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 저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베푸신 복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 복을 감사히 여깁니다. 이제 계속해서 저희에게 은혜로이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오늘 밤,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로 한 날이 오늘 밤이라는 것을 방금 기억했습니다. 저희에게 큰 믿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이적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습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오늘 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로 한 날이라는 것이 방금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려와서 그저 기도 줄을 지나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겠다는 말을 제게 하는 걸 잊었습니다. 저도 바로 여기 강단에 와서야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니까, 있던 곳을 떠나 여기로 오는 동안에도 그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본문을 바꾸고 다른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전하려던 말씀이 있었지만, 이제 바꾸겠습니다.
오늘 아침 조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은 정말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눈 놀라운 교제 가운데 주님께서 참으로 놀랍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은, 녹음하는 형제들이 아마… 책과 사진을 구하실 수 있는 마지막 밤입니다. 판매대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거기에 있을 겁니다. 저희는 일요일에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저는… 책이나 그런 것들로 저희가 이익을 얻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직접 린지 씨에게서 책을 삽니다. 그런 다음 누군가에게 저를 대신해 팔아 달라고 부탁하는데, 집회에서 책값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책을 인쇄해서 팔거나, 아주 싸게 인쇄해서 팔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러나 그건… 목적이 그것이 아닙니다. 책으로 무슨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책이나 사진을 구하실 계획이라면 오늘 밤에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오후에 여기 이곳에서 예배가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밤이면 이번 대전도 집회를 마칩니다. 피닉스에는 대전도 집회가 많이 열리는 것 같은데, 다른 대전도 집회들도 이 도시에 올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 집회들이 많아서 기쁩니다.
바로 조금 전에 이 도시에서 잘 알려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브래넘 형제님, 피닉스 사람들이 형제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도 그분들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도시에 올 때마다 여러분의 집을 한 집 한 집 찾아가서 식사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을 잘하시는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집회 때는 계속 서서 일하다가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쳐 버리는 것 같습니다. 무어 형제님께 저 대신 설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형제님이 설교하다 강단에서 쓰러지면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의사가 ‘정말 상태가 심각하군요.’라고 하면, 그다음에는 제가 해 보지요.” 저는 “아니, 무어 형제님…”이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 모이게 되어 기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오늘 아침 조찬에서는 요엘을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벌레들, 여러 곤충이 나무, 곧 하나님의 유산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본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벌레들이 무엇인지 밝혀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벌레들이 각각 다 같은 벌레인데, 그저 죽었다가 다른 곤충의 모습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줄곧 마귀가 그런 일을 해 온 것입니다. 마귀는 형제애와 초대 교회에 있던 것들을 무너뜨렸습니다. 또 우리가 조직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려 할 때 생기는 교회의 거짓된 연합도 있습니다. 조직은 자기들끼리 하나로 뭉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온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시겠죠? 한 조직 안에서만 이루는 연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몸이 이루는 연합입니다. 그런데 그 못된 벌레들이 그저… 매번… 잘려 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이 작은 나무에 생명이 조금 솟아나기만 하면, 어느새 우리는 그 주위에 작은 조직을 세우고, 벌레들이 그 안에 들어와 다 먹어 버립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살충제를 가져오셔서 이 벌레들에게 뿌리실 겁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벌레들이 더 이상 먹어 치우지 못할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사람이 그런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면, 그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가운데는 여러분이 어느 조직에 속했든 무엇을 믿든 상관없이, 그래도 형제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한두 사람에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머지 우리에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욥기 14장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죽어도 소망이 있나니, 그 줄기가 늙고 뿌리가 땅속에 있어도, 비 냄새에, 물 냄새에 다시 가지들을 내리라.” 땅에 남아 있는 그 복음의 그루터기, 그 오순절의 복에 필요한 것은 오순절의 물뿐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의 물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옛 성령의 복음을 가르치기만 하면, 그것이 반드시 제자리를 찾고 다시 싹을 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에 무어 형제님께, 제가 오늘 밤 이삼십 분 이상 설교하면 등을 쿡 찔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이렇게 말씀드리러 나올 때, 저는 설교자나 신학자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제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밖에서 여러분을 위해 콘크리트를 깨는 일을 하더라도, 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물며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이 강단에 올라올 때 저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할 시간이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은 이런 방식으로 집회를 진행할 것이므로, 여러분의 믿음을 북돋워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줄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절만 읽겠습니다. 창세기 22장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들이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구약에서 하나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 합성된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밖에서 보시는 불기둥 사진이 찍혔을 때, 저는 그것을 불기둥으로 여기는데… 그 사진이 찍힌 밤, 텍사스주 휴스턴의 토론회에서 보스워스 형제님이 한 침례교 설교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 하나에 예, 아니요로 대답해 주시면 제가 강단에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고는 물으셨습니다. “여호와의 구속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예수님께 적용되었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구속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예수님께 적용되지 않았다면, 그분은 여호와 이레가 아니셨습니다… 아니, 여호와 라파가 아니셨습니다. 주님의… 그러니까 여호와 이레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여호와 이레셨다면,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인 여호와 라파도 되십니다. 이 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마치… 그것들을 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본성과 동기를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그분이 ‘주님께서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이다’라는 여호와 이레시라면, 만일 그분이 그런 분이 아니셨다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도 아니셨고 구원자도 아니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여호와 이레시라면,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인 여호와 라파도 되십니다. 그것으로 분명해집니다. 