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밤 주님을 섬기는 이 집회에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렇게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뵙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밤에는 저희가 조금 늦게 들어왔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도 듣지 못했습니다. 기도에 푹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님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집회가 사흘째 밤을 맞았습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 모두 성령의 복을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피닉스는 온 도시의 모든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에 좋은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인 로버츠 형제님이 막 다녀가셨는데, 그분은 늘 좋은 부흥 집회를 인도하십니다. 이번 부흥 집회에서도 지금까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셨으니, 이제 모든 교회가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시내에서 부흥 집회가 한두 곳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일 하나님의 성회인 것 같은데, 어떤 복음 전도자께서 부흥 집회와 아침 집회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그 형제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헤이거 형제님입니까? [누군가 “헤이건입니다.”라고 말한다.] 헤이건이요? 헤이건 형제님이 그곳에서, (거기가 제일 성회인가요?) 제일 하나님의 성회에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났는데, 훌륭한 분입니다. 그분은 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쪽 집회를 이미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계획해 놓았다고 해야겠군요. 이곳처럼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서는 집회가 겹쳐도 해롭지 않습니다. 교회에 갈 사람이 아주 많으니까요. 그곳에서는 아침 아홉 시나 열 시쯤에 아침 예배도 드립니다. 이 도시에 오신 방문객 여러분, 한번 들러서 그 형제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분을 만난 적은 없지만, 만나 보았든 못 보았든 그분은 제 형제입니다. 또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부흥 집회들도 있을 텐데, 소식을 전해 주시면 이 강단에서 기꺼이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를 위해 신부가 자신을 준비하도록 돕는 일에서 우리 몫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택한 길입니다. 이 일로 주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자, 오늘 밤 모두 기분이 좋으시지요? 충분히 기도하고 준비하셨습니까? 아, 참 좋습니다. 이제 시작하기 전에 여기 있는 손수건들을 놓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 손수건들은… 예, 형제님. 이 손수건들은 병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여기 놓인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였던 것 같은데, 한번은 기도할 손수건이 스물한 자루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천 장의 손수건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브래넘 형제님은 아주 좋은 분이지만 미신을 많이 믿습니다. 손수건을 놓고 기도하거든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신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형제들이 했던 일을 해서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성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갔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바울이 무슨 일을 하든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가 분명 비성경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바울이 엘리야가 자기 종, 게하시였던 것 같은데, 그 종에게 했던 말에서 이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수넴 여인의 아기가 죽었을 때, 그는 “이 지팡이를 가져다가 아이 위에 놓아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손댄 것은 무엇이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인도 그것을 믿게 할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의 믿음은 지팡이가 아니라 선지자에게 있었으니… 저는 바울이 거기서 이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바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성정의 지배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께 나아가는 접촉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신뢰할 만한 누군가를 보내십니다. 자녀 된 우리 모두는 그런 아버지가 계심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사랑이 많고 인자하셔서 우리가 믿고, 그분이 사랑으로 제시하신 조건에 따라 그분을 받아들이도록, 그 권능으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 이 손수건들, 아마 저 사막 어딘가에, 또 나라 곳곳에 병든 아이들과 어머니들, 아버지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아픈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신실한 마음으로 이것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여기 “아기”라고 적힌 작은 턱받이도 보입니다. 제 아기의 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아기의 것이라면요? 누군가의 아기입니다. 그들은 이것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는다고 믿으며 단순한 믿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손수건들과 작은 턱받이들, 여기 있는 천 조각들 위에 아버지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이것들을 가져올 때 아버지께서는 보셨습니다. 아버지, 하나하나 모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손수건들과 작은 물건들이 거룩히 구별되게 하옵소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성령께서 지켜 주옵소서. 이것을 그 작은 아기 위에 놓을 때, 어떤 문제이든 사탄이 물러가게 하옵소서. 성경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해 여행하다가 홍해에 이르렀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걸어가며, 빛의 천사의 인도를 받아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홍해에 이르자, 바다가 길을 가로막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자,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통해 노한 눈으로 내려다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겁을 먹고 물러가 물결을 갈랐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습니다. 아버지, 이 손수건과 물건들이 병든 이들에게 이르면, 하나님께서 아들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해 다시 노한 눈으로 원수를 내려다보시고, 이 증표 때문에 원수가 겁을 먹고 물러가게 하옵소서. 그들이 건강과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이르게 하옵소서. 온 마음의 신실함을 담아 이 목적으로 이것들을 보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고,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실 것을 아니 참으로 기쁩니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동일하신 복된 주 예수님이십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셨으며, 갈릴리에 계시던 때와 똑같이 오늘도 실재하십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제가 머무는 집에는 아주 사랑스러운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어제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에서 제게 환상이 임했습니다. 환상은 강단에서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것은 그저 작은 부분입니다. 방에서 환상이 임했고, 저는 지금 여기 계신 자매님들이 앉아 있던 식탁으로 갔습니다. 저는 “키가 이 정도 되고 금발인 어린 여자아이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오늘 검은 자동차의 사고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고, 저는 기도했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앞으로 이삼 일 안에 그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시각, 그 집의 사랑스러운 어린 딸이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놀랍게… 조금 전에도 우리는 앉아서 그 일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일들, 여러 가지 일들이 늘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표적입니다. 그분은 여기 계신 감리교인들을 모두 사랑하시고, 침례교인들, 장로교인들, 오순절교인들, 나사렛교인들,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작은 교파의 장벽들이 우리의 교제를 갈라놓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며, 그분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백인이든 갈색 피부든 황인이든 흑인이든, 그분께는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 각자는 백인이든 갈색 피부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서로 피를 수혈해 줄 수 있고, 수혈로 서로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와 다르게 지음받은 한 분이 오셔서, 그분의 피를 수혈받음으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었으니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그분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피가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의 피는 창조된 피였습니다. 어떤 남자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마리아를 덮으셨고, 마리아는 수태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그것은… 피는 남성에게서 오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피였습니다. 유대인의 피도 이방인의 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나온 피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피가 가로막힌 모든 중간 벽을 허물고, 우리를 하나의 사랑스러운 교제 안으로 함께 이끄셨습니다.
