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영의 인도를 받아 그 교회로 와서, 저에게 기도를 받으려고 저를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요! 제가 그곳에 간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바워 형제님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저 그곳에 가야겠다는 인도를 느껴서 갔는데, 거기에 주님께서 계셨습니다. 또 어젯밤 강단에 올라왔던 젊은 가톨릭 청년은 뇌에 종양이 있고… 의사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이 강단에서 기도를 받았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떻게 된 일인지 신기하게도 그곳으로 인도를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 여기 순복음 신자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은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방금 손을 든 사람이 그 청년입니까? 그 인디언 청년 말입니다. 그렇군요,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좀 나아졌습니까? 몸이… 참 잘됐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제님과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기가 가서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간증할 수 있기를, 우리는 온 마음으로 바라고 의지하며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며 믿음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이 침례교 형제님이 어떤 일을 겪어 오셨는지 들었습니다. 순복음 신자 여러분에게는, 누군가 간증하는 것을 듣는 일이 그다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형제를 귀하게 여기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청년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압니다. 저도 같은 시련을 겪고 나왔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고 참되고 진실한 믿음으로 나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제가 가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 그들이 제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합니다. 데이비스 박사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 자네는 좀 쉬어야겠네. 집으로 가게. 자네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 그러면서 “자네가 악몽을 꾼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천사를 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한 자네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겠다고?”라고 했습니다. 저는 “천사가 그렇게 말했고,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했습니다.
자, 여기 이 청년에게는 붙들어 줄 팔과 도와줄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형제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지금 정말 필요합니다. 누군가 그를 받아 주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지지하고, 성령 침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믿으려고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형제가 되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며 그의 형제임을 보여 줍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아내가 이제 곧 다시 어머니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쫓겨나는 일을 당하니 그가 걱정하고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신경성 질환과 위장병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아내에게도 말입니다. 그분 역시 시련을 겪고 나왔습니다. 오페라 가수였다가 내려와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척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성히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장님이 제게 이 도시의 열쇠를 보내 주셨나 봅니다. 진… 아웃로 형제님, 저기 놓여 있는 것을 방금 보고는 도시의 열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제가 원하는 것은 성경을 여는 열쇠, 곧 성령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주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짧은 극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아주 조용히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밤 다시 오실 수 있는 분들이… 충분히 일찍 마치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번이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도시에 오신 많은 방문객이 오늘 밤에도 예배를 드리기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이 오늘 밤 여러분이 자기 교회에 있기를 원하시고 교회가 문을 닫지 않았다면, 오늘 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자기 교회가 있습니다… 이 모든 집회가 끝나면 자기 교회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셨던 그 교회로 돌아가십시오. 그대로 계속 신앙생활을 하시고, 할 수 있는 한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집회에서 회심한 모든 사람 가운데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들을 방문하고 여러분의 교회로 데려와 함께 교제하십시오. 부흥 집회는 바로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치유받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실 때마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에 나눌 이야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살펴보면, 말하는 그 목소리의 어딘가가 영 미심쩍게 들립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그분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라는 이 사람과는 아무런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교회를 비롯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으셨으니까요. 그들은 그분을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어떻게 그분께 자기 집에 와서 식사하시라고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먹지 않습니까? 함께 식사하는 데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갖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주의 만찬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그토록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악한 세상의 옛말대로, 그는 ‘속에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기적인 동기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배우’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그 말 자체가 ‘배우’를 뜻합니다. 배우란 흉내 내는 사람,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위선자’라는 말에 얼마나 꼭 들어맞습니까? 배우, 흉내 내는 사람,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 업쇼 하원의원이 늘 말했듯이, “자기가 아닌 무언가인 척하려고 할 때” 말입니다. 육십육 년 동안 휠체어를 타다가 우리 집회에서 치유받았던 그 고인, 하원의원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자기가 아닌 사람인 척허지 말어.” 남부식 말투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교제가 전혀 없었으니 틀림없이 어떤 이기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이야기할 공통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중년 남자들에게는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다섯 살쯤 되는 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 곁을 맴도는 것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어딘가에 사탕 봉지를 놓아두신 겁니다. 나이 차이가 너무 커서 공통 관심사가 있을 수 없지요. 어린아이들끼리는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자기 인형 이야기, 돌리고 있는 팽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 통하는 말을 합니다. 남자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사야에서 “거리에서 노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들에게는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젊은 아가씨들에게도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만나서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공통 관심사가 있지요. 다른 부인들에게도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의 키와니스 회원들은 함께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간단히 식사하면서 도시의 일을 의논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지, 해야 할 작은 일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요. 키와니스에도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친목 단체들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오후 이곳에 나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진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원이나 도로에 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사이의 공통점은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보이려고 이곳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교제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자기가 미워하던 예수님께 어떻게 자기 집으로 와서 함께 식사하시라고 초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늦은 오후, 해가 막 저물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습니다. 온종일 설교하셨으니 말씀하시느라 목이 쉬셨을지도 모릅니다. 팔레스타인의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얼굴도 화끈거리셨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을 보니 온몸이 땀에 젖은 한 청년이 보입니다. 다리는 땀과 먼지투성이입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께 밀려드는 사람들이 크게 원을 이루고 있는데, 그 청년은 그 바깥에 서 있습니다.
