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매일 밤 빠짐없이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린 아들 조셉이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 저도 아이에게서 옮았습니다. 그리고 톰스 형제님과 남아프리카의 여러분, 이 작은 색동옷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이면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조셉에게 입히겠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분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삶의 참으로 뜻깊은 순간입니다. 최근에 저는 해외 방문을 비롯한 여러 일로 마음에 많은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작은 일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전, 우리가 저녁을 먹기 전에 한 자매님이 이리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요즘 피곤하고 지쳐 보이셔서 제가 조금이나마 용기를 드리려고 왔어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12년 전, 일리노이주 밴데일리아에서 제 아들은 딱 3분의 1이… 그러니까 정신 기능의 3분의 1이 상실된 상태였어요. 뇌세포인지 무엇인지가 그랬는데, 그것 때문에 간질에 걸려 하루에 스물다섯 번까지 발작을 했어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작은 천을 놓고 기도해 주시고 그걸 아이에게 얹어 주셨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발작을 하지 않았어요.” 그 자매님이 여기 어딘가 계십니다. 사람들이 보실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근처에 앉아 계신데, 조금 전에 저와 악수를 하셨습니다. 여기, 이쪽 뒤에 계시군요. 예. 자매님, 잠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드님이 치유받은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자매님이 이리로 와서 저와 악수를 하셨습니다. 몇 년 전, 한 5년 전만 해도 알코올 중독자였던 분인데, 제가 저 밖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그분이 다가와 악수를 하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신 일을 두고 저와 다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도 다녔고, 여러 치료법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집회에 오게 하셨습니다. 그곳 단상에서 자신의 죄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로젤라, 여기 어디 계십니까? 로비에 계셨는데요. 여기 계시는군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에, 로젤라, 당신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계시겠지만, 어떤 여자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무용수였던 것 같은데, 그분 역시 마약과 알코…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로젤라가 치유받던 바로 그날 밤에 그분도 발코니석에서, 아니면 단상에서 지목되어 불렸습니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헬렌, R-o-m-i-g, 로미그입니다. 제가 이걸 보니 지금 이 건물에 계신 것 같습니다. 헬렌,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저 뒤에 계십니다. 마약 중독자이자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이 일을 생각하면 우리도 ‘놀라운 은혜’를 부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기 보니 그분도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두 분 모두 나가서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도시의 빈민가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 곧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리로 올라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 놀라운 은혜입니다.
잠깐… 이 시간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의 업무가 끝났고, 제가 알기로는 대집회에서 그 부분은 마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내내 그렇게 해 오셨지만, 저는 이 대집회가 그리스도인들의 대집회라는 사실이 그저 너무 기쁩니다. “사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이런 특권을 누리니 기쁩니다. 자, 너무 오래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어쩌면… 여러분의 시간을 좀 너무 오래 붙잡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읽고 싶은 것은… 지난 몇 시간 동안 짧은 마무리 메시지가 마음에 있었습니다. 저기 담당하시는 분… 음향 기사님, 제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조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디서나 제 말이 잘 들리십니까? 그렇다면 참 좋습니다. 이쪽 뒤에서도요? 좋습니다. 목에 감기가 조금… 아니,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좀 쉬었습니다. 후두염인데,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말하겠습니다.
자, 신명기 32장 11절, 그 11절의 첫 두 줄을 읽어서 앞으로 잠깐 말씀드릴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 그 구절을 찾으시는 동안, 순복음 그리스도인 실업인 연합회에 대한 제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 훌륭한 단체입니다. 여기 계신 실업인 가운데 아직 가입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저는 교파의 장벽이 없는 이 훌륭한 교제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 외에 다른 법이 없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신조가 없으며, 성경 외에 다른 책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는 수영을 하러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는 늘 가던 물웅덩이로 달려가며 서로 겨뤘습니다. 물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벌을 받아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던지는 진흙을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대개 제일 먼저 들어갔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옷을 적게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멜빵바지 하나만 입었는데, 거기에 여물 묶는 노끈을 감아 놓고 못 하나를 단추 대신 썼습니다. 여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감사합니다. 저는 끈 하나만 잡아당기면 곧바로 물에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우리에게는 신호가 있었습니다. 그때… 물이 차가우면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맨 먼저 들어간 아이가 말입니다. “들어올 때 조심해. 물이 너무 차가워.” 물이 좋으면 손가락 두 개를 들었습니다. 괜찮으니 뛰어들라는 뜻이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괜찮습니다. 뛰어듭시다. 여기는 좋습니다. 물도 따뜻하고 준비가 됐습니다. 자, 주님께서 여기 계신 형제님 한 분 한 분, 목회자들과 실업인들, 그리고 올해 여러분의 사업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주님의 일을 하러 나서는 분들에게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들이 나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내년에 형제 사랑의 도시에서 대집회가 열릴 때에는 우리 모두 갑절의 몫을 가지고 그곳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진지하게 말씀을 읽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이 신명기 32장에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고… 오늘 밤 저는 ‘둥지의 독수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큰 주제인데, 하나님께서 잘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야외 생활을 좋아하는 저는 하나님께서 왜 늘 독수리를 자신의 상속 백성에 비유하셨는지 자주 생각했습니다. 제 첫 번째 성경은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자연이 그저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자연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큰 새들과, 그 새들이 사는 높은 산에서 겪은 일들… 저는 성경을 읽고, 소를 몰고, 여러 해 동안 야생 동물 보호원으로 일하면서도, 심지어 회심한 뒤에도 그런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야외에 나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는지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밤 이야기하려는 이 큰 독수리를 저는 하나님의 상속 백성에 비유하려고 합니다. 제가 읽어 보니 팔레스타인에만도 마흔 종류의 독수리가 있다고 합니다. 독수리… 그 말은 ‘부리로 먹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보여 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 자신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먹이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말씀으로 어린 독수리들을 먹이시는 독수리이십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또한 독수리는 젊음을 새롭게 하는 것에 비유되었습니다. 성경은 독수리가… 독수리가 자기 젊음을 새롭게 하는 것에 관해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독수리가 일정한 때마다 젊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젊어진다고 믿어 왔습니다. 독수리는 수명이 깁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젊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너무 좋아 젊은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부흥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독수리들이 조금 나이가 들었을지는 몰라도, 부흥이 오면 모두 다시 젊어집니다. 젊어진 기분이 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것을 알 때, 곧 주님께서 가까이 임재하신다는 것을 알 때면, 저는 제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습니다.
