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질병과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 어떤 분들은 죽음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질병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낙심한 일들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모아 주셔서 그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참으로 기쁩니다. 이렇게 함께 모였으니, 지난번 해외 집회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집회를 허락해 주시도록 참으로 열심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많은 혼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혼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십자가를 전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소란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그런 모든 일을 면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닥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취리히를 떠날 때 어려움을 좀 겪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회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첫 번째 종교개혁자는 마르틴 루터였고, 두 번째는 츠빙글리였습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 취리히에서 성경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 전체가 말입니다. 최초의 번역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옛 츠빙글리의 사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츠빙글리의 번역은 동정녀 탄생을 부인합니다. 그는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그분을 태어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빌리 그레이엄, 거의 모든 사람이 아는 그가 제가 가기 전에 그곳에 하루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쌍한 젊은이를 얼마나 비난하는지, 그럴 필요도 없는데 조롱만 했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파마를 했다”고 했습니다. 또 “교회에 예배드리러 온 사람답지 않게, 잔뜩 멋을 부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또 “요란스러운 미국 비누 장수처럼 설교했다”고 했습니다. “10피트 떨어진 곳에서도 향수 냄새가 났다”고도 했습니다. 온갖 그런 말을 하며 그 젊은이를 조롱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럽니까? 그는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빌리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고한 신성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철학자들도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있는 힘껏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그것이 참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곧바로 그의 자리에 서서 그 지고한 신성에 대해 계속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했을 때, 주님께서는 닷새 밤 집회에서 5만 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독일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는 국가와 교회가 함께합니다. 교회가 국가에 하라고 하는 대로 국가가 합니다. 우리는 자주 가르쳐 왔습니다. 여러 번... 여기 가톨릭 신자인 친구분이 계신다면... 지금 여러분의 교회를 공격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게는 수천, 수만 명의 가톨릭 신자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황 로마 시대, 초기에 가톨릭교회가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합쳤을 때 얼마나 큰 박해가 일어났는지 자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개신교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가 저를 대했던 것보다 두 배나 더 심하게 저를 대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그곳으로 올라가 독일에 연락하여, 제가 그들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반대하고 사기꾼에 불과하니 저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독일 당국에 알렸습니다.
그곳에는 3만 명이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기존 축구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국가 소유였기 때문인데, 히틀러가 그곳에 세운 경기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3만 명가량 앉을 수 있는 천막 예배당을 세우고, 옆면을 열어 뒤쪽으로도 사람들이 계속 앉을 수 있게 했습니다. 지붕 아래에만 약 3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가 사기꾼이니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단호하게 거절하여 제가 들어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구겐뷜 박사님, 제 친구인 그분이... 국가의 법률 담당자가 그곳에 통보하고 직접 내려와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미국 점령 구역인 카를스루에였는데, 그 이름은 “카를의 안식처”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의 대령을 찾아갔습니다. 대령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왜 이 미국인 복음 전도자를 모셔 올 수 없습니까? 빌리 그레이엄도 그곳에 왔었는데요. 왜 이 형제님은 모셔 올 수 없습니까?” 그러자 대령이 말했습니다. “못 모실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 설교자가 누구입니까?” “브래넘 형제님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요? 그분이 미국에서 우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셨는데, 어머니가 치유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형제님, 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문이 활짝 열렸고, 우리는 그대로 들어가 집회를 열었습니다.
첫날 밤, 군중을 빠져나와 들어가려는데... 우리는 신유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는 아예 다루지 않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먼저 확실하게 복음 위에 서게 했습니다. 저를 밖으로 나오게 하면서 덤불 속에서 총에 맞지 않도록, 사람들이 제 주위를 이렇게 계속 빙빙 돌게 했습니다. 제가 안에 들어갈 때까지 저를 조준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첫날 밤 우리는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저... 광신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무사히 차에 탔습니다. 빌리는 누군가에게 거의 붙잡힐 뻔해서, 제가 붙들어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안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둘째... 셋째 날 밤에 병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사람들이 강단으로 데려온 한 아이를 통해 제 평생 가장 감미로운 경험 가운데 하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 아닙니다...
이런 난폭한 행동을 한 이들이 독일 국민 전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사람들은 제가 평생 만나 본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제가 미국 이외의 다른 곳에 살아야 한다면 언제든 독일을 택하겠습니다. 그들은 겸손합니다. 스위스 사람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스위스 사람들도 괜찮지만, 그들은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 미국인들처럼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폭격 같은 것을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전쟁이 나도 이 땅의 풍요를 누리며 삽니다. 젊은이들이 건너가 죽고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들이 가스에 타 죽고, 그들의 팔도... 아기를 이렇게 가슴에 꼭 안은 채 미라처럼 남은 어머니의 두개골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가 무엇인지 압니다. 겸손하며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날 밤 집회에는 모든 신문사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비난했고, 어느 교회도 후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집회를 마련했습니다. 수천 명은 천막이나 우리가 있는 곳에 가까이 갈 자리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영감이 제게 임했습니다. 그곳에 누워 있는 한 여자분이 있었는데, 저는 그분의 척추가 결핵으로 침식되어 두 동강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널빤지에 묶여 있었습니다. 제가 “묶은 것을 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일어나 “아,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풀어 주십시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분은 일어나 그 건물 안을 달렸습니다. 더없이 온전하고 정상이었습니다. 맨발로 강단으로 올라왔습니다.
약 15분 뒤에 기도 줄을 세워 계속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여섯 살쯤... 아니, 여덟 살쯤 된 소녀가 왔습니다. 제 어린 베키와 나이가 비슷했는데, 길게 땋은 머리 두 가닥을 등에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강단 밖으로 떨어질 뻔하여 사람들이 붙잡아 이쪽으로 데려왔습니다. 제게 오더니 작은... 고개를 여기 아래에 숙이고, 작은 두 팔로 저를 이렇게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눈이 멀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어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위해 기도했을 때, 정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악한 위선자였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믿음을 귀히 여기셨으리라 믿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팔로 저를 감싸고, 작은 머리를 제 가슴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도 아시듯 저는 집에서 울고 있는 베키와 아이들을 두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라고 저를 여기 보내신 줄 믿습니다.” 제가 아이의 작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저것들은 뭐예요?” 저는 “얘야, 전등이란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통역자가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강단으로 달려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한 번도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우리 엄마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참 고와요”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평생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왔습니다. 다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쉰다섯 살쯤 된 남자였습니다. 평생 말하거나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가...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으로 말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아시겠지요. 제가 그에게... “이제 말을 하십시오.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라고 그분에게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엄마”라고 했습니다. 그가 “엄마”라고 했습니다. 제가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통역자는... 그는 독일 사람이면서 영어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들어 본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영어뿐이었습니다. 독일어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영어도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저 독일에서 태어났을 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영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까지 들은 말이 그것뿐이었고 제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엄마’라고 해 보십시오” 하면, 그는 “엄마”라고 했습니다. 제가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하면,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면, 그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통역자는 그 독일 사람에게, 독일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 주어야 했습니다. 영어에서 다시 독일어로 통역한 것입니다. 세상에, 다음 날 신문들이 아주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자 국교회 목사들이 단체로 내려와 저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0명, 300명쯤 내려왔습니다. 아마 이 예배당을 가득 메울 만큼 사람들이 왔을 것입니다. 큰 호텔에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마술이 아니라 참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마술이 아니라면, 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교회에 항의하고 나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날 아침 내려가서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마술이라고요? 어떤 마귀든 신유에 관여한다는 것은 절대로,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디서든 그런 주장에 맞서겠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그것을 반대합니다. 마귀에게는 신유를 행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마귀에게는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친히 ‘사탄이 사탄을 내쫓을 수 있다면 그의 왕국이 분열되어 설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사탄을 내쫓을 수 없습니다. 치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그들은 잠시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환상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해 주셔야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낮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기도 카드를 주고, 밤에 강단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들의 병과 삶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독일어를 못합니다. 저는... 보십시오. 환상을 전할 때도 그들의 이름조차 말할 수 없습니다. 철자를 하나하나 읽어야 합니다. 이름과 어디에서 왔는지가 철자로 보입니다. ‘w, x, y, o, p, q, r’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이름입니다. 제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에게 확인해 보십시오. 기도 카드는 젊은이들이 바로 집회 현장에서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기도 카드도 없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마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제가 “마귀가 치유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제가 말했습니다...
