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분들로 가득 찬 이 아름다운 강당에 오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좀 덥습니다만, 잠시 동안은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면서 십자가의 고난과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십자가 뒤에 오는 부활에 함께 참여하는 동안 말입니다. 경기장 집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이틀 밤 그곳에서 섬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경건한 태도와 집중해 주시는 모습, 온 마음을 기울여 주시는 모습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일이 아주 잘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여러분이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가운데 다음 주에는 그곳에서 주님의 복을 받으며 큰 집회들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야만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만 기도해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함께 기도할 때, 우리 모두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놀라운 치유도 행하시리라 기대합니다.
제 사역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통 집회 책임자가 말씀을 전하고, 저는 제 사역을 온전히 병자들을 위한 기도에만 집중합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물론 그러면 그 일과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 곧바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과, 그곳에서 잠시 설교하고, 어쩌면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초청한 다음,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그 밖에 따르는 일들을 하는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보통 일요일 오후에는 여러분과 잠시 교제하며 긴장을 풀고 함께 기뻐할 시간이 제게 주어집니다. 제가 사람들 가운데 나가지 않으니, 저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누구 못지않게 사람을 사랑하고 교제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나가 있으면 하나님과 떨어져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 되든지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든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과는 영원토록 한 사람 한 사람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할 때입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우리 형제들은 모두 수영하러 가고 싶었습니다. 주중에는 추수철이라 여러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건초를 나르고 나서도 소젖을 짜고 먹이를 주고 여러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 그러면 수영하러 갈 시간이 없잖아요” 하고 말하면, 아버지는 “추수가 끝나면 하면 된다”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언젠가는 추수가 끝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때면 일이 끝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식 남부 음식도 맛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약속을 잡겠습니다. 이 삶이 끝나면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천 년씩 지내고 싶습니다. 그저 함께 둘러앉아 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음 사람과 지낼 시간이 줄어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곳에서 함께 둘러앉아, 이를테면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함께 기뻐하며 넉넉히 교제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다니엘에게 다가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다니엘 형제님, 사자들이 처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돌에 맞았던 스데반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스데반, 박해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셨지요. 그때는 도대체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스데반,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우리가 교제하고 싶은 분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 것만큼이나 확실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날도 덥고, 여러분에게 오늘 저녁 교회 예배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오후도 늦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에게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잠시 교제하며 복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요한일서 1장 5절부터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 만일 우리가 그분과 교제한다고 말하며 어둠 속에서 걸으면 우리가 거짓말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서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이 말씀을 주신 분께 말씀드리면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주님께서는 땅에 오셔서 죄 있는 사람의 몸과 같은 몸을 입으시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 몸으로 우리의 질병과 병고와 죄를 친히 육체에 짊어지시고, 그곳에서 구속의 값을 모두 치르셨습니다. 사람이 주님의 위대한 죽음, 그 지극히 큰 희생을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여 교제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은 장래의 영광스러운 어느 날, 우리의 이 천한 몸이 변화되어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줄 압니다.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오늘 사방에서 질병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죄와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사모하게 되는지요… 이 낡은 전염병 병동 같은 세상… 때때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본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주님과 멀어진 채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긍휼도 없이 지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주님의 인자하심을 전하기 원합니다. 아버지, 오늘 오셔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고, 말씀을 전하는 입술과 듣는 귀에 할례를 베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교제하게 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것에 너무 가까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소리가 아주 좋지 않군요.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결국 믿음이 확고한 근거를 두는 곳은 말씀이라고 어젯밤에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은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근거가 없으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좀처럼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찾으면, 제게는 그것으로 확정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은 영원히 참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교제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오후에는 “피로 이루어진 화해를 통한 교제”에 관해 아주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 아들과 동역자 몇 사람이 집회에서 있었던 일을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기름부음이 임하고 나면 제게는 모든 일이 잠재의식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여기 계신 감리교 형제님들과 장로교 형제님들 중에는 “브래넘 형제님, 그건 좀 광신적인 것 같습니다”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라도 직접 알지 못했다면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가 되고, 그때… 여러분도 그 자리에 서 보셨다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실제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난 두 주 전… 이제는 삼 주 전이 되었군요. 시카고에서 이곳과 비슷한 강당에서 큰 집회를 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좀 더 되었군요. 그게 어느… 정확히 무슨 날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곳에 가톨릭 사제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가 아니라 정교회 사제였습니다. 그 아들이 집회에서 회심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집회 책임자가 예배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밖에 나가 잠시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막 주 예수님께 삶을 드린 참이었습니다. 그가 “아, 잠깐만 교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에서 왔고, 아버지는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이 그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부터 데려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식당을 운영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일리노이주에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 사람은 전국에 거대한 고층 건물을 짓는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말로는, 일리노이주 몰린 근처 어딘가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존, 역으로 나를 마중 나와 줘. 그리로 갈 거야. 브래넘 형제님이 대전도 집회를 여시는 곳에 가고 싶어. 심장에 생긴 류머티즘열로 죽어 가는 내 어린 딸을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 의사들은 포기했어.” 그런데 그는…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신문에서 기사를 보고 그저 광신자들의 모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그런 집회에 가서 뭘 하려는 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친구를 마중 나갔습니다. 친구는 저희를 본 적은 없지만 책은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쪽에 이웃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농아학교에 다니던 그 사람이 집회에 왔다가 말하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찾아가 이야기하면 내 어린 딸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실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를 만난 다음, 그러니까 고층 건물을 짓는 사람은 그의 친구였습니다. 두 사람이 시내로 내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한대. 천천히 가도 되겠어. 학교 강당이라는데, 수천 명이 앉을 만큼 크대. 그러니 자리는 충분할 거야. 서두를 것 없겠어. 아마 쉰 명에서 일흔다섯 명쯤 있을 거야. 그게 다겠지. 그런 데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순절교인이나 뒹구는 광신자들이잖아.”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건물 안은커녕 학교 구내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리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문 앞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서 있던 책 판매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과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지금 강단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그분입니다.” “제 딸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지금은 안 됩니다. 이미 기도를 하고 계시니까요. 지금은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집회 책임자를 거치셔야 합니다. 집회 중에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기도 제목을 적어 안내 위원 한 분에게 건네주십시오. 그러면 아마 책임자에게 전달되고, 책임자가 그분께 전해 드릴 겁니다.” “아,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통로를 따라 갈 수 있는 데까지 내려가 보자.”
