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오직 믿으라. 서 계신 채로 이번에는 이렇게 불러 보겠습니다. “지금 믿습니다.” 바로 지금 말입니다. “조금 있다가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지금 믿습니다”입니다. 자, 부르겠습니다. 지금 믿습니다, 지금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지금 믿습니다. 지금 믿습니다, 지금 믿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 지금 믿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내려오셔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스럽지 못했던 우리가 그분 자신의 몸과 피를 드려 이루신 화해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우리의 죄를 그분 위에 짊어지시고 갈보리로 가져가 없애 주셨습니다. 또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셋째 날에 다시 일으키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표적과 이적을 나타내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우리는 찬송과 말씀을 통해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아버지, 음악을 듣고 찬송을 부르는 일과 그 밖의 여러 일을 통해 이미 우리를 복 주셨듯이, 오늘 밤 이 사역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를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와 교제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것들을 가져다가 우리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마음에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드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성경의 한 기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의 집으로 들어가자, 할 때에 내가 즐거워하였도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 오래된 찬송, 「오직 믿으라」를 들으니 신유 집회를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를 맞이할 때 부르는 찬송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참으로 여러 나라의 말로 그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약 십 년 전에 처음 그 찬송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대전도 집회의 찬송이었습니다. 대전도 집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도, 인도에서도, 유럽 전역과 아시아에서도, 오, 거의 어디서나 「오직 믿으라」를 들어 보았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제가 먼저 떠나게 되어 통상적인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면, 저를 땅에 내릴 때에도 이 찬송을 연주할 것입니다. “오직 믿으라,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것이 제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간증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성경의 증언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땅에 오신 그 의로움을 통해, 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시작부터 참으로 믿음의 감동이 솟아오르지 않습니까? 얼마나 행복한지요. 어젯밤에는 첫날부터 여러분을 조금 늦게까지 붙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걷기 전에 말부터 했다고 합니다. 여기 계신 여성분들, 그게 무슨 징조인지 아십니까? 혀 때문에 망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올바른 것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아시겠죠? 올바른 것, 곧 주 예수님 말입니다. 저는 정말 그분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에게서 한 가지 흠을 찾았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을 너무 자랑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에 관해 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해 무슨 말을 한들 지나치겠습니까? 그분께서는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십니다. 오늘 밤에는 언약에 관한 공부를 조금 시작하려 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다녀 보니, 특히 오늘날 개신교 운동과 순복음 운동 안에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바로 그것이 치유 집회를 그토록 어렵게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마련된 무엇이든 받으려면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두 부류의 사람을 보았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침례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셈이라 제가 조금은 칼빈주의적입니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쪽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쪽은 오순절파, 또는 순복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어디에 놓여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압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믿을 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오순절파는 다시 태어나는 체험과 성령을 받을 만큼 깊이 들어갔지만, 자신의 위치를 알 만큼 근본적인 가르침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은 은행에 돈이 많아도 수표를 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는 셈입니다. 이 둘을 합칠 수만 있다면 정말 제대로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근본적인 가르침과 오순절의 믿음, 또는 오순절의 믿음과 근본적인 가르침이 함께 있다면 꼭 맞게 갖추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바로 그렇게 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매일 밤 어떤 일이 있을지, 성령께서 무엇을 하실지 알 수 없고, 이렇게 잠깐 들르는 집회들이니 그저 기다려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읽다가, 교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의 참으로 좋은 것들을 좀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와 맺으신 언약」에 관해 말하려 합니다. 여러 성경 구절을 참조하게 되겠지만, 먼저 창세기 12장 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며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기서 “내가,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을 보십시오. 어젯밤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자녀들과… 우리의 첫 조상과 쌍방의 언약, 곧 에덴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조건이 있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시고 아담을 복 주셨으며,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담이 어떤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어떤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께 한 약속을 어겼습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께 한 약속을 어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한 약속도 어깁니다. 그러므로 어젯밤에 말씀드렸듯이, 여기서 우리의 처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그분의 생각도 무한합니다. 우리는 유한하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것들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분만큼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시겠죠? 사람은 믿음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는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오른쪽에는 생명나무가, 왼쪽에는 지식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생명나무, 곧 믿음에서 먹는 한 그는 삽니다. 하지만 지식의 나무에서 처음 한 입을 베어 물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떨어져 나간 뒤에도 계속 그 나무에서 베어 먹고, 끊임없이 그 나무에서 먹습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자기… 그 지식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섞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식으로 그분을 알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으로도 하나님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에는 한 가지 요소밖에 없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땅 위의 거처와 접촉하도록 다섯 감각을 주셨습니다. 보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땅 위의 거처와 접촉하기 위한 것이며, 어느 것도 하나님과 접촉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혼과 몸과 영, 셋이 하나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안에서 삼위일체이셨듯이, 사람 안에도 셋이 하나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람은 혼과 몸과 영, 셋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보십시오. 몸에는 땅 위의 거처와 접촉하는 다섯 감각이 있지만, 영에는 두 감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귀에게 속한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믿음입니다. 불신은 여러분을 정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파멸시키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불신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그리고 불신에는 두려움이 따릅니다. 아시겠죠? 불신에는 두려움이 따릅니다. 이리저리 따지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사형수 감방에 갇혀 있고, 주지사 측에서 내일 아침 저를 처형하기로 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해도, 두려움은 제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성분은 아프신 것 같습니다. 곁에 베개를 놓아두셨습니다. 아프신 분입니다. 말씀을 들으러 오셨을 테고, 어쩌면 치유를 받으러 오셨을 것입니다. 자매님, 아무리 두려워하셔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에는 조금의 가치도 없으니 버리십시오.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내일 아침 죽게 되었고 주지사가 이미 사형 집행에 서명했다면, 믿음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시겠지요. 믿음은 저의 사면장에 서명할 수 있지만, 두려움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그러니 두려움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 가치도 없다면, 아예 버립시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읍시다.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의 훌륭한 학교와 신학교와 교육, 학위 등을 존중합니다. 모두 훌륭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무리 많이 알아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떻게 깨뜨렸는지를 보셨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아무도 그 언약의 당사자로 끼워 넣지 않으셨다는 점을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네 씨와 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라.” 무조건적으로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자, 아담아, 네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한다면…”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오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담이 그 일을 결코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이 교회일 뿐 아니라 학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압니다. 혹시 제 가르침이 여기서 가르치는 어떤 내용과 어긋난다면, 그것은 버리십시오. 아시겠죠? 그런 목적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거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체리 파이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체리 파이를 좋아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같은 마음을 가진 분, 입맛이 같은 동료 시민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체리 파이를 좋아하지만, 먹다가 씨가 나오면 파이를 버리지 않고 씨를 버립니다. 닭튀김을 먹을 때에도 저는… 뼈가 나온다고 닭을 버리지 않고 뼈만 버립니다. 그러니 제가 가르칠 때에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면 그 부분은 버리고,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취하십시오. 그러면 공평하겠지요.
