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리드 형제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이곳에 와서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일을 하게... 그분의 일을 하려고 힘쓰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것이 여러분 중 많은 분에게 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이 저희에게는 복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저는 카메라가 몹시 신경 쓰입니다. [브래넘 형제님과 회중이 웃는다.] 좋습니다. 집회 때마다 사진이며 여러 가지 때문에, 여러 번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제게는 무엇보다도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한번 쳐다보고 나면 한 시간 동안 앞이 안 보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웃고 회중도 웃는다.] 이곳에 올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벽을 따라 쭉 서 계신 것을 보니 정말 고향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 밖에서... 비를 맞으며 서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아칸소에 내려와 있는 실감이 납니다. 이번 집회를 광고하지 않은 것은, 아시다시피 며칠 동안 잠시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여러 가지를 좀 정돈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심을 늦추시면, 곧 다시 여러분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집으로 돌아가 아프리카와 인도, 팔레스타인, 독일을 비롯한 여러 해외 지역으로 갈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집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루에 삼만 명이 회심했습니다. 하루에 삼만 명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을 때...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그들에게 그것을 전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바로 그 일을... 그분께서 하시리라고 배웠던 바로 그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앞으로 나와 주님을 영접하라고 초청하자, 순전히 이교도로 살던 삼만 명이 한꺼번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집회를 서너 번 가졌습니다. 전부 합하면 십만 명이었지만, 한 번의 초청에 삼만 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환상으로 제게 약속해 주신 바로 그곳으로 다시 갑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은 환상으로 무엇이 전해지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듣고 싶어 하십니다. 핀란드에서 죽었다가 살아날 어린 소년에 관한 일을 적어 두셨던 것처럼, 이것도 여러분의 성경에 적어 두십시오.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은 「치유의 소리」 같은 잡지에서 그 일을 보셨습니다. 예고한 지 이 년 뒤였습니다. 그곳에서 지난번의 세 배 규모로 집회를 열게 될 것입니다. 그 집회에는 삼십만 명이 모일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되는지 보십시오.
아, 이번에는 우리 주님께서 지난번보다 얼마나 더 큰 복을 내려 주실까요. 이것을 어디에 적어서 잘 넣어 두시고, 과연 그대로 되는지 보십시오. 어딘가에서 있을 일인데,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린 아기가 하나 있습니다. 여기 머리 앞쪽에 흰 머리카락이 조금 수북하게 나 있고, 생후 팔 개월이나 십 개월쯤, 그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그 아기가 죽게 될 것입니다. 목이나 가슴에 무엇인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아기를 초록색 캔버스 들것에 실어 밖으로 옮길 것입니다. 장의사의 차에 실어 데려가려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지나가다가 그 환상의 장면을 알아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기에게 생명을 돌려주실 것입니다. 아기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질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되는지 보십시오. 저는 머리카락이 붉은 어린 소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여자들이 머리에 두르는 것, 아시다시피 스카프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이고, 어린 소년은 키가 이 정도인데 소아마비로 몸에 심한 장애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즉시 온전해질 것입니다. 제가 그 아이를 보면 알아볼 것입니다. 환상에서 보았으니까요. 보십시오... 지켜보시면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 주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많은 분이 서 계십니다. 틀림없이 꽤 오랫동안 서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서 계셔야 하니 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는, 사역 현장에서 일하는 형제님들 중에... 아마 저보다 재정적으로 형편이 좀 더 나아서, 아주 큰 천막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천막을 쓰지 않는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몇 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 쓰고 싶으면 자기 천막을 써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에는 일만 오천 명까지 앉을 수 있는 천막도 있습니다. 제가 리드 형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천막을 존즈버러 바로 외곽 어디쯤에 가져다 한 달 정도 세워 놓고, 옛날식으로 좋은 집회를 열고 싶다고 말입니다. 곳곳의 모든 교회가 협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 상관없이 함께 협력하게 합시다. 물론 협력하지 않을 교회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협력하려 하지 않는 교회가 많을 것입니다. 신유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 번도 만져 주신 적이 없으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 믿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아시겠죠? 생명이 없으면, 그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논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저 옛날 가인 때부터 시작하여 모든 시대에 줄곧 있었습니다. 시대를 따라 계속 내려왔고, 이제 그 포도나무 전체가 씨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요즘에도 그럴 것입니다. 아주, 아주 교회적인 모습을 띠고, 신앙에서도 아주 정통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철저한 불신자들일 뿐입니다. 바로 그 목적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꼭 믿어야 한다 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정죄를 받도록 미리 정해져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올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 기간에 훌륭하게 협력해 주신 리드 형제님과 리드 자매님, 이 교회의 직분자 여러분과 교인 한 분 한 분께, 오늘 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저희 작은 일행이 지금은 흩어져 있고, 여러 사람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샤릿 씨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습니다. 보스워스 씨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폰 블롬베르크 남작은 인도에서 만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도의 총리인 네루 씨와 만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거기서 작은 만찬을 위해 트란스요르단 왕에게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 이슬람교도들이 있는 곳에서 이스라엘로 가고, 그곳에서 독일의 룩셈부르크로 올라갑니다. 설교를 맡은 백스터 씨는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습니다.
