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그리고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경배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오늘 밤 이 단상에 저의 좋은 친구 한 분이 와 계십니다. 오하이오주 라이마의 제일침례교회에서 오신 리 베일 박사님입니다. 라이마 집회 때 저를 후원해 주신 분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오늘 밤 내려오면서, 잠깐 회중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느냐고 부탁드렸습니다. 앞으로 일 이 분 동안, 아마 라이마 집회에 관한 말씀을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께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정말 기쁩니다. 성령을 받은 또 한 분의 침례교인, 리 베일 박사님입니다. [리 베일 형제님이 많은 사람이 치유받은 일을 간증한다.] 아멘. 베일 형제님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침례교 목사님의 말씀치고는 아주 강력했지요? 베일 형제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형제님께서 오실 수 있을 때면 언제든 다시 방문하시도록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은… 내일 밤에는 「주 예수님의 장사」를 다루겠습니다. 일요일 아침 여섯 시에는 일출 예배가 있습니다. 나머지 예배 일정은 형제님께서 알려 주신 것으로 압니다. 이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말씀을 두려움 없이 다루며 사람들에게 전하는 분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우리가 성경을 펴고, 그 책장을 넘길 때, 복되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열어 깨닫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간구합니다. 아멘.
주님,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기념하는 이 뜻깊은 밤입니다. 오늘 밤 저는 그분의 귀한 입술에서 나온 말씀, 그분의 책에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우리가… 47절과 48절에서 이렇게 읽습니다. 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너희가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는 완전할지니라.
우리는 오늘 밤 ‘완전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밤에 택할 본문으로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 오늘 여러분은 라디오를 들으시면서, 여러 설교와 설교자들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 크고 두려운 날에 관한 말씀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밤 다른 길로 돌아 그 주제에 이르기로 했습니다. 조금 다르게 접근하여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새롭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자 할 때, 복되신 성령께서 그 말씀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만 갖춘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배도, 모든 것이 완전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죄를 짓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범법이 생길 때, 불순종은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그분께서 거룩하시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온전한 거룩함이시므로, 거룩하지 못한 것은 티 하나라도 그분의 임재 안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범법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면, 죄인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기 전에 반드시 그 죄를 처리해야 합니다.
법이 없으면 공의도 없습니다. 그러나 법에는… 아니, 공의에는 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법이 적용되면 공의가 드러납니다. 율법으로는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감옥에 가둔 것일 뿐, 구속할 권능은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보여 주고 우리를 정죄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율법이 하는 일입니다. 정죄를 내리거나 여러분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는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죄를 물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의로우시므로 죄를 물으셔야 했습니다. 죄인이 은혜의 경계를 넘어 법을 어긴 자가 되었기에, 그 죄인에게 죄를 물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모든 법에는 형벌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데 대한 형벌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그 법은 인류에게 죽음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 인류가 이 법의 형벌 아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을 때, 이 죄가 처리되지 않고서는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설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죄를 짓든, 아무리 작은 죄든 큰 죄든, 그 죄를 지은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기 전에 반드시 그 죄 하나하나가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법을 어겼을 때, 그들은 죽음을 당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은 집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온 인류가 사형의 형벌 아래 놓였습니다. 이제 잠시 생각을 가라앉히고 이 큰 그림을 바라보십시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류의 머리인 아담의 범법으로 인해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모두 사형의 형벌 아래 있습니다. 그의 범법으로 인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죄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크신 무한하심과 크신 사랑으로… 법은 죄인을 그의 창조주에게서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소멸되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죄가 처리되지 않는 한 그가 돌아올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죄인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을 믿기는 아주 쉬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완전히, 영원히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이 죄를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므로, 또 그분은 모든 공의의 근원이시기에 의로우실 수밖에 없으므로, 이 범법에 형벌을 내리시는 것 외에는 달리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 형벌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 그날에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광경은 어둡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속성 자체를 살펴보면,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이시면서도 의로우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그저 어르고 달래거나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의 법을 어겨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을 보셨을 때, 주권적인 사랑이 개입하여 길을 마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녀들이 자신의 임재에서 철저히, 완전히 소멸될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분의 법을 어겼고, 그 법의 형벌은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께 속한 자들을 향해 뻗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신성한 사랑이 발휘되면, 주권적인 은혜가 그 사랑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류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미리 아심으로, 그 형벌이 있음에도 에덴동산에서 대신 죽는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곧 죄를 모르는 무죄한 피조물인 어린양을 대신 세우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죄 있는 죄인을 대신하여 그 역할을 감당하고 죽는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그분께 속한 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내내 그들은 어린양과 염소, 양과 황소와 암송아지의 피를 드렸습니다. 