오늘 밤 뒤쪽에 제 인디언 친구들이 몇 분 앉아 계시는군요. 오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토요일에 보호구역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아파치, 아파치 인디언 보호구역인 것 같은데, 그곳에 가서 집회를 여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뜻깊은 일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지난번 그곳의 밤 집회에서 인디언들에게 말씀을 전한 일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중 몇 분이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예수님께서 그분들을 사랑하신다고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미국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그분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톱밥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사람이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도 그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기도받을 분들은 줄을 서시라고 했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기도 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도 기도 줄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스페인어를 쓰는 친구들 몇 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그런데 우리에게 노래해 주던 작은 스페인어 성가대와 그 자매님들은 어디 계십니까? 다시 함께 모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글로리아 아 디오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까? 그런 말이었습니다. “글로리아 아 디오스”인지… 저는 ‘아, 저분들이 계시니 기도 줄을 세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가… 선교사님이 그곳의 작은 장소에서 몇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저는 발코니에 서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데리고 나왔는데, 여자분이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성병을 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도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형편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몹시 놀랐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다음은, 제 기억으로는 열병으로 청각을 잃은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말도 못했었습니다. 아이가 무슨 말인가 중얼거리기에, 저는 통역자에게 “말도 더 잘하게 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음, 지금도 말 아주 잘해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사시가 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치유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정말 기도 줄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기도 줄에 섰습니다.
그다음에 온 분이 기억납니다. 여기 계신 무어 형제님이 길에서 도와주셨던 것 같습니다. 가엾은 할머니 한 분이 제게 왔습니다. 빗자루 자루에 나무를 가로질러 대고 헝겊을 감아 목발로 쓰고 계셨습니다. 머리를 늘어뜨린 채 제게 와서 저를 올려다보셨습니다. 세월의 근심으로 깊은 주름이 팬 가엾고 늙은 얼굴, 흐릿한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얼굴의 그 깊은 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어머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아, 참으로 믿음과 사랑과 존경이 넘쳐흘렀습니다. 제게 기도해 달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저를 바라보시더니 목발 하나를 잡고, 또 하나를 잡아 제게 건네주고는, 몸을 쭉 펴고 그대로 걸어가셨습니다. 그저 그렇게 말입니다. 단순한 믿음입니다…
우리 백인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 모든 것을 따져 보려고 합니다. 그분들은 따져 보려 하지 않고 그저 믿습니다. 참 쉽습니다… 놀랍습니다. 저는 우리가 배운 것들을 많이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야 그저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오늘 밤에는 성경을 조금 읽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제단으로 나오라는 제 초청이 아주 좋았다고들 합니다. 그것이 참 기쁩니다.
이것은 새로운 일입니다. 이번까지는 제가 직접 제단으로 나오라고 초청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혼들을 주고 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집회가 이처럼 잘 진행되는 이유도 자녀들이 왕국 안에 태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은 오늘 밤 여기 누워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낫는 것보다, 한 아이가 왕국 안에 태어나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녀들을 고쳐 주기를 좋아하시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들의 혼을 고치기 원하십니다. 그래야 부활 때에 여러분에게 불멸의 몸을 주셔서, 다시는 병들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눈이 멀거나, 그 밖의 어떤 고통도 겪지 않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자, 성경 창세기 22장입니다. 저와 함께 읽으시려면 빨리 펴 주십시오. 말씀을 전할 짧은 본문입니다. 바로 앞에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아홉 시 정각에 기도 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제 창세기 22장 7절을 읽고, 그다음 14절… 7절과 8절, 그리고 14절을 읽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그가 이르되, 보소서,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렇게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서 이제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들이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이제 잠시 머리를 숙이고, 이 말씀을 기록하신 분께 아뢰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아버지의 거룩한 성경에서 읽은 이 말씀을 받아 주옵소서. 이 말씀은 불멸하며 영원하고, 결코 죽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나그네로 계실 때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시간을 넘어 시대가 계속되는 한, 오늘 밤 읽은 이 구절들이 계속, 계속, 끝없이 이어질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성경에 두셨으므로 끝이 없습니다. 오늘 밤 이것을 근거로 이 말씀을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보내신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목적을 아시오니, 아버지, 오늘 밤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머물 곳을 찾게 하옵소서. 길을 벗어나, 아버지를 자기의 구주로 알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거나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 이들, 아버지, 그들의 마음 깊이 이 말씀이 스며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랑스럽고 겸손하게 십자가로 나아와 아버지 보시기에 의롭게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미 아버지를 받아들인 아버지의 자녀들 중에, 여기 간이침대와 들것에 누워 있고 휠체어에 매여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희망도 없고 도울 길도 없는 이들입니다… 저기 앉아 있는 이들 중에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언제 죽을지 몰라, 순식간에 실려 나갈 수도 있는 절망적인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옵소서. 그 안에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 밤 주님께서 놀라운 부활의 권능으로 이곳에 임하옵소서. 주님, 말씀하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옵소서.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호와이레에 관해 이야기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오늘 밤 그분의 말씀과 백성에게 함께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 복합 이름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여호와이레입니다. 여호와이레,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라파, 너를 치유하는 주, 그리고 계속해서 여호와닛시, 작은 방패, 큰 방패, 평화입니다. 여호와께서 계시하신, 구속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 복합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름이 하나의 사랑스럽고 위대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였습니다. 여호와의 구속을 나타내는 그 복합 이름들이 모두 그 안에서 성취됩니다.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처음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환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밤 여기 피닉스에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아니, 기본적인 동기는 이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셋째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성경대로 말입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 히브리서 13장 8절이 가르치듯이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원칙도 같고, 권능도 같고, 긍휼도 같고, 행하시는 일도 같으시다고 믿습니다. 그때 그분의 모든 모습은 지금도 같으며, 언제나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떠나시기 전에, 자신이 가실 것을 가르치시며 죽으신 뒤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다시는 그분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그분을 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까지 그들과 함께, 심지어 그들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이 마지막 멸망을 맞지 않았으니,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아는 것,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럽고 경이롭지 않습니까? 이제 어제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만 알면, 오늘 어떤 분이시고 영원히 어떤 분이실지도 알 것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은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겸손한 사람이셨고,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도 없었습니다. 겉모습은 왕처럼 보이지 않으셨지만, 왕들의 왕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행하신 일들 중 어느 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결코 혼자 있지 않다. 아버지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신다.