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모이게 되어, 저는… 오늘 아침 이 남녀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분 한 분의 간증을 듣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여기 식탁 끝에 계신 어떤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젯밤인가 언제 그분에게 무슨 말을 했다는 겁니다. 저분들 중 한 분입니다. 바로 저기 앉아 계신 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쪽의 한 부인도 제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마치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일 같습니다. 잠시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잘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앉아서 저기 박사님이 하신 간증, 교도소 예배에 관한 간증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저희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의 감리교인이시고, 저쪽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형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러 목사님들이… 저기 계신 젊은 분과 여기 계신 형제님, 참 많은 분들, 여러분 모두, 여기 계신 흑인 형제님… 이런 것이 참으로 마음에 무언가를 줍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남녀 모두에게는 한 가지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더욱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교단마다 뜻하는 바가 다를지는 몰라도 우리는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은혜 안에서 하나입니다. [녹음 공백.]
저는 많은 시간을… 제 외할머니는 인디언 보호구역 출신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안에는 야외를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냥꾼이고, 말을 탔고, 말을 아주 많이 타 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말을 타는 분이셨습니다. 콜로라도주 크레믈링, 저 안쪽 트러블섬강 부근에 저희가… 헤리퍼드 협회에서는 트러블섬강 계곡에 소를 방목합니다. 여러 해 전 저는 그곳에서 말을 많이 탔습니다. 협회 사람들이 모두 소를 몰고 들어오는 곳에는 소 떼의 이동을 막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건초를 1톤 생산할 수 있으면 아라파호 국유림에서 소 한 마리를 방목할 수 있습니다. 산림 관리인이 거기 서서 주인별 낙인을 보며 지나가는 소를 세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여러 번 안장 앞 돌출부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소들이 통과할 때 그가 세는 것을 보면, 삼각대 낙인을 찍은 소들이 들어왔습니다. 그건 저희 소였습니다. 칠면조 발자국 낙인은 강 상류의 다른 목장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T, 누운 R, 그 밖에도 여러 낙인이 있었습니다. 모두 지나갔습니다. 낙인은 달라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헤리퍼드였습니다. 오늘 제가 생각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에게 찍힌 낙인은 달라도 마음으로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등록된 헤리퍼드가 아니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등록된 헤리퍼드가 아니면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어떤 낙인을 가졌든,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기만 하면 그 문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식탁 건너편을 보니, 저보다 조금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계시고 저보다 젊으신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이 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가 말하는 이 놀라운 순복음을 전하고 계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함께 사역하는 저에게 해 주시는 말씀과 존중의 표현을 들으니 말입니다. 물론 한 인간인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은사를 베푸신 그분의 인자하심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말을 타고 가는 이 순탄한 길은, 여러 해 전 여러분이 길모퉁이에서 기타를 들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실 때 닦아 놓으신 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남녀 여러분이 그 기초를 놓으셨고, 저는 그 위에 세워 보려고 할 뿐입니다. 저는 마치 때를 벗어나 태어난 사람처럼 여기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 오신 사역의 연륜으로 보면 아직 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해 주십니다. 실제로 그 기초를 놓으신 분들은 여러분인데 말입니다. 아시겠죠?
오늘 아침 보니, 제가 그저 작은 침례교 설교자였을 때, 어쩌면 그 전부터 말씀을 전해 오신 이 연로한 남녀분들이 저를 형제로 받아 주십니다. 사람들이 저를 마귀나 귀신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형제로 여기며 이해해 주는 곳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정말 마음이 좋습니다. 저는 제 부르심에 충실해야 하고, 충실하기를 원하며, 그것이 제 마음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반겨 주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여러분도 아시겠죠. 그런 형제자매를 향해 얼마나 큰 사랑이 흘러나오는지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하는데, 그들이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을 향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시겠죠? 참으로 특별한 것입니다. 이 식탁을 둘러보며, 지금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 다시 이렇게 모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이렇게 모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홉 시와 용무를 생각하고 있는데, 저기 앉아 계신 실업인 한 분이… 다가와서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홉 시에는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관련된 일이 좀 있어서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셔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가 다시 헤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말했듯이 “우리 마음은 여전히 하나로 이어져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 옛 찬송, “우리를 하나로 묶는 끈은 복되도다”를 부르시지요.
저는 ‘그러면 우리가 다시 만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때는 단지 아침 식사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녁 만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의 수고도 끝나, 그분의 집으로 올라가 그분과 함께 저녁 만찬을 먹고, 그분의 왕국에서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시며 새롭게 먹게 될 때… 모든 것이 끝날 그때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지금은 뜨거운 한낮에 힘써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고 식탁 건너편으로 여러분을 바라볼 때, 서로를 바라보는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 것이고, 우리는 틀림없이 식탁 너머로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꼭 잡을 것입니다. 기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것입니다. 그때 아름다우신 왕께서 나오셔서 우리 눈의 눈물을 모두 닦아 주시며 “얘들아, 이제 울지 마라. 다 끝났다.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고대하는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이제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될 그때를 바라봅니다. 백발이 사라지고 다시 젊은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며,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고 통치하리라는 것을 알게 될 그때는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 이 형제님은 아마 캐나다에서 오셨고, 또 여러 곳에서… 테네시에서도 오셨습니다. 이 작은 무리가 구석구석 여러 곳에서 모여 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마음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바로 오순절이 다시 임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새롭게 기름부음을 받을 때입니다. 저는 이곳에 오순절의 복이 임해 있음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종종 제게 묻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순절 교회에 속해 계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오순절은 교단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어디서나 사람들이 받는 체험입니다. 다른 교회들과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어야 할 복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갈망합니다.
베일 형제님이 오늘 아침 목회자 조찬이 있고, 형제자매 몇 분이 모여 잠깐 교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군인인 제가 칼을 집에 두고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제 성경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게 될 줄 알았기에, 오늘 아침에는 잠깐 말씀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몇 분 뒤에는 자리를 비워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은 목회자들이시고 저보다 훨씬 말씀을 잘 전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예비 타이어니까요… 아시겠죠? 예비 타이어를 어디에 쓰는지 아시지요. 오늘 아침에는 펑크 난 곳이 없으니 예비 타이어가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본문을 택해 말씀드리는 것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 곳에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드리는 것이 형제 여러분께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마음에 떠올리는 본문이 있다면 마가복음 16장일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본문입니까. 교회에 주신 마지막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교회에 사명을 맡기셨을 때, 마태복음 10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는 등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첫 사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맡기신 사명은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려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의 삼분의 일만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온 세상에, 모든 창조물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이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최근에 있었던 한 일이 생각납니다. 어떤 젊은이가 목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갔습니다. 올바른 것을 가르치는 올바른 학교라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저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7학년까지 배웠으니 여러분처럼 수준 높으신 분들 앞에서 적절한 말을 골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제가 뜻하는 바를 여러분께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형식적이고 무관심한 학교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복음 같은 것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럴 바에는 그 젊은이가 집에 머물면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공부하던 중… 그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어머니가 병이 나셨습니다. 폐렴으로 몹시 위독해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람들은 아들에게 언제 집으로 불려 올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연락했습니다. 의사가 더는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페니실린을 투여하고 산소 텐트에 넣었지만, 어머니는 계속 쇠약해져 갔습니다. 아들은 유명한 대학을 떠나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회복되어 괜찮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방학 때 그 젊은이가 어머니를 뵈러 집에 왔습니다.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여쭤볼 게 있어요. 그렇게 위독하셨을 때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무얼 드렸기에 그렇게 빨리 나으셨어요? 저는 짐까지 다 싸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나으셨다는 전보를 받았어요. 그런데 제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번도 설명해 주지 않으셨잖아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저 아래 길을 따라가 모퉁이를 돌면, 물론 좀 가난한 동네 쪽인데, 거기에 작은 선교회가 있단다. 순복음이라는 곳이야. 어떤 부인이 나를 찾아오라는 인도를 아주 분명하게 느꼈다면서 찾아왔어. 그분이 내가 기도를 믿는지,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믿는지 묻더구나. 그래서 물론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는다고 했지. 그분이 ‘저희 목사님은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세요’ 하더구나.” 어머니가 계속 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보내 주었는데, 그분이 성경 마가복음 16장을 읽어 주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했어.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게 안수했지. 얘야, 그러자 열이 내리고 내가 나았단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물론… 이제는 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시죠? 그 사람들은 우리가 속한 사람들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얘야, 정말 놀랍단다. 나는 이제 그 선교회에 다녀.”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그 사람들이 좀 배우지 못한 부류라는 것을 아셔야죠. 그러시면 안 돼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할렐루야!”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셨잖아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보세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거기에서는 신유가 일어난단다. 예배도 드리고 말이야. 주님께서 얼마나 복을 주시는지 네가 보아야 해.”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 목사님이 읽어 주셨다는 마가복음 16장의 그 구절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여기 있단다. 바로 여기야.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어.”
