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그 당시 거지들은 사람들에게서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뭔가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했습니다. 인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지가 그저 길에 서서 손을 내밀고 “동전 하나만 주십시오” 하거나 무엇을 구걸하기만 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작은… 한 조그만 사람은 원숭이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가, 그 작은 원숭이가 막대기로 그를 때리는 것입니다. 막대기를 들고 거리 이곳저곳으로 그를 쫓아다니며 때렸습니다. 그러면 그는 구걸을 했습니다. 누군가 지나오는 것이 보이면 다시 원숭이가 자기를 쫓아오게 하고는, 사람들 앞으로 달려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얻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코브라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작은 묘기든 색다른 것이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에게도 작은 산비둘기 두 마리가 있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작은 재주를 부렸다고 합니다. 서로의 몸을 넘어가며 재주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의 아내가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가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아내가 낫게 해 주시면 이튿날 아침 그 산비둘기들을 회당으로 가져가 제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서 그 산비둘기들을 드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어린 딸이 어느 날 밤 병에 걸렸고, 의사들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이제 하나뿐입니다. 제 어린양입니다.”
오늘날 눈먼 사람은 보통 개의 안내를 받습니다. 개를 훈련시켜 눈먼 사람을 인도하게 합니다. 그 당시에는 개 대신 어린양을 훈련시켰고, 그 어린양이 눈먼 사람을 인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이 어린양뿐입니다. 하지만 제 어린 딸이 낫게 해 주시면, 아버지, 내일 이 어린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튿날 아침 어린 딸의 상태가 훨씬 좋아졌고, 그는 딸이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을 바치러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제사장을 만났는데, 제사장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눈먼 바디매오여, 어디로 가는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사장님, 제 어린양을 드리러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지난밤 하나님께서 제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분께 약속했기에 제 어린양을 드리려 합니다.”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여, 그 어린양을 드리면 안 되네. 그 어린양은… 내가 돈을 좀 줄 테니 가축을 사는 사람들에게 가서 어린양 한 마리를 사다가 드리게. 그 어린양은 드릴 수 없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제사장님, 저는 하나님께 어린양 아무거나 한 마리를 드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이 어린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선물이나 헌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이 어린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그 어린양을 드릴 수는 없네. 그 어린양은 자네의 눈일세.” 그가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의 제사장님, 눈먼 바디매오가 하나님께 약속했고 제가 그 약속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눈먼 바디매오의 눈이 되어 줄 어린양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먼 바디매오의 눈을 위해 어린양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바로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바디매오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어린양을 통해 시력을 얻었습니다.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바로 그 어린양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여러분의 죄를 위해 마련되어 계십니다. 그 죄가 아무리 검다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질병을 위해서도 마련되어 계십니다. 얼마나 심하게 병들었든, 얼마나 고통받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치유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환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이것이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사역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오셨을 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처음 들으셨을 때, 사람에게서 들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들으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라고 하셨습니다. 제 말은, 그가 죽었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어 있도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무덤에 오셨을 때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곁에 서 있는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그것을 말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표적을 행하기 전에,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거나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기 전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하나님께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대에 사셨던 바로 그 예수님, 여리고 성문 곁으로 오셔서 눈먼 바디매오에게 시력을 주신 분,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분, 그 여인이 옷을 만졌던 분, 히브리 소년들과 함께 불타는 용광로 안에 계셨던 분, 성문 밖에서 여호수아를 만나셨던 분, 그날 밤 바다 위를 걸으셨던 그분, 바로 그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디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내가 그들 한가운데 있으리라.”
자, 이것은 진실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물론 약속하신 일을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하신다면, 자신의 신성한 약속에 따라 모든 세대에게 그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그분께는 그 의무가 있습니다. 각 세대에 그 약속들을 이루시기 전까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 책임이 남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른바 신유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된 신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은 이미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으며, 그분은 이미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여러분을 구원하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치유와… 여러분의 몸과 혼을 치유하는 일을 말입니다.
