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기도로 하나님을 뵐 동안 잠시 그대로 서 계시겠습니다. 머리를 숙이시겠습니까?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아버지를 저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성경에서 영께서 “아바,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고 부르짖으신다는 말씀을 읽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 큰 구속받은 무리에 들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오후 저희가 이곳에 모인 목적은 오직 아버지를 경배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읽고,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더 나은 종이 되어 아버지를 위해, 또 아버지와 함께 더욱 가까이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을지 알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인 저희를 만나 주시고, 저희 마음에 그토록 갖기를 바라는 그 깊은 열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아버지를 찬양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십시오.
오늘 오후 이곳에서 주님을 섬기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잠시 함께 모인 일이 주님께 찬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함께 있는 형제들 가운데 많은 형제들이 오늘 예배를 드리는 다른 곳에 모였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갔던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도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예배를 드렸고, 여러분도 그러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무리 가까이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리 받아도 더 받고 싶어지는 무엇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때로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을 수도 있고, 차갑고 좋은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탈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도를 너무 많이 하거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큼은 아무리 받아도 충분해지거나 가득 차 버리는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 음식을 먹을 때... 적게 먹는 데 익숙해지면 위가 그 양에 맞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많이 먹으면 위가 그만큼 늘어나고요. 우리에게도 영적으로 좀 늘어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쩌다 작은 성경 구절 하나를 읽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말씀을 먹고 소화하는 우리의 용량을 늘려야 합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미니애폴리스에서 오신 피터슨 형제님 내외분 아닙니까? 어젯밤 여기서 사위 되시는 스타즈클레브 대위님을 뵌 것 같습니다. 육군 군목이시지요. 오늘은 안 보이시는군요. 아, 여기 이쪽에 계시네요. 집회가 끝날 때까지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떠나기 전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형제님과 함께 군부대에 가고 싶습니다. 자, 에스겔서 36장에서 한 절의 앞부분과 다른 한 절의 일부만 읽겠습니다. 26절과... 아니, 36절과 37절... 26절과 27절입니다. 새 마음도 너희 안에 두고 새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그리고 27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이제 이 본문을 놓고, 하나님께서 여기서 전할 말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본문에서 그 말씀을 이끌어 내 주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경에는 위대한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그 은사들을 교회 안에 두십니다. 오늘 오후 제가 삼고자 하는 주제는 이것입니다. 적으시는 분들과 녹음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어려워하는가?”입니다.
제게는 이것이 오늘 오후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늘 지붕 위에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늘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골짜기에 있는 것 같습니까? 집회에 관한 편지와 소식을 받으면 때로는 주님께서 제가 교회에 무엇을 전하기 원하시는지 알아보려고 기도하게 됩니다. 편지에서도, 또 때로는 밤에 분별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도 그런 혼란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영들 가운데 어떤 영은 기뻐하고, 어떤 영은 슬퍼하며, 어떤 영은 실망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때로 성령께서 오늘 오후와 같은 주제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에스겔은 메시아께서 오시기 약 800년이나 900년 전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들은... 옛날에는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선견자, 곧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 시대에서 은혜 시대로 바뀌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지자를 보내시는 일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신약에서도 예언은 똑같이 계속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선지자들도 똑같이 계속 있었습니다. 예언은 은사입니다. 어느 지역 교회에서든 한 사람에게 임했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임할 수 있는 은사입니다. 모든 사람이 한 사람씩 예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교회의 직분입니다. 교회 안의 은사가 아니라 교회의 직분, 곧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그런 사람이 되도록 정해지고 미리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지자로 태어납니다. 선지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로 태어납니다. 선지자, 곧 선견자는 한마디로 구약에서 독수리로 여겨집니다. 저는 그들을 독수리로 생각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삶의 많은 시간을 자연보호에 쏟으면서 야생 생물을 연구했습니다. 새와 야생 조류와 야생 동물을 연구하고 그들의 본성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새 가운데 비둘기를 제외하면 독수리가 거의 가장 흥미로운 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수리는 맹금이지만 하늘의 새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새장에 갇힌 독수리를 보는 것은 끔찍한 광경이라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 독수리, 그 거대한 새는 뒤로 물러섰다가 있는 힘껏 새장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부딪치고는 뒤로 튕겨 나와 바닥에 떨어져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습니다. 다시 큰 날개를 새장에 퍼덕이며 부딪쳤습니다. 막 새장에 갇힌 독수리였습니다. 그렇게 날개를 퍼덕이면서 새장에서 빠져나가려고 온몸을 뻗는 바람에, 날개와 몸의 여기저기에서 살갗과 깃털이 모두 벗겨졌습니다. 새장에 부딪칠 때마다 뒤로 떨어졌습니다. 지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자신이 하늘 높이 날도록 태어난 새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독수리의 본성입니다.