또 독수리에게는 큰 날개가 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개들은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약과 구약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도 하늘 높이 솟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의 눈에 관한 말을 자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독수리에 비하면 풋내기입니다. 독수리가 보는 거리의 절반도 보지 못합니다. 독수리는 공중으로 아주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특별한 몸의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새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매가 감히 독수리를 따라가려 한다면 공중에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지자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들이 올라가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가려 하는데 더 멀리 볼 눈이 없다면, 더 높이 올라간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높이 데려가실 때에는 우리가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 주실 눈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그 말이 좋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너무 높이 올라가려 했던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려 합니다. 물론 날려고 하지 않고 뛰어오르려고 하다가 물가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높이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손가락질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은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도 새이고 닭도 새입니다. 하지만 닭은 이 하늘의 세계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독수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서부에서, 또 북쪽 숲에서 새 가운데 위대한 걸작인 이 새를 얼마나 많이 지켜보았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막 잡혀 온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일찍이 볼 기회가 있었던 광경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광경 중 하나였습니다. 누군가가 하늘을 나는 이 큰 새를 그물로 잡아 우리 안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 가엾은 새는 도무지 그곳에 맞지 않았습니다. 온 힘을 다해 큰 쇠창살을 향해 뛰어오르며 날개를 퍼덕였지만, 결국 다시 뒤로 떨어져 등을 땅에 대고 말았습니다. 그 가엾은 독수리가 쇠창살에 너무 많이 몸을 부딪친 나머지 날개의 깃털은 모두 빠져 버렸고, 머리와 얼굴은 멍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지켜보는 동안 독수리는 다시 당당히 뒤로 걸어갔다가 온 힘을 다해 쇠창살에 몸을 던졌지만, 또다시 뒤로 튕겨 나갈 뿐이었습니다. 바닥에 누운 채 지친 눈으로 하늘을 훑어보는 독수리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광경인가. 이 새는 여기 땅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새가 아니라 하늘의 새인데. 이 세상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과 근심을 훨씬 벗어난, 저 푸른 하늘에서 살도록 온몸이 만들어졌는데. 땅에서 태어났어도 하늘로 솟아오르도록 만들어진 저런 새가, 다시는 하늘로 솟아오를 수 없도록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다니.’