저는 훌륭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설교를 듣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기회를 자주 갖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아는 훌륭한 설교자의 설교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의 말씀 한마디는 우리가 여태껏 들어 본 어떤 목소리보다도 큰 감동으로 우리 가슴을 벅차게 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얼마나 그분께 밀려들었겠습니까? 한쪽을 바라보니 이 청년이 보입니다. 그는 지쳤고, 급히 달려온 탓에 몸이 떨리며, 온몸에 땀을 흘린 채 발끝으로 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아, 저분이야. 저분이 틀림없어. 저렇게 말씀하는 사람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는 높으신 부자 목사님의 지시를 받아 예수님을 찾으러 파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았을 때 얼마나 안도했겠습니까? 이곳저곳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그분은 거기 계시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며칠 전, 다른 도시에 살고 있던 그의 부자 주인은 그 도시에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영향력도 컸고 사람들도 그를 몹시 존경했습니다. 그 모습이 보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가난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중에는 엄청난 부자도 있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받고 희생물에서도 몫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부자였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했고, 도시의 성직자로서 존경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갖추었더라도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으면,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종교심이 깊고, 존경받으며, 좋은 평판을 지녔고, 정직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바리새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 집의 넓은 복도를 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이 도시의 아무개 박사야. 나는 아주 존경받는 시민이지. 내 말이 곧 법이고 질서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전혀 되지 못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님,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같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갈색이든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노란색이든, 우리가 어떠하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평등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대단한 체하는 바리새인이 방 안을 오가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성대한 잔치를 한번 벌여야겠어. 큰 잔치를 열어서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아마 신문 일면이나 사교란에 실릴 수 있을 거야.” 그런 것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극으로 풀어 가면서 이름 같은 것을 쓸 텐데,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의 원리,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려는 메시지를 이해하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집 안을 오가며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내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알릴 수만 있다면.” 오늘날에도 똑같은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도록 바깥사람들에게 보여 줄 일을 벌이고 싶어 합니다. 가장 큰 집회, 가장 큰 이것저것, 무언가를… 자기 교회에 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오기를 원합니다. 가장 큰 교회, 가장 높은 첨탑, 가장 좋은 의자, 무언가 큰 것을 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많이 모시는 것이지, 세상의 것을 그렇게 많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시리라.” 그러나 먼저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이 바리새인이 방 안을 오가며 궁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한 누군가를 데려올 방법이 떠오르기만 하면 좋을 텐데. 멋진 구경거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나 무언가가 생각나기만 한다면.” 그러다 갑자기 그가 통통한 두 손을 비비더니, 동그랗게 나온 배에 손을 얹고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바로 그거야. 도시 사람들 앞에서뿐 아니라 다른 바리새인들, 이 도시의 목사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야. 이렇게 해야겠어. 사람을 보내서 나사렛 예수라는 그 사람, 그 광신자를 초대하는 거야. 여기 데려다 놓고 그자의 정체를 폭로하겠어.” “바리새인 레빈스키가 며칠 전에 그자는 선지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 줬거든. 우리도 그가 선지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사람을 보내 그를 이곳으로 초대해야겠어. 다른 바리새인들을 모두 모아 놓고 그자의 정체를 폭로하는 거야. 주(州)의 장로와 다른 이들이 다 모이면 그를 확실히 눌러 놓을 수 있어. 그가 오게 할 수만 있다면. 아, 와 주기만 하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야.” “전령아, 이리 오너라. 온 지방을 돌아다니며 소위 갈릴리 선지자라는 그 사람을 찾아라. 내가 아주 성대한 잔치를 여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전해라. 잘 먹여 주겠다고 해라. 분명 제대로 먹지도 못할 테니. 여기 오기만 하면 정말 푸짐하게 먹여 주겠다.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해라.”
전령은 그 일을 하려고 온 지방을 찾아다녔습니다. 여기서도 찾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분이 틀림없어.”라고 했을 때, 마음이 얼마나 흡족했겠습니까? 누구든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르십니다. 전령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몰려드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이 그분 주위를 에워싸고, 해는 막 지고 있습니다. 그는 팔꿈치로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다가 주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의 줄에 부딪힙니다. 누군가에게 부딪혀 비틀거리면서 그 줄을 뚫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한 신사가 그에게 손을 얹고 말합니다. “선생님, 이 안으로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몹시 피곤하십니다. 죄송하지만 들어가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빌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전령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분께 전할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꼭 뵈어야 합니다. 제 주인의 전갈을 가지고 며칠 동안 갈릴리 곳곳을 다니며 그분을 뒤쫓았습니다. 이제야 어디 계신지 찾았으니, 선생님, 꼭 전해야 합니다. 저도 지치고 피곤합니다만 한 말씀만 드리면 됩니다. 제가 그분께 갈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 도와주시겠습니까?”
빌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물론입니다. 그 말씀을 전하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빌립이 그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 다가가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선생님, 이 청년이 자기 주인에게서 선생님께 전할 말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러자.”라고 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께 무엇이든 여쭙고도 대답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기꺼이 대답해 주십니다. 전령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기가 그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그분께 초청의 말씀을 전하고 자기 주인인 바리새인이 그분을 뵙고 싶어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베드로라는 덩치 큰 사람이 급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 됩니다, 주님!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하셔서는 안 됩니다. 분명 어디엔가 수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겁니다. 주님은 너무 바쁘십니다. 일정에도 이런 일, 저런 일, 이것저것이 잡혀 있지 않습니까? 그 바리새인을 만나러 가실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주님을 달가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시잖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가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떤 처지에 있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정중히 말씀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네 주인에게 가서 내가 이러이러한 날에 가겠다고 전하여라. 내가 가겠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라. 구하는 자마다 받고, 두드리는 자마다 그에게 열리며, 찾는 자마다 찾느니라.” 