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아침 제 설교 본문은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장... 2장 1절부터 성경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4장 14절과 15절도 본문으로 삼고자 합니다. 저는 말씀 읽기를 좋아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헤롯 왕 시대에 예수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매, 보라, 동쪽으로부터 지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르되,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다음은 4장 14절입니다. 선지자에 관해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그가 이르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
저는 여기서...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빛나는 큰 빛」입니다. 아주 색다른 성경 본문입니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대개 성탄절에 여관에 방이 없었다는 이야기,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주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 많이 설교해 왔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그런 말씀을 들으시므로, 어제 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지혜자들과 별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 마음에 와닿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지혜자가 그리스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래서 어젯밤 늦게까지 옛 학자들의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오늘의 주제에 조금이나마 빛을 비춰 줄 것을 찾다가 책상에서 잠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색다른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사로운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사롭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시며, 때로는 예사롭지 않은 때에 일하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예사로운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섬기는 이들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들은 독특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성탄절을 생각하는 이 계절에, 마땅히 있어야 할 참된 성탄절 대신 산타클로스라는 꾸며 낸 이야기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어린아이들 가운데 많은 아이가 성탄절을 장난감이 가득한 썰매와 집 위로 뛰어오르는 신비한 순록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꾸며 낸 이야기임을 알게 되어, 참된 성탄 이야기를 알게 될 때의 믿음마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참된 성탄 이야기는 순록이나 털을 두른 외투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의 복되신 주 예수님의 탄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일하신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온 세계 역사에서 다른 어느 때에도 이 일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바로 이때여야 했습니다. 이제 잠시 그때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살인자 헤롯이 왕으로 있던 때였습니다. 반드시... 이 무정한 사람이 그때 왕이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 말씀에, 그가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바로 그때여야 했습니다. 또한 그때에 세금을 거두는 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마리아와 요셉이 세금을 내려고 자기들이 등록되어 있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출생은 관청과 성전의 기록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지만,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여러 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가려면 어떤 위험들을 거쳐야 했는지 우리는 보았습니다. 마리아를 그곳으로 데려다줄 크고 훌륭하고 안락한 구급차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처럼 무슨 사정이라도 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따라야 했습니다. “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마리아의 몸 상태가 어떻든, 무슨 사정이 있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그 젊은 어머니에게 편의를 봐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걸어가거나 작은 나귀 등에 타는 것 외에는 이동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요셉은 언제 해산할지 모르는 마리아를 데리고 작은 나귀 등에 태웠다고 합니다. 나귀를 타 본 분이라면 타고 가는 동안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지 아실 것입니다. 작은 나귀는 산을 넘으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유대 남쪽에서 베들레헴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험하고 거친 길이었습니다. 나귀가 발을 잘못 디뎌 출산을 앞둔 이 젊은 어머니를 태운 채 넘어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는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 온 나라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들과 여행객들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강도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행렬을 보면, 말을 탄 자들이... 강도들이 말을 타고 들이닥쳐 그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아 달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젊은 신혼부부가 맞닥뜨려야 했던 일이 얼마나 큰일이었으며,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습니까! 또 그들이 지나야 하는 사막에는 사자와 해를 입히는 온갖 맹수가 돌아다녔습니다. 그런 짐승 가운데 하나가 나타났다면 어떠했겠습니까? 맹수가 이 작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면, 손에는 막대기 하나뿐이고 아내는 거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요셉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이런 위험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 자신들은 아마 교육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성경을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고 계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조금 전 이 방에서 녹음하는 자매님 가운데 한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 손으로 쓴 글과 하늘에 떠 있는 스푸트니크에 관해 언제 말씀하실 것이냐고 말입니다. “다음 일요일입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 어둠이 감싸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한결같이 움직이고 계신 것을 보십시오.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당시의 장면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나귀와 두 여행객이 마침내 도착합니다. 사막이 너무 뜨거워 밤에 길을 온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베들레헴 동쪽의 작은 산 위에 앉아 있다고 해 봅시다. 베들레헴은 골짜기에 있고, 거기에 작은 산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 동쪽으로 굽어져 도시 안으로 내려갑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도는 모퉁이 근처에,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크게 쌓여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아마도 그날 밤 마리아와 요셉이 도시로 내려가기 전에 그곳에서 잠깐 숨을 돌렸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요셉이 다정하게 자기 어린 신부를 나귀에서 들어 내리며 땅에 발을 디디도록 돕는 모습을 그려 봅시다. 그는 마리아를 데려다가 바위에 앉히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바로 저 아래 작은 마을이 보이오. 아마 저곳에서 우리에게 올 아기가 태어날 거요.” 그들이 동쪽에 있는 베들레헴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을 때, 별들이 조금 반짝이며 더 밝아지는 모습을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거기 앉아 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곳에서 동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안에서 일하십니다. 한 나라에서 어떤 일을 일으키시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그 일과 맞물리도록 준비하십니다. 많은 역사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저 멀리 동쪽에 이 사람들, 곧 우리가 지혜자들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대체로 “천문학자”라고 불릴 것입니다. 