소방 담당관은 더 이상 사람들이 통로에 서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 보자.” 제가 있는 곳에서 약 칠십오 야드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가 안내 위원 한 사람에게 쪽지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그분이 받으실 수 있도록 이것을 전해 주십시오.” 안내 위원이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그분을 뵐 수 없고, 집회가 끝나야 뵐 수 있을 겁니다. 책임자를 만나 보십시오.” 그러고는 그 쪽지를 받았습니다. 안내 위원이 말했습니다. “기도하시지요. 거기 서서 기도하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벌써 이 주일 정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가 죽어 갑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은 그곳에 서 있다가 성령께서 회중 가운데로 나아가 어떤 사람들에게 특정한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몇 마디 하는 것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일이라면 저 사람이 제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제가 돌아서서 말했다고 합니다. “통로에 서 계신 두 신사분 중 한 분은 일리노이주 몰린에서 오셨고, 성함은 아무개입니다. 자기 아이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다. 어린 딸이 심장의 류머티즘열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따님을 고치셨습니다.” 그가 친구를 돌아보자 친구도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 보면 내 딸이 나아 있을 거라고 믿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 되거든 내게도 알려 주겠나? 저 사람은 그냥 마음을 읽는 거야. 그게 전부야.”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뒤에 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겠나? 난 그런 일들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어. 저분이 사람들의 죄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걸 들어 봐. 사람들은… 삼십 년 전에 저지른 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잖아.” 친구가 “글쎄…” 하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열 시에 친구가 그를 기차에 태워 보냈고, 그는 이튿날 아침 여섯 시쯤 도착했습니다. 그 이른 아침에는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위층으로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아홉 시 반이나 열 시쯤 일어나 병원에 갔습니다. 진료실에 서 있던 의사를 만나 물었습니다. “선생님, 아이는 어떻습니까?” 의사가 말했습니다. “어서 데려가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아이는 그곳 아이들과 베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줄곧 건강합니다”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비난했거든요.” 보십시오. 혼들을 구원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기도해 준 데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잠깐 교제할 시간을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기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의 믿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제 교제에 대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교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서로 교제하기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함께 나가 간단히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웃 여자들은 울타리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찾아가 조그만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함께 모여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교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된 임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교제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한때 사람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갈망이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누군가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왼손과 오른손조차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여러 이교도 나라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진 곳에 살고 아무리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해도, 무언가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태양을 숭배하고, 바람을 숭배하고, 별들을 숭배합니다. 무언가의 형상을 만듭니다. 그것이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배하고 교제하려는 본능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사람은 완전한 교제를 누렸습니다. 늦은 오후,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에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야자나무 꼭대기 위로 우레 소리 가운데 오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곳의 거대한 노천 성당에 나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제하며 그분과 이야기했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들이 모두 완전한 조화 속에서 그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나 멋진 삶의 터전이겠습니까? 질병도 없고 슬픔도 없고, 마음 상할 일도 전혀 없는 거처 말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시고,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주와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완전한 시간이었습니까! 완전한 교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짓기 시작하자 창조주와 나누던 교제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를 갈라놓는 것은 죄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믿습니다만… 성경은 진리만을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고 죄를 위한 어떤 방편이 마련되어 있다면, 사람은 그 방편을 통해 다시 창조주와 완전한 교제와 조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그리스, 그리스의 아테네에 있었습니다. 이곳과 거의 같은 크기의 방을 둘러보았는데, 그곳에는 그리스 화가가 창조의 모습을 그렸다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하던지요. 죄 많은 사람의 악한 마음이 어떻게 그처럼 모습을 왜곡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이 그려 놓은 우리 조상 아담과 이브의 모습 말입니다. 이브가 서 있는데 짐승처럼 보였습니다. 정말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옆에 선 아담은 무슨 선사시대 동물 같았습니다. 코에서는 털이 이만큼 길게 뻗어 나와 있고, 턱은 옆으로 비뚤어져 있고, 커다란 엄니가 짐승처럼 아래로 뻗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생각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모든 일을 잘하십니다.
저는 아담과 이브가 이 땅을 걸었던 가장 완전한 부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의… 헛간 문짝처럼 어깨가 넓은 사람이 아니라 균형 잡힌 완전한 몸의 남자였습니다. 이브는 아름다웠습니다. 아담에게 행하신 수술 뒤에 그녀가 깨어나고, 아담이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이 지금 눈에 선합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등 뒤로 늘어져 있고, 눈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아담은 그녀의 살에 손을 대며 “그녀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 입술에, 예뻐 보이려고 요즘 바르는 이 매니큐어인가, 얼굴에 바르는 그런 것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 때문에 그런 것을 바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녀가 아담의 팔에 매달려 함께 하나님의 드넓은 동산을 걷는 모습이 보입니다. 완전했습니다. 사랑 안에서 완전했습니다. 어떤 해나 위험도 그들 가까이 다가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그것을 왜곡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이 엉망진창인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십시오. 불과 몇 년만 지나도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 장례 행렬과 병원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생깁니다. 그렇게 만든 자는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다스리실 때에는 그들이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걷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자마자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갈 곳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흔들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자,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면 사람은 방랑자가 됩니다. 이리저리 다니며 어느 교회에 가입했다가 그곳을 떠나 다른 교회에 가입합니다. 여기서는 만족을 주지 못하니 감리교로 갑니다. 감리교에서 침례교로, 오순절교로, 필그림 성결교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닙니다. 교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하며 탓합니다. 어쩌면 문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제를 찾으십시오. 주님과 교제하기만 하면 어디든 정다운 내 집입니다. 아멘. 좀 듣기 거북하지만 좋은 말입니다. 그런 말이 여러분을 바로잡아 줍니다. 여러분에게… 이 도시의 모든 약국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타민이 이 안에 있습니다. 아멘. 주님과 교제하면 기쁨과 평안과 깨달음과 확신이 생깁니다.
