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다시 이곳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조금 피곤하군요. 미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큰 집회를 여러 차례 마쳤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집으로 돌아가 조금 쉬려고 합니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이렇게 좋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여행했던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스위스에서 만난 분들보다 더 좋은 분들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입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히 복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복이 되어 주신 만큼 저도 여러분에게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앞으로 언젠가 다시 와서 여러분과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집회가 이제 이틀 밤만 더 남았고, 그러고 나면 저는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대개 그렇습니다. 사람들과 막 친해질 만하면 작별 인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 한 언어로 말하고, 늙지도 않으며, 질병도 죽음도 없는 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는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천 년 동안 만날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넉넉할 것입니다. 지금은 낮입니다. 낮일 때에 우리는 반드시 일해야 합니다.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여기 편지가 많이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오해하는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무슨 특별한 것을 가지고 이 편지들에 바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 집에는 이렇게 치유받은 분들의 간증이 수천 통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모두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도 들으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버지, 주님의 영이 주님의 백성 위에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손수건들을 놓고 기도할 때 주님의 영이 우리 위에 임하게 하옵소서. 인간인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장대 위에 달린 뱀에 무슨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뱀이 달렸던 장대에 무슨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라본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이것들도 그러하게 하옵소서. 이것들을 병자들에게 가져갈 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치유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종들인 우리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아버지,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밤에 집회를 조금 늦게까지 진행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어젯밤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많은 분들이 아홉 시 반 기차를 타셔야 한다고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을 늦게까지 붙잡아 두어서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하다 보니 시간을 넘기게 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창세기 22장 7절부터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그가 이르되, 보소서,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렇게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니라. 이제 2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너희가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다시 고개를 숙이시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며, 모든 좋은 영적 은사를 주시는 분, 영생의 근원이시여, 주님의 말씀에 복을 내려 주옵소서. 말하는 입술과 듣는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 오늘 밤 하나님의 씨가 마음속에 떨어져 많은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고 질병에서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자, 제가 너무 오래 하지 않도록 좀 살펴 주십시오. 시간을 좀 봐 주십시오.) 방금 뒤에 계신 진행 담당자들에게 제 시간을 좀 봐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 다시 아브라함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그 옛 성경 인물들을 참 좋아합니다. 구약 전체가 신약의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모든 것은 십자가를 가리켰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십자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믿는 자들을 위한 구원과 치유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젯밤에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한... 언약이 확증되는 것을 본 대목까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그것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약속을 받았다면, 어쨌든 그것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만일 부탁한다면...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에도 도토리나무가 있습니까? 여기 도토리나무가 있나요?) [“예.”] 여러분이 제게 도토리나무를 달라고 해서 제가 도토리 하나를 드렸다면, 여러분은 이미 씨의 형태로 도토리나무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말씀은 씨의 형태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약속은 어떤 것이든 불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채 여러분의 마음에 받아들여지면, 바로 그 약속한 것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그 약속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기 의자와 들것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매일 밤 마비되었거나 어떤 문제가 있는 분들이 들것이나 휠체어에서 일어납니다. 그들은 나아서 나가고, 귀먹은 이들이 듣고, 눈먼 이들이 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 땅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데려가시지만, 자신의 영은 결코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셨고, 그분의 영이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수백 년 뒤에는 침례자 요한에게 임했고, 마지막 날들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도 자기 사람을 데려가지만, 그 영은 여기에 남아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들의 교리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 조상들 중에 선지자들을 핍박하지 않은 자가 누구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영은 여기에 남고, 사람은 떠나갑니다. 그러고 나서 부활이 곧 심판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해 낯선 나라로 나가 나그네로 지낸 첫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사귀던 모든 사람과 자신을 분리하고, 하나님의 친구가 되려고 홀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확증하셨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드리실 갈보리를 보여 주실 때 행하신 일에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자신이 유방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이 그분 앞에서 아기처럼 되어, 젖을 빨듯 그분에게서 힘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백 세였고 사라는 아흔 살이었습니다. 폐경이 된 지 오십 년... 아니, 사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어린 소녀였을 때 결혼했고, 그 자신도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살았습니다. 폐경기가 지나고 나서 사십 년이 흘렀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믿음이 바로 그런 믿음입니다. 그것을 두고 논쟁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논쟁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거든 그 일들은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십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제는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 안에 사시면,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처럼 그 사람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십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으며, 이 땅에 계실 때 지니셨던 바로 그 권능으로 지금 여기 계십니다. 똑같은 일을 하시고,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똑같은 병을 앓는 이들을 치유하시고, 똑같은 종류의 환상들을 보여 주십니다.
