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형제님. 앉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곳에 와서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드리고 이렇게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참 기쁩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이 제게 복이 되는 것만큼 여러분에게도 복이 되기를 주 하나님께 바라며 믿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이상하게 여기실지 모르지만, 제가 와서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곳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모두가 바로 가까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시다시피 아주 큰 집회에 가면 불신이 너무 많아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맞서 싸워야 할 마귀의 세력들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그저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작은 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아마 이곳의 두세 배, 서너 배나 다섯 배쯤 되는 교회였습니다. 들어오는데 어떤 분이 “브래넘 형제님,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도록 도와주셨는데, 이런 곳에 오시니 어떠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강단에 올라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에 갈 곳은 예순 명이나 일흔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정말... 모두가 그저 앉아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모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서로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것을 특권으로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보내 설교하게 하셨을 때, 제가 처음으로 직접 열었던 모임이 기억납니다. 작은 가정 기도 모임이었는데, 열두 명쯤 모여 있었습니다. 아마 밤새 설교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밤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게는 지각이 모자랐던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지각이 충분했던 것인지, 계속 임하는 복을 그대로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이어 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저는 작은 모임에 오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모임에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그렇게 보셨거나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을 주셨다면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게는 무언가를 세울 큰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저 자신을 이런 모임에 올 수 없는 처지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올 형편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 밤에 어떤 모임에 갔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 아마 저를 조금 칭찬해 주려던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은 좋은 분입니다. 아주 멀리 있는 곳이니 누군지 모르실 것입니다.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의 파커즈버그 저 멀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작은 방에 앉아, 아마 이천오백 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강당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브래넘 형제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와 달라고 하고 또 누구에게도 와 달라고 했지만, 다들 ‘갈 수 없습니다. 너무 작습니다. 갈 만큼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분에게도 부탁했는데...”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인 줄로 압니다. 그분들은 로버츠 형제님과 코 형제님, 그리고 여러 다른 분들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도저히 올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 형제님이 저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지만, 조금 걸리는 데가 있구나. 정말로...’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실의 전부는 아니었지요. 그런 말이 일을 아주 곤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보십시오. 그 이유는...” 하고 말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친절과 그 모든 것, 또 해 주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목사님, 혹시...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로버츠 형제님도 오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도저히 올 수가 없습니다. 맡아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칠팔천 달러쯤 없으면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에 라디오 방송을 하고 전국에 텔레비전 방송을 하며, 백만 명이 구독하는 신문도 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작은 곳에 올 수 있겠습니까? 올 수 없습니다. 하루 수입이 수천 달러는 되어야 합니다. 그만한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좋은 분들입니다. 훌륭한 분들이며 형제들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저 자신을 묶어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두 사람에게 가라고 부르시면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벗어날 수도, 무언가 할 수도 없도록 그렇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네다섯 명이나 여섯 명의 아주 작은 무리에게도 설교하게 하셨고, 이곳처럼 오륙십 명쯤 되는 작은 무리에게도 설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오십만 명에게 설교하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여기로 오라고 하시든, 다섯 명밖에 없는 아주 작은 곳으로 가라고 하시든, 두 명이나 한 명에게 가라고 하시든, 혹은 혼자 가라고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것은 아주 조금, 정말 조금뿐이기 때문입니다. 운영해야 할 것은 저의 작은 사무실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돈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그것을 돌보아 주시므로 돈을 달라고 부탁하거나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해외의 큰 집회로 보내고자 하시면, 아십니까? 주님께는 그런 일을 후원하기 좋아하는 백만장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웃는다.] 그러니 저는 세상 무엇을 준다 해도 그분들이 지는 걱정을 떠맡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자유롭게 지내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저는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 밤 이곳에 와서 잭슨 형제님과 여러분 좋은 분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특권입니다. 오늘 밤 제 앞에는 스터지스의 택함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의 피, 아니, 그분의 피로 사신 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피로 사신 분들...
저는 예수님의 실제 피 두 방울을 담은 작은 잔이나 작은 용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종종 말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받들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밤 제게는 주님 보시기에 그것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피로 사신 여러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여러분을 그분의 것으로 삼으시려고 피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꺼이 피를 주셨으니, 오늘 밤 저는 복음을 위해 여러분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것을 특권으로 느낍니다. 더구나 하룻밤뿐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아, 참 좋습니다. 더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쉬어야 합니다. 저쪽 라이마, 오하이오주 라이마에 있는 침례교인들에게 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쪽으로 가시는 분이 계시면, 장소는 오하이오주 라이마의 메모리얼 강당입니다. 그곳의 침례교인들이 이 집회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리 베일 박사님도 후원자 중 한 분입니다.
그다음에는 그곳에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로 올라가 열흘 밤 집회를 합니다. 리오, 자네도 몰랐지요. 나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입니다. 리오 형제님... 저의 충직한 두 친구 리오와 진이 와서, 고든 피터슨이 제가 10일부터 그곳에 온다고 캐나다와 미국에 방송하고 있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곳에 집회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전혀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소식을 알릴 통로가 없어서 곤란해지는 경우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실상을 알고 계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네다섯 군데에 동시에 온다고 광고된 적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제가 독일에 있을 때였습니다. 버지니아 쪽에 사는 어떤 부인이 아내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편찮으시다니 정말 안타까워요. 내일 밤에는 여기 오실 수 있을까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어머, 자매님, 저는 남편이 아프다는 것도 몰랐는데요.” 그리고...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무개 자매님이 이쪽에 교회를 가지고 있는데 큰 강당을 빌렸어요. 사람들이 꽉 찼지요. 브래넘 형제님이 어젯밤에 오시기로 되어 있어서 자매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주님께서 자매님에게 메시지를 주셨기에 그냥 설교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리고 ‘잠시 기다리세요. 브래넘 형제님이 왜 안 오셨는지 알아보고 곧 돌아올게요’라고 하셨지요. 조금 있다 돌아와서는 ‘방금 그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밤은 못 오겠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내일 밤에는 꼭 오신다고 하니 모두 다시 오세요’라고 하셨어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브래넘 형제님은 독일에서 벌써 이 주 동안 설교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이삼 주 더 머무르셔야 해요.” 이런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겪게 됩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혼을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리오와 진이 와서 캐나다를 비롯해 여기저기 방송되고 있다고 알려 주기 전까지, 저는 그곳의 이 집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일에 관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어 형제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무어 형제님, 그 일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말했습니다. “리오 형제님과 진이 제가 온다고 광고되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형제님이 피터슨 씨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러자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것을 내보낸 것입니다...
결국 제 체면을 지키려면 코 자매님의 집회를 취소해야 했습니다. 저는 잭 코 형제님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그곳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 부인은 정말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십만 달러짜리 큰 소송을 당한 데다가 다른 일들까지 겹쳐 있습니다. 작은 양 떼가 흩어지지 않게 지키려면 정말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려가 도와드리려 했습니다. 아직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습니다. 자매님이 제게 전화해서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코 자매님, 그 일을 놓고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랜트 형제님이 제게 전화했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잭 형제님에게 그곳에 가 보라고 했습니다... 잭이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벌써 광고가 나갔고 전단도 다 돌았습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서 아침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16일에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조찬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코 자매님에게 전화해서 제가 못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때면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옛 속담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얇게 잘라도 양쪽 면은 있는 법이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 사우스벤드에 내려와 참 좋은 분인 톰스 형제님과 어젯밤 함께하게 된 것을 보고, 잭슨 형제님과도 함께하기 위해 여기 들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 사역과 모든 일에서 저를 늘 기억해 주시고, 그렇게 신실하고 충성스러우셨던 이 작은 교회에 올라와 여러분과 이틀 밤만이라도 교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왔을 때는... 저쪽에서 설교 예배만 드렸지요. 사실 저는 설교를 그리 잘하지 못합니다. 일어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토끼풀 먹는 말처럼 침을 흘립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가나안에 가서 새 포도를 좀 먹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포도를 먹으면 그렇게 되지요.
