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루가 저물고 해가 또 한 번 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루를 마치며 아버지께 나아와 오늘 하루 동안 저희에게 해 주신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숨 쉴 신선한 공기와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저희가 이 교회에 모여 아버지를 경배하오니 예수님을 저희에게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임재로 저희가 위로를 받고, 그분의 위대한 일들이 저희 가운데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 교회를 복 주옵소서. 목사님과 이곳에 참석한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을 복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예배를 마칠 때 저희가 겸손히 고개를 숙여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믿음에서 떠난 이들을 다시 양 떼에게 불러 주옵소서. 병든 이들과 궁핍한 이들과 상처 입은 이들과 눈먼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주님의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하나님의 집에 있게 된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는 어젯밤 예배로 인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제게 말하기를, 어젯밤 여기 우리 가운데서 주님께서 큰일을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알기로 내일 아침에는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찬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업인들이 함께 모이는 그곳에서는 늘 좋은 시간을 갖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기침한다.] 실례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 모임, 국제 순복음 그리스도인 실업인회는 저와 주님의 사역에 참으로 큰 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큰 집회와 세계 곳곳의 집회에서 저를 후원해 주었습니다. 내일 아침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 아니, 그들을 위해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서 매우 기쁩니다. 아마 그것은... 일반인도 초대되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 실업인들과 부인들만 참석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모임인지는 벌써 광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부터는 레인 테크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압니다. 레인 테크입니다. 조금 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내가... 제 친구인 오배넌 목사님이 올라오셨는데, 그 뒤로 줄곧 레인 테크 근처에서 집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호텔에서 그분을 찾지 못해서 저희에게 전화해 달라는 쪽지를 남겨 놓았습니다. 아마 잠깐 외출하셨나 봅니다. 레인 테크입니다.
하지만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내일 저녁입니다. 보즈 형제님, 확정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일 저녁은 레인 테크입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와 일요일 저녁에도 있습니다. 그 뒤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로 가서 그곳 집회를 시작합니다. 노스캐롤라이나였던 것 같은데, 컬럼비아가 노스...? 사우스캐롤라이나군요. 제가 그 둘을... 그렇게 여행을 다니고 세계 거의 모든 곳에 가 보았으면서도, 아직 노스캐롤라이나나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땅에는 한 번도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제가 가 보지 않은 주는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은... 어젯밤에는 제가 여러분을 조금 늦게까지 붙들어 두었습니다. 성령께서 이곳에 계셔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고 계셨습니다. 제 친구인 아주 유명한 침례교 목사님 한 분이 어젯밤 회중 가운데 앉아 계셨는데, 오늘 저를 만나서 “브래넘 형제님, 제가 말하는 참된 사도적 예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침례교인들이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당장 들어올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그분은 오랫동안 제 친구였습니다. 침례교인들 가운데 아주 뛰어난 분입니다.
멕시코에서는 침례교회가 우리 집회를 후원했습니다. 침례교와 장로교, 그리고 모두, 물론 다른 모든 복음주의 교회도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미국에서는 그런 큰 교단에 속한 많은 교회에 감독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성령과 그분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최전선으로 나가 보면, 지금 순복음 성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만, 누가 침례교인인지, 장로교인인지, 오순절교인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같으니 구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다해 애쓰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우리는 목사님께 넉넉한 사례비를 드리고, 그분이 이십 분 넘게 설교하면 이사회에 불러다가 왜 그랬는지 따집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목사님이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면 제명하여 곧바로 교회에서 내보냅니다. 그 일에 반발하면 교단에서도 당장 밀어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알아서 먹고살든지 죽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형편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장로교인이든 감리교인이든 누구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그들 가운데도 자녀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큰 압박이 닥칠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방공호로 뛰어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없어져 버린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길을 달려가는데, 그 거리에 폭탄이 떨어져 아기가 타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기도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어디 있는 어떤 유명 인사를 두고 지어낸, 마음이나 달래 주는 이십 분짜리 짤막한 설교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을 찾을 것이며, 그런 때가 오면 초자연적인 역사를 비롯해 온갖 것을 구하며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제 손으로 만들어 문서로 정해 놓은 종교는 살아갈 때 의지하기에는 괜찮지만, 죽을 때 의지하기에는 끔찍합니다. 저는 그런 종말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도무지 통하지 않습니다. 정말 통하지 않습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고백을 막으려고 의사가 팔에 주사를 놓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 곁에 서서 그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구원받지 못했고...”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목사가 “어서 주사를 한 대 더 놓는 게 좋겠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까요”라고 합니다. 그 여자는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평안을 찾으려는 것뿐입니다. 길 끝에 이르면 드러납니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진실해진다면, 죽음이 닥칠 때는 반드시 진실해질 것입니다.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 저는 그것이 참 좋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완전한 만족, 그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며 날마다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러저러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이 자신의 삶을 그대로 살아 내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고, 하라고 하시는 말을 하고,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고 계신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 놀라운 믿음으로 들어오도록 힘쓰며 기도하십시오.
그분이 오늘 밤 이곳에 계시다면 제 말을 언짢게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해서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과 접촉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말씀드리자면, 저는 면담 약속을 잡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특히 치유 집회가 열리는 동안에는요. 저는 하루 대부분을 혼자 지내며 기도하고 공부하며, 성령께 저 자신을 복종시키고 맡겨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지만 저는 형제님이 강단에서 하시는 방식으로 형제님과 접촉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픕니다. 그 사람이 낫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데 제가 치유자는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 회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접촉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접촉하려고 했던 것은, 자기 동네에서 온 여러 사람이 그렇게 그저 접촉하는 것만으로 치유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님, 저와 접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와 접촉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믿음으로 그렇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이 이미 이루신 일에 여러분의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참되고 진정한 모든 은사는 갈보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구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구원에 무언가를 더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단 하나도 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이곳에서 잠시 말씀드리려는 주제는 이것입니다.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건물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알아보려고 설계도를 펼쳐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리고 많은 분들과 이곳의 모든 믿는 분들도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만, 우리는 영원히 어디에 이를 것인가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말씀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저는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말씀을 통해 와야 합니다.