매번 바로 그 동일한 단어가 사용됩니다. 오늘 밤 우리의 본문을 보셨습니까? 그분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쓰인 그리스어 단어가 ‘소조’입니다. 소조는 구원과 신유에 모두 사용됩니다. 육체적으로 구원받거나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동일한 분께서 같은 날 동일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성경은 진실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이든 어느 시대든, 사람들이 자기 불신을 감추려고 온갖 설명으로 이 말씀을 무효로 만들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제가 이 책에 기록된 나사렛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기록 가운데 어느 것도 제외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취를 볼 만한 믿음이 없는 약속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약속들은 여전히 참됩니다. 저는 결코… 제가 여호수아가 걸었던 곳을 걷지 못한다면, 에녹이 걸었던 곳을 걷지 못한다면, 그가 죽을 필요 없이 어느 날 오후 하나님과 함께 본향으로 갔던 것처럼 걷지 못한다면, 제게 그렇게 할 믿음이 없다면, 그런 믿음이 있는 다른 누군가의 길을 가로막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신학으로 설명하여 그 말씀을 무효로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나서서 사실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게는 그 믿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눈먼 바디매오의 외침에 멈추셨던 바로 그 예수님을 여러분도 오늘 밤 멈춰 서시게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여인이 그분의 옷을 만졌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감응하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시려면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했다가도 그것을 거둬들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도 무슨 말을 했다가 거둬들여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웃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다가 거둬들여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거두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시려면 그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하신 말씀을 거두실 수 없습니다. 지키셔야 합니다. 그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으십니다.
그 때문에 이 위대한 희생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을 죽음 아래 놓이게 했기에,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사람은… 죄를 다룰 때는 질병도 다뤄야 합니다. 질병은 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속죄가… 갈보리에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 개인의 믿음에만 적용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약속을 의지합니다. 갈보리에서 죽으신 그분의 죽음에 담긴 거룩한 것들에 관한 약속입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가 치유받고, 거기서 우리가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게는 당신을 고칠 권능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여러분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으나 그들이 그 권능을 가지고도 실패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 형제님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분명히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열흘쯤 뒤, 그들은 그 권능을 가지고도 참담하게 실패했습니다. 간질을 앓는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서 마귀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용납해야 하겠느냐? 그를 이리 데려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없었나이까?” 그분께서는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시겠죠, 믿음이 승리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셔서 우리에게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죄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들에게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속죄가 이루어진 뒤에는 치유가 영원히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치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그 속죄에 대한 각 개인의 믿음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이것을 분명히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에게도 병을 고치는 권능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첫째로 사도들을 세우셨습니다. 오늘날 쓰기에 더 알맞은 말로 ‘선교사들’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선교사들이 왜 사도라는 이름 대신 선교사라는 이름을 내세우거나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둘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선교사,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이 모든 은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교회와 몸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교회 안에 두신 것입니다.
그들 각자는,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자기 일을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므로 가르칩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선지자나 선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셔서 환상을 보고 앞일을 예고하며 일들을 말하게 하십니다. 그 사람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다만 말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각자의 직분에 머물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고, 오른쪽이나 왼쪽을 보지 않고 앞에 있는 갈보리를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혼의 치유와 몸의 치유, 양쪽 모두에 많은 광신주의가 따라붙을 것을 예상하며, 그런 사실을 알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잘 압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이 땅에 계셨을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과 표적들을 여전히 나타내십니다.
사람이 제멋대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때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때는 지금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 그렇게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땅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보다 더 높은 삶을 사는 사람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자 완전한 희생물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러 번, 거듭거듭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나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고 나도 지금까지 일하느니라. 그분께서 말씀해 주시거나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 심판은 참되니라. 그것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기 때문이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시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견자나 선지자로서 한 개인에게 뭔가 색다른 일이나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말해 줄 수 있고, 사람들이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차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한 말이 성경에 들어맞지 않고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우리 각자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될지는 모릅니다. 여러분이 떠날 때, 혹은 제가 먼저 떠나든 여러분이 먼저 떠나든, 우리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 서야 하고, 여러분은 제 앞에 서야 하며,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앞에 서야 합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으며, 다시 영의 모습으로 돌아가셔서 성령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믿습니다. 그 성령께서 오늘날 교회 안에 사시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같은 방식으로 행하고 이루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이 제 삶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간증이 된다 해도 제 간증은 참됩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서 나온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눈먼 바디매오를 고치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저를 고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도 고치십니다. 저는 아무도 고치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도 고칠 수 없지만 그분께서는 고치십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고치셨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치유받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 빛이 나타났는데,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던 바로 그날 아침에도 그 빛이 나타났습니다. 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됩니다. 그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죄인이었던 어린 소년 시절부터 저는 그것을 본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믿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미리 말하는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번도, 지금 저는 마흔여섯 살입니다만,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조금이라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받은 잡지에는 예언들이 이미 글로 쓰여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지켜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대로 되는지 보십시오. 적힌 그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아니라 그분이십니다.