그분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고 믿으며 그런 믿음으로 그분을 찾고 그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전령은 예수님께서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몸을 돌려 급히 달려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자기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일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전령인 우리 설교자들도 그와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교단과 작은 무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그분께 갈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분께 나아가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무슨 세상적인 필요를 말씀드리기도 전에 엎드려 “예수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전령은 그분이 언젠가 자기의 심판자가 되시리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작은 파벌이나 우리끼리의 사소한 견해 같은 것에 너무 사로잡혀, 우리 가운데 계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합니다. 그가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다른 일들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주인이 찾아오라고 보낸 분을 찾았으니 자기가 큰일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을 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서고도 그분을 경배하지 않고, 용서와 긍휼을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서둘러 돌아가 주인에게 말합니다. “그분을 찾았습니다. 여기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뚱뚱한 바리새인은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가 말합니다. “자, 잔치를 준비하여라. 이 넓은 베란다 아래에 상들을 모두 차려 놓겠다. 그때쯤이면 포도도 익을 것이다.” 여러분이 동양, 곧 동쪽 나라들에 가 보셨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듯 그들이 얼마나 굉장하게 허세를 부리며 잔치를 벌이는지 아실 겁니다. 그곳에는 중산층이 없습니다. 부자 아니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자는 모든 것을 가졌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양고기를 요리하고 바비큐로 구울 생각이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주위에 서서 입맛만 다시고, 한 입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었습니다. 부자였으니까요. 그렇게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들뜬 모습을 봅시다. 손님을 맞으려고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분께서 오시리라고 믿을 만큼의 확신은 있었습니다. 양들과 소와 그 밖의 것들을 모두 잡고, 최고의 요리사들을 불러 놓았습니다. 아, 그 사람들은 요리를 정말 잘합니다. 양고기를 바비큐로 굽는데, 정말 맛있습니다. 밖에서 커다란 고깃덩이를 큰 회전 꼬챙이에 꿰어 굽습니다. 그 냄새가 일 마일 밖까지 퍼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고, 마침내 그날이 되었습니다. 바닥을 전부 다시 윤이 나게 닦게 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목사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초대장을 보내 와서 구경하게 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예수님을 그 자리에 모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웃음거리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이 사람을 가지고 한바탕 즐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바리새인들에게는 ‘하인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는 ‘종들’이라고 부르지요. 무슨 일이든 시킬 때마다 그 일을 해 줄 하인이 있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의 말을 들여놓도록 마구간도 모두 마련해 두었습니다. 성대한 잔치를 위해 모든 것이 손닿는 곳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커다란 마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하인이 밖에서 말들을 멈춰 세웁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내려서 환영을 받습니다. 문에 하인이 서서 그를 맞아 안으로 안내합니다. 문간에는 작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이, 아니, 누구든 손님이 오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인은 손님에 대한 예우로, 안에 들어오기 전에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작은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부분은 방문을 하거나 어딘가로 이동할 때 걸어 다녔습니다. 그들이 걸을 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옷은 속옷이 있고 그 위에 겉옷을 입었습니다. 그 팔레스타인 옷은 무릎까지 내려왔습니다. 걸을 때 겉옷이 이렇게 흔들리면서 먼지를 일으켰습니다. 다리에 땀이 나 있어서 먼지가 달라붙었습니다. 그들은 짐승들이 다니는 먼지투성이 길을 걸었습니다. 길가에 있는 짐승들의 배설물 같은 것이 먼지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그 먼지가 일어나 다리에 묻으면 땀 때문에 다리에 달라붙었습니다. 걸어 다니다 보면 마구간 같은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손님으로 찾아왔지만 길에서 묻힌 냄새 때문에 그대로는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세족에 관해 읽었습니다. 그가 거느린 하인들 가운데 가장 품삯이 적은 하인은 발을 씻기는 하인이었습니다. 발을 씻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오면 작은 현관이나 복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앉았습니다… 당시에는 샌들을 신었습니다. 하인은 손님의 샌들을 벗기고 물을 가져다가 발과 다리를 깨끗이 씻어 주었습니다. 길에서 묻은 악취를 모두 씻어 냈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샌들을 세워 놓고 안쪽까지 깨끗이 닦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배려로 집 안에서 신을 천 신발 한 켤레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손님은 그 천 신발을 신습니다. 이제 발을 씻었고 천으로 된 샌들을 신었습니다. 그다음 문으로 들어가면 향유와 기름을 든 사람이 서 있습니다. 남녀 모두에게 그렇게 해 주는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직사광선이 목과 얼굴을 익힐 만큼 갈색으로 태웠기 때문입니다. 아마 애리조나보다 더 심했을 것입니다. 손님이 들어서면 거기 서 있던 사람이… 손님은 손을 내밀고, 그 사람은 기름을 주었습니다. 손님은 손에 기름을 문질러 바르고 얼굴과 목 뒤에도 발랐습니다. 그러면 수건을 건네주었고, 손님은 기름을 닦아 냈습니다.
손님이 목과 손에서 기름을 닦아 낼 때면, 그 기름에서 좋은 냄새,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작은 사과 같은 열매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장미의 사과 같은 열매였는데… 꽃잎이 떨어지면 작은 사과 같은 열매가 남습니다. 그 열매는 멀리 아라비아에서 나며 아주 비쌉니다. 그 열매를 으깨어 향유를 얻은 다음 이 기름에 넣습니다. 그 기름에 들어가는 향료가 없으면 기름이 상할 것입니다. 스바의 여왕이 그것을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유향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손님들에게 그 기름을 주면 자신에게 바르고 닦아 냈습니다. 목 뒤에도 바르고 닦아서, 그 향료 덕에 아주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이제 발을 씻고 부드러운 샌들 한 켤레를 신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수입한 커다란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부자입니다. 이런 것을 갖춘 집에 들어갈 때… 더러운 발로 그런 냄새를 풍기며 그들의 집에 들어간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손님을 씻기고 단장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기름을 바르고 나면…
그다음에는 주인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형제님, 이리 오십시오. 어떻게 하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주인을 만나면 이렇게 손을 잡고 이쪽에 입을 맞춥니다. 또 이렇게 손을 잡고 저쪽에 입을 맞춥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한 형제와 함께 시범을 보이신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입맞춤입니다. 환영의 표시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형제들에게 인사하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서로 목 양쪽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발을 씻고 나면… 여러분은 그렇게 더러운… 온몸이 땀투성이이고 길에서 묻힌 냄새를 풍기는 모습으로 주인을 만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발로 그의 응접실에 앉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옷자락이 길에서 묻혀 온 짐승의 배설물과 먼지, 거름 같은 것이 거의 진흙처럼 달라붙어 있으니까요. 지독한 냄새가 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씻어 주고 기름을 발라 주어 온몸이 깨끗해지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주인을 만나러 가면 주인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것은 환영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주인을 만날 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주인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시간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 여기에 담긴 복음의 의미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가 그분을 만나도록 어떻게 준비시키시는가, 그것이 참된 영적 의미입니다. 주인이 들어와 손님을 만나면 입을 맞추었습니다. 주인이 입을 맞추면 이제 그 사람은 형제였습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그냥 들어가 긴 의자에 앉고, 냉장고로 가서 먹고 싶은 것을 꺼내 먹으십시오. 형제님, 그저… 이제 거기가 자기 집인 것입니다. 