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내게 보여 주시고, 그러면 내가 가서 그 일을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들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우리는 그분이 다니시던 중에… 그분이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이셨으므로 그분께 권능이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효능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지고는 무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분을 만졌으므로 만족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돌아서서 사방을 둘러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분을 만졌지만, 그 여자의 손길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주위를 쭉 둘러보시다가 마침내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즉 내게서 효능이 나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찾을 때까지 둘러보시다가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오늘도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또 사람들이 누군가를 그분께 데려오면, 그분은 그 사람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물에서 한 여자를 보시고 잠시 말을 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저 곧장 여리고로 가는 대신, 사마리아로 돌아 올라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곳은 높은 언덕 위에 있습니다. 다른 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마리아로 돌아 올라가 앉으시고,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대로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이 여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여자가 나오자 “마실 물을 좀 가져다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그 여자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시자,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분은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제게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는 다섯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저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을 하실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서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빌립이 집회에 와서 서 있었을 때, 예수님이 그에 대해 아실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믿습니다. 그는 그저 거기 서 있었습니다. 빌립은 낯선 사람인 나다나엘을 데려왔습니다. 어딘가로 하루를 더 걸어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던 그를 찾아 데리고 왔습니다. 나다나엘이 와서 사람들 사이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을 보시다가 나다나엘을 발견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계시는 동안 그를 처음 보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은 놀라서 “랍비여,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 말에 정말 마음이 흔들렸겠지요? 그는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쓰인 단어가 ‘더 큰’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살펴보면 그것은 ‘더 많은’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도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자연을 멈추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그 밖에도 여러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바로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그분은 육신으로 계실 때 한 장소에만 계실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온 세계에 있는 믿는 자들의 몸 안에 계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고 믿습니다. 오늘 밤 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본문, 여호와이레로 돌아갑시다.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아브라함. 저는 아브라함에 관해 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졌고,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뒤에 올 씨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여러 씨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삭을 통해 나온 한 씨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됩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씨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임을 성경으로 조리 있게 입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계시면 여러분 안에 아브라함의 씨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 약속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 자신의 선함 때문에 맺어지거나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그 약속에 이르게 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을 만한 어떤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시고 주권적인 은혜를 근거로 그것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돼지가 어린양이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돼지일 뿐이고, 본성도 돼지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고 해서… “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어.”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해야 한다고 해도 여러분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생활을 깨끗이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고, 교회에 십일조를 많이 낼 수도 있습니다. 회당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어도 죄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표범이 제 몸의 반점을 핥아 없애려는 것과 같습니다. 반점을 더 선명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표범이 달라지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표범을 들어 그 가죽을 물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하시고, 여러분이 죄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유일한 길은,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 피의 물결 아래 잠긴 죄인들은 죄인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나와, (아멘.) 모든 죄의 얼룩이 사라집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가 다른 누구보다 나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바빌론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곳에서… 어쩌면 그의 아버지와 집안사람들은 우상 숭배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곳은 바빌론이었고, 바빌론은 우상 숭배가 시작된 곳입니다. 함의 자손인 니므롯이 세운 곳이며, 마침내… 처음에는 ‘낙원의 문들’이라고 불렸다가 나중에 ‘혼돈’이라는 뜻의 바빌론이라고 불렸습니다. 그곳에서 우상 숭배가 시작되었으므로, 아브라함의 아버지도 우상 숭배자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시날 땅의 우르 도시로 내려왔고, 그들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주셨습니다. 자,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제 형제님들께는 조금 충격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무조건적으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네가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하면…”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만일’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것을 이루었다.” 아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고, 아담은 그것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마다… 아니,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마다 사람은 그것을 깨뜨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이제 너는 노년에 내게로 올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네 뒤에 올 씨도 내가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것은…
순복음 교회에 닥친 가장 큰 저주 중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는 순복음 쪽이고, 다른 하나는 근본주의 쪽입니다.” 근본주의자는 자기 위치를 알고 있지만 다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저 근본주의 가르침만 가지고 있어서 믿음이 없습니다. 순복음 신자는 다시 태어났지만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순복음 오순절의 믿음과 근본주의 신자들을 함께 모을 수만 있다면, 아니, 근본주의 신자를… 근본주의 교리를 오순절의 믿음 안에 넣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 이룬 셈이 될 것입니다. 수표는 쓸 수 있지만 은행에 돈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쓸 수… 쓸 수는 없고, 수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수표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돈이 있지만 수표 쓰는 법을 모릅니다. 그런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사람은 은행에 돈이 있지만 수표를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수 있지만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둘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좀 만져 달라’거나 무슨 요술 같은 것을 원합니다. 여러분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그것을 믿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아무… “아, 내가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아, 내가 계속 붙들고 있을 수만 있다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붙드셨는지가 문제입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가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가 중요합니다. 그분께서 저를 대신해 어떤 모습으로 서 계셨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지 않으십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를 보십니다. 저는 죽었으므로 더 이상 저를 보지 않으십니다. 제 생명은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고, 성령으로 봉인되어 있으며, 피로 덮여 있습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져다가 성령으로 모든 믿는 자 안에 두십니다. 