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친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에도 주 예수님을 섬기는 이 자리에 다시 오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의 마음이 모두 그분의 복으로 뜨겁게 빛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 목소리에 힘이 좀 없습니다. 이제 조금도 쉬지 못한 채 꼬박 넉 달째입니다. 그리고 쉬기 전에 집회를 두 군데 더 해야 합니다. 샬럿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받는 엄청난 충격 때문에 저는 몹시 쇠약해집니다. 사실 캐롤라이나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디서든 치유 집회를 한 번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집회 책임자가 여기 없어서 제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분이 여기서 제가 이러는 것을 보았다면 당장 집회에서 저를 데리고 나갔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지치고 기력이 다하면 그분들이 저를 데려가 쉬게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처음 왔고 또 다시 오고 싶어서 이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 사랑스러운 분들입니다. 저는 여기 있는 동안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꽤 힘겹게 일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나라에서 나라로 다니며 야외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목소리가 지쳐 버립니다. 저는 그저... 목소리뿐 아니라 몸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몹시 쇠약해집니다. 물론 육체적인 힘만 놓고 보면 저는 꽤 튼튼합니다. 하지만 환상들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듭니다. 도무지 어떻게... 거기서 벗어나려면 몇 시간씩 걸립니다. 그런데 하나가 끝나자마자 다음 환상이 이어지니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까지 쇠약하게 했다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어떻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저도 설명할 수 없고 다른 누구도 설명할 수 없으니, 저희가 하는 말을 믿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를 참으로 올바르게 아신다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서 아마 계속해서 치유 집회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샬럿에서는 아마 치유 집회를 한 번만 하게 될 텐데, 아마 일요일 오후일 겁니다. 너무 지치고 너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집회 책임자들도 저와 함께 있을 테니, 아마 그분들이... 제가 못 하게 하실 겁니다. 그래도 샬럿에서는 어느 날 저녁이나 일요일 오후에 적어도 한 번은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좀 쉬기 전까지 앵커리지에서도 아마 하룻밤으로 줄이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가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 히브리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병 걸린 자기 손을 고치고 막대기로 기적을 행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번 행했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참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제가 잘못하는 겁니다. 어느 회중이든 한 번이면 영원히 확신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한 번 행하셨다면 그것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모세가 매번... 누군가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제 손에 나병이 들었습니다. 이제 깨끗해졌습니다. 이 막대기가 보이십니까? 뱀입니다. 이제는 막대기입니다.” 그러고는 다음 히브리 사람을 기다렸다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자, 여기 제 손을 보십시오. 나병이 들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모세는 한 번 행했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아시겠죠? 모두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보내셔서 이 모든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로 제가 이렇게 몹시 힘들어지는 겁니다. 머지않아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옵니다. 곧 여기에 이를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그때는 놀라울 것입니다. 잡지에 실린 제 마지막 환상을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것은 작은 일에 불과할 겁니다. 주님께서 이제 하시려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이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백성이 함께 모일 때가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큰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분이 말씀하시면 기적이 일어난다’라는 설교를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전환점마다 전능하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식어 버렸을 때 전능하신 분이 말씀하셨고,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전환점 중의 전환점입니다. 마지막 때입니다. 온 세상 역사의 끝이 바로 지금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분이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이 땅에서 이제껏 일어난 것 중 가장 크고 강력한 기적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도 자기 것을 일으키는지 지켜보십시오. 온 하늘이 활동을 펼칠 때 온 지옥도 활동을 펼칩니다. 마지막 날들에 얀네와 얌브레가 이 땅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참된 것과 거의 똑같이 흉내 내어, 할 수만 있다면 바로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이려 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일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주 예수님 곁에 최대한 가까이 머무는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셔서 마침내 끝이 왔을 때 우리가 그분 편에 서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우리 마음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신실하며,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적그리스도와 그의 힘에 속지 않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알아보셨습니까? 적그리스도는 모든 일을 해도 치유는 하지 못합니다. 그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을 때, 치유 외에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보셨습니까? 저주를 가져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만이 유일한 치유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 훌륭한 병원과 훌륭한 의사들이 있습니다. 가장 똑똑한 의사들, 가장 좋은 의사들, 이제껏 치료에 써 온 것 중 가장 좋은 약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질병은 어느 때보다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와 불신이 어느 때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죄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훔치는 것,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죄의 속성들입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저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술을 마시고 간음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생명이 그렇게 하게 만들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합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나무가 사과나무처럼 생겼어도 배가 열린다면, 그것은 배나무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배나무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작은 예 하나만 보여 드리려고 했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아래 앉아 있는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집에 있는 제 아기와 꼭 닮아서 마음이 묘해집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약을 보십시오. 심한 감기, 흔히 앓는 심한 감기를 확실하게 고친다고 보장할 수 있는 약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해마다 수백 명이 심한 감기로 죽습니다. 해마다 의사들도 심한 감기로 죽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세상에는 칼에 베인 상처를 고칠 약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칼에 조금 베인 단순한 상처 말입니다. 그것을 고칠 약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하고 말씀하실 겁니다. 아닙니다. 없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를 고칠 약이 있다면, 제 외투나 이 책상에 난 칼자국도 고칠 것입니다. 칼에 베인 것을 고친다면, 어디에 있든 고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제 광신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약은 외투나 책상을 고치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몸을 고치려고 만든 겁니다.”