주인이 입을 맞추면 환영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한 사람에게 입을 맞추지 않으면, 그에게 입을 맞추지 않으면 그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입을 맞추는 것이 그를 환영하는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형제들에게 인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제 가운데 환영하는 표시입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우리는 악수하지만, 그때는 뺨이나 목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온 도시가 들썩였습니다. 잔치가 열리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동방 사람들만이 그 광경을 아실 겁니다. 사람들이 서서 “음, 정말 굉장하지 않아? 아, 세상에.”라고 하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그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구경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손님들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의 바리새인 친구가 거기 서서 잔을 부딪치며 포도주로 가볍게 건배하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잔치는 한창 무르익어 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문득 구석을 보니,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곳에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발은 더럽고 머리에는 기름도 바르지 못하셨으며, 환영의 입맞춤조차 받지 못하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문에 있던 그 하인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분은 어떻게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까? 아, 제가 그 하인이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분의 발을 씻겨 드릴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무언가 해 드릴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그 하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씻지 못한 발과 기름도 바르지 못한 머리로, 환영의 입맞춤조차 받지 못한 채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나게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말입니다. 성경은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분노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형제님, 이 세상은 뻣뻣하게 굳은 교만한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이 도시에 온다면, 저는 우리 대통령을 사랑합니다만, 그가 이 도시에 온다면 거리마다 깃발이 가득할 것입니다. 악대가 그를 맞으러 나갈 것입니다. 집집마다 깃발이 나부낄 것입니다. 시장도 나가고,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나가 그를 환영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도시에 오시면 광신자 취급을 받으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여러분은 그분을 초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초대하고 나서 어디로 모십니까? 위층의 작은 방이나 다락에 모십니까? 아니면 지하실에 내려가 잠깐 몇 마디 하고 맙니까? 아침에 일어나 그날 아침 기도 모임을 하려다가도, 수지가 전화해서 “쇼핑하러 가자.”고 하면 예수님은 뒷전으로 밀려나십니다. 그렇습니다. 또 목사 여러분, 감리교와 침례교와 장로교 목사 여러분은 자기 도시에 옛날 같은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회중을 불러 기도하게 합니다. 오순절교 목사들 가운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도시에 오시면 그분께 광신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협력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손도 대려 하지 않습니다. 전혀 그러지 않습니다. 생명의 통치자이신 바로 그분을 거절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시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진창에 뒹구는 돼지가 너무 많습니다. 예전처럼 깨끗이 씻어 내야 합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전국을 다녔지만, 사람들은 복음을 향해 마음을 굳게 닫아 이제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은혜의 날이 끝났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설교하고 설득하고 복음을 전해도 그들의 마음을 끌지 못할 것입니다. 소수의 성도는 따로 모여 나오겠지만 세상은 옆에 앉아 조롱합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그렇게 대합니다. 그분께서 찾아오지 않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환영받는 곳에만 오십니다.
여기서도 그분은 초대를 받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내려갔고, 여러분은 그분께 오시라고 초대했습니다. 부흥을 일으키려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교회에 오셨는데, 그분께서 처음으로 무엇인가 하시자마자 여러분은 그 사람을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분을 교회에서 몰아내려 합니다. 그곳에 그분이 계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들어오셔서 병든 사람을 치유하시면 여러분은 “아, 그런 일은 없어. 잠깐만, 너무 흥분하고 있잖아.”라고 말합니다. 어떤 귀한 성도가 기뻐서 일어서며 뺨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 앞에서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흠흠, 안내위원, 저분을 문밖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스스로 바리새인이 된 사람들이여. 그렇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천국 본향으로 데려가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대접받고 계십니다. 누군가 와서 “저 무리는 광신자들에 지나지 않아.”라고 말해도, 목사라는 여러분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아, 형제님,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오늘날 바로 그 부르심, 바로 그 복음, 바로 그 말씀, 순전한 복음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이 도시에서 비방과 조롱을 받는데도, 예수님을 씻지 못한 발로 앉아 계시게 내버려 둡니다. 그렇습니다. 종교인들, 스스로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이 그런 대접을 받도록 내버려 둡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습니다. “아, 나는 존스 박사잖아.” 여러분은 그 경건치 않은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박사일지는 몰라도 무슨 박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앉아서 잔을 부딪치며 말합니다. “아, 있잖습니까, 우리 위대한 교단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인을 이렇게나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씻지 못한 발로 거기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남자들은 그런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만큼 수줍음을 지닌 여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어릴 때 이후로 얼굴을 붉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미국 사람들에게서 단정함이라는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농담이나 하며 저 텔레비전 같은 것에 머리를 파묻고 지냅니다. 교회가 이런 상태인 것도 당연합니다. 스스로 목사 행세를 하는 여러분의 목사는 그런 것을 허용하며, 여러분에게 달리 말해 주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가정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교회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 그런 것은 저 뒤로.”라며 구석으로 밀어 놓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언제까지나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참으로 선하십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지 않는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일 년에 한 번쯤 교회에 가는데, 그것도 부활절에 예쁜 모자를 자랑하려고 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하나님은 첫째 자리를 받으셔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서 예수님이 첫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께 넷째 자리쯤을 내드립니다. 그분은 첫째 자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하루에 한 번 기도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분은 그것도 받으십니다. 넷째 자리를 드리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그분은 받으실 것입니다. 어쩌면 올해 교회에 딱 한 번 가서 새 모자나 쓰고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분은 그 일로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제게는 바로 그것이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유입니다. 넷째 자리든 다섯째 자리든 드리고 싶다면 그분은 받으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드리는 대로 받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첫째 자리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첫째 것, 가장 좋은 것, 우리의 전부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그저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사람처럼 거기에 앉아 계셨습니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언젠가 심판 때 그분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주변에 있는 여러분의 커다란 시체 안치소 같은 교회들 가운데 많은 곳에서,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분에 지나지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것은 그분의 이름뿐입니다. 