현재 정해진 저의 다음 집회는 인디애나주 코너스빌에서 열립니다. 인디애나주 코너스빌에 약 이만 명을 수용할 좌석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 집회는 이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역의 순복음 교회 마흔세 곳이 협력하고 있으며, 멀리 오하이오주 털리도와 그 일대의 수십 곳,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교회들도 함께합니다. 이번 달 31일에 인디애나주 코너스빌에서 대규모 성령 집회를 시작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며, 많은 분이 오시리라 기대합니다. 여러분도 초청합니다. 그 근처에 계시면 꼭 오십시오.
이번 부흥회 기간에 회심하셨는데 아직 정착한 교회가 없다면, 이 작은 교회에 와서 함께하시기를 권합니다. 이곳은 와서 주님을 섬기기에 참 좋은 작은 교회입니다. 제가 이 근처에 산다면 이 교회의 교인이 될 것입니다. 사실 저도 여기 교인입니다. 저는 협동 목사입니다. 그러니 가끔 돌아와서 제 교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둘러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머지않아 다시 여러분을 뵈러 오겠습니다. 주변의 다른 도시에서 오신 여러분, 그곳 교회에 속해 계신 여러분도 매일 교회에 가십시오. 갈 수 있는 날마다, 예배가 있는 날마다 가십시오. 여러분의 교회에 출석하고 참으로 충성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를 든든히 지켜 주십시오. 목사님을 지지하고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으로 도우십시오. 영적으로 지원해 드리십시오. 목사님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대하는 그 영광스러운 날까지 교회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는 믿지 않는데요...”라고 말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한 근본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어떤 분은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고 오신다고 믿고, 또 어떤 분은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의 오심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분은 어쨌든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분을 믿으십시오. 아시겠죠? 그분께서 오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리드 형제님 말씀으로는 저를 위해 사랑의 헌금을 거두셨다는데, 저는... 그러니까, 오늘 밤 선교 헌금도 거두셨다는 말입니다.
제가 돈을 어디에 쓰느냐 하면... 제가 큰 천막이나 그런 시설을 소유하지 않은 이유는... 저는 돈을 한 푼도 빠짐없이, 엄중한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아십니다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돈을 해외 선교에 쏟습니다. 이교도들의 땅으로 건너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이 바로 여기서 보시는 것과 같은 사역을 그들에게도 전해 주려고 합니다. 그날이 올 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신 바로 그 일을 행한 청지기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그것을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면... 그렇다고 전부... 상을 받는 사람은 제가 아닐 것입니다. 저를 보내 주신 여러분이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내 주지 않으시면 저는 갈 수 없고, (맞습니다.) 여러분이 길을 열어 주지 않으시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하셨고, 저는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그 돈을 남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쓰겠습니다.
