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머리를 숙이고 왕들의 왕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이프 공백] 예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함께 모여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경배할 수 있는 이 큰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신 구속의 사랑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을 떠나 소외되어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던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여 아버지께로 되돌려 놓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사랑스러우신 분께서 사랑스럽지 못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그토록 가까이 이끄셔서 하나님의 아들딸들로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줄 압니다.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그때에는 더 이상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도록 도와주옵소서. [테이프 공백]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찬송하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다시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사랑하는 복되신 구주를 경배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오하이오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목사님, 리 베일 박사님이 계시면 무대 뒤에 있는 제 아들 빌리 폴을 바로 만나 주시겠습니까? 베일 박사님, 부탁드립니다. 이 웅장한 케이들 태버내클에서 열리는 이 아름다운 집회도 오늘 밤이 지나면 하룻밤만 남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함께 모여 주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문이 열린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이 큰 대집회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크나큰 복을 베풀고 계신다고 느낍니다. 저를 이 대집회에 초대하여 한몫을 맡겨 주시고, 주 예수님의 피로 사신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실제 피 두 방울을 쟁반에 담아 손에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 보았습니다. 쏟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걸을까요. 그런데 오늘 밤 제 앞에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실제 피 두 방울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피로 사신 사람들이 제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분의 피로 사신 여러분께 무슨 말을 하는지 매우 조심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을 더욱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세상을, 전에 케이들 선생님이 이 태버내클에서 말씀하시던 대로, 더 좋은 곳으로... 바른 일을 하기는 더 쉽고 그릇된 일을 하기는 더 어려운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대략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 형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분이 더 이상 그릇된 일이 없는 곳, 영광 가운데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나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역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전에 포드 선생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신사입니다. 인디애나폴리스에 이런 곳이 있어서 참 기쁩니다.
자, 오늘 밤 우리는 이 복된 옛 성경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실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이것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ABC... 성경의 ABC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Always Believe Christ”,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ABC입니다. 어젯밤에는 아브라함에 관해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제 본문을 향해 어느 정도 나아갔는데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마저 끝내고 조금 더 일찍 마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내일 밤에는, 간절함이 대단할 것이므로... 내일 밤이 이 대집회의 마지막 밤입니다. 보통 그날 밤에는 다른 어느 날 밤보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절박함과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치유를 받으려는 분들은 간절히 매달릴 때가 많습니다. 바로 지금 믿음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짝 다가옵니다. 그러면 보통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큰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병든 사람이나 연약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도록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내일 밤 그것을 위해 저와 함께 하나님을 붙들어 주시겠습니까? 저는 그분께서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얼마 전 어떤 분과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학자였고, 저는 전혀 모르는 말들도 쓰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은 믿습니다. 하지만 신유를 가르치시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유를 속죄 안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더니 “속죄에 근거하여 신유를 전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구속에 속한 모든 복은 속죄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다면 신유가 속죄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꼭 듣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이사야가 그리스도에 관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등등의 말씀을 한 것을 전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그 말씀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을 제가 증명하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으로 증명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막 학교를 졸업한 분이고 저는 7학년밖에 다니지 못했으므로, 그런 지식으로 겨루면 제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믿어 온 분을 압니다. 주 예수님 말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치유자이심을 압니다. 저를 고쳐 주셨으니까요. 저는 눈이 멀었었지만 이제는 봅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치유자이심을 압니다. 저는 그분께서 수만 명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치유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고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행하셨습니다. 구속에 속한 모든 복은 이미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바라보고 살면 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고치거나 치유를 가져다주는 것, 또는 하나님께서 어떤 치유를 가져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완성하신 일을 여러분이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치유를 위한 일이 갈보리에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 마태복음 8장에...” 제 기억에는 8장이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성경은 그분께서 자기에게 데려온 사람들을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 곧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등등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형제님은 그 말씀을 거기에 적용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속죄가 이루어지기 1년 6개월 전의 일인데 어떻게 그것이 속죄일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으셨고 피도 아직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속죄가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기 전이, 효력을 발휘한 뒤보다 더 큰 권능을 지녔다는 말이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약 1년 6개월 전이었습니다. 피를 아직 흘리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그것을 속죄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분은 어려운 말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제게는 통역의 은사가 없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쉬운 ‘킹제임스’ 말로 해 주시면 더 잘 알아듣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 우리...” 하고 말했는데 그분이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보십시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신유가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시겠습니까?” 마가복음 11장 24절은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으라”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아, 예, 저는...” 하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말을 잘못하신 것입니다. “말씀 안에는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라고 하셨고,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어떻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마가복음 16장으로 빠져나가려 하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형제님을 마가복음 11장으로 데려가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예, 말씀 안에는 있지만 속죄 안에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말씀이 속죄보다 위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옛날에 모든 법과 규칙을 정한 왕이 있었습니다. 모든 법과 형벌을 정해 놓았지요. 그는 공정한 사람이었고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노예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재판석에서 왕이 말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대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겠소. 내 법에 이 범죄에 대한 형벌로 그대가 죽어야 한다고 여기 분명히 적혀 있소. 나는 공정한 사람이오. 내 말을 뒤집을 수는 없소. 여기... 내 법은 그대가 죽어야 한다고 하오. 그러니 그대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오.’ 그러자 그 불쌍한 사람이 떨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목숨을 거두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 주면 좋겠소?’ 그는 ‘물 한 잔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물잔을 받았지만 제대로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잘릴 것을 알고 덜덜 떨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 물을 다 마시기 전까지는 그대의 목숨을 거두지 않겠소.’ 그 노예는 물을 땅에 쏟아 버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왕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의 말이 그의 법보다 위에 있지 않습니까? 그가 공정하다면 자기 말을 지켜야 합니다.” 그분은 “그것은 왕의 실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신유를 말씀에는 넣으시고 속죄에는 넣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도 실수를 하셨어야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께는 실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얼마 전 어떤 부인이 아들을 목회자로 공부시키려고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몹시 아파져서 학교에 연락하여 아들에게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폐렴이 가장 심한 단계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연락만 오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가 괜찮아지셨다고 하기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온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심하게 앓으시다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으셨어요? 어느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셨어요?” 어머니는 “할렐루야! 예수님이시지”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 하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있잖니...? 모퉁이를 돌면 있는 그 작은 선교 교회 알지?” 아들은 “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거기 다니는 부인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단다. 나를 찾아오라는 인도를 받았다고 하더구나. 내 의사는 나를 포기한 상태였는데, 그 부인이 ‘우리 교회에서는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요. 기름을 바르고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요. 우리 목사님을 모셔 와서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 하더구나.”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했지. 그랬더니 가서 목사님을 모셔 왔어. 그분이 성경 마가복음 16장에서,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는 말씀을 읽어 주셨단다. 그 목사님이 성경에서 그 말씀을 읽어 주시고 내게 안수하셨더니 내가 나았어.” 아들은 말했습니다. “아, 말도 안 돼요, 어머니. 말도 안 돼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만 그런 것을 믿어요. 신학교에서 배우기로는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에요.” 어머니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그러세요? 꼭 그 교회 사람들처럼 행동하시네요.” 어머니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왜 그러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하나님께서 영감받지 않은 말씀으로 나를 고치실 수 있다면, 정말 영감받은 말씀으로는 무엇을 하실 수 있겠니?”라고 했습니다. 빌리 선데이가 전에 말했듯이, “그 주장은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도 더 묽습니다.” 그러니 신유를 반대하는 주장은 아주 빈약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조금 늦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벌써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푸딩이 어떤지는 먹어 보면 아는 법입니다.”
