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리교인들도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습니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이렇게 나와 지붕 아래 앉아 계시니까요. 침례교인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감리교인들도 그렇군요. 오늘 오후 집회에 참석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폭풍이 몰려왔을 때 호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이런. 사탄아, 왜 이런 악한 짓을 하느냐?”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내려와서 집회를 딱 두 번 하는데, 네가 비를 보내는구나.”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덕분에 시원해져서 부채질을 하지 않으셔도 되겠군요. 그래서… 또 농부들에게 비가 필요하다고 하니, 어느 모로 보나 비가 와서 기쁩니다.
조금 전 이곳에서 친구분들을 만나서 참 반가웠습니다. 제브 스미스 씨 부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산등성이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그분들의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스미스 씨 부부가 바로 여기 모퉁이에 앉아 계십니다. 제가 어릴 때 저를 안고 다니셨을 겁니다. 제가 아주 어린 갓난아이였을 때, 인디애나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가 스미스 씨 밑에서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친구인 맥스패든 가족도 와 있습니다. 또 이 지방 출신의 감리교 목사님 한 분, 존 오배넌 씨도 계십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아실 겁니다. 바로 여기 파란 상의를 입고 앉아 계시는데, 켄터키주 루이빌에 사는 저의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지금은 루이빌에서 사업을 하십니다. 스미스 부인이 어머니도 오셨느냐고 물으셨는데, 저 밖에 차 한 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오셨습니까? 여기 계신지 궁금하군요. 오시게 되면 어머니를 모셔 오기로 한 부인의 차와 비슷한 차를 봤습니다. 그래서 스미스 부인께 어머니가 와 계실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여기 계세요?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스미스 부인. 죄송합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 집회에는 오실지 모르겠습니다. 내려올 교통편을 구해서 어떻게든 와 보려고 하셨거든요. 바로 여기 세워진 차가 꼭 그 차 같아서 빌리가 “할머니가 오신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 차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린 제 집회에서 치유받은 의사가 한 분 있는데, 딜리라는 분입니다. 그곳에 큰 병원이 있는 분인데, 불치병을 앓는 몸으로 집회에 왔다가 기적적으로 나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저는 이 나라 여러 곳에서 아주 많은 의사들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에는 시어도어 팔베두스 의사가 있었습니다. 서부 해안 전역에서… 혹시 여기 팔베두스 의사를 아는 분이 계신다면, 신유 사건 하나를 계기로 그분이 회심했습니다. 제가 관개수로에서 그분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뉴욕에서조차 수술을 받으려고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그분은 의사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빈민가에서 작은 선교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어도어 팔베두스 의사, 참 훌륭한 그리스인입니다. 그의 아내는 아르메니아인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한 부인, 아르메니아 여인이 암으로 양쪽 유방을 모두 절제하고 죽어 가고 있을 때, 주님께서 “사흘 뒤면 저 여인이 거리에 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있나. 이 사기꾼, 저 여인에게 그런 헛된 생각을 심어 주다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저 여인이 앞으로 여섯 시간 안에 죽을 거라는 걸 알지 않습니까? 지금 의식을 잃은 지 스물네 시간이나 됐습니다. 언제 숨을 거둘지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스물네 시간 안에 저 여인이 거리에 나가 기쁨의 외침을 외치지 않는다면, 제가 어떻게 하겠는지 말씀드리지요. 제 등에 ‘거짓 선지자’라는 팻말을 붙일 테니, 선생님은 그 큰 캐딜락에 타고 저를 로스앤젤레스 거리로 끌고 다니십시오. 반대로 저 여인이 거리에 나가 있으면, 선생님 등에 ‘돌팔이 의사’라는 팻말을 붙이고 제가 선생님 앞에서 차를 몰겠습니다. 자, 악수하고 여기서 기다려 봅시다. 과연 어떤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물네 시간 만에 그 여인은 물건을 사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약 팔 년 전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보여 줍니다. 어젯밤 죽어 가며 들것에 누워 있던 그 소년을 거기서 벌떡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말입니다. 오늘 청년들이 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오늘 저녁에 다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좋은 저녁 집회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 한번 다시 와서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의논하고 해서 조금 더 길게 집회를 열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가 들어온 이 야영 집회장은 어느 교단에서 관리하는… 아니,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곳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 곧 감리교회가 복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세상에서 이룬 위대한 일들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혼들을 주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이 삶이 끝나고 건너편에서 우리가 모두 함께 만날 때는 어떨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서… 어젯밤 신유라는 주제를 다룰 때, 교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 주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에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고, 아무리… 교회마다 믿는 교리가 다릅니다. 그러니 교회에 왔을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를 지켜 어떤 교리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모두 동의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전도 집회에서도, 주님의 뜻이라면 잠깐 말씀을 전할 텐데, 계속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분께서 행하시거나 말씀하신 것을 장면으로 풀어 전하거나 인용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교리적인 쟁점이 얽히지 않고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만 있게 됩니다. 저는 그 복음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책을 펼치기 전에… 이렇게 책장은 펼칠 수 있지만, 그 말씀을 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성령님뿐입니다. 다른 분은 없습니다. 그분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기록하셨습니다, 그… 옛사람들이 성령님께서 그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기록한 사람들이… 죄송합니다. 전에는 알았는데 지금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서로 다른 두 숫자가 떠올라 혼동할까 봐 지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성경은 앞부분에서 뒷부분까지 기록되는 데 이천몇백 년이나 걸렸습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는데, 어느 부분도 다른 부분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두 사람이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도 어딘가 서로 어긋나지 않게 쓸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은 얼마나 큰 영감을 받은 말씀인지요. 모든 성경기록은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기록하시면서 영감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그분을 사랑합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뿐입니다. 우리 각자가 해석해 보려고 하지만,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는 우리 자신을 그 안에 끼워 넣게 됩니다. 자아가 들어 있는 한, 자아가 있는 동안에는 성령님께서 그 안에 계실 수 없습니다. 누군가 문 쪽으로 가 주시겠습니까? 안내위원이나 다른 분이라도요. 우산을 든 분들, 부인들이 빗속에 서 계십니다. 그분들이 최대한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비 오는 날에도 주 예수님의 꾸밈없고 단순한 복음을 들으러 나오는 분들의 충성과 신실함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여기 앞에, 우드 부인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이 자매님도 제가 여기 오도록 애쓰신 분 중 한 분 아닙니까? 자매님, 성함을 모르겠군요. [자매가 한마디 한다.] 제가 자매님을 위해 기도했었지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루이빌에 있는 열린 문 교회에서 아니었습니까? 무슨 병에서 치유받으셨지요. 그 뒤로 마음에 감동을 받으셨고요. 이 도시에 있는 감리교회 가운데 한 곳의 교인이신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오기를 마음에 품고 계셨군요. 저는… 성함을 몰라 죄송합니다. 이 자매님이 바로 우드 부부와 함께 일하신 분입니다. 우드 부부는 제 사랑하는 친구이자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입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사람의 옆집에 살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근처 산등성이 어딘가에서 자란 여러분의 고향 사람 두 분, 뱅크스 우드 씨 부부와 함께 복음 사역에서 교제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여기 계신 사랑하는 자매님도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압니다. 또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압니다. 주님께서 그 자매님과 교회를 함께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성령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도록 기록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써 놓고, 아무리 잘 짜 맞추어도,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그것을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계시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실지, 그 밖의 모든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오실 때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오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성경과 어긋나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경을 이해한 방식과 어긋나게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성경이 말한 그대로, 정확히 그대로 오셨습니다.
