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복되신 하늘 아버지, 이미 이곳에 성령께서 임재해 계신 가운데 저희가 주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목소리가 좋지 않아 목을 아끼며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차분하게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주님의 신성한 인도하심과 성령의 기름부음이 오늘 밤 저희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필요한 대로 각 사람의 마음에 나누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밤 하나님의 좋은 것들로 저희를 먹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밤 저희가 말씀을 나누는 동안, 저희 마음이 멀리 갈보리에 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에덴동산 이래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요구한 모든 값을 남김없이 치르셨습니다. 오늘 저희가 그분의 부활로, 그분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밤 저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치르고 저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저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희 안에 있는 모든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님께로 향하며, 순결하고 섞임 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아버지, 오늘 밤 이곳에 아직 죄 사함을 받아 주님을 알게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겸손히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 용서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에게 위대한 밤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저자는 성령이십니다. 하늘에서 그 책을 가져다가 인들을 풀 사람을 찾았을 때, 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그 인들을 풀거나 그 책을 들여다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손에서 그 책을 받으시고, 인들을 푸시며 말씀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말씀을 열어 주시리라고 믿고 의지합니다. 이제 제가 사도행전 2장을 읽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첫날인 수요일에는 「주 예수님의 재림」을 전했습니다. 목요일 밤에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희생물」을 전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속죄」, 「완전함」을 전했습니다. 어젯밤 말씀을 이해하셨습니까? 완전함,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흠 없고 완전할 수 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밤은 「매장」입니다. 내일은 「부활」입니다. 날들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밤 성경 낭독 본문으로 사도행전 2장 25절부터 26절과 27절까지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입니다.)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즐거워하였으며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오늘 밤 그분께서 무덤에 계신 일을 살펴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본문입니까.
먼저 여러분이 주목하시기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한 글자까지 지키십니다. 오늘 밤 우리는 그 사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데 생각을 집중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하신 것은 무엇이든 진리임을 확신하며 안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사람의 생각이나 신학이라는 흔들리는 모래 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마침내 안식할 곳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입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영원히 진리입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말씀을 거두시며 “그런 뜻이 아니었다”라고 하실 수 없습니다. 저도 말을 할 수 있고 여러분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 말을 거두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아주 다르십니다. 그분께서는 무한하시므로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신 말씀을 거두실 일도, 그 말씀 때문에 사과하실 일도 결코 없습니다. 그 말씀은 언제나 진리로 굳게 섭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이 위대한 날들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 때문에 실제로 자기 아들을 죽이신 일, 예수님에 관한 그 일조차도 어쩌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수천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은 하늘에서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 오, 우리가 그 의미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그분의 책들에, 이 안에 기록된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보면, 사람은 매시간 자신을 살필 것입니다. 신실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읽으면 의로운 사람은 매시간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혼의 닻을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옛날 홍수 이전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을 때, 어쩌면 성경이 기록되기도 전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 성경이 기록되기 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폭풍이 오고 물이 땅을 덮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증거는 조금도 없고 모든 것이 정반대였지만, 노아는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짓고 준비했습니다. 자기 집안과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반드시 일어나야 했습니다.