그러니 달리 대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예나 아니요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을 부인하면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이심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분을 여러분의 치유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밤에는 구속을 나타내는 이 합성된 이름 하나, 여호와 이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무언가를 입증하려고 성경의 짧은 한 구절만 떼어 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전체의 시야 안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 주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온전히 이어져야 하며,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도 제자리에서 꼭 맞물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 희생물 이야기에 이르기 전에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이 누구였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아브라함 안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었다고 참으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은 성령의 그 부분도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으니, 이 점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 큰 은사들과 이런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요셉 안에 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가 은 삼십 개에, 거의 삼십 개에 팔리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아버지에게 사랑받은 것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똑같습니다. 그가 영적이어서, 환상을 보고 꿈을 해석할 수 있어서 형제들이 그를 미워한 것도 보십시오. 그리스도처럼 영적이었습니다. 그는 구덩이에 던져져 죽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그는 구덩이에서 일으켜져 파라오의 오른편에 앉았습니다. 요셉이 나아갈 때면 나팔을 불며 “요셉 앞에 무릎을 꿇어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파라오의 고관들을 자기 뜻대로 찾을 수 있었고, 누구도 요셉을 통하지 않고서는 파라오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왕위에서 쫓겨나 자기 백성, 자기 자녀들에게 밀려 올리브산으로 올라갈 때, 그는 산을 오르며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울었습니다. 팔백 년 뒤에는 다윗의 아들이 예루살렘에서 배척받고 올리브산에 앉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너희를 모으려 하였더냐?” 그 사람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큰 다이아몬드와 같으십니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는 이런 모양으로 깎이고 다듬어졌습니다… 제대로 세공한 다이아몬드는 여러 빛줄기를 반사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성령의 여러 은사를 보는 것은 바로 그 참된 다이아몬드가 반사하는 빛을 보는 것뿐입니다. 한 사람의 은사가 다른 사람에게는 좀 특이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그 다이아몬드가 빛을 반사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비추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한 사람에게는 지식의 은사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의 은사가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은사가 있습니다. 이 빛들을 반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빛들은 한 분 안에 모여 있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에 ‘너희는 신들이라’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하였거든,” 그렇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제한된 분량으로 신들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충만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자, 아브라함… 그의 삶을 잠깐 살펴봅시다. 그는 누구였습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였습니까? 일곱째 아들의 일곱째 아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바빌론에서 내려왔으며, 아마 우상 숭배 가운데서 자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가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도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십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보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 때든 하나님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의 무언가가 그 갈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신유라는 말이 없더라도 신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그것이, 열려 있는 그 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샘에 이르면 그날 밤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던 제자들처럼, 정작 자기들에게 온 바로 그 도움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선택을, 이삭은 의롭게 됨을, 야곱은 은혜를, 요셉은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납니다. 완전함… 요셉은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게 흠이 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가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서도, 똑똑한 사람이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아브라함 안에서 무언가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 이유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여러분 안에서 무언가를 보시고, 세상이 형성되기도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제가 교회들에게서, 특히 다시 태어난 참 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어떤 천년왕국에 있을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귀가 여러분을 속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앞으로 될 것이 아니라, 지금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얻어 주신 구속의 모든 복은 바로 지금 우리 각자의 소유입니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얻어 주신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 아니라, 지금 그렇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아무 조건 없이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하면, 네가 저것을 하면…”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너를 구원하였고, 너는 나이 들어 내게로 올 것이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 사람이 자기 언약을 깨뜨립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 언약을 맺었을 때, 사람이 자기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사람은 그것조차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아무 조건 없이 언약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기 때문도, 이것이나 저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유대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으므로…” 성경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가 되며, 약속에 따라 그분과 함께 상속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누구나 그 안에 아브라함의 씨가 있습니다. 그 안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나 다른 어떤 것을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알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아, 계속 붙들고만 있을 수 있다면. 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붙들고 있으려고 애쓴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붙들어 주셨고, 은혜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이 저를 위해 하신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자 제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저는 그냥… 그냥, (장로교식 생각입니다.) 앞으로 걸어 나가 악수를 하고 ‘받았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영원한 보장을 받았습니다.’라고만 하겠습니다.” 형제님, 그건 잘못된 길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와 언약을 맺어 남편이 되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나 있을 때 어떤 여자가 와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하고, 제가 원해서… 그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고, 집에 돌아가면 미다가 용서해 줄 것이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아내가 용서해 줄 것을 알더라도, 아내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게 해야 지옥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어떤 유행이나 종파들이 자기 교인들에게, 여자들에게 긴 옷과 긴 소매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천국에 데려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도 길고 옷도 길지만, 성질은 원형 톱과도 맞서 싸울 만큼 사납고, 이웃을 미워하며 온갖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을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으로 지키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딸들이거나 아들들이라면 말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불렀고 너와 내 언약을 맺는다. 내가 네게 아들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이었고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어린 소녀였을 때 결혼했습니다. 사라가 그의 이복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았고, 사라가 건강하던 모든 시절을 부부로 지냈습니다. 사라는 예순다섯 살이 되었고, 폐경이 지난 지도 이십오 년이나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사라가 그 아기를 갖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인 여러분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잠깐만요. 무언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모든 자연의 징후를 보고 우리가 이 아기를 갖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의사에게 가서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겁니다.’라고 말하고 모든 준비를 하라고는 하실 수 없지 않습니까. 의사는 저를 비웃을 겁니다. 저는 일흔다섯 살이고 아내는 예순다섯 살입니다.”
