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참으로 의아합니다. 오래전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여러분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겠습니다. 존 스미스가 마지막 설교를 했을 때, 짧은 설교였지요, 네 시간짜리였습니다. 너무 연로해서 사람들이 그를 들어 강단까지 모셔야 했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감리교회의 딸들까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영복을 입고 남자들 앞에서 해변에 쭉 드러누워 있는 것은 어떻습니까? 감리교인 여러분이 바로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침례교인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이따금 짧게 기도나 한 번 합니다. 그런데 침례교회의 창시자인 존 스미스는 눈이 퉁퉁 부어 감길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아내가 그를 식탁으로 데려가 아침 식사를 먹여 주어야 했습니다. 침례교인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또 신유를 믿지 않는 감리교인 여러분, 존 스미스는, 얼마 전에 저는 그를 기리는 곳에 서 보았습니다만, 하루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에서 내려 주머니에서 기름병을 꺼내 말에게 기름을 바른 뒤, 그 말을 타고 갔습니다! 감리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문밖으로 내쫓을 것입니다. 오, 여러분은 잘 달리고 있었는데 무엇이 여러분을 막았습니까?
얼마 전 캘리포니아의 어떤 이단 종파 모임에서, 훌륭한 장로교인 한 사람이 제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저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때 장로교회는 서부 해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들어와 장로교회를 산산이 무너뜨렸습니다. 이제는 이 사람이 나타나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산산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저는 말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생명의 빵을 주었더라면 저런 것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고픈 아이들은 쓰레기통에 있는 것도 먹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습니다. 오, 여러분, 목사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양 떼를 먹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계속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오, 당신의 자녀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교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여러분의... 창조주께 가서 그분 자신의 자녀에 대해, 그 자녀가 훈육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보고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착한 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아이가 오직 아버지의 일에 전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가정교사는 얼마나 기쁘게 말하겠습니까. 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 인자하신 주인님, 주인님의 자녀는 정말 ‘아버지를 쏙 빼닮았습니다.’ 꼭 주인님 같습니다. 오직 주인님의 일에 전념합니다. 이 자녀보다 주인님의 왕국 일을 더 잘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겠습니까. “오, 바로 내 아들이야. 오, 그래, 내 아들이지.” 성령께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서 “이 사람은 참된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분의 계획은 이것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내가 들리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리라.” 그분은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겠습니까. 그다음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아들이 끝내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버림받은 아들로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약간은 칼뱅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불순종하는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모든 보상을 잃고, 그저 평범한 침례교인이나 오순절교인, 나사렛교인이나 그 밖에 여러분이 속한 교파의 교인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고, 순종하는 참된 자녀가 된다면...
자, 루터교인 여러분은 처음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하나의 교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감리교인 여러분, 존 웨슬리가 나타나자마자, 불기둥이 옮겨 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 터를 잡았습니다. 존 웨슬리가 나타났을 때 여러분은 새로 태어나는 것, 곧 그들이 성화라고 부르는 두 번째 분명한 은혜의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옳았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도 옳았습니다. 하지만 성화를 발견하자마자 여러분은 작은 선을 그었습니다. 아니, 웨슬리와 애즈버리 등이 죽은 뒤에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하나의 교리로 만들고 경계선을 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을 바로 그 밖으로 옮기셨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그것을, 은사들이 회복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하나의 교리로 만들고 거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제 성령께서는 계속 옮겨 가시며 여러분을 떠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오, 형제님, 여러분이 다른 믿는 이들에게서 자신을 고립시키면 하나님께서는 떠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감리교인과 침례교인, 루터교인과 오순절교인이 서로 팔짱을 끼고 함께 전진할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지금껏 본 것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가장 강력하게 부어지는 역사 중 하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총을 쏘고 있는 한 마귀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오, 계속해라. 그렇게 싸우다가 서로 죽여라.”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큰 전선을 이루어 연합해 보십시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자, 이 아이가 올바른 아이이고, 순종하며 부지런하고, 아버지가 맡겨 놓으신 일을 기꺼이 하는 아이라면, 가정교사는 와서 “오, 훌륭한 아이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날 그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교회는 오래전에 이미 그렇게 되었어야 합니다만, 그 아이를 사람들이 보는 곳으로 데리고 나와 옷을, 아름다운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대개 성문 앞에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성문 앞으로 가서 아들을 높은 곳에 세우고, 그에게 옷을 입혔습니다.