좋습니다. 지금 제가 칼에 손을 베이고 쓰러져 죽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의사가 와서 제가 죽었다고 선고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십 년 동안도 생전 모습 그대로 보이게 하는 약액으로 제 시신을 방부 처리합니다. 미국과 독일, 또 훌륭한 과학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모든 의사가 와서 날마다 제게 페니실린 주사를 놓게 하십시오. 그 상처를 꿰매고 머티올레이트와 설파제 등 우리에게 있는 모든 약을 거기에 써 보십시오. 오늘부터 오십 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처음 베였을 때와 똑같을 것입니다. 약이 사람의 몸을 고친다면 왜 그것을 고치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그야 생명이 떠났으니까요”라고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생명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무엇인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약은 조직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직을 만드십니다. 아시겠죠? 의사들은... 물론 의사들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분들을 존중하며, 그분들은 저희 친구입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며, 저희는 그분들을 존중합니다. 그분들도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령 손을 베였다면, 의사에게 가서 꿰매고 약을 바르는 것이 좋습니다. 의사가 무엇이든 상처를 깨끗이 유지할 것을 넣어 주게 하십시오. 하지만 의사도 그 뒤에는 낫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충수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가 살펴보고 말합니다. “충수에 문제가 있군요. 자, 하나님을 믿고 이것을 떼어 냅시다. 괜찮겠습니까?” 가서 그것을 떼어 냅니다. 떼어 낸 뒤 의사가 꿰맵니다. 아직 나은 것은 아닙니다. 의사는 충수를 떼어 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낫게 하는 일은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팔이 부러졌습니다. 의사에게 가십시오. 의사가 어떻게 합니까? “잠깐만요. 이 만병통치약을 조금 부으면...” 하고 말합니까? 그렇다면 돌팔이일 것입니다. 아시겠죠? 의사는 그저... 의사가 하는 일은 팔뼈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사가 아는 일입니다. 엑스레이로 살펴보고 뼈를 모두 제대로 맞추었는지 확인합니다. 부목을 대면 여러분은 며칠 동안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십니다. 그다음에는... 의사가 고친 것이 아니라 뼈를 맞추었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고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의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의사도 하나님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오늘날 참 훌륭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안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늘날에는 척추교정 치료가 있습니다. 의사는 척추교정사를 비난하고, 척추교정사는 의사를 비난합니다. 정골요법사들은 그 둘을 다 비난합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신유를 비난합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정골요법사는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척추교정사도 그렇습니다. 약물치료도 그렇고 수술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의사가 외과 의사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 외과 의사는 약으로 치료하는 의사를 비난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의사 선생님, 어느 분이시든 저를 용서하십시오. 모욕하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저희는 선생님들이 필요하고,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비난한다면, 그 동기가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정골요법사, 척추교정사, 의사, 외과 의사, 목회자 모두가 그런 것을 잊고 함께 일하면서 이웃을 도우려 한다면, 그들의 삶을 조금 더 낫게 하고 삶의 여정을 조금 더 즐겁게 해 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더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동기가 바르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르다면, 각 사람의 삶이 조금 더 복되도록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저녁 제가 여기서 하는 일입니다. 저는 치유자로 온 것이 아닙니다. 치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로 온 것도 아닙니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몸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분이 주들의 주시고 왕들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신성한 약속이,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일들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우리에게 약속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자신을 치유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를 고쳤다고 주장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시니,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맞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권능에 사로잡혀... 아니, 권능을 입으셨다고 해야겠습니다, 파월 형제님. (죄송합니다. 사로잡히셨다는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권능을 입으셔서 환상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자신에게 질문한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환상으로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그것이 사실이며 성경에 있는 말씀인 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예수님은 몸이 불편한 그 모든 사람을 지나오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들 중 한 사람도 고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고치신 사람은 진행이 더딘 병을 삼십팔 년 동안 앓으며 깔개 위에 누워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아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고 아들도 지금까지 일하느니라.” 다시 말해서, 아버지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셨다는 겁니다.
성경 학자 여러분, 마음대로 무엇이든 하는 초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오신 분들, 그가 나가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 버리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신 분들, 그런 것은 성경에 없었습니다. 또 죽을 몸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렇게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누구도 그분보다 더 높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어느 때든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먼저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일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성경기록들을 찾아보시고 언제나 그러한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약 천구백 년 전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죄와 질병에서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 갈보리에서 모든 죄와 질병을 처리하셨고 그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질병을 위해 한 번 속죄하시고, 죄들을 위해 또 한 번 속죄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한 번 속죄하셨으며, 그것은 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처리하려면 죄의 모든 속성도 처리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대로, 인류에게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질병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을 때, 그것은... 질병은 죄의 속성으로서 들어왔고, 죄는 죽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는 죽음입니다. 질병은 죄를 따라옵니다. 염려도 죄를 따라옵니다. 염려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염려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도시의 모임에서 남자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고 해도, 염려한다고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고개를 좀 숙이고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면장에 서명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염려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믿음은... 그러니 염려를 버리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사가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일을 한 것입니다. 자기 지식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했으며, 그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정직하고 좋은 의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 흔히 “주님께서 당신을 도우시고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저 위 메이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환자를 돌려보낼 때, 때로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무엇이라도 찾게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삶을 더 낫게 해 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인생길에서 이웃으로서 서로를 도우려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도움을 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오늘 저녁 여기에 모였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그 일이 이미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있고 성경도 끝났다고 선언한다면, 이미 끝난 일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이 끝난 때와, 끝났다고 말씀하는 성경을 여러분에게 가리켜 드리는 것뿐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완수하신 일을 여러분 각자가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성경에 기록된 복음은 그것뿐입니다. 그 일은 갈보리에서 끝났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곳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서 배당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우리 구원의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친구 여러분, 치유의 보증이 없다면 몸의 부활도 없습니다. 구원이 혼에만 관계된다면, 우리가 죽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의 생각과 사고의 모든 부패가 변화된다면... 그리고 지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이 변화가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라면... 물론 그것은 먼저 치르는 계약금이며, 우리가 시험을 넘어 죄가 더 이상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이 있다면 속성이... 아니, 보증이 있어야 합니다. 신유가 없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신유는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암 협회 쪽에서는 십 년이나 십이 년 전에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오늘 저녁에도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저는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라보고 삽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약속을 하신 뒤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자신이 행했던 것과 같은 일들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아니, 더 많은 일들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예수님을 통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을 때부터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두루 일하십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첫 집회를 열었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삼만 오천 명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회장으로 걸어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주님께서 자동차 한 대가 오는 모습과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은 소년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 청년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지자의 아프리카 방문’이라는 책입니다. 그 소년에게 그 사실과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고, 이름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나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곳으로 달려 내려왔는데 정상적으로 나아 있었습니다. 잠시 뒤 의사 몇 분이 소년을 진찰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프리카 의사협회에서 제게 전화해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목사님께 저희 모든 병원의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이런 식의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 여러분을 무시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아프리칸스 AFM 교회에는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사를 부르는 것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집에 의사를 들이는 것이 죄였습니다.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찾아갈 수만 있다면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그중에 많습니다. 그분들은 목사님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의료 활동도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께서 의료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도우신다고 말씀하셔서, 달리 어떻게 해도 찾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병원에서 의사들을 통해 큰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그렇습니다.