자, 이 복된 옛 성경, 이 오래된 교과서에서 오늘 밤에도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밤에는 일찍 오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밤에 긴 기도 줄을 위해, 가능하면 청년들이 기도 카드 같은 것들을 일찍 나누어 드리게 하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아브라함이 올라갔던 대목에서 마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관여할 여지를 없애셨습니다. 그분의 언약이 전적으로... 거기에 아무런 조건도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구원하시겠다고 무조건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젯밤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씨이며 같은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겉으로 유대인이 아니라 속으로 유대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자,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씨들”이 아니라 “씨”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여럿 있었지만, 약속은 사라를 통해 태어난 단 한 아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민족들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면서 믿었습니다. 그래도 소망을 품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실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젊은 형제님, 오늘 밤 그 약속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젊은이, 갈보리가 형제님 앞에 있습니다. 생각을 가리는 그늘을 걷어 내고 그곳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무언가가 여기 마음속에 닻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그 무엇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형제님은 그 휠체어를 밀면서 건물을 나가 케이들 태버내클 주위를 돌아, 형제님이 오신 곳에서도 밀고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장병으로 죽어 가는 여러분, 그것은 가장 무서운 사망 원인입니다. 암은 의사들도 거의 손쓸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으니, 암 수술이 단 한 번이라도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것을 “4차원의 질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완치가 있습니다. 의약품은 치료 수단이지만, 완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믿었다면, 아브라함의 씨인 우리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택하심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택하심뿐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여러분은 그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면...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며, 결코 그를 내쫓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사랑합니다. 제가 그 말씀을 신뢰하고 믿으며, 그것이 진리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세계를 다니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 이를테면 두 교회를 보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뿐이지만, 제가 말하는 뜻은 이렇습니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조심스럽게 드립니다만, 자신들이 믿는 내용에 대한 믿음은 별로 없습니다. 다음 부류는 오순절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많지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은행에 돈이 있으면서도 수표를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을 하나로 합칠 수만 있다면 다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순절의 믿음과 근본주의의 교리를 함께 갖게 할 수만 있다면, 또는 근본주의의 교리와 오순절의 믿음을 함께 갖게 할 수만 있다면, 천년왕국이 당장 시작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여러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 회중의 80퍼센트는 오순절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분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환호하면서 기쁨을 다 써 버리고, 환호하면서 믿음을 다 써 버립니다. 그 믿음을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진지하게 두고, 그것이 여러분을 기쁘게 해 주는 것임을 아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구속을 주는 것임을 아십시오. 여러분은 그 구속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며, 마땅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 믿음을 저 갈보리에 두고 하나님을 붙들며 “주님,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제 안에는 이것을 의심하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혼과 몸과 영의 삼위일체입니다. 몇 년 전 과학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그러하다”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여러분의 몸이 빛으로 가득하다고 했을 때, 그 과학자들은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그 불신자들 말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몸이 빛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증명하십니다. 엑스레이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것은 엑스레이의 빛이 아니라 여러분 몸 안에 있는 자체적인 빛 측정기입니다. 엑스레이에는 빛이 없습니다. 엑스레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여러분의 빛 측정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몸 안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빛의 세포인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 보십시오. 약 2년 전, 제가 시카고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과학이 입증한 것이 있는데... 약 1년 6개월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문에 기사가 하나 났습니다. 보즈 선생님의 딸과 제가 그것을 읽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입증하기를,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심장 안에는 아주 작은 방, 아주 조그만 방이 있는데, 그 안에는 혈구조차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혼의 [불명확한 단어]라고 합니다. 혼은 심장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자, 지적인 믿음이란... 오늘날 우리의 부흥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빌리 그래함, 잭 슐러, 그리고 많은 위대한 분들, 오럴 로버츠, 현장에서 일하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이 이 나라를 구석구석 누볐습니다. 천 명의 미국인을 회심시키고도 남을 만큼... 아니, 미국 같은 나라 천 개를 회심시키고도 남을 만큼 제단으로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을 지적인 믿음에까지만 이끌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나아가서 믿음이 지적인 영역에서 혼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면, 그 믿음은 지속될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회심한 사람들의 80퍼센트나 90퍼센트가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떠나 버리는 이유는, 그들에게 지적인 이해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체험이 되면, 영원토록 닻을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다음 부흥회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여러분이 제 말을 듣고 계신지 확인해 보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언제까지 “봉인되었느니라”입니까? [회중이 “너희의 구속의 날까지”라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봉인을 깨서는 안 됩니다. 건물이 완전히... 아니, 화차라고 해야겠군요. 