이해하십니까? 이제…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기 시작합니다. 그때 복음이 마음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아무, 무슨 대단한… 저는 사람들이 거창한 강연과 길고 어려운 말로 이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어려운 말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라고 무엇을 알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참으로 단순하게 전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이 지금까지 알아 온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받아들이십시오. 나아와 그분을 믿으십시오. 모든 것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환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분이 제게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하십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여러분을 고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저 믿으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셨으니 그저 믿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셨습니다. 노년에 그에게 오시겠다고, 그와 그 뒤에 올 씨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가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쯤이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보다 열 살 아래였으니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러면 마흔, 쉰, 예순… 폐경이 지난 지 스물다섯 해쯤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젊어서 결혼하여 그 모든 세월을 부부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그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피닉스에서 아브라함과 사라 나이쯤 되는 노인이 의사에게 가서 “선생님, 저희가 아이를 갖게 될 테니 병원에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는 “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고는 정신병동에 전화해서 그를 데려가라고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뭔가 잘못됐군.” 할 테니까요. 진실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나 오해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한나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제사장조차 그 여자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한나는 여자들이 어떤 모자를 썼는지, 누가 이사했는지, 동네에 무슨 이야기가 도는지 보려고 실로에 올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치욕을 없애 주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한나를 오해했습니다. 그는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내 주여, 저는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 치욕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주께서 네게 네…”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아, 그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다니면서… 제 생각에 그들은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고 모든 것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날마다 아브라함은 “사라?” 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저…” “좋소,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될 거요.” 아시겠죠? 왜입니까? 그는 주님의 말씀에 믿음의 근거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아, 여러분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이 의자들과 간이침대에 계신 분들, 목발을 짚고 계신 분들, 심장병과 암을 앓으며 여기 앉아 계신 분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데 믿음의 근거를 두실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의사들이 만약… 저는 마침… 의사들은 좋은 일을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라면, 그분이 주님이십니다. 의사는 여러분을 도와 자연적인 회복을 거들 수 있지만,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의사는 여러분을 치유할 수 없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팔의 뼈를 맞출 수는 있지만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뽑을 수는 있지만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충수를 떼어 낼 수는 있지만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의사는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사라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믿음을 두기에 아주 좋은 근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해가 가고 달이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계속 복을 주셨고, 그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고 계속 간증했습니다. 그렇게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가 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차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친족을 떠나 자기와만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조카를 데리고 갔습니다. 작은 무리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잘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들 모두에게서 완전히 자신을 떼어 놓을 때까지 그에게 약속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지만 늘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리고 롯이 한 일을 보십시오. 목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문제가 생겼고, 그 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살, 사라가 아흔 살이 되었을 때…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약속을 스물다섯 해쯤, 아니 그보다 더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그래도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해지기는커녕…
그런데 우리는 당장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 다음 날 “어젯밤에는 제가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아픕니다.”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도 아브라함의 씨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의 씨는 ‘안 된다’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몸이 어떻게 느껴지든 그래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느낌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느꼈느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믿었느냐?” 믿는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느끼는 자에게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다.” 그 말을 제자리에 놓으십시오. 아, 지금 제 안에 믿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제 이것을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거의 백 살, 아니 백 살쯤 되었을 때,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제 저는 늙었고 사라는 힘이 다 말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노인이고, 사라도 노인입니다. 사라는 아흔 살, 그는 백 살입니다. 이제 그가 어떻게 아이를 갖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을 가리키는 히브리어가 엘 샤다이입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샤다이’는 그 단어에서… 아니, ‘샤다이’는 ‘젖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자, 그것은… 다시 말해 그분은 어머니, 여인처럼, ‘젖가슴을 가진 분,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자다. 나는 강한 자다.” 제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뿐입니다. “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강한 자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나는 엘 샤다이다. 나는 품이다. 나는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다.” 아기가 병들거나 잘 먹지 못해 영양이 부족할 때,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젖가슴에 대면 아기는 어머니의 힘을 빨아 먹습니다. 어머니의 힘이 아기에게 들어가고, 아기는 건강해집니다. 전능하신 분, 그분은 여전히 전능하신 분, 엘 샤다이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 보십시오. 그분은 ‘젖가슴’ 하나님이 아니라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셨습니다. 양쪽입니다. 왜입니까? 두 공급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몸에 필요한 것이든 영에 필요한 것이든 무엇이든지, 그분은 젖가슴을 가진 강한 분이십니다. 아멘. 형제님…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킬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강한 분이시며 하늘에도, 어디에도 그분과 같은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시면 지키실 수 있습니다. 강하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늙은 것을 안다. 말하자면 두 번째 유년기를 맞은 셈이다. 너는 그저 늙은 아기와 같다. 네 생명에 필요한 기관들은 모두 말라 가고, 살은 온통 처졌으며, 사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저 내 품에 기대어라.”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젖을 먹는 동안 만족하기도 합니다. 아멘. 어린 아기는 울음을 그칩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줍니다. 아기는 어머니에게 기대어 젖을 먹으며 다시 힘을 얻습니다.
