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아버지, 오늘 밤 아버지 앞에 나아와 이런 은혜를 구할 수 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의 영을 부어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널리 부어 주옵소서. 병든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고쳐 주시고, 친히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오늘 밤에는 우리가 이 도시에 온 뒤로 줄곧 고대하던 밤을 주님께서 주시리라고 기대합시다. 오늘 밤 지극히 넘치도록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에는 마태복음 17장에서 읽겠습니다. 평소 말씀을 적어 두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말씀 읽기를 좋아합니다.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도 복이 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사람의 말이므로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올 때마다 성경을 읽으면, 적어도 그만큼은 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복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니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 그분과 이야기하므로 그때에 베드로가 응답하여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게 하옵소서, 하더라.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는데, 보라, 그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오늘 밤에는 마지막 세 단어, 곧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를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디디신 걸음마다 뜻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의인의 걸음은 주께서 정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저 마음에 있는 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한번은 다윗이 선지자 나단 앞에 앉아 말했습니다. “내가 백향목 집에 살면서 나의 하나님의 궤는 장막 아래 있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러자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오늘 밤 우리가 읽은 이 참으로 특별한 성경 말씀에는 아주 두드러진 사건이 나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직자들, 목사님들과 복음 전도자들께서도 틀림없이 이 말씀을 여러 번 설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대목을 설교하든 매번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날부터 수천 명의 목사와 복음 전도자가 같은 주제로 설교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설교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어느 대목을 읽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열립니다. 이것이 그 말씀이 영감으로 주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편지를 쓴다면, 여러분은 아마 고맙게 여기고 얼마 동안 간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미를 다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우리 우정의 가치만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편지는 아마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세대에나, 기록되던 그날과 똑같이 새롭고 생명을 줍니다.
오늘 밤 이 본문에 정말 올바르게 접근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서로 보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모세와 엘리사를 보았으며, 그다음에는 오직 예수님만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앞에서 “여기 서 있는 많은 사람이 사람의 아들이 영광 가운데 있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영광 가운데 오실 모습을 미리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우리는 이 말씀에 새로운 길로, 다른 쪽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서로 꼭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성경 자체로 바로 풀 수 없는 모순된 구절이 있다면 저는 한번 보고 싶습니다. 물론 성경은 비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시고,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만나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인 큰 자리에서도 만나 주십니다. 한번은 오백 명의 형제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또 칠십 명 앞에, 그다음에는 스물네 명, 또는 열두 명, 세 명 앞에, 심지어 한 사람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여겨질지라도, 여러분의 혼은 세상 만 개의 가치가 있습니다. 얼마 전 테네시에서 큰 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 옆에 청년 몇 사람이 서 있었고, 저는 유리 진열장 안을 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몸무게가 150파운드인 사람의 몸을 화학 성분으로 따졌을 때의 가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실제 가치가 얼마인지 알면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150파운드의 남자라면 84센트어치입니다. 별로 비싸지 않지요? 닭 둥지에 뿌릴 석회가 조금 있을 뿐입니다. 아주 적은 양의 칼슘 따위가 있는데, 여러분의 몸속 화학 성분을 모두 달아 보아도 84센트어치입니다.
