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또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여기 어디에 성경을 내려놓았는데요. 제가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걸 보여 주는군요…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말한다.] 예… 군인이 자기 칼을 내려놓는다면… 그래도 친구들 곁에 있는 거니까요. 조금 전 조찬 모임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침례교인이었다가 이제 막 이 놀라운 순복음의 길에 들어온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침례교 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례교회는 분명 좋은 교회입니다. 사람들도 좋고, 가르침도 좋습니다. 하지만 새를 잡아 새장에 넣고 정통적인 먹이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튼튼한 날개가 생기도록 비타민을 많이 먹이는 거지요. 그런데 새장에 가두어 두는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새장에 계속 가두어 둘 거라면 날개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차라리 먹이를 주지 않는 편이 낫겠지요. 그래서 저는 밖에 있는 게 좋습니다. 어디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때로는 제가 좀 지나치게 자유롭게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일랜드 사람이라 그렇다고 봐주실 수 있겠지요. 누군가 자기 민족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일랜드 사람도 구원하신다면 온 세상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워낙 오르락내리락하니까요. 특히 켄터키 출신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분도 마침 켄터키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바울이 켄터키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영락없는 켄터키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조찬 모임에서 제가 함께하는 이런 분들, 남녀 여러분과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이 땅의 왕들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입니다. 이렇게 모일 때 왕들의 왕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저는 그 말씀이 참 좋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번 여기 모였을 때는 아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겁니다. 브라우닝 형제님, 기억하십니까? 그냥 둘러앉아서 이야기만 나누었지만 영적인 잔치를 누렸습니다. 그게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 몫을 주신 것 같습니다. 배를 채울 음식도 주셨고, 마음을 위한 양식도 받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여기 모이신, 이 집회를 후원하는 형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제가 사랑하며 자주 말씀을 전하는 이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오는 길에, 모두 목회자와 사모님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에 관해 무슨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무어 형제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들도 몇 분 오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던 누군가가… 실업인회에 관해 무슨 말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들이 브래넘 형제님을 받아 주었지요. 형제님이 속한 교단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하나뿐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점점 광신자가 되어 가니, 저를 받아 줄 곳은 거기밖에 없나 봅니다. 제가 워낙 괴짜라서, 그리스도인 실업인회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모든 교단을 대표하니 저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떠넘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와 목회자들, 사모님들, 그리고 혹시 목회자도 아니고 이 교제 모임에 속하지도 않은 방문객이 계신다면 그 모든 분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이곳 피닉스에서 참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목 상태가 이래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거의 다섯 달째, 낮이든 밤이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집회에 참석하다시피 했습니다. 끊임없이 다녔습니다.
얼마 전 신문 한 장을 읽었습니다. 우리… 아니, 우리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였습니다. 유명한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의 사진이 있고, 그 위에는 “지쳐 가다”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몇몇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불명확한 말]이 아니며, 성경의 일부는 실제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머지않아 전도 사역의 현장을 떠나서 어떤… 큰 대학 같은 곳을 위해 헌금을 모금하는 일이나 그와 비슷한 일을 맡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보기에는, 저는 그를 더 신뢰합니다. 신문은 사실이 아닌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빌리가 그렇게 말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말했다면, 한 가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빌리도 다른 많은 전도자들, 그리고 저와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 담긴 뜻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때로 우리의 열심이 우리의 지혜를 태워 버립니다. 너무 오래, 너무 무리해서 일하려다가 지쳐 버립니다.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마치… 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그런 기분이 들 때 나팔 소리를 들으면 그저 기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요. 집으로 돌아가면 더는 싸움도, 마음 아픈 일도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한 번 겪어 보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지칠 수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잭 코도 한때는 너무 지쳐 버렸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토미 힉스도 지쳤습니다. 아주 많이 지쳤지요. 여러분도 아십니다.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여기저기서 그를 붙잡습니다. 그는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한때 몹시 지쳤던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다시 지쳐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수천 명이 부르며 잡아당기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겠습니까? “주님…”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난가을 잠깐 휴가를 보내며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본 형제님을 만났다가 돌아왔을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멍에를 메고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무리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긴 원인이지요. 저는 멍에를 벗은 채 죽기보다는 멍에를 메고 일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지치고, 점점 기력이 쇠하면 피곤해집니다. 제 목도 버티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모임에 둘러앉는 시간에 들어서면… 때로 주님께서 우리를 빚고 모양을 다듬어 조금 달라지게 하시려고, 우리가 이렇게 완전히 지치도록 내버려 두시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시고 뺨에 입을 맞추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내 자녀야, 내가 바로 너와 함께 있다. 조금 힘을 북돋아 줄 테니 계속 가거라.”
