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회중이 박수를 친다.] 참 좋습니다. 아, 저런 찬양이라면 밤새도록 듣고 있을 수 있겠습니다. 방금 한 형제님이 천막 뒤쪽에 음반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이곳에서는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국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음반들이 저쪽 영화계의 빙 크로즈비 못지않게 유명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형제님들이 부른 찬양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대로 전부 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셔서 저를 찾고 싶으시면, 어디로 오셔야 하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푸른 나무들이 서 있는데, 그 잎사귀들을 따서 민족들을 치유합니다. 저 건너편에서는 천사들의 성가대가 늘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멀 아이너나 생키, 그리고 이미 저편으로 건너간 다른 위대한 분들과 같은 훌륭한 목소리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언덕 이쪽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저는 그 나무 아래 기대앉아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을 겁니다. 거기서 저를 찾으시면... [브래넘 형제님이 웃는다.] 아, 저도 노래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늘 부르고 싶어 했고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바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저는 도무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 참! 그러니 여러분이 저 본향에 가시면,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어쩌면 저보다 먼저 가실지도 모르는데, 그곳의 크고 아름다운 궁전에서 살다가 어디선가 언덕 너머로 메아리가 들려오거든 그 언덕 반대편을 보십시오. 늘 푸른 나무들 사이 어딘가에 제 작은 오두막이 보일 겁니다. 제가 앞쪽 현관에 서서 이렇게 노래할 겁니다.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브래넘 형제님이 마침내 해냈군요.” 저는 저편에서 「놀라운 은혜」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제가 그곳에 이른다면 참으로 놀라운 은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은혜가 저를 위해 그 길의 값을 치렀습니다. 저는 오직 그분의 은혜로 갑니다. 오늘 밤 저는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그러신 줄 압니다. 우리는 좋은 찬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이 추위를 몰고 온 건 아니겠지요. 그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이 도시의 그리스도인 실업인 몇 분과 작은 교제 모임을 가졌습니다.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 의사, 변호사 등 여러 분이 계셨습니다. 말씀드리는데, 오순절 신자 여러분도 서두르셔야겠습니다. 그분들이 바짝 따라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렌데일이라는 작은 도시에 계신, 정말 훌륭한 그리스도인 형제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순복음 실업인 연합회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클리프턴스인 것 같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옆으로 묻는다. “클리프턴스, 맞습니까?”] 클리프턴스입니다. 그런 모임에서는 정말 꿀단지에 손을 넣게 됩니다. 목사님들과 실업인 여러분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꿀단지에 손을 넣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말씀드리지요. 여기 낚시를 좋아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번 보겠습니다... 낚시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괜찮겠군요. 설교자가 낚시하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요?
한번은 저 멀리 뉴햄프셔에 가 있었습니다. 저는 낚시를 아주 좋아하는데, 특히 송어 낚시, 플라이 낚시를 좋아합니다. 그곳에 올라가 작은 천막을 가지고 깊숙이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 사흘쯤 되었을 겁니다. 작은 개인용 천막을 짊어지고 들어가 있었지요. 이른 봄 무렵이었고, 큼직한 시내송어들이 아주 잘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날이 밝을 무렵에 나가 버드나무가 늘어선 곳을 따라 한참 내려갔습니다. 작은 손도끼를 가지고 나뭇가지를 쳐 냈습니다. 낚싯바늘에 단 인조파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요. 그런 깊은 산속에서는 코치먼 인조파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낚시를 하다가 아홉 시쯤 돌아오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돌아가 팬케이크나 구워야겠군.” 저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먹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천막으로 돌아와 보니, 천막이 있던 자리가 온통 난장판이었습니다. 어미 곰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가 들어와 천막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곰들은 먹어 치우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망가뜨리는 게 문제입니다. 그놈들은... 난로 연통이라도 걸리면 못된 장난으로 마구 찌그러뜨립니다.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제가 다가가자 어미 곰은 곧 제 냄새를 맡고 달아났습니다. 새끼들을 부르는 소리를 내자 작은 새끼 한 마리가 따라 달아났습니다. 모든 것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어미 곰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달아가더니 주저앉아 다른 새끼를 계속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등을 돌리고 이렇게 웅크린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뭘 하고 있는지 보려고 조금 더 가까이 갔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미는 새끼들 때문에 사람을 할퀴니까요. 그래서... 그 안 어딘가에 낡고 망가진 22구경 소총이 하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미를 쏘아 숲속에 고아 두 마리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도 없었습니다. 어미 곰은 저보다 나무를 더 잘 타니 피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돌아다니며 그 작은 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앞발을 뭔가 움직이는 것은 보였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그곳에 올라갈 때면 늘 1갤런짜리 통에... 아니, 정확히는 반 갤런짜리 통에 꿀을 가득 담아 갑니다. 아무튼 침례교인들을 바르게 붙들어 두려면 꿀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팬케이크를 구울 때면 침례교인의 본색을 제대로 드러냅니다. 꿀을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님, 아예 꿀 속에 침례를 줍니다. 정말 듬뿍 붓습니다. 꿀을 많이 얹어 먹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꿀을 가득 담은 커다란 통을 놓아두었습니다. 곰들이 꿀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 작은 녀석이 그걸 찾아낸 겁니다. 뚜껑을 비집어 열어 놓고, 작은 팔로 이렇게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작은 앞발을 통 속에 넣었다가 계속 핥고 또 핥았습니다. 말씀드리지만, 그놈이 돌아서 저를 보는데, 꿀이 너무 잔뜩 묻어 붙어서 눈도 뜨지 못했습니다. 머리 꼭대기에서 작은 배를 지나 발까지 온통 꿀투성이였고, 앞발로 통 안의 꿀을 훑어 이렇게 핥고 있었습니다. 그놈이 저를 돌아보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꿀을 핥고 있는 동안에는 네게 정죄함이 없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옛날식 야외 집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오순절 집회가 바로 저렇지 않은가.’ 꿀을 핥는 사람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저 계속 핥는 겁니다. 얼마 뒤 작은 배가 가득 차자 녀석은 통을 내려놓았습니다. 어미가 계속 불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쪽으로 가자 어미와 작은 형제가 그놈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에 꿀이 묻어 있었으니까요.
아, 정말! 그래서 제가 꿀단지에 손을 넣고 그저 핥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꿀을 핥는 사람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장면을 볼 때는 가까이에 사진기가 없더군요. “우리가 꿀단지에 손을 넣는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정죄함 없이 계속 꿀을 핥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밤 이곳에서도 그런 집회를 가질 수 있겠지요? 모든 정죄함을 떨쳐 버리고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섬기는 겁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모두가 함께 악수하고 서로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겁니다.
조금 전 아간브라이트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집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교회 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집회를 쉬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이 되면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교회, 자신의 맡은 자리에 계셔야 한다는 것이 늘 제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을 방문 중이시라면 여기 있는 좋은 교회들 가운데 한 곳을 찾으십시오. 그 교회의 목사님들이 여기 단상에 계십니다. 아마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렸을 겁니다. 주말에는 그 교회들을 찾아가십시오. 일요일 오후에는 여기 천막에서 집회를 갖고, 일요일 저녁에는 모두 각자의 교회에서 맡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집회를 쉬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일요일 오후에 첫 치유 집회를 갖겠습니다. 일요일 오후부터 치유 집회를 시작합니다. 형제들이 한 시 반쯤 기도 카드를 나눠 줄 것이고, 집회는 두 시 반쯤 시작합니다. 복음의 본문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도전, 그리고 오늘 그분의 말씀이 져야 할 책임에 관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고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일요일 오후부터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여 다음 주에도 계속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머무는 집으로 많은 분이 전화하여 물으십니다. “언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데려오면 됩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일요일 오후에 시작합니다. 이제 동네를 다니며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무슨 병이든지 말입니다.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주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온 마음으로 믿고 오십시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우리는 믿습니다... 자, 그분께서는 이미 하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믿게 할 수 있다면 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치유는 여러분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제가 “언제 구원받으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아, 2년 전입니다. 5년 전입니다. 아니면 20년 전입니다”라고 하시겠지요. 아닙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여러분은 1,900년 전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그것을 2년 전이나 10년 전에 받아들이신 겁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제시되기 전에 그곳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갈보리에서 그 모든 값이 완전히 지불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마련하신 구속의 복 하나하나가 믿는 여러분 개인의 소유입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그저 믿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께서는 평생의 여정 동안 쓸 수 있는 수표책을 주십니다. 모든 수표 아래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명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구속의 복 가운데 필요한 것을 써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미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설마 그 수표가 현금으로 바뀌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두렵다면 그 책을 그냥 주머니에 넣어 두시면 됩니다.
