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주 제시간에 도착했지요? 오늘 저녁에는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건물 주위를 돌아 반대편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느라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막 문으로 들어서는데 “오직 믿으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조금 겨루게 됐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어 형제님, 오늘 저녁에도 제가 밖에서 또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면, 다음 주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과 수요일 밤에는 형제님이 설교하셔야 합니다. 저는 정확히 제시간에 오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시간을 맞추신 겁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무어 형제님이 “그 일 때문에 형제님께 사흘을 더 설교하시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하하하. 그래도 저는 제시간에 왔잖습니까. 형제님도 방금 일어나셨지요? 여기서 말할 수 있게 하려고 어떤 분이 제 목에 이 고리 같은 것을 걸어 주셔야 했습니다. 그게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조금씩 뛰어다니다가 마이크에서 멀어지나 봅니다.
여러분 모두 기분이 좋으십니까? 아, 잘됐습니다. 참 잘됐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셔서, 이제 꿀단지에 손을 푹 집어넣고 하나님의 꿀인 그분의 말씀을 먹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본 것 가운데 아주 귀여운 광경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낚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시내송어의 고장인 뉴햄프셔 북쪽 깊숙한 곳에 갔을 때였습니다. 배낭을 지고 사흘쯤 걸어 광야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초보자는 찾아오지도 못하는, 저 깊은 산 높은 곳에서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작은 천막을 쳐 놓고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덤불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작은 손도끼로 덤불을 좀 쳐 냈습니다. 시내송어를 잡을 때 날벌레 모양의 미끼를 제대로 던질 수 있게 하려고요. 그러다가 제가… 여덟 시쯤 되어 돌아왔습니다… 해가 훤히 떠올랐습니다. 야영지로 돌아와 보니 천막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어미 곰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가 들어와서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온통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곳 어딘가에 낡고 녹슨 총 한 자루를 놓아두긴 했지만… 곰은 먹어 치우는 것보다 망가뜨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난로 연통을 넘어뜨리고는 그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 위에 뛰어오르기도 합니다. 아주 못된 녀석이지요. 제가 다가가자 어미 곰이 곧바로 제 냄새를 맡고 달아났습니다. 새끼들을 부르는 소리를 내자, 새끼 한 마리가 어미를 따라 달아났습니다. 어미는 저쪽으로 갔는데 다른 작은 녀석은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를 등지고 있었지요. ‘저 작은 녀석이 왜 저럴까? 왜 안 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미는 저 숲속 언덕 비탈에 머물면서 계속 새끼를 불렀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어미가 새끼에게 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새끼는 가지 않고 고개를 이렇게 숙인 채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저 작은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미가 저를 할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어미를 지켜보았습니다. 어미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계속 불렀습니다. 어미 곰을 죽여서 새끼 둘을 숲속에 고아로 남겨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어미를 지켜보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나무가 있었지만, 곰이 저보다 나무를 더 잘 타니… 그래도 뭔가 해야 했습니다. 이 작은 녀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옆으로 돌아가 그 녀석의 옆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팬케이크에 당밀을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그건 정말… 저는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먹는 건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꿀 한 통을 가지고 갔습니다. 꿀은 침례교인들이 바르게 지내도록 도와주거든요. 왜냐하면… 거기에 꿀 한 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보통 큰 통으로 가져갑니다. 저는 뿌리는 방식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푹 잠기게 침례를 줍니다. 꿀을 듬뿍 붓는다는 말입니다. 팬케이크 위에 꿀을 그렇게 붓고… 이 작은 녀석이 거기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곰은 원래 단것을 좋아합니다. 녀석이 그 통의 뚜껑을 벗겼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통을 이렇게 자기 몸 쪽으로 끌어당겨 놓았습니다. 작은 앞발을 푹 집어넣어 꿀을 떠서는 이렇게 핥아 먹었습니다. 녀석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꿀투성이였습니다. 아주… 저를 보려고 하는데 작은 눈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려고 애쓰며 저를 이렇게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나’ 싶었습니다. 녀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저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한입 드시겠어요?”라고 하는 듯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앞발을 넣어 계속 찍어 먹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게 옛날식 오순절 기쁨의 잔치와 똑같지 않다면, 나는 그런 잔치를 본 적도 없겠구나.’ 그렇습니다. 온통 꿀투성이입니다. 머리 위에도, 몸 어디에나 꿀이 묻어 있습니다. 온몸이 꿀로 덮인 겁니다. 그렇습니다. 손을 꿀단지에 넣고 있습니다. 그 즐거움이란. 재미있는 것은 녀석이 통을 깨끗이 훑어 먹고 마침내 내려놓은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작은 녀석이 어미와 다른 새끼에게로 가자, 그들이 녀석에게 묻은 꿀을 핥아 먹었습니다. 우리도 꿀을 너무나 많이 받아서 누구나 와서 핥고 싶어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받은 축복을 그들도 좀 함께 누리려는 것이지요.