이제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벅찬 주제라는 것을 압니다. 더구나 목회자들 앞에서 다루려니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좀 겁이 난다고 했어야겠군요. 그래도 제가 읽으려는 성경 말씀에 관한 생각을 다 말씀드릴 때까지 너그럽게 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요엘서 1장에서 한 절, 2장에서 한 절을 읽겠습니다. 4절과 25절입니다. 요엘서 1장에는 이렇게 말씀되어 있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그…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읽고 있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먹었으며, 그… [아니, 제 말은] 쐐기벌레가 먹었으며, 쐐기벌레가 남긴 것을 그… 자벌레가 먹었으며 쐐기벌레가… 또 다 뒤섞어 버렸군요.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몸이 떨리는 채 여기 서 있으니,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먹었으며… 자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도다. 그다음 요엘서 2장 2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돌려주리니…
이제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귀하신 우리 주님, 순례자와 나그네인 저희가 주님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먼저 저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며, 주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든 저희에게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아침 저희는 이를테면 오래된 참나무 아래 모인 사람들처럼, 잠시 둘러앉아 교제하려고 왔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위대하신 성령께서 지금 저희 가운데, 저희 각 사람 가운데 오셔서 저희에게 필요한 성경의 양식을 주옵소서. 주님, 여기 모인 형제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 모임에 복을 주옵소서. 부흥 집회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그리고 이 집회 중에 행하거나 말한 모든 것에 복을 주옵소서. 마지막에 저희가 이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주제에 관해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지금 시각이 10시 10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가운데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모두 나가서 지문을 찍는다면, 정확히 똑같은 지문은 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코가 정확히 똑같은 사람도 둘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참 다릅니다. 여러 면에서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데는 분명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믿고, 어떤 사람은 저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와도 일부러 충돌하거나 잘못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늘 원칙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침례교회에서 나온 뒤에도 전국을 다니며 침례교인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침례교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말했습니다. 실제로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점에서 그들과 의견이 같지는 않을지 몰라도, 불신자나 공산주의자를 택하기보다는 분명 그들 중 한 사람을 택하겠습니다. 또는…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한, 비록 제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는 분명… 우리가 모든 원칙에서 생각이 같지는 않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침례교인이나 장로교인, 심지어 가톨릭교인도 나쁘게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톨릭교인 중에도 구원받았다고 제가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아시겠죠? 또 여러분 가운데도 많은 분이… 저는 가톨릭교회의 제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가톨릭교인들은 믿어 줍니다. 침례교회나 장로교회, 때로는 오순절교회의 제도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믿어 줍니다. 그들은 제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짧게 전할 말씀을 위해 제가 방금… 무언가를 적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제가 짚고 싶은 한 가지를 적었습니다. [불명확한 말] 설교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설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저는 영감을 받아 설교합니다.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때는 여러분과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려는 중요한 것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의 독수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올라가 다가올 날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요엘서 2장 38절에서 그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라.” 요엘은 그 일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엘의 예언이 그토록 정확해서 오순절이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그것을 보았다면, 그가 오늘날에 관해 전한 예언도 분명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네 가지 큰 파괴자입니다.