이제 마태복음 24장, 34절과 35절부터 읽겠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는 데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깨닫게 하시거나, 아니,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하시는 데는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한 심리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브래넘 씨, 어떤 사람이 밖에 나가 기둥이나 나무를 만지면 자기가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누가 기둥이나 나무를 만지면 자기가 나을 줄로 믿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그런 흔들리는 모래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람의 신학이라는 흔들리는 모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원한 반석 위에 든든히 자리를 잡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위에 두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분이 해먼드 집회에서 치유받은,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던 그분입니까? 자매님,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 자매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제가 만나 뵙고 이야기도 나눈 분이지요. 그중 한 분... 거기서... 혹시 오늘 밤 여기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분이 계시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셨다면, 여기 앉아 계신 이 아름다운 작은 자매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그런 모임으로도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태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불러 고쳐 주셨습니다. 이제는 차분하고 맑은 정신으로, 완전히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이곳에 앉아 계십니다. 그 일이 이삼 년 전이었지요? [자매가 “사 년 전입니다”라고 말한다.] 사 년 전이군요. 자매님, 잠깐만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이분을 보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응답입니다. 그 방에서 하나님께서 이 작은 여인을 부르시고, 어떤 상태인지, 누구인지,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술을 끊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음주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없애 주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담배나 다른 담배 제품, 마약과 술,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 이분과 잠시 이야기해 보십시오.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자... 그렇습니다. 아편 주사나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마리화나든 무엇이든,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십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아무 데나 믿음을 둘 수는 없습니다. 근거가 되는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 말씀에 믿음을 두는 까닭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말씀의 형태로 계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신이라면, 어떤 사람도 자기 말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오늘 밤 여러분에게 선언문을 쓰거나 어떤 일을 하겠다고 써 드린다면, 저는 그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은 저의 일부이며, 제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 자신보다 못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을 지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얼마 전에 한 목사님이... 스튜어트 햄블런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다녀갔는데, 그중 많은 분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들은 저도 내려가서 사진을 찍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학자가 있었습니다. 아주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제 매니저를 저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으니 저를 낱낱이 공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분은 매니저인 백스터 씨에게 “집회에 먼저 가 주시면, 브래넘 씨와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백스터 형제님은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백스터 씨,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조금 뒤에 그분을 집회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금은 집회가 시작될 시간이니까요”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백스터 형제님이 저를 바라보셨고,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먼저 가셨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씨, 저는 인간적으로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신학은 낮과 밤이 다른 것만큼이나 완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드리면 정직하게 받아들이실 분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입니다,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설교와 구원의 메시지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신유에 관한 교리는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잘못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글쎄요, 제가... 형제님, 잘못되게 전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지만 잘못되었습니다.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제 잘못을 바로잡아 주실 수 있겠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속죄를 통한 신유를 전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구속으로 주어지는 모든 복은 속죄를 통해 와야 합니다. 그렇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닌 효력이 우리에게 신유를 가져다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그렇다면 그것을 이사야가 ‘그는 우리의...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라고 한 말씀에 적용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제가 입증해 드리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좋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성경은 그들이 다리를 저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등을 그분께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을 고치셨는데,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말씀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속죄에 적용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물론이지요.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시기 일 년 육 개월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속죄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일 년 육 개월 전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속죄에 적용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어려운 말들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만요. 저는 킹제임스 성경밖에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지 맙시다...”라고 하고는, “이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신유가 말씀 안에 있다고 하십니까?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무엇이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그 대답은 잘못하셨습니다. 신유를 말씀 안에는 두고 속죄 안에는 두지 않으셨군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것이 말씀 안에 있다면 속죄 안에도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옛날에 큰 왕국을 다스리며 모든 규칙과 법을 만든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공정하고 명예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규칙을 만들고 형벌도 정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종이 죄를 지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은 ‘내 법에 따르면 너는 이 죄에 대한 형벌로 죽어야 한다. 네 목을 베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가엾은 그 사람은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네 목을 베게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물 한 잔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에게 물을 주었는데, 하도 몸을 떨어서 물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내가 네 목숨을 빼앗기 전에 그 물을 마시거라. 아니, 네가 그 물을 마실 때까지는 네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종이 물을 땅바닥에 쏟아 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법은 그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그 사람이 물을 마시기 전까지는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건 왕이 실수한 것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실수하셨다는 말입니까? 신유를 그분의 말씀 안에는 두고 속죄 안에는 두지 않으셨다면 말입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실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성품은 그가 하는 일에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로 자기 성품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건축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업자는 자기가 하는 일로 어떤 사람인지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여기 시카고시에 큰 건물을 짓는다고 합시다. 시 위원회 관계자들이 먼저 할 일은 건축업자를 고르는 것입니다. 아무나 달려와서 “제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고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판이 좋은 건축업자를 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건축업자가 그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건물에 나쁜 자재를 넣고, 아마 수천 달러 적게 들여 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건물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 폭풍이 불어오자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시에서는 그 건축업자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의 평판은 영영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그것이 학교 건물이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수많은 어린아이가 앉아 공부하는 학교였다면 말입니다. 건물에 넣은 나쁜 자재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수백 명의 어린아이가 죽었다면, 그 부모들은 그 건축업자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돈을 사랑한 나머지 자기 평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한 사람 말입니다. 세상에! 끔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그토록 귀한 것들을 받쳐 지켜야 하는 건물에 그런 자재를 넣는 짓을 했다면, 우리가 말하는 불한당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어린아이와 관계가 있고 그 아이들이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데도, 나쁜 자재를 넣어서 어느 순간 기초가 무너지고 건물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면,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일 것입니다. 세인트프랜시스 댐을 지은 건축업자를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 댐에는 약 이천오백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다른 입찰자들보다 조금 싼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물이 댐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을 때, 그 밑의 모래 지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들어간 자재도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댐을 믿고 잠든 골짜기가 고요히 놓여 있던 그때, 댐 전체가 무너졌고 물이 골짜기를 휩쓸고 내려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설계자이십니다. 위대한 건축자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건물에 오직 가장 좋은 것만 넣으십니다. 저는 이것을 호주 시드니에 있는 거대한 시드니 다리에 관해 읽은 이야기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그곳의 넓은 물길을 가로질러 북부 시드니와 남부 시드니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입찰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저 영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건축업자가 내려왔습니다. 그는... 이 다리를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비쌌지만 시드니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리가 제대로 지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도 똑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가 어느 교회 신학의 흔들리는 모래 위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위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모두, 지금 여러분이 거하고 있는 그 건물에 폭풍 같은 때가 닥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 그 건물을 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떤 모래 위에 지어졌는지, 혹은 어떤 기초 위에 있는지 잘 알아 두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초를 세우실 때 가장 좋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이 건축 계획에, 영원토록 시간의 시험을 견딜 수 없는 것은 결코 넣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멘. 이 대목은 그만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다가는 우리가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겠군요. 하나님이 참되신 것만큼이나 이것이 참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넣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오늘 밤 제가 소망을 두는 곳도 바로 거기입니다. 저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 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져도 이 반석은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거대한 경제와 위대한 문명 속에서, 많은 것이 인기를 얻으려고 지어지는 것을 봅니다. 집들을 그저 마구 뚝딱 지어 한 줄로 늘어놓습니다. 값싼 자재를 써서 시험을 견디지 못할 다리와 다른 것들을 많이 짓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교회가 사람의 이론과 교리와 교조 위에 세워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선언합니다. 권능도 같으시고 원칙도 같으시고 치유하심도 같으십니다. 예전에 어떠하셨든 지금도 그대로이시며, 언제나 그러하셨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다루신 모든 경우에 대한 태도도 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그 일을 그렇게 다루셨을 때 잘못하신 셈이 됩니다. 반드시 같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자재를 직접 창조하여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방주에 쓰려고 베어 낼 나무들이 바로 어떤 나무들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씨에서 나온 싹, 아니, 나무가 될 씨 속의 생명에 말씀으로 생명을 주셨을 때부터, 그것이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는 데 쓰실 자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시간의 흐름을 내려다보시며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건물에 넣으실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부르시며 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면 얼마나 기뻐해야 하겠습니까. 아멘. 여러분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라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에 맞는 삶을 사십시오. 옳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이 말은 삼킬 때 조금 거북할 수 있지만, 한동안 소화되게 두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다면, 그분께는 절단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몸은 완전해서 어떤 부분도 잘라 낼 필요가 없습니다. 아멘. 아! 그것이 진리입니다. 지난번 밤에 사다리에 관해 설교했지요. 그분께서는 팔이나 다리를 떼어 내지 않으십니다. 일단 그곳에 놓이면 그곳에 놓인 것입니다. 올바른 자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로 놓여 있는지 확실히 하십시오.
