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주여, 믿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이 입술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믿습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침례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우리의 간절함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내놓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 위대한 나라가 산산이 무너져 가는 것이 보입니다. 죄가 사방에서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가운데서도, 지난번 저녁에 우리 형제님이 주님의 말씀에서 전한 메시지로 가르쳐 주셨듯이, 동시에 교회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그편에 있으니 기쁩니다. 오늘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이 회중에게 복을 주옵소서. 어디에 있든 이 백성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 도로에서 수많은 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많은 사람에게, 특히 어디에 있든 주님의 백성에게 뻗치는 죽음의 손을 막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죄인들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나 그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옵소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아니, 오늘 오후에 이곳에 오게 되어 참 기쁩니다. 켄터키에서는 이 시간을 저녁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저녁 먹을 시간에 정찬을 먹는다는 말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한 끼를 놓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늘 아침, 점심 정찬, 저녁이었는데, 이제는 저녁 여섯 시에 먹는 것이 정찬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저녁은 언제 먹느냐는 것이 제가 알고 싶은 점입니다.
어떤 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잘못 알고 계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아닙니다. 우리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아니셨습니까? 그분은 저녁 식사를 드셨습니다. 그것을 ‘만찬’이라고 불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즈 형제님이 방금 말씀해 주셨는데, 오늘 오후에 선교 헌금을 거두… 모으셨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잘못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선교사들에게, 선교를 위해 드리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호주 시드니의 조 캐럴 씨, 조지프 캐럴 씨가 오늘 오후 회중 가운데 계십니까? 어젯밤에 뵈었는데, 계신다면 어디서든 손을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호주 시드니의 조 캐럴 씨 말입니다. 캐럴 형제님, 여기 계십니까? 일어서 주십시오. 집회 책임자인 백스터 씨를 만나 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왼쪽 구역에 계십니다. 캐럴 형제님이 여기 계시다면요.
모르겠군요. 어젯밤 집회에는 계셨습니다.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아마 오후 집회에는 오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자, 선교 헌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교 사업을 하는 것은 정확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하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기본 명령이니,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선교 사업을 할 때는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저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을 빼고 제 손에 들어오는 모든 돈을 그렇게 사용합니다. 또 가끔 꼭 해야 할 일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석탄이 없는 가난한 여인을 돕는 일 같은 것입니다. 그 돈은 선교비에서 쓰지 않습니다. 제 돈에서 씁니다. 선교비 같은 돈은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 같은 것은 하나님의 돈이므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주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갈 돈이 충분히 모이면 곧 떠납니다. 예전에 돈이 넉넉하던 때에는 어느 도시에 가서 아마 이틀 저녁만 헌금을 거두곤 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것은 일곱이나 여덟 밤 정도였지요. 이틀이면 모든 경비를 댈 만큼 모였으므로 더는 헌금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저녁에 사랑의 헌금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혹시 남는 돈이 있으면 자선 단체 같은 여러 단체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도시를 떠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우리를 ‘거룩하게 뒹구는 자들’이나 ‘신유를 행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번은 큰 집회에서 거둔 돈, 수백 달러나 되는 큰돈을 어느 단체에 그대로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체의 대표라는 사람이 캐딜락을 몰고 거리를 지나가더군요. 아마 천 달러도 넘을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이만한 커다란 시가를 피우면서, 그 돈을 나누어 주는 대가로 일주일에 오백 달러쯤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이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조직을 갖추지 못한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형제애로 뭉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난번 저녁에 이곳 시카고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가 평생 그렇게 심한 호통은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이 교회 사람들이 그 식당에 와서 식사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실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는 그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 것이 싫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저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당신들은 대체 어떤 단체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온다는 말도 전혀 하지 않았잖아요. 당신들이 이 근처에 올 줄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런 일은 좀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우리가 시내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생님, 사람들은 그저 들어와서 식사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글쎄요” 하더니, 그 사람들이 거기 오는 것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손님이 아주 많으신 모양이군요”라고 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저 견뎌야지요… 우리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날이… 지금은 인간의 날입니다. 주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은 고인이 된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동네의 작은 도시, 인디애나주 뉴올버니에 왔을 때 그 모습을 보러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고압 전선을 다루는 가설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내려와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내려가서 그의 연설을 들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도시를 지나가면서 잠시 기차를 세우고 짧게 연설할 예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왔는지요. 우리 노동자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대통령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라도 보려면 한참 뒤쪽에 있는 헛간 지붕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래, 괜찮아. 다 괜찮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말이야, 저기 기차 뒤쪽 가까이에서 대통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시의 고위 인사들뿐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는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고위 인사 중 하나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을 뵐 때에는 참 놀랍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백스터 씨가… 이분은 아주… 지금은 자리에 안 계신 것 같으니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분은 정말… 영국인 특유의 위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왕, 고인이 된 그 왕이 말입니다. 제가 기도해 드려 다발성 경화증에서… 아니, 혈전증에서 치유받은 그분 말입니다. 그분이 캐나다에 오셔서 거리를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백스터 형제님은 캐나다 사람입니다. 왕이 행렬을 따라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고, 왕비도 아름다운 옷을 입고 곁에 있었습니다. 그때 백스터 형제님이 서 있었습니다. 왕이 지나갈 때 차렷 자세로 서 있는데,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왕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 할렐루야! 언젠가 우리 왕도 지나가실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고말고요. 저는 그분 바로 곁에 있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은 그분의 신부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베풀어 주신 모든 친절에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말씀드릴 시간은 없겠지만, 많은 분이 제 아들과 백스터 형제님, 보즈 형제님을 통해 작은 선물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과자 상자며 복숭아 바구니, 심지어 토마토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며 참 즐거운… 그런데 말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진심입니다.
그리고 한 어린 여자아이가… 여기 태버내클에서 보이지 않던 눈의 시력을 막 되찾은 어린 여자아이가 무언가를 만들어… 아마 이만한 작은 그림이었을 텐데, 그것을 제게 주었습니다. 제가 간직할 수 있는 한 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늘 그런 것들을 기억합니다. 때로 몹시 지치면 지하실에 있는 제 작은 방으로 내려갑니다. 대개 집에는 사람들이 늘 가득하고, 끊임없이 드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그곳에 내려가 있는데, 가끔은 감상에 젖습니다. 앉아서 바라봅니다. 그래, 저것을 내게 준 그 가난한 스웨덴 노인이 생각나는군. 저것을 준 노르웨이 사람도 생각나는군. 아시겠죠? 그 어린 여자아이, 그 어린 남자아이, 아기가 치유받았던 그 여인도 생각납니다. 오, 그러면 말입니다! 다시 올라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준비가 됩니다. 새 용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작은 것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한 사람이 이만한 길이의 작은 막대기를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그가 그것을 제게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간직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작은 막대기인데… 놉케리인가 뭔가 하는, 끝에 둥근 혹이 달린 작은 몽둥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만한 작은 신발 한 켤레를 받았습니다. 제 발가락도 거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아주 조그마했습니다. 또 칼도 있고, 사람들이 주는 그런 물건들이 있습니다. 아, 그것들은 제 마음에 보물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회에서 사진을 찍을 때가 많은데, 제가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면 때로 그 사진들을 가지고 갑니다. 집회에 왔던 여러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께는 온 세상에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분을 보면 교회에 자주 나오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저분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잘 계십시오.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떠나려고 하면 정말이지… 이곳 시카고 사람들에게 이제 막 익숙해진 듯할 만큼 머물렀는데, 이제 떠나야 한다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언젠가, 언젠가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는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기억납니다. 저기 있는 제 어린 아들이 자기 어머니에게… 제가 아내 곁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내를 데려갔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 나는 문 동쪽에 서 있을게요.”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 모든 사람이 들어올 때, 그냥 내 이름을 크게 불러요. 내가 당신을 찾을 테니. 아이들을 모아서 우리가 그곳에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온 세계의 사람들과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그날이 올 때를 위해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제 앞에도, 다른 모든 사람 앞에도 저기 크고 어두운 방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그 방에 그만큼 더 가까워집니다. 그것은 죽음이라 불리며, 우리는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옛날의 성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알기 원합니다. 그분이 내 이름을 부르실 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불려 나와, 그분과 그분의 모든 백성과 함께 영원히 살기 원합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 말씀을 전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조금 전에 백스터 형제님이 전화해서 “브래넘 형제님, 오늘 오후에 오셔서 잠시 말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고! 지난번에도 충분히 듣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 모세의 이야기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셨던 그 대목을 생각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시겠죠? 그는 “막대기입니다”라고 했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앉아서 이 회중을 바라보니 성령께서 저를 다른 곳으로 돌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조금 읽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잠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휴일인데, 다른 곳에 나가 보낼 시간을 희생하며 교회에 와서 여기 앉아 계신 것을 압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니 머리를 숙여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앉아 있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백인, 흑인, 황인,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 아일랜드인, 유대인, 멕시코인, 앵글로색슨인 등 온갖 민족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여기 함께 모였습니다. 모두 영으로 충만하여 교회의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시간이겠습니까. 아버지,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이 감동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보는 이 표적들이 나타날 때 “머리를 들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이 다가오느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교회와 보즈 형제님, 이곳 집회를 후원하는 필라델피아 교회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들에게 넘치도록 풍성히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이 태버내클에 복을 주옵소서. 오늘 주님과 함께 주님의 제단 아래에 있는 많은 종이 이 위대한 장소의 같은 강단에서 설교했습니다. 그 훌륭하고 위대한 복음 전도자 빌리 선데이와 폴 레이더, 이미 요단을 건넌 다른 많은 사람도 그랬습니다. 아버지, 그들 위에 임하여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셨던 권능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오후에 그분을 보내 주옵소서. 같은 성령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며 이 사역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 주가 그것을 심었으니, 아무도 내 손에서 뽑아 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물을 주리라.”