그래서 이번에 와서 오늘 밤처럼 이 작은 건물에 함께 모여 기도하면, 어쩌면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이곳의 병든 분들도 고쳐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라며 믿습니다. 이제 더 이야기하지 않고 주님의 책을 조금 읽겠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안수를 받았고, 지금도 제가 나온 선교침례교회에 목사 안수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침례교인들과의 교제를 사랑합니다. 침례교인들뿐 아니라 어디에 있든 모든 형제와 교제하기를 사랑합니다. 저는 몸이 오직 하나이며,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그 몸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아마도 몸 안에 있는 여러 사역의 은사를 그 몸이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은사들을 믿으십니까? 물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초자연적인 것이라면 믿지요. 이런 은사들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여도 성령은 같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아주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같으십니다... 멋지게 깎고 다듬은 다이아몬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하시는 일들을 그렇게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이 커다란 다이아몬드처럼... 다이아몬드에 비친 빛이 여러 빛줄기를 반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진짜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에서는 어떤 빛은 파랗고 어떤 빛은 초록일 수 있습니다. 빛줄기마다 다른 색깔을 띨 수도 있지만, 모두 똑같은 커다란 다이아몬드에서 반사되는 것입니다.
영적 은사들도 그와 같습니다. 코가 입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너는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형제들 사이에 조금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한다고 믿습니다.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사랑의 이야기이며, 선지자이며,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성경에 여러 방법으로 접근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지고, 배우려는 아기들에게는 드러나도록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물론 성경을 아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탄도 성경을 공부하는 자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주님과 논쟁하면서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교리문답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신학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이 책의 저자를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 놓으셨으니 참 좋습니다. 저처럼 배우지 못한 사람도... 저도 그분을 알 특권이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이제 그분의 책을 읽겠습니다. 그 책을 계시하고 열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잠시 고개를 숙여 저자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오늘 밤 아버지의 말씀을 펼쳐 놓고 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 주님의 말씀을 해석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오늘 밤 오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친히 말씀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말씀을 올바른 빛 가운데 우리에게 해석해 주옵소서. 우리는 진리를 알기를 갈망하는 굶주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논점을 두고 다투기 위해 진리를 알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워지고, 그분의 종이 되며, 다른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알도록 도울 수 있기 위해 진리를 알기 원합니다. 오늘 밤 주님의 임재로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셔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모든 마음에 전해 주옵소서. 그러면 아버지, 예배를 마칠 때 우리가 감사하며 모든 찬양을 아버지께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0절부터 이렇게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고하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들이 갈 때에, 보라, 그들 중 몇 사람이 그 도시로 들어가 이루어진 모든 일을 수제사장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그를 훔쳐 갔다, 하라. 만일 이 일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면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를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 하니 이에 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하매 이 말이 이날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공공연히 전해지니라. 이제 누가복음으로 가서, 누가복음 24장 31절부터 읽겠습니다. 그들의 눈이 열려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더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성경을 전하는 겸허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 세계에서 주님을 위해 혼들을 얻는 수가 이제 백만을 넘어 두 번째 백만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참된 책이며 모든 약속이 절대적으로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안의 모든 약속은 씨입니다. 씨가 알맞은 땅에 심기면 그 씨에 담긴 것, 곧 그 씨의 생명을 내놓게 됩니다. 오늘 밤에는 이것을 주제로 삼아, 시계를 보아 가며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부활과 그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옹호합니다”라는 주제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그것은 영원히 진리입니다. 한 번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실 수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그러면 ‘말’이란 무엇입니까? ‘표현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어떻게 세우시고 사람들을 어떻게 구속하실지 생각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속받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 계획을 생각하신 뒤 말씀으로 발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순간에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완성된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실제로 죽임을 당하신 것은 그로부터 사천 년 뒤였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간에 이미 완성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보시고 자신이 무엇을 하실지 아시며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 세상의 창건 때에 그분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거기서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제가 발견하는 큰 부족함은 두려움입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시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무언가를 꽉 붙들고 놓지 않아야만 하는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애초부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찾은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드러난 사람의 본성은 사람이 겁쟁이이며 죄를 지으면 도망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또 성경은 여러분이 확신을 가지고 안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여러분의 이름이 세상의 창건 전에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계시록에서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창건 때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니 태초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가운데 말씀으로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셨을 때,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나올 왕가의 씨를 약속하셨을 때부터, 하나님의 원수 마귀는 줄곧 그 씨를 멸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처음에 의로운 아들 아벨이 태어나고 불의한 가인이 태어났을 때, 우선 그는 의로운 씨를 없앤다고 생각하며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뱀과 땅에 영원히 이어질 땅의 심판을 선고하시며, 여자를 통해 한 씨가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실 때 그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씨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뱀은 시대가 흐르는 동안 줄곧 그 씨와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아벨을 죽였을 때 그는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씨 가운데 의로운 유일한 부분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셋을 일으켜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그 뒤에도 그는 선지자들을 없앴을 때 그분을 없앴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을 없앴을 때도 그분을 없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 의로운 씨를 죽였고 그분이 묻히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에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주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의심하는 사람들과 불신자들, 다른 종교인들, 사회복음 같은 것을 설교하면서 처녀 탄생과 부활을 부인하는 사회복음 설교자들 가운데서도 확실한 증거입니다. 제게는 그것을 부인하는 일이 기독교의 토대 자체를 빼 버리는 일입니다.
얼마 전 바다 건너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 토요일 오후 경기장에서 집회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행기로 도착해 마침 그 집회의 마지막 부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요일에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오만 명의 귀한 혼을 그분의 왕국으로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빌리가 주 예수님의 지극히 높으신 신성에 관해 설교하는 것을 들으며, 왜 그런 본문을 택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최근에야, 그들이 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관한 옛 츠빙글리의 가르침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칼뱅과 루터, 츠빙글리가 있었지요. 그런데 츠빙글리는 예수님이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지만, 처녀에게서 나셨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탄생에서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부분을 빼면, 성관계를 통해 나셨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관계로 나셨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셨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였다면, 그분의 피도 제 피나 여러분의 피가 우리를 속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속죄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처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어떤 남자도 거기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처녀를 덮으시고 혈구 하나를 창조하셨으며,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땅을 품으셨을 때,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품기 시작하시자 흙에서 생명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꽃과 초목, 식물의 생명이 나왔습니다. 흙에서 새들이 날아올랐고, 흙에서 짐승들이 일어났으며, 그다음에는 땅의 흙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들으셨습니까?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몸은 이 땅의 서로 다른 열여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칼륨과 칼슘, 석유, 우주의 빛 같은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이 모든 원소를 함께 섞으십니다. 그렇다면 과학에 따르든 말씀에 따르든, 땅에 생물이 하나도 있기 전에 우리 몸은 땅 위에 흩어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에서 우리를 취하셨습니다.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흙 속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흙에서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음식을 먹음으로써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명이 새로워지고 우리 안에 혈구가 더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을 때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무언가가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무언가가 죽지 않고서는 우리가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쇠고기를 먹으면 소가 죽은 것입니다. 양고기를 먹으면 양이 죽었습니다. 생선을 먹으면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빵을 먹으면 밀이 죽었습니다. 감자를 먹어도 그것이 죽은 것입니다. 그것도 생명입니다. 우리는 죽은 것으로 살아갑니다. 육신으로 살려면 무언가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죽지 않는 혼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성을 주는 영,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우리 인격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영입니다. 우리 안의 영으로 인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존재가 살도록 돌보기 위해 무언가가 죽어야 한다면, 이 속사람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어떤 분께서 죽으셔야 했겠습니까? 죽지 않는 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오직 그 죽음으로만 삽니다. 피가 해독제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무지한 가운데 밭의 열매, 곧 자기 손으로 일해 얻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서 천국에 들어갈 값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의로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어느 때든 사람이 하나님을 찾은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먼저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야 합니다. 처음에 성령께서 우리를 품어 땅에서 나오게 하셔야 했고, 우리가 무엇이 될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운데 그렇게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기에 오늘 우리가 이 모습으로 있다면, 우리가 떠나고 우리 몸이 땅의 사방으로 흩어진 뒤에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고 주님이라고 부르는 성령께서... ‘품다’라는 말은 ‘사랑을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땅의 칼슘과 칼륨과 석유에 사랑을 베풀어 함께 빚으시고 그것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마지막 날들에 우리를 일으키시겠다는 약속까지 주셨으니,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저를 바다에 묻어도 나팔 소리가 저를 깨울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얼마나 멀리 있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흙에서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의 증거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피를 흘리신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저는 피를 ‘쏟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쏟는 것은 실수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실수로 그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셨고, 목적을 가지고 하셨습니다. 갈보리에서 자신의 피, 하나님께서 주신 피를 기꺼이 내어 주시며 흘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요구하신 이유는... 어린양은 그림자의 형태로 우리 죄를 위한 화해의 제물이 되어 속죄하는 데 쓰였습니다. 하지만 죄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짐승의 피는 사람의 죄를 속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형일 뿐이었습니다.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의식하거나 죄짓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짓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성령께서는 이성의 추론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의 지적인 영역을 넘어서십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그렇게 많은 기복과 여러 일이 생기는 이유는, 그들이 지적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속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생각으로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따집니다. “그럴 수 있을까? 신유가 가능할까? 성령침례가 가능할까?” 이것이 지적인 추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믿음이 됩니다. 확실한 것이 됩니다. 아무런 의문도 없습니다. 영원히 다 해결된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은 따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전능하신 분의 보좌이며 그분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주신 이 크고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속죄를 이루신 뒤 그분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분의 피를 통해서만 성령께서 다시 돌아오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봅시다. 세포 하나까지 내려갑니다. 그 세포는 남성, 곧 아버지에게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피가 아니라 아버지의 피를 받았습니다. 암탉이 알을 낳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수탉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완벽한 알이라도 결코 부화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씨로 수정되어야 하며, 그 씨는 암컷이 아니라 수컷에게서 옵니다. 암컷의 꽃가루는 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둘이 만나면 부풀기, 곧 자라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사탄이나 의사, 설교자, 척추 교정사, 그 밖의 누구든 치유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모든 치유는 신유입니다. 제가 팔이 부러져서 의사에게 가서 “제 팔을 빨리 고쳐 주세요. 일을 마쳐야 합니다”라고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브래넘 씨, 정신을 치료받으셔야겠군요. 저는 팔의 뼈를 맞춰 드릴 수는 있습니다.” “선생님, 손을 베었습니다. 이런 손으로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빨리 낫게 해 주시겠습니까? 저 밖에서 무언가를 섞고 있거든요. 서둘러 끝내야 합니다. 손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브래넘 씨, 저는 손을 낫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시편 103편 3절은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팔의 뼈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사의 일입니다. 그것을, 해부학을 공부한 것입니다. 의사는 그런 일을 하고 여러 약으로 병균을 죽입니다. 농장에 쥐약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약이 병균을 죽이는 동안 하나님께서 고치십니다.