저는… 사탄이 창조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사탄은 왜곡시키는 자이지 창조자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그가 하나님의 동역자, 아침의 아들 등이 되었을 때, 불타는 유황 가운데를 오가던 때 말입니다. 그때 사탄이 선한 것을 악한 것으로 왜곡시켰습니다… 무엇을 왜곡시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실 것입니다. 결혼 생활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경은 결혼 생활이 하나님께 속하며 잠자리가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춘과 불법적인 관계는 그것을 왜곡시킨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세계 사람들의 생각 전체가 점점 더 왜곡되어 마침내… 라디오와 텔레비전까지 온통 죄가 뒤범벅된 거대한 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홍수로 멸망하기 전과 꼭 같이, 사람의 마음의 모든 의도가, 사람의 모든 욕망이 끊임없이 악해지고 있습니다.
몇 주만 시간이 있다면, 이삼 일 밤 동안 주님의 재림에 대해 설교하고 싶습니다. 성경과 과학적 증거만으로도 우리가 지금 바로 그 전환점에 와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까이 와 있습니다.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이런 일들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이 길을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오신 여러분,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그분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가난의 때가 아니라 풍족한 때에,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는 때에 그분께서 오실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이 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저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창건 전에 그 일이 처음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시 자신에게로 데려오기 위해 사용하실 모든 계획을 그때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나타날 짐승이 세상의 창건 때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모든 자들을 속이리라.” 그들의 이름은 언제 기록되었습니까? 세상의 창건 때부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갈보리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저기서 죽으면 어쩌면 누군가 나를 불쌍히 여겨 내려와 구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받으리라고 미리 아신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시려면 알고 계셔야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쓰인 “예정하다”라는 말은 거기서는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그 뜻은… 사람들에게 예정에 대해 말하면,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작은 관 같은 데로 밀어 넣어 통과시키도록 그냥 예정하셨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정은 미리 아심을 돌아보며, 미리 아심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를 내다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세상의 창건 전부터 누가 구원을 받을지, 누가 받지 않을지 아셨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두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미리 아심으로 에서가 얼마나 교활한 자가 될지, 또 야곱을 어떻게 구원하실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그런 일들을 아셨습니다. 아시겠죠? 미리 아심입니다. 자, 보십시오. 제가 지금 기초를 놓고 있습니다. 이 주제 하나에 서너 시간쯤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아셨고,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을 보십시오.
이제… 여기서 영원한 보장이라는 문제까지 곧바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보장을 믿습니다. 교회에는 영원한 보장이 있고,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는 한 교회와 함께 안전하게 보장받는다고 믿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는 한 교회와 함께 안전하게 보장받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 안으로 들어갑니까? 가입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감리교도 아니고, 침례교도 아니고, 오순절파도 아니라 한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우리는 모두 침례를 받아 하나의 교제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우리가 이 교제 안에 있는 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끊임없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어젯밤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붉은색을 통해 여러분을 보십니다. 여러분은 붉은 죄인이지만, 붉은색을 통해 보시면 희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므로 교회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그 안에 있든 없든 교회는 존재할 것이며, 점도 주름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것으로 영원히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안에 윌리엄 브래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거기 있을 것이며, 피로 씻기고 다림질되어 점도 주름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교회 안에 머물고 싶은지 아닌지는 제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예정하셔서 제가 반드시 거기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제가 이 무리와 함께 있다면 거기에 있게 되리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또는 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곧 신부 안에 있다면 거기에 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선택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선택을 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이복 누이인 아내 사라와 함께 바빌론에서 내려와 우르라는 성과 그곳 시날의 평야와 골짜기에 살았습니다. 아마 아침에는 나가서 열매를 따 먹고, 낮에는 덤불로 들어가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 식생활과 여러 형편을 생각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꽤 오래 살았습니다. 실제로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다른 누구와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나을 것이 없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선택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제 네 족장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의롭게 됨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두 주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아브라함은, 실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입니다. 이삭은 의롭게 됨을 나타냅니다. 야곱은 은혜입니다.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야곱은 은혜입니다. 요셉은 완전함입니다. 선택, 의롭게 됨, 은혜, 완전함입니다. 어디에도 요셉을 흠잡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으로, 곧 미리 아심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걸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 밤에도 바로 같은 방식으로,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건물 안 곳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왜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 점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하며,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오지 못하느니라.” 맞습니까?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이끄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며,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잠시 보십시오.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라는 점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아, 너 자신을 분리하라.” 부르심을 받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 있는 다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실 때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오는 모든 아들은 먼저 시험을 받거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먼저 시험을 받고, 징계를 받고, 바로잡히고, 자녀로서 훈련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아들이 그렇습니다. 시험을 겪으셨습니까? 환난을 겪으셨습니까? 핍박을 받으셨습니까? 그런 일들을 견뎌 내신다면 여러분은 참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견디지 못하고, 매가 무겁게 내려칠 때 도망쳐 세상으로 돌아간다면, 성경은 “너희는 사생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니라”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그런 일들이 있으리라고 예상하며, 그런 일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 곧 불같은 시련이 우리에게 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믿는 체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구원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지,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 체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참되게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무엇을 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것을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려고 아내와 헤어질 때, 저는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 브래넘 부인, 잘 들어요. 당신은 결혼한 여자요. 내가 없는 동안 네 앞에 다른 남편들을 두지 말지니라. 그래,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지니라.” 그러면 아내도 결혼한 여자로서 저에게 율법을 들이대며 “자, 빌리, 당신도 떠나 있는 동안 당신 앞에 다른 아내들을 두어서는 안 돼요”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가서 말합니다. “여보, 주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러 가라고 하시네요.”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말합니다. “여보, 나를 위해 기도해 줘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복 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떠납니다. 집에서는 어떨지, 아내가 이 일을 하고 있을지 저 일을 하고 있을지 전혀 염려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한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 제가 지옥만 피하려고 그리스도를 섬긴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오, 저는 세상의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제 가엾고 소중한 아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가 복 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가끔 해외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내가 좋아할 만한 진기한 물건, 작은 장신구 같은 것을 삽니다. 아내에게 가져다줍니다. 한동안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저는 그것을 품에 안고 옵니다. 깨질까 봐 비행기 화물로 보내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아내에게 다가가 “여보, 이것 좀 봐요” 하며 깜짝 놀라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어머, 빌리, 정말, 아, 너무 기뻐요”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제 기분도 좋아집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성경을 들고 존의 집에 가야겠어. 그 사람은 주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가야 하기는 하는데, 아, 그리스도인의 삶은 너무 힘들어.” 이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을 위해 무엇인가 하러 가는 것이 좋고, 혼들을 그분께 데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아멘. 