물을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면, “저 더러운 것을 먹는 짐승을 치우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아셨습니다.
이제 여호와께 속한 위대한 목자 선지자 중 한 사람을 불러, 양가죽을 두른 이 선지자들 안에 하나님께서 계셨음을 확인해 봅시다. 잘 보십시오. 먼저 모세를 부르겠습니다. 그를 살펴봅시다. 그의 사역은 목자인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신 여호와를 우리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된다면 앞으로 십 분쯤 한 사람만 살펴볼까 합니다. 두 사람을 살펴보려 하지만, 어쩌면 이 한 사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모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목자인 이 선지자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파라오에게 자신의 사역과 부르심을 입증할 세 가지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제 목자인 이 선지자를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언제나 선지자들에게 초자연적인 표적을 주셔서 그들 안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는데 초자연적인 일이 뒤따르지 않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언하는 것이 그분의 말씀에 맞으면, 그것을 확증하셔서 자신이 이 선지자들과 함께 계심을 언제나 입증하셨습니다.
자, 그분께서 그... 이 선지자인 목자에게 주신 첫 번째 표적은 (보십시오), 그의 막대기를 뱀으로 바꾸신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의 손이 나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물을 가져다가 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가 하나님의 발화된 말씀임을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입증하도록 세 가지 표적을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세는 말로 불러 창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래를 집어 공중에 던지며 “벼룩들이 나올지어다.”라고 하자 벼룩들이 나왔습니다. “파리들이 나올지어다.”라고 하자 파리들이 나왔습니다. “개구리들이 나올지어다.”라고 하자 개구리들이 나왔습니다. 그가 창조해 낸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목자인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신 여호와였습니다! 아멘!
보십시오! 그분이 주신 세 번째 표적은 그의 직업과도 관계없었고, 그 자신의 몸과도 관계없었습니다. 세 번째 표적은 그랬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처음 두 표적은 그 자신과 그의 직업에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소리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표적은 그 둘뿐이었습니다. 나머지 표적에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몸에서 나와 자기 백성에게 주어진 두 표적에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표적은, 이제 보십시오. 그것이 주어진 것은... 그 표적, 세 번째 표적은 죽음의 표적이었습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피가 물로 변한다면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피가 있는 곳, 흘린 피가 있는 곳은 죽음의 표적입니다. 파라오에게도 그러했습니다. 세 번째는 나일강 물을 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파라오에게, 우리의 하나님은 나일강을 다스리시고 나일강의 신보다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메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며, 그 나라에 죽음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피의 표적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오, 세상에! 죽음을 직접 가리키는 표적, 피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표적에는 예언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제 말에 담긴 뜻을 읽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 두 표적에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관한 예언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산 위에서 돌이 공중으로 던져졌을 때 그곳에 계셨던 여러분께... 자, 그리고 가면서... 그는 자연을 바꾸어 그들을 위해 일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막대기를 보십시오. 뱀을 보십시오. 홍해를 보십시오.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보십시오. 그 목자의 막대기가 그들을 위해 갈 길을 여는 것을 보십시오. 목자의 손에 있던 그 막대기는 모든 신학과 제사장들이 한 모든 말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 목자의 막대기는 사람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모든 것을 뚫고 그들을 계속 인도했습니다. 파라오가 “산에서 급류가 터져 물이 쏟아져 내려와서 그것이 피로 변했다.”라고 생각하려 했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비처럼 내리셨습니다.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셨고, 땅에 이를 쏟아 내리셨으며, 온갖 것을 내리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목자의 지팡이로 하셨습니다. 교과서가 아니었습니다. 신학자의 생각이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였습니다! 잠시 후에 그 대목에 이르겠습니다. 목자의 지팡이로 그분께서 행하셨습니다. 교파의 기도서가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였습니다. 목자의 막대기가 양들을 인도하며, 그들이 그 땅에서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을 향해 갈 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목자의 지팡이가 그분의 양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합니다. 모든 신학과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 세상의 것들, 교파들, 모든 것을 지나쳐 갑니다. 길을 열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면서, 목자의 지팡이가 앞서 갑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 목자의 지팡이가 양들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는 분명 양들을 인도했고,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냈습니다. 여기에 관해 훨씬 더 많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만 짚자면, 그는 양들을 인도했고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보냈습니다! 한편에는 복이 된 바로 그 지팡이가 다른 편에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노아가 전한 물, 노아를 구한 바로 그 물이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이끈 바로 그 지팡이가 목자인 선지자를 따르려 하지 않은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의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자연,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연 속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보십시오. 시간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거기에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그분의 자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입증할 시간이 없군요.
하지만 나중에 광야에서 목자가 양을 모는 막대기에 뱀을 감아 올린 그 놋뱀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이것은 질병과 죄를 위한 참된 속죄가 올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지팡이는 파라오 앞에서 뱀으로 변했고, 바로 그 파라오는 마술사들을 통해 그것을 흉내 내려 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판 파라오들과 믿는 체하는 사람들, 메시지를 육신적으로 모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것을 흉내 내고, 그것을 무슨 교파적인 것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것은 공기를 가둘 수 없는 것처럼 교파와 전혀 매이지 않은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흉내 내고, 모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바로 그 목자의 지팡이가 다른 뱀들을 먹어 버렸습니다. 그 뱀들은 어디 있었습니까? 바닥에 막대기들로 있었지만, 집어 든 막대기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를 위한 참된 속죄가 올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장래에 주어질... 이것이 이스라엘의 장래를 어떻게 말해 주었는지 보십시오. 그곳에서 그들에게는 목자인 선지자를 통해 죽음의 종살이에서 구출될 길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지팡이를 든 목자 선지자를 통해 종살이에서 나왔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할 목자인 선지자, 이스라엘을 죽음과 지옥에서 구출하실 장래의 구원자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두가... 우리가 알듯이 이스라엘 모두가 목자인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적을 행할 때에는 “오, 그는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했지만, 그의 메시지에 이르자 “그건 다른 문제야.”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메시지가 오면 모든 위대한 표적들이 뒤따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불평했습니다. 광야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수천 명씩 죽었습니다. 사실 이백오십만 명 가운데 구원을 받아 끝까지 들어간 사람은 오직 두 명뿐이었습니다. 이백오십만 명 중 두 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모두 다요, 브래넘 형제님?”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마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모두 죽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모두가 그랬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이 죽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에 대해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는 이 몇 마디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이 죽은 까닭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에 대해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메시지, 한 선지자, 한 사람의 인도를 통해 마련하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한 집단을 사용하여 인도하셨는지 말해 보십시오.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은 모세에게 왔습니다! 고라는, 우리 모두 알듯이,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가진 한 사람을 세우시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거룩합니다. 왜 우리는 교파를 가질 수 없습니까? 왜 우리는... 이것을 세우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할 수 없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에게서 떨어져라. 내가 더는 참을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유다서도 마지막 날들에 관해 똑같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고라의 반역 가운데서 멸망하였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한 사람이 인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문을 제기한 고라와 나머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압니다. 그들 모두가 멸망했습니다.
