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그대로 서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지극히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 오늘 저녁 주님의 임재 안에 나아와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선하심에 감사드릴 수 있으니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신 약속이 저희에게 있음을 압니다. 저희 혼이 그 말씀 안에서 얼마나 평안히 쉬는지요. 오늘 저녁 저희에게 주님의 복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저희가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의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인지 모르겠군요. 목이 쉬었으니 음향 기사님께서 소리가 최대한 잘 잡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조찬 모임, 목회자 조찬 모임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피닉스의 모든 목사님이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니 형제님들, 가능하시면 참석할 계획을 세워 주십시오. 장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밀러스 카페테리아라고요. 조찬을 위해 자리를 예약해 두셨나 봅니다. 아홉 시입니까, 그루머 형제님? 아홉 시요? 아홉 시입니다.
이곳, 강단은 농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 전 전화로 들은 짧은 이야기가 있는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게 열여덟 달 된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저와 함께 이곳에 와 있어서 아이의 할머니가 돌보고 계십니다. 어머니께서 목이 너무 쉬어 말씀을 못 하시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어린 조셉이 어머니를 집 밖에 두고 문을 잠가 버려서 들어가실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답니다. 열쇠도 없고, 열쇠는 집 안에 있었지요. 열여덟 달 된 아이가 결국 직접 문으로 가서 자물쇠를 열어 할머니를 다시 들어오시게 해야 했답니다. 여보, 그건 당신을 닮은 건가? 하하하. 오늘 밤 그 말값을 치르겠군요. 아, 이곳에 오니 참 좋습니다. 저희 집이 있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고 합니다. 몹시 춥답니다. 소스먼 형제님도 며칠 전 밤에 댁에 전화하셨는데, 영하 5도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맘때 이 피닉스 지역에 사시는 여러분은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요한복음 10장에서 짧은 본문을 읽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말씀을 풀어 전할 내용도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과 14절을 읽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니라. 그리고 14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느니라. 자, 7절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니라. 그리고 여기서는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주제도 주 예수님보다 더 위대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분을 자랑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분은 누구든 그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받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저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제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저는 지금까지 제 목소리로... 아니, 제 생각 속에서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양들의 선한 목자이신 그분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양이라는 작은 동물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내일 조찬이 끝난 뒤 애리조나 남부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면, 내일 저녁에는 ‘어린양과 비둘기’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어린양에 관해 이야기하면 내일 저녁에 다룰 내용을 좀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주의 깊게 보고 그 행동을 살피기만 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양은 희생물로 드리는 동물이며, 순진하고 작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길을 잃으면 전혀 속수무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양에 비유하신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들은 도무지 스스로 길을 찾아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요. 누군가 이끌어 주는 데 의지해야 합니다. 또 서로를 이끌 수도 없습니다. 양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보면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 가운데 양에 비유된다면, 우리도 서로를 이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력합니다. 그러니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주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언젠가 도축장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양을 어떻게 도살하는지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양을 우리에서 나오게 해서 도살하는 곳으로 올라가는 통로로 보낼 때, 염소 한 마리가 양들을 그리로 이끈답니다. 양들은 염소를 따라갑니다. 그 염소는 양들을 도살하는 곳까지 이끌고 올라갔다가 옆으로 뛰어넘어 빠져나오고, 양들은 그대로 죽음을 향해 가게 내버려 둡니다. 그것이 염소의 본성입니다.
양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염소 울음과 양 울음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둘은 아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본성을 보면 양인지 염소인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과 참된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염소는 세상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잘못된 길로 곧장 이끌어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분리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곤경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양이라면 어떤 목자를 따르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양은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는 작은 동물입니다. 오늘 저녁 양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날씨가 아주 더울 때 양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양들은 한 마리는 이곳에, 다른 한 마리는 저곳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낮의 더위 속에서 모두 함께 모여 서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뜨거운 시련이 닥칠 때 하나님의 모든 양들이 함께 모여 선다면 참 좋지 않겠습니까? 시련이 몹시 힘겹고 열기가 뜨거우며 사방에서 온갖 일이 벌어질 때, 하나님의 작은 양들이 모두 함께 모여 서기만 한다면 서로가 드리워 주는 시원한 그늘 아래서 서로에게 기대는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렇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십니다. 물론입니다. 어려움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열기가 뜨거울 때 찾아가 앉아서 사정을 털어놓고, 서로의 비밀을 지켜 주며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참으로 좋고 믿을 만한 친구가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선한 남자나 여자라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 그렇게 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성경은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라고 말씀합니다. 곧, 와서 함께 서자는 것입니다. 추운 지방에서 양들을 보며 또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면, 작은 양들이 모두 바람을 막으려고 들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와서 한데 바싹 모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따뜻하게 해 줍니다. 각자의 몸에서 나오는 온기가 다른 양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주 차갑고 무관심해질 때에도 하나님의 양들은 그렇게 한데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좋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 오는 온기는, 아, 얼마나 소중한지요. 다윗은 시편 1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물 있는 강가에 심은 나무 같으며 그의 잎사귀는 시들지 아니하리로다. 그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형통하리로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특히 제가 사는 지방에서 소풍을 나가려면 그늘이 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작년에 심어 놓은 작은 나무라면 그곳에서 충분한 그늘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되고 웅장한 큰 참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가 보십시오. 시련과 시험 속에서 가지들이 이리저리, 이리저리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리면서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간 나무 말입니다. 그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을 것이라고 꽤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폭풍을 견뎌 내고 그 뿌리를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깊숙이 내리고 있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노성도를 찾아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분을 찾아가 잠시 교제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요.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사람이시면서 어떻게 문이 되실 수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어떻게 문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실 수 있을까요? 동방에 갔을 때 그 성경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내가 문이니라. 나보다 먼저 오는 자들은 모두 강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동방에서 양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 목자는 밤에 양들을 데리고 들어와 하나하나 세어 모두 들어왔는지 확인합니다. 한 마리라도 빠지면 자리에 눕지 않고 사막이든 온종일 양을 몰고 다닌 곳이든 찾아 나가서 그 양을 찾습니다. 그러고는 어깨에 메고 데리고 들어옵니다. 모든 양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목자는 그 입구에 몸을 눕힙니다. 그가 양 우리의 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위에 지붕이 덮인 우리입니다. 그러니 목자를 넘어오지 않고는 아무것도 그 양들에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얼마나 든든한 믿음입니까. 우리가 그분의 복된 보호 안에 안전히 있을 때 그분께서 문이 되어 주셔서 아무것도 우리에게 닥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무엇이든 모두 목자를 거쳐야 합니다. 병이라면 여러분을 바로잡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수를 대적하는 간증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닥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양 우리의 문이십니다.