구약 시대에는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꿈꾸는 사람을 통해서... 첫째는 율법이었고, 다음은 꿈꾸는 사람이나 선지자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시험하려고 할 때는 아론의 흉패에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는 빛들이 있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자기 꿈을 말하거나 선지자가 예언했는데 우림과 둠밈에서 빛이 번쩍이지 않으면, 그 선지자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제사장직 아래서 그 우림과 둠밈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장직 아래서는,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에게, 아니, 선지자들을 통해 자녀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우림과 둠밈입니다. 선지자가 예언하거나 설교자가 설교하거나 꿈꾸는 사람이 꿈을 꾸거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이 성경에서 빛을 내지 않는다면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오늘날 손에 못 자국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인기를 입증하려고 사진을 찍고... 들으십시오. 만일 예수님께서 천국을 떠나셨다면,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보라, 그가 사막에 있다. 보라, 그가 여기 있다’ 하여도 그 말을 믿지 말라.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모든 무릎이 굴복하고 모든 혀가 자백하리라.” 아시겠습니까? 손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고,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신성한 것이라고 하는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다른 무엇이든 신성한 것이라면...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은사는 무엇이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이미 이루신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아멘.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저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가십시오. 말씀 안에 머무십시오. 보십시오. 성경은 마지막 날에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을 속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씀 안에 두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믿지 마십시오. 그냥 떠나십시오. 그것을 비난하지 말고 그냥 떠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이 위대한 설계자가 그 다리를 지으러 내려왔을 때, 먼저 자기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은, 먼저 계약을 맡은 뒤에... 이 유명한 다리를 지어 성공을 거둔다면 자기 명성이 누구보다도 높아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 먼저 한 일은 찾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설계자와 숙련된 일꾼들을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손대는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을 시험하여 검증했습니다. 다리에 들어가는 강철도 모두 따져 보아야 했습니다. 비바람에 얼마나 오래 견디는지, 소금기에 얼마나 오래 견디는지, 폭풍에 얼마나 오래 견디는지, 불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더운 날씨에는 얼마나 팽창하는지 말입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땅에서 영광으로 건너가도록 이 구원의 다리를 만드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시험하셨습니다.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종은 시간의 시험을 거쳐 입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아들은 먼저 하나님께 시련과 시험을 받고 자녀로서 훈련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먼저 시험받아야 합니다. 선지자들도 먼저 시험받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선지자가 무엇을 말했는데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의 시험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 다리를 짓는 사람은 다리에 넣는 볼트까지도 그렇게 시간을 들여 시험했습니다. 진짜 강철인지 알아보려고 자석을 대 보았습니다. 거대한 교탑을 세우려 할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 한가운데 그 기둥을 깊이 박아 넣는 데 얼마나 걸렸다고 했는데, 저는 그 기간은 모르겠습니다. 또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그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했습니다. 아래로 파 내려가 한 지층에 닿았을 때 암석을 시험했지만 적합한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깊이, 더 깊이, 더 깊이 발파하며 내려갔습니다. 여기 가운데 있는 이 거대한 아치가 다리에서 무너질 수 있는 부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적합한 암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과 신약 사이에 자신의 구원의 계획을 가로질러 놓으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이어 주시려고 골고다 언덕에 깃발 하나를 높이 드셨으니,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그것을 시험하시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거쳐 다윗으로 내려오고, 끝까지 내려와 마침내 그 완전한 씨가 오게 하셨습니다. 한가운데 서서 한쪽 끝에는 죄인을, 다른 쪽 끝에는 하나님을 붙들어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씨였습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 성경에 담긴 모든 말씀은 성령에 의해 시간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자재 하나하나를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모든 법도는 옳습니다. 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모든 약속을 이루어지게 할 만큼 제 믿음이 충분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믿음이 있는 다른 사람을 가로막지는 않겠습니다. 어느 날 에녹이 걸어가다가 죽지 않고 본향으로 간 그 길을 제가 걷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그렇게 걸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가로막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순수하고 섞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로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시기에 그 자재를 넣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을 두고 시험하셨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 다리가 올라가는 동안 많은 사람이 예언하며 “무너질 것이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측량사들이 나가서, 양쪽 기슭에서 시작한 다리가 여기 한가운데서 만나도록 모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습니다. 팔분의 일 인치, 아니, 일 인치 이내로 조정해 정확히 맞물리게 해야 했습니다. 양쪽 끝이 맞붙는 날, 다리가...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명성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너무나 완벽하게 설계했기 때문에 양쪽 끝이 각각 일 인치 이내의 차이로 맞아 들어갔습니다. 더없이 완벽했습니다. 공사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없이 길을 잃고 멸망 가운데 있던 우리도 얼마나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시고,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셔서 죄 많은 남녀가 자기 구속자와 창조주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으셨을 때, 그 사이를 잇는 부분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다리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그분 자신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밟고 건너 영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기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다리의 한쪽 끝은 다름 아닌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다리의 다른 쪽 끝에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 서 계십니다. 아멘. 연결이 올바로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곧장 갈보리를 가리켰습니다. 신약의 모든 예언은 갈보리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을 되돌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날에 우리가 왜 다른 무엇을 가리키려 하겠습니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어나 “그래, 나에게는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라고 한다면 그는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어나 “이 기름은 신성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피가 나오는 일, 여러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든 여러분의 구원이나 치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던 그 십자가를 여러분에게 가리켜 줄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의롭게 되도록 셋째 날에 일으켜지셨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크고 지극한 값이 치러졌습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그분이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디에서입니까? 그 사이를 잇는 곳에서입니다. 강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교탑에서입니다. 이 땅에서 영광에 이르는 이 거대한 간격을 잇는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교탑이십니다.