이제 목자인 선지자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다음 표적의 소리를 통해 장래의 계획을 보여 주시는 것을 보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거기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다음 표적에서 살펴봅시다. 보십시오. 그는 노예가 되어 종살이에 매여 있던 자기 형제들에게 구출의 메시지를 가지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도 가지고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였고, 모두가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물녘에는... 그들은 그의 기적을 받아들였지만, 저물녘에 그들이... 그가 메시지를 전하자 “그건 달랐습니다.” 그 메시지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장차 임할 심판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저물... 저물녘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진영을 두루 다니시며, 백성이 목자인 그분의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를 믿었는지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잠시 후에 이것을 위대한 목자와 연결하겠습니다. 아시겠죠?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의 사역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의 기적들 때문에 모든 교회가 문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병자들이 치유받기를 원했습니다. 위대한 일들을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분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저물녘이 왔을 때, 어느 날 그분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수천 명에게 빵을 먹이시고, 기적들을 행하신 뒤에, 앉아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어찌 네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말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든다고?”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리였습니다. 그분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렇게 되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영리하고 지적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분을 성전에 모셔 들였던 제사장들은 그렇게 한 일을 몹시 부끄러워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이 일어서서 ‘너희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같은 말을 하다니.” 그들은 “이 사람은 인간 흡혈귀야. 아시겠소? ‘내 살을 먹고 마시...’라니. 식인종이군. 생각이 바른 여러분은... 저런 정신 나간 사람에게서 떠날 것이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양들을 염소들에게서 갈라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도 그분과 협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협조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물녘에 하나님께서는 진영들을 두루 다니시며 누가 믿었는지 살펴보셨습니다. 위대한 목자의 시대에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의 사역을 주목하십시오. 하지만 이것을 보십시오. 그의 메시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 저물녘의 메시지를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을 선지자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은 좋은 사람이셨고 선지자이셨지만, 그보다 더한 분이셨습니다. 오늘날의 흔한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그분은 그저 좋은 사람이시고 선지자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셨고, 그러므로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셨습니다. 그분은 그 외에 다른 분이실 수 없었습니다.
스가랴 14장 7절은,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다만, 마지막 때에 다시 저물녘의 빛들과 메시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을 보셨습니까? 모세를 따른 모든 사람들은 시내산에서 그가 누구인지 증명한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이 불기둥이 떨기나무 안에 있었고 자신에게 이 메시지를 말해 주었다고 증언하며 이야기했지만, 많은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나와 분리의 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은), 그가 말했던 바로 그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목자인 그 선지자가 양들의 목자임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보십시오.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께서, 그분 곁에 머물며 그분의 사역과 함께한 사람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 예수님 말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입증하신 아버지, 똑같은 불기둥이 그분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모세가 말했던 동일한 하나님께서 모세 위에 임하셨고, 모세를 인도하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불기둥으로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인 그분의 선지자 안에 계셨습니다. 여기서는 또 다른 목자 선지자, 위대한 선지자, 참된 양이신 예수님을 데리고 가십니다. 또 선택된 세 사람을 데리고 올리브산 꼭대기로 올라가셔서, 거기서 예수님을 입증하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하시며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저로서는 이것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아시겠죠?
[녹음 공백.]... 쉐키나가 [녹음 공백.]... 얼굴을. 모세는 시내산에서 쉐키나의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얼굴을 바꾸었습니다. 내려왔을 때 그는 얼굴에 베일을 써야 했습니다. 목자인 선지자 모세, 여호와께서 그 안에 일부분으로, 그저 일부분으로 계셨던 사람, 그의 얼굴 말입니다. 그의 입에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목자가 쉐키나의 임재 안에 계셨을 때를 보십시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분의 온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부이셨습니다! 임마누엘이셨습니다. 왜 목자여야 했습니까?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목자인 선지자 모세 안에서 순찰... 아니,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보십시오. 이것이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입니다. 그가 기름부음을 받고 불기둥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십시오! 산 위에는 모세와 여호와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멘!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네 손을 네 품에 넣으라!” 이제 소리가 있는 이 두 번째 표적을 보십시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모세가 왼손잡이였다고 믿을 이유는 없으므로, 그는 오른손을 품에 넣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니까요. 그가 오른손을 넣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목자인 선지자 모세 안에 계신 여호와의 모습이 얼마나 잘 그려집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넣는 것을 보십시오. “손을 네 품에 넣으라.” 얼마나 놀라운 표적입니까!