점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천문학을 흉내 낸 것으로, 점쟁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 몰려갑니다. 그것은 실제로 참된 천문학자를 그릇되게 흉내 낸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햄프턴이 말해 준 바에 따르면... 이 천문학자들은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조금 따라가 봅시다. 우리는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빌론에 있을 때 우리 주님의 복음을 알게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래전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도 천문학자들이 있어서 별들과 하늘의 천체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징조와 별들의 움직임을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옛날 왕들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일들을 알기 위해 이런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알리시기 전에 언제나 그분의 천체들을 통해 먼저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기록하십니다. 우리는 별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있는 조그마한 다섯 모서리의 물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별들은 이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세계들이며, 햇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갈대아 땅에서 칠십 년 동안 포로로 지내는 사이에 분명히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지혜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틀림없는 일입니다. 이 선지자는 뛰어난 지혜로 일들의 결말을 알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알았기에 지혜자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렸습니다. 지혜자들은 자기들의 옛 조상에게서 내려온 오래된 문서들을 참고했는데, 다니엘이 주님의 기록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이 함께 많은 의논을 했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지혜와 권능이 어떤 천문학자나 지혜자의 것보다도 훨씬 뛰어남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니, 벨드사살의 춤잔치가 있던 그날 밤에 입증되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나 천문학자들 가운데는 벽에 손으로 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과 권능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신성하게 보존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쪽에 있는 그들을... 저는 인도에서 그들과 이야기하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이슬람교도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본래는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제 생각에는 “부정한 자들”이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이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입니다. 그들이 본래 느부갓네살 왕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현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영적인 일들을 선포하기 위해 자연의 사물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오랜 수백 년 동안 다니엘의 가르침을 담은 문서 등을 간직해 왔습니다. 그들이 하던 일은 이러했습니다. 저녁 이른 시간이면 아사이 산맥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위에는 성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성이 지혜자들의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푸자니스트(pujanist) 잔치를 열곤 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해가 지면 차양 위나 테라스로 나가, 거기에 있는 관측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이 흔히 하듯 해를 향해 절하며 “알라! 알라!” 하고 외쳤습니다. 또 거룩한 물로 스스로를 축복하곤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신성한 것은 무엇보다 불이었습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불 속에 사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실제로 빛 가운데 사시며, 태워 버리는 불이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은 신성한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 불을 지켜보았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이 불 속에 사시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그들에게 비추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불은 햇빛이 사라졌을 때 가장 밝게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관측탑으로 나가 위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잘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별들로 이루어진 저 거대한 천체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부지런히 살폈습니다. 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별들을 살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펼쳐지는 것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주목하고, 우리가 이토록 용감하게 지지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위대한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과 같은 이런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가르쳤던 바로 그 다니엘은, 마지막 날들에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공적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경 말씀들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탐구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잘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찾고 뵙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내게 가까이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가까이 가리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가까이 가도록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도록 분명히 정해 놓으셨으며, 그분의 위대한 시계가 시간을 알리는 그대로 그 일들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이라고 해 봅시다. 잔치가 끝나고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한 다음, 이 일행은 관측탑에 올라갑니다. 하늘에 거대한 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아주 오래전 현자들의 문서를 가져다 펼칩니다. 그들은 그 문서를 들여다보며 예언되어 있던 어떤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아마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이어졌을 것입니다. 왕국들이 크게 몰락한 일, 위대한 제국들이 무너진 일,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 그리고 땅을 찢어 놓고 동료들의 피로 적신 전쟁들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일들만을 이해하므로, 지나간 위대한 시대들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또 자신들의 수치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성한 불은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며, 혀를 날름거리듯 허공으로 타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밤이 깊어져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이를테면 열 시나 열한 시쯤 되었을 때, 그 무리는 거기 앉아 아마 찬송을 부르고 있었거나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역사가들도 그것을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분명 영적인 마음가짐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합과 영이 있는 곳에서 경배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그분 자신과 영적으로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그분은 이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의 생명을 살려 주시고, 여기서 암이나 다른 질병으로 아마 죽어 가고 있을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의 생명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부활 후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도, 글로바와 그의 친구가 그분께 이야기를 드리고 성경 말씀이 인용되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가 그분과 이야기할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이야기하는 데는 무엇인가 있습니다!