오늘날 예순다섯 살과 일흔다섯 살 된 노부부가 병원에 들어가 “선생님, 아기 낳을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의사는 “이분이 부인이십니까?”라고 할 겁니다. “예.” “진찰을 해 보겠습니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도 제때 다 겪으셨지요?” “예.” “그러면 아기를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 말씀이 맞겠지요.” 하고 돌아갈 겁니다. 그러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의사가 한 말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도 똑같이 합니다. 과학이 하는 말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봅니다. 아, 이 땅에 아직도 그분의 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사라가 가장 좋은 상점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머리에 할머니들이 쓰는 숄을 두른 예순다섯 살의 할머니가 상점으로 내려가 버즈아이 기저귀 천이며 핀이며 온갖 것을 사면서 준비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저 할머니가 정신이 나갔네.” 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여기저기 다니며 누구에게나 간증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아기가 생깁니다.” 누군가 “안됐군, 저 노인.”이라고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광신자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십니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적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적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여러분이 그분을 어떤 분으로 믿는지 입증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온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그 말씀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함께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리를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방식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을 고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사교성 좋은 사람은 처음 보실 겁니다. 광신자도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그런 것들을 반대하는 설교도 하지 않고,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참으로 담대하게 말할 배짱이 없고, 그것을 뒷받침할 성령 침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리를 말하는 설교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분리를 일으킵니다. 제가 목사를 선택한다면, 제가 교회 위원으로서 목사를 골라야 하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사람이라면, 저는 절대로 우리 교회 목사로 뽑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를 내보내는 쪽에 투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믿고 받아들여 선포하며 그 말씀 위에 서 있는 사람을 세우겠습니다. 저는 저 자리에 아브라함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서 있기를 원합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자신을 분리해야 했습니다. 친족들이 곁에 붙어 다니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그가 하지 않는 동안에는 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사소한 것 하나,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계속 붙들고, 하나님을 토템 기둥처럼 여기려 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온전히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있잖아요, 로버츠 형제님이 이 도시에 오셨어요. 할렐루야. 그분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달라고 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게 안 되면 폴 케인이 오실 테니, 할렐루야, 그분에게도 한번 받아 볼 겁니다. 그다음 브래넘 형제님이 오시면 그분에게도 한번 받아 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겠어요.” 그 모든 분들이 다녀가도 여러분은 똑같은 병을 가진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도 선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설교자나 개인들을 잊어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때는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아시겠죠?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입니다. 씨를 심고 돌보면, 그 씨가 생명이 들어 있는 좋은 씨라면, 그 종류에 맞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니 치유가 필요하다면 그분께 “여기 약속이 있습니다.”라고 구하십시오. 모든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 뒤 조금 지나 아브라함이 계속 나아가는 동안, 친족들과 갈라서야 하는 분리의 때가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함께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두와 갈라선 뒤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롯은 자기가 원하는 곳을 택해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롯이 곁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그의 다툼이… 여러분도 믿지 않는 사람들 곁에 붙어 지내는 동안에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이었을 때, 아흔아홉 살입니다. 그러면 사라는 여든여덟 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여보, 우리가 늘 아이를 갖고 싶어 했잖소?” “그럼요, 아브라함.”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아기가 생길 거요.” 사라가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저,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나도 그렇소.” “그럼 우리가 아기를 갖게 될 줄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걸로 된 거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분이 이루실 거요.”
처음 며칠이 지나고, 어쩌면 첫 달이 지나고 나서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와서 말합니다. “사라, 여보, 몸은 어떻소?”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아브라함, 정말 확신하세요?”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그럼요. “아브라함,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두 번째 달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은 어떻소? 무슨 변화라도 있소?”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첫해가 지났습니다. “사라, 기저귀며 그런 것들을 아직도 다 준비해 두고 있소?” “예.” “몸에 달라진 게 좀 있소?” “조금도 없어요.” “하지만 할렐루야,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 사람들 안에 제 생각을 담아 두면 괜찮을 겁니다. 아시겠죠? 자, 이십오 년이 지났을 때, 이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사라, 몸은 어떻소?” “달라진 게 없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될 거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상황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목에 디프테리아가 생겨 숨이 막혀 죽어 가는 소년을 위해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 다정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 소년에게 기름을 발랐습니다… 처음에는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곳의 책임 의사는… 알고 보니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부님이라면 들어가게 해 주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건 다릅니다. 목사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이들도 있으시잖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소년에게 신부님이 소중한 만큼, 저도 저 소년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아버님이 저 소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하지만 목사님께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압니다. 하지만 제게는 구원자도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병을 자녀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걸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직업윤리와 하시는 모든 일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 병으로부터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나병이며 다른 온갖 병 가운데서도 여러 번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들어갈 때 의사는 제게 쿠 클럭스 클랜 같은 옷을 입혔습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 소년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한쪽에, 아버지는 다른 쪽에 계셨습니다. 소년은 이틀 동안 의식이 없었습니다. 심장 기능이 너무 떨어져 심전도에 나타난 수치가… 얼마였는지는 잊었습니다. 저는 그 기계의 원리를 모르지만, 간호사는 다시는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올라갈 수 없고, 다시 올라간 사례도 없다고 했습니다. 소년의 심장 박동 말입니다.
짧게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더니, 아버지가 맞은편의 어머니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참 놀랍지 않소?” 그러고는 “아, 우리 아들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참으로 감탄했습니다. 어머니도 “그래요, 여보. 정말 놀라워요.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연로한 형제님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오 하나님, 우리 아들을 고쳐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거기 누워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젊은 간호사가 그분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이해가 안 됩니다. 아드님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실 수 있습니까?” 그분은 “아, 우리 아들은 죽어 가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고, 나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간호사는 “아버님의 믿음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꼭 아셔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이 기계는 과학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바늘이 여기까지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노족장 같은 분은 그 젊은 간호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이봐요, 아가씨. 아가씨는 그 기계를 바라보고 있군요. 그것을 보도록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아가씨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지요.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아이를 일으켜 주시겠다고 하신 신성한 약속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그 소년은 지금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상황이 어떻든 그 약속을 지키실 의무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을 뜻하는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걸으며 완전할지니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 샤다이,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엘 샤다이는 ‘여자와 같은 젖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아니, 젖가슴 자체가 아니라 젖가슴을 지닌 분입니다. “나는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다. 나는 힘을 주는 자다.” 어린 아기가 아파서 보채고 울고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지를 때, 어머니가 안아 올려 가슴에 기대게 하면, 아기가 젖을 빨며 어머니의 힘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해서 힘을 주는 젖을 처음 조금 맛보면 울음을 그칩니다. 엄마는 아기를 살짝 토닥여 주고, 아기는 젖을 빠는 동안 흡족해합니다. 더는 보채지 않으며 계속해서 힘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젖가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과 구약을 꼭 붙잡습니다. 