그들이 죄를 지은 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타락한 직후, 초기의 그 상태에 있던 사람 말입니다. 그는 스스로 피할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제 손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합니다. 바로 그 성향이 아직도 사람에게 남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무화과나무 잎을 꿰매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이브에게도 하나 입히고,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부르실 때 손수 만든 앞치마를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앞치마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손수 만든 어떤 신조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육으로 교제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고 교육이 교제를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얼마 전, FBI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앨 패러 대장이 이 년 동안 제 집회를 따라다니다가 집회에서 회심했습니다. 그는 저를 커다란 지하 감옥 같은 곳으로 데리고 내려가, 회전식 감방들 안에 있는 젊은 여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얼마 전에 교육에 대해 한 말씀 하셨지요. 사실입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구십 퍼센트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출신입니다.” 그들은 너무 영리해져서 법도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시골 청년은 법이 자기를 징계하면 법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제힘으로 알아낼 수 있고, 하나님은 아무 상관도 없으며,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의를 배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교육으로 교제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또 교단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교단으로 교제를 대신하려 했습니다. 교육은 제자리에 있으면 좋습니다. 교단도 제자리에 있으면 좋습니다. 교인으로 등록하는 것, 사람들은 그것으로 대신하려 했습니다. 교인으로 등록하는 것도 제자리에 있으면 좋지만, 하나님의 아들과 나누는 교제를 결코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짐승 몇 마리를 죽이셔야 했습니다. 아마 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양들, 아니 양들을 죽이시고 그 가죽을 아담과 이브에게 던져 주셨을 때, 그들은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들의 심판과 영원한 운명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설 수 없었습니다. 덮개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실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덮개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수 없습니다. 그날의 덮개는 피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덮개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순복음 신자들이 그것을 빼놓으면서 이제 바른길에서 좀 너무 멀리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돌아오십시오.
여러 해 전, 저는 순복음 집회에 가곤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행동하던 모습은 지금과 아주 달랐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 주시는 설교자들이 계십니다. 저는 치유 집회를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순복음 집회에 가면(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긴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으로 오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죄였습니다. 온갖 분과 화장품과 이런저런 것들을 바릅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 잘못된 일이었다면 지금도 잘못된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 사도 바울 때와 같은 부흥입니다. 성경과 성령이 다시 교회에서 선포되고, 예전과 같은 죄의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흘리신 피를 통해 주님께 나아와 화해하고, 자신을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외양을 꾸미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곳에 가곤 했는데, 그곳의 나이 든 감리교 설교자가… 그는 짧은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고향의 연로한 켈리 형제님은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죄와 타협했네. 우리가 빗장을 내리자 양들이 나갔네. 그런데 염소들은 어떻게 들어왔나?” 여러분이 빗장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바르게, 엄격하게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옛 기준선으로, 흘리신 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상에 지도를 펼쳐 주셨습니다. 그 길은 피로 이루어지는 화해를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 길을 바꾸신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감리교에 속합니다. 저는 오순절교에 속합니다. 저는 여기에 속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위해 흘려졌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과 세상의 것들에 대해 죽고, 피로 씻김을 받아 새롭게 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아멘. 꽤 직선적인 말입니다만, 형제님,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유일한 소망은 다시 옛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할리우드식 전도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오늘날 전국을 다니며 순복음 신자들이 있다는 곳에 가 보면… 얼마 전 어느 집회에 갔는데, 그 사람은 설교하는 동안 양복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습니다. 전부 맞춤 양복이었습니다. 강단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성도답다고들 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아내를 제게 소개했습니다. 아, 제가…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비난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려고 왔습니다. 그 여자는 피아노 반주자였는데, 손톱을 칠하고 화장하고 여러 가지로 꾸민 모습이 할리우드 배우 같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분이 성도입니까?” 그가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는 ‘귀신’처럼 보이는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보이지…”
형제님, 들으십시오. 우리는 기껏해야 여섯 피트짜리 흙덩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들여놓았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이 씻고 나오는 것입니다. 아멘. 피로 씻김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은 그저 안으로 받아들여졌을 뿐입니다. 피를 통해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분의 피가 여러분을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고, 마땅히 해야 할 대로 행동하게 할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께 나오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돼지의 본성을 바꾸기 전에는 구정물을 먹는 것이 잘못이라고 아무리 말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깨끗이 씻겨도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본성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본성도 죄에서 돌이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곳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 대신 네 아내의 말을 들었으므로, 내가 너를 흙에서 취하였으니 너는 흙으로 돌아가리라.” 아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남편 대신 뱀의 말을 들었으므로, 네가 세상에서 생명을 없앴으니 이제 네가 생명을 낳아야 하리라. 네 고통을 늘리리라.”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뱀아, 너는 배로 다니고 흙을 먹으리라.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그리고 그 밖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극적인 장면이 보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을 떠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가 그곳에서 걸어 떠나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비참한 처지입니까! 흘리신 피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끝장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대속물의 피를 흘림으로 아담의 죄를 처리하셨습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것을 한번 해 보십시오. 침례교인 여러분, 필그림 성결교인 여러분, 그 밖의 여러 교파에 속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이제 나타나기 시작하는 이 놀랍고 신비한 일들이 더 이상 그리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히 구할 때에만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안에서 깊음이 부르고 있다면, 거기에 응답할 깊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물고기의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 그 지느러미를 써서 헤엄칠 물이 먼저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느러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 자라는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한 어린 남자아이가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먹고, 자전거 페달의 고무를 뜯어 먹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실험실로 데려갔습니다. 아니, 진료소였군요. 검사해 보니 아이의 몸에 유황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고무 안에 유황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황을 원하는 욕구가 생기기 전에, 그 욕구에 응할 유황이 바깥에 먼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더 풍성히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신유를 믿고 하나님께서 치유자이심을 안다면, 어딘가에 반드시 샘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모든 갈망에 응답할 깊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처럼 철저히 깨지는 것입니다. 냉장고에서 맥주와 온갖 요란스러운 것들을 치워 버리고, 탁자 위의 카드도 던져 버려야 합니다. 교회에 옛날식 기도 모임을 되살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 미국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해결책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교육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은 여러분이 피를 통해 나오기 전에는 결코, 결코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피가 있어야 그렇게 됩니다.