약은 세포를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약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생명만이 세포를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은 사탄에게서 올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사탄도 창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창조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탄은 창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창조된 것을 왜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점쟁이나 마귀 들린 사람, 혹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은 의로운 것이 왜곡된 것일 뿐입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와의 결혼 서약에 신의를 저버리고 불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십시오... 부도덕한 여자도 그의 아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아내와 사는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이며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여자와 함께하는 것은 의로운 것이 악으로 왜곡된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탄은 창조할 수 없고, 따라서 치유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의사도 치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약도 고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동안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고칩니다. 이것은 꾸며 낸 무언가가 아닙니다. 토템 기둥을 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옛 속된 표현을 용서해 주신다면, 무슨 속임수 같은 것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통해 갈보리에서 이루신 완성된 일입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시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습니다. 그분이 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받았습니다’, 과거형입니다.
그런데 이 혈구가, 짐승의 혈구가 터졌을 때, 경배하는 자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죽어 가는 짐승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제사장이 그 목을 베고 혈관을 끊으면, 어린양은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아담의... 아니, 아벨의 손에서 그랬듯이 작은 양의 털이 피에 젖고, 그 작은 것은 피를 흘리며 발버둥 치고 울며 죽어 갔습니다. 울면서 말입니다... 죄를 지은 죄인, 경배하는 자는 와서 자기가 죽어야 할 자리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을 통해 그와 화해하셨습니다. 그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를 대신하여 어린양을 드렸으므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의 혈구가 터졌을 때, 그 혈구 안에 있던 생명은 짐승의 생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임마누엘의 혈구가 터졌을 때는, 임마누엘의 혈구 안에 있던 영, 곧 생명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 생명은 바로 성령 자신입니다. 성령께서 경배하는 자 안에 들어오시면 그의 마음은 변화됩니다. 성경을 지적으로 이해하거나 어떤 신조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부활의 증거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한 뒤에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에는 증인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는 증언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계속 싸워 왔습니다... 갈보리에서 그 의로운 씨를 멸했다고 생각한 뒤에... 잠시 곁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봅시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마귀가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키도록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습니다. 결코 그러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셨을 때, 어린 아담과 이브, 그 사랑스러운 작은 머리를 아담의 어깨에 기댄 이브와 아담이 동산을 거닐 때... 바람이 불어 작은 이브가 “오!” 하면, 아담은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멎었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는 새끼 고양이처럼 그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저녁에 해가 지면 그들은 종려나무 아래, 혹은 에덴에 있던 어떤 나무 아래의 성당으로 가서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부드럽고 은은한 빛, 하나님, 로고스께서 나무 위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오늘 땅에서 즐겁게 지냈느냐? 잘 자라고 입맞추려고 내려왔단다.” 그리고 그들을 눕혀 재우셨습니다. 모든 짐승도 누워 밤새 쉬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구나. 이렇게 된 것이 마음에 드는구나.” 사탄이 지금까지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의 목적에서 패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분은 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완전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인도 봄베이에서 한 집회에 오십만 명이 모였을 때 환대를 받았습니다... 시장이 집회를 개회했을 때 말입니다... 그날 오후에는 시크교와 자이나교, 이슬람교와 불교 등 인도의 일곱이나 열 가지쯤 되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에게 접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벼룩이나 파리조차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어머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생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피의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날 밤, 말씀을 전할 공공장소에 가려고 두 시간 동안 거리를 헤치고 나갔을 때,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완전히 눈먼 사람의 눈을 열어 주시자 수만 명이 자기들의 주술과 관련된 것들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는 한 번의 제단 초청으로 삼만 명을 등록하고 돌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이천삼백 년 전에 죽었습니다. 무함마드는 대략, 한 천구백 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의 무덤에는 부활을 기다리는 백마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시크교와 자이나교, 그 밖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었습니다. 그 창시자들은 죽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빈 무덤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속자께서는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사탄은 그분을 죽여 무덤에 넣었을 때 그분을 없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가셔서 감옥에 있던 혼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일으키려고 마음속에 정하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저는 주님께서 무덤 곁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 평안하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 손에 주어졌느니라. 온 세상으로 가서 믿는 자들에게 이 표적들을 나타내 보이라.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바울은 복음이 말씀으로만 온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나타내는 성령의 권능과 나타남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누구에게입니까? 모든 창조물에게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의 삼분의 이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 보지 못했습니까? 수백만에 수백만을 곱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복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사탄은 바로 거기서 거짓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그분을 보았을 때...
