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밤 다시 이 아름다운 앤젤러스 성전에 모여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이 성전은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서서 신유와 주 예수님의 권능과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맥퍼슨 자매님의 아드님이, 그저... 며칠 전 그분들 중 한 분이 바로 여기에 쓰인 글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리고 오늘 밤 이곳이 다시 거의 가득 찬 것을 보니 기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두 번째 예배인데 말입니다. 조금 전에 저의 좋은 친구 토미 힉스를 여기서 만났습니다. 말씀을 전하실 분인데, 참으로 신실한 형제님이십니다. 또 오럴 로버츠 형제님을 비롯해서 오늘날의 이 위대한 역사 가운데 뛰어나게 일하시는 여러 형제님들이 계십니다. 이곳에서 그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에 올 때 목이 조금 쉬어 있었습니다. 막 캐나다에서 돌아왔는데 그곳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더운 이곳으로 내려오니 몸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밤마다 예전에 성령께서 부어지시던 그 역사가 참으로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맥퍼슨 자매님이 이곳에 오셔서 그 놀라운 집회들을 여시던 시대에 살면서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아직도 자매님을 기억하는 많은 신실한 분들, 성도들의 마음에는 그때의 일이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람들이 제단 둘레의 이 통로들을 오가며 회개하던 그 모습이 말입니다... 저는 자매님의 설교 몇 편을 레코... 레코드로, 아니, 녹음테이프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책도 읽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셨던 자매님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이 인생길에서는 자매님을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면 뵙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 제가 맨 먼저 찾아간 곳들 중 하나가 자매님의 몸이 잠든 안식처였습니다. 그곳에서 모자를 벗고 맥퍼슨 자매님의 고귀한 삶과 자매님이 남기신 이 놀라운 사역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회중이 박수를 보냄] 감사합니다. 아드님을 만나 그토록 훌륭한 인품을 보니 좋은 가정에서 자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좀 닮으신 모양입니다...?...
이곳의 여러 사역자들, 코트니 박사님과 커밍스 박사님, 티퍼드 박사님을 비롯해 제가 아는 많은 분들이 참으로 훌륭한 형제님들이며 큰일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조금 전에 맥퍼슨 씨와, 아니, 맥퍼슨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제가 그분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주 예수님을 위해 애쓰시는 것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희는 그저 버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모르십니다. 저는 전 세계 선교지 어디를 가든 포스퀘어 교회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니 이 복음은 로스앤젤레스와 여기 있는 여러분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작은 곳에서 온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선교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표지들을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고귀한 혼에 안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그곳에서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나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제가 롱펠로의 무덤 곁에 서 있었을 때 생각했던 「인생 찬가」가 떠오릅니다. “떠나면서 우리 뒤에 시간의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리.”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해 고귀하게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뒤에 흔적을 남깁시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주네. 우리도 우리의 삶을 고귀하게 할 수 있음을, 떠나면서 우리 뒤에 남길 수 있음을, 시간의 모래밭에 발자국을. 저는 이 시를 좋아합니다.
지난 저녁에, 아니, 일요일 오후에 저는 이 훌륭한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는 특권과 영광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저 칭찬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여기 와 있다고 해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오늘 밤 이곳에는 가장 귀한 분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택하신 많은 분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와서 성령의 놀라운 나타나심을 들으면 기쁨의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놀랐습니다. 예전에 저는 인디애나주 밀타운에 있는 침례교회를 목회했습니다. 밤에 집으로, 아니, 제가 머물던 곳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제퍼슨빌에 살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늘 덤불에 앉아 밤새도록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이팅게일이 왜 그렇게 노래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팅게일에 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이팅게일은 밤에 고개를 들고 있다가 별 하나라도 보이면 그 별에 시선을 고정하고 노래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별이 하나라도 빛나면 어딘가에는 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함께 모여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저 역시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딘가에 살아 계시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분은 여기에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밤 이곳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지난 저녁에는 제가 어쩌면 좀 거칠고 심하게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여러분의 대열에 받아 주셨기에, 저는 여러 교단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우리는 형제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단을 사랑합니다. 저는 그렇게 그 사이에 서서 “우리는 함께 형제입니다”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로 모으는 일에 제가 조금이라도 참여하게 해 주신다면... 제가 아는 몸 가운데 가장 병든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밤 가장 절실히 필요한 신유는 그리스도의 몸이 치유되어 한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아주사 거리 집회야말로 그 일을 하기에 얼마나 좋은 때입니까! 여기서 우리 모두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오래전 여러분의 집회들에 관한 역사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맥퍼슨 자매님과 우드워스에터 부인, 보스워스 씨, 또 초기 오순절 운동의 다른 여러 모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때 저는 제 교회에서 일종의, 뭐라고 할까요, “미운 오리 새끼” 같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거룩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손에 꼭 맞는 장갑처럼 제 마음에 맞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여기 대열에 들어와 살펴보니 그것이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제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릅니다. 제가 그렇게 아픈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우리가... 우리는 주님을 위해 하나의 커다란 전선을 이루기 원하며 시온을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뒤쪽으로 뛰어들고 세속주의가 교회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면 저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앞서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 그러니...