그들은 옛 문서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여러 지혜자들에 관해 읽었습니다. 그들의 경전 이름을 제가 지금 제대로 발음할 수는 없지만, 젠드아베스타, 아마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읽으며 자신들의 거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우상 숭배자였고 백성에게 수치와 불명예를 안겨 주었다는 사실에, 이 지혜자들은 틀림없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신성한 불은 참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성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관측탑에 앉아 별들을 살피는 현자들에게 그것을 내놓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밤마다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왕국들의 몰락을 이야기하던 중, 그들은 다니엘서의 한 대목을 읽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마침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산에서 잘려 나온 돌이 땅의 왕국들을 치매, 그것들이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었더라. 이 큰 돌은 솟아올라 온 땅을 덮는 산이 되었고, 그분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 되리라.” 그러자 제국들이 더 이상 몰락하지 않고 왕국들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때를 향한 소망이 그들에게 타올랐습니다.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한 왕국이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 곧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위를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별들 사이에 낯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장엄한 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거기에 있지 않았거나, 지혜자들의 눈에 들어온 적이 없던 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 말씀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그 지혜자들을 상대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절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 곧 온갖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5절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며,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의롭게 그분을 섬기려는 이들을 존중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못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의 목적이 의롭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단도 경계를 그어 하나님을 특정 신조 안에 가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바로 거기서부터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자들이 마음이 정직했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뵙기 원했으며, 그분의 예언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그를 일으키실 것이며 그분의 왕국은 끝이 없고, 영원한 왕국이 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것이 하늘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지혜자들이 모두 말문이 막혀 서 있는 모습을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태양계의 법칙을 거슬러 하늘의 거대한 별자리들로부터 와서, 막 일어나려는 일을 선포하는 그 별의 놀라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이 제가 다 말하지 않은 뜻까지 헤아려, 우리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뛰어넘으시며 자신을 알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일어나셨고, 그분의 위대한 하늘의 몸으로 오늘날 살아 계십니다. 여기 있는 그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세상의 모든 불신자에게 맞설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예사롭지 않게 일하십니다.
그들은 하늘의 빛들을 살펴 왔지만, 이 빛은 다른 모든 빛과 달라 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안의 빛들을 살펴 왔습니다. 감리교의 빛, 침례교의 빛, 오순절교의 빛, 장로교의 빛을 살펴 왔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그분을 선포하는 다른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은 크고 장엄한 아름다움과 권능 가운데, 이 마지막 날들에 성령의 모습으로 교회에 보내진 하늘의 몸으로 계십니다.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선포하시며, 이제 그분을 믿는 이들 가운데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영원한 빛이십니다. 오,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은 거기 넋을 잃고 서서 서로 말을 건네지도 못했습니다. 이 빛의 영광에 마음을 온통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오, 쇠약해진 가련한 친구여,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그분의 권능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 그분의 위엄에 마음을 사로잡히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성하신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것은 제단 앞으로 나와 목사에게 오른손을 내미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침례를 받으려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조개껍데기로 뿌리는 물을 받으려고 서 있는 것과도 같지 않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성한 믿음의 닻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새 생명을 넣어 줍니다. 죽어 가는 이에게 소망을 줍니다. 약한 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병든 이에게 치유를 줍니다. 은혜를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 복을 줍니다. 그분의 임재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군가 육신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영광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빛이신 그분의 임재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언가 일어나 여러분 안에 그 소망의 닻이 내려지면, 그 후에 병이 아무리 심해져도 마귀가 그와 반대되는 어떤 것으로 여러분을 유혹하려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영원히 닻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여러분을 아무리 그릇된 삶으로 이끌려 해도 여러분은 영원히 닻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분의 임재 안으로, 여러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변화시키고 마음속에 기쁨을 주며 구원의 종이 울리게 한 신성한 빛 가운데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망과 그 그늘이 여러분에게서 달아났고, 이 신성한 빛 가운데 들어섰을 때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 지혜자들이 넋을 잃은 채 서서 그 빛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오, 무언가 막 일어나려 한다는 참으로 장엄한 증표가 아닌가!” 참으로 오늘날도 우리가 주 예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무언가 곧 일어나리라는 신성한 증표입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얼마 후에... 아마 밤새도록 그것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빛났던지요! 다른 별들보다 더 밝아 보였습니다. 그 별에서 눈을 떼어 다른 별을 볼 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그 위대한 영원한 빛이 우리 얼굴을 비추는 것을 본다면, 분명 우리 교단을 바라보며 “우리는 침례교입니다”, “우리는 장로교입니다”, “우리는 오순절교입니다” 하거나 그 밖의 어떤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 빛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분이 영원한 빛이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해가 떠오르면... 낮에는 잠을 잡니다. 저는 그들이 인도의 거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머리를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자고, 밤에는 나가서 별들을 지켜보며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분을 기다리는 이들만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이들만이 그분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치유를 믿는 이들만이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구원을 믿는 이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선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생각으로 지어낸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계시여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에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밤마다 그 별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관해 의논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고 찾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 또 다른 히브리인의 기록이 있소. 그들의 선지자 가운데 발람이라는 사람이 남긴 것이오. 그는 ‘야곱에게 한 별이 떠오르리라’고 했소.” 그들은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기록이 성취되어 우리 온 존재를 살피는 큰 빛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의 마음도 얼마나 기뻐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얼마 동안 지켜보던 어느 날 밤, 이상하게도 그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빛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 빛은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낙타에 짐을 싣고 자신들의 모든 진귀한 보물을 챙겼습니다. 선물을 가져간 것입니다. 그들이 그 빛을 따라 길을 떠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이 하늘에 속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 더 큰 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여,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별들이 빛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임을 압니다. 달이 빛나는 것을 보면 더 큰 빛을 반사하고 있음을 압니다. 교회가 빛나는 것을 보면 더 큰 빛, 곧 불멸하며 영원한 빛을 반사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어둡게 하고 마음을 돌리며 믿음을 돌려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빛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산을 떠나 서쪽 비탈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비탈을 따라 티그리스강까지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큰 티그리스강을 따라 내려가 바빌론에 이르렀고, 유프라테스강의 여울을 건너 더 내려가 팔레스타인 땅 가장자리를 따라갔습니다.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사막을 여행하기에는 밤이 시원했으므로 그들은 밤에 길을 갔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별이 어둠 속에서 빛났기에 그 빛을 따라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빛이 그들의 길잡이였습니다. 그들이 올라오다가 마침내 그 빛은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이르자 그 빛이 꺼졌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것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그들 자신이 빛을 비출 차례였기 때문입니다.