“오는 자들은 모두 강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붙잡아 그분의 우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그분께 오는 모든 자는 강도이며, 그분의 우리에서 여러분을 빼내려는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양이 울듯 그 사실을 외치기를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양 우리 안에 있다면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분 자신이 문이시며, 다른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 여러분은 “왜 제가 병에 걸립니까?”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은 눈먼 사람 곁을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우에는 이 사람도 그의 부모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느니라. 다만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는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젊은 시절 내내 눈이 보이지 않았으니,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었습니다.) 그 젊은 시절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이 주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십니다. 이 양들에 대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양들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양의 주인이 목자를 구하려 할 때에는... 자기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목자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녔습니다. 이 사람은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특별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양들이 어떤 먹이를 먹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양이 먹을 수 있는 먹이는 많지만, 양에게 주면 죽게 되는 먹이도 많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들을 깊이 생각하셔서 알맞은 목자이신 주 예수님을 세워 주신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분은 양의 먹이가 무엇인지 아십니다. 양의 먹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 것이 아니...” (그 말을 조금 바꾸어도 되겠습니까?) “양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 곧 여러분을 양이 되게 하시는 분은 엄숙히 말씀을 먹으십니다. 오직 말씀만을 먹으십니다. 말씀 이외의 것을 우리 안에 던져 넣으면 코로 밀어 한쪽으로 치워 버리고 그대로 둡니다. 꽤 강한 말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여러분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양은 오직 양의 먹이만 먹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떼의 위대한 목자이신 주 예수님을 택하시고 그분께 모든 권위를 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이끌기 전에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목자가 불러도 그 양은 듣지 않습니다. 그 한 사람 외에는 어떤 목자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양치기 일을 보아도, 목자에게 무슨 일이 생겨 해고되거나 떠나게 되면 그 나라들에서 양을 기르는 사람은 그 양들을 다시 돌볼 사람을 찾느라 얼마나 애를 먹는지 모릅니다. 목자는 온유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특정한 음성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다시 말해 “내 양들은 내 말씀을 들으며, 그 밖의 것은 따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참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품삯을 받는 목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는 도망쳐 양들을 버려두고 갑니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양들과 함께 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하나님께 양이 있는 한, 그 양을 이끌 목자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기뻐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양들이 하나님의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이끌고, 먹이고, 인도하며, 돌보겠느니라.” 하나님의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한 목자를 내려놓고 다른 목자를 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목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 한 분 목자, 양 떼를 다스리시는 위대한 목자께서는 한 번 자기 생명을 내놓으셨고, 그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의 영은 결코 죽임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육신의 몸이 영광 가운데서 오셔서 다윗의 왕좌에 앉으시고 모든 어린양이 그분을 둘러설 때까지, 그분은 한결같이 영원토록 양들을 이끌고 먹이시는 분입니다. 아,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양 떼의 위대한 목자, 이토록 자격 없는 양들인 우리를 위해...
한번은 목자가 자기 양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이야기를 여러분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목자에 관해서는 여러 짧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누군가 그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양이 산에서 떨어져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그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왜 다리를 부러뜨렸습니까? 잔인한 목자이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 양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양이 자꾸 제게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혼자서 멀리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양의 본성을 압니다. 너무 멀리 떠나면 늑대에게 잡힌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그 양을 제 곁에 두고 품에 안아 특별한 먹이를 조금 주려고 다리를 부러뜨려야 했습니다. 제가 그 양에게 아주 잘해 주어서, 다리가 나으면 다시는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질병과 병환과 고통으로 우리를 쓰러뜨리셔야 합니다.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이끄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신성한 권능으로 특별히 어루만져 주셔서 여전히 주 예수님이심을 입증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치유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압니다. 그런 사람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고보가 그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시리라. 그들이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하나님의 목자께서는 자기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아십니다. 어머니, 때로는 어린 아기가 죽음으로 여러분의 품에서 갑자기 떠나갔을 때 그 이유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양에 관한 이런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화가가 그린 주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화가의 이름은 모릅니다.) 그 그림에서 주님은 양, 작은 어린양을 품에 안고 계십니다. 어미 양은 그분을 올려다보며 그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광경을 보았던 사람, 그 화가가 지나가다가 어린양을 안고 가는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 어린양을 안고 가십니까? 다리를 쓰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그 어린양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어린양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암양, 그 어미에게 있습니다. 어미가 더 이상 제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는 제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을 굽혀 그 어린양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어미는 하루 종일 저를 바라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 불쌍한 어머니들, 칵테일 파티에 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린 아기를 잘못된 길로 기르려 하는 어머니들 때문에, 때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위를 바라보게 하시려고 그 어린양을 데려가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늑대가 여러분을 잡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아, 우리는 양에게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목자에 대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양들의 목자가 밤낮으로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얼마 전 제가 사냥하러 가는 콜로라도에서, 우리가 ‘양의 산’이라고 부르는 산 반대편에 양을 방목하도록 허가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양을 먹이는 목자들을 보니, 어떤 이들은 수염이 아주 길게 자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양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언제나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밤중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을 아십니까? 