우리는 옛날식으로 기쁨이 넘치는 집회를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저 우리가… 하지만 그것을 누리려면 먼저 바로잡혀야 합니다. 바른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어젯밤에는 “적그리스도의 표”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그리스도의 표”, 적그리스도의 인, 또는 그리스도의 인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기분이 좋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이곳에 방문하신 분들은 어느 교회든 찾아가십시오. 이 지역 여러 곳에서 부흥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순복음 교회, 영적인 좋은 교회를 찾아 내일 아침에는 교회에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내일 오후, 다른 모든… 다른 예배가 없는 시간에 우리 집회를 엽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가 그렇게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 여러분과 평신도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정규 교회 예배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니 내일 오후에는 모두 오시기를 바랍니다. 내일 오후에는 치유집회도 있습니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오후 한 시 반쯤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한 시나 한 시 반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후에 있을 나머지 모든 순서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뒤 제가 들어와서,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오후에 잠시 말씀을 전하고, 기도 줄을 세워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말씀을 펴기 전에, 저는 모든 종교, 모든 참된 종교가 이 말씀에 기초한다고 믿습니다. 만약 이것이… 종교가 이 말씀과 일치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기초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일한 진리입니다. 무엇이든 이 말씀에 어긋나면 진리가 아닙니다. 옛 성경에는 메시지를 알아보는 세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율법을 통해서였고, 다음은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들이 꿈을 꾸거나 예언했을 때… 아론의 가슴에는 흉패가 있었는데… 그것을 우림과 둠밈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르치시는 분들은 아마 아실 것입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선지자가 예언했는데 그 우림과 둠밈에서 빛이 번쩍이지 않으면 그것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꿈 이야기를 했는데 그 우림과 둠밈에서 빛이 번쩍이지 않으면 그것도 틀린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그것을 본떠서 수정 구슬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그분의 우림과 둠밈이 있으며,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설교자가 설교하든, 어느 선지자가 예언하든, 어느 꿈꾸는 자가 꿈을 꾸든, 그것이 이 말씀에 어긋나면 틀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저는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바르게 지켜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책장을 넘길 수는 있지만, 그 책을 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그분은 나아와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신 분, 곧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십니다. 바로 말씀의 저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잠시 머리를 숙여 그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저녁 말씀을 누리려고 이곳에 모인 이 기쁜 무리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함께 나누며, 우리가 같은 왕국, 곧 위대하신 왕들의 왕이신 주님의 왕국의 시민인 줄 압니다. 오늘 저녁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려고 왔습니다. 아버지,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이 책에서 말씀을 직접 취하셔서, 회중에게도 설교자에게도 각자 필요한 대로 주옵소서. 진리를 바르게 나누어 주셔서, 오늘 저녁 이곳을 떠나는 사람마다 여기 오기를 잘했다고 느끼게 하옵소서. 주님, 그분의 임재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저녁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옵소서. 어젯밤 그 죄인들이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며 통로를 따라 내려와 이 강단 주위에 앉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노인과 중년과 어린아이들이, 주님께서 주신 구원에 감사드리려고 왕좌 주위로 나아왔습니다. 어젯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놀랍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믿고 있던 이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영으로 충만해지려고 나아왔습니다. 아버지, 나아온 사람마다 그것을 허락해 주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주님, 오늘 저녁 병든 분들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벌써 병든 분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반드시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라야 합니다. 벌써 병든 분들이 모이는 것을 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일 치유를 위한 기도를 받으려고 다시 올 필요도 없게 하시고, 온전해진 몸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제 사람마다 자신을 영께 내어 맡기게 하옵소서. 아버지, 주님의 이 무익한 종을 받아 주시고, 오늘 저녁 제가 말씀을 전하도록 성령께 저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 말씀을 우리에게 열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어젯밤에는 짐승의 표를 받는 일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짐승의 인”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인”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짐승의 인이… 인은 완성된 일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든 완성되면 봉인됩니다. 화물칸에 짐을 다 싣고, 완벽하게 실었을 때는 먼저 검사관이 와야 합니다. 화물칸에 목재든 무엇이든 싣고 나면 검사관이 와서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짐을 싣기 위해 화물칸을 이쪽 측선으로 빼 놓았다면, 검사관은 모든 것을 흔들어 보며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확인합니다. 모든 것이 단단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문을 닫고 봉인합니다. 그러면 목적지까지 봉인된 채로 갑니다.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찾아오셔서 교회 안에, 또 개인 안에 느슨해진 것들을 흔들어 보십니다. 조금 무분별하게 사는 것,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들, 우리에게 있는 사소한 잘못들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흔들어 보십니다. 먼저 여러분이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지, 하나님의 자녀나 종으로서 계속 나아갈 자격이 있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견고한 것을 확인하신 뒤에는 문이 닫히고 여러분이 봉인됩니다.