그분은 안에 들어오셔서 자기 성도들의 송축과 경배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세상적으로 된 것이 문제입니다. 저 바리새인처럼 다른 무언가에 너무 몰두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것들에 너무 몰두해 있습니다. 집에 남아 「누가 수지를 사랑하나」를 꼭 봐야 합니다. 「아서 고드프리」를 꼭 봐야 하고, 아니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반을 사다가 틀어야 합니다. 그러고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저울에 다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회에 가더라도 그저 곁다리 일쯤으로 여기고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며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경배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헛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거기 앉아 계시는 그분을 보십시오. 높으신 종교인들은 모두 앉아서 잔을 부딪치며 교제하는데, 예수님은 더러운 발로 구석에 앉아 계십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생각만 해도… 예수님의 발이 더럽다니요. 아, 세상에. 그래서 제가 침례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저의 하나님은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 가운데 경배받으셔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차갑고 형식적인 신조를 믿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저기 앉아 계시는 그분을 보십시오… 사랑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대하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십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신학교에서 스스로 부화해 나온 병아리 같은 목사 여러분은 예수님을 경배하는 일에 ‘광신자’라는 더러운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여러분의 회중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으로 성경을 전한다면 모든 교회에서 성도들이 환호할 것입니다. [불명확한 말.] 예수님의 잘못이 아니라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오늘 그분께서 이 피닉스에 와 계십니다. “광신자들, 광신자 무리.”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바리새인이여. 당신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아래 시내에 한 젊은 숙녀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여인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마치기 전에 말입니다. 아주 경건하고 조용히 계십시오. 이 젊은 숙녀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습니다. 나쁜 여자였습니다. 어쩌면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는… 뭐, 그것을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을 파는 여자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여자를 손가락질하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께 나쁜 짓을 할 나쁜 남자가 없다면 나쁜 여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여자를 그렇게 멸시하지 마십시오. 어느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손가락질하는 대신 교회 문을 열고 사람을 보내 그 여자를 데려온다면, 그런 여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엾은 어린아이입니다.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았고 아무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그 여자를 내쫓았고 아무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했으니, 어쩌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나빴습니다. 저는 그 여자의 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여자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모임 안에 그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체 당신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이여? 그렇습니다. 당신은 더 낫지도… 많은 경우 그 여자보다 더 나쁜 처지입니다. “아, 하지만 우리는 견딜 수 없어요… 우리 사람들은 그런 여자가… 그런 여자를 교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요. 아, 안 돼요, 안 됩니다.” 그 여자가 그런 사람이 된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느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신 한 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임은 너무 뻣뻣하고 거만합니다. 제 교회에 그런 무리가 있다면 저는 그들을 문밖으로 쫓아내고 창녀들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나라에는 배웠다는 것만 내세우는 바보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못되게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부르심은 “가서 그런 사람들을 데려오라.”였습니다. 그것이 만찬에 오라는 부르심입니다.
보십시오. 이 젊은 숙녀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부도덕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니 숙녀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숙녀는 그보다 더 높은 이름입니다. 그 여자는 그저 거리의 창녀였습니다. 음식 냄새가 났습니다. 아, 배가 고팠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일까?” 길모퉁이를 돌아 올라가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 저 위에 바리새인, 목사님의 집 좀 봐. 오늘 감독님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나 봐. 살짝 올라가 무슨 일인지 보자.” 그렇게 올라가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 냄새가 정말 좋구나.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저런 음식을 만들어 주셨던 게 기억나. 하지만 저런 음식을 먹어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그저 버림받은 사람이야.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말았어… 아, 엄마가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지. 하지만 엄마도 돌아가시고 아빠도 돌아가셔서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나쁜 여자애들과 어울리다가 이렇게 됐구나.” 그 여자는 안을 들여다보며 발끝으로 섰습니다. 위를 올려다봅니다. 안을 보니 목사들이 모두 잔을 부딪치며 대단한 일들과 새로 들어온 교인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귀한 눈이 구석을 향했습니다. 그 여자는 멈추어 섰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분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누구지? 아, 저 갈릴리 선지자시구나. 늘 한번 뵙고 싶었어. 그런데 왜 아무도 저분께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제자들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만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초대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바라보는데 뺨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눈을 닦고 다시 봅니다. “그분이 맞아. 그런데 저것 좀 봐. 발이 더러우셔. 마른 입술과 머리카락과 목에 묻은 흙 좀 봐. 아, 저분이 사랑받으실 수 있도록 해 드리지 않았구나.” 오늘날에도 얼마나 꼭 맞는 말입니까. “저분이 사랑받으실 수 있도록 해 드리지 않았어.” 갑자기 무언가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 여자는 거리로 달려갔습니다. 길을 따라 달려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삐걱거리는 작은 계단을 올라가 문 잠금을 풀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어. 내가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그 여자는 눈을 다시 비빕니다. “그럴 수는 없어. 아!” 그러다 작은 찬장 위로 손을 뻗습니다. 거기에는 양말 윗부분으로 된 작은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꺼내 상 위에 놓고 세기 시작합니다.
“아, 하지만 안 돼. 그럴 수 없어. 그분 앞에 가면 내가 어떤 여자인지 아실 거야. 이렇게 번 돈을 가져갈 수는 없어.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아실 거야. 그런 식으로 번 돈은 깨끗한 돈이 아니잖아. 그분은 아실 거야. 나는 그분이 메시아라고 믿으니까. 아, 사람들이 그분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 한쪽으로 밀쳐 놓아서 저기 사랑받지 못한 채 앉아 계시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 돈으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나는… 그분은 사랑받지 못하고 계셔. 더러우셔. 발이 더러우셔. 하지만 내게는 이것밖에 없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나아가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도둑질했습니다. 이런 짓도 했고 거짓말도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어떠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분은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보십니다… 그 여자가 말합니다. “잠깐만.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 그분께서 나를 정죄하실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지만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야.”라고 무언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옳은 일입니다. 분명히 옳은 일입니다.