권능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지켜봅시다. 그분은 무덤 안에 차갑고 창백하게 누워 계셨습니다. 창이 심장을 꿰뚫었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혔습니다. 군인들이 조롱하며 뱉은 침이 아직 수염에 묻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헝겊을 둘러 가리고 머리를 때리며 말했습니다. “자, 환상을 보는 자야, 예언하는 자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어 줄지도 모르지.” 조롱하는 소리가 아직 공중에 남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기적을 행하는 자야, 우리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아라. 그러면 너를 믿겠다.” 그분을 만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기적을 행해서 내게 보여 보아라. 그러면 너를 믿겠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마귀입니다. 그 마귀는 오늘도 사람의 육신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귀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를 벌이거나 자신을 광대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광대 노릇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옳은 일만 하셨으며, 아버지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므로 거짓말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런데 거기 서 계신 그분을 지켜봅시다. 중력이 힘을 잃습니다. 이제 그분의 발이 땅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십시오. 발 아래에는 빛이 있습니다. 그분은 점점 더 높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가십니다. 죽음이 힘을 잃었던 것처럼 중력도 힘을 잃었습니다. 그분이 중력의 중심이셨습니다. 중력을 창조하신 분이셨습니다. 죽음을 자신의 명령 아래 두셨듯이 중력도 자신의 명령 아래 두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 손에 주어졌느니라. 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그렇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는 그분과 함께 가셨고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를 보내시는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의 끝까지 우리와 함께 오시고 우리 안에 오십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하리니,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를 보십시오. 그는 그것을 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 사탄은 더럽고 비열한 큰 거짓말을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에게 “저기 대제사장에게, 지식인들과 학자들, 큰 교회에 가라”라고 한 것입니다. 존중과 경의를 담아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 시대에도, 성경 시대 이후에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이 공인된 교권 세력과 타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선지자 시대에 선지자들은 당시의 신학에 맞섰습니다. 요한의 시대에 요한은 그들을 독사 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똑같이 부르셨습니다. 위선자, 바리새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란 ‘연기하는 자, 꾸미는 자’라는 뜻입니다. 루터와 칼뱅, 녹스, 웨슬리, 스펄전, 생키, 피니 등 시대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부활을 확신하며 홀로 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대적했습니다. 자기들의 신학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일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입증되기만 하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이 입증되면 그분이 틀림없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확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말씀하시는 면에서 그분은 다른 철학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행하는 기적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을 수 없거든 내가 하는 일들을 믿으라. 내가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가 다시 일어나리라는 모든 약속,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모든 약속, 그 모든 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시지 않았다면 그분과 함께 죽었을 것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철학자들... 아니, 종교 교사들의 마음에 군인들을 매수할 생각을 넣었습니다. 돈을 주고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와서 그분을 훔쳐 갔다고 말하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술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성경은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원리와 권능과 나타내시는 일에서도 동일하셔야 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과거에 그분이셨던 모든 것 그대로 지금도 그분이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어떤 형식, 신조, 교단, 지적인 종교를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종교, 그리스도의 참된 종교라면... 누구나 종교는 가질 수 있습니다. 불교도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도 종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구원입니다. 참으로 구원이라면 우리의 구속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리드헤드 박사님, 모리스 리드헤드 박사님이 제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분을 아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큰 수단 선교회의 부회장이십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침례교인이시니 분명 진리를 아시겠지요. 오순절 교인들이 의자를 걷어차 뒤집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한 인도 청년에게 패했습니다. 그 청년은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귀국길에 제가 말했습니다. ‘왜 죽은 옛 선지자 무함마드를 버리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고국에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그 이슬람교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예수님이 저의 선지자보다 저를 위해 더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의 선지자는 코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선생님의 예수님에게는 성경이라는 책이 있었지요. 두 분 다 죽음 이후의 생명을 약속했습니다. 저는 제 것을 믿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모리스 리드헤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게, 청년. 자네의 선지자는 죽어 무덤 안에 있고 자네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의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그것을 입증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는 빈 무덤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인도에는 철학자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고 말하는 빈 무덤이 수백 개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처녀 탄생도 인도에는 수천 건이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불교 승려에게서 지식과 모든 지혜를 얻으셨다고 주장합니다. 인도에서는 그것이 널리 가르쳐집니다.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게. 우리에게는...”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이보게,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느끼네. 그것이 마음속에 있네.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쁨과 평안이 있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선생님, 우리 이슬람교인들도 기독교인들만큼 심리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철장으로 다스리시리라고 믿지요. 우리도 무함마드가 언젠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세상을 두루 다니리라고 믿으면서 그만큼 큰 기쁨을 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리스 리드헤드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우리의 무함마드는 죽음 이후의 생명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여러분 안에 계시며, 자신이 하신 일들을 여러분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분들이 그것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생각 없이 떠드는 청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 마가복음 16장을 말하는 것 같군. 우리처럼 더 깊이 공부한 학자들은 마가복음 16장, 9장 이후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한 부분을 알고 있네. 우리처럼 더 깊이 공부한 학자들은 9절 이후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계신 것입니까? 리드헤드 선생님, 코란은 전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소위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크게 패한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우리가 모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와 신학교와 학교와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것들은 다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빠뜨렸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할 시간이 이천 년이나 있었는데 아직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삼분의 이는 그것을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기만 하면, 이십사 시간 안에 온 세상이 알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얼마나 옳습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발로 땅을 차면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보다 똑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형제님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온갖 광신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저 벽을 도배할 만큼 학위가 많습니다. 문학사 학위를 받을 때는 분명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안 계셨습니다.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는 분명 그리스도를 찾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가르치는 분들이 잘못된 것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할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 무지를 떠받칠 지팡이로 삼으려고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쉼표를 찍었어야 할 곳에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그분들의 신학에 하나님께서 더하실 수 있는 것을 더하면 좋습니다. 선생님이 배우신 가르침, 나오신 학교들은 훌륭합니다. 모든 학교와 신학교, 병원과 그 모든 것, 그런 도움과 그런 일들을 부정하려 한다면 잘못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하고,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앞장서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며,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주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세상에 입증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제가 마지막에 읽은 말씀 속에서 엠마오에서 오던 사람들처럼,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걸으면서 그분인 줄 몰랐던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름다운 부활절 아침입니다. 첫 아침, 첫 부활절에 예수님은 살아 계셨고 세상에 나와 계셨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던 두 사람이 그분과 함께 걸으면서도 그분인 줄 몰랐습니다. 얼마 전 여러분을 그 병상에서 일어나게 한 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그 일로 의사에게 모든 찬사를 돌렸지요. 의사의 손을 잡고 “선생님, 친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를 일어나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였습니다”라고 했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그 사고에서 지켜 준 분은 누구입니까? 운전자를 칭찬했을지도 모릅니다. 틀림없이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지성이 민첩하게 작용해서, 어떻게 즉시 운전대를 돌려야 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지켜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불경기 때, 통에 밀가루가 없고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필요할 때, 마음씨 고운 이웃이 와서 먹을 것을 주었다면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 이웃에게 감사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서 일하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믿었던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헛되었고, 그분은 죽어서 떠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슬프고 상심한 채 걸어갔습니다. 자기들 곁에서 걷고 계신 분이 그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신다면, 여기서 작은 교훈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까? 그들이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로큰롤이나 부기우기 같은 온갖 것들을 즐기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여러분 앞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 속했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대화 속에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거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을 바꾸십시오. 그분을 보기 원하시면 그들처럼 하십시오. 그분을 묵상하십시오. 그분과 그분의 부활에 관해 대화하십시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몇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분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왜 그런 마음 상태에 있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 당신은 그저 나그네이시군요. 나사렛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모르시는군요. 우리는 그분이 오실 메시아,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인 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분께서 돌이켜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고 성경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을 마음으로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고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튼 신학이나 요즘의 기이한 것들로 여러분을 이끌어 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종이라면 말씀 안에 머무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하실 것입니다...
손에서 기름이 나오게 하거나 얼굴에서 피가 흐르게 하려고 애쓸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참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자신이 감리교인이나 장로교인, 오순절 교인이나 나사렛 교인이라고 논쟁할 때가 아닙니다. 자기 주장을 놓고 다투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말씀에 서서 믿으려 할 때입니다. 그분을 생각하십시오.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의 창건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바로 그 말씀... 선지자들에게 전해 내려온 말씀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분께서 태초에 발하신 말씀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들이 걸어갈 때... 그 부분에 관해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들은 길가의 작은 여관에 이르렀습니다. 조그마한 오두막 같은 곳으로 여관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산지를 향해 엠마오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마 엠마오에 이르기 전에 그 작은 여관에 멈추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작은 식당이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더 가시려는 듯이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하셨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을 고쳐 주시지 않을 것처럼 하셨을 때 말입니다. 그냥 지나가실 것처럼 하셨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반응을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그분을 믿는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하지만 글로바와 그의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그분께 들어오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향해 그런 태도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간청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는 이유입니다. 저는 네 분쯤 되는 왕들을 위해 기도할 특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듯이 영국의 조지 왕은 다발성 경화증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큰 사람은 작게 행동합니다. 크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작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허세를 부리려고 합니다. 큰 사람은 작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땅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모든 천사와 천사장, 모든 왕좌 위로 높이셨습니다.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얼마나 낮아지셨던지 가장 낮은 도시에 가셨고, 그 마을에서 키가 가장 작은 사람조차 그분을 내려다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얼마나 높이셨던지, 그분께서 하늘을 바라보시려 해도 몸을 굽히셔야 합니다. 보좌가... “오 주여, 주의 보좌는...” 아시겠습니까?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그들이 문을 닫고 방에 모여 있을 때, 아마 종업원이 들어왔고 그들은 먹을 저녁 식사를 주문했을 것입니다. 종업원이 나가자 예수님께서는 ‘이제 나를 알릴 때가 되었구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니까’ 하고 생각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대화 중에나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 오실 때 결코... 사람이 몇 명이든 상관없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면 어디든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 그분은 언제나 자신을 알리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신 방법은... 보십시오. 그분은 그들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일을 하셨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와 똑같이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그와 똑같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빵을 떼시고 축복하실 때,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 돌아갔습니다. 이제 자기들의 종교를 두고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 자기들이 종교를 얼마나 잘 아는지 큰소리치려고 뛰어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눈이 열렸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깨닫는 눈이 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똑같은 주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성경이 그분을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분이셨습니까?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셨습니까? 오늘날의 어떤 사람들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나는 신유를 행하는 치유자다”라고 하며 다니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일들을 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잠깐 요한복음 1장으로 가 봅시다. 베드로가 그분께 왔습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베드로의 이름을 아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요나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이제부터 너를 베드로, 곧 ‘작은 돌’이라고 부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이 회심했습니다... 아니, 빌립이지요. 그는 곧바로 자기 친구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것을 보면 회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친구는 크고 지위 높은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분이셨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신다면, 요즘 말로 ‘광신자’, 마귀 들린 자, 교육받지 못한 자로 여겨지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성경은 그분의 제자들이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종교계에서 소외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회심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찾아 나섰습니다.