“정신 감응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고 그들이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신 감응이 눈먼 사람을 보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은 마귀가 들렸다’고 말했을 때 말입니다. 그분이 일을 미리 알리시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는 마귀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일어나, 그들 가운데 또 다른 무리가 말했습니다. ‘마귀가 눈먼 자의 눈을 열어 줄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날 아침 조찬에는 훌륭한 독일인 사진사가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독일제 렌즈에 비하면 우리 카메라는 작은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망원경이나 독일제... 그런 것을 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작은 아거스 카메라를 보십시오. 저도 하나 있습니다. 모든 장비를 포함해서 69달러면 살 수 있습니다. 35밀리미터 카메라입니다. 그런데 독일제 라이카 35밀리미터 카메라는 500달러입니다. 69달러와 500달러, 그만큼 차이가 납니다. 아, 그들의 렌즈는 우리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곳에 큰 카메라를 설치해 집회... 아니, 조찬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영감이 어떻게... 그 점을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일종의 짜 맞춘 일이라고 느낍니다. 당신에게 무슨 수가 있는 겁니다. 정신 감응이지요. 독일 사람들이 자기 카드를 보든지 하면, 그 내용을 당신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그러면 치유는 어떻게 일어납니까? 앞으로 일어날 이런 일들은 누가 미리 알립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도 정신 감응일 수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물론이지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지는...”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여러분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고, 과연 눈을 뜨게 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그렇게 영적으로 눈먼 것보다는 육신의 눈이 먼 편이 낫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완전히 눈이 멀어, 눈을... 아니, 팔을 붙들려 이끌려 다녀야 한다면, 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눈이 되어 여러분을 인도해야 한다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선지자들이 보기 원했던 일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이 보기 원했던 일들을 보고서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여러분에 대해 참으로 옳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그때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 강단에 놓아둔 주의 천사 사진은 말입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신다는 증거, 과학적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따라가며 광야를 통과하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려간 바로 그 불기둥... 아니, 빛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언약의 천사,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언제나 계셨습니다. 오늘날도 같은 분이십니다.” 그들은 “아, 미국의 광신자들, 신유 집회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그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제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님들은 자기 사역을 직접 변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들어 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믿고 싶다면 여러분은 믿는 사람입니다. 믿고 싶지 않다면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뿐입니다. 저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설명하려 한다면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눈으로 보아서도, 지식으로도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명할 수 있다면, 설명이 가능한 일이라면 더 이상 믿음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자세한 내용을 말해 줄 수 있으니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신비이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아멘.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믿어야... 아니,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앉아서 서로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중대한 순간, 수백 명의 국교회 목사들이 그 조찬 자리에 앉아 있고, 커다란 독일제 카메라가 놓여 있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사진사는 사진을 찍고 롤러를 돌려 필름을 넘겼습니다. 35밀리미터 카메라처럼 하되, 이만큼 큰 카메라였습니다. 그렇게 큰 카메라로 모든 것을 찍고, 찍고는 돌리고,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로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제가 말씀드리는 그분이 지금 여기 계십니다. 여기 임재해 계십니다. 제게 보입니다. 그분이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러자 독일인 사진사가 카메라를 이렇게 바로 들이댔습니다. “한번 찍어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3만 2천 명의 공산주의자를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통역자가 그에게 전했습니다. 제가 “이분은 독일 사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왔습니다. 독일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최근에 회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집어 들었지요. 가톨릭 신자로 자랐습니다.” “예.” “성경을 집어 들고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가톨릭교회를 피해 숨어 있으며, 저 멀리 산속에 고아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침도 먹을 수 없을 만큼 위장병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당신은 치유받았습니다. 아침을 드십시오.’” 그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들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있던 카메라가 그 장면을 하나하나 찍었습니다. 사진사는 주의 천사를 세 장 찍었습니다. 그 뒤로 대여섯 장, 그 전에도 대여섯 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천사가 내려오는 모습이 음화... 카메라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내려오기 시작할 때, 제 위에 임했을 때, 그리고 떠나갈 때의 모습입니다. 그 사진들이 오늘 아침 바로 이 강단에 있습니다. 독일의 모든 신문과 다른 곳에도 널리 실렸습니다. 주의 천사를 찍은 그 사진들을 지금 여기 가지고 있습니다. 아, 여러분. 주 예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 주가 그것을 심었으니, 내가 밤낮으로 그것에 물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내 손에서 그것을 빼앗지 못하도록 내가 밤낮으로 물을 주리라.” 아시겠습니까?
지금 여기 사진을 여러 장 가지고 왔습니다. 두 다스쯤 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들어 보이는 것이 그 사진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 네빌 형제님께 맡겨 드리겠습니다. 형제님이 맡아 주신다면 예배 후에 여러분에게 보여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것은 목회자 조찬 사진입니다. 위쪽에 조명이 어떻게 있고,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실 것입니다. 이 사진 뒤에... 앞에 여섯 장쯤 있고, 뒤에도 여섯 장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바로 여기 서 있는 사람이 저입니다. 저 사람은 통역자입니다. 저분은 구겐뷜 박사님입니다. 저분은 보스워스 형제님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국교회 목사들입니다. 여러 무리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때 빛이 비쳤는데, 그것이 보입니다. 보십시오. 그 안에는 빛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빛이 비쳤을 때 말입니다. 제가 일어나서 “일어서십시오. 주의 천사가 여기 계십니다”라고 했을 때,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내려오는 때입니다. 보십시오. 제가 바로 여기 서 있습니다. 그것이 내려옵니다. 올라오는, 천장에서 내려오듯 내려오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모두 쳐다보는 것이 보이시지요. 그리고 이 사진은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여기 옷깃을 뒤로 돌려 입은 이 사람이 저와 이야기하던 사람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가 바로...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 환상은 바로 건너편에 서 있는 이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기도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거기 있습니다. 이것은 빛이 이미 내려왔을 때입니다. 거기서는 제 어깨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환상이 나타나 그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얼굴에서 떠나갈 때입니다. 환상으로, 주의 천사로 얼굴 반쪽이 가려져 있고, 주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 보이십니까? 이것은 다 끝난 뒤입니다. 어디에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사진이 독일 전역에 퍼졌습니다. 이제 미국과 여러 종교 잡지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려올 때, 이것은 임해 있을 때, 이것은 떠나갈 때입니다. 아,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니 갈등 가운데서도 결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행해 오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고향인 여기서는 이해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고향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곳입니다. 제 친구인 여러분에게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기 사람들 가운데서가 가장 어렵습니다. 물론 그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성경 말씀은 성취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은 깨뜨릴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작고 낡은 예배당, 소박한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찾아오신 손님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오늘 아침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동안 여러분도 함께 이 교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로지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저는 제 삶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 지점을 향해 왔습니다. 마침내 곧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조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을 대표하지 않고 형제들 사이에 서서 이쪽저쪽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서 있다 보니, 제가 이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듯 저는 여기 작은 침례교회에서 데이비스 박사님에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다고 여러분께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한쪽은 침례교인들과 근본주의자들로, 말씀을 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순복음, 감리교, 나사렛교, 필그림성결교, 오순절교인 등 모두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한쪽은 성령을 받는 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제멋대로 다루며,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릅니다. 반면 이쪽 사람들은 말씀을 알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거기에 믿음이 없습니다. 침례교의 신학에 오순절의 믿음을 결합할 수만 있다면, 보십시오, 교회가 힘차게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오순절의 그 놀라운 은사들을 여러분이 짓밟고 잘못 다루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 가지 보여 드리기 위해 얼마 전에 있었던 작은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가 우리 예배당이고 우리 집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원하는 것을 설교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니, 주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설교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 욕망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에 누군가가 수레에 대해 한 말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훌륭한 집회를 열었습니다”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영이 부족했습니다.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설교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농장에서 살던 때에는 빈 수레를 끌고 밭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조그만 울퉁불퉁한 곳만 지나도 삐걱거리고 덜컹거리며 튀어 올랐지요. 그런데 좋은 식량과 농산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면, 같은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을 가득 실은 수레였거든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것을 가득 실은 든든한 수레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수레입니다.
얼마 전의 일인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제 신학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구속하는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른 것들이 어떻든, 은사가 얼마나 많든, 이것이 얼마나 많고 저것이 얼마나 많든,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그뿐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아침 제가 교단 이름을 말씀드립니다. 악의를 품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그에게 다가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가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설교자이시라고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에... 하나님의 성회의 유력한 한 사람이 제가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오셔서 가입하십시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순절 교단이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형제님. 하지만 저는 여러분 모두 사이에 서서 ‘우리는 형제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제 생각 중 어떤 것은 길에서 크게 벗어났을 수도 있고, 형제님 생각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형제로 지냅시다. 아시겠습니까? 형제로 지냅시다.” 그는 “아, 교회는 우리에게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한번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가 보았습니다. 양쪽을 시험해 보려고, 각각 반대편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 형제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목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디 소속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침례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 제가 성령을 받았느냐고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방언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 예. 방언을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받으셨군요.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예, 성령을 받았고 그 증거로 방언을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러면 그 딱딱하고 형식적인 침례교회에서 나오시겠군요. 할렐루야!” 그는 몇 차례 방언을 했습니다. 제가 “예, 성령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런 식으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 늦게 말씀해 주셨군요. 저는 벌써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저는 “저는... 저는... 이미...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런 식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단을 믿습니까?” 제가 “아, 저는 그것을 이단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우리 집에서 나가십시오.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겠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곳의 한 나이 든 침례교 설교자를 만났습니다... 커티스, 제가 피닉스에 처음 갔을 때였습니다. 그분을 찾아가 안으로 들어서며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침례교 설교자라고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쪽 멀리, 그곳에서 폐 질환을 앓던 그 어린아이가 치유받았을 때였습니다. 저쪽 결핵 요양소가 있는 그곳 말입니다. 그곳 이름은 잊었습니다. 저는 그저 “침례교 설교자라고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예”라고 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오순절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예, 오순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앞의 사람에게는 침례교라고 했지만, 이 사람에게는 오순절이라고 했습니다. “예, 오순절입니다.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그 증거로 방언을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음, 형제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이지... 어쩐지 그런 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가 말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뿐이지요.” 그는 제게 다가와 제 손을 잡고,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팔로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형제 아닙니까? 우리는 천국에 가고 있지 않습니까, 형제님?” 제가 “예. 그리고 형제님, 실은 저도 형제님 쪽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분은 그렇게 함으로써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했고, 다른 사람은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신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가 그의 신학에 거스르는 말을 하자마자 발끈했습니다. 그에게는 자기 신학밖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른 사람의 신학에도 제가 거슬렀지만, 그에게는 자기를 붙들어 주시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아멘. 아,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가득 실은 좋은 수레가 되십시오. 서로 믿고, 하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아멘.
이 복된 성경을 펴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니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성령의 기름부음 가운데 사랑받는 자녀로 함께 모으시며,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모든 불법을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고, 독수리의 젊음같이 우리의 젊음을 새롭게 하셔서, 우리가 아주 높이 올라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멀리 내다보며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아침 우리에게 독수리의 눈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멀리 내다보며 예수님께서 오실 위대한 때가 다가오는 것을 보시는 성령을 주셨습니다. 모든 어려움은 끝나고, 모든 질병도 끝나며, 모든 슬픔과 죽음은 달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기쁩니다. 지금 이 위대하고 놀라운 시대에 살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은 것도 기쁩니다.