아들이 말했습니다. “보세요, 그런 부류의 목사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우리처럼 더 많이 공부한 사람들은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는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건 바티칸 같은 데서 덧붙인 것일 뿐이에요. 사실 영감으로 기록된 게 아니에요. 그것을 덧붙였다거나 거기에 넣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어요. 그냥 덧붙인 거예요. 9절부터는 영감으로 기록된 게 아니에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할렐루야!”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어머니는 정말… 저는 어머니가 부끄러워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무슨 생각이 나서 그랬단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어머니?”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되지도 않은 그 성경 구절로 나를 고치실 수 있다면, 정말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는 내게 얼마나 큰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생각했단다.” 저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 모리스 리드헤드를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대부분 만나… 아마 여러분 중 몇 분은 아실 겁니다. 침례교 수단 선교회의 부회장이었습니다. 아마… 리드헤드를 아셨지요? 그리고 돈 웰스가 성령을 받은 후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채터누가의 돈 웰스를 아실 겁니다. 분명 그곳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맡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리드헤드의 사역을 통해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리드헤드 박사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유대인 형제님도… 그분들은 오하이오에서 온 몇 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유대인 형제님은 여기 오하이오에서 사업을 하셨습니다. 이름은 잊었습니다만 하이먼 애플먼과 개인적으로 친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집에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침례교인이었으니… 이것은 비난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제가 침례교회에 어느 정도 머물렀던 이유는 지역 교회의 자치권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그것이 사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침례교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저는 교제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침례교회는 교단이 아닙니다. 원래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교단이 되었지만, 원래 교단이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형제 공동체입니다. 지역 교회의 자치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 자신의 장로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려 하실 때, 성경에 따르면 지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분은 장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절차를 밟느라 장로가 주의 노회장에게 가야 하고, 또 이런저런 곳을 거쳐 감독에게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하고 써 놓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한번은 보즈 박사님이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식문을, 아니 무엇이라고 하든, 우리의 신앙 내용을 써 놓고 쉼표로 끝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여기에 주님께서 더 보여 주시는 만큼을 더합니다.” 저는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이때… 리드헤드 박사님이 들어와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전에 침례교인이셨으니 분명 우리가 전하는 내용은 좀 아시겠지요.” 저는 “예,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일곱 살 어린아이였을 때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베일 박사님도 아마… 박사님은 리드헤드 박사님을 아시지요, 잘 아실 겁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어린아이였을 때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부했고 갈망했습니다. 어린 제 마음이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마침내 문학사 학위를 받을 때에는, 제가 원하던 바로 그것을 이 학위에서 틀림없이 찾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위를 받았는데도 제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후 다른 학위들을 받을 때에도 “이 학위 하나하나에서 그리스도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명예 학위까지 합하면 형제님 댁의 벽을 거의 다 도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속에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친 겁니까?”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만큼 신뢰한다고 해서, 그런 말을 버팀목 삼아 자기 무지를 떠받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문학사나 신학박사, 법학박사 학위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한 마음속에 계시며 거기에 거하십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얼마 전에 교육을 마치고 자기 나라를 도우려고 인도로 돌아가는 인도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인도 청년이 돌아가려 할 때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 왜 당신은…’” 그는 힌두교인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그 옛 죽은 선지자 무함마드를 버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무슬림이 잠깐 아래를 보더니 고개를 들어 말하더랍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예수님이 제 선지자보다 저를 위해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선생님의 예수님이 제 선지자보다 저를 위해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한 분은 여러분이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읽고 믿습니다. 다른 분은 코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읽고 믿습니다. 두 분 다 죽음 이후의 생명을 약속했고, 우리 양쪽이 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선지자, 곧 여러분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선지자보다 우리를 위해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리드헤드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는 저기 무덤에 죽은 채 누워 있습니다.” 여행해 보신 여러분 중 몇 분은 아마 저처럼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에 백마 한 마리를 두고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일어나 세계를 정복하리라 기대하며 거의 이천 년 동안 그렇게 해 왔습니다. 말을 지키는 사람은 몇 시간마다 교대합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 속에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이슬람 성직자는 건물 꼭대기에서 커다란 종을 울릴 때 이렇게 말합니다.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선지자다.” 우리는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이시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예수님이 그분보다 저를 위해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당신의 선지자는 무덤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까? 그것을 증명해 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인도에는 그런 무덤이 수천 개나 있습니다.” 실제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주장으로는 말입니다. 처녀 탄생이요? 아, 세상에. 처녀 탄생 같은 것에 관한 문헌을 이만큼 높이 쌓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도 처녀 탄생이 있습니다. 두 번째 드로닝(droning) 이후에 태어나는 벌은 거의 모두 수컷과의 접촉이 전혀 없이 처녀 생식으로 태어납니다. 처녀 생식이 계속 일어나는데도 왜 사람들이 처녀 탄생을 그토록 의문스럽게 여기는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그리스도께서 제 선지자가 제게 준 것보다 더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할 수 있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믿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 마음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무함마드도 제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그가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선생님, 잠깐만요. 이슬람교도 기독교만큼 심리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이 사실임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아시겠죠?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저는 선지자들의 축제 때 그들이 창을 들고 이렇게 코를 꿰뚫어 위로 찔렀다가 빼는데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소리치고 외치며 온갖 행동을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보십시오. 심리적 작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는 마귀를 숭배하면서 사람의 해골에 담긴 피를 마시고 마귀의 힘을 불러냈습니다… 근처에 있는 것조차 끔찍했습니다. 주술사들이 바로 거기서 여러분에게 도전해 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흉내를 내고 그런 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제가 오늘 아침 형제 여러분께 말씀드리려는 것이 그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교회에서 거품 위에서 춤추듯 들뜨는 일을 충분히 오래 해 왔습니다. 아시겠죠? 이제 실재하는 무언가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일도 좋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주님의 권능이라기보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자, 이제…” 아니, 힌두교인이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선생님, 보십시오. 무함마드는 추종자들에게 죽음 이후의 생명 외에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예수님은 다른 약속들도 하셨습니다. 선생님 같은 선생들이 그분이 하신 것과 똑같은 일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믿을 수 있겠지요.” 그러자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아신다면… 그분이 바로 이 성경 구절을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아, 아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성경을 읽어 보신 모양이니.” 그 무슬림이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마 마가복음 16장을 말씀하시는 것이겠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그중 하나지요.”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이나 다른 구절들은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2절 등, 그리스도께서 이런 약속들을 하신 성경 구절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아시겠죠?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무슬림들은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실제로 보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믿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무슬림에게 여러분의 심리적 방식을 팔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더 나은 것이 있으니까요.” 아시겠죠?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렇게 발로 흙먼지를 차면서 화제를 돌렸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상대가 하룻밤 새 대충 배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이 말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우리는 어떤… 특히 성경의 그 부분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가복음 16장을 배제하려 합니다. 여러분이 읽는 스코필드의 주석, 각주에서도 그렇고, 많은 학자들이 그 부분을 빼 버리려 합니다. 그런데 그 무슬림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니라고요? 9절부터는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예.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성경은 대체 어떤 책입니까? 코란은 모두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믿음에 도전하여 그것을 정면으로 판가름하자고 나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말씀이 영감으로 기록되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어느 부분을 믿을 수 있습니까? 전부 믿든지 하나도 믿지 말든지 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제 형제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형제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는 중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을 더욱 펼쳐 나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여기 모였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아시겠죠? 성경도 그렇게 가르치고 실천하며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언젠가 형제님을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는다는 것이 정말 있습니까?” 저는 “예,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저는 “받기를 원하실 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모리스 리드헤드는 성령 침례를 받았고, 지금은 직접 신유 집회까지 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세상의 삼분의 이가…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증명할 시간이 이천 년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천 년 동안 세계의 삼분의 일만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온 세상이 스물네 시간 안에 알게 될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형제 여러분, 누구의 잘못입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이제 실례를 무릅쓰고… 학식 있는 여러분께… 저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 잘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라고 하신 것과 정반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교단이 있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압니다. 좋은 것입니다. 신학교가 있는 것도 좋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신학교나 그런 것을 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말씀만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16장에서 “온 세상으로 가라.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그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하신 그 표적들을 일으킵니다. 말씀 자체는 실제로 움직여 생명을 낳기 전까지는 죽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홀로 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믿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성경의 모든 약속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아시겠죠?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씨눈이 있는 말씀이며, 알맞은 곳에 받아들여지면 반드시 살아나야 합니다. 알맞은 조건 아래 놓이면 모든 씨는 다시 살아납니다. 알맞은 조건에 놓이기만 하면 됩니다.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형제로서 존경하며 삼가 이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쩌면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우리 모두가 천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말입니다… 보십시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결과를 낳는 것은 분위기입니다. 아시겠죠?
