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복음 전도 사역에 나서려고 말입니다. 우리가 떠나던 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여기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날 아침 저는 「골리앗을 만나는 다윗」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날 아침 여기 계셨던 분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계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아, 여러 분 계시는군요. 「골리앗을 만나러 가는 다윗」, 약 십일 년 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것이 그때였고, 그 뒤에 프리먼 형제님, 오럴 로버츠 형제님, 앨런 형제님, 그리고 많은…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도 그 뒤에 나왔습니다. 물론 빌리 그레이엄은 치유 쪽으로 나서지는 않았고, 구원의 복음을 전도하는 쪽으로만 설교했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 강가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그대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내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오늘 아침 교회 앞에서 말씀드리려고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내 저는 출발점이 될 만한 자리나 장소를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코 “자, 이것을 하러 갑시다”라든가, “나의 위대한 집회”, “나의 이것, 나의 저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저 한쪽에 서서 작은 자로 있으면서 주님의 뜻을 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십일 년 동안 처음으로, 제가 믿기로 주님께서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지 보이는 지점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제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지를 말입니다. 저는 아무 사심 없이, 마음을 다하여 나가서 주님을 섬기고, 할 수 있는 한 힘껏 복음을 전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자, 봉헌할 아기가 여기 와 있습니까? 제가 말씀을 드리면, 아마… 아기가 안 왔습니까, 네빌 형제님? 제 어린 딸이 일요일 학교 수업에 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아기 봉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각자 반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습니다. 이제 어린아이들은 각자 반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선생님이신 아널드 부인과, 그… 뒤쪽으로 가세요. 좋습니다. 오늘 아침 제 어린 리브가가 말하더군요. 이 아기는 자기 삼촌의 아기거든요. 그래서… 아기 봉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조금 뒤에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복음 메시지가 끝나면 곧바로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리라 신뢰합니다. 이 말씀을 너무 오래 전할 생각은 없습니다. 병든 분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을 좀 남겨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의 좋은 형제이자 친구인 콜린스 형제님이 읽어 주신 말씀에서 한 부분을 택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 신명기 32장 11절의 첫 구절을 택하고 싶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오늘 아침에는 이 새 자체를 살펴보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교회에 견주어 보려고 합니다. 자, 예배의 이 순서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토니 제이블 형제님,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기도를 좀 드려 주시겠습니까? 토니 형제님, 부탁드립니다. [테이프 공백.]
독수리는 제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새 가운데 하나입니다. 독수리는… 참으로 걸작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왜 이 큰 새를 자신의 상속 백성에 비유하셨는지 여러 번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연을 살펴보면, 그것은, 늘 그랬고, 자연은 저의 첫 성경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언제 한번 산에 가서, 크고 높은 산들과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보십시오. 작은 가문비나무들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가 솔송나무와 자작나무를 지나 활엽수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고, 밖으로 사막까지 나가 보십시오. 작은 산들, 큰 산들, 사막들, 대초원들, 바다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의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그 원시의 땅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을 좋아하시는지 보고 싶어서입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런 곳들을 보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많은 분이 휴가를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며 구경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언덕 위에서나 골짜기에서 해가 어떻게 지는지 그 일몰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남자, 혹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그 사람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보다 그런 것들을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것, 자신이 하신 일을 즐기시려고 그 마음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또 사막과 같은 곳에서 제가 겪었던 많은 일들, 아, 그 추억은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 늑대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저는 늑대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아기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제가 소 목장에서 일하던 어린 시절, 산에서 소를 몰아 모으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말을 타고 나설 때면 첫 무리는 네 시쯤 떠나 일정한 수의 소를 찾아 샅샅이 뒤졌습니다. 산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아침 첫 출발 때 말을 타고 나서면서, 저는 어린 소년이었고 나이 든 사람들보다 덤불을 조금 더 잘 헤치고 다닐 수 있었기에, 소를 얼마씩 몰아 한 오백 야드쯤 아래로 내려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둘째 무리가 다섯 시나 여섯 시쯤 떠나 열 시쯤까지 계속 아래로 몰고 내려가면서 소들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밤이 되면 골짜기가 소로 가득 찹니다. 그러면 그곳에 사람을 두고, 마차들은 계속 이동하며, 그 사람들은 소들을 지킵니다. 그런 다음 모든 산을 샅샅이 훑고 나면 한 골짜기에 있는 소들을 다른 골짜기로 몰아넣고, 들판으로… 대초원으로 몰아냅니다. 우리가 ‘가르기’라고 부르는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소를 가려내는 것이지요.
이른 아침 혼자 산에 올라가, 야생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코요테가 제자리로 돌아가며 내는 소리를 들으면, 제게는 거기에 천국 같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은 생물들이 저마다 짝을 향해 익숙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 번 다윗이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라고 한 말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제 아들 빌리가 어제 제게 그러더군요. 블랙베리 삼 갤런을 누구에게 줄 수 있을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게 어디 있는데?” “아직 따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남을 주려고 하니?”
“아버지, 저는 아주 이른 아침에 블랙베리 덤불로 가서 열매 따는 게 정말 좋아요. 그런데 우리가 떠나니까 병조림을 하거나 달리 보관할 수가 없잖아요. 누구 줄 사람만 찾을 수 있으면 가서 따고 싶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따고 싶은 거니?” “그저 이른 아침에 블랙베리 덤불에 나가 있는 게 좋아서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무언가 신선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죄악이 땅 위에서 가라앉고, 어찌 된 일인지 이른 아침에는 인동덩굴 향기가 조금 더 달콤합니다. 장미도 그렇습니다. 장미 향기가 골짜기에 내려앉아, 산들바람이 불어와 날려 보낼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이 말해 줍니다. 홀로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홀로 있는 것, 그저 홀로 앉아 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교회에 와서 하는 기도만을 여러분의 유일한 기도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단둘이 있으십시오.