제가 전도 사역을 하며 10년 동안 돌아다녀 보니... 주님을 섬긴 지는 23년이 되었는데, 두 부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근본주의자들과 오순절 신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알지만, 거기에 따르는 믿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순절 신자들은 믿음은 많지만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마치 은행에 돈이 있으면서 수표를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줄은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두 사람을 함께 모을 수 있다면 정말 제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신자들 가운데 참으로 건실한 근본적인 믿음을... 아니, 오순절 신자들에게 근본적인 교리를 갖추어 주거나, 그 반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집회가 어떨지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형으로 바로 지금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복을 저 멀리 어딘가의 천년왕국으로 밀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지금의 것입니다! 천년왕국에서는 신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누릴 때는 지금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상속자들,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심으로 마련하신 모든 것이 여러분의 소유입니다. 아멘. 형제님, 사탄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려 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정말 거의... 참으로 한계가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의사와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 목사님이시군요.”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걸 한 4년 공부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잘 달리고 계셨는데, 무엇이 가로막았습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그리고 “말씀드리자면, 목사가 되려고 4년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아주 뒤엉켜 버렸고, 또 여러 가지가, 제가...” 제가 말했습니다. “자, 이런 겁니다. 여기 엑스레이 기계가 있지요. 인체 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지식의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었고, 사람은 에덴 이후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어 왔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믿음의 나무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과학이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과학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는 곳에 이르면, 거기서 한 걸음 내디뎌 그때부터 믿기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여러분이 다 써 버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너무 자주 번거롭게 해 드리기 싫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그렇게 번거롭게 해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많이 구할 수도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신 줄 압니다. “너희가 갖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라.” 그분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우리가 구하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풍성하게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큰 것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작은 겨자씨 정도로 제한하지 마십시오. 더 나아가 다른 차원의 믿음을 가지고 큰일들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구하십시오... 큰 것도 작은 것만큼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정확히 알면 괜찮을 것입니다. 곧바로 그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잘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 여러분을 위해 베푸시는 복을 다 써 버린다는 이야기를 하니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저 바다 한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면 말입니다. “잠깐, 이 문제를 좀 생각해 봐야겠어. 언젠가 물이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아껴 마시는 게 좋겠어.” 이만한 작은 물고기가 저 바다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너무 많이 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일이 더 쉽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은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십니다. 무엇이 필요하든 그분께 구하고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실 때 구속의 복 안에 그것을 마련하셨고, 여러분이 이 여정을 가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하고 믿으면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만한 작은 생쥐 한 마리가 이집트의 거대한 곡식 창고 아래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잠깐만.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다 떨어질지 모르니 하루에 두 알 정도만 먹어야겠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말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시고, 저희가 주님 가까이 있게 해 주십시오. 아멘. 자, 오늘 할 신앙생활은 다 했군.” 아, 저는 정말 편히 누워 마음껏 마시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영적인 잔치를 마음껏 누리며, 더는 마실 수 없을 때까지 마시는 겁니다.
여기 캘리포니아에서는 여러분 모두 과일 농사를 아주 잘 지으십니다. 오렌지도 기르시지요. 작은 오렌지나무가 겨우 반 인치 높이일 때, 앞으로 그 나무에서 수확할 오렌지가 몇 부셸이든 이미 그때 모두 그 나무에... 아니, 그 나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누가 거기에 오렌지를 달아 주었습니까? 그것은 나무 안에 있습니다. 그 작은 나무를 위해 여러분이 할 일은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나무는 그저 마십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몫보다 더 마셔야 합니다. 마실수록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잎을 내고, 가지를 내고, 꽃을 피우고, 그다음에는 오렌지를 맺습니다. 그리고 계속 마시면서 오렌지와 잎과 꽃을 더 내놓습니다. 그저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놓이면,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인 그곳에 심기는 것입니다. 더 많이 마실수록 더 많이 내놓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저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믿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습니까? 그분께서 성령을 주시리라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신유도 믿으십시오. 그것도 여러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속의 모든 복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저 마시고 또 마시며 내놓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지금부터 영광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그때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믿음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그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사용법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가오는 주에 그것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일이나 주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좋으십니다. 저희는 머리 숙여 주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때로는 마음의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이야기하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주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저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전화와도 같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을 부르면, 전국 어디로든 연결해 줍니다. 전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시인이 노래했듯, 저희에게는 왕의 전화가 있습니다. 수화기를 들듯 무릎을 꿇고 교환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분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연결할 수 있습니다. 구속의 모든 복이 저희의 것이니, 저희는 그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이제 아버지, 지금 주님의 성령으로 저희 마음을 굳게 해 주시고 저희 영을 부드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깨닫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져다가 마음에 심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은 씨앗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큰 나무로 자라서, 주님을 위해 귀한 곡식 단들을 거두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저희 구주이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며칠 밤 동안 말씀을 따라 가르치는 저를 참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밤, 내일 밤에 이 집회를 마칩니다. 가능하시면 들러 주시겠습니까? 내일 밤에 오십시오. 그다음 날부터는 제가... 다가올 치유 집회를 위해 금식하며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훌륭한 회중이셨습니다.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며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이 짧은 시간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는 어젯밤 약속드린 주제, 「내가 생각하는 오순절의 실패 지점」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틀렸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며, 여러분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이런 사실들을 지적하여 우리가 어디서... 잘못한 지점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잘못했는지 안다면, 그곳으로 곧바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오는 겁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날 전국을 다니는 분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훌륭한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빌리 그레이엄, 잭 슐러, 오럴 로버츠, 아, 토미 힉스와 앨런 씨, 그리고 많은 분이 지금 전국 곳곳에서 큰 부흥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 겁니다.
어떤 전도자 한 분이... 유명하시고 훌륭한 형제님이어서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마 그분과 제가 밖에 있는 차에 앉아 신학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애완용 아메리카너구리 두 마리처럼 옥신각신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훌륭한 형제님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이 어떤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략... 수천, 아니 1만 명, 1만 5천 명,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와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추적 조사해 보니, 불과 몇 주 안에 계속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은 겨우 한 줌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제가 생각하는 문제는 우선...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지적인 종교, 지적인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태어나는 체험입니다. 하나는 머리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있습니다. 물론 과학은 지난해까지 그것을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카고 신문을 받아 보았을 때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사람은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하니라.”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혼동하셨다”고 했습니다. “심장에는 생각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심장은 말하자면 실린더를 통해 흐르는 피를 정화하며 내보내는 펌프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정신 기능은 머리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거두고 하나님께서 옳으셨다고 해야 합니다. 1년쯤 전에 사람의 심장 안에 아주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는 혈구조차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동물의 심장에는 없고 사람의 심장에만 있습니다. 그곳이 혼이 거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그냥 알았던 적이 있습니까?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 그래도 무언가가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었던 적 말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바로 이 안에 있는 무언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정통 교리를 따를 수 있고 자신의 신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신 말씀의 참뜻은 아닙니다. 사람이... 그것은 그다지 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 그 사람을 바꾼 것입니다. 동기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그는 안뜰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주위로 휘장이 내려져 있고,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그 간증이 있습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그는 흔들림 없이 버팁니다. 친구여, 그것은 실제로 역사합니다. 저는 체험으로 압니다.
