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주님, 주님께서 길도 없는 공중으로 독수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이는 물을 통과하게 하시고, 어떤 이는 홍수를 통과하게 하시며, 어떤 이는 깊은 시련을 통과하게 하시지만, 모두 피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얼마나 잘 인도하시는지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크고 강한 교회를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이길 것입니다. 온 지옥이 맞서더라도 이길 것입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정복자, 주 예수님께서 그 앞에 가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오늘 밤 저희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저희는 겸손한 자녀로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리며 서 있습니다. 오늘 밤 크고 강력하게 각 사람의 마음에 말씀해 주옵소서. 어떤 불신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희 마음을 닫아 주옵소서. 주님,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시고 성령의 바람을 타고 곧장 들어와 주옵소서. 저희 가운데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주님, 길을 가다가 지친 이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또한 주님, 잃어버린 이들, 길가에 쓰러진 그 사람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교회의 목사님이신, 저희가 사랑하고 아끼는 허치슨 형제님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영적 진리 가운데 그를 인도해 주옵소서. 이 여정에서 주님께서 그를 쓰시는 일을 마치실 때까지 사랑 안에서 흔들림 없이 주님과 나란히 걷게 해 주옵소서. 목사님들과 집사님들, 이 훌륭한 교제에 함께하는 모든 이에게 복을 주옵소서. 오늘 밤 저희가 떠날 때 엠마오에서 온 이들처럼,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이 훌륭한 교회에 다시 올 수 있는 특권을 얻으니 기쁜 정도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가졌던 집회의 추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조금 전 저와 일행이 다리를 건너오면서... 집회를 마치고 이곳을 떠났던 날이 오늘 밤으로 꼭 일 년 전이었습니다. 오늘 밤으로 꼭 일 년 전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얼마나 정확하게 때를 맞추시는지요. 그분은 모든 일을 꼭 맞게 하십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 도시의 외곽인 뉴어크를 방문하는 특권도 누렸습니다. 뉴어크 분들이 그 말을 언짢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말은 이곳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자매 도시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번 주 저희에게 지극히 풍성하게 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휴가를 보내려고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초가을에 휴가를 떠났는데, 일행 모두가 아시아 독감으로 앓아누워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고는 샐먼강을 따라 내려가며 휴가를 보내려고 떠났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강이라고 하는 곳인데, 제가 미국에 있을 때면 해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저를 데리고 가는 곳입니다. 내려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비행기 한 대가 날아와 작은 쪽지들을 떨어뜨렸습니다. 한 형제님이 막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어서 저는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캘리포니아의 레이크포트에 있는 박람회장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조금이나마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스워스 형제님이 임종을 앞두고 계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급히 플로리다로 내려가 그분을 뵙고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네요.” 루이빌, 아니 켄터키에서 집회를 시작하기 전의 이 며칠 말입니다. 그런데 허치슨 형제님이 전보로 저를 불렀습니다. 그날 다른 분들의 요청은 모두 거절했지만, 여기로 와 달라는 이 작은 형제님과 조지프 형제님의 부탁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피곤하고 무척 지쳐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큰 치유 집회를 마치고 나와서 목도 쉬고 피곤합니다. 제가 허치슨 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설교만 하고 출발할까요? 내일 점심 식사 직후에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려면 오늘 밤 유료 고속도로 등을 달려 밤새 운전해야 합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으시면 다들 조금 실망할 것 같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잠깐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들을 안으로 보내면서, 기도받으려는 분들이 많이 와 계시면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있도록 카드를 좀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설교를... 여러분을 위해 설교를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원래 저는 설교를 그리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잠깐 간증 같은 것을 하거나 말씀에 관해 조금 이야기한 다음, 대부분의 시간을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자, 마가복음 11장에서 20절을 읽고자 합니다. 잠시 후 말씀드릴 내용의 배경을 조금... 아니, 잠시 후 그 말씀을 풀어 나갈 때 사용할 짤막한 본문을 정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시지요? 오, 그 무엇도 우리 복되신 구주님의 귀한 말씀에 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기록들은 너무나 완전해서 결코 틀릴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0절, 짤막한 한 절입니다. 아침에 그들이 지나갈 때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버린 것을 보고 주님께서 이 짤막한 본문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틀림이 없어서 일점일획도 결코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만큼의 성경 말씀 위에 우리는 영원 전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결코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일부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듯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때에 모든 말씀이 증언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이 몸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기록에 근거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다윗은 “내가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경 말씀이 자신에 관한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 말씀은 메시아, 곧 거룩한 자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왕국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아셨고, 자신이 바로 그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음을 아셨기에, 자신의 몸이 일흔두 시간 안에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합니다... 그분이 사흘 밤낮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살펴보면 “사흘 밤낮 안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금요일 오후에 죽으셨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셨습니다. 그 귀한 몸의 세포 하나도 썩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은 썩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썩기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땅에서 일으켜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에게도 그처럼 해당하는 성경 말씀이 있는 줄 안다면 저도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 약속은 그분께 중요했던 것만큼 여러분에게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그 약속이 여러분을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기 전에 하늘과 땅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 약속은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와서 이 복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놓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우리가 그것을 놓치는 까닭은 말씀을 충분히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양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대체로 멀리 떨어진 약속, 저 멀리 다른 시대에나 해당하는 약속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될 것이다”가 아닙니다. 지금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무슨 어려운 것으로 만들려다가 그 말씀의 참된 복을 놓칩니다. 앞으로 십 분이나 십오 분 동안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분의 복된 말씀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도 복잡하지 않으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복잡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하십니다.