화차에 짐을 다 싣고 봉인을 붙여 놓으면, 절대로 그 봉인에 손대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마음속의 모든 불신을 깨끗이 씻어 내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믿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를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하여 구속의 날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크게 소홀히 하는 한 가지, 우리가 많이 갖추지 못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빈혈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상태가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증거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될 만큼 충분한 구원을 얻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선량한 감리교 여러분, 그것은 꽤 좋은 것입니다. 성화되고 환호하기에 충분한 믿음을 얻었을 때, 나사렛교회, 필그림 성결교회, 감리교 여러분은 “영광! 우리가 얻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환호한 뒤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을 많이 했습니다. 믿음에서 물러나 다시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오순절 여러분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형제님, 이제 우리가 얻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부드러움과 긍휼입니다. 지식이 있다 해도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설교자들을 원하는 만큼 교육하십시오. 지식이 있다 해도 사라질 것입니다. 예언이 있다 해도 없어질 것입니다. 방언이 있다 해도 그칠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것, 곧 사랑이 오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밤에는 시간이 많습니다. 제 본문은 내일 밤에야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제 삶의 내면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알고 싶으십니까?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듣는 것, 그저 듣기 좋은 무언가를... 형제 여러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감정에 북받치려 해도 그것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이 있는 것은 좋습니다. 감정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신앙에 감정이 조금도 없다면 차라리 묻어 버리십시오. 감정이 있는 신앙을 얻으십시오. 하지만 형제님, 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감정이 신성한 성령의 사랑으로 봉인되지 않았다면,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성과를 거두었는지 아십니까? 제가 그 이유로 꼽는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무엇이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입니다.
뒤에 있는 책을 읽어 보신 분, 제 책을 읽고 계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 책을 읽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에 있는 주의 천사의 사진도 보셨겠지요. 자, 보십시오. 모두 과학적으로... 책의 앞부분을 보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제가 강단에 서 있던 어느 날 밤,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강단으로 뛰어 올라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읽으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지금처럼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수천 명의 회중 사이로 달려왔습니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강단으로 달려왔습니다. 저는 누가 아파서 저를 데리러 오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제 뒤에는 목회자들이 150명에서 200명쯤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보니 그 사람이 그렇게 달려 올라왔고, 설교자들은 파리 떼처럼 흩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그날 한 설교자를 때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신병원을 나온 사람이었는데, 그 설교자의 턱뼈와 쇄골을 부러뜨렸습니다. 경찰이 그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가 강단에서... 저를 향해 곧장 달려오더니 거위처럼 크게 씩씩거렸습니다. 가슴을 쑥 내밀었고 팔은 아주 굵었습니다. 당시 저는 128파운드였고 그는 약 250파운드였습니다. 키는 6피트쯤, 아니 그보다 더 컸습니다. 6피트 4인치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위선자! 이 음흉한 뱀 같은 놈! 여기 서서 하나님의 종인 척하고 있구나. 내가 바로 이 강단에서 너를 갈기갈기 찢어 놓겠다!” 상대가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며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그 조그만 몸뚱이를 쳐서 저 회중 너머로 날려 버리겠다. 떨어질 때에는 몸이 산산조각 나 있을 거다.” 저는 그가 협박한 대로 할 힘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설교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보니 경찰관 두 사람이 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두 사람 모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의 어머니는 전날 밤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훌륭한 장로교 부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달려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이것은 혈과 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 작은 체구의 경찰관들은 물러나서 잠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하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침 뱉는 소리를 흉내 낸다.] 제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이 음흉한 뱀 같은 놈.” 그리고 “오늘 밤 네 몸의 뼈마디를 모조리 부러뜨리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줄 알았지만, 제가 아니었습니다. 환상에서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영에게 도전했으므로 오늘 밤 너는 내 발 위에 쓰러질 것이다.” 양쪽에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이제 어느 것이 맞는지 드러나야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네 발 위에 쓰러진다고? 이 위선자! 내가 누구의 발 위에 쓰러지는지 보여 주겠다.” 그러고는 팔을 뒤로 젖히고 저를 향해 힘껏 달려들어 저를 치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탄아, 그 사람에게서 나와라”라고 했습니다. 팔을 치켜든 채 그가 “음, 음!” 하더니 이렇게 몸을 돌리며 제 발 위로 쓰러졌습니다. 저를 꼼짝 못 하게 누르고 있어서 경찰들이 그를 굴려 제 발에서 치워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이 죽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는 그 영을 숭배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그 사람을 미워했습니까?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런 상태에 처한 불쌍한 인간이었습니다. 말하고 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마귀였습니다. 그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귀가 도전했고, 성령께서 그 도전을 맞받으셨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휠체어와 간이침대와 들것들이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어땠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이 말하는 동안에는, 옛말처럼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군대 귀신들이 자기들의 우두머리가 죽임을 당한 것을 보자, 병든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습니다. 간이침대가 모두 비었고 휠체어가 모두 비었습니다. 그 무리 전체가 한꺼번에 치유되어 걸어 나갔습니다. 아시겠죠? 증오의 힘과 사랑의 힘이 맞부딪쳤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증오를 이깁니다.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자, 여러분은 어쩌면... 이 말을 듣고 저를 싫어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제게 있었던 일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브래넘 형제님은 광신자야”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말씀하실 테니, 조금 더 이야기해도 되겠지요. 어느 날 이곳 인디애나의 버크 씨 농장에 갔습니다. 제가 사는 제퍼슨빌 쪽입니다. 흑인 남자 한 사람을 죽인 커다란 황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소를 헨리빌 근처 그곳에 팔아넘겼습니다. 아주 긴 뿔을 가진 커다란 건지종 황소였습니다.