암탉이 병아리를 얻는 본래의 방법은 알을 낳은 다음 자기 몸으로 덮는 것입니다. 그러면 암탉의 체온으로 알이 부화합니다. 그러나 알을 밑에… 부화기 안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온기와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해도 똑같이 병아리가 나옵니다. 감리교 밑이든 침례교 밑이든 장로교 밑이든 상관없습니다. 말씀의 분위기라면… 알에 해당하는 말씀이 있고, 알맞은 분위기가 갖추어지면… 장로교 안이든 어디에 있든 같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자녀를 낳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아십니다. 오순절 밑이든 순복음 밑이든 어디에 있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존 스프롤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제 좋은 친구였습니다. 한번은 알자스로렌에서 안내자를 따라 정원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그리스도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멀찍이 서서 그것을 비판했습니다. “조각가가 무슨 뜻으로 만든 거지? 저것 좀 봐. 고통의 모습이 없잖아. 아무것도 없어. 그냥 평범하게 보여. 그저…” 그가 아내에게 그렇게 비판하고 있을 때 안내자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스프롤 선생님, 조각가의 작품을 비판하고 계신 것 같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예, 왜 저기에 저것을 달아 놓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스도의 고난을 조금도 보여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안내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바라보시는 방식 때문입니다. 여기 아래에 제단이 있지요. 이리 내려오셔서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그래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안내자가 “이제 올려다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올려다보니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모든 것이 보였습니다. 안내자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 바라보시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멀찍이 서서 관찰하고 비판하는 시각으로 “이 사람에게도 없고 저 사람에게도 없다”고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낮아져서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여러분이 이루려 애쓰는 것과 같은 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모든 장벽이 무너집니다. 이제 너무 길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을 지루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주 예수님과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에 관해 짧게 간증을 드려, 이 놀라운 복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그토록 간절히 지키려고 싸우는 그것은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실제입니다. 그분은… 바울이 전했고 베드로가 전했으며 선지자들이 받았던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며, 하나님이시기에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누군가가 책에 실린 아프리카 대전도 집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보즈 형제님과 다른 여러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읽은 기사인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이 움직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어났던 일 하나를 짧게 간증해 드릴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기사를 읽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신다면, 이번에는 인도에서 있었던 일로 넘어가 간증을 드릴까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관심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추수터에서 일하다가, 오늘 아침 잠깐 쉬며 함께 교제하려고 나무 아래 모인 일꾼들이니까요. 저는 인도에 가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인도 방문은 마땅히 거두었어야 할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못했고, 먼저 아프리카에 갔다가 그다음 인도로 가라는 환상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 중 몇 분이 말했습니다. “그냥… 아프리카 쪽 준비가 안 됩니다. 로버츠 형제님도 방금 다녀오셨으니 인도로 떠나십시오.” 형제들의 영향을 받아, 어쩌면 그렇게 가르침을… 그러나 누가 어떤 영향을 주든, 하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셨다면… 말씀으로 판단하십시오. 아시겠죠? 말씀으로 판단하고 나서 가십시오.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함께 선지자로서 서로 도와야 하지만, 서로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틀림없이 열왕기하 13장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무엇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 선지자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다가 사자에게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던 참된 선지자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알려면 언제나 말씀으로 판단하십시오.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경계하십시오. 아시겠죠?
형제 여러분, 우리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던 것과 같은 때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예고되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미국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흥청거림과 기괴한 일들, 할리우드식 전도자들, 온갖 볼거리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녹음 공백.] 옛날식으로, 깊은 시골의 사사프라스 향이 나는 듯한 설교 말입니다. 저는 그런 요란한 치장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선교사 여러분이 아시듯 다른 나라에 가도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미국에는 참한 여자가 없습니까? 여러분의 노래들은 여자에 관해 어쩌면 그렇게 저속합니까?” 우리의 모든 것이… 제가 누구를 지목해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는 형제들끼리 모인 자리니까요. 아서 고드프리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사람들, 그런 터무니없는 것들이 만들어져 퍼집니다. 미국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것으로 오염되고, 그것이 사역에까지 들어와 강단을 화려하게 꾸미려 합니다. 가인이 바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가인입니다. 그도 아벨과 똑같이 제단이 있었습니다. 아벨처럼 경배했지만, 제단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사탄이 한 일을 보십시오. 하늘에 있던 루시퍼는 더 좋고 더 아름다운 왕국을 원했습니다. 아시겠죠? 늘 그래 왔습니다. 산 위에 있던 모압과 골짜기 아래의 열광적인 신자 이스라엘을 보셨습니까? 양쪽 다 제단이 일곱 개였고, 일곱 희생물이 있었으며, 양쪽 다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 교리만 보면 모압도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만큼 옳았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발람이 보지 못한 것은 아래에 있는 이 믿는 사람들에게 표적들과 이적들이 따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진영 안에 계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매 맞은 반석과 놋뱀과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이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듯이 마지막 날에도 이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여기 계신 형제 여러분께는 더 나은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리라고 기대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좌우로 쓰러지게 두고, 그 말씀에 굳게 머무르십시오.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저 밖의 발닦개 같은 처지가 되더라도 좋은 발닦개가 되십시오. 다른 사람과 겨루거나 무언가를 해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말씀 안에 들어가 그대로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국 안에서 여러분이 가장 잘 쓰임 받을 자리에 두실 것입니다. 제 손가락이 어느 날 자기는 눈이 아니니까 더는 손가락으로 있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그 손가락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눈이 더 귀할지는 몰라도 저는 그 손가락을 사랑합니다. 제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뜻으로 말씀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분명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직분이든,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대로 있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두신 자리에 머물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한 그 말씀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다른 일을 맡기기로 하시면 필요한 곳으로 여러분을 옮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우리… 우리 형제들 중 많은 분이 이스라엘과 함께 올라온 섞인 무리와 똑같이 인간적인 데 머무를까 염려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섞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나왔는데… 놀라운 현상들이 일어났고, 그것이… 인간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그 인간적인 요소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과 함께 여기 앉아 있는 이 조찬이 제게 갖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 베일 박사님은 연락할 수 있는 분들을 모두 이 조찬에 초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니, 아, 으스스하다는 겁니다. “나는 그런 것과 아무 상관도 없어.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내 격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태도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들이 바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영을 거두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자신의 사람은 데려가시지만 자신의 영은 결코 거두어 가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은… 엘리야에게 계셨던 영이 엘리사에게 임하셨고, 침례자 요한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영을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도 자기 사람은 데려가지만 자기 영은 거두어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의 선생은 어떻습니까? 그의 신학자는요? 가인 때부터 성경 전체를 거쳐 계속 내려오며, 그저 계속 이어지고 되풀이됩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이 일과 관련하여 저는 집회를 하러 여러 곳에 들어갈 때마다 얼마나 많이 의문을 품었는지 모릅니다. 대개 성경을 공부한 학자들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리라고 생각하는데, 온갖 기괴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이 말씀한 그대로, 이마에 상처가 나고 얼굴에 피가 흐르며 손에서 온갖 기름이 흘러나오는 사람들, 온갖 기괴한 일들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가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순전한 복음이 선포되는데도 듣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이런 일들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의 눈을 갈보리에 고정합시다. 한마음으로 말씀에 집중합시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때가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하십시오. 변하지 않는 그 말씀을 붙들고 머무르십시오.