빌립이 가서 나다나엘을 찾았는데, 그는 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라고 말했습니다. 이 훌륭한 사람은, 어떤 교단에 속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헤롯 당원이었든 무엇이었든, 옷을 털며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잠깐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빌립은 제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좋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와서 보게.”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와서 보게.” 그가 예수님 계신 곳에 왔을 때, 아마 예수님은 기도 줄에서 기도하고 계셨거나 다른 일을 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회중 가운데 서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보시자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는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불신자일 수도 있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유대인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랍비는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을 뵌 적이 없고, 선생님도 저를 보신 적이 없는데, 제가 그런 사람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시 말하면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산을 돌아 삼십 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얼마나 놀라운 눈입니까! 그 확고하고 신앙에 철저하며 총신처럼 곧은 유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모든 참된 신자가 할 고백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것을 말했으므로 나를 믿느냐? 네가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 무렵 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을 행하실 때 유대인들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알세붑은 마귀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점쟁이다. 텔레파시나 점치는 영으로 이런 일을 하고 마귀들을 내쫓는 힘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용서하리라. 하지만 성령이 오셔서...” 다시 말해 똑같은 일을 행하실 때 “그분을 대적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성령이 그 일을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한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을 봅니다. 그분은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항변했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항변하며 말했습니다. “주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두가...”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게서 힘이 빠져나간 것을 안다.” 혹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virtue’라고 되어 있는데 ‘쇠약함’이라는 뜻입니다.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둘러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에 사로잡혀... 실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권능을 부여받으셨습니다. 그렇지요? [회중이 “아멘”이라고 말한다.] 이제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건 텔레파시나 점치는 것 같은 어두운 쪽 이야기처럼 들립니다”라고 하십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읽는 것’과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 이 두 표현 사이에 어떤 의미 차이가 있습니까?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둘 다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사용하셨습니다. 점쟁이는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가지도 않고, 열매를 맺지도 않습니다. 그... 여러분은 그들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사가 왜곡되어 마귀에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거기 서 계신 그분의 위엄 있는 눈이... 그분은 체구가 작으셨고,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얼굴을 감추듯 했고, 그분은 왕처럼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를 찾으셨을 때, 그 여자는 혈루증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분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 베드로에 관해 말씀하실 수 있었던 분입니다. 오늘도 동일한 예수님이시고, 자신이 하신 것과 같은 일들을 약속하셨다면,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요한복음 14장 7절입니다. 오늘도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여기서 ‘세상’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코스모스’로, ‘세상의 질서’, 교회의 질서와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이 ‘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한 곳에서는 “너희 안에도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괜찮으시다면 한 가지 더 보겠습니다. 우물가의 여자로 가 봅시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여리고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시는데, 사마리아는 이 위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 어쩌면 젊은 여자, 창녀가 우물로 나왔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물을 길으려고 정오쯤 나왔던 것 같습니다. 밤새 밖에 있다가 낮에 내내 잠을 잤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여자들은 우물에 와서 두레박 줄을 내립니다. 동방에 가 보셨다면... 그들은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교제를 합니다.
그 여자는 혼자 두레박을, 아니, 물항아리를 내렸습니다. 저는 여자들이 하나는 머리에 이고 양쪽 허리에 하나씩 얹은 채,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여자, 아마도 아름다운 여자가 두레박 줄에 항아리를 매달아 내려보냈습니다. 그 주위에... 항아리처럼 생긴 것인데, 일종의... 아래쪽은 크게 불룩하고 목은 길며 손잡이가 나와 있습니다. 그 둘레에 고리를 걸어 고정한 뒤 내려보냅니다. 그러면 옆으로 기울어 물이 차고, 그것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항아리를 끌어 올려 머리에 이려던 참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이 작은 풍경 속 덩굴 사이에 젊은... 아니, 중년의 히브리 남자가 앉아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여자를 바라보셨을 때, 그분은... 겨우 서른 대이셨지만 성경은 그분이 쉰 살쯤 되어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오십 세도 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본 사람이라고 말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육신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그것을 봅니다. 지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령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적인 것으로는 영적인 일들을 밝혀낼 수 없으며, 성령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을 주목해 봅시다... 여자가 물항아리를 들어 머리에 이려 하자 이 히브리 사람이 말했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 그때 그 땅에는 분리 관습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부에서 백인과 유색인 사이에 분리가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그 여자에게 바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아니, 당신들 유대인들은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과 아무 관계도... 상종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상종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이 부분은 제 말을 믿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리로 보내셨고, 그분은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것은 관습에 맞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했을 것이다. 내가 네게 주는 물은 네가 여기 와서 길을 필요가 없는 물이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이 우물은 훌륭합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팠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식으로는 일종의, 글쎄요, 배신자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여자가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팠습니다. 그분의 가축들도 여기서 마셨고”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분도 여기서 마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이 물보다 더 좋은 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대화를 계속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아무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우리는 이 산에서 경배하는데, 당신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우리 유대인들은 구원을, 그것이 어디를 위한 것인지와 그 모든 것을 안다...” 대화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누구 아시는 분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없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이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누구였습니까? 유대인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맞다. 네게는 다섯이 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무슨 말을 할지 보십시오. 유대인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그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인 종교 지도층은 무엇이라고 믿었습니까? “당신은 바알세붑, 마귀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텔레파시나 점치는 능력입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의 우두머리입니다. 바알세붑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사탄이 사탄을 내쫓을 수 있다면, 그의 왕국은 분열되어 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탄은 사탄을 내쫓을 수 없습니다. 치유는 마귀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여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선견자입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 압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리라고 배워서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제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으니 선지자이심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분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닙니까?” 다시 말해 그것은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차갑고 지적인 신학 속에서, 그런 일들을 바라보게 하는 성경의 참된 가르침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예언에는 대개 복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을 계속해서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장인 5장의 베데스다 연못까지 말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서 그분을 계속 따라가 보십시오. 언제나 똑같습니다. 기도 줄을 불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여기서 이 말씀 하나를 살펴봅시다. 그분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내일 밤에는 다른 곳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이 연못으로 내려가십니다. 성경이 요한복음 5장에서 말씀하는 곳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복음 5장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연못으로 내려가셨는데, 그곳에는 허약한 사람들의 큰 무리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보십시오.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고, 눈멀고,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이 아는 대로, 신학자... 아니, 히슬롭의 『두 바빌론』이나 요세푸스 또는 초기 역사가들의 글을 읽으면, 역사가들은 “그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광경이었다. 주님께서 천사를 내려보내 물을 휘저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정통 교회가 자기들의 정통적인 가르침 안에서 그런 일을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한 무리의 광신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천사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천사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천사였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바람일 뿐이고, 사람들이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이며, 거기 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휘저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물살은 한쪽으로 흐르고 물결은 반대쪽에서 오는 것입니다. 위험한 물입니다. 누구든 믿음을 가지고 먼저 들어간 사람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직후, 예수님께서는 효능이 가득한 옷을 입으시고 그 사람들 사이를 걸으셨습니다.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고, 눈멀고,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 사이를 말입니다. 긍휼이 충만하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긍휼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긍휼... 우리는...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아, 이것은...” 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동정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두 단어, ‘필레오’와 ‘아가파오’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필레오는 ‘교제’라는 뜻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향해 갖는 사랑입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아내를 위해 다른 남자를 죽이게 할 수도 있는 사랑입니다. 누가 아내를 모욕하면 총을 들어 그를 죽일 것입니다. 그것이 필레오 사랑입니다. 하지만 아가파오 사랑은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 많은 혼을 위해 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동정과 긍휼의 차이도 그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옷에 효능을 지니신 채 그곳을 지나가십니다. 걷지 못하는 자, 다리 저는 자, 눈먼 자, 몸이 오그라든 자 곁에서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로 가득해서 아마 어떤 사람은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돌아가셔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줄곧 찾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깔개 위에 누워 있는 한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북부 사람들인 여러분이 ‘깔개’가 무엇인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 위에서 자라났습니다. 작은 것, 작은... 누울 수 있는 것인데, 담요 같은 것을 접어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결핵을 앓았다고 해 봅시다. 