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주님, 제가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제가 믿습니다. 이제 제가 믿습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제 제가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은 단지 노래만이 아닙니다. 아버지, 우리의 기도입니다. 오늘 밤 우리의 고백은 이제 우리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전하는 말씀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빌라도 아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셋째 날에 일어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편으로 올라가셔서, 오늘 밤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아버지께 구하면 허락해 주시겠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맨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오늘 하루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선하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안 가운데, 또 많은 이들이 괴로움 가운데 갔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기도합니다. 혹시 내일 부끄러운 모습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갈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오늘 밤 그 일이 달라지게 하시고 그들이 나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의 나머지 순서에서도 우리를 축복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저녁 다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복된 이 오랜 성경을 펴 놓고 있습니다. 성경을 열어 제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마음의 보배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앨런 형제님이라는 분을 위해 다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늘 또 체포되어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잭 코 형제님도 지난주 마이애미에서 감옥에 계셨습니다. 아마 그 소식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감옥에 가는 일을 참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 모인 김에 그 형제들을 위해 잠깐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저희는 앨런 씨에게 어떤 혐의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 무슨 일이든 그의 잘못이라면 용서해 주옵소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면 그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아버지. 어디서나 복음이 으뜸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코 형제님을 축복하옵소서. 그분의 경우는 무엇 때문인지 압니다. 아이의 다리에서 보조기를 벗겨 준 일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기도하오니 그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그들도 나아와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고, 지극히 뛰어난 능력으로 그 일을 하실 수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코 형제님을 도우시고 힘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어려움을 당했다면 누군가 저와 함께 기도하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교제의 시간에 이곳에서 모일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순복음 실업인회 이 지부와 이 교회의 피터슨 형제님, 그리고 참석하신 여러 형제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여러분과 이곳에 함께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다만 이곳 날씨는 정말 춥군요. 저는 남쪽으로 멀리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아, 여러분은 추위를 못 견디시는군요. 우리 북쪽 사람들은…”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올라오니 거의 얼어 죽을 지경입니다. 이곳은 정말 시원하고 좋습니다. 그래도 저는 더운 것보다는 추운 편이 낫습니다. 더운 날씨는 견디지 못합니다. 저는 더운 날씨를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주에는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로 갑니다. 거기서 뉴올리언스의 게일 잭슨 형제님께 가서 이틀 밤을 보내고, 다시 슈리브포트로 올라가 사흘 밤, 그곳에서 텍사스주 휴스턴의 레이먼드 리치 형제님께 가서 이틀 밤을 보낸 뒤, 멕시코 본토의 멕시코시티로 갑니다. 그곳이 우리의 첫 치유 대전도 집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집회들은 모두 설교 집회입니다. 우리의 첫 치유 대전도 집회는 새 환상에 따라 그때 멕시코 본토의 멕시코시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이 환상에서 말씀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것을 보시게… 조셉 형제님이 며칠 밤 동안 그 내용이 글로 실린 잡지를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좀 더 자세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시카고로 옵니다. 4월 3일부터 8일까지입니다. 11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스핀데일에서 시작합니다… 아니, 노스캐롤라이나주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컬럼비아로, 컬럼비아에서 샬럿으로, 거기서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로 갑니다. 그리고 돌아와 1만 6천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새 천막에서 집회를 시작합니다. 천막을 싣고 다닐 새 운반 차량 등도 마련합니다. 여러 곳에 천막을 세우고, 옮기기 전에 한 번에 3주에서 4주, 길게는 6주까지 머물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하실 때까지 그곳에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올가을에는… 아간브라이트 형제님 일행은 지금 무어 형제님과 함께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안 계신 이유는 주님의 뜻이라면 다가오는 가을에 갈 남아프리카와 인도 등의 일정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성령의 부어 주심 중 하나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밤에는 그것에 관해, ‘일곱 번째 전환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오도록 해 보십시오. 주님의 오심에 관한 내용입니다. 수요일 밤에는 주님의 뜻이라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무엇인가?’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내일 밤에는 꼭 나오시고, 주님의 오심이…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고 믿는 분들도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내일 밤의 제목은 ‘일곱 번째 전환점’입니다. 오늘 밤에는 제게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는… 제가 말씀드리려는 취지는… 우리에게 겉의 치유가 있기 전에 속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육체의 치유도 물론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속의 치유를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무리 충성하려고 애쓰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려 해도—실제로 그분은 함께 계십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어떤… 치유는 분명히 기도를 받는 그 사람 자신이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 가운데 그렇게 되도록 정하신 특정한 경우를 위해 환상을 보내신 경우는 예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들을 들으셨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아버지께서 그분께 보여 주신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눈먼 사람과 다른 여러 사람들을 기억하십니까?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네가 믿으면, 네가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그런 말씀들 말입니다. 언제나 각 사람의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아, 참으로 그렇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사실입니다. 교회는 끔찍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참되고 근본적인 믿음으로 속의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겉의 치유는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때 육체를 치유하는 일이 시작되면, 속에서부터 밖으로 치유가 이루어져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지속되고 참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천막과 이 모든 큰 비용을 생각하면… 제가 왜 집회 현장을 떠났는지 환상에 관한 이야기에서 보실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느니 한 집회에서 1만 5천 달러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했기에 그렇게 하지 않고 집회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캘리포니아에 1만 5천 달러의 빚을 진 상태에서 곧바로 돌아서서, 이 천막을 가지고 나가기 위해 10만 달러를 빌리고 있습니다. 그 말은 제가 하는 말을 저 자신이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더욱 좋은 것은, 아주 좋은 친구가 있는데 부자이지만 주님의 종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자 한 푼 없이 빌려 드리겠습니다. 원래… 빌리신 돈만 갚으시면 됩니다. 이자는 전혀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계속 일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곳 어딘가에도 그 천막을 치고 싶습니다. 바로 이 쌍둥이 도시 지역에 한 6주 동안 머물면서 모든 교회와 함께 약 6주간의 부흥회를 열고 싶습니다. 이제 장벽과 서로 다른 점들을 내려놓으십시오. 한자리에 모여 서로 악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어떤 사람을 위해 한 번 기도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다시 그 사람을 공격하러 오면 바로 다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끝날 때까지 바로 그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4주에서 6주 정도 밤마다, 밤마다, 밤마다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다. 이제 내 일을 마쳤으니 다른 곳으로 가거라.” 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부흥회를 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매일 밤 집회는 더욱 힘을 얻곤 했습니다. 충분히 오래 머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첫 집회를 피닉스에서 열려고 했습니다. 