마귀가 마침내 각 사람을 설득해서 복음을 믿지 않게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진리에 관한 지식을 그에게 제시하셨는데, 마침내 어느 날 그가 마지막으로 거기서 등을 돌리며 “아니, 나는 그냥 내 것을 지키겠어.”라고 말하면, 마귀는 그를 문으로 데려가 귀에 구멍을 뚫습니다. 구약의 모형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곧 그의 깨닫는 능력을 봉하여 다시는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밖에 봉인되어 영원히 마귀를 섬기게 됩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가 되어, 소망도 하나님도 자비도 없이… 이 두 가지에서 비극적인 것은 원수의 인이 종교적인 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종교적입니다. 이제 계속하기 전에 성경에서 한 대목을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3절과 4절입니다. 또 메뚜기들이 연기 속에서 나와 땅 위로 올라오는데… 땅에 있는 전갈들의 권능과 같은 권능이 그것들에게 주어졌으며 또 그것들이 푸른 풀이나… 나무를 해치지 말고 오직 이마 안에 인이… 하나님의 인이 없는 그 사람들만 해쳐야 한다는 명령이 그것들에게 내려졌더라. 그리고 여러 곳에서… 성경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인을 받는 일에 관해 설교하는지… 아니, 가르치는지 말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그렇습니다. 어젯밤 살펴본 것을 토대로 보면, 사탄의 인은 복음을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희년은…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타락한 아담의 모든 자녀에게 희년입니다. 복음의 큰 혜택이 그들에게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받고서 거절한다면, 성경 말씀에 따라 그들은 왕국 밖에 봉인됩니다. 남은 평생 자기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어떻게 인침을 받았습니까? 귀를 통해 인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듣는 것이 끊어지면, 곧 복음을 듣는 것이… 육체의 귀로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것들을 듣는 여러분의 영적인 귀에 표가 찍힌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마지막으로 거절했습니다. 그러면 밖에 봉인됩니다. 아주 종교적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브래넘 형제님,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교회에 속해서 교회에 다니고, 온 마음을 다해 아주 신실하면서도 여전히 잃어버린 자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신실한 사람들은 이교도와 이방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아주 신실했습니다. 자기 아기를 희생물로 바치고, 자기 몸을 괴롭히고, 온갖 일을 하면서,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신실함을 보였습니다. 이슬람교도도 신실하고 불교도도 신실합니다. 자이나교도도 신실합니다. 너무나 신실해서 작은 개미 한 마리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주 신실해서, 제가 보기에는 그리스도교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신실함보다 훨씬 더합니다. 특히 이 시대에는 그렇습니다. 신실함이 그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라고 말했습니다.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분의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옳아 보이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길로 와야 합니다. 아멘.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제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인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자, 히브리서 10장에서… 먼저 하나님의 인으로 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믿지 아니하면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느니라.” 진리가 제시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제시하시려고 땅에 오셨습니다. 진리를 제시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진리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종교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정신감응을 한다는 것을 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하는 모든 치유와 그 밖의 일들이 오직 마귀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우리 교파와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는 마귀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진리가 너희에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너희는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그런 뜻입니다. 니고데모가 그것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인 줄 알고 있나이다.” 우리라니,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처럼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나이다. 그런데 당신께 들어와 말씀을 나누려고 밤에 몰래 와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런 뜻입니다. 전통입니다. 자기들의 전통으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아, 참으로.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거기 서 계신 위대하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직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셨지만, 껍질로 둘러싸인 혈구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인의 창에 그 혈구가 터졌을 때, 갈보리에서의 죄 때문에… 그때 성령께서 풀려나셔서, 흘리신 피를 통하여 나아오는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님을 대적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는 용서받지 못하리라.” 다시 말해, “너희 바리새인들아, 지금은 성령이 모든 믿는 자에게 풀려나 임하는 상태로 세상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일에 대해서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성령이 올 것이다. 그때 그 세대가 성령을 대적하여 말하고, 바로 그 똑같은 일을 ‘마귀의 일’이라고 부른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그 말씀을 이어받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우리가 믿지 아니하면”, 또는 죄를 지으면… 죄가 불신 말고 무엇입니까?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믿지 아니하면 다시는 죄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대적을 삼킬 심판과 불같은 격노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느니라.” 아주 강한 말씀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우리가 이 모든 세월 동안 주님을 섬겨 왔다면, 이제 젖만 먹는 식사를 그만둘 때가 되었습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할 때입니다. 여기 우리를 위한 단단한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하시도록 맡기기만 하면,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먹여 주실 것입니다.
진리가 제시되었는데도 거절하면, 여러분의 귀가 봉해집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됩니다. 아주 종교적인 채로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모든 형식을 갖추고, 아주 근본적인 교리에 충실합니다—“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여러 가지 욕심에 눌린 미련한 여자들을 이끌고 다니는 부류니, 이 여자들은 결코 진리를 아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 믿음의 닻은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내려져 있습니다.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제가 이십삼 년 전에 자리를 잡고 선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도, 혹은 죽음이 와서 제가 살고 있는 이 낡은 전염병 집에서 저를 풀어 줄 때에도, 저는 여기 서 있고 싶습니다. 아멘. 말씀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말씀은 결코 효력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은 불멸하며 영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내가 할 일은 교회에 다니고 꽤 착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야.”라고 말합니다. 형제님, 그것은 틀렸습니다.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서도 꽤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인도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경배하는 사람이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아와 교회를 짓고 제단을 만들고 장식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절하셨습니다. 그에게 영적인 계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의 신실함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나아오는데, 자신의 영원한 행선지가 죽음이 될지 생명이 될지가 그가 드리는 희생물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무지한 채 나아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마음의 정직함으로 나아와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신실함이 그것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길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벨이 사과든 여러분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 대신에 어린양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린양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 당시에는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 그에게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모세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 선지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물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톨릭교회는 거기에 반석이 있는데 그 반석이 베드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아닙니다. 그 반석은 예수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솔직히 두 견해 모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너는 어느 신학교에서 이것을 배운 것도 아니고,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 배운 것도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입니다. 그저 흥분하고 감정이 고조된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심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그리스도를 여러분에게 계시하셨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인 부분 때문에만 교회에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려고만 교회에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찬송을 들으며 즐기려고만 교회에 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악함을 감추고 동네에서 평판을 조금 좋게 만들려고 교회에 나와 교인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실하게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만져 주시는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면…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오는 자마다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아,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이것은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계시하시는 역사입니다. 어떤 감정이나, 해야 할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이나, 이것저것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좋습니다. 그런 움직임과 행위, 외침과 춤과 방언, 그런 것들은 다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영적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계시이며, 부르심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그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흉내만 내는 것이고, 그런 척하는 것뿐입니다.