제가 그토록 좋아하는 높은 산에서 홀로 있을 때 많이 살펴본 것 가운데 하나가 독수리입니다. 고배율 쌍안경으로 독수리의 습성 같은 것을 관찰하면서 때때로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상속 백성, 곧 자신의 교회와 백성을 독수리에 비유하셨을까?
책을 통해 독수리를 연구하면서, 저는 팔레스타인에만도 독수리가 사십 종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썩은 고기를 먹는 것들도 있고, 보통의 고기를 먹는 독수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라는 말 자체는 “부리로 먹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 잠시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부리로 먹이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입으로 새끼들을 먹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독수리에 비유하는 것이 참 적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교회를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입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입에서, 부리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으로 교회를 먹이십니다. 우리의 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탱됩니다. 독수리와 견주어 볼 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다음으로, 독수리는 아주 특별한 새입니다. 새의 모든 족속 가운데 어디에도 독수리 같은 새는 없습니다. 독수리처럼 높이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독수리가 공중으로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 마침내 제 쌍안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곤 했습니다.
매와 매의 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아, 매는 독수리에 비하면 풋내기입니다. 매가 독수리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T형 포드 자동차가 요즘 자동차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독수리가 매보다 그만큼 월등합니다. 매가 독수리를 따라 공중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죽고 맙니다. 매의 눈도 독수리의 눈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독수리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높이 이상 올라갔을 때 호흡이 끊어져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사냥에 데려갔을 때 이런 일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오배넌 형제님, 오늘 아침 저 뒤에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이빌의 감리교 목사님입니다. 버서드 고개를 넘어 올라갈 때, 그곳에 이르자마자 그분은 꼭 죽을 것만 같아 했습니다.
제 장인인 브럼백 씨는 객차에서 내리자마자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분을 파이크스피크로 모시고 갔던 것입니다. 그분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몸이 그렇게 높은 고도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앞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오배넌 씨는 이 근처 놉스의 언덕보다 별로 높지도 않은 작은 산에 올라갔다가 주저앉아서, 엉덩이로 미끄러지듯 산을 내려왔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모건 형제님, 모건 자매님의 남편이시지요. 저 뒤에 계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발 구천 피트쯤 되는 높은 산에서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막 마차에서 내린 참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발을 잡고 말했습니다. “이봐요, 빌리. 내가 들어 올려 줄 테니 용마루 막대를 단단히 고정해요.” 그런데 저를 들어 올리고 있다가 “잠깐만요. 잠깐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땅으로 뛰어내려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그분은 두 손을 들고 이렇게 휘청거렸고, 저는 있는 힘껏 붙들었습니다. 몸집이 큰 분이거든요. 마침 우리가 귀리 자루들을 그곳에 내려놓았는데, 우리에게는 말이 여러 마리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이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그 위에 머리를 눕혀 두었습니다. 저는 고도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저 골짜기들 위로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분은 이 낮은 지대에서 자랐던 것입니다.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지방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거기에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살기 때문에 호흡이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특별한 몸을 가져야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른 새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얼마나 잘 보여 주는 모형입니까. 이 땅의 여정에서 만나는 그 무엇보다도 훨씬 뛰어난 환경과 장소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 것들을 바라보지 않는 환경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런 몸을 지으시려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셔야 합니다.
독수리의 또 다른 특징은 날개가 아주 강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높이를 넘어서면 때로 아주 강한 기류를 만납니다. 매가 따라가려고 하면 그 기류가 너무 강해서 깃털이 뽑혀 나갈 수도 있습니다. 또 매의 날개가 뒤로 꺾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매는 곧장 땅으로 떨어져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독수리가 그런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그곳에 갈 수 있도록 지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처소들에서 살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으로 그를 그렇게 지으셔야 합니다. 바람이 그를 후려치거나 그의 날개를 찢지 못하는 그 하늘의 처소들로 그를 데려가시도록 말입니다. 독수리를 떠받치는 그 크고 튼튼한 두 날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우리… 독수리에게는 두 날개가 있고, 그 두 날개는 신약과 구약을 나타냅니다.
튼튼한 깃털입니다. 한번 뽑아 보십시오. 아, 펜치를 가져다가 발로 딛고 잡아당겨야 뽑힙니다. 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독수리가 그렇게 높이,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독수리를 자신의 선지자들에 비유하셨습니다. 자신의 선지자들을 독수리라고 부르십니다. 독수리는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어서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높이 올라가는 능력에 걸맞지 않다면, 높이 올라가도 앞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수리에게는 높이 올라가는 능력에 걸맞은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아, 교회가 독수리의 눈을 가질 수만 있다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땅에 얽매인 육신의 눈이 아니라 멀리 볼 수 있는 영적인 눈 말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이곳에서 부르곤 하던 그 옛 찬송 듣기를 저는 참 좋아했습니다. 믿음으로 저 멀리 바라보네. 우리 아버지 저편에서 기다리시네. 거기에 우리 거처를 마련하시려고.
다시 태어난 사람은 이 대기권과 성층권으로 올라가면서, 믿음으로 저 먼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있으며, 모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올라가도록 지어졌습니다. 기도로 계속, 계속 나아가 마침내 그곳에 이릅니다. 그런데 볼 수 있도록 지어지지 않았다면, 그곳에 올라가서 그저 뛰놀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크게 실패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저 춤추거나 외치거나 그런 일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치유는 그저 우리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층권으로 들려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주십니다. 자신의 자녀들, 자신의 자손들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 어린 긍휼은, 장차 올 훨씬 더 큰 것을 미리 맛보게 하시려는 것임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복된 옛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복된 확신이여, 예수님은 나의 것! 아,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봄이여!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겼네.