이 말씀이 왼쪽 다섯째 갈비뼈까지 깊이 들어가 그곳에 단단히 자리 잡고 머물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사랑의 관계이므로 그렇게 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랑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어의 표현으로는 하나를 필리오 사랑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를 아가포 사랑이라고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필리오 사랑과 아가포 사랑은 서로 다른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듯 그리스도를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이 땅의 사랑보다 더 크고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오, 염려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혼들을 얻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아버지의 일을 돌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를 주님께 인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찾아가 친절하게 말을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존? 오늘 밤에는 낚시 가는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네… 아, 저는 낚시를 좋아합니다.” 한동안 그와 낚시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가 기르는 닭이나 무슨 농사를 지으려는지에 관해서도 한동안 이야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복음을 그의 마음에 전할 기회를 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다음 그 혼을 얻으면, 제가 아내에게 작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아버지 앞에 그 혼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의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죄인처럼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이, 본성으로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세상에 나와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참으로 성결해서 나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든 율법을 지키며 교회에 다녔을 수 있습니다. 성별되고 거룩하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원하시는 것을 모두 갖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하나님께 오는 모든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은 같은 방식, 곧 성적 욕망을 통해 태어납니다. 그것 없이 태어나신 분은 오직 한 분, 우리의 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뿐입니다. 성령께서 마리아의 태 안에서 그분을 덮으셨습니다.
혈액 세포는 남성에게서 옵니다. 남성이 혈액 세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성이 성적 욕망을 가질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였습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태 안에 혈액 세포를 창조하셨고, 그것이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을 떠나서는, 이것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을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빌리 그레이엄이 저보다 바로 앞서 설교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오후에 설교했고, 저는 그다음 날 오후에 했습니다. 제가 시작했을 때… 그는 한 번만 집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언제나 빌리 그레이엄을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존경해 왔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츠빙글리의 교리가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처녀 탄생을 믿지 않았습니다. 츠빙글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 요셉의 아들이며, 실제로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성적 접촉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를 받치는 모든 기초를 무너뜨려, 그리스도교를 불교나 이슬람교나 다른 그 무엇과도 다를 바 없게 만듭니다. 그분께서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빌리는 조금도 봐주지 않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단지 선지자나 선한 사람 같은 존재로 격하시키면, 사람 안에 의로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 그분은 철학자였습니다. 스승이었습니다. 아, 선지자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못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피 아래로 잠겼을 때, 우리의 죄가 잠긴 것은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나온 피였습니다. 그분이 선지자였다면 선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다름 아닌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아들, 살아 계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태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거하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얼마 전에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믿는 어떤 여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신적이시라는 점을 너무 강조하세요.” 그러더니 “제가 그분이 신적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증명하면 믿으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다면 믿겠습니다. 제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저는 모든 것을 그 말씀으로 검증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성경으로 그분이 신적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증명하면 받아들이시겠어요?” 저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다면 그것은 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좋아요. 요한복음 11장에서 그분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 성경은 ‘그분께서 우시더라’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셨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우셨잖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셨습니다. 울면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몸을 곧추세우고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셨을 때,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까지 나던 사람이… 그것은 단지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멘.
배가 고파서 무엇인가 먹고 싶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배가 고프셨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조각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는 사람이기만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신지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배 뒤쪽에 누워 계셨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바다의 만 마귀가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하는 가운데, 배는 폭풍 속에서 병마개처럼 오르내렸습니다. 지치셨고 그분에게서 능력이 나갔으므로 잠들어 계셨을 때, 그곳에 누워 주무시던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하지만 일어나 배의 돛줄에 발을 얹고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라고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그곳에서 말씀하신 분은 단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죽음을 당하시며 자비를 부르짖으셨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이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죽음뿐 아니라 죄인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분 위에 있었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지옥에 가셔서 속죄 염소처럼 우리의 죄를 멀리 가져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자비를 부르짖으시며 사람처럼 죽으셨지만, 부활절 아침에는 무덤의 봉인을 깨뜨리고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셨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다시 일어나 나를 값없이 영원히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그분 오시리, 오, 영광스러운 날이여.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에디 페로넷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능을 모두 찬양하라! 천사들 엎드려 경배하라. 왕의 면류관을 가져와, 만유의 주로 그분께 씌워 드리라. 그렇습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저 아버지의 품 안에 계셨던 분,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로고스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덤불 속에 계셨던 분도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셨다는 점을 보십시오. “네 친족에게서 분리하라. 네 아버지 집에서 분리하라. 네 모든 동료에게서 분리하라. 이런 모든 것과 완전히 관계를 끊고 나와 함께 걸으라.” 사람이 그렇게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분리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아멘. 여러분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내가…” ‘네가 한다면’이 아닙니다. “내가 하리라. 내가 이미 정해 놓았다. 이제 내가 너와 언약을 맺겠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세상과 모든 민족의 상속자로 삼겠다. 너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내가 너와 네 씨와 언약을 맺겠다. 너는 늙도록 살게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너는 나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다. 게다가 네 아내 사라를 통해 네게 아이를 주겠다.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오,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무언가가 여러분을 감동시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입니다. “내가 하리라.” “네가 한다면”이 아니라 “내가 하리라”입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그 언약,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고 구원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이행하실 의무가 있으셨고, 실제로 이행하셨습니다. 그 언약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신 언약도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만큼 확실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걱정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석에 몰린 것 같습니다. “아, 두렵습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제가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저는 천년왕국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바로 지금, 현재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다시 태어나 성령을 받은 모든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는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은 느낌을 따라갑니다. 저는 구원받은 느낌이 들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의지하면 마귀는 매일 여러분을 제멋대로 휘둘러 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제가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믿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기분이 좋든, 그런 느낌이 들든 안 들든, 저는 어쨌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성분, 치유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느꼈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사역이 확고한 근거이므로, 모든 구속의 복은 믿는 자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길을 가는 동안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도록 맨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이 서명된 수표책을 주십니다. 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가 두렵습니까? 아멘. 내용을 적어 본부로 보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아멘.