한 청년이 다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존, 우린 별로 비싸지 않구나, 그렇지?” 저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청년 사이로 들어가 각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일세. 우리 몸은 별로 값이 나가지 않지. 하지만 그 몸 안에는 세상 만 개의 가치가 있는 혼이 있네.” 그런데 우리는 이 84센트짜리를 돌보고 싶어 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이고, 10달러짜리 모자를 씌웁니다. 아, 우리는 이 84센트짜리를 얼마나 정성껏 돌보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혼은 아무 소용돌이에나, 온갖 것에 휩쓸리도록 내버려 둡니다. 눈여겨보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혼을 교회로 끌고 가서는 설교자가 이십 분 설교하는 동안 잠을 자고, 설교가 너무 길었다고 집사 회의를 엽니다. 그 혼은 세상 만 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 가운데 세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의 숫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삼, 칠, 십이, 사십, 오십이라는 수가 어떻게 나오는지, 그 숫자들을 올바로 따라가다 보면 성경을 하나의 큰 그림처럼 맞출 수 있습니다. 삼은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물과 피와 영” 등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 오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신부를 구속하러 오셨고, 다음에는 신부를 데리러 오시며, 그다음에는 혼인 만찬 후에 신부와 함께 오십니다. 여기서는 택하신 세 그릇,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랑과 소망과 사랑... 아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세 사람이, 곧 이 사람들 안에 있던 영들이 그것을 얼마나 아름답게 모형으로 보여 주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믿음입니다. 무엇이든 곧바로 나서서 맞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소망입니다. 요한은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또 말씀에는 셋이 증거, 곧 확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이 확정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셋은 증거였습니다. 누군가를 고발하려면 세 사람이 증언해야 했습니다. 셋이 증거라는 것은 신약에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실 때 언제나 증인들을 세우십니다. 오순절 때 그분께서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증인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증인들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곧 하실 일을 증언하게 하시려고, 그분께서는 이 세 위대한 영을 지닌 사람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든 먼저 그것을 확증하시고 알려 주십니다. 어둠 속에서 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공개적이고 떳떳하게 행하십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 은밀한 방에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 감추어 두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혀 간증하지 않고 자신의 빛을 비추지도 않는 남자나 여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옛적에 바울이 말했듯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이 세 증인은 하나님께서 곧 하실 일을 증언하려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거의 모든 것은 신약의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지 않으실 일을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사형을 선고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행하실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만일 천사를 보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불공정하셨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다른 피조물을 보내셨어도 불공정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히 죄인의 자리를 대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안에 거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라는 몸을 성막으로 삼아 이 땅에 거하셨으며, 죽음을 겪으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습니다.
어젯밤 메시지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분께서는 죽음의 쏘는 침을 자신의 육신으로 받으시고 그 침을 거기서 뽑아내셔야 했습니다. 아, 형제님, 자매님, 하나님께서 죽음의 침을 뽑아내셨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계시이며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저는 죽어 가는 성도들 앞에 서서, 그들이 두 손을 들고 뺨에 눈물을 흘리며 바로 죽음 앞에서 승리를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새 킹제임스역에는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다른 형제님들은 원하시는 어떤 역본으로 가르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킹제임스역이 좋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더 성경답게 느껴집니다. 그 안에는 우리에게 조금 낯설게 들릴 만한 번역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4장에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작은 집 안에 크고 웅장한 저택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지요. 하지만 제임스 왕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던 번역자들은 그 시대에 쓰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구약 시대와 같은 제도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영지, 왕의 영지를 뜻했습니다.
제 생각에 모팻 번역이라고 하는 역본은 킹제임스역보다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내 아버지의 공동주택에는 아파트가 많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치 저 위에 아파트를 세내러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 다... 원래 번역은 이렇습니다. “내 아버지의 왕국에는 궁전이 많도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왕 시대에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번역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같은 제도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것을 그의 집, 또는 그의 영지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땅 곳곳에는 작은 집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은 소작인 집이라고 할 만한 집들입니다. 그의 소작인들이 그 집들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그 부유한 아버지에게 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사업을 돌보아야 했으므로, 이 아들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가정교사를 찾을 때까지 온 나라를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제가 말씀드리는 것 가운데 믿어지는 것은 받아들이십시오. 믿어지지 않는 것은, 제가 체리 파이를 먹을 때 하듯이 한쪽에 놓아두십시오. 씨가 나오면 저는 파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씨만 버리고 파이는 계속 먹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기 변화산에서 보여 주시려던 것은, 구약에서 그들에게 하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 곧 아들을 그 지위에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안에 태어나면 태어날 때부터 아들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여러분 오순절 사람들은 성급하게 넘어갔습니다. 다시 태어나기만 하면 다 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태어나면 물론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직 모든 것의 상속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아들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험과 시련을 거쳐야 했습니다.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먼저 시험을 받고 징계를 받아, 자녀로서 훈련을 받은 뒤에야 그 집안에서 아들의 지위에 세워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가정교사, 다시 말해 선생에게 맡긴 것입니다. 이 선생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보고해야 했습니다. 