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후에 계속 기도하다가 곧바로 이곳으로 오기 때문에,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 [녹음 공백] 제게서, 그래서 집회에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환상이 그처럼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름부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이 내어 주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는 설교할 때인데, 그저 아주 기쁘고 행복합니다. 다른 하나는 계속할수록 점점 더 쇠약해집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는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는 환상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말씀을 풀어 주시도록 짧은 본문 하나를 택하겠습니다. 마가복음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읽겠습니다. 배경이 될 말씀으로, 한 절만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23절을 택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 우리가 부른 찬송도 그 말씀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모든 의심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모든 것을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녹음 공백] 타락,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의와 희생으로 교회에 가져다주셨고, 이제 우리는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보증하는 것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제정신으로 신유를 속죄에 포함시키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구속의 모든 복을 속죄에 포함시킵니다. 모든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 피를 흘리시거나 두 번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신유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복이 단 한 번의 속죄로 여러분에게 마련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을 다루지 않고 죄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혼을 위해 구원의 복음을 전할 때에는 신유도 포함해야 합니다. 질병은 죄가 드러난 한 가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전에는 질병도 없었습니다. 질병은 죄의 결과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다루지 않고 죄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복음으로 형제님께 증명한다면…” 찰스 풀러, 그리고 이 가수, 막 회심한 카우보이 가수 말입니다. 체격도 제법 크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아, 그 사람은… 스튜어트 햄블런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막 도시를 떠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도 사진을 찍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매니저와 다른 사람들, 똑똑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는 제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주 작정하고 저를 몰아붙일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이…” 그는 매니저에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의 사진을 두어 가지 자세로 더 찍고 싶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그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예배를 위해 공부하고 기도하실 시간 중에서 제가 사십오 분가량을 쓰고 나면…” 그는 말했습니다. “박스터 형제님, 그분을 그곳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좋습니다.” 그러고는 그가 떠났습니다. 그런 다음 …하는 동안… “자,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잔뜩 준비해 놓았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신유를 속죄에 적용… 포함시키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는 막 신학교를 나온 사람으로, 대단히 똑똑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유를 속죄에 적용… 포함시키신다면, 브래넘 형제님,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죄가 속죄에 포함되어 속죄된 것처럼, 신유도 속죄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고통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에, 신유가 속죄에 포함되어 있다면 고통은 없어져야 합니다. 속죄가 죄의 영향 자체를 없애 버렸으니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유혹이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렇다면 고통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물론이지요.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 일을 하고, 응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가,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녹음 공백] 이사야가 말하기를 [녹음 공백] “…성경으로 보여 드리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이 옳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으니,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 “그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였도다”가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그래서 제가…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형제님? 바로 그때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그것은 속죄가 이루어지기 일 년 육 개월 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도 전이었지요. 그때에는 아직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님의 교리에 따르면, 속죄가 이루어진 이후인 지금보다 이루어지기 전에 속죄의 효력이 더 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자 그는 제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을 알고 아주 어려운 말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게는 아직 통역의 은사가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말로 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그는 계속 말을 했습니다. “아, 그것은 속죄 안에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신유가 말씀 안에 있다고 믿으십니까?”
저는 그를 바로 이 말씀과 마가복음 11장 24절로 이끌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어떤 것들이든지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 안에… 신유를 말씀 안에 두셨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예, ‘어떤 것들이든지’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 안에 두셨다면, 말씀이 속죄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말도 안 됩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또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 하나를 해 드리겠습니다. 옛날에 큰 왕국과 그 모든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규칙과 규정, 형벌 등을 정했는데, 어떤 특정한 죄를 지으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이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든 그 때문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노예가 그 형벌을 받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죽어야 했습니다. 그를 왕 앞으로 데려왔더니 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명예를 지키는 사람이다. 나는 내 말을 지킨다. 여기 내 왕국의 규칙에 따르면 너는 죄를 지었다. 나는 내 말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인데, 여기 내가 한 말에 따르면 그 죄를 속죄할 길이 없다. 너는 죽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네 목숨을 거두는 것뿐이다.’ “그 불쌍한 사람은 말하려다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똑바로 서거라. 