그것이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하나님의 참 독수리입니다. 그저 뛰놀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려고 올라갑니다. 약 사천 년 전에 살았던 그 선지자 나훔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의 그 큰 독수리가 높이 올라갔습니다.
또 한 가지, 독수리는 날기 위해 계속 날갯짓을 하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그저 날개를 펴서 고정합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나면 아주 여유로운 새입니다. 그저 뛰어올라 두어 번 날갯짓을 합니다. 날개 밑으로 바람을 받을 만큼만 그렇게 하고 나면, 더 이상 애쓰거나 안간힘을 쓰지 않습니다. 더 이상 뛰어오르지도 않고 날갯짓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날개를 펼쳐 놓고, 지구가 돌면서 생기는 기류가 자기를 떠받쳐 올라가게 합니다.
참된 신자도 그렇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로,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나사렛교를 찾아 장소를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입으로 그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날개를 펼친 채, 안식하면서 위로 날아오릅니다. 날개가 튼튼하므로 퍼덕일 필요가 없습니다. 튼튼하기 때문에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 저 하늘의 지배자는 그 깃털들을 아래로 내려 바람을 받아 타고 곧장 날아갑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나훔이라 불린 그 큰 독수리는 사천 년 전에 하나님의 영 안에서 아주 높이 올라가, 사천 년 후 시카고의 아우터드라이브를 보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병거들이 넓은 길에서 맹위를 떨치며 번개같이 달려가고 횃불같이 보이며 서로 밀치리라.”
그 선지자들은 아주 높이 올라가서 먼 훗날에 올 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곳이 한 번도 밝았던 적이 없고, 이 대륙에 햇빛이 비친 적이 없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공중으로 충분히 높이 올라가 다른 나라 위에 떠 있는 해를 보고, 해가 이쪽으로 움직여 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다시 내려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여기에 식물이 자랄 것입니다. 다른 것들도 있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황량하겠지만, 해가 오자마자 식물도 함께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분은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해가 이곳에 이르면, 멀리서 보았던 것들이 이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들은 올라가서 알게 됩니다. 죄가 끝나는 날, 더 이상 질병도 슬픔도 없는 날이 올 것을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슬픔은 달아나고, 늙음이 있을 자리는 없어질 것입니다. 애도하는 사람이 있을 자리도 없고, 묘지도 없고, 실망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수리들은 하나님의 성층권으로 아주 높이 날아올라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다시 내려와 그것을 이 성경에 써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그 영역에 들어가면, 어찌 된 일인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우리를 갈망하게 합니다.
어제저녁 저는 현관에서 네빌 형제님의 친척인 켈리 씨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 작은 새들이 얼마나 노래하는지 좀 보세요.” 그때 우리는 며칠 전 저 강가에서 작은 물고기가 되살아난 이야기를 마친 참이었습니다. 제가 아마 지난번 이곳에서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저 뒤에 앉아 계신 라일 형제님이 물고기의 입으로 내장을 뽑아내고 물에 던졌는데, 죽은 지 삼십 분이나 지났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셔서 “말하라” 하시자, 작고 하찮은 물고기가 생명을 받아 몸을 뒤집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에게로 헤엄쳐 돌아갔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지만 그 작은 물고기에게는 혼이 없습니다. 그 작은 물고기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갈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짐승, 말, 소, 개, 그 밖의 동물들은 내세의 삶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혼을 가진 남녀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넣으신 그 복된 갈증은 그분을 갈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 독수리는 하나님의 상속 백성에 비유되는 놀라운 새입니다.
이 년쯤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저, 장모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하루를 보내려고 신시내티 동물원에 갔습니다. 저는 어린 딸과 함께 돌아다녔는데, 그때는 아마 사라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달래느라 함께 다니면서 우드척과 다람쥐와 여러 동물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새들이 있는 우리에 이르렀을 때 아주 큰 우리, 거대한 우리 하나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껏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처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곳으로 가 보니, 사람들의 교묘한 장치에 붙잡힌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덫을 놓아 독수리를 잡았고, 그 우리에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그 커다란 독수리는 우리 한쪽으로 걸어가, 크고 힘센 날개로 기세를 올린 뒤 철창을 향해 몸을 내던졌습니다. 너무 세게 부딪쳐 정신을, 의식을 거의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벗어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바닥 한가운데로 튕겨 나갈 뿐이었습니다. 머리의 털이란 털은 부딪쳐 다 벗겨졌고,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큰 날개의 끝부분들도 살이 드러날 정도로 상해 있었습니다. 자유로워지려고 온몸을 날려 우리에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잠시 그곳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무슨 광경입니까.” 독수리, 하늘의 새인데, 그 집은 땅에 있지 않고 공중에 있습니다. 땅에 얽매인 생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교묘한 장치가 독수리를 붙잡았고,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철창에 부딪쳐 제 머리만 깨뜨리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꼭 사실 그대로가 아닌가. 사람이 교회에 가입하거나 다른 무엇을 해서라도 사탄의 이 교묘한 장치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지만, 제 머리만 깨뜨리고 있을 뿐이구나.” 여러분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 갇혔고 붙잡혔습니다. 저 독수리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여러분도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해 주려면 여러분의 손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이나 어떤 교단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손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그 큰 독수리가 수없이 시도하다 실패하고는, 그렇게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댄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피 흘리는 독수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지친 눈은 위를 바라보며 하늘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독수리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와 자유 사이에는 뚫고 나갈 수 없는 철창이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가엾은가. 저 대기권과 성층권을 위해 태어난 저 하늘의 존재, 저 새가, 남은 평생을 이곳에 갇혀 지내야 하다니.” 저는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광경이구나.”