혹은 전립선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삼십팔 년 동안 그 병을 앓았습니다. 진행이 더뎌서 그를 죽게 할 병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침을 받으려고 물에 들어가려 하며 소리치고 울부짖는, 걷지 못하고 눈멀고 다리를 절고 몸이 오그라든 그 많은 사람들을 지나가셨습니다. 사랑과 긍휼이 충만하신 채 깔개 위에 누워 있는 이 사람에게 오셔서 “선생님,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쉬운 환자만 골라내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 사람이 “저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내려가는 동안 누군가 저보다 빨리 달려갑니다.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저보다 먼저 들어갑니다. 저를 붙들고 군중을 밀어젖히며 달려가 줄 젊은 사람이 여기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 카드를 쓰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물이 휘저어질 때 저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 그 사람은 “잠깐만요. 도대체 누구십니까? 제 상태를 아십니까? 이보시오, 저는 여기 여러 해 동안 있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희생 헌물보다 낫습니다. 그는 깔개를 집어 돌돌 말아 어깨에 얹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내려갔습니다. 다 끝난 것입니다. 계속 읽어 보십시오. 시간 관계상 같은 장 19절에서 멈추겠습니다. 예수님은 추궁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이 도시의 시장이 주 예수님을 초청하고,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고 눈멀고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을 모두 데려와 길거리에 눕혀 놓았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이를 지나가며 그런 일을 하셨다면, 스터지스에서도 추궁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오늘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추궁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질문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지만 그곳에서 주된 문제는 한 사람이 안식일에 자기 자리를 들고 다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 잘 들으십시오. 그 말은 “확실히, 확실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라는 뜻입니다. 맞습니까?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하노라.” 무슨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먼저 환상으로 보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효능이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나사로의 집을 떠나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나흘을 기다리라고 하셨을 때에는 효능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만일 그가 내게 돌아와 자기를 일으켜 달라고, 혹은 자기가 병들었을 때 돌아와 기도해 달라고 했다면...”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미 그분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셨으므로 거짓말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지금까지 일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떠나가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으리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믿는 대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저도 제 말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제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분의 말씀보다 더 나은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은 진리이거나 오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약속하셨다면, 그것은 진리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다고 믿습니다. 그분의 육신의 몸은 오늘 밤 아버지 하나님 앞, 하나님의 위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성령은 교회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힘을 공급하는 포도나무이시고,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오늘 밤 이 땅에서 그분께는 여러분의 입 외에 다른 입이 없고, 여러분의 눈 외에 다른 눈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는 힘을 공급할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이제 그분께서 돌아오신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저는 거기에 전혀 관여할 수 없고, 그분이 그렇게 하실지조차 모릅니다. 그분께는 교회 안에 두시는 다섯 가지 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이 한 사람에게 안수하고, 이 사람을 따로 세우고 저 사람을 따로 세우며, 이 사람에게 은사를 준다고 하는 신학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침례교의 가르침인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보십시오. 첫째는 사도입니다. 맞습니까? 더 적절한 말로는 선교사입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보냄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선교사는 ‘보냄받은 자’입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전도자, 목사,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려고 그들을 교회 안에 두십니다. 그들은 은사이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각 직무에서 섬기는 영들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모임에는 회중 가운데 임하는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누구에게 속한 것이... 그저 이곳에 속한 것입니다. 지역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것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저것을 할 수 있으며, 이 사람은 다시는 그것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저쪽의 다른 사람은... 그것은 그저 그 지역의 은사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특히 오순절 교인들이 얼마나 혼란을 일으켰습니까! 가르침 없이 그저 영만 따르다 보니 온갖 현대의 기괴한 것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명예를... 수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것들은 말씀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여러분은 구약 시대에 그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분별했는지 아십니다. 선지자는 예언을 하고, 꿈꾸는 자는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아론에게는 흉패가 있었고, 그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하거나 꿈꾸는 자가 꿈을 말할 때, 그 위엄 있는 초자연적인 빛이 우림과 둠밈 위에서 번쩍이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진짜처럼 들려도 상관없습니다.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림과 둠밈 위에 그 빛이 번쩍이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진리이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성경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셨던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성경을 읽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아론의 제사장직 아래 있던 그것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오늘날 이것이 하나님의 우림과 둠밈입니다.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든, 선지자가 무엇을 말하든, 꿈꾸는 자가 무슨 꿈을 꾸든, 이 말씀에 어긋난다면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말씀 위에 인정하시는 빛을 비추십니다. “누구든지 빼거나 더하면 그의 몫도 생명책에서 빠지리라.”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 은사들을 질서 있게 두셨다고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또 이 땅에 있는 주 예수님의 몸이 모든 교단의 믿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믿는 사람으로서, 저는 참으로 엄숙하게 믿습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세상에서 일어날 다음 큰 사건이 주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믿습니다. 언제일까요? 저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수소폭발과 마지막 때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홍수 이전에 그랬듯이 세상이 흔들려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세상이 태양으로부터 멀어졌고, 열기와 습기... 아니, 열기와 냉기가 만나 습기를 만들어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합니다. 이번에는 태양 속으로, 세상을 다시 궤도에서 곧장 날려 보내 태양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두 번째로 멸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동안 이런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교제가 참으로 풍성한 이런 작은 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작은 무리로 함께 앉아 있으니 바울이 올라가 아볼로와,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소수의 믿는 자들을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고, 요한의 침례만 아는 아볼로라는 훌륭한 침례교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시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그들이 말했습니다. “요한의 침례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참으로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주며, 자기 뒤에 오실 분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언하고 방언을 말했습니다. 진영에 큰 기쁨이 있었고, 권능의 일이 많이 행해졌습니다.
오 아버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날 밤, 물에 잠겨 가던 작은 배에서 그분은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배의 격벽 안쪽 아래에 있던 주님의 종 바울... 작은 배는 가라앉고, 파도마다 번개의 마귀들이 번쩍이며, 번쩍이는 이빨을 드러내듯 배 안으로 빛을 비추면서 “이제 우리가 그를 멸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광신자로 여겨지던 작은 바울은 갑판으로 뛰어나와 손에 매인 사슬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제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이 밤에 제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르 앞에 가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항해하던 모든 사람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제게 보여 주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주님은 바울과 함께 계셨습니다.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서 온갖 삶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 오셨습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호소하고 설득해 오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여기 있는 우리 형제님과 주위에 서 있는 한두 분 외에는 이 회중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밤 우리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기를 기도합니다. 엠마오에서 글로바와 그의 친구를 만나셨던 것처럼 오늘 밤 우리를 만나 주옵소서. 오늘 밤 이 작은 곳을 떠날 때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오늘 밤 이곳에 나타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입술과 눈과 손을 사용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밤 무언가를 행하시되,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작은 믿는 자들의 무리가 자기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고,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며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음을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말씀대로 이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주님의 무익한 종인 저를 더 사용하실 수 있다면 주님께 저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이 회중도 믿음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믿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불신 때문에 많은 권능의 일을 행하실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어제 행하신 것처럼 오늘 일하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불신뿐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 불신을 없애 주시고 주님의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늦게까지 붙들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참으로 훌륭한 작은 회중입니다. 말씀이 깊이 스며들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존중해 주시기를 믿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들에 대해 증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엄숙히 믿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그분이 만나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성경은... 성경은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그날, 여자가 실제로 그분께 손을 댔을 때 그분이 돌아보시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셨으며, 효능이 그분을 통해... 아니, 그분에게서 나갔고 그분은 알아보셨다면... 그런데 성경에서,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 바울이 히브리서에 “그분은 이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연약함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미 죽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께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이 성경 말씀이 성취되려면 어떤 영적인 나타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해지는 모든 일은 성경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오늘 밤 예수님을 찾아 나선다면 우리는 어떤 분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저의 삶을 볼 때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십니다. 시계의 큰 태엽이 똑딱거리게 하며 모든 부품이 정확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감정을 다스리십니다. 습관을 다스리십니다. 감각을 다스리십니다. 믿음을 다스리십니다. 바로 그 큰 태엽, 여러분 마음 한가운데 계시며 여러분을 다스리시는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형제들이 녹음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제게는 치유할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낮고 자격 없고 무익한 하나님의 종일 뿐입니다. 겸손해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제가 그분과 함께 그런 체험들을 하고도 지금 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니, 저의 간증이 부끄러워 겸허해집니다. 그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자, 빌리나 진이... 벌써 다 나누어 주었습니까? 좋습니다. 여기서 기도받고 싶은 분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보려 했습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받고 싶은 분은 모두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여러분. 전부 다입니다. 누가 먼저일까요? 좋습니다.