저 아래에서 어린양 한 마리가 태어나자, 목자들은 곧바로 그 어린양을 찾아 떠났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목자들은 어린양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양을 기르는 분들이 앉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암양이 새끼를 낳을 때면 어느 때보다 각별히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목자는 양 곁을 거의 떠날 수가 없습니다. 새끼를 낳을 때는 야영용 침낭을 가져다가 바로 그 양들 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특별히 돌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옛날 방식의 부흥회가 열려 몇 분마다 어린양들이 태어날 때, 목자는 바로 양 떼 가운데 누워서 그 작은 양들이 올바른 길로 왕국에 들어오도록 지켜보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분께서 밤낮으로 지켜 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그분은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하데스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그분께서 거기 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장의사가 여러분을 땅속에 넣고 그 위에 흙을 6피트나 덮어도, 그 양을 목자에게서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누워 있는 곳을 정확히 아시며, 여러분에게는 그분의 표가 있습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에 그분께서 부르시면 저는 응답할 것입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양들은 그분의 음성을 알며 낯선 자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목자는 왜 언제나 양을 지켜야 합니까? 자기 양이 한 마리도 잃어버려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목자가 양을 한 마리라도 잃으면 그것은 그 목자에게 수치가 됩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목자는 자기 양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양이라면 괜찮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내게 오는 모든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내가 그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리라.” 장의사가 그를 땅에 묻을지라도, 내 양인 그는 내 음성을 들을 것이요,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위대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오리라.” 할렐루야! “영존하는 생명으로 나오리라.” 아, 양들의 목자께서 오시는 그 위대한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물 어린 슬픔도 목자를 막을 수 없습니다. 부패도...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나사로는 그분의 작은 어린양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구덩이 밑바닥에 누워 있었고, 입구에는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몸에는 곰팡이가 피고 코는 내려앉았으며, 구더기들이 그의 살을 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장이 무덤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아십니다. 지금 그분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면 여러분은 응답합니다. 선지자가 말한 대로, 그분께서 부르시고 제가 그분께 응답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몸이 썩었습니다. 그러나 목자께서 말씀하시자 부패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았고, 나흘 길을 가 있던 혼이 그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몸은 방부 처리를 받아 피도 없고 세포들도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목자께서 자기 어린양의 이름을 부르시자, 그 어린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제가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분은 놀라운 목자이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먹이시게 하십시오. 그분은 자신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먹이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십니다. 양 떼의 그 위대한 목자! 물론입니다. 그분은 한 마리도 잃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런 뜻입니까?”라고 하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 아래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에게 팔레스타인을 주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곳으로 올라가 모든 것을 쫓아내 버리고, 재앙으로 그들을 몰아내거나 모두 죽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곳에 두려움을 보내 그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스라엘아, 그것은 너희 것이다. 가서 차지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땅을 한 치라도 차지하려면 싸워야 했습니다. 위대한 목자의 책에 있는 모든 약속은 그분의 양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님, 그분께서 내려와 여러분 앞의 방해물을 몰아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약속을 한 치라도 차지하려면 여러분이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속한 것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목자의 완전한 모형이었습니다. 그들이 요르단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그 죽음의 바다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내셨습니다. 위대한 목자 모세는 참된 어린양 하나하나를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줄곧 이끌었습니다. 한 마리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굶주리지 않았고, 옷조차 해지지 않았습니다. 목자 모세가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르는 이들은 결코 잃어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목자를 따르십시오. 우리는 방금 섞여 들어온 무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들은요...”라고 하십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참된 양들은 곧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양들 말입니다. 그들은 어떤 먹이를 먹어야 하는지 압니다. 그 무리 전체, 열 사람이 돌아와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차지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들은 장애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라는 두 작은 어린양은 거기 서서 목청껏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목자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는 양 우리의 목자니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저는 양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다른 나라에서 어떤 분과 작은 영국제 지프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저 남쪽 지방의 어느 도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통경찰이 작은 호루라기를 불더니 모든 차가 꼼짝없이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시장이 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대체 무슨 일이기에 모든 것이 멈추었을까요? 그래서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지프의 흙받이 위에 올라서 봅시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목자가 양들을 데리고 도시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양들에게 길을 내주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정말 볼 만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작은 무리, 사람들이 ‘홀리롤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지금 골목으로 쫓겨나고 온갖 멸시를 받는다. 그러나 언젠가 양 떼의 위대한 목자께서 오시면 세상이 길가로 비켜서고, 그 목자께서 자기 양들을 팔레스타인의 거리로 이끄실 것이며, 그들은 그 선하심을 바라볼 것이다.” 저는 “평생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는 목자입니다. 우선 통행권이 있습니다.” 제 매니저인 백스터 씨는, 전에는 매니저였고 지금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큰 교회를 목회하고 계십니다... 조지 왕이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저희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고인이 된 조지 왕은 용감하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길모퉁이에 서 있을 때... 조지 왕은 위장병과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를 불러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주님께서 그 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날 그는 몸이 몹시 아팠지만, 거리를 지나갈 때 왕족의 혈통을 지녔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차 안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어서 아픈 줄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왕비는 고운 푸른 옷을 입고 그의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차가 저의 그 건장한 캐나다인 친구가 서 있던 모퉁이를 지날 때, 친구는 머리를 숙이고 몹시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두 손을 들고 울었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기 제 왕이 지나갑니다. ‘하나님, 왕을 지켜 주소서’가 연주될 때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영제국의 깃발 아래 사는 사람이 땅의 왕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어느 날 우리의 왕 중의 왕께서 아름답게 옷을 갖춰 입고 준비를 마친 신부와 함께 지나가실 때는 어떻겠는가? 