아, 오늘 밤 이곳 간이침대와 들것과 휠체어에 계신 병든 여러분, 엘 샤다이께 나아와 말씀을 붙드십시오. 거기서 빨아 먹기 시작하고, 미소 짓기 시작하십시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모든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아시겠습니까? 거기서 빨아 먹기 시작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힘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지 않는지 느껴 보십시오. 어느새 여러분은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예, 그분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저 거기에 그대로 기대어 계십시오. 그 자리에 머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엘 샤다이, 강하신 분,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 만족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브라함의 씨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따지지 마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분에게서 빨아 먹고, 빨아 먹는 동안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라납니다. 그분을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으로 끌어당기십니다. “내 어린 자녀야, 내가 너를 강하게 해 주마. 그것은 염려하지 말아라. 그저 여기 머물며 나를 믿고, 내 말씀을 읽고, 내게서 마셔라. 네게 필요한 힘을 모두 주마.” 놀랍지 않습니까? “아버지, 저는 아픕니다. 아버지는 엘 샤다이이십니까?”라고 하십시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게 젖을 먹여 다시 힘을 얻게 하마.” 그 일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여전히 만족하며,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상관없었습니다. 오 분이든 오십 년이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수록 계속 더 강해졌습니다. 그는 “주님, 이십오 년 전에도 아이를 주실 수 있으셨지만, 이제 저는 백 살입니다. 지금 그렇게 해 주시면 몇 해 전에 하셨을 때보다 얼마나 더 큰 기적이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그를 늙게 두셔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실지 입증하고 보여 주셨습니다. 아, 그렇게 하신 일이 저는 정말 좋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그것을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 두 사람을 되돌려 다시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로 만드신 일 말입니다. 오늘 밤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그저 땜질만 해 놓지 않으십니다. 제대로 일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라는 그런 상태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궁에 수태 능력을 주고 젖줄을 튼튼하게 하며, 심장을 조금 자극해서 아이를 낳게 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사라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자 모든 주름이 사라지고, 흰머리가 다시 검어졌으며, 젊음을 되찾고, 눈이 맑아졌습니다. 그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그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팡이에 몸을 구부리고 길고 풍성한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던 아브라함이 몸을 곧게 폈습니다. 굽은 어깨가 펴지고, 수염이 다시 검어졌으며, 눈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다섯 살쯤 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아내를 데리고 낙타를 타고 삼백 마일 길을 떠났습니다. 아, 어떻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든 씨에게 하실 일을 보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화로운 몸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정말 놀라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질병도 없고 노쇠함도 없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보십시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라서 스물다섯 살쯤 되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그분은 “좋다, 죽음아, 이제 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여보, 당신에게 주름이 생겼구려…”라고 합니다. “네, 여보, 흰머리도 나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계속 여러분을 짓누릅니다. 얼마 지나면 마침내 여러분을 데려갑니다. 하지만 부활 때에는 죽음이 행한 모든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 그림이… 그때 여러분은 부활하여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아멘. 혈구를 만드는 원자가 완전한 것을 만들 것입니다. (아멘.) 죄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으며, 결코 늙지도 않습니다. 아, 얼마나… 여러분은 “어떻게 그것을 얻습니까? 목사님은 무슨… 무엇을… 무엇을 파시는 겁니까?”라고 하십니다. 저는 보험을 팔고 있습니다. 보험 증서 한 장 받고 싶지 않습니까? 여기, 여러분이 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 불멸의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로마서 8장 20절은 “그분께서 언약 안으로 미리 예정하신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혼자서는 올 수 없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분께서는 미리 예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화롭게 되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구속받은 몸을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고, 크고 강력한 침례가 계속 일어납니다. 세상은 바깥에서 비웃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과 함께 일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고, 환상을 보여 주시고, 온갖 표적과 이적을 행하십니다. 저녁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를 바라봅니다. 거기서 ‘가까이 다가옴’을 깨닫습니다. 저편에는 원자폭탄이 위에 드리워 있고, 온 세상은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칩니다.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 아,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우울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울한 날들은 다 끝났습니다. 아멘. 모든 피곤함과 슬픔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 확실하듯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우리를 아셨으며, 점이나 흠 없이 그곳에 설 교회를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그 교회 안에 있다면 여러분에게 그 예정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어떻게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갑니까?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고,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죽은 자들이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안에서 우리는 그의 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뒤따르는 표적과 이적으로 말씀을 입증하고 확증하십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아. 광신주의야.”라고 합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그렇게 말해 왔고, 지금도 그러며,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늘 그럴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도박꾼과 밀주업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설교자들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어린아이가 태어난 뒤에… 그 전에… 이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다시 살펴보아도 해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꾸 제 마음에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롯이 그곳 소돔에서 떠나려 하던 때에 천사가 와서 아브라함과 이야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형편은 좀 어려웠습니다. 가장 메마른 땅을 택하고, 자기 형제에게 가장 좋은 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가 와서 아브라함에게 “생명의 때를 따라, 이맘때에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고, 뒤쪽 장막 안에서 사라가 웃었습니다. 천사가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니다, 네가 웃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사라가 무슨 일을 했든, 어떠했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로부터 며칠 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뒤에 사라가 젊은 여자로, 아브라함이 젊은 남자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들이 내려갔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바로 그런 말로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보시면, 그들이 그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자, 이것을 한번 상상하며 어떻게…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을 읽듯 “내일은 흐리고 비가 오겠군.” 하는 식으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그 말씀을 기록하신 분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브래넘 형제님, 문법을 조금만… 몇 가지 좀 고치시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간 학교에도 좀 다니시고 그러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게 필요한 것은 밤에 기도하는 모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글쎄요, 형제님이… 제 말은, 성경을 더 많이 배우시게 될 거라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에 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할지 몰라도, 그 말씀을 기록하신 분은 아주 잘 압니다. 그러니 그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그분을 알기만 한다면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값없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통해 그분을 아십시오. 그분의… 그분이 자신의 불멸의 생명을 가져다가 우리의 죽을 몸 안에 넣어 새롭게 하시는 것을 통해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는 복된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도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보십시오. 이제 여기 사라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떠올리는 모습대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시다시피, 사라는 말하자면 자그마한 고조할머니입니다. 아흔 살에, 작은 두건을 쓰고 어깨에 작은 흰 숄을 두른 채 손에 지팡이를 들고 걸어 다닙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늙어서 백 살입니다… 아,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들은 그렇게 늙지…”라고 하시겠지요. 성경은 그들이 나이 많아 연로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나이가 많고 늙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말씀하시자마자, 그들은 멀리 그랄까지 여행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왕 아비멜렉이 연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가 작은 두건을 쓴, 아주아주 늙은 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저 여자다.”라고 했습니다. 자, 얼마나 이상하게 들립니까? 정말 그렇겠지요. 보십시오… 여기에 적힌 것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말씀이 근거입니다. 하지만 행간을 읽으십시오.