또한 사탄이 교회에 마지막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시대가 지나면 그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뒤에 교회는 자기를 사랑하시는 분의 날개 아래 안전하게 있을 것입니다. 사탄이 종교의 모습으로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온갖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자기가 삼키려는 것을 삼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너무나 교묘하고 간사하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일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말입니다. 그러나 오 주님, 주님은 피난처를 찾아 주님의 품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보호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읽는 일을 축복해 주십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통역자도, 말을 옮겨 줄 사람도 필요 없는 고향에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영광의 본향에 가면 번역하는 사람도, 통역하는 사람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는 우리 모두 하나의 위대한 언어를 말할 것입니다. 그때 바빌론은 과거가 되어 잊히고,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말씀을 우리에게 풀어 주십시오. 우리를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죄인을 축복해 주십시오. 말씀이 전해지는 동안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깨닫게 하시고, 남자든 여자든 나아와 오늘 자신의 삶을 주님께 내어 맡기게 해 주십시오. 지금이 마지막 날들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 성도들이 힘을 얻게 해 주십시오. 오늘 새로운 비전을 품고 이곳을 떠나 주님의 힘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 병든 사람들이 나아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전함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모든 병자가 치유받게 해 주십시오. 몹시 아픈 모든 사람들, 병든 이들과 눈먼 이들, 암에 시달리는 이들, 심장병과 온갖 상태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치유자이십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능력은 자기 안에 전혀 없음을 깨닫는 가운데, 오늘 아침 영으로 주님 자신을 나타내 주십시오. 치유는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그분이 너무도 가까이 계셔서 오늘 모든 사람이 자기 치유를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자기 구원을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여기서 짧은 본문을 택하여 극 형식으로 잠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전에 이 주제로 한 번 말씀드렸는데, 예배당에서 다시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최근 어느 날, 저는 켄터키주 캠벨즈빌에 있었습니다. 그곳의 작은 숙소, 작은 모텔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밤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 나오는 아주 불결한 한 여자가 예수님께 큰 영예를 돌린 대목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여자들 중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이야기도 전해져야 하리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이 일에 대해 설교한 적이 없으니, 짧은 극 형식으로 한번 말씀을 전해 보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니, 며칠 전에 부탁을 받았습니다. 예배당으로 돌아와 오늘 아침 다시 이 말씀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제가 그곳에서 설교할 때 계셨던 분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이제 읽을 성경은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입니다. 한 절만 읽겠습니다. 집에 가셔서 나머지를 읽어 보십시오. 누가복음 7장 36절입니다. 아니, 좀 더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는 것이 좋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과학이 일어나 “아, 그 점에서는 하나님이 틀렸습니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몇 년 뒤에는 돌아와 “알고 보니 그분이 옳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처음에는 과학적으로 그분이 틀렸다고 입증합니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낡은 신학을 다 허물고 돌아와서 그분이 옳았다고 입증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그들을 웃으시며 이러실 것 같습니다. “아이고, 가엾은 어린아이들아. 왜 정신을 차리지 않느냐? 와서 나를 섬기고, 내가 그 일에 대해 한 말을 그대로 믿으려무나.” 아시겠습니까?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을 찾으실 시간을 드렸습니다. 바리새인들 중 하나가 그분께서 자기와 함께 잡수실 것을 그분께 구하매 그분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음식 앞에 앉으시니라. 보라, 그 도시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신 것을 알고는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분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 곁에 서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여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며 그분께 향유를 부었느니라. 이때에...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대언자라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만일 대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이 여자가 누구이며 또 어떤 여자인지 알았으리라. 그 여자는 죄인이니라. (그분이 선지자였다면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그분을 거기 모셔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말씀하소서, 하매, 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천 닢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닢을 빚졌는데, 그들이...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두 사람 모두를 너그러이 탕감해 주었나니 그러므로 내게 말해 보라.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탕감해 준 사람이니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하시고, 그 여자를 향해 돌아서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녀에게 이르노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그녀의 많은 죄들이 용서되었느니라. 이는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적은 것을 용서받은 자, 바로 그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 죄들이 용서되었느니라, 하시니, 그분과 함께 음식 앞에 앉아 있던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죄들도 용서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더라.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아시겠습니까?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어쩐지 장면이 이상합니다. 여기 무언가 조금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무엇을 원했을까요? 그에게는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미워하면서 왜 자기 식사에 손님으로 초대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서로 사랑할 때 식사에 초대합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의 어딘가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맙시다. 잠시 이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짧은 극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공통 기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는 것은 모두 이런 방식의 경배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유를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병자들을 여기 데려오는 것입니다. 치유받으려고 신유를 믿지 않는 곳에 가지는 않습니다. 신유를 믿는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 안에서 주님을 경배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교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아주 어린 소녀가 늘 할머니만 따라다닌다고 해 봅시다. 잘 살펴봐야 합니다. 거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둘의 나이 차가 너무 큽니다. 한쪽은 여섯 살이고 다른 쪽은 일흔 살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물론 그 아이가 할머니의 귀염둥이일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럴 수도... 아니면 할머니 주머니에 사탕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 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과는 놀지 않고 할머니만 따라다니니까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과 함께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과 놉니다. 성경의 이사야서에서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노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를 보십시오. 저는 미국 아이들과 독일 아이들이 모두 함께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독일 아이는 독일어로 재잘거리고 미국 아이는 영어로 말했지만, 함께 놀았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서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젊은 여자들과 어울립니다. 자기 남자 친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어울립니다. 중년 사람들도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이 든 여자들은... 나이 든 여자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도 서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모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키와니스 같은 모임 말입니다. 키와니스에서는 그 도시의 남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합니다. 도시의 사회 활동에 관해 공통으로 관심을 두는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모이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 자신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나누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같은 깃털을 가진 새끼리 모인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는 참으로 진리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십시오... 대머리수리와 비둘기가 교제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서로 재빨리 흩어져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함께 이야기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머리수리는 다른 대머리수리와 어디에 죽은 짐승의 시체가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도 그렇습니다. 참석할 큰 무도회나 파티 이야기를 합니다. 대머리수리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그 죽은 시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쪽에 그냥 두십시오. 세상에, 비둘기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습니다. 멀리 떠나 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건전하고 좋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죄인들은 더럽고 저속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저속한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곳 사람들까지 우리나라에는 도대체 어떤 여자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노래는 모두 우리 여자들에 관한 더러운 노래뿐입니다. 이곳에는 참한 여자도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 어떤 단체가 대집회를 열었습니다. 신문에 보도가 났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자들의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웃옷으로 다리를 가리게 해야 했습니다. 신문에 수치스러운 사진을 싣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큰 종교 단체가 독일에 왔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머리수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끼리 모입니다.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집안 식구이니 한집안 식구처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식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그들 사이에 교제가 없는 이유입니다. 밤과 낮은 교제하지 않습니다. 낮이 오면 밤은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밤이 와서 낮의 빛을 꺼 버릴 수는 없습니다. 햇빛이... 햇빛은... 낮의 빛과 밤은 같은 시간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빛이 어둠보다 훨씬 강해서 어둠이 흩어집니다. 눈여겨보셨습니까? 거미, 검은과부거미, 뱀, 온갖 독을 가진 것들, 파충류들은 밤에 몰래 기어 다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왕국에 속해 있습니다. 낮에 흉내지빠귀 같은 것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어둠입니다. 악한 것들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악합니다. 그것들이 여러분을 물었는데 즉시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교제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의 절반은 자고 밤새 돌아다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둠입니다. 악한 일이 행해지는 때는 어둠 속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빛의 자녀들이니라. 빛 가운데 걸으라. 그러면 어둠 속에서 걷지 아니하리라. 어둠 속에서 걷는 자는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걷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 압니다. 여러분이 여러 번 걸려 넘어질 수는 있어도, 우리는 본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빛 가운데 걷고 있으므로 어디로 가는지 압니다.
그런데 이 교제라는 점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이 바리새인 말입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무슨 뜻인지 아셨으면 합니다. 바리새인은 “배우”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찾아보십시오.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입니다. 미국에는 그런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그런 사람인 척하는 배우들,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업쇼 의원이 늘 하던 말처럼 말입니다. 그가 자주 쓰던 옛 구호가 있습니다. “자기가 아닌 무엇이 되려고 하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다른 누군가처럼 행세하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미국 사람들, 할리우드를 보십시오... 그곳에 가면 배우가 참 많습니다. 카메라 앞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거리로 나와서도 옛날의 어떤 인물... 어떤 사람이나 인물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여전히 연기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것은 할리우드만의 일이 아닙니다. 제퍼슨빌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배우들, 바리새인들, 자기가 아닌 무엇인 양 행동하고 꾸미는 사람들입니다. 거리에서만 그런 것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강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강단에 올라가면 강단용 목소리를 냅니다. “자, 형제 여러분, 제가 말씀드립니다.” 강단용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위선자입니다. 거리에서 말하듯 말하십시오. 무언가를 꾸며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누가 일부러 꾸미는 모습을 보면 저는 정말 싫습니다.
자매들도 때로는 남자들처럼 꾸밉니다. 집에 찾아가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존, 저 구석으로 가요. 당신은 안 간다고 내가 말했잖아요.” “예, 여보.” 그때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 여보세요...” 바리새인, 연기하는 사람이여. 그렇게 연기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십시오.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더 좋게 생각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인 척하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꾸미는 모든 것, 바리새인,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자신도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속 모습은 하나인데 입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니, 배우인 것입니다. 저는 그게 싫습니다. 그저 뭔가 바르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꾸며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어린 소녀들이 밖에 나가 이런... 할리우드 여자들 중 어떤 이가 저속한 옷을 입은 것을 보게 해 보십시오. 어느새 그 소녀도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옵니다. 배우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어떤 사람, 어떤 목회자가 사역을 하며 전국을 다니는 것을 보면, 곧바로 바리새인들, 곧 배우들이 나타나 꾸미고 흉내 냅니다. 삶의 모든 분야에 있습니다. 배우들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왜 그냥 자기 자신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좋게 보실 것입니다. 그저... 어차피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그러니 연기하지 마십시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무엇을 원했을까요? 저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께 무엇을 원했을까요? 그는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큰 잔치를 열려고 합니다. 아, 그의 집 넓은 복도를 오가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얼마나 거드름을 피우는지요. 살이 두툼하게 오른 손을 비비며 오갑니다. 아시겠지요. 손가락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제 내 연회를 열 때가 된 것 같군. 흠.” 향기가 가득한 방과 바닥에 깔린 페르시아 융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몸집 크고 뚱뚱하고 둥글둥글한 이 바리새인이 오가며 말합니다. “그런데 손님들을 즐겁게 할 만한 것만 있으면 좋겠어. 뭔가 찾아낼 수만 있다면. 물론 나는 잘 알려진 사람이지. 상류층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단 말이야.” 흥, 흥. 상류층이라! 오늘날 사람들이 마음을 쏟는 것이 바로 상류층입니다. 제가 상류층에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제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상류층은 관심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이나 하게 두십시오. 대머리수리요, 바리새인이요, 연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두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은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 눈먼 지도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의 어떤 사람이 제게 편지를 보내 “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머리에 자루를 씌울 테니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맞히면 그때 저와 이야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늙은 여우에게 전하십시오. ‘오늘 내가 마귀들을 내쫓고 내일 완전하게 되리라.’” 아멘. 아멘. 마귀, 배우입니다!