오늘 저녁 제가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육백 마일쯤 떨어진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소달구지를 타고 간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과학이 자동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참 기쁩니다.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래로 손을 씻어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과학이 비누를 더 좋게 개량했습니다. 손을 훨씬 더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렇다면 의사를 비난해야 한다면 비누도 비난해야 하고 자동차도 비난해야 하며, 그런 것들을 다 비난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이제 깨어나십시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정신을 똑바로 차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고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아니, 여러분을 고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치셨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해 보이실 수 있습니다. 먼저 그분은 말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들으십시오. 엄숙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수백 수백 가지 종교 가운데 그 창시자이자 구원자가 살아 계심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것을 안다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부처는 이천오백 년 전에 죽었습니다. 모하메드는 약 천구백 년 전에 죽었습니다. 여러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어서 묻혔고, 그들의 무덤에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열린 무덤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제자 몇 명이 와서 그분을 훔쳐 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어떤 기계적인 방식으로든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오늘 저녁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전능하시고, 무한하시며, 죽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오늘 이 밤, 바로 여기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핀데일에 그분이 계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믿는다면,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다시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종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잠시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읽을 때 주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여정, 이 순례길을 걷는 남녀들이 여러 곳에서 왔으며, 저마다 하는 일도 다릅니다. 주님을 섬기는 우리 각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우리 마음의 동기를 받아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여기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그림자 너머의 영원하고 죽지 않는 생명에 둔 그들의 소망이 옳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참됩니다. 이제 오셔서 말씀해 주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24장 31절과 32절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들으십시오. 저는 말씀 읽기를 좋아합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사람의 말입니다. 여러분이나 다른 누구의 말처럼 사라지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들의 눈이 열려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더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이제 동일한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기록들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을 펼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몸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우리에게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 자신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 보았습니다.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손에 책을 가지고 계셨으나,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에 있는 어떤 사람도 그 책을 취하고 봉인을 떼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었으며, 그럴 자격도 없었느니라.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께서 오셔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여 펴시고 그 봉인들을 떼셨느니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그것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이 약해져 있으므로 잠깐만 말씀드리고, 앞으로 십오 분쯤 뒤에는 기도 줄을 시작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제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오늘 저녁 우리가 살펴볼 장면은 부활의 아름다운 첫 아침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 아침 그들에게 부활이 지녔던 의미보다 지금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가 훨씬 더 큽니다. 우리는 두 제자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입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았습니다. 저는 교육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교육을 받기보다 그분을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알기를 원합니다. 교육은 훌륭하지만, 그분을 아는 것은 생명입니다. 이 제자들은 그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일이 생기자 그분의 말씀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거의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인가에서 조금 실망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 들어와서 어떤 것을 잘못 해석하면, 곧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 그거 다 광신주의야. 어쩌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지도 몰라.” 인간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신유가 참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 존스 부인이 기도를 받았는데 낫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존스 부인의 믿음이나 하나님의 뜻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은 그분이 셋째 날에 일어나리라고 하신 그 모든 말씀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실 때 그들도 거기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 잊어버렸습니다. 슬픔이 닥쳤습니다. 그들은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을 살리셨던 분을 보았고, 그분이 군인들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도록 내버려 두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회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일을 말씀하실 수 있고, 그들의 생각까지도 알아보실 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실 수 있었고,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한 사도를 보내셔서 처음 잡히는 물고기의 입에서 동전을 꺼내 세금을 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그 예고가 얼마나 정확한지 보았습니다. 한 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 언제나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로마 군인들이 그분의 얼굴을 헝겊으로 감싸 앞을 못 보게 하고,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네가 선지자라면 우리에게 말해 보아라... 예언하는 자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겠다.” 그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었던 분이 이제는 연약하게, 마치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일로 그들의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실 수 있고 이 모든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던 분을 보았는데, 이제는 얼굴이 침으로 범벅이 된 채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것을 봅니다. 군인들이 수염을 잡아 뜯고 얼굴에 침을 뱉어서 수염과 얼굴에 피가 흐릅니다. 등이 서른아홉 대의 매를 맞아 으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마흔 대를 때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주요 질병이 서른아홉 가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홉 가닥 채찍으로 그분의 등을 서른아홉 번 때렸습니다. 가죽 주머니에 납덩이를 넣은 채찍으로 갈비뼈가 드러날 때까지 때린 것입니다. 시편에서 그분은 “내 모든 뼈가 나를 노려보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유대인들과 종교인들, 높은 지위를 가진 교회들과 학자들과 교육자들이 돌아다니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라면 이제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받아들이고 믿겠다.” 그들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때 그렇게 권능이 크셨던 분이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모든 권능을 잃으실 수 있을까?” 우리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천구백 년 전 오순절 교회는 살아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 안에 모시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환상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권능을 잃었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 이 놀라운 첫 부활절 아침, 세상의 봄날에 예수님은 살아 계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아직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하나의 신조처럼, 혹은 한때 살았던 분, 한때 권능이 있었던 분, 한때 하나님을 불러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었던 분으로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역사 속의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의 하나님이 오늘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오늘날 살아 계시지 않다면, 엘리야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새를 데려다가 새장 안에 넣고, 날개를 튼튼하게 해 주려고 정통적인 먹이를 먹인 다음, 날지 못하도록 주위를 새장으로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들이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아주 정확하고 아주 정통적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죽은 종교, 한때 살았던 사람에 관한 신조 속에 가두어 둡니다. 그분은 오늘날 살아 계신 분입니다.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온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권능을 가지신 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믿지 않습니다.