네 목숨을 거두기 전에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그러자 사형을 선고받은 그 노예가 말했습니다. ‘물 한 잔을 주십시오.’ 왕이 말했습니다. ‘물 한 잔을 주어라.’ 물을 받았지만 곧 목이 잘릴 그 불쌍한 사람은 너무 떨려서 잔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똑바로 서거라. 네가 그 물을 마실 때까지는 네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그러자 그가 물을 땅에 쏟아 버렸습니다. 이제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왕은 명예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기 말을 지켜야 합니다. 그의 속죄에는 …라고 했으니, 아니, 그의 말에는 이 죄에 대한 형벌이 없다고… 아니, 구속받을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 물을 마실 때까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땅에 쏟아 버렸으니까요.” 제가 말하기를, 무엇을…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왕이 실수한 것이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자신의 말씀에 넣으시고도 속죄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실수를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형제님, 그것은 굶어 죽은 닭의 그림자로 끓인 국물보다도 더 묽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 안에 두셨으며, 그것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오직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먼저 여러분이 이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치유에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도 크게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잠시 나눌 말씀에서 그것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하느니라.” 그런데 생각으로 믿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의 정신 기능은 머릿속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과학은 불과 이 년 전까지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성경은 “사람이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처럼”이라고 말했습니다. 과학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말입니다. 심장에는 정신 기능이 없습니다. 그것은 머릿속, 곧 생각 속에 있습니다. 심장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년 전, 제가 시카고 거리에 서 있었는데, 신문에 이만큼 커다란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부를 샀습니다. 과학이 사람의 심장에서, 동물의 심장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에서 혈구조차 없는 작은 공간을 발견했는데, 그곳이 혼이 거하는 곳이라고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혼은 심장에 머무릅니다. 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그들도 결국 거기에 이르게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가끔씩은 마침내 깨닫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태양이 달린다고 하셨는데 과학은 태양이 가만히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캘리포니아의 그 큰 천문대들에서는 자기들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과학적으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태양도 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과학은 무엇인가를 말했다가 취소하고, 또 말했다가 취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여러분이 읽어도 결코 취소될 일이 없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에 자신의 혼을 맡기고 안식할 수 있습니다. 설명할 수 있든 없든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처럼 단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으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입니다!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그저 믿기만 하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자, 여기 이 일은 비극적이면서도 매우 두드러진 사례이므로, 우리가 잠시 살펴보고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불과 며칠 전, 예수님께서 바로 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온갖 악한 영들을 내쫓으며 나병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그 일을 행하고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 언덕 위로, 산 위로 올라가셨을 때, 이 제자들은 골짜기 아래에서 한 간질 환자 앞에 여지없이,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 악한 영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형제님에게도 병든 사람들을 고칠 권능이 있다면…”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을 모르고 성령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학이 그렇게 잔뜩 쌓여 있지 않다면, 그들은 그저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토론회를 진행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같은 것은 없습니다.” 계속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뒤쪽에 머리카락이 눈을 덮고 작업복 윗옷을 입은, 좀 어수룩하게 생긴 작은 소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앞니도 하나 빠져 있었습니다. 그 불신자 앞에 섰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사과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뭘 원하느냐?” 아이가 말했습니다. “질문 하나만 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물어봐라.” “잠깐만요.” 아이는 계속 사과를 깎고 속을 도려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멍청아,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해라. 안 그러면 쫓아내겠다.”
“잠깐만요.” 아이는 사과를 깎고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씹다가 삼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이 사과가 답니까, 십니까?” 그 불신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먹고 있는 게 아니니 모르지.”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성령이 계신지 안 계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치유를 받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고치시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성경에서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그것을 증언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의 부활을 증언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단맛인지 신맛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이 말했듯이, “주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 맛보기도 전에 누가 알겠습니까? 맛보는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푸딩 맛은 먹어 봐야 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좋은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경우에는 그 불신자가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불신 때문에 패배했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저는 그들이 바로 그때 패배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그 일 덕분에 제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이런 말을 듣습니다. “아, 이것 보세요. 존스네도 기도를 받는 것을 보았고, 이 사람도 기도를 받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아이도 고칠 권능이 있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명확한 말] 그들에게 그렇게 할 권능을 주셨는데도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 계셨고, 여기서, …했을 때… 이 극의 장면에서 첫 번째 패배가 나타났습니다. 목사들이 모두 골짜기로 나와 그들에게 따져 묻고 있었습니다. “허, 그분이 당신들에게 그런 권능을 주셨다면서요. 어디 한번 해 보시오. 자, 여기 있소.”