대신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안에 있었고, 그분의 생각 속에는 장차 올 참된 실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들은 장차 올 참된 실체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리고 장차 올 참된 실체는 그분의 독생자였습니다. 죽어 간 모든 어린양은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림자는 어떤 실체의 어두운 모습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오직 다가올 갈보리를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여 주는 말씀을 보기 위해 성경 히브리서를 펴 보겠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이 일들을 우리에게 구별하여 설명하려고 말하는 대목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이렇게 읽습니다. 저는 말씀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저는 제 회중 앞에서 말씀을 읽기를 좋아합니다. 심판 때 제가 그들과 함께 서서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에서 가져와 전한다면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도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세워 가는 모습을 봅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교회에 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 보면, 목사님에게 무슨 특이한 행동이나 감정 표현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온 회중이 그 영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조금 감정적이거나, 고개를 홱 움직이거나, 무슨 별난 행동을 하면, 온 교회가 그것을 따라 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들은 그런 감각적인 반응과 사소한 일들에 매달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혼란스러워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말씀 위에 서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오늘입니다. 제가 무슨 변덕스러운 것, 조금 특이한 계시를 가지고 사람들을 잘못 이끌었다는 사실을 안 채 심판대에 서는 일은 결코 원치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 영이나 제 행동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진리를 낳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이 뜻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읽고 싶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결코 죄를 없앨 수 없었다는 것을 압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율법은 감옥일 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했는지 밝혀 주는 훌륭한 형사였지만, 여러분을 건져 낼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율법은 여러분을 전당포에 맡겨 놓았지만, 거기에는 여러분을 찾아내 줄 구속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을 가두어 죄인임을 알게 할 뿐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10장을 읽을 때 주목하십시오.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장차 올 형상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는 그 그림자를 드리우는 형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입니다.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이며 그 형상 그 자체는 [주목하십시오.] 그 일들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계속해서 드려진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완전함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셨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를 가진 율법은 경배하는 자를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놓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도 죄의 티를 조금이라도 가지고는 그분의 형상 안에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증언하시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율법이 그 희생물들로는 나아오는 자를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가리켜 보이는 표지일 뿐이었습니다. 해마다 드리는 이 희생물들은 경배하는 자를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그림자 아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2절입니다.] 그것들을 드리는 일이 중단되지 아니하였겠느냐?
제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저 자신을 완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위해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행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공로를 세울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도, 여러분의 율법주의적인 생각으로도, 여러분 자신의 거룩함으로도, 어떤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그만하고, 도둑질을 그만하고, 담배를 끊고, 영화관에 다니지 않아도, 여러분은 여전히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 의식과 예식, 침례, 교회의 규정, 신조를 읽는 것, 기도문을 외우는 것, 그런 것은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정죄 아래 있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 안에도, 어떤 신조 안에도 길은 없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행하거나 생각해 내더라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조금의 공로도 세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애초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말하며 세상에 왔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택하여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대주교도 그 도시의 가장 밑바닥 술집 단골과 똑같이 죄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속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무죄한 짐승의 생명, 어린양을 택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 아래에서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린양을 제단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명령을 어겼다면 어린양을 가져와 제단 위에 놓고, 그 어린양 위에 손을 얹고 자기 죄를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고 죄가 있음을 알며, 율법이 죽음을 요구한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대신 어린양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 작은 짐승의 목을 베자, 어린양은 작은 발을 버둥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양이 도살되는 것을 보셨다면, 얼마나 가엾게 우는지 아실 것입니다! 가엾은 어린것이 울려고 애쓰는데, 작은 목정맥이 잘려 있습니다. 발을 차고 몸을 떨다가 쭉 뻗고, 다시 떨며 울 때 피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 피가 작은 양털과 경배하는 사람의 손을 적십니다.