하지만 아, 저는 그것보다 더 나쁜 광경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태어났으면서도 우리에 갇힌 채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남녀들을 보았을 때입니다. 죄에 사로잡히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어, 세상적인 쾌락으로 자기들의 갈망을 채우려고 이 땅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말입니다.
무엇을 나쁘게 말하거나 나쁘게 보이게 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시카고에서 막 돌아왔을 때, 저는 아내와 함께 스프링가에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입을 옷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로 젊은 어머니 한 사람이 걸어왔습니다. 팔에 아기를 안고 있던 그 젊은 여자의 옷차림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가엾은 여자구나. 아마 어떤 남자의 사랑하는 사람이며, 저 소중한 어린 아기의 어머니일 텐데.” 그런데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고, 담뱃재가 어린 아기에게 온통 날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왕후가 될 수 있는 여자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 가정일 텐데, 아마 성경 대신 여기저기에 담배와 맥주가 널려 있고, 다툼과 질투가 있을 것이다.”
주위 환경에 의해 우리에 갇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검열되지 않은 프로그램, 연애 이야기와 그런 것들이 미국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태어났으면서도 현대 사회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번은 정신병원에 가서 그 안에 있는 젊은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저는 어느 어머니와 함께 그 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여자들, 그 가운데 한 젊은 여자는 침상용 변기를 써서 그 안에 얼굴을 씻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여자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았지만, 일이 뒤엉켜 버렸습니다. 어떤 청년, 약삭빠른 자가 나타나 그 여자를 세속적인 삶의 우리에 던져 넣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붙잡힌 채 정신을, 사고 능력을 잃고 병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 지역의 다른 목사님과 함께 한 가정에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의사의 딸인 사랑스러운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삶의 거의 많은 시간을, 어려서부터, 서른 살이나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평생을…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제게 연락해 와 울고 있었습니다. 그 딸은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회의적인 현대 과학자 하나가 그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접근해서 말했던 것입니다. “남자에게 입맞춤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말이에요? 무얼 놓치고 살았는지 모르는군요.” 그리고 그런 일들을 생각하도록 그 아이의 마음을 돌려놓아 그 소중한 독수리를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현관에서 그 아이의 사랑하는 노모가 제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딸은 구출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날아오르던 하나님의 그 독수리가 그런 덫에 잡힐 수 있다니요. 오늘날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자유롭게 살도록 태어난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죄를 초월하고 죄에서 벗어나 살도록 태어난 남녀들이 술집과 무도장에서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거미줄이 그들을 칭칭 휘감듯이 둘러싸서 그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검열되지 않은 프로그램, 학교와 무신론적인 가르침, 마귀의 온갖 현대적인 장치들을 통해서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가 안타깝지만, 그저 교회에 속해 있기만 하면 제멋대로 무엇이든 하도록 풀어 주는 현대 교회가 그런 일을 할 때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성이 바뀌고, 옛것들이 모두… 그러면 자유롭게 됩니다.
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독수리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상속 백성을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독수리는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아, 제가 로키산맥 높은 곳에서 독수리를 살펴보려고 얼마나 여러 번 말에서 내려 어린 나무에 말을 매어 놓고, 쌍안경으로 하늘을 뒤져 독수리를 찾았는지 모릅니다. 독수리는 자기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전과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너무 높아서 포식자들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코요테가 독수리 둥지에 가려고 했다가는 목이 부러질 것입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독수리에 비유하신 이유입니다. 독수리 둥지, 곧 교회는 이 세상의 염려를 훨씬 넘어선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 지대를 벗어나, 피를 건너선 곳, 어슬렁거리는 현대의 포식자들이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곳에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산 위에 세워진 도시이며, 방 안에 켜 놓은 등잔불이라.” 아,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높은 곳에, 높은 포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성장하려는 포부가 전혀 없는 교회 이야기를 들으면, 그 교회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는 높은 포부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오래전에 이 교회에서 봉사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포부입니다.
오늘 눈먼 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봅니다. 내일은 죽은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며 지켜봅니다. 자연이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교회의 포부는 높습니다. 소망이 큽니다. 기대가 큽니다. 높은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비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직장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포부는 높습니다. 자기 상사나 다른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기대는 큽니다. 어디에서든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시리라는 기대입니다.
독수리는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기회를 살핍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태어나며, 태어난 새끼들은 안전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도 가장 높은 봉우리, 가장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포부를 세웁니다. 그 어린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태어나면 그들은 안전합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 물론입니다.
아, 독수리는 힘센 새입니다. 그런데 독수리에 관해 할 말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새끼들이 태어난 뒤, 곧 알에서 깨어난 뒤 어떤 때가 찾아옵니다. 독수리는 알을 낳고, 작은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납니다. 작고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녀석들입니다. 어미는 새끼들이 제법 큰 새가 될 때까지 부리로 먹여 줍니다. 그 새끼들을 두고 아래로 내려가 먹잇감을 찾습니다. 그러고는 새끼들을 먹이려고 다시 올라옵니다.
닭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땅에 얽매인 닭은 농가 마당에 둥지를 틉니다. 지나가는 족제비든 무엇이든 덮칠 수 있는, 열린 무덤과 같은 곳입니다.
저는 그것을 오늘날 이 세속적인 교회, 오늘날의 세속적인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그들은 그저 말합니다. “아, 데려오세요. 침례를 주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세요.” 그들은 그대로 노출된 대상들입니다. 독수리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독수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받아들여진 뒤에도 반바지를 입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제멋대로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교회라는 늙은 암탉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꼬꼬댈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미 독수리는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여러분을 그런 것들 너머로 데려갑니다.
여러분은 “닭도 새 아닙니까?”라고 합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닭은 땅에 얽매여 찌꺼기를 주워 먹는 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처소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곳에 올라가 본 적이 없으니 그저 이 아래에 둥지를 틀고 서로 물고 뜯습니다. 그러나 독수리의 생각은 그보다 낫습니다.