첫째는 털벌레였고, 그다음은 메뚜기, 그다음은 자벌레, 그다음은 쐐기벌레였습니다. 이것들은 파괴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파괴하고 있던 것은 하나님의 유업인 포도나무였습니다. 곤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아니, 이 네 가지 곤충은 모습만 다른 같은 곤충입니다. 쐐기벌레와 메뚜기, 자벌레와… 아니, 그… 제가 자꾸 뒤섞는군요. 처음은 털벌레였고, 그다음은 메뚜기, 그다음은 자벌레와 쐐기벌레였습니다. 이것은 같은 곤충이 차례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이 하나님의 포도나무, 새로 자라난 포도나무였다면, 이 네 파괴자가 그 포도나무를 먹어 치운 것입니다. 그러니 오순절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봅시다. 그러면 그 파괴자들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이 그런 일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순절이 처음 맺은 것은 형제 사랑이었습니다. 가운데 가로막힌 벽을 허물고 형제애를 이루었습니다. 성경 시대에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할 만큼 그렇게 형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형제애에 관해 말했습니다. 오순절 교회의 모든 은사를 말한 다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형제애를 이루는 이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신비를 이해할 지식이 있어도 사랑, 곧 형제들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사도들과 제자들의 무리를 뜻합니다. 그들에게는 그 형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럽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더 확장하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팔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아니,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형제 사랑을 지속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처음 교회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털벌레라는 녀석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 녀석이 형제 사랑의 포도나무를 먹기 시작하자 수액이 흐르는 통로를 끊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든, 얼마나 많이 안다고 생각하든, 남들과 얼마나 달라지고 싶어 하든, 우리 가운데 형제로 여기는 그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길이 없습니다.
이제 오늘날의 오순절 교회와 당시의 교회를 비교해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사들의 순서를 눈여겨보십시오. 첫째는 지혜의 은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첫째는 지혜의 은사입니다. 은사들 가운데 가장 좋은 은사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둘째 은사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지혜 없이는 둘째 은사도 사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마지막 은사인 통역을, 또는 마지막에서 둘째인 방언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열심이 우리의 지혜를 먹어 치웠습니다. 교단을 향한 우리의 열심과 열정이 포도나무의 지혜, 곧 형제 사랑을 먹어 치웠습니다. 교단이 있는 것은 괜찮습니다. 형제님들, 제가 오늘 아침 오시라고 한 이유는 목회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교단이 있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단이 스스로 고립되고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는다면, 그 늙은 털벌레가 처음부터 그 생명을 먹어 치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의견이 다른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제가 아는 분 중 성경에 관해 누구보다도 생각이 잘 맞는 분이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무어 형제님입니다. 하지만 아, 우리 생각이 백만 마일이나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사이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의 말을 들어 보면… 저쪽에는 전화를 너무 많이 받느라 거의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인 제 아내가 있습니다… 어젯밤에 전화를 걸어 와 전화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그만큼 사랑해서… 돈 한 푼 얻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낡은 록히드 비행기도 타고, 그 밖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 와서 잠시나마 저와 함께 있으려 합니다. 밤이 아무리 어둡고 비가 아무리 거세게 내려도, 저는 그분에게 가기 위해 정글을 기어오르고 기어서라도 갈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천년왕국 같은 문제나 신자의 구원의 보장에 관해서는 우리의 성경 해석이 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사이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렇게 의견이 다른데도 그분을 돕는 부목사로 선출되었습니다. 무어 형제님, 털벌레가 아직 우리에게 손대지 못해서 정말 기쁩니다. 이것은 그저 한 가지 예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왜 모든 형제가 그렇게 할 수 없겠습니까? 제게는 교회에 관해 반대하는 말을 할 권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분의 교회에 갔습니다. 다시는 저를 초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 있는 경건하고 성도다운 자매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저를 부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 포도나무 주변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토록 충만해서, 그 늙은 털벌레가 전혀 손댈 수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전기 울타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털벌레는 그 울타리를 넘을 수 없습니다. 