그것은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제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슬픈 광경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닉스와 세계 곳곳에서 그것보다 훨씬 더 슬픈 광경을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태어난 남녀가 마귀에게 갇혀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이 실제로는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딸이어야 하는데, 마귀에게 갇혀 정욕과 욕망 속에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날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올라가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새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도, 교사든 전도자든 목사든, 그 선지자들이 갔던 곳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높이 올라갔으며,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새는 그 높은 곳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독수리의 눈은 모든 새 가운데 가장 예리합니다. 어느 면으로나 매를 능가합니다. 매도 눈이 예리하지만 일정한 거리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매보다 높이 올라가므로 더 강력합니다. 매가 독수리에게 가려고 했다가는 죽고 말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매의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 여기서 잠시 멈추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이 서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려 하는지를 여러분께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독수리들은 그렇게 높이 올라갔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엘리야가 있던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왕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인 왕이었지만,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비통하게 울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가서 그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땅에서 매처럼 한마디만 해도 모든 것이 자기 발 앞에 굴복하게 할 수 있었지만,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왕처럼 그렇게 할 수 없었지만, 히스기야가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독수리인 에스겔은 1,500년, 1,800년, 아니, 2,50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일들을 보았습니다. 지상에서 충분히 높이 올라갈 수 있다면 밤과 낮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쪽은 어둡고 다른 한쪽은 밝을 것입니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고 여러분의 눈이 거기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온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독수리인 에스겔은 아주 높이 올라가 우리 시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가 어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한 시간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앉아서 투구를 벗어 놓고 몇 분만 귀를 기울입시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식인들의 힘으로 운영하려 하셨다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 성령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식인들의 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성령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사람을 목사로 모셔야 합니다.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건물을 짓고, 교회에 교인을 더 많이 끌어모으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몰아내고 지식인을 데려올수록 교회가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것이 계획이라면 말입니다. 그것이 계획이라면 설교자가 똑똑할수록, 회중이 똑똑할수록,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교회가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전체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의 지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지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려고 하는 한, 우리는 그저 허공을 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 침례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침례를 받았고 성령께서 교회를 운영하실 것이라면, 그렇게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교회를 더 좋게 만들려고 이 도시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더 좋게 만들려고 이 도시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더 좋게 만들려고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무리를 모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더 좋게 만들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지식인들은 그 일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배우지 못한 것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교육이 성령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교육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은 아닙니다. 교육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학교들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학교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지식인들의 교회가 아니라, 기꺼이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인도를 따르려는 배우지 못한 어부들의 무리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지식인들의 집단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출생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라면, 어떤 의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성경에 따라 교회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분께서 처음에 정해 놓으신 규칙입니다. 교회에는 침례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겉을 다듬는 일이나 강단에 더 학식 있는 사람을 세우는 일, 더 잘 차려입은 사람이나 더 잘 차려입은 회중이 아닙니다. 새 마음, 그것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남녀의 삶을 바꾸는 그 위대한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 같은 옛 마음을 제거하고 여러분 안에 새 마음을 넣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면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설교할 때, 오순절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오순절의 움직임을 추구해 온 그 자리에서, 이제는 거의 저마다 무리를 지어 따로 사는 분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혼란과 불화의 장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오후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이 도시의 모든 오순절 교회가 여기 어딘가의 큰 경기장에 가득 모여 있어야 합니다. 사역자들과 사람들 사이의 사소하고 하찮은 의견 차이만 없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리라.” “옛 마음을 다듬어 주겠다”가 아니라 “새 마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렵습니다. 우리는 침례교인들과 장로교인들, 지식인들 사이에서 진리를 설교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신자들 앞에서 진리를 설교하는 일은 두 배나 더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새 포도즙을 낡은 부대에 넣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때 저는 그 말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병이란... 여기 미국에서 우리가 아는 병은 유리로 된 물건입니다. 그런데 포도즙을 새 병에 넣든 헌 병에 넣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동방에 갔을 때, 성경 시대의 병은 유리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였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벗겨 무두질한 것입니다. 그 짐승 가죽의 기름이 가죽 안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가죽이 유연합니다. 그러나 가죽이 오래되어 굳고 마르면 더 이상 유연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이 가죽이 말라 굳어지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아직 생명이 있는 새 포도즙, 아직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그런 가죽 부대에 넣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포도즙이 발효하며 부풀기 시작하면 가죽이 터져서 부대와 포도즙을 둘 다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너희 진주들을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진주를 잃게 됩니다. 자기 방식에 너무 굳어 버린 교회를 보십시오. 침례교든 오순절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너무 굳어 버려서, 새 포도즙이 들어오면, 그 포도즙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데... 그 새로운 말씀이 “기적의 날들이 다시 왔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오래되고 바싹 마른 가죽은... 그 새 포도즙이 작용하기 시작해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것에 굳어져서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죽이 펑 하고 터져 버립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입으로 터지는 소리를 내신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아.”