오늘 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막 예루살렘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그 길에서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수만 명이나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큰일들을 많이 행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께서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단 하나의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들을 받아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나누어 주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참입니다.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고, 그것은 그분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분 안에 있던 이 모든 위대한 권능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분은 참으로 육체로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선지자가 아니셨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선지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분에게서 신성을 빼앗아 단지 교사나 선지자로 만들려 하는데, 오, 그들은 너무나 잘못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께 붙일 수 있는 가장 낮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심령술사, 점쟁이, 바알세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가장 낮은 도시에 보내서 그 도시에서 가장 작은 사람까지도 그분을 보려면 내려다봐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께 그렇게 했고, 그분께 가장 낮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너무나 높이 올리셨기에 그분조차도 하늘들을 보시려면 내려다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 예수라는 그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마귀의 힘들과 모든 것이 그분께 복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아들에게 주신 그 이름에 경의를 표하며 모든 혀가 고백하고 모든 무릎이 꿇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볼 때 자신의 위대한 영광을 펼쳐 보이실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의 손 안에서 별들과 태양계는 먼지보다 더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 분이 그처럼 관심을 기울이셨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무화과나무를 지나시다가 먹을 것을 찾으시듯 바라보시고는 “아무도 네게서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한동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원히”라는 말은 “한동안”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영원히”는 일정한 시간을 말합니다.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라고 하며, 그 “그리고”가 접속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에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무도 네게서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말입니다. 보십시오. 곧바로 그 나무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났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말입니다. 다음 날 그들이 지나갈 때 베드로가 그 나무를 보고 말했습니다. “보소서, 선생님께서 어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가고 있나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기를,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런데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휘 사전, 그리스어 어휘 사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기를,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면 너희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우리는 무슨 일이 즉각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산을 바라보면서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믿는 것입니다. 어쩌면 산 전체에서 작은 모래알 하나만 움직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무언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루어지고 있다. 네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밤에 기도를 받고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 차이도 없군요. 달라진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나타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네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네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느끼거나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가 도시에서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굶주린 채 서 있고, 빵 한 덩이면 제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합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빵 한 덩이를 달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그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는 돈, 곧 구매력인 25센트를 주셨다고 합시다. 저는 그 25센트만 있어도, 계산대 바로 앞에 서서 빵을 살 준비가 되었을 때만큼이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는 힘이 제게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회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집회에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손에 잡히는 증거를 찾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상황이 정반대여도 믿습니다. 믿는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상 아브라함이 일흔다섯 살이고 아내가 예순다섯 살일 때,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에 의지하여 이십오 년을 견디었습니다. 약속하신 분이 그 약속을 지키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십오 년 동안 그에게 그 아이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속하신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었고, 그분의 말씀은 어긋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게 있는 그 구매력으로... 그리스도인 여러분,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부디 이해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꾸며 낸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상상한 어떤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확실합니다. 믿음은 이 유리잔이나 이 책과 똑같이 실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증거...” 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지 못하지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자, 제가 손에 25센트 동전을 가지고 있지만 빵 한 덩이가 있는 곳에서 오 마일쯤 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손에 빵 한 덩이를 들고 있을 때만큼이나, 손에 25센트 동전을 들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빵을 살 구매력이 있다면 그 빵이 제 것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치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기든, 의사가 뭐라고 하든 저는 이미 치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 저는 그 25센트 동전을 들고 기뻐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빵을 먹고 있지도 않은데 왜 기뻐합니까?” “하지만 제게 구매력이 있습니다.” 의사가 앞으로 두 주 정도밖에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기뻐합니다. “왜 기뻐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곳에 닻을 내렸다는 증거가 제 마음에 있습니다! 고통의 처소에서 나온 모든 마귀가 덤벼도 저를 거기에서 흔들어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25센트 동전이 제 손에 있으면 저는 빵을 사려고 서둘러 가게로 갑니다. 어쩌면 점점 더 기운이 없어질지라도 가는 길 내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배 전체에 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갈수록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져도, 저는 그 빵을 살 구매력을 쥐고 있습니다.