성도들에게 관을 주시는 그날, 존즈버러의 성도들이 그곳으로 나아오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씌워 주시는 모습을 보면... 아마 제가 몹시 소란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영광 가운데 마지막 만찬이 차려지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가 이기고, 서로 식탁을 마주하고 앉는 것입니다. 식탁 건너편을 바라보면, 오랜 싸움의 상처가 남은 성도들이 앉아 있고, 그들의 뺨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우리는 식탁 너머로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 형제님,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긴 만찬 식탁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왕께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오셔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제 그만 울어라. 우리 모두 여기 있구나. 다 끝났다. 마지막 기도 모임도 이제 끝났다. 더 이상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모두 집에 왔구나. 이제 주님의 기쁨에 들어오너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바로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할 수 있는 시간마다 밤낮으로 힘써 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여러분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저희 집은 언제든 들어오실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시면 들르셔서 “브래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십시오. 대개 사람이 많이 있으니, 그냥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오십시오. “아칸소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성경을 조금 읽고 십 분 정도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기도받을 분들을 불러 줄을 세워 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해 보겠습니다. (지금 많이 더워지고 있는데, 잠시 냉방기를 켜고 싶으시면 켜십시오. 괜찮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성경을 조금 읽겠습니다. 바로 기도 줄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짧게 하겠습니다. 자, 첫 절... 3장 9절부터 읽겠습니다. 니고데모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어찌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제가 어떤... 본문이라고 할 만한 짧은 말씀을 정한다면... 저는 이번 주에 이런 내용을 전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셨는가? 어떤 사역을 하셨는가? 세상은 그분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사람들은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러고 나서 그분의 사역을 오늘날과 비교하며,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거는 히브리서 13장 12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입니다. 오늘 밤에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길」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다면 무엇을 찾아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우리가 믿지 못한다 해도 그분은 분명히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믿지 못해도 그분은 신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 제 생각에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그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그분을 어딘가 아주 멀리 계신 분으로 여깁니다. 오늘 밤 그분은 이 방에 비치는 이 빛만큼이나 실제로 이곳에 계십니다. 이 빛이 여기 있는 한 어둠은 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밖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이 빛이 이기지 못할 만큼 어두워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둠이 아무리 저 창문을 뚫고 들어오려 해도, 저 빛이 있는 한 빛은 어둠보다 강합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주위에 아무리 많은 불신이 둘러서 있어도, 빛은 어둠보다 큽니다. 저는 오늘 밤 하나님께서 저 빛만큼이나 실제로 이 방에 계시다고 믿습니다. 제 손에 비치는 빛처럼... 제 손에 비치는 빛만큼이나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를 보면, 그분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고, 치유자라고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마귀가 “신성한 치유자들”이라는 말을 붙여 비난하는 것을 저는 숱하게 듣습니다. 사람이 신유를 설교한다고 해서 신성한 치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설교하는 사람은 신성한 구원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설교자를 가리켜 “저기 내 신성한 구원자가 가는군요”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기 신성한 치유자가 가는군요”라고 하는 것도 성경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설교한다고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신유를 설교한다고 치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자는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천구백 년 전에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사람은 여러분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천구백 년 전 죽으실 때 여러분을 치유하신 그리스도를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저는 스튜어트 해밀턴과 몇몇 뛰어난 근본주의 설교자들이 있는 자리에 갔습니다. 그분들은 아마 이렇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 한 사역자가 제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한 사람으로서 형제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신유에 관한 형제님의 교리는 전적으로 틀렸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성경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말이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성경을 근거로, 속죄를 근거로 신유를 설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제가 성경으로 형제님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형제님. 물론입니다. 누구든 성경으로 제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잘못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좋습니다. 속죄를 근거로 신유를 설교하신다는 말씀이죠?”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거기 이사야의 예언에 관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형제님, 신유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유가 속죄 안에 있다면 더 이상 통증이 없어야 합니다. 신유가 속죄 안에 있다면 사람은 통증조차 느낄 수 없어야 합니다. 속죄가 그것을 완전히 덮어 주므로 통증조차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님, 속죄 안에 혼을 위한 구원이 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예”라고 했습니다. 저는 “유혹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이사야서에 적용하시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저는 성령의 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바로 그때에 너희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곤란한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지금까지 세계를 세 번 돌았습니다만, 그분은 한 번도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브래넘 목사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성경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이미 성취되어 끝났다는 것을 입증하면, 이 말씀에 따라...”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말씀과,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다는 말씀 같은 것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좋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그분께서 고쳐 주시도록 많은 사람을 데려왔고, 그분께서 그들 모두를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그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고 말한 것을 성취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성경이 성취되었다고 했으니, 바로 그때 성취되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이사야의 예언, 곧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라는 말씀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는 말씀 같은 것들이, 그때 일어난 치유로 성취되었다고 믿으신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속죄가 이루어지고 효력을 발휘한 뒤보다, 이루어지기 전에 더 큰 권능이 있었다는 말이군요. 