베어 내는 일은 때로 아픕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설명하자면... 여러분에게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병의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의사가 그저 등을 두드리며 “자, 좋은 분이시군요...?… 괜찮습니다. 참 좋은 분이십니다”라고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 문제를 바로잡아 주지도 않고 여러분을 돌려보낸다면, 여러분은... 그것은... 여러분은 그 의사에게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진찰해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아프더라도 정말 그 부분을 도려내 준다면(아시겠죠?), 그 사람이 좋은 의사입니다. 그러니 원인을 없애야 합니다. 그 암을 도려냅시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 모두 하나의 커다란 전선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회중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곳을 다녔지만, 지금 이 집회의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처럼 어떤 한 회중 가운데서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제 얼마 후면 여러분을 떠나야 합니다... 열 시 기차를 타야 합니다. 훨씬 북쪽에서 다른 집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떠나야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 어느 집회보다도 성공적인 집회가 되도록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 위에 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떠납니다. 여러분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천국에 가기 전 이 땅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저편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앞에 있는 이 복된 옛 성경에서,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좋아합니다. 제 말은 헛될 수 있지만 그분의 말씀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설교자로서는, 주님께서 저를 설교자가 되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 여러분도 그것이 제 사역임을 아십니다. 저는 두 가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저에게 교육이 부족하고 지혜와 지식 등이 부족한 것을 보시고, 그저 그분의 병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도 제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하기 원합니다. 제가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에 관해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에게 맡겨진 직분에 그저 신실하십시오.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 참된 사역자들 앞에 서서 생각해 봅니다. 이분들이 저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제 뒤에 앉으시고, 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여러분 앞에 저를 세워 주셨으니 참으로 겸손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제 형제님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습니다. 저는 설교에 관한 한 언제나 제가 예비 타이어라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비 타이어는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만 쓰지요. 그런데 지금은 분명 펑크 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그러니 이분들이... 그저 은혜로 제가 그렇게 길에서 예비 역할을 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 저는 압니다. 이분들이 너그러이 저를 여기 서게 해 주시고...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지만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만큼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먹일 무언가를 낳을 것입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29절부터 읽겠습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분은 내가 전에, 내 뒤에 한 사람이 오시는데 그분께서 나보다 앞서신 것은 그분께서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 하고 말한 분이라.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께서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셔야 하므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노라, 하니라. 또 요한이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그분 위에 머무셨더라. 주님께서 이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기로 하셨을 때 어린양이라는 피조물로 나타내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왜 그분을 어린양이라고 부르셨을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린양은 땅의 모든 피조물,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온순합니다. 작은 어린양보다 더 온순한 것은 없습니다. 정통 유대교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죄를 대신할 제물로 어린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형벌을 내리셨다는 것을, 다시 말해 죄의 결과가 죽음을 가져왔으므로 무언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피 속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이 혈구 안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성령께서 처녀 마리아를 덮으셨고, 하나님께서 그 태 안에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혈구에서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생명이 이 혈구 안에 있고 죄인은 죄를 지었으므로, 그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순결한 것은 이 어린양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실 것을 예표했을 뿐 죄를 제거하지는 못하고 덮을 수만 있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혈구가 터지고 나면 그 안에 있던 생명은 경배하는 사람에게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경배하는 사람은 혼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서 나온 생명은 그저 짐승의 생명이었습니다. 짐승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경배하는 사람은 들어올 때와 똑같은 죄의식, 똑같이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예표였습니다. 그러나 경배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피로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서 나온 생명은 바로 그분 자신의 생명이며, 그 생명이 믿는 사람에게 돌아와 그 사람을 그분과의 교제 안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결하고 사랑스러운 어린양은 훌륭한 피조물입니다. 오늘 밤 어린양의 성품을 더 살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그리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린양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린양은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갈 수 없는 동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아니, 하루라도 일찍 깨달을수록(우리는 우리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팔과 인도하심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만큼 더 빨리 어린양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녀석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순찰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도랑 아래에서 무언가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린양 한 마리였습니다. 어미 양은 다른 양 떼와 함께 가 버렸고 이 작은 녀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어린양을 안아 어미에게 데려다주었습니다. 녀석은 제 품에 그저 가만히 안겨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한때 제가 이랬습니다. 저는 아무 소망도 없었는데 주님께서 저를 팔에 안아 옮겨 주셨습니다.”