완전한 교제, 의로운 사람 욥은 그것을 누렸습니다. 그가 얼마나 깊은 교제를 누렸는지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우리 하나님… 아니,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갔다 왔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고 위아래로 거닐다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느냐? 그는 의로운 사람이요 완전한 사람이다. 땅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자신의 종 욥이 완전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욥이 겪은 시련, 그가 얼마나 괴로운 때를 보냈는지 읽었습니다. 저는 욥에 관해 읽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어느 해에는 제가 머물고 있던… 욥기를 설교했습니다. 끝까지 마치는 데 일 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욥을 잿더미에 앉혀 놓은 다음에는 약 육 주에서 팔 주 동안 거기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리 회중의 한 자매님이 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도대체 언제쯤 욥을 잿더미에서 일으켜 주실 겁니까?”
제가 그를 거기에 앉혀 두었던 것입니다. 그때가 욥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눈을 돌려 꽃이 땅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욥기 14장). 꽃들이 죽었습니다. 꽃을 위해서도 제대로 장례 행렬이 벌어집니다. 서리가 내려 그 작은 꽃을 죽이면, 꽃은 작은 고개를 숙이고 꽃잎이 떨어지며 씨앗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가을에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립니다. 그 눈물방울이 작은 씨앗을 묻어 줍니다. 씨앗은 땅 밑에 누워 있습니다. 서리가 땅속까지 스며들어 몇 인치 깊이로 얼립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작은 씨앗은 부풀고, 얼고, 터집니다. 속살이 흘러나옵니다. 봄이 오면 꽃잎도 없고, 잎도 없고, 줄기도 없고, 씨앗도 없고, 속살도 없습니다. 그 작은 씨앗에서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 꽃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햇살이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 땅을 비추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그 흙 속 어딘가에 생명의 씨눈이 숨어 있습니다. 그 작은 꽃은 다시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꽃도 다시 살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셨다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얼마 전, 저는 나이 든 감리교 설교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던 작은 과자 가게의 라디오에서 루이빌의 농업 방송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둥근 의자에 앉아 주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좋은, 다시 태어난 연로한 형제님이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조그만 4-H 클럽에서 밭에서 자란 것과 똑같이 완벽한 옥수수 낟알을 만들어 내는 기계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기계로 만든 옥수수가 든 자루에서 한 움큼을 꺼내고, 밭에서 자란 옥수수가 든 자루에서 한 움큼을 꺼내도 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 것으로든 똑같이 맛있는 옥수수빵을 만들 수 있고, 똑같이 좋은 콘플레이크도 만들 수 있으며, 어떤 재료로 써도 같다고 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잘라 보고 함께 섞어 보기도 합니다. 실험실에서 낟알을 잘라 보면, 하나하나에 수분과 칼슘의 양이 똑같고, 옥수수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각 낟알에 들어 있었습니다.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계가 만든 것은 결코 다시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것은 생명의 씨눈이 있어 다시 올라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켈리 형제님, 제 손을 좀 잡아 주십시오. 제가 여기서 형제님을 난처하게 할 테니까요.” 제가 한 가지는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교회에 다니고 그리스도인인 척 흉내 내며,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십일조를 내는 등, 이웃 가운데서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부활 때 결코 일어나지 못합니다.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까!
이제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온갖 고통 속에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와서는 칠 일 동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그에게 오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 당신은 은밀히 죄를 짓는 사람이오. 당신이 뭔가 잘못한 거요. 몰래 죄를 지었소.” 욥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흘려진 피에 근거하여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의 희생물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이 드린 것이 바로 피였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절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장면 전체가 하나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이 말씀은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은 교회에 가서 주님을 경배하고 교회에 헌금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받아 주신다면 불의하실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들이 징계를 받고 쫓겨난 뒤에 처음 태어난 아이가 가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벨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에덴의 동쪽으로, 불 칼을 든 그룹들이 있는 문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모두 주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속하기만 하면, 보속을 행하고 교회에 속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요구하시는 전부라면, 아벨은 받아 주시고 가인은 거절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실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인은 와서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희생물뿐이었다면, 가인을 정죄하시는 것은 불의하셨을 것입니다. 또 가인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가인은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화해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겸손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계시가 없었습니다. 아벨이 왔을 때… 저는 가인이 제단을 장식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백합으로 꾸며 예쁘게 만들고, 우리 말로 ‘한껏 치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다른 교회들을 능가하는 거대한 교회를 짓고, 좌석에 푹신한 천을 씌우고, 만 달러짜리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놓고, 둘레와 온 곳에 십자가상을 두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들은 흔들리는 모래입니다.