그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일 년 육 개월 전이었습니다. 속죄는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렇다면...”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한 가지 묻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아주 어려운 말을 쓰기 시작하길래 저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라고 했습니다. “여기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것처럼 쉬운 일상 영어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말씀 안에 신유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 말씀 안에 말입니다.” 저는 그저 그가 그것을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 말씀 안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가 말씀 위에 있습니다. 아시겠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1장에...”라고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마가복음 16장이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을 원하든지 너희가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무엇이든지입니다! 그는 “예, 말씀 안에는 있지만 속죄 안에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속죄 안에는 넣지 않으시고 말씀 안에만 넣으셨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속죄는 말씀 위에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잘못 아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짧은 비유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형제님, 옛날에 한 왕이 있었는데, 큰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 왕국에서 왕은 규칙과 속죄에 관한 규정 같은 것들을 정했습니다. 어느 노예가 죄를 저질렀는데, 그 죄는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죄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노예를 불러다가 판결을 읽었습니다... 사형이었습니다. 노예로서는 죽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너를 죽이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노예가 ‘물 한 잔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가련한 사람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너무 심하게 떨려 손에 물잔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네 목숨을 거두기 전에 내가... 내가 네 목숨을 거두기 전에 그 물을 마셔라. 네가 그 물 한 잔을 다 마시기 전에는 네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그러자 노예가 그 물을 땅에 쏟아 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왕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말을 지켜야 합니다. 법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자기 말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물론이지요, 브래넘 형제님. 그건 왕의 실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허술하셔서 실수로 그것을 말씀에는 넣으시고 속죄에는 넣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게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말씀 안에 있다면 속죄는 그 말씀을 뒷받침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영감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가복음 16장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모든...”이라고 했습니다. “9절부터 끝까지 전부 말입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그들이 뱀들을 집어 올리며 치명적인 것들을 마시리라’라는 말씀도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 저는 그것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습니다. 다른 어떤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임을 믿습니다.” 한번은 어떤 부인의 아들이 대학에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것을 배웠지요. 그 아들이 하나님과 모든 것에 관해 배우려고 어느 큰 대학에 가 있는 동안, 가련한 늙은 어머니가 병이 들었고 의사들도 거의 손을 놓았습니다.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길 아래쪽에 사는 자그마한 할머니가 선교회, 순복음 선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할머니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믿으세요? 목사님도 믿으시나요?” 그 부인은 “아니요, 우리 교회에서는 신유를 믿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우리 교회는 신유를 믿어요. 우리 목사님을 모셔 와서 기도해 드리게 할게요”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와서 부인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부인은 나았습니다. 얼마 뒤 아들이 묘지에서... 신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그 둘을 혼동합니다. 어쨌든 둘이 아주 비슷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가 집에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곧 “어머니, 뵙게 되어 정말 기뻐요”라고 하며 어머니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궁금한 게 있어요. 몹시 아프다고 하셔서 집에 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편지로 다 나았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얘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니?”라고 했습니다. “네.” “시내에 있는 그 작은 선교회가 어딘지 알지?” “네.” “거기 순복음 설교자가 와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기름을 발라 주었는데,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단다. 할렐루야!” 그는 “아니, 어머니,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거기 사람들은 물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저희는 신학교에서 마가복음 16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놓으시더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어. 나는 그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단다.” 그는 “어머니, 마가복음 16장은 9절부터 끝까지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서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찬양하자! 주님을 찬양하자!” 그는 “어머니,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말씀으로도 나를 고쳐 주셨다면, 정말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는 얼마나 큰 일을 하실 수 있겠니?”라고 했습니다.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말씀으로 치유가 이루어진다면, 정말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는 어떻겠습니까? 마가복음 11장 24절로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다른 말씀들로는 어떻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2절 같은 말씀으로 말입니다. 아시겠죠? 모두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중 많은 이가 그 길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마련하신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방금 제가 읽은 부분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후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자연을 위해서도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위해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저는 가끔 가을이 되면 한두 주 혼자 지내려고 산에 올라가 사냥을 합니다. 그곳에서 아주 신기한 것 하나를 보았습니다. 구월쯤 저 멀리 캐나다 북부에서 본 일입니다. 그곳에는 작은 호수들이 있는데, 여기 논에 사는 이 작은 오리들이 그리로 날아가 호수에 둥지를 틉니다. 습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킵니다. 그러면 가을이 될 무렵 그 작은 새끼는 다 자란 커다란 오리가 됩니다. 연못에서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첫 찬바람이 불어오고 산꼭대기에 눈이 덮이면, 그 찬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옵니다. 그 작은 녀석들 중에 수오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 녀석이 우두머리입니다. 타고난 우두머리입니다. 그 녀석이 곧장 연못 한가운데로 나가 작은 부리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꽥꽥, 꽥꽥” 하고 웁니다. 연못의 모든 오리가 곧장 그 녀석에게 모여듭니다. 그러면 그 녀석이 날아오르려...