제가 침례교 목사였을 때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야생동물 보호 감시원으로 일했습니다. 순찰을 돌곤 했습니다. 저는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형제님이 한번은 자기를 위해 헌금을 거두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러면 형제님은 다음 주에 굶으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제 교회에서 헌금을 거두겠다고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살림이 도무지 꾸려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물론 있으셨겠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밤에는 헌금을 거둘 거요.” 아내가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러 가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라가서... 사람들이 주려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이면 무엇이든 제게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었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일을 못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제가...” 우리에게는 헌금 접시도 없었습니다. “제가... 형편이 좀 어려워져서 오늘 밤에는 헌금을 거두려고 합니다. 누가 제 모자를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연세 든 집사님 한 분이 제 모자를 가지러 걸어갔습니다. 제가 아래를 보니,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 앞치마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안쪽에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손을 넣어 그런 것을 꺼냈습니다... 대공황 때였으니 아시겠지요. 위에 딸깍 잠그는 쇠장식이 달린 작은 낡은 지갑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5센트짜리 동전들을 뒤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아,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 그냥 농담이었습니다. 정말 그러려던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헌금을 거두는 데 가장 가까이 갔던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라이언 선생님이라는 나이 든 분이 미시간주 도와지액에서 내려와 계셨습니다. 머리가 긴 분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이 그 자전거를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10센트짜리 페인트 한 통을 사서 칠한 다음 5달러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헌금을 거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순찰 중이었습니다. 자연보호 업무를 하던 때였습니다. 개울 쪽에 갔다가, 저 건너편에 사는 한 형제가 아파서 저를 불러 기도해 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덕을 넘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들판에 덤불이 조금 있었습니다. 폭이 500야드쯤, 아니 그보다 더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쯤 갔을 때, 벌떡 일어선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그 흑인 남자를 죽였던 황소였습니다. 그 소는 제게서 30피트에서 40피트쯤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암소 몇 마리와 함께 누워 있다가 일어나 콧김을 뿜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 황소를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총을 갖고 있어야 했지만 그때는 없었습니다. 울타리 쪽을 돌아보았는데, 달려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올라갈 나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제 끝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소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십니까?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바라보고 있자 그 황소는 고개를 숙여 뿔을 땅에 박고 흙을 등 뒤로 퍼 올리더니, 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황소를 미워하기는커녕 총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소를 사랑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이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그 녀석을 사랑했습니다. “불쌍한 녀석. 내가 네 자리에 들어왔구나. 네 영역에 들어왔어. 자고 있었는데 내가 깨워서 성가시게 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그 소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아,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러 가는 길이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니 네가 나를 해쳐서는 안 된다. 너를 방해해서 미안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누워라.” 그 황소는... 저는 그날 밤 그 사람이나 여기 앉아 계신 형제님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황소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황소는 저를 향해 곧장 달려와서 약 10피트 앞까지 왔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제 바로 가까이 와서는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기운이 쭉 빠진 채 이쪽저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바라보면서 “불쌍한 녀석”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는 돌아서서 걸어가더니 누웠습니다. 저는 그 옆으로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사랑은 무엇이든 이깁니다. “방언이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예언이 있다 해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오면 모든 것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러분, 바로 이 점에서 여러분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에 그렇게 힘쓰지 말고, 그 한 가지 참된 은사인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더 나아질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한 가지 더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기도를 받으러 저희 집에 오십니다. 한번은 앞마당의 풀을 깎으려고 했습니다. 두어 바퀴를 깎고 나면 뛰어가서... 아니, 기도받으러 온 사람들을 맞아야 했습니다. 돌아가서 작업복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집 안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뒷마당을 다 깎기도 전에 앞마당 풀이 다시 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뒷마당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셔츠를 벗었습니다. 잔디 깎는 기계를 밀면서 있는 힘껏 풀을 깎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퉁이에 커다란 말벌집이 하나 매달려 있었는데, 제가 울타리를 들이받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을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제가 지금 이 거룩한 강단에 서서 말씀드립니다. 순식간에 온몸이 말벌로 뒤덮였습니다. 그 말벌들을 미워하는 대신 저는 생각했습니다. “불쌍한 작은 녀석들. 내가 방해했구나. 저기는 저들의 집이야. 하나님께서 저들을 만드셨어. 저기는 저들의 집이야.”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피조물들아, 너희를 방해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종이고 지금 바쁘단다. 하나님의 아픈 자녀들이 기도를 받으러 이곳에 많이 오고 있다. 서둘러야 해.” 저는 잔디 깎는 기계를 앞뒤로 계속 밀었습니다. 셔츠도 입지 않은 제 주위에서 그 말벌들이 윙윙거렸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벌들입니다. 한 마리만 쏘아도 쓰러뜨릴 만큼 아주 컸습니다. 그 말벌들이 제 주위를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그저 그 불쌍한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풀을 깎았습니다. 그러자 말벌들이 빙 돌더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일렬로 곧장 그 벌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라.” 그러면 믿음이 그 사랑과 함께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믿음도 더 많이 쌓일 것입니다. 어젯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흔 살 된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젖가슴이신 엘 샤다이로 나타나신 대목에서 마쳤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엘 샤다이가 되어 주신 뒤를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든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믿으며 약속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영생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붙잡고 놓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엘 샤다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아기는 그저 어머니의 젖가슴을 붙들고, 젖을 빨아 어머니의 힘을 자기 몸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만족합니다. 어머니의 힘을 자기 몸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아기가 약하고 보채고 기운이 없으면 어머니의 힘을 빨아들입니다. 자,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젖가슴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힘을 빨아들여 회복합니다. 그 말씀을 계속 되풀이하십시오.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아, 그 말씀을 믿으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는지요.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때... 롯이 아브라함에게서 떨어져 나갔다가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믿음에서 물러난 사람과 죄인을 찾아 나서시는 모습입니다. 왕들, 곧 원수들이 와서 롯과 그의 아내를 사로잡고 소돔의 왕들을 사로잡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원수에게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자마자, 보십시오, 자기 종들을 모두 모아 원수를 추격했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로잡고 롯을 되찾아 왔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우리를 얼마나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까. 원수가 우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마귀를 추격하셔서, 마침내 그를 정복하고 우리를 무사히 되찾아 오셨습니다. 구원을 참으로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시간이 넉넉하면 좋겠습니다. 이 부흥회가 두 주쯤 계속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 파고들면서 믿음을 가져다줄 수 있을 텐데요. 약 1만 2천 명을 수용하는 큰 천막이 오고 있습니다. 그 천막을 세우고 한 번에 4주나 6주씩 머무르면서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제 그 뒤에 있었던 또 한 가지를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뒤입니다. 이런 중요한 대목들을 많이 건너뛰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다시 보게 되면, 다음으로 아브라함이 메마른 땅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일이 좋으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견딜 수 있는 은혜는 약속하셨습니다. 꽃이 깔린 편안한 침대에 태워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욥의 인내를 보십시오. 제자들을 보십시오. 여러 시대에 걸쳐 남녀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고난을 받았는지 보십시오. 여기 아브라함이 자기 떡갈나무 아래 메마른 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작은 장막... 