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앉으십시오. 오늘 밤 왕을 섬기는 이 예배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 해 전에 우리가 부르던 옛 찬송이 있지요. “왕을 섬기니 나는 행복하네.” 그 찬송 기억하십니까? 참 좋은 찬송 아니었습니까? 왕을 섬기니 행복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왕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 이 작은 교회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피플스 태버내클, 저는 그 이름이, 그 명칭이 좋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곳,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이지요. 누구나 환영받습니다. 저는 “피플스 태버내클”, “열린 문 교회”, “기도의 집” 같은 이름이 좋습니다. 장로교회나 침례교회나 가톨릭교회, 또는 그런 어떤 교회라고 하는 것보다 그런 이름에는 마음이 끌리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교회들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해하시지요. 그런 이름들도 좋습니다만, 그저 제 개인적인 느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한 성막, “열린 문 교회”나 “기도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기록된 바,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따서... 물론 그렇다고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 교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들에게 이것이 있고 저 사람들에게 저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드리자면, 루터교 대학의 학장이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호되게 꾸짖었는지, 아주 혼쭐을 내더군요. 제가 미니애폴리스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젯밤 눈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뚫고 15마일을 차로 달려갔습니다. 주님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았는데, 가 보니 그럴듯하게 꾸민 점쟁이더군요.” 또 “당신의 신학이라니, 참...” 하고 말했습니다. 편지가 스물두 쪽이나 되었고, 정말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당신처럼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사람이 어젯밤과 같은 말을 하다니,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저는 계속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누구에게 연락해서 녹음테이프를 가져다가 확인해 봐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나무란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마귀는 치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25년간 사역했다고 그렇게 자랑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 두시오. 젊은이, 나는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복음을 전했소”라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는지 말해 주겠소. 내가 사는 도시에는 점치는 영을 지닌 여자가 있소.” 아시겠지요. 마귀의 영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치유를 받으러 그 여자에게 갑니다.” 그 여자가 무엇을 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뽑고, 좀 뽑아서... (아니, 제 기억으로는 자기 머리카락을 뽑는다고 했습니다.) 팔의 핏줄을 찔러 그 피를 머리카락에 떨어뜨린 뒤, 집 뒤의 강으로 내려가 어깨 너머로 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걸어 올라오다가 무언가에 이끌려 돌아보고야 말면 그 사람에게 병이 남아 있고 다시 돌아온답니다. 돌아보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기록을 해 봤는데 그중 약 20퍼센트가 치유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런데도 거기 서서 감히 마귀가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한단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작은 편지에 답장을 써야겠어. 짧게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보내려는 답장이 짧을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말을 생각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그분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분은 먼저 저를 마귀라고 생각한다고, 점쟁이라고 했지요. 점쟁이라면 물론 마귀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께. 편지를 받아서 기뻤습니다. 저는 선의의 비판을 언제나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제게 도움이 되니까요.” 그렇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비판하게 두십시오. 고쳐야 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편지를 받아서 정말 기쁩니다. 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시니까 편지를 쓰셨겠지요.” 또 “제가 형제님을 존경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 주님을 50년 동안 섬겨 오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참으로 높이 존경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형제님은 그분을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과 제 신학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으셨겠지요. 그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일이 잘못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은 저를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점쟁이라고, 또 마귀라고 부르신 것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 일을 하시면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환상을 보시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을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그것이 마귀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점쟁이요, 바알세붑이라고 했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어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너희가 사람의 아들인 나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내가 용서하겠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뒤 그분을 대적하여 말하면 그때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만일 제가 옳다면 어떻겠습니까? 그저 제가 옳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형제님은 무슨 일을 하신 것입니까? 거짓말할 수 없는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게 됩니다.” 아시겠지요. 그것이 성령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러운... 더러운 영이 하는 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이 점을 바로잡기 위해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루터교 대학의 학장께서 어떤 경험에 신학의 근거를 두시다니 놀랍습니다. 우리는 침례교 학교 첫해에 모든 것의 근거를 성경에 두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학은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경험을 신학의 근거로 삼으려 하고 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문제를 결론지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사탄을 내쫓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은 치유할 수 없다고 하셨다면,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사탄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사탄은 치유할 수 없습니다.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은 무언가가 만들어질 때, 새 세포가 생겨나서 회복될 때뿐이기 때문입니다. 손을 베었을 때 의사가 그것을 치유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할 수 없습니다. 약도 치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셔야 합니다. 팔이 부러져도 의사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뼈를 맞추어 놓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아시겠지요.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 여러분은 대체 어디까지 나아간 것입니까? 그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그도 신이 됩니다. 창조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도 만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자신을 창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는 창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왜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답변을... 저를 정죄하시며 물으신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들으니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오순절 계통의 터무니없는 행태들 말입니다. 물론 저는 그 사람들이 치유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치유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치유하는 것은 그 무당이 아닙니다. ‘내 손에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느껴 보세요, 느껴 보세요, 느껴 보세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닙니다. 그들의 손은 느낄 수 있겠지만 치유를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일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온갖 일들이란...”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누구를 치유한 적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무당도 누구를 치유한 적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치유를 가져오는 것은 그 무당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자신의 믿음입니다.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입니다...”
저는 이교도들이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치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을 통해 하나님께 신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우상 안에 계신다고 믿고,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런 일들은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여러분의 행위나 선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이나 혼의 구원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치유는... 저는 이름난 성도들이 기도 줄을 따라왔다가 여전히 병든 채로 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평판이 나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눈먼 눈을 비롯한 온갖 병을 치유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시겠지요.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종교에 근거하지 않고, 체험에 근거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지난번 그곳에 갔을 때... 그분이 다시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국제 대집회에서 말씀하시려고 다시 오신다지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 집회 책임자에게 연락하시라고 했고, 책임자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 그분이 그곳에 오셨습니다. 거기 계시더군요. 우리는 대학으로 함께 갔습니다. 꽤 멀리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점심을 차려 놓으셨더군요. 아니, 여기서는 런치라고 하지요. 남부에서 제가 런치라고 하면 한 끼를 놓치게 됩니다. 제게는 브렉퍼스트, 디너, 서퍼, 곧 아침과 점심과 저녁입니다. 저는 그저... 그래서 저희에게는 디너, 점심때였습니다. 그곳에 가 보니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수백 에이커의 땅이 있어서 학생들이 일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학생 칠십여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예, 말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루터교 대학 학장인데.” 그분은 말했습니다. “제가 오순절 교인들에게 가 보니 가구를 발로 차고 그런 온갖 행동을 하더군요.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거기에 실제로 무언가가 있습니까?” 저는 “예,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받으면 그냥 벌렁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스겔이 말한 것처럼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뼈들이 살 수 있느냐?’ 하시자, 그는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른 뼈들에게 예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뼈들이 함께 모일 때는 덜그럭거리고 흔들리며 소리가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피부가 덮일 때, 아니, 살이 붙을 때는 그렇게 소리가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이제 영에게 예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많이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뼈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분은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목말라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령 침례를 어떻게 받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도행전 19장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예”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거기에 아주 훌륭한 침례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목사님, 좋은 설교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아볼로였지요. 그는 회심한 율법사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지나가다가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신지조차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믿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믿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믿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하는 표로 할례의 인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일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 침례를 주십니다. 그것이 확증하는 인입니다. 아시겠지요.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셨다는 인입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을 주지 않으셨다면, 아직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우리는 성령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루터교 대학이라면서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루터교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루터교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훌륭합니다. 언제 원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당장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자리를 뒤로 물리십시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벽 쪽으로 둘러서게 하고 안수했는데, 루터교 학생 일흔두 명이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그 루터교 대학에서는 표적과 이적과 치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이것은 여러분 오순절 교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루터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원하는 사람 누구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문제는 우리가 자신을 다스리고, 그저 이리저리 흩어져 뛰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은사들을 존중하며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교회를 운영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갈망하고 목말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제멋대로 하게 두어서 이 사람은 이쪽으로, 저 사람은 저쪽으로 가며 아무런 질서가 없으면, 그들은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은사를 함부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소금은 닿아야만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접촉해야 합니다. 