기억하십시오. 그 녀석은 한 번도 그 연못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 연못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하지만 오리들은 모두 그 녀석이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두머리로 보내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 작은 오리는 나침반도, 다른 아무것도 없이 그곳에서 날아올라, 여기 아칸소의 여러분 논까지 곧바로 날아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본능이지요. 오리에게는 본능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리에게도 추위를 피할 줄 알도록 길을 마련해 주셨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아픔과 질병, 어려움과 추위가 몰아치는 시기를 어떻게 피합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오리들은 자기들을 이끄는 존재를 알지만, 우리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셔도, 여러분은 아무개 박사가 그것을 전부 말로 설명하여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문을 읽어 보거나 밖에 나가 소식을 들어 보면 “내일은 날씨가 좋고 맑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 암퇘지가 언덕 북쪽에 있는 나뭇가지와 옥수수 속대를 물어다 언덕 남쪽으로 돌아가서 잠자리를 만드는지 지켜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신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 암퇘지가 신문의 해설자보다 날씨를 더 잘 압니다. 그렇습니다. 토끼 사냥을 가서 토끼들이 풀 아래 깊숙이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지 보십시오. 신문에서 무엇이라고 하든 추위가 올 것에 대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본능을 주셨습니다. 본능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한번은 아버지와 제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밭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날씨가 좋았습니다. 옥수수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유월인가 칠월이었는데, 아마 마지막 김매기를 하던 때였을 것입니다. 제가 말들을 돌리려고 낡은 고삐, 낡은 밧줄 고삐를 당기는데... 여러분은 밧줄 고삐로 밭을 갈아 보셨습니까? 아, 웃옷을 입지 않으면 목이 온통 쓸려 버립니다. 거기 낡은 쟁기에 앉아 있는데, 말들이 자꾸 콧김을 뿜고 부산스럽게 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왜 그러죠? 이 말들이 하는 것 좀 보세요. 아버지 말들도 그래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얘야, 폭풍이 오고 있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폭풍이요? 폭풍 같은 건 안 보이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멈추셨습니다. 저는 그 어른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얘야, 네가 모르는 게 있단다. 하나님께서 말에게 본능을 주셨어. 저 말은 폭풍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단다. 아주 멀리서 오고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두세 고랑도 더 갈기 전에 큰 구름이 몰려왔고, 우리는 서둘러 헛간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능을 주셨습니다. 아시겠죠? 알아차리고 피할 길을 찾도록 본능을 주셨습니다. 멀리서 폭풍의 냄새를 맡고 피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에게도 길을 마련해 주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산에서 사냥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 콜로라도 산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저희가 엘크 사냥을 가는 것은 짐승을 잡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홀로 있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 그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가을, 시월쯤이었는데 폭풍이 왔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칠십 마일이나 깊숙이 들어가 야영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세찬 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저는 나무 뒤로 피했고 비가 몰아쳤습니다. 엘크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산의 아주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저는 나무 뒤에 숨었는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비가 그친 뒤 내다보니 상록수에 빗물이 닿은 자리마다 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골짜기를 가로질러 이렇게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아!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는 말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참으로 기뻐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잠시 뒤 저 위에서 회색늑대 한 마리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골짜기 아래에서는 그 짝이 응답했습니다. 아! 제 어머니는 혼혈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더 이상 오래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무엇인가가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것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크신 눈이 저기서 산 너머를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저 무지개가 그분의 언약이구나.’ 그분께서는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으시고, 다음에는 불로 멸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분께서 왕좌에 앉아 계시는데, 그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분입니다.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는데, 자기 피로 백성과 맺으신 언약,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아, 무엇인가가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몹시 소란을 피우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파인 잭’이라고 부르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길이는 이 정도이고 솔방울을 먹는데, 아주 시끄러운 작은 녀석입니다. 아! 아일랜드 사람의 올빼미 이야기처럼, 온통 소란과 깃털뿐인 녀석입니다. 제가 보니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쉴 새 없이 찍찍거리고 있었습니다. ‘저 녀석이 왜 저렇게 소란을 피우지? 나를 보고 놀랐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보니, 몇 년 전에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져 있던 곳 아래에서 아주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흰머리독수리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 참 아름다운 새입니다. 그 녀석이 거기서 몸을 끌어내며 나오는데, 그 작은 다람쥐가 독수리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습니다.