제 아내에게 편지를 받으면, 아내는 “사랑하는 빌리, 오늘 밤 여기 앉아 있어요. 당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우리는 오늘 좋은 하루를 보냈어요.”라고 합니다. 그것이 적혀 있는 말이지만, 저는 행간에서 아내의 뜻을 압니다. 아시겠죠? 왜입니까? 제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아내를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에 말하는 방식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내의 뜻은 글로 적은 것보다 훨씬 더 클 때가 많습니다. 아멘.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말씀을 취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다투고 논쟁할 구실을 찾으려고 말씀을 읽지만… 여러분은 그저 읽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여러분에게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불명확한 단어] 아시겠죠? 그 안에서 미처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 주시는데, 마치 말씀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고, 배우려고 하는 아기들에게 드러냈다.”라고 하셨습니다. 아기들입니다… 그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십시오. 그 모든 대단한 학식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그런 데 빠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며칠 전… 몇 주 전이군요. 저는 한 큰 교회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 크고 으리으리한 교회였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저기 저 사람을 보십시오. 후기 성도입니다.”… 아니, “늦은 비 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 보십시오. 사람들을 모두 끌어 모으고 이러저러하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순복음 교회였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분은 “아, 보십시오. 그는 늦은 비 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여러분도 그랬습니다. 가톨릭에게 루터는 늦은 비였습니다. 루터교인들에게 웨슬리는 늦은 비였습니다. 감리교인들에게 오순절은 늦은 비였습니다. 온갖 늦은 비가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교회가 차갑고 형식적으로 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 여러분은 그대로 앉아 있게 두시고,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 저는 늦은 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러분이 첫 비든, 둘째 비든, 중간 비든, 전부 비든, 비가 전혀 없든, 제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똑같이 사랑하며, 우리는 형제입니다. 그분이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그 큰 교회에서 하는 말이 “우리의 가장 좋은 교인들이 그곳으로 갔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까? 무엇 때문에 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와서 그들을 빼 갔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러면 왜 갔습니까? 가장 좋은 교인들이라고 하셨잖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그렇게 많이 가르치고 서로 ‘박사님, 철학박사님, 디디디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을 다시 교회 안으로 모셔 오십시오. 멜빵바지를 입고 머리가 긴 젊은이 하나를 데려다가 복음을 전하게 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알파벳을 모르거나, 쪼갠 완두콩과 커피도 구별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만 한다면, 콧소리로 말하고 ‘그기’니 ‘아니여’니 하며 외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 여러분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저는 온갖 박사 학위나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은 심리학입니다. 저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자… 그분은 “형제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왕국에서 멀지 않으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러니 여러분,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저 가장 훌륭한 부류만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는 학자여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갖춰야 한다.” 제 생각에 그는… 성경의 요구 조건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 가운데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몇 명 찾아내십시오. 집사를 뽑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랄로 내려가기 시작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십시오. 그 왕이 사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 생각해 보십시오. 아, 이것은 성결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믿음에서 물러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떠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가뭄이 들자 그는 그래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데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믿음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믿음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떠난 유대인은 누구나 믿음에서 물러난 것이었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곳으로 내려가서 거짓말도 했습니다. “그 여자는 내 아내가 아니라 내 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쪽으로 가서 앉아서는 그냥… 왕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왕이 자기 아내를 차지하려면 자기를 죽여야 할 것을 아브라함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 증조할머니에게 이미 반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그 일을 모면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아, 사라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습니다.
그들은 사라를 데려다가 옷을 곱게 입히고 귀걸이며 온갖 것을 달아 주며, 다음 날 있을 결혼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날 밤 아비멜렉은 다음 날 맞을 아름다운 신부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잠시 기도한 뒤 침대에 몸을 뻗고 누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너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네가 남의 아내를 데리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하지만 주님, 그가… 주님은 제 마음이 온전함을 아십니다. 그가 제게 자기 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여자도 ‘그분은 제 오라버니입니다.’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네가 내게 죄짓지 못하도록 막았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보아라, 그 여자의 남편은 내 선지자다.” 할렐루야! 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 여러분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아브라함은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믿음에서 물러나,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선의의 거짓말도 크고 악한 거짓말입니다. 보십시오… “아, 예. 그 여자는 제 누이입니다.” 하고 말하며, 믿음에서 물러난 채 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내 선지자다. 내가 그에게 약속을 주었다. 내가 그를 택하여 불렀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믿음에서 물러나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은 내가 그와 다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내 사람이다. 네가 그에게 아내를 돌려주지 않으면, 네게 속한 모든 것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는 벌떡 일어나 그 여자를 데리고 서둘러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을 바로잡고 배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부흥이 온 나라에서 크게 일어나야 합니다.
어린 이삭이 태어나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을 때, (그때 아버지는 백열다섯 살쯤, 사라는 백다섯 살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앞으로 올 시대의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려 주려고 한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고, 네 씨를 통해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너는 백열다섯 살쯤, 사라는 백다섯 살이고, 너는 그 모든 세월을 기다렸다. 이제 내가 내 말을 지킬 것이라는 너의 유일한 희망, 그 아이를 데리고 저 위로 가서 죽여라.” 아, 아브라함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이 든 어머니가 걱정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늙은 마음은 신실했습니다. 그는 노새 두 마리에 안장을 얹고 나무를 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가야 할 곳을 보여 주셨던 산이 저 멀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저 산이다.”라고 했습니다. 사흘을 갔는데도 여전히 멀리 있었습니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 (저는 이 대목이 좋습니다.) 그는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겠다. 나와 아이가 돌아오리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자기 아들을 제단 위에서 찔러 생명을 빼앗으려고 가슴에 칼을 품고 가면서, 어떻게 돌아오겠다는 것입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그 아이를 죽음의 그림자로 그에게 주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와 아들은 돌아오리라.”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장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데, 의사가 한 주도 더 살 수 없다고 할 때 어떻게 낫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딘가에 길을 내실 것입니다.”
그가 어린 이삭의 어깨에 나무를 지워 주고 산을 오를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삭은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여기 나무도 있고 불도 있고 제단도 있는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 보이십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다. 나는 저 젊은이들에게 너와 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여기 올라와 너를 죽이라고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다. 어떻게든,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저 계속 걸어간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손을 뻗어 자기 아들을 붙잡고 손발을 묶었습니다.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안에 계신 하나님, 보이십니까? 아브라함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고 자신을 신뢰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계시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여러분의 치유자와 구주로서 자신의 말씀을 신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린 아들의 두 팔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고, 손을 뻗어 아들의 얼굴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외아들입니다.) 칼집에서 칼을 빼고, 아이의 머리를 이렇게 뒤로 젖혔습니다. 목에는 경정맥이 지나갑니다. 그의 떨리는 손…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아마 몸을 숙여 입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도 똑같이 합니다. 마지막 순간이 와도 여전히 하나님을 그분의 약속대로 믿습니다. 손을 내려 칼을 잡고 뒤로 당겨, 어린 아들의 목을 찌르려는 바로 그때 천사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라고 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바로 그때 광야에서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그 숫양은 어디서 왔습니까?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사흘 길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삼십 마일쯤 걸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삼십 마일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 멀리 있는 산을 보았습니다. 이제 불가능한 점들을 보십시오. 아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구십 마일에서 백 마일쯤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숫양은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샘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 숫양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은 여호와이레이시므로 상황과 비상사태를 돌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숫양을 잡아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죽였습니다. 그 숫양은 누구였습니까?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 어린양이었습니다. 그가 들어서 죽이니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할렐루야! 보이십니까? 실제 숫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말씀으로 그것을 존재하게 하셨고, 다음 순간에는 희생물로 잡혀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을 때에도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이레,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이십니다.