“네가 믿을 수 있고 마음속으로 말하며,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면” 바로 지금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 그러니 그저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저는 나았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의심의 그림자 하나 없이 무언가가 마음속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을 말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했고, 그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어긋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담긴 약속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어느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정말 믿으시려는 겁니까... 아니, 이 세상이 멸망하리라고 믿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리십니까? 세상이 어떻게 멸망할 수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요!”라고 했습니다. “원자력이 세상을 멸망시킬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말씀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바로 그 말씀이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 바로 그분이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시작이 없는 것들은 끝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시작이 없으시므로 끝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생명, 그분 자신의 생명, 영생은... 그리스어로 ‘조에’라는 말인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여러분에게 내려왔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영생과 함께 반드시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하므로 여러분은 결코 멸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영원합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던 그 위대한 권능을 말입니다... 그분은 마귀를 만나셨을 때 그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말씀을 취하셔서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 말씀의 권능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또 “이 몸을 헐라. 사흘 안에 다시 일으켜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약속하신 그 말씀을 먹고 계셨던 것입니다. 무덤이 그분을 붙잡아 둘 길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얼마나 단순한지, 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주권적인지 여러분이 볼 수만 있다면요! 수천 명을 고치지 않고 누운 채로 두시면서, 그분이 열매가 없다고 나무를 저주하는 데 그 위대한 권능을 쓰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의 일부이듯이, 그 나무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이 나무와 곤충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신다면,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더 관심을 기울이시겠습니까?
얼마 전, 한 넉 달쯤 된 것 같습니다. 제 옆집에 사는 우드 형제님은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교회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마비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저희가 갈 켄터키주 루이빌의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님께서 큰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의 아내는 감리교인이었습니다... 아니, 앤더슨 계열의 하나님의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제일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곳입니다. 아마 여기서도 그들의 방송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늘진 푸른 초장’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전국에 방송되는데, 링퍼 형제님이 목사님입니다. 우드 형제님은 그런 것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왔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에 이상한 경고를 느꼈습니다. 저는 해외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그가 저와 한 도시 블록쯤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 성령께서 그쪽을 향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성은 우드이고 켄터키의 어느 도시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신앙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거기에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밑으로 오그라든 아들이 있군요. 그리고 아내는 심한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들은 나았습니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돌아서서 서로 쳐다보았고 집회는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계속 진행했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옆구리에 손을 대더니 말했습니다. “뱅크스.” 그게 남편의 이름입니다. “이것 봐요. 멍울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데이비드, 일어서 봐!”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 아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두 다리가 완전히 정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옆집에 삽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에서 낭독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여기 여호와의 증인인 분이 계시다면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자기들의 교제에서 제명했습니다. 아들이 떠나가서 정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몇 해, 한 이 년쯤 지났습니다. 우드 씨는 제 옆집에 살고 있었고 참 좋은 이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뒤뜰에서 잠깐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우드 형제님 집으로 들어오더니, 그가 저더러 내려오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 형제 라일을 만나 보십시오.” 그런데 악수가 아주 냉랭했습니다. 그가 “안녕하시오.”라고 하더니 그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몸집이 아주 크고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드 씨?