어려움 가운데 인도에 도착했을 때, 감리교 감독과 그 밖의 여러 분이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준비가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를 초청한 단체가 잘못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쪽의 후원을 버리고 다른 단체로 옮기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제 말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곳에서 저에 관해 사실과 다르게 광고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제게 자체 소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어디에든 갈 수 있는 처지로 있으려고 애썼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러 간 곳에서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로버츠 형제님을 초청했는데…” 그분이 “교회가 너무 작습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다른 형제님을 초청했더니 “교회가 너무 작습니다.” 또 다른 형제님도 “교회가 너무 작습니다.” 그들이 작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은 오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침 제가 방 안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이 형제님이 저를 좋게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로버츠 형제님이 오시지 않은 것은 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분처럼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제게 로버츠 형제님처럼 프로그램을 꾸릴 줄 아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텔레비전 방송을 계속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십시오. 라디오 방송을 계속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십시오. 그분이 짊어진 책임을 보십시오.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분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저 밖에서는 밀주업자들이 돈을 가져가 무슨 일들을 벌입니까. 다른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분을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종이며, 제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각자에게 사역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각자 자기 사역이 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로버츠 형제님이나 다른 형제님들도 기꺼이 오고 싶겠지만, 올 수 없는 것은…”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저 작은 자로 있으면서 돈이 없어도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저를 저쪽으로 보내고 싶으시면 누군가가 저를 뒷받침해서 보내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제가 가기를 원하시면 저는 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그 한 번의 방문을 후원할 마음을 주실 테니까요. 그러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말했습니다. “지금 후원 관계를 끊으십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저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제 말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인도에서 큰 해를 끼치게 될 겁니다.” 저는 “하지만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돌아서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서 그것이 얼마나 방해가 될지 등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빨래판에 빨래를 하던 여인들이 저를 이곳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며 손에 때와 기름이 밴 사람들이 그 손을 주머니에 넣어 1달러를 꺼내 저를 이리 보내 주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들, 어쩌면 자녀에게 신발이 필요했을 아버지들이 아기 신발을 살 돈 1달러를 내어 저를 이곳에 보내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 주신 돈을 잘못 썼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마음으로는 그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떤 파벌 문제 등에 제가 얽혀들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 일은 집회 관리자가 맡았습니다. 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제 주머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전해 주어야 할 돈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 주라고 제게 맡긴 돈이니, 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거리로 나가 달러를 루피로 바꾸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를 데리고 나오려고 거의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아, 여러분. 한 번 그곳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그… 모습을 보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목회자 여러분, 들으십시오. 한 장면을 그려 봅시다. 여기 허리에 작은 천 하나만 두른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작은 통과 작은 물웅덩이가 있습니다. 노인은 거기서 물을 떠 마십니다. 아내도 설거지하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려고 그 물을 집으로 나릅니다. 그가 식용으로 기르는 작물이 몇 포기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형제라고 말합니다. 그의 피부는 검고, 백인이 건너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너와 배에서 내리면 금빛 줄무늬로 장식한 커다란 캐딜락을 타고 거리를 달립니다. 구걸하는 형제는 길에 누워 동전 하나를 달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렇게 거만할 수가…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등을 돌리는지 말입니다.
어느 날 저는 깜짝 놀랄 일을 보았습니다. 발가락이 이만하고 둘레도 이만한 어린 소년이, 안으로 굽은 작은 발을 질질 끌고 있었습니다. 나병으로 두 팔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돈을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루피를 던져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빌리야, 저 불쌍한 사람은 저 돈을 어떻게 주울까?”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들은 어린 아기들을 안고 있었는데, 아기들의 작은 배가 이렇게 부풀어 있었고 굶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입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괜찮아도, 아, 그 아기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4억 7천만 명입니다. 거의 4억 명이 거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옷을 차려입고… 하나님의 종들이 여기 앉아서 우리 교단의 작은 차이를 놓고 다투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저 밖에서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수백만 명씩 죽어 가는데 말입니다.
지난번 저녁 영화를 틀어 보니, 평생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저 가엾은 아프리카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팔은 옴으로 뒤덮였고 벌거벗은 채 온갖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손을 들어 제가 떠나기 전에 예수님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해 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방식을 따라야 하는지 저런 방식을 따라야 하는지, 장로교인이어야 하는지 침례교인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다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도,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며 얼마나 갈라섭니까. 그 작은 소년에게도 제 자녀나 여러분의 자녀와 똑같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크고 훌륭한 교회가 있으면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교회를 짓고, 수만 달러짜리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놓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곧 오신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는 복음을 가지고 선교지로 갈 돈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제 여러분,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옳은 말임을 아십니다.