독수리는 거기 누워, 자기가 날아오르도록 지음받고 태어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교활함 때문에 평생 우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제 여러분, 그 광경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 시카고와 다른 큰 도시들의 거리에 나가 보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태어나고 지음받은 사람들이 죄와 습관과 이 세상 근심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의 처지는 독수리보다 훨씬 더 가슴 아픕니다. 사람은 속박당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아들이 자유롭게 한 자는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렇게 속박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제 마음에 느껴지는 것과, 사람들을 가두어 그들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표현하려면 몇 시간이나 걸릴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니 사탄의 종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안에 불멸의 혼과 하나님을 갈망하는 목마름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복되고 거룩한 목마름을 위스키와 술, 담배, 흥청거리는 즐거움과 사치로 채우려 합니다. 이 세상 것들로 그 복되고 거룩한 목마름을 해소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녀들은 그저 갇힌 채,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참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진해서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삶을 살펴보고 그 몸의 구조를 알아보며, 우리의 상태를 독수리의 상태에 맞추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몇 마디 말이 어쩌면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그 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제가 전하려는 뜻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독수리는 이 땅에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한 가장 높은 바위에 둥지를 틉니다. 독수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모형입니다. 여러분은 골짜기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산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틉니다. 흔히 돌아다니는 적들이 새끼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갈보리의 반석 안에, 원수의 울부짖음이 미치지 못하는 훨씬 높은 곳에 숨겨 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복된 특권입니까. 생각할 때마다, 우리에게 이 위대한 특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그리고 새끼들이 태어나고 알에서 깨어나면, 어미가 얼마나 정성껏 돌보는지 모릅니다. 새끼들을 기릅니다. 어미는 바위의 아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코요테는 그 둥지에 도저히 올라올 수 없습니다. 어미는 코요테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그분께 맡기기만 하면, 그분은 마귀의 울부짖음도, 온갖 위스키와 나이트클럽도 우리에게 손댈 수 없는 곳에 우리를 두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요란한 소리와 온갖 허세, 세속적인 뒤섞임과 정신을 쏙 빼놓는 기상천외한 것들에서 멀리 벗어난 곳입니다. 하나님의 그 선한 선물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한밤중처럼 생기를 잃습니다. 어미는 위로 올라가 바위 안쪽에 둥지를 단단히 자리 잡게 하고 새끼들을 먹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새끼들을 닭처럼 두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아시다시피 닭도 독수리와 똑같이 새입니다. 하지만 땅에 매인 생물입니다. 조금 퍼덕이며 날 수는 있어도 발을 땅에서 떼는 것조차 겨우 합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는 이른바 기독교라는 것의 일부가 생각납니다. 딱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만큼만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적부에 제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늘의 영역으로 날아올라 본 적이 있습니까?
닭은 독수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미 독수리는 진짜 어미이기 때문에 굳게 결심합니다. 자기 새끼들이 닭처럼 걸어 다니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새끼들의 깃털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 지켜봅니다. 새끼들을 보살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제 자리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체된 채로 두시지 않아서 참으로 기쁩니다. 그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에 이어 또 복을 주십니다. 옛 켄터키 침례교회에서 우리가 그 유명한 시인의 노래를 부르곤 했을 때, 저는 그 노래를 부르며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기쁨의 물결이 바다의 큰 파도처럼 내 혼 위로 밀려오네.” 제가 처음으로 넓은 물가에 서 본 곳은 약 25년 전 바로 여기 레이크쇼어 드라이브였습니다. 거기서 큰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다시 나가고, 또다시 밀려왔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니, 그 선지자가… 아니, 시인이 “기쁨의 물결이 바다의 큰 파도처럼 내 혼 위로 밀려오네”라고 썼을 때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밀려왔다 나가고, 밀려왔다 나가며, 끊임없이 복을 주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교회, 곧 자기 자녀들에게 변화를 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는 물론 주로 야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야곱 앞에는 다른 신이 없었고, 그는 다른 신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라고 말했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들이 충분히 자랐다고 생각할 때가 오면, 둥지를 휘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교회에서 똑같이 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완전히 안주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둥지를 휘저으십니다. 그분은 마르틴 루터를 가톨릭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 굳어져 버리자 둥지를 휘저으시고 웨슬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고는 웨슬리가 너무 굳어져 버리자 둥지를 휘저으시고 오순절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또다시 둥지를 휘저을 때입니다. 우리가 너무 안주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 어미 독수리는 어린 독수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둥지로 날아듭니다. 어미가 들어오면… 아, 제가 얼마나 많이 누워서 그것들을 지켜보며 아기처럼 울었는지 모릅니다. 말을 어딘가에 매어 두고 쌍안경을 그것들에게 맞춘 채 지켜보았습니다. 어미는 둥지로 날아들어 그 큰 날개로 새끼들에게 세찬 바람을 일으킵니다. 새끼들에게서 헐거운 깃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 냅니다. 새끼들에게 처음으로 혼자 나는 법을 가르쳐 주려는 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혼자 날 때에는 헐거운 깃털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미가 날아들자 새끼들은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맞습니다. 새끼들은 그런 바람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바위틈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독수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변화를 주십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주십니다. 교회가 반석의 틈에서 태어났지만, 우리는 거기에 만족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둥지를 휘저으십니다. 오순절 날 하셨던 것처럼 급하고 강력한 바람과 함께 들어오시면, 낡고 세속적인 헐거운 깃털이 모두 날아가 버립니다. 그분은 오순절 부흥을 보내어 둥지를 흔들어 놓으십니다. 그러고 나서 어미는 특별한 울음소리를 냅니다. 아, 어린 독수리들은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때가 오는 것을 보면 독수리들은 복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참 교회는 흔들리는 때가 오는 것을 보면 무언가를 맞을 준비를 합니다.
그러면 어미가 날개를 활짝 폅니다. 그 어린 독수리들은 어찌 된 일인지 본능적으로 압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일어나 어미에게 가서 젖을 먹을 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어린 독수리들은 작은 발을 어미의 날개에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작은 부리로 크고 튼튼한 깃털을 어떻게 붙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도 강력한 흔들림이 그곳을 덮칠 때, 하나님의 말씀, 곧 구출하시는 그분의 크고 튼튼한 날개들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약속을 굳게 붙드는 법을 압니다. 그들은 붙드는 법을 압니다. 무언가가 그저 그들에게 알려 줍니다. 세상은 “광신주의다”라고 할지 몰라도, 그들은 날개를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들의 본성이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압니다.