누구와든 접촉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여러분의 삶입니다. 저는 언제든 설교를 듣는 것보다 여러분이 삶으로 설교를 보여 주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잠깐만... 제 아내가 여기 와 있습니다. 저를 똑바로 쳐다보더군요. 제가 설교를 너무 오래 해서 사람들을 서 있게 한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잭슨 형제님, 어떻게 된 일인지 저는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적인 것에 욕심이 많은가 봅니다. 저는 힘든 일을 하던 때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누가 이렇게 작은 그릇에 콘플레이크를 담아 주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걸로는 안 됩니다.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일을 힘들게 했으니까요. 무언가 먹어야 했습니다. 비스킷 빵과 수수 당밀, 햄 덩어리가 있어야 했습니다. 빵으로 남김없이 찍어 먹었지요. 저는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을 하려면... 하나님을 위해 살려면 저도 가끔은 네 시간 동안 든든하게 한 상 먹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곧바로 성경을 펴고 거기에 끝까지 머무르는 것입니다. 우리 남부 사람들은 그런 데 익숙하지만, 여기 여러분 북부 사람들은 좀 더 세련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데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곳에 살고 싶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고장이 참 좋습니다. 아름답고, 눈도 아주 보송보송해서 차가 지나갈 때 바퀴 아래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인디애나 남부에도 그렇게 눈이 오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어디선가 궤도를 조금 벗어난 모양입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아주 가까워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똑바로 서서 똑바로 나아가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말씀에 다가가기 전에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자잘한 모든 일을, 이렇게 함께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일, 말하자면 악수 같은 것을 잠시 내려놓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려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이름으로 이 간구를 드리며 나아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 말씀으로 참으로 기쁩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약속은 모든 믿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 거룩한 책의 페이지들을 펼쳐 놓고 기도합니다. 저는 육신의 손으로 이 책을 펼칠 수 있을 뿐, 저희에게 그것을 풀어 주실 분은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그분께서 오셔서 말씀과 그 뜻을 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혼들의 구원을 위한 믿음이 생기게 하시고, 그다음에는 몸의 치유를 위한 믿음이 생기게 하시며,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들을 굳게 세우셔서 계속 나아가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 이 복들과 저희 죄의 용서를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말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이제 잠시 말씀드릴 설교의 제목을 알려 드리고, 그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여기 성경을 조금 읽겠습니다. 저는... 오늘 밤 제 제목은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5절부터 읽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성경을 가져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그저... 제가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 제 말은 틀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예배에서 이 말씀을 함께 읽는 것 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을 테니까요. 그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35절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걸어서 어둠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라. 어둠 속에서 걷는 자는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잠깐 여기서 멈추고 이 말씀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신을 숨기시니라. 그러나 그분께서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잠시 후에 이 말씀의 문맥을 살펴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보여 주시는 일을 보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어젯밤에 그것을 살펴보았지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38절입니다.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더라. 그가 말하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런 이유로 그들이 믿을 수 없었으니 이는 이사야가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라. [보셨습니까?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이때보다 약 800년 전에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자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이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읽은 말씀이 얼마나 뜻밖인지 보셨습니까? 선지자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믿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일단 발해지면 결코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완전합니다. 여기서 요한은 이사야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라고 예언한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사야 40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사야가 또 말하기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했습니다. 누가 그것을 믿었습니까? 주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누가 받아들였습니까? 그분이 메시아시라는 소식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이사야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아시겠지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자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사야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약 800년 전에 그 말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완전한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가 그들이 믿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저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부터 미리 아심으로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 들여다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말씀하신 것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 밤 여기 있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말씀하신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그것은 지식의 은사입니다. 성경에서는 선지자를 독수리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도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새입니다. 아주 높이 날아오릅니다. 그곳을 혼자 차지합니다. 주위에는 다른 새가 없습니다. 아주 높이 올라가고, 높이 있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눈에는 어떤 다른 새의 눈도 견줄 수 없습니다. 매는 독수리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독수리는 아주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다면, 다시 내려왔을 때 우리가 그쪽으로 가면 무엇이 앞에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독수리들을 택하셔서 높이 올리시고, 앞으로 올 일들을 멀리 내다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내려와서 자신들이 본 것을 예고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들은 독수리들입니다. 여기 계신 학자들 중에는 펨버먼의 「초기 시대」나 그와 같은 여러 책, 또 「설교자와 기도」를 읽어 보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신시내티 동물원에 갔을 때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 깊이 와닿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동물도 좋아합니다. 여러 해 동안 야생동물 보호관으로 일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들의 습성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연구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살펴보다가 독수리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우리에 갇힌 독수리였습니다. 어디선가 덫에 잡혔던 것입니다. 이제 막 우리에 넣어졌는데, 자기가 왜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독수리는 뒤로 물러서서 커다란 날개를 펴고 우리에 부딪쳤습니다. 큰 날개로 우리를 치면 깃털이 날렸고, 그 힘에 뒤로 넘어졌습니다. 다시 일어나 머리를 흔들고 또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등을 대고 떨어져 위를 쳐다보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인간이 그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보다 우월한 종족이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새였습니다. 창살 너머를 내다보며 크고 힘찬 날개로 높이 날아오르기를 갈망했습니다. 이제 그 날개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독수리를 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슬픈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교파와 장벽과 여러 주의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들은 자기 안에 솟아오르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강한 존재인 마귀가 그런 곳에 묶어 놓아서, 그들은 그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의아해합니다. “어딘가에 샘이 있는데, 아, 그곳에 닿을 수만 있다면.” 제가 본 가장 슬픈 광경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지음받은 사람들이면서도, 마귀가 자신을 묶어 놓아 하나님께 받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들을 덫으로 잡아 한곳에 가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것들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사람이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픕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유롭게, 날개를 펴고 기뻐하며 바람 속에서 날갯짓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수리들이 큰 날개를 이렇게 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구 날갯짓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날개를 펴고 밀려오는 기류를 타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어떻게 날개를 펴고 올라가야 하는지 압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서... 하늘의 작은 검은 점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애쓰지 않았습니다.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이 신학교에서 저 신학교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이 선교회에서 저 선교회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펴고 기류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기류가 올라가면 그것을 타고 올라가 그대로 멀리 날아갔습니다.
오늘 밤 사람들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날개에,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펼쳐 놓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을 들어 올리실 때 그저 타고 올라가십시오. “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것을 연구하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이다” 하는 이 모든 낡은 말들 위로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만 똑바로 바라보고 믿음의 날개를 타고 날아오르십시오. 여러분은 이 시대의 독수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저 이 작은 교회에 전하려는 것입니다. 조금 전, 저를 데리러 오기 전에 아내에게 “오늘 밤에는 어떤 체험을 간증할까 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교회에 이 작은 경고를 전하여라. 이렇게 설명해 주어라”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종하고자 합니다.
저는 누구의 신앙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어떤 교파의 교회나 그 밖의 무엇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방송에 나오는 신 주교와 그 사람들 말입니다. 가톨릭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다면 그것은 그분의 일입니다. 그분이 결정할 일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자리에 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흙탕물을 헤치며 걷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누가 성경을 썼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경을 주실 생각이 들어 종이에 글을 쓰시고 천사들에게 주셨더니, 그들이 천국의 회랑에서 내려와 여러분에게 주었나 보군요.” 그리고는 성경이 사도들이 죽은 지 400년 뒤에 쓰인 서신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며, 정확하지도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톨릭교회를 아실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 집안 출신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물론 성경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경과 반대되는 말을 하더라도 교회의 말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제 서재에서 한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어떤 소녀에게 침례를 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침례를 주었느냐고 묻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에 잠기게 하여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가톨릭교회도 예전에는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언제요?”라고 물었습니다. “초기에요.” “언제 초기 말입니까?” “가톨릭교회 초기입니다.” 저는 “가톨릭교회의 초기라면 언제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 역사책들이 다 놓여 있었습니다. 폭스의 「순교자들의 책」도 있었습니다. 펨버먼의 「초기 시대」도 있었고, 요세푸스의 저술들과 다른 역사가들의 책도 모두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첫 사도 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가톨릭 신자들이었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톨릭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뜻이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왜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 그렇게 반대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은 성경을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우리가 도저히...”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신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 책의 끝에서 “누구든지 여기서 무엇을 빼거나 더하면 생명책에서 그의 부분을 빼앗기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더 보탤 것도, 빼낼 것도 없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위해 주신 설계도라고 믿습니다. 건축자인 우리가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설계도와는 상관없습니다. 설계도는 여전히 똑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경이며,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십니다.