보십시오.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이… 조심하지 않으면 인도가 머지않아 공산주의로 돌아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교사에게는 푼돈을 모아 건너가라고 해 놓고, 우리의 돈은 이 나라의 관료들과 그런 사람들, 저급한 유흥업소 같은 곳에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울에 달려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그를 피하고 그냥 가 버립니다… 그런데도 선교사는 그에게 당신이 우리 형제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피부색 때문에 형제를 그렇게 대하겠습니까? 국적 때문에요? 오, 형제여. 똑같이 거만한 영이 교단들 사이에 들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인 형제 관계를 부인한다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긴밀하게 맺어진 형제들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동기와 생각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고 복음을 더욱 펼치며 형제들이 하나로 모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일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날 오후 봄베이 시장이… 그들은 수만에 수천을 곱할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추산했습니다. 그들에게 적어도 몇 번이라도 설교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저는 위선자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그곳에 온 한 여인이 어떤 일을 해서 사람들이… 폭동 중에 남자 두 명이 죽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시 밖에서 집회를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 멀리 델리, 뉴델리까지 가지 않는 한 시 조례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올해 제가 가려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 봄베이 집회에도 거의 50만 명이 왔을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사방에서 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랬듯이 길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형제여, 사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지만 만일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나는 장로교인이야. 그걸로 끝이야.’ 또는 ‘나는 오순절교인이야. 그걸로 끝이야’ 하는 지경이 되면 말입니다… “그러면 소금이 제맛을 잃은 것이다.” 아시겠죠? 소금은 갈증을 일으킵니다. 갈증은 오직… 소금은 닿아야만 짠맛을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짠 소금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짠 소금이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갈증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사람들이 오는 가운데, 그날 오후에 제게 자이나교 사원에서 열리는 모임에 기독교를 대표하여 참석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여러분, 제가 발음을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철자가 어떻게 되는지 잊었습니다. J-e-i-n에 n이 두 개였던가, 그런 식입니다. 잔인지 젠인지, 하나의 종교입니다. 그날 오후에는 제가 온다는 것을 알고 여러 종교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그 이교 사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도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방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교황… 아니, 최고 지도자가 두 발을 끌어 올려 앉아 있었고, 수도승들은 수염을 뽑은 채 머리털도 뽑고 있었습니다. 작은 털걸레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길을 쓸기 때문입니다. 개미나 작은 벌레를 밟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삼촌이나 고모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생을 믿습니다. 저는 그곳을 둘러보며 각자의 종교를 나타내는 독특하고 다양한 옷차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오, 예수님, 주님께서 이곳에 들어오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아시겠죠?
그들도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먹습니다. 우리처럼 아내가 있습니다. 우리처럼 피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수혈하여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하셨듯이, 그들도 수혈을 해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으로 뒤엉켜 버린 것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건너가서 전도지를 나누어 준다면… 전도지는 좋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찬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너가 신학을 가르친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을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선교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얻었습니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최근에 키와니스 모임에서 말씀을 전할 때의 일입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제가 젊은 설교자였을 때 선교 침례교회에서 제게 안수하여 목사로 세워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환상을 보았고 그분께서 메시지에 관해 말씀하신 그날 밤, 저는 데이비스 박사님에게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다는 거냐? 빌리, 네가 그걸 믿는 모양이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그분이 말했습니다. “빌리, 너는 좀 쉬어야겠다.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그런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침례교회의 충실한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주 예수님께는 더욱 충실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교제 모임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박사님은 언제나 제 형제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부합하는 하나님의 천사에 대해 침례교회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저는 다시는 교제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다른 것을 가르치러 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천사는 말씀에 근거한 참된 복음을 선포합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어디든 말씀을 들어 그것을 반박해 보십시오.” 그분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빌리, 그날 저녁에 뭘 먹었니? 악몽을 꾼 게 아니냐?” 저는 “알겠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말씀을 전하는 키와니스 모임에 데이비스 박사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의사들과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그분도 참석해 계셨습니다. 그분은 예전에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리, 너도 모르는 사이에 열광적인 신자가 되어 버릴 거다.” 저는 그 자리에 서는 기회를 얻어 말했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인사드립니다. 그런데 박사님께서 광신주의라고 부르시는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침례교회는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내느라 수백만 달러를 썼습니다. 제가 그들을 어디서 보았는지 아십니까? 선교 구내에서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족에서 몇 사람이 모여 들어온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질러 자기 부족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어 그리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는 우리가 실천하는 기독교보다 더 엄격합니다. 무슨 일을 저질렀을 경우, 예를 들어 어떤 처녀가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거나 하면 더는 부족 안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족을 나타내는 몸의 칠을 지우고 도시로 나갑니다. 거기서 어떻게든 자기가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부족에서는 처녀의 잘못이 밝혀지면 누구와 그 일을 했는지 말해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보다 더 엄격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교도입니다. 그들이 작은 것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아프리카에 갔을 때, 우리…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우리 침례교인들이 겨드랑이에 작은 우상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모야가…” 아모야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실패해도 이것은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가 이것을 가지고 다니다가 내려놓고 작은 불을 피운 뒤 기도하니까 사자가 물러갔거든요.” 저는 말했습니다. “사자는 기도 때문에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불 때문에 달아난 겁니다. 저는 사냥꾼입니다. 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래도 어쨌든 우상을 가져가더군요. 그러나 형제 여러분, 그날 오후 성경의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전혀 복음화되지 않은 이교도 3만 명이 자기 우상을 땅에 내리쳐 부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시겠죠? 요점은 그것입니다.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의 손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날 인도에서 사람들이 사원 안에 들어가 자리에 나섰을 때… 여러 사람이 말을 시작했고 기독교를 깎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그런데 그들에게도 타당한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옳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모든 과학을 원자폭탄을 만들어 서로 날려 버리는 데 씁니까? 그러고도 신앙이 있다고 합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 지적은 타당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을 만드는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서로를 폭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아실 겁니다. 그것은 그들의 지적 중 하나일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어떤 점을 지적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종교는 그보다 먼저 있었고, 여러분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는 이곳에 와서…” 인도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불교 승려에게 철학을 배웠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죠?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를 배반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원에 들어와 있든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어떻게… 날파리 한 마리도 죽이려 하지 않는 여러분에게 제가 어떻게 피의 희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이 피의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녁 집회에 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저녁 모두 모였을 때, 라자들은 방석에 앉아 있었고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몰려든 곳을 헤치고 들어가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보이스카우트들과 온갖… 보이스카우트처럼 보였는데, 무슨… 아마 방위대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막대기 등을 들고 군중 사이로 길을 내 주어, 제가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곳에 이를 때까지 여러 곳을 지나갔습니다. 그곳에 통역자와 함께 섰는데, 가엾은 나병 환자들이 서로 포개진 채 누워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참혹한 광경이었는지요. 팔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눈이 썩어 없어지고 귀가 없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머리에 이고 가 화덕에 쏟아 넣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없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수천 명씩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그들을 장작처럼 주워다가 시신을 화장합니다. 의식도 아무것도 없고, 누구에게 속한 사람들인지 아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쏟아 넣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해야 할지 저것을 해야 할지, 신발끈을 어떻게 매야 할지, 어떤 넥타이를 매야 할지 하는 일로 논쟁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교회가 인간의 신학만으로 운영된다면 성령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의 신학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우리는 교육과 인간의 신학으로 채워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감독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어느 교단 지도자의 인도도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실패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제가 거만하게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의 사랑으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진실을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하려는 것은 진실입니다. 세상 어떤 교단이든, 여호와의 증인이든 로마 가톨릭이든, 제가 모자를 벗어 존중하지 않을 교단은 없습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사람이라면, 저는 그 형제를 존중하고 제 몸에 숨이 붙어 있는 한 그 곁에 서겠습니다. 그러나 제 말은,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사람들을 갈라놓고 차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마치면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래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요점에 이르기 위해… 그날 밤 교회에서 형제들과 함께 모두 단 위에 서 있었을 때, 너무 시끄러워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을지 아실 겁니다. 그곳에는 수백의 서로 다른 부족 사람들과 온갖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길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2주 동안 머무르기를 기대했지만, 저는 사흘밖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군중이 너무 많아 시 안에 수용할 수 없었기에, 감당이 안 되니 다른 곳으로 가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정말 엄청났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갈 것입니다. 그날 밤 서서… 저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책에 실린 제 아프리카 이야기를 읽으셨지요. 두 손을 땅에 짚고 짐승처럼 걷던 장애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때 3만 명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던 일을 아시지요.