이제 욥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인 욥기는 아마 창세기가 기록되기 전에 쓰였을 것이며 성경에 포함되었습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썼습니다. 욥은 자기 책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굳게 의지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조금도 두려움 없이 자기 번제물 곁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반대로 흘러가는 듯할 때에도 욥은 굳게 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약속하셨고, 욥은 그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오,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진리로 알고 굳게 의지하는 그 자리에 이를 수만 있다면! 남자와 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분이 하신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달라지고, 얼마나 바로잡히며, 얼마나 잘려 나갈 것들이 있고, 얼마나 큰 기쁨과 권능이 있겠습니까. 상황이 어떻게 보이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욥이 자기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가 완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에게 그를 시험할 허락이 주어졌습니다. 사탄은 “제가 그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은 욥의 목숨까지 빼앗을 뻔했습니다. (그대로 두셨다면 빼앗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하시며 “그에게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빼앗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욥이 그 결정적인 순간의 시험 한가운데 섰을 때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아무리 어두워 보이고, 아무리 실현될 수 없는 일처럼 보여도, 욥이 자기 혼의 닻을 내린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었습니다. 오, 우리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보십시오. 그는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라는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제가 뒤에서 말씀드릴 내용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욥은 자기가 묻힐 곳을 지정했습니다. 욥은 죽었을 때 바로 그곳에 묻혔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에 어긋나는 것들은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날들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심지어 여러 해가 흘러도 아브라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신실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날마다... 정말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욥은 약해지기는커녕 날마다 더 강해졌습니다. 오, 우리에게 얼마나 복된 확신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움츠러들어 세상으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위에 어느 때보다 더 굳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셨다면 그것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있는 것들을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것들이 말씀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었을 때, 욥이 묻힌 곳 가까이에 땅을 사서 사라를 묻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죽었을 때 사라와 함께 묻혔습니다. 그는 그 사람들이 그 땅을 그냥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증인들 앞에서 그 땅을 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침례의 모형입니까! 그 땅이 자기 소유라는 것을 증인들 앞에서 값을 치르고 확실히 한 것입니다. 오, 참된 신자도 그렇게 나아와야 합니다. 구석으로 슬며시 빠져나갈 것이 아니라 증인들 앞에 서서 “저는 주 예수님과 성령과 그분의 위대한 일들의 증인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 악한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에게 그 약속이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죽었을 때 아브라함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저 아래 이집트에서 죽었을 때... 그런데 보십시오. 그는 죽기 전에 선지자인 자기 아들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리 와서 내 상한 엉덩이에 네 손을 얹어라.” 그가 왜 절뚝이게 되었는지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천사가 그의 엉덩이에 손을 대셨고, 그날부터 절뚝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엉덩이에 네 손을 얹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두고 내게 맹세해라. 나를 이곳 이집트에 묻지 않겠다고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오, 그들에게는 말씀이 있었고, 계시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 위에 세워집니다. 교파나 조직, 신조나 교리 위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계시하신 진리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에덴동산의 아벨에게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양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왜 가인처럼 열매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그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며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을 ‘모세’라고 하고,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그 밖의 이름들도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진리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말하느냐?” 오늘 밤 그 질문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놓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말하느냐?” 베드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 비밀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다름 아닌 육신으로 나타나신 여호와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런데 우리 사람들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우리 루터교인들은 믿음으로 걸어서 그것을 얻으려 하고, 우리 감리교인들은 외쳐서 얻으려 하며, 여러분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해서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와 천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가 마음속에 드러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5장 24절... 아니, 요한복음 5장 24절과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여러분에게 어떤 움직임이나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늘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계시되는 특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야곱이 죽었을 때, 아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했고, 그는 거룩한 땅 팔레스타인에 아브라함, 이삭, 사라, 욥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다음 요셉은 선지자였으므로... 그는 이집트에서 형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가 죽을 때 말했습니다. “내 뼈를 이곳에 묻지 말고, 두어라... 언젠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 왜 그랬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굳게 의지했습니다. “그들이 사백 년 동안 이 민족을 섬기겠지만,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리라.” 그는 말씀을 굳게 의지했습니다. 여기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예가 있는지 보십시오. 노예 감독들에게 등을 맞아 살이 짓이겨진 채 지나가던 모든 히브리인은, 자기들의 선지자 요셉의 뼈를 볼 때마다 언젠가는 그곳을 나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뼈가 그곳에 남아 그들이 언젠가는 나갈 것임을 기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한 십오 년이나 십팔 년 전이었습니다. 빌리 폴이 다섯 살쯤 된, 그만큼도 채 안 된 어린아이였을 때였습니다... 어느 부활절 아침 동틀 무렵, 해가 막 고개를 내밀려고 할 때... 아니, 날이 밝기 직전이었습니다. 예배에 가기 전에 아이 엄마의 무덤에 가져갈 꽃을 조금 가지고 갔습니다. 무덤을 향해 걸어가다가 누이동생과 엄마가 묻힌 곳에 이르자, 그 어린아이가 모자를 벗었습니다. 아이는 흐느끼며 울기 시작하더니 “아빠, 엄마가 저 구덩이 속에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다, 얘야. 엄마는 저 구덩이 속에 있지 않아. 엄마는 너와 나보다 백만 배나 더 좋은 곳에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네가 원한다면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 몸이 이 무덤에서 다시 올라올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얘야, 눈을 감아 보렴.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마. 수백 년 전 오늘 아침에 비어 있는 무덤이 하나 있었단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기념이란다. ‘하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굳게 의지합니다.