어미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돌려 날개 위에 올라탄 자기 새끼들을 바라볼 때… 아,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가 말씀 위에서 제자리를 잡고 그분이 하신 모든 약속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시면 어떻게 하실지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시겠습니까. 그들을 참된 사랑으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몸의 모든 지체가 자기에게 정해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스도인 실업인들은 자기 자리에, 사역자는 자기 자리에, 선지자는 자기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미는 특별한 울음소리를 냅니다. 자기의 어린 독수리들이 제자리를 알고 모두 준비를 마쳤으니, 가슴이 벅차고 기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한 번 울고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아,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말씀 위에 세우시고, 정해진 시간이 이르러 우리가 그 위대한 점 있는 새, 하나님의 위대한 독수리, 위대한 성령의 날개를 타고 날아갈 때는 얼마나 놀라운 날이겠습니까. 말씀에 단단히 닻을 내린 채 말입니다.
그다음에 어미가 하는 일은 아주 독특합니다. 어린 독수리들을 태우고 올라갈 수 있는 한 가장 높이 올라가는데, 새끼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작은 부리로 깃털을 꼭 물고 있어서 도저히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교회를 그렇게 데려가십니다. 여러분이 정말 말씀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면 불평하지 않고 그저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끼들은 그저 꼭 붙들고 있습니다. 어미는 솟아오르면서 새끼들을 전혀 가 보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갑니다. 계속해서 밝고 푸른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곳에 이르면 어미는 바로 그 공중 한가운데에서 새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털어 떨어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그렇게 하십니다. 털어 떨어뜨리십니다. 스스로 날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미가 새끼들을 털어 떨어뜨리고도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나가서 주위를 날며 새끼들을 지켜봅니다. 그 작은 것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거기서 처음으로 작은 날개들을 퍼덕입니다. 아, 공중제비를 돌고 별짓을 다 하지만, 어쨌든 날개를 퍼덕입니다. 어떻게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날개를 퍼덕여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어린 독수리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그저 날아 내려와 곧장 새끼 아래로 쏜살같이 들어가 새끼를 받아 다시 은혜 안으로 데려옵니다. 그분이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 성령이십니다. 그러니 광신주의나 걷잡을 수 없는 열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어머니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어미는 그렇게 원을 그리며 납니다. 얼마나 빠른지 아십니까? 한번 보셔야 합니다. 더구나 어미는 얼마든지 새끼들을 받아 올릴 수 있습니다. 작은 새끼가 기진맥진해서 계속 뒤집히고 뒤집히고 또 뒤집혀 숨도 못 쉴 때면, 한 발로 한 마리, 다른 발로 또 한 마리를 붙잡을 수 있고, 입으로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아, 어린 독수리들은 참으로 걱정이 없습니다. 자기 능력을 믿고 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는 어미의 존재와 능력을 믿고 쉬기 때문입니다. 아, 그분이 지켜보고 계시고, 그것이 그분의 말씀이며, 그분이 여러분을 여기까지 실어 오셨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새끼들은 저 위에서 옛날식 오순절의 기쁨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날개를 퍼덕이며 어미처럼 해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미는 자기 새끼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봅니다. 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새끼들이 신나게 놀고 나서 어미가 그 훈련을 마칠 때, 새끼들이 좀 낮게 내려오면 어미가 달려가 큰 날개를 펼칩니다. 모두가 기뻐합니다. 대집회가 끝난 것입니다. 새끼들은 다시 어미의 날개를 작은 부리로 물고 내려앉아 그저 말합니다. “아, 엄마, 정말 즐거웠어요.” 그러면 어미는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새끼들을 곧장 데려갑니다. 넓고 푸른 풀밭에 내려놓습니다. 새끼들은 그런 곳에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뛰어내려 또 한바탕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거기서 아무 걱정 없이 쪼아 먹습니다. 그 일을 마친 어미는 저 멀리 아주 높은 봉우리로 날아가 거기 앉아서 어린 독수리들을 지켜봅니다. 아, 그 근처에 얼씬거리는 코요테는 화를 당할 것입니다. 매도 감히 무슨 짓을 하려 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미가 자기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하십니다.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후에, 그분은 영광의 거대한 성벽 위로 올라가셨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세상이 무엇을 말하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세상에는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요즘 알아보니 유명한 희극인들 가운데는, 이름을 댈 수도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아서 고드프리,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계속 활동하려면 정신과 의사가 서너 명씩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형제님, 그들이 그런 것을 잊고 그 더러운 농담을 옛날식의 좋은 하나님 찬양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제가 그들을 지켜보고 보호해 주실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면 정신과 의사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안합니까. 새끼들은 그저 마음이 편안합니다. 또 한 번 기쁨의 잔치를 벌이며, 자라나 있는 줄도 몰랐던 푸른 풀을 쪼아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가지고 계신 것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이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한 번만 와서 그 날개를 타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어미는 새끼들을 지켜봅니다. 새끼들은 어미의 유산이며, 어미가 사랑하는 것들입니다. 어미가 목숨을 내줄 대상입니다. 어미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폭풍이 몰려오면… 얼마 전 저는 콜로라도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와 처음으로 날게 하는 것, 시험 비행을 시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새끼들을 골짜기로 데려온 어미는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북쪽에서 폭풍이 밀려왔고, 하늘이 약간 푸르스름한 초록빛으로 변했습니다. 포드 형제님은 산 너머 하늘이 그렇게 어두워지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바람이 골짜기를 휩쓸고 내려옵니다. 어미는 바람이 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래 새끼들을 지켜보다가, 큰 울음소리를 내고 그 바위 꼭대기에서 골짜기로 내려왔습니다. 큰 날개를 활짝 펴자 어린 독수리들이 모두 뛰어올랐습니다. 어미가 큰 날개를 펼쳤을 때, 바람이 시속 거의 40마일이나 그 이상으로 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미는 그 바람을 뚫고 새끼들을 데리고 곧장 바위 안, 안전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거기 누워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예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사셨습니다. 