그 큰 도시의 구불구불한 거리들을 지나, 고대 세계의 수도나 다름없던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갑니다. 한때 위대한 멜기세덱의 도성이었고, 옛 위대한 선지자들과 서기관들이 그토록 많이 기록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게으르고 육신적이며 반쯤 정신을 놓은 경건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 복음의 빛은 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도시에 이방인들이 와서 외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오,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여, 우리가 바라보고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을 얼마나 놀랍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까! 유대인들이 너무도 깊이 잠들어 있어서, 지혜자들, 곧 동쪽의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왕을 찾으려고 먼 나라에서부터 여행해 왔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아마 초등학교 정도밖에 나오지 못한 소년 소녀들을 택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귀에 대고 외칩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위대한 권능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리려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경의를 표하러 왔습니다. 왕들의 왕께 존귀를 돌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교단의 잠에 빠진 교회는 그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토록 흡족해하는 짐승들이, 동방의 무늬 있는 천과 술 장식을 드리우고... 필레온이 언젠가 말했듯이, “그들은 왕은 아니었으나, 왕의 귀빈이 될 만큼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기 위풍당당한 짐승 등에 앉아 거리를 지나며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 성경은 온 예루살렘과 헤롯도 불안해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이 무언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읽고 쓰는 법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초교파적 움직임이 세상에 충격을 주고 있는데, 교회는 신학적 활동에 갇힌 어리석음에서 일어나 살아 계시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과 영광을 보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처음에 임하셨던 그대로 임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 마지막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혜자들이 거리를 지나가며 전한 말에 왕부터 문지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술렁였습니다. “그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들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스푸트니크들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전면적인 파멸의 징후가 눈앞에 이르고, 남녀가 죄에 빠져 경건하지 않게 살아갈 때,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외칩니다. 그런데 교회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멸하며 영원한 빛이신 성령께서는, 누구든지 원하며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비추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빛은 사라졌고,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현자들과 선지자들이 미가라는 작은 선지자, 곧 소선지자의 예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말했습니다. “기록되기를, ‘너 베들레헴아, 네가 유다의 모든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작지 아니하냐? 그러나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곧 유대인들의 왕께서 태어나실 곳은 틀림없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들에게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문을 걸어 나와 그 어둠의 도시를 떠나자, 빛이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아주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조금 외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주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감격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의 여정의 최종 목적지로 인도하려고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갔습니다. 이제 그 별이 전보다 낮게 떠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그들은 밤길을 가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주님의 손길에 인도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 별은 작은 마구간에 이르렀습니다. 언덕 비탈에 난 작은 공간, 곧 동굴이었고, 별은 그 동굴 위에 머물렀습니다. 이 위대한 지혜자들은 일 년 육 개월이 넘도록 길을 여행하며 살피고, 별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길잡이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별이 멈추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아기와 요셉과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보물함에서 선물을 꺼냈습니다. 그분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시간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잠깐 여기서 멈춰 봅시다.