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형제분과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 그는 “그렇군요.” 하고 앉았습니다. 철저한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뱅크스가 그 집회에서 보았던 일들을 라일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에게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의 은혜로, 저는 잃어버린 죄인인 그 불신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드 씨, 당신 아내는 검은 머리인데 당신은 붉은 머리 여자와 어울려 다니고 있군요. 어린 아들이 둘 있습니다.” 그는 “뱅크스가 말해 줬겠지요.”라고 하더니 제게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어젯밤 당신이 그 여자와 집 안에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창문을 두드렸고, 당신은 그 여자를 그리로 보냈습니다. 당신이 가지 않기를 잘했습니다. 그랬으면 그 사람이 당신 머리에 총을 쏘았을 겁니다.” 그가 “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더니 바닥에 엎드려 주 예수님께 자기 삶을 드렸습니다. 단순하지 않습니까! 병든 어린아이 수백 명이 환상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의 노부친이 찾아왔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강으로 낚시하러 갔습니다. 그 일은 그의 아버지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볼 수만 있다면 믿겠소.”라고 했습니다. 길에서 그가 물었습니다. “나와 낚시하러 가겠소?” 저는 “오늘 오후에 방문할 일들을 다 끝낼 수 있으면 내일 아침에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그전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에버렛.” 하고 불렀습니다. 환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너는 개울은 모두 흙탕물일 겁니다. 하지만 위즈덤 선착장에 도착하면 물이 아름답고 푸를 겁니다. 낚시를 하겠지만 저녁까지는 아무것도 잡지 못할 겁니다. 저는 물고기를 스물다섯 마리쯤 잡을 텐데, 무게는 여덟 파운드나 열 파운드쯤 될 겁니다. 선생님은 한 마리를 잡으시고 아드님인 우드 씨도 한 마리를 잡을 겁니다. 아침에는 제가 비늘 있는 물고기를 잡을 텐데, 그 종류로는 큰 놈일 겁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다스리신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는 아들을 쳐다보며 윙크하고는 계속 갔습니다.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하신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단순함입니다.
이 주 뒤에 라일 씨와 뱅크스 씨와 제가 다시 그곳에 갔습니다. 제 친척들이 그 선착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밤새 낚싯줄을 드리워 큰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낚싯줄에 미끼를 달았습니다. 저는 바깥에 머물면서 마음을 조금 쉬게 하고 있었습니다. 낚싯줄에 미끼로 달려고 선피시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트 가장자리에 앉아 작은 플라이 낚싯줄로 미끼용 선피시를 끌어 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주님의 영이 내려오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니, 어딘가에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작은 동물이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고 제가 정신이 들었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드 씨가 낚싯줄을 내려놓더니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 나왔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 작은 동물에 대한 말씀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분이 섞여 계시지만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고양이를 조금 못미더워합니다. 괜찮은 동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브래넘 집안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두... 집에 고양이를 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어린 딸과 이웃집 어린 딸이 왔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누가 불쌍한 고양이에게 독을 먹였어요. 여기다 버리고 갔어요. 우리가 키우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상자에 넣어 뒀어요.” 제가 보니 그 상태를 알겠더군요. 그래서 “그래, 헛간에 놓아두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다음 날 아침에는 새끼 고양이들이 한 무리 생겼습니다. 제 어린 아들 조지프는 좀 거친 꼬마인데, 그 새끼 고양이들 중 하나를 집어 들더니 너무 세게 껴안아 그 작은 녀석의 숨이 멎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녀석을 내던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그 새끼 고양이를 일으키시려는가 보다. 아마 죽었을 테니 그걸 다시 일으키시려는가 보다.’ 뱅크스 형제님은 그러면 정말 놀랍겠다고 했고, 다른 우드 형제님도 말했습니다... 라일 형제님은 막 회심한 참이었고, 제가 그에게 막 침례를 주었으며, 그는 성령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거기서 그만두었고, 그날 밤 내내 우리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은 만으로 들어가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큰 선피시를 좀 잡아 보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앉아 낚싯줄을 던지고 있었는데... 입질이 없었습니다. 라일 우드 씨가 낚싯줄을 너무 오래 놓아두었다가 아주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이만한 작은 선피시, 초록빛을 띤 조그만 녀석이... 여기서는 ‘브림’이라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은 그 큰 낚싯바늘을 작은 배 속 깊이까지 삼켜 버렸습니다. 우드 씨가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아주 깊이까지 삼켰군요.” 그러더니 낚싯줄을 붙들고 손에 감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작은 배의 내장이 나왔고, 아가미 쪽의 위장 부분이 나왔습니다. 그는 낚싯바늘을 빼내고 그 물고기를 바라본 다음 물속으로 던졌습니다. 물고기는 두세 번 퍼덕이더니 작은 지느러미를 펼치고 옆으로 뒤집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작은 녀석아, 너는 이제 끝장이구나.” 바람이 불어 그 작은 녀석이 물길 안쪽으로 떠밀려 갔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얼마 동안 더 낚시를 했습니다. 한 삼십 분쯤 되었을 겁니다. 저는... 제가 말했습니다. “이상하군요.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물고기가 물지를 않으니까요.” 뱅크스 우드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한 번만 더 해 보겠습니다.” 그는 수련 잎들 뒤로 낚싯줄을 던졌습니다.