게으른지, 꾸물거리는지, 아니면 밝고 총명하고 정신이 또렷한 청년인지 보고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을 맡길 올바른 가정교사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모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왕국 안에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는 찾으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가정교사, 곧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대주교나 총감독이나 지방 책임자를 우리의 가정교사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가정교사들, 다른 양육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교사는 공정해야 하며, 봐주거나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을 전해야 합니다. 아버지 앞에 나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아드님이 별로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부에도 뒤처지고 꾸물거립니다”라고 말할 때, 그 가정교사는 얼마나 낯이 붉어지겠습니까! 아들에 관해 그런 소식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가정교사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종종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행실을 전하실 때 어떤 심정이실까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고, 은혜를 베풀어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신 사람들이 그렇게도 꾸물거립니다. 아, 참으로 참담하실 것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 교회가 얼마나 타락해 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수요일 밤에는 기도회에 가는 대신 집에서 텔레비전을 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그런 행실은 조금도 봐주지 않는 분을 통해 곧장 하나님 앞에 전해집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이웃이며 교회의 훌륭한 기둥일지라도, 성령께서는 하나님께 진실을 전하십니다. 가셔서 “여자들, 교회의 딸들이 옷을 벗어 짧고 조그마한 옷만 걸치고, 남자들 앞에 나가 마당의 잔디를 깎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심정이 어떠시겠습니까! 이 말에 화가 치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여러분을 뜨겁게 찔러야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오늘날 문제는 강단 뒤에 겁쟁이들이 너무 많고, 할리우드식 전도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옛날의 복음, 옛날 사도 바울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성령께서 다시 교회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예전에는 성결교인들이나 감리교인들, 올바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가운데 여자들이 매니큐어를, 아니, 얼굴에 바르는 그것을 뭐라고 하든, 그런 것을 바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매니큐어가 맞는 말이 아닌 줄은 압니다만, 저는 그 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예전에는 잘못된 일이었는데, 지금은 서로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리스도인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멍에를 벗어났든지, 여러분의 목사님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그 말씀을 설교하지 않게 되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리이며,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서 증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영화 구경이나 세상의 오락에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서로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친목 단체 모임에 참석하려고 기도회를 빠집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인이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곳에 들어가 먹고 하면서, 거기 있는 조그마한 동전식 음악 재생기에 돈을 넣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썩어 빠진 노래들, 온통 뒤흔들렸다는 따위의 노래들을 틀 수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립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이 정말 뒤흔들릴 날이 올 것입니다. 참말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엄마 아빠가 이곳저곳 쏘다니는 동안 아이를 봐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일요일 아침에 잔뜩 근엄하게 경건한 척하는 얼굴로 교회에 갑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옛날처럼 성령께서 제대로 뒤흔들어 놓으시는 일입니다. 이 나라에 그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진리임을 아십니다. 아, 여러 해 전에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유행이 되었습니다. 의학이 아무리 담배 한 갑마다 화물차로 몇 대분이나 되는 암이 들어 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내년 미국에서는 담배 때문에 죽는 사람이 전쟁에서 양쪽을 합쳐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담배 때문에 생기는 인후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 교회의 약 95퍼센트가 담배를 피운다고 추산합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내부의 적을 말하는데, 바로 그것이 내부의 적입니다. 저는 러시아가 이곳으로 와서 우리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도덕적 타락입니다. 사과를 쪼는 울새가 사과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든 벌레가 상하게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썩은 속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여자들만 나무라시는군요”라고 하십니다. 좋습니다. 남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아내가 그 조그마한 반바지 같은 더러운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남자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집안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데, 아내가 목이 되어 여러분이 어느 쪽으로 돌아설지 지시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세상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 보면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살을 태우려고 해변에 누워 있습니다. 오늘 밤 여기 제 두 딸이 있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처녀가 되어 해변에 누워 살을 태우는 것을 제가 발견한다면,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햇볕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찰스 브래넘의 아들이 손에 나무통 널빤지를 들고 집으로 데려오면서 때릴 때마다 펄쩍펄쩍 뛰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옛날 같은 엄마 아빠가 더 필요합니다. 선반 위에 이런 「트루 스토리」 잡지 따위를 잔뜩 놓아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두고 읽고 믿으며, 자녀들이 주님의 훈계 안에서 자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실 때 어떤 심정이시겠습니까? “아버지의 딸들이 반바지를 입고, 아버지의 아들들은 그것을 허락합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실상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야단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전하려는 것뿐입니다. 너무 심하게 타지 않도록 조금 길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불에 타는 것보다 여기서 조금 따끔하게 데는 편이 낫습니다.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그것을 아버지께 전하셔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성령께서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저는 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저는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온갖 것들로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가고, 아버지의 영께서는 온갖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작은 물병처럼 가만히 앉아서 두리번거리다가, 금세 차 버리면 일어나 집으로 갑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여기 아주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삼십 분도 들을 수 없다니요!