어린양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아니, 동방에 갔을 때였습니다. 여러분도 동방에 가셔서 그곳을 보신다면... 성경이 새로운 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그것이 동방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시 그곳 사람들이 쓰던 동방의 비유와 풍습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과 함께 작은 영국제 지프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자동차들도 모두 멈추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놀랍게도 목자 한 사람이 양 떼를 이끌고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말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양과 목자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멈춥니다.” 그러고 나서 좀 더 가다가 목자가 거리를 따라 내려오는 곳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오늘날 우리처럼 냉장고를 비롯한 편리한 시설이 없습니다. 채소 같은 것들, 먹을 것들을 바로 길가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목자 한 사람이 양들을 이끌고 그곳들을 지나 길 한가운데로 걸어 내려왔습니다. 밧줄로 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들은 그저 목자를 보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차를 세우고 놀라서 지켜보았습니다. 목자가 걷다가 한쪽으로 몇 걸음 비켜 갔다가 다시 길로 돌아오면, 바로 뒤의 양도 옆으로 비켰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뒤의 양도 따라갔고, 그렇게 양들은 목자를 따라갔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저는 놀라서 함께 있던 친절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왜 양들이 옆으로 돌아서 저 배를 좀 먹지 않습니까?(참 좋아 보이는군요.) 양들을 유혹할 만한 것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자가 먼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손대지 않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들도 그런 일에 그만큼 조심한다면 우리 교회에 이러저러한 시비가 그토록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더 가다가 다른 목자가 들에서 짐승들을 돌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귀와 낙타와 양과 염소가 모두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저 목자는 짐승들을 온통 섞어 놓았군요. 저는 목자가 양만 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목자는 거의 어떤 종류의 짐승이든 돌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왜 저들이 모두 함께 먹는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모두 같은 들판에서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 특이한 점은 목자가 낮에는 저들을 돌보며 한 마리 한 마리 바로잡아 주지만, 밤이 되면 나귀와 낙타와 염소는 들판으로 나가고 목자는 양들을 양우리 안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형제님... 저는 양이 되고 싶습니다. 형제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10장에서 그분이 ‘나는 양우리의 문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자주 궁금했습니다. 사람이시면서 어떻게 문이 되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친절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밤에 양들을 데리고 들어오면 목자는 양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세기 전에는 절대로 눕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누울 때는 출입구를 가로질러 눕습니다. 그러면 양들은 결코 목자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또 늑대도 목자를 넘어가지 않고는 양들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양이라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시련은 오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제님, 양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어느 날 해가 지면 그분이 우리를 양우리 안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양으로, 온유하고 순한 작은 동물로 나타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땅에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는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가장 온순한 새, 비둘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비둘기는 독특한 새입니다. 다른 모든 새와 다릅니다. 성경에서 보듯 비둘기는 여러 번 성령을 나타냅니다. 또 우리는 비둘기가 평화의 표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압니다. 평화, 놀라운 평화입니다. [녹음 공백] 비둘기는... 홍수가 끝나고 땅에 심판이 임한 뒤 평화가 찾아왔을 때, 노아에게 비둘기가 입에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 평화를 나타냈습니다. 비둘기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비둘기는... 할 수 있는 새입니다. 까마귀나 썩은 것을 먹는 새처럼 날 수 있지만, 그런 새가 먹는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몸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쓸개가 없습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없으므로 썩은 것을 먹는 새들이 먹는 것을 소화할 수 없습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비둘기를 모신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잘 예표합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에게는 쓸개가 없고, 쓴 마음도 없습니다. 겸손합니다. 겸손한 것입니다. 비둘기가 구구 우는 소리보다 더 다정한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밤 제 생각은 멀리 떨어진 어느 언덕으로 돌아갑니다. 스무 살에 저를 떠난 사랑하는 아내가 잠든 바로 그 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아내와 어린 딸을 함께 묻으면서, 저는 생후 여덟 달 된 사랑스러운 샤론을 아내의 팔 위에 눕혔습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 안으로 들어와 둘러보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살림을 시작할 때 1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낡은 스토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낡은 스토브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아내가 그 위에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10센트 가게에 가서 작은 냄비들을 사곤 했습니다... 어딘가 조금 벗겨진 곳이 있으면 더 싸게 살 수 있었지요. 별것은 아니었지만 아내의 손이 닿았던 물건이었습니다.