얼마 전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저를 기도 줄에 너무 오래 있게 해서, 그 일로 약 8개월 동안 완전히 지쳐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위해 거의 모든 일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환상들 때문입니다. 저를 너무 오래 있게 했습니다. 그 점은 나중에 치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설명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저를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저는 “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아프신 동안에도 신앙을 지키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신앙이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붙들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붙들고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여기... 에베소서에 있는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다루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내용입니다. 전혀 불신자에게 보낸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전히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서 1장, 1장의 일부를 3절부터 읽겠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할지어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를 택하시며 자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에 따른 것이니라.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 주셨고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과 죄들의 용서를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른 것이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제가 여기서 보고 오순절 교회에 적용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이해시켜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 성도들에게... (바깥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은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성도란... 성도라는 말은 ‘성별된 사람, 또는 거룩하게 된 사람’이라는 데서 나왔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i-n, 곧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고린도서를 보시면... 아, 바울이 그 고린도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여러 가지 복과 영적 은사들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에 이르러서는 다른 방식으로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복음에 굳게 선 교회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세상이 창건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칼빈주의자들과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칼빈이 성경 안에 머무는 동안에는 칼빈주의자이고, 거기서 벗어나면 아르미니우스주의자입니다. 저는 믿는 사람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도 하나님 곁에 머물 만큼의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교회의 안전을 믿습니다. 교회가 안전하게 지켜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다면, 교회 안에 머무는 동안에는 교회와 함께 안전합니다. 그 안에 머무십시오. 무엇에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돌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머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거룩하고 흠 없고 점이나 주름 없이 자신 앞에 서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곳에 이르든 제가 이르든, 하나님께서는 점이나 흠이 없는 교회를 얻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곳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구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로 돌아가 살펴본다면, 그분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으로 된 사람을 만드셔야 했습니다. 여기 5절에서는 ‘예정’이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미리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나 목회자가 쓰기에 그리 좋은 말은 아닙니다. ‘미리 예정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소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정은 말합니다... 미리 아심을 돌아보고, 미리 아심은 정해진 결말을 내다봅니다. 예정은 미리 아심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미리 아심은 정해진 결말을 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 이 사람은 이렇게 되도록 만들고, 저 사람은 저렇게 되도록 만들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시려면 처음부터 끝을 아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시는 그 지식에 따라 “이 일이 일어나고 저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모든 것이 어디에 놓일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정 시대에 특정한 일이 있도록 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것은 참으로 성경적입니다.
지금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아주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큐빗 더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염려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큐빗에, 아니 정확히 말해 여러분의 키에 한 인치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여러분을 그분이 원하시는 바로 그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만드셨고, 세우셨으며, 자리를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 본래 모습대로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날 세상에는 그런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연기자들 말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연기자’를 뜻한다는 것을 아시지요. 오늘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는 연기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 여러분 자신이 되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훨씬 더 좋아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더 잘 알게 될 테니까요. 남자든 여자든 그저 자기 모습대로 사는 날을 하나님께서 속히 오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반대한다면, 오늘 밤 여기서 그분을 반대하는 말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분을 위해 시간을 내지 않고, 그분을 반대하는 강연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이곳에서 모든 사람이 그분을 믿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거나, 그리스도인인 양 흉내 내거나,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려 하면서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평강이 없다면, 그저 연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그것을 압니다. 이웃은 여러분이 그렇게 연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이 화를 내며 성질을 터뜨리고, 집 안에서 개를 이리저리 때리며, 남편에게 고함을 치고, 남편이 들어오면 침대 밑으로 도망가게 하는 모습을 보니까요. 여러분도 똑같이... 사람들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구원받으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바꾸십니다. 연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냥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리 보시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록 정하고 배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의 은사를 가진 선지자들을 택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에게 주시는 지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누군가... 이제 여러분 마음에 처음의 사탄에 관한 질문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탄도 창조자가 아닙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창조자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유일한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창조한 게 아니라면, 악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악은... 사탄은 창조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왜곡할 수는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사탄은 창조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것을 창조하셨는데 사탄이 그것을 왜곡하여 악하게 만든 것입니다. 왜곡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고,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동일한 주 예수님이심을 믿지 않으며, 마음에 평강도 없는데 교회에는 속해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마음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왜곡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엄하고 듣기 어려운 말이지만, 좋은 말입니다. 저는 그 강가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여기서 바로잡고 싶습니다.
사역을 시작할 때 저는 그분께 이렇게 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길을 벗어나거든 바로잡아 주십시오.” 그날 아침 그 강가에 이를 때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바랍니다. 두려운 날일 것입니다. 파도가 제 혼에 부딪쳐 오고, 모든 희망이 사라졌음을 알며, 연약한 생명의 줄이 끊어질 때,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제가 노인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집안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면 몸이 떨리는 병이 생깁니다. 떨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아주 늙어 더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날까지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길 끝에 이르러 제가 지나온 모든 가시덤불과 모든 언덕을 뒤돌아보고, 그 발자국들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강 끝에 서 있고, 곧 건너가리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아! 그 모래밭에 무릎을 꿇고 구원의 투구를 벗고, 흉갑의 띠를 풀고, 오래 쓴 검을 영원의 칼집에 도로 꽂은 뒤, 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구명정을 보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저는 본향으로 갑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거기 계시리라 믿습니다. 내 구주께 신실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그 손을 붙잡으리. 죽음의 강 너머로 우리를 인도하시리, 천국의 새롭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시리. 저는 그분께서 자신을 믿는 사람을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참으로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보시고 자신 앞에 설 교회를 정하셨습니다. 지난 이틀 밤 동안 제가 하나님의 경륜에 나타나는 세 단계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첫 번째 종교개혁을 믿습니다. 루터가 나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암흑시대, 1,500년의 암흑시대에서 벗어난 첫 번째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 또 역사를 읽는 분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루터는 그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것의 모형이 광야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불기둥이... 불기둥이 있었고, 그들은 밤낮으로 그것을 따라갔습니다. 불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은 그 불, 그 빛 아래 진을 쳤습니다. 불기둥이 움직일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고, 움직이면 이스라엘도 그 불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육적으로 그렇게 하셨듯이, 교회에게 영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처음으로 불기둥을 보고 나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전진했습니다. 그가 메시지를 전하자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저지른 잘못은 교회를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루터교가 되게 했고, 바로 거기서 잘못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교단을 깊이 존중하며, 하나하나 모두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교단에나 훌륭한 형제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교단을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단상에서 환상을 보는 동안, 성령께서 누군가를 문제 삼아 잘못된 교회에 속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어떤...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는지와 그런 여러 가지를 정확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누구의 믿음을 문제 삼아 “당신은 잘못된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보십시오. 첫 번째 종교개혁에는 루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조직을 만들고 루터교회를 세웠습니다. 불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루터교인들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미 문서를 작성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이것으로 끝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보여 주셨을 때 루터교인들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존 웨슬리라는 사람이 그 환상을 보았습니다. 불기둥이 움직이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결의 메시지를 보고 그것을 은혜의 두 번째 역사라고 불렀습니다. 감리교인들은... 루터는 그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웨슬리가 이어받아 성결을 가르쳤고, 큰 부흥이 온 나라를 휩쓸게 했습니다. 웨슬리 시대는 잉글랜드를 부패에서 구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칼빈주의 교회는 너무나 부패하여 더 이상 부흥조차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하실 테니 무슨 상관인가? 구원하실 사람이라면 구원받도록 태어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도록 태어난 것이다.” 아, 얼마나 처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결을 전한 존 웨슬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웨슬리가 일으킨 문제는 감리교라는 교회를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이것으로 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불기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는 이미 그 조직에 속해 있었으므로 함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자신들을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을 보고 성령을 받았으며, 방언을 말하는 것과 같은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곧장 나아가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몇 년 전에는 「아워 비지터」... 「선데이 비지터」, 가톨릭교회조차 그해에는 오순절 교회가 자신들보다 앞섰다고 인정했습니다. 오순절 진영에서 150만 명이 넘는 회심자가 나왔습니다. 오순절 신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무엇을 했습니까? 찾아와 그들을 조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조직을 만들고 울타리와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불기둥은 다시 움직이고 있는데, 오순절 신자들은 너무 조직에 얽매여 함께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은 여전히 계속 전진하며, 시대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역사상 한번 무너진 교회가 다시 부흥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들은 쓰러져 있습니다. 우리는 경계선을 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되 마침표로 끝내지 말고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만큼 더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이제 저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 모형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남은 15분이나 20분 안에는 물론 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세 가지 가운데 지금 생각나는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나 함께 가자고 했을 때를 보십시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무르라. 나는 다른 도시로 올라가야 하느니라.” 그러자 그의 뒤를 이을 선지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것이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옮겨진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엘리사는 그분의 자리를 이어받아 두 몫으로 그분의 사역을 마칠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여정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선지자 학교로 가노라. 너는 여기 머무르라.” 그러나 엘리사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래서 계속 갔습니다. 선지자 학교에 도착했을 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나는 요르단을 건너가노라. 너는 여기 머무르라.”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여기 머무르지 않겠나이다. 당신과 함께 가겠나이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끝까지 붙드는 결단입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전진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계속 나아가십시오. 더 깊은 물로, 더 깊은 체험으로, 더 큰 사랑으로 말입니다. 거기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요르단에서는, 그것이 죽음을 나타내는데... 앞의 두 곳을 거쳤지만 거기에는 죽음이 관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방문들이었습니다. 의롭게 됨과 성결, 첫 번째 바깥뜰과 안쪽... 첫 번째 휘장... 아니, 첫 번째 제단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나타내는 요르단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르단을 건너 저편에 이르자, 엘리야는 돌아서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영의 두 몫이 제 위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많이 구하십시오.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네가 큰일을 구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날 때 네가 나를 보면 그것을 받으리라.”