저는 거기에 앉아서 물 위의 떠다니는 쓰레기 속에 누워 있는 그 작은 물고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죽은 지 삼십 분쯤 된 상태였습니다. 작은 배의 내장이 입 밖으로 나와 있었고 아가미는 이미 하얗게 변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보다 더 기이합니다. 그 작은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그때 그 산들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이 휩쓸며 내려오더니 갑자기 저를 온통 덮었습니다. 저는 바로 전에 그들과 이 성경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언가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작은 물고기를 불러라!” 제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뱅크스 형제님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왜 그러십니까? 얼굴이 창백하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작은 물고기야, 너의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살리신다.” 제가 이 거룩한 강단에서 성경 앞에 서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고 말씀드리는데, 그 작은 물고기가 숨을 내쉬더니 물속에서 힘껏 헤엄쳐 갔습니다. 완전히 멀쩡해졌습니다. 라일 씨는 보트에서 몸을 홱 기울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저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 작은 녀석에게 ‘너는 이제 끝장이구나.’라고 했으니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 일로 제 목숨을 거두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드 형제님. 그분은 자신이 얼마나 단순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뿐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물고기와 나무에도 말입니다. 그분은 추수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원 전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무언가가 먼저 말씀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 물고기에게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이 그 말씀을 다시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온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하는 권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 일이 일어났다면, 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는 얼마나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다윗을 통해서 그랬듯 사람의 입술을 통해 하신 말씀이라 해도, 그 말씀은 [불분명한 말] 때 반드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네가 믿을 수 있다면”이라고 하십니다. 그토록 단순합니다. 그저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으십시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오,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께서 하늘에 계실 때, 원자 하나도 생기기 전,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기도 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영께서 모든 공간과 영원을 채우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자신을 경배할 피조물을 두시기로 마음속에 뜻을 정하셨습니다. 시대가 흘러가는 동안 의로운 사람들과 율법과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며 다시 오리라. 그리고 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으리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이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성경은 위대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곧 오실 주님, 주님은 우리나라의 죄들을 계속 보셨기에, 이 나라를 구원해 달라는 기도로부터 거의 얼굴을 돌리실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오늘날도 옛날 느부갓네살이 자기 정원에서 현대의 로큰롤 춤판을 벌였을 때와 같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의 거대한 성벽 뒤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강의 흐름을 바꿀 도랑이 파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적들은 성문에서 경비병들을 죽이고 거리에서 여자들을 강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달려와서 “근심하지 마십시오.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 주님, 오늘 밤 저희 가운데 한 분이 계시니 너무나 기쁩니다. 바로 초자연적인 분,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은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교회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늘의 스푸트니크들, 이 모든 것이 멸망이 가까이 왔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저희는 교회가 환난 전에 떠날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노아는 비가 내리기 전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천사는 롯에게 “이리로 오라. 네가 나오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라고 했습니다. 오, 주님, 교회는 그때가 되기 전에 떠날 것입니다. 벽에 쓰인 글씨와 지구 주위를 도는 스푸트니크들, 두려움에 떠는 세상을 볼 때, 그렇다면 주님의 교회의 휴거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먼저 이리로 와야 합니다. 오, 주님, 오늘 밤 주님의 백성에게 주님의 거룩한 임재의 특별한 복을 내려 주옵소서. 저희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에게 구주를 보내 주신 그 은혜로, 오늘 밤 다시 성령의 모습으로 그분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이 나무의 가지들 안에 들어와 주옵소서. 주님께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주님의 부활의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람들이 바라보고 살 수 있도록 그들의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시간이 참 쉽게 흘러갑니다. 오늘 밤 또다시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밝혀져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슬람교의 경전을 들고, 그들의 수가 우리의 세 배입니다만, 한 손에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을 들고 다른 손에는 주 하나님의 성경을 들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립니다. 시험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의 치유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미 나았습니다. 치유는 갈보리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위해 죽으신 모든 구속의 복이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마귀는 그저 여러분에게 허세를 부리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신학자의 생각을 받아들여 “그분은 천구백 년 전에 죽으셨고, 그것이 우리가 그분을 본 마지막이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가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입니다. 이제는 포도나무 줄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힘을 공급받기 전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위로자가 되시고 그 일들을 하도록 성령을 다시 보내셨다면 말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있던 불기둥이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서서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이 그분이셨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있던 불기둥이 그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그 빛, 곧 하나님에게서 왔노라. 