옛날의 욥처럼, 우리가 “재는 재로, 흙은 흙으로”라는 말을 들을 때면 저는 롱펠로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슬픈 시구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잠자는 혼은 죽은 것이며,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목적지는 아니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은 혼에 관해 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 다른 어딘가로 가는 그것을 신의 현현(theophany)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저는 사도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땅에 있는 이 장막 (곧 거처)이 해체되면, 우리에게는 이미 기다리고 있는 다른 거처가 있으니, 이곳에서 그곳으로 옮겨 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욥, 모든 선지자는 부활이 올 것과 구속자께서 오실 것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에 관해 예언했습니다. 에녹도 그분에 관해 예언했고, 그 사실을 굳게 의지하며 그것으로 자기 간증을 확증했습니다. 이삭, 야곱,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를 굳게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혼이 낙원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젯밤에 살펴보았듯이)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를 덮어 줄 뿐이었으며, 완전한 희생물이 오실 날을 가리켰습니다. 동물 안에 있던 피가 경배하는 사람에게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그런 종류의 희생물을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 안에 있던 생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으며, 돌아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피에서 나온 생명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잠깐 주목하십시오. 옛 구약 시대에 믿고 경배하며 믿음 안에서 죽었던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그 선지자들이 그렇게 하고 팔레스타인에 묻히기를 원한 이유는, 부활이 이집트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팔레스타인에서만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오늘 밤 제가 하는 말도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온갖 이름으로 부릅니다. 사람들이 저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을 아는 일입니다. 저는 죽었고 제 생명은 하나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성령으로 봉인되었으므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르실 때 그날 제가 응답하리라는 것입니다. 저를 그리스도 안에 묻어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날 그분과 함께 데려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갑니까? 고린도전서 12장 13절입니다. “우리가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고, 하나님의 왕국의 동료 시민이 되었느니라.”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 순례자요 나그네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세상 것들을 구하지 않고, 복되신 왕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분께서 영광 가운데 오셔서 이 바다에서 끝없는 저 바다까지 온 영토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마음에 두셨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무오성이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신성의 충만함이 몸으로 거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신성의 전부가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모습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이시며 아들이시며 성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본으로 삼으신 그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을 땅에 두셨습니다. 그분께는 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몸이 있으며, 그 몸은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모세도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이것은 그것이 찍혀 나온 모습일 뿐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 아름다움과 감미로움, 땅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기다리는 훨씬 더 좋은 것을 이곳에 비추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천국에 있는 것의 모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든 것, 의로운 모든 것, 아름다운 모든 것, 나무와 새를 비롯한 모든 것은 천국에 있는 것의 모형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도 모형일 뿐입니다. 그림자일 뿐이며 실체가 아닙니다. 사진의 음화와 같습니다. 사진을 현상하여 우리를 우리가 나온 그 신의 현현으로 되돌아가게 하려면 죽음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다음 부활할 때 우리는 부활한 몸으로 그분과 같은 모습이 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전하는 실제적이고 엄숙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같아지리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모든 권능이 주어져 있었지만, 사탄을 만나셨을 때 그 권능을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교회에 있을 때와 똑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까?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읽으십시오. 성령께서는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영의 양식입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져오셔서 마음속에 놓아 주십니다. 여러분은 감사로 거기에 물을 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삼십 분만 하기로 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리는군요.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두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브래넘 형제님, 이런 일도 일어나야 하고 저런 일도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 시간 안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2편을 읽고 그다음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시간을 살펴보십시오. 그분의 생애 마지막 두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중요한 예언이 성취되었는지, 지금은 그 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외쳤듯이 “그들이 내 발과 내 손을 찔렀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같은 말씀들입니다.