이제 제가 하려는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조금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제가 늘 성경에 머물려고 노력해 온 이유는... 저는 여러 차례 교회들을 찾아갔습니다. 여러분이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 보시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들을 찾아가 보았는데, 이 점을 잘 보십시오. 어떤 교회에 가 보면 대개 목사가 행동하는 대로 회중도 행동합니다. 아시겠지요. 저는 때때로 사람들이 성령 대신 서로의 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아주 착한 여자를 못된 남자와 결혼시키면, 그 남자가 점잖은 사람이 되든지 그 여자가 못된 사람이 되든지 할 것입니다. 서로의 영을 받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모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텔레비전을 내놓고, 이런 온갖 상스러운 것들을 여과 없이 방송하게 해 보십시오. 어린 소년이 가서 보게 해 보십시오. 문은 혼으로 통하는 눈... 아니, 눈은 혼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아이가 가서... 어린 소녀들이 그런 영화관 같은 곳에 가서 남편을 여덟이나 열이나 둔 할리우드 여자가 어떤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게 해 보십시오. 그 소녀는 다음 날 똑같이 따라 할 것입니다. 누군가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기에 민망한 치마 같은 것을 입고 나타나게 해 보십시오. 미국 여자들이 똑같은 것을 입기 시작하는지 지켜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서로에게서 옮겨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제가 사무실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있는 자리에서 라디오를 켜서 부기우기 음악 같은 것을 듣고, 벽에는 반쯤 벗은 여자들의 핀업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제가 본다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영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저는 바닥에 양탄자도 없고, 낡은 쇠 침대 하나와 낡은 서랍장 같은 것이 놓여 있고, 상자로 만든 작은 부엌 식탁에 “하나님, 우리 가정에 복을 주옵소서”라는 문구가 걸린 낡은 집이 더 좋습니다. 요즘 여러분이 갖다 놓는 핀업 사진과 그런 어리석은 것들이 있는 세상의 모든 멋진 집보다 낫습니다. 또 탁자에는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온갖 연애 이야기 잡지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 더럽고 추잡한 것, 정욕과 온갖 다른 것들을 아이들 속에 자라게 하는 것보다 말입니다. 그러고서 불신자와 불가지론자 무리 말고 다른 무엇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 여러분, 사실입니다. 아이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아이를 기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십시오. 에이브러햄 링컨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폭스의 「순교자들의 책」이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것을 아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읽고 또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인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무슨 책을 읽는지 보여 주십시오. 무엇을 듣는지 보여 주십시오.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들려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먹고 사는 여러분의 혼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렇습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그 요란한 주크박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냅니다. 저는 여러 번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 안에 주크박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가, 주인에게 가서 “선생님, 저 기계가 한 시간에 음반을 몇 장 틀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인이 말해 주면 저는 “자, 플러그를 뽑아 주세요. 제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나올 돈을 지금 내겠습니다. 점잖게 식사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플러그는 제가 뽑겠습니다. 제가 저쪽에서 식사하는 동안만 그것을 꺼 주시겠습니까? 틀 수 있는 음반 값은 모두 내겠습니다. 2, 3분마다 한 장씩 튼다 해도, 제가 여기 있는 동안의 값은 하나도 빠짐없이 치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것이 오늘날 미국이 온통 벌레 먹은 것처럼 된 이유입니다. 그 발밑의 기초까지 다 먹혀 버린 이유입니다. 그렇게 썩어 들어가도록 내버려 둔 사람들에게 어떻게 초자연적인 것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교회에서 듣는 것이라고는 짤막한 송영 같은 것이나 다음 시장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뿐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듣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는다 해도 어린아이에게나 맞을 만큼 아주 순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른에게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사와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멘. 그것이 기운을 북돋웁니다. 아시다시피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이라고 불리셨습니다. 백합은 우리가 아편을 얻는 꽃입니다. 아편은 백합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마음이 병들고 지치고 죄에 싫증이 났다면, 하나님께서 골짜기의 백합에서 얻은 아편을 주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고통과 근심이 가라앉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며 온 마음으로 믿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성경의 열왕기상으로 잠시 돌아가겠습니다. 생각 속에서 어떤 사건으로 마음을 돌려 보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아합 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아합 왕은 신약을 보여 주는 훌륭한 모형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아합이 우상 숭배자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집트에 우상 숭배를 들여온 것은, 신약의 일곱 등잔대에 대응하는 구약의 일곱 경륜 가운데 나타난 모형이었습니다. 암흑시대, 1,500년의 암흑시대 동안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과 결혼하여 똑같은 방식으로 교회 안에 우상 숭배를 들여왔습니다. 성경을 살펴보고 그렇게 말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1,500년의 암흑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잘못된 침례, 물을 뿌리는 세례, 잘못된 이름, 그 밖의 모든 잘못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게 적은 빛이 있고 이름도 있지만, 내 이름은 부인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니 같은 일입니다.
그 미지근하고, 경계선에 서 있으며,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 아합은 육체에 할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어딘가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왕국보다 얼굴을 화장한 그 작은 이세벨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자권을 세상 것들에 팔아넘기고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서 집회에 들어올 때... 서로의 영을 받는 이야기를 했지요. 집회에 들어오면 우리는 말씀에 그대로 머물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머물러야 어떤 터무니없는 것을 좇는 사람이나 어느 목회자나 그 밖의 누구의 영이 아니라 말씀의 영이 사람들 위에 있게 됩니다. 우리는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해 답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전 세계에서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과 그날 그곳에 설 때, 제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제 생각이나 제 터무니없는 것들을 그 사람들 속에 집어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제 앞에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고, 저는 “하나님, 이 말씀을 쓰신 분은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영은 그런 영입니다. 터무니없는 것들과 사람이 만든 신학을 무더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위대하고 강력한 선지자 엘리야가 예언했습니다. 그는 나봇을 죽인 아합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개들이 그의 피를 핥는 일 등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세벨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했습니다. 그 뒤 엘리야가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언제나 자신의 손을 얹으실 수 있는 사람을 적어도 한 명은 두셨습니다. 한 번도 증인이 없으셨던 적이 없습니다. 그때 미가야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작은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합은... 유대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의 신자들이 바로 그렇게 믿습니다. 그저 “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하는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점잖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교회에 갑니다. 교회에 가는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여러분은 그저 위선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교회에 가는 것은... 점잖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러 가는 것입니다. 경배의 집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아합에게는 자기가 잘 교육해 놓은 선지자들이 한 무리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있던 최상의 신학을 모두 익히게 했습니다. 그가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수가 많아서 400명이었습니다. 모두 잘 입히고 잘 먹이며 돌보았습니다. 자기 왕국에서 이 사람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잠깐,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내 목사들을 찾아가면 되겠지. 그들이 그런 때에 나를 위로해 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의로운 사람의 아들이며 자신도 의로운 사람이었던 여호사밧이 아합을 만나러 내려왔습니다. 바로 거기서 그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습니다. 사귀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선한 삶이 완전히 망가진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이 누구와 어울리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누구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옛 격언이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아이가 길 건너 여기 있는 어린 오스월드에게 놀러 간다면, 그 아이가 착한 아이라 해도, 오스월드가 어떤 아이인지 주의해서 살펴보십시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미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스월드에게 온갖 것을 집어넣어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아들이나 딸이 그렇게 어울리도록 두면, 어느새 그 아이도 오스월드처럼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누구와 사귀는지 조심하십시오. 깨끗한 교제를 유지하십시오. 그 소년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함께 당구장에 가지 마십시오. 교회에서나 여러분의 집에서나 차에 앉아서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다면, 당구장에서도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드립니다. 그곳은 마귀의 영역입니다. 멀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자신을 분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들 가운데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기를 가지고 나서서 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언제나 그런 사람을 원하셨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또 계시록부터 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위해 섰던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종교 조직들과 뜻을 달리하고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그 시대의 세상 교회들 말입니다.