롯이 좋은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가축 떼의 상태도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아브라함이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보니, 나무 가까이에 세 남자가 그의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나아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주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거든 잠깐 들렀다 가십시오. 떡갈나무 아래, 나무 그늘에 앉으십시오. 오늘은 덥습니다.”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빵도 조금 구워 드리겠습니다. 기운을 차리신 다음 길을 가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는 방법이 이렇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의 무언가가 그들이 보통 사람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중 한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두 천사였습니다. 다른 두 사람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재빨리 장막 안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사라, 가루 통에 가서 가루를 좀 가져다가 얼른 반죽하시오... 아니, 체로 치시오. 그리고 누룩 없는 빵을 얼른 구우시오.” 그는 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자기가 가진 가장 살진 송아지를 골랐습니다. 우유를 얼른 휘저어 버터를 만들고, 송아지를 잡아 요리했습니다. 그리고 뼈가 붙은 송아지 고기와 옥수수빵, 버터와 버터밀크를 가져다가 하나님과 두 천사께서 드시도록 차려 놓았습니다. 아멘. 아, 지금 경건한 마음이 솟아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 생각만 해도 마음속의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 가져다가 그들이 드시는 동안 파리를 쫓아 드렸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집에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방충망 문이 없던 때, 아니 그것을 살 형편이 안 되던 때에, 나뭇가지를 파리 쫓는 데 썼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천사들과 하나님께서 드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아브라함아,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맘때쯤, 생명을 따라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거의 백 살이었습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자, 바로 이 대목입니다. 보십시오. 장막 안에 있던 사라가 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등 뒤, 장막 안에서 말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그곳에 앉아 송아지 고기를 드시고, 소에서 나온 우유와 버터를 마시고, 옥수수빵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등 뒤에 있는 사라를 두고 “사라가 왜 웃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겠습니까? 텔레파시라고 하겠습니까? 사라의 생각을 읽은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사라가 겁을 먹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아멘. 놀랍지 않습니까? 말씀은 참으로 실제적이고 단순합니다. 식사를 마치신 뒤 그분께서는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에게 알려 주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의 죄가 이미 하늘에 이르렀다고 그에게 밝히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컸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곳을 멸하시려고 내려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천사들은 계속 길을 갔습니다.
얼마 전 한 설교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대문자로 L-O-R-D라고 되어 있습니다. 통치권을 지니신 분, 하늘과 땅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님은 자기 신학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우리는 외침으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요르단을 건넌 여호수아의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 에녹과 같은 믿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에녹은 어느 날 오후 하나님과 잠깐 산책을 나갔다가, 그저 땅에 싫증이 나서 그분과 함께 그대로 본향까지 걸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그렇다면 몸은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칼슘 조금, 칼륨 성분 조금... 얼마 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예술을 좋아합니다. 그곳 박물관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몸무게가 150파운드인 남자의 몸을 성분별로 분석하면 그 값어치가 84센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몸 안에는 닭 둥지에 뿌릴 정도의 석회가 들어 있고, 또 아시다시피 그런 몇 가지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청년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존, 우리 값어치가 별로 없군, 그렇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84센트짜리 몸에 500달러짜리 밍크코트를 걸치고, 비가 오면 콧구멍에 물이 들어가 익사할 정도로 코를 치켜들고 거리를 걸어갑니다. 큰 교회에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84센트짜리를 애지중지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작은 재 한 줌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만 개의 세상만큼 귀한 그 혼 속에는 아무것이나 집어넣습니다. 그 점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은 혼에 대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84센트, 그것이 인간의 몸값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손을 뻗어 원자 한 줌, 칼슘 한 줌, 우주의 빛 한 줌을 가져다가 “후!” 하고 함께 불어 몸 셋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두 천사가 그 몸 안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그렇다면 부활이 무엇이 그리 신비로운 일입니까? 온 우주에서 나오실 수 있는 하나님, 태양계의 공간과 그 너머까지 가득 채우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말입니다. 아멘.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분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아신다면... 보십시오. 며칠 전 밤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내가 제게 머리가 벗겨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리카락을 한 올도 잃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럼 그 머리카락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게 생기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겠소? 거기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이 몸도 그렇게 사라져 갑니다. 언젠가는 티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원자가 그것을 이루고 있습니다. 석유 성분 하나하나, 우주의 빛 전부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실 때 그것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 죽은 자들을 불러내실 때 그것을 불멸의 상태로 돌려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아, 모든 원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것들은 모두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그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만드셨을 때, 여러분은 그분이 창조하신 것의 일부였습니다. 그러고는 그중 조금을 취하여 빚으시고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사라와 아브라함을 통해, 장차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실 어떤 일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다시 잠깐 곁길로 나가겠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과 결혼하실 때 그분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어머님, 아버님과 결혼하실 때 그분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멋지고 잘생긴 남자였지요. 어머님의 눈은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여러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분을 바라보면서 예식장 제단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결혼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아내를 바라보니 심장이 아주 빨리 뛰었습니다. 저는 차마... 제가 좀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결혼해 달라는 말을 못 해서 편지로 청혼했는데, 아내가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는 결혼할 때 아내가 얼마나 예뻤는지 기억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어느 날 아침 깨어나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그 예쁜 눈 밑에 주름이 생겼구려.” “여보, 당신 머리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네요.”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붙잡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그림을 그리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저들을 보아라. 아름답지 않으냐? 내가 손수 만든 작품이다. 이제 죽음아, 오너라. 몸은 네가 가져가도 된다.”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는 노인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나이가 많아 연로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증명하신 것, 아브라함과 사라를 위해 행하신 것을 아브라함의 모든 씨를 위해서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똑똑한 학자들이 놓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이것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숨기고, 배우려는 이런 아기들에게 드러냈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저 아기가 되십시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지금까지 알았던 모든 것을 잊으십시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아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아내가 제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빌리, 오늘 밤 저는 여기 있어요.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아내가 종이에 적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주 깊이 사랑한다면, 학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지만 여러분은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읽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써 보내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읽으려면 그저 단순해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잠시 보십시오. 언젠가 다시 오게 되면 이 사랑의 편지를 가지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무슨 일을 해 주셨는지 아십니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고,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다시 젊은 남녀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는 아브라함이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이렇게 말했으리라고 상상해 봅니다. “사라, 이게 웬일이오? 당신 얼굴에서 주름이 없어지고 있구려.” 