얼마 전에 제가 아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교회의 유력한 교인이었거나 교인이 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아주 많았는데, “나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그를 몰래 데려다가 침례를 주고 교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그 사람을 강단에서 쫓아냈어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강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한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침례를 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지금 저를 물에 푹 담그러 내려가시는 건가요?”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부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부인에게 침례를 줄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순종하는 자녀를 보실 때... 가정교사가 와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님, 아드님은 더없이 훌륭한 아이입니다. 아버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순종하는지 모릅니다. 아버님을 경배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함께 모여 두 손을 들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경배의 대상이시며, 영과 진리로 경배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딱딱해져서 소리 한마디 내지도 못합니다. “아멘”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앉아 있을 뿐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말씀을 아버지께 드리기가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순종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면, 성령께서는 그것을 아버지께 전하시기를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와 꼭 닮았습니다. 아, 정말 꼭 닮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로 하자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아드님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순종합니다.”
그 아들이 변변치 못하더라도 여전히 아들입니다.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언제까지나 아들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올바른 아들이 아니라면, 아무 상도 받지 못한 채 그저 아들로만 계속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아들이라면, 성경에 따라 그 아들을 양자로 삼는 일, 곧 아들의 지위에 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거기서 사람들 앞에 성대한 의식을 행합니다. 이 아들을 높은 곳에 세우고, 그곳에서 양자로 삼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자신의 집안에 양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 뒤에는 수표에 적힌 아들의 이름도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이 효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개적인 의식이므로 모든 사람이 나와서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이며, 우리 가운데 위대하고 강력한 나타남이 없는 이유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는 모든 신령한 은사가 질서 있게 자리 잡은 크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 이미 훨씬 앞서 나아갔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단들과 여러 주의로 갈라지고, 사소한 다툼과 온갖 일로 쪼개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바로잡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복이 거의 다 말라 버린 이유가 그것입니다. 교회들이 차가워지고 식어 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영과 그분의 말씀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성령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왕이 이곳에... 여왕이 이곳 에드먼턴을 방문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깃발을 모두 내걸고 환영의 융단을 깔 것입니다.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이 거리에 서서 사랑하는 여왕이 기차에서 내릴 때 환영할 것입니다. 여왕은 거리를 지나갈 것이고, 도시는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할 것입니다. 여성들은 서서 장미 봉오리를 던지며 여러 방식으로 환영할 것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왕은 그저 여왕일 뿐이며, 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 도시에 오시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 성령 광신자들, 저 광신자들, 쫓아내라. 우리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교단과 맞지 않는다.” 오 하나님, 어리석은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부활의 권능을 보여 주시려고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실 때, 그분의 자녀라고 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며 말합니다. “말도 안 돼.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글쎄, 모르겠어. 저건 텔레파시야.” 성령께서 그런 소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 어떤 심정이시겠습니까!