지금 제 발음이 조금 샙니다. 제브 스미스 씨 부부께 말씀드리자면, 저는 예전에 두 분 댁에서 살던 그 어린 소년이 아닙니다.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치통을 겪고 이를 하나 뽑아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이를 해 넣었는데, 입안에 철사가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입안에 이만큼이나 뭔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익숙해질 때까지 발음이 이렇게 새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나이가 들면 이런 것들도 배워야 하는군요. 얼마 전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좀 서글픈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빗고 있었지요.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빌리, 당신 대머리가 되어 가네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 여보. 하지만 주님을 찬양하오. 그중 한 올도 사라진 것은 없소.” 아내가 “그럼 어디 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물어볼 테니, 당신이… 당신이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리다. 내게 생기기 전에 그 머리카락들은 어디 있었소? 생기기 전에 어디 있었든, 지금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아멘.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늙든, 여러분이 얼마나 늙든, 주름이 얼마나 생기든, 허리가 얼마나 굽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는 순식간에 젊은 남자와 여자로 돌아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얼마나… 혈구 하나하나, 모든… 우리 몸은 우주의 빛과 석유 성분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어딘가에서 왔습니다. 여기 없었다가, 있게 되었다가, 다시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몸을 이루는 원자 하나하나를 다 아십니다. 빛의 작은 입자 하나하나, 모든 혈구, 모든 세포, 석유 성분 하나하나와 모든 칼슘, 인산염, 땅에서 나와 사람의 몸을 이루는 모든 것, 그 각각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정확히 아십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영이 풀려나 자기 생명을 되찾으려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늙은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그런데 들어 보십시오. 얼마 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의사 한 분과 아프리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분이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 생명이 새로워진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는 “물론이지요. 음식을 먹으면 혈구가 만들어지고, 혈구가 생명을 새롭게 해 줍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 때 먹던 것과 같은 콩, 감자, 옥수수빵 같은 것을 먹고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그걸 먹었을 때는 점점 몸집이 커지고 더 강해지고 건강해지고 힘이 세졌습니다. 지금도 똑같은 것을 먹습니다. 아마 양은 더 많이 먹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점점 더 늙고 약해집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새로운 생명을 넣어 주는데, 왜 삼십 년 전에 해 주던 일을 지금은 똑같이 해 주지 못합니까?” 아시겠죠? 그는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잔에 물을 부으면 차오르는데, 왜 차오르던 것이 멈춥니까?” 그는 “글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꽃처럼, 한 폭의 그림처럼, 어느 나이까지 자랍니다. 스물두세 살쯤까지 말입니다. 여기 계신 사랑하는 연세 드신 형제님, 형제님과 아내가 결혼했을 때, 옥수수밭에서 일하며 볼을 수줍게 붉히던 그 아가씨와 결혼했을 때 말입니다… 요즘은 그런 아가씨가 별로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아십니까? 저는 삼십 년 동안 여자가 수줍어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줍어할 줄 아는 마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그저 진리를 믿는 구식 시골 사사프라스 설교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현세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며 주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물세 살쯤 되어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팔짱을 끼고 집으로 갑니다. 형제님들, 기억하시지요? 그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깨어나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흰머리가 보이네요.” 그러면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나도 당신의 그 예쁜 눈 밑에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죽음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입니다. 거기서 나와… 얼마 후 여러분은 늙을 것이고, 죽음이 여러분을 데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은 상태였을 때,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모든 혈구, 온몸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림이 완성되었다. 다가오는 나의 위대한 천년왕국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이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제… 자, 죽음아, 네가 거기 있구나. 하지만 지금은 이들을 데려갈 수 없다. 이들에게 손을 대기 시작할 수는 있지만, 내가 너를 부를 때까지는 데려갈 수 없다.” 아시겠죠? 그런 다음 위대한 부활 때에 우리가 나올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한 모든 일은 죽음으로 끝나고,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깨어날 것입니다. 놀랍지 않겠습니까? 흰머리는 모두 사라지고, 늙음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영원히 젊고, 주님의 아름다움 안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다시는 아프지 않고, 늙지 않고, 약을 먹을 필요도, 병원에 갈 필요도 없으며, 구급차의 요란한 소리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미쳤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말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웃는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에 담긴 모든 것, 그 약속들은 확실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선하셨는지요. 이제 그 사랑하는 분께 말씀드립시다. 오늘 오후 성경의 짧은 한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열어 주시면, 일찍 마치고 저녁에 다시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예정이니, 청년들이 여섯 시 삼십 분쯤, 그 무렵에 기도카드를 좀 더 나눠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켄터키주 이곳에 와서 이분들과 함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 산등성이 너머 오래된 묘지들에는 표지조차 없는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낡은 작업복 바지와 기운 셔츠를 입은 가난한 아버지는 묘비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묻고 그 곁에 아기를 눕혔을 때, 작은 말뚝이나 십자가 하나를 박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곳의 큰 책들, 기록부에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어디 있는지, 그 몸이 어디 누워 있는지 아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오늘 주님을 믿는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아버지, 우리 가운데 와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니,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위대하고 존엄하신 존재로 말미암아 우리의 혼에 주님의 선하심과 복이 넘쳐흐르게 하소서. 우리가 합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주님,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석해 주시기만 한다면, 성경에는 겉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내려다보며 읽기만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자녀야, 네가 이 성경을 들여다볼 때 지금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다.” 오늘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 각 사람의 필요에 맞게 모든 마음에 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성경의 짧은 한 대목, 여기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평생 설교를 하면서 이 본문은 한 번도 다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본문으로는 한 번도 설교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호텔 방에 앉아 있을 때 무언가가 저를 이 대목으로 이끄는 것 같았습니다. 읽어 볼까요?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 읽겠습니다. 바리새인들 중 하나가… 그분께서 저녁 식사를 하러 자기 집에 오시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아니,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자기 집에 와서 식사하시기를 청했습니다. 이 장을 끝까지 다 읽으면, 여러분은 성경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과 그 내용을 잘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대목을 생각해 보면 뭔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뭔가… 마침표가 있는 데까지 이만큼의 말씀만으로도 제가 전하려는 생각을 말씀드리기에 충분합니다. 제 설교 제목은 「교만」입니다. 아, 교만은 참으로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교만은 너무나 끔찍하고 악합니다. 이 작은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교리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한 장면으로 보려고 합니다. 교리를 다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려 한다니 말입니다. 이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분을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바알세붑, 마귀, 속이는 자였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도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몬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셔서 좀… 자신의 대접을 받으시기를 원했습니다. 이 장면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늘 할머니만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여섯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계속 할머니를 따라다닌다면, 거기에는 무슨 사정이 있습니다. 동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보통 여섯 살, 아니 일곱이나 여덟 살 난 여자아이는 자기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늘 할머니만 따라다닌다면, 할머니가 아주 잘해 주시거나, 귀여워해 주시거나… 아니, 그 아이가 할머니의 귀염둥이이거나, 혹은 여러분은 모르지만 할머니가 어딘가에 사탕 봉지를 놓아두셨을지도 모릅니다. 아시겠죠?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동기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 바리새인에게도 그 뒤에 뭔가 올바르지 않은 동기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거리에서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도 이사야의 예언에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거리에서 노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습니다. 인형이나 팽이나 장난감 목마 같은 것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과 어울립니다. 젊은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과, 중년 여성들은 중년 여성들과, 노인들은 노인들과 어울립니다. 키와니스나 로터리 같은 모임에도 공통된 관심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임에서 함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 사회의 형편에 대해, 또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여러 번 하시는 말을 들은 옛 켄터키 속담대로 “깃털이 같은 새들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가 서로 친하게 어울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새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지닌 특성이 다릅니다.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는 새입니다. 죽은 것들을 먹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죽은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비둘기가 죽은 것을 먹으면 곧바로 죽고 맙니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둘기라고 부르는 이 새는 성경에서 성령님을 상징하는 비둘기입니다. 그 비둘기에게는 쓸개가 없습니다. 더럽고 부정한 것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먹으면 비둘기에게는 죽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아주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들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즉시 영적으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까마귀를 보셨습니까? 까마귀는 부패하는 사체, 켄터키의 쉬운 말로 썩어 가는 사체 위에 앉을 수 있습니다. 거기 앉아서 온종일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그 근처에 갈 수 없습니다. 악취가 나니 날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거기 앉아 온종일 먹고 나서 곧장 밀밭에 가 비둘기와 함께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위선자, 사칭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가 세상과 어울리고,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 속에서 살고, 세상의 쾌락을 즐기다가 교회에 와서는 그리스도인인 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나갔다가 그렇게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보여 줍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어울리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들어가 무엇을 읽는지 보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음악을 틀어 놓는지 듣고… 보게 해 주십시오. 어떤 잡지, 어떤 글을 읽는지 보게 해 주십시오. 사무실을 들여다보게 해 주십시오. 거기에 외설적인 핀업 사진 같은 것들이 잔뜩 붙어 있는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러분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여러분이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를 판단하실 권리는 없으시잖아요”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판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열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줍니다.