아버지,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곳 목사님께 복을 주옵소서. 모든 장로와 집사, 그 밖의 모든 분에게 함께 복을 주시고, 평신도들에게도 복을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여기에 모인 이들이 속한 모든 교회, 모든 조직과 단체에 복을 주옵소서. 우리는 나뉘어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오후 주님의 이 겸손한 종을 도와주옵소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줄 믿으며, 이 교회와 함께 저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제 입술에 할례를 베푸셔서 올바른 것을 말하게 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할례를 베푸셔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셔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그 마음에 나누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요한복음 14장은 아주 익숙한 말씀으로, 어디서나 사람들이 읽습니다. 많은 분이 가장 좋아하는 장입니다. 오늘 오후에 이 장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면 이 건물 안에서 아주 많은 손이 올라갈 것입니다. 얼마나 됩니까? 몇 분이 손을 드시는군요. 요한복음 14장 말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 중 하나입니다. 큰 위로를 주는 장입니다.
이제 처음 일곱이나 여덟 절을 읽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잠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이 마지막 집회임을 알려 드립니다. 오늘 밤에는 기대가 클 것입니다. 아마 어느 날 밤보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더 많이 보시게 될 것입니다. 집회에서는 늘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믿으려면 바로 지금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다. 바로 지금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마지막 저녁 집회가 가장 큰 집회가 됩니다. 이제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한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또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어찌 그 길을 알겠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주님께서 이 말씀에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마지막 절을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봅시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분은 얼마나 됩니까? 저는 정말… 제가 여러분에게 그분을 보여 드릴 수 있다면 기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하나님,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그런데 제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주의 천사 사진에 관해 물어보셨습니다. 여기서 그 사진을 한 번도 못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촬영된 그 사진을 한 번도 못 보신 분 말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 여러 분 계시는군요. 저희에게 사진이 있지만, 이번에는 가져올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진은 과학적으로 촬영되었습니다, 그… 제 사진이 아닙니다. 미국 사진가 협회에 속한 사진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셨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집회와 논쟁이 있었는데… 한 침례교 목사가 신유 같은 것은 없고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며 그것을 논쟁하러 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때 천사가 오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구원자가 될 수 없듯이 저도 치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을 증언하지 않으십니다. 진리를 증언하십니다. 제가 진리를 증언한다면 하나님께서 저에 대해 증언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하자마자 무언가 “후우우”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분이 곧장 내려오셨습니다. 제 바로 위에 이렇게 계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거기 계셨습니다. 삼만 명이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고, 협회에서 그 사진을 받아 보고는 “이것은 심리 작용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서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산 용액에 넣어 검사했습니다. 그 사진을 검사한 사람이 심장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사진을 FBI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는 나흘 동안 검사한 뒤, 초자연적인 존재가 렌즈에 포착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때… 절대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면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아시겠죠?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다른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4장을 말씀드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오늘 오후에 그분을 바라보고 만나 뵙겠습니다. 한… 아마 서너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시간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바로 이 건물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살펴본 다음, 그분의 백성 가운데로 내려와 계신 하나님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여기 그분의 백성 안에도 계시지 않은지 보겠습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을 보기를 갈망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욥도 한때 그분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오, 내가 알기만 한다면…”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이 어디 사시는지 알기만 한다면, 가서 문을 두드릴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를 들어오게 해 주실 텐데”라는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 허리를 동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에게 말씀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셔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대목이 좋습니다. 그분이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욥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는 가장 좋은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늘 “우리의 큰 교회”라며 자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됩니다. 형제님, 기억하십시오. 밀밭을 보십시오. 무겁고 알찬 이삭은 언제나 고개를 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찬 밀 이삭은 고개를 숙입니다. 꼿꼿이 서서 흔들리는 것은 껍데기뿐이며, 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욥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 끝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느냐? 내게 밝히 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욥이 허리를 동이자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의 마음은 하나님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아, 얼마나 그분을 보고 싶어 했는지요. 모든 사람이 그분을 보기를 갈망합니다.
얼마 전 서부 해안에서 훌륭한 장로교 목사 한 분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당신 같은 이단들이 말입니다.” 저는 “네, 말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신유 같은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지요. 한때 서부 해안 일대에서 우리 교회가 가장 강했습니다. 우리 교회들을 무너뜨린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들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크리스천 사이언스입니다. 그들이 와서…”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무언가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습니다. 제대로 된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배가 고픈 사람은 쓰레기통에 있는 것이라도 먹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로교인 여러분이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알려 주었더라면 크리스천 사이언스도, 다른 이단들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내려놓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의 교회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 말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옛 신앙의 참된 복음, 온전한 복음을 모두 사람들 앞에 펼쳐 놓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 교회나 저 교회의 주관 아래서가 아닙니다. 그저 복음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 위대한 족장 욥을 말하다 보니,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생각납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동방의 모든 고관이 그 앞에 이렇게 몸을 굽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내가 그로 하여금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저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욥은 그것 말고는 온갖 말을 다 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했습니다. “밤에 별들이 빛나지 못하고 낮에 해도 비치지 말기를”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욥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 한번은 제가 그 이야기로 삼 주쯤 설교했더니 편지가 여러 통 왔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대체 언제 욥을 잿더미에서 내려오게 하실 겁니까?”라고 하더군요.