로버츠 형제님이 호주에 가 계신 동안 그곳에서 대신 집회를 맡겠다고 어느 정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작이 좀 늦어지는 동안 앨런 씨가 그곳에 들어갔고, 3월까지는 떠나지 않을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환상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라는 것 등을 말입니다. 그때 앨런 씨가 그 자리를 맡았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앨런 씨는 계속 계실 겁니다.”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 아닙니다. 아니요. 앨런 형제님이 계신다면 안 갑니다.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약 이틀 후 주님께서 제게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그 환상에서 피닉스로 가라고 한 적은 없다. 그것은 멕시코 본토의 피부가 검은 사람들 가운데서였다.” 저는 ‘아,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맞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우리의 실수와 무지를 넘어 역사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십니까?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오늘 밤 교회에 모인 사람은 적지만, 우리는 이 목적, 곧 잃어버린 혼들과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밤 저는 ‘감추어진 삶’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오늘 밤 읽고 싶은 성경 말씀은 히브리서 10장, 19절쯤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에 의거하여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이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갈 것이니라.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가 우리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은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이것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교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좋으셨습니까? 그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교사도 아니고, 훌륭한 설교자도 못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필요한지는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것을 짚으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참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금만 함께해 주시고 참아 주십시오. 저는 우리가 치유 집회를 열기도 전에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어떤 일을 짚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먼저 해결해야 집회를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어젯밤 제가 설명하려던 것은 우리가 교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거나, 교단을 통하거나, 교육이나 그 밖의 무엇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위대한 화해의 역사를 통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약으로 돌아가 신약의 모형으로 보여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형을 통해 설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봅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 곧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고, 이쪽에서 그 실체를 봅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계신 영께서 증언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그렇게… 그것이 제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어떤 분들은 똑똑하고 총명해서 그리스어 단어 등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다 방언으로 들립니다. 저는 정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모형과 그림자들을 알고 서로 맞춰 볼 수만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시고 밝혀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아기들까지도, 여기 있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있다면 이 아이들이 내일의 어른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밤 말씀드리려는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삶’을 이해하려면, 오늘날 남녀 모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온 마음으로 겸손하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미니애폴리스에 여러 번 왔으니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혹시 제가 남을 속이는 일이 있다 해도, 일부러 그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결코 속이려는 뜻이 없습니다. 저는… 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제가 표현을 잘 못할 때 제 마음 그대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큰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얻지 못하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보며, 또 제가 말하는 것을 경험했기에, 부족하나마 제 방식으로 설명해 드리는 것이 분명 좋은 일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참여하여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고 사신 이 위대한 것을 함께 누리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속죄를 통해 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은 속죄를 통해 옵니다. 속죄 밖에 있는 어떤 복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치유와 그 밖의 모든 것은 속죄를 통해 와야 합니다. 아담의 죄로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그분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 영어로 s-i-n이라는 단어를 다룰 때마다 거기에 따르는 모든 속성도 다루어야 합니다. 육체의 치유를 전하지 않으면서 혼의 구원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그런 식으로 잘라 나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같은 날, 같은 혈관에서 흐른 피로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그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한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왜 속죄에 근거해서 신유를 전하십니까? 그것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제가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속죄에서 제외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가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사야가 말한 것,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저는 “맞습니다.” 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가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날 저녁 자기에게 온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그 속죄를 그 시점에 적용하시는 겁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속죄는 예수님의 피가 흘려진 뒤보다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더 큰 권능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 일은 그분께서 죽으시기 1년 6개월 전이었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지기도 1년 6개월 전인데 어떻게 그때 일에 속죄를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므로 그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논쟁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사람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말씀을 듣도록 죽으신 그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서 잠시 멈추고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성직자들과 학식 있는 분들 앞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것을 믿으며 알고 있다는 점을 알아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우연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십자가에 가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찾아와 구원을 받지 않을까 하는 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에 따라 일하십니다.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누가 그분께 속한 자인지, 그분 자신의 것인지 아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 가운데,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사람이… 그것이 우리가 미국 전역에서 부흥회를 열고, 곳곳에서 그물을 당기며 거듭거듭 건져 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사역자들의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사람이 건져지면 그것으로 모두 다 된 것입니다. 아시겠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은… 우리가 그물을 던져 사람들을 모으면 그들이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빠져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이 왔을 때 우리가 징계를 견딜 수 없었다면, 우리는 사생아였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영으로 참으로 태어난 남자나 여자는 삶에서 더 이상 죄를 바라는 마음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피조물… 새로운 피조물, 새롭게 창조된 존재가 됩니다. 옛 욕망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 체험의 길을 가다가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도무지 그것을 붙잡지 못하는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저… 그들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어느 날 보면 지붕 위에라도 올라간 듯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면 모두…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십시오만, 우리가 말하는 풀이 죽은 상태입니다. 완전히 가라앉고 쇠약해져서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며, 구원받았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다음 날에는 꽤 괜찮아집니다. 그러다가 한두 주 후에 만나면 다시 같은 상태로 돌아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치유 집회에서도 보았습니다. 완전히 눈먼 사람들이 강단에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와서… 기도를 받고 치유되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6개월 뒤에 만나 보면 처음처럼 다시 완전히 눈멀어 있습니다.