그때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눈을 떼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고도 한쪽 눈은 세상에 두고 다른 쪽 눈은 하나님께 두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둘 중 한쪽에서는 눈을 떼십시오. 세상에서, 이웃에게서, 여러분이 속한 단체에서 눈을 떼고 오직 그리스도께 눈을 고정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눈을 고정했습니다. 얼마 뒤 불 병거와 불 말들이 내려왔고, 엘리야는 거기에 올라타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면서, 요르단을 쳐서 죽음을 통과하는 길을 내었던 자기 겉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것을 주워 입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매우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그분께서 떠나실 때 한 여자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 아들을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제 두 아들을 앉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 여자가 “예”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받는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 여자가 “예”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바로 그 성령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분의 겉옷,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오순절에 올라가 다락방에서 기다렸습니다. 엘리야의 모형이 가리키는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아 부활하셨을 때, 그 겉옷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분 위에 계셨던 바로 그 성령이 교회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바로 그 성령의 두 몫이 교회 위에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가지고 강으로 내려가 강을 치며 말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아, 정말! 그런데 오늘날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치통 하나를 두고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두려워합니다. 할렐루야! 형제님, 요르단을 건너 저편으로 가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계셨던 성령의 몫, 두 몫이 교회에 보내졌습니다. 섬기며,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나, 곧 인칭대명사인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오늘 밤 영의 모습으로 자신의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권능을... 여기 땅에 계실 때 그분 위에 있던 모든 권능을 교회가 사용하도록 넘겨주셨는데, 여러분은 사용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이 그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요르단을 건너셨습니까?
요르단을 건너는 것은 죽음입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드린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분의 빛은 더 이상 세상에서 오지 않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과 나란히 걸으며 교제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안에서 움직이고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밤 제가 어떤 위대한 화가의 영이 제 안에 있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제가 그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리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존 딜린저의 영이 제 안에 있다고 말한다면, 제가 큰 총들을 들고 무법자처럼 행동하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제 안에 있다고 말했다면, 저는 그리스도의 일들을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죄와 이기심과 성질부림에서 떠나, 그리스도께서 사셨듯 평안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사십시오. 아멘. 그렇습니다.
아, 정말! 지금 신앙의 감동이 느껴집니다. 정말입니다. 아,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말씀입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여러분의 혼을 씻어 줍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예정하사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아들들로 입양하셨느니라. 여기에는 양자됨, 곧 아들로 세우는 일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순절 신자 형제님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분이나 15분 동안 아주 주의 깊게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구약에는 양자로 삼는 법, 곧 아들로 세우는 법이 있었습니다. 아시지요. 갈라디아서 등에 나오는, 가정교사가 아이를 어떻게 길렀는가 하는 내용 말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아버지의 집에 아이,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고, 그 교사가 아이를 기르며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늘 보고했습니다. 아이가 어느 나이에 이르렀을 때, 합당한 아이였고 정말 제대로 자랐다면... 그렇지 않았다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합당하지 않았다면 아들이기는 해도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합당한 아이였고 그렇게 인정되었다면,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아버지는... 잘 들으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는 이미 그 가정에 태어나 있었습니다. 오순절이 꼭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아들로 그 가정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신자들과 자유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등이 성령을 받았을 때, “우리가 받았다. 이제 그것으로 끝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감리교인은 “형제님, 우리가 외치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전 감리교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감리교인이나 외치기만 하면 “형제님, 받으셨군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신자들은 방언을 하면 “우리가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마른 쇠가죽 위에 완두콩을 쏟아붓듯 방언을 쏟아내고는, 밖에 나가 속이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온갖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성령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저는 외치는 것도 방언을 말하는 것도 믿습니다. 다만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바로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지금은 제게 화가 나실지 모르지만, 저 위에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이 아버지는, 아이가 가정에 태어난 뒤에도, 그 아이의 삶이 올바른 아들임을 증명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상속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정교사는, 우리의 경우에는 성령이신데,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늘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말 앞에 수레를 놓으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기도 전에 무언가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일을 하려 했으며, 그 안에 육신적인 것을 잔뜩 끌어들였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문제입니다. 이만한 규모의 회중 위에 참된 오순절 믿음이 자리 잡는다면, 형제님, 온 캘리포니아가 오늘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것도, 여러분의 믿음에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문제입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비결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아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이었습니다. 오순절 신자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태어난 것입니다... 제가 오순절 가운데 어느 특정 부류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포스퀘어도 있고, 그 밖의 여러 부류와 성령을 받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이 있습니다. 저 아래 켄터키의 우리 침례교인들도, 제가 이쪽에 왔을 때 보니 우리 교회와 오순절 사이에 다른 점은 첫 증거, 곧 방언을 말한다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제가 본 차이는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여기 어느 침례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제가 말해도... 아무도 “아멘”이라고 하지 않고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형제님, 저는 나이 드신 어머니들이 끈 달린 모자를 들고 예배당 안을 오가며 소리치고 외치고, 긴 의자 위를 걸어 다니며 온갖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여기가 침례교회입니까?” 목사님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제가 말했습니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군요.” 저는 다시 있는 힘껏 설교를 쏟아 냈습니다. 아무도 “아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뻣뻣하고 딱딱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침례교인이 아닙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온 고장에서는 침례교인이라면 제단 앞으로 나와, 체험을 얻어 돌파할 때까지 서로 등을 두드렸습니다.” 형제님, 말씀드리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험을 얻어 돌파할 때까지 제단에서 서로 등을 두드려 주던 옛날식 신앙이 좀 더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아와 죄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태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는 돌려줄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해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가 되어 팔로 감싸 주고, 다시 일어서도록 도우며,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아멘. [테이프에 녹음되지 않은 부분.]