보셨습니까? 그분은 땅에서도 죽으실 수 없었고 하늘에서도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이의 다리가 되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넣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재에 관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것이 그 안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씨를 보존하셨습니다. “네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그리고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멘.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렇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그분의 오심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째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강 한가운데서 이루어진 그 속죄를 통해 우리의 질병을 고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값을 치르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은 그분이셨습니다.
다리가 완성된 날 사람들은 온 도시와 온 나라에서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이제 다리가 놓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환호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십시오. 사람을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어 주는 다리가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한 은사들이 천국에서 그 다리를 따라 밀려 내려와, 교회에 기름부어 온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아멘. 시드니에서도 양쪽이 연결된 뒤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 모두 나가서 다리에 깃발 등을 달아 장식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리본이 가로질러 매여 있었고, 주지사, 아니, 시장이 맨 먼저 건너가며 그 리본을 끊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리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는 건축자와 그 안에 들어간 자재를 신뢰했기에 마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리본을 끊었습니다. 형제님, 언젠가는 여러분도 그 리본을 끊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삶과 저 삶 사이에 걸린 리본입니다. 여러분은 쉽게 끊어지는 가느다란 실 위를 걷고 있으며, 그 실이 언제 끊어질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리본이 끊어질 때 저는 그 교탑과 그 다리를 신뢰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영광으로 가는 큰길이 되도록 놓인 다리입니다.
시장이 그것을 끊고... 그가 길을 열자 수백 명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고, 서너 대의 아주 큰 전기 열차가 양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수만 대의 자동차와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언젠가 삶이 모두 끝나고 우리가 그 약한 실을 끊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시는 것을 보게 될 때, 저편에서... 북부 시드니와 남부 시드니가 하나의 다리로 연결되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로 잇는 다리가 놓였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이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저의 확신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날 사람들이 다리를 건널 때 함성과 환호가 울려 퍼졌고 다리는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올바른 자재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들을 올바로 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예방 조치들을 제대로 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의 명성은 온 세계로 퍼졌고 신문들이 곳곳에 소식을 실었습니다. 그는 그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건축자가 되었습니다. 미리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자재를 넣었습니다. 그는 값이 아니라 다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동료 인간의 통행을 그토록 염려하여 그렇게 조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얼마나 더 염려하시며 올바른 말씀이 전해지도록 주의를 기울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님, 우리의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을 때, 저는 그것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분께서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신 것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분께서는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밤 제 소망은 바로 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자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 땅에서 영광으로 데려갑니다. 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밤 살아 계시다고 믿습니다. 어젯밤 그 눈먼 여인에게 시력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며칠 전 저 멕시코에서 죽은 아기를 일으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오늘 밤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가볍고 기쁘게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혼이 안식의 항구에 닻을 내려 더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큰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거칠고 사나운 바다 위로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망대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닻을 내렸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영적이고 신성한 계시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증언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을 부인하고 성령침례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리스도 곧 성령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새롭게 되어 다시 태어났다면, 성령께서 친히 증언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유와 초자연적인 것을 믿을 수 있는 까닭은, 그 말씀을 만드시고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마음속에 보내어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오늘날 온 세계에서 우리 가운데 표적들과 이적들과 권능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다리! 아, 제 흑인 친구들이 부르던 노래처럼 말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큰길, 우리는 왕의 큰길을 걸어 올라가네.” 참으로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치셨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을 마치지 않으셨다면 앉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누구든 자기 일을 마칠 때까지는 앉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들의 하늘을 지나가시며 모든 마귀를 정죄하시고,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취하신 뒤 앉으셨습니다.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께서는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지고, 여러분이 땅에서 영광으로 가는 이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련되었기에 그분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거기에 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뺄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성경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성되었습니다. 속죄는 이루어졌습니다. 마귀는 패배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라보고 사는 것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하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바라보고 살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이제 이 조금 두서없는 메시지를 마치려 합니다. 하나의 비유였지만, 주님, 사람들이 이것을 마음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성경에서 나온 자재로 세워졌다면 안심하고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저희 구원의 모든 계획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에서 나오며, 저희가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아버지, 제가 말한 이것을 입증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른 것은 없고, 하늘 아래 다른 길도 없으며, 사람들이 구원받을 다른 이름도 하늘 아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습니다. 그분께서 저 위에 매달리셨을 때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강한 망대이십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 아버지, 저희가 이것을 발견한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복을 주시기를 지금 기도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이곳에 이런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설교자 형제님,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다 믿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는 다른 곳에, 제 자동차에 제 생각의 토대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집값을 갚고 아이들을 교육할 생각을 했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정당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영원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 저는 교회에 가입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교회에 가입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면...”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에 속해 있고, 아무리 선하고, 교회에 얼마나 많은 헌금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교회에 데려오고, 교회 안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어도, 그것은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사람이 성령과 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정말 제 마음에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아버지께 손을 드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에게, 또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 정말 많은, 많은 분이 손을 들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자매님, 보입니다. 헛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해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입니까?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입니다. “내게 올 것이다.” 그분께 주어진 모든 사람이 올 것입니다. 술집이 여러분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낡고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가 오랫동안 여러분을 붙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사회 복음을 들으며 그 권능을 부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믿으면 그리스도께로 오게 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손을 들고 그분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인 이 손을 드는 일로 지금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 방금 더 많은 손이 올라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손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분은 보십니다. 그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재로 세워졌습니까? 감리교입니까? 침례교입니까? 가톨릭입니까? 장로교입니까? 루터교입니까? 오순절교입니까? 나사렛교입니까? 필그림 성결교입니까? 성경의 자재로, 성령께서 널판을 박아 세우신 것이 아니라면, 그 널판을 뜯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올바로 세워지십시오. 그분께서 제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으십니까? 기도를 통해 눈먼 이들의 눈을 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여러분의 마음속 모든 생각을 아시며, 여기 우리 가운데 서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분께 손을 드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모양을 잡고 가지를 치는 것은 때로 나무에게 고통스럽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아버지를 받아들이려고 손을 든 이 수십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지금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공중 한가운데, 갈보리에서 못 박히셨던 그 손에 새겨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모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옵소서. 온전히, 마음을 다해 나아와 마음속에 성령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새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그 노래가 너무나 아름다워 여러분과 함께 한 번 부르고 싶습니다. 모두 함께 “부드럽고 다정하게”를 부릅시다. 이제 함께 부르겠습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예수님 부르시네, 그대와 나를 부르시네, 보라, 문 앞에서 기다리며 지켜보시네, 그대와 나를 지켜보시네. 돌아오라, 돌아오라, (큰길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 큰길로 올라오십시오.) .......... 지친 자여, 돌아오라. 간절하고 다정하게 예수님 부르시네, 죄인아, 돌아오라 부르시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돌아오라, 돌아오라, (아, 죽음의 순간에 여러분은 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겠습니까.) 지친 자들이여, 돌아오라. 간절하고 다정하게 예수님 부르시네, 죄인아, 돌아오라 부르시네!