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고 말씀하기 시작하시는데, 그 말씀이 오래되고 마른 교회 가죽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그저 터져 버립니다.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오순절 날에 성령 침례는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되었다”고 말하면, 그 오래되고 마른 가죽은 그만 터져 버려 여러분의 설교가 헛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의 가죽들도 그렇게 말라 가고 있으니 부끄럽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보십시오. 새 가죽은... 그분께서는 “새 포도즙을 새 부대에 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가죽에는 기름이 있어 유연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성령 침례는 오늘날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과 똑같다. 신유도 언제나 그랬던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시면, 그 새 포도즙이 부풀기 시작하고 가죽도 거기에 맞추어 늘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능 가운데 선포될 때마다 새 가죽은 “아멘!” 하고 외칩니다. 말씀에 맞추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 포도즙에 새 부대를 쓰는 지혜를 아시겠지요. 오순절 날에는 새 가죽 부대 120개가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낡은 가죽 부대들은 밖으로 버려졌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이 새 가죽 부대들을 채우시자, 그것들은 새 생명을 얻어 바닥 여기저기로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문밖으로, 창문을 통해 거리로까지 뛰어나갔습니다. 새 가죽과 새 부대, 새 포도즙, 성령의 포도즙입니다. 부어져 나와 생명이 넘치고, 계속 늘어나고 벌어지고... “아, 요한 형제님, 형제님이 어느 교단 소속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일신교든 이신교든 삼신교든 오신교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이것이 새 가죽 부대입니다. 하나님의 성회든, 하나님의 교회든, 사중복음교회든, 우리가 무엇이든 새 가죽 부대는 쭉 늘어나서 주위의 모든 형제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낡은 소가죽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합니다. 완전히 말라서 굳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터지고 맙니다. 얼마 전 큰 집회를 마친 뒤, 브리티시컬럼비아 북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포장도로에서 약 1,100마일 떨어져 있었고, 말 21마리를 데리고 약 175마일을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저는 곰 한 마리를 뒤쫓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곰을 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인데, 곰은 제가 자기를 못 보게 하기로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었습니다. 제게는 세 살쯤 된 작은 말이 있었는데, 제가 타기 시작한 이래 줄곧 저를 떨어뜨리려고 애쓰던 녀석이었습니다. 그 곰을 쫓아 산비탈을 오르며 달렸는데, 어쩌다 계곡을 가로질러 저쪽으로 가려다가 방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길도 없고 빠져나갈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말을 몰고 산꼭대기로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야영지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워지고 있었으므로 말을 제법 빨리 몰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일어나 안개를 날려 보냈습니다. 밤 아홉 시쯤 되자 우리가 ‘버터밀크 하늘’이라고 부르는 하늘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 버터밀크에 생기는 응어리처럼 하얀 구름들이 몽글몽글 떠 있는 하늘입니다. 달이 빛나다가 구름 뒤로 숨고, 다시 빛나곤 했습니다. 작은 말이 땀을 몹시 흘리고 있었기에 녀석을 멈추고 쉬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말을 세워 가까이에 매어 두고, 안장 띠를 조였습니다... 아니, 안장 띠를 풀어 주었습니다. 가까이에 매어 두고 저는 통나무에 앉았습니다. 거기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오 하나님,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침 동쪽으로 바람이 불더니 제가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구슬픈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엇이 저렇게 정말 이상한 소리를 낼까?’ 생각했습니다. 바로 앞을 보니 불이 지나간 오래된 숲이 있었습니다. 불이 지나간 숲이 무엇인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나무들이 있던 곳에 불이 지나가 껍질을 전부 태워 버리고 나무들만 서 있는 곳입니다. 어떤 나무들은 바람에 쓰러져 있어서 헤치고 나가기도 어려웠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오래되고 하얗게 드러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거기에 달빛까지 비치니 아주... 흔히 하는 말로 ‘으스스하다’고 해야겠습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묘비들이 솟아 있는 공동묘지처럼 보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나무들 사이에서 정말 구슬픈 소리가 일어났습니다. 아, 그 소리라니요! 저는 ‘참 으스스해 보이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서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전에 본문으로 삼곤 했던 요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고,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먹었으며, 자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도다.” 저는 ‘정말 요엘서의 모습 그대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것은 높이 솟은 거대한 교회 첨탑들에서 나는 그 구슬픈 소리를 모두 생각나게 하는구나. 뒤에는 큰 교단들이 버티고 있지만, 그 낡고 마른 소가죽처럼 생명이 조금도 없구나.’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에 하셨던 것처럼 급하고 강한 바람을 보내실 때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음하고 끙끙거리는 것뿐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이이났어. 그으으런 데는 가까이 가지 마. 아아아, 그건 안 돼.” 아시겠습니까? 그저 끙끙거리고 신음합니다. 저는 ‘저 나무들은 왜...? 무엇 때문에 저렇게 신음할까?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구나. 그래서 신음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이 있다면 이 바람에 맞추어 흔들릴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루터교가 남긴 것을 감리교가 먹었고, 감리교가 남긴 것을 장로교가 먹었고, 장로교가 남긴 것을 침례교가 먹었고, 침례교가 남긴 것을 나사렛교가 먹었고, 나사렛교가 남긴 것을 오순절교가 먹었구나.” 저는 ‘결국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삭막한 교회 무리만 잔뜩 남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시에 부흥 집회가 열리기만 하면 “나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겠어. 안 돼. 그런 데는 가지 마”라고 합니다. 아, 형제여. 그것은 참 암울한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요엘이 “그러나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고 말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주님, 이것을 어떻게 이루시겠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또다시 큰 바람이 몰아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오래된 나무들 밑에 작은 관목들이 무리 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막 올라오는 아주 작은 나무들, 자그마한 나무들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그 작은 나무들을 휘감을 때마다, 나무들은 소리를 지르고 뛰며 서로를 붙잡았습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손뼉을 쳤습니다.” 얼마나 유연하던지요. 바람이 이쪽 존스 교회로 불어도 괜찮았습니다. 바람이 하나님의 성회 쪽으로 밀어도 괜찮았습니다. 다시 사중복음교회 쪽으로 밀어도 괜찮았습니다. 더없이 유연했습니다. 모두 함께 어울렸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 신기한 모습을 보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한 가지가 있구나. 저 나무들은 푸르고 유연해. 생명이 있는 거야.”
그러니 형제여, 성령은 풀 먹인 듯 뻣뻣하고 죽어 있는 지식인들을 위해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다시 태어나 자유로워진 남녀를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은 지식인에게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과 통회하는 영을 가진 이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배운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작은 관목 같은 사람이든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성령께 유연하게 반응합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에게 한 가지 물었습니다. ‘애초에 바람은 왜 불까? 그저 불고 싶어서 부는 것일까?’ 그러자 무엇인가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다. 그저 불고 싶어서 부는 것이 아니다. 저 작은 나무들이 흔들리며 휘어질 때마다 뿌리가 느슨해져서, 뿌리가 더 깊이 자라고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흥의 원리입니다. 지적인 이야기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께서 침례로 임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기뻐하며 성령의 기름부음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교회에 어떤 일을 합니까? 교회의 뿌리를 느슨하게 하여 뿌리가 뻗어 나가 존스 교회의 뿌리를 감싸게 하고, 존스 교회도 이 교회의 뿌리를 감싸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함께 하나로 이어진 큰 숲이 됩니다. 그러면 지옥의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그들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성경에 나온 순서를 보십시오. 여기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겉을 다듬은 마음도 아니고, 좀 낡은... 그 늙은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얼굴을 팽팽하게 당기는 수술이 아닙니다. 출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그 여인에게 필요합니다.