사라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 보세요. 이게 웬일이에요? 당신의 굽은 어깨가 펴지고 있어요.” 그들은 젊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그곳을 떠나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먼지 보십시오. 약 300마일입니다. 나이 많은 노인과 머리에 작은 모자를 쓴 할머니가 가기에는 얼마나 먼 길입니까. 길을 따라 부들부들 떨며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블레셋 땅에 도착했을 때 아비멜렉 왕이 사랑할 여인을 찾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블레셋 처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팡이를 짚고 오는 할머니 사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는 “내가 기다리던 여인이 바로 저 여자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 당신은 보기에 참 아름답소”라고 했습니다. 백 살인 아내에게 말입니다. 아시겠죠?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사라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젊은 여자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자, 성경을 읽는 여러분은 이것을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그 여자가 백 살이었다면, 거의 백 살이었다면 말입니다. 줄곧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 안에 무엇인가를 창조하셔야 했습니다. 태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여기에는 남녀가 함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여자가 아기를 낳으려면, 아기가 태어나는 그때를 견디려면 새 심장이 있어야 했습니다. 백 살 된 여자의 그 심장으로는 그 과정을 견디며 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젖을 내는 관도 없었습니다. 젖병으로 아기를 키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아기를 젖병으로 키워야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본래의 방법으로 키워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사실임을 압니다. 그것은 가장 큰, 공산주의적인... 아니, 그것은 최악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한 일 가운데 가장 더러운 일입니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 말입니다. 그런 여자에 대한 제 생각은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아내가 담배를 피우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에 대한 제 생각도 분명합니다. 누가 주인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새겨 두십시오. 박수를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남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수치입니다... 자기 여자들보다 더 여자처럼 나약해졌으니까요. 도대체 여러분 집에서는 누가 주인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라는 아름다... 자매님,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저는 누구 얼굴이 붉어지는지 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아주 높은 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조금 따가울지 몰라도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라는 다시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바꾸셨습니다. 다시 젊은 여자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도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사라는 서른 살쯤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들에게 보여 주신 일로, 언젠가 여러분과 저를 위해 무엇을 하실지 증명하셨습니다. 아멘.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존재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없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붙잡으십시오! 놓지 마십시오! 천국을 향해 방향을 정하십시오. 어떤 과학 서적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분, 갈보리를 바라보십시오. 보십시오. 갈보리를 바라보십시오. 잠깐 보십시오. 젊은 여자였느냐고요? 분명히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젊은 남자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들은 이삭을 세상에 낳았습니다. 이삭이 마흔다섯 살의 성인이 되었을 때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 뒤 아브라함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제 기억으로는 그 뒤에 딸들 외에도 아들을 일곱 명인가 아홉 명인가 낳았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젊은 남자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렇게 말했을 때, 한참 세월이 흘렀을 때, 그가 145세가 되기 전, 아직 여든 살일 때 그는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자, 그 어린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오랜 세월 붙들고 있은 뒤에 하나님께서 입증해 주신 것입니다. 아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언젠가 저 케이들 태버내클 사람들에게 내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또 네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겠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아이 안에서, 이삭에게서 씨를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삭을 저곳으로 데려가 죽여라.” 아브라함의 유일한 소망은 이삭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가엾은 사라에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훌륭한 열두 살, 열네 살짜리 어린아들을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곱슬머리가 어깨 주위로 늘어진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은 다시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가엾은 아이를 데려가...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모두 모아 노새에 싣고 종 두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멀리 바라보니, 이삭을 희생물로 드리러 가야 할 산이 보였습니다. 보통 사람은 어쨌든 하루에 25마일은 걸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루에 30마일을 걸은 날도 많습니다. 요즘은 대개 어디든 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 시절에는 걷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러니 사흘 길을 갔다면 적어도 75마일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멀리 바라보니 산이 보였습니다. 아마 25마일쯤 더 가야 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1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 창세기 22장을 참 좋아합니다.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그가 산 가까이에 이르러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나무를 가져다가, 이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 나무를 이삭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자기는 불을 손에 들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보십시오. 저는 이것을 참 좋아합니다. 아,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리라. 나와 아이는 돌아오리라.” 영광! 그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성경은 그가 이삭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받은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그 아이가 어떻게 돌아옵니까? 죽이려고 올라가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당신과 함께 돌아오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무엇인가를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그가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걸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고치실까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걸어가십시오! “오늘 밤 어머니께 제가 구원받았다고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제가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고 다시 태어났다고 동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제가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냥 계속 가십시오! 나아가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갈보리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들은 계속 산비탈을 올라갔습니다. 어깨에 나무를 진 어린아이,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훗날 자신의 독생자를 주실 일을 그림자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자신이 하실 일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아, 저는 이것을 정말 사랑합니다. 산꼭대기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제단으로 쓸 큰 바위를 찾아 나무를 놓고 불을 피웠습니다. 어린 이삭이 “아버지” 하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말했습니다. “여기에 나무도 있고 제단도 있고 불도 있습니다. 그런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 그 늙은 족장의 가슴속에서는 마음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허리 옆에는 자기 아들의 목숨을 거둘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그것을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다. 그분께서 약속하셨다. 그분께서 약속하셨다면...” “브래넘 형제님, 제 손이 마비되어 있는데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아, 여러분의 마음 깊이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입니까? 그 믿음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게 하십시오.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보십시오. 이제 아브라함은 어린아들을 데려다가 손발을 묶습니다. 이삭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러셨듯이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이를 제단 위에 눕히고 칼을 뽑았습니다. 아마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의 작은 머리에 손을 얹고 곱슬머리를 쓸어 넘겼습니다. 칼을 이렇게 뒤로 당겼습니다. 자기 아들의 목에 칼을 찌르려고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동하려던 바로 그때, 성령께서 그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안다.” 바로 그때 그의 등 뒤 저편에서, 광야에서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할렐루야! 아, 할렐루야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들을 풀어 주고,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대신 드렸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는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그 숫양은 어디서 왔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1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숫양이 그곳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리나 사자 같은 짐승들이 먹어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곳이 물도 없는 산꼭대기였다는 점입니다. 그 숫양이 어디서 왔습니까? 여호와 이레입니다. 창조주께서 말씀으로 그 어린양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곳에 계십니다. 