형제님들, 사랑의 성령께서 주시는 그 충격이 매번 그 녀석을 죽여 버립니다. 우리가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면 교단의 울타리가 아니라 사랑의 울타리를 세워야 합니다. 해충이 들어오지 못하게, 털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게 말입니다. 그 녀석은 마귀의 첫째 파괴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믿든 상관없습니다. 무엇을 믿든… 그에게는 제게 와서 제가 믿는 사소한 것들을 자기는 믿지 않는다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도 이 교회에서 그가 믿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감리교회에서든 침례교회에서든 장로교회에서든, 심지어 오순절교회에서든 말입니다. 아시겠죠? 무엇이든… 저는 오순절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저도 오순절 사람입니다. 저는 오순절 교단에 속해 있지는 않습니다. 오순절은 교단이 아니라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그 루터교인이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오는 길에 저기 앉아 있는 침례교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기 체크무늬 넥타이를 매고 저를 보고 계신 분도 침례교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전에 침례교인이었지요. 아시겠죠? 이것은 체험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해충들을 들여보내 우리를 갈기갈기 찢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것이 첫째 살해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오순절 체험을 먹어 치우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나타난 큰 파괴자는 메뚜기였습니다. 그 녀석은 믿는 자들의 연합을 무너뜨리려는 자였습니다. 성경에는… 오순절에는 연합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만, 우리를 그 무엇도… 로마서 8장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저는 오순절 사람들 사이에서나 다른 누구 앞에서나 이것을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얼마나 큰 부담을 겪었는지 돌아보니, 오늘 아침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아직도 침례교, 장로교라는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제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예전에는 저도 소를 좀 몰았습니다. 저 위 콜로라도에서 우리는 아라파호 숲에 소를 풀어놓고, 소들을 아래로 몰고 와서 트러블섬강 협회… 헤리퍼드 협회가 소를 방목하는… 트러블섬강 가에 목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철에 소들을 모아 그곳에 풀어놓으려고 위로 몰고 갈 때면, 저는 안장의 뿔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앉아 관리인이 통과하는 소들의 수를 세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눈여겨보며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소에는 레이지 케이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어떤 소에는 다이아몬드 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 소의 낙인은 트라이포드였습니다. 다른 소들에는 또 다른 낙인이 있었습니다. 관리인은… 낙인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소는 모두 등록된 헤리퍼드종이어야 했습니다. 심판 날에도 그와 같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리교인이냐, 침례교인이냐, 장로교인이냐, 어떤 낙인이 찍혀 있느냐가 아닐 것입니다. 그곳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다시 태어난 체험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순절 교단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교단에서 이 거대한 털벌레가 형제애를 무너뜨렸습니다. 루터교인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침례교인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장로교인들에게도 그랬습니다. 나사렛교인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오순절교인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그 안에 그 늙은 벌레가 있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최근 한 집회에서 루터교인들을 만났습니다… 한 대학의 학장이 무어 형제님과 저를 그곳에 초청했습니다. 그분은 저와 생각이 아주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초자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곳에는 여기 이 조찬 모임에 모인 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분에게 설명하고 있을 때, 그분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루터교인들에게 무엇이 있는지…”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우리 루터교인들에게도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비유로 말씀드리지요. 한 사람이 밭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며칠 뒤 나가 보니 작은 싹 둘이 이렇게 돋아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옥수수밭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옥수수가 있었습니까?” 그분이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는 옥수수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장차 맺힐 옥수수가 그 안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차츰 그 옥수수가 자랐습니다. 