그분의 손에 상처와 못 자국이 있을지라도 그분은 왕으로 서실 것이다. 왕들의 왕이요 주들의 주로 서실 것이다. 나는 그날을 보고 싶다.” 저는 종종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돌아오셔서 이 위대한 즉위식이 거행되는 것을 천사들이 볼 때... 약 2년 전에 무어 씨와 브라운 씨와 저는 루스벨트 댐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곳에 올라가 자연을 둘러보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는 저희가 부를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구속의 피를 노래하는 옛 찬송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사막의 언덕들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무어 형제님, 실제 환상은 아니지만 이런 광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오시면, 모든 시대의 구속받은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서서 노래하며... 은혜로 구원받은 이야기를 전하고 구속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천사들은 땅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머리를 숙이고 서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천사들에게는 구속이 필요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려진 이들은 우리였습니다. 그분께서 구속하신 이들은 우리였습니다. 천사들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존재들이지만,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우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속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되겠습니까. 그 목자의 경우로 돌아가서, 아직 몇 분쯤 시간이 있으니 조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그 목자가 거리를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거리에는... 팔레스타인과 다른 나라들, 동방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우리처럼 음식을 좋은 유리 진열대 안에 넣어 두지 않습니다. 그냥 물을 조금 뿜어 놓거나, 과일 더미 같은 것을 길거리에 그대로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목자가 바로 그런 곳 가운데 하나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 한바탕 소동이 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가까이 차를 몰고 가서 지켜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목자는 과일이 큰 벽처럼 쌓인 사이를 곧장 걸어갔습니다. 배와 채소 등 양들이 좋아할 만한 먹음직스러운 것들이었습니다. 양들이 이쪽저쪽으로 뛰쳐나갈 것만 같았는데, 목자 곁을 바짝 따라가며 오른쪽이나 왼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목자를 따라 모든 유혹을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참으로 다시 태어나 양 우리에 속한 양은 목자를 따라 이 삶의 유혹을 통과할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목자는 그저 양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처럼 힘겹고 큰 유혹을 지나는 동안 작은 양들이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쩌다 어린양이 그쪽으로 가려 하면 어미가 살짝 쿡 밀어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아이들이 잘못할 때 그렇게 쿡 밀어 바로잡아 주는, 옛날식 어머니들이 더 필요합니다.
저는 목자가 이렇게 발걸음을 옆으로 내딛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자가 이렇게 옆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가 돌아오면, 그를 따르는 모든 양이 정확히 같은 발자국을 밟았습니다. 그곳까지 와서는 안으로 갔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모두 차례대로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아, 형제님, 줄을 벗어나는 것은 양이 아닙니다. 유혹을 따라 옆길로 빠지는 것은 염소입니다. 뛰쳐나가 배든 무엇이든 잡히는 것을 낚아채는 것은 염소입니다. 양이 아니라 염소입니다. 떨어져 나가는 이들은 오직 비틀거리고 흔들리는 자들입니다. 그 나라를 떠나기 전 어느 날, 길가를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밖에서 많은 짐승들을 몰고 있었습니다. 보니 노새도 있고 소도 있었으며, 염소와 양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 사람을 뭐라고 부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와 함께 있던 분이 “목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목자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목자라는 말이 양만 돌보는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목자란 ‘먹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데 보셨습니까? 양과 염소와 노새, 모든 짐승이 같은 풀밭에서 먹고 있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그 목자는 마음씨가 좋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느 짐승이 그의 것인지 알려면, 밤이 와서 어두워질 때 보면 됩니다. 목자가 부르면 들판의 모든 양이 그에게 옵니다. 그러면 목자는 양들을 헛간... 아니, 우리 안에 데리고 들어가 그 앞에 눕습니다. 그러나 노새와 소와 염소는 들판에 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제님, 실례하겠습니다. 지금 제 목자께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신학이나 대단한 학위나 위대한 인물도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겸손한 한 마리 양이 되는 것뿐입니다. 제 이마 위로 밤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할 때, 그분께서 저를 안으로 불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노새든 염소든 다른 무엇이든 같은 먹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목자는 자기 양들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형제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 흉내만 내고 있다면, 노새 같은 영이나 세상 여기저기에 기웃거리는 염소 같은 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밤이 올 때 여러분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그 음성을 익히고 양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머리를 숙입시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님. 비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립니다. 저기 있는 잡초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받으면 여러분의 목화나 텃밭의 작물 못지않게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똑같은 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분께서 천사들을 보내 모든 가시나무와 나쁜 잡초와 더러운 것들을 모으게 하시고, 그것들은 불 속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밀과 곡식은 어떻게 됩니까? 곳간으로 들어갑니다. 땅에서 풀을 뜯던 노새와 나귀와 낙타와 다른 모든 짐승들도 물론 같은 먹이를 먹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해가 질 때 불려 들어가는 것은 양뿐입니다. 형제님, 오늘 저녁 여러분은 양입니까? 사랑하는 자매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작은 어린양 가운데 하나입니까? 확신이 없다면 바로 지금 확실히 합시다. 그리스도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그리스도시여, 이렇게 손을 들며 지금 주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여기 앉아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옆에 앉아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아래층에서 다른 분도, 또 다른 분도 손을 들고 “그리스도시여”라고 말씀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양이 되고 싶습니다. 제 안에 있는 이 영은 성급하고 고약하며 무관심한 영임이 분명합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저 뒤에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고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지만, 제 안에 있는 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이쪽의 스페인계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오른쪽 발코니에서도 손을 들고 “주 예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실 분이 계십니까?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있는 이 자리에서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저 위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기 앉아 있는 그대로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이 낡은 영을 제게서 거두어 가시고 주님의 양이 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 해가 질 때, 요르단 건너에서 제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비둘기의 부드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메시지가 끝난 이 엄숙한 순간에 지금 손을 듭니다. 주님께서 제 목자가 되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참으로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나이다.” 목자께서 이끄시는 한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마치고 기도하기 전에 또 한 분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혼에 관한 일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목자의 음성을 모릅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이라면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어느 날 땅의 모든 목소리가 잦아들 때, 어머니가 울부짖고 아버지가 울부짖는 소리, 남편과 아내와 형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릴 때, 그 목소리들은 곧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여러분은 강 건너에서 위대한 목자께서 부드럽게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오라, 내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아.” 