“예금이 충분히 있는지만 안다면 좋겠는데요.” 그분의 피는 충분합니다. 무엇에 충분합니까? 그분께서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갈보리에서 이미 예치되었습니다. 질병은 죄의 한 속성이므로, 죄를 다루면 질병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멘. “구원받다”라는 같은 단어가 두 가지로 번역됩니다. 그 말은 그리스어 소조에서 왔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옷단을 만진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소조하였다,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어느 쪽에도 쓰입니다. 두 말은 그저… 그것이 혼의 구원을 뜻할 때마다 몸의 구원도 뜻합니다. 여러분은 육체적으로 구원받거나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구원받거나 영원한 분리에서 구원받습니다. 그 모든 것은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사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멘.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오, 이것이면 침례교인도 소리쳐 찬양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무엇이 완성되었습니까? 영광의 나라까지 줄곧 가는 우리의 온전한 승차권입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의 피로 작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셨고, 여러분에게 그 표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그저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일어서서 모두 이렇게 노래해도 좋겠습니다.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가네. 누가 와서 나와 함께 가려나?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가네.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 찬송을 불러 보셨을 것입니다. 교회의 훌륭한 옛 찬송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전에 죽었으나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앉아서 “아, 어떨지 모르겠네”라고 합니다. 오, 이런! 떨쳐 버리십시오. 아멘. 여러분을 붙잡고 있는 것들을 모두 떼어 버리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사탄, 너는 패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네가 가진 모든 힘을 빼앗으셨다. 너는 허세만 부릴 뿐이다. 네 허세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아멘. “나는 허세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갈보리에서 받은 것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할렐루야! 허세 부리지 마라. 가라,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비켜라.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전진한다.” 아멘. 그가 달아나며 언덕을 넘어가는 빨간 꼬리등이 보일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돌보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연로한 형제자매님들 중에는 “오늘 밤 내가 젊은 남자나 여자라면 한번 해 보겠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오, 아닙니다. 애초에 “한번 해 보겠다”는 식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냥 와서 받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시면 바로 그때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아십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고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자신들에게 아기가 생길 것이라고 간증하며 다녔습니다.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조상 아브라함이 오늘날 살고 있는데 일흔다섯 살이고, 아담한 아내 사라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갑니다. 두 사람이 아기 출산을 준비하러 의사에게 찾아간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저 노인의 정신이 어떻게 됐군.” 아시겠죠? “저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그렇습니다. 뭔가 달라졌습니다.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번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빌리, 팔을 휘두르고 비누 외판원처럼 행동하더군요.” 그러더니 “세상에, 그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야 제가 행복하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러다가 미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버려 두십시오. 제정신일 때보다 미쳤을 때 더 행복하니까요.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그것에게는… 세상에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생입니다. 아멘. 교회에는 비타민이 좀 필요합니다. 빈혈에 걸렸습니다. 신경계가 쇠약해졌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비타민이 가득한 창고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약국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낫습니다. 그 영적인 비타민을 받아들이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강건하게 하여 특별 소유 백성, 거룩한 민족으로 세울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가 약속을 받았을 때를 보십시오. 로마서 4장에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돌아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라, 방금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우리에게 아기가 생길 거라고 하셨소. 우선 가서 기저귀 천과 핀을 좀 사고 모든 것을 준비합시다. 아기가 올 테니까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바로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누구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여기 아프신 여성분처럼 병든 사람도 “할렐루야”라고 말하십시오. “자매님, 제 베개를 저쪽으로 가져다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제가 믿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제가 치유될 것을 믿어요.”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아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채비를 갖추십시오. 때가 오면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기의 작은 신발이며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준비했습니다.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마흔, 쉰, 예순, 폐경이 된 지 약 이십오 년이 지난 것입니다. 그는 사라가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부터 함께 살았고, 자신은 일흔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세월을 함께 살았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래도 너희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따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은 따져 보지만 믿음은 그래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면서 믿었다고 했습니다. 아무 소망도 없을 때에도 그는 그래도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전가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아브라함의 씨입니까?”라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의 참된 씨는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 관한 말이었잖아요”라고 하십니까? 오, 아닙니다. 성경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의 씨가 되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까? 교회에 가입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성령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며,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가 됩니다. 여러분은 상속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바로 그 약속이 그의 씨에게도 주어집니다. 아멘. 형제님, 그렇게 하면 마귀가 궁지에 몰립니다. 그에게 말씀을 그대로 들이대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특성을…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 모든 권능과 그 모든 표적, 그분 안에 있는 그 모든 것을 지니셨지만,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그중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취하셔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은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어디 한번 보자.” 그 옛 마귀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 봐라. 여기 존스 영감을 고쳐 봐라. 어디 한번 보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기록되었느니라.” 사탄은 자기가 지금 모세를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데리고 올라가… 올라가… 말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아니, 케이크에 설탕을 입히듯 성경에 겉칠을 했습니다.
오늘 어떤 설교자가 “그저 겉칠을 했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겉칠하는 것, ‘코팅’과 인용하는 것, ‘쿼팅’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발을 돌에 부딪히신 적이 없습니다. 그는 “…너를 받들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기록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취하셔서 사탄의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그 말씀을 취하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렇게 기록되었느니라”라고 말하기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교회의 모든 비겁함이 사라집니다. 소원만 비는 나약함을 빼내고, 등뼈처럼 굳센 심지를 넣어 줍니다. 사람들은 “내게도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합니다. 무엇을 바라고만 있습니까? 바라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집회를 그렇게 뜨겁게 하면 치유 집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좀… “할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하는 그 소원만을 버리면 말입니다. 바라고만 있을 것도,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그것은 하늘에 기록되어 영원히 유효합니다. 아멘. 오, 참으로 믿음의 감동이 솟아납니다. 소리쳐 찬양하는 침례교인이 된 기분입니다.