그 오래된 교회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옛 마음을 다듬어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돌 같은 옛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을 넣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새 마음은... 그 새 마음은 여러분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에 자리합니다. 심장은 혼이 거하는 곳입니다. 과학에서는 얼마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성경을 비판하던 옛 과학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믿는 대로’라고 하신 것은 잘못이다. 성경이 틀렸다.” 또 말했습니다. “심장에는 정신 기능이 없다. 사람은 머리로 믿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는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말씀을 어느 부분도 영적으로 풀이해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말씀이 하시는 그대로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성경은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않았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리’를 뜻하셨다면 ‘머리’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2년 전이었군요. 시카고 신문에 큰 제목으로 기사가 실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심장에서 작은 공간을 발견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동물의 심장이나 다른 어떤 심장에도 없고 오직 사람의 심장에만 있는, 혈구 하나조차 없는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이 혼이 거하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성은 따집니다. “아, 나는 너무 나빠.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아, 내가 저기로 가면 나는... 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따지는 생각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따질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리라.” 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여기서 실수했습니다. “그리고 새 영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분께서는 “옛 영을 좀 다듬고 옛 마음을 좀 다듬어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성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수했습니다. 감리교인들은 소리 높여 외쳤을 때 자기들이 분명히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여, 우리는 받았습니다. 누구든 외치기만 하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외치면서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신자들이 나타나 “우리가 방언으로 말하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말하면서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은 인정합니다. 이제 그 밖에도 온갖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로 받기 전에는 받은 것이 아닙니다. 형제여, 하나님의 영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열매를 바꾸어 다른 사람이 되게 하시기 전에는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열매로 너희가 그들을 알리라.” 여러분이 그토록 오르락내리락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새 영을 받으면 술을 끊습니다. 새 영을 받으면 거짓말을 그칩니다. 새 영을 받으면 그 영들로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새 영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너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리라.” 여러분이 그분을 위해 살려면 그분께서 새 영을 주셔야 합니다. 전에 가지고 있던 영으로는 여러분 자신과도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이웃과도 함께 살 수 없었고, 바로 다음 모퉁이에 사는 사람과도 어울릴 수 없었고, 이 그리스도인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고약한 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새 영을 주셔야 합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리라.” 이제 보십시오.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그런데 여러분은 교회에 가서 생각이 좀 달라지는 데 그치기 때문에 그토록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있잖아, 내가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 “할렐루야, 나는 받았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교회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어. 이제는 전처럼 보이지 않아. 할렐루야!”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시 예전의 틀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의심하고, 따지고, 온갖 일을 다 합니다. “자, 아무개 목사님이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하셨다면 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어.” 그러면서 여러분은 오르락내리락하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충분히 깊이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아, 브래넘 형제님, 제게는 모든 증거가 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증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교도들이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연필을 내려놓고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글을 쓰게 하고는, 마녀가 일어나 그것을 읽고 해석하여 사실을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사람이 방언으로 말할 수 있고, 외칠 수 있고, 환상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도 할 수 있는 그 밖의 어떤 일을 할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그는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 안에 계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증거로 제시되는 표적에 속지 마십시오. 표적에는 온갖 종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까지 속일 만한 표적들을 보일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의 표적들로 돌아오십시오.
이제 보십시오. “너희에게 새 영을 주고, 내 영을 두리라...” 보십시오. 새 마음은 여러분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새 영은 그 새 마음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은 그 새 영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그것은 이름난 시계 안의 태엽과 같습니다. 태엽이 시계의 중심에 자리하면 그 시계의 모든 움직임을 조절합니다. 친구들이여,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을 비틀거나 냉정하게 굴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여러분과 함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알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 한가운데에 계시면, 시계의 태엽이 나머지 모든 장치를 정확히 움직이게 하여 시간을 정확히 맞추듯,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 한가운데에 계시면 여러분 안에서 성령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시계인 성경에 정확히 맞추어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제하며, 사랑스럽고, 화평과 기쁨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온유와 인내를 지니게 됩니다. 성령의 모든 열매가 그 태엽에 맞추어 똑딱거리며 움직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일을 하는 것은 태엽입니다.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하는 일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하는 일도 아닙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하는 일도 아닙니다. 치유 집회가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새 영 한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온 교회가 정확하게 움직여 하나의 큰 사랑의 무리가 되게 하십니다.
아, 친구들이여,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십시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똑딱거리며 움직이고 있습니까? 아시겠습니까?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그 열매는 무엇입니까? 시간이 정확히 맞는지 어떻게 압니까?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자랑하지 아니하며 우쭐대지 아니합니다. 잘 어울리고, 이웃에게 친절하며, 사랑하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선함, 부드러움, 인내, 온유,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안에 계셔서 움직이게 하실 때, 이 모든 좋은 성품이 그 사람의 삶에서 똑딱거리며 나타납니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침례가 이것을 이루어 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보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저 흉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은 나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의 태엽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여기 성경에 정해 놓으신 방식 그대로, 정확히 그대로 그의 삶을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서로 다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싸움과 소란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일신교와 함께 믿거나 교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신교가 하나님의 성회와 함께 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감리교가 침례교와 함께 믿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장로교가 어느 쪽과도 함께 믿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분열과 의견 차이와 다툼과 소란과 온갖 일들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외치고, 방언으로 말하고, 조직을 만들고, 교육하고, 선출하고, 무엇이라고 부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자신의 교회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그 하나님의 권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시기 전까지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그보다 못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니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태엽 대신 증거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겉의 시계 케이스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 교회가 얼마나 큰지, 그 위에 첨탑이 얼마나 큰지,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잘 차려입었는지, 우리 목사님이 어떻게 서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 가는 송아지처럼 “아아멘” 하실 수 있는지, 그런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들만 머릿속에 넣어 두고 태엽은 빼놓았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산들을 옮길 만한 은사가 있을지라도, 모든 말을 이해하고 모든 지식이 있을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라.” 아, 제 마음은 그저... 여러분께 표현해 드릴 지식이나 무언가가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람들이여... 아니,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태엽을 빼놓지 마십시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시계처럼 보여도, 그 안에 태엽이 없으면 결코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형제여, 우리는 자신을 사중복음교인, 하나님의 성회 교인, 장로교인, 침례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순절 신자라든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태엽이신 성령께서 안에 계셔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선함과 오래 참음으로 움직이게 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연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참된 치유 집회를 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신실한 사람들을 어떤 기초 위로 인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기초입니다. 다른 기초는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초를 놓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태엽이 빠져 있습니다. 건축자들은 자기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듯한 그 작고 이상한 태엽을 잡초 더미 속으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모퉁이의 머릿돌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온갖 감각적인 체험과 온갖 증거와 그 밖의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태엽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우리 교회도 다른 교회들과 똑같이 메말라 있을 뿐입니다. 교인 안에 그에게 화평과 기쁨을 주는 무엇이 있어서, 그가 늘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 제가 그 선견자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멍에가 편해집니다. 목 주위를 쓸어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안쪽에 사랑이 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만 대어져 있다면 머지않아 목 주위를 쓸어 아프게 할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외치고 춤추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서 “아멘”을 노래하고 송영이나 소위 ‘사도신경’을 암송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람들이 써 놓은 “나는 거룩한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도들의 교통을 믿습니다”라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것에 반대합니다. 사도들에게 신조가 있었다면 그것은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입니다. 그들에게 신조가 있었다면 그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교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교회의 교리문답을 모두 암송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한 루터교인이거나, 가톨릭교인이거나, 감리교인처럼 교리문답이 있는 어느 교회의 신자일 수도 있습니다. 교리문답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교회를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태엽, 태엽입니다. [불명확한 말.]