보십시오. 아이는 태어났을 때 아들이었지만, 그 행실이 상속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제 아주 솔직하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행실로 이른 것보다 상속을 조금 더 앞당겨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저 멀리 길을 따라 한참 나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뒤쪽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행실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경외심이 없습니다. 저는 집회에 서서 지켜보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말 때문에 아주 격한 편지를 몇 통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아무튼 저는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질서를 어기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자가 설교하고 있는데 누군가 일어나 방언을 합니다. 그것은 질서에 어긋납니다. 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첫째이며, 결코 둘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누군가 일어나 방언을 하는데도 모두 자기 일을 계속하며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질서에 어긋납니다. 경건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라면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듣고 기록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저 말을 얼버무리거나 다른 말을 되풀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을 인용하시는 것이 아닐 겁니다. 무언가... 분명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일이 특정한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끝까지 살펴보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제단으로 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악한 영이 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런 허튼 일들 중 일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경외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교회에 와야 합니다. 교회는... 사교 모임이나 무슨 경기장, 또는 하루 동안 한 일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경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을 소란스러운 집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휴! 거의 배가 아플 만큼 쓰라린 말이겠지만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는 그 배앓이를 고칠 약이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모세는 200만 명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40년 동안 그들을 이끌었고,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 그들 가운데 허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의사 여러분, 또는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은 모세 의사가 어떤 처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요? 밤마다 아기는 몇 명이나 태어났을까요? 노인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다리를 저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밤새 배앓이며 온갖 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겠습니까? 모세 의사는 그 모든 일을 돌보았습니다. 그의 약 가방을 들여다보고 어떤 처방을 주었는지 알아보고 싶으십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무엇이었는지 봅시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주니라.” 아멘.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치료약이었으며, 200만 명에게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순종하고, 투덜거리거나 다투지 않고,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걷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손잡아 이끄셨고 독수리 날개에 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질서를 벗어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떠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길은 겨우 40마일쯤이었으므로 이틀이나 사흘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건너갈 준비를 하느라 밖에서 40년 동안 헤맸습니다. 그것이 오늘 밤 교회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우리는 온통 뒤엉켜 있습니다.
이제 아들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어젯밤 제가 적용한 것과 같습니다. 만나를 먹는 많은 사람이 바깥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밤마다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내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끼니 사이에 배가 좀 고팠을지도 모릅니다. 바깥에 있는 만나는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휘장 안으로 들어가 지성소에 살게 되면...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우리가 그 안에서 삽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론은 일 년에 한 번만... 아니, 모세가... 아니, 정확히는 대제사장인 아론이 들어갔으며,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휘장을 찢으셔서, 믿는 사람마다 지성소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먹어야 하고, 하루가 가기도 전에 떨어지는 만나, 아침에 잠깐 하는 기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의 임재 안에 계속 살며 그분과 함께 걷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오던 한 아일랜드 여인이 생각납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배에서는 재즈 악단들이 연주하며 흥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큰 폭풍이 몰아쳤고, 배에서는 구조 신호를 보내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선장이 달려 내려와 말했습니다. “잠깐 연주를 멈추십시오. 방금 뉴욕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30분을 버티지 못하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겁니다. 음악을 바꾸십시오. 모두 기도하십시오.” 모두 무릎을 꿇었고, 악단들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파도 속에서 요동쳤습니다. 긴 치마에 긴 소매 옷을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른 그 자그마한 아일랜드 어머니는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왜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기도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과 함께 걸으며 준비되어 있으십시오!
얼마 뒤에도 계속 그러고 있자 선장이 돌아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대체 왜 그러십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선장이 말했습니다. “제 말을 알아들으셨습니까? 이 배가 버티지 못하면, 버티면... 30분을 버티지 못하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단 말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알아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지금부터 15분 뒤면 바다 밑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딸을 보러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30년 동안 보지 못해서 미국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배가 30분을 버티면 미국에서 그 아이를 만날 겁니다. 버티지 못하면 영광 가운데 있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30분 안에 둘 중 하나는 만날 겁니다. 할렐루야!” 그것입니다. 충분히 기도하며 그분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언제 브레이크가 끽 소리를 내고 여러분이 영원 속으로 들어가게 될지 모릅니다. 그분 가까이 사십시오. 휘장 안에 머무십시오!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 아이를 양자로 삼는 일이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구약의 모든 것은 신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들이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어떤 사람의... 이렇게 손을 들고 있는 형상을 보았는데, 음화를 양화로 만들었을 때 그 손이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자라면서 이 아들이... 가정교사가 계속 보고하기를, 이 아들은 훌륭한 아들이고, 아버지의 일을 마음에 두며, 씩씩한 사람이고, 아버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안다고 한다면, 아, 아버지의 가슴이 벅차오를 것입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아들이 성년, 어느 정해진 나이에 이르면 아버지는 큰 날을 정했습니다. 증인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고, 아들에게 특별한 옷, 아름다운 옷을 입혀 거리의 사람들 앞에 세우고 양자로 삼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 아이를 자기 가정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들로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자기 가정의 양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부터 아들은 아버지의 수표를 발행할 법적인 권리를 가졌습니다. 아버지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 그의 상속분이었습니다. 양자로 세워졌습니다. 아버지와 동등하여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다스릴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가정교사가 아니라, 그는... 아니, 가정교사에게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지금 이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그때 다시 태어났으니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놓고 지냈습니다. 이제 보니 배가 아프고, 만나가 모자라며, 이 집회에서 저 집회로 다니면서도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가 어떻게 행하는지 지켜보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증인으로 세 사람을 데려가셨습니다. 성경은 “셋이 증인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사랑과 소망과 자애입니다. 그들을 아주 높은 산, 큰 높은 산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고, 그분의 옷이 해처럼 빛났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양자로 세우시며, 영광스럽게 변모한 모습으로 빛나게 하셨습니다. 증인들 앞에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 손에 주어졌느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형제님, 교회가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고, 세상일에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조직과 교단을 두고 다퉜습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다른 쪽이냐, 일신교냐 이신교냐 삼신교냐 오신교냐, 침례를 앞으로 엎드려 받았느냐 뒤로 누워 받았느냐, 아, 온갖 것들을 가지고 다투고 장벽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그 담을 무너뜨리기만 한다면, 이 사람은 이런 대로, 저 사람은 저런 대로 두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제의 손을 잡고 그를 형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목적, 곧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일하는 어떤 형제라도 팔로 감싸 안고 제 형제라고 인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저는 제가 뒤로 물러났다고 여길 것입니다. 아멘. 물론입니다. 어떤 형제를 향한 시기심이 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단상에 서서 악한 영들과 맞서기는 두려울 것입니다. 그가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신학에서 우리의 견해가 100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더라도, 그가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계선들을 그었습니다.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 형제님, 사랑이 떠나면 하나님도 함께 떠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결코 어디에도 이를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오늘 밤 저희 집에는 다섯 달 된 통통한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 관한 예언을 다들 기억하시지요. 온 세상이 저를 비웃으며 “허, 요셉을 얻게 된다더니요”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아이가 왔습니다. 여기 열아홉 살 된 아들이 있고, 저기 네 살 난 딸과 여덟 살 난 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두고 무슨 말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제 아이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제게 잘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들에게 잘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느끼십니다. 이들은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잘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 정직해야 합니다. 어떻게 서로를 속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형제를 속일 수 있습니까? 어떻게 무언가를 거짓으로 꾸미고, 어떤 점에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형제를 끊어 낼 수 있습니까? 아, 형제님, 말씀드리지만... 죽임당하신 사랑하는 어린양이여, 주님의 귀한 피는 결코 그 권능을 잃지 않으리, 값 주고 구속받은 하나님의 온 교회가 구원받아 다시는 죄짓지 않을 때까지.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흐름을 믿음으로 본 그때부터, 구속의 사랑은 내 노래의 주제였고,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러하리.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느니라.”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자유연애라는 것과 사랑이라고 부르는 온갖 것들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마귀가 조롱하며 흉내 낸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필리오 사랑’이라는 사랑이 있고, ‘아가포 사랑’이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필리오 사랑은 ‘제가 여러분을 같은 사람으로서... 또는 제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랑’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아내에게 갖는 것이 필리오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여러분이 누군가를... 아내 때문에 질투하게 됩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를 모욕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때문에 그 남자를 죽일 것입니다. 그것이 필리오 사랑입니다. 하지만 아가포 사랑은 그의 잃어버린 혼을 위해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그것입니다. 어떤 감정이나 억지로 고조시킨 정신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사랑 안에서 우리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절대적으로 참된 하나님의 거룩한 영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오순절 신자들 모두가 서로에 대해 품은 생각을 무너뜨리고, 참으로 사랑하며 친절하게 대하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한다면, 이 계곡에서 이제껏 알려진 가장 큰 부흥 가운데 하나가 휩쓸고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어떤 길로도 그것은 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전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면...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시험받고, 검증되어야 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여러분도 무슨 결정을 내리든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빚으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자마자 모두 여러분을 두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미쳤다, 정신이 나갔다, 광신자가 될 거라는 등 온갖 말을 합니다. 그때 징계를 견디지 못하면 사생아가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께 태어났다면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며, 지옥의 모든 마귀가 덤벼도 여러분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목소리가 아니라 삶, 여러분의 열매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올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삽니다... 인장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종이에 인장을 누르면 앞뒤 양쪽에 자국이 남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걸어갈 때의 삶과 뒤에 남기는 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압니다. 정말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따라옵니다.