제가 욥을 그 잿더미에 계속 앉혀 놓은 것은 바로 그때가 그가 결단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거기 앉아 종기를 긁고 있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었겠습니까. 자녀들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재산도, 낙타들도 잃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가난에 짓눌린 채 거기 앉아 질그릇 조각 같은 것으로 종기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종기를 긁었습니다. 심지어 아내마저 어느 정도 등을 돌렸습니다. 아내가 문간에 와서 “욥,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세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 모습이 너무 비참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욥은 “당신이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어리석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한다고 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당신이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빼앗으셨으니 주의 이름을 찬송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오, 저는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주의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욥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도 좋습니다. 참으로! 그때 동방에서 이 젊은 고관 엘리후가 내려왔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그 이름을 풀어 볼 텐데요. “엘릴라 야훼” 같은 말인데, 하나님을 대표하는 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는 욥에게 와서 욥이 한 말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는 “제가 젊다고 업신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옳지 않은 일로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욥을 바로잡아 주기 시작했고, 욥의 교인들처럼 욥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한 무리 와서 칠 일 동안 욥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위로였지요. 그를 은밀히 죄를 짓는 죄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욥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자기가 압니다. 누구나 압니다. 그가 등을 돌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고, 욥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욥을 비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숨겨 둔 죄가 있다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갈라진 틈에 서서 길을 이어 주실, 오실 어떤 분에 관해 말해 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욥기 14장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꽃과 그 밖의 모든 것에 관해 말씀하신 대목입니다. 욥이 그것들을 어떻게 살펴보았는지 말입니다. 그는 “나무는 죽어도 다시 살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바로 거기에서… 제 첫 성경은 자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그분의 자연 안에 거하십니다. 여기 계신 부인 여러분, 지금 마당에 있는 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한 달쯤 지나면 그 작은 꽃들에게 서리가 내릴 것입니다. 어떤 것은 어린 꽃으로 막 올라오고, 어떤 것은 오래되었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서리를 맞으면 끝입니다. 작은 고개를 숙이고 꽃잎이 떨어지고 잎이 떨어지며 작은 씨앗이 빠져나옵니다. 그다음에는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하늘이 울며 가을비를 쏟아 냅니다. 하늘에서 눈물이 떨어져 작은 씨앗을 묻어 줍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땅이 아마 사오 인치 깊이까지 얼어붙습니다. 그때는 작은 줄기도, 알뿌리도, 잎도, 꽃잎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 안에 있던 작고 검은 씨앗도 부풀어 터져서 속이 흘러나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알뿌리와 씨앗,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꽃의 끝은 아닙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속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없어졌어도, 그곳에는 분명히 작은 생명의 싹이 있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찾아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꽃은 다시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꽃이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사람이 다시 살 길은 얼마나 더 확실히 마련하셨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아, 그분의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어떻게 움직이시며 자연 가운데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말입니다. 얼마 전에 연세 드신 감리교 목사님과 앉아서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농업 방송 시간이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말했습니다. “이곳의 작은 4-H 클럽에서 옥수수 낟알을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기계를 완성했습니다. 밭에서 자란 옥수수 낟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루에 손을 넣어 밭에서 자란 것을 한 움큼, 기계에서 나온 것을 한 움큼 집어 섞으면, 다시는 그것들을 구별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험실로 가져가서 잘라 보아도 껍질 두께가 아마 이 정도로 똑같을 것입니다. 낟알마다 수분과 칼륨, 칼슘 등 모든 성분의 양이 똑같습니다. 어느 쪽 자루의 것으로 만들어도 옥수수빵이나 콘플레이크가 똑같이 잘 만들어질 것입니다. 차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묻는 것입니다. 둘 다 썩겠지만 사람이 만든 것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는 생명의 싹이 있어서 다시 살아납니다.” 저는 “목사님, 제 손을 좀 잡아 주십시오. 제가 목사님을 당황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을 보십시오. 둘 다 똑같이 보이고 둘 다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생명의 싹, 곧 성령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부활 때 일어나겠지만, 다른 사람은 그대로 누워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의 모든 것에 어떻게 모형을 두셨는지 보십시오. 온… 인도 같은 곳에서는 숭배하며, 우리가 죽으면 천사가 되어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천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결코 천사가 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를 사람으로 만드셨으므로 저는 언제나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그렇게 만물을 다시 일으키실 때, 우주 안에서 그 완전한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그것을 바라보며 그런 것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워 버립니다. 숨을 거두고 소멸됩니다. 참으로 그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아들들이 슬퍼하러 와도 그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나를 은밀한 곳에 숨겨 주신다면”이라고 했습니다.
엘리후가 그를 바로잡아 주기 시작하자, 욥은 오실 어떤 분이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엘리후는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자, 욥이여.” 아이들도 이해하도록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욥이여, 당신은 그 꽃과 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그 꽃이나 나무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지었습니다. 아시겠죠? 곡식 같은 것은 끊임없이 되살아나지만 사람은 죄를 지었고, 그것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끊어 놓았습니다. 이제 사람에게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오실 분, 의로우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갈라진 틈에 서서 한 손을 죄 많은 사람에게, 한 손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시고 길을 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이 올 것입니다.” 그때 선지자였던 욥은 올바른 통로, 올바른 길에 들어섰고, 주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두 발로 일어서서 예언했습니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내가 알거니와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고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직접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로다.”
옥수수 한 알이 썩어 없어졌다가 다시 올라오듯, 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신다.” 계속 살아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저 살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고 마지막 날들에, 마지막 이천 년이 끝날 때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다시 말해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이며,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라는 말입니다. 욥은 그분의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신에 이상이 있지 않고서야 누가 크고 아름다운 칼라 꽃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꽃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그 작은 씨앗이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같은 해가 비칩니다. 여기 똑같은 것이 둘 있는데, 하나는 희고, 하나는 붉고, 또 다른 하나는 푸른 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접시꽃이며 여러 꽃을 어떻게 만드시는지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크신 우주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 말입니다. 이 지구가 어떻게 여기에 떠 있으면서 한 시간에 이만… 이만 오천 마일이 조금 넘는 속도로 도는지 말해 보십시오. 둘레가 이만 오천 마일이고, 스물네 시간마다 한 바퀴를 완전히 돕니다. 별을 보고 그 시간을 잴 수도 있습니다. 제자리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중에 떠 있습니다. 저쪽 윌슨산인지 팔로마산인지에 있는 천문대에 섰을 때, 그 망원경으로 일억 이천만 광년의 우주 공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달들과 별들, 세계들, 달들과 별들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손바닥 위에서 그것들을 이렇게 훅 불어 내시며 “있으라”고 하셨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을 말하면서 그분을 누군가의 생각 속에 가두려고 하다니요. 그분은 그토록… 제가 목사로 있을 때 부르던 그 짧은 찬송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높아 그 위로 넘을 수 없고, 너무 깊어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없네. 너무 넓어 그 둘레를 돌아갈 수 없으니, 그저 마음을 열고 그분을 모셔 들이세. 그 위로도, 그 아래로도, 그 둘레로도 갈 수 없는데, 여러분의 마음에는 그분을 모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생각입니까. 그분은 얼마나 놀라우신지요. 그러나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분이 어떻게 만물을 다스리시고 움직이시는지, 그분의 움직임과 모든 일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그분께 순종합니다. 모든 것이 말입니다. 별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 별이 그대로 할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분보다 더 많이 압니다. 아시겠죠? 자기 생각이 있으니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눈을 뜨고 둘러보기만 한다면 어디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처음 읽은 성경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고 어떻게 일하시는지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옥수수밭을 갈고 있는데 폭풍이 다가왔습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폭풍이 보이지 않았지만 말들이 콧김을 내뿜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빠, 왜 저러죠?”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얘야, 폭풍이 오고 있단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폭풍이 온다고요?”라고 했습니다. 더없이 맑은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참 신기한 일이 있단다. 말에게는 정확히 어디에… 폭풍이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는 본능이 있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들이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신 거야.”
저는 “참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 밭을 두 바퀴도 채 갈기 전에 번개가 번쩍이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에게도 안전한 곳으로 갈 만큼의 지각을 주셨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에는 얼마나 더 주셔야 하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말에게 본능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버터콩을 심고 있었습니다. 그라운드호그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은 아마 우드척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남부에서는 그라운드호그라고 부릅니다. 조그마한 녀석인데, 제가 버터콩을 심는 족족 그 녀석이 먹어 치웠습니다. 도무지 진척이 없었습니다. 나가 보면 제가 심은 콩을 하나하나 다 파먹으며 내려간 작은 발자국이 줄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녀석은 저쪽의 작은 움푹 팬 구덩이에 살았습니다. 그 작은 녀석을 쏘고 싶지는 않아서, 그저 재미있게 한번 놀려 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터콩을 한 줄 더 심으며 “이 녀석, 어디 두고 보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루 하나를 가져다가 아주 크고 흉측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대한 흉측하게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도표로 가르치면서 개 그림을 그렸는데, 아무도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그 위에 “이것은 개입니다”라고 써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그림이 어떤 모습이었겠습니까. 귀도 커다랗게 그리고 온갖 것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자루에 버터콩을 좀 넣고 막대기에 묶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녀석이 이것을 보면 달아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덤불 속에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망원경으로 그 작은 녀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녀석이… 제가 보던 것은 쌍안경입니다. 쌍안경으로 보니 녀석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작은 녀석이 보였습니다. 움푹 팬 구덩이에서 나와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곧장 콩을 심은 줄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녀석은 자루 앞에 와서 멈추었습니다. 자루를 바라보더니 작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저 흉측한 그림 좀 봐’라고 생각했겠지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다가 다시 물러섰습니다. 그때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이고! 녀석은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가 다시 자루를 보았습니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았습니다. ‘저 자루 뒤에 버터콩이 있단 말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디 보자’ 하고 생각했겠지요. 자루 앞으로 다가가 앞발로 탁 쳤습니다. 자루가 바스락거리자 뒤로 펄쩍 뛰었습니다. 다시 한번 치니 또 바스락거렸습니다. 그러더니 그대로 뒤로 돌아가 버터콩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자, 우리도 그라운드호그만큼은 분별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식사를 알리는 종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바로 뒤에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아멘. 사람들이 “저들은 거룩하게 뒹구는 자들이야, 이런 자들이야, 저런 자들이야”라고 할 때, 신경 쓰지… 우리 가운데 광신자들이 한 무리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바로 그 뒤에는 하나님의 참된 알맹이가 있습니다. 아멘. 바로 거기에 성령의 참된 권능,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마귀는 허수아비를 잔뜩 세워 놓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한번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길을 따라가다가 까마귀인지 검은 새들인지 한 무리가 시끄럽게 울어 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래쪽에 사는 사람은 새들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야생 딸기밭이 있었는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새들을 위해 그 밭을 두었습니다. 어느 해 그가 플로리다에 갔다가 제때 돌아오지 못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딸기를 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밭에 커다란 허수아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해마다 그곳에 오는 것이 습관이 된 새들이 와 보니, 딸기밭에 커다란 허수아비가 서 있었습니다. 어떤 새는 저 높은 나무 위에, 어떤 새는 전신줄 위에, 또 어떤 새는 전신주 위에 앉아서 그 허수아비를 두고 시끄럽게 울어 댔습니다.