아, 이 바리새인에게는 틀림없이 어떤 속셈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켄터키에서는 그 말을 별로 쓰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어로는 “배우,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싫어합니다. 연기하고, 겉으로 꾸미려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들으십시오. 남을 흉내 내려 하지 말고 자신의 확신대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더 잘될 것입니다. 자기 모습 그대로 사십시오. 그렇습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배우를 흉내 내려고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저는 할리우드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집회를 많이 열어 왔습니다. 그곳에서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기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배우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실 겁니다… 화면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늘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해 꾸민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이제 자신들까지 꾸미며 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에도 그런 것이 들어왔습니다. 배우들입니다. 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배우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모습 그대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누군가 자기가 할 수도 없는 일을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정말 싫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 재능을 주셨는데, 그 목소리를 지나치게 훈련합니다. 저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 목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며 어떤 음을 잡아 얼굴이 파래질 때까지 길게 끕니다. 죽을힘을 다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회중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음을 내리는데,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내는 음에 온 생각이 가 있습니다.
저는 옛날의 그 좋은 오순절 찬송을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피아노와 오르간도 잊어버리고, 의식에 얽매여 꾸며 놓은 어떤 순서를 따를 필요도 없는 찬송 말입니다. 두 손을 들고 뺨으로 눈물을 흘리며,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부를 줄 알든 모르든 그저 영 안에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해 놓은 순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람의 계획에서 나와야 합니다. 아시겠죠? 거기서 나오십시오. 아, 제가 배우 노릇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강단에 올라 목소리를 아주 굵게 깔고 “나는 이제 학위를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듣는 사람이 오싹해질 듯이 말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안쓰럽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모습 그대로 하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저 옛날의 소박한 사사프라스, 히코리나무 연기에 훈제한 햄, 수수 당밀처럼 소박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좋을 것입니다. 꾸며 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아, 저는 그 말이 싫습니다. 배우입니다. 자매들 가운데도 똑같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온통 연기투성이입니다. 남편에게는 “존, 왜 그런 짓을 했어요?”라며 코를 베어 버릴 듯이 쏘아붙입니다. 최대한 날카롭게 쏘아붙이지요. 아이고, 휴!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제가 그런 댁을 방문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 전화만 하면, [브래넘 형제님이 세련된 배우를 흉내 낸다.] “어머, 안녕하세요? 전화해 주셔서 정말 반가워요.” 배우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집에서는 천사요, 길에서는 마귀인 사람들, 꾸며 대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모습 그대로 사십시오. 그것이 가장 좋은 삶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남들도 여러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배우도, 바리새인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얼마나 경건합니까?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면 아무도 여러분과 지낼 수가 없습니다. 이 바리새인 같은 사람아, 교회에 가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 참. 여러분에게는 회심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뿌리, 그 본성을 없애야 합니다. 감리교인들은 여기에 “아멘” 해야 합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이것이 감리교의 교리, 곧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겉치레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에게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자, 그 사람은 지쳐서 사람들의 머리 너머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땀에 젖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헤매며 남쪽 팔레스타인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무리가 둘러 모여 있습니다. 그는 온종일 땀을 흘리며 서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길을 달려온 지친 발에는 길에서 묻은 먼지와 똥이 가득합니다. 달리다가 가끔 멈추어 물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개를 들고 다시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쉽니다. “드디어 그분을 찾았구나. 정말 다행이야.” 긴 말씀이 한동안 이어진 뒤, 무리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팔꿈치로 사람들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전할 말이 있어서 가는 중입니다. 그에게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시몬,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심부름꾼으로 지금 전갈을 전하러 온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런 사람을 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저… 바리새인들에게는 그런 하인이 많습니다. 말도 손질하고, 정원도 가꾸고, 그들을 돌보는 등 온갖 일을 합니다. 하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될 수 있는 대로 아주 적은 품삯만 줍니다.
이 하인은 아마 이삼 일 동안 예수님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찾으려고… 주인이 예수님을 찾아가 어느 정해진 날 자기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오시도록 초대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팔꿈치로 군중을 헤치며 들어가다가 누군가에게 비틀거리며 부딪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 베드로였을까요, 아니면 안드레였을까요? 저는 거기 없었으니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립니다. “선생님, 당신의 주인을 뵙고 싶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계셨으므로 사람들이 그분께 다가오지 못하게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말합니다. “당신의 주인을 뵙고 싶습니다.” 안드레가 그를 예수님 계신 곳 가까이, 병자들과 여러 사람이 둘러선 곳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드레가 말합니다. “주님, 남쪽 팔레스타인에서 전갈을 가지고 온 청년이 여기 있습니다. 먼 길을 왔습니다. 자기 주인이 보낸 말이라고 합니다. 주님께 말씀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그가 말합니다… 예수님께 몸을 굽혀 인사하고는 자기가 온 용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주인이 어느 정해진 날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여러분과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다르게 생각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저 위선자에게 가지 마십시오. 저 바리새인에게 가지 마십시오.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그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을 미워합니다. 이 주변에는 병자들도 너무 많고, 주님께서는 힘도 너무 많이 쓰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지 마십시오. 그저 주님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 비장의 카드 같은 것으로 쓰려는 것이지요. 뭔가 나쁜 속셈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지 마십시오.” 아, 그 바리새인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대단한 사람, 자기 도시에서 큰 인물이었습니다. 며칠 전 그는 향기가 가득한 넓은 식당에서 이집트산 고급 카펫을 밟으며 이리저리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둥글둥글한 뚱뚱한 몸으로, 두툼하고 뭉툭한 손을 비비며 이렇게 말했겠지요. “왜 이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하하하. 그래,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그거야. 내가 지금 준비하는 큰 연회에 말이지… 진작 이 생각을 했어야 했어. 하하하. 나사렛 예수라는 이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 입에 늘 오르내리지 않는가. 그를 내 연회에 데려오기만 하면, 구경꾼들이 사방에 서서 그를 쳐다볼 거야. 그것만 하면 돼.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이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거지. 내 인기가 더 높아질 거야. 아, 진작 생각했어야 했어.” 그래서 그 청년을 길에 내보내 예수님을 찾게 합니다. “존스 박사는 뭐라고 할까? 그 존스라는 바리새인은 나사렛 예수를 미워하지. 그를 마귀라고 믿어. 아무개 율법사도 여기 데려다 놓으면 얼마나 좋겠나? 물론 이 도시의 모든 유명 인사들이 내 모임에 올 거야. 당연하지. 내가 음식을 잘 대접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분명 이 사람은 부유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고기 몫도 다 챙겼습니다. 고기를 나누는 데에도 끼어 있었습니다. 들어오는 온갖 십일조와 헌금과 모든 것에서도 몫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 잔치를 한 번 벌이는 데 드는 돈이면 팔레스타인의 평범한 한 가정이 이 년은 먹고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도시의 큰 인물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 박사,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그가 왔다 갔다 하며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 당장 초대장을 보내야겠어. 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볼 수 있도록 시원한 바깥에서 해야겠어. 베란다 너머에서 말이야. 저 커다란… 밖에 포도덩굴 시렁이 있는 자리가 있지. 아름다운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지금 한창 무르익었고 향기도 그윽해. 거기에 모든 것을 차려야겠어. 내 특별한 큰 식탁도 거기에 내놓고, 존스 박사도 부르고, 아무개 박사도, 또 아무개 박사도, 또 아무개 박사도 불러야겠어. 그러면 온 도시가 내가 큰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내 학위가 큰 보탬이 되었다는 것, 내가 큰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야.” “나, 나, 나, 나, 나.” 들리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내가 이것을 했다. 나는 더 잘될 것이다. 내가 이것을 하겠다.” 나, 나, 나.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모습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겠다, 교회에 등록하겠다,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가 거기 있었습니다. 아, 그는 큰 인물이었고, 예수님을 그곳에 데려다 구경거리로 삼아 더 큰 인물이 되려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저 ‘저 사람을 여기 데려오기만 하면 우리 모두 재미를 볼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분을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여러 날이 지나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 바리새인이… 이 모임… 아니, 저녁 잔치를 열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자. 팔레스타인을 가로질러 남쪽 팔레스타인까지 가야 하니 길을 떠나자. 늦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이 지키실 것입니다. 그날이 다가오자 바리새인이 마당에 식탁을 내놓은 모습이 보입니다. 알림도 나갔고 사람들이 모두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입니까.