제가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짜게 되면 세상이 목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짜게 되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목말라할 것입니다. 동네와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 이렇게 사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알고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 여자, 또는 저 남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모든 은사,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사를 갖는 것보다 그것이 제 마음에 있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이해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산들을 옮길 믿음이 있을지라도...” 이곳에 나와 병자를 치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들까지 옮길 수 있는 믿음을 가졌다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은사를 주시는 분 대신 은사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마음속에 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교제 가운데 그것을 가지십시오. 아,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님, 은사들은 저절로 따를 것입니다. 그 문제는 그냥 맡겨 두십시오.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가정에 양자로 삼으신 뒤, 여러분에게 맞다고 보시는 자리에 교회 안에서 세우실 것입니다. 어느 날 작은 기도 모임에서, 어느새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옷을 입혀 주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들아, 이제 내가 너를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였노라.” 온 세상이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불러내어 “아들아, 내가 너를 보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가정에 양자로 삼으실 때, 그 일이 얼마나 힘 있게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생각으로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들을 입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들을 증명하십니다. 하지만 주시는 분이 없다면 은사가 무슨 소용입니까? 여러분이 그저 정통 교리로서 성경을 이해한다면... 그것이 오늘날의 문제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여러분 가운데 목사를 투표로 뽑는 분들, 그렇게 하는 분들 말입니다. 때로는 키가 크고 훌륭하고 잘생기고 곱슬머리에 옷을 잘 입은, 할리우드 배우 같은 설교자에게 표를 줍니다. 강단에서 아주 돋보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표가 아닙니다. 그런 증거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화려함을 좋아합니다. 오늘날 문제는 할리우드식 종교, 할리우드식 부흥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단상 위에서 온갖 치장을 하고, 보석이 사방에서 번쩍이고, 그 밖에... 아, 정말! 역겹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옛날식 신앙을 믿습니다.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게 하는 신앙을 믿습니다. 아멘. 화려함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보았고, 너무 많은... 아이들은... 얼마 전 여기서 작은 어떤 것을 내놓았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의 아이라면 데이비드 크로켓이 누구인지, 테네시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곰을 죽였다는 이야기까지 모르는 아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래도 아이들은 그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텔레비전과 온갖 수단으로 그것을 미국의 모든 아이의 머리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청소년 비행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지 마십시오. 할렐루야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끔 그렇게 말한다고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개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저는 밤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그 개는 들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나무 위로 몰아 올렸지만, 덤불 더미 밑에 있는 스컹크를 잡으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짖으며 주위만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제가 할 일은 덤불 더미를 들어 올리고 개의 등을 두드리며 “물어라, 이 녀석아!”라고 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들어가 그 스컹크를 잡았습니다. “물어라, 이 녀석아...” 제가 아는 가장 고약한 스컹크는 마귀입니다. 여러분이 해 주실 말, “물어라, 이 녀석아” 하는 말은 그저 가끔 “아멘”이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고, 우리가 그놈을 나무 위로 몰아 올릴 것입니다. 아멘.
아, 그분은 실제로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양자로 삼으셔서, 성령과 입증된 사역을 통해 교제 안으로, 믿는 사람들이 이루는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입증하는... 여러분이 그 일에 관해 그렇게 많이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들을 증언하십니다. 그 모든 은사들은 놀랍고 훌륭하며, 우리는 그 모두를 사랑합니다. 우리 각자가 모든 은사를 갖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은사보다 은사를 주시는 분을 원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은사들을 가질 수 있을지라도, 주시는 분이 없다면...” 우리가 은사들 대신 그것을 주시는 분을 구했더라면 교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갔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가까이 머물며 그분을 사랑하고,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려 하지 않고 계속 그분을 위해 살았더라면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날마다 그렇게 살고 기도하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늘 새 힘을 얻으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랑하시는 몸, 곧 교회 안에 양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휴거가 올 때 여러분에게 흠이 없을 것입니다.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거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마귀의 힘들과 정면으로 맞설 때 바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반대에 정면으로 맞설 때, 바로 거기에 시험의 때가 옵니다. 사슬은 그중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반대에 정면으로 맞설 때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통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신유를 행한다고 하는 집회에 갔습니다. 한 사람이 위아래로 뛰며 목청껏 소리치고, 있는 힘껏 강단을 발로 차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께 요구합니다.” 아,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사람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겠습니까? 그분은 이미 하셨습니다. 그저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심장병이 있는 나이 든 남자를 시트에 넣고 이렇게 앞뒤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안쓰러웠습니다. 류머티즘이 있는 다른 남자가 올라오자, 그를 그렇게 흔들더니 손으로 있는 힘껏 때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류머티즘이 싫다.” 그렇게 한다고 마귀들이 나가지는 않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얼마나 소리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귀가 어둡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히 압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있었던 어느 누구보다 큰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두루마리를 드렸습니다. 그분께서 손에 받아 들고 앉으셔서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등의 말씀이었습니다. 희년 말입니다. 그분은 두루마리를 받아 되돌려 주시고 앉으셨으며, 그분의 입에서 귀한 말씀들이 나왔습니다. 세상에 있었던 가장 큰 기름부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있었습니다. 아, 때때로 우리 감리교인들은 소란과 기름부음을 혼동합니다. 소란은 기름부음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소란은 대단하지만 치통을 낫게 할 만큼의 믿음도 없는 곳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엄숙하게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남아프리카에서 도전을 받으며 서 있었을 때... 그런 나라에 들어갈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주술사 같은 사람들이 서서 도전하며 주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 앞에 나아갈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그들은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불 위를 걷고, 뼈를 흔들어 소리를 내고, 온갖 일을 하며, 자기 몸을 베고, 칼을 들어 이렇게 몸을 곧장 꿰뚫습니다. 칼들 사이로 물을 불어낼 수도 있는데, 칼을 뽑아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습니다. 광란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고 목청껏 소리치다가 군도를 들고 이렇게 달려와 코를 통해 위로 자기 몸을 꿰찌른 뒤 다시 아래로 뽑아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돌아다니며 불 위를 걷고, 유리를 두들겨 깨고, 뾰족한 것들 위에 눕고, 온갖 일을 합니다. 위선적인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마귀의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것은 주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판가름이 나고, 그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울 때 그들을 보십시오. 모든 마귀가 물러납니다. 저는 그것이 실패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여러분도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들, 하나님 가까이 걸으십시오. 지성소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안에 들어와 하나님 앞에 사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이 그분의 왕국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그분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날마다 보고하십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이제 내가 그에게서 은혜를 발견하였노라. 그를 이리로, 사람들 앞에 데려오리라.” 그는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과 살아가는 삶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것입니다. 때로 여러분의 간증은 좋지만, 여러분의 삶이 워낙 크게 말하기 때문에 간증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삶입니다. 믿으십니까?