그가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1, 2, 3, 4, 5, 6, 7 같은 식으로 번호만 적혀 있는 카드입니다. 번호가 무엇이었든 말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섞어서 나눕니다. 잠깐, 자네가... 1번부터 1번까지요. 때로는 오십 장만 나누어 주고, 다음번에는 50번부터 계속하기도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무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아시겠지요.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설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가능한 만큼씩 줄을 세워 기도해야 합니다. 자, 누군가 보시면... 누구든... 고침을 받으려면 꼭 기도 카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치유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들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카드가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 와서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손을 대거나 여러분이 제게 손을 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분께 닿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제사장은 제가 아니라 그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어디 계시든... 자, 보십시오. 일어설 수 없는 분이나 그런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이제 줄을 서 보겠습니다. 어디에 서면 좋을까요? 아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뭐라고요? 바로 여기요. 좋습니다. 1번? 기도 카드 1번입니까? 좋습니다. 2번? 2번 가지신 분? 3번? 4번? 5번? 한 번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여기 공간을 한번 봅시다. 가능하면 잠시 뒤 몇 분을 더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봅시다. 1, 2, 3, 4, 5. 6번도 나와 보시겠습니까? 한 분 더 설 자리가 있습니다. 6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청년, 자네군요. 7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8번? 이제 어떻게 서 계신지 보겠습니다. 8번? 부인께서 가지고 계십니까? 좋습니다. 9번, 9번 가지신 분은 누구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10번, 10번 가지신 분은 누구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이 정도 인원인 것 같습니다... 서 계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은 이만하면 되겠습니다. 작은 기도 줄입니다...
이제 제 온 마음과 제 안의 모든 것을 다해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경건한 태도로 있어 주시겠습니까?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제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저는 시도하고... 잠시 후면 제가 거짓말쟁이였다는 것이 입증되든지, 제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 입증되든지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했다는 것을 그분께서 입증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겸손히 간구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여러분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슨 신화나 소망 없는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실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지금 오직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하시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빛의 사진, 주님의 천사 사진을 보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많은 분이 보셨군요. 여기 책에 있을 것입니다. FBI와 그들 모두가 그것을 조사했습니다. 워싱턴 D.C.에 가면 사진으로 촬영된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로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아, 저것은 사진이 선명하지 않군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저는 책을 파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라디오 방송도 없습니다. 고든 린지가 그 책을 인쇄하면, 저는 사십 센트 싸게 사서 가지고 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팔게 합니다. 그런데 매번 손해를 봅니다. 많이 거저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 값을 낼 돈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가서 줍니다. 그런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십시오. 그러니 저는...
그저 고든 형제님의 그 작은 메시지 때문에... 다른 책이 훨씬 낫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아닙니다. 잊었군요... 아, 『남아프리카』... 그렇습니다. 학교 시절 빌리 그레이엄의 친구이며 동료였던 스타드스클레브, 아마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학교에 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육군 대위이자 군목인 줄리어스 스타드스클레브가 그 책을 썼습니다. 근본주의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진심 어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 믿음을 드리겠다고 약속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자가 있었을 때 예수님은 아무것도 모르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께 환상을 전혀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끌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저는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은사입니다.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기어 다닐 때였습니다. 두 살이 채 안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이른 일은 환상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그 환상은 제가 인디애나주 뉴올버니라는 곳 근처에 살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삼십칠 년 동안 살았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사십, 그곳에 산 지 사십오, 사십사 년입니다. 제가 마흔일곱인데 서른일곱인 것처럼 말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세 살 때 그곳에 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실수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 그분이 기름을 부으십니다. 어떤 사역자가 강단에 오를 때와 똑같습니다. 마음속에 설교 주제를 품고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 성령께서 그를 통해 설교하십니다. 그것이 목사나 교사나 복음전도자입니다. 사도도 똑같이 일합니다.
저는 선지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의 종입니다. 저는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종일 뿐입니다. 지식의 은사라고 하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제게는 내세울 공로가 전혀 없으므로 그분께서 은혜로 주셨습니다. 여기서 기도 줄에는 서지 않지만 기도받고 싶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카드 같은 것이 없어도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그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기름을 부어 주시면 여러분은 온 마음으로 “주 예수님, 이것이 진리임을 온 마음으로 진실하게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런 다음 여러분이 구한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고 이루어 주시는지 보십시오. 좋습니다. 빌리, 다 괜찮습니까?
여러분을 서 있게 해서 마음이 쓰입니다. 형제님, 이분이 환자입니까? 이분입니까? 이리 오십시오. 선생님, 바로 여기면 되겠습니다. 오늘 밤 여기에는 성경의 한 장면, 두 남자가 만났던 경우와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림과 둠밈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남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났습니다. 아마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형제님? 우리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마 태어난 때도 여러 해 차이가 나고 태어난 곳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주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 관한 어떤 것을 알아보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여기 오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선생님을 모른다면, 또 이 건물 안에서 제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저기서 녹음하던 리오와 진, 바로 여기 있는 목사님인 이 형제님, 그리고 여기까지는, 또 곁에 서 있는 형제님, 문에 서 계신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밀먼, 밀먼 형제님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이 건물 안에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그분들뿐입니다. 여기서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제가 여러분을 모르고 여러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기도 줄에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아시겠지요. 여기 이분은 이미 그렇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제 주 예수님께서... 만일 이 사람이...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어떤 나쁜 일을 하려고 올라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왔든 죄인으로 왔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왔든, 재정적인 문제에서 주님께 도움을 구하러 왔든, 어쩌면 가족을 돌보거나 곧 빼앗길 집의 대금을 갚으려고 왔든 말입니다. 혹은 가족과의 가정 문제, 무언가 잘못된 일 때문에 왔을 수도 있습니다. 병들고 도움이 필요해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에 관해 단 하나도 모릅니다.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그분이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여기 서 계시는데, 이 사람이 병들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신중하게 대답하십시오. 그가 예수님 앞에 서서 “예수님, 저를 고쳐 주시겠습니까?”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고쳐 주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구원이 완성된 일임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죽으셨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치유는 완성된 일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실례지만 저는 겨우 이 주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천구백 년 전, 그보다도 더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이 주 전에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완성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는 대제사장으로서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대고 그분이 돌아보셔서 그 여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말씀해 주신다면... 이분이 직접 판단하게 하십시오. 제가 “이보십시오. 선생님, 병드셨습니까?”라고 묻고, 그분이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그럼 제가 안수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으실 것입니다”라고 한다고 합시다. 그가 그것을 믿을 수 있을지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주 예수님 시대에 하셨던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 그 사람이 이미 행한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의 증인입니다.
유대인들은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꾸며 낸 속임수야. 그뿐이야. 저 사람에게는 텔레파시 같은 것이 있다니까. 그것뿐이야. 그가 빌립에게... 아니, 나다나엘에게 나무 아래 있었다든지 저기서 무엇을 했다든지 말했을 때 말이야. 그건 그저... 그 사람도 한패야. 그뿐이야. 무슨 속임수가 있는 거야.” 마귀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행동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들으십시오. 기적을 직접 겪은 사람은 실상을 알았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 나다나엘은 오늘날에도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는 영광 가운데 있으며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그 비판하던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이 있는 한, 읽게 될 나다나엘의 이야기도 있으리라는 것은 압니다.
선생님, 이제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서서 우리 삶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이 그리스도인이심을 알아봅니다. 선생님의 영이... 저는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영이 다가오면서 환영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고, 저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선생님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여기 오셨습니다. 주 예수님께 무언가를 구하러 오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선생님이 믿도록 무언가를 하실 수 있다면... 제가 설교자라면, 사실 신학에는 그리 밝지 못하지만, 말씀을 전함으로...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은 어떤 사람들에게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십니다. 저는 그렇게 할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제게 다른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여기 계시고 부활하셨음을 여러분이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여기 서 계신다면, 부활 전에 이곳에 계셨을 때 하셨을 것과 똑같은 일을 이 사람에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똑같은 일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이분이 판단하게 하십시오. 이제 참으로 경건한 태도로 계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께 자신을 내어 드리는 동안 모두 경건한 태도로 계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잠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분은... 병 때문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치유를 구하려고 오셨습니다. 이분은 신장의 문제를 고쳐 달라고 구하고 계시며, 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신장과 장입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이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선생님을 고치는 것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생님의 삶은 숨길 수 없습니다.