나는 그 빛, 곧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 후에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그분은 거기서 바울을 쓰러뜨린 빛이셨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 군인들은 무엇이 보이는지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나 강해서 바울이...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감추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이제 그분은 다시 그 빛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이 사진이 그것입니다. 과학자들이 몇 년 동안 당혹스러워했던 사진 말입니다. 그분은 여기 계십니다. 그것이 어떤 영이라면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존 딜린저의 영은 무엇을 낳겠습니까? 총과 살인입니다. 화가의 영은 무엇을 낳겠습니까? 붓질입니다. 생키의 영은 무엇을 낳겠습니까? 악보의 음표조차 모르면서 에이브러햄 링컨 앞에서 노래했던 그 아름다운 목소리입니다. 그 무엇의 영이든 어떻겠습니까? 그 영의 열매를 맺고, 자기의 본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얼마나 형편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까!
이제 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잠시만 경건한 마음으로 계셔 주십시오. 저는 설교를 그리 잘하지 못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자신을 설교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처럼 교육을 받지 못했고 여러모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 은사는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두신 다섯 직분, 곧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목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입니다. 예정과 미리 아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보시고 각 시대를 위해 교회에 두셨습니다. 지역 교회에는 온몸 안에서 역사하는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 방언을 통역하는 것, 주님의 여러 가지 역사들과 예언의 은사입니다. 선지자와 예언의 은사는 서로 다릅니다. 예언의 은사는 이 사람에게 임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받아들이려면 먼저 세 명의 판단하는 사람들 앞에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지자로 태어났습니다. 언제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여전히 선지자입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 걸리셨습니까?
엔돌의 마녀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 올렸을 때, 그는 선지자의 옷을 입고 서 있었고 여전히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사람을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거처를 바꿀 뿐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죽을 때 죄인이라면, 불신자라면... 물론 충실한 교인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 가운데 죽는다면 정죄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죽는다면 그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영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입니다. 오늘 밤 이제 집회의 남은 시간, 앞으로 잠깐 동안 주님께서 저희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줬다고 했니? K였니?”] K입니다. 오늘 밤 집회를 위해 K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왜 이 카드를 나누어 줍니까? 여러분이 줄을 서 있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여기 병이 있어서 기도받고 싶은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건물 안 곳곳에, 사방에 계시는군요. 보십시오. 이백 명, 삼백 명쯤 됩니다. 카드를 몇 장 나누어 줬니? 쉰 장이군요. 그러면 이 삼백 명 가운데 누가 먼저 나와야 합니까? 바로 그겁니다. 제가 “이 여자분과 이 여자분이 나오십시오.”라고 하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됩니다. 카드를 가져와 여러분 앞에서 전부 뒤섞습니다. 가령 제가 여러분에게 한 장, 또 여러분에게 한 장을 드리면 아무도 어디에... 여러분이 1번을 받고 바로 옆 사람이 50번, 그다음 사람이 3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어디부터 부르겠습니까? 1번, 3번입니까? 아들도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지금 모릅니다. 그저 여기 서 있다가 주님께서 제 마음에 두시는 번호 어디에서든 부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직은 모릅니다. 또 이렇게 앞으로 나온다고 해서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 역사하시기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시면,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에게까지 계속 나아가십니다. 아시겠죠?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우리 가운데 처음 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께서 먼저 무엇을 할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가 무엇을... 베드로가 걸어오자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라 불리리라.”라고 하셨는데, ‘작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빌립이 왔다가 나다나엘을 데리러 가서, 산을 돌아 삼십 마일이나 가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빌립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분을 와서 보라.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 그것이 누구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입니다. “와서 보라.” 말씀으로 살펴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수백만 미국인이 일 분 만에 파멸을 맞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오 분 안에 이 나라 전체가 파괴되는 것을 무엇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밤 전국에 방송된 그 프로그램에서 과학계는 그 문제에 관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러시아보다 오 년 뒤처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스푸트니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사람을 넣을 수 있습니다. 수십 명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이 하늘로 올려보내 미국 바로 위로 이동시킨 다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몇 분 안에 가루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목숨을 구하려고 항복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수백만 러시아 군인들이 밀려들어 거리를 뛰어다니며 여자들을 붙잡고, 어린 처녀들이든 연인이든 누구든 강간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냉혹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좋은 집에 곧장 들어가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 집을 쓸 것입니다. 그때는 러시아의 것이 되고 우리는 위성국이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는 그것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면 이미 떠나고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때면 교회는 이미 떠나고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표적들이...