여기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 13절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신뢰한 너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또한… 너희가 믿은 뒤에… 너희가 믿은 뒤에 약속의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장 3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언제까지입니까? 아르미니우스주의 형제님, 제가 형제님의 발가락을 조금 꼬집고 싶은데, 양해해 주십시오. 언제까지입니까? 여러분의 구속의 날까지입니다. 한 집회에서 다음 집회까지가 아닙니다. 한 부흥집회에서 시작해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닐 때까지만도 아닙니다. 성령으로 한 번 충만해진 사람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의 약속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아멘.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현재 시제입니다—“결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이 말씀을 한번 지워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 24절, 영감으로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부르지 않으시면 여러분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변화되어라.”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계시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옛것들은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온갖 것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쪽저쪽으로 흔들려서, 이번 주에는 감리교인, 다음 주에는 침례교인, 그다음 주에는 장로교인이 되고, 이 선교회에서 저 선교회로 뛰어다닌다면,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굳게 서 있지 못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지만 보십시오. 저한테는 많은…”이라고 하시겠지요. 아, 형제님,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올라섰다가 내일은 사라지고, 그다음 날에는 믿음에서 물러났다가 또 그다음 날에는 돌아오고, 줄곧 밖에 나가 도박을 하고 온갖 일을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이제 오순절이 바로잡혀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얼마나 세속적으로 되었는지 보십시오. 다른 이들과 똑같이 너무나 세속적으로 되었습니다. 옛 세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들어와 흥청거리며, 모든 것을 신학과 그 밖의 것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본떠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면 여러분은 분리된 백성이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입술의 열매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인은… 인은 완성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그분의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아멘. 마귀의 인도 완성된 일입니다. 마귀가 그를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그의 마음을 두드리셨지만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돌아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으시면서 또 다른 복음 설교자를 보내시고 표적들과 이적들과 그 밖의 것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의 영적인 귀를 막아 버립니다. 그는 고집이 세고 높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나는 박사 학위나 철학박사 학위나 법학박사 학위가 있는데, 왜 저 미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 조금 후에 그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초창기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나에게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도대체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여섯 피트 길이의 흙입니다! 아멘. 그게 전부입니다. 모두 똑같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멘. 팔십사 센트짜리 몸에 백 달러짜리 양복을 걸치고 대단한 사람인 양 행동합니다. 그렇습니다. 화학 연구에 따르면 몸무게가 백오십 파운드인 남자의 가치는 팔십사 센트이고, 여자는 그보다 적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몸에 백 달러짜리 양복이나 커다란 모피 코트를 걸치고는, 누구누구의 교회에 속했다는 이유로 코를 치켜들고 거리를 걸어 다닙니다. 이제는 톱밥 깔린 길을 따라 제단으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할 때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왕국 밖에 봉인하기 전에 말입니다. 아멘. 이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양심마저 이것이 진리라고 말해 줍니다. 그 경계선을 넘으면 여러분은… 마귀의 생각에 넘겨져 미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믿고, 그것으로 인해 정죄를 받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에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야곱의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야곱은 어떤 의미에서는 작은 사기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장자권에 돌아올 보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온 혼을 그 핵심에 쏟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차를 몰 수 있느냐,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가졌느냐, 가장 큰 교회를 가졌느냐 하는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그 핵심, 장자권에 두십시오. 아멘. 아, 참으로! 제 안에서 신앙의 열기가 솟아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오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잠깐만요. 저도 오순절교인입니다. 저도 외쳐 보았고, 방언도 하고, 그런 것들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제 사촌이 이 양복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양복이 저를 브래넘 집안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브래넘 집안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브래넘 집안사람에게 받은 선물입니다. 아멘. 제 이름이 존스인데 브래넘 집안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브래넘 집안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완성된 일로 봉인되어 왕국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멘. 제가 시끄럽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저처럼 느낀다면 여러분도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보십시오.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감동이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묻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봉인하시며 그분의 일을 완성하십니다… 성령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미리 예정하시고, 그 계획을 완성하시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시고, 부르심을 발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여러분은 귀를 기울여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그분께서 설교자를 보내셨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나아와 말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저를 써 주십시오.” 에베소서 4:30 그러자 약속의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구속의 날까지 봉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문은 이미 닫혔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안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그 안에 봉인하셨으며, 여러분은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멘. 세상에 대해서는 외국인이요 순례자요 나그네이며, 세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 관심도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평안 가운데 주 예수님을 만나는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갈보리를 보십시오. 그 혈구가 둘러싸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마리아의 태 안에 자신을 둘러싼 혈구를 만드셨습니다. 그 혈구에서 또 다른 세포가 생겨났고, 세포 위에 세포가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처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 곧 영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런 다음 갈보리에서 그분은 피의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잔혹한 창이 그분의 몸에서 피를 빼냈고, 그 혈구를 터뜨렸습니다. 생명이 흘러나왔습니다. 생명에서 물과 피와 영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그 피를 통과하여, 성령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그 혈구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일부가 되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잃어버린 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잃어버린 자가 되시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리라.” ‘영원한’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조에’에서 왔으며,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각 사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생명에 의해 구속의 날까지 봉인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에게는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형제를 안으로 데려오고, 원수를 두 팔로 감싸 안아 사랑합니다. 성령의 위대한 역사는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일어나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 하나님께 영광! 우리가 저들을 앞질렀어. 할렐루야! 저쪽의 낡은 독수리 둥지 같은 곳을 보라고. 오늘 저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우리 일요학교가 저들 것보다 더 크고,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온갖 일을 했어. 하나님께 영광! 우리 반 사람들은 모두 캐딜락을 타고 오잖아. 저 사람들은 낡은 모델 T 포드를 타고 오는데 말이야.” 그들이 여러분보다 훨씬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합니다. 아멘. 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며, 오래 참음과 선함과 부드러움과 인내, 이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부드러움과 인내입니다. 이것이 영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데에 갖다 놓았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어 그들이 나으면, 사람들은 “아, 형제님, 저분은 정말 성령을 받았군요.”