황금은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그분은 왕이셨습니다. 앞으로 왕이 되실 분이 아니라,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이셨습니다. 그분은 왕이셨기에 그들이 황금을 드렸습니다. 또 유향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아주 값비싼 향료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향료, 유향은 무엇을 뜻했습니까?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고 선을 행하셨기에,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내가 되셨습니다. 왕이시기에 황금을 드렸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내가 되셨기에 유향을 드렸습니다. 그분의 삶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향기로 들이마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이 그분 안에서 비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도 향기로운 향내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안에 비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나사렛 예수님처럼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여 주님께 향기로운 향내가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투고, 논쟁하고, 안달하고,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코에 악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서는 안 될 곳들을 들락거리며 살아왔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합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합니다. 다투며 세상 편을 들고, 중대한 결정의 순간에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향기로운 향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하셨고, 이 지혜자들은 유향을 드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분께 몰약도 드렸습니다. 몰약이 아주 값비싸지만 쓴 약초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몰약, 몰약은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그분의 위대한 최고의 희생입니다. 갈보리에서 으스러져 다 쏟아진 그분의 젊은 생명입니다. 거기서 세상의 죄들이 그분을 산산이 짓눌렀습니다. 왕이시기에 황금을, 그분의 온유하고 사랑 많은 삶으로 인해 유향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한 그분의 희생, 곧 그분의 죽으심으로 인해 몰약을 드렸습니다. “거기서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래서 그들이 그분께 몰약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꿈에 하나님께 경고를 받고 다른 길로 갔습니다. 되돌아가지 않았고, 그들의 여정은 완성되었습니다. 별도 자기의 길을 다 마쳤습니다. 친구여, 오늘날 그 별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합니까? 다니엘이 그 답을 줍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입니다. “지혜롭고 자기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늘의 궁창들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별들입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이며, 주 예수님의 권능과 거룩함을 비추는 별입니다. 그분의 삶을 비추고, 그분의 말씀하심을 온전히 나타내며, 그분의 치유의 권능을 온전히 나타내고, 그분의 부활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을 우리에게 비춰 주신 모든 면에서 그분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별들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별이 되어야 합니까? 이 별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인도받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늘의 권능에 인도받았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비추어 그분께로 인도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죄인들을 그분께로 데려오는 별이 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범할 수 없습니다. 예사롭지 않아야 합니다. 보통과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독특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그랬습니다. 그 별은 독특했지만 찬란했습니다. 세상의 교육이나 세상일에서 찬란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드리는 희생으로 찬란한 것입니다. 지혜자들이 왕들의 왕 앞에서 엎드렸듯이, 우리도 그분의 빛을 비추기 위해 몸을 엎드립니다.
여러분은 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길 잃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지친 사람들을 인도하며, 여행자의 발걸음과 찾고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별입니다. 그러므로 별은 스스로 인도받을 수 없습니다.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멀리하고 지금 이 세상에서 경건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찬란함을 비추어야 합니다. 빛을 비추신 그 위대하신 분의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죽어 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권능 가운데 계신 주 예수님의 임재를 반사하고 비추어야 합니다. 그분은 어제 그러하셨듯 오늘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별은 자기의 길을 다 마쳤을 때 아무 영예도 취하지 않습니다. 별은 그저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가 그 완전한 빛을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아침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도 하나님의 빛들이지만, 우리 자신에게 영예를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도하는 환자나 어떤 사람을 이끌어 왔다면, 그들을 데려왔을 때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그들을 크고 완전한 빛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길을 밝혀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말입니다. 산타클로스라는 꾸며 낸 이야기나 어떤 교단의 교회가 아니라, 그 참되고 완전한 빛,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신 그 흙을 향해 고개를 숙이십시오. 밤에 별이 빛나고 낮에 해가 비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여러분은 언젠가 그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둔 이때에 여러분이 여기 계시면서, 성령께서 여러분을 구주께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고 그런 식으로 그분을 영접하기 원하신다면, 그분을 향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제가 날마다 걷는 길을 비춰 주소서. 마침내 저를 그 완전한 빛께로 인도하셔서, 제 삶이 그분의 삶과 하나가 되고 제가 불멸하며 영원한 빛을 누리게 하소서.” 사랑하는 자매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께도, 형제님께도, 저 뒤의 형제님께도, 그리고 자매님과 이 형제님께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오, 자매님, 주님께서 자매님을 보고 계십니다. 예, 이쪽의 부인도 주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오늘 아침 성령을 보내셔서 잘못된 길로 이끌려 온 저의 가련한 삶을 인도해 주소서. 저는 이리저리 다니며 교회에 가입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도 되었고, 침례교인도 되었고, 장로교인도 되었습니다. 오순절교회에도 갔습니다.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알고 보니 여전히 의문만 가득하고,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하늘의 몸, 곧 새벽별이신 하늘의 존재, 하나님의 위대한 영께서 오늘 저를 그분 안에서 제가 있고 싶은 그 자리로 이끌어 주소서. 거기서 제 마음을 구유로 삼아 그분을 모시게 하소서. 그분께서 모든 그늘과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지나 저를 인도하셔서, 제가 그 길에 이르러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마치기 전에 또 다른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그리고 형제님, 또 형제님도요. 예, 이번에는 남자분들이 많이 손을 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에서는 대부분 여자분들이었고, 이번에는 남자분들이 손을 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빛을 따라 찾아왔던 이들은 지혜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마을로 들어갔고, 거기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지혜자들은 도착할 때까지 오랫동안 길을 왔지만, 마침내 그들의 여정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별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여러분도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해 왔고, 어쩌면 먼 여정을 거쳐 왔을 것입니다. 아마 오늘 아침이 그 절정일 것입니다. 이제 그분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시면서 구주로 영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단 초청을 마치기 전에 한 분 더 계십니까?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오 주님, 실패할 수 없는 성경이 제게 말해 준 대로, 주님께 드려졌던 이 몰약은 주님의 생명이 쏟아지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주님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채찍 자국이 우리를 고치도록 주님은 채찍질하는 기둥에서 쓰라린 매를 맞으셨습니다. 주님, 오늘 제게는 주님의 치유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제 삶에서 모든 의심을 거두어 주시겠습니까? 제게서 의심을 없애 주셔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지금 겸손히 주님께 나아와 저의 치유를 위해 주님을 믿게 하소서.” 병드신 분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친구여, 주님께서 여러분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그분은 부활절의 아기로... 아니, 성탄절의 아기로,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것에 넉넉하신 분으로 서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십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저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합니까?