여러분이 주목하시기 바라는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함, 곧 틀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그의 모든 뼈를 지키시매 그것들 중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모형으로 보면 유월절 어린양이 그것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 했고, 어린양에게는 부러진 뼈가 하나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그들은 망치로 다리를 꺾으려고 다가갔습니다. 바로 직전에... 그 결정적인 순간을 보십시오! 망치를 든 사람이 그분의 다리를 내려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몸에서 뼈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조급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토록 완전하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것은 부활이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으므로 여러분을 구원하셔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치유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약속하신 것이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에게는 그 말씀에서 무엇을 빼 버릴 권리가 없습니다. 그저 “그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믿으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래도 믿으십시오.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믿어야 했고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을 주셨지만, 그들은 차지한 땅 한 치 한 치를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약속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 치 한 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마귀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 주 예수님의 다리를 꺾으려 할 때, 그 망치가 다리를 쳐서 부러뜨렸다면 하나님은 거짓되신 분으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의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그 망치로 그 보배로운 몸을 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팔백 년 전에 다윗이 “그의 몸에서 뼈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로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창을 가져다가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고,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내 손과 내 옆구리를 찔렀나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어 가실 때, 오, 얼마나 두려운 시간이었습니까! 저는 그 찬송이 생각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 해 전에 시인이 쓴 그 찬송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갈라지는 바위와 어두워지는 하늘 가운데, 나의 구주께서 머리를 숙이고 죽으셨네. 열린 휘장이 길을 드러냈으니, 천국의 기쁨과 끝없는 낮으로 가는 길이라네. 그분께서 거기 달려 피 흘리며 죽어 가시다가 머리를 숙이셨을 때, 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들을 내려다보기가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 피조물을 구속하기 위해 그런 값을 치러야 하다니, 해는 그 시간에 땅을 내려다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달은 너무도 부끄러워 자기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별들도 땅에 등을 돌렸습니다.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루셔야 했겠습니까.
그분을 조롱하는 그 제사장들을 보십시오. 그분의 얼굴에는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치며 “당신이 선지자라면 누가 당신을 때렸는지 말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그분의 수염을 뽑고 뺨을 때렸으며, 그분께서 자신을 변호해 보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분께서는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내가 당장 내 아버지를 부르리니 그분께서 열두 군단의 천사들을 내게 보내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분 자신의 자녀들이 그분의 피를 달라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곧 아버지 앞에서 그 아버지의 자녀들이 (어둠 속에서) 자기 아버지의 피를 달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분께서는 죽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지 않으시면 자녀들이 멸망할 것이고, 피조물들이 멸망할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 머리를 숙이셨을 때, 이 오래된 땅의 등을 타고 전율이 흘렀습니다. 땅이 신경쇠약으로 쓰러지기라도 했던 모양입니다. 성경은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져, 땅의 온 표면에 어둠이 덮였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졌습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고, 희생물을 놓는 대들이 뒤집혔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참으로 죽으셨기에 해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죽으셨기에 달도 알았습니다. 참으로 죽으셨기에 별들도 알았습니다. 참으로 죽으셨기에 땅도 알았습니다. 참으로 죽으셨기에 자연의 원소들도 알았고, 대기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때부터 그분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씨”로 약속되셨습니다.
이제 그분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십자가를 떠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으로 들어가셨을 때 어디로 가셨습니까? 그분께서는 너무 가난하여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사생아”라는 오명을 안고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의 비웃음과 놀림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조롱받고 거절당하셨습니다. 죽으실 때에는 두 강도 사이에서 사형을 당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묻힐 곳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땅에 오신 것입니다! 조금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여, 그것을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그 로마 군인은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인도 그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겼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온 땅이 인정했습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경이 그분께서 그렇게 죽으시리라고 했으므로 그렇게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래서 살아 계실 때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한 곳에서 다윗이 영감을 받아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며 말씀으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인 다윗은 “내가 나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몸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굳게 의지하실 수 있었다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바로 지금 마음속에 증거를 가진 우리는 얼마나 더 굳게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고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고 확신하십시오. 이제 보십시오. 그분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자기 몸의 세포 하나도 썩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일흔두 시간이면 썩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흘 내내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죽으셨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흘 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사흘 안에 다시 일어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께서 가십니다. 떠나셨을 때 어디로 가셨습니까? 성경은 “그분께서 올라가셨다. 가셔서 감옥에 있는 혼들에게 전파하셨는데, 그들은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으시는 동안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혼, 그분의 영, 그분 자신의 존재인 신의 현현이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을 따라가 봅시다. 오늘 밤 잠깐 그분을 따라가 보시겠습니까? 어디로 가셨는지 봅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사는 영역 바로 아래에는 마귀들의 힘이 미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 바로 위에는 불의한 자들의 혼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사탄의 본거지인 지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바로 위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다음 제단 아래에는 의로운 사람들의 혼들이 있고, 그다음에는 하나님 자신이 계십니다. 하나는 아래로 향하고 하나는 위로 향합니다. 두 영이 이 땅에 있으면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께서 올라가십니다, 저 아래로 말입니다. 그 금요일 오후, 죽으신 뒤 그분께서 [브래넘 형제님이 두드리신다.] 잃어버린 자들이 있는 영역의 문을 두드리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잠깐 그분을 따라갑시다. 문이 열립니다. 여자들도 있었고 남자들도 있었으며, 젊은 여자들도 노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잃어버린 혼들의 감옥이라고 하는 그 끔찍한 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단지 환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죄인이던 시절 수술을 받던 중, 한 번 그곳에 가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곳에서 나왔을 때 저는 서쪽에 서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있었으며, 십자가가 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에 잠긴 곳에서 예수님께서 문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으시는 동안 그들도 말씀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에녹이 말한 그 사람이다. 내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성취되었다. 나는 방금 저 갈보리에서 죽었으며, 내 교회를 값 주고 샀다. 에녹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범했으므로 자비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문은 그들의 눈앞에서 닫혔습니다.