독수리가 나와 거기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저렇게 용감하다니.’ 독수리는 작은 다람쥐 쪽을 바라보더니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회색빛의 커다란 눈이 번쩍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저 독수리를 내 앞에 두셨을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말입니다. 모든 것이... 오늘 밤 여러분이 이곳에 오신 데에도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 왜 저를 여기에 세워 두고 울게 하십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껏 감격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나무 주위를 돌고 또 돌며, 목청껏 외치고 펄쩍펄쩍 뛰며 두 팔을 내저었습니다... 그때 저를 보셨다면 틀림없이 광신자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제 소리를 들을 분은 주님밖에 없었지만, 저는 주님께 외치고 있었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할렐루야!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나무 주위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다시 그 나무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마 독수리는 저를 별난 생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얘야, 내가 무섭지 않니?”라고 했습니다. 그 녀석은 그저 앉아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하나님, 저 독수리가 용감하기 때문에 제게 보여 주려 하시는군요. 바로 그거군요.’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용감한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여기 성막 안에서는 치유받았다고 말하고, 밖에 나가서는 신유를 믿지 않는 어떤 광신자를 만나... 예, 그 사람이 광신자입니다. 맞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부르지만, 실은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말하기가 두렵습니까? 직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성령침례를 받은 일을 간증하기가 두렵습니까? 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닙니다. 저는 ‘얼마나 용감한가! 무엇이 저렇게 용감하게 만들까?’ 하고 생각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어쩌면 나를 무서워하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렇게 총을 움켜잡아 보았습니다. 독수리는 그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저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왜 나를 무서워하지 않지? 내가 너를 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물론 저는 그 녀석에게 감탄하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쏠 수도 있는데.’ 독수리는 그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용감한지 알아차렸습니다. 그 커다란 날개를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네가 왜 그렇게 용감한지 알겠다. 하나님께서 피할 수 있도록 날개 둘을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너에게 날개를 마련해 주셨으니 너는 그 날개를 믿을 수 있구나. 그 날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믿고 있구나. 내가 아무리 재빨리 소총을 들어 올리려 해도, 너는 어느새 저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내 눈에 보이지도 않겠구나. 그래서 그렇구나. 그 날개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한 너는 아무 걱정이 없는 거야.’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맞습니다! 성령께서 계심을 느낄 수 있는 한, 저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마귀는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십시오.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저는 잠시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마침내 그 녀석은 자기를 향해 짖어 대는 작은 다람쥐가 귀찮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번 크게 뛰어올라 날개를 두 번쯤 퍼덕였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또 저리 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두 번쯤 날갯짓한 뒤 날개를 쫙 편 채 고정했습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날갯짓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녀석은 기류를 타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대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바람이 다시 닿자 더 위로, 더 위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두 손을 들고 울면서 서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땅에 매여 “재잘재잘, 재잘재잘” 하는 작은 녀석을 뒤에 남겨 두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뛰어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날개를 펴서 고정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의 물결이 밀려올 때 그것을 타고 올라갑니다. 계속, 계속,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땅에 매여 “재잘재잘, 재잘재잘” 하는 소리는 뒤에 남겨 두는 것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라고들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구백 년 전에 죽으셨지만, 오늘 밤 살아 계십니다. 할렐루야! 자기 백성 가운데 살아 계시며,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오늘 밤 밖에 나가 저 구름 사이로 올려다본다면... 여기 덤불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제가 머무는 곳에서 보니, 밖에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아, 그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도 말입니다. 저는 나이팅게일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 새가 노래하는 이유는, 주위를 둘러보다 별 하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별 하나만 볼 수 있어도 목청껏 노래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딘가에서 태양이 빛나고 있고, 그 별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합니다. 아! 저도 옛날처럼 힘찬 “아멘” 소리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인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목청껏 노래할 수 있습니다. 빛이 역사하는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별을 올려다보며 “작은 별아, 너는 정말 아름답게 빛나는구나”라고 말한다면,