얼마 뒤에는 수꽃이 피었습니다. 처음 난 두 잎이 여러분 루터교인들, 첫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수꽃이 피어난 것입니다. 수꽃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래쪽의 잎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아름다운 수꽃이고, 너는 그저 낡은 초록 잎사귀일 뿐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잎 속에 있던 바로 그 생명이 수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또 꽃가루를 떨어뜨려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려면 잎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 뒤 이삭이 생기고 그 위에 알곡이 맺혔습니다. 오순절, 곧 은사들의 회복입니다. 땅에 들어갔던 알곡과 같은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돌아온 것입니다. 오순절에 처음 교회의 은사들과 나타남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옥수수 이삭이 생기자, 뒤돌아 그 수꽃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너는 여기 끼지도 못한다. 저 아래 있는 너희 늙고 죽은 루터교 잎사귀들아,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형제님, 기억하십시오. 알곡이 무르익은 것도 잎에서, 그리고 수꽃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저 옥수수가 더 성숙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루터교인과 침례교인과 감리교인을 비웃지 마십시오. 이삭이 더 성숙해진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런 생각을 너무 오래 품고 살다 보니 또 다른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삭 전체에 곰팡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곰팡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곰팡이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아십니다. 아시겠죠? 무언가 잘못된 겁니다. 곰팡이가 핀 나무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든 것입니다. 오순절에도 병이 들었습니다. 곰팡이가 잔뜩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교회에 곰팡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늙은 털벌레가 침을 가지고 와서 형제애를 무너뜨리고 우리 가운데 연합을 무너뜨리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바울은 성경에서 우리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연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에 관해 읽어 드리려고 여기 짧게 적어 놓았습니다. 은사들이 역사하는 모든 일 등이… 그들은 연합하여 하나의 크고 하나 된 교회로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그렇게 형제애 가운데 머물렀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교했습니다. 여기 계신 학식 있는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초대 교회 시대에 관한 글과, 폭스의 『순교사』 같은 책들, 그 밖의 여러 교회 역사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굳게 하나로 뭉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암흑시대에 그들은 조직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이 만든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그때 메뚜기들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애를 깨뜨렸던 바로 그 마귀가 사람들의 연합을 깨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첫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가톨릭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가톨릭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조직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강제였습니다. 반드시 따라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소에 매어 찢어 죽이고, 불태우고, 사자에게 먹이로 주며 온갖 짓을 했습니다. 그렇게 거짓 연합을 강제로 이루었습니다. 메뚜기들이 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쐐기벌레가 오순절 교회에 들어와 형제애를 깨뜨리고 나니, 그다음에는 메뚜기들이 돌아다니며 우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작은 집단을 조직하여 우리의 연합을 깨뜨리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파괴자들 중 하나입니다.
처음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문이 열렸습니다. 은사들 가운데 가장 아래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그때 옛 총회가 그저 그대로 머물며 조직을 만들지 않고, 어떤 조직 대신 오순절의 교제로 남겨 두었더라면, 형제님들, 우리는 백만 배는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교단으로 만들지 않고 체험으로 남겨 두었더라면…
기억하십시오. 제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교단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쐐기벌레들과 벌레들이 교회를 먹어 치울 것이라면, 먹어 치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만큼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에 관해 말씀하시든,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대로 될 것입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한 가지를 눈앞에 내놓는 것입니다.