더 아래, 마귀들의 영역으로 내려가십니다! 지옥의 문까지 내려가십니다! 그분께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두드리신다.] 이것은 그분께서 무덤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그분의 몸이 무덤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분께서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이 가는 곳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그 두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옥 문을 두드리십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두드리신다.] 그렇게 하시자 마귀가 나왔습니다. 마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 드디어 네가 왔구나. 내가 아벨을 죽였을 때 분명히 너를 잡았다고 생각했지.”
아시겠습니까? 에덴동산에서 그 씨가 약속되었을 때부터 마귀는 끊임없이 그 씨를 없애려 했습니다. 아벨의 죽음과 셋이 온 일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씨는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것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아벨을 없앴을 때 너를 잡았다고 생각했지. 선지자들을 없앴을 때도 너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요한의 목을 베었을 때는 분명히 너를 잡았다고 확신했지. 그런데 이제 결국 네가 왔구나. 이제 내가 너를 잡았다.” 오, 세상에!
그분께서 “사탄아, 이리 와라!”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제 그분이 주인이십니다. 손을 뻗어 사탄의 옆구리에 있던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움켜 빼앗아 자기 옆구리에 거십니다. “네게 통고한다. 너는 허세를 부릴 만큼 부렸다. 나는 처녀에게서 태어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십자가 위의 내 피는 아직 마르지도 않았으며, 빚은 전부 갚았다! 이제 너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다. 네 권리를 모두 빼앗았다. 그 열쇠들을 내게 내놓아라!”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를 힘껏 걷어차고 문을 쾅 닫으며 “그 안에 있어라! 이제부터는 내가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 물침례 때 그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은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그것들을 빼앗으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 “내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이 주인이십니다.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기 시작하십니다. 부활절이 가까워집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 그런데 또 한 무리가 있습니다. 욥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던 그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분께서 그들을 잊으셨습니까? 죽음이 그들을 소멸시켰습니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낙원을 조금 들여다봅시다. 저 안을 보십시오. 사라와 아브라함이 거기서 거닐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후 [브래넘 형제님이 두드리신다.] 문에서 무슨 소리가 납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문을 열고 말합니다. “여보, 이리 와 봐요. 여기 봐요. 여기 봐요. 그날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나와 함께 서 계셨던 바로 그분이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때 다니엘이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저분은 산에서 깎여 나온 그 반석입니다. 내가 여기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합니다.” 욥이 일어나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분은 내가 살아 계신 줄 안다고 말했던 나의 구속자이십니다. 언젠가 땅 위에 서시리라고 했던 그분이십니다. 내 몸이 한 숟가락의 재밖에 남지 않았을지라도, 지금부터 십오 분 뒤면 나는 다시 그 몸 안에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에스겔이 위로 고개를 내밀어 보고 말합니다. “나는 저 위 공중에서 돌아가는 바퀴 한가운데 있는 바퀴로 바로 그분을 보았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그다음 에녹이 다가옵니다. 에녹은 “나는 그분께서 심판을 집행하시려고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는 구약의 성도들이 피의 속죄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염소와 양의 피가 죄를 없앨 수 없었으므로 하늘의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여자의 씨다. 나는 다윗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처녀에게서 태어난 자다. 내 피가 그 죄를 속죄했다. 너희는 양과 염소의 피 아래에서 기다렸으나, 이제 내 피가 속죄하므로 너희는 자유롭다. 올라가자. 부활절이 거의 다 되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일이 바로 천구백몇 년 전 오늘 밤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주님, 저희가 다시 저희 몸으로 일어나게 되면, 사라와 저는 그곳을 참 좋아했는데, 주님께서 가시는 길에 잠깐 그곳에 들러도 되겠습니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물론이지. 아무 문제 없다. 나는 내 제자들과 사십 일쯤 머물 것이다. 모든 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둘러보아라.” 그 영광스러운 부활절 아침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아침 여기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을 때, 성경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의 흙 속에 잠들어 있던 많은 성도들이 일어나 무덤에서 나왔느니라.” 누구였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욥, 영적으로 드러난 계시를 통해 구속자께서 언젠가 땅 위에 서시리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잠든 자들의 첫 열매입니다. 그들은 도시 안을 거닐었습니다. 젊고, 가득 찬... 아름답고 생명이 넘치는 사라와 아브라함이 보이는 듯합니다. 다시는 늙지 않고, 다시는 병들지 않고, 다시는 배고프지 않은 채 자기들의 몸으로 거닐고 있습니다.