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방언을 하고 또 누군가 통역을 하면, “형제님, 저분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분이 방언하는 것을 들었으니 받은 줄 압니다. 그분이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보셨고 계시도 받으셨습니다. 아, 설교는… 저렇게 설교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어느 것도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다는 표적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내가 예언의 은사가 있고 성경의 모든 지식과 지혜와 모든 것을 이해할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은 신학을 믿고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제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설교하지… 예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저는 많은 능력 있는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나는 너희를 알지도 못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한 재판관이십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하는 표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속했느냐가 아니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속한 것이 표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외치는 것이 표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방언을 하는 것이 표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 표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의 표적은 영의 열매입니다. 영의 열매는 환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방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온유와 부드러움과 인내입니다. 아멘. 이것이 하나님의 인입니다. 아멘. 조금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구약으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신약으로 가져와서, 이것이 정확히 맞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형제님, 여러분이 다시 바르게 서서 출발하면, 하나님께서 부흥으로 이 나라를 뒤흔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여러분을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며,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녹음 공백]… 계속 이어서…
[녹음 공백]… 하나님의 인입니다. 에스겔 9장입니다. 종이를 가지고 적으시는 분들은 적으십시오.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 가운데 들려 갔습니다. 그분께서 오시기 훨씬 오래전, 오시기 약 오십 년이나 육십 년 전에… 그 말이 아닙니다. 오시기 약 오백 년 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그는 환상 가운데 들려 갔습니다. 그는 옳지 않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제단을 등지고 앉아 있는 일 등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를 그 도시의 높은 문으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그 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도시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온갖 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한 도시, 한 장소를 지정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 도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살육하는 무기를 손에 든 여섯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으십시오. 사람이 자비를 걷어차 버리면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심판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멸망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하는 일입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기를 원하지 않으시지만, 여러분은 기어코 그렇게 합니다. 애써 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살육하는 무기를 든 여섯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제단에서 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흰옷을… 온몸에 입고, 옆구리에 기록관의 잉크통을 차고 계셨습니다. 3절입니다.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도시를 두루 다니며 살육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는 먼저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듣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심판 전에 백성에게 제시되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가 이분이 나아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 옆구리에 잉크통을 찬 기록관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시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이마에 인을 찍으라.” 다시 말해, 주후 96년에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과 그 도시를 포위하여 큰 파괴가 일어나기 전에, 성령께서 먼저 나아가셨습니다. 흰옷을 입고 옆구리에 표를 하는 도구, 연필을 차신 그분께서, 도시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표를 찍으려고 먼저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확실히 준비하도록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만일 그 동일한 천사가 이 도시에 온다면, 곧 성령께서 자신의 순결하심을 나타내듯 흰옷을 입고 오신다면… 그 천사가 오늘 밤 이 도시에 와서 오순절 교회들을 두루 다닌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이 도시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으며 밤새 기도로 간구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표를 찍겠습니까? 누가 성령을 받았는지 곧 알아보겠습니다. 탄식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뻔뻔해지고 무관심해졌습니다. 아마 일어날 때 잠깐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와 메리와 마르다와 나머지 식구들을 모두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잘하라는 것입니다. 거리에서는 남녀가 죄를 짓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부담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든 내버려 둡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조금씩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 우리 일을 돕고, 우리 교파를 키워 가장 크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기만 하면 만족합니다. 형제님, 이것은 옛날에 먹던 피마자기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바로잡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직에서… 내년에 내가 수석 장로가 되고, 어쩌면 지방 책임자 같은 자리를 맡기만 하면 돼.” 이제 설교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거의 그것뿐입니다. 설교자 여러분, 우리도 나섭시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 참으로. 우리는 이 도시에서 행해지는 죄와 가증한 일과 수치스러운 일들 때문에 무릎을 꿇고 울어야 하는데, 제 모자에 깃털이나 꽂으며 공적을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너무나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잃어버린 자들에게 무관심합니다… “우리 교회만 잘되고, 일요일에 우리 회중이 가장 많기만 하면 돼.” 그러고는 일요일 밤에 모두 집에 머물며 텔레비전을 봅니다. 오늘 저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곳에 있었습니다. 교인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여기에 삼천 명이 모입니다. 일요일 밤에는 그 절반도 모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교회에 와서 종교적인 할 일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시 시골로 드라이브를 나갑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마음속에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멘.
제가 공익사업 회사에서 전선공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전기요금을 받으려고 한 집에 갔습니다. 조그마한 여자가 문으로 나왔는데, 입은 옷이 아스피린 상자에 다 들어갈 만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방바닥을 가로질러 춤을 추며 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어떤 남자가 작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춤을 추며 방을 가로질러 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기요금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아, 가져다드리려던 참이었어요.”라고 하더니, 춤을 추며 다시 방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 남자가 어떤 시시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그 부기우기 같은 음악 말입니다. 그런 음악 때문에 이제 식당에서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삑삑거리는, 경건치 못한… 아, 참으로. 세상이 더럽혀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온통 성과 더러운 것들과 경건치 못한 것들에 쏠려 있습니다. 설교자들마저 그러고 있습니다. 아멘.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자처하면서도 그런 불결하고 더러운 곡들을 연주합니다. 형제님, 그것을 먹고 있는 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독수리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아멘. 제가 여러분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형제님, 여러분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아멘. 그 때문에 기도회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교회를 조금 더 잘되게 하는 것뿐입니다. 교인들에게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좀 더 좋은 차를 몰고, 좀 더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십일조를 더 많이 내도록 가르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대저택에서 살고, 그 밖의 그런 것들입니다… 아,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런데 이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하루에 십사만 명씩 죽어 가고 있습니다. 다른 온갖 일에는 돈을 거두어들이면서, 선교지의 가난한 선교사는 피가 마르도록 생명을 쏟아붓고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심판 날에 일어나 여러분을 정죄하고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그들의 증언이 그 사람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서 성령의 인에 대해 말하다니요! 아멘.