존스 박사가 아주 크고 멋진 마차를 타고 올라옵니다. 바리새인은 곧장 사람들, 곧 하인들을 내보냅니다. 하인이 말을 받아 마구간으로 데려가 손질합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친구여,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들어오셔서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아, 그가 꾸며 대는 모습이 보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아니, 아무개 율법사께서 오셨군요. 친구여,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들어오시겠습니까? 하인아, 이분의 말들을 마구간으로 모셔라.” 아, 참. 조금 뒤 그는 안으로 들어가 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잔치를 차리는 모습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렇게 아주 큰 식탁을 내놓고, 그 옆에는… 팔레스타인에서는 여기처럼 앉아서 먹지 않고 누워서 먹습니다. 긴 의자 같은 것을 식탁에 이렇게 비스듬하게 놓습니다. 그러면 각 사람이 이렇게 누워 발을 뒤로 뻗고 누운 채로 식사합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사람들이 안에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명 인사들을 접대하느라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예수님께서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이 계신 줄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분은 어디로 들어오신 것입니까?
작은 자리, 아마 구석에 앉아 계셨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너무 바빴습니다. 다른 할 일이 있었습니다. 유명 인사들, 도시의 큰 인물들이 와 있었으므로 그들을 접대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유명 인사와 고위 인사들을 대접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예수님도 우리 가운데 앉아 계신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구석에 앉아 계시는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홀로 앉아 계십니다. 제자들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초대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동방 사람들의 풍습대로,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밖에 서서 궁금해하며 안을 들여다봅니다.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사람이 모일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다 거기 와 있으니까요. 그들은 구경하러 옵니다. 구경꾼들로서 무엇이든 보려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지만 와서 구경합니다. 몇 시간이고 발돋움한 채 서서 잔치를 지켜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좋은 향신료로 맛을 낸 고기, 최상품 향신료를 넣어 구운 어린양 고기를 보면서 군침을 흘립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같은 먼 곳에서 가져온 온갖 훌륭한 것들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부자였으므로 정말 그런 성대한 잔치를 열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구경하고 싶으면 서서 구경하라지요. 이방인 하나를 개종시키려고 온 세상을 뒤집어 놓고는, 개종시키고 나면 그를 처음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무리가 바로 그들입니다. 교만과 허세입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은 채 거기 앉아 계십니다. 발이 더러우셨으니 불편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여행할 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포장도로나 일반 도로나 아스팔트를 깐 도로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과 다리가 온통 더러운 채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머리에는 기름도 발라 주지 않았고 뺨에 입 맞춘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리에는 길에서 날린 똥가루와 먼지 같은 것들이 묻어 있었습니다. 말과 대상 행렬, 짐승들이 짐을 끌고… 아니, 짐을 싣고 다니는 길입니다. 길 위에 짐승의 배설물이 있으면 새들이 내려와 쪼아 먹고 흩뜨립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먼지가 됩니다.
사람들이 걸을 때… 팔레스타인의 속옷은 무릎에서 끝나고, 그 위에 겉옷을 입습니다. 걸으면 옷자락이 흔들려 바람이 조금씩 일면서 먼지가 피어오릅니다. 그런 것이 온몸에 묻으면 더럽고 악취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발이 더러운 채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라 부르는 그분이 발이 더러운 채로 계셨습니다. 아, 그 말을 하니 마음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예수님, 발이 더러운 예수님, 초대를 받고도 구경거리가 되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회를 열어 교회로 그분을 초대하면,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 해 주시려고 내려오십니다. 그런데 그냥 대접도 받지 못한 채 계시게 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가정과 어디에서나 그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대통령이 오면 기차에서부터 호텔 안까지 카펫을 쭉 깔아 놓습니다. 거리를 장식하고, 젊은 여자들이 꽃을 들고 나와 인도에 꽃을 놓으며, 온갖 환영의 표시로 깃발들을 내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을에 오시면 어딘가 작은 선교소에 머무셔야 하고, 미쳤다느니 성령에 취해 뒹구는 광신자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 참.