그분을 원하십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신다면, 구하기만 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 드신 분이 계십니까? 예,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혼 하나가 더 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혼들이 그냥 지나가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 저녁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새롭게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이 새롭게 되고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을 받음으로써 말입니다. 지금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자매님, 계속 연주해 주십시오.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 분이 더 계실지 모릅니다. 그날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을 때 무언가가 제게 말씀하셔서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것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이곳에 있게 되어 참 기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이겠습니까? 얼마나 큰 의미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전에 들어 본 말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형제님, 언젠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듣게 됩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길을 향하고 있든, 그 길로 가게 됩니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손을 들어 주님께 나아온 이들을 이제 주님께 드립니다. 아무도 그들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위대한 목자이십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마귀도, 어떤 힘도, 그 무엇도 그들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성경기록이 성취되도록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중 아무도 잃어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부르고 계시며, 남자와 여자들은 여전히 순복하며 나아오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이들을 주님의 왕국으로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들과 악수하는 큰 특권을 누리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집회는 힘겨우며 지금은 많은 병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오, 그리스도시여, 이 열매들이 저보다 먼저 간다는 것을 알기에 이들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전해짐으로 그들이 믿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 여기 나아왔어야 하는데 나아오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도 나아오게 해 주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생을 마칠 때까지 비참한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하늘과 땅의 주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여기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성령께서 이곳에 계시며 그렇게 여러분에게 역사하신 뒤에 마음이 참 좋으신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저는 그분께서 모든 믿는 이에게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며 믿고 있는 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무언가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먹이입니다. 하나님의 양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먹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양들의 먹이입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다윗이 “바위에서 나오는 꿀 같은 맛이로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달콤합니다. 옛날식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전하는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주님의 복이 너무도 가까이, 사랑스럽고 인자하게 임하면, 사람들이 정말 무언가 맛있는 것을 실제로 맛보는 것처럼 입술을 핥기까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저는 압니다. 그러니 그분 없이 천국에 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저를 좀 시험해 보듯 물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정말 알 수 있다고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물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영이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과 더불어 증언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의 체험이 하나님의 성경과 일치하고 모든 요구를 충족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해 주셨고,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잠시 후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잠깐... 빌리, 했니? 오늘 저녁에도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저녁이나 일요일 저녁 가운데 하루, 모두 강단에 올라와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 줄을 세우면 좋겠다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런 시간을 하루 가지면 좋겠습니까? 아마 내일 그렇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들을 내려보내 기도 카드를 한 뭉치 더 많이 나누어 주게 하고, 아마 사람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빨리 지나갔을 때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강단으로 모시겠습니다. 얼마 전에도 여기서 그렇게 했는데,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꼭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드려야 하나 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더 높은 차원에서 믿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안수를 받지 않고도 받아들이십시오. 그냥 믿고 가십시오. 그래도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이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오셔서 제 어린 딸에게 안수하시면 낫겠나이다... 아니, 살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도시를 가로질러 가셔서 그 딸에게 안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로마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게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라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그가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그가 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것이면 됩니다. 말씀만 하시면 제 종이 살겠나이다. 주님께서 제 집에 오심을 저는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유대인들을 보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은 내가 본 적이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믿음을 별로 보지 못합니다. 줄리어스 형제님,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에서는 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미국에는 신학이 너무 많습니다. 영적인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짜 아편입니다.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이십니다. 아편은 어디서 얻습니까? 백합에서 얻습니다. 그 백합이 갈보리에서 으깨졌습니다. 그분께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아편이 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고통을 가라앉혀 주십니다.
아편은 통증을 없애고 슬픔을 없애는 데 쓰입니다. 오늘날의 마약처럼 아편에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소량의 아편 기운이 사라지면 머리가 아프고 전보다 더 나빠집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이 아편, 주 예수님에게서 오는 아편은 결코 기운이 다하지 않습니다. 그분 안에는...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가 네게 물을 주어 네가 물을 마시러 여기 오지 않게 하였으리라”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혼 안에서 솟아나는 우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은 바로 그런 물입니다. 이제 오늘 저녁 기도 줄을 부르겠습니다. 1번부터 100번까지니? 1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Z라고 했니? P, 좋습니다. 피닉스의 P 같은 글자가 있는 기도 카드입니다. 자, 어디 계시든 몇 분 일어서시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카드, 자, 1번부터 시작합시다. 아들이 1번부터 나누어 주었다면 우리도 1번부터 시작합시다. 번호를... 1번 가진 분은 누구십니까? 피닉스의 첫 글자인 P, P 1번 기도 카드입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객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잠깐 이리 오십시오.