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아침 별의 메시지를 듣도록 주님께서 보내 주신 이 작은 무리를 주님께 데려옵니다. 주님께서는 온갖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대하십니다! 밀주업자도 상대하시고, 술 취한 사람도 상대하시고, 과학자도 상대하십니다. 가정주부도, 목사도, 교인도 상대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너무도 위대하셔서 아무도 주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민족과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마음이 신실한 이들에게 주님은 긍휼을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손을 든 이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스무 명이나 서른 명쯤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위대한 영원하고 불멸하는 빛이 그들의 혼에 비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여러 의식을 거치면서 그토록 갈망하고 찾았던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소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이사야가 말했듯이, “이 백성은 짙은 어둠 속에 앉아 있으나 큰 빛이 그들에게 비치었도다.” 주님, 오늘 주님을 갈망하는 이 마음들에 이 예언이 성취되게 하소서. 그들에게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화평을 주시고, 그들이 주님을 만났으며 주님과 이야기했고, 상하고 찢긴 자신들의 삶을 주님께 드렸다는 온전한 만족을 얻게 하소서. 주님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그들을 고치셔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귀한 그릇이 되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이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귀한 입술에서 나온 마지막 말씀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우리가 아는 한 아이가 여기 누워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신실한 이들이 플로리다에서 비행기로 데리고 온 아이입니다. 지금 상태가 아주 위중합니다. 주님의 많은 종이 기도했지만 말입니다. 많은 의사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어머니와 아이를 걱정하는 이들이 그것을 마지막 대답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저는 참 기쁩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방법을 다 찾아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이 사랑스러운 어린아이가 나아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오 주님, 여기 앉아 있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이 아이에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많은 이가 일어나, 지혜자들이 “우리가 동쪽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노라” 했듯이 간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가 일어나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았고, 그분의 치유의 권능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권능은 그들의 몸에서 암과 눈먼 상태와 팔다리의 장애와 온갖 질병을 없애 주었습니다. 주님, 우리는 여러 나라에 걸쳐 목소리가 터지도록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주님의 자녀들도 그분의 복에 똑같이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가 사역자로서 기도하고 안수하는 의무를 이행할 때, 주님,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낫게 하소서. 그분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의 그 예언들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했던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모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여기서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려고 손을 드신 남녀 여러분에 대해, 제 마음의 신실함과 진실함을 담아 아주 겸손히 믿는 바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관례임을 압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단 앞으로 와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일입니다. 손을 들 때 여러분의 말이 진심인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고백에 따라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중력의 법칙을 거슬렀습니다. 그 별이 태양계의 법칙을 거슬렀던 것과 똑같습니다. 태양계는 일정한 질서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별은 그것을 거슬러 그 모든 것을 가로질러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보통의 질서대로라면 여기 있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은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의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것을 뛰어넘으시며 “내가 너를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이십오 년을 기다렸지만,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 약속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 성탄 전야에 여기 서서 이 작은 무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 그 부인이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이트 부인입니다. 뉴올버니에서 오신 라이트 부인, 여기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그분을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뉴올버니에서 잘 알려진 부인입니다. 지난번 이곳 치유 집회에서... 저는 몰랐습니다. 분별이 이루어지는 중이었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 저녁에 분별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일주일 전, 지난 일요일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침에는 여러분이 설거지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므로, 사람들이 제시간에 여기 와서 줄을 서고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에는... 주님의 뜻이라면 아마 다음 일요일 저녁에 해 보려고 합니다. 분별이 이루어지는 동안 있었던 한 가지 일을, 라이트 부인의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부인은 여기 올 수 없었습니다. 뉴올버니의 의사들이... 그 의사들의 이름을 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지 모릅니다. 의사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의사들을 사랑합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의사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의사 친구가 많습니다. 선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이 치유자는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할 것입니다. 그저 자연의 작용을 도울 뿐입니다. 그들은... 뼈를 맞추거나 막힌 것을 제거하거나,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러나 세포를 창조하셔야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치유하시거나 조직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어떤 약도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부인은 심장 쪽에 혈전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육십 대였습니다. 몸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평소의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화를 걸어 왔고, 아내가 저를 전화기로 데려가며 말했습니다. “빌리, 뉴올버니에 있는 어떤 부인이 당신과 통화하고 싶대요.”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오늘 아침에 오십시오. 여기 태버내클에서 치유 집회를 할 겁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저도 이분을 모시고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저희는 형제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들었습니다. 이분을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와 주시겠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귀에 전화기를 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침대를 이쪽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침대를 옮기고 그 부인에게 전화기를 대 주었습니다. 부인은 거의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믿으시기만 한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그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난번 일요일에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굶어 죽어 가는데 부탁을 한다고 합시다... 빵 한 덩이면 제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여러분이 제게 이십오 센트를 주신다면, 저는 빵을 가진 것과 똑같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빵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치유하는 권능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그것이 그 이십오 센트입니다. 저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빵은 아마 제게서 십 마일 떨어진 곳에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이십오 센트를 가지고 있다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십오 센트를 가진 것만으로도 빵을 먹고 있는 것처럼 행복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개울 바닥을 지나 여울을 건너고, 외나무다리를 지나 가시덤불을 헤치고 내려가 언덕을 넘어 올라가야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가는 내내 점점 더 배가 고파져서, 너무 배고픈 나머지 배가 뒤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기뻐할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빵 한 덩이를 살 이십오 센트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마음에 품고 이십오 년 동안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구한 것을 받았습니다.