그들을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에 두셔서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성벽 위로 올라가 그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언젠가 주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날개를 활짝 펴시고, 땅에 닥칠 큰 환난과 여러 일들로부터 그들을 데리고 저 위 하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독수리 이야기를 하니,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농부는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려 했습니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암탉에게 한 번에 알 몇 개를 품게 하는지 알았습니다. 여기 계신 여자들 가운데 한 배에 알 몇 개를 품겨야 하는지 아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열다섯 개입니다. 제가 답을 말씀드렸군요. 하하하. 한 배에 열다섯 개입니다.
이 농부는 독수리 알 하나를 구했습니다. 한 배를 채우는 데 알 하나가 모자랐기 때문에 독수리 알을 암탉 밑에 넣었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그 새끼는 다른 모든 병아리들이 보기에 아주 우습게 생긴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 새끼는 병아리들이 무슨 말을 지저귀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병아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제 뜻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병아리들은 그 새끼가 별난 녀석이라고 하며 모두 괴롭혔습니다. 어쩌면 정말 별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독수리였습니다. 병아리들이 작은 날개를 쭉 펴고 퍼덕거리면 독수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병아리들은 그저 모두 자기들 생긴 대로 했습니다. 어미 닭이 꼬꼬댁 소리를 내면 병아리들은 그 소리를 하나하나 다 알아듣고 모두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그 꼬꼬댁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꼬꼬댁 소리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기를 바랍니다. 독수리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말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을 작은 해수욕장이나 이런저런 곳으로 데려가 옷을 벗겨 놓고 거기 앉혀 두는 그런 어미 닭들입니다… 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당구장에 있는 여러분도, 사람들이 여러분을 거기로 데려가 우정의 술 한 잔을 주고 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참으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는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아, 우리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꼬꼬댁 소리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독수리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아십니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여러분을 아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여러분을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 어미 닭은 작은 벌레 같은 것을 발견할 때마다 병아리들을 꼬꼬댁 소리로 불렀고, 병아리들은 모두 달려왔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뒤따라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우습게 생긴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미 닭이 농장 마당에서 먹이를 먹고 있을 때, 마침 어미 독수리가 그 위를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날아가며 그 큰 그림자가 농장 마당을 훑고 지나갈 때,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자기 새끼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을 아십니다. 어미가 새끼를 향해 울자, 그 작은 새끼가 고개를 돌려 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내 그렇게 위를 바라보았어야 했습니다. 새끼가 올려다보자 어미가 다시 소리를 내며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닭이 아니야. 너는 내 새끼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가지고 계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 실업인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아십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의 복음을 들으면 그 음성을 압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아, 저도 커다란 교파의 우리를 뒤에 둔 채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부에서도 아니고, 장로에게서도 아니고, 집사회의나 감독에게서도 아닌, 하늘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아, 그 소리가 제 마음을 얼마나 벅차게 했는지 모릅니다. 어미가 말했습니다. “너는 닭이 아니야. 네가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니야. 너는 내 새끼야.” 새끼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 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에도, 어떤 낡은 교파의 닭장에서 오랫동안 걸어 다니던 어린 독수리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여러분을 불러 “아들아,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이 그 외침이었습니다. 어미는 “우선 크게 한 번 뛰어올라 날개를 퍼덕여 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새끼는 처음으로 뛰어올라 날개를 퍼덕였고, 이제 더는 땅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농장 마당의 말뚝 위, 바로 오순절 교단 한가운데 앉았기 때문입니다. 어미가 말했습니다. “얘야, 그보다 더 높이 올라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데려갈 수 없어.” 그리고 “한 번만 더 뛰어오르렴. 그러면 내가 내 날개에 너를 업어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파의 모든 장벽과 온갖 주의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뛰어오르는 것입니다. 모든 삶을, 모든 줄을 풀어 놓고 자유롭게 뛰어오르십시오. 그분이 위대한 점 있는 새의 날개에 여러분을 실어 가실 것입니다. 이런 집회, 이런 때, 이런 청중 가운데서 우리는 그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권능을 느끼고, 그분이 말씀으로 우리 아래에 손을 뻗어 우리를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자질구레한 세상 근심과 온갖 일에서 벗어나게 실어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시며,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둥지를 휘저을 때는 이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더 뛰어올라야 합니다. 농장 마당의 말뚝까지는 왔지만, 자유롭게 벗어나야 처음으로 혼자 날기 위해 그분의 날개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그 위대한 마지막 날이 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뛰어올라 날개를 퍼덕일 줄 아는 사람들,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들… 언젠가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 하늘의 위대한 독수리가 영광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위대한 권능, 곧 성령을 펼치실 것이며, 그 권능에 자석처럼 끌리는 사람들은 영원히, 영원토록 그 날개를 타고 갈 것입니다.