제자들은 기도하며 마귀를 내쫓고 있었습니다. 아니, 내쫓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간질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말했지 않소. 결국 이것은 무슨 속임수요. 기적의 시대는 지났소.” 그곳에 서 있던 그 사람, 아이의 아버지는 어쩌면 밖으로 나가 자기 목사를 데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목사님,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의 제자들이 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마귀들을 내쫓는다고들 하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것은 텔레파시요. 아무것도 아니오.” 물론 바리새인 존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이렇게 합시다. 며칠 뒤에 협의회 모임이 있는데, 아이를 데려오시오… 그 제자들이 이 근처에 온다고 들었소. 그러면 우리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어디 한번 해 보라고 도전해 봅시다. 그렇소.” 그것이 바로 마귀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내 앞에서 무엇인가를 해 보아라. 내가 좀 보자.”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먼저 라디오에서 제게 도전했습니다. 신유로 나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천 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의사 두 명과 네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사람의 집 계단까지 걸어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돈은 저기 텍사스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칼을 가져다가 어린아이의 팔을 베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 앞에서 그 팔을 붙들고, 형제님이 고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머리를 고쳐야겠군요. 어딘가 잘못되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시군요.” 그렇습니다. 누구든 아기의 팔을 베어 그 앞에 붙들고 있다가 고쳐 보라고 하다니요. 정말이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것은 이성적으로 대답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 이 부인은 어떻습니까? 여기 이 부인이 암에 걸렸었다고 말하는 담당 의사도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았습니다. 여기 의사의 소견서가 있습니다. 저는 선교 여행을 위해 그 천 달러를 받고 싶습니다.” 그는 돈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안 주었습니다. 물론 주지 않았습니다. 아, 무어 형제님이 늘 말씀하시던 것과 똑같습니다. “올빼미 눈처럼, 온통 야단법석에 깃털뿐이고 정작 올빼미는 없다.” 그런 일들도 대개 그와 같습니다.
그저 솔직히 인정하고 “믿음이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무슨 교회 교리 뒤에 숨으려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일이 없고, 여러분 안에는 믿음을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만큼 여러분은 믿음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만 하면 그것이 그대로 창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권능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없는 것들로 만드셨습니다. 그저 “있으라”라고 말씀하시자, 이렇게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믿으셨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곳의 흙도, 자신의 말씀을 창조해 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 그 자체입니다. 그 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멘” 하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렇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바로 그 흙,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저기 서 있는 기둥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저녁 이곳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 이것이야말로 마귀의 눈에 한 방을 먹이지 않습니까! 아, 정말 그렇습니다. 이것은 진리이며, 말씀입니다. 자, 그들이 그곳에 있었고,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모두 나오면 아이를 데려오시오. 그러면 이 제자들이 얼마나 권능을 가졌는지 알게 될 것이오.” 그들은 모두를 흥분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들이 둘러서 있었고, 협의회 사람들도 뒷짐을 지고 둘러서서 말했습니다. “허, 거 보시오. 아이가 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소. 조금도, 조금도 말이오.”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마귀를 내쫓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아, 그들에게는 권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각자에게 그렇게 할 권능을 주셨고, 그들은 전에도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번 해 보시오. 어디 한번 해 보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 이 점을 여러분의 생각 속에 영원히 확실하게 새겨 드리겠습니다. 누구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거든, 그 사람을 통해 말하는 자는 마귀라는 것을 아십시오. 말씀만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의심은 언제나 마귀에게서 나옵니다. 최초의 죄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의심 말고 다른 죄는 없습니다. 불신이 최초의 죄이며 유일한 죄입니다. 간음하는 것이 죄가 아니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죄가 아니며, 술에 취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불신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그들에게 일어나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시지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제가 “일어나서 믿는 척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믿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죄가 생긴 것은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곧 이브의 한 [불명확한 단어] 자손이신 여자의 씨를 만났을 때 이브에게 썼던 것과 똑같은 수법을 썼습니다. 첫 번째는 식욕이었고, 그다음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 내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무엇인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좀 보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거든, 누가 그 사람을 통해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지금 내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내가 볼 수 있게 말이다. 네가 이 돌들을 빵으로 바꾸고 다시 배불리 먹는 것을 좀 보자.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겠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아버지의 말씀으로 응수하셨습니다. 다른 일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연약한 신자에게까지 하나님의 복이 이르도록 하시려고, 여러분은 …을 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사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은사도, 자신의 권능도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분께서 예언하는 분이셨을 때… 우리는 그분이 환상을 보셨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들의 마음속 비밀이 무엇인지 등을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표적들이 세상 끝까지 따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군인들이 그분의 얼굴에 헝겊을 둘렀습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습니다. “자, 이 예언자야…” 그분을 때리고 있던 마귀가 말했습니다. “이 예언자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겠다. 