그 신성한 약속을 꼭 붙잡고 젖을 빨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서, 아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에서 힘을 빨아들여, 다시 힘을 회복할 때까지 받아들입니다. 젖을 빠는 동안 내내 흡족해합니다. 아,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그는 살피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내가 일 인치 자랐나?” 자기가 일 인치 자랐는지 아닌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저 젖을 빨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신다는 것을 성경으로 설명해 주면, 믿는 자는 그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좀 나아졌나? 손가락을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나? 발을 돌릴 수 있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단 하나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 겉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여기 마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신성한 약속이 사람의 마음속에 닻을 내릴 자리를 찾기만 하면, 지옥의 모든 마귀를 다 합쳐도 그 약속을 그 사람에게서 떼어 낼 수 없습니다. 거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기에 그것을 붙들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 약속을 붙들고 계속 붙들며 믿다 보면, 마침내 손가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손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힘을 젖처럼 빨아 자기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롯과 갈라섰으니…” 롯은 좋지 않은 선택을 했습니다. 소돔 쪽의 들판에는 물이 넉넉했습니다. 큰 도시들이 들어섰고 죄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지근한 신자 롯이 자기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내려가 편한 길을 택했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호화로운 길을 택하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시련이 없는 길을 원합니다. 가장 쉬운 길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핍박받지 않는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것입니다. 그저 미지근한 신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하게 하고 남은 것을 취했습니다. 아, 저는 이것이 참 좋습니다. 참된 신자는 여러분에게 먼저 선택하게 하고, 자신은 기꺼이 남은 것을 취할 것입니다. 참된 신자에게는 이기심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다시 보십시오. 롯이 갈라서서 자기 자리를 잡은 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일어나라. 사방을 둘러보아라. 동쪽을 보고 서쪽을 보고 북쪽과 남쪽을 보아라.” 그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네게 속하였다. 전부 네 것이다. 내가 네게 주었다. 네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그 땅을 두루 걸어 다니며 네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부르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밤 여기 모인 이 작은 무리만이라도 일어나기만 한다면, 피닉스 사람들만이라도 말씀 속에서 자기들에게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제가 집을 사서 제 것이 되었다면, 그 안을 돌아다니며 무엇이 있는지 볼 겁니다. 저는 일종의 탐사자입니다. 여기저기 파헤치며 제게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구원을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신유를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천국을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땅을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저는 상속자이며,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이 약속된 것들이 담긴 책을 살펴보며 제가 무엇을 상속받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아주 큰 아케이드, 아주 넓은 곳과 같습니다. 그 아케이드가 제 소유라고 하면, 저는 돌아다니며 제게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을 겁니다. 이 서랍을 열어 들여다보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고, 저쪽으로 가서 그곳을 열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을 겁니다. 다른 곳에도 가서 살펴보고 싶을 겁니다. 조금 높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접사다리를 가져와 바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것을 내려서 살펴보고 무엇이 제 것인지 알아볼 겁니다. 모두 제 것이니까요.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너무 멀고, 너무 크고, 너무 높아 보이면, 그저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접사다리입니다. “주님, 제가 이것을 이해하게 해 주십시오.” 그것에 닿을 때까지 계속 올라가십시오.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것입니다.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믿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존 스프롤이라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친구입니다. 오래전 ‘글로리 반’과 함께 전국을 다녔던 분입니다. 이쪽에도 온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동부 지역을 다녔습니다. 동부에서 오신 분들 중에는 존 스프롤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는 보스워스 형제님을 통해 회심한 사람 중 한 분입니다. 목이 몹시 상했다가 치유받았습니다. 가스를 들이마셔서… 겨자가스를 코나 목으로 들이마셔 화상을 입었던 것입니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보스워스 형제님이 기도해 주자 치유받았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가 기절했습니다. 그 뒤로 병든 사람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러 다녔습니다. 그분이 잠깐 휴가를 내어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의 알자스 로렌에 갔습니다. 큰 정원을 둘러보다가 주 예수님의 조각상을 발견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거기 서서 의아해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것 좀 봐요. 조각가가 무엇을 나타내려 한 걸까? 형체만 있을 뿐이잖아요. 그리스도의 고난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자 안내원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스프롤 씨, 저 조각상을 비평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안내원은 “잠깐 이리 와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를 데려갔는데, 조각상 아래에 제단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안내원이 “무릎을 꿇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자 “이제 위를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 그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겪으신 모든 고통이 거기 있었습니다. 조각가가 그분의 얼굴 생김새에 그것을 그대로 되살려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다시 안내원을 돌아보았더니,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스프롤 씨, 조각가에게는 한 가지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 조각상을 만들 때, 사람들이 멀찍이 서서 이렇게 바라보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엎드려 올려다보도록 만든 겁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지혜와 섞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일을 하실 수 있을까?” 하고 따져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목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약속들은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도록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올려다보면, 그 약속들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에게 아이를 주셨습니다. 태어난 그 어린아이는 자라서 열두 살, 열네 살쯤 되었습니다. 그 가정에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였을지 아실 겁니다. 어머니는 백열 살쯤, 백열다섯 살쯤 되었고, 아버지는 백스물다섯이나 백서른 살쯤 되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젊은 남자와 여자로 되돌리신 일은 제가 전에 한번 설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잡지 같은 곳에도 그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만드셨습니다. 언젠가 부활 때에 다시 태어난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피닉스 사람들에게 그것을 아주 분명히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실 것이었습니까? 이 아브라함에게 이중으로 시험을 주실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유일한 아들을 데리고 내가 네게 보여 줄 어떤 산으로 가서, 거기서 그를 희생물로 바쳐라.” 만약 아브라함이 다시 생각하며 의심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민족들의 조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토록 나이가 많은데, 주님께서 말씀을 지켜 저를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으실 것이라는 유일한 증거를 죽여 없애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녀는 누구나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자녀로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여러분이 아픈 것도 자녀로서 조금 훈련을 받기 위해, 작은 시험을 겪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왕좌에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우리의 유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바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모든 믿는 자에게 그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여러분만 예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 그분을 보십시오.
이 아름다운 일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 일을 사라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곱슬머리를 한 열두 살쯤 된 외아들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그 어린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사라에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어머니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죽이려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지? 아내는 이해하지 못할 텐데.” 우리도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전하고 싶지 않은 말씀을 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꼭 맞게 이루고 계십니다. 아시겠죠? 모두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때로는 회중에게 이유를 말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고, 자기 교회에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어느 날 아침 아브라함은 일어나 나무를 패서 작은 노새에 싣고, 종 두 사람을 부른 다음 아이를 깨우며 “경배하러 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흘 길을 갔습니다. 저는 언제라도 하루에 이십오에서 삼십 마일은 걸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도 많이 타고 다닙니다. 칠 년 동안 순찰 일을 하면서 광야를 하루 평균 이십육에서 이십팔 마일씩 걸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탈것을 타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루에 이십오 마일씩 사흘을 걸었다면,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칠십오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눈을 들어 멀리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 주신 산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산에 이르렀을 때, 저는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라. 나와 아이는 저기 가서 경배하고, 그와 내가 돌아오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들으셨습니까? “나와 아이가 돌아오겠다.”