얼마 전 여기 인디애나주 게리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저를 공장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칠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작은 금속 부스러기들을 바닥으로 쓸어 냈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제 잠깐 이것 좀 보십시오.” 그가 단추를 누르자 저 뒤 어딘가에서 커다란 자석이 나왔습니다. 자석이 내려와 그 큰 부스러기 더미를 지나가자 부스러기들이 그 큰 자석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자석은 저쪽으로 가서 자력을 끊었고, 부스러기들은… 큰 주조소의 커다란 용해 솥 안으로 떨어져 다시 주조되었습니다. 저는 잠시 거기 서 있었는데, 가슴이 뛰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무슨 일입니까?” 제가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그러셨겠군요.” 제가 그 사람을 놀라게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 멀리 어딘가에도 자석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저 부스러기들이 모두 따라가지는 않았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중에는 알루미늄도 있어서 자석에 붙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저 쇳조각은 왜 가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바닥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 형제님, 하늘의 위대한 독수리이신 주 예수님께서 언젠가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에 자석처럼 끌리는 사람들만 그 날개를 타고 갈 것입니다. 볼트로 고정된 신조들과 교파들, 알루미늄 부스러기들처럼 가벼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가벼운 포부들… 저는 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높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포부가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높은 부르심을 향해 푯대를 향해 밀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어느 날 저 산에서 엘크 사슴을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철이 일러서 사슴들을 아래로 몰아내릴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목 한계선 근처까지 아주 높이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곳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한 제 주위 70마일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목장 주인 제프리스 씨는 다른 길을 따라 다른 쪽으로 갔고, 우리는 나흘쯤 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말을 매어 두고, 여러 해 전에 소를 몰러 다니던 아주 높은 지대로 올라갔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엘크를 찾아 걸어 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산을 휩쓸고 지나간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곁에 있는 나무 뒤로 피했습니다. 그러자 비가 지나갔습니다. 콜로라도의 높은 산에서는 초가을인 10월에 한동안 비가 왔다가, 한동안 눈이 왔다가, 해가 비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날 일어난 일에 저는 경탄했습니다. 그 일은 언제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비가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몸이 조금 젖어서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나무 뒤에서 나왔습니다. 거기 서 있는데 저 멀리 골짜기 안쪽 위에서 늑대 한 마리가 울부짖기 시작했고, 아래쪽 골짜기에서 그 짝이 응답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 어머니는 절반이 인디언입니다. 아, 다윗이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라고 말했을 때, 여기 속에서 무언가가 부르는 것입니다… 저는 야생의 자연을 사랑합니다. 늑대가 울부짖고 그 짝이 응답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제 안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라보니 서쪽 지평선의 바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민 채 지고 있었습니다. 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비를 맞은 뒤 얼어붙은 상록수들에 햇빛이 비치자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바로 그때 제가 뒤쫓던 엘크 떼에서, 저 멀리 울창한 덤불 속의 커다란 수컷 엘크가 나팔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아,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 자연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주의 폭우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여기 안에 깊음을 찾으며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에 응답할 깊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물고기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 먼저 그 물고기가 헤엄칠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느러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땅에서 자랄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몇 년 전에 어린 소년이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머니가 자전거 페달을 먹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고무를 먹고 있었던 것인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그 작은 아이는 유황을 몹시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안에 유황을 갈망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에 응답할 유황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창조물이 있기 전에 그 창조물을 창조할 창조주가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여기 계신 남녀 가운데 하나님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더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얻으려고 손을 뻗고 있습니다. 여기 안에 하나님을 더 얻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더 많은 것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말뚝을 박차고 뛰어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무지개 빛깔을 보니 요셉의 옷, 여러 가지 색깔이 생각났습니다. 