여기 그가 오가며 말합니다. “알다시피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이야. 키와니스에서도 내 말은 큰 영향력이 있지. 성전에서도 모두 나를 우러러보아. 나는 바리새 박사요, 신부란 말이야. 이 동네의 거물이지. 돈도 많고, 모두 그걸 알아. 저택에 살고 있지. 모두 나를 우러러봐. 아!” [브래넘 형제님이 손가락을 튕긴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두 손을 비비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떻게 할지 알겠어. 모두 내 파티에 모이게 할 방법을 알겠어. 온 동네가 내 이야기를 하겠지.” 그 “나, 나, 나, 나, 나, 나.”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병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병에 걸립니다. “내가 하겠다. 내가 했다. 내가 하겠다.” 그 “나”를 치워 버리십시오. 이 일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하겠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하겠다”, “내가 갖겠다”, “내가 말하겠다.” 그리고 “나, 나, 나, 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무엇을 할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늦은 저녁 무렵입니다. 해가 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누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둘러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발끝으로 서서 군중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앉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그처럼 말한 적이 없는 한 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분이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온 심부름꾼이 보입니다. 그는 명령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하루 종일, 어쩌면 이틀이나 사흘 동안 찾아다녔습니다. 저 멀리 팔레스타인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예수님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 마침내 그분을 만났는데,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땀을 흘리고 지쳐 있습니다. 다리는 먼지투성이입니다. 주인의 집에서 일하는 하찮은 하인일 뿐입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위해 일하고 온갖 궂은일을 해 줄 하인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친 채 서 있습니다. 발끝으로 서서 말합니다. “휴, 마침내 찾았구나. 내 주인인 바리새인을 위해 말이야.” 그렇게 보고 있는데... 잠시 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이 심부름꾼이 팔꿈치로 군중을 밀고 나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곳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누군가와 부딪힙니다. 어쩌면... 나다나엘이었을까요, 아니면 빌립이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 없었으니까요. 어쨌든 그는... 잠시 극으로 그려 봅시다. 그가 부딪힌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제 주인께서 전하라는 중요한 전갈이 있습니다. 뵐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 빌립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가서 자녀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빌립을 붙들고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선생님... 제 주인께서 선생님의 주님께 보내신 아주 중요한 전갈이 있습니다. 잠깐만 그분과 이야기하며 전갈을 전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고는 가겠습니다.” 마침내 빌립이 그를 그곳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 이 사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것 같습니다. 어떤 유력한 사람에게서 왔는데, 주님께 드릴 전갈이 있답니다.” 심부름꾼이 예수님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정중하게 심부름꾼에게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가 말합니다. “선생님, 제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께서 댁에서 큰 연회를 여십니다. 잘 알려진 분이지요. 큰 잔치를 여시는데, 아, 참으로 훌륭한 음식을 차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다들 아시지요. 그래서 어느 날 어느 날짜에 내려오셔서 잔치의 손님이 되어 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거기 서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아마 그들이 한 것과 똑같이 하셨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안 됩니다, 주님. 안 됩니다. 그 바리새인에게는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주님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여기 수천 명의 병자를 보십시오. 주님, 모두 주님을 만지려고 합니다. 저 아래 뚱뚱한 바리새인에게 내려가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돈이 넘쳐납니다.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로 내려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주님.” 빌립이 “가지 마십시오, 주님”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다나엘과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도 말합니다. “오 주님,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 바리새인은 주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무슨... 주님을 비장의 카드로 쓰려는 것입니다. 속셈이 있습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제 주님은 초대받으시면 어디든 가십니다. 그분은 “네 주인에게 전하여라. 어느 날 어느 시각에 내가 거기 있겠다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부름꾼은 고개를 숙이고 떠나 주인을 만나러 달려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저 그 전갈만 전하고 갔을까요? 모든 군주의 군주 앞에 서서 그분을 알현하고, 영광의 왕과 직접 면담하면서도 자기 기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일과 주인의 일에 너무 사로잡혀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 제가 그의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예수님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어려움을 가지고 날마다 그분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있을 때면, 그분께 경배드리기 전에는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 심부름꾼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주님, 제가 주님 앞에 서 있고 주님께서 제게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아니, 맨 먼저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인인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어야 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께 용서를 구했으리라 믿습니다. “주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바리새인의 집에 있는 하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할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일상사와 세상의 법을 챙겨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들에 너무 많이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까? 아, 자동차를 닦아야 합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갈 수 없습니다. “아니요. 예수님께서 교회에 오신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거기 갈 시간이 없어요. 오늘 엔진오일을 갈지 않으면 내일 베어링이 타 버릴지도 모릅니다.” 타 버리게 두십시오. 저는 제 혼이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받느니 베어링이 타 버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날마다 그처럼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들은 자기 기회를 보지 못합니다. 그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할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합니다. “교회에 갈 수 없어요. 챙겨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데리고 가십시오. “이웃들이 뭐라고 할 텐데요.” 이웃이 뭐라고 하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모든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분께로 나아가십시오. 거기 이르면 그분께 여러분의 혼을 쏟아 놓으십시오.
“주님, 이 포드 대신 캐딜락을 주시면 내년에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러이러하게 해 주시면 저도 이것저것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아와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하나님, 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제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멀찍이 서서 연기하는 바리새인이 되지 마십시오.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는 수많은 세상일과 사소한 일들을 잔뜩 들고 달려오지 마십시오. 자동차를 비롯하여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혼을 돌보십시오. 그것을 먼저 챙기십시오. 그 속을 바로잡으십시오.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깊고 확고한 화평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내려앉고, 그분께서 입 맞추어 모든 얼룩을 지워 주심을 느낄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형제님, 그 뒤에는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분께 닿았다면 말입니다. 누구든 그분 앞에 나아가 말씀을 나눈 뒤 떠날 때, 이전과 똑같은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변하게 됩니다. 그분과 이야기하면 여러분의 혼에 결코 잊지 못할 감명이 새겨집니다.
그분과 처음 나누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생생히 기억나는지요. 저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그분께 말씀드리기가 부끄러워 편지를 썼습니다. 그분이 읽으실 수 있도록 숲속 나무에 붙여 두려고 했습니다. 제 삶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그 나무를 지나가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그냥 말씀드리면 들으실 수도 있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 잠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되어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분께 어떻게 나아가느냐,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잘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들고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혼의 필요를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분께 사정을 낱낱이 말씀드리며 나아갈 것입니다.
심부름꾼은 가 버립니다. “아, 이제 다 끝났어.” 아주 만족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 주인이 시킨 일을 다 했어.” 여러분도 직장에서 상사가 시킨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커튼을 바꾸든 무엇을 하든 남편이 부탁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은 어떻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물론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이제 다음으로 그가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잔치를 베풀 때는 부자들만... 동방을 알려면 한 번은 가 보아야 합니다. 그곳에 가서 풍습이 어떤지 보면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렇게 큰 상을 차려 놓고 식사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앉아서 먹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여기 앞에 파란 옷을 입고 작은 분홍 리본을 단 소녀 같은 아이들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팔에 기대어 먹고 싶어 할 때가 많습니다. 아시겠지요. 사실은 그것이 옳습니다. 예, 옳습니다. 지금 엄마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오늘날 예절에는 맞지 않아도 팔레스타인에서는 맞습니다. 그들은... 의자에서 먹지... 의자에 앉지 않습니다. 긴 의자에 누워서 먹습니다. 그래서 긴 상을 차리고, 이렇게 비스듬하게 긴 의자들을 쭉 놓았습니다. 각 사람은... 하는 대신에...
대략 이런 식입니다. 긴 의자를 이렇게 놓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시범을 보인다.] 먹을 때는 이렇게 눕고, 손을 이렇게 올려서, 이렇게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좋겠지요? 예수님과 그 일행은 당시 그렇게 식사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대어 누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얼마나 훌륭한지요. 이 바리새인도 아주 푸짐한 음식을 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 희생물로 바쳐지는 어린양마다 자기 몫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일꾼들이 가지치기 갈고리를 넣어 건져 올린 것은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로... 정말 돈이 많았습니다. 재산가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난한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그 위선자는 그분을 조롱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군. 그 광신자가 내 잔치에 오겠다고 했어. 호호호호. 바리새인 존스가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도 그를 미워하지. 아주 재미있겠는걸? 그는 자기가 선지자라고 하잖아.” [녹음 공백] “하하하. 우리는 아닌 줄 알지. 그러니 그가 오면 좀 놀려 먹어야겠어. 재미 좀 보자고.”