존 처치라는 분은 자기 책에 저에 관해 끔찍한 글을 썼습니다. 성결교에 계신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처럼 학식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브래넘 씨를 알지도 못한다.” 하고 말하면서 저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법에서도…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법에서 하는 것만큼도 못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경륜 아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나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이유는 이렇다.” 하고 썼습니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언젠가 큰 경기장, 강당에서 열린 집회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를, ‘브래넘 씨는 나를 전혀 모르는데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거기 계신 선생님, 전립선 질환을 앓고 계시는군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당신은 치유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치유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1년 동안은 완전히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재발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브래넘 씨가 가짜라는 증거다.”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처치 씨, 당신이 해마다 집회를 여는 저 실버힐에서, 당신이 그곳에 모은, 성결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 모든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음 해에 돌아가면 그들이 전부 다시 성결하게 되어야 하니, 그렇다면 그들이 처음 받은 것도 가짜였겠군요.’
아닙니다. 신유는 여러분의 믿음만큼 강하고, 여러분의 믿음만큼 오래 지속됩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니컬스 형제님이 얼마 전 우리 도시로 내려와 간증들을 수집하고 신유로 치유받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디서 치유받았든 말입니다. 암이나 죽어 가던 병세에서 치유되어 여러 해, 여러 해, 여러 해, 여러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건강한 사람들 말입니다. 14년, 15년 전에 기도를 받았는데 아직도 건강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루이빌의 암 진료소 사망자 명단에 14년, 15년 전에 죽었다고 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가서 그곳의 사례 기록, 장부를 살펴보십시오. 15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15년이 지난 뒤에도 아주 건강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백이 확고한 동안에는 구원도 확고합니다. 그러나 고백이 무너지면 구원도 사라집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여러분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에서도, 치유에서도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침체에 빠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이유가… 여러분이 경건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들어 주신다면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을 구약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래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집트는 세상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들의 여정도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여정의 모형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있었고, 우리도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고 계십니다. 이집트는 세상의 모형, 곧 속박과 노예 생활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리셨고, 우리는 믿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그 여정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그 여정에서 그들의 형편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르락내리락했고, 어려움도 있었으며, 믿음에서 물러서기도 했지만, 그래도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불평하는 이들도, 투덜거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환상 등을 보았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이적들을 내려 주시고 그들 가운데 큰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련이 닥치자마자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불평하고 투덜거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현재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어떻게 그 모습을 보여 주셨는지 보십시오. 그것을 입증하려면 성막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막은 경배하는 장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젯밤 그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만나시는 유일한 장소,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는 성막에서, 흘려진 피 아래서였습니다. 이제 성막 안에는 서로 다른 세 뜰, 곧 세 장소가 있었는데, 거기에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바깥뜰, 곧 뜰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제단, 곧 성소가 있었고, 그다음에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갔으며, 아무도 감히 그를 따라 그 거룩한 곳 너머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장소들에 기구 등이 어떻게 놓였는지 살펴보면, 그것은 암흑시대 이후 우리가 거쳐 온 경륜들, 곧 교회가 밖으로 나와 계속 걸어온 여정을 나타냅니다. 바깥뜰은 칭의를 나타냈습니다. 그곳에는 물침례가 있었습니다. 섬기는 일을 하기 전에 씻는 물두멍이 밖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단은 형벌이 가해지거나 없어지는 희생의 장소를 나타냈습니다. 희생물 위에 심판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놋제단, 곧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 줍니다. 광야의 놋뱀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 주었습니다. 뱀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심판받은 죄였고,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 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목을 가다듬는다.] (실례합니다.) 희생물을 태우던 놋제단과 같습니다.
그 안에는 일곱 금촛대가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일곱 가지가 달린 등잔대였습니다. 그런데 휘장 뒤 안쪽에는 궤가 있었습니다. 그 궤 안에는 돌판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날에 이 시대에는 그분의 법들을 돌판이 아닌 마음에 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속에 법을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그것을 말했습니다. 모든 선지자도 다가올 날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것인지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일단 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휘장이 내려졌습니다. 소리가 차단되어 세상의 일들로부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루터교 시대를 통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바깥뜰입니다. 이어서 감리교 시대, 성결의 시대가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은혜의 두 번째 확실한 역사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그 시대에 들어왔고, 그 시대가 제단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들에는 성령의 회복, 감추어진 삶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서 나와… 제단과 지성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 안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안에 있는 대신 아직도 저 바깥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날들을 보내며 믿음이 부족한 이유입니다. 교회는 마지막 시대, 마지막 경륜에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내일 밤 성경으로, 말씀 하나하나로 그것을 입증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그림자가 드리운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입증하는지 지켜보십시오. 일어나고 있는 일들조차 우리가 마지막 때에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합니다. 언제라도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이 바깥에서 꾸물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안쪽 장소를 또 보십시오. 이 휘장 뒤, 아론이 들어가고 그 뒤로 휘장이 내려진 그곳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금 항아리에 담아 궤 곁에 놓아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와 똑같은 만나가 바깥 땅 위에도 놓여 있었습니다. 이 궤가 사람의 마음의 모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마음의 신앙 대신 머리로만 아는 신앙을 갖기 때문입니다. 무례하게 하려는 뜻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오늘날 이 훌륭한 분들, 이곳 미니애폴리스의 빌리 그레이엄과 잭 슐러, 또 오늘날 여러 나라를 다니는 다른 많은 훌륭한 분들, 곧 하나님의 종들이…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러 나오기 시작할 때, 우리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을 데려올, 참으로 살아 있고 불덩이처럼 뜨거운 교회입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빌리 그레이엄과 그분들은 우리가 전하는… 아니, 그분들이 큰 영감을 받아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위해 이 시대에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행하지 않습니다.