제가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맨 처음 나온 사람은 나병 환자였습니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젊은이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옷을 찢어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아프리카에서 했던 것처럼, 선교사들이 그저 사람들을 골라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내려가서 이 부족에서 몇 사람, 저 부족에서 몇 사람, 또 이 부족에서 몇 사람, 각 부족에서 두세 사람씩 데려와 줄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거기 서 있을 때, 그들은… 관리들이 지나오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좀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 데려왔습니다. 맨 처음 나온 사람은 나병 환자였는데, 서서… 여러분이 집회에서 보시듯이, 여러 번 사람들의 이름과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 줍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을 으스스하게 여기실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일입니다. 현대적인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스도께서도 당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생각과 다르셨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이름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발음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이는 대로 철자를 읽어 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등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사람입니다. 아시겠죠? 무언가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아시겠죠? 어제 오후, 교회에 가기 조금 전에 조지프 형제님이 마침 제가 있던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세 시부터 기도를 시작합니다. 조지프는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제 친구이며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해 왔습니다. 조지프 곁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있었던 때마다 성령께서는 늘 조지프 형제님에게 무언가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기 계시니 물어보십시오. 아시겠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을 정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지요, 조지프? 보십시오. 그것은 무언가… 교회 안보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제가 아마 어제 박사님께 설명해 드렸던 것과 같습니다.
잠깐만 더 참아 주시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것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계십니다. 목자들이십니다. 신중하게 거리를 두시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목자들이니까요. 침례교 목사든 장로교 목사든, 어떤 목사든 무언가를 보고 신중하게 지켜보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양 떼를 먹이고 있으니 양들이 무엇을 먹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목자가 해야 할 일은… 바리새인들도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나다나엘처럼,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처럼 성경을 살펴야 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자신들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며 “이것이 양식이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자, 보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도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하나였습니다. 하나였습니다. 여러분의 손가락 하나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로도 마찰을 빚었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자들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중이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나오는 순서를 보셨습니까? 귀가 가려운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진리인 말씀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와 기괴한 것들로 향한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목회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수백 명의 목회자들과 함께 모여 보았습니다. 그들이 식탁 너머 다른 교단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형제로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잘못된 소리로 울어 대는 것은 양들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영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임마누엘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마음에 의심이 없습니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온 바다에 가득한 물, 바다의 모든 물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여기서 작용하는 것을 보시는 이 작은 은사는, 그저 아주 작디작은… 저기 놓인 숟가락 위에 이렇게 묻은 한 방울과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분량대로 받습니다. 그분은 한량없이 받으셨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아시겠죠? 한량없이, 어떤… 그분은 그저 무한하십니다. 그분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대상은 물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한다는 것을 아시고, 한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라 불리는 육신의 몸이 그분의 거처였습니다. 몸은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장막을 치고 거하고 계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나사로와 마르다 등이 사는 집을 떠나 며칠 동안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보여 주셨습니다. 나사로가 죽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정해 주신 날들이 지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것만 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 번 언급했던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것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들어 이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정해진 시간이 끝날 때까지 떠나 계셨습니다. 그러고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찬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그가 잠들어 있다면 몸이 좋아지리이다.” 잠을 자며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거기 계셨다면 사람들이 그분께 나사로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을 테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 자매님이 남편에 관해 말했던 것처럼, “의로운 자의 발걸음은 주께서 정하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노라. 그러나 그를 깨우러 가노라.” 이해하시겠습니까? 무덤에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곁에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그것을 말하였나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제 발로 일어서서 다시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임을 믿습니다. 며칠 뒤 한 여인이, 보잘것없는 한 여인, 아마 갱년기에 접어들었을 농부의 아내였을지도 모르는 여인이, 혈루증을 앓다가 사람들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그 여인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내가 그저…” 로버츠 형제님이 자주 말씀하셨듯이, “접촉점을 가지십시오.” “접촉점만 찾을 수 있다면, 그분의 옷에 손을 댈 것이고, 나는 온전하게 될 거야. 조금이라도 손을 댈 수 있다면,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이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인의 손이 육체적으로, 실제로 그리스도께 닿았을 때, 그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증언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모두가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 안에 계셨기에, 그분은 그 분별력으로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 여러분, 함께 있는 동안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과 생각을 읽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보십시오. 독심술사나 심령술사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참된 은사였을 수도 있지만 왜곡된 것입니다. 마귀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왜곡할 뿐입니다. 의란 무엇입니까? 죄란 무엇입니까? 의가 왜곡된 것입니다. 한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매님들, 실례하겠습니다. 결혼한 남자 여러분, 이것은 합법적이고 의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결혼한 아내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아내와 함께 살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여러분의 아내입니다. 그것은 합법적이며, 성경은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매춘부나 불의한 여인도 여러분의 아내와 똑같은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의로운 것을 불의한 것으로 왜곡하는 일입니다. 제가 무슨 뜻으로 말씀드리는지 이해하십니까? 이 예를 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불의는 의가 왜곡된 것입니다. 마귀는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창조하실 수 있고, 치유하실 수 있는 분도 그분뿐입니다. 아시겠죠? 마귀는 왜곡할 수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 여인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리 가운데서 그 여인을 찾아내실 때까지 둘러보셨고, 무슨 병이 있었는지 아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자기가… 자기가 한 일을 고백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나는 내가 약해진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는 효능… 효능은 ‘약해짐’입니다. 여러분에게서 효능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셨고, 그분은… 그분이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을 살리시면서도 약해졌다는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인이 그분의 은사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여인이 그리스도에게서 끌어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낸 것입니다… 그 여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이런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은 왜 집회를 마치고 나올 때 기력이 약해지십니까?” 이제는 여러분이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얼마 전 그 형제님에게 말씀드렸듯이, 여기 있는 우리가 모두 어린 소년이고 서커스장에 있다고 합시다. 우리에게는 아무도 들어갈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저보다 조금 더 힘이 셉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그분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큰 산도 만드시고 작은 산도 만드십니다. 사막도 만드시고 바다도 만드십니다. 흰 꽃도, 파란 꽃도, 빨간 꽃도 만드십니다. 작은 사람도, 큰 사람도, 빨간 머리인 사람도, 검은 머리인 사람도, 파란 머리인 사람도 만드십니다. 황색인도 갈색인도 흑인도 만드십니다. 그분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시어스 앤드 로벅의 하모니 하우스가 아니십니다.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다양하게 만드십니다. 그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이 좋아하시는 방식이 좋습니다. 그분이 좋아하시기에 저도 좋아합니다. 그분이 여기 안에 계시면 여러분도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있는 자연을 사랑합니다.
자, 보십시오. 이제… 어쩌면 그분이 저를 조금 더 키가 크게 만드셨을 수 있습니다. 제가 키가 더 큰 것은 제 뜻대로 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힘이 더 센 것도 여러분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분을 위해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분을 위해 할 수 있습니다. 오럴 로버츠와 저, 여러분, 다른 모든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아시겠죠? 같은 목적을 위한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이 순회 공연을 구경하고 싶다고 합시다. 그러면 형제 여러분이 모두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제일 키가 크잖아요.” 환상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그저 하나의 은사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저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합니다. “저 위 이만한 높이에 옹이구멍이 있어요. 제 머리보다 훨씬 위에요.” 그러고는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 건물 안에는… 저쪽에는 뭐가 나와요?” “모르겠는데요.” “뛰어올라서 좀 보세요.” 그래서 저는 손을 뻗어 붙잡고, 힘껏 버티며 몸을 끌어 올려 그 구멍으로 들여다봅니다. “휴.” “뭐가 보여요, 브래넘 형제님?” “코끼리요.” “아, 보셨어요?” “네.” “다시 좀 보세요, 브래넘 형제님.” “아이고.” “알겠습니다.” 뛰어올라 붙잡고 손가락으로 매달립니다. “뭐가 보여요, 브래넘 형제님?” “기린이요. 휴.”