그 여자는 돈이 든 작은 양말 주머니를 집어 들었습니다. 허리춤 안에 넣고 작은 숄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린 다음 거리로 나갔습니다. 향료 가게는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 집에 가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늙은 유대인이 안에 앉아 잔뜩 심통이 나 있었습니다. “아, 오늘은 장사가 안 돼. 왜 그런지 모르겠군.” 문이 열렸습니다. 이 가엾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거 누구야. 내 가게에 이런 사람이 오는군, 응? 그래, 뭘 원해?” 장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지요. “뭘 원하냐고?”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유향을 사러 왔습니다.” “뭘 원해? 십 센트짜리 한 병?” “아니요, 가지고 계신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주세요. 아주 특별한 일에 쓸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짤막한 기도 하나만 드립니다. 십 센트어치입니다. 아, 세상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드물고 특별한 기회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그저 교회 회원이 되기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 여기 있기는 한데, 돈부터 봐야겠어.” 물론이지요. 그는 “요셉을 무덤에, 구덩이에 그대로 둬서 무슨 이익이 있느냐?”라고 말하던 부류였습니다. 그걸로 돈을 좀 벌 수 있다면 좋다는 겁니다. 형제님, 그런 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좋다는 겁니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닙니다. 백만 번이라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을 압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의 주 예수님을 대하는 것을 생각하면, 옛날 그때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창녀들과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의롭다 하는 너희보다 먼저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 여자는 계산대 위에 돈을 쏟아 놓았습니다. 주인이 세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맞았습니다. 로마 돈 삼십 데나리온이었습니다. 주인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것을 어디로 가져갈 거지?”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것은 상관없지 않습니까? 돈을 받으셨으면 무슨 상관입니까? 어떻게… 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무슨 상관입니까? 선생님께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요.” 그 여자는 돈을… 작은 유향 상자를 집어 듭니다. 그것을 이 안에, 그 옥합을, 겉옷 속에 넣습니다. 아니, 작은 숄 아래에 넣고 길을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동안 마귀가 계속 말을 겁니다. “이제 정말 톡톡히 창피를 당할 거야. 틀림없어. 그들이… 그 바리새인이 그런 짓을 한다고 너를 감옥에 넣을 거야.” “네가 환호하면 집 밖으로 내쫓을 거야. 파문당할 거야.” 파문이 무슨 상관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그분은 여전히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를 받으셨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분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나게 즐기느라 너무 재미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즐길 것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아, 신유 같은 건 없어. 방언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건 전부 헛소리야. 우리는 더 나은 부류에 속해 있지.” 그렇습니까? 종교인 흉내를 내는 그 배우와 사기꾼 무리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들이 종교를 아는 정도는 호텐토트인이 이집트 기사를 아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 종파에 속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곳에 서 있던, 스스로 의롭다는 거물들이 손가락질하며 말합니다. “이봐, 누가 잔치에 왔는지 봐. 저것 좀… 쉿. 봐. 저기 봐. 저 여자야.”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저런 독수리 같은 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기는 좋아하면서, 그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손을 내밀어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형제님, 예수님은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가엾은 여자가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분께 갈 수 있을까? 아, 저기 앉아 계신 모습을 봐.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고 계시는지.” 오늘날 바로 이 피닉스에서도 그분은 환영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 그 형제님의 교회에서 보았습니다. 그 작은 목자가 서서 자기 양 떼를 먹이려고 애쓰는데, 바로 옆에서는 삽질을 하고 일을 하고 온갖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는… 이리 걸어 나와 보니 옷을 반쯤만 걸친 여자들이… 이 공원에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투를 입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 위에 손수건 하나를 두른 것 같은 아주 짧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늙고 주름진 할머니들도 있고 온갖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아주 신앙심이 깊어요.” 아, 스스로 바리새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여. 제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가엾은 여자를 보니… “아, 그분께 갈 수만 있다면. 내가 이 광경을 바꾸어 놓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그 여자가 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바로 그런 점이 좋습니다. 바깥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사람들을 좌우로 밀며 군중 사이로 나아갑니다. 곧장 예수님 곁으로 달려갑니다. 그분 곁에 서자 마귀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실 거야.” 하지만 그분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때는 식사하는 방식이 지금과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먹습니다. 그때는 옆으로 누워서 먹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처음부터 여러분이 옳았군요.
그들은 누워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긴 의자의 끝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거기 서서 그분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가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형제님,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모든 죄와 잘못 살아온 삶과 몸을 팔았던 일을 봅니다. 그 모든 것이 눈앞에 드러나자 울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더러운 발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 죄 때문에 너무나 울어서 눈물이 그분의 발 위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여자는 이렇게 그분의 발을 들어 문지르기 시작합니다. 아, 세상에. 바리새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가슴을 내밀었습니다. “흠, 이런.” 산탄을 삼킨 개구리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가 보니 누군가 잔치를 망쳐 놓았습니다. 하지만 잔치가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님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 여자는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발 앞에서…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예수님은 발 씻김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반짝이는 눈물, 한…
[녹음 공백.] 예수님께서 잔치에 오신 뒤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대하는 크고 훌륭하고 격조 높은 교회에서보다, 회개하는 창녀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하게 느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회개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그분의 발 위에 떨어집니다. 그 여자는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브래넘 형제님이 입 맞추는 소리를 내신다.]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춥니다.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행동에 무슨 신경을 쓰겠습니까? 마음에서는 회개의 샘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발을 씻는 얼마나 아름다운 물입니까! 그 여자는 그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너무도 격정에 휩싸여…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그분 앞에 나아갔을 때 그랬습니다. 저도 격정에 휩싸였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광신자’라고 한 것을 압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예수님 앞에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파문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그분의 발을 씻고 있을 때… 아, 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서 있는데, 바리새인이 다른 사람을 툭 치며 말했습니다. “자, 그가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 텐데. 이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는군. 우리가 말했잖아. 그가 알 텐데… 잠깐 지켜보자고.” 그동안에도 그 여자는 계속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입 맞추는 소리를 내신다.] 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춥니다.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 위에 올려 묶었던 머리카락이, 곱슬머리가 모두 주위로 흘러내렸습니다. 그 여자는 멈추고 옥합을 집어 들더니 [브래넘 형제님이 강단을 두드리신다.]…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브래넘 형제님이 다시 두드리신다.]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것을 전부 그분께 쏟아부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눈물과 기름으로 그분의 발을 씻으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입 주위가 온통 기름투성이였습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자 그 여자는 곱슬머리를 모아 쥐고 그분의 발을 들어 자기 머리털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고, 또 입을 맞추고, 또 입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유명인사들이 있었습니다. 도시의 사교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발 앞에 있다면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제가 무슨 상관을 하겠습니까? 그 여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습니다.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돌아보십니다. 그 거룩하신 머리를 돌리실 때 그 눈빛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분은 바리새인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아, 바리새인이여, 언젠가 당신에게도 그 말씀이 주어질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말할 것이 있다. 너는 나를 이곳에 초대하고도 내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고, 내가 들어올 때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도 않았으며, 환영의 입맞춤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불쌍한 죄인은 내가 여기 앉은 뒤로 계속 눈물로 내 발을 씻고 자기 머리털로 닦으며 내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내가 여기 들어온 뒤로 줄곧 그렇게 하고 있다.”