우리가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두 자기가 공을 들고 뛰려 하기 때문입니다. 미식축구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때는 가장 잘하는 선수에게 공을 넘겨줍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저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 혼자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갈라져 있고, 터치다운을 한 번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오순절교인 모두가 함께 이 큰 삶의 싸움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목사님을 지원하고 형제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대신 여러분은 “저 사람은 하나님의 성회 소속이야. 저 사람은 감리교인이야. 우리는 저 사람과 교제하지 않을 거야. 저 집회에는 결코 협력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합니다. 아, 희석되고 쇠약해진 가련한 사람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는 분열이 없습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입니다. 저는 브래넘 가문에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브래넘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 브래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오순절교, 나사렛교, 필그림 성결교에 속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갑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지켜보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감리교인이었다가 사람들이 조금 화나게 하면 다음 날 침례교로 갑니다. 거기서 조금 나무라면, 무슨...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해서 정곡을 찌르면 필그림 성결교나 나사렛교나 그런 곳으로 또 가 버립니다. 그러니 당연하지요. 여러분은 이명 증서를 이곳저곳 들고 다니느라 거의 다 찢어 놓습니다. 차라리 그 종이에서 이름을 빼고 어린양의 생명책에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같은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모든 형제와 교제하십시오. 모든 견해가 서로 일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며, 같은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별난 점까지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받아 주어야 합니다.
그 아들이 훌륭한 아들, 믿을 만한 아들, 아버지가 신뢰할 수 있는 아들로 판명되면,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그가 상속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실례에서 그것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산꼭대기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세상 사람들과 따로 떼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이 하실 일을 보여 주시려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땅의 증인 셋과 하늘의 증인 셋이 있었습니다. 땅에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고, 하늘에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도록 이 일을 분명히 공식화하려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을 한쪽으로 데려가 자신의 임재의 영광으로 덮으셨습니다. 그들이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분의 옷이 빛같이 빛납니다.”
구약에서 이 양자로 삼는 의식을 위해 아들에게 특별한 예복을 입혔다는 것을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 특별한 예복을 입히셨습니다. 바로 거기, 하늘의 증인들과 땅의 증인들 앞에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늘 그렇듯이 흥분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잠깐만 양해해 주신다면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제가 지난번 여기 왔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언제나 섞인 무리가 따라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 있을 때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고, 섞인 무리가 그 가운데 끼어들었습니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믿는 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진영을 더럽혔습니다. 그 가운데서 고라가 나왔습니다. 고라는 땅에 삼켜졌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면 언제나 섞인 무리가 따라옵니다. 사람들은 흥분합니다. 우리는 흥분에 휩싸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정신으로, 믿음으로, 경건하게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죄가 있고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제 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그렇게 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마자 베드로도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흥분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장막 셋을 짓게 해 주십시오. 율법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를 짓겠습니다. 모세 아래에 모여 모두 율법을 경배할 수 있게 말입니다. 선지자들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를 짓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곧바로 나누어서 교단들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입술을 떠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음성이 크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어떻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시겠습니까?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육체도 없습니다. 율법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율법은 감옥이었습니다. 율법은 와서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말하고 감옥에 넣었지만, 꺼내 줄 권능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죄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율법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을 가두고 정죄하며 말합니다. “너는 하지 말라. 만일 하면 감옥에 갇힌다.” 거기서 나올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율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교단을 만들어 ‘율법 경배자들’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습니다. “모세를 위해 장막을 지읍시다.”
이번에는 다른 쪽을 봅시다. 그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를 지읍시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는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공의가 아니라 긍휼을 원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가 산으로 올라가자 왕이 사람을 보내 불렀지만, 그는 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앉아 있으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저 늙은 광신자, 우리가 가서 끌어내리겠다.” 그래서 병사 오십 명과 대장 한 명을 보냈습니다. 그가 엘리야 앞에 오자, 엘리야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를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그러자 불이 내려와, 곧 공의가 임하여 그 오십 명을 쓸어 버렸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물론 기적의 시대는 지났지. 저 무리에게 우연히 번개가 쳤을 뿐이야. 다른 무리를 보내겠다.” 그래서 다른 무리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이 늙은 선지자 앞에 왔을 때, 그가 공의의 권능 아래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를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또 다른 오십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시듯이, 우리는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긍휼을 원합니다. 언제나 긍휼입니다.