믿고 계십니까? 그분과 더 이야기하면 할수록... 환상은 사람을 아주 지치게 합니다. 환상이 얼마나 힘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다니엘은 환상 하나를 보았는데, 그것 때문에... 여러 날 동안 머릿속이 괴로웠습니다. 무언가가 몸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생명 같은 것이 말입니다. 이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이분에게 다른 말씀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을 위해 주님께 구해 봅시다. 다른 분에게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잠시 그분께 구하고 그렇게 하실지 봅시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었든 선생님께 어떤 말씀이 전해졌는지 제가 나중에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저기 녹음된 것을 통해서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든 진리였습니다. 무언가가 말씀하는 것을 들으셨지요? 그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말씀이었든 사실입니다. 맞습니까? 정확한 사실입니다. 이제 이쪽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으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시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사밧이 앞에 있음을 내가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왕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음악하는 자를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음악하는 자가 연주하자 그 선지자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것입니다.
회중 여러분이 아직 제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이분은... 사진에서 보신 그 빛이 이분을 바로 둘러싸고 있고, 이분은 다시 제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분은 무언가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검사를 받은... 장에 있습니다. 장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수술 같은 일을 겪은 것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나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거기에... 이것 때문에 안에도 유착이 생겼습니다. 제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임을 아시지요? 보실 수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여기 누군가 과학적인 것을 원하신다면... 제가 방금 서 있던 차원은 다른 세계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 감정이 생기기 전에 그 감정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빛이 이분을 둘러 돌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무엇이 문제였든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 여기 서 있는 이분에게 주님께서 아시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시거나 그가 구한 것을 무엇이든 주고자 하십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교회에 주신 마지막 사명이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행하며 우리 형제님이 구한 것을 받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이제 아무것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것이 네게 생기리라.” 죄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오직 하나뿐입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도박하고 간음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불신의 속성들입니다. 믿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주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물론 부인과 저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부인도 여기서 만난 것 외에는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장면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성경 시대에 살면서, 한 여자가 우물로 오는 모습을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싶으신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때에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다시 그 자리에 와 계십니다. 제가 그분이라는 뜻도 아니고, 이 부인이 주 예수님께 나왔던 그 여자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 여자는 이방인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분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분께 속했습니다. 그분은 저의 아버지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하지만 이 부인은 제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똑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그분이 똑같이 하실 것이라고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부인도 그렇겠습니까? 제가 부인을 모르는 사람임을 아시니까요...
부인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것은 부인의 형제인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의 반응을 살펴보십시오. 누구든 볼 수 있다면... 제게 보이는 것처럼 여러분도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기에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불기둥이 있습니다.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우리는 모두 그 불기둥이 그리스도, 언약의 천사였음을 압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말씀하신 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그 불기둥, 그 빛이셨습니다. 오늘도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부인, 두려워하고 계시는군요.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수술을 두려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출혈이 있었고 피가 쏟아졌습니다. 수술이 두려워서 지금 의사에게 가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수술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다. 미시간주 에드모어라는 곳, 아니면 그와 비슷한 이름의 곳입니다. 이름은 앨버트 레아 부인, 혹은 레아, 철자가 R-E-A입니다. 맞습니다. 지금 부인의 삶은 숨길 수 없습니다. 저는 부인의 치유자가 아닙니다. 형제입니다. 하지만 저분, 지금 여기에 부인을 아시는 어떤 분이 계십니다. 제가 부인을 모른다는 것을 부인은 아십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아시는 바로 그 예수님이십니다. 그저... 저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일 뿐입니다. 그분의 임재임을 느끼십니까? 그분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시지요? 기도합시다.
하늘 아버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아버지의 유일하신 사랑하는 아들 주 예수님을 믿으며 겸손히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임재로 우리를 축복해 주셨기에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우리는 추호도 의심 없이 압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곳에 계실 때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오늘 밤에도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의심하는 사람들과 원수들, 마귀들과 의심들은 달아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직전의 시간, 전환점이 이르렀습니다. 언제나 시대의 전환점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천사들이 나타나고 선지자들이 나아가며 표적과 이적이 행해집니다. 대홍수 이전에 그랬고,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내실 때와 주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그랬으며, 이제 두 번째 오심 앞에 다시 그 일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의로우시니 주님의 일들을 나타내 주옵소서. 저는 이 부인에게 손을 얹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이 부인이 무엇을 구하든 그것을 받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리 오시겠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고 계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주님의 천사가 저를 만나셨을 때... 그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그날 밤 방에서 그분이 제게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믿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교육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자기 사역을 입증하기 위해 두 표적을 받았듯이, 너도 두 표적을 받으리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는 그들의 마음속 비밀까지 알게 될 것이며, 이것을 그들이 믿으리라.” 지금까지는 저를 의심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실제로 행하고 이루어 주신다면... 무엇을 바라든, 무엇이 필요하든, 여러분을 도울 믿음 외에는 그분께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한 가지는 눈을 위해 기도받기 원하시는군요. 맞습니다. 또 한 아이, 지체가 불편한 아이를 위해 기도받기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구한 것을 받으실 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부인의 믿음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 이 젊은 부인에게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이 부인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부인에게 손을 얹고, 이 부인이 구한 것들을 받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구하신 것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참으로 경건한 태도로 계십시오. 늘 저를 의아하게 했던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의 반응, 그 임재가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일입니다. 무언가가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아마 우리는 이 땅에서 처음 만나는 두 남자일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르고, 선생님도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 네, 그렇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병드셨더라도 저는 고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원하시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셔야 할 것이라면 저는 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데 제가 도울 수 있으면서 돕지 않는다면 나쁜 사람이겠지요? 위선자일 것입니다.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는다면 저는 나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고,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보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제가 보는 것뿐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따님입니다. 병약한 분입니다. 그분은... 여기에 있지도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 있습니다. 선생님께도 작은 문제가 있는데, 가끔 찾아오는 가벼운 관절염 통증입니다. 그곳을 문지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크게 해가 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밤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십니까?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그 일을 행하실 수 있다고, 그저 말씀만 하시면 된다고 믿으십니까? 오늘 밤 그분이 그런 분이심을 알아보십니까? 선생님, 저는 제가 보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형제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 이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이곳을 떠나 구한 모든 것을 받게 해 주옵소서. 저는 이분의 형제로서, 주님을 믿는 자로서, 또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지금 사는 삶에 관해 설명해야 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이분을 위해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가셔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이제 믿기 시작하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부인? 아마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겠지요. 전에 저를 보셨다고요. 좋습니다. 하지만 부인은...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인을 아십니다. 지금 이 부인 주위가 검게, 아주 어둡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종양이 있습니다. 또 고혈압이 있습니다. 온갖 것이 겹쳐 있습니다. 몸이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뇌졸중이 올 상태입니다. 주위가 어둡습니다. 자매님, 저는 고칠 수 없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분, 아니, 방금 말씀하신 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부인은 형제인 제 앞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지금 그분을 부인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 이 부인이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이 부인에게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치유해 주시기를 참으로 겸손하고 진실하게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신경과민은 참 괴로운 것입니다. 고통을 주고 온갖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경과민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청년, 자네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군요. 아직 다리에 이르기도 전에 건널 걱정을 하는 유형입니다. 다른 일들까지 떠맡습니다. 어차피 자네가 생각한 대로 일어나는 법도 없습니다. 자네는 늘 발을 디디고 출발할 수 있는 자리를 원했습니다. 그 자리를 찾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맞습니다. 청년, 지금 바로 그 땅 위에 서 있습니다. 신경증에 시달리고 걱정하며 마음이 뒤죽박죽인 채 어른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겠지요. 자네는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도 좋은 청년입니다. 조금 전까지 자네 위에 드리워 있던 그림자가 이제 떠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자네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자네의 믿음이 그것을 없앴습니다. 이제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무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지요?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청년에게 드리워 있던 어두운 그림자를, 기도도 없이 자기 믿음으로 없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같은 것입니다. 부인, 신경과민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하시고 고치실 수 있다고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구하면 그분께서 허락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기도합시다.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부인을 도우시고 고치셔서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이제 온 마음으로 믿고 믿음을 가지며 가십시오. 저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 부인, 제 손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기서 환상으로 보게 해 주신다면, 여러분이 텔레파시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 부인을 보지 않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혹은 무언가를 제게 알려 주신다면 여러분은... 이 부인이 직접 증언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충분하겠습니까? 믿으십니까? 부인, 지금 제 손을 잡고 계신 부인께 말씀드립니다. 혈액 속에 있습니다. 당입니다. 당뇨병입니다. 맞다면 부인,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 손에서 떼어 하나님께 들어 올리십시오. 자, 이것이 텔레파시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