“아브라함, 어떻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여기 칼집에 칼이 있고,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저 아이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으셨… 아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시 생각하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자들로부터 받은 사람’처럼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었고 하나님을 섬길 성품이 전혀 없었는데, 여러분이 아무런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선택으로 부르시고 그분의 영을 주셨다면…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여러분이 선택할 수조차 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다면, 이제 그분이 맹세하시고 행하신 일에 힘입어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더 여러분을 고치고 지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다시 생각하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셨다. 약속을 지키셨다. 어떻게 하실지는 몰라도, 그분이 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의사들도 포기했고 몸이 다 썩어 들어가는,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어떻게 고치실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오늘 밤에도 그런 사례를 오백 건은 제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요.
오늘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데, 제 뒤에 체구가 작은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이 “저를 기억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분은 결핵이 너무 심해 속삭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집회에 실려 왔던 분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마 오늘 밤 집회를 후원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인 것 같습니다. 아, 그분은 복음 사역자이십니다. 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설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따져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따져서 알아낼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따져서 알아내야 해요. 제가 이해해야 해요.”라고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설명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행동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이와 불과 나무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자, 어린 이삭은 궁금해졌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갈보리산으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 줍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독생자입니다. 완벽하게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자 어린 이삭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여기 제단이 있습니다. 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삭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목소리에 떨림 하나 없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희생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그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히브리 아이들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맹렬히 타는 용광로 바로 앞까지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의 형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어린 이삭의 두 손을 뒤로 모아 묶고 발도 묶었습니다. 아이를 제단 위에 눕히고,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칼집에서 칼을 빼 들었습니다. 어린 이삭은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저항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아, 정말 캄캄한 시간이 닥쳐와도, 참된 믿는 자는 자기 아버지를 신뢰할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할 것입니다. 욥이 말했듯이,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목을 베려고 칼을 뽑아 손을 높이 들었을 때, 아마도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수염 위로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목을 베려고 손을 치켜든 바로 그때, 무언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성령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그때 뒤에서 작은 숫양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숫양, 곧 수컷 양 한 마리의 뿔이 풀숲, 덩굴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얼른 아들을 풀어 주고 가서 그 어린양을, 아니, 숫양을 안아다가 제단에 올려놓고, 아들 대신 숫양을 죽였습니다.
이제 진지하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그 숫양은 어디서 왔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칠십오에서 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고, 그 일대에는 늑대와 사자와 온갖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물도 없는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숫양이 거기서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으려고 사방에서 돌을 주워 모을 때, 왜 그 숫양을 보지 못했습니까? 거기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 있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랬다면… 숫양이 그렇게 먼 곳에 있었다면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산꼭대기에 있을 리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양은 그런 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은 풀밭이나 덤불에 머뭅니다. 그런데 그 숫양이 거기 있었습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곳을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이다’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환상을 본 것은 아닙니다. 환상은 피를 내지 않습니다. 그 숫양에게는 실제 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육체의 피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죽여 자기 아들 대신 드렸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여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아브라함의 씨에게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아프든, 상태가 어떻든, 그저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입니다. “제게는 피가 없습니다. 빈혈입니다.”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피를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백혈병이 제 몸의 조직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라고 하십니까? 며칠 전 밤 강단에 올라왔던 어린 소년은 어떻습니까? 오늘 밤 전해 들었는데, 그 아이를 다시 의사에게 데리고 갔더니 완전히 음성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에 진찰했던 바로 그 의사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은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다’이시기 때문입니다. 남녀들이 믿음을 내놓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실체를 예비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 아브라함의 씨여, 오늘 밤 그분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실 것을 믿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그분은 이미 어린양을 예비하셨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복되신 아버지, 오늘 밤 저희의 옷 아래, 몸의 피부 아래서 심장이 뛰는 가운데,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을 도저히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요. 오늘 밤 말씀 가운데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아버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바다의 모래를 보아라. 그것을 셀 수 있겠느냐? 없다. 네 씨도 셀 수 없을 것이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별들을 올려다보아라. 그것을 셀 수 있겠느냐? 없다. 네 씨도 셀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티끌에서 별들까지, 아브라함의 씨는 같은 약속, 같은 언약 안에 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면, 땅의 티끌 속에 있는 아브라함의 모든 씨가 영원히 별들처럼 빛날 것입니다. 은혜로 이 무조건적인 언약을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이것을 불렀고, 그분을 믿는 저희에게 영생을 주었습니다. 이제 아버지, 오늘 밤 기도합니다. 지치고 피곤한 목소리로 이 말들을 두서없이 전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려는 제 동기를 보시고 이 말들이 전해지게 해 주십시오. 사람들 가운데 믿음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이제 이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강단으로 불러 기도하려 합니다. 복되신 하나님, 이들이 약속된 모든 것을 이행할 때 여기서 만나 주시겠습니까? 그들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이것이 약속입니다. 주님, 자녀들이 그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라면 믿으리라는 것을 저희는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부를 것입니다. 주님, 오늘 밤 여기 많은 병든 사람이 줄을 설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치유받고 주 예수님을 자기 치유자로 받아들여, 오늘 밤이 위대한 밤이었다고 말하게 하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목이 이렇게 쉬었고 여러분을 오래 붙들어 두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참으로 고맙게 앉아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한 분 한 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이제 여기 계신 분들, 방문하신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도시에는 참 좋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여기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강단에는 자리가 없는 것 같지만, 이 근처에 계십니다. 이 목사님들을 만나 내일 아침에 나갈 좋은 교회를 찾으십시오. 내일 일요일 학교에 가시고, 남아서 예배에도 참석하십시오. 여기 계신 좋은 순복음 목사님들은 여러분이 오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여러분을 교회로 환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내일 오후에 한 번 더 예배를 드리고, 내일 밤에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제 다시 피닉스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기도하는 것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간절히 바랐습니다… 제가 여기 너무 여러 번 와서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기 전에 많이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제가 [불명확한 말] 그 혹독한 때가 어떤 것인지 압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곳에 있는 동안 저를 위해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 주시겠습니까? 주님, 피닉스에 큰 도움이 될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 기도입니다. 어떤 일이 될지는 모릅니다. 어떤 일인지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일을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남을 무언가, 떠나면서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말입니다.