그렇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 시간을 내는 부자는 아주 적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모든 부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집과 땅과 자동차와 온갖 것을 가지면, 그것들에 너무 바빠 예수님을 위한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상대하는 부류의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일을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어떻게 무릎을 꿇고 울며 하나님께 간청하고, 거리를 다니며 간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자기 사회적 지위가 무너지고, 망가질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영광 가운데 제 자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사회적 지위는 관심 없습니다. 상류층은 여러분이 가지십시오. 어차피 불에 타 껍질만 남을 테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거기서 그가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아, 이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몰려오겠지? 하! 저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믿잖아. 그러니 내 집 주위에 가득 모이겠지. 아, 신문들이 실어 줄 거야. 말하자면 엄청난 잔치를 벌이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런 영은 아직도 존재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교만, 아, 교만은 저주받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성직자 예복을 입어야겠어. 그리고 나는... 내 하인들은...” 그들이 하인들에게 어떻게 옷을 입히는지 보셔야 합니다. 세상에, 그들은... 때로는 인도 사람들을 데려오는데, 정말 잘 차려입습니다. 신발 앞코와 고운 옷에 작은 방울을 답니다. 걸을 때마다 음악이 나옵니다. 접시에는 향신료를 잘 넣은 양고기와 온갖 음식이 가득합니다. 그것을 이렇게 들고 나옵니다. 한 손은 이렇게 뒤로하고, 발끝은 이렇게 움직이면서 음악을 냅니다. 그렇게 나와서 음식을 차려 놓는 모습을 보면, 배가 고프지 않았다가도 배가 고파질 것입니다. 아,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요. 요리하고 차리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마침 때도 내... 집 안에서 하지는 말아야겠어. 그러면 내가 가장 멋지게 차린 모습을 못 보는 사람이 너무 많을 테니까. 아!” 아시겠습니까? 위선자, 바리새인, 배우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기 종교를 보여 주려고 교회에 갑니다. 세상에. 그렇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녀. 교회에서는 제법 착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아주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하겠지.” 바리새인, 배우인 여러분. 예수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아십니다. 그가 내려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밖의 베란다로, 뜰로 옮겨야겠어. 여기 내가 가진 이 훌륭한 포도들, 이 크고 하얀 포도들 말이야. 아, 맛있지. 때를 딱 맞췄어. 한창... 수확할 때가 되어 딱 잘 익었군. 그 냄새, 이 사이로 풍겨 오는 향기라니, 정말 멋지지 않겠어? 거기 상을 차려 놓으면 사람들이 모두 대문 주위에 모여 구경하겠지.”
동방 사람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늘 뭔가를 빤히 바라봅니다. 군중을... 사람들을 모으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이든 시작만 하십시오. 모두 올 것입니다. 모두 바로 거기 와서 구경합니다. 아시겠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 대문 주위에도 여기저기에도 사람들이 서 있겠지. 그리고 앞으로 일 년 동안 온 도시에서 내 이야기를 하겠지. 내가 그렇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될 거야. 아, 내 명성이 높아지겠군.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나”가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내가 무엇이 될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겠어. 가입하겠어. 물 뿌림을 받겠어.” 혹은 여러분이 하는 어떤 절차든 말입니다. 여러분을 교회에 받아들이고, 악수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사람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여길 거야. 나를 이렇게 여길 거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오는 이유가 고작 그것입니까?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배우, 바리새인이여.
저는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려고 그리스도께 왔습니다.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분을 더 높여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보게 하십시오. 얼마 전 어느 도시에 치유 대전도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시대의 인물”이라는 말과 사진이 신문에도, 벽에도, 온갖 곳에 붙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일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여기에 이 시대의 인물이 있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 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 저 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그분이 이 시대의 인물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배우들, 바리새인들의 무리입니다. 아멘.
보십시오. 아, 그는 그곳에서 성대하게 잔치를 벌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촛불 같은 것을 켜서 공중에 매달아 놓고, 군인들도 곁에 세워 두어야겠어. 경비병들이... 하인들이 횃불을 들고 서 있으면 얼마나 멋지겠어?” 아, 그렇게 두 손을 비비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큰 연회 날이 왔습니다. 이제 잔치가 차려질 것입니다.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잠시 뒤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박사, PhD, FD, 무슨무슨 D 학위를 가진 존스 박사가 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거물이 마차를 타고 와서 멈춥니다. 부자들 곁에는 언제나 하인들이 무더기로 있습니다. 누군가 나와서 그의 말들을 맡아 마구간으로 데려가 먹이고 손질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집 안으로 맞아들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사람이 집에 올 때, 먼저 이 점을 보십시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걸어서 왔습니다. 이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었습니다. 겉옷을 입었는데, 옷자락이 발까지 내려왔고 발에는 샌들을 신었습니다. 속옷은 무릎까지만 내려와 여기 무릎에서 끝났습니다. 겉옷 아래에 입는 속옷 말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걸으면 겉옷이 움직이면서 먼지를 쓸어 올립니다. 먼지가 무릎에, 무릎 아래로 내려앉아서 몹시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발 씻는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발이 더러웠으므로 그것은 관습이었습니다.
그때 팔레스타인에는 많은 대상 행렬이 지나갔습니다. 길은 우리처럼 콘크리트를 깔거나 기름으로 포장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시골 어디에 있는 오래된 오솔길처럼 먼지투성이에 울퉁불퉁하고 거칠고 돌이 많은 길이었습니다. 짐을 실은 짐승들이 그곳을... 지나가면서 땅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 새들이 와서 쪼아 헤치고 흩어 놓았고 그것이 다시 먼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을 겉옷을 입고 걸으면 흙먼지가 날아올라 다리에 붙었습니다. 냄새도 났습니다. 마구간 근처처럼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집에 오면 먼저 발을 씻어 주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빌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어떻게 했는지 시범으로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리 와 주십시오. 잠시 거기 앉으십시오. 먼저 들어오면... 하인들 가운데 가장 품삯을 적게 받는 사람은 발 씻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그들 가운데 가장 낮았고, 품삯도 가장 적게 받았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 하인의 자리를 취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제게는 그분이 하나님이셨다는 증거입니다. 발을 씻기려고 가장 낮은 자리를 취하셨습니다. 온갖 하인들이 있었지만, 가장 낮은 사람은 발을 씻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발에서 배설물과 온갖 것을 씻어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하인이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너무 뻣뻣해서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가장 낮은 자리를 취하셨습니다. 발 씻기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영광의 왕께서 겸손을 보이시고, 여러분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을 보이시려고 발 씻기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너무 뻣뻣하여, 몸을 굽혀 길거리의 거지와 악수하고 주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아, 여러분은 참 잘났습니다. 그분이 가장 낮은 발 씻기는 하인이 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그리 훌륭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사실 마음으로는 가장 높으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신 그분이 가장 적은 품삯을 받는 발 씻기는 하인이 되셨습니다. 음. 위대하신 그분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셨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구속하여 위대하게 만드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십니까? 저는 여행하면서 이런 점을 보았습니다. 보통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사람들, 정말 위대한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저는 그들이 위대한 사람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과 헤어지려 할 때면, 그들은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가 위대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전부인 줄 압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자랑하거나 영예를 가로채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하신 분,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하신 분,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그분이 겸손히 발 씻기는 하인이 되셨습니다. 모든 영원과 모든 영광의 왕, 하늘과 땅의 창조주께서 사람들의 발에서 배설물을 씻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대단한 줄 압니다. 50달러짜리 양복을 입고... 오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걷습니다. “아,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해 있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아, 가련하고 비참하고 불쌍한 여러분. 바리새인입니다. 그저 연기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구원이 있다면 보여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 나는 작년에 자선단체에 50달러 수표를 보냈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인 척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왜 나가서 무언가를 하지 않습니까? 그저 연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집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가 정말 환영받으려면 주인이 그를 환영했습니다. 하인이 문에서 그를 맞았습니다. 먼저 몸을 굽혀 신을 벗기고, 그의 발을 이렇게, 여기 이렇게 잡아 자기 발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낮추어 이렇게 발을 씻깁니다. 아주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은 뒤, 다른 발을 씻깁니다. 그의 샌들을 가져다가 이렇게 위쪽 선반에 놓습니다. 그런 다음 손을 뻗어 대신 신을 멋진 새틴 샌들 한 켤레를 가져옵니다. 비단이나 새틴으로 된 것입니다. 발을 잡고, 다 말라서 산뜻해지고 온갖 배설물이 씻겨 나간 뒤에 그것을 신겨 줍니다.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가져와 아주 잘 맞을 때까지 신겨 줍니다.
이제 깨끗이 씻었습니다. 꽤 편안해졌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방으로 들어갑니다. 앞의 사람은 문에서 그를 맞았던 것입니다. 이제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다른 종이 서서 기름 한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것은 나드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유명한 물건인지요. 한 손에 조금, 다른 손에도 조금 부어 두 손을 비빈 뒤 얼굴과 목에 바릅니다. 팔레스타인의 직사광선 때문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늘 기름을 발라 두어야 합니다. 햇볕이 거의 살갗을 벗겨 낼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과 뺨에 바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름은 상할 수 있습니다. 올리브유를 오래 두면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거기에 나드 향료를 넣습니다. 그것은 아주 값비싼 것입니다. 저 아래 아라비아에서 가져옵니다.
장미를 보십시오. 장미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작은 사과 같은 것이 남습니다. 여러 번 보셨을 것입니다. 작은 봉오리 같은 것입니다. 저 멀리 아라비아의 높은 산에 자라는 유명한 관목이 있습니다. 장미꽃이 지고 나면 그 작은 봉오리를 떼어 내어 껍질을 벗깁니다. 그러면 아주 놀라운 향기가 납니다. 제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작은 봉오리 하나를 손에 이렇게 문지르면 2주 동안 그 향수 냄새가 납니다. 아, 아주 값비쌉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만나러 왔을 때 가져온 보물 가운데도, 저 아래 이집트에서 온 이 유명한 향료가 있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것을 기름에 넣습니다. 아, 아주 값비쌉니다. 그렇게 넣어서 얼굴과 목에 바릅니다. 그러면 냄새가 나던 대신에... 발을 씻겨 배설물과 온갖 것이 다 씻겨 나갔고, 이제 얼굴과 목에도 온통 기름을 바른 채 앉아 있습니다. 수건을 주면 이렇게 톡톡 닦아 냅니다. 그러면 산뜻해집니다. 그다음에 주인에게 갑니다. 네빌 형제님, 바로 여기서 일어서 주십시오. 자, 형제님이 제 손님이라고 합시다. 처음 만나면 이렇게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에 얹습니다. 그리고 그도 이쪽 어깨에 이렇게 손을 얹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내밀어 목에 입을 맞춥니다. 그다음에는 그 손을 내리고 이 손을 올리고, 이 손은 이쪽에 놓고, 거기 목에 입을 맞춥니다. 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 입맞춤을 받았고, 형제가 된 것입니다. 환영받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냉장고를 열어도 되고, 앉아서 자기 집처럼 편안히 지내도 됩니다. 형제입니다. 할렐루야. 발도 씻었습니다. 산뜻해졌습니다. 기름도 발랐습니다. “환영합니다” 하는 입맞춤도 받았습니다. 아멘. 이제 형제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들어가 앉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환영받았기 때문입니다. 씻었고, 깨끗해졌습니다. 기름도 발랐습니다. “환영합니다” 하는 입맞춤도 받았습니다. 주인이 입을 맞춘다는 것은 그를 형제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집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가 냉장고를 열든 무엇을 하든, 자기 집처럼 편안히 지냅니다. 이제 괜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하인은 어떻게 예수님을 그냥 지나가게 했을까요? 여기 그분이 저녁 식사... 아니, 잔칫상에 발도 씻지 못한 채 앉아 계십니다. 저 구석에 앉아 계십니다. 아, 제가 그 하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어쩌다가... 물론 존스 박사의 발은 씻겼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씻겼습니다. 씻기고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시몬은 그에게 환영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쪽에 서서 아주 즐겁게 대접받고 있습니다. “아, 존스 박사님, 그거 아십니까? 얼마 전 저기 어디에서 바리새인 아무개가... 바리새인 아무개 기억나시지요? 기억나십니까?” 아,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이야기하느라 너무 바빠서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감리교인지 침례교인지 장로교인지에 너무 관심을 두느라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그 하인의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분 발 앞에 엎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어떻게 놓쳤을까요? 아, 큰 교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너무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든 들어오셨습니다.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가야겠다.” 그들은 뜨거운 팔레스타인 길을 수백... 약 100마일이나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곳에 있겠다고 하셨을 때, 그곳에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여기 병원에서 죽어 가며 누워 있을 때도 그분은 거기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저를 치유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삶이 끝나고, 마지막 싸움을 싸우고, 제 나날이 다 지나가서—저도 이제 늙어 갑니다—요르단 강에 이르게 될 때도, 그분은 거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거기 계실 것입니다. 모든 약속을 지키십니다.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나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실 것입니다. 예전에 여기서 이런 짧은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으리,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속하려 죽으셨네. 어둠이 내 눈앞에 닥칠 때, 그분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리.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으리.