아기 침대로 가서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아기는 가고 없었습니다. 그러면... 먹을 수조차 없는 때가 많았습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고 거기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갔습니다.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새로 만든 봉분 곁에 앉아 울었습니다. 바로 저 아래에 세상에서 제게 가장 소중한, 살과 피를 지닌 보물이 누워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산비둘기 한 마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새는 해가 질 무렵 덤불에 앉아 저를 향해 구구 울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새 자체가 아니라 그 새가 상징했던 것을 말입니다. 언젠가 이 삶에서 제 해가 질 때 말입니다.) 그 새가 구구 우는 소리는 얼마나 다정했던지요. 나뭇잎들이 이렇게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 건너 한 나라가 있네. 우리가 아름다운 영원이라 부르는 곳, 오직 믿음으로만 그 기슭에 이르네. 한 사람 한 사람 그 문에 이르러, 죽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리. 언젠가 그 황금 종이 울리리, 그대와 나를 위하여.
먼저 불멸의 이들과 함께 그것을 기다리며... 그 새가 나뭇가지를 오가며 노래하여 저를 얼마나 위로해 주었는지요. 저는 해 질 무렵 그 새가 저를 향해 구구 우는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성경 구절을 그냥 지나치지만, 제게는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때는 하늘과 땅이 서로 껴안은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어린양의 모습으로 계신 아들 위에 임하신 때였습니다. 왜 어린양과 비둘기를 택하셨을까요? 비둘기는 어린양 외에는 그 어떤 것 위에도 머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의 성품이 같습니다. 그래서 둘이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둘의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낮아져 있었기에 함께 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되셨을 때,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내려왔을 때 하늘과 땅이 서로 입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화해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화해한 그때야말로 세상에서 있었던 가장 위대한 순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둘기와 어린양이 함께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둘이 함께 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영을 비둘기같이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임하여 머물렀습니다. 저는 그 “머물렀다”라는 말이 좋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린양이 늑대처럼 콧김을 내뿜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비둘기는 떠나 버렸을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바로 이것이 교회에 그토록 문제가 많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면, 비둘기가 머물기를 기대한다면 어린양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비둘기를 살펴보면...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머문 것은 둘의 성품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비둘기가 그리스도인 위에 머무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어린양으로 있는 동안은 머무실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성품을 취하면 비둘기는 날아가 버립니다. 이 어린양은 무엇보다도 점 없는 어린양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점 없는 어린양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린양은 자기 힘으로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어린양에게는 이끌어 주고 인도해 주고 돌보아 줄 목자가 필요합니다. 도살장에 가서 양을 잡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린양은... 양들은 도살당하러 좁은 통로를 제 발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양들을 도살장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런데 그 염소는 죽이는 곳에 이르면 통로 밖으로 뛰어넘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하는 전형적인 짓입니다. 하나님의 양들을 도살장 바로 앞까지 이끌고 간 다음 자기는 옆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여러분을 이끌고 있는지 조심하십시오. 아멘.
양은... 그리스도는... 그분이 얼마나 온유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결코 자기 뜻대로 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내 뜻을 행하기 위해 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그분과 함께 가셨고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그렇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우리를 보내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그분이 인도를 받아 다니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양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목자에게 따져 묻지 않고 그저 목자와 함께 갑니다. 그리고 양은 또한...