이제 쐐기벌레가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메뚜기가 말입니다. 그 녀석이 연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들은 첫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루터는 둘째 교회를 조직했고, 그 뒤로 시대를 거치며 끊임없이 조직이 하나씩… 그렇게 하면 형제애의 원칙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을 보고 이 일을 살펴보면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뉘지 않았네. 우리 모두 한 몸이네. 소망과 교리 안에서 하나요, 사랑 안에서 하나라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우리의 처지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큰 날에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설 때는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족장들이 요셉 앞에 서서 스스로를 책망했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자 요셉은 “모두 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모든 의견 차이와 그 밖의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날 나아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오, 주님, 제가 알았더라면 결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만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모두 선을 위한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늙은 메뚜기가 한 일을 생각하면… 그리고 성경 시대의 그들에게는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형제애, 온전한 형제애와 온전한 연합 외에도, 그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우리가 거기서 벗어나 버렸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초기 시대에 그들은 어느 시점에 교황을 세우고 그를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삼중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다스리는 권한이었습니다. 저는 그 왕관을 보았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던 데서 벗어나 땅에 있는 거짓 신을 세웠습니다. 거기에 사제들을 두고 “아버지”, 곧 영적인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또 하나님 외에는 어떤 사람도 경배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대단한 특권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로마에 갔을 때 교황을 면담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많은 외교관과 위인, 왕과 권력자, 군주들을 보았고 만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떻게 호칭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을 만났을 때 “각하”, “폐하” 같은 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 3시에 로마의 교황,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만날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제일 먼저 무릎을 꿇고 반지에 입을 맞추면서 ‘성하’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냥 명단에서 빼 주십시오.” 저는 이 땅의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경의를 표하지 않겠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가 목회자든, 목사든, 장로든, 어떤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하든 괜찮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경배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분파에서는, 여기 역사를 아시는 여러분도 많이 알고 계시듯이, 삼위일체를 서로 다른 세 하나님으로 만드는 체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은 긴 수염을 기르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바티칸에서 그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분인 하나님 아들은 더 젊은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처럼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성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참모습을 놓쳐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세 직분, 곧 삼위일체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이교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대 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와 다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세에, 형제들의 연합과 사랑이 깨졌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셋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세 위격입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직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제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한 것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여기 오순절에까지 그대로 가져와 스스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또 다른 조직을 세우고 다른 무언가를 시작했습니다. 형제 사랑과 연합으로 형제답게 함께 나아오는 대신에, 처음 한 사람이 신성의 세 위격이 한 분,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자 여러분은 이른바 일신교라는 협소하고 독단적인 생각을 세워 버렸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 그것만 되풀이하면서, 하나님을 손가락 하나처럼 하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잘못인 줄 압니다. 더 깊이 공부하신 여러분은 그것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털벌레가 먼저 먹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앉아서 논의하는 대신에… 제가 오순절의 분파들 사이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저것보다도 더 큰 탁자를 놓고 둘러앉아 말했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저쪽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설교하면 나를 위해서는 설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는 형제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신교파가 한쪽으로 벗어나 그것을 쟁점으로 삼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머물면서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시도록 했더라면, 그 일이 그렇게 흩어져 형제애를 깨뜨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메뚜기들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애를 깨뜨렸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들만의 작은 연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형제님들, 연합은 따로 고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합은 그리스도의 온몸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초기에도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가면 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것이 있다. 한 사람은 ‘나는 게바에게 속한다.’ 하고, 또 한 사람은 ‘나는 바울에게 속한다.’ 하는도다. 게바가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이미 그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 속을 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그들에게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안에서의 연합이 있었습니다. 주니 형제님, 며칠 전에 아프리카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두 분파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삼중 침례를 행합니다. 