저는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교단을 나누고, 서로 냉담해지며, 이웃을 냉담하게 대해 왔다고 믿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저 차갑고 형식적인 침례교인들.” 또 “이 오순절 무리는 저 아래 성전, 포스퀘어에 속한 사람들이야.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이쪽 사람은 하나님의 성회 소속이니 아무것도 없어. 이 사람은 오직 예수 이름만 믿는 무리에 속했으니 아무것도 없어.” 한쪽은 이것을 하려 하고, 다른 쪽은 저것을 하려 하며, 그저 다툽니다... 형제님, 그들 모두 성령 침례를 받았거나, 적어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도 똑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헌신된 삶입니다. 여러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대신 말씀하시며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시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서로 교제합니다. 그 피가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느 교단의 교회든 어디든 찾아가 “좋은 아침입니다, 형제님”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위선적으로가 아닙니다. 상대도 그것을 알 것입니다. 참된 마음으로 “사랑하는 형제님, 오늘은 하나님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라고 말하며,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에게 소금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흉내만 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위선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의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아예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머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저는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교회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사랑을 이루고, 여러 무리 사이에 교제를 이루는 일 등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신 어떤 자리로 스스로 밀고 들어가려 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되짚어 하나님께 돌아가 이렇게 말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제 삶 외에는 주님께 드릴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아가고 있는 것이며, 왕국에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참된 치유 집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제단 앞으로 나올 때 이렇게 나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나는 40년 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아닙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그런 말을 얼마나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참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나아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단상으로 나온 한 여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왔습니다. 한 사람이 앞으로 오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자매님.” 기억하십시오. 저는 모든 영적인 나타남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성령 침례를 받았으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그들이 줄을 따라 왔습니다. 그 자그마한 여인이 기도 줄 앞으로 와서 아주 빠르게 이리저리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말씀을 좀 나눌 수 있도록 잠깐만 가만히 서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다음 분과 한번 해 보자.’ 다음 사람을 앞으로 오게 하여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자매님,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도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저도 그것을 좋아합니다. 아름답습니다.” 미리암이 성령 안에서 춤추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기 올라올 때는 하나님 앞에 진지하고 침착하게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온전한 확신을 마음에 품고 오셔서, 성령으로 여러분 자신을 부드럽게 녹이십시오. 그 자그마한 여인은, 제가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분명 암이 있었는데, 아마 오늘 밤에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히 서 있으려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자그마한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사람은 오순절 신자였습니다. 제 뒤에는 우리가 형식적인 교단이라고 부르는 곳에 속한 자그마한 여인이 어린 딸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기도 카드를 들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얼마 뒤 그 여인이 나올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자그마한 여인이 걸어 나왔습니다. 어린 딸이 앞으로 걸어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 이것 좀 봐요”라고 하며 다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울기 시작했고 힘이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두 다리가 모두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여인은 합당한 방식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으며, 그분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반면 잘못 배웠을 뿐인 참으로 성도다운 자그마한 여인이 단상을 지나갔지만, 저는 그분을 위해 기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성령 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육신 안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 있었고, 머물렀어야 했습니다... 영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열매가 그것이 무엇인지 증명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침착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믿으며 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면, 물론 그때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자그마한 여인이 내려가 딸을 껴안자, 아버지가 회중 가운데서 이렇게 달려 나왔습니다. “형제님, 저는 여러 해 동안 죄인으로 살아왔지만 제 아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도 지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요, 형제님. 바로 거기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집회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온전한 정신으로 하는, 굳건하고 건전한 집회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교회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 대통령이 앉아 있다면 여러분은 곧장 나아가, 자신의 모임에서 미국 대통령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원망하며 헐뜯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제게 하룻밤이 더 있습니다. 내일 밤에는 제 마음에 있는 참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그 결과, 예수님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시면 꼭 나오십시오. 누군가를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이제 여기서 머리를 숙이고 계시는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으며, 여러분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마음으로는 그저 교회 다니는 흉내만 내고, 무리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모세와 함께 올라가 진영에 문제를 일으킨 섞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섞인 무리 말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기적들이 행해지자 모두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큰 능력과 영향력을 가진 것을 보고, 그것만을 근거로 교회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친구여, 그러면 여러분은 걸림돌입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참으로 그분의 영광과 복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오늘 밤 여기, 한 번도 신앙을 고백하지 않았고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기도할 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죄인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좋습니다. 또 다른 죄인으로서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형제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다고 참으로 믿습니다. 저는 늘 어딘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흉내 내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손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이. 손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손이 보입니다. 저 뒤의 손도 보입니다. 네, 형제님. 이렇게 말하시는 겁니다. “교회를 보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고,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형제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참으로 평안하고 조용한 삶을 원합니다. 폭풍이 거세게 몰아쳐도 저를 지켜 주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어,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차분하고 고요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밤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제가 보는 것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지금 여덟 명이나 열 명 정도가 죄인으로서 손을 드셨습니다. 여기 또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죄인으로 나아옵니다”라고 하실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보입니다. 저 뒤 기둥 옆에 계신 분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또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짧게라도 기도하며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어쩐지 오늘 밤 마음이 이상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여기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아내와 아기 곁에서 손드신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 가까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손을 드십니까? 제가 말씀드릴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리라.” 손을 드신 여러분, 이에 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그가 무엇을 합니까?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현재형입니다. “정죄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사람들이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죄란 무엇입니까?”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간음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죄에서 드러나는 속성들입니다. 죄는 오직 하나, 불신의 죄뿐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요한복음 3장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거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 저는 술을 끊었습니다”라고 말해도, 그것만으로는 그 뜻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을 믿은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믿는 것뿐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확증하는 것으로 성령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믿으면 죄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정죄에 결코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바로 지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믿을 수 있습니까? 손을 들고 말하십시오. “저는 지금 믿습니다. 주님,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조금 더 진행하기 전에, 죄인 한 분만 더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스페인어를 쓰시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이쪽의 스페인어를 쓰시는 여자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 주님께서는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서 제게 얼마나 놀라운 사역을 주셨는지요. 밤새도록 “글로리아 아 디오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 그 길에서 벗어나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예수님을 올바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내어 드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밤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제게 온전히 내어 드리는 삶을 주시도록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을 보시는 하나님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곳곳에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하려는 것은... 아무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잠시만 아주 경건하게 모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 이 후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르는 동안... 여러분은 저를 모르시고, 아마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구원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와 이곳에 서서 제가 여러분의 손을 잡게 해 주시겠습니까? 여기서 회중을 향해 서서 기도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정말 진심이십니까?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르는 동안, 예수님을 고백하기 원하는 죄인들은 이리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있는 모습... (지금 잠깐 이리로 와 주시겠습니까?) ...아무 내세울 것 없이, 오직 그..........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바로 이쪽입니다.) 이제 나오시겠습니까? 나오고 싶은 다른 분들, 고백하는 죄인들,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은 분들 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시인하리라.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저 위에서 너희를 부끄러워하리라.”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 나아갑니다! 나아........
이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죄인인 친구들이 여기 머리를 숙이고 서 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께서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이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곳으로 오는 스페인어를 쓰시는 자그마한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고 앞으로 나오는 지금, 평생 하신 일 가운데 가장 용기 있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하려는 일이 이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 천국의 기쁨의 종들이 울립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에게 큰 치유 집회를 주실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죄인들이 십자가로 나오는 모습을 보실 때 말입니다.
이제 어쩌면 교회에 다니는 분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약 2주 전에 있었던 작은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교회에 다니는 좋은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감리교회였고, 사랑스러운 자그마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게 된 것이... 저는 늘 그 여인의 체험에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니니까 다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그녀는 피아노를 배웠고, 아주 훌륭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거기 좋은 청년이 있었는데, 저는 그 청년이 정말 성령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둘이 결혼했습니다. 이 일은 바로 몇 주 전 저 건너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저는 그 목사님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그 여자의 체험에 다소 의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그럴 때는 꽤 바르게 살았지만, 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주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심각한 일입니다. 혼들이 걸려 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제가 그 여자를 심판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행실을 살펴보니 그다지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몇 년 전 그 동네를 떠나, 교회가 다소 세속적인 다른 동네로 이사했습니다. 여자들이 모두...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입는 그런 짧은 옷들을 입고 나와 마당의 잔디를 깎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그다지 여성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들도 저렇게 하고 아무 탈이 없고, 나만큼 존중받는데, 왜 나는 하면 안 되지?’ 아, 절대로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 안에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친구여, 성령께서는 다르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이리저리 따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에게 혼이 있을 때, 그 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따지지 않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따집니다. 여러분이 말합니다. “아, 그건 광신주의일지도 몰라.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면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혼에 성령이 계시면 그것을 살펴보고 알아볼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카드놀이 모임과 작은 사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네에 잘생긴 젊은 남자가 이사 왔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떠나 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다른 여자들도 하잖아. 그들도 교회에 다니는데 왜 나는 안 되지?’ 보십시오. 그것이 이리저리 따지는 것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예전과 똑같이 교인이고, 예전과 똑같이 그리스도인이야. 다른 여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존중받는지 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생각하십시오. 얼마 뒤 그 남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자기 아내 한 사람을 버렸다면 다른 아내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를 떠났고, 그녀는 또 결혼했습니다. 그 남자도 그녀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실혼 관계의 남자와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결과가 그녀에게 닥쳤습니다. 여성 생식기에 암이 생겼습니다.