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앞서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은 기적을 행한 적이 없지만, 모든 나라를 뒤흔든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그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설교자로서보다는 기적을 행하시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여전히 다스리고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살아 있는 참된 믿음 대신 복음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아니, 지적인 믿음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얼마 전 제가 방금 떠나온 도시, 강 건너 켄터키주 루이빌에 한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유명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착한 여자였고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했는지 언제나 의문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한 도덕적으로는 착한 여자였습니다. 그곳에 그녀가 사귀는 청년이 있었는데 이름이 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존과 결혼했고 계속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존은 일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곳에 가 있는 동안 그녀는 서류를… 교적 증서를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이 교회는 그녀의 삼촌이 목사로 있는 교회만큼 영적이지 않았습니다. 삼촌은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곳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며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서로를 흉내 내려고 합니다. 텔레비전 같은 것에 머리를 파묻고 앉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더러운 것을 본뜨거나 흉내 낸 다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가져옵니다. 거룩하다는 남녀들, 아니, 성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름과 물은 섞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초자연적인 것을 믿겠습니까? 세상과 뒤섞여 있으면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성경은 “너희가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않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멘. 이 말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지만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님, 우리는 언젠가 심판대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강단에 서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복음을 전하는 대신 자기 영향력으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를 더욱 밝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 교회의 여자들은 모두 마당에 나가 잔디를 깎을 때 추문을 일으킬 만한 그 작은 옷,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녀도 그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가족들이 그녀를 꾸짖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자기도 다른 사람들만큼 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매들도 그렇게 하는데 나는 왜 못 하나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자기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니 자기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사실 자체가 그녀가 마땅히 되어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이 마음속 아주 깊은 곳까지 닿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어서 보십시오. 그녀는 이런저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그 동네에 머리가 아주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약삭빠른 남자가 이사 왔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반했습니다. 그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뒤쪽으로 나가곤 했고, 그녀는 그가 들어오는 바로 그때 작은 옷을 입고 뒷마당의 잔디를 깎곤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옷을 입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 앞에 보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밖에서 잔디를 깎았습니다. 그러다가 밤이면 울타리 너머로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는 자기 남편을 떠났고, 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상식이 있는 여자라면, 한 아내를 버리고 달아난 남자는 또 다른 아내도 버리고 달아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남자는 그녀와 얼마 동안 살다가 다른 여자가 나타나자 그 여자를 따라 떠났고, 그녀도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에서 똑같이 피아노를 계속 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니 자기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거듭거듭 계속되었습니다. 얼마 뒤 이 남자도 그녀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곳의 사역자가 찾아가 이야기하자 “나는 괜찮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녀의 죄들이 그녀를 찾아냈습니다. 얼마 뒤 그녀는 몸이 나빠져 아랫부분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더니 여성 생식 기관의 문제였습니다. 악성 종양이었고, 이미 너무 진행되어 수술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십시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더 나은 의사를 찾아 전문 진료소로 갔습니다. 거기서도 “죽어 가고 있습니다.”라는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 그 여자가 속한 것과 같은 교단 출신이어서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녀가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도록 할 수만 있다면, 브래넘 형제님께 가서 기도해 달라고 해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찾아갔을 때 그녀는 있는 힘껏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당신을 부른 적이 없어요.” 하더니 “나도 당신만큼 선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부인, 그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는 담배를 연거푸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부인이 다니는 교회를 압니다. 저 자신도 애즈베리 출신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고, 당신만큼 선해요.” 무슨 일이었습니까? 그녀는 성령을 슬프시게 하여 자신에게서 떠나시게 했습니다. 성경은 “죄를 짓는 혼, (곧 믿지 않는 혼입니다.) 그 혼은 죽을지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은 ‘분리’를 뜻합니다. 제가 지금 죽으면 여러분과는 떨어지지만 하나님과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친구들과 떨어지겠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것입니다. 분리입니다. 그녀의 혼은 그녀에게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혼은 마음속에 살며, 여러분은 마음으로 믿습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머릿속에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의 체험으로 마음에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성경에 동의하지만 머리는 추론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런 추론들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생각만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그 안에서 일합니다. 마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그녀의 생각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해. 저 여자들이 할 수 있다면 나는 왜 못 하지?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며, 교회에서도 인정받고 지역사회에서도 인정받잖아. 그러니 나는 왜 안 되겠어? 나도 저들과 같은 그리스도인이야. 저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하는 게 당연해. 그래야 저들과 한편이 될 테니까. 안 하면 나를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볼 거야. 내가 이런 걸 하지 않으면, 내가 저들보다 잘났다고 하는 셈이잖아.’ 보십시오. 그것이 추론입니다. 그런 것은 언제나 여러분을 그릇된 길로 이끕니다. 지적인 지식이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다면 믿지 마십시오. 먼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를 받아들이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에 굳게 머무십시오… 여러분의 혼은 언제나 그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의 날들은 지나갔고, 이 모든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라고 말하는 설교자 등을 보거든, 기억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말씀에 동의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러십니다. 거기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온통 지적인 것뿐입니다. 그가 아무리 세련되고 총신처럼 반듯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잠시 후에 이야기할 그곳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목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그 집에서 쫓겨나 떠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계속 살았습니다. 지적인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요. 여러 해 전에 그분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였어요. 나는 교회에서 연주하고, 사회에서도 내 자리가 있어요. 나도 다른 누구 못지않게 선해요.”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목사 형제님이 물었습니다.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이 남자는 어떻습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들어오신 문이 그대로 열려 있어요.” 그래서 그는 떠났습니다. 그가 “브래넘 형제님을 모시고 오고 싶습니다.” 했습니다. 그녀는 “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아요.”