바리새인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가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여자는 두려워합니다. 아,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그 여자를 정죄하실까요? 그분께서 발을 홱 빼시면서 “그러지 마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발을 빼지 않으셨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그 여자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여자는 그들이 그분께 마땅히 해 드려야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을 ‘광신자’라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신이 그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 보십시오. 그곳에는 교회의 감독인 바리새인과 그 주위에 모든 목사와 장로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너무 고상해서 이 광신자에게 손도 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이 불쌍한 여자는 무엇을 받게 될까요? 그 여자는 자기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어느 날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여자는 하고 싶었습니다. 이 거만한 거물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가난한 여러분을 불러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는 하게 하실 것입니다. 거리에서 죄인들과 창녀들을 불러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저기, 그 여자를 보십시오. 깜짝 놀라 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갈색 눈으로 올려다봅니다. 그때 그분께서 바리새인을 보시고 나서 돌아보십니다. 여자의 얼굴은 온통 기름투성이이고,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으며, 머리카락이 여러 가닥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서 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하실까요? 어떻게 하실까요? 그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나는 네 초대를 받고 왔다. 네가 나를 초대했다. 너는 내 발을 씻어 주지 않았다. 내 손과 목에 바를 기름도 주지 않았다. 환영의 입맞춤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불쌍한 죄인은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브래넘 형제님이 우신다.]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그녀의 많은 죄들이 모두 제거되었느니라.” 아, 형제님,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하면… 그분께서 저를 대주교나 로마 교황으로 세워 주시는 것보다, 제게 그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너의 많은 죄들이 모두 씻겨 없어졌느니라. 평안히 가라.” 더는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입시다.
주 예수님, 아, 스스로 대단한 체하며 겉치레가 가득한 이 잔인한 세상에, 주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웃고, 신문과 온갖 것과 잡지에 주님을 더럽게 비방하는 글을 씁니다. 주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 할 사람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날 제멋대로 사는 남녀는 바로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들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그들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체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허세와 자만으로 가득하여 둘러앉아 비난하고 조롱하는지요. 언젠가 자신들을 심판하실 바로 그 예수님을 두고 떠들며 조롱하고 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 강당에 있는 남녀 가운데 스스로 대단한 체하는 교인이 있거나, 아니면 그 여자처럼 거리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발 앞에 나아오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간증함으로 모든 비방을 씻어 내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허락해 주십시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계시는 동안, 구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찾아 이 피닉스에 오셨습니다. 밤마다 오셔서 병든 사람을 치유하시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며, 여러분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 주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불명확한 말.] 언제나 기꺼이 여러분을 용서하고 사랑하려 하십니다. 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그분을 소홀히 대한 죄책감을 진심으로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루에 짧게 이 분쯤 기도하는 것으로, 어딘가 작은 구석에 그분을 밀쳐 놓지는 않았습니까? 혹은 그분의 말씀을 전혀 읽지 않다가… 일주일에 한 번쯤 읽습니까? 그런데도 교회에는 속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대한 것이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회개하고 싶습니다.” 손을 들고 “그리스도여, 회개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백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주 예수님을 잘못 대했다고 느끼십니까?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가톨릭, 루터교,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잘못 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고 그분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함께 이 제단 앞으로 나와서 “주님, 오늘부터 주님을 모시겠습니다. 오늘부터 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으십니까? 기다리겠습니다. 자리에서 바로 나오십시오. 나머지 분들은 머리를 숙이고 계십시오. 그분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십시오. 손을 든 모든 분과 자신이 그분을 잘못 대했다는 것을 확신하는 분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서서 잠시 기도하시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마치기 전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나선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이제 남자들도 뒤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한 여자와 함께 기도하신다.] 여기서 회개하는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을 경배하고 싶어요.” 오 하나님. 저녁 식사는 미뤄 두십시오. 무슨 상관입니까? 이리 오십시오. 자매님, 형제님, 이것은 저녁 먹으러 가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천국에 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생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교든 침례교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 앞으로 오십시오. 이리 오십시오. 그분을 잘못 대했다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기 계신 인디언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파치 보호구역에 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곳에 가겠습니다. 아직 못 나오셨다면 오시지 않겠습니까… 위층 발코니에 계신 분들?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지옥 한가운데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정말 너무 멀리 있게 됩니다. 오늘 오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앞으로 나오십시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두 청년이 수화만을 통해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듣게 해 주신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여전히 뒤로 물러앉아 있습니다. 오 하나님. 여러분은 “목사님, 보십시오. 저는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가졌든 상관없습니다. 돌 같은 마음도 가지고 있군요. 할 수 있을 때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할 수 있을 때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분노하시리라.” 저는 제 마음으로 그분께 입 맞추고 싶습니다. 두 젊은이가 발코니에서 일어나 걸어 내려왔습니다. 아직 젊은 청년들입니다. 여러분도 오시지 않겠습니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기를 원하십니까? 여기 그분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십니까? “주 예수님, 제가 해 온 일을 온 마음으로 뉘우칩니다. 저는 교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참으로 올바르게 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리고 싶습니다. 제 간증으로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세상에 말하고 싶습니다. 직장에서도 두려워했고, 이웃 앞에서도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 여자가 더는 저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 주님께서 저를 좋아해 주시기만 한다면 누가 저를 좋아하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처럼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죽지 않으십니다. 오시지 않겠습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 주께서 나를 받으시고, 맞아 주시며 용서하고 씻어 주시고 놓아 주시리니, 주님의 약속을 제가 믿사오니,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제가 갑니다! 제가 갑니다!