얼마 전 저는 몇몇 형제들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살면서 지금껏 공개적으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을 좀...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주님,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진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이 뒤흔들렸어야 하는데, 신문 한 곳도 그것을 싣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어난 이 큰일들을 보십시오. 이런 치유와 기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단순함을 말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왜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까?
저는 집회에 가서 제 동포인 미국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신학자들을 데리고 그들의 사무실로 가서 성경을 내려놓습니다. 거기서 성경을 펴고 말합니다. “자,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그분이 약속하신 바로 그것이 아닌지 보십시오.” 그러면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것을 확증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네, 꽤 괜찮군요.”라고 합니다. 그게 거의 전부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그토록 사랑하니 저는 확신합니다... 몇 분 전에 빌리가 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사람들이 아빠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모았어요.” 허치슨 형제님, 그러시지 않아도 됐습니다. 저는 필요하지 않았... 물론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무엇으로 제 아이들을 먹이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돈입니다. 무엇으로 제 양복을 삽니까? 여러분의 돈입니다. 제가 왜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왜 제가... 여러분이 아니면 저는 빈 의자들을 향해 설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저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제가 그 사람을 한없이 진지하게 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일로 그리스도께 답해야 합니다. 저는 한없이 진지해야 합니다.
들으십시오. 왜 이런 일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제게 떠올랐습니다. FBI의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가 그 사진을 제게 주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언젠가는 그 사진이 십 센트 잡화점 진열대에서 팔릴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닙니다.” 그 말이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상속 언약은 상속 언약하는 자가 죽기 전에는 효력이 없습니다. 사람을 숭배하는 일이 시작될 테니까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그 말이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몇 달 전 제가 공부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은 누가 받아들이고 누가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미리 아십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아십니다. 여기 계신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배우시니까요.
들으십시오. 그 말씀이 들리십니까? [녹음 공백.] 그러므로 오늘날 그분은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드리시는 사랑의 선물이 됩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위대한 엘리야가 땅에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엘리사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대머리라고 불렀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옮겨져 천국으로 가고 나서야... 아니, 들려 올라가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가 참으로 누구였는지 알았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목 베임을 당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제자들조차 그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요한이... 아니, 엘리야가 반드시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미 왔으나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니라.” 그것이 어떻게 그대로 지나가 버렸는지 아시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 그분은 자신이 아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모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셨으며,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시겠죠? 그분이 미리 아신 것 말입니다.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얻도록 잘 들으십시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일어나시기 전까지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성경을 살펴봅시다.