길을 가던 이 두 제자는 그분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분이 길가에서 나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 이것을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보지 못하는 이유는 늘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온종일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는 대신, 그리스도와 그분이 완수하신 일과 그분의 선하심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더 자주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들이 걸어가면서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분이 곁에서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 곁에도 여러 번 계셨습니다. 저 병원에서 의사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더 이상 치료하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나았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누구의 손길인지 몰랐습니다. 그 차가 바로 앞을 가로질러 가고, 여러분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간신히 충돌을 피했을 때, 곁에 앉아 계신 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많은 일에서 여러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대공황 때 통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아이들에게 옷이 없고, 다음 끼니를 어디서 구할지도 몰랐는데 어떻게든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그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분이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오늘 저녁 여기 모인 이 작은 무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요? “너희는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지쳐 있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그저 나그네이십니까?” 그들은 그분을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도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들을 대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영을 보내시면, 그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입이 됩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을 받아들이면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내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때로 어떤 설교자, 훌륭한 복음 설교자가 우리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웃습니다. 때로는 그를 조롱하며 홀리 롤러, 광신자라는 모욕적인 이름까지 붙입니다.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했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제 그분이 계속 가시는 모습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나 곧 성경으로 가십니다. 모세에게서 시작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어리석고 모든 선지자를 믿는 데 마음이 더딘... 모든 선지자가 말한 것을 믿지 않는 자들아.” 다시 말하면, “너희는 마음이 그렇게 더뎌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느냐?” 하는 뜻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너희는 그렇게 어리석으냐? 모든 선지자가 말한 것은 다 성취되어야 하는 줄 모르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말한 성경기록들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함을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제 마음에 신앙의 감동이 참으로 뜨겁습니다. 여러분도 분명히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나태하고 어리석어서, 신조를 담은 책에 자신을 가두고 성경을 제쳐 놓은 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다고... 아니, 지나갔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니, 그보다 더 많이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나태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성경기록들이... 하는 것을 알았어야 하느니라.”
그들이 계속 길을 가는 동안 하루가 저물어 갔습니다. 그들은 무척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의 말씀은 보통 성직자들의 말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이 길을 가시다가... 이제 그들은 목적지인 도시에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곧 마치려고 하니 잘 들으십시오. 그들이 묵으려는 곳에 가까워졌을 때, 그분은 그냥 지나 더 가시려는 것처럼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그냥 지나치실 것처럼 하실 때가 많습니다. “어젯밤에는 여기에 의자들이 있었고 간이침대들도 놓여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의자들이 비어 있고 사람들은 여기 있습니다. 간이침대도 비어 있는데 사람들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고쳐 주시지 않을까요?” 그분은 여러분을 그냥 지나치실 것처럼 하실 때가 많지만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뿐입니다. 앞을 못 보던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을 기억하십니까? 오, 온유하신 구주여, 저를 지나치지 마옵소서. 제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시는 동안에도 저를 지나치지 마옵소서.
그분을 보십시오. 그들을 지나 더 가시려는 것처럼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께 강권하여 들어오시게 했습니다. 들어오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오,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그분은 초대를 받으시면 반드시 오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초대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그 초대를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 초대를 받으려고 기다리며, 갈망하며, 간절히 바라십니다.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든, 그분의 일들을 보는 것이든,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보는 것이든, 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이든, 선지자가 예언하는 것이든, 기적이나 표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분은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이제 들어오시라고 청하십시오. 그러면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그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을 때... 자, 여기를 주목하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닫혔습니다. 그들이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자 빵을 주문했습니다. 여종업원이 빵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와 내려놓았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조용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문이 닫혀 바깥세상과 차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묻히시기 전에 하셨던 일을 하심으로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죽으셨던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 저녁 여러분이 몇 분만 자기 신학을 내려놓고, 염려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인다면... 세상과 주변의 모든 것에 문을 닫고 그분이 들어오시게만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부활하시기 전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오늘 저녁 여기서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과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 돌아가며 말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영원토록 살아 계신 분입니다.” 바로 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저녁 여기 계심을 그분의 말씀으로 선언합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마음속에 들어오시게만 한다면,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성경과 부활을 거짓으로 증언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도전하는데, 어떻게 거절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분이 오늘 저녁 이 건물에 다시 오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일들을 행하신다면, 저도 믿겠습니다.”
제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데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는 그리 훌륭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을 압니다.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을 압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면 여러분도 그분을 안다고 저는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이 치유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환상들을 보셨습니다. 한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회중 속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운이 약해졌도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요?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기운이 약해졌도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그분은 무리 가운데를 두루 둘러보셨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 여자 자신도 부인하며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두가 부인했다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기서 누군가 사실이 아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내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그 여자는 여러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와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분이 어제의 예수님이셨다면... 성경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어제 그렇게 하셨다면, 동일하시기 위해 오늘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어젯밤 인용했던 것처럼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러 갔을 때, 몇 마일이나 떨어진 저 언덕 너머에서 그를 찾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와서 예수님 앞에 서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믿는 자요, 정직한 사람이로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잠깐만요.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평생 저를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으신데 어떻게 저를 아셨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하지만 교회 사람들, 큰 교회 사람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점쟁이와 마귀들의 우두머리다. 바알세붑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혼을 위해 이제 잘 들으십시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그것은 용서하리라. 누구든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셨을 때, 그분이 내가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시는데도 너희가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그분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 그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씀하시는 이런 일들을 하고 계셨는데, 그들은 그분을 점쟁이라고 하며 부정한 영이 들렸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한 영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것이 신성모독입니다. 신성모독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압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저 조용히 계시고 그대로 가십시오. 그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와서 그분께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나아오자 그분은 그가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네 아버지의 이름은 바요나로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라 불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시해 주셔서 아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여 주시는 것을 행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어제의 예수님이셨다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경우 오늘날의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다 가르치고 그대로 지내는 것처럼 그저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의 신조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래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분은 죽으셨고 다시 일어나셨지만 떠나가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신조로 경배합니다. 교회에 와서 최선을 다하며, 언젠가는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세상의 끝까지 너희 안에서 행하리라.” 그렇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람이 충분히 말했습니다. 주님, 이제 성령께서 예배를 계속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 저녁 성령께서 여기서 주님을 온전히 나타내시어, 오늘 저녁 이 건물에 모인 이 지역 사람들이 심판 날에 변명하지 못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글로바와 그 일행에게 “성경기록들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는 줄 모르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끝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주님이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성경기록들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날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날에 큰 표적과 이적이 일어날 때 유대인들이 세 번째로 팔레스타인에 돌아오고 깃발이 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처럼 세상에 그 모든 큰 표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모두 부어 주시고, 주님의 백성 가운데 다시 표적과 이적이 행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말씀이 참됨을 압니다.