한쪽은 앞으로 엎드리게 하여 세 번 침례를 줍니다. 아버지를 위해 한 번, 아들을 위해 한 번, 성령을 위해 한 번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는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으니까요, 그분은 앞으로 고꾸라지셨습니다.” 다른 쪽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사람을 장사 지낼 때는 등을 대고 눕힙니다.” 그래서 그들은 뒤로 눕혀 세 번 침례를 줍니다. 아버지를 위해 한 번, 아들을 위해 한 번, 성령을 위해 한 번입니다. 그렇게 갈라섰습니다. 세상에, 형제님들, 보이지 않습니까?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이것을 보는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형제라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참으로 비참한 상태입니다. [불명확한 말]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이런 작은 문제들이 일어나면 누군가 그것을 붙잡고 “우리끼리 연합을 만들자.”라고 합니다. 그것은 연합이 아닙니다. 순전히 옹졸한 시기심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연합, 사도적인 연합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전하고, 어떤 사람은 이익을 위해 전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선포되시기만 한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칠 만했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들어오고, 너희 중에서도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내가 안다.” 하지만 요한은 그 모든 것을 맺으려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연합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자.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이런 일들을 겪어야 그 참뜻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날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를 태워 버리려 했던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사랑을 쏟아 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형제님들, 온갖 의견 차이를 안고 있는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보여 주시려는 것을 참으로 보게 되면, 서로의 발 앞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명확한 말]
또 그 당시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참으로 건전한 성경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테이프 끊김.] 그것은 그들에게 있던 것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털벌레와 쐐기벌레가…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곤충이라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까? 이제 이 늙은 마귀 자벌레가 들어왔습니다. 그 녀석은 피부 속으로도 기어들어 와 여러분을 썩게 하지요. 일단 사람들이 작은 것 하나를 발견하면, 그 녀석이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것만 꼭 붙들고 자기의 작은 무리를 따로 고립시켜 무언가로 만듭니다. “바로 이것이다.”라는 것이지요. 형제님, “바로 이것이다.”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교제, 참된 성경의 가르침이지, 이것저것을 따라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성령 충만한, 성령을 받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겨냥해서 메시지를 전한다면 저는 위선자일 것입니다. 저는 침례교회는 이것을 한다, 감리교회는 저것을 한다, 이쪽은 저것을 한다, 저쪽은 이것을 한다 하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붙잡으려는 저 마귀 자벌레를 대적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분 앞에, 우리 서로 앞에 펼쳐 놓으려고 가져왔습니다. 이 파괴자들이 와서 포도나무를 먹어 치우리라는 예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성령께서 생명이심을 압니다. 하지만 형제님들, 지금 그루터기 안에서만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친구 여러분, 그것이 일부일 뿐임을 아십니까? 영께서는 그루터기 안에서만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은 하나로 연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 사랑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다시 태어난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서로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명확한 말]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이곳 피닉스의 여러 교단에 속한 많은 설교자도 오늘 아침 이곳으로 들어와 일신교파와 ‘둘’을 주장하는 분파와 ‘셋’을 주장하는 분파 사람들을 끌어안고, 서로의 차이를 잊어버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명확한 말]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하지만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습니까? 그들의 조직입니다. 그 무리와 함께 있는 것이 발각되면 출교를 당합니다. 그것은 거짓 연합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조직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일을 반대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형제가 되자는 것입니다. [테이프 공백.]
이제 우리는 이 중요한 일들을 모두 알게 되었지만, 여기 이렇게 그루터기로 남아 있습니다. 이 포도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곧 털벌레가 형제애를 잘라 버립니다. 다음에는 무엇이 옵니까? 털벌레가 거기서 죽고 메뚜기로 변하여 쏘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메뚜기가 가면 자벌레가 들어옵니다. 자벌레가 떠나면 남은 것을 먹으려고 쐐기벌레가 옵니다. 아시겠죠? 다시 그루터기만 남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요점은 뿌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생명이 올라오는데도(그분이 뿌리요 후손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나머지 이런 것들이 우리를 잘라 내고 계속 그루터기로 남겨 두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자벌레와 쐐기벌레와 털벌레, 그리고 먹어 치운 모든 것이 앗아 간 그 모든 햇수와 복을…” 형제님들, 저는 중년의 사람으로서, 복음의 설교자로서, 또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형제로서 머지않아 그날이 오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자벌레들과 쐐기벌레들 위에 하나님의 살충제가 뿌려지고 [불명확한 말] 모든 교회가 서로 끌어안으며, 사람들이 형제가 되는 날입니다. .
이제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곤충들이 그분의 유업을 먹어 치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형제님들, 신유가 왜 제대로 역사하지 않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은사들이 왜 제대로 역사하지 않는지 보이십니까? 영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경건하지 못하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메시지는 옳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도 그냥 두고 저것도 그냥 둡니다. 그러다가 은사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 존스가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성령입니다. 하지만 뚫고 나와 자신을 드러내실 수가 없습니다. 이 작은 해충들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교회 안에 있는 이 위대한 권능은 교회를 이 바다에서 저 빛나는 바다까지 휩쓸어 가게 했어야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는 모든 권능이 되어야 [불명확한 말]. 무엇이 그렇게 만듭니까? 하나가 일어서기만 하면 쐐기벌레가 와서 파먹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위대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회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