교회에서 잠깐 외치고는 거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당신이 광신자라는 건 알아요?” 하고 말하면, 아, 그 말이 몹시 쓰리고 아픕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이봐요, 며칠 전 밤에 당신이 소리를 지르다가 머리카락이 풀어져 내리는 걸 봤어요.” “존, 당신이 그런 식으로 하려는 거라면 우리도 그 무리에서 나오는 편이 낫겠어요.” 쓸려서 아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태엽이 그 안에 있으면 사랑으로 안을 댑니다. 그래서 멍에가 편합니다. 무엇이든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광신자라고 부르든, 미쳤다고 하든, 무엇이라고 하든, 멍에가 아주 편해서 여러분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 태엽과 함께 멍에를 메면 더 이상 여러분이 아니라 그분께서 움직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편합니다. 삼손이 가자의 놋 성문을 그저 메고 가 버린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광신자라고 부르거나 조롱하면, 그 짐을 그대로 메고 갈보리라는 산으로 올라가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그때 사랑이 옵니다. 사랑입니다! 세상이 애타게 갈망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무엇인지 보여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분의 권능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를 주 예수님의 움직임 없는 몸 앞으로 데려가십니다. 죽으시고, 두 손에는 못이 박혔고, 뺨은 창백한 채로 무덤 안에 누워 계십니다. 여러 사람이 굴려다 놓아야 했던 거대한 돌 위에는 로마의 봉인이 찍혀 있습니다. 그분께서 거기 누워 계셨습니다. 로마 백부장은 “그는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경비병도 “그는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죽음을 문서로 확인했고, 모든 것이 그분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데려다가 사흘 낮과 밤 동안 그곳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사냥개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무덤 곁에는 손가락으로 돌을 밀어젖힌 천사가 서 있습니다. 그 창이 그분의 몸을 방부 처리하여 피 없이 창백해진 그 죽은 얼굴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분의 뺨에 건강한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보입니다. 그분께서 서서 “다 평안하냐! 모든 권능!” 하고 외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며칠 뒤 그분께서 사도들에게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내가 올 때까지 이런 표적들이 그들을 따르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는 등의 말씀을 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보십시오! 그분의 발아래에서 생명이 일어나는 것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분께서 위로 들려 올라가기 시작하십니다.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중력의 법칙을 깨뜨리고 거스르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분께서 중력의 중심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들려 올라가기 시작하십니다. “내가... 내가 가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이리라.” 거기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습니다. 중력을 깨뜨리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싶으시다면 잠깐 함께 여행을 떠나 봅시다. 마치기 전에 잠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거짓말을 그치게 된 그 영의 중심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그러면 그 영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것이 정확히 바르게 작동하도록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사랑이... 그러면 일이 이쪽에서 잘 풀리든 저쪽에서 잘 풀리든, 여러분은 늘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여전히 승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살든 죽든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목을 베려고 했을 때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끝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무덤이 그를 바라보고, 사망도 그를 바라보며 “바울아, 몇 분 뒤면 네가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태엽은 여전히 똑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으로 나를 겁줄 수 있는지 보여 다오. 네가 무엇으로 내가 십자가를 내려놓게 할 수 있는지 보여 다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보이십니까?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아니, 도대체 누구입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거리를 걸어 다니지만, 150파운드 나가는 몸의 가치는 겨우 84센트입니다. 그런데 형제여, 여러분은 온 나라가 자기 것인 양 행동합니다. 설교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 내게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어. 나는 굳이...” 그것은 안 해도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회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장로교인이야. 나는...” 계속 그러십시오. 괜찮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장로교인인 것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도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 안에 태엽이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태엽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아, 몇 달 전에 의사 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 생명이 새로워진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제 몸 안에 땅의 원소 16가지가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저는 원소 16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칼슘과 칼륨과 석유와 우주의 빛, 그렇게 서로 다른 원소 16가지가 함께 모여 여러분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먹을 때마다 제 생명이 새로워지는 것이군요.”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저는 열여섯 살 때와 똑같이 콩과 감자와 고기와 빵을 먹습니다. 그때는 먹을 때마다 더 크고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먹을 때마다 더 늙고 약해집니다. 물병에서 잔으로 물을 부어 잔이 반쯤 찼는데, 계속 부을수록 수위가 더 내려간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과학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정해진 약속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물두 살에서 스물다섯 살쯤 되었을 때 죽음이 여러분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무리 몸을 잘 돌보고, 맥스 팩터로 입술을 새로 그리고 온갖 화장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매여, 여러분은 그 정해진 약속을 향해 곧장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턱시도를 입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여, 여러분은 그저 얼마 안 되는 칼륨과 칼슘이 섞여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압니다. 같은 종류의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여러분이 마음먹었을 때...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집에 작은 아들이나 딸 하나를 갖고 싶어 했을 때, 의사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까? “선생님, 땅에서 칼륨과 칼슘과 석유를 좀 긁어모아 주세요. 그리고 날마다 오셔서 갈색 눈과 갈색 머리의 아이를 만들어 주세요. 머리는 곱슬거리게 해 주시고, 작은 딸아이에게는 긴 머리와 손톱 단장 같은 것도 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땅의 흙이지만, 여러분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만드십니까?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통해서 만드십니다. 그 음식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땅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장로교인, 침례교인, 오순절 신자 여러분, 잠시 가만히 앉아서 이것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교단에 그토록 빠져 있고, 자기가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도취되어 성가대에서 노래하려는 여러분, 지옥에서 노래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잘 보십시오... 그러면 왜 제가 육체적으로 살려면 먹어야 하며, 제가 먹는 음식은 혈구로 바뀝니까? 그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 음식을 가져다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혈구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 안에서 뛰고 있는... 기계든 그 밖의 무엇이든 만들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혈구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제가 날마다 살아가려면 죽은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살 수 있도록 무엇인가가 죽어야 합니다. 쇠고기를 먹으면 소가 죽은 것입니다. 양고기를 먹으면 양이 죽은 것입니다. 생선을 먹으면 물고기가 죽은 것입니다. 빵을 먹으면 밀이 죽은 것입니다. 감자를 먹으면 감자가 죽은 것입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은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녹음 공백.] 새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자신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다시 임할 수 있도록 그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오직 [녹음 공백.] 무엇인가가 죽지 않으면 여러분은 살지 못합니다. 육체를 가진 존재가 죽은 것으로 살아야 한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다시 살 수 있도록 무엇인가가 죽어야 했습니다. [녹음 공백.] 교회. 조직도 아니고 사람들의 무리도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태엽이,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움직이시는 동안... 악수해서도 아니고, 또 ... 해서도 아니고... 옷을 더 잘 입든 그 밖에 무엇을 더 하든, 여러분은 죽은 것으로 살아갑니다. 더 좋은 교회, 혹은 여러분이 더 좋다고 부르는 교회에 속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숙녀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됩니다.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강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보십시오.