자, 평신도들이 여기 서 있으니, 이제 목회자 가운데 몇 분이나 저와 함께 앞으로 나오실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들인지 보고 싶습니다. 저도 이 제단 앞에 섭니다. 저도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원합니다. 남녀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남자 목사님들과 여자 목사님들, 모두 들으십시오. 이 피닉스에서 여러분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제가 아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올바른 교제를 하지 않은 잘못입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분을 그렇게 대한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남녀 목회자들을 보십시오. 오 하나님. 진심으로 뉘우치십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대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말씀드립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하는 동안 무언가가 제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떠냐?” 저는 바로 제 자신에게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으셨을 때 피곤하고 지쳐 있었으며 목도 아프셨습니다. 그래도 가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가셨습니다. 그래도 가셨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회개합니다. 하나님과 이 회중 앞에서 회개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온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우리 앞에 서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이 피닉스에서도 오순절 날과 같은 교제를 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모두, 이제 여러분 사이의 작은 장벽을 허무십시오. 그런 것은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성회든, 하나님의 교회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일신교든, 삼위일체파든 무엇이든, 그런 것은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그저 주 예수님을 경배합시다.
이제 나머지 분들도 일어서십시오. 건물 안의 모든 곳에서, 모두 일어서십시오. 정말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손을 내리면서 옆 사람과 악수하며 말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다가가 악수하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곳곳에서 모두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당신을 그렇게 대한 것이 미안합니다.” 누구에게 원한이 있다면 지금 바로 그 사람에게 가서 풀고 바로잡으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 귀하도다, 흘러내리는 그 피,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다른 샘은 모르네,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무엇이 내 죄를 씻을 수 있나? (잠시 여기 그대로 계십시오. 그대로 계십시오.)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무엇이 나를 다시 온전케 하나?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오, 귀하도다, 흘러내리는 그 피,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다른 샘은 모르네,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마음이 기쁜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브래넘 형제님과 회중이 손뼉을 치신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남녀 목회자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부터 모든 교단의 장벽을 허물겠습니다.” 자기 교단에는 그대로 계십시오. “하지만 형제가 저와 다르더라도 기꺼이 악수하겠습니다. 협력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오, 귀하도다, 흘러내리는 그 피,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다른 샘은 모르네,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제단 주위에 계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마음이 기쁩니까? 우리 죄가 모두 씻겼다고 느끼십니까? 무엇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무엇이 저를 다시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피뿐입니다. 다른 교단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입니다. 아,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교회로 가십시오. 교회를 지원하십시오. 목사님을 지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사역들을 뒷받침하십시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참으로 옛날 같은 부흥이 피닉스를 휩쓸게 합시다. 머지않아 로버츠 형제님과… [녹음 공백.]…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들이 오면 여러분 모두 한마음으로 나가 협력하고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남의 교인을 자기 교회로 끌어오려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자기 교회로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예배가 끝나면 그들을 모두 여러분의 교회로 초대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나?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오, 무엇이 나를 다시 온전케 하나?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오, 귀하도다, 흘러내리는 그 피, 나를 눈같이 희게 하네. 다른 샘은 모르네, 오직 예수의 피뿐이네.
지난번 아침 식사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유산이 그루터기에서 싹을 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털벌레가 먹기 시작했고, 쐐기벌레가…” 저는 말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살충제를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 나무 주위에 사랑을 뿌리셔서 쐐기벌레가 한 마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의 몸 전체입니다. 감리교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일신교든, 이일성설을 따르든 무엇이든,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형제자매로 만듭니다. 우리의 죄는 그 피로 씻겼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스타드스클레브 형제님, 잠시 이리 오십시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분은 저와 함께 아프리카에 갔고, 수만 명과 수천 명이 한꺼번에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줄리어스 스타드스클레브 형제님, 이 회중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형제님,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하실 말씀이 있으면 [불명확한 말.] 오늘 밤 예배는 일곱 시 삼십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희도 여기 있겠습니다. 기도 카드는 앞으로… 몇 시지요? 여섯 시 삼십 분입니다. 내려오십시오. 오늘 밤 치유를 위한 큰 부어 주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죄인인 친구들을 데려오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두어 시간 뒤에 제가 다시 여러분에게 설교하겠습니다. 이제 나가서 간단히 요기하시고 다시 오십시오. 마지막 예배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목사님이 교회 문을 여신다면 자기 교회로 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지켜야 할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성회 소속이면 하나님의 성회로 가십시오. 연합교회 소속이면 연합교회로 가십시오.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오늘 밤 자기 자리를 지키십시오. 저는 복음 전도자입니다. 아시겠죠? 교회에서 오늘 밤 예배를 쉬면 이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다니는 교회가 없다면 오늘 밤 오십시오. 식당에 가서 식사할 때 그곳 여종업원도 오늘 밤 오도록 초대하십시오. 여러분을 뵙기 바랍니다. 그때까지, 저는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여기 있는 저의 사랑하는 친구는 많은 시련과 고난, 기쁠 때와 어려울 때를 저와 함께했습니다. 그가 기도로 마쳐 주기를 바랍니다. 줄리어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시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