이제 그가 이렇게 오른손을 심장 위에 얹고 서 있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 감추어져 있던 구속의 비밀들이 숨겨진 곳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이어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알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손이십니다. 여기서 모세가 그분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비밀들을 간직하셨다가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품에서 오른손을 꺼내는데, 치명적인 나병에 걸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오른손으로 무엇을 하실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보십시오. 나병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다시 보십시오. 보통의 나병이 아니라 마지막 단계로, 눈처럼 하얘졌습니다. 그의 손에 끔찍한 병이 든 것입니다. 심장 위에 있던 오른손을 품에서 꺼냈는데 그 손이 나병에 걸려 있었으니,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나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고칠 수 없으며,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품에서 꺼내셨을 때 세상은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세상은 치명적인 나병에 걸려 있었고, 치료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저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치료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료책은 갈보리에서 마련되었지만, 사람들은 죄를 위한 하나님의 처방 대신 사람이 만든 어떤 처방을 받으려고 합니다.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나병이 진행되는 것처럼 서서히 온 것이 아니라, 단번에 왔습니다! 그가 손을 꺼냈을 때 손은 이미 병에 걸려 있었고, 나병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서서히 죄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날, 바로 그날에 네가 죽으리라.” 그렇습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
보십시오. 자기 자신을 친 사람은 목자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손을 자기 품에 넣었다가 나병에 걸린 채 꺼냈습니다. 목자인 선지자가 직접 그렇게 했습니다.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 예수님도 친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내 생명을 내놓느니라.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느니라.” 그분은 위대한 목자,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이셨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느니라.” 보십시오. 그것은 서서히 온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왔습니다. 위대한 목자가 친히 우리의 죄책을 지시고 자신을 치셨으며, 우리의 죄들을 가져다가 자신 위에 놓으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쓴 것도 당연합니다. 바위가 터지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 내 구원자께서 머리를 숙이고 돌아가셨네. 열린 휘장이 길을 드러내 주었네,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날로 가는 길을.
그 비밀은 그 모든 세월 동안 하나님의 품속에 있었고, 그분의 오른손이신 예수님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위대한 목자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책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은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하나님의 치유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니, 하나님의 품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셨습니다. 품속에 그 비밀을 간직한 유일한 양이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도 언제나 양이어야 했습니다! 처음도 양이었고 마지막도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목자에게 와야 했습니다. 그분의 양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아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보십시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도다.”
보십시오. 그것은 순식간에 왔고, 오른손을 품에서 두 번째 꺼내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꺼냈을 때 치명적인 병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목자, 양이신 선지자께서 말씀하셨을 때...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죄의 형벌을 치르셨을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끝났고, 형벌은 치러졌으며, 빚은 청산되었습니다! 일 년이 걸린 것도 아니고, 어떤 다른 개혁자의 시대에 가서야 마침내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때 다 이루어졌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한 말씀을 어김으로써 순식간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저녁,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혼은 사슬에 매달려 지옥 위에 있습니다. 그 사슬은 어떤 신학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따라 사는 어떤 교파나 신조도 아닙니다. 그 사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주셨는데, 이브는 그중 작은 고리 하나만 끊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슬이든 가장 약한 고리보다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 말씀을 빼면... 그것은 성경의 첫머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중간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것은 성경의 중간이었습니다. 성경의 끝에서 그분은 “누구든지 한 말씀을 빼면 (한 말씀을 잘못 번역하면), 여기서 한 말씀을 빼면, 내가 생명책에서 그의 몫을 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려 지옥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아닌 것을 여러분 안에 억지로 집어넣게 하지 마십시오!
오, 저는 압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설마, 우리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한 이 모든 일이 있는데!” 위대한 목자의 시대에 대제사장들과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탄이 그녀에게 말한 것도 그것입니다. “설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느냐.” 하지만 그분은 하셨습니다.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다시 그렇게 하실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분께서 “노아의 날들에 여덟 혼이 물로 구원을 받은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아시겠죠? 아주 적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들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라.” 맞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어 많은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리라.”
위대한 목자께서 맞으셨을 때, 양이신 위대한 선지자께서 그곳에서 맞으셨을 때, 그분은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이 목자가 맞으신 즉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죄가 해결되었고, 더 이상 죄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깨끗해졌으며 형벌은 치러졌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미리 예정되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믿는 자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을 위한 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위대한 목자이신 그분께서 자기 양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품에서 꺼내졌고, 맞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에 그분은 그 손을 다시 넣으셨습니다. 아멘. 다시 그분의 품으로 들어 올리셨다가, 말씀의 형태로 여러분과 저에게 내미셨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여 죄 때문에 떠나온 원래의 동산으로 되돌려 놓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위대한 마음속에 감추어진 비밀이 목자인 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습니다. 목자에 의해, 목자인 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습니다.
그날 산들이 뛰며 외친 것도 당연합니다. 해가 얼굴을 가리고 기뻐 소리 지른 것도 당연합니다. 모든 자연이 터져 나온 것도 당연합니다.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자 나무들이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기뻐하고 뛰었습니다. 그들은 산 위에서 목자인 선지자가 생명책의 모든 이름을 구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자연도 구속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소리 지르고 뛰었습니다. 세상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산들이 갈라지고 바위들이 떨어졌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목자께서 여러분에게 “다 이루었다!”라고 계시해 주시는 어떤 집회와도 같습니다. 거기에...
저는 뛰어오르는 때와 기쁨이 넘치는 때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들이 울려 퍼졌고, 그것들이... 해가 지고 온갖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권능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들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라는 것을 알고 주님의 기쁨으로 회중이 가득 찬 집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일어서서 소리 지르고 울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청껏 외쳤습니다. 저는 무질서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질서 안에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께서 메시지를 가져다주셨고, 그들은 해방되었습니다. 그 목자이신 선지자 말입니다. 다른 교권의 영역에서 뭐라고 하든,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습니다. 그때 그 목자들처럼, 그들은 일어난 일을 알았습니다.