이제 주님의 부족하고 무가치한 종인 저와, 모두 함께 주님의 무가치한 종들인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며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아버지, 여기 주님을 주님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오늘 저녁 그들이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각 사람이 주님께서 완수하신 일과 주님이 소유하신 영원무궁한 생명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을 때 그 생명을 주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녁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나타내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이 복들을 구합니다. 아멘. 이제 평소 제가 늘 하듯이 이렇게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전에 집회에 와 보시지 않은 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유와 관련하여 광신주의가 많이 있다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종교 운동에는 광신자들이 따릅니다.
인도를 방문해서 보면 위선자가 거기 누워 사람들에게 재주를 부려 보이려고 뾰족한 못 위로 등을 굴리거나 유리 조각 위를 걷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내륙에는 자기 혼을 위한 희생으로 진실하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위선자는 그저 광대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종류의 모든 교회에 있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오순절교, 그 밖에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교회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하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 속합니다. 그 모든 지체는 여러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믿으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저라면 이 집회에 더 머물지 않겠습니다. 저라면 가서 기다렸다가 내일 저녁 다시 와서 다른 예배를 듣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며칠 저녁 동안 여러분은 제 말을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 곧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실 때, 집회에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질병들과 마귀들이...
오늘 저녁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는 의학 명칭들이 있어서, 암이나 간질이나 온갖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것들을 마귀라고 부르셨습니다. ‘마귀’라는 말은 ‘괴롭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가 그 사람을 진찰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의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귀의 신경이나 성대의 신경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못 하거나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동이 없습니다. 죽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온몸의 신경이 다 죽지 않고 그곳만 죽었습니까?” 그는 말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곳만 죽었습니다.” 문제는 의사가 다루는 것은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주리 사람들의 옛 사고방식인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 보신 분이 계십니까? 들어 보셨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잠깐 보시겠습니까? 한 가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 제 앞에 회색 양복을 입은 분이 서 있습니다.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습니다. 저보다 체구가 꽤 큽니다. 그것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분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쪽으로 뒤로 좀 물러서십시오. 이제 저는 이분을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이분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분이 거기 없다고 저와 논쟁하시겠습니까? 볼 수는 없어도 보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분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보는 것이 믿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촉각이 있고, 저는 이분을 만져서 느낄 수 있습니다. 촉각도 시각만큼 믿을 만합니다. 사람의 몸에는 감각이 몇 가지 있습니까? 다섯 가지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촉각으로 이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촉각으로 이분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촉각이 작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은 이분이 거기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보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만져 느끼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피아노 치시는 분은 어디 계십니까? 오르간 치시는 분이나 누구라도요. 자매님, 음을 조금만 들려주시겠습니까? 음악이 있다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 음악을 보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면서 왜 손을 드셨습니까? 지금은 듣는 것이 믿는 것 아닙니까? 아시겠죠? 듣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여러분이 보거나 맛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거나 듣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몸에는 다섯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그 감각들 중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이 땅, 여러분이 사는 지상의 거처와 접촉하도록 그 다섯 가지 감각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는 믿음으로 접촉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위대한 기계 문명 시대에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가령 모세가 그 떨기나무 앞에 서 있을 때... 오늘날의 현대인이었고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잠깐만. 이 떨기나무를, 그 잎을 좀 가져다가 실험실로 가서 화학 검사를 해 봐야겠어. 불이 붙었는데도 왜 저 잎들이 타지 않았는지 알아봐야겠어.” 아시겠죠? 그 당시에는 기적이 일어나면 사람의 말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것을 과학적 검사를 거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검사로는 하나님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분을 알게 됩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반대로 말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건 지적인 말 같지 않은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지적인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올바른 지성입니다. 삶에서 참으로 실재하는 것들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결혼하셨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예.” 제가 말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말씀해 보십시오. 당신의 어느 부분이... 여기 꺼내서 제가 보게 해 주십시오. 분석해서, 어떤 부분이 사랑인지 보여 주십시오. 그 여자를 다른 누구와도 다르게 사랑하게 하고, 자기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사랑하게 하는 그것 말입니다. 무엇이 과학적입니까?” 또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생각하는 정신이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정신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보여 주십시오.”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재합니다.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선함, 온유함, 인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며 참으로 실재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것들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며 땅에서 옵니다. 그러나 과학으로 다룰 수 없는 것들이야말로 하늘에서 오는 참된 것들입니다. 하나님, 성령, 천사들, 초자연적인 것들, 그것들은 영원한 것들입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무엇이든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에덴동산에는 두 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하나는 과학의 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나무였습니다. 사람이 믿음의 나무에서 먹는 동안에는 살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나무, 곧 지식의 나무에서 처음 한 입을 베어 먹자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파멸시켰습니다. 사람은 과학의 나무에서 한 입씩 베어 먹을 때마다 스스로를 파멸시킵니다. 화약을 한 입 베어 먹더니 자기 동료를 죽입니다. 과학의 나무에서 자동차를 한 입 베어 먹더니 모든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제는 코발트 폭탄을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아시겠죠? 과학은 파괴하고 믿음은 세웁니다. 저는 과학의 나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의지해야 할 것은 이것, 곧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것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믿으십시오. 오늘 저녁 그분께서 이 사랑스러운 회중 가운데 오셔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심으로 살아 계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기도 카드는 무슨 번호였습니까? B, B 1번부터 100번이었습니까? 오늘 저녁에는 너무 많이 부르지 않겠습니다. 어젯밤 여기 계셨던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알아보셨습니까? 어쨌든 단상 위보다 회중 가운데서 치유받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여기서는 그저 누군가를 이 위에 올라와 서게 하여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는 나누어 드린 카드 중에서 1번부터 50번까지 부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마지막 십오 명쯤, 그러니까 85번부터 100번까지 부르려고 합니다. 그분들을 여기 세우고, 혹시 몇 분에게까지 이를 수 있을지 보겠습니다. 네 분, 다섯 분, 열 분, 어쩌면 모두에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분에게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앞 번호부터 시작할 것이고, 그분들을 다 마치면 더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하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작은 카드를 보십시오. 여기 제 앞에는 한 장도 없습니다만, 이 정도 크기의 조그마한 카드입니다. 이제 각자 옆 사람을 살펴 주십시오. 귀가 들리지 않아 듣지 못하는 분이거나 몸이 불편하여 일어서지 못하는 분일 수 있습니다. 자기 번호가 불리면 응답하십시오. 그렇지 않을 때는 경건하게 가만히 앉아 자기 번호를 기다리십시오.