자,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여자는 춤을 추며 방바닥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 노래, 무슨 시시한 노래에 어찌나 빠져 있었는지, 제가 거기 서 있다는 것조차 잊었습니다. 그러다가 “아, 실례했어요. 저는 춤추는 게 정말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 같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금 영수증에 서명을 해 주고 길을 올라갔습니다. 몇 분 뒤… 제가 전봇대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그 도시의 아주 훌륭한 큰 교회에 계시던 브라운 박사님이 “빌리, 안녕하신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녕하십니까, 브라운 박사님. 오늘 아침은 어떠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아주 좋네. 빌리, 자네는 태버내클에서 어떻게 지내나?” “아주 잘 지냅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나?” “예, 그렇습니다.” “자네 교회는 출석 인원이 꽤 잘 유지된다더군.” “예,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빌리,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나? 이 교회에는 교인이 오천 명일세. 어떤 사람은 캘리포니아에 있고, 어떤 사람은 여기저기 있지. 오십 년 동안 그렇게 모인 교인들이네.” 그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여전히 교인입니다. 고작 그 정도인 것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있잖나, 내가 카드 천 장을 보냈네. 적어도 일 년에 여섯 달은 수요일 저녁 기도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했지. 그러면 한 번 걸러 한 번씩 빠져도 일 년에 여섯 달은 나오는 셈이거든. 그런데 몇 명이 응답했는지 아나?”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다섯 명일세.”라고 했습니다. 제가 “있잖습니까.”라고 하며, 그 여자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저 아래에 있는 그 작은 여자를 보셨습니까? 거의 옷도 안 입고 방바닥을 가로질러 춤을 추면서 ‘투들디, 두들리, 두들리’ 하고 외치던 여자 말입니다. 클레이턴 맥미첼이라는 자가 그 요란한 곡인지 뭔지를 바이올린으로 켜고 있을 때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여자는 라디오 앞으로 나가, 라디오 속 그 남자에게 입맞춤을 날리며 ‘잘 가요, 자기. 오늘 밤 그 가시덤불 숲에서 만나요.’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있는 곳이 뭐라고 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말했습니다. “맥미첼 씨가 그 여자에게 거기 오겠다는 카드에 서명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그 여자는 거기에 가려고 자기 몸에 걸친 옷까지 전당포에 맡길 겁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서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미지근한 교인들을 제단으로 데려와 성령께서 그들의 혼에 불을 붙이실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카드에 서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계시고, 하나님은 교회에 가십니다. 그분은 경배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건 감리교나 침례교 이야기잖습니까.”라고 하시겠지요. 오순절도 그렇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자들에게 인을 찍으라.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 그들은 아주 종교적이지만 가까이 가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그들은 관심이 없다. 내 일에 관심이 없었으니, 나도 이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자 천사가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그 도시의 죄 때문에 부담을 지고 울며 탄식하던 모든 사람에게 표를 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살육하는 무기를 든 천사들아, 앞으로 나아가 모든 것을 철저히 죽이라.” 그리고 그 일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날에,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모독하면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봉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희생이 아직 드려지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으며, 성령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났을 때, 그 도시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울며 탄식하던 그 유대인들이… 그들은 다 한마음으로 다락방에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당신네 교회보다 더 좋습니다. 나는 여기 이 교회에 속해 있고, 우리 교회에는 가장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곳에서 부흥을 위해 협력했고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인가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한데 모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때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설교자로 만드셨습니다. 밖으로 나갔을 때 그들은 각 사람이 그들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각 지방의 말로 설교할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날은 그날뿐이었습니다. 너희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로, 그다음에는 사마리아인들에게로, 그다음에는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혼란의 무리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바빌론과 아주 달랐습니다. 바빌론에서는 서로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분께서 바빌론의 혼란을 바로잡으셔서 서로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셔야…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시도록 맡겨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아멘. 하나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 친구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러면 방언을 믿지 않으십…?”이라고 하시겠지요. 물론 저는 방언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신유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외치는 것도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그것을 제자리에 두십시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제자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아멘. 아주 강한 말입니다. 하지만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옳은지 알아보십시오.
보십시오. 성령께서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들은 거기 서서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이 사람들은 새 포도즙에 취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두려움은 모두 사라지고, 마음에는 불이 붙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타올랐습니다. 밖으로 나가 설교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그 사람들의 언어를 말할 수 없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그들은 영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방언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로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바빌론에서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는데, 그분께서는 오순절 날 그들을 다시 하나의 교제 안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아멘. 마귀가 바빌론에서 한 일은 형제들을 흩어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에 형제들을 한데 모으셨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 자신의 언어로 들립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하하. 오늘 퍼싱 광장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지.”라고 합니다. 여전히 바빌론입니다. 그들은 “저들은 다 새 포도즙에 취했어.”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거기서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거절하고 배척했습니다.