어느 신학자도 설명으로 부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직접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누구도 거룩한 강단에 올라 말씀을 전할 권리가 없습니다. 모세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자들이 “오, 터무니없는 소리요. 당신은 이런 것을 보았다고 상상한 것뿐이오. 허튼소리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그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당사자였습니다! 먼저 불기둥 가운데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기 전에는, 어떤 신학 학위나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해도 강단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자신을 사자라고 부를 권리도 없습니다. 온 세상의 신학자들조차 설명으로 여러분에게서 그것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얼마나 말하든, 그것은 여러분에게 일어났고 말씀에 따른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에게 말씀한 이 음성이 말씀의 음성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사백 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구출하리라.”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백 년이 다 찼으며, 자신이 그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음을 알았습니다. 남녀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침례를 보내시고 점이나 주름이 없는 신부를 부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행하실 것입니다. 이 삯꾼 목자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을 길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성령은 이 말씀에서 양의 먹이를 가져다가 여러분을 먹이시는 목자이십니다. 그것은 언제나 목자를 통해 옵니다. 그분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그분의 우리에 속한 양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른 누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낯선 음성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 세상에. 목자인 능력 있는 선지자가 다시 그들에게 해석해 주고 소개하는 것을 들어 보십시오. 요한이 요르단강에 서 있었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거기 서서 전파하며 “그때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계통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얻은 것도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요한도 아버지처럼 제사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미) 수태하였을 때, 주의 천사가 그의 아버지 사가랴를 만나고 그가 집에 있는 엘리사벳에게 돌아간 뒤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육 개월째... 어머니가 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에게는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아기가 움직이지 않아 그녀는 두려웠습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고, 엘리사벳의 상태도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말하려고 유대의 산지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벳을 만나자 자신이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했기에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덮으시고, 내게서 태어날 이 거룩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내가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술로 예수라는 이름이 처음 말해졌을 때, 어머니의 태 속에 있던 죽은 작은 아기가 기뻐 뛰며 소리 질렀습니다. 어머니의 태 속에서 뛰었습니다. 아직 생명을 받지 못했던 아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죽은 아기 안에 생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교회 안에서는 어떤 일을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오이 피클의 울퉁불퉁한 돌기처럼 시무룩하게 앉아 이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둡니다. 일어서서 자기 확신을 증언하고, 이 모든 터무니없는 것을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합니다. 성탄절입니다. 이런 산타클로스와 그 밖의 것들을 치워 버리십시오. 돈벌이로 만드는 그 어리석은 짓을 버리십시오. 성경 어디에서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로마의 신화입니다. 아무 실체도 없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런 허튼 이야기를 가르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그것이 모두 꾸며 낸 이야기였다고 말해 주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자녀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여러분의 간증을 해칠 것입니다. 아이가 “어쩌면 이것도 똑같을 거야.”라고 할 것입니다.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탄절의 마땅한 자리로 되돌려 놓으십시오.
보십시오. 거기 서 있는 이 선지자 요한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모두 그가 목자인 위대한 선지자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에게는 메시지가 있었고, 천사는 그가 예수님을 소개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어떤 신학교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제 알겠지요. 아무개 박사님이야말로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실 분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사람들과 뒤얽힐 수 없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아홉 살 때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려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목자들이 나오는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보십시오. 그의 메시지는 무슨 학위를 갖고 거창하고 부풀린 말을 하는 신학자의 메시지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 뱀들의 세대여.”라고 했습니다. 종교인들에게 “이 뱀 무리들아.”라고 했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본 것이 그것입니다. 뱀을 보았습니다. 그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천한 것이 뱀이었기에, 그 시대의 제사장들과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을 “뱀 무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우리는 여기에 속하고 저기에 속한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돌들, 그가 광야에서 본 것이었습니다. “또한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였느니라.” 그가 보아 온 것은 뱀들, 나무들, 광야였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그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어떤 대단한 신학박사의 거창하고 부풀린 말을 몰랐습니다. (그런 박사들은 말로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전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여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목자의 지팡이, 목자, 양, 자연의 모습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에게는 해야 할 위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알아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그분께서 지금 여기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의 신학이 너희를 너무나 얽어매어,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니라.’” 어느 날 예수님께서 걸어 나오셨을 때,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저기 오신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양입니다! 할렐루야! 참된 속죄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모든 양이 그림자로 보여 주었던 그분이 저기 오십니다. 평범한 사람이 그곳을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 어떻게 알았소? 나는 다른 점을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증언하노라.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노라. 또 한 음성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의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라.’라고 하였느니라.” 비둘기와 어린양을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만약 그것이... 만약 그것이 다른 무엇이었다면... 거기에 늑대가 서 있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어린양은 그 위에 내려갈 수 없었... 아니, 그 비둘기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새 중에서 가장 온순한 비둘기로 자신을 상징하셨고, 그분의 아들은 땅의 모든 짐승 중에서 가장 온순한 양으로 상징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의 정결한 새입니다. 까마귀가 아닙니다. 썩은 고기를 먹는 새가 아니라 비둘기입니다. 돼지가 아니라 어린양입니다. 다른 어떤 본성이라도 서로 어우러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내려왔을 때 그분을 인도했습니다. 그분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 대로였습니다. 오늘날 참된 어린양도 그렇습니다. 오, 성탄절의 양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직 그분의 말씀으로만 인도하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이 그분의 지팡이입니다.
보십시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요한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증언하노라.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세상의 죄들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제 마치면서, 제 성탄 메시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바로 그 동일한 어린양이십니다. 그때 어린양이셨던 것처럼 오늘도 똑같이 어린양이십니다. 그때 거기 계셨던 것처럼 여기에도 똑같이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같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그분이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말씀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시며, 여전히 목자인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 그분의 양들에게 먼저 양의 먹이를 주시고 먹이십니다. 신학자들이 아니라 그분의 양들에게 주십니다.