이제 잠깐만 여행을 떠나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땅이 물 위로 솟아올랐을 때, 땅은 삭막하고 벌거벗은 사막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땅 어디에도 생명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과학은 땅이 태양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말합니다. 무엇에서 나왔든 어디서 나왔든, 생명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다면, 이 점을 알아두십시오. 여러분의 몸은 태초에 이 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칼슘과 칼륨과 석유가 태초에, 땅이 물 위로 솟아올랐을 때 이 땅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시고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로고스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 위대하신 성령입니다. 그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 봅시다.
그분께서 두 개의 큰 날개를 펼치고 땅을 내려다보시다가 땅을 품기 시작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암탉이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품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온 땅을 품기 시작하시자, 석유와 이런저런 것들이 모여들더니 작은 부활절 백합 한 송이가 땅 위의 첫 번째 생명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입니다. “아, 아름답구나. 계속 품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후 풀과 식물들이 땅 위에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계속 품으셨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새들이 흙에서 나와 날아올랐습니다. 성령께서 계속 품으셨습니다. 얼마 후 땅에서 사람이 나왔고,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멈추셨습니다. 그것들을 보시고 “참으로 훌륭하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그의 옆구리에서 작은 갈빗대 하나를 꺼내 아름답고 자그마한 신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입니다. 자그마한 이브가 아담의 팔을 잡고 동산, 곧 낙원을 거닐고 있습니다.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화장품이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아름답습니다.
그 여인은 아담의 팔을 잡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바람이 불자 “아, 아담, 저 바람!” 하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잠잠하라!”고 했고, 바람은 그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얼마 후 크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자그마한 이브가 두려워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했습니다. 크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여인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아담은 그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자였습니다. 사자 레오였습니다. 아담이 “레오야, 이리 오너라” 하자 사자가 다가왔습니다. 또 다른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호랑이 치타였습니다. 아담은 그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 주위에서 새끼 고양이들 같았습니다. 저녁 무렵 그가 바깥을 내다보자 이브가 말했습니다. “아, 아담, 해가 지고 있어요.”
아담이 말했습니다. “경배하러 가야 하겠소.” 저녁 시간이 되면 홀로 있고 싶어지는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까? 경배하러 갈 시간이 되자 그는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아내에게 하듯 그 여인의 팔을 잡고, 함께 대성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아, 그 위에는 큰 첨탑도 없었고 푹신한 좌석도 없었습니다. 아마 나무들이 모여 서 있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흙에서 품어 내신 성령께서 그 거룩한 빛을 덤불에 걸어 놓으시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기도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이들아,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둔 이 땅에서 오늘 즐겁게 지냈느냐?” “아, 예, 아버지. 즐거웠어요. 정말 좋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아, 해가 지는구나. 내가 너희에게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하러 내려왔단다.”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저는 아내의 손을 잡고 침실로 가서 어린 요셉의 작은 손을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여보, 이것 좀 봐요. 당신 손을 좀 닮았네요.”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보, 이 아이의 눈매는 당신과 꼭 닮은 것 같아요.”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혈통이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사랑하게 합니다. 저는 어린 요셉에게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하고, 살며시 어린 사라에게 가서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하고, 어린 리브가에게 가서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그저, 아, 그저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첫 작은 가족에게 잘 자라는 입맞춤을 하셨을 때, “이제 잠자리에 누웁니다.” 사자 레오도 눕히시고, 호랑이 치타도 눕히셨습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해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해로움이나 위험은 다가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땅에서 품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잠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주목하십시오. 자세히 보십시오. 그 후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자, 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죄는 사람을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패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가 한 일을 저지르고 세상에 생명을 낳아야 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에 데려오십니다. 땅의 흙으로 여러분을 만드십니다. 우주의 빛이나 다른 것들을 아무리 쌓아 놓아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빛을 아무리 많이 병에 담고 거기에 석유를 아무리 많이 섞어도, 결코 사람을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의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땅의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를 땅에서 품어 내고 땅의 흙에서 불러내는 데 성령이 필요했다면, 이제 저는 도덕적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생명을 원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거절하고 싶다면, 저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이니 그때는 마귀를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하면 하나님을 택할 수 있습니다.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 앞에 그것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제 머리로 생각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저를 땅에서 나오게 하는 데 성령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는데 성령께서 지금의 저를 만드셨다면, 제가 선택했을 때는 얼마나 더 능히 저를 땅의 흙에서 다시 나오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의 지식도 아니고 교회 회원 자격도 아닙니다. 내려와 품으시며 저를 부르시는 성령께 제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두 손을 들어 마지막 날들에 저를 일으키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아, 형제여, 지식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머리로 생각해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제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아, 기쁜 날입니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저의 선택을 굳게 두겠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가라앉는 모래입니다. 저의 선택은 주님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움직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내 말씀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 성령님.” “내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노라.” “성령님, 저는 믿습니다.” “내가 너를 봉인하리라.”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십시오. 교회가 아니라 성령입니다. 교단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성경은 옛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마귀가 사람에게서 나가면, 마른 곳들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와서 집이 깨끗이 청소된 것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한때 낡은 깡통이 널린 골목에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마귀와 쥐와 다른 모든 것이 사는 곳입니다. 다툼과 싸움과 소란과 논쟁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그런 곳에서는 사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외치고 소리 지르며 온갖 일을 하면서도, 그 뒤에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실 때는 하나님의 큰 불도저를 가져오셔서 그 낡은 골목을 파헤치십니다. 더러운 것을 퍼내어 망각의 바다에 묻으시고, 넓고 좋은 터를 평평하게 고른 뒤 크고 훌륭한 저택을 세우십니다. 그분께서 거기에 사십니다. 그러면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긍휼과 친절과 믿음의 꽃들이 그 집 주위에 피어납니다. 영광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그만 설교를 마쳐야 하겠습니다. 아직 본문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깡통과 쥐와 거짓말과 험담과 이기심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불화가 모두 나갑니다. 그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아직 평평하게 고르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아멘! 여러분의 쥐들을 없애 버리십시오! 성령께서 그 불화들을 없애십니다. 여러분을 사랑과 기쁨과 화평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주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십시오. 사탄은 더러운 발을 그곳에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죽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성령에 의해 봉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옵니까? 성령께서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이 꽃들은 실제로 성령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가서 조화를 가져다가 마당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 꽃들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나는 교회에 가입했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야겠지.” 여러분은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계시면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아, 저 여자의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싶어. 으음, 저 일신교 여자, 저 삼위일체파 여자, 저런 이런저런 사람. 아, 나는 저 여자에게 말도 하지 않겠어... 뭐, 그 집회에 가겠지만 [불명확한 말.]” 아, 이 바리새인이여.