의사가 나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낫겠습니까? 그분은 여호와이레, “주께서 치유를 예비하시리라.”이십니다. “저는 매춘부입니다. 창녀입니다. 이런 온갖 나쁜 모습이 제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그분은 갈보리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든 모형이 실체 안에서 성취된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죄와 그들의 몸의 치유를 위해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말입니다. 아, 여러분,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정말 달라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어떤 자매님들과 그 일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정말 보게 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자, 잠시만요. 이제 마치겠습니다. 지금 말씀을 마무리하고 치유를 위해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쪽을 보십시오. 지금 성령께서 건물 전체에 역사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얼마 전에 저는 오하이오주에, 애크런인지 그 근처 어딘가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덩커파 식당에서 식사했습니다. 단정하고 말끔한 자매님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참으로 숙녀다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곳에 가서 식사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이 되자 그분들은 가게 문을 닫고 교회로 갔습니다. 길 바로 건너편에… 저는 시골의 어느 갈림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시 가까이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너갔습니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날 오후에 설교해야 했습니다. 오전 내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백스터 형제님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회에 갔습니다. 저는 ‘배가 몹시 고프군. 샌드위치 하나를 먹어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가서 길을 조금 걸어 내려가 평범한 작은 식당, 길가의 작은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문이 제 뒤에서 쾅 닫혔습니다. 보니 문 뒤에 경찰관 한 명이 여자에게 팔을 두른 채 서서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도박이 불법입니다. 저는 ‘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 또래였고, 아마 결혼하여 집에 가족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타락하고 더럽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뒤쪽 탁자를 보니 젊은 남자 몇 명과 여자 한 명, 열여덟 살이나 스무 살쯤 되는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딘가의 일요일 성경학교에 있어야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 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아, 그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꼴이라니요. 여자는 거기 서서 그들이 그러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문득 오른쪽을 보니, 나이 든 여자가 입어서는 안 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순다섯 살이나 그보다 더 되었을 만큼 나이가 많았습니다. 입술과 발톱에는 자주색 칠을 했습니다. 가엾게도 팔의 살은 처져 있었습니다. 머리는 남자아이처럼 짧게 자르고 위에는 작은 곱슬곱슬한 컬을 넣었습니다. 술에 취해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고, 취한 남자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아, 하나님, 어떻게 저런 것을 보고 계실 수 있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 어린 사라와 리브가가 저런 세상에서 자라야 합니까? 하나님, 왜 그것을 멸망시켜 모두 없애 버리지 않으십니까? 저는… 저는… 저는 어떻게 저런 것을 보고도 견디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서 그 여자를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있던 술 취한 두 남자가 잠깐 자리를 비우려고 일어나 나갔습니다. 바로 그때 무언가 제게 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뒤로 가서 한쪽의 작은 칸막이 좌석에 앉았습니다. 아직 아무도 제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구석은 좀 어두웠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환상을 주셔서 제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저는 바라보다가 세상을 보았습니다. 세상 주위에는 붉은 줄처럼, 뿌려진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음성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죽으신 주 예수의 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수 없는 것이다. 그 여자를 보실 수 없다. 보실 수 없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에게는 권리가 있다. 죽어서 그 피 너머로 가기 전까지는 자신의 구원을 받아들일 권리가 있다. 그들은 심판대에 설 필요가 없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네가 죽으리라.’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생명나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거기에 대한 권리가 있다.” 그때 제가 바라보니 저 위에 주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환상 가운데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가 있었고, 얼굴에는 피가 흘러내렸으며, 귀한 수염에는 조롱하며 뱉은 커다란 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따금씩 머리를 이렇게 움찔하고 움직이셨습니다. 이렇게 움찔하셨습니다. 저는 ‘주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23:34
그분은 “그것은 네 죄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피가 제 죄에 대해 범퍼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죽으셨을 때, 땅을 둘러싸고 흐르던 그 피를 제 죄가 넘어갔다면… 그것을 넘어갔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죽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동차가 손상되지 않게 하는 범퍼처럼, 범퍼가 충격을 받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여러분의 죄를 받아 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가 보니, 낡은 책 위에 제 이름이 있고, 온갖 일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정죄받음.” 저는 그분의 발 앞에 기어가 “주 예수님, 그렇다면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죄가 주님을 저렇게 아프게 했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다.”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가져다가 옆구리에 적시시고, 손가락으로 책 위에 “용서받음”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이렇게 뒤로 놓으시고, 두 팔을 모으신 채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예, 주님. 그 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런데 왜 너는 그 여자를 정죄하느냐? 너는 다른 사람을 기꺼이 정죄하려 하지만, 보아라. 너도 한때 정죄받았는데, 그분은 값없이 너를 용서하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로 제 동기가 바뀌었습니다. 환상에서 벗어나자마자 그 여자에게로 갔습니다. “부인,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 저는 함께 온 사람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인,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입니다.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담배를 내리며 “예, 그러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사십니까? 이런 삶을 정말 즐기지는 않으시잖습니까. 어머니이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실망과 여러 일들로 얼룩진, 삶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여자는 “선생님, 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정죄하고 그런 일 때문에 그 여자가 날아가 없어지기를 바란 저를 주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부인에 대해 그런 생각을 품은 것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물론이지요, 젊은이. 제가 구원받도록 기도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기도 모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구원받았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십니다. 이미 모든 사람을 위해 피할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마음을 다해 잘못을 고백하려고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임을 압니다. 그런데도 주님, 주님께서는 얼마나 놀랍게 우리를 대하시고 우리의 죄와 범법을 용서해 주셨습니까. 오늘 밤 이 회중 가운데서, 단순하게 전해지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화해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과의 온전한 자녀 관계로 다시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길을 벗어나 있지만, 주님, 그들도 그렇게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술에 매인 사람도 있고, 이미 선을 넘어 부도덕한 행동에 빠지고 온갖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주님, 오늘 밤 그들을 구원해 주시겠습니까? 길을 잃고 방황하는, 믿음에서 물러난 그 가엾은 사람을 데려와 주시겠습니까… 그가 저기 앉아서 거짓말을 했고 정죄받았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을 넘었다고 느끼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아직 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영께서 여전히 부르고 계십니다. 부르고 계시는 한, 아버지께서는 방황하는 자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 밤 성령께서 회중의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셔서 방황하는 많은 자녀들을 아버지께로 데려오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머리를 숙인 채로 계십시오.