누구든지 성경과 역사를 살펴보며 확인해 보십시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칼빈, 녹스, 피니, 생키, 누구든 보십시오. 어떻게 그런 것들 가운데서 나와 자신의 확신 위에 홀로 섰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때로는 여러분 자신의 가족 안에서도 홀로 서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러분과 뜻을 달리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모나 고모, 삼촌이, 때로는 여러분이 속한 친목단체의 회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다면, 홀로 선다 해도 그 말씀 위에 머무르십시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이루었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간증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목표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호사밧은 아합이 초대했기 때문에 내려왔습니다. 아합은 소와 양을 잡고 아주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큰 잔치, 이른바 성대한 연회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티를 열고 온갖 흥청거림을 벌이는 큰 사교 모임들 말입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스테이크를 몇 조각 더 먹고 진을 몇 잔 마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마셨든 말입니다. 아합은 “이제 나는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당신도 함께 가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모든 크고 멋진 것들과 그...에 마음이 휩쓸려서... . 마귀가 바로 그런 식으로 합니다. 밝은 면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런 밝은 면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신기루입니다. 신기루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 보면 없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 보면 물이 없지요. 마귀가 여러분에게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언제나 저 너머,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약속하며 밝은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가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바른 선 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계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고백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제 주목하십시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어느새 여호사밧은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그 대단한 사람들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그래도 그에게는 신앙이 있었고 의로운 마음이 충분히 남아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기 전에 주님께 여쭈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합은 말했습니다. “아, 물론이지요. 예, 맞습니다. 아마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고는 “있잖습니까? 여기에는 당신이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신학박사들이 한 무리 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우리 교회에는 얼간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준 높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훌륭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학박사, 철학박사, 법학박사들이 있지요. 한번 보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럼 그들을 이리로 불러옵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들은 성문에 있는 왕좌에 앉았고, 선지자 400명이 올라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대단한 사람 하나인 시드기야가 나와서 말합니다. “자, 어디 봅시다. 예언을 합시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아시겠지요.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돈을 잘 받았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먹고살 길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선한 사람이 거기서 실수합니다. 형제여, 저는 하루 세 번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궁전에서 사는 것보다, 배를 깔고 엎드려 개울물을 마시고 소다 크래커를 먹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며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 도와지액에서... 도와지액이 아니라 미시간주 벤턴하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집회에서 치유받은 존 라이언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긴 수염을 기른 존이 아니라 포트웨인에서 온 분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그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랍비가... 그분은 “저 존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시력을 되찾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력을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랍비는 제게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도... 아니, 예수였는지는 몰라도 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정면으로 부딪쳤습니다. 그분은 “당신들 이방인은 하나님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우리에게 내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저희는 하나님을 세 조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분은 그런 식으로 계속 말하다가 “예수는 도둑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둑이라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신약이라고 부르는 경전에 보면, 그가 안식일에 곡식밭을 지나가며 곡식을 훔쳐 제자들에게 주었다고 하지요. 합법적인 일도 아니었습니다. 당신도 아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들은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그는 곡식을 훔쳐 제자들에게 주고 자신도 먹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으로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랍비님. 놀랍군요. 당신의 레위 율법에 사람이 밭을 지나갈 때 원하는 만큼 따서 먹어도 되지만 자루에 담아 가져가지는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성경을 그 정도밖에 모르시다니 부끄러워하셔야 합니다. 그분은 분명히 율법을 지키고 계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사야가 이사야 9장 6절에서 ‘한 아들이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했을 때 누구를 말한 것입니까? 메시아를 말한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러면 메시아가 오실 때 어떤 분이 되겠습니까? ‘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메시아는 아이로 오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은 그저 제 질문에 답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메시아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겠습니까? 메시아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또 “당신들의 율법이 그분을 정죄한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안식일을 어긴 것과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안식일의 주인이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헤아리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육체로 나타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 그 말이 그분의 마음에 와닿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러면 저 사람의 눈은 당신이 고친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존이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예, 봅니다. 제가 여러 번 구제금을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는 20년 동안 눈먼 거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보다 더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무언가가 그에게 시력을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백발이 된... 아니, 희어 가는 수염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분은 고개를 돌리고 한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잠깐만요, 랍비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나중에 뵙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제게 신사답게 대해 주십시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은 돌아보며 “브래넘 씨, 그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자기 말에 스스로 걸려든 것입니다. 저는 “그러니까 [불분명한 말]라고 말씀하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예.” 저는 “그분의 말씀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는 선지자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랍비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선 그분이 선한 사람이시라면 거짓말쟁이라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선지자시라면 거짓말쟁이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어딘가 난처한 데로 들어오셨군요. 그분이 선한 사람이며 선지자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말씀이 예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메시아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러면 믿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보십시오”라고 하면서 벤턴하버 쪽에 있는 작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르치면 저 거리에서 구걸하게 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돈이 있는 유대인이었지요. “무슨 이익이 있느냐?” 하며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던 그 사람 말입니다. “좋다. 그를 팔아서 돈을 좀 벌자.” 그 학교에는 그분의 이름이 커다란 금빛 글씨로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하지만 랍비님, 저는 차라리 저 아래 쓰레기통 주위에서 빵 부스러기를 줍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저 건물에 제 이름을 걸어 놓고 마음속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라리 그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첫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 모든 설교자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올라가십시오. 물론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돌보아 주셨지 않습니까. 훌륭한 교회들을 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큰 교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왕의 돈으로 우리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보십시오. 물론 주님께서 왕과 함께하십니다. 올라가십시오.” 오늘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자기들의 훌륭한 교회와, 때로는 강단에 선 학식 많고 세련된 설교자를 봅니다. 그분이 참으로 신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일 수도 있습니다. 세련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종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련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진실하고 참된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반대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브래넘 목사님, 우리는 이러이러한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치유 대전도 집회나 그런 일에는 협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아시겠지만... 그렇지요. 왕이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요.” 왕이라.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 단체 위에 있는 왕이 그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승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 협력하면 파문당할 것입니다.
얼마 전 여기서 어떤 훌륭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게 있는 한 가지는...” 제가 본 사람들 가운데 진리 위에 설 만큼 충분한 확신을 가졌던 유일한 사람은 루퍼스 모즐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조지아주 메이컨에 있는 루퍼스 모즐리를 아시지요. 수천 명이 있는 큰 근본주의 학교들 중 하나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그 일대도 뒤흔드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한 것은 마르틴 루터와 같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와 같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터무니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말씀을 그에 맞는 때에 놓는 사람은... [테이프 공백.]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이 선지자들이 모두 예언하기 시작한 뒤에... 아, 바로 이것입니다. “존스 박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멘.” “레빈스키 형제님은요?” “정확히 맞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아멘.” “자, 나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인 시드기야이고, 당신은 서기이고, 당신은 수석 책임자이고, 당신은 주를 담당하는 장로이고, 당신은 그 뭐라고 하는 직책이지요. 그러면 우리 모두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동의합니다.” 그것은 아주 좋았지만 말씀과 맞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그것을 알 만큼 영적이었습니다. 아합이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호사밧, 이제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좀 별난 쪽이라는 것은 압니다. 종교에 조금 극단적이시니까요. 하지만 여기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학자들인 수백 명의 선지자가 서서 ‘올라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하지만 한 사람 더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더요? 한 사람 더라니, 온 교단이...?” “그러니 어떻습니까? 온 교단이 우리가 옳다고 합니다. 모든 박사와 그들 모두가 우리가 옳다고 합니다.” “제가 읽은 기억으로는 주님께서... 아합, 다른 한 사람이 더 없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쪽에 광신자 하나가 있습니다.” 혹은 그를 무엇이라고 불렀든 말입니다. 그는 따돌림받는 사람이었고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은 “그는 이믈라의 아들이고 이름은 미가야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밉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물론 그렇겠지요. “그는 내 무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미가야를 탓하지 않습니다. 아합은 “아, 그는 극단적입니다. 나를 거슬러 좋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속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결코 나를 거슬러...” 어떻게 그를 거슬러 좋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아니, 그에게 유리한 좋은 말 말입니다. 그가 애초에 좋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정죄하고 거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것을 어떻게 축복하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을 어떻게 저주하겠습니까?