기도 카드 85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85, 90, 95, 100, 예, 그러면 십오 명이겠군요. 기도 카드 85번을 가진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여기 계시군요. 부인, 계단으로 오르내리실 수 있도록 이 오른쪽으로 돌아와 주시겠습니까? 86번,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87번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부인. 87번, 88번, 88번, 좋습니다. 89번. 보십시오. 서로 끼어들거나 밀거나 애쓰지 않고도 질서 있게 모든 분이 제대로 한 줄로 설 수 있습니다. 89번, 90번. 기도 카드 90번을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좋습니다, 선생님. 청년이 방금 알려 주었는데, 내일 저녁에는 카드를 받으러 오시는 환자분들이 건물 안을 온통 찾아다니실 필요가 없도록 하겠답니다. 각 줄의 앞쪽 열 구역에 줄을 쳐서 환자분들만 앉으시게 하겠답니다. 내일 양쪽의 앞쪽 열 줄에 말입니다. 맞습니까? 앞쪽 열 줄이군요. 좋습니다. 자, 1, 2, 3, 4, 5, 6, 7. 그러면 85, 86, 87, 88, 89, 90, 91, 92가 되겠군요. 좋습니다. 91번? 92번, 92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카드 92번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이제 옆에 있는 분을 보십시오. 귀가 들리지 않아서 자기 번호를 부르는 소리를 못 듣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92번? 부인, 카드가 92번입니까? 92번? 자매님, 90 몇 번입니까? 93번이군요. 92번은 여기 안 계십니까? 잠시만요. 누구도 자기 차례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93번, 94번, 95번, 96번, 97번, 98번, 99번, 그리고 100번. 모두 올라올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부분.] ...
지금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 이제 아주 잘 들으십시오. 아시겠죠? 조금도 놀라지 마십시오. 긴장하지 마시고 조용히 계십시오. 오늘 저녁 이곳은 주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경기장으로 쓰이는 곳인 것은 알지만, 오늘 저녁에는 주님을 위해 바친 곳입니다. 아시겠죠? 여기 기도 카드는 없지만 성경이 가르친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며 그분이... 저희가 설명해 드린 그대로이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믿는 분들 말입니다. 그분께 치유받기 원하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느 쪽에 계신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온통 빽빽하게 어디에나 계시는군요. 이제 저는... 제가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을 부를 때, 카드가 있는 분은... 제가 원하는 것은 기도 카드가 없어서 줄에 서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온통 빽빽해서 알아볼 수가 없겠군요. 그러니 제가 여러분의 믿음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바라보고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여러분이 저기 앉아 온 마음으로 믿고 계신다면,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그분께 손을 댔듯이 오늘날 여러분의 믿음이 그분께 닿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근본주의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지금 그분이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정을 그분께 간청하십시오.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여기 올라오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제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믿음이 그분께 닿게 하십시오. 제가 자신을 내어 드려 그분의 입이 된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믿음에 응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곧바로 돌아서서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여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분을 믿기로 약속하신 모든 분은 “아멘” 하십시오.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꼬마 여러분에게 오늘 저녁 저를 위해 한 가지 부탁하겠습니다. 들어주겠습니까? 꼬마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기 안이 덥고 가만히 있기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하겠습니다. 몇 분만 아주 조용히 있어 주겠습니까? 아니, 아주 가만히 앉아 있어 주겠습니까? 아시겠죠? 물론 어린 아기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들은, 아기들이 칭얼거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몇 분만 가만히, 조용히 앉아 있어 주십시오. 아시겠죠? 성령께서 오시면 여러분 각 사람은 전기가 흐르는 전선처럼 됩니다. 아시겠죠? 성령은 빛이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는 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빛의 모습으로 계시는 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때 저와 함께 저 아래에서 찍힌 그분의 사진을 지금 여기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사진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 사진들 중 한 장, 불기둥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 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불기둥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밤 죽는다 해도 제 증언은 참됩니다. 과학계가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교회도 압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확실합니다. 조지 J. 레이시가 바로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보시는 이것은 빛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을 인도했는데,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불기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출애굽기 13장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속 두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같은 흰빛으로 보였고, 밤에는 빛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육신을 입은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셨을 때 그분의 육체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고, 그분은 다시 빛이 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세와 함께 계셨을 때와 동일하시다면 말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까?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를 쓰러뜨린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빛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 빛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그러므로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그분은 영이시며 성령이라고 불리십니다. 모세를 인도하셨던 바로 그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아버지로 계신 때, 아들로 계신 때, 성령으로 계신 때라는 세 경륜입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맡으신 세 직분일 뿐입니다. 오늘 저녁 이 땅의 교회 가운데서 그분의 직분은 성령, 곧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계셨던 동일한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며 참으로 똑같으시다면, 그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들을 지금도 행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죽으실 때 변하셨거나 약해지신 것입니다.