네 눈을 헝겊으로 가렸는데,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예수님은 입을 열지도, 한마디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의 유대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 우리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손을 빼내고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네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겠다.” 예수님은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다.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군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한번 보여 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보거든, 그것이 마귀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고향으로 오셨을 때 그들은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 저 지방에서 사람들을 고쳤다는 것을 여기서 보았소. 거기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여기 우리 가운데서도 무슨 일을 좀 해 보시오. 우리가 좀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을 이상히 여기셨으며, 많은 권능의 일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필요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분의 권능이 부족해서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부족해서입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신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불신 때문에 그분은 그 일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여기 제자들은 패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패배하고 있는 바로 그때, 이 땅을 걸으셨던 가장 사랑스러운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아마도 그 큰 기름부음을 받으신 뒤라 아직 기운이 약하셨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환상 가운데로 이끌려 가셔서 미리 보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오실 순서를 미리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보았습니다. 먼저 오시는 것, 엘리야와 모세를 보았고, 그 뒤 다시 돌아보았을 때에는 예수님만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천년왕국 이후에 오실 때 말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여기 있던 사람들 중 바리새인 존스 같은 이들이 말합니다. “자, 보시오. 저 사람이 오는군. 저 사람이 저들 모두의 우두머리요. 이 운동을 모두 시작한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오.” 그래서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려고 갑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그분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모두 그분이 계신 곳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칼라를 뒤로 돌려 입은 그 바리새인 무리에게 다가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과 무엇을 논쟁하느냐?” 아, 이 한심하고 맥 빠진 설교자여. 그 심판 때에 주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당신도 그분 앞에 똑같이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과 무엇을 논쟁하느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럽냐? 왜 나의 이 자녀들에게 따져 묻느냐?” 아, 그분께서 그들을 둘러보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아직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아이에게 더러운 영이 들렸습니다. 말을 못 하고 입에 거품을 물며 불과 물에 넘어집니다. 아이를 고쳐 달라고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목사인 바리새인 존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데려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영을 내쫓지 못했으므로 선생님께 데려옵니다.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다면, 만일…” 알아들으셨습니까? “만일”입니다. 아! “하실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인가를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서서 주위를 둘러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 그들이 아이를 데려오자 마귀가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짓이 그렇습니다. 마귀는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그 아이에게 그 어느 때보다 심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땅바닥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예수님을 겁주려고 한 것입니다. 아이가 땅에 쓰러져 그들 앞에서 거품을 물기 시작하자… 제자들 앞에서 거품을 물자, 그들은 조금 겁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분을 겁줄 수는 없습니다. 마귀는 그 아이에게 몹시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불명확한 말] 하면서 거품을 물고 땅바닥에서 뒹굴며 …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자기 때가 다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를 그 어느 때보다 심한 발작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보시고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아, 불에도 넘어지고 온갖 일을 겪습니다.” 그분께서 주의를 끄셨을 때… 자, 여기서 이 장면을 극으로 그려 봅시다. 아, 여기 골짜기가 있고 저기 산이 있습니다. 바로 저 산 위로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분을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지금 그분께서 거기 서 계십니다. 그 산에서 아버지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계셨습니다. 비둘기는 여전히 어린양 위에 계셨고, 그분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바로 그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는 …할 수,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나는 환상을 보느니라. 아버지께서 환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제자들은 패배했습니다. 아버지는 약간 적대적인 태도로 서 있습니다. 왜입니까? “자, 이제 알겠습니다. 그분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지 못하면… 이 제자들도 하지 못했다면 그분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목사님 말씀에 동의하게 되는군요. 이것은 그저 온통 가짜이고, 감정을 부추기는 짓이며, 무슨 심리 작용이나 텔레파시 같은 것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신이 어떻게 달라붙는지 보이십니까? 아, 저는 몇 번이나 실패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치유자이십니다. 제가 오늘 저녁 오백 명을 위해 기도했는데 내일 아침 그 오백 명이 모두 죽는다 해도, 내일 그분은 오늘 저녁과 똑같은 치유자이십니다.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제게는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 조그마한 선지자가 나섰을 때, 비둘기가 그 위에 계셨습니다. 아합이 모든 제사장을 그곳으로 불러냈고, 엘리야는 그날 오후 그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사백 명이었습니다. 그는 걸어가 산 위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이제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겠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불명확한 단어] 비, 그는 앙상한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비를 내려 주십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게하시야, 저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바다 쪽에 구름이 보이는지 보아라.” 게하시가 올라갔다 와서 말했습니다. “아무런 조짐도 없습니다.” 아, 불신은 얼마나 재빨리 그 일을 물고 늘어졌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 주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녹음 공백] 게하시야, 다시 가거라.” “방금 내려왔는데요.” “다시 올라가거라. 다시 보아라.” “하늘이 놋쇠 같습니다. 비가 올 조짐이 없습니다.” “가만히 기다려라.”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 주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저희에게 비를 내려 주십시오. 