저는 소년 시절 농장에서 양을 길러 본 경험이 조금 있습니다. 우리는 양들을 데려다가 털을 깎곤 했습니다. 털을 깎아, 털이 없어진 양들입니다. 양을 붙잡아 작업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거기에 작은 고리가 있어 양의 작은 발을 묶어 놓습니다. 양은 발길질하며 소란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누워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자기 털을 내어 줍니다. 발길질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고 털을 깎도록 내맡깁니다. 제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양은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참된 양은... 양은 자기 권리를 포기합니다. 어제 제가 우리 그리스도인 자매들 가운데 일부가 입는 옷과 처신에 대해, 또 우리 형제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면서 전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여자분이 제 친구인 다른 여자분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오늘 저를 만나 전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분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기에 문이 있으면 뛰쳐나가겠어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분이 틀렸어요.” 자... 그분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브래넘 형제님, 여자들이 입는 이 짧은 옷들을 가게에서 팔잖아요. 이것은 미국인으로서 누리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 권리라고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양이 되기 위해 기꺼이 자기 권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가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씨, 우리가 교회에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피우는 것은 우리 특권입니다. 정부가 팔고 있잖아요... 팔아도 되니까 파는 거지요. 잘못된 게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미국인으로서 누리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울 권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면 좋고 이웃 간에 친교도 나눌 수 있지요. 친목 삼아 한잔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도 미국인으로서 누리는 우리 특권입니다. 우리 특권이라고요.” 하지만 형제님, 제가 알고 싶은 것은, 털 깎인 양이 되기 위해 죄를 짓는 그 특권들을 기꺼이 포기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자기 권리를 포기하십시오. 그것 때문에 발길질하고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양은 그러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그저 누워서 모든 털을 깎게 합니다. 아주사 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그저 누워서 말씀으로 털을 남김없이 깎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아주사 거리의 체험으로 돌아가는 길은 바로 그런 것들을 깎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특권이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죄 가운데 태어나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고 거짓말을 하며 세상에 나왔기에 그것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이 되기 위해 그것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어린양은 불평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성경은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오, 그래서 비둘기가 어린양 위에 머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조금만 해롭게 해도 발끈 화를 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어린양은... 비둘기가 날아가 버립니다. 성령께서 떠나십니다. 우리는 왜 예전에 누리던 그 평안을 누릴 수 없을까 하고 자주 궁금해합니다. 무언가가 비둘기를 떠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서는 예전에 열리던 그런 집회를 누릴 수 없습니까? 그저 양이 되십시오. 비둘기는 횃대에 앉아서, 여러분이 양이 되기만 하면 다시 마음속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같은 비둘기이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양이 되어야 합니다. 콧김을 씩씩 내뿜고 다투고 불평하고 험담하며 온갖 짓을 하면서 그분이 거기 머무시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머무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양의 성품을 갖기만 하면 나머지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은 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서 수염을 뽑았을 때 그분께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분은 “내가 내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있고,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게 백만 군단의 천사들을 보내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지만 어린양이 되시려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 그분은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예전과 같은 집회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저 다시 어린양이 되십시오. 그것뿐입니다. 그저 다시 양으로 돌아가십시오. 비둘기는 멀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올 기회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아주사 거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돌아갈 자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 아주사 거리의 집회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어린양의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늑대나 그 밖에 썩은 것을 먹는 짐승으로 있으면서 평화의 비둘기가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린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품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물을 다르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엄격하고 옛 방식의 성령 신앙, 곧 살아가는 방식에 반대하여 설교할 때 그에게 대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늑대의 영이나 썩은 것을 먹는 짐승의 영을 버리고 어린양의 성품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예전에 하던 모든 일, 세상에서 누리던 온갖 특권 등을 기꺼이 포기하게 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이것은 제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신을 낮추십시오.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아는 것 중에서 얼마나 많이 잊을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만 아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의 간수처럼...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바울은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는 대신 해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일들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그를 거짓 제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를 그리스도께로 데려오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품을 어린양의 성품으로 바꾸시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바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비둘기가 그 위에 임하여 그를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주사 거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어 어린양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건물 안에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소위 우리가 가졌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을 낮추어 어린양이 된다면, 성령께서 친히 권능으로 이 집회를 맡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성령, 어린양의 인도를 받는 어린양들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이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오늘 밤 비둘기는 여기 앉아 들어갈 자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실을 얼마나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얼마 전, 남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전에는 그곳에서 노예를 사곤 했습니다. 중개상들이 찾아와서 요즘의 중고차 매매장처럼 사람들을 사 갔습니다. 그렇게 노예들을 샀습니다. 한 중개상이 어떤 농장에 와서 물었습니다. “팔 노예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농장 주인에게는 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오, 고향을 떠나온 노예들은 여러 번... 자기들이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어인들이 그들을 아프리카에서 데려다가 남부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을 시킬 수가 없으니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젊은이가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에게는 채찍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중개상이 말했습니다. “저 노예를 사고 싶습니다.” 농장 주인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팔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째서요, 혹시... 저 사람이 다른 노예들과 그토록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고는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그들의 우두머리입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노예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먹이시는 건가요?”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서 먹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저렇게 다릅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어느 날 알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이 떠나온 고국에서는 아버지가 부족의 왕이라는 겁니다. 비록 타국인이며 나그네로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워 줍니다. 낯선 땅에 있어도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그네이며 타국인으로 있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과 처신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살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왕의 아들딸입니다. 왕의 딸은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옷을 입지도 않습니다. 