신약에서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 베드로는 교회에 전한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이 마지막 날들에 다시 행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위대한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셨습니다. 왜 모든 병자를 치유하지 않으셨느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그분은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베데스다 못에 내려가셨을 때, 거기에는 다리를 절거나, 몸이 뒤틀렸거나, 걷지 못하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수천 명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들 사이를 걸어가시다가 깔개 위에 누운 한 남자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낫게 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두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5장에 있습니다. 19절에서 그분은 질문을 받으십니다. 그분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며,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몸이셨고, 그분 안에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확증해 주신 뒤에도 계속 길을 갔습니다. 이제 창세기 18장쯤에서 그를 보게 됩니다. 롯이 떠나간 뒤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갔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오늘날의 미지근한 신자들을 아주 잘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과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두신 곳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그에게 상속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은 메말랐습니다. 가축들도 아마 몹시 여위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먼지를 뒤집어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모셔 들였습니다. 그리고 가서 송아지를 잡고 고기를 요리하고 버터와 우유를 가져왔습니다. 사라도 가서 빵을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음식을 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무엇을 하셨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그분은 그저 손을 뻗어 원자를 한 움큼 가져오시고, 석유도 조금 가져오시고, [브래넘 형제님이 통역자에게 말씀하신다.] (석유 말입니다. 아시죠, 기름 같은 것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우주의 빛을 가져와 그것들을 하나로 합치신 뒤, 그 안에 사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장차 되실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육체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오, 그분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 우리의 이 몸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부활 때 모든 몸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머리를 빗고 있는데, 아내가 “빌리, 당신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지만 여보, 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소”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럼 어디 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게 생기기 전에는 어디 있었소? 지금 거기서 부활 때 나를 기다리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아멘. 한때는 그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있었던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없는 때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그것들이 다시 있을 때가 올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의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선생님, 우리가 먹을 때마다 몸 안에 혈구가 만들어져서 우리가 자란다는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사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열여섯 살 때 먹던 것과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열여섯 살 때는 음식을 먹으면 자라고, 더 튼튼해지고,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음식을 먹고, 어쩌면 더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먹는데도, 갈수록 늙고 약해집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유리잔에 물이 있는데 물을 더 부으면, 계속 차오르고 또 차오릅니다. 그런데 왜 어느 지점에 이르면, 물을 계속 붓는데도 자꾸 줄어듭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방식이 있습니다. 저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라기 시작해 다 자라고 나면 시들기 시작하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입고 그곳에서 아브라함을 만나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분의 발에 묻은 먼지를 씻어 드려야 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아브라함아,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리고 생명의 때를 따라, 여인들에게 그러하듯이,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라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소리 내어 웃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사라가 있는 장막을 등지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보시며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십니다. 미리 보시고, 앞을 내다보시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남편이 다섯 있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여인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을 선지자로 생각했지만,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몸 안에 계셨습니다. 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다음 달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달에 사라에게 여인들의 관례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것이 멈춘 지 사십 년 만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작은 점을 더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비판하실 줄 압니다. 하지만 잠시만 조용히 들어 주시고, 집에 돌아가신 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을 때, 그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우리 모두 사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했다는 것을 압니다. 사라는 거의 백 살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이 가진 경험이 어떤 학교나 신학교에서 얻은 것뿐이라면, 여러분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성경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겼으며, 믿고자 하는 아기들에게는 드러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그저 아기가 되십시오. 성경을 펴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십시오.
아내가 제게 편지를 쓰면, 저는 그것을 읽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빌리, 오늘 저녁 여기 앉아 있어요. 당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종이 위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만, 저는 무엇을... 글줄 사이에서 아내가 무엇을 읽고... 아니,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도 글줄 사이에 담긴 뜻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글자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인용하는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셨고, 배우고자 하는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그 말씀을 읽어 보신 분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그러니 스스로를 낮출 이들은 아기들입니다.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히 “주님,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 친구인 존 스프룰(John Sproule)이 잠시 방문하러 프랑스에 왔습니다. 아마 알자스 로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한 정원에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동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