바리새인은 ‘배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종교를 연기하려고 할 뿐입니다. 참된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에 넣어 주실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배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연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조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은 판지로 만들어졌고, 쥐들이 그것을 다 갉아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운영하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려 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바다가 잉크이고 하늘이 양피지이며, 땅의 모든 줄기가 붓이고 모든 사람이 글 쓰는 일을 한다 해도, 위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쓰려면 바닷물이 다 마르리라. 그 두루마리를 하늘 끝에서 끝까지 펼쳐도 그 사랑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그것이 성령입니다.
피닉스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꺼리며 따지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는 하나로 연합한 큰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갑니다. 기도합시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거절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잘못이 있습니까? 마귀의 골목에 살면서 억지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와 하나님의 크고 거룩한 집 둘레에 꽃들이 늘 피어 있습니까?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실제로 이런 꽃들을 피어나게 합니다. 향긋한 냄새가 언제나 여러분 주위에 있습니다. 비난이 들리지 않고, 그런 말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저 달콤하고 편안합니다. 성령께서 안에 계셔서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로, 저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손을 들어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런 삶을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예, 이쪽에 계신 분도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손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아십니다. 위층에도, 어디에 계시든지요. 친구들이여, 기억하십시오. 저는 그저 사역자일 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라고 하시는 대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분을 따르고 말씀 안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런 삶이 여러분에게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놀라운 체험들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형제여,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체험으로 너희가 그들을 알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너희가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기쁨, 오래 참음, 온유, 사랑, 인내, 친절, 부드러움, 믿음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따르고 있습니까? 친구들이여, 이 길에서 속지 마십시오. 이번이 여러분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 또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손을 드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청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기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층에 계신 분도요. 이제 여러분 자신이 판단하실 차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모두 기도하십시오. 저는 심판대에서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하고 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후 이 메시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식이 심판 날 하나님의 레이더 화면에 진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 년이 지난다 해도 여전히 진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예언의 메시지가 주어진다.] 머리를 숙이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제가 한 말을 정확하게 뒷받침했습니다.
이제 말씀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증언을 듣고, 고백하며 나오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기로, 바로 이 제단 주위로 내려오십시오. 제가 여기서 여러분의 손을 잡겠습니다. 여기 함께 서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여러분 안의 그 낡은 이기심과 여러분을 쓸어 아프게 하는 그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태를 없애 달라고 구합시다. 이곳으로 와서 서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새 영을 받으십시오.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미 외쳤습니다. 방언도 말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로 내려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태엽을 받으십시오. 그것을...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맨 먼저 자리에서 나와 주시니 좋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이제 여기로 곧장 내려오십시오. 여러분에게 그런 삶이 없다면, 나중에... 오늘 밤이면 어쩌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아, 저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여기로 오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속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다면 오십시오.
그렇습니다. 위층에서 나와 내려오십시오. 이제 기억하십시오.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런 메시지를 수없이 들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마지막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나 기도하십시오.) 순종하며 잠잠히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님 뜻대로 하소서! 제 온 존재를 온전히 다스리소서! (오 하나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주의 영으로 채우소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분의 영으로 충만하여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만 제 안에 사시도록! 어서 오십시오. 오십시오. 친구들이여, 아시겠습니까? 여기에는 더 많은 분이 있습니다... ... 뜻대로, 주님 (기도하면서 “주님, 지금 저를 살피소서” 하십시오.) 주님 뜻대로! 주님은 토기장이, (성령께서 품어 역사하시도록.) 저는 진흙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참된 몸으로 빚어 모으시고 일으키시기를 원하십니까?) 저를 빚으시고 만드소서. (어떤 교회의 신조에 맞추어 만들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제가 기다리는 동안, 순종하며 잠잠히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정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정직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정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토기장이께 자신을 맡기면 모든 것이 놀랍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성령의 기쁘고 평안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기 마음속으로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정직하여 나와서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정직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내려오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여기 서 계셔야 할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압니다. 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다시 한번 부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이렇게 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주님 뜻대로 하소서. 저의 오래된 이기적인 방식을 깨뜨리소서.”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십시오.)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님은 토기장이, 저는 진흙입니다. (여기 이쪽에 계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 저를, 주님 뜻대로 빚으소서, 제가 기다리는 동안, (오 하나님!) 순종하며 잠잠히 있습니다. 그저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님 뜻대로. 저를 살피시고 시험하소서. (무엇으로 시험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으로 하십니다.) 주여, 간구합니다! 주님, 지금 저를 씻어 눈보다 희게 하소서.