2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3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4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잘 살펴보십시오. 손을 들 수 없는 분일지도 모릅니다. 듣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1, 2, 3, 4, 저분들인 것 같습니다. 5번, 좋습니다, 자매님. 6번, 6번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7, 8, 9, 10번. 좋습니다. 우선 그분들부터 올라오시게 합시다. 저는 이것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기름부음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입니다. 여기 놓인 여러분의 손수건들 말입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음이 임한 것을 알고 기도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손수건들이 아픈 어린아이들을 대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 아기가 아프다면 어떻겠습니까? 제 아기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정성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랄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아기에게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시겠지요. 제 아기와 아내와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를 위해 하나님이나 목사님이나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두 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온 정성을 다해, 온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몇 번이라고요? 기도 카드 P 4번이 빠졌답니다. 빌리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옆 사람의 카드를 봐 주시겠습니까? 누군가 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드를 볼 수 없는 눈먼 분일 수도 있습니다. 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모두 자기 카드나 다른 분의 카드를 봐 주십시오. 4번입니다. 카드 뒷면에 있습니다. 아주 작은 카드인데... 이쪽에는 제 사진이 있습니다. 뒷면에는 P가 있고 그 옆에 번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이분들을 이곳으로 모시는 이유는...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삼 일 전 저녁에는 어디에 계시든 그냥 부르셨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어디에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자기에게 안수해 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전부입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 분을 강단에 모셔서 이해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10번까지 이제 다 오셨습니까? 4번만 빼고요. 좋습니다. 피닉스의 첫 글자 P 카드 11, 12, 13, 14, 15번입니다. 와서 자리에 서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오기를 원하시면 오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줄이 좀 긴데요. 거기까지 못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저기 계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 믿느냐에 달렸습니다. 저녁마다 보시면 무어 형제님이 한쪽에 계시고 브라운 형제님이 다른 쪽에 계시며, 빌리도 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지켜봅니다. 제가 충분히 하고 나면 저를 데리고 갑니다. 그 일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며칠 전 밤에는 제가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도 몰랐는데, 길을 가다가 정신이 들었습니다. 거리를 지나며 저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저를 더 살려 두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울고 온갖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 드릴 수는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그는 기름부음 아래 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했고, 또 하늘에서 비가 내리게 했습니다. 제사장 400명을 죽였고 그런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기름부음이 떠나자 이세벨이라는 한 여자를 피해 도망쳐서, 사십 일 밤낮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광야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멀리 동굴 안에 있는 그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로 서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기름부음이 떠났을 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고래 배 속에서 나흘 밤낮... 아니, 사흘 밤낮을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와서 거의 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힐 만큼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언덕 위로 올라가, 기름부음이 떠나자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오순절 교회에 필요한 것은 훌륭한 성경 공부, 좋은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그토록 많은 일을 벌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께는 성령이 한량없이 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분 안에 하나님의 일부만 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전체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신성의 충만이 몸으로 나타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그분은 교회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계속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일들은...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분을 보내셨습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보내시면서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가셨습니다.) “그렇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분은 교회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가셨습니다. 교회를 보내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서 가십니다. 바로 똑같은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아무도 어느 때나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여기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세상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죽을 수 있는 존재로서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로 교회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한번은 한 여인이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고 무리 속으로 나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물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분을 나무랐습니다. 모두들... “아,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이 그 위대한 선지자이십니까? 뵙고 싶었습니다. 악수해도 되겠습니까? 저와 함께 식사하러 가시겠습니까? 저희 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선생님을 믿지 않지만 저는 믿습니다.” 보십시오. 그러나 한 작은 여인은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어서 사람들의 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뒤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 여인이 하려던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누군가 손을 댄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그 역시 땅의 생각에 매여 있었습니다. “무리 전체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그분을 나무랐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약해졌노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효능이란 무엇입니까? 힘입니다. “내가 약해졌노라. 내 힘이 내게서 나갔느니라.” 하나님의 충만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한 작은 여인이 손을 댄 것만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렇게 비교해 봅니다. 지구의 거의 5분의 4가 물인데, 지구상의 모든 물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 그리스도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나타낸다면, 여기 이 작은 은사는 거기서 떠낸 한 숟가락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없어졌다고 알아채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꼭 필요하시지는 않지만, 저는 그분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그저 작은 한 숟가락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점에서 좋은 것이 무엇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온 바다에 들어 있는 것과 똑같은 화학 성분이 이 한 숟가락에도 들어 있습니다. 성분의 종류는 같고, 다만 양이 그만큼 많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똑같은 일을 종도 합니다. 그 종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가고 세상의 끝까지 너희 안에 있으리라.” 바로 그것 때문에 몸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하나님의 충만이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한 작은 여인이 손을 댄 것으로 약해지셨다면,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그분께서 곁에 서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단 한 사람이 그렇게 지나가도 저는 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다니엘은 환상 하나를 보고 여러 날 동안 머릿속으로 근심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까? 그것 때문에 몸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무엇이 이 환상들을 일으킵니까?” 여러분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당신은 집에 있지를 않아요. 우리가 결혼한 지 거의 15년이 되었는데, 아이들은 당신을 거의 몰라요.” 집에 오기만 하면... 전화가 하루에 삼사십 통씩 올 때도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여기로 와 주세요. 이리 와 주세요. 이쪽으로 와 주세요.” 그러니 정신이 없게 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보, 이것 보세요. 내 삶은 내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니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셨소. 나는 사람들에게 속해 있소.” 여러분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든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 안에 계신 영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공적인 섬김입니다.