다시 올라가거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일곱 번 올라갔습니다. 얼마 후 게하시가 내려와 말했습니다. “아, 저기에 아주 작은 구름 하나가 보입니다. 사람의 손만 한 구름입니다.” 불신은 얼마나 재빨리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나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안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표적임을 아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집회에 갔습니다. 두통이 있었고, 한두 주나 한 달 동안 아팠습니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았습니다. 손에 장애가 있었는데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 그것은…” 아, 형제님, 불신은 바로 그 자리에서 얼마나 재빨리 일하기 시작하는지 모릅니다. “아, 조금은 보였습니다. 제가 눈이 멀었었는데 조금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충분히 애썼다면 그 전에도 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 이 한심한… 여러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맨 처음 그 아주 작은 표적을 보자 일어나 힘껏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빗물 받을 통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여라. 많은 빗소리가 들린다.” “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할렐루야! 제게서 목발을 치우십시오. 제가 갑니다! 의사 선생님, 진료비를 내겠습니다. 이제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해 주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빗소리가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빗물이 홈통을 타고 내려오고 있으니, 저는 여기 그대로 머물러 서서 한 방울도 빠짐없이 다 받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그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은 얼마나 재빨리 달라붙습니까. 어쩌면 그 아버지도… 그래서 그가 “하실 수 있다면, 그 애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다면”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좋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대화를 나누시려고 다가가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한 번 눈을 들여다보자 무언가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나자, 그것이 텔레파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든 여자든 십자가를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은… 요전에… 제 차 앞 유리에 작은 십자가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게 이렇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가톨릭 십자가처럼 보이는군요.” 언제 가톨릭이 십자가를 독점할 권리를 가졌습니까? 언제 십자가가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 되었습니까?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지,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왜 거기에 걸어 두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셀러스버그에서 내려오는 길에 저와 함께 차를 탔던 사람이었습니다. 좀 저를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쩐지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분을 깎아내리지만 않는다면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왜 거기에 걸어 두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아십니까? 여름이 되면 이 고장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마당이나 길거리나 어디엔가 벌거벗은 여자가 서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십자가를 봅니다. 아멘. 저는 차라리 십자가를 보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제가 어디에서 구속받았는지를 봅니다. 거기서 주님의 채찍 자국을 봅니다. 저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한때 저는 눈이 멀었고,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저를 고쳐 주시면 올바른 것들을 바라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저는 저 십자가가 바라보아야 할 올바른 것임을 압니다. 저는 갈보리를 바라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죽으셨고 저를 고쳐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께서는 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제 모든 걱정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저를 고쳐 주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봅니다. 고개를 돌려 십자가를 봅니다.” 좋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한 번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십시오.
이 사람이 주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가 그렇게 바라보자 무언가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제 그는 올바른 근거 위에 서 있습니다. 자비를 간구하는 근거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자비의 자리로 나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무엇이든 받으려면 오직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심판을 근거로도, 자기 자신을 근거로도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근거로 나아와야 합니다. 이제 치유를 받을 근거 위에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만일”이 없습니다. 이제 그가 예수님께 맡긴 것입니다. 보십시오.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닙니다. 이제 그는 다르게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곧바로 그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네가 믿을 수 있느냐? 여기 있는 랍비 존스 목사의 말을 물리칠 수 있느냐? 이 모든 의심을 네게서 떨쳐 버릴 수 있느냐? 이제 믿을 수 있느냐?”
아버지는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무언가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고, 그는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제가 믿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바리새인들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했을 때 저는 의심했습니다. 주님, 제가 믿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눈물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그는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제가 믿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성경에는 “나의 믿지 아니함을 주께서 도와주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제가 믿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거기 그가 서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자,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선생님, 하실 수 있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주의를 붙드셨을 때, 그분은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L-o-r-d”, 곧 “주님”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가 자비의 자리로 나아왔을 때 자비를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이러는 것이 행복합니다. 보십시오. “하실 수 있다면.” 목사님, 당신 말씀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하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의 자리에서 그는 용서를 얻었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며, “이제 주여, 내가 믿나이다. 제가 믿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주님! ‘주’라는 말은 ‘소유권’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