보십시오. 가인은 그곳에서 제단을 장식하여 예쁘게 만들며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 영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없겠습니까? 온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그런데 보십시오. 아벨이 왔을 때에는 그가 드리는 것에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작은 포도덩굴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때 삼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포도덩굴로 줄을 만들어 작은 어린양의 목에 두르고, 제단으로 끌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양을 바위 위에 눕히고 작은 머리를 뒤로 젖힌 다음, 날카로운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창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어린양의 목을 내리그어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것들이 죽어 가며 어떻게 우는지 들어 본 분이라면… 작은 양, 어린양이 죽어 가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애처로운 울음소리입니다. 목을 자르는 아벨의 두 손은 피에 흠뻑 젖었습니다. 어린양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영어를 말할 수 없었으니 방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말해 주는 것은 약 사천 년 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자신의 [불분명한 말]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실 일이었습니다. 온몸이 피에 흠뻑 젖은 채 땅에서 친구 하나 없이 죽어 가실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내려다보시고 “그것이 의롭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영적인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인 계시 외에는 의지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사람은 ‘주님은 모세입니다’ 하고, 다른 사람은 ‘주님은 엘리야입니다’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은 예레미야입니다’ 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곧바로 나서서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들으십시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신학교에서 이것을 배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서도 배우지 않았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가톨릭교회는 “그 고백은 베드로 위에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개신교회는 그분께서 교회를 세우실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둘 다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영적으로 계시하신 진리였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멘.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로 자신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아멘.
오늘 메이컨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메이컨뿐 아니라 미국의 모든 도시와 온 세상에 필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대한 영적인 계시입니다. 그것이 청소년 범죄를 멈추게 하고, 깨어진 가정들을 다시 하나로 이어 줄 것입니다. 이 나라가 술 한 방울 없이 어찌나 바짝 마를지, 밀주업자들이 침 한 번 뱉을 수분을 얻으려 해도 삼십 분 동안 마중물을 부어 줘야 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교 행사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 가운데 전해지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멘. 아, 지금 제 안에 경건한 기쁨이 솟습니다. 아멘. 우리에게 이 위대한 구원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욥은 선지자였으므로 자기 혼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은 희생물, 번제물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욥에게 등을 돌리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고, 어떤 경우에도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러분이 이 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시련과 환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꽃으로 꾸민 안락한 침상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치유를 받아들이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마귀가 바로 곁에 와서 할 수 있는 온갖 괴로움을 주리라는 것을 예상하십시오.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시험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욥은 희생물이 그곳에 놓여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흘려진 피를 통해 그것을 드렸습니다. 죄인이 화해하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렸고, 그렇게 하는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파도가 어느 쪽으로 밀려오든 욥은 굳게 버텼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존스 부인이 무슨 말을 하든, 욥의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화해의 길에 서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희생물, 어린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잿더미에 앉아… 몸에 난 종기를 긁고 있을 때, 아내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죽었고 양들도 사라졌습니다. 온갖 일이 그에게 다 일어난 듯했지만, 욥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아내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욥,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지 그래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 그는 아내가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동쪽에서 젊은 엘리후 왕자가 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엘라’라는 이름과 그 밖의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가 주 예수님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음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욥에게 와서 욥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욥, 보십시오. 당신은 꽃들이 흙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쓰러져도 다시 돋아나지요.” 그러나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우며, 참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는 소멸되니 어디에 있습니까? 아들들이 와서 슬퍼하고 그에게 존귀를 돌려도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욥, 당신은 그런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련된 올바른 길을 따라 희생물을 드렸으므로 의롭습니다. 당신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죽인 짐승을 드렸습니다. 욥, 당신은 의롭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꽃들은 죄를 짓지 않았고 나무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지어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봄이 되어도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 들으십시오. 한 분이 오십니다. 의로우신 한 분이 오십니다. 그분은 죄 많은 사람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갈라진 틈에 서서 양쪽에 손을 얹고 화해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욥은 선지자였으므로 영 안에 들어갔습니다. 어쨌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영 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오심을 미리 보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었습니다. 우레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욥이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이 확실합니다. 욥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자기가 죽인 어린양이 장차 오실 의로우신 분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욥이 그날에 하나님의 아들의 그림자만 보고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분 자신의 죽음과 피로 이루어진 화해를 통해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멘. 욥은 거기서 완전한 교제를 누렸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잃은 모든 것을 두 배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유일한 장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유일한 장소는 피 아래였습니다. 교회 아래가 아닙니다. 교단 아래도 아닙니다. 그것들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피 아래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전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교회에 속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속하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깊이 헌신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기본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피 아래로 들어와야 합니다.
생명은 오직 혈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에 아주 작은 생명으로 형성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의 혈구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로마인의 창이 갈보리에서 그 혈구를 터뜨렸을 때, 그리스도, 곧 성령께서 풀려 나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터진 혈구를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혼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여 교제 안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든 교제할 장소가 한 곳뿐이었습니다. 피 아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려고 올 때에는 먼저 성막 안으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곳은 짐승들의 몸이 죽임을 당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 제단에 피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유일한 만남의 장소는 흘려진 피 아래였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을 만나 주셨던 유일한 장소이며, 앞으로도 만나 주실 유일한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수없이 제게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자신의 생명이 자신에게서 떠나가고 무엇인가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교제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분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토록 기쁜 것입니다. 거기에는 참으로 큰 사랑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계심을 알면 그 기쁨을 거의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로 교제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들이 서로 갈라지고, 교회들끼리 소란을 피우고 다투고 논쟁하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 하나의 큰 무리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흘려진 피 앞으로 나아왔을 때… 짐승을 제단으로 데려와 물두멍에서 씻었습니다. 죄인은 어린양 위에 손을 얹었고, 어린양의 목을 베었습니다. 어린양이… 피가 뿌려지고 그 사람은 피 흘림을 통해 화해하여 나갔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마다 와서 새 어린양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속죄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것을 어긴 사람은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일 년 안에 두 번 죄를 지었다면, 그가 그 도시의 시장이든 왕이든 누구든 간에 긍휼을 얻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우리가 한 번 그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우리의 죄가 잘못임을 고백하여 그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뒤에, 은혜의 역사를 모욕하고 우리를 거룩히 구별한 피의 언약을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면 얼마나 더 심한 형벌을 받겠습니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이 들어올 때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말씀은 형제님들 중 몇 분에게 좀 따끔할지도 모릅니다. 들으십시오. 어린양의 피를 드리고도 그 사람이 그렇게 나갔던 이유는… 어쩌면 그가 나가서 살인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피를 드렸으므로 화해를 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같은 살인의 영을 품고 나갔습니다. 그의 마음속 영은 나갈 때도 그대로였습니다. 어쩌면 간음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같은 영을 품고 나갔습니다. 이 짐승의 피는… 생명은 피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려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번 올바르게 나아와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면,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안에 있던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뒤 그 사람에게 돌아오는 생명으로 인해, 성령 침례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다. 아멘.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에서는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거기에 교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죽었습니다. 더 이상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며,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고 성령으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전에는 교회에 십 분도 앉아 있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령을 받고 나면 밤낮으로 교회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양식을 받아먹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갑니다.