그러다가 새끼들이 태어나면, 곧 어미 독수리에게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 독수리가 자기 새끼들을 닭처럼 두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때가 옵니다. 아,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이 말씀이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어미 독수리는 자기 새끼들이 저 다른 닭들, 땅에 얽매인 새들처럼 행동하지 않게 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새끼들에게 체험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대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어느 교단에 속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저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미 독수리처럼 여러분이 그것을 얻도록 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돌보고 새끼들이 올바른 체험을 하도록 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둥지를 휘젓는 때가 찾아옵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둥지를 휘저어 주옵소서.
독수리는 젊음을 새롭게 하는 새라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정한 때가 되면 다시 젊은 새로 돌아갑니다. 나이가 젊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경은 독수리가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의 젊음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리라.” 독수리는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지치고 쇠약해지고 이리저리 시달릴 때, 안으로 들어가 힘을 새롭게 하고, 독수리처럼 우리의 모든 염려와 유행과 이 세상 것들 위로 솟아오르는 교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보여 주는 모형입니까.
다시 살펴보면, 어느 영광스러운 날 어미 독수리가 둥지를 휘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어미가 달려 들어오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새끼들을 둘러보고 살펴봅니다. 아, 저는 엎드려 쌍안경으로 그 모습을 얼마나 지켜보았는지 모릅니다.
어미가 들어가 갑자기 둥지에 앉더니 날카롭게 웁니다.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새끼들에게 자기 울음소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이 어린것들은 한 번도 그 둥지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늘 그곳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어미는 둥지를 휘젓습니다. 어미는 날카롭게 울면서 둥지에, 아니 둥지 가장자리에 앉아 그 큰 날개들을 앞뒤로 힘껏 저어, 새끼들 머리 위로 거센 바람을 보냅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합니까? 헐거워진 깃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 보내려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어미는 새끼들에게 첫 시험 비행을 시키려고 합니다. 둥지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것입니다. 교회가 둥지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그 크고 튼튼한 두 날개는 말씀입니다. 어미가 새끼들에게 말씀을 주면, 말씀을 통해 오순절 날과 같은 급하고 강력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헐거워진 깃털을 모두 날려 보냅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한 그 급하고 강력한 바람이 내려올 때 그저 사라져 버립니다. 헐거워진 깃털 하나하나, 작은 사상 하나하나, 작은 광신주의 하나하나, 세상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날려 보냅니다. 깃털 하나하나를 다 떼어 냅니다. 저 위로 올라가면 그런 헐거워진 깃털이 죽음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방종한 생활이 교회 안에 영적인 죽음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어미는 새끼들이 위로 올라갈 준비를 반드시 갖추게 하려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새끼들은 한 번도 바람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독수리입니다. 반석 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반석 틈에 숨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옆구리에 난 틈입니다. “내가 너를 거기에 숨기리라.” 여러분이 태어난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새끼들은 반석 틈에서 태어납니다. 바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처음 느끼는 바람은 어미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입니다. 세속적인 어떤 것, 교회가 만들어 낸 신학이 아닙니다.
참된 독수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독수리가 처음 느끼는 거센 바람은 어떤 꾸며 낸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불어와, 그에게 있는 헐거운 깃털을 모두 흔들어 떼어 냅니다. 그는 시험을 거치고 있습니다. 비행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으로 교회를 흔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온갖 자잘하고 헐거운 것들, 작은 사상들, 이런저런 작은 것들을 바람으로 다 날려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미가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헐거운 깃털이 모두 날아가고 나면, 둥지 안으로 내려앉아 날개를 옆구리까지 낮춘 다음 활짝 폅니다. 아, 저는 이것이 좋습니다. 그저 날개를 활짝 펴면, 어린 독수리들이 하나씩 그 날개 위로 올라갑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미의 깃털은 펜치로도 뽑을 수 없습니다. 어린 독수리들은 시험을 견딘 이 날개 깃털에 작은 발을 단단하고 안전하게 고정합니다. 그 날개는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그 말씀에 믿음을 두고, 오랜 세월 시험을 견딘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붙잡습니다. 여러분의 첫 단독 비행을 위해서입니다.
어미는 새끼들에게 체험을 주려고 합니다. 거센 바람은 헐거운 깃털들을 제거하여 새끼들의 깃털이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날개에 구멍이 있을 수도 있고, 깃털이 몇 개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를 잡으면, 그 작은 부리로… 보십시오. 새끼들은 작은 부리를 내밀어 어미 날개의 튼튼한 깃털 하나를 붙잡습니다. 그러면 어미가 그 깃털을 흔듭니다. 어찌 된 일인지 새끼들은 그렇게 할 줄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성이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꼭 시켜야 한다 해도 닭에게는 그런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닭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차갑고 형식적인, 소위 현대 종교는 더 높고 더 나은 삶의 복된 체험에 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저 성경은 잘못 번역되었어요.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아, 형제여, 오늘 아침 병들어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단단히 붙잡고 날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어미가 여러분을 침대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어미는 여러분이 거기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미는 자기 자녀들이, 자기 새끼들이 저 아래 농가 마당에 있는 암탉의 새끼들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므로 새끼들에게 체험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체험을 얻으려면 말씀, 그 날개를 붙잡습니다. 꼭 붙잡고 그저 그곳에 누워 있으십시오. 아, 새끼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아, 우드 형제님, 어느 날 저는 저 코럴피크스에서 바위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가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말까지 놀라 달아나게 했습니다. 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 작은 녀석아. 세상의 모든 굴뚝새와 까마귀와 대머리수리들이 그 깃털은 너를 지탱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독수리로 태어났으니까.” 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하나님의 어떤 약속에든 닻을 내리고 굳게 붙들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 있네. 그 외의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아무것도 여러분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도 그것을 결코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반석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진 바로 그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위에 서서 이 눈물 너머 저편을 바라보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그분을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음 자체도 그들을 결코 흔들지 못합니다. 그들은 독수리입니다. 하늘에서 태어난 새들입니다. 그들 안에 있는 본성은 그것을 믿고 신뢰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어미가 날카롭게 울면 새끼들은 그 음성을 압니다. 어미가 새끼들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자기 말씀, 하나님의 말씀, 자기의 큰 날개들을 펼칩니다.