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왔습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형제가 제게 “브래넘 형제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십시오. 이 세상을 떠날 때 반드시 곁에 계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몇 달 동안 계속 지냈지만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녀를 입원시켰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곁에 서 있고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려 할 때, 갑자기 이 지적인 것이 안에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생각은 뇌와 신경과 피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육체의 요소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여기 있는 뇌, 지적인 것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죄를 짓고, 믿지 않아, 한쪽으로 버려져 있던 이 혼이 이제 자신을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 나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목사가 말했습니다. “자, 진정하세요. 지금 정신이 혼미해지신 겁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도 구원받지 못했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의사를 불러왔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진정 주사를 놓아 주세요.” 주사를 놓았지만 그녀는 계속 소리쳤습니다. “나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구원받지 못했어요! 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어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한 대 더 놓아 주세요.” 계속 진정 주사를 놓았고, 마침내 그녀는 “나는 구원받지 못했어요! 구원받지 못했어요!” 하고 소리치면서 숨이 잦아들었습니다. 지적인 것이 무너질 때 주사는 이 입술로 하는 고백을 멈추게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그 혼과는 앞으로 오는 모든 시대에 걸쳐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굳게 서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바로 이렇습니다. 많은… 구약에서 바깥뜰의 땅 위에 만나가 내렸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금으로 된 이 오멜 그릇을 가져다가 만나를 가득 채워 성소 안쪽, 궤 곁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 신선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 위에 내린 것은 시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가서 그것을 거두어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지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시 배고파졌습니다. 만나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서 제가 그런 일을 얼마나 자주 보는지 모릅니다… 그 만나는 무엇의 모형입니까? 이제 조금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저를 똑같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고 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 만나는 성령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여정 동안 만나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세상에 생명을 주려고 죽으신 그리스도 말입니다. 그것은 꿀, 작은 꿀송이였고,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거두어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날이 어느 정도 밝아 해가 떠오르면 그것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지성소 안에 있는 것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좋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성령 침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의 위치, 곧 여러분이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끼니를 거른 듯한 속앓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보면… 여기 바깥에 있는 사람도 의롭게 되어 들어와 주님을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누구든 오직 성령만이 죄를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칭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디서 먹는지, 어디서 양식을 공급받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조차도, 여러 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집회에 참석해 그 집회를 즐깁니다. 그런데 집회를 떠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전날 밤 들어갔을 때만큼 다시 메말라 있습니다.
자신이 신유를 체험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표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앉아서 그것을 놀랍게 여기고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먹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어떤 지도자 같은 사람 앞에서는 그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합니다. 그 일을 간증하기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만나를 먹는 곳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오순절교와 순복음 신자들까지도 그 점에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여러 번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영을 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영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입니다. 그다음에 “내가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새 영을 주고, 그다음에 내 영을 너희 안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영을 받고서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이나 표적 같은 것에 의존합니다. 자신의 삶은 거기에 걸맞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 말이 좀 직설적입니다만, 기억하십시오.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은… 그 영, 그 새 영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의 영과 잘 지내도록 여러분에게 새 영을 주셔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고약해서 자기 자신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오신다면 하나님과는 어떻게 잘 지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너무 의심이 많고 오르락내리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주시고 새 성품을 주셔야 합니다. 그분의 영이 오실 때 여러분이 그 영과 잘 지내도록 말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새 영을 주시고, 그다음 그 안에 그분의 성령을 넣으셔서, (아멘.) 여러분과 함께 거하고 함께 머무르게 하십니다.
보십시오. 뜰에서 먹던 똑같은 만나를 지성소에서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바깥에 있는 만나는 금방 떨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보셨을 것입니다. 바깥에서 먹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도 똑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를 만나면 언제나 지붕 위에라도 올라간 듯 기뻐합니다. 마음에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남자를 만나면 어디에 있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면 ‘아주 좋습니다.’ 합니다. 또 그가 아플 때마다 설교자가 와서 기도해 주면, 형제님, 다음 날 바로 일어나 나다닙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인지 제 복을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 말입니다. 아, 이 점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집회 야영지에서 받은 이런 복들이 사라지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만나, 올바른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삶을 드리지 않았고, 아론처럼 지성소 안쪽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안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남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온 뒤에 감추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들어가고, 둘레에 휘장이 내려지고, 여러분은…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나가 있는 곳에서… 금 항아리에 담긴 만나를 매일, 밤낮으로 언제나 먹고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산 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론이 그곳으로 들어갔을 때 뒤로 휘장이 내려졌고, 그는 온전히 둘러싸인 자기만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다시 태어난 모든 남녀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주위에서 차단된 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감추어진, 헌신된 삶입니다. 세상과 어울려 빈둥거리고, 세상을 흉내 내며 그들처럼 행동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본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옆 교회처럼 살려고 합니다. 더 나은 조직에 속하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이런저런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자신을 희생하는 삶,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감추어져 성령으로 봉인된 삶입니다. 아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얼마나 잘하는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잘하는 것은 좋습니다.) 설교를 얼마나 잘하는지도 아닙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그것은 감추어진 삶, 자신을 온전히 드린 삶입니다. 여러분 주위로 휘장, 장막이 내려졌고, 여러분은 죽어 묻혔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성령으로 그 안에 봉인되었습니다. 아멘.