보십시오. 형제님,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낳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씨입니다. 씨가 알맞은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생명을 낳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름다운 사우스다코타주에서 농사를 짓는 여러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밀을 땅에 심는 것뿐입니다. 매일 아침 나가서 파내어 들여다보며 “어디 보자, 혹시… 어, 이 밀은 쓸모가 없군”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넣었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해 봐야지. 아니, 싹이 안 났네. 쓸모가 없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한 결코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내 손이 좀 나아졌는지 보자. 아니, 아니야.”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다시 해 보자”고 합니다. 다음 날 밤에 또 가서 기도를 받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조금도 낫지 않았어.” 그러면 결코 치유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밀을 땅에 심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것이 자라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씨도 그렇게 다루는 것입니다. 제 말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어떤 신성한 약속이든 그 약속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의 태도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어떤 약속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약속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분의 약속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말씀은 씨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씨는 약속입니다. 그 씨들을 여러분의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무엇을 위한 것이든 하나님께서 존중해 주실 것이며 약속한 바로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첫 달이 지났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될 거야. 사라,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도 할렐루야. 어쨌든 당신은 아기를 낳을 거요.” 둘째 달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할렐루야, 어쨌든 낳을 거요.” 첫해가 지났습니다. “사라, 올해는 조금 낫지 않소? 이제 예순여섯 살인데, 뭔가 다르지 않소?” “조금도요, 아브라함.”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아기가 생길 거요.” “아브라함,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그런데 뭘 그리 기뻐서 외치세요?” “올해 아기가 오면 작년보다 더 큰 기적이 될 테니까. 나이가 한 살 더 들었잖소.” 아멘.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라고 자처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당장 다 얻지 못하면 “아, 뭐, 그런 일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네”라고 합니다. 오, 이 철없는 사람들아. 여러분은 복음을 들으며 너무 귀여움만 받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떨치고 나오십시오. 어른다운 남자와 여자답게 받아들이며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거칠고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분명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는… 아주 가난하게 살았으므로, 어머니는 고기 껍질을 가져다가 냄비에 끓이곤 하셨습니다… 아니, 오븐에 넣으셨습니다. 가게에서 이만한 자루 가득 십 센트를 주고 사 오는 묵은 베이컨 껍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돼지기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빵을 만들 때 그 기름을 넣었습니다. 일 년 내내 먹는 것이라곤 그 빵과 검은눈콩, 수수 당밀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식생활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우리 어린아이들은 모두 같은 욕조에서 목욕해야 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조금 붓고 다음 아이가 들어가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모두 피마자유를 한 번씩 먹었습니다. 정말 저는 피마자유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도 그 냄새를 못 견딥니다. 매번 제가 가서… 농담을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곳은 농담하는 자리가 아니라 강단입니다.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먹으면 속이 너무 메스꺼워서 못 견디겠어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속이 메스껍지 않으면 아무 효험도 없는 거란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속에서 복음을 소화하는 체계를 뒤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라면 그답게 행동합시다. 아멘. 얼마 전, 노예를 두고 노예를 사고팔던 남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노예를 샀습니다. 노예가 백 명쯤 되는 농장에 어느 날 노예 매매상이 찾아와 보니 그들 모두가…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보어인들에게서, 그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들을… 네덜란드인들에게서 사서, 아프리카에서 이곳으로 데려와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들에게 채찍질도 하고 온갖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향수병에 시달렸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없었으므로 모두 낙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찍질하며 일을 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어떤 젊은이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턱을 치켜들고 어깨를 펴고 다녔습니다. 그에게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곧바로 나서서 했습니다. 그래서 한 매매상이 와서 “저 노예를 사고 싶소”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저 사람은 팔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토록 씩씩합니까? 아마 다른 노예들을 감독하는 사람인가 보군요.” 주인은 “아니오, 그저 노예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 먹이시나 보군요.” 주인은 “아니오, 그에게 따로 먹이지 않소. 모두 함께 먹소”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저 사람은 저렇게 기운차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나머지는 저렇게 기운이 없는 겁니까? 왜 그토록 다르지요?”
주인이 말했습니다. “말씀드리지요. 나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저 사람은 자기 부족 왕의 아들이었소. 여기서는 나그네지만,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고개를 높이 들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거요.” 그 이야기를 읽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져 죄의 세상에 있지만, 그리스도인 신사와 그리스도인 숙녀답게 걷고 행동합시다.” 힘을 내어 아버지의 일을 합시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합시다. 남자와 여자들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며,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 되어 뒤따라오는 젊은이들을 뒷받침하게 합시다. 아멘. [테이프의 공백.] …해가 지났습니다. “사라, 몸이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아기가 생길 거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백 살쯤 되었습니다. 이십오 년이 지난 것입니다. “사라, 이제는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아기가 생길 거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그는 믿음이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한 것이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고 돌아섭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이십오 년을 기다렸고, 이십오 년이 끝났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하신 날보다도 그것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에서 다음 날까지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아, 하나님, 제게 증명해 주세요.” 오, 참으로 우리는 얼마나 나약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잖아요”라고 하십니까? 여러분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아멘.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일을 했기 때문도, 교회에 가입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예수님께로 부르셨으며,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게 아주 훌륭한 침례교 형제님이 계십니다. 저는 침례교인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참 좋은 분인데, 얼마 전에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더 무엇을…” 그러더니 “오래전 오순절 때처럼 성령을 받는다고 믿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성령이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저는 “성령은 두 분이 아니라 한 분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보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시대의 끝까지 우리 안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보십시오. 같은 성령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믿을 때 영생을 받지만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침례를 주어 믿는 자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침례교인 여러분이 그 점을 이해하시면 영원한 보장에 관해서 저도 여러분과 뜻을 같이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지만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침례교인 무리를 만났을 때…” 아볼로의 회심자들 말입니다. 아볼로는 침례자 요한에게 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너희가 믿은 이래로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지조차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들은 침례교인이었고, 믿었으며 기쁨도 있었지만, 성령은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믿는 자들은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멘. 그때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침례교에서는 어느 교회에서 왔든 침례를 받아 침례교의 교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은 한 침례가 “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침례는 성령입니다. 아멘. 성령 침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물이 아니라 한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멘. 오, 저는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가 말했습니다… 그가 백 살쯤 되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이 맹세를 네게 확증해 주겠다. 너는 이 신유의 일이 일어나리라고 이십오 년 동안 나를 믿어 왔다.” 그것은 신유였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것을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만, 주님의 뜻이면 내일 밤에는 그것이 신유였다는 것을 입증해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신유의 영광을 여러분에게 입증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무엇을 할지 네게 보여 주고 너와 함께 그것을 영원히 확증하겠다.” 그리고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자, 가서 삼 년 된 암염소를 가져오너라. 삼 년 된 암송아지도 가져오너라. 그리고 숫양도 가져오너라…” 암컷 둘과 수컷 하나라는 점을 보십시오. 오늘 밤에 다루지 못하면 내일 밤에 그것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비둘기 두 마리…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가져오너라.”