오늘 아침 병든 여러분을 향해 그분이 펼치고 계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병든 여러분은 평생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것만 같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만들 수 있다면 여러분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린 독수리들이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펼치십니다. 그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곳에 서십시오. 아무것도 여러분을 흔들지 못하게 하십시오. 오랜 세월 시험을 견딘 날개입니다.
여러분이 죄인이며 죽기를 두려워한다면, “브래넘 형제님, 이… 이 연약한 생명의 실들이 끊어지기 시작하고 제 혼이 알지 못하는 어떤 곳으로 떨어져 들어갈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두십시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내 부리에서 먹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땅의 모든 시련 속에서, 어두워지는 휘장과 이 삶의 눈물과 슬픔 너머를 향하여, 참된 독수리는 그곳에 발톱을 박고 말합니다.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 있네. 나는 어미의 날개 위에서 쉬리라. 십자가의 날개를 붙잡고, 그것을 통해 속죄가 이루어졌음을 아네.”
어미는 새끼들을 하늘로 데려갑니다. 아, 여러분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을 붙잡는다면 머지않아… 시험 비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 어미는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향해 날아갑니다. 여러분을 이 땅에 남겨 둔 채 체험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을 아주 높은 곳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진흙 속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수영을 할 줄 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이 한 피트쯤 되는 곳에서 작은 낡은 상자를 딛고 뛰어내려, 진흙을 사방으로 튀기며 두 손을 이렇게 휘저었습니다. 어느 날 삼촌에게도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했더니, 삼촌이 노를 들고 저를 깊이가 육 피트쯤 되는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때는 달랐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진흙 속에서 기어 다니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 가서 찬송 한 곡 부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 이제 우리가 깊은 데로 나아가야 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 어미 독수리가 날개를, 자기 말씀을 펼치면, 어린 독수리들은 저마다 어떤 약속 하나를 붙잡습니다. 그러면 어미는 그 작은 것들을 날개에 태우고 크고 힘찬 날개로 솟아오릅니다. 새끼들은 매달린 채, 어미는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갑니다. 아, 새끼들은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독수리들이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꼭 붙듭니다.
여러분이 독수리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약속을 넣어 주셨다면, 의사가 내일 죽을 것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꼭 붙들 것입니다. 흔들림이 올 때마다, 폭풍이 몰아칠 때마다, 높고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나의 닻은 휘장 안에 든든히 걸려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헤쳐 나갈지 보이지 않지만, 저는 이 닻을 붙들고 있습니다.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가, 어미는 아주 높은 공중에 이릅니다. 너무 높아서 더 이상 거의 보이지 않을 때, 어미는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바로 그 공중에서 새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흔들어 떼어 놓는 것입니다. 아, 여러분도 반드시 그 자리에 이르는 때가 있어야 합니다. 어미는 왜 그렇게 높이 올라갑니까? 새끼들이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가 아니라면 그토록 높은 곳에 갈 수 없습니다. 거기에 이르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독수리입니다.
참된 신자는 무신론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의 독수리라면 말씀을 붙듭니다. 말씀이 어디로 데려가든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면, 어미가 이렇게 날개를 흔들어 독수리들이 사방으로 떨어집니다. 어미가 소리칩니다.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얘들아, 이제 너희 스스로 해야 한다.” 어린것들은 저 멀리 높은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합니다. 까마귀나 매나 그 무엇도 그들을 붙잡을 수 없는 곳에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데려가시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교회나 교단이나 다른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체험 속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한번 여러분을 흔들어 떼어 놓으시면,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새끼들을 흔들어 떼어 놓았다고 해서 어미가 그들을 떠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어미는 그들 주위를 빙빙 돌며 하나씩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어린것들이 뒤집히기도 하고 온갖 모양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어미는 얼마나 즐거울까요. 새끼들은 두려워합니까? 아닙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미가 늘 함께 있다는 것과, 다시 자기들을 떠받쳐 올릴 수 있는 어미의 뛰어난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혹시 한 마리가 균형을 잃고 엉뚱한 쪽으로 빠지면, 어미가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 새끼 밑으로 급히 내려가 자기 날개로, 자기 말씀으로 받아 올려, 다시 은혜 안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제가 칼빈주의자인 것도 당연하지요. 아멘!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아래를 향해 손을 뻗으셔서 자신의 독수리를 붙잡고 다시 들어 올리십니다.
그래서 새끼들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저 퍼덕이고 또 퍼덕이고 외치고 소리 지르며 참된 오순절 부흥을 누립니다. 이 어린것들은 때로 넘어지고 뒤집히면서도 개의치 않습니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어미는 바로 그들 주위를, 그들 주위를 날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미가 그들을 하나하나 다 받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기 시작하면, 어미는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자기 말씀을 이렇게 펼칩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그 깃털 속으로 이렇게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꼭 붙듭니다. 얼마나 놀라운 새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구주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구주이십니까.