마귀는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친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한다면 그는 여러분의 형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아멘. 그는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먹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저 바깥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붙들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꽤 잘 지내다가 다음 해에는 세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부흥회가 열리는 동안 잘 지냅니다. 부흥회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세상과 어울립니다. 여러분은 “아, 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방언도 했고, 소리 높여 찬양도 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 좋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속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높고 위대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한다면, 왜 그렇게 살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설교를 말로 하는 것보다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여러분은 쓰인 서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잠깐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찾아낼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뒤의 문을 닫고, 뒤에 있는 모든 장벽과 모든 다리를 불태워 버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아멘. 저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바라보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곳에 아론의 지팡이도 가져다 두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 안에 놓아두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 지팡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날 밤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아몬드 열매가 맺혔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아몬드나무… 막대기나 지팡이였을 것입니다. 아몬드나무에서 가져온 것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밤 바로 이 미니애폴리스에도 아몬드나무… 지팡이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이 감추어진 삶 바깥에 머무는 한, 새 힘을 얻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맺도록 뜻하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싹이 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나무에 싹이 납니까?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새 힘을 줍니까? 이른 아침에, 아주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밤이 되어 모든 것이 고요해진 뒤에 이슬이 내리고, 그것이 생기를 되찾아 줍니다.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잠잠히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에도 소속되어 있고, 이것도 해야 하고,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기에도 가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의 시간을 모조리 차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조용히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이… 여러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온 자연이 조용하고 잠잠해진 뒤에 이슬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생기를 되찾아 주고 생명을 움트게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조용하고 잠잠히 있으면 하늘의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여 새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밤이 지나고 아주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있습니까? 또 꽃이 피어 향기를 냅니다. 그 향기를 알아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가 본 적이 있습니까? 이른 아침에 나가면 이슬이 낮게 맺혀 있고, 나무에 싹이 나고, 꽃들이 피어나며, 그 향기가… 길을 따라가며 인동덩굴의 향기를 맡아 보십시오. 이른 아침 장미 정원에 가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자연이 밤새 고요했기 때문입니다. 고요해지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기로 씻겨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일도 바로 그것입니다. 따로 물러나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있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늘의 새 힘으로 여러분을 씻겨 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멘. 혼자 조용히 있으십시오. 문을 닫고 꼭 닫아 놓은 뒤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제가 여기 주님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또 보십시오. 새 힘을 얻고 나서, 움튼 뒤에, 이 꽃들은 열매도 맺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도 단 한 혼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길거리에서 자신의 구원을 공개적으로 간증한 적이 없습니다. 일터나 다른 곳에서 죄인인 남자나 여자에게 간증해 본 적도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충분히 오래 잠잠히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얼마 전 이웃 주에서 한 남자와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러 해 전에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돼지를 기릅니다. 할아버지는 이 돼지 떼를 길러 아버지를 공부시켰습니다. 그다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가 물려받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돼지를 길러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돼지, 돼지, 제 귀에는 온통 돼지 이야기만 들렸습니다. 저는 “좋은 일입니다, 선생님. 참 감사한…”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돼지들로 모든 비용을 냅니다. 계속 돼지를 더 들여와 팔고, 또 길러 냅니다. 어린 돼지들은 남겨서…” 저는 말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돼지를 기르는 일 말고도 다른 일을 위해 선생님을 이곳에 두셨다는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돼지를 기르는 일이 아무리 정당한 일이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돼지만 기르라고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곳에 두신 것은 공장에서 일만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읽는, 쓰인 서신이 되게 하시려고 두셨습니다. 고귀하고 단정한 삶, 하나님과 함께 감추어진 헌신의 삶을 살게 하셔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이 말씀이 조금 따끔하지만 좋습니다. 여러분이 음식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소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멘. 혼과 몸 모두 치유받을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을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보십시오.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지팡이가 꽃을 피운 뒤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입증하셨는지 보십시오. 이 낡고 죽은 막대기, 바깥뜰에서 그 똑같은 만나 곁에 놓여 있던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 들어와 24시간 머무르자, 그 거룩한 곳에서 나왔을 때에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면 오늘 밤 그분께 나오십시오. 그곳으로 들어가십시오. 집에 가면 문을 닫고, 남편에게 내일까지 방해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그 안에 머무십시오. 아내에게도 똑같이 말하십시오. “아침까지 내가 여기서 나오지 않거든, 오늘은 출근하지 않겠다고 직장 상사에게 알려 주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혼에 무언가가 일어날 때까지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머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체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 바깥에서는 만나를 먹어도 열 시가 지나기 전에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만나가 녹았기 때문입니다. 햇볕에 녹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은 앉아 있었습니다. 아론이 그 안, 성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는 그곳에 앉아 날마다, 밤마다, 일 년 내내, 여러 해에 걸쳐 만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결코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세상의 것들을 버려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는 남자나 여자입니다. 밤낮으로 그 만나를 먹습니다. 바깥에서 폭풍이 몰아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멘. 집안에 병이 있든, 무슨 문제가 생기든,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믿는 자에 관해 또 한 가지 보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만나입니다. 보십시오. 바깥뜰에 있는 사람들도 빛 가운데 걸었지만, 그 빛은 햇빛과 별빛과 달빛이었습니다. 흐린 날에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걸어갈 빛이 없었습니다. 밤에 별들이 나오지 않으면 칠흑같이 어두워서 걸어갈 빛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 사는… 그것이 바깥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밤 여기 앉아 제 말을 듣는 분들 가운데도 주님을 사랑하지만 저 뜰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방언도 하고, 소리 높여 찬양도 하며, 만나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불과 며칠 만에 끼니를 거른 듯한 속앓이가 생깁니다.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도저히 계속 붙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나도 피터슨 형제님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본보기로 삼는 다른 누군가처럼 말입니다. “아, 그분들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일이 지나가든 늘 하나님을 위해 빛을 비춥니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같은 무리에 속해 있고, 같은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은혜로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다만 조금 더 그분 가까이 들어와 그분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 사람은 어떤 빛 가운데 걷고 있었는데, 비 오는 날이면 틀림없이 그 빛이 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작은 일 하나가 생기거나, 불상사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래도 처음부터 내가 틀렸나 봅니다. 있잖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니다. 그러다가 며칠 더 지내다 믿음에서 물러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지나다가 마음속에 무언가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 만나를 한 입 더 먹고 싶다.’ 