얼마 전에 저는 공익사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부인이 전기 요금을 내지 않아, 요금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으러 올 것이라고 알려 주려고 그 집에 갔습니다. 문 앞에 가서 두드리니 어린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열여덟에서 스무 살쯤 되는 젊은 여자였는데, 입은 옷이 머스킷총에 틀어막을 헝겊만큼이나 작았습니다. 그녀가 문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아, 전력 회사에서 오셨군요. 엄마가 며칠 전에 저더러 요금을 내고 오라고 하셨어요.” 제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돈을 가져올게요.” 저는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대신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저는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방 안을 가로질러 가는데, 바이올린 연주자가 켜는 어떤 세속적이고 정신없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지요. 세속적인 노래 가락을 활로 박박 켜는 그런 음악 말입니다. 그녀가 가는데… 마귀가 하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방 안을 가로질러 가다가 제가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녀는 “투들리, 투들리, 투들리”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방 안을 온통 돌아다니며 무슨 버그 춤이니 지터버그 춤이니, 그 밖에도 온갖 시끌벅적한 춤을 추었습니다. 여러분이 들어 본 온갖 불경건한 짓들이었습니다. 그녀는 방 안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서서 생각했습니다. ‘참 가엾은 아이다.’ ‘아, 저 아이는 완전히 거기에 빠져 버렸구나.’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데. 참 안타까운 일이야.’ 잠시 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제가… 아저씨가 문 앞에 계신 걸 잊었네요.” 그녀는 돈을 가져와 문으로 왔습니다. “저는 춤추는 게 너어무 좋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라디오의 그 사람이 무슨 오래된… 어떤 춤 모임을, 그린 브라이어 패치인가 하는 곳에서 연다고 말하자, 그녀는 몸을 낮추더니 라디오를 향해 손으로 입맞춤을 날렸습니다. “잘 있어요, 자기. 곧 만나러 갈게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꼭 가겠구나. 무슨 수로도 네가 그곳에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어. 암, 그렇고말고.’
저는 계속 올라가다가… 우리 도시에 훌륭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큰 교회였는데, 목사인 브라운 박사는 제 좋은 친구였습니다… 제가 전봇대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낡은 이차 전선 몇 개를 걷어 내던 참이었습니다. 전봇대에서 내려오는데 브라운 박사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빌리, 잘 지내나?” 저는 “아주 잘 지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아직도 태버내클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나?” “아주 많이 모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내가 이 도시에 온 뒤로 말이야… 지난번에 내가 보냈는데… 열여섯… 아니, 육천… 이 근처 어딘가에 우리 교회 교인이 육천 명이나 있네. 그래서 일 년 중 적어도 여섯 달은 기도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하게 하려고 카드를 보냈지. 그 육천 장의 카드에 몇 명이나 응답했는지 아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두 명일세.”
언젠가 그곳에서 목회자 협회 모임이 열려 저도 참석했습니다. 저도 그 협회 회원입니다. 그가 강단에 내려와 말했습니다. “자, 우리나라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모셨습니다. 최고 중 한 분이 아니라 바로 최고의 연주자입니다.” 충격적으로 들리시겠지만, 그들이 강단에서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 아십니까? “짚더미 속의 칠면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중창단이 우리를 위해 노래할 것입니다.” 우리 바로 위쪽 셀러스버그에 있는 큰 교회였습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아십니까? “목장의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저는 제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제가 “브라운 박사님…” 하고 그에게 그 반쯤 벌거벗은 어린 아가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맥미첨 씨가 저 여자에게 오늘 밤 춤 모임에 오겠다고 약속하는 카드에 서명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그가 “아니”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의 혼은 그런 것을 먹고 삽니다.” 여러분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보여 주십시오. 어떤 글을 읽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신발을 전당 잡혀야 한다 해도 갈 겁니다. 박사님이 그 교회에서 옛날식으로 사람들을 제단 앞으로 초청하고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면, 교회 종이 울릴 때 어떤 카드에도 서명하게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쨌든 올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언가에 가입한다고 그런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으로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아, 이런 이야기는 저녁 내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완전한 만족이 무엇인지 결코,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교회에 가입하고, 이것저것을 찾아 뛰어다닐 수는 있습니다. 이곳에 무슨 새로운 것이 조금만 생겨도 새로운 빛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좇아갑니다. 그저 그리스도께 나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번 다시 태어나면 그것으로 영원히 해결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여러분에게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를 수 없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가 즐거워집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하실까 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여러분은 바로 그분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거리를 걸을 때에도 바로 그분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늘 그분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승리의 삶입니까! 어중간한 삶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중간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동시에 검으면서 흰 새를 본 적이 있습니까? 술에 취했으면서 맨정신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죄인이면서 성도인 사람은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죄인이든지 성도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울타리 이쪽 아니면 저쪽에 있습니다. 다시 태어났으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구원받을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마련하시고 모든 것이 이 중대한 때를 가리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마지막 때, 그림자가 드리우는 이때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몇 주 전에… 교회는 여러 해 동안 주님께서 오시며 마지막 때가 눈앞에 있다고 전해 왔습니다. 모든 것이… 복음의 사역자로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이 마지막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마지막에 있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그것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를 가리킵니다(에녹이 만든 피라미드 말입니다). 황도대는 처녀로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입니다. 그것은 사자인 사자자리로 끝납니다. 재림입니다.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과학계는 지난 일요일로부터 약 오 주 전에 온 나라를 향해 마지막 때가 눈앞에 있다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거의 어느 순간에라도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합니다. 