가야바가 거기 서서 말합니다. “그거 아시오? 지난번에 무슨 일이 일어났소. 이 성전이 엉망이 된 것을 좀 보시오. 누군가를 불러 저 휘장을 꿰매야겠소. 저 희생물 상자들이 뒤집힌 것을 보시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그자가 점성술사였소? 마술을 부리는 자였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여보시오! 요세푸스, 이리 와 보시오. 저기 서 있는 젊은 부부는 누구요?”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사라,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았소. 떠나는 게 좋겠소.”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더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잘 보십시오.) 어느 날, 그들이 둘러본 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 모두가 고향 땅을 둘러본 뒤 예수님께서 올라가셨을 때...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꾸며 낸 이야기입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잠시 후 성경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 올라가기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에게는 그분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도 그분과 함께 올라갔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올라가시며 자신의 교회와 합류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음악을 연주하던 무리 가운데서 두 천사가 돌아와 말했습니다.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위를 바라보느냐?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리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돌아가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예수님과 구약의 성도들은 하늘을 가로질러 나아갔습니다. 달을 지나고 해를 지나고 별들을 지났습니다. 그 크고 아름다운 흰 하늘이 눈에 들어왔을 때, 구약의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외쳤습니다. “너희 영존하는 문들아, 들라. 너희는 들릴지어다! 너희 영존하는 문들아, 들라. 너희는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시게 하라!” 모든 천사가 하늘 난간 위로 모여들어 말했습니다.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구약의 성도들이 말했습니다. “전투에 강력하신 군대들의 주시로다! 그분께서는 정복자이셨다!”
천사가 커다란 단추를 누르자 진주 문들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위대하고 능하신 정복자께서 구약의 성도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도시 안을 곧장 지나가셨습니다. 천사들의 악대가 연주하고 천사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능하신 정복자이셨습니다!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옆구리에 걸고 영광의 궁전들을 지나 왕좌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이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들은 제가 언젠가 오리라고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저는 사망과 지옥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형제여,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의 손에는 전투를 치르셨음을 보여 주는 상처 자국이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그분께서는 그 능하신 정복자이십니다! “아버지, 이들이 여기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들아, 여기 내 곁으로 올라와서, 내가 모든 원수를 네 발 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앉아 있어라.” 형제여, 언젠가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되겠습니까! 그분께서는 무덤에 계실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죽어서 그저 누워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래로 가서 계속 정복하고 계셨습니다. 내려가 사탄에게서 열쇠들을 빼앗으셨고, 오늘 밤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오직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까? 자신을 내어 드리며 “하나님, 죄인인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할 만큼 그것에 감사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그 희생물을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까?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까? 잘못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까? 아직 그런 체험을 해 보지 못하셨다면, 지금 이 매장에 관한 말씀 가운데서...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저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적이 없는 분이 계신다면, 우리가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동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거티 자매님, 악보가 있으면 「갈라지는 바위 가운데」를 연주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어느 곡이든 괜찮습니다. 머리를 숙이신 채로, 제가 아주 진지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죄인이든 성도든, 우리가 여러분을 묻는다고 여러분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혼은 어딘가에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두 곳을 다 찾아가셨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떠난다면 그분께서 어디서 여러분을 만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거절했기 때문에 자비의 문이 눈앞에서 닫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구주이실 뿐 아니라 재판관이십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재판관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지금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모시십시오.