그 별이 대답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저를 비추어 제가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한 의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사람들은 그저 신경이 조금 예민해지고 흥분한 것 아닐까요?”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저 조금 시끄러워지고 야단스럽게 구는 것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무엇인가가... 그들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산에 있는 샘물 웅덩이에 들렀습니다. 예전에 제가 엎드려 물을 마시던 곳입니다. 저는 그 샘물 웅덩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쁜지 궁금했습니다. 그저 뽀글뽀글 솟고, 펄쩍 뛰고, 뽀글뽀글 솟고, 펄쩍 뛰고, 뽀글뽀글 솟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이 너를 그렇게 기쁘게 하니? 사슴들이 와서 네 물을 마셨기 때문에 기쁜 거니?”라고 했습니다. 그 샘물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그러면 곰들이 마셔서 그러니?”라고 하면, “아니요, 그것 때문에 기쁜 것은 아니에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뽀글뽀글 솟아오르니? 내가 해마다 들러 네 물을 마시기 때문이니?”
“아니요.” 그 샘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뽀글뽀글 솟는 것이 아닙니다. 제 뒤에서 무엇인가가 저를 밀어 올려 이렇게 솟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 안에는 초자연적인 것을 믿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영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집안과 그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방주를 마련하셨습니다. 또 한 번은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존하시려고 돌 열두 개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 어느새 죄가 들어왔습니다. 자, 보십시오! 여기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비난하기 시작하고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들어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그 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살펴볼 텐데,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뱀은 이미 심판받은 죄를 뜻하며, 그 밖의 여러 상징들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뱀을 들어 올린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었고, 또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라보며 용서를 구했고, 놋뱀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온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놋뱀을 든 것 같이, 바로 그와 같은 목적과 같은 이유로 사람의 아들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형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나을 수 있었다면, 실체는 얼마나 더 큰 일을 이루겠습니까? 놋뱀과 그림자가 그런 일을 이루었다면, 실제의 것은 얼마나 큰 일을 이루겠습니까? 아! 아멘. 자, 이제 시작입니다. 아, 저는 그저... 지금 신앙의 감격이 정말 크게 느껴집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 좋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은... 불신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교회 조직의 커다란 물받이를 만들어 물을 전부 이리로 빼고 저리로 빼 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마시라.” 맞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이 신성한 치유자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정신과 병동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이 치유자라고 알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저... 그 사람은 마귀의 영감을 받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 부호를 붙인 것은 마귀였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선지자이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그분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리 내려와 이 사람을 고쳐 보시오. 여기 와서 이 사람을 고쳐 보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소”라고 했습니다. 그 옛날과 똑같은 교회적인 마귀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계속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불신자들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 헝겊을 두르고 머리를 때렸습니다. “당신이 선지자라면 누가 때렸는지 말해 보시오. 그러면 믿겠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어릿광대 노릇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물가의 여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아셨습니다. 입에 동전을 문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때 그 시대의 거룩하고 이름 높은 학자들이 왔습니다. 이 말을 깊이 새겨 보십시오. 학자들, 거룩하고 이름 높고 흠 없는 교사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그분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제안을 하겠소.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오. 그러면 당신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겠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조차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덤불마다 천사가 앉아서 “주님,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십시오. 우리가 이 상황을 바꾸어 놓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드린 가장 위대한 찬사였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면 자신을 내어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습니까.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똑같은 영입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사탄에게 속한 것임을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제 기적을 행할 수 있겠구나. 너는 신성한 치유자이고 그 모든 것이겠지.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내가 너를 믿겠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영의 아비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그분을 성전 위로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자, 보아라. 여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가복음 16장을 들이대듯이 말입니다. “여기 성경에 ‘그분께서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언제라도 네 발이 부딪히지 않도록 그들이 너를 받들어 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뛰어내렸다가 땅에 이르면 이렇게 네 몸을 다시 위로 올려 보아라.” 