저는 여기서 수많은 강을 홀로 건넜습니다.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친구와 친척들에게 조롱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분이 거기 계실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거기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이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줄 압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 계실 것입니다. 예, 어쩌면 조금 일찍 오셔서라도 반드시 거기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대로 제시간에 바로 그곳에 계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는 시간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위한 시간은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대통령이 도시에 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환영하는지 보십시오. 대통령이 이 도시에 온다면, 기차에서 내리는 곳부터 묵을 호텔까지 꽃을 흩뿌려 놓습니다. 깃발을 모두 내걸고, 거리에 꽃다발을 던지고, 꽃을 든 소녀들이 앞서갑니다. 악대가 연주하고, 음악이 울리고, 가수들이 노래합니다. 대통령이 환영받는다고 느끼게 하려고 온갖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러분, 예수님이 오셔도 여러분은 그분을 환영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 가끔 한쪽에 있는 작은 골방의 작은 자리나 내드립니다. 하지만 손님들 앞에서는 그분을 부끄러워합니다. 기도로 그분을 부르려 하지도 않습니다. 아, 그분은 골방의 작은 자리라도 받으실 것입니다... 어쩌면 다락에, 가끔 그분을 다락으로 모시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오시면 “아,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알아. 아무도 내 기도 소리를 못 듣게 살짝 다락으로 올라가야지”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좋은 점은, 그래도 그분은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둘째 자리에 계시겠습니까?” “그래.” “예수님, 셋째 자리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사실 네가 주는 자리라면 어디든 받겠다.”
그러나 대통령은 온갖 것을 다해서 환영합니다. 이웃을 환영하며 큰 식사를 차립니다. 집을 청소합니다. 모든 것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그분은 받을 수 있는 대로 받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먼지 쌓인 낡은 다락이나 어디 지하실로 모시고 갑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교회에 한 번 갔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1년에 한 번쯤 말입니다. 아, 가장 화려한 옷을 입었습니다. 부활절이었습니다. 작은 모자를 머리 옆으로 비스듬히 썼습니다. 설교자가 20분이나 설교했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로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가 새 옷을 넣어 두고 “자, 1년 치 종교 생활은 충분히 했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 때문에 여러분에게 잔소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받아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만큼도 받지 못하십니다. 여러분은 아무 자리나 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오늘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까?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다락만 내드리고, 어쩌다 짧은 기도나 드리고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어떤 자리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곳에 예수님이 그 사람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초대받지 못하여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모두 주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저기 몹시 불편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몸에서는 길의 냄새가 났고, 발은 더러웠으며, 얼굴에는 기름을 바르지 못했고, 환영의 입맞춤도 받지 못했습니다.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셨습니다. 저 바리새인이여. 위선자여, 무엇 때문에 그분을 초대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성령께서 오시면 밀어냅니다. 결코 환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치유받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돌아다니며 그 일을 흉보고 그분을 밀어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령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령과 성화를 전하는 설교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신학을 잔뜩 갖추고, 문법도 아주 정확하고, 온갖 겉치레로 번지르르하게 꾸민, 고상한 체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원합니다. 제게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옛 방식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경 설교를 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축복하셔도 여러분은 앉아서 그것을 억누릅니다. 그분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찬양받기 원하시지만 여러분은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잘 지내십니까? 오랫동안 뵙지 못했습니다”라고는 소리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구석으로 밀어 넣고 환영하지 않습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흥, 우리 교회에서는 안 돼. 저쪽 일과는 아무 상관도 하지 마”라고 합니다. 아, 연기하는 사람이여. 교만하여 고개를 빳빳이 든 위선자여.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나의 예수님은 이 도시에 여러 번 오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 “마귀다”, “정신 감응이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위선자들이여. 언젠가 심판 날에 예수님께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도시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고 여러 일을 행하시면, 사람들은 보고서 “아, 말도 안 돼” 하며 밀쳐 버립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교회에서는 밤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까? 바리새인, 배우인 여러분은 자기 방식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오십니다. 여러분의 신학을 난처하게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초대받아 오셨고, 거기 앉아 계십니다. 이 주변의 차갑고 형식적인 시체 안치소 같은 곳들이 얼마나 여러 번 부흥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오늘 온 나라에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과 잭 슐러와 그 밖의 여러 사람이 전국을 다니며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려오시면 여러분은 그것을 배교라고 낙인찍습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같은 표적과 이적과 온갖 것을 가지고 내려오셔서 여기 계심을 입증하셔도, 여러분은 마귀라고 부릅니다. 위선자들이여, 언젠가 여러분은 텔레비전에 빠진 채 죽고 그 상태 그대로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런 척하며, 어느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잔뜩 늘어놓습니다. 배우들, 위선자들은 문턱도 밟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낡은 교회에 안 가. 거기에는 아무것도...”라고 합니다. 아, 위선자여. 예수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독일에서는 그분을 “예수”라고 부릅니다.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움직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초대받으신 손님, 영광의 군주, 생명의 샘이 환영받지 못한 채 더러운 발로 앉아 계십니다. 길에서 묻은 배설물이 발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말끔하게 단장하고 좋은 향기를 풍기는데 그들 사이에 그분이 계십니다. 지친 얼굴을 숙이고 앉아 계십니다. 수염에는 땀 자국이 있고 눈은 아래로 처져 있습니다. 입맞춤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입맞춤 받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분노하시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입맞춤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 입맞춤해 보셨습니까? 물론 할 수 있습니다. 환영받지 못한 채, 더러운 발로 거기 앉아 계십니다.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아,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더러운 발을 하시고 환영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분께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크고 멋진 교회로 모셔 들이는 대신, 식료품 장수조차 가게를 차리려 하지 않을 만큼 지저분한 길모퉁이의 작은 선교회로 밀어냅니다. 너무나 더러운 곳입니다. 저 아래, 어느 지하실에 있는 작고 퀴퀴한 곳입니다. 오시라고 기도해 놓고는 찾을 수 있는 가장 더러운 구석에 그분을 넣어 둡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오십니다. “저 길모퉁이에 있는 게 뭐야? 저 작은 광신자들의 예배당 말이야.” 그래도 그분은 오셨습니다. “거기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밖에 안 가.” 괜찮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오십니다. 그분을 환영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큰 교회에 들어오려 하시지만 여러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에 너무 바쁩니다. 거기 서 있는 위선자여. 여러분이 그분을 초대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도했습니까? 그분은 성령께서 오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에는 그분이 오실 때 무엇을 하시는지가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러분의 교회에 오시면 여러분은 내쫓습니다. 바리새인, 배우인 여러분은 어느 신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운 것을 흉내 내려 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오 하나님.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사랑 많으신 구주, 머지않아 못이 박힐 그 발, 씻지 못한 그 손입니다. 길에서 묻은 흙과 배설물로 뒤덮이고 물집 잡힌 발, 더러운 발, 귀한 손입니다. 관을 쓰신, 곧 가시관을 쓰실 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줄져 흐를 목을 가지신 분이 그 종교인들 사이에 환영받지 못한 채 앉아 계셨습니다.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나의 예수님. 오 하나님. 제가 그 하인이 될 수만 있다면. 제가 가서 그분의 발을 씻어 드릴 수만 있다면. 그분은 더러운 발로 환영받지 못한 채 거기 앉아 계십니다. 발이 너무 더러워 아무도 그분과 관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래도 오셨습니다. 그래도 오셔서 “그래, 내가 거기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의 약속도 언제나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거기 앉아 계셨고, 바리새인은 저 위에 앉아 손을 비비며 “자, 보게, 존스.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앉아 계신 줄 몰랐습니다. 그분이 불편하셨을 것 같습니까? 물론 불편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르셨... 주위에 온갖 사람이 있었지만 불편하셨습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렇게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그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자, 바깥을 보십시오. 바깥을 봅시다. 모두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데 그분은 어디 계신 거지?”라고 합니다.