아브라함은 그것들을 가져왔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보십시오. 바로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일을 이루시고 그를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으시며, 그 맹세를 영원히 확증하실지 보여 주려 하셨습니다. 어떻게 확증될 것이었습니까? 이것은 그림자입니다. 주의 깊게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암염소를 가져다가 쪼갰습니다. 암송아지를 가져다가 쪼갰습니다. 숫양을 가져다가 쪼갰습니다. 하지만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보셨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비둘기나 집비둘기가 치유를 위한 제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정결하게 하는 일 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륜을 율법에서 은혜로 바꾸셨지만,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것을 제물로 드리는 행위가 신유를 이루어 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낸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비둘기는 쪼개지 않았지만 짐승은 쪼개었습니다. 그것은 둘 사이의 차이를, 곧 율법이 은혜로 바뀔 때가 올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은혜가 먼저였습니다. 은혜는 이집트에서 이미 구원자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들을 이끌어 낼 모세가 이미 있었습니다. 희생물도 이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결정적으로 치명적인 선택을 한 곳은 출애굽기 19장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떠맡고 원하면서 은혜를 거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옳은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조각들을 각각 놓은 뒤 지켜보며 해가 질 때까지 새들이 내려앉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제 마치려 하니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아브라함에게 깊은 잠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내 아들아, 네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쨌든 이루겠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정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실 것입니다. 은혜로 하실 것입니다. 오, 그것을 생각하면 그저 소리를 지르고 싶어집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다. 내게 무엇을 드릴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주님의 의에 비하면 내가 가진 최상의 의도 그분 보시기에는 더러운 누더기일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죄인이며,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들의 피를 취하여 이렇게 저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저를 의로운 사람으로 보십니다. 그분의 아들의 피가 저를 의롭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보겠습니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깊은 잠과 공포가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이를테면 악몽, 죽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모든 죄인에게 마땅히 닥칠 일입니다. 모든 죄인은 죽음 아래 있으며,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 마땅합니다. 그는 죽음, 그 큰 공포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제 이런 그림자들 안에서 하나님께서 갈보리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여 주고 계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하실 일, 곧 이삭을 통해 언약이 확증되고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시며, 하나님께서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 하신 일을 보십시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하나하나 다 짚을 수 없으니, 이제 그것을 한 장면으로 그려 보십시오.
보십시오. 우선 그 일에 사람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감각을 완전히 거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잠들었습니다. 그러자 끔찍한 두려움과 공포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마땅한 죽음입니다. 그다음 그가 희생물 쪽을 바라보니 연기 나는 화로가 보였습니다. 모든 죄인은 지옥에 가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그 너머로 작은 흰빛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셰키나 영광입니다. 그것들이 이 짐승의 조각 하나하나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저 위에 있을 최후의 숫양, 하나님의 최후의 숫양에게 무슨 일을 하실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내일 밤에 그것을 살펴보고, 그것이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입증하겠습니다. 그 작은 수컷, 작은 숫양 말입니다. 그것들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확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 곧 이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시고, 그분께서 저 갈보리에서 죽으실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이 곧장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무와 모든 것을 짊어지고 올라가 희생물이 되셨던 바로 그곳입니다. 여기 앞서 나온 희생물과 같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맹세를 확증하시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뒤를 이을 씨, 곧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제 구약을 보십시오. 잠깐,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구약에서 어떻게 맹세를 확증했는지 보십시오. 중국이나 일본 같은 곳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일본에는 좀 재미있는 풍습들이 있습니다. 맹세하려 할 때… 우리가 서로 언약을 맺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목사 형제님, 이렇게 합시다. 다음 주에 우리 둘이 한국에서 만납시다. 어떻습니까?”라고 한다면, 이렇게 할 것입니다. “악수합시다.” 아시겠죠? 그것이 언약이며 합의입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언약입니다. “악수합시다.” 그것이 언약입니다. 일본에서 서로 언약을 맺을 때에는 소금 상자를 가져다 놓습니다. 제가 소금을 좀 집어 제 상대에게 뿌리면, 그 사람은 저와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소금을 집어 제게 뿌립니다. 그렇게 언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동양에 가 보시면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책이 될 것입니다. 제가 동양에 갔을 때에는 제게 새로운 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의 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양의 지식으로 이해하지만, 이 책이 기록된 동양에 가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전혀 다른 책입니다. 서양의 지식에 맞추어 쓰인 책이 아닙니다. 동양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언약을 맺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맺었습니다. 두 사람이 모여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언약을 작성합니다. 이러이러한 일, 저러저러한 일을 써 놓습니다. 작은 종이 한 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것이면… 여기 조금 찢어도 괜찮겠습니까… [형제님이 “그러십시오”라고 말한다.] 좋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이 종이에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쓸 것입니다. 좋습니다. 서로 동의했습니다. 둘 다 이름을 서명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둘로 찢어서 한 조각을 그에게 주고 한 조각은 제가 가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죽은 몸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가져다가, 실례합니다, 짐승 한 마리를 가져다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한 뒤 둘로 쪼갭니다. 그다음 그 짐승을 내려놓고, 그 짐승의 죽은 조각들 바로 사이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언약을 깨뜨리면 이 죽은 짐승처럼 되게 하소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갈보리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데려오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모일 때에는 다른 어떤 종잇조각도 이것과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다시 모일 때에는 제가 그 같은 종잇조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각 조각이 꼭 이렇게 맞아서 완전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죽은 짐승 위에서 맺은 우리의 언약입니다.