부인, 지금 계신 곳에 잠깐만 서 계십시오. 이 건물 안에서 저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 계시든,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 말입니다. 기도 줄에 계신 분들도 모두 저와 모르는 사이입니까? 부인도 저와 모르는 사이입니까? 어디나 모두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무엇 때문에 시간을 끌고 계십니까?”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제게 오시지 않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오시면 일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끌어당기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여기 한 여자가 서 있습니다. 여기 또다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모습이 아주 완전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처음 오신 분을 위해 성경 한 대목을 인용하겠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지금 제가 이 여자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집회에 오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자,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것이 성경,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은 모두 “아멘” 하십시오. 좋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분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올라가십니다. 그분은 자리에 앉으시고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한 여자, 사마리아 여자가 나옵니다. 물을 길으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시며 말을 걸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참되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폴, 잠깐 의자 좀 가져다주겠습니까? 누가 이 부인에게 의자를 하나 놓아 주시겠습니까? 잠시 앉으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잘 말하였도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그를 데려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제게는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맞도다. 네게는 다섯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이제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 여자를 보십시오. 제 주제를 들으십시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우리는,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시면 이런 일들을 행하시고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분이 그런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인과 온 세상에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는 표적이었다면, 오늘 저녁에도 그분이 동일하실 경우 그것이 똑같은 메시아의 표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이제는 육체의 몸 안에 계시지 않고 우리 몸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부으셨고, 그리스도 안에 있던 모든 것을 교회 안에 부으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그리고...” 아시겠습니까? 모두 함께입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기 한 부인이 계십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분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아십니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랐고, 평생 처음 만났습니다. 이제 만일... 이 부인이 어떤 목적으로 여기 오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목적이 없다면 단상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 여자에게 나타내셔서, 이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어 정확히 말씀해 주신다면... 부인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 그것이 사실인지 아실 겁니다. 그분이 같은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제 여러분 모두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이 여자의 영과 접촉하려고 합니다. 아주 경건하게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 성령께서 여기 계시고 저는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제가 잠깐 이 여자를 바라보는 동안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부인, 제가 말씀드릴 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린다고 해 봅시다. 부인이 여기 오셔서, 여기 앉아 있는 이 부인이 “브래넘 선생님, 제가 아픕니다”라고 한다고 합시다. 제가 “아, 가십시오. 나으셨습니다. 아시겠죠? 건강해지실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분에게는 그것을 의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얼마나 확실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것이 제게 와서 그 일에 관해,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이분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말해 준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이분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할 겁니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르는데, 저것은 다른 어떤 근원에서 온 게 틀림없어.” 그때 그것을 무엇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이분이 받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이분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막대기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린 사람과,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자와 같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선물에 올바르게 다가갔기 때문에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 남자는 받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는 “내게 뭔가 보여 보아라” 하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했던 바로 그 마귀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을 빵으로 바꾸어 내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믿겠다.” 아시겠죠? 바로 그 동일한 영이 사람들을 통해 계속 살아 내려옵니다. 이제 여기 우리의 친구인 이 부인과 접촉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분을 알지 못하고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므로, 반드시... 이제 일어서고 싶으시면 일어서셔도 됩니다. 너무 오래 서 계시게 해서 기운이 빠지셨을까 싶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을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인과 제가 그분 앞에 서서 이 삶에서 행한 모든 일을 아뢰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그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제가 목소리가 작다는 것을 알아서 음향 담당자에게 제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이 여자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아내셨을 때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믿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표적,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에게도 똑같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저 부인과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부인은 저와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있으며, 이분은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 다 알고 서 계십니다. 이분이 제게서 멀어져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선 이 여자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심한 신경 이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목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입니다. 목에 암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또 마음에 걸려 걱정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약속들을 했는데 지키지 않았고,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전에 암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병원인지 어떤 곳인지, 의사 두 명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도 암이었습니다. 그 암은 유방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유방을 제거했습니다. 유방에서 암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손을 드십시오. 이제 주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그분이 과거를 아신다면 앞으로의 일도 틀림없이 아십니다. 부인의 과거를 모두 정확히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틀림없이 미래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그분의 말씀으로 말씀드립니다. 지금 온 마음으로 믿으실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 저는 어떤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입니다. 부인도 그것을 아십니다. 회중을 위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신다면, 그분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리 오십시오.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주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이 죽어 가는 여자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이분이 오늘 저녁 이곳을 떠나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분의 치유를 통해 그 이웃에 예전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이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십시오.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믿으십시오.
오시겠습니까? 이제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말합시다. 성경은 “숨이 있는 모든 것은 주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만, 감정적이기도 합니다. 감정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죽은 것입니다. 이제 여기 서 있는 부인도 저와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며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부인? 그것이 사실입니다. [부인이 말한다. “테이프로만 말씀을 들었습니다.”] 뭐라고요? [부인이 말한다. “테이프로 들었습니다.”] 테이프로요. 알겠습니다. 이제 부디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방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제가 놓쳤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시겠죠? 주님의 천사는 빛이시며, 저는 그 빛이 여기서 움직여 갈 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부디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잠깐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오래 있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쯤은 누구의 생각에도 의심의 그림자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지금 온 마음으로 믿고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셨다는 것을 입증할 표적을 행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오늘날 살아 계심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는 표적을 행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면 모든 약속은 참됩니다.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려고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줄에 사람들이 서 있으니, 이제 움직이지 마십시오. 질병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부탁드립니다.