여러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십니다. 이곳 미국에만 계시면서 다른 나라들에서 사태가 어떻게 전망되고 있는지 모르시는 여러분 말입니다. 얼마 전 핀란드에서 그들이 저를 위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의 큰 경계선, 사람들이 ‘장막’이라고 부르는 곳 가까이 올라갔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터널만 계속 이어지는 곳을 약 백오십 마일이나 지나갔습니다. 독일 장교가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그를 맞았습니다. 우리가 탄 작은 차의 창문에는 차양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제 옆에는 핀란드 장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데려가던 곳은 그 어린 소년이 죽었다가 살아났던 곳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를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장막 뒤에는 온갖 비밀 장비가 있습니다. 로켓으로 발사할 수 있는 비행기들이 있어서, 선생님의 나라를 폭격해 한 시간쯤 만에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저 뒤에는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수소 폭탄과 산소 폭탄과 모든 것이 그렇게 저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끊임없이 죄 속을 헤쳐 나아갑니다. 사람들은 밤에 기도 모임에는 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켜서 ‘루시’ 같은 온갖 프로그램과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저 옛날식 시골뜨기 설교자일 뿐입니다. 저는 옛날식 시골의, 하늘빛처럼 맑고 죄를 죽이는 신앙을 믿습니다. 여러분을 깨끗이 씻어 희게 하는 신앙입니다. 형제님, 그것만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여러분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유익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유일한 길이며, 마련된 유일한 방편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것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완전한 멸망 말입니다. 언제든 시작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노아의 날들처럼… 노아 시대에 그들이 세상을 제 궤도 밖으로 밀어낸 방식이 그랬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을 만들었을 때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꼭 만들어야 한다 해도 그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휘발유의 동력이나 전력으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력으로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풀어놓았고, 세상을 흔들어 궤도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세상이 뜨거운 상태로 밖으로 나가자 습기가 생겨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분께서 그것을 태양 속으로 날려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히 중심을 가로질러, 과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제 바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나라에 부흥을 보내고 계시며, 놀라운 표적과 이적과 표적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병자가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등 온갖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대로 헤쳐 나아가며 모든 빨간 신호등을 부수고 모든 장벽을 뚫고 달려갑니다. 거부하면서…
여러분은 “저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저도 당신만큼 선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받아들였습니까? 화해하셨습니까? “저는 이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까? 교제를, 완전한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까? 세상의 것들은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그런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형제님,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들은 양심조차 없습니다. 그저… 한번은 제가 길모퉁이에서 설교한 뒤에 나이 든 흑인 한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양심이 뭔지 아십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대강은 압니다, 어르신. 어르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말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자리 잡은 작은 물건인데, 뾰족한 ‘파인츠’가 네 개 있지요.” (뾰족한 끝이라는 뜻의 ‘포인츠’를 말한 것입니다.) “무슨 잘못을 하면 그것이 살을 벱니다. 그런데 자꾸 베도록 내버려 두면, 그 안에 둥글게 길을 내 버립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아무 느낌도 없게 되지요.” 맞는 말입니다. 계속 미지근한 채로 떠내려가고, 또 떠내려가다가 마침내는 완전히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마치기 전에 잠시 장면을 바꾸어 봅시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이브를 바라봅시다. 죄, 하나님과 멀어져 교제가 끊어진 채 온갖 교리의 바람에 흔들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심판의 자리에서 그들 앞에 서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아담과 이브가 서로 팔로 감싸 안고 걸어갑니다. 가엾은 어린 이브의 모습이 지금 보입니다. 그녀는 울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푸른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 뺨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름이 생길 것입니다. 등 뒤로 늘어진 아름다운 금발도 희어질 것입니다. 아담의 덥수룩하고 숱 많은 검은 머리도 언젠가는 희어질 것입니다. 그 크고 튼튼한 근육도 오그라들고 흙으로 돌아가, 벌레들이 살갗 속을 기어 다닐 것입니다. 가야 합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질병과 슬픔이 놓여 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나 소망 없이 그 길을 나섭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팔로 감싸 안은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그녀의 몸 위로 흘러내립니다. 눈물은 피 묻은 양 가죽에서 나온 피와 뒤섞입니다. 그들은 정죄를 받은 채 에덴동산을 지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들으십시오.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손뼉을 치십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죽음의 선고를 받은 아담이 그곳을 걸어 나갈 때, 피 묻은 양 가죽이 그의 다리에 부딪히는 소리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고 멀어져 그곳을 나갑니다. 긍휼도 없이 마귀의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공간과 온 영원을 아우르시는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저는 팔로마산에 가서 망원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일억 이천만 광년의 공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마일로 환산하려면 숫자 구를 인디애나주 제퍼슨빌까지 한 줄로 늘어놓아도 마일 수를 다 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안의 태양계에는 여러 세계와 달들과 별들이 보입니다. 일억 이천만 광년의 공간입니다.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을 아우르시는 하나님께서 네 개의 작은 글자, l-o-v-e, 사랑 안에 담기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자녀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보고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깐 기다려라, 아담. 내가 여자의 씨와 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라. 그녀의 발꿈치가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그의 머리가 그녀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 구주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어두운 장면입니까.