제가 사랑하는 영이 바로 그런 영입니다. 주 예수님의 부드럽고 다정한 영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 영이 들어오시면 마음이 말끔히 씻기는 것 같습니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저는 그런 옛날 노래들, 교회의 옛 찬송가들을 사랑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이런 춤추며 뛰노는 일들보다 그것이 훨씬 좋습니다. 저는 그저 옛 방식의 설교자라서, 어쩐지 옛 방식이 좋습니다. “내 하나님, 주께 더 가까이”, “나를 위해 갈라진 만세 반석”, 그런 유명한 옛 찬송들 말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쓴 사람들이 성령의 영감 아래서 기록했으니 영감으로 된 노래들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저는 나이 든 그리스도인들이 떠날 때, 얼굴이 환해지며 “브래넘 형제님, 그분이 보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팔로 이렇게 몸을 일으켜 드리며 “형제님, 아직 보이십니까?”라고 합니다. “예,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그러고는 그분을 만나러 떠납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폴 레이더를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물론 기억하시겠지요. 그분이 임종 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시지요? 저는 디 엘 무디와 에이브러햄 링컨, 그런 많은 분들의 마지막 말을 기억합니다. 마지막이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이제 정말 늦었습니다. 저는 심판 날에 제 사역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들을 얻으라고 제게 이 사역을 주셨습니다. 신유는 몸을 고치는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혼들을 붙잡기 위한 것입니다. 몸은 나아도 다시 병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몸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나 하나님의 왕국에 연결된 그 혼은 영원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가집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여전히 같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밖에 없다 해도 어떻습니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밤 그리스도께 손을 든 모든 분은 치유 예배가 끝나는 대로 제단 주위에 모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 죽더라도 천국에 가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더 굳세어지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감정에 휩쓸리거나 생각으로 흥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믿을 때 그렇게 됩니다.
저 켄터키 산속에서 설교할 때, 낡은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기운 데를 또 기워 놓은 셔츠에서는 땀 냄새가 났고, 눈은 강철빛 회색이었으며, 머리카락은 목덜미까지 늘어져 있었고 수염도 깎아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올려다보고, 제 손을 잡고 “설교자님, 저는 정말 진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그런 말은 믿어도 됩니다. 거기에는 진심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여러분을 총으로 쏠 수 있었던 그 사람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을 위해 자기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내어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함입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뻣뻣하고 격식을 차립니다. 그저 “나는 존스 박사님 교회로 갈 겁니다. 거기 명부에 내 이름이 있거든요”라고 합니다. 저 위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재,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들어오지 못하리라.”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말씀은 진리입니다. 자, 그분의 말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하신 말이 여기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살펴보고, 우리가 교회를 올바른 자재로 세웠는지 봅시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입니다. 그날 자신의 여종들과 하녀들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늘과 아래 땅에서 표적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큰’이라는 말은 ‘더 많은’을 뜻합니다. 번역본들을 찾아보시면 원래 히브리어 단어가 ‘더 많은’을 뜻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일으키셨고 자연을 멈추셨으며,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셨습니다. 그러니 양적으로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질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성령께서 온 땅으로 퍼져 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모든 나라, 모든 언덕 위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전 세계적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것이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칠십이나 팔십 퍼센트입니다. 오늘 밤 온 세상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리스도께서 여기 오셔서 일을 행하신다 해도, 적어도 팔십 퍼센트는 돌아가며 “나는 믿지 않아”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텔레파시든 뭐든 그런 거야.”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까지만도 아니고, 웨슬리 시대까지만도 아니고, 루터 시대까지만도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 세상의 끝까지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끝에 이르기 시작할 때, 가장 큰 절정, 초자연적인... 모든 전환기가 끝날 때마다 언제나 기적과 여러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역사 전체에서 가장 큰 때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까? 아, 놀랍습니다. 삶이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고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죽으신 것이 아니라 여기, 오늘 밤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처음 오신 여러분, 이번 집회에 처음 오셨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집회에 전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인 분이 얼마나 됩니까? 많이 계시는군요.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복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도 치유할 능력이 없고, 어떤 사람에게도 죄를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완성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밤 친히 여기 서 계시고 여러분이 고쳐 달라고 하신다면, 그분께서는 “내 자녀야, 내가 이미 그렇게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느냐? 나는 네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고침을 받았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선견자의 주인이시며 하늘의 주님이시니, 여러분이 알아볼 수 있도록 무언가를 말씀하시거나 또 다른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맞을 것이고 여러분은 그분이심을 알 것입니다. 엠마오에서 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 자신은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나도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올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와서 잠시 이야기하면, 그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날 거기 앉아 계시던 그분이 한 여인에게 그녀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이것은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은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입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그녀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도시로 달려가 “와서 내가 한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을 불러왔고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그런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라”라고 했습니다.
이곳의 작은 목사님, 크게 마음이 흔들려 계신 요셉 형제님 말입니다. 오늘 서로 어깨를 감싸고 바닷가, 아니, 호숫가를 함께 걷는데,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 제 마음에 있는 이 짐, 아, 우리 성도들, 시카고가 크게 뒤흔들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말씀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매트슨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믿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밤에 베개를 적시며 씨름하고 기도했던 그것, 흘리신 눈물과 드리신 기도, 오랫동안 금식하면서 손을 들고 마음속에 무언가 타오르는 가운데 ‘오 하나님, 시카고를 위해 무언가 해 주십시오. 무언가 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그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시카고가 뒤흔들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미 뒤흔들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뒤흔들렸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모든 선지자가 주님의 오심과 침례자 요한에 관해 말하기를, 모든 산이 낮아지고 모든 낮은 곳이 돋우어지며 모든 험한 곳이 평탄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아, 천사들이 내려와 북을 치고 악대를 울릴 것이니, 우리가 거기서 얼마나 굉장한 시간을 보내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무엇이었습니까?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조그마한 선지자 하나가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수염이 이런 털북숭이 애벌레처럼 뻗어 있었습니다. 커다란 양가죽 한 장을 몸에 두르고 가죽 띠를 매었을 뿐, 옷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전했습니다. 신발조차 신지 않았습니다. 요르단강의 진흙투성이 강둑에 맨발로 서 있어서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비어져 나왔습니다. 성경이 위대하다고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나무들까지 모두 손뼉을 쳤습니다. 나뭇잎들이 그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산들이 어린양들같이 뛰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람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시카고는 여러 번 뒤흔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다.” 아,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올 수 있겠습니까?