저는 ‘참 신기하군. 저것 좀 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밭 한가운데, 그 허수아비의 팔 위에 커다란 까마귀 두 마리가 앉아 정신없이 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 참 대단하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거야… 이것으로 설교 한 편을 할 수 있겠군. 맞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선하신 분께서 자기 교회를 위해 모든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서서 “나는 그런 것 따위는 믿지 않아. 저들이 한 짓을 봐. 흥, 흥” 합니다. 어떤 이들은 전신줄까지 내려와서 “믿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교회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합니다. 여기 옆 전신주에 앉아 있는 이는 “내 생각에는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어. 그래도 저기 무언가가 있기는 한 것 같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딸기밭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 까마귀들은 저기 허수아비의 팔 위에 앉아서 정신없이 먹고 있었습니다.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 성령의 신앙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님, 오른쪽이나 왼쪽에 광신자가 얼마나 많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갈보리의 길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권능을 받아 먹고 기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멘. 이제 마음에 경건한 감동이 일기 시작합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때로는 이 북쪽 숲으로 갑니다. 짐승을 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곳에 가서 쉬려는 것입니다. 캐나다 북쪽의 호수들과 늪지대에서 본 것이 있습니다. 보즈 형제님, 제가 어디를 말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늘 오리 떼가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고 여름철에 그리로 날아갑니다. 이른 봄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대의 늪과 호수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돌보시는 방법은 참 놀랍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에게 일을 해 나갈 길을 주셨습니다.
그분을 지켜보면, 그분은 그분의 자연 안에,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자, 보십시오. 그 작은 오리들, 그곳에 올라가 보면… 가끔 일찍 올라가곤 했습니다. 아직 산꼭대기에 눈이 내리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처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보면 저 산꼭대기에 눈이 있습니다. 구월, 시월 초까지 이어지는 그 찬 바람이 골짜기들을 휩쓸고 내려옵니다. 그러면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수오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 녀석은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그 호수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해 봄 바로 그곳에서 태어난 조그마한 녀석입니다. 그 녀석이 연못 한가운데, 아니 호수 한가운데로 곧장 나가더니 작은 부리를 공중으로 쳐들고 “꽥, 꽥, 꽥, 꽥!” 하고 웁니다. 호수에 있던 모든 오리가 그 녀석에게로 곧장 모여듭니다.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그 오리가 지도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녀석은 그 호수를 떠나 본 적이 없지만, 오리들은 그 녀석이 지도자임을 압니다. 오, 참으로! “꽥, 꽥!” 울기 시작하면 오리들이 이쪽에서 옵니다. 저쪽에서도 한 무리가 옵니다. “꽥, 꽥!” 하며 이쪽으로 오고 저쪽으로 옵니다. 그것을 지켜보면 놀랍습니다.
그 호수 한가운데 작은 물웅덩이가 있고, 그 찬 바람을… 아마 그들은 불어 내려오는 찬 바람에 관해 의논하겠지요. 그러더니 곧장 호수에서 날아올라 루이지애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갑니다. 그 녀석은 호수를 떠나 본 적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오리들은 모두 그 녀석이 자기들의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온전히 신뢰합니다. 그 녀석이 이쪽으로 가면 그들도 그쪽으로 갑니다. 저쪽으로 가면 그들도 저쪽으로 갑니다. 어디를 가든 그들도… 그런데 어찌 되었든 그 녀석은 루이지애나의 논에 도착해서 겨울 추위를 전부 피합니다. 오리에게도 한파를 피할 만큼의 지각이 있다면, 다시 태어난 교회는 어떻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인도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형제님,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것은 조직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도록 성령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 대신 조직을 받아들였습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는 오셔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깊은 강물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조직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을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제 기도는 이것입니다. “오 하나님, 족쇄를 끊고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 내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분의 자연 안에서 그분을 보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교회와도,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과도 꼭 들어맞습니다. 어디에서나 완벽합니다. 형제님, 그 작은 오리가 거기를 떠나 곧장 루이지애나로 갑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을 살펴보십시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돼지를 예로 들어 봅시다. 신문에는 “내일은 날씨가 좋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암퇘지가 언덕 북쪽에서 옥수수 껍질을 가져다가 남쪽으로 옮겨 잠자리를 만드는지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신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날씨가 추워질 것입니다. 그 돼지는 이 나라의 모든 기상학자보다 날씨를 더 잘 압니다. 왜입니까?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본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는 자기 본능을 믿지만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들에게 본능을 주셨고, 우리에게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 작은 오리가 “잠깐만. 저기 있는 조의 생각부터 들어 봐야겠어”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결코 루이지애나에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로 못 갑니다. 인도받는 대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바로… 그것은 형제애입니다. 참된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신다면, 그것이 형제애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 참으로!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제가 지금보다 세 배쯤 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기쁨도 지금의 세 배만큼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오후 시간은 제가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환상을 보면 거의 죽을 것처럼 됩니다. 정말 기운이 빠집니다. 하지만 여기 나와서 이렇게 말씀을 전할 때면, 오, 일주일이라도 서 있을 수 있겠습니다. 참 좋습니다.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고, 저것은 내어 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로 가서 입을 벌리고, 흘러 들어오게 합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서 일하십니다. 믿습니까? 얼마 전 저는 산에서 엘크를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이른 가을이어서 아직 산꼭대기에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눈이 오면 엘크들이 내려오지만, 그전에는 엘크를 만나려면 높은 곳, 저 수목 한계선 부근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어느 날 저는 그 높은 곳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마 가장 가까운 목장 같은 곳에서도 삼십오나 사십 마일쯤 떨어진 로키산맥 꼭대기였습니다. 도시라고 할 만한 곳에서는 이백 마일쯤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소총을 들고 그곳을 걷고 있었습니다. 눈이 왔다가 어느새 비가 오고, 그러다 따뜻해지며 해가 나오는 식으로 날씨가 바뀌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간 지 이틀쯤 되었고, 엘크 떼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밤에는 야영하면서 그 일대를 걷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내려 이렇게 나무 뒤로 들어갔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며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좀 잦아들자 날이 개기 시작했습니다. 산의 그 높은 곳은 추웠습니다. 문득 보니 상록수들이 얼어 있었고, 커다란 고드름 같은 것이 온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찬 바람이 불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얼어붙은 것입니다. 상록수에 얼음이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바라보니 서쪽으로 지는 해가 산 사이 틈으로 이렇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그분의 눈은 참새도 살피시는구나. 하늘에 서서 그분의 눈으로 바라보시는구나. 모든 움직임을 보고 계시는구나.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여러분은 해 질 녘의 풍경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게 그분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해가 지거나 뜨는 모습에서 그분을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때 문득 보니 햇빛이 물에 비쳐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그 무지개를 보며 저는 “오,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자연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저것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노아에게 무지개의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전에는 물이 이런 식으로 내려온 적이 없었으므로, 물과 자연의 요소들이 저런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의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생각이 났습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몸을 돌려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무지개와 같은 모습으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의 홍보석과 벽옥은 르우벤과 베냐민, 처음과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시며 새벽별이신 분입니다. 그분 위에 무지개가 있었고 이 일곱 금 등잔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일곱 교회 시대를 위한 언약을 그분이 가지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깊음이 깊음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하나님, 저는 사냥하러 이 높은 곳에 올라왔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정말 기뻐져서 총을 내려놓고, 목청껏 외치며 나무 주위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누군가 거기 올라왔더라면 저를 정신 병원에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오, 저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총을 집어 들고 계속 가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위대하신 여호와여.” 바로 그때, 폭풍 때문에 흩어졌던 엘크 떼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다음에는 저 높은 산꼭대기에서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고, 그 짝이 아래쪽에서 화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절반이 인디언 혈통이십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깊음이 깊음을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다시 나무 주위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누가 제 소리를 듣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이 원하면 “미쳤다”고 해도 좋았습니다.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제 눈은 갈보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멘. 저는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곳에서 그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기 지는 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여기 무지개 안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저기 늑대 안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여기 엘크 안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여기 제 마음 안에 계시는군요!”