이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봅시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희 교단들을 놓아 버려라.”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은 무엇을 나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공의도, 심판도, 율법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제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저는 그 말씀이 너무나 기쁩니다. 모세가 할 수 없었고 엘리야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축복하고 싶으셨지만, 율법 아래에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었고 심판과 공의 아래에서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아래에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율법은 끝났고, 모든 심판은 끝났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의 말을 들으라.” 다른 모든 것은 다 끝났습니다. 바로 이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을 제외한 온갖 것의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로큰롤을 듣고 싶어 하고, 이런 다른 모든 것을 듣고 싶어 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오늘 밤 이 경기장에 모인 여러분에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결코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은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그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의사가 여러분에게 암이 있어서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말입니다. (그 의사는 정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의 모든 의학 지식은 그것을 고칠 수 없다고 입증합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을 치료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께서는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죄가 있고, 죄를 짓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어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성경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불법을 짊어지셨고, 우리의 모든 범법을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율법도 아니고, 이런 수많은 교단이나 수많은 장벽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담대하게 결단하고 주 예수님을 섬길 남자들과 여자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찾고 있는 것은 새로운 교단이 아닙니다. 십 년 전 제가 여기 왔을 때 시작했다면, 아마 큰 교단의 창시자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집에 와서 “브래넘 형제님, 아, 형제님 손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했을 때 말입니다. 아닙니다. 위에서 누군가 제게 말씀하셨고,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교단을 시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분의 종이 되어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잘 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땅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자신을 장로교인이라고 불러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을 오순절교인이라고 불러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인 남자나 여자입니다. 세상도 그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세상은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 그대로인, 스스로 고백하는 모습 그대로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제가 오늘 밤 그리스도 편이 아니라면 여기 서서 그분을 대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언젠가는 제 피로 제 간증을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기뻐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실패하실 수 없음을 압니다. 그분께서 사랑이심을 압니다.
얼마 전 제가 가족과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어떤 사람이 저를 만나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동안에도 신앙을 지키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신앙이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내와 아기가 저기 무덤에 누워 썩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동생도 저기 누워 있습니다. 모두 불과 며칠 간격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게 생명보다 귀하십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다해 그분을 사랑합니다.”
제 평생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간증을 잠깐 하겠습니다. 죽어 가는 제 아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약 육 년 동안 복음을 설교해 왔습니다. 저는 아기 곁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저는 몰래 들어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격리 병실이었습니다. 작은 눈에 파리들이 들어가 있어서, 저는 파리를 쫓아내고 조그마한 망 같은 것을 덮어 주었습니다. 그 작은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샤론, 아빠 알아보겠니?” 아기는 너무 심하게 고통을 겪어 작은 푸른 눈이 안으로 몰려 있었습니다. 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전날 밤 영안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제 아기를 살려 주시겠습니까? 오, 복되신 주님, 제발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검은 천이 이렇게 펼쳐져 내려오는 것 같더니, 아기가 제 눈앞에서 완전히 가려졌습니다. 그분께서는 제 기도 듣기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일어나 그렇게 아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아기가 떠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탄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도 그분을 섬기겠느냐? 네 아내가 저기 있다. 네 아버지가 막 세상을 떠났고, 네 동생은 저 길에서 죽었으며, 네 아내는 영안실에 있다. 아, 그래, 너는 설교자지. 그분께서 네게 잘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그분을 섬기겠느냐?” 그것은 제가 겪은 가장 잔혹한 시험이었습니다. 제 아기가 거기 있었는데,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알려 주십시오. 제가 바로잡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징계를 받고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저 혼자 남아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저는 아기의 작은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셰리, 사랑하는 아가야, 천사들이 너를 본향으로 데려가려고 오고 있단다. 아빠가 네 작은 몸을 저 아래로 안고 가서 엄마 품에 눕혀 주고, 저기 묘지 언덕에 묻어 줄게. 하지만 어느 영광스러운 날에 아빠가 너를 다시 보게 될 거야.” 저는 그분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죽이실지라도 저는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큰 평안이 제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그 묘지에 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덤불 위에 앉아 구구 울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저 소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며 이렇게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 저편에 한 나라 있으니, 우리가 아름다운 영원이라 부르는 곳, 믿음으로만 그 기슭에 이르네. 한 사람씩 그 문에 들어가, 죽지 않는 이들과 함께 거하리. 언젠가 저 금종들이 그대와 나를 위해 울리리.