언젠가 다른 늙은 거짓 선지자도 그것을 시도했습니다. 자기의 큰 교파를 모두 데리고 나와 그곳에 세워 놓았습니다. 근본적인 교리는 한 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일곱 제단, 일곱 희생물, 정결한 수소들, 그리고 주 예수님의 첫 오심을 말해 주는 숫양 일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쪽 낮은 곳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광신자 무리가 있었습니다. 장막에 살고 있는 작은 초교파 무리였습니다. 모압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나라였고, 저명한 사람들이 모두 서 있었습니다. 그쪽도 이스라엘 쪽과 똑같이 근본 교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앞서 가는 불기둥과 매 맞은 반석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말한 것입니다. 그는 진영 안에서 왕의 외침 가운데 일하시는 그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대단한 저명인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도 자기들이 극단적이라고 부르는 그 무리 가운데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그들 가운데 극단적인 사람과 온갖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편을 택해야 한다면 그쪽을 택하겠습니다. 바로 그곳일 것입니다. 얼마 전 레위 페트루스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도 그들이 온갖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 사람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 근처에 머물지도 못하게 합니다. 이 지방에는 그의 선교소 같은 것도 못 세우게 합니다. 오래전에 금지했지요. 그를 데려오려면 아몬에게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가서 그 광신자를 데려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저명인사들이 그 사람 주위에 모여, 그 심부름꾼, 그 관리에게 미가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일러 주었습니다. 저쪽에 앉아 있던 작은 미가야는 성경을 읽고 있었든 무엇을 하고 있었든,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말했습니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 오늘은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 하지만 이렇게 적혀 있어. 아멘. 주님, 저는 믿습니다.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뭐라고 하셨지? 그 말씀이 어디에 있더라...” 이사야가 예언했고, 선지자들이 이러이러하게 말했으므로 그는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주님, 그것을 믿습니다. 옳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두드리신다.] “나는 왕의 호위병이오.” “들어오십시오.” “당신이 미가야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광신자가 당신이오?” “아마 그런가 봅니다.” “당신을 왕께 데려가라는 명령을 받았소.” “수갑을 채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왕께서 당신에게 예언을 하라고 하시오.” “아, 그러십니까?” “그곳에서 큰 집회가 있었소.” “아, 그래요?” “그렇소. 모든 선지자가 모였소. 온 교단이 말이오. 모두 한자리에 모였지. 지금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소.” “그렇습니까? 무슨 일을 했습니까?” “왕께서... 여호사밧이 아합을 만나러 내려온 것을 아시오?” “(아,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알겠군.) 아, 그랬습니까?” “그렇소. 예.”
그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대체 여호사밧은 저 타락한 사람과 거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경계선에 서서, 설거지물처럼 맥없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 사람과 말이야. 거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물론 왕께서 큰 교단을 세우신 것을 알겠지요. 당신이 쫓겨난 그 교단 말이오.” “아, 예. 압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여호사밧은 저 위에 있는 좀 더 무식한 무리 출신이오. 여기 아합 왕처럼 잘 알지를 못하지요. 아합 왕은 위대한 분이란 말이오.” “예.” “조금 전에 여호사밧이 거기 있었는데, 아합 왕은 저 위 라못길르앗으로 적을 치러 올라갈 때 그가 함께 가기를 원하시오. 모든 선지자가... 아, 학교 전체가 나왔고,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언했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올라가라. 왕이 너와 함께하고 주님이 너와 함께하며 모든 것이 너와 함께하니,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리고 아시오? 너무나 확실해서 시드기야는 큰 쇠뿔 두 개까지 만들었소. 그것을 머리에 쓰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것들로, 이 뿔들로 시리아를 제자리까지 완전히 밀어붙일 것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소.” 참 선지자들이군요. 아, 참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그것은 손에서 기름과 피가 흘러나온다는 많은 일과 비슷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경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오순절 계통 안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터무니없는 일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중 많은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멀리하십시오. “교회입니다. 성경이 아니라 교회입니다”라고 하는 온갖 말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없으면 멀리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앉아 있다가 얼마 뒤 어떤 무리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미가야, 잘 들으시오. 이 무리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말해야 하오. 그냥... 예언하면서 올라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말하시오. 그에게 동의하기만 하면, 내가 말해 두는데, 내년에는 당신이 주를 담당하는 감독이 될 것이오. 아니면 그런 자리를 맡게 되겠지. 그들과 같은 말만 하면 왕이 당신을 어떤 자리에 앉혀 줄 것이오.”
미가야는 “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저는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겠습니다. 그보다 적게도, 더 많이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참되고 진실한 선지자인 엘리야가 아합에게 재앙을 예언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재앙 외에 다른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미가야는... 다른 사람들은 소수... 아니, 다수였지만, 미가야에게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바로 그것,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하든, 공산주의자가 얼마나 많든,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든, 불신자와 회의론자, 오늘날의 대단한 것들이 얼마나 많고 크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부르든 점쟁이라고 부르든,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소망이 사람 위에 세워져 있다면 처음부터 길을 잃은 것입니다. 사람은 실패하는 존재이며, 실패하는 존재로 태어나서 실패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졌네. 내 혼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에도 그분은 나의 모든 소망과 의지가 되시네.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니,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 에디 페로넷이 자기 찬송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미가야에게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말씀을 받아 그 사람을 저주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 것들과 불신자들에게서 어떻게 복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이런저런 것을 두려워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저주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두십시오. 사람들이 그렇다 하든 아니다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곳에 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이제 마치면서 말씀드립니다. 들으십시오. 미가야가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얼굴이 벌게진 왕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 작고 남루한 차림의 사람이 걸어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고, 거기 서 있는 모든 설교자, 신학박사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외롭다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으니까요.
그가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왕이 “미가야, 잘 지내는가?”라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주 가식적이지요. 여호사밧이 있으니까... 여호사밧은 말했습니다. “저 사람에게는 마음이 끌리는 무언가가 있군. 모르겠지만, 보기에 꽤 괜찮아. 바른 길에 잘 서 있는 것 같아.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은 보이는군. 거창한 말이나 그것을 바르게 발음하는 법은 모를지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믿어. 저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 그가 앞으로 걸어오자 왕은 말했습니다. “미가야, 자네는 무어라고 하겠는가? 자네의 말도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 하네. 모두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성공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네.” 미가야는 “가십시오. 올라가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출발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또 “아, 올라가서 성공하십시오.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생각했습니다. “저건...” 아니, 그는 말했습니다. “저 사람 입에서 나오니 뭔가 이상하군. 나에게 재앙을 예언하던 사람이 어떻게 여기 와서 저렇게 말하지?”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맹세하게 하겠네. 자네가 늘 내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네.” 미가야는 “올라가서 성공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흩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목자가 없으니, 그들이 평안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내가 말했지요. 내가 말했지요. 저 광신자는 나에게 재앙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데리러 가기 전부터 알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한 사람... 아, 온 나라가 이 선지자들 편에 모여 있었지만, 여기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옳았음이 드러난 이유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설교자나 교파나 왕이나 그 밖의 어떤 사람들이 그 말씀과 반대되는 말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온 나라가 자신을 대적하여 홀로 서야 한다 해도,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홀로 섰습니다. 엘리야가 주님을 힘입어 아합을 저주할 때 “네가 저지른 그 악한 일 때문에 개들이 네 피를 핥으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선지자를 통해 저주를 내리셨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돌아서서 복을 예고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재앙 외에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렀고, 온 나라 앞에서 홀로 섰습니다. 수백 명의 설교자와 신학박사와 그 밖의 모든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과 함께 홀로 섰습니다.
그 제사장들의 우두머리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곧장 다가와 자기 머리에서 그 뿔들을 벗어 내고, 미가야의 입을 정통으로 후려쳤습니다. 그것으로 자기 종교가 어떤 것인지 드러냈지요? 미가야는 잠시 피를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내게서 나와 네게로 갈 때 어느 길로 갔느냐?”라고 했습니다. 미가야는 “네가 저쪽 우리 안에 숨어 앉아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아라. 그러면 어느 길로 갔는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가야는 말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이 흩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나님의 크신 왕좌가 보였고, 하나님 좌우에 천사들이 서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아래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기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핍박하는 자들과 비웃는 자들과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때, 저 위에서도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거기에 믿음을 고정하십시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두 하늘에서 회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아합을 그곳으로 끌어내어 말씀을 성취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물론 선지자 엘리야의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영감을 받아 말했으므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가야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한 영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내려가서 저 설교자들 모두에게 들어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거짓을 예언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합을 이리로 끌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영, 거짓말하는 영이 내려와 그 설교자들 안에 들어가 그들에게 기름부음을 주고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브래넘 형제님, 그 예언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말씀과 대조해 보십시오. 그것이 말씀에 머무르는 방법입니다. 그 말씀과 맞지 않으면 믿지 마십시오.
어젯밤에 이것이 하나님의 우림과 둠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작은 교회 어디에서 어떤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든, 무엇이든 간에, 목사님,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이 양들을 죽게 할 것을 먹이지 마십시오. 말씀에 그대로 머무르십시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아시겠지요. 미가야는 말씀과 함께 있었으므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부풀어 오르는 인기 있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미가야를 붙잡아 입을 때리고, 끌고 가서 감옥에 넣고, 안쪽 감방에 가두고, 고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먹였습니다. 아합은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말입니다... 엘리야는... 아니, 미가야는 “왕께서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환상이 성경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로 그 점에 잠시 머무르고 싶습니다. 그의 환상은 성경과 일치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환상은 성경과 반대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의 환상은 성경과 일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아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날 죽었습니다. 해가 질 때 연못가의 병거에서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날 밤 병거를 씻기 전이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의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완전했고,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이제 친구 여러분, 마치면서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환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설교자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라나 군중의 감정이 어떻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제가 줄곧 옹호해 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처음에 주님께서 환상을 주시기 시작한 것은 제가 아주 어린 남자아이였을 때였습니다. 그분께서 그런 환상들을 보여 주시기 시작하자 제 목사님은 그것이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10년도 더 전에 인디애나주 그린스밀의 그 오래된 야영지에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 바로 저기 앉아 있는 제 아내는 그날 저녁 환상이 제게 임해서 제가 그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는 마귀에게 사로잡히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은혜로...