신문에 광고해 보십시오. 오늘 밤 죽은 사람 다섯이 무덤에서 일으켜진다고 해도, 내일 아침 신문에는 그 이야기가 요만한 칸에 실릴 것입니다. 저 뒤쪽 어디엔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세상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압니다. 오늘 밤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그렇게 많은 죽은 사람을 일으키신다면 어떤 대접을 받으실 것 같습니까? 그분께서 받으실 대접도 그럴 것입니다. 그때 받으셨던 것처럼... 큰 정통 교회에 다니면서도 신유는 믿지 않고 그저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한, 이른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무슨 속임수야. 정신적 텔레파시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도 그들은 그분을 두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바알세붑이다. 점쟁이다. 그런 이야기는 듣지도 말고 그런 데는 가까이하지도 마라. 누구든 저 사람의 작은 패거리에게 가면 제명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즐겁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오늘 밤도 똑같습니다. 형제님,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카고는 뒤흔들렸습니다. 매트슨 형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형제님의 그 마음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밤을 울며 기도하셨고, 금식을 하셔서 얼굴이... 눈 밑에 검은 그늘이 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제님의 상급이 저 위 사다리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카고에서 일어난 일을 형제님은 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자연적인 눈으로 보면 저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 차원에서 바라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됩니다. 보십시오. 이루어진 일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르시기 전에는 아무도 올 수 없습니다. 왜 나다나엘이 저 멀리까지 달려가서, 아니,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을 데려왔겠습니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지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눈이 있으시면 보시기를 바랍니다. 들을 귀가 있으시면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오늘 밤 이곳에 보고 듣는 사람이 많이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 깊이 내려가게 하시고, 그들이 믿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좋습니다. 그가 나눠 주었는데... 무엇을... 이제 디 표 백 장입니다. 디 표 기도 카드 백 장이 나갔습니다. 디입니다. 디 표 기도 카드 백 장입니다. 어젯밤에는 앞부분을 불렀으니, 오늘 밤에는 뒷부분을 부릅시다. 어젯밤 줄에 몇 명이 있었지요? 열다섯 명이었지요? 열다섯 명쯤이었습니다. 제가 하룻밤에 대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정도입니다. 여러분을 헛되이 서 있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만큼도 못 할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디 85번부터가 되겠군요. 85번, 95번인가요? 85번, 디 85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디 85번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85번, 86번. 86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기에 줄을 서십시오. 87번? 자매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87번? 좋습니다. 87번. 88번? 형제님, 좋습니다. 여기 오른쪽입니다. 89번? 디 89번? 제가 손 드신 것을 못 보았습니까? 디 89번? 좋습니다. 90번? 디 90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91번, 92번, 93번, 94번, 95번, 96번, 97번, 98번, 99번, 그리고 100번. 그분들은 여기로 와서 줄을 서 주십시오. 그분들이 줄을 서는 동안, 안내하시는 분들은... 우즈 형제님, 거기서 잠깐 도와주시겠습니까? 형제님과 또 형제... 몇 분이 도와주셔서 서둘러 시간을 아끼면 좋겠습니다. 저는 회중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이쪽을 봐 주십시오. 특히 처음 오신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가 전하는 그분의 말씀의 복음이 진리라면,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한 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는 어제 곧 이 땅에 계셨을 때의 그분과, 오늘 그분이 어떠하신지, 영원히 어떠하실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고... 임마누엘로서 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성경에서 그분이 치유자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성경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일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몇 분이나... 좋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것은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5장 19절입니다. 그분께서 몸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모두 누워 있던 그 연못가를 지나가실 때, 한 사람에게 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사람이 누워 있는 곳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가셨습니다. 그가 그 오랜 세월, 삼십팔 년 동안 앓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안식일이라는 이유 등으로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만 행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자비가 충만하셨다고 믿으십니까? 동정심이 충만하셨습니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도, 다리를 저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고통받는 그 모든 사람을 지나치시고 고쳐 주시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비가 무엇을 뜻하는지, 동정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랑에 관해 늘 말씀드렸던 것과 같습니다. 사랑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 둘을 혼동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일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새 영과 혼동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내가 내 영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고 그들에게 새 영을 주리라”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그들에게 내 영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새 영을 받고... 여러분에게는 새 영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면 하나님과는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성령과 잘 지내려면 먼저 새 영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 새 영을 받으면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 영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하지만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앞으로 나가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새 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영이지만 아직 그분 자신의 영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령침례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영적 침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그분은 자기 몸의 팔이나 다리나 눈이나 그 어떤 것도 잘라 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은 완전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대신해 받으신 그분의 고난과 죽음으로 완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오직 완전한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몸만을 보십니다. 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삯꾼 선지자 발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저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보십시오. 하지만 그는 그들 앞에서 속죄를 이루고 있는, 맞은 반석과 놋뱀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꿰뚫어 그 너머의 죄를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피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이쪽을 보고 믿으십시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군중 사이를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왜 이렇게 시간을 많이 쓰십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를 마구 씹어 삼키듯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한 가지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낫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군중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작은 여인이 그분의 옷을 만지고는 물러가 회중 가운데 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옷자락에 닿는 감촉을 느끼신 것이 아닙니다. 치마 맨 아래 끝단을 만져 보시고 그것이 느껴지는지 보십시오. 아니면 외투 맨 아래를 만져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외투를 만져 보라고 하고 느껴지는지 보십시오. 물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느끼셨습니다. 그 여인이 초자연적으로 그분께 손을 댄 것을 느끼신 것입니다. 그분께 닿은 것은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놓치지 마십시오. 그녀의 믿음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그분은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녀도 부인했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분은 “하지만 누군가 내게 손을 대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약해졌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에게서 효능이 나갔습니다. 효능이란 ‘힘’입니다. “내가 약해졌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요? 온 무리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손길이었습니다. 마침내 선견자들의 왕이시며 주님이신 그분은 회중을 둘러보시다가 그 여인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분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혈루증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달려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분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어제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다면, 성경이 참되려면 오늘도 동일한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께 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근본주의자라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한 성경 근거는 무엇입니까?”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여인의 믿음이 그때 그분께 닿을 수 있었다면, 그녀는 무엇을 만지고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만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옷을 만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엇에 닿았습니까? 하나님께 닿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인지 모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보여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변자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여인에게 그녀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 말씀하시고, 그녀가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떠나가셔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는 자신의 교회를 대변자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희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 그분께서 말씀하시느니라.”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께 닿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이는 사도가 되고, 어떤 이는 선지자나 교사나 복음 전도자나 목사가 되도록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이들을 교회 안에 세우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는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선교사가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는 ‘선교사’입니다. 둘 다 ‘보냄받은 사람’이라는 같은 말입니다. 왜 여러분이 굳이 선교사라고 불리기를 원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선교사는 ‘사도’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보냄을 받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이들을 교회 안에 두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접촉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그분께 닿습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오, 하늘 아버지, 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아픕니다. 제게는... 오,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죽으시고 갈보리에서 피를 흘리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은 저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제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피가 아버지 앞에 있고, 그분은 저의 고백을 받아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위대한 대제사장이시여, 저의 연약함을 느끼시도록 제가 주님께 닿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낫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옵소서.” 그러면 그분께서 자신의 종을 통해 말씀하시며 여러분을 향해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던 분, 저 뒤에 계신 분, 저 위에 계신 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어떤 병으로 얼마 동안 고생하셨던 분” 하고 말씀하십니다. 또는 여러분이 이 일이나 저 일을 했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설교자에게 닿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닿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다시 여러분에게 역사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말씀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자매님을 오시게 하십시오. 이제... 친구 여러분, 한 가지 부탁하겠습니다. 