경배하는 사람은 깨닫습니다. 자기가 간음을 했든, 거짓말을 했든, 도둑질을 했든, 무슨 죄를 지었든, 악한 생각을 했을 뿐이든, 아주 희미한 죄의 그림자라도 있다면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어도, 본성으로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무죄한 어린양이 자기 대신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것이 가여웠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어린양이 죽고 나면, 그 사람은 어린양의 피가 손에 묻은 채 처음 품고 왔던 욕망을 그대로 마음에 지니고 그 건물을 나섰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린양 안에 있던 생명이… 생명은 피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의 피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런데 어린양의 피 속에 있던 생명은 짐승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작은 혈구들이 터져 생명이 그 짐승에게서 나왔을 때, 경배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경배하는 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피는 죄를 덮어 주었지만 완전히 속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에 품고 왔던,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그대로 지닌 채 건물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하면서 완전한 어린양이 오실 때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번제 헌물을 드리며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피가 쏟아지고 생명이 짐승에게서 떠나갔을 때, 그 생명은 사람에게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는 짐승이고 하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짐승의 생명이 죄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약 이천 년 전에,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도살장으로 가는 양처럼 끌려가셨습니다. 약 천구백 년 전 오늘 오후 세 시에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점도 흠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모든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제 경배하는 자가 믿음으로 이 어린양께 나아올 때… 이 어린양은 다른 종류의 어린양입니다. 앞서 말한 어린양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이 어린양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보이십니까? 이것이 지금 여러분 마음 깊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자기 양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을 아셨고, 그분의 사랑은 내려다보며 구원받을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심으로, 저곳에서 그분을 만날 교회를 점도 주름도 없이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점도 주름도 없는 교회를 요구하셨다면, 그 교회를 그렇게 만들 무언가를 가지고 계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요구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들 길이 없었다면, 그분의 공의와 심판은 그런 요구를 허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재판관들을 통해, 구약 전체를 통해 사람이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의로운 사람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모두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로, 영광의 문으로부터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 자리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로마 교황에게 그 자리를 대신하라고 하셨더라도, 교황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하라고 하셨더라도, 그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다는 존귀한 신부나 주교를 부르셨더라도, 그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거절당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죄 가운데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거짓말하며 세상에 와서,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영광의 문으로부터 한 분이 오셨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육체 안에 감추어진 전능하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친히 오셔서 자신의 피를 드리셨습니다. 그 피는 성관계를 통해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관계는 그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한 처녀를 덮으시고, 친히 창조하신 혈구 하나로부터 그 무죄한 분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저의 구원이나 여러분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가 지닌 공로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그분 안에서 택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확실한 주권적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결코 완전할 수 없고, 여러분도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한 가지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미 받아들여진 완전한 희생물 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얻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경배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주 예수님의 몸 위에 손을 얹고, 죄의 무서움을 느끼고, 조롱하며 뱉은 침을 자기 얼굴에 느끼며, 겟세마네의 신음과 갈보리의 고통을 느끼고,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알아 자기 죄를 올바로 고백할 때입니다. “오, 복되신 주님, 저는 죄가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분은 주님뿐이며,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저를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제 저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제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갈보리에서 그분에게서 나온 생명, 주 예수님의 혈구 안에 감추어져 있던 성령이라 불리는 그 생명이 경배하는 사람에게 돌아와, 그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면 그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심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돌아서 저 작은 십자가상을 보면, 그것이 그분의 몸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몸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몸을 다시 심판하시는 것은 공의에 맞지 않습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몸에 죽음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제가 그 몸 안에 숨을 길만 찾을 수 있다면! 그분께 내려진 심판은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정죄함이 없습니다! 무엇이 오고 무엇이 가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피 아래 감추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몸 안으로 들어갑니까?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한 성령에 의해서라고 말합니다! 그 영은 어떻게 오십니까? 희생물을 통해서입니다. 그 영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피 속에 계셨습니다. 짐승의 영은 왜 돌아올 수 없었습니까? 그것은 짐승이었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영은 인간의 영에 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영은 짐승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의 영도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조상의 영을 받았다면, 그것은 강신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오셨습니다. 존재하는 영 가운데 가장 높은 차원의 영인 자신의 영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성령 침례의 형태로 경배하는 사람에게 돌아와 그를 몸 안으로 데려가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는 안전합니다.