그 어린양은 한순간에 생겨났고 바로 다음 순간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늘 밤에도 여전히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희생물을 마련하실 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의지하여 발을 내디디며 진리라고 말할 때마다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 그것은 환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숫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제단 위에 놓고 죽였고,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숫양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것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늘 밤에도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성령의 권능과 역사가 있게 하셔서 죄인을 성도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전능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의 임재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전히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실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그런 일을 했는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예비하셨습니다.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숫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이 모든 놀라운 본보기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히브리서를 쓴 바울이 “이렇게 큰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 하나님, 오늘 밤 시간의 끝자락에 살아가는 우리가... 여호와께서 그 산에서 자신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리라”라고 소개하신 그날 이후로, 수천에 이르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성령을 예비하셨습니다. 치유를 예비하셨습니다.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기쁨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우리가 두 팔을 뻗어 갈보리의 모든 약속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끌어안을 수 있게 하옵소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머리를 숙인 채로 계십시오. 이 질문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은 여러 날 밤 이 집회에 오셨습니다. 죄인인 친구 여러분, 오늘 밤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계십니까? 이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이 그런 삶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한다면, 그분께서 여기에 계심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살며시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지금 바로 여기 제 자리에서 예수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 건물 어디에 계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누구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부드럽고 다정하게 부르고 계십니다. 모르십니까...? 어쩌면...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아침이 오기 전에 의사가 와서 “심장마비입니다. 이 여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남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밤마다 오셔서 나타나시는 이런 집회를 떠난 뒤에 말입니다... 저 뒤에 있는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 뒤의 젊은이도 보입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받습니까?”라고 하시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선생님,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의 선생님, 손이 보입니다. 거기 자매님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건물 곳곳에서 손이 올라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펴신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이여, 제게 긍휼을 베푸시고 예비해 주옵소서.” 어린 소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그래,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 손 아래에 있는 정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만, 여러분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자신의 죄를 버리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 두리번거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시도록 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기회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밤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는 바로 이곳에서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저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이제 또 누구 계십니까? 많은 분들이... 선생님, 보입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몇 분 전에는 죽어 있었지만 이제는 살아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 저는 신학을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이 말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현재형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마음을 다해 그것을 믿습니까? 아브라함처럼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의 표적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모형인 할례를 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뒤에는, 이제 성령으로 하나님의 왕국 안에 봉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아직 봉인되지 않은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해 주시지 않은 분 말입니다. 아직 다시 태어나지 못했고, 여러분이 믿음을 고백했어도 그분께서 아직 인정해 주시지 않고, 성령 곧 새로 태어남을 주시지 않은 분 말입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오늘 밤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원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수십 명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큰 자로부터 작은 자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그 모든 남녀들, 이제 막 인생의 갈림길에 선 젊은 여자들과 소년들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지금 이 주위에 있으며, 이 태버내클 안에서 가까이 서 있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셨는데도 우리가 거절했다면, 심판 날에 우리를 불리하게 증언할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는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손을 든 이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 하나님, 이제 주의 말씀에 따라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주의 말씀은 이들이 그렇게 하여 믿고 받아들이면 영존하는 생명을 얻으며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이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들을 제단 주위로 모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큰 새로움을 얻도록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속이 말끔히 씻긴 것 같습니다. 무언가가 저를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령의 거룩한 느낌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 거룩한 느낌... 저는 그것을 참 좋아합니다. 복음에는 깨끗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혼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는 막 불러 모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줄은 부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냥 바로 여기 서서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저와 함께 믿어 주시겠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어젯밤 여러분의 믿음이 자랐습니다. 제가 바로 그 말을 하자, 무언가가 제 마음을 치며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보십시오. 저기 계신 모든 분들, 저기 계신 여러분 모두를 저는 모릅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리 올라오시는 대신,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선포할 길을 예비하셨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밤 살아 계시며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붙든 아브라함을 위해 그곳에서 어린양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을 위해 창조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복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구원을 그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성령 침례도 말입니다. 치유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 잠깐만 다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자매님, 연주하시는 분이 누구시든지, 우리에게...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 찬송을 연주해 주십시오. 위대하신 의사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낙심한 마음을 기쁘게 하시려고 말씀하시네. 예수님 같은 이름은 없네. 그분의 이름이 내 죄책과 수치를 몰아내네. 오,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사랑스러우신 분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저 이 땅의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들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주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의 합당하지 못함을 눈감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합당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합당하지 못하다고 고백합니다. 심판을 구하지 않습니다. 긍휼을 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허락되기를 원합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수십 명이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려고 손을 들었다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구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어떤 일을 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의 이 주권적인 역사 안에서, 주님의 무익한 종인 제가... 주님, 겸손해 보이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데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위선자일 것입니다. 저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밤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사람들이 우물가의 여인처럼 충분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주의 종인 제가 주님의 부활에 관해 한 말이 참되다는 것을 이 회중에게 증명하시려고, 오늘 밤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해 주옵소서. 하나님, 사람들이 제 가까이에 오지 않아도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주님,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구합니다. 아멘.