그런 다음, 새끼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시험 비행, 첫 작은 비행을 모두 거치고 나면, 어미는 내려오면서 날개를 펼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 새끼를 받아 올리고 저 새끼를 받아 올립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골짜기로 데려갑니다. 새끼들은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줄곧 그 낡은 둥지, 구역질 나는 냄새나는 둥지에만 있었습니다. 어미는 잔물결이 흐르는 골짜기로 그들을 데려갑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께서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느니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한번은 어느 농부가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면서 그 밑에 독수리 알 하나를 넣었다고 합니다. 암탉이 얼마 동안 알을 품었을 때, 그 암탉에게… 여기 계신 여자분들 중에 알 한 둥지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아,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열다섯 개가 한 둥지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알 열네 개에 독수리 알 하나를 넣었습니다. 대략 그렇습니다. 한 둥지에서 한 마리쯤 나오는 셈입니다. 그렇게 농부는 농가 마당의 환경에서 그 늙은 암탉이 알을 품게 했습니다. 마침내 얼마 후 모두 알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어린 독수리가 깨어났을 때, 다른 녀석들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새였습니다.
참된 독수리가 오늘날 이른바 세련되었다는 현대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나면 바로 그렇습니다. 어딘가 다른 부류입니다. 그 독수리는 암탉의 꼬꼬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런 암탉의 둥지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참된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얘들아, 이리 오너라. 그냥, 아, 괜찮단다.” 늙은 암탉은 병아리들을 농가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거름 더미며 온갖 것을 쪼아 먹게 합니다. 독수리는 그것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본성이 달랐습니다.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이런 낡은 시체 안치소들에 가면 바로 그렇게 됩니다.
“아, 와서 교회에 가입하세요. 명부에 이름을 올리세요. 아, 괜찮아요. 오후에 반바지를 입고 잔디를 깎아도 돼요. 시원하겠지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참된 독수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아,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잔하는 술이 누구에게 무슨 해를 끼치겠어요.” 그것은 죄입니다. 참된 독수리는 그것을 압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뭐가 잘못됐어요.” 참된 독수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본성이 다릅니다.
그 독수리는 그저 그 작은 닭 무리를 따라다녔습니다. 늙은 엄마 닭이 “자, 이쪽으로 오너라”라고 하면, 그것들은 쪼아 먹으며 어떤 큰… “아, 그래요. 번코 놀이를 합시다. 목사님 사례비를 마련합시다”라면서 신나게 지냈습니다. 독수리는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조금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 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암탉 둥지에서 깨어난 독수리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현대 교회들 가운데서 말입니다. 일어나 송영을 부르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노래 두어 곡을 부르고, 꽃 이야기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독수리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찌꺼기를 주워 먹는 새들입니다. 독수리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운 오리 새끼처럼 뒤에서 따라다녔습니다.
늙은 암탉이 어떤 종류의, 무언가 특정한 것을 찾아내면 병아리들을 향해 꼬꼬댔습니다. 거름 더미에서 찾은 어떤 것이었는데, 병아리들을 향해 꼬꼬댔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그저 다가와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나는 도무지 그런 것에 함께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본성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선택을 믿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여러분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무언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자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원한다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교회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는 애초부터 독수리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저 광신자 무리 근처에는 가지 마라”라든가 이런저런 말을 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가 그쪽으로 향하게 될 것은 더없이 확실합니다. 자, 보십시오. 그 어린 닭들은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농가 마당에 나와 있을 때, 하늘을 가로질러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침 어미가 날아가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던 것입니다. 어미는 이 작은 녀석이 이리저리 살피며 힘겹게 따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형제여, 그분의 눈은 참새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것 하나는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아십니다.
어미 독수리가 마침 그 농가 마당 위로 지나가다가 내려다보았습니다. 자기 새끼가 보였습니다. 농부가 훔쳐 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둥지에서 알 하나를 훔쳤지만, 그것은 어미의 것이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는 닭이 아니야. 너는 독수리야. 너는 내 것이야. 너를 데리러 왔단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렇게 외치셨던 그 밤을 저는 기억합니다. “너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저 닭들에게 속하지 않았다. 너는 애초부터 닭이 아니었다. 너는 독수리다. 너는 내 것이며, 내가 너를 데리러 왔다.” “자, 사랑하는 아가야, 일어나서 내 말을 들어라. 조금만 뛰어올라 작은 날개를 퍼덕여 보렴.” 어미는 농가 마당 위를 빙빙 돌고 있습니다. 아, 바로 이 시간에도 그분이 농가 마당 위를 돌고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너는 내 것이다. 너는 내게 속했다.”
그 음성에는 새끼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이제 “닭장 마당아, 잘 있거라”였습니다. 그 작은 날개를 크게 퍼덕이자, 새끼는 농가 마당의 말뚝 꼭대기에 사뿐히 올라앉았습니다. 자기가 무언가 해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때 교단에 가입한 셈입니다. 오순절 교단 조직 한가운데로 들어간 것입니다.
어미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그보다 더 높이 올라와야 해.”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이나 교단이나 신앙고백 아래 머무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어미가 말했습니다. “그저 한 번 더 뛰어올라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여 보렴. 내가 내 날개로 너를 받아서,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주마.”
친구여, 오늘 아침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병들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신유를 믿지 않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죄인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성령 침례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을 찾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독수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늘 아침 여러분을 업고 데려가시려고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말씀을 펼치실 때, 오늘 아침 우리의 소망을 그분의 영원한 약속에 굳게 걸어 둡시다. 마침내 죽음이 우리를 덮칠 때에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이 말씀들을 생각합시다. 오늘 아침 이 건물 안에 있는 우리 가운데, 오랫동안 농가 마당을 걸어 다닌 독수리가 있습니까? 그저 그리스도인인 척하며 되는대로 사는 그런 생활에 신물이 나고 지쳐 있는 분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아침 말씀을 전하는 동안 어떤 작은 바람이 여러분의 혼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미가 떨어질 깃털들을 바람으로 떼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게 했던 세상의 작은 것들입니다. 그 작은 의심, 그 작은 두려움,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그 얼마간의 세속성, 여러분이 어울려 다니는 그 작은 무리 말입니다. 오늘 아침 그 바람이 그 모든 깃털을 여러분에게서 쓸어 가게 하십시오. 그러고는 아버지의 집으로 오십시오. 오늘 그분은 여러분을 업어 올릴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여기 그것이 필요한 분은 손을 드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오늘 기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요. 손을 드시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도요. 여러분도, 여러분도요. 아! 저 뒤에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형제님도… [테이프 공백.] 시간은 빠른 변화로 가득하고, 땅의 아무것도 흔들림 없이 설 수 없네. 영원한 것들 위에 소망을 세우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영원한 것들 위에 소망을 세우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들으십시오…) 우리의 여정이 끝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였다면, 영광 속의 아름답고 밝은 우리 집을, 기쁨에 찬 우리의 혼이 보리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영원한 것들 위에 소망을 세우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을 붙잡으라!