어젯밤 빌리에게, 아니,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카드를 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기름부음 아래서 분별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도 줄을 지나며 기도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늘 밤 여기 와서 카드를 받으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브래넘 형제님이 기도 카드에 대해 묻는다.] (나누어 줬니? 뭐라고? 50장? 무슨 글자라고? F? 알겠다.) 그가 그분들에게 기도 카드 F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F, 1번부터 50번까지입니다. 이제… 죄송합니다… 50번부터 100번까지, 50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F 50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자, 어디 봅시다… 일어서 주십시오. F 1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분들을 찾을 수 있게요. 기도 카드를 보십시오. F 1번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1번부터 하려고 했군요. 좋습니다. F-50번입니다. F-50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기도 카드 F-50번입니다. 좋습니다. 자매님, 이리 와 주시겠습니까? 51번. 좋습니다, 자매님. 52번, 53번, 54번, 55번, 56번. 괜찮으시다면 오늘 밤은 바로 저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알아 주십시오. 저, 누군가가 좀… 잭 형제님과 다른 분들 여기 계십니까? 좋습니다. 51번, 52번, 53번, 54번, 55번, 56번, 57번, 58번, 59번, 60번. 어디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F-60번, 60번… 소스먼 형제님, 괜찮으시면 빌리가 이쪽 줄 끝으로 와 달라고 합니다. 60번, 61번. 얼른 손을 들어 주십시오. 61번, 62번, 63번. 저기 멕시코 소녀가 손을 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64번, 65번, 66번, 67번, 68번, 69번, 70번, 71번, 72번, 72번, F-72번. 제가 손을 못 본 것 같습니다. F-72번. F-72번을 가지신 분,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 좋습니다, 자매님. 73번, 73번, 손을 들어 주시겠…? 74번, 75번, 76번, 77번, 78번, 79번, 80번, 81번, 80번, 81번. 제가 81번을 봤습니까? 한 분도 빠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81번, 82번, 82번, 83번, 84번, 84번. 기도 카드 84번입니다. 여러분 중 누가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85번, 86번, 87번, 87번, 88번. 그분이 가지고 계십니까? 후아니타 자매님, 그분이 87번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87번. 좋습니다. 88번. 기도 카드 F-88번입니다. 좋습니다. 89번, 90번, 90번. 좋습니다. 91번, 92번, 93번. 기도 카드 F-93번입니다. 제가 봤습니까? F-93번, 94번, 95번, F-95번, 96번, 96번, F-96번. 제가 놓쳤습니까? F-96번. 좋습니다. 97번, 98번, 98번, F-98번, F-98번, 99번, 100번. 좋습니다.
이것이 처음 피닉스에 왔을 때 진행하던 기도 줄 방식입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제가 처음 피닉스에 왔을 때의 집회에 계셨던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정말, 보십시오. 기도 줄을 진행할 때, 사람들이 제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면, 제가 잠시 서서 그 손을 잠깐 잡고 있었고, 성령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드러내 주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십니까? 제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 저를 만나 주신 그날 밤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신실하면, 그분이… 그런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마음속 비밀까지 알게 되는 데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실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집회에서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시겠죠? 그분이 이루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얼마 전, 몇 달 전에 그분이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제 사역에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변화입니다. 언젠가 한 여자가 강단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갈색 코트 정장을 입고 아기를 안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입니다. 품에 아기를 안은 작은 여자분, 작은… 제가 잘못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치마와 작은… 그것을 코트 정장이라고 합니까? 투피스 정장, 투피스 정장입니다. 저는 여자 옷을 잘 모릅니다. 저는 못… 평생 아내에게 스타킹 한 켤레도 사 준 적이 없습니다. 아내가 직접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가 그것을 잘못 샀습니다. 제 삶 이야기에서 들으셨겠지만, 한 종류를 사야 했는데 다른 것을 샀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본인들이 하도록 맡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 딸아이들에게 그 작은 점퍼 재킷인지, 여자들이 입는 그 무엇인지를 사 주려고 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그… 아, 모르겠습니다. 저기 장미를 달고 앉아 있는 여자분이 입고 있는 것 같은 옷입니다. 저런 것을 뭐라고 합니까? 블라우스, 맞습니다. 딸아이에게 블라우스를 사 주려고 했는데, 며느리에게 가서 사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으면, 나 주가 나를 그에게 알리고, 꿈으로 말하며, 환상으로 나를 나타내리라.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그의 말을 들어라. 내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 내가 그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여기 강단에서 보는 그 환상들은 제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일으키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닻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제가 하나님께 저 자신을 내어 드리면, 여러분의 믿음이 바로 그 일을 합니다. 그렇게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기도 줄에 계시든 밖에 계시든, 그것이 역사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 여기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두세 분 정도군요. 이제,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혹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한두 분 정도는 해 보려고 합니다. 기름부음이 임하면, 그다음에는 이 손수건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어 형제님, 잠깐 문 쪽을 봐 주시면, 사람들이 지나오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오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해 믿는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마가복음 16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온 마지막 말씀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였습니다. 제 사역은 미국에서는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얼마나 놀라운지요. 오늘 오후에 무어 형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번 주에 그렇게 열심히 설교하셨는데, 미국 밖의 어느 곳에서라도 그만큼 하셨다면 십만이나 이십만 혼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교리에 물들어 있는지 말입니다. 아, 참! 온통 고린도 교회 같은 상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건 이래야 하고, 우리는 이렇게 했고… 우리는 그것과는 상관하지 않겠고, 이것저것은…” 하는 식입니다. 거기서 나와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가엾은 미국! 그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가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백성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되어야 그분이 심판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 심판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책에 적어 두시고, 얼마나 있다가 그렇게 되는지 보십시오. 애리조나에서 행해진 권능의 일들이 아프리카에서 행해졌더라면, 그들은 오래전에 회개했을 것입니다. 애리조나에서 행해진 권능의 일들이 독일에서 행해졌더라면, 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래전에 회개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저는 닷새 밤 동안 제단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했는데, 매일 밤 만 명씩 나왔습니다. 닷새 밤에 오만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한 사람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목발이며 휠체어며 온갖 것들을 그저 한가득 쌓아 올렸습니다. 구석마다 무더기로 쌓아 놓았습니다.