갈보리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의 실체로 그분을 갈보리로 데려가셨고, 그곳 갈보리에서 그분을 죽이셨습니다. 그분의 몸을 혼에서 찢어 분리하셨으며, 그 몸은 자신의 오른편에 올려놓으시고 갈보리에서 예수님에게서 찢어 내신 성령을 다시 보내셨습니다. 엘리사의 겉옷이… 아니, 엘리야의 겉옷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던 성령께서 그분에게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보리에서 그분에게서 성령을 찢어 내시고, 몸은 높은 곳으로 데려가셨으며, 성령은 이 땅으로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 언약이 확증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성령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오순절과 꼭 맞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여러분 중에 깊이도 없이 교회에 가입하는 일 같은 것으로 그 언약을 대신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결코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이 여러분 안에도 계시게 하십시오. 그 영은 성령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 여자가 “예”라고 했습니다. 그 자녀들의 어머니 말입니다. “내가 받는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그렇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교회의 모형이었고, 엘리사는… 아니,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입니다. 그들이 이곳저곳으로 가다가 마침내 요르단에 이르러 건넜을 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엘리사는 “당신 영의 두 몫이 내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오, 오늘날 문제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사시인 자녀들, 교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쪽 눈은 세상을 보고 다른 쪽 눈은 갈보리를 봅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걸려 넘어집니다. 여러분의 눈을 갈보리에 똑바로 고정하고 자세히 보십시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눈을 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엘리야에게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내가 떠날 때 나를 보면 네가 구한 것을 받으리라.” 그는 엘리야를 지켜보았습니다. 불 병거가 내려와 엘리야를 데려갈 때, 엘리야는 겉옷을 벗어 뒤로 던졌습니다. 엘리사는 그 같은 겉옷을 받아서 그것으로 두 배의 일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여덟 번을 행했고, 엘리사는 열여섯 번을 행했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가 이것들보다 더 크게 하리라. 또는 이것들보다 더 많이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으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위에 계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교회 안에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휴거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의 몸은 기형적인 몸이 아닙니다. 한 조각은 이쪽으로 늘어져 감리교라고 불리고, 다른 조각은 저쪽으로 늘어져 침례교라고 불리고, 또 장로교, 오순절파라고 불리는 식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계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교회 전체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 영께서 교회를 휴거시키시면 교회는 곧장 자기 자리로 갈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휴거에 들어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 귀한 그 피의 흐름, 나를 눈처럼 희게 하네. 다른 샘은 알지 못하네.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무엇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는가?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무엇이 나를 다시 온전하게 하는가? 오직 예수님의 피뿐이라네. 오순절파도 아니고, 침례교도 아니고, 장로교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할렐루야!
겁내지 마십시오. 할렐루야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한 구절 더 인용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뒤 아브라함의 믿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17장에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엘 샤다이,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엘 샤다이니라. 나는 전능자,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하나님이니라.” 이제 이것을 풀어 보겠습니다. 여성분들과 소녀 여러분, 저를 여러분의 형제로 여기고 이해해 주십시오. 엘 샤다이는 “젖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샤다이는 여자이며, 샤드는 젖가슴입니다. 엘 샤다이는 복수형이며 “그분은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엘 샤다이니라. 너는 이제 백 살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나는 젖가슴을 가진 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와 같습니다. 아기가 아파 보챌 때,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힘은 다 말라 버렸다. 너는 백 살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아, 내가 네 힘이니라.” 보십시오. 단지 젖가슴 하나를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양쪽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멘.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분을 가까이 모셔 보십시오. 아프다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여러분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젖을 빨아 먹을 뿐 아니라, 빨아 먹는 동안 만족을 얻습니다. 아기가 거기에 기대어 누우면 조용해집니다. 영원을 어디서 보낼지 몹시 초조하고 당황스럽다면, 그저 엘 샤다이께 오십시오. 아프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저 엘 샤다이께 오십시오. 그분께서는 젖가슴을 가지신 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 예수님, 주님께서는 여전히 엘 샤다이이십니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 아래 땅을 적시며, 채찍에 맞아 흘린 피가 흘러왔고, 구원의 피가 흘러왔습니다. 같은 분, 같은 임마누엘에게서 같은 피가 흘렀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습니다. 주님, 모든 약속이 우리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세상의 창건 전에 오늘 밤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 중 누군가를 보셨습니까? 그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정하셨습니까? 그들이 아직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주님께서 아직 그들의 구원자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이 그 샘을 보았습니까? 지금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보았습니까? 그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그들이 알게 하옵소서. 지금이 그때입니다. 지금은 들음으로 믿음이 오는 때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생명을 줍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젖가슴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 있는 어떤 젊은 남자나 젊은 여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 광란의 시대, 사치의 시대, 죄와 증오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이 시대에 마음이 온통 찢겨 있는 그런 이가 부디…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여기에는 어머니가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따라 들어와, 그저 교회에 가입한 것뿐인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참된 샘으로 와서 피로 씻기고 깨끗해지게 하옵소서. 젖을 먹는 자리로 와서 힘을 얻고, 복음의 사역자와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여기 아프고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사탄이 화살을 쏘았고, 화살이 명중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방패 위를 넘어가 박혔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주 예수님, 오셔서 그 화살을 빼내시고, 고통을 달래며 치유하는 기름을 부으시고, 말씀으로 싸매 주시옵소서. 오늘 밤 그들이 나아서 이곳을 나가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엘 샤다이, 젖가슴을 가지신 분, 젖가슴을 가지신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분, 양육하시는 분, 생명을 지탱하시는 분,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오늘 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자매님께서 피아노로 반주해 주시겠습니다.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를 부탁드립니다, 자매님.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동안 여쭙겠습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분 중에 하나님에게서 참으로 힘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분이 계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분 말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멀리 떠돌았습니다. 많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참으로 진리를 봅니다. 저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한 번도 다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 가입했을 수는 있습니다. 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것은 개혁, 곧 행동을 고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개혁가가 아니라 복음 전파자입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이 보수를 주어 행동을 바로잡게 하는 경찰관들이 있고, 교정 학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예정된 자들, 곧 하나님께서 영생에 이르리라고 미리 아신 자들에게 전합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지금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손을 들어 오늘 밤 전해진 모든 말씀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 용서의 은혜를 구합니다.” 지금 손을 드시겠습니까? 높이 들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성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성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또 다른 분도 손을 들어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손을 들어 저는 지금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힘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고 싶습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자매님. 참 좋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앞줄에서 세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어린아이도 그리스도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여러분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오직 성령과 저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 지금 하나님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피로 가득한 샘,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 죄인들이 그 흐름 아래로 잠길 때…