눈먼 바리새인들이여, 보십시오. 발이 더러운 예수님입니다. 세상의 죄를 위해 곧 못에 찔리실 그 발에 먼지와 똥이 묻은 채, 예수님께서는 불편하게 앉아 계셨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개 불편하십니다. 그들은 그분께 자리도, 아무것도 내어 드리지 않고 그저 앉아 계시게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입으로는 나를 경배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다.” 발이 더러운 예수님, 대접도, 씻김도, 환영도 받지 못한 채 거기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 더 낮은 자리도 받아들이십니까? 예수님, 어느 집에서 부르면 아주 작은 자리도 받아들이십니까?” “그래, 작은 자리라도 받겠다.” “어떤 자리라도요?” “위층의 작은 방이나, 어쩌면 이 층의 작은 벽장 같은 곳이나, 지하실이라도.” 여러분은 유명 인사들 앞에서, 찾아온 손님들 앞에서 그분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분을 간증하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말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합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예수님?” “그래, 그래도 가겠다.” 이것이 제게 그분이 주들의 주이시며 위대한 분이심을 증명합니다. “그래도 가겠다. 내게 마련해 주는 자리가 아무리 작아도, 그래도 가겠다.” 저는 그 말씀이 좋습니다. 그분은 제 주님이십니다. “자리가 아무리 작아도 가겠다. 그래도 가겠다.” 대통령에게는 모든 것을 드리고, 존스 박사에게는 성대한 잔치를 차려 주면서도, 예수님께서 오시면 그분은 어딘가 구석에 앉으십니다. 참으로 바리새인 무리, 겉치레하며 손님만 접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도 없이 접대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작은 자리라도 받겠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래전 여러분의 마음을 열기 전에는 그분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해 온 분들은 지금 그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아, 참. 어쩌다 어떤 행사를 허락해서, 작고 볼품없이 마른 어떤 전도자가 찾아오면, 여러분은 가장 멋진 옷과 예쁜 모자를 차려입고 교회로 갑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을 경배할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았고 간증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정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기꺼이 그 작은 자리를 받아들이십니다. 여러분이 마음 전부를 드리려 하지 않으면, 허락하는 만큼만이라도 받으십니다. 그분은 제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집에 가서 “뭐, 이 정도면 다음 달까지는 됐어. 그때 또 교회에 가면 되지”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그분을 밀어내 버렸습니까? 사소한 잔치들과 온갖 하찮은 일들, 여러분의 오락거리들로 말입니다… 이 바리새인 같은 사람아. 나의 주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분께서 마을에 오시면 여러분은 그분을 헐뜯고 거절합니다. 눈을 뜨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기도회에서 그분을 불렀으면서, 막상 오시면 아무 자리도 내어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어쩌면 이토록 눈이 멀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발 앞까지 걸어갔던 이 심부름꾼에게 얼마나 큰 기회가 있었습니까? 아, 제가 그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날 거기 있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바리새인이 전한 말만 그분께 말씀드리고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을 꼭 안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는 기회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 것입니다. 그날 사람들이 눈멀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그분께 경배도, 환영도 드리지 않은 채 돌아서 떠나 버린다는 생각만 해도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풍습을 아시겠지만, 그런 성대한 연회에 초대받았을 때 맨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문 앞에 도착하면 온몸이 더럽고 냄새가 납니다. 그런 상태로는 연회에 참석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발 등에 온갖 것이 묻고, 땀에 젖어 그런 모습으로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면 창피할 것입니다. 맨 먼저 무엇을 합니까? 손님이 도착하면 하인 하나가 나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적은 품삯을 받는 사람입니다. 저의 주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사람들의 발을 씻으신 것을 생각하면, 그분은 가장 높은 자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셨는데도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발에서 똥과 흙을 씻어 내려고 가장 낮은 자리에 서서 가장 비천한 종이 되셨습니다. 발 씻기는 하인보다 더 비천한 일을 하는 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방 팔레스타인에서 그런 집에 가면, 하인이 문 앞에서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우물 하나에 가서 깨끗하고 맑은 물을 큰 대야에 길어 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샌들… 아니, 신발을 벗기고 여러분의 발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다음, 몸에 묻은 흙과 먼지와 똥 같은 것을 모두 씻어 냅니다. 그런 다음 다른 수건을 가져다 발을 닦습니다. 발을 씻고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샌들을 가져다가 입구에 이렇게 놓인 작은 선반 같은 곳에 올려 둡니다. 그러고는 가서 부드럽고 좋은 공단 비단 슬리퍼 한 켤레를 찾아옵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렇게 마련해 놓는 것이지요. 하인은 그것을 여러분의 발에 신겨 보며 편안하게 맞는 것을 찾습니다.
이제 발을 씻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안내합니다. 거기 문 앞에서 한 사람이 여러분을 맞이하는데, 손에 작은 그릇, 조그만 주전자 같은 것을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 손에 기름을 조금 붓습니다. 그 기름은 아주 좋은 나드 향료로 만듭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라비아에서 자라는 관목에서 얻는 것입니다. 장미처럼 작은 꽃이 피었다가 지면 조그만 구근 같은 것이 남는데, 그것이 작은 사과처럼 단단해집니다. 이 나무에서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것을 손안에 넣고 굴릴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유명 인사 한 사람이 그것을 두 개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손안에서 굴리면 향기가 손에 이 주 동안 남습니다. 아주 비싸고 귀한 것입니다. 돈이 많이 듭니다. 기름은 며칠만 지나도 오래되어 냄새가 나지만, 거기에 이 나드를 넣으면… 아, 몇 년 동안 향기가 유지됩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가져온 보물 가운데도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면 여러분은 그것으로 손을 씻습니다. 그런 다음 수건을 주면 손을 닦습니다. 다음에는 그것을 조금 더 주는데, 목과 목덜미, 뺨과 이마에 바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햇볕이 아주 뜨겁기 때문에 남녀 모두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향기가 납니다. 대부분을 닦아 내고 나면 상쾌해집니다. 발도 씻었고 몸도 씻었습니다. 손도 깨끗하고 얼굴도 깨끗합니다. 그런 다음 주인이 있는 방으로 안내받습니다. 주인을 만나면 여러분이… 그가 오른손을 여러분의 왼쪽 어깨에 얹으면 여러분은 몸을 굽힙니다. 그다음 여러분이 오른손을 그의 왼쪽 어깨에 얹으면 그가 몸을 굽힙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여러분의 한쪽 뺨과 다른 쪽 뺨에 입을 맞춥니다. 그것이 환영의 표시, 교제의 오른손입니다. 주인이 입 맞추면 여러분은 형제이고, 환영받는 손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존스 박사의 발을 씻기는 데 아주 세심하셨습니다… 아니, 바리새인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그는 유명 인사들에게는 아주 세심했지만, 여기 예수님께서는 발이 더러운 채로 앉아 계셨습니다. 환영도 받지 못하고 기름도 바르지 못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아무도 입 맞춰 드리지 않은 채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려고 하시던 일을 두고 팔레스타인을 가로질러 먼 길을 오셨습니다.
거기 앉아 계시는 것이 괴로우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은 저쪽에서 여러 가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가엾게도 예수님께서는 발이 더럽고 얼굴에 기름도 바르지 못했으며 입맞춤도 받지 못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입맞춤을 받기 원하십니다. 시편 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분노하사.”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아, 한 번이라도 아들에게 입 맞춰 보기 전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에게 입 맞추십시오. 그분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꺼이 맞아들이십시오. 하지만 그분께서는 기름도 바르지 못하고 발이 더러운 채로 앉아 계셨습니다. 얼마나 무안하셨겠습니까? 바리새인은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큰 인물들을 접대하느라 너무 바빠서 예수님께서 대접받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오셨습니다. 아, 저의 하나님,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문 앞의 그 하인은 어떻게 그분의 발도 씻어 드리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 제가 그 일을 맡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문 앞에서 그분의 발을 씻어 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분께서 앉아 계신 줄 알았다면 제 물대야를 가져가 대접해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유하고 교만한 사람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저 사람들을 웃기고 쳐다보게 할 구경거리일 뿐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바리새인은 마음속으로 예수님께 자기를 위해 기적이라도 하나 행해 보시라고 청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거기 앉아 계시는 동안, 바깥 거리에는 그 도시에서 아주 나쁜 여자로 알려진 한 매춘부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타락한 여자입니다. 그 여인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들으십시오. 타락한 여자가 있기 전에 타락한 남자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 여인의 연인이 그녀를 가슴 깊이 사랑하다가, 그 생명의 꽃을 발밑에 짓밟고 그녀를 이런 삶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그 여인이 큰 죄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녀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큰 죄인이었습니다. 어쩌면 지나가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환영받지 못하던 그 여인이 발돋움을 하고 올려다보다가, 저의 주님께서 구석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발도 씻지 못하고 부자들 가운데서 환영받지 못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그 여인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분이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면 결코… 다시 뵈면 그분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본 사람은 누구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말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 저 위대한 선생님이 계시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 가운데 계시고, 저 사람들은 그분을 달가워하지 않는구나.” 그 여인이 돌아서서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나는… 할 수 없어. 아, 이건…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봐. 분명… 내가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아, 어쩌면… 할 수 있을까?” 여인이 옷자락을 여미고 거리를 내려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두 남자가 팔꿈치로 서로를 쿡 찌르며 “저것 좀 봐. 뭐가 나타났는지 봤어?”라고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아, 그렇겠지요. 여러분은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니까요. 한번 여러분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매춘부가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전적으로 성적인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파는 일은 더 넓은 차원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팔아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 시간을 얼마나 드립니까?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를 위해 스스로를 팔아넘기며 “나는 이 교회에 다니니까 더 나은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더 낫지 않습니다. 성적인 일이 아니어도 자신을 팔아넘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에 말씀하시면 “나는 그런 것과 상관하고 싶지 않아”라고 합니다. 눈먼 바리새인, 자신을 파는 자여, 여러분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까? 세상과 간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하면서도 너무나 차갑고 무관심합니다. 아, 기도는 아름답게 하지요. 저는 그 바리새인 같은 태도가 싫습니다. 기도하면서 쉼표 하나하나,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맞춥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들으며 기도에 문장부호를 찍고 있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셔서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내려놓고 기도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만 읊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아, 바리새인들이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하지요. 좋습니다. 물론 다니겠지요. 하지만 저의 주님께는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복을 주려 하실 때 여러분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은 믿지 않습니다.” 바로 제가 말하는 그 무리입니다. 아주 종교적이지만 아주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제가 그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배우들입니다. 신앙을 연기하지 마십시오. 옛날 그대로의 중생,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하십시오. 저의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기다리시며 구석의 작은 자리를 차지하십니다. 그런 자리를 드렸다고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한 달에 한두 번 교회에 가고는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분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매일 밤, 매일 낮 어디든 찾아가 그분과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저 교회 다니는 척, 신앙 있는 척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직도 우리 가운데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가엾은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쁜 소문이 난 그 여인이 거리를 내려가 삐걱거리는 작은 계단을 올라갑니다. 위층에 그녀의 작은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그 장면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 하나님, 누구든 그분의 꾸밈없는 말씀과 사랑 안에서 그분을 한 번이라도 뵌 사람은 결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가 계속 마음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위층으로 올라간 여인은 자기의 작은 보물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무언가, 작은 주머니를 꺼냅니다. 그것을 꺼내 내려놓자 동전들이 탁자 위로 짤랑거리며 떨어집니다. 동전들이 떨어지자 다시 집어 듭니다. 눈앞에 그분의 얼굴이 보입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서 뚝뚝 떨어집니다. 여인은 말합니다. “안 돼. 할 수 없어. 그분은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아실 거야.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할 수 없어.” 어쩌면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가 또 손을 뻗어 집어 들었을 것입니다. “할 수 없어. 내가 왜 이러지? 하지만 먼 길을 가로질러 오시고도 대접받지 못하시는 그분이 눈에 보여. 내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있을까? 내게는 이것뿐이야. 분명 이해해 주실 거야.” 물론 그분께서는 이해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이해하십니다. “내게는 이것뿐이야. 분명 이해해 주실 거야.”