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하고 외쳤습니다. 다시 나무 주위를 돌고,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덤불을 발로 걷어차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멈추어서 “오, 할렐루야,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곳을 제가 왜 떠나야 하겠습니까? 너무나 놀랍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언가 움직이며 “짹짹짹, 짹짹짹”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소나무다람쥐였습니다. 우리는 작은 산골 잭이라고 부릅니다. 이만한 작은 붉은다람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시끄럽지만 별것도 없는 녀석입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속은 없는 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녀석은 저를 이렇게 바라보며 “짹짹짹, 짹짹짹” 하고 울었습니다. 마치 저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고, 너는 시끄럽기만 할 뿐, 그게 전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보고 짖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폭풍이 지나갈 때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밀려 내려와 쓰러진 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독수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외치며 즐거워하는 바로 이때, 왜 이것을 제 앞에 두셨습니까?” 저는 ‘이 독수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를 보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 독수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점이 있을까? 썩은 고기를 먹는 새이고, 아주 못된 녀석인데. 저것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점이 있을까?’ 그러는 사이 독수리가 나와 나뭇가지 위로 이렇게 뛰어올랐습니다. 거기 앉아서 독수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울어 대는 작은 다람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 참 묘한 상황이군요. 주님, 이 장면에서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를 보든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기 작은 소나무다람쥐는 숲의 사냥감들을 다 쫓아내는 쓸모없는 녀석이야.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큰 독수리는, 사슴을 잡아 그대로 놓아두면 할 수만 있다면 하룻밤 사이에 다 먹어 치울 녀석이고. 아주 못됐지.’ 저는 ‘이 장면에서 주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자, 하나님께서 왜 이 장면을 제 앞에 두셨는지, 어디서 그것을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바라보다가 문득 독수리에게 용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이 있든 겁내지 않았습니다. 용감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것이군요, 하나님. 주님께서는 겁쟁이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막연히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꿋꿋한 남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뿐입니다.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참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참됩니다. 좋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주님, 바로 거기에 계시는군요. 주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진리를 위해 설 준비가 된 사람을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저는 제 치유를 받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하신다고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가벼운 경련만 일어나도 포기하려고 합니다. 오, 참으로! 또 여러분은 “성령 침례를 믿습니다”라고 하며 교회에서 외치고 춤을 추다가도, 거리에서 비난하는 사람을 만나면 쥐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오, 형제님, 잠잠히 있지 마십시오. 소리 높여 외치십시오. 아멘. 그것 때문에 목이 잘리더라도 침례자 요한처럼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진리를 위해 서십시오.
저는 그 독수리를 바라보며 ‘무엇이 너를 그토록 용감하게 하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를 쏠 수 있다는 것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커다란 회색 눈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녀석은 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다람쥐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소총을 움켜쥐고 “너를 쏠 수도 있어”라고 했습니다. 녀석이 저를 보더니 한번 몸을 튕기고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무엇이 녀석을 이토록 용감하게 하지? 어떻게 저렇게 용감하지? 이해가 안 되는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녀석을 용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녀석이 이렇게 날개를 움직이며, 날개가 멀쩡한지 살피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얼마 전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 강단에서 실수하여 누군가에게 잘못된 말을 하게 될까 봐 두렵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분이 저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는 한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시는 한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그뿐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시는 한 그 배는 제대로 조종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은 계속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저 위의 수목 한계선과 숲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 숲으로만 들어가면 제가 소총의 조준기로 자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앉아 저를 보면서 태평하게 있었습니다.
녀석은 저를 보았다가 다람쥐를 보았습니다. 다시 저를 이렇게 바라보기에, 저는 “참 신기하구나”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 녀석은 소나무다람쥐의 그 작은 재잘거림이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뛰어오르더니 날개를 두 번쯤 퍼덕여 그 숲을 훌쩍 빠져나갔습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더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펼쳐 고정했습니다. 내려오는 기류를 탈 줄 알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녀석은 그냥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려고 퍼덕, 퍼덕, 퍼덕 날갯짓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날개를 알맞게 펼치고 그 기류 하나를 타더니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가서 마침내 작은 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땅에 매인 채 “재잘재잘, 재잘재잘” 하는 이 작은 녀석을 두고 말입니다…
저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소총을 내려놓고 다시 나무 주위를 돌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제 날개를 펼치는 법을 알게 해 주옵소서. 성령께서 밀려오실 때마다 저도 그분을 타고 올라가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이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여기 앉아서 “재잘재잘, 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저들은 거룩하게 뒹구는 자들이야. 성령 같은 것은 없어. 오래전에 떠나가셨어”라고 합니다. 오, 참으로. 그분을 타고 날아가십시오. 할렐루야! 영광! 독수리인 여러분 각자에게는, 원하면 날아갈 수 있는 커다란 두 날개가 있습니다. 아멘. 그저 날개 쓰기를 두려워할 뿐입니다. 가끔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써야 할 때, 바로 그것이 날개를 단련해 줍니다.
어느 날 독수리 둥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 앉아서 보고 있었습니다. 어미 독수리 한 마리가 날카롭게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끼 독수리들을 잔뜩 데리고 둥지에서 나왔습니다. 새끼들은 작은 부리를 어미의 날개 속에 이렇게 박았고, 어미는 그 둥지에서 내려왔습니다. 새끼들이 날개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 녀석들이 풀밭에 발을 디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얼마나 신나게 놀던지요. 어미는 곧장 다시 날아올라 그곳에서 가장 큰 바위 꼭대기에 앉았습니다. 저는 쌍안경을 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콜로라도에서 제가 하고 있던 일은 소를 모는 일이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미는 위에 앉아서 그 눈으로 코요테가 올라오는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자연 안에 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잘 보여 주는 모형인가.’ 그 작은 독수리들은 토사물투성이의, 죄송합니다, 그런 지저분한 둥지를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둥지 안에 토하기도 하고, 고기를 물어 와서 썩게 두기도 했습니다. 가시와 뾰족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가엾은 작은 발로 그런 것들 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미 독수리가 와서 그 녀석들을 데리고 갑니다. 자기 새끼들이기 때문입니다. 발에 부드럽게 닿는 풀이 있는 초장으로 데려갑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시는구나. 우리가 밀주를 파는 술집이나 거리를 전전하며, 죄와 마귀의 토사물과 위스키와 담배의 악취, 그 모든 것 가운데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보리의 날개를 펴셔서 우리를 그늘진 푸른 초장으로 데려오셨구나.’ 영광! 그리고 그 일을 하신 뒤에는 어미 독수리처럼 하셨습니다. 저 영광의 성벽으로 날아올라 거기 앉아 자기 교회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멘.
코요테가 오고 싶으면 와 보라고 하십시오. 그 어미 독수리는 즉시 그 등에 달려들 것이고, 코요테는 숲으로 달아날 것입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엄과 영광의 권능 가운데 앉으셔서, 자신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신자를 어디서든 찾으시면 말씀을 확증해 주시려고 자기 교회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작은 독수리들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미가 보였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할렐루야!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연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성령의 권능이 내려와 움직이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는 한, 하나님께서 여전히 영광의 성벽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지켜보고 계심을 압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그 말씀을 확증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 북풍이 불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 한 줄기가 이쪽으로 불어왔습니다. 어미는 그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공기 속에 비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크게 한 번 울더니 곧장 초장 한가운데로 내려왔습니다. 어미가 이렇게 날개를 활짝 폈습니다. 새끼 독수리들이 모두 사방에서 있는 힘껏 달려와 날아올랐습니다. 뛰어올라 발로 깃털을 꼭 붙들고, 입으로도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미가 그 큰 날개를 들어 올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때쯤 골짜기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은 시속 육십 마일이었지만, 어미는 그 바람을 뚫고 올라갔습니다. 곧장 바위틈의 안전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언젠가 영광스러운 그날에, 이 작은 독수리들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아무 걱정 없이 (할렐루야)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먹으며 참으로 놀라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언젠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한 번 크게 외치며 내려오실 것입니다. 위험이 닥치고 시카고 주변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려 할 때 말입니다. 그분이 그 크고 사랑에 찬 날개를 이렇게 펴시면, 우리는 폭풍을 뚫고 날아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구속받은 자들을 위해 많은 거처가 예비되어 있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말입니다. 할렐루야! 형제님, 저는 지금 정말 거룩하게 뒹구는 사람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분의 자연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십시오.