그래서 다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약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교회로 돌아가겠습니다.” 바로 그렇게 반복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걷고 있는 빛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들이 찾아오면 그 빛을 가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다음 사람은 제단에서 삽니다. 밤낮으로 기도만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제단에서 보게 됩니다. 그에게도 빛이 있습니다. 이제 천막 안에 있기는 합니다만, 제단에 있는 것입니다. 제단에는 그 일곱 등불, 일곱 촛대가 있어서 빛을 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도 아시듯이, 등잔에 그을음이 끼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불빛이 아주 희미해집니다. 촛대의 기름이 거의 다 떨어집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두 번째 자리에서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고 뒤로 휘장이 내려진 사람은 햇빛에도, 별빛에도, 달빛에도, 일곱 금촛대에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단에 나아가 그룹들의 맞물린 날개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주님의 셰키나 영광이 있었고, 잔잔한 빛 가운데 그가 살았습니다. 그 빛은 언제나, 밤낮으로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걸었습니다. 아멘. 구름이 지나가든, 비가 내리든, 천둥이 울리든, 군대가 몰려오든, 그에게는 조금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는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셰키나 영광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제가 광신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셰키나 영광 안에 살기 위해 광신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저는 하나님과 함께 셰키나 영광 안에 머물겠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아멘. 형제님, 침례교인치고는 상당히 강한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참된 설교입니다. 이것은 참된… 그러나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아멘. 설교는 별로 훌륭하지 않아도 진리는 같습니다. 아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세상이 아우성치며 소란을 피우게 내버려 두십시오. 설교자가 실패하고 다른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을 조금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그곳에 머무십시오. 여러분은 만나 항아리 곁에 살면서 배가 고플 때마다 먹습니다. 이 일이 생길지 저 일이 생길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셰키나 영광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그룹들의 맞물린 날개 아래 머물렀던, 참으로 아름다운 그 호박빛 안에서 말입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걸었습니다. 그 안의 모든 것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습니다. 언제나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성소에 살고 있는 남자나 여자는 밤낮으로, 언제나 그리스도의 은혜와 권능과 부활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멘.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바로 그곳입니다. 바로 그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바깥세상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습니다. 아, 주위로 휘장이 내려졌습니다. 누군가 “있잖아요, 존스 부인이 이런저런 일을 했대요.” 하고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아시나요, 목사님이…” “저는 그런 말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아, 목사님이 하신 일은 목사님께 달려 있습니다. 존스 양이 한 일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저와 그리스도께 달려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언제나 그분의 복된 임재 안에 삽니다.” 나는 찢어진 휘장을 지나왔네. 그분의 이름에 할렐루야. 나는 제단 위에서 거룩히 구별되었네. 그분의 이름에 할렐루야. (여러분도 이 옛 찬송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나는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다네.
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왕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그곳에서 사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이 이리저리 떠돌며 흔들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만나를 먹고 교회에 와서 조금 얻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 저는 밤낮으로 그것을 원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주 급하게 그것이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곁에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아멘. 여러분도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구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것입니다. “부족한 자는 하나님께 구하라.” 맞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온전히 헌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제자들이, 그분께서 복을 주시며 “이제 나가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며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마귀들을 내쫓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고 말씀하신 뒤 열흘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영광을 가지고 나가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실패를 만났습니다. 간질을 앓는 소년이 있었는데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그를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그 일을 하라고 권능을 주어 보내셨는데, 여기서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용납해야 하겠느냐? 그를 이리 내게 데려오라.” 그리고 그 소년에게서 부정한 영을 내쫓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어찌하여 우리는 할 수 없었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밤 바다에서 작은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그분을 깨우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분께서는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의 돛을 걷는 줄에 발을 올려놓고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복을 약속받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오늘날 왜 이렇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함께 모여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머물러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감추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헌신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받습니다. 여기서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저 여러분의…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녹음 공백.] 이곳에 죄인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오늘 밤 만나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할 분 말입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저 만나를 맛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저는 그저 만나를 맛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구원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 저는 너무나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염려와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샘에서 마실지니라.”
제가 왜 여쭈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왜 손을 드셨는지 아십니까? 손을 들고 싶은 분이 또 계십니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면 손을 드십시오. 왜 그런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점이 있습니다. 다른 죄인도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도 정말 그곳에 있고 싶습니다. 그 만나를 먹으며 주님의 선하심이 어떤 것인지 맛보고 싶습니다. 아, 저도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압니다. 오랫동안 다녔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적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을 속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조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귀들도 똑같이 말한다는 것을 압니다.” 마귀들도 자비를 구하고, 평안을 구하며, 벌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분을 알아보고 무리 앞에서 그분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발라져야 구원받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또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입니다. 저도 그 삶을 갖고 싶습니다.” 하고 말할 분이 계십니까? 그 자매님이 손을 드신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맞습니까? 여러분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강단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은 성경의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령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 결코, 결코, 결코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남녀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미리 아심으로 그것을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안다고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옳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심각한 상태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영을 너무 여러 번 슬프시게 하면 그 영께서 떠나시고, 다시는 아무런 갈망도 없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정말 그래야겠어. 다음 부흥회 때 바로잡아야지. 죽기 전에 바로잡아야지. 죽기 전에 정말 성령으로 충만해지려고 해. 하나님과 함께 감추어져 아름답게 헌신한 삶을 살고 싶어. 그분께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두 팔을 벌리고 ‘예, 주 예수님.’ 하고 말씀드릴 준비가 되어 있고 싶어.”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하지 않습니까? 그때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마흔여섯 살이며, 제가 본 것은… 사역한 지 23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번 끔찍한 광경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상태로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자신을 참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어… 아, 그 카메라가 돌아가자, 그들은 그런 일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그 권능을 부인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삶을 전혀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습니다. 