여기 계신 설교자 여러분, 제가 말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아들을 제 지위에 세우는 일입니다. 아시지요. 갈라디아서, 아니, 에베소서 1장 5절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입양하시려고, 곧 아들들의 지위에 세우시려고 미리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참으로 순종합니다.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아들을 이 높은 자리에 세웠습니다. 큰 잔치가 벌어졌고, 아버지는 그동안 줄곧 자기 가족이었던 자기 아들을 입양했습니다. 자기 가족으로 입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제자리에 세워 가족 안에서 그의 지위를 주었습니다. 그 후로는 수표에 적힌 아들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은 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자기 지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자, 저의 오순절 형제 여러분,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 여러분이 누구든지,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서 부족한지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교파와 자기 위신, 자기 단체를 두고 너무나 많이 다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지고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입니다. 그러나 오, 우리가 사람들 앞에 세워져 그분의 의의 권능을 입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과 기도가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우리의 설교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하며, 성경에 나오는 큰 표적들과 이적들이 다시 교회에 회복되는 날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 간의 하찮고 옹졸하고 유치한 차이를 허물어 버릴 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자기 지위에 세워졌고, 그러고 나서 온전한 아들의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이 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간의 사소한 차이를 버리고 그리스도께 나아와 바깥세상을 잊고, 아니, 우리의 교파 같은 것을 잊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 혼들을 구원하는 아버지의 일에 전념하며 하나님의 일들을 행한다면,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따로 세우시고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왕국 안에서 우리의 지위에 세워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은사들이 있고, 어떤 이에게는 지식이 있으며, 어떤 이에게는 방언의 은사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어떤 이들은 선지자이며, 그 밖에도 다른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은사들이 역사하게 하고 계십니다. 제 마음에 있는 것이니 이 말을 해야겠습니다. 형제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매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순절교회와 이런 은사들을 가진 순복음 신자 여러분은 그것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은사입니다. 은사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것들을 가지고 무분별하게 날뛰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자리에 놓으십시오. 보십시오. 첫 번째 은사는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지식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아는 지혜가 없다면 지식이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 어떻게 방언을 해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지 아는 지혜가 없다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저 엉망이 되어 버리는데 신유를 전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근본주의자들과 오순절교인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알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말씀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직 살아 움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압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믿음은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마치 한 사람은 은행에 돈을 넣어 놓고도 수표를 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은 수표는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둘을 함께 모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오 하나님, 영적인 근본주의 교회든, 근본주의적인 오순절교회든 우리에게 주옵소서.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어떻게 제자리에 놓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믿음이 그저 제멋대로 날뜁니다. 그런 식으로는 좋은 일을 하기보다 더 많은 비난을 불러옵니다. 그 믿음을 성경 안의 제자리에 놓으십시오. 이것이 설계도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에 맞추십시오.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 그들이 거기 서 있을 때, 보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실 일이 아니면 사람에게도 그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아 죽어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속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신으로 내려오셔서 그의 자리를 대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젯밤 그렇게 설교했던 이유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 이상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맛보시려면 내려오셔서 육신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보내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공의롭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친히 오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처녀를 덮으시고 혈구 하나를 창조하셔서 아들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거하시며 이 땅에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분은 임마누엘이셨습니다. 선지자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을 맛보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처럼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전국을 다니며 그렇게 많이 설교했던 룻기의 친족 구속주, 여러분도 아마 그 설교들을 읽어 보셨겠지만, 오, 그는 구속주가 되려면 반드시 친족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주가 되실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우리의 친족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친족이십니다. 그분은 저처럼, 여러분처럼 육신을 가진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거하시며 우리처럼 오감을 사용하여 고통을 겪고 느끼고 맛보셨습니다. 그분은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변화산에 서 계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옛날 입양, 곧 아들들의 지위를 세워 주는 일에서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하셨던 것을 세상에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무척 흥분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초자연적인 것 앞에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대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땅에 속한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피조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리 맛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합니다.