얼마 전에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런 치유 대전도 집회에 나서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침례교 목사였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지요. 좋습니다. 저는 밀타운 침례교회에 있었습니다. 라이언 형제님, 우리가 그곳에 여러 번 함께 갔지요. 저는 그때… 연세 드신 라이트 형제님 댁에 머물렀습니다. 밤마다 집회를 다녀와 그 집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곳에 늘 앉아 있는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밤새도록 노래하곤 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 그 새들은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의 들판에도 그 새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새벽 두 시쯤 창문을 열고 그 녀석들의 노래를 듣곤 합니다.
저는 ‘무엇 때문에 저 새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구름 낀 밤에는 잠시 노래를 멈추었다가 다시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새들의 습성을 살펴보다가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덤불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별 하나만 보이면 있는 힘껏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알기 때문일까요? 어딘가에서는 해가 비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이 빛나는 한, 분명히 해가 그 별을 비추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해가 비치고 있으니 다시 날이 밝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하나님, 때로 베개처럼 뭉친 어둠이 밀려올 때, 때로 부흥 집회에 있는 이들이 모두 형식적이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 되려는 것만 같을 때에도, 제가…” 그러다가 가끔 옛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어딘가에서는 해가 비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그 빛이 내리쬐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밤 밖에 나가 저기 떠 있는 커다란 샛별, 저녁별을 바라보면서 제가 “별아, 무엇이 너를 빛나게 하니?”라고 묻는다면, 별은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러면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아름답게 하니?”라고 하겠지요. “제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빛나고 있니?” “제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빛나는 거니?” “해가 저를 비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빛나게 합니다.” 얼마 전 한 의사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브래넘 목사님, 목사님이 말하는 그 성령의 사람들은 그저 흥분한 것뿐입니다. 억지로 감정을 고조시킨 것일 뿐이지요”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제가 무엇이라고 믿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을 비추어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신유와 복과 영광 가운데 그분의 권능을 비추시면, 여러분은 잠잠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전에 제가 물을 마시곤 하던 샘가에 엎드려서,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제가 본 샘 중에서 가장 행복한 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 뽀글뽀글, 뽀글뽀글, 뽀글뽀글 솟아올랐습니다. 옛 신앙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과 같습니다.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언제나 똑같이, 계속 솟아 넘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연 가운데, 땅속에서도 일하십니다. 믿습니까? 제가 그 샘 곁에 앉아서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묻겠지요. “무엇이 너를 솟아오르게 하니? 무엇이 너를 그렇게 행복하게 하니?” 그러면 샘은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제가 “혹시 내가 네 물을 마시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거니?”라고 물으면, “아닙니다.” “사슴이나 곰이 네 물을 마시기 때문에 솟아오르니?” “아닙니다.” 제가 “그럼 무엇이 너를 솟아오르게 하니?”라고 묻겠지요. 그러면 샘은 “브래넘 형제님, 제가 스스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 뒤에 무언가가 있어서 저를 밀어 올리고 솟아오르게 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모두 그렇습니다. 여러분 뒤에 무언가가 있어서 여러분을 밀어 올리고 솟아오르게 합니다. 할렐루야! 오, 영광!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뽀글뽀글, 뽀글뽀글, 뽀글뽀글 솟아오르게 합니다. 영원한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그분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내 안에는 살아 있는 물이 있느니라. (할렐루야) 내가 네게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솟아오르는 살아 있는 물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형제님, 콸콸 솟아나는 샘입니다. 한번 터지면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휴! 그저 뚜껑을 벗기고 흘러나오게 하십시오. 아멘.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물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 어린 남자아이가 하나 살았습니다. 그 아이는 오하이오강 근처에 있는 아주 형식적인 일요일 학교에 다녔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 가운데 배를 타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물 위에 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아실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린아이가 무척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신데, 그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어머니는 “얘야, 엄마는 모르겠구나. 일요일 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목사님께 가서 “목사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니다, 얘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어. 물론 볼 수 없지. 그저 계신다고 믿는 것이고, 아무도 그분을 볼 수 없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엾은 아이가 “그렇지만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이 그렇게 실제로 계신다면, 왜 아무도 그분을 볼 수 없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냥 볼 수 없는 거야, 얘야. 그분은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는 강에서 나이 든 어부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이렇게 흰 수염이 있고 머리카락이 긴 노인이었습니다. 강가에 사는 노인이었지요. 어느 날 식스마일섬 근처에 올라갔는데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돌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늙은 어부는 아주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노를 저으며 내려오고 있었는데,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는 배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음악과 같습니다. 그 노인이 이렇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친 뒤라 나뭇잎도 모두 씻겼고, 모든 것이 깨끗하며 상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가 바라보니 해가 나왔고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노인은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노를 당겨 물을 가르고, 다시 노를 당겨 물을 갈랐습니다. 그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배 뒤쪽에 앉아 있던 아이는 노인의 흰 수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무지개를 보며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노인을 바라보다가 그 앞으로 달려가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선생님도, 엄마도, 목사님도 대답해 주시지 못한 것을 여쭤볼게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노인은 마음이 벅차올라 있었기에 노를 무릎 위로 끌어당기고, 두 손을 이렇게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팔로 감싸 가슴에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마음에 복을 주시기를 바란다, 얘야. 저기에 계신 그분이 보이지 않니? 나는 삼십오 년 동안 하나님만 보아 왔단다.” 여기 마음 안에 하나님이 가득하시니, 하나님께서 저 밖에서 자신을 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비치고 계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모시면, 구원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그날에는 새들의 노래도 다르게 들립니다. 온 우주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고,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전에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그 원수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하게 됩니다. 말도 섞지 않던 이웃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훔친 타이어 공구며 그 밖의 모든 것을 돌려주면서 “제가 그런 일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그렇게 변화시킵니다. 그분을 찾으며 둘러보면, 분명히 그분의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까? 얼마 전, 아, 아마 오십 년쯤 전에 전국을 다니는 무신론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에서 무신론으로 돌려놓고 있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죽어 갈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엄마, 웃으면서 견뎌 내세요”뿐이었습니다. 오,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 참 대단한 위로였지요. 그가 영국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그의 말을 따라 돌아선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느 설교자도 그에게 맞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요. 영리하고 약삭빠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설교자들을 이렇게 간단히 꺾어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가… 그가 거기 서서…
제 친구 한 사람이 그의 토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 무신론자가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황산병을 들고 서 있었을 때 말입니다. 황산병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이라는 분들, 마가복음 16장에는 ‘그들이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황산을 마셔 보십시오.” 그러자 그들 중 몇 사람이… 그들은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그러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으로도 그분을 시험하면 안 되겠군요. 아마 그분을 귀찮게 해 드리면 안 되나 봅니다”라며 그들을 그런 식으로 조롱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이야기 나온 김에 이것도 말씀드릴 수 있으면 해야겠습니다. 목덜미까지 머리를 기르고 작업복 상의를 입은 덩치 큰 시골 청년이 뒤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걸어 나왔습니다. 앞니가 이렇게 튀어나왔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장 강단 쪽으로 걸어와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큰 사과 하나를 꺼내 칼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신론자가 “이 멍청아, 뭘 원하는 거냐?”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며 계속 사과 껍질을 벗겼습니다. 무신론자는 “원하는 게 뭔지 말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쫓아내겠다”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잠깐만요. 제게 시간을 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사과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어 먹을 준비를 한 뒤 입에 넣고 이렇게 씹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뭔데?” “이 사과가 달까요, 실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걸 먹고 있지 않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청년은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맛보고 느껴 보지도 않고, 그분이 실제로 계시지 않는다고 어떻게 압니까? 할렐루야. 한 번도 시험해 보지 않고 신유가 참되지 않다고 어떻게 압니까? 성령이 참되지 않다고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은 성직자의 옷을 걸치고 돌아다니며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것을 전부 말로 부정하고, 신학 이론만 한 무더기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참되신지 아닌지 맛보아 살펴본 적도 없다면,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신실하십시오. 그분 앞에 겸손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거기에 데이비스 박사가 있었고, 연세 드신 감리교 감독이 이 젊은 설교자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젊은 로이 데이비스가 그 감독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 무신론자가 “당신들 중에 누구든…”이라고 했는데, 어떤 목사들은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받은 말씀이 아닙니다. 영감받은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무신론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저쪽에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는 마태복음 11장 27절 말씀에 대해, 그것도 영감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이의 말에 따르면,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거기 일어서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나이 든 감독에게 말했습니다. “저 무신론자가 한 번만 더 그렇게 도전하면, 제가 여기서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천국에 가겠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앉아서 그냥 내버려 두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떠벌리고 있을 뿐이야. 내버려 두게.”