그런 다음 여인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가슴에, 어쩌면 긴 양말 속에 넣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쪽에 잘 싸 넣고 옷을 여민 다음 거리로 나갑니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거리를 따라 어느 크고 훌륭한 향료 가게로 갑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매부리코에 심술궂은 늙은이가 계산대 뒤에 서서 돈을 세고 있습니다. “오늘은 별로 신통치 않았어. 가게 세도 못 벌었네. 운 없는 날이군.” 잔뜩 심통이 나 있지만, 종교에서는 더없이 철저한 정통 신자입니다. 여인이 문으로 들어옵니다. 그녀가 들어오자 그가 하는 말이 들립니다. “흥, 저것 좀 봐.” 아, 그녀는 잘 알려진 여자였습니다.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이 여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마땅히 그랬어야 하듯 친절하게 다가와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계산대 위에 돈을 내려놓았습니다. 아,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 물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요셉을 무덤에 그대로 두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라고 했던 부류에 속했습니다. 무슨 이익이 있는가? 아, 그렇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돈이 얼마나 되는가? 눈먼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며 대접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초대했습니다.
돈이 거기 놓여 있고, 여인이 말했습니다. “옥합 하나를 주세요. 가게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요.” 그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돈을 펼쳐 놓았습니다. 로마 돈으로 백팔십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가 모두 세어 보았습니다. “그래, 딱 맞게 있군.” 무엇입니까? 여인은 가장 좋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해”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작은 구석 자리만 드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리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이 가진 최상의 것,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그것이 여인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녀는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싫어. 어쩌면 예법에 어긋날지도 몰라. 그래도 이것이 내게 있는 최선이야.” 그녀는 그에게 가격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장 좋은 것을 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인은 가장 좋은 것을 원합니다. “가장 좋으신 분께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옥합을 집어 가슴에 품고 밖으로 나섭니다. 매부리코의 그 늙은 유대인이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른 두 남자가 서로의 팔을 쿡 찌르며 말합니다. “저기 가는 것 좀 봐. 저쪽 가게에서 뭐가 나왔는지 봐. 저 안에서 뭘 했을까?” 아, 남을 쿡쿡 찌르는 바리새인들이여. 한번 자신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성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술을 마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먼 바리새인이여, 여러분은 저의 주님께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냉랭한 위선자여, 그분께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분을 거절합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방에서 그분의 임재를 보고, 그분께서 거기 계시며 여러분에게 복을 주고 대접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분은 스스로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여러분은 한 번도 자신이 비참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자신을 한번 비추어 보고 어떤 모습인지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깁니다. 여러분의 사소한 형식과 자질구레한 것들, 그 작은 전통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늦더라도 안 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 여인은 부자들이 모인 곳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 잔들이 이렇게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다가갑니다. 그분이 어디 계실까 두리번거립니다. 이제 가슴이 온통 설렙니다. 그 유대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모퉁이에 있는 사람들을 건너다보고 말합니다. “저 여자는 왜 저랬을까? 뺨에 눈물 자국이 있었어. 울었던 모양이야.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인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말했습니다. “저분은 이 바리새인들처럼 말씀하지 않으셔. 다르셔. 저 선생님은 바리새인들과 좀 달라.” 여인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올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기 갈 수 있을까? 저 부자들의 자리에 어떻게 들어가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문제는 어떻게 그곳에 가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가려고 노력하느냐였습니다. 여인이 팔꿈치로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합니까? 오늘날 세상의 온갖 차이를 뚫고 나아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러분이 즐기는 외설적인 것들, 영화와 춤과 방탕한 행실을 헤치고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세상적인 사교 오락을 모두 내려놓고 주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여인은 곧장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천하든 상관없이 그곳에 가려고 했습니다. 아, 그것이 예법에 어긋났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가끔은 격식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여러분에게 격식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격식에서 벗어나십시오. 교회가 구원받을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격식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이 보잘것없는 켄터키 사람의 가슴이 시속 구십 마일로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고, 울고, 외쳤습니다. 누가 주위에 서 있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격식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수님 앞에 있었고,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이 여인도 자기가 격식을 얼마나 지키는지, 얼마나 어기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발이 더러운 채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입맞춤도 받지 못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하셨고, 여인은 그분을 환영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의 격식이나 전통이나 교단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밀고 나아가 예수님께 가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그런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녀들이 군중과 교단과 장벽을 헤치고 나아가 마침내 예수님 앞에 서는 부흥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발은 더러웠습니다. 저의 주 하나님께서 발이 더러운 채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곧 로마의 큰 못이 그 발을 뚫고 들어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피를 보존하게 될 그 발이었습니다. 더러운 발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를 그분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발이 더럽고, 입맞춤도, 사랑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어도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러 오시고도 대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해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분의 동네에 부흥이 오면 광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대접받지 못하시는 예수님, 더러운 발입니다. 아, 이것이 모든 남녀의 마음을 아프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접받지 못하십니다. 아, 유명 인사들과 큰일들은 잘만 돌아가는데 예수님은 대접받지 못하십니다. 아, 참.