바울이 나아와 설교했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들 모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 침례, 하나님의 완성된 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전했습니다. 천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울던 유대인 모두에게 이미 표를 찍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보십시오. “나는…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고, 밤낮 눈물로 너희에게 경고하고 설교하며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노라.” 그것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눈물 한 방울 없는 이런 신앙 고백이 아니라, 성령으로 참되게 태어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존 스미스가 오늘 밤 다시 살아나 지금과 같은 우리 침례교회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존 스미스는 밤새도록 기도하며 울어서, 아침이면 눈이 부어 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침을 먹도록 식탁까지 이끌어 주어야 했습니다. 울었던 것입니다! 오늘 밤 그런 침례교 설교자를 어디에서 찾아 표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알렉산더 캠벨은 어떻습니까? 감리교 여러분, 존 웨슬리는 어떻습니까? 오순절 여러분, 아주사 거리는 어떻습니까? 초창기는 어떻습니까? 그곳으로 돌아가 모두 한마음으로 한곳에 모여,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 아래 여러분을 쓰러뜨리실 때까지 기도하던 때 말입니다. 찬송가 책 하나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것조차 너무 신경을 쓰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 화장을 하고 치장한 채 이곳에 나서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아주사 거리에서는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성도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조금 심한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형제님, 이것은 진리입니다. 아멘.
그때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영감 아래 있는 설교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설교자들 자신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를 통해 약… 주후 33년부터 96년까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계속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로 돌이키셨습니다. 그러자 천사의 자비… 자비의 천사가 그 모든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 교회로 갔습니다. 바울은 “보라, 우리는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노라. 그들은 들으리라.”라고 말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 다음 그 큰 때가 왔을 때, 모든 큰 교회 연합체가 함께 모여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티투스가 도시를 포위하여 여러 해, 두 해나 세 해 동안 그들을 안에 가두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굶어 죽었고, 자기 자녀들까지 삶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살육할 때는 아무것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이 말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완전히 파괴되어 피가 흘렀고, 도시는 불탔으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보리에서 완성된 일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이 귀를 닫아 버렸고, 마귀가 그들의 귀를 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까지도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것은… 그렇다면 이방인은 어떻습니까?”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여기 요한계시록 7장으로 가서, 이 시대의 이방인들에 관한 예언이 어디에 있는지 보겠습니다.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7장, 이방인 교회에 주어진 예언입니다. 이 일들 뒤에 내가 보니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네 바람을 붙잡고 있더라… 또 내가 보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으로부터 올라와… 네 천사에게 이르되…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 안에 인을 찍어 그들을 봉인할 때까지… 바람을 붙잡으라.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들이 십사만… 사천 명이더라. … 지파에서, 단, 갓 지파에서… 만 이천 명 … 아셀 지파에서… 만 이천 명… … 스불론…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며, 열둘 곱하기 열둘은 십사만 사천입니다. 모두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 인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어젯밤에 어떤 분이… 라디오에서 그 인이 머리를 가로지르는 문신일 것이라고, 하나님의 인은 머리에 새기는 문신일 것이라고 말씀하신 형제님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인은 본래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인은 성령 침례였습니다. 머리에 있는 표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표였습니다. 아멘. 어떤 특정한 표식이 아닙니다! 배교 자체가 여러분을 봉인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행위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입증합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마귀에 의해 배교 안에 봉인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으로 봉인된 것입니다. 영원한 목적지입니다. 아멘. 형제님, 저는 이것이 정말 좋습니다. 저에게 참 좋습니다. 아멘. 이것이 지금까지 이 모든 세월 동안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저는 이것을 사랑합니다. 제가 지금보다 두 배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두 배 더 많이 담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멘. 이것은 제게 생명입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천사들이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네 바람을 붙잡고 있더라.” 여기 성경을 해석하시는 분들, 성경에서 바람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람은 “전쟁과 다툼과 환난”을 뜻합니다. 온 세계가 함께 전쟁에 나선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 이후 한 번, 온 세계가 전쟁을 한 때가 한 번 있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함께 진군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그가 이 세계대전의 때에 관해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모든 천사, 파괴하는 천사들이 전쟁으로 세상을 멸하려고 나아옵니다. 아시겠습니까? 파괴하는 무기를 든 하나님의 천사들이 세상을 멸하려고 나아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바람을 붙잡으라”—세계대전을 붙잡으라. 이 전 지구적인 파괴를… 그것을 멈추어 두라—“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 안에 인을 찍어 그들을 봉인할 때까지.” 이방인은 종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유대인이 종입니다. 요한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제 앞날로 훌쩍 건너가 말씀하십니다. “이 전쟁들을 여기서 붙잡아 두라. 우리가 십사만 사천 명의 유대인을 봉인할 때까지 완전한 파괴, 완전한 전멸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 그러면 그때… 모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멈추었습니다. 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가던 과정을 읽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아무도 왜 전쟁이 멈췄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11월 11일에 멈추었습니다. 그렇지요? 일 년 중 열한 번째 달, 하루 중 열한 시, 열한 시에서 십일 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열한 시에 온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어느 한 시간에 들어와 일 데나리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열한 시에 온 사람들도 처음 온 사람들과 똑같은 일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열한 시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 무렵에, 여러분이 주목하기 바랍니다. 요한은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의 군대 내 계급을 알았고, 지파별로 그들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요한 자신도 유대인이었으므로,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 9절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있더라.” 그들이 언제 표를 받았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곧 유대인은 지금 당장 봉인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저기 예루살렘에 앉아서, 누군가 와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 한 방울 없는 어떤 신학으로 그들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을 행하는 사역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스톡홀름 교회에서 그들에게 성경 백만 권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가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오. 그러면 믿겠소.”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형제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방인의 시대는 끝납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다시 유대인에게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제 잠시 이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올라왔을 때… 그리고 이 일 뒤에, 정해진 어떤 때가 아닙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언어들에 속한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든 채…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구원이 왕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모든 천사들이… 스물네 장로 주위에 섰다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찬송과… 지혜와… 영광과… 강력과… 권능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것이 옛날식 성령 집회가 아니라면, 저는 평생 그런 집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큰 무리는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이 봉인되는 그때 사이에, 미리 보인 것인데, 요한이 그들을 봅니다… 하지만 이 사이에, 이들이 언제 봉인되었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오십 년 전 이곳 아주사 거리에서 임하기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옛 사도적 축복이 그들 위에 임하면서 온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흰 예복을 입은 그 성도들은 바로 거기서 나왔습니다. 얼마 전 온 땅을 휩쓸었던 그 큰 부흥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미지근해지고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로 돌이키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거절했습니다.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척하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세속적인 교회를 본뜨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갈 때, 예전에는… 옷차림도 달랐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을 제단으로 나오게 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곤 했는데… “내게는…이 없어요.”