그들은 먹으려 하지 않...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것을 보십시오! 세상의 지혜롭고 지적이며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은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숭배하는 온갖 꾸며 낸 이야기와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분, 곧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 교파에서는 그것이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삯꾼 목자들입니다. 한 염소 아래서 여러분을 연합시키려 하는 신조의 삯꾼들, 그것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을 도살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천구백 년 전 이달에 태어나신 위대한 목자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 옛날 어느 때, 그분의 메시지를 따라 양을 돌볼 줄 아는 참된 목자들이 왔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여전히 그런 것을 원합니다. 그때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오늘날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구미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비틀어 자기들의 조직에 맞게 만들고, 말씀을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은 사도 시대를 위한 것이었어. 이런 뜻이 아니야.”라고 합니다. 말씀은 쓰인 그대로를 정확히 뜻하며, 누가 그들을 위해 해석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이 시간,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땅의 흙을 향해 숙이고, 서둘러 구유로 달려갑시다. 목자, 곧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말씀이 가져다주는 빛을 보고 받아들입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성직자답게 말을 잘 다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그대로 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왜 목자여야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른 생각으로 너무나 훈련받아서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려고 하는 온갖 감독과 지역 책임자, 주교와 사제, 추기경과 교황,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목자를 주셨고, 그 목자는 성령이십니다.
이제 제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어떤 생각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칭대명사입니다.) “그분 곧 성령께서 오시면 (진리의 영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 일들을 너희에게 계시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이 위대한 목자이시며, 예수님이 남겨 두신 목자이십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쓰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옛사람들이 성령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씀을 기록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성령께서 여러분을 어떤 신조로 끌어가실 수 있습니까? 이 말씀에 없는 무언가로 여러분을 끌어가실 수 있습니까?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라고 하셨다가 돌아서서 “아니다. 잘못되었다. 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신다면 거짓말쟁이가 되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듣고 있었다면... 어떤 것이 여러분을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진실하고 참된 목자, 성령에게서 끌어내 갔다면, 또 여러분에게 그 체험이 없고 삶 속에 성령의 증거가 없다면,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영생을 가지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며, 그분이 영생이십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은 끝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어떤 교회의 교인일 뿐이라면, 그 교회에는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작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시작이 없...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고 말씀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머리 색깔, 눈 색깔, 체격,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여러분을 보셨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의 사람인 여러분을 보셨습니다. 앞으로 백만 년이 더 흐른다 해도, 처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정하신 그 완전한 모습으로 여러분이 돌아가는 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저녁 여러분이 그 영생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작은 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고 지혜자들 무리가 둘러서 있는 꾸며 낸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런 것들을 믿지 마십시오. “나는 착하게 살고, 이런 일도 하고, 교회에도 가입할 거야. 그것만 하면 돼.”라고 생각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영생이 없는데 어떻게 영원히 살 수 있겠습니까? 옥수수 낟알 하나를 가지고, 아무리 완벽해 보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만들... 과학은 그런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잘라 보면 밭에서 자란 낟알과 똑같은 수분, 똑같은 속, 똑같은 성분을 갖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실험실에 가져다 놓으면 하나와 다른 하나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으로 만들어도 옥수수빵이 똑같이 잘되고, 똑같은 콘플레이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묻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그 자리에 남아 썩으며, 결코 싹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는 생명의 씨눈이 있어 다시 살아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처럼 교회에 가고, 그리스도인처럼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그리스도인처럼 교파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좋겠지만, 그 선한 목자가 주시려고 생명을 내놓으신 영생이 여러분 안에 없다면, 분리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에 내려오셨을 때, 시내산에서 하셨듯이, 첫 목자인 모세에게 하셨듯이 불덩이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내려오셨을 때, 불의 혀들로 자신을 나누시어 각 사람 위에 머무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으로 자신을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받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어떤 신학적인 신화에도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다시 태어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은 하나님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증언합니다. 그 체험이 없다면, 이제 구유, 곧 말씀으로 서둘러 갑시다. 신학 용어로 치장한 이 교회들을 떠나 성경으로, 참된 구유로, 메시아가 알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둘러 갑시다.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지금 제가 아는 대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거리는 남녀와 소년소녀들로 붐비고, 사람들은 서로 밀고 밀치며 자기에게 선물을 줄 사람에게 답례할 선물을 사려고 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성탄 선물로 담배와 술을 사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치 주님의 얼굴에 그대로 되던지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에게 꾸며 낸 이야기, 로마의 이교 신학인 성 니콜라스 이야기, 세상이 쉽게 받아들이는 어떤 신화를 가르치면서, 성탄의 참된 그리스도, 참된 어린양은 거절합니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빚어 내신 흙을 향해 오늘 저녁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이때, 제가 기도합니다... 주님은 한때 목자인 위대한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밖으로 나가 바닷가의 모래를 세어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가 셀 수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들을 세어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인 그 선지자에게 주신 메시지를 봅니다. 땅의 흙에서 하늘의 별들까지입니다. 비록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몸에 죽음이 와서 우리를 흙으로 데려갈지라도, 우리를 별들에까지 일으킬 수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위대한 선지자 다니엘에게 말씀하셨듯이, “마지막 날들에 자기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공적을 세우리라.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영원무궁토록 별들보다 더 밝게 빛나리라.” 주 하나님, 위대하신 창조주여, 주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에게 알리시려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기꺼이 오셨습니다. 죽음의 형벌을 짊어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었습니다. 어떤 천사도, 어떤 대리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형벌을 정하셨으므로, 그것을 정당하게 없애실 수 있는 분도 주님뿐이었습니다. 영이시기에 주님은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으실 수 있도록 육신이 되셨고, 주님께서 구속하신 자들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친히 주님의 피로 그들을 구속하셔야 했습니다. 오, 주님,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위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여호와, 그분은 아기로 살아야 하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여호와. 거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시는 어린 여호와. 십 대 소년 여호와. 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호와. 그리고 능력 있는 여호와.” 주님은 이 모든 자리를 거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이신 여호와. 선지자이신 여호와.” 주님은 죄의 형벌을 겪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이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의 가련하고 합당하지 못한 피조물들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읽고, 우리가 보답한 것은 얼마나 적은지 생각하니 오늘 저녁 부끄럽습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 있던 시대에 주님은 이렇게 오셨습니다! 얼마나 기꺼이 서서 아버지의 말씀을 비추어 보이셨습니까! 그들의 이론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나서서 여전히 말씀을 말씀이라 부르며 타협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렇게 소홀히 한 일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의 마음에 주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구유로 주님께 드립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마다 새로운 출생이 있고, 갓 태어난 양이 있으며, 하늘에서 천사들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천사들은 다시 노래합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여기에 단지 머릿속의 개념으로가 아니라 새로운 출생, 곧 주님의 영으로 태어나는 일을 통해, 주님을 하나님의 참된 선물이요 개인의 구원자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머리를 숙인 지금 바로 그것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아직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제 그 마음에 기쁨을 얻고 옛 목자들처럼 자기 마음의 구유에서 말씀, 메시아를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 시대의 위대한 목자이신 성령으로 입증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마음도 숙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비록 교회의 교인이시더라도... 제가 드린 말로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속하는 것은 좋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 형제님, 그것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목자이신 위대한 선지자께서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신학자에게 “네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저 믿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믿으면 태어난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마귀도 믿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체험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착하게 살아왔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도들도 그랬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배반이 있기 전날 밤... 