보십시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연약했으므로 효력이 없었습니다. 이제 12절쯤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효력이 없었고 속죄할 수도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러나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교입니까? 아닙니다. 교황입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은… 죄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셔서,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 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준비되셨습니까?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것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마음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이는 그분께서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해마다가 아니고, 부흥회 때마다가 아니고, 집회 때마다가 아니고, 날마다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그분께서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들이 했습니까? 그분께서 하셨습니다!]…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써 그분께서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답입니다. 이것이 갈보리에 대한 답입니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자신의 피를 값으로 치러 우리의 죄를 사셨고, 자신을 믿는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흠 없이, 완전하게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교리 때문에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아닙니다, 형제여.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토록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완전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구백 년 전 오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미리 보신 그 믿는 자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자들을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다시 1절로 돌아가겠습니다.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완전하게’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더라면 그것들을 드리는 일이 중단되지 아니하였겠느냐?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라.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의식’이라는 단어를 올바로 해석하면 ‘욕망’입니다. 사람이, 곧 경배하는 사람이, 올바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분의 고난을 보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며 말합니다. “오, 주 하나님, 제 안에는 속죄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합니다.” 그러면 그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모든 욕망이 그 사람에게서 없어졌으므로, 바로 그 죄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것을 할 수 있었다면 그 희생물들을 드리는 일을 중단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렇게 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완전함에 관해 할 말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거룩해 보이려고 남의 눈을 후벼 파려 합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지금의 우리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얼마 전 오하이오에서 저는 뼈아픈 교훈을 배웠습니다. 오하이오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저는 시골에 묵고 있었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시내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던커 교도들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젊은 여종업원들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더없이 깨끗하고 아주 예의 바르게 우리를 시중들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식사하는 것은 작은 천국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방도 티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교회에 갔습니다. 저는 조금 배가 고팠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설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작은… 그저 보통 미국 식당으로 음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또래의 남자가 한 여자에게 팔을 두른 채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결혼한 남자였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법을 대표하고 우리의 의와 재산을 보호하는 사람이,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어기면서 거기 서 있었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도박이 불법인데, 슬롯머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몸을 돌려 건물 뒤쪽을 보았습니다. 십 대 소년들이 무리 지어 있었고, 기계에서는 로큰롤 음반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쯤 된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여성다운 몸매가 아주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앞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서 있었고, 그 소년들 가운데 하나가 손대서는 안 될 곳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 어떻게 이 일을 참으실 수 있습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크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 오른쪽을 보았습니다. 나이 든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아마 예순이나 일흔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다리 중간쯤밖에 내려오지 않는 저속한 짧은 옷을 입고 있었고, 주름진 늙은 살은 몹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입술에는 화장을 하고, 얼굴 한쪽에는 커다랗게 자줏빛을 칠했습니다. 작은 신발, 샌들을 신고 있었고, 발톱에도 자줏빛을 칠했으며, 손톱에도 자줏빛을 칠했습니다. 머리는 아주 짧게 잘라 곱슬곱슬하게 말고 파랗게 염색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맞은편에는 술에 취한 두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여름이었는데도, 커다란 군용 외투를 걸치고 목에는 회색 목도리를 감았으며,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채 트림을 하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 남자들은 여자에게 잠깐 실례하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걸어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것을 전부 멸하지 않으십니까? 왜 그냥 땅 밑으로 가라앉히지 않으십니까? 제 어린 사라와 리브가가 이런 것들 속에서 자라야 합니까? 하나님, 그토록 거룩하신 분께서 어떻게 이런 것을 보고도 참으시며, 지진을 보내 가라앉히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서서 그 여자를 정죄하다가, 저는 문 뒤로 물러섰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제게 오시는 것을 느끼고 문 뒤로 물러섰습니다.