나머지 분들도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을 들어가지 못하게 할 작은 얼룩이 있다고 느끼는 분은 곧장 앞으로 나오십시오. 지금이 삶의 마지막 시간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삶의 마지막 시간이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여러분은 정직한 노력을 보이고 계십니다. 성령 안에서 전해진 그 말씀이... 우리 오순절 신자들의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 깊이 뿌리내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르게 만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 마음에 넣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참되기를 원하십니다. 친구들이여, 들으십시오.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순절의 하늘에 참된 것이 가득한데 왜 대용품을 받으려 하십니까? 왜 어떤 기이한 것에 기대려 하십니까? 오순절의 하늘에 참된 것이 가득한데, 왜 아무 실체도 없는 작은 감정이나 이런저런 작은 것에 의지하려 하십니까? 참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대용품을 받지 마십시오.
바울은 “내가 행하는 이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방언도 그치고 다른 모든 것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오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용품을 받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저는 진짜 승리자를 원합니다. 저는 앞장서고 싶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참된 것, 오직 참된 것만 원합니다. 그것이 여기 여러분을 위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오순절의 하늘에는 그것이 가득합니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성회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이 사중복음교회만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순절은 교단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체험, 곧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강하게 이끄는 체험입니다.
그러면 이 다른 것들은 무엇입니까? 속성이 나타난 것들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들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사과를 나무 대신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나무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그 나무가 사과를 맺을 것입니다. 나무 밑에서 온갖 표적과 기이한 현상을 원하는 대로 주워 가질 수 있어도, 여전히 나무는 없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먼저 나무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나무 스스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나무가 이런 것들을 맺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 여기 서 계신 분들을 보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만족하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무슨 차이를 만듭니까?”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과 생명의 차이입니다.
“제가 저기로 걸어 나가서 서 있으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형제여,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려서 손해 볼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거기 앉아만 있어서 어떻게 얻겠습니까? 움직이십시오. 일어나십시오. 몸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십시오. 여기 있는 이분들을 보십시오. 여러분 교회의 교인들입니다. 이분들은 자기 삶에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말했을 수도 있고, 예언했을 수도 있고, 설교했을 수도 있고, 이 모든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에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고백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실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저는 그분의 복된 말씀을 믿습니다. 이 줄에 일어나 서 있는 모든 신실한 마음이 지금 이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 받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오순절 교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 「인생 찬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나 어딘가로 몰아넣어야 하는, 말 못 하고 쫓겨가는 가축처럼 되지 마십시오. 영웅이 되십시오. 그곳에 나서십시오. 위대한 이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우리의 삶도 숭고하게 할 수 있으며, 떠날 때에는 우리 뒤에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그 발자국을 보고, 어쩌면 다른 누군가, 삶의 엄숙한 바다를 항해하는, 외롭게 난파한 형제가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음을.
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된 친구들이여, 여러분의 고백을 보십시오. 온 하늘에 그분의 복이 가득한데, 여기 서서 아무것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감정이 한껏 격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이미 많이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흥분하고 감정에 휩싸이는 일이 아닙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 나와서 “하나님, 이제 저는 믿습니다. 제 삶을 움직이는 그것을 제 안에 넣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기 서 계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나 믿으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께 고백하고 계십니다. 일어나 여기 서 계신다는 것이 여러분의 진실함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먼저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먼저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이제 모든 분이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데 온전히 정당하다고 느끼신다면, 자신이 의롭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어디에도 흠이 하나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따라 삶이 움직여 이 성경의 삶을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만족하신다면...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 날도 심판대에 오를 것입니다. 형제여,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때 가서 바로잡으려고 하기보다, 지금 목사님과 교회와 모든 사람 앞에 나와서 바로잡겠습니다. 지금은 긍휼을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방언의 메시지들과 통역들이 주어진다.] 오, 이런! 주님께서... [방언의 메시지들과 통역들이 더 주어진다.]
오 주 우리 하나님, 지금 서 있는 이분들, 이분들을 주심을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주님, 저희가 엄숙한 마음으로 모든 원수 앞에 나아갑니다. 저희 자신을 주님께 희생물로 드립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이 거의... 원수가 진영을 점령하려 하고 왕이 말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 예언하여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지 알려 주었던 것과 같습니다. 오 하나님, 그들이 보니 원수들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서로를 죽였고, 이스라엘은 노략물을 거두었습니다. 오 하나님, 온 세상에 이토록 혼란이 많은 이 시간에 이 작은 무리가 이제 주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소서. 성령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바퀴, 에스겔이 보았던 바퀴 한가운데 있는 바퀴, 공중에서 돌아가는 이 바퀴가... 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오, 위대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 아브라함을 품으로 부르셨던 분이시여, 주님의 이 자녀들을 불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이제 저희가 하나님의 품을 붙잡고 젖을 빨기 시작하게 하소서. 오 주님, 허락하소서. 이제 어떻게 믿음으로 손을 뻗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지 아는 모든 신자가, 그 선하고 귀하신 성령을 젖처럼 자기 몸 안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모든 죄책과 정죄를 없애 주소서. 모든 죄책을 없애 주시고, 바로 오늘부터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온유와 부드러움과 인내의 성령께서 여기 있는 모든 마음에 자리 잡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종으로서 온 마음을 다해 이 무리를 위해 중보합니다. 주님, 주님께 드립니다. 이것이 설교의 열매입니다. 이분들이 제가 주님께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복음 설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랑과 화평과 기쁨과 이해와 온유와 부드러움의 영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소서. 성령께서 차갑고 뻣뻣하며 무관심한 것을 녹여 주소서. 하나님의 날카로운 괭이로 쓴 뿌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내 주소서.
하늘에서 샘물이 쏟아져 내려 그들의 메마른 혼 위에 부어지게 하소서. 매 맞은 반석에서 나오는 이 생명수로 성령의 열매가 피어나게 하소서. 오 영원하신 분이여, 복을 내려 주소서. 이제 손을 하늘로 든 채로 함께 기도합시다. 여러분 모두 지금 [불명확한 말.] 성령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제 이 형제님이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실 동안 계속 손을 들고 계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변화시키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서 계신 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