아니, 배반이 있던 날,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너는 마음을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삼 년 반 동안 따랐고, 마귀들을 내쫓고 병자들을 치유했으며 복음을 전했지만, 말씀에 따르면 여전히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오늘 저녁 그런 사자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모시고 싶으십니까? 정말로 그것을 원하신다면...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이것은 진리입니다.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모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저에게가 아니라, 저는 그저 여러분의 형제인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 손을 들어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 그리스도, 성탄의 참된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 안에 오시기를 정말 원합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지금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쪽에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여기저기서 손을 드시는군요. 형제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여,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십시오.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에 관한 일입니다. 아침에는 우리가 이 땅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코에 있는 호흡 이상의 생명은 전혀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다음 숨을 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무엇을...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여러 용어를 저는 압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사람들이 다시 태어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봅시다. 베드로는 믿는 사람이었고, 사도들도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 전까지는 다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베드로는 나머지 사도들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것을 알라.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행하신 표적들과 기적들과 이적들로 너희 가운데서 확증하신 사람이시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그분을 정하신 계획에 따라 너희가 사악한 손으로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께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분의 증인들이니라. 그분께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으며, 이것은 성경기록들에 따른 것이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여기 앉아 계신 가톨릭 친구 여러분, 네다섯 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제가 여러분의 사제와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여러분의 사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톨릭 사제 중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죄들을 사면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면하면 그것들이 그들에게 사면될 것이요, 누구의 죄들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했는지, 사도들이 그분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봅시다. 오늘날 사제가 하는 방식에 따르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면 첫 사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말입니다. 왕국의 열쇠를 가졌던 베드로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그는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면, 여러분이 같은 처방을 따를 때 똑같은 체험이 여러분에게도 주어집니다. 이 회중이 그것을 믿는다면, 머리를 숙인 채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그렇다면 그것에 못 미치는 것은 무엇이든 말씀에 어긋나며, 목자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 이제 그들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 마음을 열었지만 그리스도, 메시아를 모시지 못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는 말씀, 기름부음 받아 나타난 말씀이십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마음을 열었지만 그 메시아를 모시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참된 성탄 선물,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유일한 참 성탄 선물, 목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리신 그분의 어린양, 죄를 위한 속죄를 모시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저녁 그 마음이 열려 있다면, 주님, 그 안에 이 시대의 메시아 말씀을 넣어 주십시오.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믿으십니까?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친구 여러분, 마치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자주 심하게 오해를 받습니다. 제게는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가 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해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오해를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따지고 걸고넘어지는 것이 너무 많아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교파와 조직 안에 그분의 사람들을 두고 계신다고 믿으며, 제 형제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삼 년 전 이곳 투산에 와서 길모어 형제님 댁에서 목사님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누군가 “여기에 교회를 세우러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삼 년이 지나도록 아직 요청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을 도우려고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과 손을 잡으려고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가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손과 마음을 맞잡고, 우리의 목소리가 닿는 모든 잃어버린 혼과 모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저는 온 마음과 제 안의 모든 것으로 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드릴 것이 많지 않습니다. 유향이나 몰약이나 금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 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오늘 저녁 새롭게 그분께 드립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그분 말씀의 구유 위에 드립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한 해를 더 살게 해 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신실하게 그 말씀에 서서, 모든 말씀을 전하고 모든 말씀을 믿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주님,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성탄 선물, 메시아를 받아들입니다. 신조나 교파와 상관없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입증하는, 기름부음 받은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주님, 오늘날 우리는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며, 여기 위대한 메시아께서 손을 내밀고 서 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마지막 날들에 교회가 너무나 조직화되어 라오디게아로 들어가리라는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저와 온 세상의 다른 목자들, 말씀의 목자들을 도와주셔서 다가오는 해에 그것을 선포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오늘 저녁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의 성탄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안에서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아멘.
저는 교회의 찬송들을 사랑합니다. 바울은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노래할 때에는 영 안에서 노래하고, 전파할 때에는 영 안에서 전파하노라.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노라.” 자, 여러분이 힘드셨을 텐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때로는 말하기가 참 싫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형제 여러분, 제게는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 않으면 위선자가 됩니다. 하지 않으면 제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제 믿음을 배반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는 해야 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부르심에 충실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를 돕고 싶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위대한 찬송 중 하나를 부릅시다. 제가 무척 사랑하는 찬송, 「주를 사랑해」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분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분이 하라고 하신 것을 행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너희가 나를 ‘주’라 부르면서 어찌하여 내가 명령하는 일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어찌 나를 ‘주’라 부르면서 내가 하라고 한 것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위대한 목자 자신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을 볼 수도 없느니라.”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가입하시오. 이 성만찬을 받고, 이 말을 하면 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삯꾼 목자의 말을 듣고 싶으십니까? 그 시대의 훈련받은 신학자들을 보십시오.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룩했습니까? 깨끗하게 살았습니까? 오늘날에는 그들이 살던 방식에 견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목자는 그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셨습니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렇지 않았... 그들은 말씀을 인정했지만, 그 시대의 말씀이 아니라 다른 시대의 말씀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노아 시대를 인정했다면 좋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모세 시대에는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 시대의 것은 그리스도의 시대에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루터 시대의 것은 웨슬리 시대에 통하지 않습니다. 웨슬리 시대의 것은 오순절 시대에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순절도 나머지 사람들이 한 것과 똑같이 했습니다. 자, 지난날 누가 저를 도와주었습니까?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풀잎 하나가 돋아날 때,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밀의 잎 하나가 돋아날 때 말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아니, 밀이 땅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맨 처음 올라오는 것은 작은 잎입니다. 땅에 들어간 낟알과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들어간 낟알과 같지 않지만, 낟알의 생명을 운반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왔습니까... 최근에 「침묵하는 하나님」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그 불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홍해를 여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천 년의 암흑시대 동안 어린아이들이 사자들에게 잡아먹히고,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리고 경기장 등에서 살해되는 것을 가만히 보시면서 입조차 열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아시겠죠? 말씀은 계시입니다.