무언가 빙빙 도는 것이 보였습니다. 환상 속에서 그것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세상 둘레에 진홍색 줄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 세상 가까이 가자, 어린 소년이었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런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것도 죄였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 저를 죽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하나님 사이에 그 완전한 희생물이 서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를 쓰시고 얼굴에는 침이 묻은 채 서 계셨습니다. 제 죄가 하나님을 향해 올라갈 때마다, 그분께서는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으셨습니다. 자동차의 범퍼처럼 말입니다. 저를 죽음으로부터 지켜 주고 계셨습니다. 제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죽이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거룩함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분의 법이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범퍼처럼 막아 줍니다. 그때 저는 그 진홍색 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피가 아직도 이 땅을 붙들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서서 바라보다가, 그분을 자세히 보려고 조금 더 가까이 갔습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여, 그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래를 보니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기록하는 천사가 거기, 그분 곁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책에 기록되었고, 거기에는 제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그 피의 줄이 거두어지면, 죄 많은 제 삶을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긍휼로 저에 대한 심판을 미루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겸손히 그분께 나아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저는 주님의 임재 안에 나아올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지른 일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손으로 자기 옆구리를 만지시더니, 그 책을 집어 ‘사면됨’이라고 쓰시고 등 뒤로 던지셨습니다. 그러자 제 죄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다음 엄한 눈길로 제 얼굴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저 여자를 정죄하려 하는구나.” 그제야 저는 그 뜻을 알았습니다.
환상에서 나온 뒤, 저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 여자는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를 올려다보더니 “아,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는 “저는 일행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인,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잠깐 말씀 좀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앉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인, 바로 몇 분 전에, 저 문 뒤에 서 있다가…”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바라보니 그 여자의 뺨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가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이런 일을 하고 싶으신 것은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그분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으신 것은 아니지요.” 그 여자는 “아니에요, 원하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의 집사였어요. 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남편과 저는 교회 창립 교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어요.” 그 여자는 남편이 죽은 뒤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딸이 둘 있었는데, 자신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고, 딸들이 자기를 떠났으며, 자기 삶을 내던져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여자가 “그곳에서 오신 브래넘 목사님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는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부인, 예수님께서는 두 팔을 벌리시고 부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여기 이 바닥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하시군요. 여기 바닥에 저와 함께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그날 오후 우리는 그 바닥에서, 그곳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옛날식 집회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 여자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옷을 갖춰 입고 집회에 왔으며, 제가 아는 한 오늘 밤까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의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을 향한 여러분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오늘 밤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죄를 지었든, 적게 지었든 많이 지었든, 여러분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조금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희생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다른 길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여러분은 영원토록 완전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출발을 결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 삶을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과, 여러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완전함으로 이끌며, 그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우리가 지금 이 중대한 순간에 서 있는 동안, 이 이야기를 듣고 결단해야 하는 이때에, 저는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전에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 문 가운데 어느 문으로 나가든, 들어오던 때와 똑같은 사람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진 채 나가야 합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는 동안, 이 일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혼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담배를 끊을 수 있게 되면, 술을 끊을 수 있게 되면, 이 일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서는 결코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해낼 수 없습니다. 왜 지금 모습 그대로 나오지 않으십니까? 믿음으로,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피에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구속의 사랑이 여러분의 노래가 될 수 있으며, 죽는 날까지 여러분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왜 대용품을 택하십니까? 왜 여러분의 교회를 통해 들어가려 하십니까? 왜 술을 끊었다거나 거짓말을 그만두었다는 것으로 들어오려 하십니까? 완전함의 길로 오십시오. “이는 그분께서 한 희생으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어떻게 하면 제가 거룩히 구별됩니까?”
예수님의 피 앞에서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그 피에서 나온 생명이 경배하는 사람에게 돌아와, 세상의 것들을 바라는 욕망으로부터 그를 거룩히 구별합니다. 그분께서 그 조금도 부족함 없는 희생으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성령으로, 우리가 모두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여러분이 영을 따라 걸으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것을 탐한다면, 그 희생이 아직 여러분에게 충분히 적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 없습니다.