그처럼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 무신론자가 다시 도전하더니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시계를 들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나는 일 분 안에 죽을 것입니다.” 일 분을 기다린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분은 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 하, 하, 하!” 그렇게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가 다시 “저기 계신 분들 중에 하나님이 그렇게 실제로 계신다고 믿는 분은, 이 황산 시험을 해 보십시오”라고 도전하자 로이가… 자, 제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지 않는 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뱀을 집어 드는 일을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가 물에서 침례를 주고 있는데 뱀이 저를 물었다면, 바울이 했던 것처럼 뱀을 강둑으로 던져 버리고 계속 침례를 주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몰래 제게 독을 먹였다면, 제 치유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것들을 가져다 놓고 “이리 오십시오.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 형제님은 강단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이 일에 관한 공증인의 진술서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가 올라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곳에는 이삼천 명쯤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스물다섯 살입니다. 복음의 사역자입니다. 제 하나님께서 저를 이것에서 건져 내실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저 무신론자가 저것을 손에 들고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영광 가운데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의 손에서 병을 빼앗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마신 다음, 그 자리에 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회에 앉아 있던 약 천오백 명이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그 무신론자는 돌아온 뒤 쉬고 싶어서 이 서부의 콜로라도로 갔습니다. 그곳에 야영지를 마련해 놓고, 어느 날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어서 몸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문득 위를 바라보니, 바람이 산에 걸쳐 있는 커다란 바위들에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혹시 내가 틀렸던 것일까?” 하고 말했습니다. 몸을 낮추고 말했습니다. “오, 어디에 계시든, 누구시든, 저기에 걸려 있는 바위들을 보십시오. 제가 틀렸습니까? 물이 저렇게 씻어 낸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저렇게 놓으신 것입니까?” 무슨 일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 곧 설교자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그 무신론자는 거기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렸습니다. 돌들이 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자연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아, 이것만으로도 한 시간 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잠깐 멈춥시다.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이제 다른 것들을 서둘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씨,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씨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심는 씨와 똑같습니다. 밀이라면 밀이 올라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약속은 알맞은 땅에 심어 자라게 하면 정확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곳에 심어 놓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저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치유되었습니다. 주님, 받아들입니다. 저는 결코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의 얼굴에 흙먼지를 뱉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이기 때문입니다. 살든 죽든 저는 그 자리에 머물겠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겠습니다. 그것이 제 확신입니다. 그것이 제 입장입니다.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서리라.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일세. 거기에 굳게 머무르십시오. 그렇고말고요. 말씀하신 그대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마치 조그마한… 여기 계신 많은 분은… 이 근처를 보니 사과를 많이 재배하는 과수원들이 있더군요. 겨우 이만한 작은 사과나무, 아주 작은 싹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무에서 앞으로 나올 사과 한 부셸 한 부셸, 사과 하나하나, 꽃 하나하나, 잎 하나하나가 그때 이미 그 나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셨습니까? 그 나무에서 사과 이백 부셸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과가 나무가 겨우 이만할 때 이미 그 작은 나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나옵니까? 누가 그것들을 달아 놓는지 말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나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그 나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무를 가져다가 땅에 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물을 주면 나무는 그저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실 뿐입니다. 자기 몫보다 더 많이 마셔야 합니다. 많이 마실수록 더 크게 부풀어 나옵니다. 가지를 뻗어 냅니다. 그다음에는 잎을 내고, 꽃을 내고, 사과를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함께 심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심겨서,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며 밖으로 뻗어 나옵니다. 이 땅의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 신유와 하나님의 권능과 그 밖의 모든 것이 성령 침례를 받은 여기 각 사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심겨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침례를 받으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삶의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 심지어 휴거까지도 그때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 말씀에 반감을 갖지 마십시오. 진리입니다. 휴거는 지금 우리 안에 있습니다. 복음으로 입증하겠습니다.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바로 지금 천국의 하나님 앞에서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곳을 향해 자라 나가고 있습니다. 아멘. 영광.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서둘러야겠습니다. 거기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씨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여러분은 그저 그것을 붙들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 증상을 바라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 손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아픕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 자세입니다.
증상이 아주 심했던 사람이 요나였습니다. 그에게는 정말 증상이 있었습니다.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는데, 그는 다소로 내려갔습니다. 쉬운 길을 택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쉬운 길을 택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로 내려가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 다소로 갔습니다. 그때 그는 신앙에서 물러난 상태였습니다. 바다에 폭풍이 일었고, 사람들이 그의 손발을 묶어 배 밖으로 던졌습니다. 커다란 고래가 그를 삼켰습니다. 고래든 다른 물고기든 먹이를 먹고 나면 곧장 바닥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무엇을 하는지 보십시오. 곧장 바닥으로 내려가 작은 지느러미를 바닥에 대고 쉽니다. 먹이를 찾을 때까지 물속을 돌아다니다가, 먹이를 찾으면 내려가 쉬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 보십시오. 어디 봅시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신앙에서 물러난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의 손은 뒤로 묶였고 발도 뒤로 묶였습니다. 폭풍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고래가 그를 삼키고 쉬려고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이 설교자는 그런 처지에 놓인 채, 신앙에서 물러나 저 아래에 있습니다… 오늘 이 건물 안에는 그렇게 나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앙에서 물러난 채, 두 손이 뒤로 묶여 고래 배 속에, 바닷속 수 마일 깊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목에는 해초가 감겨 있고 토사물은 무릎까지 차 있었습니다. 이쪽을 보아도 고래 배 속이고, 저쪽을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증상이 심한 경우를 말하자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손은 뒤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에서 물러난 채 고래 배 속에, 바다 맨 밑바닥에 있었습니다. 고래 배 속,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형제님, 오늘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고래 배 속, 그 모든 증상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오 주여,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오, 형제님. “다시 바라보리이다…” 이 고래 배 속도 아니고, 신앙에서 물러난 내 상태도 아니고, 뒤로 묶인 내 손도 아니고, 내가 있는 곳도 아니고, 폭풍 이는 바다도 아닙니다. “주여,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 솔로몬이 그 성전을 봉헌했을 때 불기둥이 안으로 들어가 그 뒤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주여, 주님의 백성이 어디서든 어려움에 처하여 이 거룩한 곳을 바라보고 기도하거든,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백성을 건져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증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고래 배 속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신앙에서 물러난 자기 상태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솔로몬의 기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요나도, 그런 증상을 가지고도 땅에 있는 사람이 기도한 땅의 성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더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고 자신의 피를 가지고, 오늘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여러분이 고백하는 모든 것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불명확한 말] 참으로, 증상들아, 물러가라! 너희는 거짓되고 헛된 것들이다! 더는 너희를 믿지 않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나를 치유하셨다. 할렐루야! 너는 내게 계속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만, 너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겠다. 주여, 저는 주님의 거룩한 전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버지 오른편에 서서 저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그곳을 말입니다. 휴! 오, 참으로! 이제 저는 정말 거룩하게 뒹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일곱 바다를 다녔지만, 거룩하게 뒹구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교회에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제가 그러기를 원하신다면, 거룩하기만 하다면 정말 뒹굴겠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믿습니까?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자, 서둘러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음을 믿습니까? 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어제 제가 그것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 종교개혁 때 깨끗이 바로잡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말하려 합니다. 여기에도 유대인들이 몇 분 앉아 계십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에게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완전히 개별적인 세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줄 압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분명히 한 분이십니다. 세 경륜, 세 가지 나타나심이 있지만, 언제나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삼 피트짜리 자와 같습니다. 여기는 십이 인치입니다. 여기는 십이 인치에서 사 인치까지입니다. 여기는 삼십육 인치입니다. 그러나 같은 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다가오시려고 자신을 계시하시며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산 위에 떠 있는 불기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조차 그 진동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든, 심지어 짐승이라도 산 가까이 오면 창으로 꿰뚫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다음에는 같은 하나님께서 죄를 제거하시려고 육체로 나타나,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분이 아들 하나님이셨습니다. 믿습니까?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니라.”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기둥 가운데 계셨던 같은 하나님께서 여기 육체의 몸 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불기둥이 불타는 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세대에게 내가 곧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명절에 서서 “내가 그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그저 십이 인치가… 십이 인치에서 이십사 인치까지 펼쳐져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자신을 계시하실 때… 처음에는 불기둥으로, 그다음에는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인 그분의 아들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인류를 향해 내려오고 계십니다. 