이제 다른 장면을 봅시다. 보십시오. 저쪽 길을 따라 내려오는 작은 여자가 보입니다. 아, 그 도시에서 그녀의 평판이 어떠했던지요. 그녀는 죄인이었습니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매춘부였고, 평판이 나쁜 여자였으며,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녀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어쩌면 어떤 애인이 그런 삶에 발을 들여놓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품에 안고 모든 것을 약속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녀의 정조를 짓밟고, 또 다른 여자를 망치려고 그녀를 버리고 달아났을지도 모릅니다. 그것 때문에 이런 삶에 들어섰을 수 있습니다. 누가 그녀의 사연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아무도 그녀와 상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를 떠돌며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바리새인의 집을 봐. 무슨 일일까?” 물론 그런 무리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매춘부가 그런 곳에 온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바깥까지 갑니다. 오 하나님, 덩치 큰 사람의 어깨 너머를 보려고 발끝으로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들여다보려고 애씁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저것 좀 봐. 저 맛있는 음식들 말이야. 세상에, 부자들은 저렇게... 아, 정말 굉장하구나.” 그러다가 시선이 저 구석에 머뭅니다. “어머, 저기 봐. 그분이야. 그분이야. 아, 저래서는 안 되는데. 발이 더러워. 얼굴도 더러워. 세상에, 그분은... 환영받지 못하고 계시잖아.” 부자들 사이에서 그분은 좀처럼 환영받지 못하십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아, 그럴 리가 없어. 정말 그분이실까?” 다시 봅니다. “맞아, 그분이야.”
그녀는 돌아서서 군중에게서 재빨리 달려 나옵니다. 계단을 내려가 거리로 나갑니다. 삐걱거리고 흔들리는 작은 계단을 올라 자기의 초라한 다락으로 갑니다. 그곳에 있는 작은 궤짝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을 열고 작은 주머니를 꺼냅니다. 그녀가 가진 돈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봅니다. 내려놓으니 짤랑 소리가 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안 돼. 그럴 수 없어.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봐. 내가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그 잔치에는 갈 수 없어.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어쩌면 도로 넣었을 것입니다. “아, 하지만 만약... 안 돼. 그분은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선지자이시잖아. 선견자이시잖아.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그런데 저것 봐. 그분을 초대해 놓고 저렇게 앉아 계시게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 누군가 나서서 보살펴 드려야 해.” 오늘도 누군가 나서서 그렇게 해야 하지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즐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집에 있으면서 텔레비전을 봐야 합니다. 밤에는 자동차 극장에 가야 합니다. 너무 더워서 교회에 갈 수는 없습니다. 아, 연기하는 여러분...
이 매춘부는 그것을 다시 집어 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해야 해. 아, 내가 미쳤나 봐.”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아, 그분을 보면, 그 표정을 보면, 그 슬픈 얼굴을 보면... 모두 지나가면서 아무도 그분을 환영하지 않아. 모두 지나치고 그분은 외톨이로 앉아 계셔.” 오늘도 그분은 그렇게 계십니다. 모두 그분을 지나쳐 갑니다. 아, 여러분에게는 교회도 있고, 종교도 있고, 교리와 여러 가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냥 지나치며 그렇게 앉아 계시게 둡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내가 무언가 해야 해. 해야 해. 나는 ...하지 않아...” 아시다시피 여자들에게는 어떤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그것을 더 많이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남자들처럼 서서 이리저리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따져 보지만, 여자들은 대개 가서 마음에 품은 일을 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정말 해야 해.” 옷자락을 여미고, 가진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넣은 작은 양말을 집어 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초라한 집을 떠나 거리를 따라 아주 급히 갑니다. 저기 보십시오. 큰 향료 가게로 들어갑니다. 저 안에서 코가 길고 매부리코인 유대인 노인이 돈을 세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날은 장사가 부진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본전도 못 뽑았네. 본전도 못 뽑았어.” 심통이 나고 풀이 죽어 있습니다. 그때 그녀가 문으로 들어옵니다. 그는 그녀를 숙녀로 대하지 않습니다. 내다보며 “저기 누가 왔나 보게”라고 합니다. 나와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 뭘 원하오?”라고 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가게에 있는 옥합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세요. 가장 좋은 것으로 주세요.” 돈을 살짝 내보입니다. 아, 돈을 보니 이제 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예. “가장 좋은 것을 주세요.”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합니까? 남은 것을 드립니다. 아, 그렇습니다.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밤에 잠들기 전에 3분을 드립니다. 친구여, 그분은 여러분의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그저 아무것이나 드립니다. 그분은 받으십니다. 그래도 받으십니다. 받으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사는 데 가진 모든 것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장 좋은 것을 그분께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삶의 가장 좋은 것을 드리십시오. 가장 좋은 노래를 드리십시오. 모든 재능을 드리십시오. 가진 모든 것을 드리십시오. 발을 드리십시오. 손을 드리십시오. 눈을 드리십시오. 입을 드리십시오. 귀를 드리십시오. 혼을 드리십시오. 마음을 드리십시오. 찬양을 드리십시오. 가진 모든 것을 드리십시오. 할렐루야.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세요.” 그가 “먼저 돈이 얼마나 있는지 봅시다”라고 합니다. 양말에 든 돈을 쏟아 세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데나리온 280닢, 그것이 꼭 그 가격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옥합을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아 줍니다.
그가 “저 여자가 저걸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문을 나섭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늦었습니다.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래도 오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머무르지 마십시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랐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가십시오. 지금이 그때가 되게 하십시오. 오늘 아침이 바로 그 아침이 되게 하십시오.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끝까지 가겠습니다. 반드시 그곳에 가야 합니다.” 그녀가 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옆구리를 찌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기 가는 것 좀 봐. 저기 가는 것 좀 보라고. 봐. 바리새인의 잔치에 가나 봐. 바리새인이 저 여자도 초대했을까?” 아, 여러분은...
우리 미국인들은 너무 잘났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비천한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잘났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낫습니다. 가난하고 벌거벗고 가련하고 비참한 위선자여. 자신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오 미국이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너를 받아들이려 하셨으나 네가 원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소다 크래커와 개울물, 빵과 물로 연명하며 설교한 의로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내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그들을 조롱하고 광신자라고 부르며, 감옥에 집어넣고, 그들의 처소를 부수고, 멸시했습니다. 아, 여러분은 너무 잘났습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눈멀고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 여러분. 밖에 나가 온갖 치장을 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교회에 갈 수 있습니다. 온통 치장하고, 머리를 매니큐어하든지, 뭐라고 부르든지 그런 것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서커스처럼 얼굴을 칠하고 교회로 내려가 “나도 저 사람들 못지않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비참하고 눈먼 가련한 사람이여. 자신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갈아입을 옷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남자분, 오늘 좋은 자동차를 타고, 좋은 직장이 있고, 상사가 등을 두드려 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된 줄 압니다. 교회를 피합니다. 사람들이 제단에 나아가 기도하는 곳에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이웃이 여러분을 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가련한 위선자여, 자신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내드릴 자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저기 가는 것 좀 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때 미소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못 본 체 지나가네.” 그 옛 노래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낙인찍혔네, 낙인찍혔네, 낙인찍혔네, 어디를 가든 나는 낙인찍혔네. 나는 낙인찍혔네, 낙인찍혔네, 낙인찍혔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 아는 듯하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침받았네, 인침받았네, 인침받았네,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인침받았네. 오,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아멘! 나는 그분의 것이며 그분이 나의 것임을 아네.
원한다면 계속 옆구리를 찌르십시오. 저는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머지않아 그곳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길을 가며... 그녀가 갑니다. 베일을 끌어 올려 얼굴을 가립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그 모든 위선자들이 서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녀는 바로 그곳까지 갑니다. 고개를 듭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녀가 울었다는 것을 봅니다. “왜 우는 걸까?” 그녀가 멈춥니다. 줄 바깥쪽 끝에서 위를 바라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안 돼. 안 돼. 아, 도저히 이럴 수 없어. 안 돼. 하지만 내가 어떤 여자인지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죄인이여,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다. 아멘. 그래도 오십시오. 그래도 오십시오.
오, 바리새인들이여. 지금껏 교회에 다녔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그분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누구인지 아십니다. 여러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속해 있었으니 제단에 나오기가 부끄럽겠지만, 그분은 여러분을 아십니다. 여러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그녀는 멈추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도저히 못 하겠어. 도저히 못 하겠어. 나 같은 여자에 대해 뭐라고 하실까? 뭐라고 하실까? 하지만 봐, 사람들이 그분을 초대했어. 내게 기회가 온 거야.” 아,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기회가 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기회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도가 될 기회가 있습니다. 악취 나는 죄인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위선자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아니면서 교회에 출석만 하는 사람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인 척하면서 자기 악함을 감추려고 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여기 그녀가 말합니다. “아, 봐. 하지만 내가 가면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하실까?”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전에 그분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지.” 바로 그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그때부터 무언가 달라집니다. 아, 영광을 돌립니다. “어느 날 저 아래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그분 주위에 서 있었지. 그분은 귀한 두 손을 들어 올리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어.”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제게 필요한 것이 바로 안식인 줄 아시잖아요. 제 가련하고 비참한 혼이 타들어 가고 있어요. 그분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라고 하셨어. 나도 포함되는 거야. 나를 두고 하신 말이야. 물론이지. 하지만 나와 그곳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봐.” 바로 그것이 여러분과 그분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그분 사이에 가짜들이 아주 많이 서 있습니다. 그분께 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할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러분과 예수님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라.” 그녀는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형제님,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 옥합을 겨드랑이에 끼고 한 사람은 이쪽으로, 다른 사람은 저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 이를 때까지 팔꿈치로 군중을 헤치며 나아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팔꿈치로 길을 헤치듯 불신을 뚫고 나아가십시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성령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계속 밀어내며 길을 내어, 그녀는 마침내 그분께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녀가 여기 서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자기 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쓰러집니다. 땅에 엎드립니다. 흐느끼며 울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아, 죄책감이 너무나 큽니다. 그분이 거기 잔치 자리에 더러운 발로, 더러운 발로 앉아 계신 것을 보니 너무나 슬픕니다. 울고 또 울다가 어느새 정신없이 울게 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때로는 자신을 잊게 해 주십시오. 형제님, 제가 그분께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잊었습니다. 누가 주위에 있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울었습니다. 소리쳤습니다.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잊었습니다. 하나님, 이 메마른 낡은 신조와 교단들을 밀쳐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자신을 잊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어느새 자신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사랑의 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을 잊은 채 있다가, 자기 얼굴에서 흘러내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회개하는 죄인의 눈물이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의 눈물이 예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잊었습니다. 그분의 발을 문지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분 앞에 서 있을 기회를 얻어 마음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으며 그저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마음이 벅차고 자신을 잊은 나머지 머리카락이 풀려 내려왔습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머리 위에 모두 틀어 올려 두었는데, 머리카락이 풀려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자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아, 얼마나 훌륭한 수건입니까.