얼마 전 한 어린 여자가 저를 위해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에 그 꼬불꼬불한 매니큐어를 할 수 없어서 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이제는 네가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저는 이런 것을 믿는 옛날식 설교자입니다. 사람이 제 강단에 서기 전에 먼저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밤 길가 술집에서 기타를 치다가 내일 밤 제단으로 나오고, 그다음 날 밤에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그것은 성령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아멘.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요한 같은 침례교 설교자들이 더 필요합니다. 복음에 맞추어 먹줄을 대고 나무를 찍어 내듯, 나뭇조각이 어디로 튀든 개의치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멘. 할리우드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령 침례로 그것을 흔들어 털어 내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성령 교회의 옷차림과 행동은, 이제 끔찍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설교자들을 강단으로 부르면, 그들은 기도하러 제단으로 내려가려고 하다가도 그러지 못합니다. 옷을 모두 맞춰 입고 양복에 주름을 빳빳하게 잡아 놓았습니다. 양복 한 벌에 백오십 달러를 들였으니 몸을 굽히지도 못합니다. 아멘. 여러분도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여자 여러분, 손톱에 칠을 하고 오… 오십 달러짜리 코트를 두르고 백 달러짜리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낳으려고도 하지 않고 피임을 하면서, 콧물 흘리는 조그만 개를 안고 다니며 무슨 이름인가로 부르고 아기에게 줄 사랑을 줍니다. 그러고도 성령 교회라고 자처합니까!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멘! 이것은 진리입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을 흉내 내는 이 무리, 오순절 교회를 흉내 내는 이 사람들이 톱밥 깔린 길을 따라 이곳으로 내려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성령을 주실 때까지 그 아래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순절을 흉내 내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단이 열려 있고, 톱밥 깔린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멘. 부흥을 원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혼에서 시작하십시오. 아멘. 흉내 내며 다른 교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여러분이 어울려 다니는 그 작은 동무, 먼 사촌 같은 바빌론을 좇아 나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멘. 친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이 제가 두 시간씩 설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또 그렇게 했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표를 받아 안에 있거나, 표를 받아 밖에 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영적인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여기 톱밥 깔린 길과 애통하는 자의 기도석이 있습니다. 여기 머물러 해산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탄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여러분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은 “흥분하셨군요.”라고 하십니다. “아주사 거리를 어떻게 아십니까? 아직 쉰 살도 안 되셨는데, 아주사 거리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하십니다. 제가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오순절 교회에 성령의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한 무리의 [불명확한 단어]와 온갖 음악, 그리고 화장한 광대 무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사이클 터틀(cycle-turtle)’ 같은 자기 모습에서 벗어나 제단으로 내려와, 다른 죄인들처럼 회개해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여러분이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런 체험을 하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그런 체험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제단이 열려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셔서 저와 함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설교자 여러분도 준비하시고 뻣뻣한 태도를 버리십시오. 이리로 와서 함께 둘러 모여 무릎을 꿇읍시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흥을 일으킵시다.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오십시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주님의 물 샘들에서 값없이 마실지니라.” 할렐루야! 설교자 여러분, 이리 올라와 설교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이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아멘. 구하는 자들이여,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며 여러분의 믿음에 도전합니다. 참된 부흥을 보고 싶다면 와서 여러분 자신의 혼에서 시작하십시오. 아멘, 아멘. 죄에 눌린 자들이여, 모두 오라. 주님께 자비가 있네.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면 반드시 은혜를 주시리. 그렇게 하십시오. 그 드레스와 그 바지는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은 무명 드레스를 입어야 하고, 설교자인 저는 작업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 길로 들어서십시오. 아멘. 오, 할렐루야!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죽으십시오! 할렐루야. 설교자 여러분, 오십시오. 이리 모이십시오. 할렐루야. 형제 여러분, 오십시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의 물줄기가 흐르는 샘에서 마실지니라.” 거기에 그대로 있지 말고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에 부흥을 보내실 때까지 바로 그곳에 서 계십시오. 오, 하나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버지. 주님의 성령께서 내려오시게 하옵소서. [불명확한 말들] 하늘의 하나님. 주 예수님, 내려오셔서 이 백성을 축복하시고 성령 침례를 주옵소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불명확한 말들] 주 하나님. 하나님의 영께서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내려오셔서 이 백성을 [불명확한 말들]. 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이 백성 가운데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성령께서 모든 마음을 붙드시고, 믿는 사람마다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백성 가운데 불을 내려 보내옵소서. 오,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주님, 이 백성에게 주님의 축복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들을 이끌어 들이옵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 예수님, 허락해 주옵소서. 오, 하나님, [불명확한 말들]. 오, 하나님, 오소서, [불명확한 말들]. 오, 자비로우신 하나님! 예수님, 오소서. 주님, 이제 축복을 보내옵소서. 주 예수님, 주님의 이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옵소서.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