그 밀, 처음에 그 참된 밀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마침내 한 밀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비추는 분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비추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바로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순절에 그분께 신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는 암흑시대를 거치며 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참된 밀이 그랬듯이 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왜 활동할 수 없었습니까? 땅 밑에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내기 전에 썩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르틴 루터라는 보잘것없는 사제가 나왔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진리의 한 말씀을 싹틔웠습니다. 잎이 나온 것입니다. 이어서 또 다른 잎인 츠빙글리가 나왔고, 그다음에 칼뱅과 녹스, 그리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느새 그것은 잎에서 모습을 바꾸어 꽃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닮아 보였지만, 여전히 땅에 들어간 바로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웨슬리가 나온 것입니다. 웨슬리에게서 감리교가 나왔고, 감리교에서 나사렛교와 연합형제교 등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되돌아가 이제 참된 밀알처럼 보이는 것을 내었습니다. 오순절이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마지막 날에 두 영이 너무나 비슷하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도 속이리라.” 그 밀알이 나왔을 때, 밀을 재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완전한 밀알처럼 보인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앉아서 손에 쥐고 벌려 보십시오. 그 안에는 밀이 없습니다. 껍질입니다. 하지만 그 깊숙한 안쪽을 현미경으로 보면 아주 작은 싹이 보입니다. 거기서 알곡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껍질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알곡을 보호해야 합니다. 뜨거운 햇볕이 알곡을 죽일 수 있으므로, 알곡이 성숙할 때까지 보호합니다. 그리고 알곡이 성숙하면 껍질은 거기서 벌어져 떨어집니다. 그런데 보셨습니까? 그때 나오는 알곡은 땅에 들어간 것과 같은 종류의 알곡이어야 합니다.
루터의 부흥 뒤에 조직이 나왔습니다. 웨슬리의 부흥 뒤에 조직이 나왔습니다. 알렉산더 스미스, 존... 알렉산더 캠벨, 존 스미스, 그 밖의 모든 사람들 뒤에 조직이 나왔습니다. 오순절 뒤에도, 바로 참된 것처럼 닮아 왔지만, 조직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했습니까? 떨어져 나갔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오 년 동안 부흥이 있었습니다. 온 역사를 통틀어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십오 년의 부흥은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거기서 조직은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었습니까? (늦은 비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그... 즉시 죽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이것을 뒤따른 조직은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알곡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껍질이 벌어져 떨어지고 있고, 협조는 없으며 아무도 여러분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는 왜 거기 세워졌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디... 누가 협력했겠습니까? 어느 침례교나 장로교나 루터교가 신유 대전도 집회를 지원했겠습니까? 이제 진리가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껍질이 아니라, 생명이 곧장 껍질에서 나와 알곡 안으로 들어갑니다. 실제의 참된 생명입니다. 조직은 거기 서 있다가 죽습니다. 모든 시대에 그랬듯이 똑같이 됩니다. 여러분은 오십 년 전에 거기서 나왔다가 다시 곧장 그 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은 알곡을 따라갑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벌어져 떨어졌습니까? 알곡을 햇볕 앞에 내놓아 주인을 위해 황금빛으로 무르익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 벌어져 떨어졌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아픔과 눈물이 생깁니다. 그들이 놓이는 곳은 태양, 곧 s-u-n 앞이 아니라 아들, 곧 S-o-n 앞입니다. 참되고 완전한 복음에 이르도록 무르익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나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한 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조직은 없을 것입니다. 조직은 부유한 라오디게아로 곧장 들어갑니다. 조직은 무엇으로 번영했습니까? 수백만 달러와 수백만의 혼들입니다. 그러면 그 목자는 무엇을 위해 왔습니까? 자기 형제들을 종살이에서 구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와주십시오.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성경을 탐구하십시오! 우리는 그 안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며, 성경은 진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벽에 흰 칠을 하고 선지자들을 위해 무덤을 세우지만, 그들을 그 안에 넣은 것은 너희 조상들이니라.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자식들이며, 그들이 한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오순절부터 루터를 거쳐 모든 시대에 걸쳐 생명을 운반하는 것들을 통해 온 빛을 받아들인 양들의 위대한 목자께서, (운반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생명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밖으로 나왔습니다), 구속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아서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오, 그분의 무리 가운데 들고 싶으십니까? 그 가운데 들고 싶으십니까? 그렇게 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아시겠죠? 그것이 전부입니다. 받아들이십시오. 제가 아는 유일한 성탄 선물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선물, 그분의 독생자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말씀이십니다. 아시겠죠? 이 시대에 그분, 성경의 충만함을 믿으십시오.