계속되는 장면을 보십시오. 여인은 급히 달려가 몸을 쭉 펴고 누워 계신 예수님의 발 앞에 이릅니다.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저는 할 수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여인은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도 가끔은 자신을 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너무나 형식적이라는 것입니다. 꼭 정해진 방식으로 기도해야 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 가는 송아지처럼 “아-멘” 하며 끝맺어야 합니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이세벨 같은 손톱을 한 채 성가대에 서서 노래하며,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행동을 하면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여러분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까? 저의 주님께서 이 마을에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분을 모셔 대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거기 앉아 계십니다. 여인은 그분의 발 앞에 이르러 옥합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심하게 울어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반쯤 굽힌 자세에서 몸을 펴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정결의 샘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자신의 죄책을 씻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분 앞에 여인은 매춘부의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울면서 두 손을 들었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보니 그분께서 계셨습니다. “아, 정말일까요? 정말 저분이 그분이실까요? 그 사랑스러운 분, 제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던 그분이실까요? 하나님, 제 마음을 아십니다.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인은 애를 쓰며 웁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예수님의 더러운 발 위로 흘러내립니다. 뺨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그분의 더러운 발 위에 떨어집니다. 어느새 여인은 그분의 발을 문지르고 있습니다… 그 발을 문지르는데 눈물은 계속 쏟아집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정결한 눈물, 회개의 눈물, 회개의 눈물이 쏟아져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습니다. 아,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뉘우침의 눈물,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반짝입니까. “주 하나님,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주님께서 이렇게 앉아 계신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쏟아지고, 여인은 그분의 발을 그렇게 문지르며 자기 눈물로 씻어 드립니다. 옥합은 거기 놓여 있습니다. 그러다 격한 감정에 휩싸인 여인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풀려 내려왔습니다. 말아 올렸던 머리카락이 내려왔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에 난 그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아, 저의 주님… 마음이 냉랭한 저 바리새인 무리는 무관심하게 앉아 있습니다. 아, 참! 여인은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복된 발을 닦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자분들 중에는 그렇게 하려면 물구나무를 서야 할 분들도 있습니다. 머리를 잘랐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여자의 영광은 그 머리털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잘라 버립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었습니까? 여인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던 것 중 유일하게 떳떳한 것은 긴 머리카락이었고, 그것이 온통 예수님의 발 앞에 풀려 내려왔습니다. 눈물과 여인의 모든 것이 그분의 발 앞에 쏟아져,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것이 격식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격식이 무슨 상관입니까? 군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여인은 바리새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뒤로 빼시며 “이봐, 이봐, 이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계셨습니다. 회개의 눈물로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고, 자기에게 있는 유일한 영광인 머리카락으로 닦는 그 행동은 더없이 합당했습니다. 모든 것을 그분의 귀한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여인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발을 씻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여인이 몸을 일으킵니다. 무엇을… 알지 못합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시몬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중에 한마디 했습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강철 같은, 경건하지 못한 도마뱀 같은 눈으로 여인을 쏘아봅니다.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얗게 질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들립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기침하고 헛기침을 한다.] 자기 행사가 방해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아시오?” 그는 그것이 자기 평판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여, 예수님의 평판은 죄인들 가운데 계실 때 세워집니다. 죄인들 때문에 예수님의 평판이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 가운데서 그 평판이 세워집니다. 거기서 발을 씻기던 여인이 몸을 일으켜 옥합을 집어 듭니다. 이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거기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풀려 내려온 채, 여인은 옥합의 윗부분을 꺾어 깨뜨리고 전부 부었습니다. 어려운 날을 위해 조금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발에 전부 부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곧 영광과 자신과 회개의 눈물과 모든 돈과 옥합 전부가 그 나드 향유 상자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그것을 그분의 발에 부었습니다. 아, 하나님, 우리가 사는 이 뻣뻣하고 경건하지 못한 세대에 긍휼을 베푸소서. 바리새인들, 접대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인은 그분의 발에 부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시몬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알기만 한다면…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자기가 환상을 본다고 말한 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환상을 볼 수 있다면, 선지자라면, 자기 발을 씻고 있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 아, 눈먼 위선자여, 여러분은 너무나 선한 체하느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릅니다. 너무나 선한 체합니다. 여러분도 그분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분을 그런 식으로 대하며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아, 눈먼 바리새인은 자기 의로 가득 차서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그가 선견자라면,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분명 알 텐데.”
예수님께서 문 안에 들어오신 뒤 처음으로 편안해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맞아 주고 계셨습니다. 몸을 일으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 시몬아, 너와 이야기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내가 네 집에 왔을 때…” 아, 하나님. “내가 네 집에 왔을 때…” 바리새인이여,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네 집에 왔을 때 너는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시몬아. 너는 내게 기름을 주지 않았다, 시몬아. 너는 나를 환영하며 입 맞추지 않았다, 시몬아. 네가 나를 대접한다고, 여기로 불러 내려오게 하고 초대해서 내가 왔는데, 너는 그저 여기 앉혀 두기만 했다. 내 머리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고, 내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으며, 나를 환영하며 입 맞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가엾은 여인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브래넘 형제님이 동작으로 보여 준다.] 그분의 발에 입 맞추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의 발에 입 맞추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집에 들어온 때부터”,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이 여인은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때부터 말이다.” 아, 하나님, 오늘도 저의 주님께서 이런 식으로 대접받으시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아, 참! “이 여인은 내가 들어온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너는 내게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기름도 발라 주지 않았고, 내 마른 손과 입술과 얼굴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나를 환영하며 입 맞추지도 않았고, 네 집에 온 나를 환영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줄곧 내 발에까지 입을 맞추었다.” 아,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시몬에게서 몸을 돌려 이 가엾고 비참한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풀어 내린 머리카락은 눈물에 젖어 있고, 거기에 길바닥의 더러운 것까지 묻어 있습니다. 그분의 발에 입 맞추느라 입술에는 나드 향유가 묻어 번들거리고,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많았던 네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다.” 아, 하나님. “많았던 네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다.”
아, 하나님, 이 죄 가운데 있는 세대여. 주님께서 여러분의 집에 오셔서 대접받고 경배받으며 영광과 높임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무언가가 저에게 “지금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발이 더러운 예수님, 대접도, 입맞춤도 받지 못하신 예수님, 환영받지 못하신 예수님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오늘 내려오셔서 이 회중 앞에 주님의 마음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여전히 예수님이시며, 그들이 주님을 대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들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조직과 교단을 사랑합니다. 교회의 작은 사교 행사와 여전도회, 그 밖에 참석하기 좋아하는 여러 모임을 사랑합니다. 남자들은 카드놀이 모임과 흥청대는 것을 좋아하면서 예수님은 대접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 주님, 저의 치유자, 저의 구원자, 저를 지키시는 분이시여. 오 하나님, 주님이 아니셨다면 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차갑고 무관심한 마음들에 말씀해 주십시오. 여전히 같은 사랑으로 지켜보시고 돌보시는 주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너무나 무관심했고, 너무 오래 거리를 헤매던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는지 주님께서는 지켜보고 계십니다. 형제여, 왜 기다립니까? 왜 이토록 오래 지체합니까?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보좌 곁에 그대의 자리를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의 경건하지 못한 길을 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자잘한 것들을 버리고 오늘 그분께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실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오늘 제가 나아갑니다. 주님,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습니다. 오늘 주님을 제 구원자로 마음에 모셔 대접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주는 모든 즐거움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으로 가득 차서 오직 주님만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초대해 놓고도 외면했습니다. 제 아기가 죽었을 때 주님을 섬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말씀드렸고, 아버지 무덤에 꽃을 놓으며 ‘하나님, 언젠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불러 놓고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나아갑니다. 조금 전 설교자가 아기나 어머니가 누워 있는 땅 한쪽에 작은 말뚝을 박았다고 말씀할 때, 저는 그날 주님을 섬기겠다고 했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주님, 그러나 저는 바리새인, 배우였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나아갑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드리려고 일어서겠습니다. 주님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해 주셨습니다. 언젠가 삶이 끝났을 때, 아, 하나님, 그날 그 매춘부가 섰던 것처럼 저도 서고 싶습니다. 그분께 말씀드리려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분께 말씀드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주님의 발등에 있는 그 흉터에 입 맞추게 해 주시겠습니까? 예수님, 그 흉터에 입 맞추게만 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생긴 흉터입니다.’ 아, 하나님.”