왕의 딸이기 때문에 품위를 갖추고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아멘. 왕의 아들인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사 거리의 체험으로 돌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처럼 옷 입고,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처럼 말하고, 수요일 저녁에 집에 남아서 할리우드가 내놓는 온갖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할리우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오순절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할리우드에는 그들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들의 즐거움은 세상 안에 있고 우리의 즐거움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본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고, 그분처럼 행동하며 그분을 사랑합시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딸로 받아 주신 뒤에도 우리가 행동하고 처신하는 모습, 품고 있는 원한, 다툼, 사소한 일들, 마땅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보실 때 우리 행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고귀한 남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귀한 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주님처럼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남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얼마나... 얼마나 고귀한 사람인지 보시고 “너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나이 든 성도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느 날 밤 저희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교회 안에 작은 파벌들이 생겼고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는 결코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것을 교리로 믿고 싶어 했고 다른 사람은 저것을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는 이쪽을 택할까 저쪽을 택할까 하고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차를 세워 두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우연히 뒤에서 누군가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언덕을 걸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언덕에 올라가면서 ‘어쩌면 내가 편을 들어 주는 쪽 사람일지도 모르니 기다려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작은 체구의 남자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등에 아주 큰 짐을 지고 계셨습니다. 저렇게 체구가 작은 분이 어떻게 저토록 큰 짐을 지고 가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다가 순간 제가 환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난 상처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달려가서 ‘주님, 아직도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계십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아니다. 그저 네 죄를 짊어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환상이 사라진 뒤 저는 교회에 가서 그 환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죄가 주 예수님을 저토록 슬프게 한다면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로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깨어졌고 진정한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본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살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므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뉴햄프셔의 아름답고 푸른 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아시듯 저는 사냥하러 산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동물을 잡으려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서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을 때 누리던 그 아름다운 평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서 그것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무언가를 하여 비둘기를 슬프게 하고 떠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어린양이 되기만 하면 그분은 돌아오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곳에서 한 사냥꾼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자주 하며 사람들을 인도... 거친 카우보이들과 숲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숲에 들어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가 본 사냥꾼 중 가장 잔인했습니다. 어린 사슴도 암사슴도 그냥 쏘아 죽였습니다. 찾기만 하면 일 년에 열두 마리라도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버트, 그건 잘못이야. 그렇게 하면 안 돼. 자네는 마음이 모질군.”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겁쟁이인 거지요. 목사들은 너무 마음이 약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버트, 이곳에는 법으로 잡아도 된다고 하는 다 자란 큰 수컷이 얼마든지 있잖나. 불쌍한 새끼 사슴 같은 것들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 그가 말했습니다. “아이, 그만두세요. 마음 약한 목사님.”
그 사람은 작은 호루라기 같은 유인 도구를 하나 만들었는데, 제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완벽하게 새끼 사슴의 울음소리를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산에 올라갔을 때 그는 덤불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곁에 앉아 주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저 뽐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하든 그런 짓을 하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오순절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아시겠죠? “나는 아무 상관도...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지.” 바로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앉아서 그 유인 도구를 홱 꺼내더니 새끼 사슴이 우는 것 같은 아주 애처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그저 덤불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탁 트인 곳 바로 건너편에서 아름다운 암사슴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오, 참 예쁜 동물이었습니다. 귀는 쫑긋 서 있었고 코는 벌름거렸습니다. 새끼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 암사슴이 몇 걸음 더 걸어왔습니다. 저는 그 남자가 소총을 들어 올리고 딸깍 소리를 내며 안전장치를 푸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 사람이 그러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그는 겨냥하려고 소총을 들어 올리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암사슴은 여전히 새끼의 울음소리에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건너편을 바라보며 사냥꾼을 보았고, 자기 심장을 겨누고 있는 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암사슴을 멈추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새끼가 우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총이 자기 심장을 겨누고 있어도 새끼의 울음소리가 자기 심장을 겨눈 총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암사슴은 새끼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걸어왔습니다. 저는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깨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내려놓고 뒤로 달려와 제게 두 팔을 두르며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더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는 용감한 어미의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형제님, 이 세상은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들, 하나님과 의를 위해 굳게 설 참된 영웅들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순절 사람들이 그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는 거기서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며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암사슴이 제 얼굴을 똑바로 보는 것을 보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보았네, 버트.” 그가 말했습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하도록 강권한 걸세. 자네가 울음소리를 흉내 낸 그 새끼를 지키려고 죽음 앞까지 걸어간 것이지. 버트,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오신 한 사람이 계셨네. 그분은 죽어 가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으셨고 죽음 앞까지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네. 버트, 그분은 자네를 위해 그렇게 하셨네.” 그곳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든 채 울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주 예수님이 자기 마음에 얼마나 귀하신 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잔인한 늑대에서 어린양이 되었고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몇 년 전 중동 지방에, 한 오십 년이나 육십 년 전에 유명한 전도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분에 대해 들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름은 대니얼 커리였습니다. 그분은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전도 사역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훌륭한 학자이자 복음 사역자였습니다. 어느 날 밤 그분은 자신이 죽어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전도자 대니얼 커리입니다.”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당신의 이름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의 이름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선생님, 잘못 보셨을 겁니다. 제 이름은 대니얼 커리입니다.” 문에 있던 천사가 말했습니다. “분명히 알아들었습니다, 선생님.” “자세히 살펴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이름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건을 백보좌 심판대에 상소하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제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제 사건을 백보좌 심판대에 상소해야겠습니다.”