그렇습니다. 그것이 단 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처럼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환상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합니다. 그 여인이 했던 일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기력이 약해졌습니다. 아시겠죠? 여인 스스로 무언가를 하여 효능을 끌어냈기 때문에 그분의 기력이 약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힘센 사람, 그 서커스의 주인이 지나가다가 “안녕, 빌리” 하고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뭘 하고 있니?” “이 옹이구멍으로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또 무엇을 봤어요, 브래넘 형제님?” “아이고. 제가 안에 코끼리가 있다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 있는 이 사람이… 힘이 듭니다. 그 여인이 다가옵니다. 여기 옵니다. 무언가가 여러분에게 다가옵니다. 터져 나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제 앞에 있는 그 여인이고 그 남자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그 여인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을 내어 맡기고 서 있습니다. 이것도 누군가 살아 있는 목소리로 대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오르간과 피아노가 있어도 누군가 연주하기 전에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집회에서는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제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제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신유의 은사가 아닙니다. 오럴 로버츠에게는 신유의 은사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여러분 목회자들처럼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유의 은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믿음입니다. 불도그처럼 한번 붙잡으면 놓지 않는 그런 믿음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반면 이 경우는 혼을 살피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도 아시지요.
어쩌면 500명은 지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나오면 샅샅이 드러납니다. 여러분도 집회에 참석하여 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셨지요. “바로 저기에 앉아 있는 남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을 했고…”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집회에서 보셨으니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그저 빨리빨리 받는 식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지켜보아야 합니다. 사람들 자신의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쪽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쪽에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쪽에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자, 그것이… 그런데 서커스 단장이 지나가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그저… “형제님, 벌써 두 사람이 지나갔고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그 사람들에게 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첫 번째 사람은 거기 서서 “예, 저는 암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 사람이… “암입니다. 아, 예. 맞았습니까, 자매님? 저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예, 맞습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치유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기다립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납니다. 또 시작됩니다. 또 시작되는 것입니다. 회중은 앉아서 “꽤 괜찮군”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 “오, 할렐루야! 진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그러고는 가 버립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번의 기도로 2만 5천 명이 치유되었습니다. 한 번의 기도로 목발과 휠체어를 밴 일곱 대에 가득 실어 내갔습니다. 그들은 믿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집어넣는 온갖 신학과 방부액이 그들에게는 주입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 장애인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송가이 부족, 아니, 줄루 부족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형제여. 그들은 목발 같은 것을 그냥 버려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어 나갔습니다. 그걸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합니다. “잠깐만요. 잠깐만. 저것은 텔레파시일 수도 있습니다. 최면술일 수도 있지요. 최면 말입니다. 존스 박사님이 그런 것은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아,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우리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그 나라로 향합니다. 형제들 가운데 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 않으셨다면 교회에서 누군가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 그곳에 가 있는 사람을 지원하십시오.”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하십시오. 아시겠죠? 선교사가 되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명령은 “온 세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자, 서커스 단장이 지나옵니다. “빌리, 뭘 하고 있니?” 저는 “옹이구멍으로 구경하고 있었어요”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또는 “무얼 보고 싶니? 빌리, 네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구나.” 그가 제 목덜미를 잡아 이리로 들어 올리고는 말합니다. “저쪽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이니? 그게 여기로 내려오고, 저기에 이 천막이 있고, 저쪽에 이것이 있단다.” “아, 네. 네.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네.” 그가 내려놓으면 저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힘들지 않았으니까요. 아시겠죠? 그러나… 보십시오. 그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셔서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 주셨고, 그분이 죽은 사람을 살리셨을 때는 피곤하다는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여인이 옷에 손을 대었을 때는 “효능이 나갔다… 혈루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시는 것과 사람이 그분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을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온 바다였습니다. 형제여, 여기 여러분의 종인 제 안에 있는 이 작은 은사는 바다에서 나온 작은 물 한 방울일 뿐입니다. 분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온 바다에 있는 것과 같은 성분이 그 숟가락 안에, 그 작은 물 한 방울 안에 있습니다. 다만 양이 그만큼 많지 않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우리의 사역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이루는 성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분들을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양이 그만큼 많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두 합하면 한 사람 안에 있었던 것보다 더 많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분의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을 일정한 분량만큼… 분량대로 받습니다. 그것이 기력을 약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단 위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거의 기절할 지경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발을 내딛어 벗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형제여, 강 건너편에 한 땅이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가 어떤 허구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화 같은 부두교의 최면술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입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날 밤 단 위에 서 있을 때, 서너 사람이 지나간 뒤 한 눈먼 사람이 와서 섰습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눈먼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고 누구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부음 아래 있으면 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집회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어둡고 냉랭하며 무관심한 것이 어디 앉아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시겠죠?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지목하곤 했습니다. “왜 믿지 않습니까? 거기 아무개 장로교 목사님.” 그러다가 잡초를 뽑으면 밀까지 함께 뽑게 됩니다. 그러니 그냥 두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아시겠죠? 계속 나아가 자기 일을 하십시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아시겠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렇다고 제가 장로교인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오순절 목회자들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다른 어느 곳에나 있는 것만큼 그곳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때… 그들이 여러분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이 마음 아픈 일입니다. 다가와서 “브래넘 형제님, 우리는 형제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압니다. 바로 거기 있는 그들을 보며 그 영을 지켜보고 느낍니다. 잠시 앉아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위에 환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차라리 그것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속에 무언가가 생깁니다.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무언가… 원치 않는 불신이 생깁니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때때로 제가 조금 오해를 받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제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저는… 마음속에 그 사랑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결코 그 사랑이 깨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시겠죠? 모든 사람이 저를 사랑하고, 저도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지내고 싶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왔을 때,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가 거지이며 태양을 숭배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에 대해 들어 보셨지요. 그리고 그가 20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제 셔츠처럼 하얬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맞다고 했습니다. 제가 회중을 바라보니 라자인가 무엇인가 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텔레파시 같은 작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진찰해 보고 싶은 의사 선생님이 여기 계십니까?” 의사는 없었습니다. 그가 전혀 보지 못한다는 것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고, 맞았습니다. 자녀가 둘이라고 했고, 그것도 맞았습니다. 앞을 못 본 지 얼마나 되었는지 말했고, 그것도 맞았습니다. 그가 눈이 낫기를, 치유받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자기를 낫게 해 주는 신이라면 누구든 섬기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자기를 낫게 해 주는 신이라면 누구든 섬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아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어떤 신이든…
그 둘레에는 적어도 열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종교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파리를 숭배하고, 소를 숭배하고, 이것을 숭배하고 저것을 숭배했습니다. 여러분은 인도가 어떤지 아십니다. 미신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그런 상태로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제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환상 속에서 그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아시겠지요, 눈을 비비고 웃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오, 형제 여러분, 지금 제게 알맞은 어휘나 마음속의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러분이 보고 아시게 해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느낌이란… 아시겠죠? 더는 제가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대로 펼쳐질 한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모두 없어져도 그분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지옥의 모든 마귀가 나와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으로 끝입니다. 어제 아침 저 위에서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 저는 상관없습니다. 파도가 요동치게 두십시오.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핀란드의 그 어린 소년, 아, 그 많은 곳에서 있었던 일들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때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인 것입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은 여전히 여호와이십니다. 여전히 전능자이십니다.’ 그러자 제 위치를 알았습니다. 제가 어디 서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가 마귀를 얼마나 많이 보내든 상관없습니다. 이제 실패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에 서서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그가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지. 무엇을 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라고 외치던 엘리야 같은 마음이 됩니다. 엘리야는 “주님, 제가 주님의 명령으로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 형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허구가 아닙니다. 산타클로스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살아 계신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시는지 시험해 보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았을 때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아프리카에서 하셨던 것처럼 이제 인도에서 행하려 하시는군요.’ 저는 회중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인도의 여러 종교를 대표하시는 여러분.” 그들을 형제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제 형제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여러 종교를 대표하시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저 아래 사원에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길을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싸우지 마십시오. 그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두십시오. 그분께 맡겨 두십시오. 여러분은 그저 걸어가십시오. 그분을 따르십시오.