가톨릭 신자 여러분, 저도 가톨릭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성인인 성 패트릭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오늘 밤의 저만큼이나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는 없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지만... 그가 아일랜드에서 뱀들을 몰아낼 권능을 가졌을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고 그가 죽은 뒤에, 그가 떠난 뒤에야 교회는 그를 인정하고 성인으로 시성했습니다. 겨드랑이에 성경을 끼고 걸어 다니며 설교하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보십시오. 그가 설교하는데 새 떼가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자매들이여, 내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조용히 하십시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멸시받고 거부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들은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고 시성했습니다. 잔 다르크를 보십시오. 여기 학생 여러분, 잔 다르크 말입니다. 환상을 보며 영적인 삶을 살던 영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자에 관해 뭐라고 했습니까? “저 여자는 마녀다.” 그러고는 그 여자를 말뚝에 묶어 불태워 죽였습니다. 약 이백 년 후에야 그들은 그 여자가 성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서 강물에 던졌습니다. 참 대단한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떠나고 나서야 그들은 그녀를 알아보았습니다. 자, 둘 곱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는 이 강단에 서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은 지금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얼마 후 그것이 떠나고 나면 사람들은 이것을 집어 들고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지? 이 부흥은 언제 일어났지? 이 일은 언제 있었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저희 눈을 열어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옵소서. 저희가 주님을 기다리는 지금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카드 K입니다. 자, 우리... [브래넘 형제님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오늘 오후에는 여기서 몇 번부터 불렀지? 50번이었나? 그래. 50번, 맞는 것 같구나. 50번. 뭐라고? 1번부터 20번까지라고. 알았다.”] 오늘 오후에는 앞부분의 번호들을 불렀습니다. 오늘 밤은 뒷부분을 부릅시다. 그러면 K-85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85, 90, 95, 100번이면 충분하겠습니다. K-85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 뒤쪽에 계신 흑인 여자분이군요. 이리 오십시오. 바로 여기 강단 쪽으로 오십시오. 85번, 86번. 바로 여기 계신 여자분이군요. 좋습니다. 바로 여기로 오십시오. 87번. 줄을 세우는 것입니다. 87번, 가진 분이 계십니까? 자매님이군요. 87번, 88번. 기도 카드 88번은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기도 카드... [녹음 공백.]
모두 아주 조용히 계십시오. 이쪽을 보시고 기도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아십니까... 여기 그리스도인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아십니까? 앞으로 나와 이 자리를 맡아 보시겠습니까? 환영합니다.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여기 줄 옆에 앉아서 바라보며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무엇을 대표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서 있습니까? 제가 꼭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여기 서 있습니다. 제가 아니라 그분이며, 그분을 대표하려고 서 있습니다. 그러면 심판 때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서야 합니다. 그때 거기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심판 때에 저는 답해야 하고 여러분도 답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전했는지 답해야 하고,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답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 성경은 지금, 바로 지금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믿으십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분께 손을 댈 수 있습니까?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것처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시는 그분께 손을 댔습니다.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그분은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르셨습니다. 누가 손을 댔는지 모르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내가 약해졌노라. 효능, 곧 힘이 내게서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자, 환상 한 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여인 한 사람이 그분께 손을 대자 하나님의 아들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환상 한 번이 제게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런데 왜 이렇게 여러 번 일어납니까? 오늘 오후의 일을 보십시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이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좀 고쳐 보십시오.”라고 하십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못 합니다. 자,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돌아다니지 마시고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아주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십시오. 그분께 손을 대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으로 그분께 손을 댄다면, 그분이 곧바로 돌아서서 여러분에게 손을 대시고 말씀하시며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이야기하시지 않는지 지켜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사용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분에게 있는 목소리는 저와 여러분의 목소리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있는 손은 저와 여러분의 손뿐입니다. 우리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이제 기도하는 동안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저 자신도 이 회중과 함께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들의 질병을 놓고 그들을 주님 앞에 데려옵니다. 하나님, 주님의 백성에게 옷을 입혀 주옵소서. 각 사람에게 친절히 대해 주옵소서. 오늘 밤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해 주옵소서. 깨닫게 해 주옵소서. 그들의 눈에 안약을 발라 주옵소서. 주님, 제 눈에도 발라 주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백성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저희가 보게 해 주옵소서. 주 하나님 여호와여, 그분은 저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은 그분이... 그분이 오실 때까지 저희가 같은 일들을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 저는 제가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다음은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주님께 맡기며 오늘 밤 저희를 찾아와 주시고, 마음에서부터 온몸에 이르기까지 기쁨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지금 제 곁에 서 있는 이 여자분은 처음 보는 분입니다. 오늘 오후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여자분은 흑인이고 저는 백인입니다. 이것은 다시금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인종의 경계도 피부색의 구별도 없다는 것을 그 여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나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황인이든 갈색 인종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말입니다. 우리가 자란 나라는 아무... 우리 피부색은 다른 피부색보다 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피에서 모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제가 죽어 간다면 이 여자분은 제게 수혈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동물의 피를 몸에 넣지 마십시오. 그러면 죽을 것입니다. 이분의 피는 제 피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