그것이 갈보리였습니다. 꽃을 파는 곳도 아니고, 이것저것 하는 자그마한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화해한 곳이었습니다. 인류에게 평화와 완전한 안전이 주어진 곳이었습니다. 죄인인 제 친구여, 오늘 밤 저와 함께 갈보리로 가시겠습니까? 믿음으로 이 피를 여러분 자신의 혼에 적용하고, 성령께서 오셔서 그분의 위대한 희생으로 여러분을 거룩히 구별하시게 하시겠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 성금요일 밤에 이제 제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겪으신 큰 고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 뜻과 제 동기, 모든 것을 내어 드리며, 오늘부터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 마음의 결단입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이 뜻깊은 밤에,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런 분이 계십니까? 여기 제 오른편에, 분명히 그쪽에 한 분은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죄가 부끄러우십니까? 자신이 한 일이 부끄러우십니까?
오늘 밤 세상은 영웅을 찾고 있습니다. 육신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세상에도 영웅은 있습니다. 어느 날 스위스에서, 스위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소수의 스위스 사람들이 자기들의 경제를 지키려고 들판에 모였습니다. 밀려오는 대군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강했습니다. 적군은 모두 훈련을 받았고 커다란 창과 방패를 갖추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항복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산을 등지고 몰려 있었습니다. 그때 한 영웅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누군가는 죽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전투에서 진다면… .
그들에게는 싸울 무기라고는 낡은 낫날과 돌과 막대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밀려오는 군대는 벽돌담 같았습니다. 그들이 사로잡힌다면, 사랑스러운 아내들은 능욕당하고, 어린 딸들도 능욕당하며, 아기들은 죽임을 당하고, 머리가 깨질 것이었습니다. 집도 없어지고, 모든 것을 잃을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쉽게 잊히는 이름이지만, 그의 이름은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였습니다. 그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사람들이여,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저 산 바로 너머에 작고 하얀 집이 있습니다. 아내와 세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를 따라오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싸우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적군을 둘러보며 창이 가장 빽빽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고는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거대한 벽돌담 같은 창들의 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유를 위해 길을 열어라! 자유를 위해 길을 열어라!” 하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의 돌진을 막으려고 백 개의 창이 그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는 두 팔을 내밀어 그 창들을 한데 모아 자기 가슴에 끌어안았습니다. 창들은 그를 꿰뚫어 쓰러뜨렸고, 그는 그 창끝에서 죽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몽둥이와 막대기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위대한 영웅적 행동이 적군을 무너뜨렸고, 마침내 스위스 사람들은 그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날 이후 스위스에서는 다시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일어서서 아르놀트 폰 빙켈리트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사람들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그들의 나라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영웅적 행위였습니다. 이 땅에서 그에 견줄 만한 일은 드물고,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일어난 일에 비하면 그것도 작은 일이었습니다. 아담의 족속이 서 있는데, 사방에서 마귀들이 진군해 왔습니다. 선지자들도 실패했고, 율법도 실패했으며, 황소와 어린양의 희생도 실패했고, 인간의 본성도, 모든 것이 실패했습니다. 아담의 작은 족속은 패배한 채 서 있었습니다. 마귀들과 미신들, 질병들과 병환들이 그들을 수적으로 압도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한 분이 앞으로 나서시며 “오늘 내가 아담의 족속을 위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땅으로 오셔서 육체가 되셨습니다. 창들이 모인 한가운데, 가장 어두운 곳을 내려다보셨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어두운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죽음을 자기 가슴에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에서 희생의 값을 치르시고 “자유를 위해 길을 열어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향해 외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남겨 준 이것, 내 피와 내 영을 받아라. 너희가 가진 것으로 싸워라.” 친구여, 오늘 밤 우리는 그것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삶 속에 있는 모든 오랜 원수는 그리스도의 피와 영으로 쫓아낼 수 있으며, 여러분은 그분의 임재 안에 완전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길을 내셨습니다. 그분께 팔을 들고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만큼은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제 저의 잘못을 고백합니다.”라고 하실 분 계십니까? 매일 교회에 다니고, 어쩌면 할 수 있는 한 경건하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성마름과 무관심과 이기심과 습관에 붙들려 승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는, 미지근한 교인이 계십니까? 오늘 밤 피로 그 모든 것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경배하는 자가 한 번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의식하지…” 교인이신 여러분, 손을 드시겠습니까?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참된… 그것이 참으로 마땅히 할 일입니다. 