저기 계신 사랑하는 자매님. 상황이 어떻든 그 이십오 센트, 곧 믿음, 영어로 f-a-i-t-h인 그 믿음을 붙드십시오. 그것을 손에 쥐고 마음에 간직하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제 믿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믿어야 합니다. “내 아이는 살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내게는 그것을 믿을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부정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로 그 영역 안으로 옮겨 놓으십니다.
그 부인이 어제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지만 그 사람과는 통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가 전화를 받았지만 아내와도 통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요?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오, 제 모습을 보실 수만 있다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의사들이 그 혈전의 조각 하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흩어져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정상이 되었고 건강하게 걸어 다닙니다. 여러 해 동안 이렇게 건강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라이트 부인입니다. 사는 곳은... 자기 이름도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뉴올버니 어딘가에 사는데, 지금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전 지난 일요일, 분별이 이루어질 때 여기 서서 저는 말했습니다. “태버내클 교인 중에서는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태버내클 교인이 아닌 분들을 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합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저 뒤 어딘가에 히커슨이라는 작은 체구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히커슨 형제님을 압니다.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는 산 증거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아래로 몸을 낮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는 뒤쪽에 앉아서 어떤 남자의 팔 사이로 보고 있었는데, 저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 남자분의 팔 사이로 저를 바라보는 작은 체구의 분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마 형제나 처남, 또는 그런 관계의 분인 것 같습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분으로, 정신을 잃었으며 회복될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나왔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가 회복되리라.” 그 형제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며칠이 지난 뒤까지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사람은 완전히 정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켄터키의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 목사 형제님, 콜린스 형제님도 또 하나의 하나님의 은혜의 산 증거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두 분도, 모두가 여기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젯밤 조지아에서 오신 파머 형제님과 함께 제 집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여 루이빌로 가는 길에 들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도 받았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보상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은혜의 산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불멸하는 은혜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원수가 여러분을 속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불멸하는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 불멸하는 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의 닻을 여러분의 마음에 내리십시오.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가 여러분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며 안수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지켜보십시오.
상황이 어떻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산에게 이르기를, 뽑혀서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네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네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이제 사전을 인용하겠습니다. 그것은 원래의 그리스어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 산에게 이르기를, 들어 올려져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네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면, 네가 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
여러분이 “산아, 옮겨지라” 하고 말했는데도 산이 그대로 서 있으면, “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라고 합니다. 오, 일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산아, 옮겨지라”라고 했을 때, 수천억, 수십억 톤이나 되는 그 산에서 어쩌면 작지만 의미 있는 모래알 하나가 떨어져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모래알 하나가 움직였지만, 그 일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 믿음을 붙들고 산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십시오. “질병아, 내 아이에게서 떠나라. 질병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몸에서 떠나라.” 그리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서 좋은 균들은 새로운 갑옷을 입고 새로운 무기를 들며, 원수는 물러서기 시작합니다. 원수는 패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자신의 몰약을 마시실 때, 마귀와 그의 모든 힘을 무찌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마귀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셨고, 이제 마귀에게는 허세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끝까지 견뎌 낼 수 있다면, 그분께서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분의 빛을 비추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주님, 나머지는 주님께 맡깁니다. 이제 이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 그들이 일어나 기도받으러 이 앞으로 나올 때, 성령께서 이 작은 태버내클에 오셔서 모든 마음에 믿음을 주시옵소서. 오늘 그들이 이곳을 떠날 때, 어둠의 시간이 지나고 별을 다시 보았던 그 지혜자들처럼 행하게 하소서. 그들은 아주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이 사람들도 기름 바름을 받고 기도받을 때 그렇게 하게 하소서. 야고보는 복음서에서 말했습니다. “장로들을 불러 그들이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하나님의 믿음이 자기들의 마음에 들어왔고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받을 것임을 알고, 사람들이 아주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아버지,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이 하실 일을 하셨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안수하고 기름을 바르는 것 외에는 제가 아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이제 나머지는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실패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아침 병든 이들에게 기름을 바를 때, 하나님의 불멸하는 시계의 모든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움직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믿을 수만 있다면, 오직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이 찬송은 제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는지요! 수백 가지 언어로... 