그보다 10년쯤 전에, 아니 15년, 10년이나 15년쯤 전에, 제가 아직 소년이나 다름없는 젊은 침례교 설교자였을 때였습니다. 첫 부흥회 때 그날 오후 강에서 수백 명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는데, 그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이 기절하기도 하고 온갖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전 제가 침례를 주던 때 말입니다. 그곳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온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침례자 요한의 시대와 같은 부흥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적어 두고 간직했습니다. 사람들도 그것을 보관했습니다. 신문에도 나왔고 여기저기 보도되었습니다. “지역의 젊은 침례교 목사가 물에서 침례를 주는 동안 그 위에 신비한 빛이 나타나다.” 그 일에 관한 모든 것이 말입니다. 그 후 때가 되었을 때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천사를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곳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마귀에게 사로잡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며,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런데 제 목사님은 저에게...” 그때 주님의 천사가 와서 그것이 그분의 일이며, 그분께서 정하신 일이고, 온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총감독에게 갔을 때, 침례교의 높은 지위에 있는 분 가운데 한 분에게 갔을 때 말입니다. 사실 저에게 침례를 주어 침례교 교제 안으로 들어오게 한 데이비스 박사였습니다. 그분을 찾아가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빌리, 자네는 쉬어야 하네. 악몽을 꾼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침례교회를 사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7학년까지밖에 공부하지 않은 자네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빌리. 며칠 밤 푹 쉬면 나아질 걸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시작했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부흥의 불길이 온 세계의 모든 언덕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쓰러지는 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칼을 뽑았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 오순절 교인, 또 그 밖의 사람들이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으셨고 표적과 이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뼈들이 이미 덜그럭거리고 흔들리고 의자들을 발로 차다가 모두 하나로 모였고, 이제는 힘줄과 피부가 붙어 거대하고 강력한 군대로 일어서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칼을 뽑기 시작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가장 큰 골리앗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우리도 베겠습니다.” 그래서 사방을 베어 나가고 있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남쪽까지 말입니다. 큰 부흥이 온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사람들은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이루셨습니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 혹은 더 많은 일들을 하리라.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 계실 때 오직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마리아를 통해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영으로는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여자에게서 태어난 땅의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셨을 때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해한 것입니다. 어린양과 비둘기가 함께 만났을 때 하늘과 땅이 서로 입 맞추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위대한 날에 말입니다.
그분은 두루 다니셨습니다.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치유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만 행한다.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내가 보면 아들도 똑같이 행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 앞에 낯선 사람들이 섰지만 그분은 그들이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지요? 성경에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 것이 성경에 있습니까?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을 읽어 보십시오. 모든 말씀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진리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 오직 말씀에 그대로 머무르셨습니다.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이 일들은 말씀이 성취되도록 이루어졌다.” 그렇지요? 이사야가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기에게 데려왔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그들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다 그분 앞에 두었고, 그분께서 그들을 치유하셨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도록 말입니다. “그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도다.” 그런 말씀들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저는 여러분과 교제의 띠로 묶인 형제로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밤 우리의 수가 적고 작은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이미 복을 주셨으며,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어디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으리라.” 그분께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떤 한 가지 일에 뜻을 모으고 구하면 그것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은 성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말씀은 성취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까? 온 세상에, 복음을, 성령의 권능을, 모든 창조물에게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뜻입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다음 줄을 읽으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리라.” 그분께서 하신 일들 말입니다.
어떻게 글자만으로 그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을 내도록 말씀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는 글자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밀알을 아무리 소중히 손에 쥐고 있어도, 땅에 심어 썩어서 다른 생명을 내게 하기 전에는 그 밀알에서 까끄라기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과 자기 생각과 자기 신학에 대해 죽고, 그저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내려놓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마음에 말씀을 품고 일어서지 않으면... 말씀과 반대되는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 같으면 믿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체계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처음부터 유대인들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어떻게 행할지, 어떻게 성전에 올지, 어디에 앉을지, 모든 그림을 다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는 그와 반대였습니다. 그들이 그분께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한 모든 방식과 반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 우리가 배운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배운 방식대로 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겠다고 말씀하신 방식대로 행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살펴본 성경 이야기 속의 그 선지자들도 무언가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고, 미가야는 성경에 머물렀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결코, 결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아시겠지요. 이것이 설계도입니다. 모든 것이 질서를 갖추고 성경 안에 있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이 마지막 날들에 이러한 표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그분이 하셨던 일들이 다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은 거짓된 것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구부”하겠습니까? 자, 좋은 질문입니다. 어떻게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와 구별하겠습니까? 여기저기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 여기 좀 봐. 이것 좀 보라고. 여기 이것을 봐. 바로 아래를 봐. 여기를 봐. 그렇지.” 아, 형제여, 인정합니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한 적이 있는지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터무니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뿔을 쓰고 이리저리 들이받으며 “아,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던 그 설교자들, 선지자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형제여, 그때가 왔습니다. 성경은 “얌브레와 얀네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리니, 이들은 버림받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요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이라”라고 합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옛적부터 정죄를 받도록 정해진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유다서 4장... 아니, 4절입니다. 읽고 사실인지 보십시오. 옛적부터 이것을 받도록 미리 정해진 사람들이라... 성경이 이미 그들이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어리석은 일들을 어떻게 멈출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릅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미가야처럼 성경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영은 말씀과 정확히 함께 움직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이 건물 안에는 틀림없이 아픈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아는 사람은 저기 앉은 아내와 딸, 진 형제님, 여기 이 형제님, 바로 저기 앉아 계신 형제님뿐입니다. 여기 이 어린 소녀도 제가 아는 것 같습니다. 저 아이들이 그분의 딸들이고 이 아이가 아들인 것 같은데, 이... 그리고 조금 전에 제가 지나치며 본 사람이 한 분 더 있었는데... 아, 저기...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기 앉은 부인이 아내분 아닙니까? 예, 아내분이군요. 좋습니다. 이제 다 되었군요.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서 아프고, 하나님께서 몸에 손을 대어 치유해 주셔야 하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어디가 아프든 상관없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오늘 밤 여기 이 작은 회중의 거의 60퍼센트군요. 그러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서 계신다면, 제가 자주 말했듯이 그분께서 제게 주신 이 양복을 입고 서 계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아파서 치유받고 싶어 한다면 그분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일에 대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말씀에 그대로 머무르시는 것뿐입니다. 그렇지요? 말씀에 그대로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무어라고 합니까? “손에 기름이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며, 그가 이 기름을 바를 것이다...”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높은 주교들이 있을 것이니, 어떤 권위 있는 말을 해야 한다면 그들이 말할 것이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이니라.” 좋습니다. 신유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합니까?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이미 완성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원한다면 어떻습니까? 누가 그에게 구원을 줄 수 있습니까? 교황입니까? 주교입니까? 추기경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로마 교황도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도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머지 누구도,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오순절 교회에 가면 구원을 받습니까? 오순절 교인들이 하는 대로 하면요?”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흉내 내는 사람,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체험은 하나님의 성경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잘못된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장로교인이라면 오순절 교회에 가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의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실 때 성령 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여기 있습니다. 좋습니다. 첫 교회가 오순절 날에 출범했을 때 그들은 모두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 설교하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는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성령이...”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그 뒤에 성령이 너희에게 오리니, 그때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세상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그들은 그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했습니까? 얼마나 오래입니까? 이틀입니까, 닷새입니까? 이루어질 때까지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모두 한곳에 한마음으로 있었습니다. 한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산헤드린이다. 나는 바리새인이다” 하며 다투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무리 위에는 결코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도, 결코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었고, 여자들도 그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모두 열흘 동안 그곳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한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일어나 방금 제가 한 것처럼 설교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엘도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여러분은 오늘 밤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는 것, 그 말이 제 마음에 얼마나 뜨겁게 불을 붙였는지요! 다락방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일어날 것이다. 오늘 일어나지 않으면 내일 일어날 것이다. 이루어질 때까지 여기 머무르자.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말씀이 그렇게 말했고, 예수님의 삶의 모든 부분은 그 말씀의 성취였다. 그분은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 땅의 모든 창조물이 복음을 듣게 하기 전에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출발하기 전에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성령 침례를 받아야 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잠깐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 우리가 그분과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 다니지 않았나?” “맞아. 하지만 그분은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어. 그래, 맞아. 그렇게 말씀하셨지. 그러니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시게 될 거야. 그렇지. 그것이 말씀이야. 말씀에 머무르자. 그것으로 결론이 났어. 좋아.”