제가 침례교회에서 처음 안수를 받았을 때, 스물세 살짜리 소년, 아니 청년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날 강에서 오백 명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바로 그 빛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신문에도 그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아, 심리적인 현상이었을 수도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빛이 집회에 임했을 때,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서, 아니 그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큰 별이 지나간 모든 천문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실제로 그 지혜자들이 별을 따라갔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역사에는 어디에도 그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이나 그 밖의 어디에도 없고, 다만 그 지혜자들에게 그 별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그들은 별로 시간을 헤아렸습니다. 그런데 그 별이 지나가서 예수님이 두 살이셨을 때 그분 위에 머물렀습니다.
또 보십시오. 바울이 그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던 중, 큰 빛이 그의 앞에서 번쩍였는데 너무나 밝아서 그의 눈이 멀 정도였습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 주위의 군인들과 다른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빛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너무나 실제적인 빛이어서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바로 거기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강단 위에서든 어디에서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빛은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주님, 제가 핍박하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아시겠죠? 빛의 모습으로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빛이 바울에게는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하지만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밤마다,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면 2초도 채 지나지 않은 조금 전에도 저는 바로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에서 2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로 그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긍휼로, 저처럼 가련하고 자격 없는 피조물 때문이 아니라, 아닙니다. 교회와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심판 날에 여러분이 변명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많은 신문사에서 그것을 사진으로 찍은 뒤에, 미국의 큰 사진가 협회에서도 그것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모습이, 사도 바울이 보았던 바로 그 모습으로 사진에 찍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FBI의 지문·문서 분야의 조지 J. 레이시가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와서, 그 사진을 셸 빌딩의 실험실에 가져가 자외선과 그 밖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여러 날 동안 조사하게 했습니다. 저를 강하게 비판하던 그가 밖으로 나와 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빛이 렌즈에 닿았습니다. 빛이 거기 있었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이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은 심리 현상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 빛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오늘 밤 제가 죽는다 해도 제 간증은 참됩니다. 눈먼 바디매오를 위해 마련된 바로 그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늘 밤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마련되어 계십니다. 형제님, 바라보고 살기만 하시면 됩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데려오셔서 셋째 날에 일으키셨습니다. 주님의 선지자 다윗이, 그분께서 썩음을 겪지 않으실 것이며 주님께서 그분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도 않으시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몸이 썩기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녀들과 함께하셨던 위대한 셰키나의 빛이셨습니다. 또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나셨던 그 위대한 셰키나의 빛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여기 계시며, 확실한 증거들과 기계 장치들과 성령의 증언으로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이 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둔해지고 감각에 매여서 모든 것을 감각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밤 이곳의 모든 남자와 여자와 소년과 소녀가 이 땅에 매여 있는 상태의 감각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저 갈보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 그분, 그 위대한 셰키나를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께서 이 건물 안으로 아주 가까이 오셔서, 사람들이 건물 안을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심을 알아볼 수 있게 하옵소서. 지금도 그들의 영이 술렁이는 것은 그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그분의 지극히 위대한 임재로 이 가련하고 자격 없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조금 의심하는 사람에게도, 주님께서 여기 계시며 지난날 주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오늘 밤 주님의 교회를 통해 행하심을 입증해 주옵소서.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사람들을 축복하셔서 마음이 겸손해지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한 자매가 다른 방언으로 말한 뒤 통역한다.] 할렐루야.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오직…
자녀들이여, 이제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십시오. 죄라는 말을 풀이하면 ‘불신’이라는 뜻입니다. 죄는 오직 하나, 불신뿐입니다. 그 밖의 모든… 이런 부도덕한 행위들은 그 한 가지, 불신의 속성일 뿐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아시겠죠?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이제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카드를 나눠 주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어제 X 표시가 있는 카드를 백 장 나눠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시작을… 어젯밤에는 백 번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까? 백 번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내려왔지요. 그렇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달랐습니까? 그러면 오늘 밤에는 X, 1번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며…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X, 1번이요? 번호가… 아가야,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 어린 소녀가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그분들부터 먼저 일어서 주십시오.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께서 화음을 넣어 주시겠습니까? 아니, 오르간 반주자께서요. 자매님, 실례했습니다. 다시 ‘오직 믿으라’를 반주해 주시겠습니까?