이제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여 여러분 위에 풍성히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손을 드신 분들, 또 드셨어야 할 분들, 바로 지금 받아들이십시오. 감정을 근거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며 영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근거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은 둥지에 충분히 오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독수리입니다. 그분의 약속에 믿음을 두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바람이 아무리 심하게 흔들어도 그 약속을 꼭 붙드십시오.
어느 날 저는 코요테가 다가오자 어미 독수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미는 그 코요테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 것입니다. 어미가 날개를 활짝 펴자 작은 것들이 그 날개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고, 바람이 산들을 가로질러 돌들을 굴리며 불어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속 육십 마일쯤 되었을 것입니다. 어미는 그저 곧장 그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바로 그 반석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생의 폭풍이 거세집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요르단강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 저는 이미 그분과 그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가서 문제가 생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 아침에는 상황이 험악할 것입니다. 형제여, 달이 빛을 내지 못하고, 해는 검고 핏빛으로 변하며, 별들이 설익은 열매를 단 무화과나무가 무화과를 흔들듯 흔들릴 것입니다. 땅이 요동하며 뿜어내고, 마귀들이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것입니다. 그때 가서 문제가 생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바로 지금 이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습니다. 이미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할 때는 지금입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저는 표를 손에 쥐고 있고 싶습니다. [테이프 공백.]
이것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이른 아침에 기도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어제 지하실로 내려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한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제게 온 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잠시 작별 인사를 하면서, 전에 그랬듯이, 저는 오늘 아침 출발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던 모습이 아니라 독수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던 모습으로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새로운 모형으로 말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이것을 기억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물론 여기 테이프에도 녹음되고 있습니다. 자, 사람들이 치유받지 못하는 한 가지 문제는, … 때문이 아니라… 보십시오. 저는 궁금했습니다. 여기 앉은 한 사람은 치유받는데, 여기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계속, 계속 병이 이어집니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고,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특히 한동안 병을 앓아 온 사람들이 마음속에 만들어 놓는 고정된 심리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은 … 하지 않…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언짢아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를 보십시오. 그 아이는 그저 응석만 받아 주기를 바라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 심리가 굳어집니다. 그 아이를 단단히 흔들어 놓기 전에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자신을 가엾게 여기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아, 내 형편이 이렇다니. 아…” 제가 기도해 준 사람들 가운데 “글쎄요,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나아지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식이 아닙니다. 만일… 만일 그것이 여러분의 태도라면, 아예 그분께 나아가지 마십시오. 그분이 보시기에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정된 심리를 품지 마시고, 힘차고 굳센 믿음으로 오십시오. 이것은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지금 당장 확정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기도해 드리는 자매님이 계십니다. 아마 저기 앉아 계신 룩스 부인이실 것입니다. 저는 룩스 자매님이 나아오는 태도를 늘 좋아했습니다. 제가 저 아래 고등학교에서 집회를 하던 그 밤, 그분은 암으로 죽어 가다가 치유받았습니다. 몇몇 의사들이 그 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치유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곳에 문제가 생겨 제게 오셨습니다. 그냥 다가와서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만 해 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가가 그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아, 그분이 말했습니다. “다 해결됐어요. 다 끝났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니 그것으로 해결됐어요. 그게 전부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 어디 봅시다. 아니,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 이런. 그렇게 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끝난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그 독수리처럼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바람이 흔들게 두고, 그저 그 자리를 꼭 붙드십시오. 끝난 것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고정된 심리, 자기 연민입니다. 그러면 가련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신을 가엾게 여기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가엾게 여겨 주기를 바라게 되고, 여러분 스스로도 자신을 가엾게 여깁니다.
저도 신경이 쇠약해져 바로 저 현관에 앉아 있을 때 그런 상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집회에서 팔 일 동안 먹으러 나오지도, 무엇을 하러 나오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그저 단 위에 머물며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아, 도무지 나아진 것 같지가 않아”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날카로운 외침을 들었습니다. F. F. 보스워스의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라는 작은 책에서 그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고백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육신의 시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그것들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도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어디에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는 백 살이었고, 사라는 아흔 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는 아기를 낳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라의 태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 자신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행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사자 굴 속의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굶주린 사자들이었습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의 그 아이들, 히브리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십이 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는 어떻습니까? 그 여자는 자신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먼 바디매오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그를 잠잠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당신… 그분은 당신을 상대할 시간이 없소.” 그래도 그는 더 크게 외쳤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백부장은 어떻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살겠나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연민을 품지 말고, 그저 말씀을 말하십시오.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 여러분의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의 날개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내 것입니다. 내게 속한 것입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기도받으러 이 타버내클에 오도록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말씀을 붙잡습니다. 상태가 어떻든 나는 그 말씀을 굳게 붙들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을 것입니다.
자,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의사」를 연주해 주십시오. 일어나서 나올 수 없는 분들께는 저희가 가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그리스도를 아는 목사님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