그들이 모여 있습니다. 갑자기... 자,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농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는 농담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할리우드식 전도가 너무 많고, 강단에서 농담하며 떠드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들으십시오. 이것은 진지한 일입니다. 또한 거룩한 일입니다. 주목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오늘날처럼 받아들인다면, 가톨릭교회를 따른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사도행전 2장을 이렇게 읽어야 하겠지요. “그들이 모두 한곳에서 한마음으로 고해하며 복된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고도의 강신술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강신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복된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사제들이 들어와 그들에게 거룩한 성만찬, 그리스어로 ‘유카리스트’라고 부르는 거룩한 성체성사를 베풀었다. 사람들은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고 포도주를 마셨다.” 우리가 들어가 가톨릭교회의 의식을 받는 방식은 그런 것입니다.
개신교인들도 웃지 마십시오. 냄비가 솥더러 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일어나 강단 앞으로 걸어가 설교자의 손을 잡고 악수합니다. 그러면 우리 이름을 명부에 올리고, 우리는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지옥의 모든 마귀도 똑같이 믿으며 공개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 우리가 받은 방식은 그것입니다. 제가 왜 그것을 정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 사제가 올라오거나 목사가 올라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내려온 것입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그들은 소리치고 외치며, 더듬거리는 입술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치고 떠들며 마치... 그 시대의 종교인들은 “이 사람들은 술에 취했다. 모두 새 포도주에 잔뜩 취했다”라고 했습니다. 여자들까지 모두 말입니다.
자매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도 천국에 들어오기 전에 그런 체험을 하도록 요구하셨다면, 여러분은 같은 체험 없이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처녀 마리아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것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말씀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실입니까? 물론 사실입니다. 그 소문이 널리 퍼졌고, 그들은 사람들 각자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무리는 어쩌면 이탈리아 사람들이었고, 여기 한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면서 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말로 부활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왜 우리 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듣게 되는가? 어떻게 각자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게 되는가? 저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우리 말로 듣는가?” 그들은 “이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군”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집회 중 일부처럼 그저 떠들기만 하고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의 자기 언어로 듣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각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곳의 자기 언어로 말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놀랍지 않은가?”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지요. 다른 사람들은 조롱하며 “하! 저들을 봐. 너무 취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군”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강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충격 아래서 술 취한 사람들처럼 휘청거리며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어로 “다이너마이트”라는 뜻인 그 위대한 기름부음이 그들의 혼 안에 들어와 육적인 것의 뿌리를 날려 버렸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으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정신을 차리더니 비누 상자나 그루터기, 무엇이었든 그 위로 뛰어올라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러분, 이것을 아시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잠깐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지금은 겨우 낮 세 시이므로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처럼 이들은 술 취하지 않았습니다.” 술집은 아직 문도 열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지요. “지금은 겨우 낮 세 시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멘.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올 때까지 이것을 간직하겠습니다. 그는 “이것이 바로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올바른 설교자였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떤 신학이나 사람이 만들어 낸 거창한 무언가로 갔습니까? 아닙니다. 미가야처럼 곧바로 말씀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하노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요점입니다. 그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증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밤, 다시 시간의 [불분명한 말] 직전에, 모스크바 저쪽에는 로켓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이렇게 폭탄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모스크바를 떠나지 않고도 언제든 미국의 원하는 곳 어디로나 그것을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쏘는 로켓이 있습니다. 별들과 레이더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사하면 아마 1,000마일을 날아가고, 또 다른 로켓이 폭발하여 다시 1,000마일을 날려 보냅니다. 핀란드의 국경선 바로 너머로 말입니다. 그곳에서 러시아 경비병들은 제게 기관총을 겨누고 이렇게 붙들어 놓았습니다. 50마일에 걸쳐 그렇게 손수 만든 작은 벽 너머로 안쪽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러시아 경비병들과 함께 있으니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올라갔을 때, 저는 러시아 사람들이 그 뒤에서 나와 핀란드 사람들을 끌어안고 서로 포옹하고 입 맞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의 참된 그리스도인 형제들이었습니다. 형제여, 기독교가 해답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곳들을 지나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폭탄의 시간을 맞추어 시카고에 던질 수 있고, 그 한 발로 스터지스까지 지도에서 완전히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를 떠나지도 않고 말입니다. 오늘 밤 그 모든 것이 죄 많고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손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망치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수소폭탄 하나는, [불분명한 말] 그 방향을, 여기 여러분의 공중 감시 같은 것도... 그 폭탄이 떨어지면 사방으로 15마일에 걸쳐 땅을 175피트 깊이로 파 버립니다. 15마일에 걸쳐 말입니다. 어느 쪽으로 떨어지든 가로세로 30마일인 것입니다. 폭탄 한 발만으로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수많은 마일 밖까지 퍼져 나가 나무를 부수고 모든 것을 찢어 버리며, 그저 다시 먼지와 우주의 빛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라고 한 것도 당연합니다. 무엇입니까? “위로 하늘에는 표적들이 있으리라.” 국방부와 모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비행접시들 말입니다. “하늘에는 두려운 광경들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기진하며, 시대의 혼란과 민족들 사이의 괴로움이 있고, 바다가 울부짖으며...” 해일들입니다. “곳곳에 지진이 있고, 사람들은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고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선한 자들을 멸시하리라.” 여러분은 “공산주의자들이군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설교자들입니다. 종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돌아서십시오. 머리를 드십시오. 여러분의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아멘.
남녀 여러분, 제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사실상 온 세계를 다섯 차례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여러 광경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조차... 좋지 않을 광경들도 말입니다. 하지만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저는 압니다.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다른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작은 무리들과 만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내가 말씀을 확증하리라.” 오늘 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 함께 모여 있다면 그분도 여기 계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여기 회중 가운데 나타나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하신다면,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충만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저는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머물며,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누구든, 무엇을 믿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이제 잠깐입니다. 제가 길고도 오랫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가기 전에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저는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몇 달 뒤에 돌아온다면 여기 있는 분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주님,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한 가지는... [테이프 공백.] 여러분이 아프고 또... 성경이 말합니까... 성경 구절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 고백의 대제사장이시라고 합니까? 히브리서 3장에서 그렇게 말씀합니까? 좋습니다. 신약성경은 그 여인이 예수님께, 그분의 옷에 손을 댄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손을 댈 수 있다고 합니까? 여인은 그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물러가 군중 속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손을 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위대한 영 분별은 곧바로 그 여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분은 여인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성경은 지금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가 그분께 손을 댈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합니까?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이미 그 일을 이루셨다면, 어떻게 우리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저는 그분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던지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질문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누구라고 하느냐?” 그들은 “다윗의 자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다면 어찌 다윗이 영 안에서 그를 주라고 불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수들을 발 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러면 그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한 일, 은혜의 일을 완성하셨고, 우리의 치유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떻게 여전히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가 그분께 손을 댈 수 있는 대제사장이실 수 있습니까? 그분은 길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이루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히브리서 13장 8절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떠나셨을 때, 돌아오실 때까지 그분의 일들은 그분의 교회 안에서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 우리가 가지이고 그분이 포도나무이시다.” 그렇지요? 요한복음 15장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더 많이 맺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손질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떼어 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이지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가지로 남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눈과 제 눈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가지고 계신 유일한 눈입니다. 여러분의 입술과 제 입술은 그분의 가지입니다. 그분께서 힘을 불어넣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의 귀는 그분의 귀입니다. 선을 행하는 우리의 손은 그분의 손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데려가고 선을 행하게 하는 우리의 발은 그분의 발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전하는 발은 복되도다.” 그런 모든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포도나무이며, 그분께서는 그저 우리에게 자신의 힘을 부어 넣으십니다.