대니얼 커리는 자신이 공간을 지나 계속, 계속 나아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한참 뒤 빛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져 마침내 해보다 백만 배나 더 밝게 빛났습니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방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그 빛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는 멈추어 섰고, 어떤 음성이 아주 분명하게 “네가 대니얼 커리냐?”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제가 그 사람입니다.” 그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니얼 커리야, 너는 땅에 있을 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제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 앞에 서니 제가 한 말 중에 옳지 않은 말이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니얼 커리야, 너는 땅에 있을 때 내 명령을 어기고 도둑질을 한 적이 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늘 정직한 사람으로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 앞에 서니 제가 떳떳하지 못한 거래를 좀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 주님, 저는 도둑질도 했고 거짓말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대니얼 커리야, 너는 땅에 있을 때 완전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저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게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들어가라”라는 호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떨며 서 있는데 온몸의 뼈마디가 모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평생 들어 본 것 중 가장 다정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 본 그 어떤 어머니의 목소리보다도 더 다정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돌아보니 제 곁에 서 계신 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제가 본 것 중 가장 다정한 얼굴이었습니다. 어떤 어머니의 얼굴도, 그 어떤 것도 그 얼굴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거기 서 계신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대니얼 커리의 모든 죄를 가져다가 제 앞으로 돌려주십시오. 땅에서 대니얼 커리가 제 편에 섰으니, 여기 천국에서는 제가 대니얼 커리의 편에 서겠습니다.’”
오, 저는 얼마나 그분을 원하며,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오, 친구 여러분, 계속 죄 가운데 걸어갈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미지근한 상태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저 교회에 가입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지금 예수님 편에 섭시다. 그리하여 그 큰 날이 올 때 그분이 영광 가운데서 우리 편에 서시도록 합시다. 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회중 모두 잠시 고개를 숙이시겠습니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르간 연주자께서 잠시 오르간에 앉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주님의 초장의 양들이 되기 원합니다. 그날 우리 자신의 의를 의지하여 홀로 서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지금 주님 편에 굳게 서기 원합니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 삶의 길을 돌아보면,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가시덤불과 언덕과 골짜기를 지나 저를 인도해 오신 것이 보입니다. 제가 집을 떠나던 때들이 생각납니다. 어린 자녀들이 제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아빠,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잖아요.” 어린것들 때문에 제 가슴은 아팠습니다. 가엾은 제 아내는 머리가 희어진 채 그곳에 서서 떨리는 손을 제 손에 맡기고, 두 뺨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 모든 것으로도 제 죄를 결코 속죄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날 예수님께서 제 편에 서 주시지 않으면 제 모든 수고가 헛될 것입니다. 죽어 가던 가엾은 아내에게 그날 아침 천국 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했던 그 모든 약속들, 저의 모든 설교와 수고가, 예수님께서 제 편에 서 주시지 않으면 헛될 것입니다.