계시록 1장의 무지개,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땅의 사람들과 맺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확증하신 언약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처럼 그 나무 주위를 돌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 안 깊은 곳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무지개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일몰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늑대를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안에 모시면 어디를 보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먼저 여기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여러분을 닭에서 독수리로 바꾸셔야 합니다. 여기 안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갈망을 주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작은 소나무다람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제님들 가운데 이 다람쥐가 어떤 것인지 아시는 분이 있겠지만, 숲의 경찰입니다. 소리는 가장 요란하게 내면서 아무 성과도 없습니다. 그 작은 것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재잘재잘, 재잘재잘”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꼬마야, 뭘 하고 있니?’ 그 목장 주인은 회심하기 전에는 꽤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람쥐들이 욕을 하는 것이라고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작은 것에게 말했습니다. “쯧쯧쯧, 말버릇 좀 보게.” 그래도 다람쥐는 계속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켜보니 저를 향해 재잘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독수리 한 마리가 폭풍 때문에 내려와 이 쓰러진 나무들 밑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큰 녀석이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 네가 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알겠구나.” 다람쥐는 저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 독수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밀려나 이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내려온 그 큰 독수리를 잠시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 생각을 저 위의 저 일에서 여기 아래의 이 일로 돌리셨습니까? 여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보잘것없는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있습니다. 또 독수리 한 마리가 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하늘을 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생각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 생각을 돌려 이쪽을 보게 하셨습니까?’ 독수리를 지켜보니 계속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를 무서워하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게는 여기 소총이 있단다. 마음만 먹으면 너를 쏠 수 있어.” 그렇게 소총을 움켜쥐었습니다.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면서도 계속 깃털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네가 왜 그렇게 용감한지 알겠다. 네가 겁쟁이가 아닌 이유는 이것이구나. 하나님께서 크고 힘센 날개 둘을 주셨고, 너는 그 날개들을 믿고 있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가 날아가도록 주신 성경의 날개,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도 붙잡고, 성령께서 우리를 실어 가실 바람을 일으켜 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신뢰할 수만 있다면… 독수리가 자기 날개를 신뢰하듯 우리도 그만큼 신뢰하기만 한다면… 독수리는 한 번만 뛰어오르면 저 수목 한계선, 나무들 위로 올라갈 수 있고, 그러면 제가 꼭 쏘아야 한다 해도 결코 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그것을 신뢰했습니다. 저는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한참 후에 독수리는 그 작은 소나무다람쥐의 소리를 듣는 데 싫증이 나자 크게 한 번 뛰어오르고 날개를 두 번쯤 퍼덕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더는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날개를 어떻게 펼쳐 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날개를 펼치고 있자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점점 더 위로 들어 올려 주었습니다. 저는 독수리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거기서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하나님,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날개, 곧 믿음의 날개를 펼쳐 놓는 법만 안다면 좋겠습니다. 이리 퍼덕이고 저리 퍼덕이며, 감리교에 가입하고, 침례교에 가입하고, 장로교에 가입하고, 일신교에 가입하고,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하며, 무슨 주의가 나타날 때마다 거기에 가입하는 대신 말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약속 안에서 날개를 펼쳐 놓고 성령께서 계속 위로, 더 위로, 더 높이, 더 높이 들어 올려 주시게 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땅에 매인 그 작은 마멋… 아니, 소나무다람쥐를 거기 앉아 있게 내버려 두고 갔습니다. “재잘재잘, 재잘재잘.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성령 침례라는 건 없어. 너희는 그저 바보 무리일 뿐이야. 그게 전부야.” 대략 그런 식입니다. “그런 건 없어.” 독수리는 그저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재잘재잘, 저기서 재잘재잘하는 그 작은 소리들을 뒤로 남겨 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독수리의 날개를 펴고,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주신 모든 약속을 향해 날아가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밤, 정신 이상과 간질을 앓던 그 소년이 완전히 온전해진 것입니다. 그 아이의 믿음이 그 날개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질병에서 건강으로 실어 가셨습니다. 저기에 앉아 계신 저 사랑스러운 자매님과 여기 뒤에 계신 분도 그래서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 마약 사용자, 마약 중독자 등이었지만, 익명의 중독자 모임에 가고 이것저것 해 보고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해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믿음의 날개를 펼쳐 놓고 “하나님, 주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은 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여기, 온전한 정신으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앉아 있습니다. 마약과 위스키는 여전히 시궁창에 놓여 있습니다.