X, 1번부터 10번까지입니다. 이분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몇 분이나… 지금 일어나실 수 없다면, 번호를 불렀는데도 일어나실 수 없다면, 그냥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의 번호를 부르면 안내위원들이 여러분을 옮겨 드릴 것입니다. X, 1번부터 10번까지입니다.
자, 성령께서 여기 계시는 바로 지금, 이곳에 몇 분이나… 저는… 여러분은 이것이 성령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 저를 기억해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말할 죄인인 친구가 여기 계십니까? 저는, 우리는 여러분을 제단 앞으로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제단 앞으로 나오는 시간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믿은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더해졌다”라고 했습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그 옆의 분과 또 그 옆의 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위층 발코니에서도 누군가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언젠가 평안히 주님께 나아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또 다른 분 계십니까? 기다리고 있는 동안, 좋습니다. 또 손드실 분 계십니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분이 계십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방금 손을 든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인가가 그들의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위대한 셰키나의 영광 가운데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들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간의 혼에는 그것을 느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딘가에 무엇인가가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정확히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가 신비하게 자신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은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 그들이 바로 주 예수님의 임재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분의 영께서 여기 계십니다. 오늘 밤 바로 지금 그 위대한 셰키나의 영광이 성전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바로 지금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좋습니다. 지금 우리가… 몇 분이었습니까? 열 분입니까? 좋습니다. 이제 10번부터 15번까지 일어서십시오. X, 10번부터 15번까지 바로 줄을 서십시오. 형제님들, 저쪽에 자리가 더 있습니까? 자리가 더 있군요. X, 11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가능하시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11번이요? 좋습니다. 12번, 13번, 14번, 15번, 16번, 17번, 18번, 19번, 20번입니다.
몇 분이 일어서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모두 일어서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강단 주위가 소란스러워져서 도무지 질서를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이제 천천히, 조용히 노래합시다. ‘오직 믿으라’라는 찬송을 좋아하십니까? 저를 강단으로 부르면서 이 찬송을 부르는 것을 저는 스무 가지가 넘는 언어로 들어 보았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교회를 데려가시려고 육체의 몸으로 눈에 보이게 오시기 전에 저를 먼저 데려가셔서 제가 묻혀야 한다면, 옥수수 한 알처럼 땅의 티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 몫이 된다면, 저는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무덤에 내릴 때 이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제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잠시 멈추고 조용히 이 찬송을 흥얼거리며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그는 영광 가운데서도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사무엘은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를 낙원에서 불러 올린 그 늙은 신접한 여자가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신들이 올라오는 것을 내가 보나이다.” 그는 선지자의 겉옷을 입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선지자였습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들에게 말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서로에게는 죽은 사람이 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 마음에 영원히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밤 여기 계심을 압니다. 그분께서 모든 일을 하시며, 모든 일을 잘하시는 줄 압니다.
친구들이여, 오늘 밤 빌리가 저를 데리러 왔을 때, 이곳으로 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을 너무 늦게까지 붙잡아 두고 계세요.” 저도 시간이 아주 늦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을 알고 보니, 지금 15분이 지났군요. 저 시계로는 17분쯤 지났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오직 복음을 위해서 잠깐만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저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혹시 믿지 않으시더라도, 그저…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이 참되다면 제게 알려 주십시오.’”