오순절교회에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미리 맛보자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릅니다. 전혀 분별없이 행동합니다. 방언의 은사들과 통역의 은사들을 어떻게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설교자가 말하고 있는데도 벌떡 일어나 말합니다. 바로 설교자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 말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 하나님께서 이것에 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보다 더 새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말도 사라지고 다른 모든 것도 사라지겠지만, 성경은 “너희 가운데 영적인 자나 선지자가 있거든 내가 쓰는 것들이 하나님의 명령들인 줄 인정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이미 선포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과 악수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오게 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틀렸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왕국 안에 태어납니다. 앞으로 숙여 침례를 받거나 뒤로 젖혀 받거나, 물을 뿌리거나 붓거나, 이 이름이나 저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갑니다.
베드로는 흥분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장막 셋을 지읍시다. 하나는 모세와 율법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을 위해 짓겠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했습니다. 율법과 명령들을 지키고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하게 합시다. 그리고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습니다. 또 하나는 주님을 위해 짓겠습니다.” 자, 모세는 율법을, 모든 율법을 대표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훈육 교사였습니다. 율법은 형벌이었습니다. 율법은 죄를 더욱 크게 드러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감옥이었습니다. 영이 여러분을 그 감옥에 가두었지만, 율법은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 안에는 구속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주이셨습니다. 자, 모세는 율법을 대표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어떤 사람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그분은 하늘에서 세 증인을 데려오셨습니다.
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공의를 대표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여러분이 하나님께 공의를 요구한다고 감히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죄 가운데 태어나 불법 가운데서 빚어지고, 세상에 나와 거짓을 말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공의를 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공의대로 대우받으면 여러분은 끝장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어떻습니까? 율법은 그 사실을 여러분 앞에 제시할 뿐입니다. “보아라, 너는 체포되었다. 너는 죄를 지었다. 너는 범법하였다. 네가 들어갈 감옥이 열려 있다. 바로 지옥이다. 그리로 들어가라.” 율법이 하는 말은 그것입니다. 그런데 공의에는 율법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그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통로였습니다. 그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는데, 오십인 대장이 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원하노라.” 그러자 그 오십 명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글쎄, 아마 벼락을 맞았겠지.” 왕이 말했습니다. “아, 나는 기적의 시대 같은 것은 믿지 않으니, 아마 벼락이나 무엇인가에 맞았을 거야. 그저 우연한 사고였어. 다른 오십 명을 보내겠다.” 그 엄한 늙은 공의의 선지자는 거기에 서서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원하노라.” 그러자 불이 내려와 다른 오십 명도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니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누가 감히 하나님의 공의를 감당해 보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여러분 중 누가 감히 율법으로 천국에 가 보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십시오.
베드로는 “장막 셋을 지읍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어둠을 보십시오. 우리는 처음부터 멸망할 운명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보응을 요구하고, 보응은 대가를 요구하며, 그 대가는 죽음입니다. 율법은 그것을 더욱 크게 드러내어 우리를 체포하고 감옥에 가둡니다. 인류에게 얼마나 암담한 광경입니까. 그러나 오, 제가 사랑하는 가련하고 쇠약한 친구여,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십시오. 거기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옛날 구약에서 그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잠재적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오, 그분의 옷이 해처럼 빛났고, 하늘에서 한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교파와 모든 소란, 서로 간의 모든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구원은 공의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율법이나 여러분이 행한 것에 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셔서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자, 보아라. 내가 이것을 하늘 앞에 선포하겠다. 아무도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것은 끝났다. 땅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으며, 아무도 공의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선포하겠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아무도 침례교회에 속한다고 구원받을 수 없다. 아무도 감리교회에 속한다고 구원받을 수 없다. 아무도 오순절교회에 속한다고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왜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고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율법은 고칠 수 없고, 공의도 치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구원하시고 고치시며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감리교인이면 그곳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나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오순절교인이면 그곳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나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무엇이든, 어디에 속해 있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로마 가톨릭 신자라 해도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분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도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런 교회가, 그런 사람들의 무리가 필요합니다. 여기 이 계곡에도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고, 세상 구석구석에도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을 덮으시고 사랑을 주셨다는 것을 참된 충성으로 보여 줄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