저 뒤에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 계십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제 마음은 참으로 주님 앞에 바르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 가운데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마음으로는 제가 그런 사람임을 느끼지만, 저를 너무도 쉽게 얽어매는 무거운 것들을 아직 벗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 그것들을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손을 드시겠습니까?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은 계십니까?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조용히 기다리는 동안, 이제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이 찬송을 조용히 흥얼거리십시오.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핏줄에서 솟아난 샘, 그분의… 아래 잠긴 죄인들은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씻네… 지금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손을 씻어 털어 버리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손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섯 시쯤, 빌라도도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습니다. 죄책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실 것입니다. 여러 해 뒤 그는 스위스로 올라갔고, 정신을 잃어 웅덩이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스위스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이 그 광경을 보러 옵니다. 그 커다란 물구덩이 바닥에서 푸른 물이 끓어 올라옵니다. 해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씻을 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옛 전설이라고 합니다.
형제여, 여러분이 몇 번이나 침례를 받든, 무엇을 하려고 애쓰든,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여러분의 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이천 년이 지난 뒤에도 그 푸른 물은 여전히 끓어 올라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의로는 여러분의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십시오. 잠시 후에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오늘 아침 그분께서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 계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당장 열두 군단의 천사를 보내 주시게 할 수 있느니라.” 그중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멸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내가 그분께 말씀드리면 열두 군단의 천사가 즉시 내 명령을 따를 것이니라.”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죽음을 대신 겪고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온유하고 겸손하게 거기 서 계셨습니다.
오늘 밤 그 희생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복이 필요한 여러분, 그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위해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이 기도에서 기억되기를 원하는 분들은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죄가 있습니다. 잘못한 일들이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제게 주시는 사면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지금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용기입니다. 그대로 서 계십시오.
손을 들고도 일어설 만큼의 진심은 없다는 말씀입니까? 복음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되었습니까? 아, 그토록 교회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다니요! 그 시각이 곧 닥칠 것입니다. 머지않은 어느 날, 이 근처 어딘가 큰 발전소 가운데 한 곳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어쩌면 다음 부활절 전에, 아니 이번 부활절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 일어서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 죄를 위한 화해 헌물로 드리셨으므로, 이제 저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로, 오직 그분의 은혜만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합니다.” 여러분의 잘못을 고백하시겠습니까?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는 긍휼을 얻습니다.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분께서 보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복되신 주님, 오늘 밤 그에 맞는 수로 세 사람의 회개하는 혼이 서 있습니다.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갈보리를 생각합니다. 한쪽에 있던 사람은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이 그분이라면 기적을 보여 주시오. 우리를 십자가에서 내려 주고 당신 자신도 구원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람은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시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들이 어쩌면… 이 건물 안에서 자기 잘못을 고백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이 세 사람뿐이기를 믿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금도 부족함 없는 길, 십자가의 길로 왔습니다. 주님, 이들을 용서하시고 복 주십시오. 오늘 밤 이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위해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셨던 것처럼, 해가 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이들을 위해 서셨던 것처럼, 이들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 이들에게 복 주시고 주님의 긍휼을 베푸시며 주님의 피로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거룩히 구별하시는 권능으로 이들에게 침례를 주셔서, 주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러면 이들은 이 세상에서도 영원토록도 보존될 것입니다. 