그 일곱 비밀이... 그 일곱 교회 시대들에 걸쳐 감추어진 일곱 비밀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위대한 신학자가 제게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여러분을 길에서 잡아채려 하는지 아십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거 아십니까?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계시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이 일곱 봉인 아래 감추어져 있는 어떤 큰 비밀일 겁니다.” 저는 “아닙니다. 형제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일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구든지 한 말씀을 더하거나 한 말씀을 빼면.’이라는 것을 잊으셨군요.”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이미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볼 만큼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시대들은 끝났고, 우리는 바로 여기 라오디게아에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라오디게아 시대에 그분은 교회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다시 들어오려고 하셨습니다. 이브가 자기 아담을 내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분을 찾으러 진영 밖으로 나갑시다. 그분과 함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읍시다. 그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 안에서 그분께로 나아갑시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떠나기 전에 찬송 한 곡을 부릅시다. 그러시겠습니까? 「주를 사랑해」입니다. 자매님, 음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이 옛 찬송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집회에 와 보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 찬송을 사랑합니다. 이제 눈을 감고 여호와를 생각합시다. 아무도 합당하지 않았고, 그분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내려와 작은 아기가 되셨습니다. 십 대 소년으로 오셨습니다. 목수가 되셨고, 일하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어린양이 되셨고,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승리 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모세가 심장 위에 있던 손을 품에서 꺼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품에서 그분의 손, 그분의 비밀, 고칠 수 없는 죄의 병에 걸린 그분의 아들을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품에 넣으셨다가 꺼내어 여러분과 저에게 내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제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목자여야 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반드시 그래야 했습니다! 왜 목자입니까? 그래야만 했습니다. 이제 같은 절을 다시 부르는 동안 상 건너편으로 손을 내미십시오. 오늘 저녁 여기에는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장로교, 가톨릭, 모든 분이 앉아 계십니다. 악수하며 “함께 순례하는 분이여, 오늘 저녁 여기서 함께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라고 하십시오. 무슨 말이든 건네십시오. 이제 서로 악수하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십시오. 다시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 [녹음 공백.] ... 내 구원을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눈을 감고 손을 들어 그분께 노래합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께는 형체가 없으십니다. 그러니 이제 어린아이들처럼 머리를 숙이고 가사 없이 흥얼거리며 부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생각할지 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흥얼거리며 부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회중을 인도하여 「주를 사랑해」를 가사 없이 흥얼거리며 부른다.] 말끔히 씻긴 것 같지 않습니까? 어쩐지... 무언가가 여러분에게서 모든 의심과 세상 것을 문질러 씻어 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말끔히 씻긴 것 같습니다.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분의 손에서 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형제님이 간증하신 것처럼, “양식, 목자가 주는 양식, 양의 양식”입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그분의 양식을 먹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바로 이것, 성경입니다. 우리는 모든 말씀을 먹습니다. 말씀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습니다. 오, 그러면 그분을 사랑하게 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앞으로 될 것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텔레비전은 에테르파가 있어서, 지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 사람의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는, 하늘의 처소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양들에게 비추어 보이시며,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놀라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깐 일어섭시다. (축도해 주실 분이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성탄절 동안 주 예수님을 경배하십시오.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제가 언제든 여러분을 도울 수 있다면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목사님이나 교회, 무엇이든), 아무리 밤이 어둡고 비가 세차게 내리더라도 괜찮습니다. 요전날 밤에 (여기 한 부인이 와 계십니다), 저는 병자들 일 등을 돌보느라 너무나 바빴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여든 몇 살 된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이를 낳는다든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빌리가 제게 전화하여 “아빠, 하실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은 못 하겠다. 사람들이... 도저히 못 하겠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빠, 기도는 해 주실 수 있어요? 기도하고 계신다고 전할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잠이 들었다가 정상적인 상태로 깨어났고, 제정신으로 닭고기 저녁 식사를 충분히 했습니다. 조금 전에 어떤 분이 여기 서서 그것을 간증하셨습니다.
맥 형제님, 조금 전에 교회 안 어디쯤에서 뵈었습니다. 여기 계신 지역 목사님 중 한 분입니다. 참으로 귀한 형제님이며,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늘 맥 형제님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저 멀리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어떻게 꼭 맞게 이루시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미 말에 올라 있었고, 한 무리의 인디언들을 하나님께 인도했던 광야로 다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돌이키고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년 전, 작은 말을 잃어버린 인디언 소년에게 예언으로 그 말을 어디에서 찾을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 말이 어디에 서 있을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 소년의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치유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이 소년은 그저 지나가다가 그 일을 보았고, 들은 말 그대로 정확한 곳에서 말을 찾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여러분 누구에게든 묻겠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통해 여러분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정확히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맞으면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아시겠죠? 아시겠죠? 정확합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맥 형제님이 죽음 직전에 누워 계셨는데, 마침 그분의 아내가 빌리... 제 아들의 아내에게 전화해서, 이야기... 제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랑스럽고 자그마한 부인, 그분의 아내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며느리는 “저 멀리 브리티시컬럼비아 북부에 사냥하러 가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날 아침, 어쩐 일인지 저는 도무지 그 말을 타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빌리가 “집에 한 번 더 전화해 볼게요.”라고 했습니다. 전화하려고 연락소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이 달려 돌아왔습니다. 그 작은 인디언, 그 어린... 작은 말을 가졌던 그 소년이 거기 서 있었는데, “맥 형제님이 죽음 직전에 누워 계시면서 형제님을 찾고 계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에서 내려 숲으로 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여기서 삼천 마일이나 떨어진 저 멀리 나라 반대편, 햇볕 밝은 애리조나주 투산에 제 형제가 있습니다. 죽음 직전에 누워 있습니다. 그분을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무언가가 제게 “다 잘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전에 맥 형제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일이 몇 시에 일어났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우리가 기도하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오, 그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제가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여기 귀한 형제님 한 분이 계십니다. 선교사 형제님으로 제 친구이고, 하나님의 성회 소속인 귀한 형제님입니다. 저는 그분을 “크리치”라고 부릅니다. 참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크리치 형제님,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님은 이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에 함께하는 제 형제이며 동료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토니 형제님께서 지금 형제님이 회중을 해산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는 동안 그렇게 해 주십시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