이제 카메라를 사천 년 뒤로 돌려 봅시다. 어느 날 아침, 예루살렘입니다. 삼 년 반 동안 그 지역에는 큰 소동이 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니면서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며 환상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일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그분을 정죄하고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 교회에 가입하지 않으니 우리도 상관하지 않겠다.” 그리고 교인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하늘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셨는데, 멸시받고 버림받고 거절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느 아침입니다. 우리는 방 안에 있습니다. 커튼을 걷어 봅시다. 밖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잠깐 문밖을 내다봅시다. 저기 등에 십자가를 지신 한 분이 거리를 따라 오십니다. 길을 따라 피 묻은 발자국이 이어지고, 그 낡은 십자가는 자신을 지고 가는 분의 발자국을 끌리며 지워 갑니다. 길을 올라가시는 동안 십자가는 울퉁불퉁한 돌길에 부딪힙니다. 죽으러 사형장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군중이 따라가며 그중 어떤 사람들은 외칩니다. “아, 저분이 내 아기를 고쳐 주셨는데.” 또 어떤 사람은 “저분이 무슨 잘못을 하셨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말합니다. “저런 자를 없애 버려라! 살려 둘 필요도 없다. 우리 교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런 자를 없애 버려라.” 그분의 어깨에는 작은 흰옷이 걸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 옷을 보니 작은 흰 점들이… 흰옷에 작은 붉은 점들이 온통 찍혀 있었습니다. 저 점들은 무엇일까요? 갈보리를 향해 올라가실수록 그 작은 점들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 보입니다. 갈보리로 올라가시는 동안 작은 붉은 점들이 커지고 또 커집니다. 그러다가 모두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붉은 얼룩이 됩니다. 다시 소리가 들립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톡톡 두드리는 소리를 내십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두 번째 아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길을 가기 원하는 모든 죄인을 위해 피 묻은 길을 내고 있습니다. 버림받은 채 언덕을 올라가십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가십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씨이신 그분입니다. 죽음에는 독침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벌이 그분 주위에서 윙윙거리며 쏘려 하는 것이 보입니다. 몇 분만 지나면 그분을 데려가려고 맴돌고 있습니다. 조금 뒤 그분께서 하늘과 땅 사이, 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죽음의 벌이 그분을 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압니다. 벌이든 독침이 있는 곤충이든 한 번 쏘면 독침이 빠져나옵니다. 더 이상 쏠 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육체가 되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셔서 죄 있는 육체로 지어지셨습니다. 죽음의 독침을 뽑아 버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죽음이 그를 치기 시작할 때, 죽음은 벌처럼 윙윙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사람을 향해서는 죽음에 더 이상 독침이 없습니다. 그 독침은 그곳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박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죄를 친히 짊어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달려 계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목을 벨 받침대를 만들고 있을 때 바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몇 주 전에 저는 로마에서 그 오래된 감옥에 내려가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목을 벤 곳입니다. 그들은 그를 그곳의 작은 하수구에 던져 목이 잘린 몸이 길을 따라 떠내려가게 했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오늘 여기 계신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 모든 사람 앞에 커다란 검은 문이 놓여 있습니다. 그 이름은 ‘죽음’입니다. 심장이 뛸 때마다 그 문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집니다. 언젠가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심장이 마지막으로 뛸 때, 저는 겁쟁이처럼 그 문을 지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그 문을 지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면서 그곳으로 걸어가고 싶습니다. 마지막 박동이 올 때, 그분의 의의 옷으로 저를 감싸고 그분과 함께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제가 그분을 그분의 부활의 권능으로 안다는 것을, 그분께서 부르실 때 제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와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리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오, 오늘 소망 없는 죄인이여, 여러분 자신 안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내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졌네. 내 혼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분은 내 모든 소망과 의지할 곳이시네. 내가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서 있으니, 그 밖의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그 밖의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교단이든, 이 세상과의 교제든, 무엇이든 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은 모두 가라앉는 모래입니다. 잠깐 머리를 숙이시겠습니까? 모두 조용히 기도해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으로 인해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그 험한 십자가를 어깨에 지셔야 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피가 등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제 자리를 대신하시려고 갈보리로 가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아침이 오기 전에 저를 부르실지도 모릅니다. 주님, 오늘 오후 해가 지기 전에 부르실 분이 여기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한 사실상 건강합니다.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심장이 멈출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강당에는 지금 상태로 오늘 저녁 해가 지기 전에 죽는다면 고통 가운데 처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오늘 밤에는 건강하고 즐겁게 웃으며 잠들었다가 아침에 해가 뜨기 전에 다른 세상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줄, ‘생명의 줄’이라고 부르는 이 줄이 쉽게 끊어질 수 있으니 언제 끊어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 오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주님의 귀하고 사랑하시는 아들과의 교제 안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아버지, 그렇게 해 주옵소서. 오직 주 예수님의 피를 통한 화해 안에서만 가능함을 그들에게 알게 하셔서, 오늘 그들이 그분을 받아들이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가 보게 하시며, 귀먹은 자가 듣게 하시고, 이 생을 떠난 죽은 자들을 다시 일으키고 계십니다. 의사들이 물러가고 사람들이 그들을 영안실로 옮겨 간 뒤에도,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아버지, 우리는 길의 끝에 와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죄인들을 주님께 이끌어 주옵소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하옵나이다.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인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처럼 서로 낯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동안, 그리스도 밖에 계신 남자나 여자가 여기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래층에 계신 분 중에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손을 드시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여러분의 형제인 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기 원합니다.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흔들려 왔습니다.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습니다. 제가 바른 상태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 자신을 제게 나타내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 주님께 제 손을 듭니다.” 아래층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좋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쪽에서 드신 손이 보입니다. 이제 모두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왼편 저 멀리 계신 분이 보입니다. 그저 손을 드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그렇게 하면 무슨 도움이 됩니까?” 하고 물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십니다. 발코니 오른편, 이쪽 둘레에 계신 분들 중에는 안 계십니까?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바로 정면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발코니 그쪽에 손을 드실 분이 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왼편으로 돌아 이쪽에는 손을 드실 분이 계십니까? 저 뒤에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드신 손이 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