자신은 이미 이것을 마주하여 그렇게 행했기에 괜찮다고 여기는 다른 이들에게도 복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에게 이 복을 간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신 분들 가까이에 계신 여러분, 누군가 손을 내밀어 그분들과 악수하며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교제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제 예배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분은 얼마나 되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어디에나 계시며 오늘 밤 여기 계신 그분을 기념하면서, 이제 고요히,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이 찬송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내 구주 죽으신 저 십자가 아래서, 죄 씻음 받으려고 거기서 부르짖었네. 거기서 내 마음에 (그 요구를 충족하고, 그 위에 손을 얹었을 때), 거기서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이제 그분께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부르겠습니다. 내 구주 죽으신 저 십자가 아래서, 죄 씻음 받으려고 거기서 부르짖었네. 거기서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그분의 이름, 귀한 이름에 영광을! 그분의 귀한 이름에 영광을! 거기서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이제 조용히 머리를 숙이십시오. 구원받은 여러분, “오…” 하고 부르십시오. 이제 손을 드십시오. 오, 죄에서 구원하는 귀한 샘이여! 그 안에 들어왔으니 참으로 기쁘네. 거기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깨끗이 지키시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그분의 이름, 귀한 이름에 영광을! 그분의 이름, 귀한 이름에 영광을! 거기서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이제 손을 내리고 머리를 숙이십시오. 방금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전에 누군가 전화해서, 어떤 분이 오늘 밤 몸을 위해 기도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일요일 밤에 열리는 큰 치유 집회에는 다시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 기도에서 기억되기를 원하는 분들은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내 마음에 그 피가 발라졌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영광을……………
이제 머리를 숙이십시오. “그는 너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너희 불법으로 인해 상하였도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너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복되신 아버지, 이제 우리가 겸손히 십자가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은혜와 긍휼이 저를 찾아냈고, 거기서 빛나는 새벽별이 제 주위를 비춥니다. 이 병든 분들이 주님의 임재 안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믿으며, 믿음으로 저기 채찍에 맞은 등을 바라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큰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의 병든 몸을 고치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고백하며 나아옵니다. 서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서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약속하신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밤 주님을 믿는 우리가 함께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을 위해 긍휼을 구합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가 이들의 혼 가장 깊은 곳에 닿아, 무언가 마음 깊이 단단히 자리 잡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며 이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내 자녀야, 내가 저 갈보리에서 네 병을 짊어졌느니라. 이제 네 모든 염려를 내게 맡겨라. 내가 너를 돌보기 때문이니라.” 이들이 치유받아 온전히 건강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이제 그분들이 앉으실 때, 가까이에 계신 분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던 누군가 손을 얹어 주십시오. 성경은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틀쯤 전… 아니, 두어 주 전 일요일에 여기서 치유받은 분 아닙니까? 귀가 들리지 않거나 귀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분 말입니다. 오늘 밤 집회를 즐겁게 함께하고 계시는군요. 이제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좋습니다. 놀랍습니다! 잠깐 일어서 주십시오. 이분이 여기 오셨던 것을 기억하는 분은 얼마나 되십니까? 이분은 기도 줄을 지나가셨고, 다시 단상으로 모셔 왔는데, 주님께서 치유하셔서 건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형제님, 간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간증을 하자면 수십 명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놀라우신 분 아닙니까?
내일 밤 일찍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도 일찍 오십시오. 일요일 오후에도, 또 다시 오실 수 있다면 일요일 밤 치유 집회에도 오십시오. 다시 만날 때까지, 일어서서 마치는 찬송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십시오」를 부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십시오, 슬픔과 고통의 자녀여. 그 이름이 기쁨과 위로를… (이제 뒤로 돌아서 모두와 악수하십시오.) 어디를 가든 그 이름을 가지고 가십시오. 귀한 이름, (뒤로 돌아서 악수하십시오.) 오,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 앞에 절하며,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우리의 여정이 끝날 때, 천국에서 왕들의 왕이신 그분께 왕관을 씌우리.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귀한 이름, 오, 얼마나 달콤한가! 얼마나 달콤한가! 땅의 소망이요 천국의 기쁨.
내일 아침 아홉 시에 WLRP에서 방송되는 네빌 성가대… 사중창단의 방송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스트리커 형제님의 방송은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사십오 분에 나옵니다. 바로 오늘 오후에도 그분을 위해 부활에 관한 테이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의 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저의 좋은 친구이자 형제인,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오신 팔머 형제님께 이 회중을 위해 마침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팔머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