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하든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요한이 화려한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요르단 강가에서 아마 무릎까지 진흙에 빠진 채 서서 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 일이 얼마나 위대한 때가 될지를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수평으로 걸린 무지개가 내려오고 위대한 왕이 말을 타고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엇이었습니까? 작고 평범한 보통 사람이 요르단 강가로 걸어 내려와, 제대로 된 옷도 입지 않고 양가죽 한 장을 몸에 두른 채 거기 서 있는 사람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때 모든 낮은 곳이 높아지고 모든 높은 곳이 낮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작은 숫양들처럼 뛰고, 모든 작은 산들이 손뼉을 칩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홀리롤러’로 여겨지는 설교자가 강가에 서서, 사생아라는 오명을 쓰고 침례를 받으러 내려오는 한 청년에게 침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달렸습니다. 이제 온 마음과 모든 생각을 다해 하나님을 믿읍시다. 기도 줄은 다 준비되었습니까? 4번과 14번이 아직 안 나왔군요. 좋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드렸습니다. 이제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면 제가 한 모든 말은 옳지 않은 것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지금 이 성경이 옳든지 틀리든지 해야 하는 자리에 제 자신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제 확증될 때입니다. 여기 서 계신 이 여인은 제가 알기로는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아마 서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러 해의 간격을 두고 태어났을 것이고,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요한복음 4장의 모습과 정확히 같지 않습니까? 이 여인이 치유를 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이분을 고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치유를 위해 제가 이분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만약 이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들이... 의사가 도와주거나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 그러나 의사는 이분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의사들은 치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의사들은 뼈를 맞추고, 어떤 부위나 막힌 것을 제거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떼어 냅니다. 그런 일을 합니다. 혹은 제가 며칠 전 저녁에 말했듯이 여러분 안에 있는 쥐, 곧 병균들을 죽이려고 쥐약을 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직들을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 하십니다. 의사는 옆구리를 절개해 종양을 떼어 낼 수 있지만, 그 옆구리를 아물게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물게 하지 않으시면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의사는 자르고 떼어 낼 수는 있지만 아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이분이 재정 문제로 도움을 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원하는 것이... 가정 문제라면요. 혹시... 죄의 문제라면요. 이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이 작은 여인이 여러분께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하는 것을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면, 그저... 그것으로 끝입니다. 성경은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결코 맹세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기로는 이 여인을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이분도 제가 자신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분 역시 저를 모릅니다. 객석 어딘가에 앉아서 저를 보셨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분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성령께서 바로 여기 계신 이 작은 여인에게 오셔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고 무엇 때문에 왔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어 이분에게 계시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하실 줄 우리가 아나이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그분께서 죽지 않으시고 살아서 오늘 저녁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표적입니다. 이제 이 건물 안에서 기도 카드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는 분은 모두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거의 온 사방에 계시는군요.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매님, 저는 그저 잠깐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저... 이렇게 설교하고 앞으로 나오시라는 초청을 드린 뒤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왜 저와 이야기하고 싶으십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자매님의 영을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는 왜 우물가의 여인과 이야기하려 하셨습니까? 그 여인의 영을 파악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선생님께서 그렇게 요청하시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한동안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셨습니다. 그 여인이 그분께 대답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매님도 제게 대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께 계시해 주셨다면, 그분은 어쨌든 그 여인의 문제를 아셨을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자매님, 제가 도울 수 있는데도 도와드리지 않는다면 저는 잔인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을 전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자매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자매님은 등에 문제가 있어서 오셨습니다. 그 문제는 파열입니다. 등의 디스크가 파열되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이 여인이 맞는지 판단하게 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회중 전체가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마지막 날들에, 원자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머리를 들라’고 말씀하신 그때입니다. 주님은 ‘그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말씀대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이제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을 제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려가서 이 표적을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너를 믿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표적을 행하자 그들은 모세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행진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이신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표적을 행하실 수 있는데도, 우리 이방인들은 뒤에 앉아서 “글쎄요, 그분이신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여기 이 여인과 이야기한 경우를 보십시오. 지금 저는 이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이면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저 위에 녹음 담당자가 있으니까요. 중얼거린 말까지 한마디도 빠짐없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여인과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면, 제가 그저...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더 놓이겠습니까? 그분께서 더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해 주시면 여러분의 믿음이 더해지겠습니까? 자매님도 그러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믿음이 더해지겠다는 분은 몇 분입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매님, 자매님을 한 사례로 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이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약속하신 일을 행하시는지 봅시다. 그분께서는 행하실 것입니다. 곧 제게 허락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은사입니다. 제가 은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은사가 저를 움직입니다. 이 일을 일으키는 분은 여러분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의 경우와 같습니다. 회중 여러분이 아직 제 말을 듣고 계시다면, 이 여인은, 예,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등의 문제입니다. 다시 보입니다. 그분께서 디스크가 파열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등의 디스크가 파열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이 함께 계십니다. 그 여인은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자매님과 같은 집, 같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비드웰입니다. 맞습니다. 자매님은 피어스 1315번지쯤에 사십니다. 맞습니다. 자매님의 이름은 에드나 앤더슨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오, 은혜로우신 하늘의 하나님, 주님의 불쌍한 백성인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복을 내려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자매님과 처음 뵙는 사이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신 것 같군요. 저는 자매님의 민족을 깊이 존중합니다. 결국 참된 미국인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을 주셨습니다. 저는 수백만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여러분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는데 백인들이 와서 여러분에게서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을 부당하게 대하지 않으실 한 분을 압니다. 주 예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극심한 신경성 질환을 앓고 계십니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가셨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장 질환 때문이었습니다. 등에 있는 신장입니다. 의사들이 떼어 내려고 하는 것은 왼쪽 신장입니다. 