교회 안에는 다섯 가지 은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목사입니다. 그것들이 가지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안으로 자신의 힘을 부어 넣으십니다. 어떤 이는 설교하도록, 어떤 이는 복음 전도자가 되도록, 어떤 이는 목사나 교사나 선견자가 되도록 하십니다. 사도는 선교사입니다. 어느 쪽이든 둘 다 같습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오늘 밤 여기 계신다면, 이 자리에 서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을 바라보시고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십니다. 우물가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실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여인의 문제를 알아내시고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다섯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요한복음 4장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뛰어 들어가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표적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빌립도 나다나엘을 데려올 때 똑같이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이 말했을 때... 그분은 전날 나다나엘이 산을 돌아 30마일 떨어진 곳의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나다나엘은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정통 교회는 무어라고 했습니까? “저것은 마귀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힘을 불어넣으실 때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말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겸손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자신을 맡기십시오. 여러분에게 결코... 이것을 알아들으십시오. 저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치유자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게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 믿음이 자라도록 제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 주님께서 여기 나타나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것을 통해,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이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계심을 증명해 주십시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겠습니다.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미가야를 보았을 때처럼 여러분의 영이 그분의 영과 함께 증언할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면 그분은 결코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여러분도 진심으로 믿으십시오. 주님께서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아노에 있는 어린 자매님, 괜찮다면 짧은 찬송을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왜 찬송입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사는 왜 “음악하는 자를 내게 데려오소서”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자기 위에 임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앞에 있음을 존중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렇지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몹시 격해져 있었습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여기 있지 않았다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하는 자를 데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음악하는 자가 연주하자 영이 선지자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렇지요? “나와 함께 거하소서”를 조용히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자, 모두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너무 오래 말했습니다. 이제 그분의 한 말씀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말보다 더 큰 일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이곳에 다시 오신다면... 저는 그분께서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그대로 머무릅니다.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혹은 빌립에게, 혹은 다른 어디에서든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신다면, 그분께서 돌아서서 같은 일을 하신다면 여러분 모두 그분을 알아보고, 믿으며,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그것이 누군가가 말한 신비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분의 약속이 말한 것, 그분의 말씀이 말한 것으로서 정확히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자매님.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저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저는 기도 줄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기도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을 따로 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작은 무리입니다. 때로는 인도에서처럼 50만 명이나, 아프리카에서처럼 20만 명이나, 그렇게 수천 명 앞에 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름부음이 시작될 때까지 작은 기도 줄을 세워 시작합니다.
이 환상을 일으키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이 그분께 손을 댔고, 그러고 나서 그분이 알아차리셨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대어 보십시오. 여러분을 알아보시는지 보십시오. 그저 기도하십시오. 그저 기도하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버지, 이제 저희와 함께 거해 주옵소서. 저희는 제가 아는 한 가장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길게 전했습니다. 바울도 한 번은 바로 그 주 예수님에 관해 밤새 설교했습니다. 한 소년이 떨어져 죽었지만, 바울이 그 위에 몸을 엎드리자 생명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주 하나님, 이제 기도합니다. 오늘 밤 저희에게 나타나 주옵소서. 주님을 받아들인 이 사람들, 손을 들었던 일곱이나 여덟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들로 하여금 이것이 죽은 신조도 아니고, 부처나 무함마드교나 시크교나 자이나교나 다른 어떤 종교도 아님을 보게 해 주옵소서. 이것은 참된 종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입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고 오늘 밤 저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저희와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저희는 주님께서 여기 계신 것을 압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앉아 계시면서 눈을 감고 싶으면 감으셔도 됩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주님의 천사를 기억하십시오. 여기 책에 실린 그 사진은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만, 과학자들과 FBI와 그 밖의 사람들이 모두 조사했습니다... 저작권이 등록되어 워싱턴 DC에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신 기억이 있습니까? 있다면 “아멘” 하십시오. 저 강에서 나타난 주님의 천사, 그 빛은 많은 신문 사진기자가 찍었습니다... 몇 주 전 독일에서는 큰 독일제 카메라가 그 빛이 내려오는 것을 포착했고, 사람들이 독일 전역에 사진을 배포했습니다. 그 빛은 제가 서 있는 곳에서 2피트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정확한 사실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이라고요?” 예. 이스라엘 자손을 불기둥, 곧 빛으로 인도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분은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글로바에게 나타나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가신 뒤에는 다시 빛이 되셨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바울이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햇빛처럼 비추며 바울을 쓰러뜨린 큰 빛이셨습니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아무 빛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혼이 다른 세계, 이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 그 빛이 그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빛이 제 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낯선 분들이든, 저는 여러분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여러분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동안 저는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했던 것처럼 그분의 옷에 손을 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바로 제 앞에 있는 한 부인 위에 서 계십니다. 파란 옷을 입고 초록색 옷을 입은 부인 옆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손에는 연한 파란색 손수건을 들고 계십니다. 안경을 쓰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빛이 펼쳐지는 것이 보이는데, 부인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부인은 제게서 멀어져 갑니다. 그 부인은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부인. 사실이라면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부인 곁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보입니다. 나이 많은 분입니다. 아주 아픈 여자분입니다. 길게 뻗은 줄이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어린 소녀가 어떤... 안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 부인께서 기도로 구하고 계신 분은 어머니시군요. 어머니가 중병을 앓고 계십니다. 검사 결과 당뇨병이 있고 암도 있습니다. 부인은 어머니를 염려하고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께 어머니를 도와 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말이 참이라면 잠시 일어서 주십시오.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저는 부인을 모르지요?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라고 말했든 사실이지요. 그렇습니까? 지금 저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녹음에는 남아 있으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셨지요. 사랑하는 그분 위에 그 손수건을 얹어 놓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여자분에게 복을 주시고 그 간구를 이루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분의 믿음이 주님께 닿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테이프 공백.]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모든 것이.
바로 여기 뒤에서 고개를 숙이신 뒤로, 부인은 참으로 진지하게 지켜보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인 말입니다. 제 표정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계속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부인에게 낯선 사람이지요? 하지만 주위에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저는 평생 부인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낯선 분이십니다. 저를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보십시오. 은사에 다가가는 데에는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접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고, 여인은 권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로마 병사는 그분의 머리에 천을 씌우고 머리를 때리며 “환상을 보거나 예언할 수 있다면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 병사는 아무 권능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다가가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테이프 공백.] ...그 늑막염이 부인에게서 떠나도록. 맞지요? 부인은 실제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 무언가가 지금 부인에게 기름부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아십니다. 제가 그 말을 했을 때 믿음이 확 자라났습니다. 그렇지요? 이제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바라보십시오. 부인은 이 도시에 사는 분이 아닙니다. 이 근처 분도 아닙니다. 큰 곳에서 오셨습니다. 디트로이트입니다. 맞습니다. 이름은 엘리자베스입니다. 성은 마셜입니다. 부인, 이제 주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영과 접촉하자 그분께서 어떻게 곧바로 부인에게로 움직여 오시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부인을 치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과 접촉하게 할 뿐입니다. 이제 이분을 의심하게 만들어 보십시오. 나머지 분들 중에는 의심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도 이분은 아닙니다. 나다나엘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그 여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물가 여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것이 저쪽 구석에 앉아 있는 자매님에게로 옮겨 갔군요. 주님께서 그 등 쪽의 문제를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실 것,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지요? 사실이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테이프 공백.] ...문, 어떤 남자가 입고... 아니, 아닙니다. 여자분입니다. 바로 그 남자 앞에 계십니다. 그 여자분 주위에 주님의 천사, 그 빛이 서 있습니다. 자매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낫게 하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름이 앨리스이지요? 성은 그레인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한 젊은이가 앉아 있습니다. 빨간 외투, 아니면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입니다. 암에 걸리셨습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치유하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테이프 공백.] 여러분 모두 위에 기름부음이 있는 동안,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치유받고 싶으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분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그분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것이 ... 위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테이프 공백.] ...병든 자들 위에. 이제는 더 나아가기가 두렵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여라”라고 하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부인, 여기 아기에게 손을 그대로 얹고 계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오, 나와 함께 거하소서. 주님, 저희의 작은 배 안으로, 보잘것없는 저희의 작은 집으로 주님을 초대합니다. 주님, 저희가 그것을 너무 함부로 다루었지만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작은 회중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말씀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을 증명하셨습니다.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도 주님의 말씀이 실패하는 것을 막을 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것도 그 말씀을 실패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분은 실패하실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이십니다. 주님,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존재 안에 거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무덤에 넣음으로써, 그분의 심장에 창을 찌름으로써 그것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천사를 통해 길을 마련하시고 돌을 굴려 내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