이것은 특이한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제가 단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그분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몇 분만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 건물 안에 병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병든 분이 얼마나 되는지 보겠습니다. 자, ...로서 [테이프 끊김]. 여러분에게는 제 말을 의심할 권리가 있지만, 그분의 말씀을 의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면 죄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그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지금도 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회중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을 아셨습니다. 그 여인을 향해 돌아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셨습니다. 처음에는 모르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계신 학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그 “구원하다”라는 단어는 “구원”이나 “치유”에 쓰이는 단어와 똑같지 않습니까? 같은 그리스어인 소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육체적으로 구원하시기도 하고 영적으로 구원하시기도 합니다. 자, 구원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소조, 곧 구원합니다. 믿으십시오! 아! 이제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그 일을 하시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실 수 있도록, 여러분은 그저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이 가운데 마음을 다해 믿을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저기 있는, 제가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말씀하시고, 어디가 아픈지, 어떤 일이 있는지, 무언가를 알려 주신다면 마음을 다해 믿으시겠습니까? 바로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기도 줄로 불려 나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저 갈보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고백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애써 긴장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저 마음을 놓으십시오. “하나님, 예, 그렇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이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가운데, 주의 천사가 지금 바로 저기 이 건물 위에 계십니다. 저는 위선자가 아닙니다. 광신자도 아닙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계시다면, 제가 구한 이 일들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이 저를 보고 계시다면, 저는 지금 바로 여러분이 사진에서 보신 그 불기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여자 위에 머물러 있고, 그 여자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가 쓰러지며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이 보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바로 저 뒤에 앉아 있습니다. 뇌전증 발작을 하는 분입니다. 좌석 줄의 맨 끝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매님, 손을 들고 치유를 받아들이십시오. 저 뒤에 계신 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뇌전증을 없애 주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게 하시고 믿으시면 치유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저 경건하게 계십시오. 여러분은 교회에 계십니다. 그것이 이 통로를 따라 계속 움직입니다. 체크무늬 옷을 입은 한 여자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관절염이 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저를 보고 있는 남자분은 고혈압이 있습니다.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는 연세 드신 분입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예, 선생님. 그분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저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집으로 가십시오. 치유받으셨습니다.
경건하게 계십시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자매님, 눈물을 닦고 계신 분, 자매님도 고혈압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자매님도 치유받으셨습니다. 그러니 더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자매... 그렇습니다. 네, 바로 자매님입니다. 자매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도하고 계셨지요? 그렇습니까? 예, 작은 모자를 쓰신 분 말입니다. 회중이 누구인지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저기 계신 분입니다.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치유받으셨습니다. 믿습니까? 자매님이 앉은 줄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기도하고 있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뇌전증이 있습니다. 누구인지 아실 수 있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의 자매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그 자매는 신경이 예민한 분입니다. 그것이 맞으면, 두 분이 자매라면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일어서십시오. 뇌전증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쪽에 계신 분도 믿으십시오. 이 아래쪽은 어떻습니까? 믿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거기 흰 장미를... 아니, 흰 꽃을 달고 앉아 있는 작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관절염을 고쳐 낫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자매님? 그것을 믿습니까? 일어나십시오. 발을 위아래로 구르십시오.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관절염이 어떤지 아실 것입니다. 손을 움직여 보십시오. 바로 그때 주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고 낫게 하셨습니다. 아멘.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옆에 앉은 자매님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분은 목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분도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렇지요, 자매님? 이제 자매님도 치유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자, 제가 여러분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건물 안에 계심을 믿습니까? 잠깐 기도하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의 생각을 읽는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쪽을 보겠습니다. 지금 누군가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그저 주 예수님을 믿고, 제가 아니라 그분께서 하시는 일임을 아십시오. 오 하나님,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지금 여기에 계심을 이들이 알게 하옵소서.
제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남자와 여자입니다. 남자는 척추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자는 여성 질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남자는 목회자입니다. 저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오하이오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프랭크이고 성은 그레이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또 얼마나 많은 분이 치유받기를 원합니까?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여러분, 오늘 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제가 떠나고 여러 주가 지난 뒤에도 여러분의 성도들이 찾아와 자기 병이 나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회중 위에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주권과 베풀어 주신 복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 오셔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바로 지금 이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각 사람을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의 팔이... 이들이 여호와 이레께서 오늘 밤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사람들을 강제로 사로잡은 이 마귀의 세력들을 뒤쫓아 나선 하나님의 천사들,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사들을 보내셨으며, 그들이 여기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에게서 나와라. 나는 [불명확한 말들]을 두고 네게 엄히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