오, 하늘의 하나님, 이 여인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시고 복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하고 계신 것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지요? 자매님도 아시고 저도 아십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도 아십니다. 자매님의 남편도 자매님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실 테지요? 모든 설교자는 온 마음으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매님도 신경성 질환을 앓고 계십니다. 또 가슴에 통증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는 것은, 조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의사와 관련된 일이 있었고, 담낭의 문제였습니다. 의사가 한번은 수술을 해서 담석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삼사 년 전, 아니면 그보다 더 전의 일입니다. 맞습니다. [여인이 “3년 9개월이요”라고 말한다.] 이제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오, 복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의로우신 아들이시여, 여기 서서 주님의 치유의 권능을 기다리며 갈망하는 이 사랑하는 분을 낫게 해 주옵소서. 이분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빕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이제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이리저리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잠깐 전 이 뒤쪽에서 누군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누가 움직이고 있어서 제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래서...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제님은 그저 성경을 전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이 치유받은 방에 들어가셨을 때 “그녀는 그저 자고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 아이가 죽은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 모두를 집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한번은 한 남자를 무리에서 따로 이끌어 내어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 치유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기 그 여자분과 함께 앉아 계신 분, 그저 믿으십시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주 예수님께서 자매님을 돕도록 저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자매님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아시지요. 제게는 치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치유할 권능을 가진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게 설명해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옆구리에 있습니다. 오른쪽 옆구리에 생긴 혹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어떤 복을 받으셨지요? 앓고 있던 남편이 치유를 받은 일입니다. 맞습니다. 당뇨병이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확히 맞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리 오십시오. 하늘 아버지, 이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주님의 영께서 이분에게 역사하셔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연약하지만 겸손히 믿으며 이 복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방금 이 위에 오셨던 분이 자매님이십니까? 자매님은... 옆구리에 문제가 있었지요? 저기 남자분 바로 옆에 앉아 저를 보고 계신 여인도 그렇습니다. 안쪽으로 두 번째 앉아 계신 여인, 바로 저 뒤에 계신 분입니다. 옆구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 바로 여기 계신 자매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작고 둥근 모자를 쓰신 분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두 분 다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아멘. 자매님, 아까 제가 감지한 분은 자매님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느냐 하면, 여기 줄에 계신 분에게 있는 것과 같은 문제가 이쪽에서 부르고 있어서 제가... 어느 쪽에서 오는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그분은 참 좋으시지 않습니까? 너무나 놀라우신 분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그러나 여러분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슬픔이 가득하셨지요? 몹시 신경이 쇠약해지고 무너지셨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를 잃으셨습니다. 남편입니다. 맞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자매님을 붙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자매님, 그분께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자매님을 사랑하시며 복 주실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여기 서 있는 이 작은 여인에게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빕니다. 이분을 치유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암을 치유하여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자매님, 잠깐만요. 저기 있습니다. 푸른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암을 치유하신다고 믿으십니까? 사탄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지만 실패했습니다. 자매님, 믿으십니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두 분 다 치유를 받고 가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저 뒤 줄 맨 끝에 앉아 계신 형제님, 고혈압이 있으시군요. 주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줄 믿으십니까? 마침 그때 저 여인과 일직선상에 계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떠난 줄 알았는데, 바로 형제님께로 돌아갔습니다. 형제님도 거기 앉아 기도하고 계셨지요? 맞습니다. 좋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금 당장 치유받을 것을 믿으십니까? 오, 하나님, 제가 이 남자분에게 손을 얹고 치유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분이 치유받게 해 주옵소서. 아멘. 자매님, 안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천식을 떠나게 하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그 기침을 멎게 하실 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오, 사랑하는 예수님, 이 불쌍한 작은 여인의 치유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을 빕니다.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암도, 무엇이든 치유하십니다. 여러분이 믿을 수 있다면 그분께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오, 예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사탄이 생명을 빼앗으려고 작정한 이 불쌍한 작은 여인에게 복 주옵소서. 이분을 살려 주시고 이 원수를 정죄하여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시는 곳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십니까? 그분께서 낫게 해 주실 줄 믿으시겠습니까? 오, 영원하신 하나님, 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이 남자분에게 주님의 복을 보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분이 치유받게 해 주옵소서. 아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류머티즘도 치유하십니다. 저 줄 뒤에 앉아서 류머티즘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천사께서 그쪽으로 가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제가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형제님,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믿음이 형제님을 낫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불신자가 믿고 받아들이도록 얼마나 강하게 도전하는 일입니까. 바로 저기 앉아 계신 자매님, 좀 마르시고 안경을 쓰셨는데 부비동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옆에 앉아 계신 자매님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린 손자에 관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어린 손자가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너무 심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고, 손자를 만나면 달라진 모습을 보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 손수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이 손수건들이 대신하고 있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치유해 주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 여인도 치유하셔서 온전히 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분이 하나님의 평안 가운데 가며 건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믿으시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제 아들, 그들 중 하나가 제 겉옷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제가 떠나야 할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잠시 아주 경건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큰 양 떼의 목자께서 여기 계시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불신과 오래된 무관심을 모두 없애시려고 온 힘을 다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진지하게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죄가 무엇입니까?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남자나 여자, 소년이나 소녀가 이와 같은 집회에 앉아 있다가 믿지 않은 채 나갈 수 있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믿습니다. 바로 지금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을 향해 손을 드십시오. 자매님, 이리 오십시오. 주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인을 치유하시고 낫게 해 주옵소서.
하늘 아버지, 이 회중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든, 하나님, (어떻게 하실지는 제가 모릅니다.) 다만 그렇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 어둠의 힘을 깨뜨리시고 그 불신의 힘을 깨뜨려 주옵소서. 이 회중에게 주님의 영을 부어 주셔서 각 사람이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흔들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이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일으켜 온전히 낫게 하옵소서. 위대하신 성령님, 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제가 아는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