이곳에는 병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쩌면 기도 카드조차 없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기도 카드가 없으면서 치유받기를 원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좋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그분을 만졌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을 만지십시오. 아시겠죠? 그저 그분을 만지십시오.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님, 제가 살고 있는 이 삼차원 세계를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로 가겠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치유를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약속하신 분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그분은 분명 신실하십니다.
이제 아주 조용하고 경건하게 계십시오. 저쪽에서는 아직 기도받을 분들의 줄을 정리하는 것 같은데, 그동안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께서 부활하셨고 지금도, 지난날 육체로 이 땅에 계셨을 때와 똑같으시다고 믿습니다. 다만 지금은 영의 모습으로 여기 계시면서 사람들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이 사람들이 이 땅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엇이 되는 것, 지금의 여러분인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셨느니라.” 아시겠죠? 육신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곳에 머무십시오. 아시겠죠? 그것은…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규칙을 정해 놓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리 아시기에, 그 미리 아심에 따라 예정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정은 미리 아심을 뒤돌아보고, 미리 아심은 앞에 있는 운명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여기 계십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십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것처럼 초자연적인 기적들로 오늘 밤 여러분 가운데 살아 계심을 입증하신다면, 이곳의 모든 분이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고,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제가 이곳에 서 있습니다. 제 자리에 서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저는 기쁘겠습니다. 올라와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아시겠죠?
자, 이것은 도전입니다. 여러분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실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것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종입니다. 기도받을 분들의 줄이 준비되었습니까? 좋습니다. 누구입니까? 이분이 첫 번째입니까, 아니 이분이 첫 번째 여자분입니까? 좋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이제 주 예수님께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마음속의 모든 의심을 거두십시오.
선지자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자녀들 앞에서 행할 두 가지 표적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그것들을 한 번 행하자 온 이스라엘이 그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오늘 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이 입증될 수 있다면,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손에 흉터가 있는 사람이 이곳에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위선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무엇이든 속이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귀도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그분께서 나타나시겠다고 하신 바로 그 방식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와 어긋나는 방식으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예수님께서 여기 나타나셔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들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십시오.
지금 제 앞에 계신 자매님과 저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자매님,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여기 서 계신 자매님은 첫 번째 분입니다. 제가 이분을 불러 따로 제 곁에 모시는 이유는, 우선 기름부음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무엇인가가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은 경건하게 계십시오.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가 여기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봅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이면 내가 그들 한가운데 있으리라. 내가 그들 한가운데 항상, 언제나, 세상의 끝까지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여기 한 여인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물가에 서 계셨을 때와 같습니다. 저는 남자이고 이분은 여자입니다. 그분께서도 남자이셨고, 우물가의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여인을 모릅니다. 그분께서도 그 여인을 모르셨지만, 그 여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셨습니다. 그분께서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자, 여인은 너무나 흥분하여 도시로 달려가 “와서 한 사람을 보십시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사실이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4장입니다.
나다나엘이 그분께 와서 섰을 때, 그분께서는 나다나엘이 어디 있었는지,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말씀하시고 그가 믿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많고, 많고, 많고,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계속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시라면, 제가 그분의 영께 저 자신을 내어 맡길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는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영께 자신을 내어 맡기면 기쁨의 외침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영을 내어 맡기고 설교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영을 내어 맡기면 환상들이 펼쳐집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복되신 성령께 저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고, 그분께서 이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혹은 그와 관련된 어떤 일을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면, 제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는 일을 알려 주신다면… 제가 자매님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는 아마 여러 해의 간격을 두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며, 평생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 이제 아시겠습니까? 저는 이 여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성령으로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면… 이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 오셨습니다. 병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서 계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이 여인에 관한 무엇인가를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여러분은 그것이… 라는 것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혹은 그분께서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말씀해 주신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매님은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주시려고 여기 계시다고 생각하고 믿고 알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머지 회중 여러분도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똑같이 해 주시리라고 믿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