제가 강단으로 나올 때 이교도들과 호텐토트 사람들이 이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바로 이 자매님, 지금 피아노를 치시는 이분이 십일 년 전 제가 사역의 길을 떠나기 전에 이 찬송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 친구 폴 레이더가 지은 곡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다가 뇌전증을 앓는 소년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 제 아이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기만 하라.” 폴은 거기서 찬송의 본문을 얻었습니다. 오직 믿기만 하라, 오직......... 이제 여러분의 질병에서 눈을 돌리십시오. “오직 믿...”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까?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그분께서 여기 서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사랑스러우십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빛을 비추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치유받는 것을 보십시오. 물론 여러분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눈먼 사람이 치유받았습니다. 보십시오. 다른 이들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오, 그것을 보십시오! ............가능하니.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저는 이미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 지금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저는 이 질병의 산에게 말합니다. ‘옮겨져서 나에게서,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 누구에게서든 떠나라.’ 저는 그것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십시오. 그 질병이 찢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느새 의사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네빌 형제님, 나와 주시겠습니까? 이제 여기 이 통로에 계신 분들은 이쪽으로 일어서 주십시오. 그리고 저 통로에 계신 분들은 뒤로 돌아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그러면 한 줄로 설 수 있습니다. 장로님들도 앞으로 나오셔서, 기도받는 사람들과 함께 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어린 소녀에게는 우리가 내려가서, 여기 누워 있는 이 어린아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이가 있는 바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기도받을 분들, 다른 분들은 이제 이쪽으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바로 지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이 일에서 맡은 몫이 있습니다. 저기 서 있는 안내위원들이 지금 어느 줄에 서셔야 하는지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라, 작은 양 떼여, 십자가에서 보좌까지, 자기 백성을 위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셨네. 땅의 모든 권능, 위의 모든 권능, 그분이 사랑하시는 양 떼를 위해 그분께 주어졌네. 이제 성탄의 별은 무엇을 말합니까? 오직 믿기만 하라, 오직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기만 하라. 오직 믿기만 하라, 오직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기만 하라.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지금 여기서 많은 분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한 남녀, 성도다운 경건한 남녀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 곁에는 네빌 형제님이 서 계십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그분이 경건한 사람임을 알아 왔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라고 하신 그 작은 체구의 분은 누구십니까?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아주 신실한 분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제가 아는 가장 경건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설교하고 이야기하는 그대로 사십니다. 손에는 기름 바르는 병을 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에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믿음이 있습니까? 있다면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 곳곳에 사역자들이 있고, 경건한 사람들이 앉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제 무언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무언가가 여러분을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것은 별, 그 별, 새벽별이었습니다. 이제 불멸하며 영원한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우리가 여러분에게 침례를 주거나 다른 일을 할 때처럼, 이제 이 절차를 따르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병든 자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말로 저는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온 세상 어디서든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내 종들이 병든 자들에게 안수할 것이요, 그들은 나으리라.”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불신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설령 이 형제님과 제가 복음을 전할 자격조차 없다 하더라도, 실로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그것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뒷받침하실 의무는 없으시지만, 자신의 말씀은 반드시 뒷받침하셔야 합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기 회중 가운데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실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도받는 여러분은 저쪽을 바라보십시오. 바로 저기서 지금 여러분을 위한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 고개를 숙이시고, 형제님이 기름을 바르는 동안 모두 기도하십시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 계신 분들을 위해 회중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 이제 저희는 주님의 종으로서 사역자의 의무를 다하려고 나아갑니다. 주님, 여기 줄에 서 있는 많은 이가 틀림없이 아주, 아주 심하게 아픕니다. 죽음이 가까운 이들도 있습니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플로리다에서 온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조지아에서 오신 분들, 여러 곳에서 오신 분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오신 분들, 오하이오에서 오신 분들도 오늘 아침 이 작은 무리 가운데 모였습니다. 이들은 여기 호텔이며 여러 곳에 머물며 기도받을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집회에 참석했고, 주님의 손길이 움직이며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바로 지금 여기서 산타클로스라는 허구를 거두어 주시고, 참된 성탄 선물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소서. 주님, 지금 그들에게 건강을 주소서. 그들이 믿으며 왔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들과 하늘의 주 하나님 사이에 서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대신해 저희 목소리를 내고자 나아갑니다. 주님,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저희는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심을 압니다. 저희가 그것을 믿는 줄도 압니다. 이제 주님, 그들도 믿고 자신들이 구한 것을 받게 하소서. 저희는 이제 그리스도의 대사로 나아가며, 온 교회가 한 몸이 되어 한마음으로 그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그들이 떠날 때 아주 크게 기뻐하며 떠나게 하소서. 동트는 빛이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환한 조명이 우리 쪽을 향했고, 우리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권능과 영광 가운데 계신 것을 봅니다. 아멘.
이 자매에게 기름을 바르는 동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 자매에게 안수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이 자매의 질병이 고침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받으십시오. 이 형제에게 기름을 바르는 동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형제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이 형제에게 기름을 바르며, 우리가 이 형제에게 안수합니다. 그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