저는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사원에서 저는 놀랐습니다. 여러분의 신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제가 믿는 분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고,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분은 죽으셨고, 예,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여기 태양을 숭배하며 20년 동안 눈이 멀어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는 지금 시력을 얻으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그를 만드신 하나님, 그를 지으신 창조자라면 분명 그의 시력을 되돌려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물론 여러분 시크교인들, 자이나교인들, 무슬림들, 불교인들과 다른 분들은 그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게 오시오’라고 하겠지요. 무엇을 해 주겠습니까? 그가 기도하는 방식만 바꾸어 줄 것입니다.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의 철학만 바꿀 것입니다. 다른 무언가를 숭배하게 하거나 어떤 일을 하게 해서 기도하는 방식을 바꾸겠지요. 미국에도 같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 사람을 돕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종교로 개종시킬 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가 태양 숭배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이리 온다면,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그는 창조자 대신 창조물을 숭배합니다. 그가 한 일이 그것이며, 무지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자이나교인으로 만들면 무엇을 해 준 것입니까? 무슬림으로 만들면 무엇을 해 준 것입니까? 그에게 더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눈이 멀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의 철학, 기도 방식, 생각, 교단만 바꿀 것입니다. 미국에도 같은 일이 있습니다. 모든 침례교인은 가능한 한 모든 감리교인을 침례교회로 바꾸고 싶어 합니다. 모든 감리교인은 침례교인을 바꾸고 싶어 하고, 침례교인은 장로교인과 루터교인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오순절교인은 그들을 전부 데려오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전히 심리적 작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많은 신이 있는 데 비해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미국의 형편은 그렇습니다. 개종시키고 끌어당기고 다투고, 모두 이쪽으로 오라, 모두 이쪽으로 오라 하면서 온갖 일을 합니다. ‘44년에 백만 명 더 늘리자’ 같은 구호들을 내세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조직을 키우려는 순전히 인간적인 심리 작용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도전합니다…” 제가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불교 승려에게 도전합니다. 앞으로 나와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그는 이제부터 불교인이 될 것이고,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슬람 성직자에게 도전합니다. 앞으로 나와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이제부터 무슬림이 될 것이고,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 형제여,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여러분이 이런 일들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라들에 들어가야 정말… 그곳에서 그들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곳에서 진위를 판가름해야 합니다. 아, “나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나는 큰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형제여,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종교에든 도전합니다. 와서 이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 주십시오. 그러면 그가 여러분의 종교로 들어갈 것이고,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분명 그를 만드신 창조자께서는, 그가 창조자 대신 창조물을 숭배해 왔음을 보셨다면, 그가 무지한 가운데 그렇게 경배했다면, 분명 그를 올바른 상태로 되돌려 주셔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말해 본 군중 중 가장 조용한 군중이었습니다. 수천 명이 눈에 보이는 끝까지 서로 기대어 눕고 겹겹이 모여 있었습니다. 조용했습니다. 높은 성직자들과 그런 사람들은 각자 방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습니까? 오늘 자이나교 사원에서는 기독교가 얼마나 작고 소수인지를 제게 말씀하셨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무슬림이 더 많고, 가톨릭과 우리 모두를 합쳐도 우리는 세 번째나 네 번째쯤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얼마나 큽니까?”
그때 우리는 알았습니다. 형제여, 그 환상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분명 이제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입이었을 뿐입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분이 핀란드에서 죽은 소년을 살리셨을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를 읽으셨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종들에게 모든 일을 다 말씀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사용하기 원하실 때에는 손으로 여러분을 붙잡아 이곳으로 데려와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저 겸손하게 자기 자리에 머무르면, 여러분이나 제가 이것저것 하며 헛되이 움직이는 모든 일보다 더 큰 영광을 그 일을 통해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르심 안에 머물고, 하나님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준비가 되실 때까지 그 자리에 있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 서 있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몹시 조용하군요.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이 일을 할 수 없고, 저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녹음 공백.]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이 오늘 밤 여기 제 곁에 서서, 이 사람이 시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지 않으시면 저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대표하는 종교, 곧 기독교를 제가 거짓되게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분이 이 일을 행하신다면, 여기 계신 분들 중 얼마나 많은 분이 미신을 버리고 눈먼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키실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러자 눈에 보이는 끝까지 손들이 공중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진위를 판가름하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옛말에 “푸딩은 먹어 보아야 안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신학도, 우리의 심리적 방식도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진정한 창조자의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땅을 품어 우리를 생겨나게 하셨듯이, 분명 성령께서 품어 주시면 우리를 다시 올바른 상태로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 있다가 돌아섰습니다. 제 마음은 제가 저 마이크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 확실했고, 그만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형제 여러분. 저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오셔서 역사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은사를 통해 환상으로 그것을 제게 막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때 그 은사를 사용하기 원하셨습니다. 분명 이교도 무리 앞에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렇게 그의 얼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조금 전에 환상을 보여 주신 주님, 저는 옛날 배 위에서 ‘기운을 내라’고 말했던 바울과 같은 마음입니다. 아시겠지요.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시력을 주실 줄 압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고, 제가 가진 모든 지혜를 다해, 주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면 각자가 주님을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님을 일으키신 주님, 우리는 서서 중력이 힘을 잃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중력의 중심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 차가운 몸을 무덤에서 일으켜 영광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제가 그곳에 손을 대고 있다가, 기도가 끝났을 때, 물론 그 기도는 통역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내리자 그 사람이 눈을 뜨고 보았습니다.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허리를 끌어안았습니다. 그 도시의 시장도 붙잡고 껴안으며 입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말… 여기 앉아 계신 누구 못지않게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람들이 광란에 가까운 외침을 터뜨렸고, 온통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두세 시간 뒤에야 군인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며 저를 군중 사이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제 겉옷에는 주머니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신발도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제 옷을 죄다 잡아당겨 거의 벗겨 놓은 채 소리치고 울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슬픈 마음으로 인도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은 오늘도 똑같이 참되고, 똑같이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언제나처럼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동일한 주 예수님이시며,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같은 복 안에서 함께하는 남녀들이 여기 같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의 위대한 구원자께서 다른 나라에서 성령의 위대한 찾아오심을 누릴 특권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오늘 서서 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이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영원하신 하나님, 오늘 아침 이 무리 안에 있는 사역의 은사들, 이들은 침례교와 감리교, 장로교와 여러 갈래의 오순절교에 속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오늘 아침 공통된 한 가지 안에서 나누는 이 교제가 이들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들을 어느 자리에 두셨든지, 영생에 이르도록 정하시고 각자의 자리를 주셨으니, 경건하게 섬기게 하옵소서. 영광스러운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난은 사라지고 우리가 그분을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저 건너편에서 함께 앉게 될 그날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오, 여기 있는 모든 목회자의 강단과 설교와 사역에 더 큰 영감을 부어 주옵소서.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아침 제 형제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오, 여기 있는 모든 목회자, 이 섬기는 영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그들 안에 있는 은사를 정결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자라면 더 나은 설교자로, 복음 전도자라면 더 나은 복음 전도자로, 교사라면 더 나은 교사로, 목자라면 더 나은 목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그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영생과 사역할 권능을 주실 위대하고 초월적인 포도나무에서 힘을 얻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그토록 도움이 필요한 세상에 손길을 내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부족함을 용서하옵소서. 편협한 믿음과 옹졸한 분파적 생각을 용서하옵소서. 우리가 침례를 받아 하나의 큰 형제 공동체, 하나의 큰 교제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어,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이 더욱 펼쳐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형제 여러분, 오래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군요. 열 시 반입니다. 아니, 열 시 사십오 분입니다. 추가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