율리어스 스타드클레브 형제님이 오늘 밤 이 건물 어딘가에 계십니다. 조금 전에 여기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타드클레브 군목님입니다. 그분은 남아프리카 더반에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큰 경마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거기 사흘이나 나흘쯤, 그 정도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집회에 계속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단 초청을… 아니, 불러낼 줄을…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나가서 이 부족에서 두 사람, 저 부족에서 두 사람, 또 저 부족에서 두 사람씩 데려오게 했습니다. 약 열다섯 부족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기도 줄을 세웠습니다. 강단에 처음 올라온 사람은 이슬람교를 믿는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에게 저는 “이슬람교 신자이신데 왜 그리스도인인 저에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통역자가 전해 주었습니다… 제가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당신의 성직자에게 가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여기 계실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시고, 당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 등을 제게 알려 주신다면,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 여자는 그러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남편과 함께 갔군요. 남편은 키가 작고 체격이 다부지며 검은 콧수염이 있는 분입니다. 당신은… (그 여자는 인도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의사에게 갔습니다. 의사가 당신의 여성 분비샘을 검사하고는 수술해야 할 낭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맞습니다.”라고 했고, 주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일에 이슬람교 신자들이 크게 흔들려, 한꺼번에 만 명이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제가 만난 한 선교사는 “귀한 보석, 귀한 보석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삼십 년 동안 설교하면서 이슬람교 신자 한 사람을 회심시켰습니다. 형제님, 이슬람교 신자들은… 그 힌두교도들은 옛 메디아와 페르시아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참되시고 실제로 살아 계신 주 예수님께서 한 번 역사하시니… 그날 오후 제가 제단 앞으로 초청했을 때, (저는 실제로는 우리가 말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고 믿습니다. 율리어스 형제님도 그렇게 믿으실 겁니다.) 삼만 명이 한꺼번에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한 번의 제단 초청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F. F. 보스워스… 이 시대에 성도를 만나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성도는 F. F. 보스워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죽어 가더라도 그 말만은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연로한 분이 거기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기적적인 치유가 이만 오천 건 일어난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서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을 뿐입니다. 온갖 지팡이와 들것 같은 것들을 땅에서 거두었더니 트럭 일곱 대 분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버려두고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이만 오천 명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여기서는 목숨이 닳도록 설교해도, 누군가는 “뭐, 제법 괜찮은 메시지였어요. 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아닙니까? 아, 미국이여, 네 날이 왔습니다. 교회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날도 가까이 왔습니다. 그것은 휴거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스타드클레브 형제님, 놀라운 집회였지요? 잠깐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여기 『선지자가 아프리카를 방문하다』라는 책의 저자가 계십니다. 율리어스 스타드클레브 군목님으로, 지금은 미 육군 대위이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휘턴인지 그 근처 어딘가에서, 빌리 그래함이 나온 바로 그 대학에서 공부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다니시며 그 책을 쓰고 사진들을 찍으셨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 밤,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분도 거기 서 계셨습니다. 버스가 들어왔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육 인치 짧은 소년이 보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스타드클레브 군목님은 바로 거기 서서 기록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돌아보았을 때, 작은 녹색 자동차가 옆으로 날아가 나무를 들이받아 젊은 여자의 등이 부러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여기 한참 아래쪽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기억하십시오. 그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여자가 기뻐하며 달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가씨, 두 발로 일어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 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안 돼요, 안 돼요! 얘는 일어설 수 없어요. 의사가 움직이면 죽는다고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등뼈가 뚝뚝 맞춰지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벌떡 일어나 기뻐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일어난 그 간이침대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스타드클레브 형제님의 책에 그 사진들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그리스도께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연구해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 구원받으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계신 모든 그리스도인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죄인들은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죄를 짓다가 은혜의 날을 거의 다 흘려보냈습니다. 저는 1933년에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자동차가 어떤 모습일지 보았습니다. 지금 거의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여러분의 책에 적어 두십시오. 여러 번 말씀드렸고, 여기에 올 때마다 말씀드렸습니다.) “때가 올 것입니다… 미국은 여자의 나라입니다. 곧 미국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대통령 같은, 혹은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아시겠죠?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가 완전히 멸절되기 직전, 아니, 멸망이 이 나라에 닥치기 직전에 자동차는 점점 더 달걀 같은 모양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이제 하늘 아버지,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는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 병들고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줄을 지나오려고 서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종을 보아 주십시오. 여기 손수건들과 꾸러미들과 편지들이 놓여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질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손수건들을 축복합니다. 모두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 복을 모든 사람이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 미국인으로서, 이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분들, 그분의 백성인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 하나님, 모든 사역자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가 잃어버린 혼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힘껏 외치게 하옵소서. 끝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한 가지를 해 보려고 합니다. 형제님들은 지켜봐 주십시오. 제가 그 아래로 들어가면… 기름부음이 임한다면, 약속드린 대로 이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으니, 먼저 줄이 움직이게 해 주시면 모두가 기도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먼저 그 손길을 느끼고 싶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저를 광신자라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제 자신에게는 여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저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기 전에 그 무언가를 느끼고, 여기 기름부음이 임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물론 평소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멈추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처음 서너 명이나 다섯 명쯤은 기름부음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다음에는 형제님들이 잘 지켜봐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여러분 모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제 저와 함께하며 함께 기도하실 분은 저쪽에 얼마나 계십니까? 위층 발코니에도 계십니까? 여러분 모두, 저 위를 보십시오. 오늘 밤 여기 적어도 천 명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튼 그 정도는 됩니다. 제가 잘 헤아리는 편은 아니지만, 여기 천 명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위해 한꺼번에 천 번의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다시 태어난 분은 모두 손을 드십시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이제 그것을 조금 입증해 주시기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어 형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서너 사람이 지나간 뒤에 제가 조금이라도 기운이 빠지는 것이 보이면, 그때 사람들이 줄지어 오게 해 주십시오.