이제는 새롭게 다시 태어난 죄 많은 사람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온 교회 안에 살고 계십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오, 참으로. 아시겠죠?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밖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백성과 함께 계십니다. 죄를 제거하시려고 초자연적인 존재에서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으로 내려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나’는 인칭 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길을 어떻게 마련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분이 그대로 내려와 죄 속으로 뛰어드실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깨끗하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불기둥으로 계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처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오셔서 사람들의 몸에서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실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분은 땅에 계실 때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처럼 보이셨고, 하나님처럼 말씀하셨고, 하나님처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처럼 치유하셨고, 하나님처럼 부활하셨고, 하나님처럼 승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시면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아, 얼마나 여러 번 우리가… 그 사실을 얼마나 깊이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나 제 말뜻을 이해하신 줄 믿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자신을 펼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연에서 나와 육체로, 그분의 아들 안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나가신 로고스입니다. 태초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 로고스가 나왔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육체 안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죄를 제거한 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사람들 안에 사시며, 아담과 이브에게 하셨듯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제 부모님은 저보다 앞서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세 존재에 관한 가톨릭 신앙은 제게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들은 아들의 신분이 영원하다는 것, 곧 실제로 개별적인 세 존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긴 흰 수염을 가진 노인이고, 아들 하나님은 중년 남성이며, 성령은 마스코트인 어린 소년 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또 저는 손가락 하나처럼 하나라고 주장하는, 일신교라고 하는 오순절 조직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분명히 잘못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의 아버지이실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남자라면 예수님은 성적 욕망으로 태어나신 것이지 처녀 탄생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아시겠죠? 그분이 여러분의 손가락 하나처럼 하나이시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그분이 자기 자신의 아버지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펼쳐 드러내시는 그 나타나심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며 자신을 드러내시고, 여기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살려고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 안에 계셨고,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도 계심을 보여 드렸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그 하나님, 모세가 불기둥을 보았던 옛날에 살아 계셨던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언약의 천사였다고 믿는 분은 “아멘” 하십시오. 그 언약의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크게 여겼으며, 이집트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그리스도를 따랐는데, 그분이 로고스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들의 신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마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경륜을 거쳐 내려오시는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서로 다른 개별적인 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한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영광!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마귀의 옆구리를 쳐서 돼지처럼 꽥꽥 소리 지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이 마지막 날들에 계시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냥 정신 병원을 찾아가 그 안에 들어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 자신은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거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가 알아야 할 때 그것을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과 꼭 맞아떨어지며 명확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옛날에 그분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그분이 아들로 계시던 날들에 하신 일을 보십시오. 이제 이 성령의 경륜 가운데서 그분이 하고 계신 일을 보십시오.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분은 같은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자들,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일으켜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저 작은 책을 읽고 증언들을 확인하십시오. 저의 이 보잘것없는 사역에서도 그런 일을 세 번 보았습니다. 의사들은 그들을 죽은 사람으로 눕혀 놓았습니다. 죽어서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 그들이 다시 되살아났고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편지를 써서 그것이 사실인지 물어보십시오.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생 동안 세 사람만 살리셨습니다. 셋의 증언이 확립되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하게 하라.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살고 계십니다. 옛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큰 기쁨이 있었고,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께!” 하고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저들을 조용히 시키시오. 신경이 거슬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설교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목청껏 소리치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제퍼슨빌의 한 침례교회에서 일요일 학교를 가르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빌리, 그 여자가 소리치며 울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예배가 좋았어요. 사람들이 저렇게 외치는데 대체 어떻게 설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저렇게 외치지 않으면 저는 설교를 못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니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 함께 사냥하던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프리츠라고 불렀습니다. 그 개는 스컹크를 빼고는 무엇이든 잡으려 들었고, 어떤 짐승이든 나무 위로 몰아붙였습니다. 스컹크에게는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스컹크를 덤불 더미 속으로 몰아넣고는 그 주위를 돌며 짖기만 했습니다. 개가 안으로 들어가 스컹크를 잡게 하려면, 제가 덤불 더미를 들어 올리고 개를 쓰다듬으며 “잡아라, 녀석아. 잡아라, 녀석아”라고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들어가서 스컹크를 잡았습니다. 형제님, 제가 “아멘”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것은 “잡아라, 녀석아” 하는 소리입니다. 제가 아는 가장 큰 스컹크는 마귀입니다. 지금 당장 그놈을 덤불 위로 몰아붙여 잡읍시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잡아라, 녀석아.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여자가 울기 시작할 때 제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운 좋게 천국에 가신다면 얼어 죽으실 것입니다. 거기서는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밤낮으로 외치고 소리 지르며 ‘주께 거룩, 거룩, 거룩하도다’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그분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그분의 말씀 안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이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을 밀주 술집에서 끌어내고, 부랑자들의 거리에서 끌어낸, 살리는 불멸의 생명입니다. 여러분을 붙들어 품위 있는 여인으로 만든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담배와 술과 방탕을 멀리하게 해 준 그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 그분의 권능으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뿌리실 때, 여러분의 마음이 그 말씀을 붙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할렐루야! 여러분은 “흥분하셨군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흥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형제님, 제가 흥분한 것이라면 계속 흥분하게 놔두십시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있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지낼 때 삶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계시며,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죽을 육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 계심을 믿습니까? 햇빛에서 그분을 보십니까? 나무에서 보십니까? 꽃에서? 그분의 말씀에서? 그분의 아들 안에서? 그분의 백성 안에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 계십니다. 아멘.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 생각을 분별하시며, 병자를 치유하시고, 눈먼 이가 보게 하시며, 귀먹은 이가 듣게 하시고, 다리 저는 이가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할렐루야! 오, 참으로. 하나님께서 방금 물꼭지를 잠그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정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그저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데, 저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 형제님, 화음을 좀 잡아 주십시오. 제가 음을 좀 높게 잡았습니다. 이제 찬송할 준비를 합시다. 눈을 감으십시오. 이제 손을 드십시오. 백스터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불명확한 말] 누가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좋습니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머리를 숙여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은 정말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느 날 그리스 사람들이 와서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 여러분은 오늘 그분을 보고 계십니다. 저 문으로 나가면 그 덤불 속에서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기 길가의 꽃들에서도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오후 해가 질 때, 작은 새가 저 위에 앉아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노래하기 시작하면, 그 새는 행복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현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루미 몇 마리가 잠자리로 내려가려고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집회에서 막 돌아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 부인이 현관으로 올라와 제게 [불명확한 말] 글이 적힌 그림을 주었는데… 바다 위의 배와 지는 해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는 해와 저녁별, 그리고 나를 부르는 한 줄기 또렷한 소리. 내가 바다로 나아갈 때, 모래톱에 슬픔의 소리가 없기를.”
오 하나님, 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울새들이 나무 위로 날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먹여 주셨고,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두루미들은 강둑으로 내려가 사랑하는 식구들과 모여 밤새 머물려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보” 하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팔로 저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빌, 당신 너무 지쳤어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 이마 위로도 해가 질 거예요. 내 인생의 해가 낮게 기울겠지요. 언젠가 마지막 설교를 전하게 될 거예요. 그러고 해가 지기 시작할 때, 그분이 나를 위해 처소를 마련해 두셨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저곳에서 그분과, 또 여러분 모두와 함께 모이고 싶습니다. 이제 조용히 찬송합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이 건물 안에 죄인이 계십니까? 손을 드시거나, 일어나 이 앞으로 나오셔서 “예수님을 제 구원자로 영접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십시오.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머리를 숙인 채 이 곡을 흥얼거립시다. [브래넘 형제님이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인 남녀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의 천사가 지금 여기 계십니다. 오늘 오후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지 않으셨다면 받지 않은 채 나가지 마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분의 종. 가지 마십시오. 일주일이 걸리더라도 바로 여기 머무십시오. 지금 성령을 받으십시오. 언젠가 우리는 함께 모일 것이며 해는 저물 것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마음도 숙이신 채로 계십시오.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이제 보즈 형제님께 기도를 인도해 주시도록 부탁하겠습니다. 보즈 형제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