부인, 저는 부인과 모르는 사이로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눌 뿐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르며, 언젠가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는 심판 날에 우리 두 사람이 모두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제가 그만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저를 믿으신다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실 것입니다. 부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오 분만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것은 맞서...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믿으신다면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몇 분 전에 앞으로 십오 분 안에 나가셔야 할 분들은 나가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제 부디 그러지 마십시오. 몇 분만 가만히 계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은 영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저를 의심합니다. 그런데 움직이시면 그것이 컨...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그건 심리학입니다”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대하실 때 사람들을 모두 집 밖으로 내보내고 들어가서 고치셨습니다. 또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데리고 무리에서 벗어나, 도시 밖으로 완전히 나가 거리 바깥쪽으로 가셔서 그를 따로 데리고 고치셨을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아닙니다. 그저 많은 불신이 믿음과 뒤섞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 용서하십시오. 무례하게 굴려는 것이 아니라 단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인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도 아십니다.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이 모든 다른 영들 중에서 부인의 영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두 사람과 접촉하실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그 여자와 말씀하시려고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물에 왔던 그 여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부인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알게 해 주신다면,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이기 위해... 재정 문제일 수도 있고, 가정 문제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그분은 아십니다. 그래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부인은 우선 신경에 문제가 있습니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부인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폐에 문제가 있고 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악성입니다. 맞습니다. 악성입니다. 또 오순절교에 관해 무엇인가 혼란스러워하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장로교에 관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또 이곳 사람이 아니십니다. 여기서 북쪽에 있는 다른 지방에서 오셨습니다. 도시인데, 철자가 보입니다. R-i-c...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자매가 건강하게 돌아가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부인? 믿으십니까?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계시해 주시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환상이 제게서 떠나 버립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지금부터 호명을 받으실 때까지 움직이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다른 분들을 위해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부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여기 오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여자이며, 여기 있지 않습니다. 부인의 인척인 자매분입니다. 암에 걸려 죽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지고 오신 그 손수건을 가서 그분 위에 놓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살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부인을 데려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저는 부인과 모르는 사이이며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시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신경이 몹시 예민합니다. 괴롭고 불안한 신경 증세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때문에 몹시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맞습니다. 신경 문제로 고통받고 계시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자이고, 그 남자는 병원에 있습니다. 정신적인 문제, 신경성 정신 문제입니다. 그분은 부인의 남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심을 믿으십시오. 남편은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제가 부인이나 남편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으십니까? 아멘. 그러면 가십시오.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선생님, 믿으십니까? 저는 선생님과 모르는 사이이며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아십니다. 젊은이, 어떻습니까? 믿고 있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든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직장에 문제가 있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직장에 혹이 있습니다. 방석이나 패드 같은 것 위에 앉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영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사실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르고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지 않습니까? 또 이곳 사람이 아니십니다. 동쪽에서 이쪽으로 오셨습니다. 서쪽으로 오셔서 여기에 이르셨습니다. 샬럿이라는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이름은 찰스이고, 성은 프루잇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여기 서 계심을 믿으십니까? 선생님을 아시는 분이 그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프루잇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오십시오, 선생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둘을 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문제는 목에 있습니다. 의사가 검사해 보고 목에 작은 주머니 같은 것들, 아니 작은 것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어 왔습니다. 수술이 두려우신 겁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그분의 임재 앞에 서 계신 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선생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안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분을 받아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제가 안수한 것은 선생님이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말합시다.
오십시오. 믿으십니까? 다음에 일어서실 때는 그렇게 일어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등이 아팠습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단상에서 내려가십시오. 등의 문제가 떠나고 건강해지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제가 손을 얹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오십시오, 부인. 제가 생각을 읽고 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자,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부인, 그저 접촉할 수 있도록 제 손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제가 이쪽을 보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이 환자분 말입니다. 부인은 여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부인과 질환입니다. 그렇다면 제 손에서 손을 떼어 회중을 향해 들어 보십시오. 자, 이것이 생각을 읽는 것입니까? 거기서 분비물이 나오는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난소에 농양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으실 것입니다.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고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고 말합시다. 믿으십니까?
바로 저 줄 끝에 계신 형제님, 뼈에 병이 있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예, 바로 뒤에 앉아 있는 아내는 당뇨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구원합니다. 아멘. 부인, 여기 올라오기 전에 이미 나으셨다고 제가 말씀드린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돌아가십시오. 이미 나으셨습니다. 아멘. 믿으면서 오십시오. 조금 전에 제가 이쪽으로 돌아서서 저 부인에게 여성 질환에 관해 말했을 때, 제 앞에 나타난 분은 부인이었습니다. 부인에게도 여성 질환, 부인과 질환이 있었습니다. 이미 나으셨습니다. 그러니 계속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예수님은 심장병을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모든 것을... 좋습니다. 치유를 받고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해지십시오.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선생님도 등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내부 장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누워 지내셨고, 이곳에 오려고 방금 병상에서 일어나 그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셨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계시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그 낡은 지팡이나 목발을 저 밑에 던져 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아시겠죠?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분과 접촉하신 것입니다. 간에 문제가 있지요? 제가 그분의 선지자인 것을 믿으십니까? 조금 전에 접촉하려고 몸을 돌렸을 때... 그때 선생님과 접촉했지만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잠깐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어서 계속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선생님도 이곳 사람이 아니십니다. 큰 도시에서 오셨는데, 큰 강 한쪽에 도시가 있고 반대쪽에도 또 하나의 큰 도시가 있으며, 다리들이 가로질러 놓여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주 큰 어떤 곳을 지나가고 계시는데, 거기에는 높은 탑이 있고 무슨 이름인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언덕을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곳은 큰 강 가까이에 있습니다. 오하이오강입니다. 그곳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입니다. 선생님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여기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일어서십시오. 치유받아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이미 나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믿고 계십니까?
부비동 질환이 하나님께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신경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부비동 질환과 신경 문제, 또 몹시 불안해하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제가 생각을 읽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제가 그분의 선지자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을 증언하도록 회중 앞에서 일어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건강해지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기 계신 누구든 이쪽을 바라보고 믿어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이 무리 전체가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더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참됩니다. 여러분 모두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늘 아버지,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기 있는 모든 질병에 정죄를 내립니다. 하나님, 모든 악한 영과 모든 불신을 내쫓아 주시고 이들을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매님도 가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으십시오. 믿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그러면 일어서십시오.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일어서십시오. 일어서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