들으십시오. 요즘 여자들 중에는 그분의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으려면 물구나무를 서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를 잘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잠깐만요.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은 여자의 머리털이 그녀의 영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녀에게 남아 있던 유일하게 반듯한 것은 긴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발 앞에... 그분의 발 앞에 풀려 내려왔습니다. 그녀는 자기 영광을 그분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자기 영광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우리도 똑같이 하게 해 주십시오. 그분의 발을 닦고, 회개하는 마음의 샘에서, 그녀의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의 물로 그 발을 씻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너무나 가련합니다. 주님, 너무나 비참합니다. 오 하나님.” 그녀의 영광이 바로 그분 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영광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구원의 모습입니까.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있습니다. 자기 영광, 자신에게 남은 유일하게 반듯한 것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킵니다. 완전히 일어나지는 못합니다. 반쯤 몸을 일으켰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흐릅니다. 얼굴에서 샘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발을 씻습니다. 이제 이 옥합을 집어 들고 위쪽을 깨뜨립니다. 조금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 붓습니다. 전부 그 위에 쏟아붓습니다. 자기의 모든 생계 수단, 모든 영광, 모든 돈, 자기의 모든 것, 눈물과 함께 쏟아지는 온 마음까지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습니다. 오, 가련한 교회 회원, 비참한 위선자여. 거기서 그토록 뻣뻣하고 무심하게 서 있군요. 이 가련한 매춘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그녀는 모든 것을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환영받으시기를 원했습니다.
파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파티가 어떻게 되든 누가 상관합니까? 저는 파티에 관심이 없습니다.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오든, 그분께 도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파티 말입니다... 오늘날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파티와 온갖 일, 수프 저녁 식사 모임, 오락, 야구 경기, 교회에서 하는 벙코 주사위 놀이, 그 밖의 모든 것에 너무 바쁜 나머지 예수님께서 떠나시게 합니다. 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기 보십시오. 파티가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모두 둘러서서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바리새인이 다른 사람을 쿡 찌르며 말합니다. “보게, 그가 선지자라면 자기 곁에 서 있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았겠지. 봤지? 그가 선지자가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봐, 나는 어떤 일인지 알아.”
그 가련한 여자는 그 말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발을 옮기시면 어쩌지?” 그분이 발을 옮기실까요? 한쪽 발이라도 옮기셨다면 그녀는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기뻐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드리는 그 섬김을 기뻐하셨습니다. 누군가가 그토록 사랑해 주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저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녀는 한쪽 발을 잡고, 그다음에는 다른 쪽 발을 잡았습니다. 그러고는 [브래넘 형제님이 입 맞추는 소리를 낸다.]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 세상에! 그녀는 자신을 잊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도 그렇게 되어 그저 그분 발 앞에 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그 바리새인이 말했습니다. “봐, 그가 선지자가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선지자라면 알았을 텐데. 보라고. 저 여자는 그의 명성까지 망칠 거야.” 아, 얼마나 눈이 멀었습니까. 세상에. 아, 교만은 참으로 악한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그는 그 여자가 예수님의 명성을 망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님, 예수님의 명성은 죄인들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의 명성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처럼 뻣뻣하고 경직된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기꺼이 회개하려는 죄인들 사이입니다. 죄인들이 그분께 나아올 때, 바로 거기서 예수님의 명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발을 다 씻었습니다. 이제 그 귀한 발에 입을 맞추며 말합니다. “오 하나님, 생각해 보세요. 지금 제가 입 맞추는 바로 이곳에 얼마 뒤 커다란 못이 박힐 거예요. 제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려고요.” 그렇게 그분 발에 계속 입을 맞춥니다. 시몬은 저 뒤에 서서 “흠” 하고 있습니다. 아, 얼굴이 붉어지더니 분노로 하얗게 질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세상에!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 돌아서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나는 네 초대를 받고 네 집에 왔다. 네가 오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내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네 방에 왔는데, 너는 내게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내게 입조차 맞추지 않았다. 너는 나를 환영하지 않았다.” 오 하나님. 브래넘 태버내클이여, 깨어나십시오.
“너는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내게 오라고 해 놓고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나를 여기 앉혀 놓고 무안하게 했다. 나는 무언가 값진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너는 허락하지 않았다.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내 얼굴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화끈거린다. 내 뺨이 화끈거린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이틀 동안 걸어왔다. 바싹 마른 이 가련한 얼굴에 도움이 될 기름을 전혀 주지 않았다. 내 발은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도 씻을 물을 주지 않았다. 나를 환영하려고 입조차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련한 여자는 이 건물에 들어온 뒤로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할렐루야. 아, 저도 주님께 그렇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 많은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여러분의 그 뻣뻣한 교회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름을 적어 놓은 그 종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뻣뻣함이 조금은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그녀의 많은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 하나님. “네 많은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이제 평안히 가라.” 그녀는 거기 서 있습니다. 뺨에는 자국이 났고, 눈은 흐려졌습니다. 기름을 부은 그분 발에 입을 맞추느라 입과 얼굴에 기름이 온통 묻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머리카락은 풀려 내려와 있고, 그분의 발을 닦느라 길에서 묻은 배설물과 먼지와 똥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머리카락에 엉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습니다. “네가 스스로를 무안하게 하였구나. 보아라. 이제 네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아, 아, 아! “네 죄들이 모두 용서되었느니라. 평안히 가라.” 오 하나님.
저도 거기 서 있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마지막 설교를 마친 어느 영광스러운 날에,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이제 늙어 간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아침 젊은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벌써 마흔여섯 살이네. 아,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해.” 저는 여기에 그리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제가 앞으로 스물여덟... 스무 해를 더 산다면, 그때 제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생명이 시들어 갑니다. 떠나갑니다.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끝나면 저는 저택을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어떤 거창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발 앞에 기어가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운다.] 그 발을 내려다보고 손으로 조금 어루만지며, 바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오 예수님, 오...”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던 길이 너무나 어두울 때도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너무나 궁핍하고 너무나 무심했을 때도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 저를 끝까지 이끌어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오 예수님. 오 예수님. 예수님, 그 발은 저를 위해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운다.]
저는 그렇게 그분을 만지며 “주님, 이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이 길에서 겪은 모든 수고를 보상받을 것입니다. 삶의 수고가 많고 차가울지라도, 그 아침 황금 길을 걸어 올라갈 때면 얼마나 하찮게 보이겠습니까. 올라가야 할 언덕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자주 지칩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곳에 이르러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그때 그분을 뵙고 발을 어루만지며 환영해 드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 아, 제가 그렇게 죄 많았을 때 저를 사랑해 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 제가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저를 지켜 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은 그저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아플 때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이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 찬송 받으실 예수님, 귀한 발을 다시 어루만지게 해 주십시오.” 아, 그렇습니다.
더 이상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피아노를 치실 분이 앞으로 나와 주시는 동안,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사랑하는 예수님, 아, 더러운 발을 하고 계신 예수님. 이 차가운 세상은 무심하여 주님을 그토록 환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 언젠가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귀한 발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저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으며,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제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셨기에 저도 주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주님,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이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하실 분은 누구든 잠시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분을 제 집으로 초대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 사람들 앞에서는 그분을 좀 부끄러워했습니다.” 어머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제 집으로 초대해 놓고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부끄러워했습니다. 이웃이 들어오면, 제가 가서 기도해야 할 시간이 되어도 그냥 지나가게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렇게 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 부끄럽습니다. 예수님께 손을 들고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주님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도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이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여기 계십니다. 바리새인의 연회에 계셨던 것과 똑같이 여기 계십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들어오시라고 초대했습니다. 여기 계십니다. 자신이 좀 부끄럽지 않습니까?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가운데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주님, 부끄럽습니다. 저는... 저는... 저는 무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저는 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께 조용히 손을 들고 “주님, 이 손을 드는 것으로...”라고 하시겠습니까?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도, 그분도, 그분도, 자매님도요. 예수님의 못 자국 난 발을 보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도 그냥 손을 드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녹음 공백] ...나를 위해 갈라지신, 주님 안에 나를 숨기소서. 물과 그...
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십시오. 바로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기 그분께로 내려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 있는 죄인 가운데 나아와 무릎을 꿇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두 가지 치유가 되어, 진노에서 구하시고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이 덧없는 숨을 쉬는 동안, 죽음으로 내 눈이 감길 때, 알지 못하는 세계로 올라가,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뵈올 때,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의 반석이여, 주님 안에 나를 숨기소서. 지금 여러분의 태도가 모든 상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제단에 나아와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여러분, 나아와 제단 둘레에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언젠가는 그분, 만세의 반석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기회입니다. ...알지 못하는 세계로,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뵈올 때,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의 반석이여, 주님 안에 나를 숨기소서. 오... 지금 제단 앞으로 나아와 기도하신다면, 지금이 여러분의 기회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려고 나아오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금 제단이 열려 있습니다. 제단 주위로 나와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제단 주위에 자리가 없으면 바로 통로에 서십시오. 잠시 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부릅시다. 알지 못하는 세계로 올라가,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뵈올 때, “만세의 반석이여, 그 일요일 아침 브래넘 태버내클에서 제가 제단에 나아왔을 때를 기억해 주십시오. 대접받지 못하고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제 삶을 드리려고 나아왔습니다. 제 삶을 주님께 새롭게 바치려고 나아왔습니다.” 여기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치고 싶은 분이 계시면 지금 나오십시오. 이 덧없는 숨을 쉬는 동안, (예, 주님.) 죽음으로 내 눈이 감길 때, 알지 못하는 세계로 올라가, (반드시 올 때입니다.)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뵈올 때,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의 반석이여, 주님 안에 나를 숨기소서. 이 덧없는 숨을 쉬는 동안, 죽음으로 내 눈이 감길 때, (오 하나님!) 알지 못하는 세계로 올라가,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뵈올 때,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의 반석이여, 주님 안에 나를 숨기소서.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약속의 땅, 나는 약속의 땅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십시오. 오십시오! 오, 누가 나와 함께 가려는가?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녹음 공백] ...나와 함께?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