제가 어린아이도 아닌데, 아, 참! 여러분 자신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저의 예수님을 그렇게 대한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저 교회에 가서 등록만 했지 회심한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여전히 세상적인 오락을 받아들이고 즐깁니다. 아, 여러분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교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충분히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선한가가 아니라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의 명령들을 지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증거로 자리에서 일어서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신앙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바리새인 배우, 위선자로 사는 것이 이제 지겹습니다. 바로 지금 제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몸이 뒤틀리고 다리를 못 쓰는 사람들이 들것과 휠체어에서 나오게 하실 수 있다면,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실 수 있다면, 저는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지금 제 마음에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남자든 여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바로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여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뭔가 잘못됐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이웃이 무슨 말을 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뭐라고 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예수님께서 대접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봐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자매님,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시지만 오늘 아무도 그분께 입 맞추지 않습니다. 회중은 그분께 무관심합니다. 그분께서는 어젯밤 내려오셔서 여러분의 모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낫고 건강해진 몸으로 집에 보내셨습니다. 내려오셔서 이 야영장의 작은 건물 안에서 큰 표적과 이적을 행하심으로, 여기 단에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영광의 처소에서 내려오셔서 말씀으로 자신이 여기 계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은 그분을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앉아 계시게 합니다. “아, 나는 내 잔치가 더 좋아.”
오늘 지옥에 있는 바리새인 시몬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제 생각에 그는 그 작은 잔치를 다시 열고 싶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몬은 울며 말하겠지요. “오 예수님, 제가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오늘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 년 뒤에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할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 예수님, 저 작은 야영 집회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오 예수님, 저 설교자가 부르는 소리를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예수님, 저는 일어서겠습니다. 아, 일어서겠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죄가 여러분을 갈라놓았습니다. “주님, 그날 비가 몹시 내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설교자는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저는 달랐습니다.” 나사로가 설교해 준 뒤에 부자도 한때 그런 호소를 했습니다.
아, 여러분의 농사는 잘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담배도 잘 자라고, 옥수수에는 수꽃이 피고 있을지 모릅니다. 자매님, 내일 빨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요일에는 모임에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저의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분을 세상과 함께 앉아 계시게 내버려 두고, 그분께 더러운 것을 뒤집어씌우며 말합니다. “허튼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텔레파시야. 마귀에게서 온 거야.” 그런데 여러분은 앉아서 그분을 그런 상태로 그냥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왜 기다립니까? 왜 이토록 오래 지체합니까?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보좌에 그대의 자리를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왜 기다립니까? 여기 남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까?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누구인지 제가 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압니다. 성령님께서 여기서 움직이고 계시고, 제가 이 회중을 둘러볼 때 여러분 위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압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디 앉아 있는지 압니다. 제가 안다면 그분께서는 얼마나 더 잘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여러분은 차갑고 무관심한 마음을 그분에게서 돌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사람은 육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오늘 선택하지 않으십니까? 모든 것을 아시고 영원을 손에 쥐고 계신 그분의 손에 여러분의 혼을 맡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올바른 분입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에 올바르게 두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저는 기꺼이 그분께 제 운명을 맡기겠습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그렇게 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제게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계십시오. 아버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제 팔에 기대어 마지막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가엾은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동네에서 여러 가지 부끄러운 일을 일으키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계속 술을 드시니 우리 집안의 이름이 그 도시에서 아주 나빠졌습니다. 제가 서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때 그 사람은 저를 버려두고 가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브래넘 집안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 하나님, 그 이름은 시궁창에 처박혔습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봐요. 이제 나는 집에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소. 아프리카와 인도와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호텔에 머무르며 오 분만 시간을 내 달라고 간청하고 있소. 오 분을 위해 지구를 가로질러 온 것이오.”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무엇이 그렇게 했소? 내 학식이 아니오. 나는 배운 것이 없소. 내 사람됨 때문도 아니오. 내세울 것이 없소. 무엇이 그렇게 했겠소? 예수님이시오! 그분께서 하셨소. 그분께서 하셨소.” 그분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내가 너를 양 우리에서 데려다가 세상의 큰 인물들 가운데서 큰 이름을 얻게 하였다. 내가 너를 양 우리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을 다스리는 자로 삼았다.” 아, 하나님, 예수님.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너를 구원하여 내 아들로 삼았다.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귀한 통치자로 삼았다. 내가 너를 구원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불렀다.” 오 예수님, 주님의 귀한 발과 손에 난 흉터, 가시에 눌린 이마여. 오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 고향인 이곳, 제가 태어난 바로 이 땅에서, 주님, 저는 보잘것없는 죄인으로 태어난 남자아이였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십시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긍휼과 평강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소서. 언젠가 주님께서 오실 것이며, 그 진노는 맹렬할 것입니다. 주님, 제가 한 번 더 부르고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모두 했습니다. 주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울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어떤 죄인이 일어나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주님, 저도 주님의 발 곁에 서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누구의 말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나아갑니다. 제 교회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일하고, 다른 죄인들을 주님께 데려오겠습니다.” 주님, 허락하소서.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일어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 하나님, 사랑하는 켄터키 주민 여러분, 많은 분이 저처럼 가난합니다. 이곳에서 변변치 않은 살림으로 자라, 아침이면 돼지 볼살 베이컨 한 조각과 옥수수빵을 먹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서 내세울 것은 없지만, 오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기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도대체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그 작은 농장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여러분은 죽어서 그것을 두고 갈 것입니다. 그 작은 가게가 무엇이며, 여러분의 그 작은 사회적 위신이 무엇입니까? 언젠가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곳 언덕으로 실어 와 구덩이에 넣고 흙을 덮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 예수님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의 혼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을 구원하고 치유하며 죄와 수치를 없애 주고, 단순한 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샘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오늘 이곳에 있는 회중에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하고 무궁한 생명을 제시했습니다. 왜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저는 그 마음을 모릅니다. 환상 가운데 사람들 위에 어둠과 흑암이 드리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치유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심지어 몸의 병까지도, 그들이…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에 말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전에도 들었는데, 주님께서 “나는 항상 사람들과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그것은 주님께 달렸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그들 모두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그들 모두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 저녁 이 도시의 목회자들에게 복을 주십시오. 많은 분이 집회를 열 것입니다. 아버지,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오늘 저녁 자기 교회에 갈 이들이 그 교회에서 일어나 제단 앞으로 나오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그들이 너무나 죄책감에 사로잡혀, 어딘가 옥수수 저장고나 침실로 조용히 들어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여보, 도저히 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소”라고 말하기 전에는 오늘 저녁 집을 나서지도 못할 만큼 되지는 않게 하소서. 어쩌면 내일 옥수수밭이나 담배밭이나 이 근처 어딘가에서 일할 때, 길에서 트럭을 몰 때, 또는 아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침대를 정리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그 생각이 거듭거듭 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오늘 밤 베개가 몹시 딱딱하게 느껴지게 하소서. 꿈을 꾸다 깨어 “아, 나는 왜 예수님을 거절했을까? 그분께서 거기 앉아 계신 것을 보았는데도 그냥 지나쳐 무관심하게 대했구나”라고 하게 하소서. 아버지, 그때 잠자리에서 일어나 나아와 다시 기회를 얻게 하소서. 오늘 저녁 이곳에 큰 은혜의 집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의 영이 모든 사람 위에 임하시고, 오늘 저녁 큰 치유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녹음 공백.]
조금 전 예수님께서 당신을 치유하셨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당신이 앓아 온 그런 담낭 질환과 다른 것들이 모두 떠나갔다고 하면요? 그것이 떠날 것이라고 믿습니까? 믿으세요? 좋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낫게 했습니다. 그분은 사랑스러우시며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정말, 어쩌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과 조금 더 가까이 동행하고 싶은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분과 조금 더 가까이 동행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주님과 더 가까이”의 화음을 조금 쳐 주십시오. 주님과 조금 더 가까이 동행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