자매님,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밤 저 거리의 매춘부로 나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남자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은 저 거리에서 밀주업자나 술주정뱅이로 지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날개를 펼쳤고, 믿음으로 성령께서 여러분을 교파의 장벽 너머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리스도인 실업인회가 여기 있고, 이 대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날개를 펼치고, 자기 말뚝을 저 멀리에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여기에 이 교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담대하게 날개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밤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독수리가 둥지를 휘젓고 있습니다.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분의 약속 안에서 담대히 날개를 펼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지금 살고 있는 비참하고 불의하고 경건하지 못하며 이기적인 삶에서 건져 내어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죄를 초월해 살게 하시고, 세상도 닭들도 전혀 모르는 복된 분위기 속에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이제 대집회가 끝났습니다. 성경은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덕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합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대집회라는 행사 자체로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죄인인 친구 여러분, 이 대집회가 여러분에게는 무엇을 해 주었습니까? 한때 여러분처럼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지금은 오늘 밤 하나님의 아들딸로 여기 있는 그들의 태도를 보셨다면… 전에는 남을 속이고 훔치고 거짓말하며 이웃을 등쳐 먹던 실업인들을 보십니다. 부도덕하게 살던 여자들이 오늘 밤 어떻게 사는지 보십니다. 알코올 중독자들, 마약 판매상들, 그 밖에 온갖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오늘 밤은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독수리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감정을 움직이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생각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오늘 밤 믿음으로 위를 향해 손을 뻗어, 여러분이 가진 유일한 것, 여러분의 손과 마음을 그분의 말씀의 날개 위에 얹고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이 모든 세상 근심과 걱정에서 저를 실어 가 주시고, 오늘 밤부터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기 전에, 여러분이 머리를 숙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동안, 오늘 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쭙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떠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이 여기 계십니까? 자유로워지고 싶으십니까? 오늘 밤 그분께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제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손을…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위 발코니석에서도 손을 드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오순절 교회에 다닙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이 삶의 근심과 여러 가지 일로 땅에 매여 있습니다. 오늘 밤 자유로워지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와서 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 발을 내디디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 믿음으로 오늘 밤 제 작은 날개를 펼칩니다. 제게 있는 이 작은 믿음의 날개를 주님께서 주셨으니, 제가 날 수 있을 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날개를 퍼덕이겠습니다.”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바로 지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도움받기를 원합니다.” 어린 친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발코니석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교인이든 어떤 분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제 저도 그 체험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저 뒤에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쪽 구석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뒤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발코니석에 계신 분, 어디 계시든 그저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녹음 공백.] …설교자인데 그저 밥벌이를 위해, 먹고살려고 설교한다면, 형제님, 오늘 밤 그리스도께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그런 것들에서 저를 풀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설교해서 받는 돈 때문에만 설교한다면, 목사님,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저 인기를 얻으려고, 혹은 대집회에 가서 복을 누리고 교제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 이유가 그것뿐입니까?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형제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자신에 대해 죽고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손을 들고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소서”라고 말씀하십시오. 손을 들고 “그리스도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많은 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잠시 후에 짧게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손을 높이 드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아멘.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실업인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언젠가는 여러분도 사업을 떠날 것입니다. 아무리 번창하더라도 그 사업을 떠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번 돈은 한 푼도 남김없이 친척들 사이에 나뉠 것이고, 그들은 시끄럽게 다투고 싸우며 소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위 천국에는 보물을 얼마나 쌓아 두셨습니까?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무엇을 아십니까? 그저 여러분의 혼에 복을 내려 주시는 분으로만 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비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위에 똑같이 내립니다. 하지만 제가 묻는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아시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꽤 잘 압니다”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생명은 아닙니다. “저는 교리 문답을 압니다.” 그것도 생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생명입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이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길입니다. 사업은 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성경을 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십시오. 참으로 죄를 용서받고 성령 침례를 받는 가운데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그저 요란한 소리를 많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값없이 주시는 죄의 용서가 여러분의 삶에 들어와, 옛것들은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된 것입니다. 자유와 사랑 안에서, 그토록 신성한 사랑 안에서 그분을 그렇게 알지 못한다면… 그분을 충분히 사랑한다면 세상의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남편이 밖으로 나돌며 바람피울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도,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면, 참으로 사랑한다면 서로에게 진실할 것이고 서로를 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의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내가 여러분에게 속해 있어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짓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자,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정말 그분을 안다면,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분을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이제 기도하기 직전입니다. 한 분 더, 혹시 계시다면 한 분만 더. 제게는 그런 느낌이… 거기 계시는군요.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녹음 공백.]
이 큰 집회를 마치기 직전의 이 짧은 순간에,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구원받고 그 마음에 복되신 성령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영원이 이어지는 한 결코 잊지 못할 체험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사람들, 이 그리스도인들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그들의 모임과 대집회에서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자라고 또 자라며… [녹음 공백.] 하나님, 특별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바로 지금 그들의 마음에 찾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순절 날 내려왔던 것과 같은 그 급하고 강력한 바람을 그들도 느끼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그들의 삶에 있는 모든 헐거운 것이 바람에 날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완전한 평안,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기쁨이 그들의 마음에 깊고 풍성하게 임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밤 이곳을 떠날 때 기뻐하며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허락하여 주십시오. 목회자들이 그들을 찾아 침례를 주어 교제 안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십시오…
[녹음 공백.] …이런 집회에서 우리가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는 것은, 서로를 마음에 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입니다.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서… 제게는 그저 속을 말끔히 씻어 내는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자, 바로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데모스 형제님이 떠나기 직전에 회중을 위한 기도를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만, 우리 모두 그저 머리를 숙여 조용히 기도하면서 이 큰 대집회와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일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녹음 공백.] …무언가를, 우리가 잠시… 아주 천천히 ‘믿음으로 주를 바라봅니다’를 부릅시다. 기도하기 직전에 먼저 이 찬송을 부릅시다. 이제 아주 부드럽게, ‘믿음으로 주를 바라봅니다’. 아주 부드럽게, 좋습니다. 나의 믿음이 바라보나니… (이제 그저 머리를 숙이십시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