오 하나님, 오늘 밤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아버지, 우리 오순절 사람들은 우리의 죄를 슬퍼합니다. 우리의 타락과 부족함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 밤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의 털을 깎아 주시겠습니까? 오늘 밤 우리는 죄 되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예수님을 닮지 않은 모든 것을 희생의 제단 위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저도 이들과 함께 받아 주십시오. 제 털을 깎으시고 저를 낮추시며, 주님의 겸손한 종으로서 지금 주님 편에 서게 해 주십시오. 주님, 그리하여 그날 주님께서 “잘하였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죄를 지었거나 길을 벗어났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어린양이 되게 해 주십시오. 지금 이 건물에 기름부으시고 이곳에 기름부으시는 비둘기께서... 그분이 우리 마음 깊이 파고들어 우리를 깨뜨리실 때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선지자가 토기장이의 집에 갔을 때처럼 말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다른 사람들로 빚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로 빚어 주십시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 오늘 밤 비둘기를 모셔 들이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곳을 떠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 걷고, 살고, 행동하고, 옷을 입으며, 그런 남자와 여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회중 가운데... 어린아이처럼 울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날 누가 제 편에 서 주실 것인지를 생각하면... 제 목사님도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제 형제도 할 수 없습니다. 제 어머니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제 편에 서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 자신이 성령을 슬프게 하여 떠나시게 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분이 계십니까? 비둘기는 떠났습니다. 이제 그 아름다운 평안이 더는 없습니다.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에 가서도 그분이 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며 창밖을 내다보지 않습니다. 형제님, 차를 몰고 일하러 가다가 기회가 나면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예전에 느꼈던 그 아름답고 깊은 평안을 마음속에 느끼던 일도 없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비둘기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오늘 밤 예수님 편에 서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잘못했다면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기꺼이 제 털을 깎도록 내맡기겠습니다. 털이 깎이도록 내맡기겠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즐거움과 세상적인 행동을 포기하겠습니다. 오늘 밤부터 하나님의 멸시받는 소수와 함께 서겠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을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동안, 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일어섬으로 저는 이제 하나님께 제 털을 깎아 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모든 것을 제게서 없애 주시기를 구하겠습니다.” 곳곳에 계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일어서십시오. “이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제 삶이 부끄럽습니다.” 곳곳에서 일어서고 계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여러분이 그저... 하신다면 그날 그분이 여러분 편에 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작은 예언의 은사를 통해 성령께서 제 마음에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일어서야 할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일어서 있는 분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 밤 그리스도 편에 서십시오.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일어나십시오. 한 번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분들,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 버린 분들, 우리가 기도하는 지금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저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이제 저는 제가 알아 온 모든 세상적이고 죄 된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평화의 비둘기가 제 마음속에 내려오게 하셔서 저를 사랑과 평안이 충만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저도 그 큰 무리 가운데 포함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세속적으로 변했다면 오늘 밤 그리스도를 위해 일어서시겠습니까? 이렇게 함으로 여러분은 그분 편에 서겠다는 것을, 또 그분이 여러분 편에 서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행동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편에 서 주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드리려는 이 기도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일어서십시오. 나사렛교회든 필그림 성결교회든, 오순절교회든 감리교회든, 침례교회든 가톨릭이든, 정통 유대교인이든, 어떤 분이든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이제 저도 포함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 편에 서 주시기만 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이 일어서고 계십니다. 많은 분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잠시만,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서 계십시오. 다른 분들도 일어서십시오. 그렇습니다. 바로 일어서십시오. 저는 다른 일을 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는 것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함으로 저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M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내 편에 서는 사람을 위해서는 저 세상에서 내가 그의 편에 서리라. 이 세상에서 나를 증언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내가 그에 대해 증언하리라.”
여러분이 몇 분 전에 세상을 떠났더라면 멸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다. 수천 명의 이 사람들과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큰 회중을 주님께 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 서 있는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셨고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깨달았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일어섰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비둘기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주사 거리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혹독한 심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한다면, 무엇이 필요하든 우리를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예전과 같은 집회들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성도들 가운데 겸손이 다시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들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 밤 우리 털을 깎아 주십시오. 우리에게서 세상을 없애 주십시오. 하나님, 주님을 닮지 않은 모든 것을 없애 주십시오. 우리를 성령으로 채워 주십시오. 오 하나님의 비둘기여, 이 난간들에서 날아 내려오십시오. 주님, 이 성전의 꼭대기에서 날아 내려오셔서 이 마음들 속에 거해 주십시오. 그들이 지금 성령 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날이 예리한 말씀이 세상의 것들을 잘라 내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풍성하고 존귀하게 모시게 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치유받기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속히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치유받기를 원하는 모든 분, 어떤... 속히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아멘. 비둘기가 건물 안을 날아다니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그 시간이 왔습니다. 때가 다가왔습니다. 마음을 여십시오. 성령께서 침례를 주시고 치유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마귀와 질병을 꾸짖고 쫓아냅니다. [불명확한 말] 그러면 그들은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