짧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오래전에 한 어린아이가 마차에 앉아 있었습니다. 거리 저쪽에서 총소리가 나자 말들이 놀라 달아나더니 절벽으로 떨어지려 했습니다. 젊은 카우보이 한 사람이 달려가, 마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에 말들을 멈추었습니다. 그 안에 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어린아이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아이가 죄를 저질렀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다가 사람을 쏘았습니다. 그는 유죄였고,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네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목을 매다는 형을 선고한다.”
그 젊은이가 “재판관님!”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난간을 뛰어넘어 재판관의 발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며 재판 진행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재판관님, 제 얼굴을 보십시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재판관이 “아니, 젊은이. 모르겠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 해 전에 날뛰며 달아나는 말 때문에 죽을 뻔한 어린아이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재판관이 “그래, 기억하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그 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재판관님, 그때 저를 구해 주셨으니 지금도 구해 주십시오.” 재판관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젊은이, 그날 나는 자네를 구해 준 사람이었네. 오늘은 자네의 재판관일세.” 죄인이여, 오늘 그분은 여러분의 구주이십니다. 내일은 여러분의 재판관이 되실지도 모릅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지금 그것을 생각해 봅시다. 모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분들은 기도하십시오.
오늘 밤 지금 곧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 말입니다.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흘려 주신 피를 의지해 나아가기 원합니다. 교회에 가입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데 지쳤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방금 말씀하신 그 영적 계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제게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체험을 원합니다. 그 영적 계시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속에 계셔서 저를 살리시고, 제 자신보다도 그리스도가 제게 더 생생한 실재가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 체험을 원합니다. 제가 손을 들 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기도받기를 원하는 분은 지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에 계신 부인,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손을 드십시오. 자, 손을 계속 들어 올리십시오.
어찌 부끄러워하십니까? 친구여, 이런 것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아, 브래넘 형제님, 설교자들이 여러 해 동안 설교해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압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이 설교를 그칠 날이 옵니다. 상황을 보니 바로 머지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설교를 들을 때가 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설교가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아, 저는 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죽음은 사람이나 나이나 능력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 손을 들고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며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이 다른 분들과 함께 손을 들고 “지금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원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믿음에서 물러난 분 가운데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내일이 제게 새로운 부활이 되도록 오늘 밤 그리스도께 돌아오기 원합니다”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제 나아오기 원합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저는 믿음에서 물러났지만...”이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부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영접하겠습니다. 오늘 밤 그분을 영접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밤 그분을 영접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옛 삶이 끝나고 이것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부활이 되도록 말입니다.
이 부인이 고백하고 서기 위해 제단 앞으로 나오고 계십니다. 다른 분도 고백하며 이분과 함께 이곳으로 나와 자리를 잡으시겠습니까? 일어나 여러분도 제단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제단은 열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로 나오십시오. 여기 서서 기도하기 원하시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나오십시오. 나오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 믿음으로 지금 나오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믿음에서 물러난 사람입니까? 마음이 식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졌습니까? 지금 그분과 함께 새롭게 일어나 삶을 다시 시작하기 원합니까?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아 집에서 다투어 온 남편과 아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나와서 하나님과 서로 앞에서 그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새 가정을 시작하여 부활절이 여러분에게 참된 부활절이 되게 하십시오.
한 번도, 가정에서 기도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 그저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할 뿐,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기도하지 않는 분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청소년 비행과 지금 겪는 이런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가정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 밤 나와서 새로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저는 여러분의 목회자입니다. 그날에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하늘 아버지, 오늘 밤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하고 거룩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이 회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저희가 겸손히 주님의 왕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밤 그 위대한 매장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가만히 누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혼은 곧장 그 영역들로 들어가, 하도록 정해져 있던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그분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것을 정복하시며 위의 영역들을 지나가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저희가 의롭게 되도록 부활절 아침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음을 저희가 봅니다. 주님, 오늘 밤 손을 든 사람들을 주님 앞에서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그들의 결단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되게 하소서. 오늘 밤 약속의 인이신 성령으로 굳게 봉인되게 하소서. 아버지, 허락하여 주소서. 오늘 밤 이 메시지와 함께 그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들에게 복이 되게 하시고, 주님, 이 말씀을 집으로 가져가 마음속 깊이 새기는 이들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아버지,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