자매님, 무슨 일로 여기 서 계시는군요… 저는 모릅니다. 그분은 아십니다. 제가 자매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런데 무엇을…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라고 하시겠지요. 저 자신을 내어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 “들의 백합들을 보라…”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있습니다. 백합은 무엇을 합니까? 밤낮으로 수고하면서, 벌들과 지나가는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고 무언가를 주려고 합니다. 백합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꿀을 만드시므로, 그 꿀을 내어 주도록 백합을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은사들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자매님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싶은지 하나님께서 제게 알도록 허락하신다면, (잠깐만요.) 마음을 다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자매님이 무엇을 기도하고 계시는지 제가 모른다는 것을 아시지요. 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원하는 것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회중도 믿으시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믿으십시오. 거기 계시는 동안 여러분도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이 자매님을 위한 시간입니다. 자매님은 심장 질환 때문에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수종입니다. 그분이 그 병을 낫게 하시고 치유하시며, 무엇을…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목사님의 아내가 아니십니까? 그런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남편분을 아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잠깐 이리 오십시오. 복되신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여자가 치유받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자매님은 마음을 다해 믿으십니까? 성경은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병이 목에 있습니다. 인후 궤양이라고 하는 병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분비샘에 무언가를 일으켜 귀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맞지요? 이제 믿으십니까? 이리 오십시오. 오, 복되신 예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자매님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마음을 다해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백내장을 없애실 수 있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형제님에게 백내장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계십니다. 저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이곳 분이 아니시군요. 그렇습니다. 아내분이 함께 오셨군요. 아내분은 이미 치유를 받아들이셨습니다. 형제님은 오하이오에서 오셨습니다. 맞지요? 성함은 웨버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서 돌아가셔서 나으십시오. 아멘. 안녕하십니까. 믿으십니까? 젊은이,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의사가 당신에게 죽을 것이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육 개월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모든 습관과 그에 딸린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 드리겠습니까? 담배와 다른 모든 것도 끊고,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고…?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이 마귀를 정죄하여, 이 젊은이에게서 떠나도록 합니다. 그리고 백혈병 아이에게서 소식이 다시 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젊은이가 살아서 건강해지게 하옵소서. 아멘.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늘 아버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셔서 고쳐 주십시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어린 소년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젊은이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작은 여자분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셔서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소녀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잠깐만요. 회중 여러분, 기도하고 계십니까? 지금 기도하십시오. 여기 회중 위에도 환상이 보입니다. 아, 이런 방식으로 줄을 진행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지금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저 계속 기도하십시오.
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인디언 자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젊은 여자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어린 소년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십시오.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여자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이제 잠깐 기다리는 동안, 회중 가운데 기도를 받으신 분들 중에서 믿고 계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은 치유를 받아들이고 안수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믿고 계신지 보고 싶습니다. 손을 얹으…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도 줄을 지나오셨고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좋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 회중 모두 계속 기도하십시오. 모두가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저 눈을 감고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사랑하는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사랑하는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형제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월드롭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여기 서 있는 동안 잠깐만요. 여기 계신 이 여자분은 제가 처음 왔을 때 기도 줄에서 죽었던 분입니다. 해티 월드롭 부인입니다. 남편은 배관공이며 저의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이분은 암에 걸렸지만, 살든 죽든 어떻게든 오고 싶어 했습니다. 기도 줄에 계실 때 누군가 제게 어떤 분이 죽어 간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분을 고쳐 주셨습니다. 월드롭 자매님, 그게 십 년쯤 되었지요. 그리고 저는… [월드롭 자매가 브래넘 형제님과 이야기한다.] 지난 월요일이 꼭 십 년 되는 날이었군요. 이분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분이… 어느 날 밤, 제가 캐나다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스먼 형제님, 저 멀리 서스캐처원에 있을 때였지요. 이분의 어린 손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 손자였던 것 같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월드롭 자매와 이야기한다.] 자매님의 손자였군요. 무슨 병이었습니까? 뇌출혈과 소아마비… 세인트조지프 병원에 있었습니다. 전화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그 어린 소년을 완전히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어느 날 밤 우리가 저쪽 자매님 댁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아이가 집에 있었습니다. 맞지요, 월드롭 자매님?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마음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합시다. 아멘. 아,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아, 그 찬송을 부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놀라운 분이 아니십니까? 이제 모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십시오. 좋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이를 고치셔서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 이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십시오. 안수함으로… 주님께서는 말씀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이것을 행합니다. 우리 자매에게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얹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게 하옵소서. 마찬가지로 우리 형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게 하옵소서. 마찬가지로 우리 자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기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얹은 우리 사랑하는 자매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아멘. 친구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분은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십시오. 하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자매가 치유받게 하옵소서. 아멘.
제게는 이것이 다른 방식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여러분이 이 방식을 원하신다면, 저도 당연히 이 방식을 택하겠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했습니까?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렇지요? 기도 줄을 지나오신 분들 가운데 지금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 줄을 지나오신 분은 모두 손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맞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여기 병이 있는데 기도 줄에 서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백 명이나 그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손을 계속 들고 계십시오. 저도 두 손을 들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분께 손을 뻗어 닿으려 하고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를 아시는 그분입니다. 여러분이 손을 뻗으시면 저도 손을 뻗습니다. 우리 모두가 손을 뻗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어느 날 모세가 두 손을 들고 있을 때, 전세가 유리해졌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 저희도 두 손을 듭니다. 저희를 위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께 저희의 믿음이 향해 올라감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치유 권능을 믿습니다. 오 하나님,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그 권능을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위에 쏟아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치유 권능이, 권능이 지금 이 건물 안에 임하게 하옵소서.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믿는 분은 모두 손뼉을 치십시오. 할렐루야!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치유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좋습니다, 무어 형제님. 잠깐 머리를 숙이는 동안, 무어 형제님께 나오셔서 오늘 이 예배를 맡아 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도받고 싶으냐, 얘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남자에게 복을 주시고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무어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