형제님들께 잠시 제가 서 있게 해 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다른 세계입니다. 바로 바깥에...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 방 안에 천사들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믿으십니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 기술로 이 방 안에 텔레비전 신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송신기에서 보내온 라디오의 음성들이 이 방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송신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방에 계시고 인류의 하나님이시니, 분명 자신이 지으신 사람들과 접촉하실 어떤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있으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조용히 앉아서 돌아다니지 마시고, 앞으로 십오 분쯤은 아주 조용히 앉아 계셔 주십시오. 아마 앞으로 십오 분이나 이십 분 뒤에는 회중을 해산할 것입니다. 하지만 움직이지 마시고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오, 주 예수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여기 한 여인이 서 계십니다. 자매님, 잠시 저를 봐 주십시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르고 자매님도 저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그렇지요? 자매님은 그저 어젯밤이나 오늘 밤에 카드, 기도 카드를 받은 분이고, 번호를 불렀을 때 자기 번호여서 여기로 나오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렇지요? 저는 자매님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으며, 자매님도 저를 모르셨습니다. 아마 우리는 서로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몇 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을 것이고,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나 여기 자매님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기 저를 아시는 분도 계십니다. 자매님은 여자이고 저는 남자입니다. 자매님은 그리스도인이고 저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사이에 계신 영은 성령이십니다. 그 영께서 지금... 자매님은 무언가를 위해 그 영과 접촉하려고 하시는데,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재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여기 오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자매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분은 아십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요한복음 4장에는 어느 날 물을 길으러 그분께 온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 여인과 대화하고 싶으셨을까요? 그녀의 영과 접촉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그런 것을 청하거나 상종하는 관습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네가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것을 구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져다... 네가 여기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될 물을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대화는 어디에서 경배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녀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여리고로 가는 길이었지만, 여리고에서 멀리 떨어진 저 산지의 사마리아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리로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리에 앉으시고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신 뒤, 그분은 그녀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맞다. 네게는 다섯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녀는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줄은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도시로 달려가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었다면 지금도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두고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교회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는 영매다. 마귀다.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분은 메시아이시다.” 그분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을 때 나다나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베드로에게는 이름까지 말씀해 주셨는데,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자매님, 지금도 똑같습니다. 자매님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일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제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루어진다면,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계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자매님과 이 교회에 보여 주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것이 자매님을 고치지는 않습니다. 치유받으려면 그분을 믿는 자매님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치유는 오직 그분을 향한 각자의 믿음, 또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분 안에서의 갈망을 통해 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를 통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렇게 하려면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회중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셔 주십시오. 지금 성령께서 제 오른쪽에서 이쪽으로 오고 계신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이름으로 사역합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구백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살아 계시며 영원히 동일하실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회중 여러분에게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린다면, 저는 이 여인이 멀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이분은 신경이 매우 불안정하고 극도로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 신경 증상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겁을 내고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들에 시달립니다. 의사들조차 무엇이 원인인지 알아내지 못합니다. 무엇인지 모릅니다. 바로 오늘도 이 문제 때문에 어디에 다녀왔습니다.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있습니다. 척추와 다리의 엑스레이입니다. 의사가 이 여인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방금 자매님에게 말씀드린 것이 무엇이든 사실이었습니까? [자매가 “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승천하시며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였습니다. 여기 자매님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이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경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편안해진 것이 느껴지지요? 치유되셨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낫게 했습니다. 아멘. 이제 가십시오. 보십시오. 저는 자매님에게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낫게 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것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서로 모릅니다. 그런데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때의 또 다른 장면이군요.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입니다. 그때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인종 문제가 있었고, 사람의 피부색 때문에 언제나 그런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란 나라들로 인해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이 빚으려 하신 모습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 흰 꽃만 있었다면 우리는 그분이, 그저 생각하기를... 한 가지 색만 원하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흰 꽃, 붉은 꽃, 푸른 꽃, 온갖 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사람들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흰색, 검은색, 갈색, 노란색, 온갖 다른 색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사랑하셨습니다. 큰 산도 만드시고 작은 산도 만드십니다. 초원과 사막을 만드시고, 호수와 바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도 만드십니다. 다양함의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지금의 모습대로 만드십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하시겠지요. 자매님의 영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상태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많이 고생하셨고, 문제는 목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마 동안 그 병을 앓으셨습니다. 자매님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자매님을 뒤로 눕히고 흰 것을 덮어 놓았습니다. 아, 수술입니다. 의사들이 편도를 잘라 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원인이었는지 모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어떤 식물에 알레르기가 있으십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자매님을 아시는 그분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접촉점으로 삼도록 손을 주십시오. 오 하나님, 여기 시몬의 자녀 중 하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실 때 도왔던 그 시몬입니다. 주님의 종인 의사들이 이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지만 이 원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아시며, 지금 바로 이곳에서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여인의 생명을 해치는 원수야, 이 여인에게서 나와라. 너는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여인을 떠나라.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아멘. 자매님, 있었던 일을 아시는 그분께서는 앞으로 있을 일도 분명 아실 것입니다. 가셔서 행복해하시고 기뻐하시며 건강하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제단을 떠나셨습니다. 자매님, 폐에 문제가 있어서 거기 앉아 기도하고 계셨지요? 자매님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으십니다. 잠깐 일어서 주십시오. 바로 여기 계신 자매님입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십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그분께 닿았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멘. 그저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발휘해 보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저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어쩌면 제 믿음은 머리로만 믿는 믿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감정에 따른 믿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자매님,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니 제가 자매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저도 아시고 자매님도 아십니다. 언젠가 자매님과 저는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그때 우리 마음 깊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등에 문제가 있으시지요? 저기 세 번째 줄 맨 끝에 앉아 계신 분 말입니다. 믿으신다면... 예, 형제님. 제가 보니, 형제님은 등을 붙들고 일어나려 하시고, 일을 하고 몸을 숙이려 애쓰고 계셨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시며 “하나님, 저도 여기에 포함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맞으면 손을 다시 흔들어 보십시오. 형제님의 믿음이 형제님을 구원했습니다. 아멘.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자매님, 실례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지요? 예. 그분께서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입니다. 자매님은 자신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고, 그 사람은 자매님의 가족, 손주입니다. 그렇습니다. 혈액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데려오며 수혈하는 것이 보이는데, 효과가 없습니다. 자매님은 그 아이를 대신해 서 계십니다. 자매님과 가톨릭에 관련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매님은 가톨릭 신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자매님, 믿음이 크십니다. 이것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원한 여호와여, 의사들은 실패했으나 주님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이 손수건을 보내는 목적, 곧 병든 이의 치유를 위해 이 손수건을 축복합니다. 이것을 받을 사람 위에 놓을 때 악이 떠나가고,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되게 하옵소서. 아멘. 자매님,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거든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그분을 위해 사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구하시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매님께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항상 그분을 섬기십시오.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제가 알기로 저는 형제님을 모르고 형제님도 저를 모르십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셔 주십시오. 가능하면 잠깐만 일어나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혼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고, 영이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놀라실 것입니다. 제가 왜 약해졌습니까? 왜 몸을 떨고 있습니까? 이렇게 서늘한 밤에 여기서 왜 땀을 흘리고 있습니까? 한번 여기 서 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아실 것입니다. 여기 한 남자가 서 계십니다. 이분에게 물어보십시오. 기름부음에 이렇게 가까이 서 계시고, 우리 사이에 영께서 계십니다. 형제님, 아주 평온하고 반갑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형제님에게 임해 있지요. 맞으면 사람들에게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바로 이분과 저 사이입니다. 워싱턴 디시에 있는 그 사진, 불기둥 사진을 보신 분은 얼마나 됩니까? 지금 이분과 저 사이에 계신 것이 바로 그분입니다.