아시겠죠? 그분께 성경을 들이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맞습니다. 그분은 성경 말씀으로 그대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련하신 길이 있습니다. 의사가... 물론 의사에게 가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보십시오. 의사도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마련하신 길이 있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마련하신 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브래넘 형제님도, 리드 형제님도, 다른 어떤 사역자도 아닙니다. 천구백 년 전에 여러분을 치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킬 뿐입니다. 리드 형제님은 사역자로서 말씀을 통해 그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신성한 은사는 그것을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들으십시오. 성경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모든 병자를 그리스도께서 이미 치유하셨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의 범법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과거형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바라보고 믿는 것뿐입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오순절 교회나 침례교회나 다른 어떤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이제 갈보리를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여러분의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통해서든, 표적을 통해서든, 이적을 통해서든, 무엇으로든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말씀을 뒤따라 내려와, 다른 사람들도 그분을 믿도록 표적과 이적과 그 밖의 일들을 베풉니다. 아, 저는 여러분이 믿으시리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오래 서 계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분을 믿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분께서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어제 하셨던 그 일을 오늘도 하시고, 영원히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안에 계신 분들도 밖에 계신 분들도 함께 고개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는 마치는 자리에... 이 귀한 집회가 끝나기 직전에 있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희는 이 작은 건물에 가득 모여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사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들리라.” 마음이 갈급한 사람들입니다. 주님, 이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하나님, 이들과 함께해 주옵소서. 저의 형제인 리드 형제님과 리드 자매님,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옵소서. 그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아이가 이 땅에 오기 오 년 전에, 그 아이가 오리라는 환상을 주셨습니다. 교회를 축복해 주옵소서. 아버지, 여기 손수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손수건들이 쓰이려는 목적을 위해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들을 몸에 지니는 모든 병자가 낫게 하옵소서. 우리가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저희가 성 바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주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심을 압니다. 성 바울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 밤에도 여기에 계시며, 전과 동일하시고 동일한 일을 행하십니다. 밖에는 같은 비판자들이 있고, 안에는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주님, 오늘 밤 주의 종이 서 있을 때 주님의 영께서 가까이 임해 주옵소서. 여기에는 하나님의 천사, 곧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했던 불기둥의 사진이 있습니다. 언약의 천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던 것과 동일하게 오늘 저희와 함께 계시며, 영원히 동일하실 것입니다. 이제 저희 모두를 함께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역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천사께서 오시고 주의 종에게 기름부음이 임하게 하옵소서. 많은 사람이 치유받고 구원받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늘 밤 제가 뒤편 방에 앉아 설교를 듣고 있을 때 빌리가 말해 주었습니다. 매일 밤 계속 기도 카드를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X, W, Q, Y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기도 카드를 나눠 주었습니다. 여기 그 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느 부분을 부르겠습니다. 몇 분을 여기 단상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여러분 모두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너무 덥거나 피곤하지 않아서 몇 분만 기다리실 수 있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도합시다. 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께서는 전에 하신 것과 동일한 일을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으시지요? 그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치유하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옆 사람에게 말한다. “기도받을 줄을 어디로 부르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저쪽에서 오게 하려면, 아마 저분들을... 가로질러 걸어오게... 저기 방들도 모두 가득 찼습니까? 그러면 잠시만 조금 뒤로 물러나 주셔서 기도 줄을 세우고, 줄을 다 세운 다음 다시 들어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라고요? 아니요, 바로 여기요. 아마 여기 문 옆에 계신 분들이요. 뭐라고요?”] [한 남자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말한다.]
[좋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내려올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아,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게 하면 되겠군요.] 여기 계신 분들 중 몇 분이 바로 이 뒤쪽으로 오셔서 서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면 기도 줄을 세울 수 있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참 친절하시군요. 이제 방 안에 계신 분들은 뒤쪽으로 좀... 형제님, 자매님, 부탁드립니다. 기도 줄을 세울 공간을 조금 마련할 수 있도록 문 쪽으로 밀고 들어오지 마십시오. 어디 봅시다. 폴, 그 번호들을 좀 알려 다오. 그 글자들 말이다. [빌리 폴이 “V, W, X, Y, Z입니다”라고 말한다.] 아이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