지금 오시겠습니까? 믿음으로 저는 그 피의 흐름 아래로 잠깁니다. 지금 제 자신을 갈보리로 데려갑니다. 바람이 불고,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피가 튑니다. 보십시오.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땅에서 죽지도 않으셨고 천국에서 죽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희생물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지고 계셨기 때문에 천국에 가실 수 없었습니다. 땅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는 죽을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죄인이 볼 수 있도록 그분을 들어 올렸습니다. 영생으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은 올 것이며, 그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밤이 여러분의 밤입니까? 하나님께 손을 들어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손을 들어 저는 지금 예수님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성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좋습니다. 또 한 분입니다. 이제 다섯이나 여섯 분쯤 됩니다. 또 손드실 분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무엇이 여러분에게 손을 들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있는 다른 분들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제 집회에 와 보셨고 영을 분별하는 일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다른 분들이 더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손을 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번 더 부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얘야. 좋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위층 발코니에 있는 분도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손을 들어 저는 지금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분께서 제 마음에 오셔서 참된 구원자가 되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우물쭈물하며… 그저 그리스도인인 척하기가 이제 지칩니다. 저는 비참합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살아 내는 것이 즐거운 곳으로 오십시오. 셰키나 영광 안으로 오십시오. 안쪽 뜰로 들어오십시오. 대제사장 아론에게 그랬듯이 여러분 뒤로 휘장이 내려지게 하십시오. 그것은 내면의 감추어진 삶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승리하며 살 것입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께 이것을 서약합니다”라고 말하며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잠시 후에 목사님께서 제단으로 초청하실 것입니다.
손드신 모든 분은 제단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잠깐이라도 기도하십시오. 이미 그분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기도도 하시기를 원합니다. 오시겠습니까? 자, 한 절 더 부르겠습니다. 이 절을 부를 때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금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오늘 밤 그리스도께 나아오기 위해 손을 들어야 할 분이 여기 적어도 두 분 더 계십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강단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거기 내려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시겠죠?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믿음으로 그 피의 흐름을 본 이래,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피를…
주님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의지하여 지금 오시겠습니까? 저 맨 뒤에 계신 분도 손을 드십시오. “저는 지금 믿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지금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분을 위해 살겠습니다.”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죄의 모든 얼룩을 씻네. (작은 얼룩 하나가 여러분을 붙들고 있습니다. ….모든 (그 얼룩이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죄의 얼룩. 죄인들이 그 흐름 아래로 잠길 때, 죄의 모든 얼룩을 씻네. 계속 머리를 숙이십시오. 피아노와 오르간도 계속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자매님들.
믿은 이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저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이 받기에 좋은 때입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바로 그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와서 성령을 받으시겠습니까?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여기 베개 곁에 앉아 계신 여성분 한 분은 알고 있습니다. 다른 분도 손을 드십시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모든 죄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자녀들을 복 주시기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밤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앉아 울고 있는 이 가엾은 여인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이 이분의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 믿음으로 나아와 치유받게 하옵소서. 주님, 자신의 상태가 바르지 않음을 아는, 혼이 병든 사람들을 데려와 주시옵소서. 많은 사람이 제단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다른 사람들도 보내 주시옵소서.
여기 두 여인과 다른 분들처럼 와서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 그냥 오시겠습니까? 우리가 한 번 더 찬송하는 동안… 아니, 한 번 더 연주하는 동안, 지금 제단으로 와서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제단으로 오라고 따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지금 이분들은 그래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엘 샤다이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아니, 마음으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믿지 않는다면 오지 마십시오. 하지만 기꺼이 오시겠다면, 와서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와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이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잠시 계속 기도하는 동안 한 번 부르겠습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 모습 그대로, 주님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졌으니.
“브래넘 형제님, 왜 제단 초청을 그렇게 오래 계속하십니까?”라고 하십니까? 오, 형제님, 어느 날 밤에는 지옥에 대해, 제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을 설교하고 싶습니다. 마귀들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지, 여러분이 어떻게 영원히 시달리게 될지 말입니다. 제 어린 베키와 나이가 비슷한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어린아이를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감각해진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야 할 모습입니다. 사랑스러운 금발의 어린아이가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고 작은 손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보십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제 치유 집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치유 집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부르는 동안 지금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머리를 숙이시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도하십시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 모습 그대로, 오직 주님의 피가 (어디에서였습니까? 갈보리에서입니다.) ……나를 위해. 또 주님께서 내게 오라 부르시니, 오 하나님의 어린양, 제가 옵니다!
지금 오시겠습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저는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제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속했든 예수님께서 저의 구속자이십니다.” …….피가 흘려졌으니… (다시 한 번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사람만 더라도 나오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주님, 제단에 있는 이 사람들을 보시옵소서. 여기 이 가엾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보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천년왕국에 대해 말씀하시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여러 번 앞장서서 길을 인도한다고 믿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여기 와서 제단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복 주시옵소서. 주님, 제 왼쪽에서 무릎을 꿇은 이 두 여인과 남자들을 보시옵소서. 오, 제단으로 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나왔습니다. 제 오른쪽에 있는 연로한 자매님에게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다른 분들은 성령 침례와 주님께 받을 그 밖의 많은 것이 필요하여 손을 들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 밤 그들이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와서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고 그 복을 받게 하옵소서.
지금 엘 샤다이께 나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으십시오. 머리를 숙인 채로 계속합시다.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나오십시오. 또 다른 분, 이제 용기를 내어 나오시겠습니까? “주님의 약속을 믿기에, 오 하나님의 어린양, 제가 옵니다.” 그날 그분께서 “잘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기를 얼마나 바라십니까? 다시 부르는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도하십시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