진정 주사로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친구 여러분, 확실히 하십시오. 이것을 장난처럼 다루지 마십시오. 이것은 복음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교회에 가입해야겠군.”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가입하고도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수천 명이나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이곳에서 심판 때 겪을 실망들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밀주업자와 도박꾼과 매춘부 등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닥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게 될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때 자신의 이름이 그 책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가 참으로 괴로울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말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습니다. 옳다고 생각한 일들을 했고, 선하고 친절하게 살아왔습니다. 나아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성경에서 그 밖에도 많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그런 것으로는 안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저 바깥에서 칭의 가운데 맴돌고 여기 제단 위에 누워 있는 대신, 이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린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적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치유의 때, 큰일들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일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장난처럼 다룹니다. 함부로 손댑니다. 하찮은 일처럼 건드리기만 할 뿐, 결코 그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 형제님, 참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믿음은 곧장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부드럽지 않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나가든 밤낮으로 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없다면 말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제 내가 헌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치고 믿음을 지켰도다. 나를 위해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이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제 세상은 여러분에게 너무나 죽어 있고 더러워서, 이곳에서는 그 어떤 즐거움도 찾을 수 없습니다.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즐거움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봉인하기 위해 보내진, 표를 찍는 천사에 관해 알고 계십니까? “도시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만 봉인하라.” 에스겔 9장입니다. 읽어 보셨습니까? 소리치며 춤추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그들만 봉인되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몇 명이나, 여러분의 교회 교인 가운데 몇 명이나 그러합니까? 그 천사가 지나가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너무나 헌신하여 잃어버린 혼들을 밤낮으로 마음에 품고, 이곳 미니애폴리스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인해 부르짖고 탄식하는 모습을 찾는다면, 오늘 밤 몇 명에게 봉인하겠습니까? 잠시만 생각해 보십시오. 깊이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지켜보았기에 이것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분별의 은사와 함께 기름부음이 임할 때 말입니다. 지금 바로 제게 그것이 임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광신자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없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작은 은사를 받아 어떤 식으로든 제 마음대로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오늘 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기에, 이것을 압니다. 이리저리 떠돌며 흔들리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저는 보았습니다. 또 교회가 감정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아니면 또 다른 상태, 곧 교육받은 교회로서 그저 “우리는 말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봅니다.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여러분이 아무리 반듯하고 정통적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 혼이 새 힘을 얻도록 그 임재 안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면, 참된 승리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 상태에서 마지막을 맞지 마십시오. 그런 상태에서 맞지 마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결말이 무엇일지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모여 있고 그분의 임재 안에 있는 동안, 이제 모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저기서 손을 드신 자매님, 자신이 죄인이며 기도 중에 기억해 달라고 하신 자매님, 거기 다른 분들과 함께 일어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거기서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오늘 밤 바로 자매님을 그분의 왕국 안으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용서해… 자매님, 보십시오. 먼저 그분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아무도,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게 오는 모든 자를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느니라.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그것에 관해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하나님께서 자매님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기를 원하는 다른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제가 소리 내어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이 기도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이 기도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오 하나님, 저의… 피아노 치시는 분은 나오셔서 [불분명한 말들]. 자매님, ‘내 믿음 주를 바라봅니다’의 화음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이 찬송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기도하기 전에 먼저 부릅시다. 내 믿음 주를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 하나님이신 구주여. 이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모든 죄를 없애 주시며, 이날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저와 함께 부르시겠습니까? 이제 모두 손을 들고 함께 부릅시다. 내 믿음 주를 바라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 하나님이신 구주여. 이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모든 죄를 없애 주시며, 오, 이날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계속 연주하십시오.)
자매님이 계속 다음 절을 연주하시는 동안, 여러분이 한 가지 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오른쪽으로 손을 뻗어 옆에 서 있는 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형제님, 자매님, 지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저를 받아 주시도록 말입니다. 저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분에게 그렇게 말하십시오. “형제님, 자매님, 하나님께서 지금 저를 셰키나 영광 안으로 곧바로 데려가 주시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정말 마음으로 진실하게 말하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형제님, 제 손을 잡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셰키나 영광 안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며칠 밤 뒤에는 치유 집회를 열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런 일들이… 모든 사람이 그 영광, 셰키나 영광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저를 그저 받아 주… [불분명한 말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불분명한 말들]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주님, 돌 같은 부분을 부수시고, 저 바깥뜰에서 우리를 들어 올려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주님 곁으로 이끌어 올리시고, 조금 더 높이 들어 올려 주옵소서. 우리를 주님의 임재 안으로 데려가 주옵소서. 그곳에서는 셰키나 영광이 우리 주위를 온통 비추고, 우리가 그 빛 가운데 걸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간구이며, 서로를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영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이 일들을 허락해 주옵소서. 오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여,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허락해 주옵소서.
아버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를 자신을 이끌어 주시는 인도자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그들은 만나를 먹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 체험이 결코 다하지 않는 곳으로 그들을 데려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이 건물 위로 내리고 있는 이 영광이 참으로 모든 마음에 거하게 하옵소서. 죽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이 영광스러운 상태로 그분의 임재 안에 데려갈 때까지 그렇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제 주님의 영께서 참으로 모든 마음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빛 가운데 걸으리.’ 우리는 빛 가운데,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걸으리. 자비의 이슬방울 반짝이는 곳으로 오라. 밤낮으로 우리 주위를 온통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이제 모두 손을 들고 함께 부릅시다. 우리는 빛 가운데 걸으리. (어떤 빛입니까? 셰키나입니다.) 아름다운 빛 가운데. 자비의 이슬방울 반짝이는 곳으로 오라. 밤낮으로 우리 주위를 온통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여러분의 혼은 지금 어떻습니까? 이제 그분의 임재 안에 살고 계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다시 한번 “아멘.”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부릅시다. 우리는 빛 가운데,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걸으리. 자비의 이슬방울 반짝이는 곳으로 오라. 밤낮으로 우리 주위를 온통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아멘. 아,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