이분은 처음 뵙는 분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리스도는 아십니다. 그런데 형제님,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형제님을 어떤 건물로 데려가는 것이 보입니다... 병원입니다.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다음 또 수술을 받으셨는데, 암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암이 남아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것을 제거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숨을 수 없습니다. 형제님은 이 도시 분이 아닙니다. 여기보다 작은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그곳은... 제가 그곳을 본 것 같은데... 일리노이주 록퍼드에서 오셨습니다. 이름은 레너드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랭고... 랭글러입니다. 주소는 8번가 3034번지입니다. 형제님에게 믿음이 있으니 이 말씀을 드립니다. 형제님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게바, 베드로를 어떻게 부르실지 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서 계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영이 제게 기름부어 계신 것입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오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주님의 성령께서 이 사람 안에 들어가 그를 고쳐 주시고 그의 생명을 보존해 주옵소서. 저는 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 마귀를 정죄합니다. 오늘 밤 그 마귀가 떠나고 이 사람이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지내며 먹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아멘. 가시면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하고 거룩한 구속의 일을 행하십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주님을 찬송합니다.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모릅니다. 뵌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주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자마자 그의 신실함과 정직함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형제님에게 “정직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보라”라고 말씀드립니다. 형제님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제님,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에게 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은 목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지역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곳에서 오셨지요? 오하이오주입니다. 클리블랜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함이 에머슨이지요? 이제 돌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께서 형제님을 치유하여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당뇨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고 싶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오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며 영존하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 여인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인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아멘.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참 좋은 이름을 가지셨군요. 신경 과민은 끔찍한 것입니다. 항상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요. 물론 자매님은 신경이 예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평생 신경이 예민하셨습니다. 어린 여학생 때에도 신경이 예민했던 모습이 보입니다.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정신 좀 차려요”라고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매님,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자매님을 겁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없애 주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 이제 막 한창때를 맞은 이 젊은 자매에게 손을 얹으며, 이 몸을 괴롭히는 병을 저주합니다. 주님, 이 자매는 주님을 섬기고 싶어 하며,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가 그것을 이 자매에게서 제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이 떠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자매님,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하시겠습니까? 지금은 괜찮으시지요. 그것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기 올라오셨을 때는 자매님 주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그것은 자매님을 겁나게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지금은 부정한 영이 자매님에게서 나갔습니다. 그것은 마른 곳들을 돌아다닙니다. 다시 돌아오려 하겠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드리는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절대로 얼굴을 찌푸리지 마십시오. 어떤 기분이 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온종일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것은 자매님을 떠나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가셔서 그렇게 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제 저를 믿으십니까?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병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그분은 좋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그분께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생명을 보존해 주시면 평생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걷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이리 오셔서 제가 기도해 드리게 하십시오. 이 여인을 아시는 하나님, 우물가의 여인을 아셨던 것처럼 이 여인의 형편도 아시는 하나님, 이 여인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셔서 복 주시고 생명을 보존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의로운 사람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효능이 있느니라.” 야고보서 5장 15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의롭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 의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는 제 의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의로 섭니다. 그러니 제가 그분의 기름부음 아래 있는 한, 그것은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저를 통해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시는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믿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심장병이 떠났습니다. 가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건강하십시오.
자매님, 저를 믿으십니까? 제가 하나님의 아들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그 위대한 대제사장께 닿는 접촉점, 그분께서 말씀하실 입술이나 그분께서 보실 눈임을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을 위해 제 눈을 사용하실 수 있다면, 자매님의 삶도 제게 알려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매님과 이야기를 더 나눌수록 더 많은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제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자매님이 왜 여기 오셨는지만 말씀해 주신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자매님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녁 무렵 늦게 기운이 빠지시지요? 앉으십시오. 밤에는 땀이 흐릅니다. 결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자매님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고치셨던 병, 폐병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 강단에 계심을 믿으시겠습니까? 엘리야가 밖에 서 있었을 때 도단에 있던 그 종처럼 자매님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오 여호와, 영원한 하나님, 이 딸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시고 치유하여 건강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병을 저주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잠깐만 움직이지 마십시오.
형제님, 가슴에 문제가 있으시지요? 바로 여기 끝에 앉아 계신 분 말입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종양이 있습니다. 예. 저기 앉아 계신 흑인 형제님, 가슴에 문제가 있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줄을 한번 보겠습니다. 거기 앉아 계신 흑인 여러분, 믿으십니까? 제가 그분의 선지자임을 믿으십니까? 제가 백인이어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저를 바라보고 믿으십시오. 그 줄에 계신 모든 분입니다. 형제님은 가슴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분은 종양이 있습니다. 손을 들고 계신 자매님은 신경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다음 자매님은 위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다음 자매님은 신경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드십시오. 그다음 자매님은 관절염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암에 걸린 자매님 한 분이 제 곁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아시는 그분,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입니다. 생명이 여기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온 마음으로 이것을 믿으신다면... 믿으신다면... 저기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분, 하나님께서 낫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똑같은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며, 어떤 병이 있든 여러분을 이미 고치셨다고 믿는 모든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