제게는 제퍼슨빌에 침례교 타버내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 목사님은 감리교인으로, 켄터키주 윌모어의 애즈버리 대학 출신이며 성령을 받은 훌륭한 형제님입니다. 그 여자도 감리교인이었으므로 목사님은 그녀를 매우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있었고, 사실혼 관계의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이 여자는 죽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네빌 형제님은 “가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회개하도록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브래넘 형제님이 오시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분도 그녀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준비시켜 놓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애썼습니다. 훌륭한 형제님입니다. 그분은 찾아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감리교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부인,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려는 것도 아니고, 제가 부인의 일에 참견한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 아래 위스키가 놓여 있고, 담배를 피우며, 사실혼 관계의 남자와 살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와서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 어울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아버지는 집사이고, 저는 여러 해 동안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의롭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 그 혼, 그녀가 잘못하고 있다고 알려 주던 내면의 양심은 오늘 밤 여러분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녀는 지적인 부분, 곧 머리로 믿는 쪽으로 가 버렸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떠나시게 했습니다. 성령은 더 이상 그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믿는 데 쓸 수 있는 것이 자기 생각뿐이었고, 그것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네빌 형제님은 나왔습니다. 그분이 제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그 여자가 길 끝에 이르렀을 때를 지켜보십시오. 두고 보십시오.” 그들은 마침 그녀가 길 끝에 이르렀을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앉아 있다가 방금 담배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과 농담하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죽음이 찾아들어 눈빛이 흐려지더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정신 기능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두뇌와 함께 사라집니다. 혼이 아니라 생각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건 옛날에나 있었던 일이지. 이건 이러저러한 것이었고, 우리를 위한 건 아니야”라고 말하려 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성령은 성경의 모든 말씀에 동의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믿으십니다. 그분이 모든 회중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니다. 그런데 그녀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떠나시게 했습니다. 죽을 때가 되니 지적인 부분들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빨리 목사님을 불러 주세요.” 그녀의 목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싫어요. 저 속이는 사람.” 그 목사는 달려가 의사를 데려왔습니다. “흠, 의사 선생님, 저 여자가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주사 한 대 놓아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사는 무슨 주사예요. 저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사를 놓았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저는...” 또 주사를 놓았습니다. “저는 멸... 저는... 저는 멸... 저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주사 한 대가 그 고백을 멈추게 했지만, 그녀는 영원토록 그 혼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를 괴롭힐 것입니다. 형제님, 자신의 생각이 하는 말에 속아 잘못 이해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 마음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교회에 다닌 지 얼마나 되었든, 여러분의 자리가 바로 여기 이 죄인들 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노래하는 동안 지금 나오십시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대단하여... 이곳으로 나와 저와 악수하고 함께 제단에 서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하나님 가까이 걷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나오시겠습니까? 이 머리의 기능이 무너진 뒤, 너무 늦어서야 자신이 틀렸음을 알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 나를 위하여, 또 주님께서 내게 오라 하시니,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나아갑니다! 나아갑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여자 세 분, 남자 여섯 분이 제단에 서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계십니다. 저는 저 심판 날에 그분들 앞에 서서 지금 제가 드리는 말에 대해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는 여기 올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무언가가 여러분에게 말씀했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데려오셨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삶이 어떠했든 상관없습니다. 이제 함께 겸손히 기도하며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라.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무슨 일을 했든 그것을 뉘우친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여기로 부르셨습니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르셨습니다. “오는 자는 내가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나머지 회중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여기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며, 주님께서 택하신 이 자녀들이 어떻게든 오늘 밤 말씀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앞으로 나온 것을 보십니다.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기겠습니까. 기도는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는지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꿉니다. 하나님,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손을 얹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주님의 복으로 기름부어 주십시오. 이들이 고백하는 모든 죄를 없애 주십시오. “자기 죄를 기꺼이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사 그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이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의롭다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세리처럼 말입니다. 주님,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복이 이들 위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주님, 여기 있는 여자들이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서 여성의 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이 남자들이 기름부음 받은 빛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 바로 이 무리 가운데 젊은이들이 서 있습니다. 오 하나님, 사역을 위해 그들 위에 손을 얹으시고 부르심을 주십시오. 그들이 그런 삶을 살아,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을 구별해 내시고 세우시며 주님의 가정에 양자로 삼으시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왕들과 제사장들로 기름부으셔서 주님의 왕국에서 다스리게 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도록 사역과 할 일을 주십시오. 주님, 그들이 여기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서 있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여기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나는 의로우므로 그 죄를 용서하느니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바로 그때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결코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아버지, 이들은 온전한 정신으로 앞으로 나왔습니다. 감정에 들떠서가 아니라 침착하게 나와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형제님,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원합니다. 제 삶이 그리스도를 위해 쓰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밤 바로 지금 모든 죄가 그 피 아래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이제 머리를 숙인 채로, 제단에 계신 여러분... 친구여,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용서하십니다. 죄를 고백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고 믿는다면, 그분께서는 “네가 고백하면 내가 용서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고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밤 이곳에 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으며, 이곳을 떠나 죽음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때까지 자신이 아는 바에 따라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다면, 그분을 믿고 구주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제단에 서 계신 여러분,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습니다. 손을 든 모든 분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돌아서서 회중을 바라봐 주십시오. 여기 제단에 계신 한 분 한 분 모두 돌아서서 회중을 바라봐 주십시오. 회중 여러분, 이쪽을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손을 들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말은 여기 제단에 계신 분들, 이 형제님들 말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를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오늘 밤 이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여기서 이것이 성경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아멘.
이제 여러분 각자가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 제단에 서 계신 남자분들과 자매님들, 제 형제자매들에게 한 말씀만 더 드리고 싶습니다. 저 남부에서... 여러분을 오래 붙잡아 두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이제 하룻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 남부에서... 여기 제단에 서서 저쪽을 바라보고 계신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오래전에는 노예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쌍한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와—보어인들 말입니다—남부의 농장주들에게 팔았습니다.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너무나 낙심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자기 민족에게서 떨어져 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들, 일을 시키는 감독들은 일하게 하려고 채찍질을 비롯한 온갖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략... 노예를 100명쯤 소유한 주인 밑에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아주 씩씩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가슴을 펴고 턱을 들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언제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노예를 사러 온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젊은이는 이렇게 당당합니까? 다른 노예들을 감독하는 우두머리로 삼으셨습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저 노예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보다 음식을 조금 더 잘 먹이십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합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저도 방금 알아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부족 왕의 아들입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여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도덕 수준을 지키기 위해 자기 행실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이곳을 떠나는 여러분은 왕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나그네입니다. 왕의 아들딸답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와서 여러분과 악수할 것입니다. 주위에 서 계신 여러분, 우리가 이 좋은 옛 찬송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를 부르는 동안 말입니다. 그 찬송,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를 아십니까? 여러분이 부르시는 노래 중 하나입니까? 좋습니다. 「싸움이 끝나면」...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라는 노래를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가능한 분들은 모두 앞으로 걸어 나와 이분들과 악수하며 교제의 오른손을 내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 그렇네!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 그렇네!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면류관을 쓰리, 새로운...... 이제 모두 돌아서서 서로 악수하십시오. 노래하면서 서로 악수하십시오. ...면류관을 쓰리, 면류관을 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