[테이프의 공백] “…오늘 밤, 하지만 제게 말씀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마음에 느껴지는 이것이 아버지라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 주님께 손을 들고 저 같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또 다른 분은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또 누군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왼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 예수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아버지, 제가 나아갑니다.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나아갑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저는 무력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에 말씀하시는 분이 아버지이심을 제가… 제가…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여기 제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손을 듭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에 제가 손을 듭니다.” 오른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손을 드시겠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손을 드실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은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게 긍휼을 베푸시고 용서하시도록 그분께 손을 듭니다.”라고 하십시오. 오늘 밤 방황하며 믿음에서 물러난 분이 계십니까? 회중 가운데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갑니다. 저를 다시 받아 주십시오. 저는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길을 잃고 떠나 있었습니다. 지금 제 마음을 잡아당기시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주님께 손을 듭니다. 한때 떠나 있었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하십시오. 오늘 밤 여기 그런 분이 계십니까? 그저 하나님께 여러분이 정직하고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 드리면 됩니다. 그분이 말씀하고 계시다면 그 영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주님, 여기 제 손이 있습니다. 제게 말씀하시는 분이 주님임을 압니다. 손을 들고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좋습니다. 그분을 인정하십시오. 참된 남자와 여자가 됩시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십시오.
여기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 계시면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성령 침례를 받아 주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성령을 주시도록 그분께 손을 듭니다.”라고 하십시오. 성령을 원하며 손을 든 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밤에는 이분들을 모두 제단 주위로 나오시게 하고 싶습니다. 그저 계속 기도하며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참 좋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여러분의 태도로 인해 제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했고, 회중 위로 환상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고개를 드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제… 오늘 밤 여기 병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하나님께 손을 든 뒤로 몸이 더 좋아졌다고 느끼시는 분은 몇 분입니까? 다시 손을 들고 “몸이 더 좋아졌습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곳곳에서 손을 든 분들을 보십시오. 아마 서른 명이나 마흔 명쯤 될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저는 참으로 특별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병이 있어 기도받기 원하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손을 드십시오.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없어도… 기도 카드가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아시겠죠?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드십시오. 보십시오. 주님의 천사가 이미 회중 위에 계십니다. 제게 주의를 기울이고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계시기를 바랍니다. 이쪽을 보시며 믿으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여기 서 계신다면, 어떻게, 언제, 어떻게 일을 하셔야 할지 분명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 가능하면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잠시만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기도 줄을 부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분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고치시리라 믿습니다. 정말 그렇게 믿습니다. 아주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성령께서 온 회중을 끌어당기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광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든 믿기 시작하십시오. 전에 제 집회에 와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는 분이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영이라고 믿는 분은 몇 분입니까? 손을 움직여 흔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참으로. 잠시 이쪽을 보십시오. 이 위쪽, 발코니 어디에 계시든 누군가 믿기 시작하십시오. 저 위에 계신 분들 중에 기도 카드가 없지만 기도받기 원하는 분이 있으면 손을 드십시오. 이제 그저 기도하십시오. 잠시 이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회중도 이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그 빛이 바로 여기, 제게서 몇 피트 떨어진 이쪽에 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발코니 쪽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위로 움직입니다. 예, 한 남자 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이 위쪽에 흰 셔츠를 입고 앉아 있습니다. 그분 바로 위에 떠 있습니다. 스페인계 남자분인 것 같습니다. 옆에 어린 남자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 기도받으려고 손을 드셨습니까? 기도 카드가 있습니까? 없으시군요.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거기 앉아 있는 부인… 그 아이는 아드님이고, 그 아이가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아드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 주시면, 치유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 아이는 위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흔드십시오. 아드님은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 아이 위에 있습니다. 자, 모두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회중 가운데 어디에 계시든 믿으십시오.
그 빛이 바로 여기 뒤쪽에 서 있는 한 남자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분은 몸에 문제가 있고,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속으로 자기를 부르는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탈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는 낯선 분입니다. 최근에, 아마 오늘 이곳에 오셨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여기로 오셨습니다. 맞지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게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조금 체격이 있는 여자분이 저를 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 옆에 앉아 있는 여자분에게로 향합니다. 마음은 멀리 가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댁을 알지 못하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무슨 문제가 있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여자는… 그 사람은 미주리에 삽니다. 맞지요? 그렇습니다. 활엽수들과 이런저런 것들이 많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미주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뒤쪽에 목발인지 지팡이인지 무언가를 짚고 걷는 남자분이 앉아 있습니다. 몸을 돌려 누군가를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당뇨병도 앓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고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일어서십시오. 목발을 내려놓고 바닥에 그대로 두십시오. 나가실 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치유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들것에 계신 부인, 저는 부인을 고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저는 부인을 알지 못하며, 뵌 적도 없습니다. 부인은… 전에 병을 앓으셨고 암이 있었는데, 그 암 덩어리가 몸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종양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이 부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제 집회에 올 수만 있다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분의 종인 제 말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십시오. 일어나 옷가지를 챙겨 집으로 가십시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흥분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여러분 누구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누구인지는 상관없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다른 분도 손을 들거나 표시를 해 보십시오. 자, 믿으신다면 이쪽을 보며 하나님께 “저는 이것이 진리임을 정말 믿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물론 저는 제가 보는 대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소지품을 챙겨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기뻐하면서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가실 수 있습니다. 거기 휠체어에 앉아서 그분을 보고 계신 부인은 어떻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저 부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 위에 서 계십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를 믿으십니까? 이제 제 말이 들리십니다.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옆쪽 뼈, 다리인지 엉덩이 부근인지 그곳의 뼈가 부러졌습니다. 오랫동안 누워 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뇌졸중으로 마비가 왔습니다.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저를 믿으십니까?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면 두 발로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낫게 하십니다. 거기 선생님, 손을 좀 잡아 주십시오. 두 발로 서게 하고 걸어가시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일어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집으로 가십시오. 나머지 분들도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몇 분입니까? 두 발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불명확한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