얼마 전 부활절에 꽃을 가져다 놓으려고 아들과 함께 묘지에 갔습니다. 막 날이 밝아 올 무렵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은 엄마와 여동생의 무덤에 놓을 화분을 들고 있었습니다. 걸어 내려가면서 저는 모자를 벗었습니다. 아들도 작은 모자를 벗더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서 꽃을 받아, 아기가 묻힌 곳쯤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습니다. “빌리, 얘야, 엄마와 어린 여동생은 거기 누워 있는 게 아니란다. 저기 떠 있는 새벽별이 보이니? 저 멀리 바다 건너 예루살렘 땅에는 오늘 아침 빈 무덤이 있단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어. 엄마와 동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데리고 오실 거야.” 아, 형제님, 참된 사랑은 바로 그 반석 위에 영원히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죽음의 파도가 그 아래에서 부딪쳐도, 멀리 계신 그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분명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여러분에게 참된 사랑을 베푸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복되신 주님,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그저 교단에 충성하는 것뿐이었다면, 저는 오래전에 떠나 버렸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웃기도 울기도 하며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는지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의 팔이 제 가련하고 죄 많은 어깨를 감싸는 것을 느꼈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바퀴 달린 박차 한 쌍 위에 앉아 있던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제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무언가가 이 가련한 아일랜드인의 마음속에 들어왔고,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이미 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왔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지금까지 저를 안전하게 이끌었으며, 앞으로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아, 어느 영광스러운 아침에는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 서쪽으로 돌아가 핏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별들은 빛을 내지 않고, 달은 시야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기 시작하여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그 시간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속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친구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다 해도, 저는 그날 올바로 서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죽어 가던 아내에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사역의 현장에 남아 있겠다고 약속한 대로, 제가 여기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저를 도와주셔서, 어떤 말씀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닿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을 받아들이고 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교단 안에서나 무슨 주의 안에서가 아니라, 결코 실패하지 않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바로 나다. 내가 너희를 사랑과 자유의 삶으로 맞아들이러 왔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밤 회중 가운데 마음 깊이 이렇게 느끼는 분이 계실까 생각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참으로 제 혼 깊은 곳에서, 저를 지켜 주는 그런 사랑이 제게 없다는 것을 압니다...” [녹음이 끊김.] 그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면 한 사람만 보여 주십시오. 여기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나라에 충성하십시오. 그러나 형제님, 무엇보다도... [녹음이 끊김.] 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음을 압니다. 저는 손을 들고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 남자들과 여자들의 손을 보셨습니다. 정말 수십 명이 손을 들었고, 그들은 신실합니다. 성령께서 이제 막 집회 가운데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고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잃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 날들에 그들을 일으키고, 영존하는 생명, 사라지지 않는 생명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손을 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곳에 손을 들어야 했는데도 들지 않은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 그들을 위해서도 똑같이 기도합니다. 죽음 대신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이 시간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대한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음악이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라고 부드럽게 흐르는 동안 말입니다. 주님, 바로 지금 많은 사람이 영원한 결단을 내려 그리스도께 “예”라고 응답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고요한 혼속으로 하늘에서 사랑이 내려오게 하시고, 모든 이해를 뛰어넘으며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그 평안이 임하게 하옵소서. 이 건물 곳곳에서 지금 그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이들을 아버지께 맡겨 드립니다. 아멘. 구주여, 구주여, (이제 영 안에서 편안히 쉬십시오. 이것은 경배입니다.) ...겸손한 부르짖음을,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에,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이제 얼마나 많은 분이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손을 들고, “저는...”이라고 하십시오. 좋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주님은 내 모든 위로의 샘, 내게 생명보다 귀하신 분. 이 땅에서 주님 외에 누가 있으리까? 천국에서 주님 외에 누가 있으리까? 구주여, 구주여, 오,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에,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그렇습니다. 계속 연주해 주십시오. 이 분위기에 푹 잠깁시다. 아, 이런 때는 참으로 드뭅니다. 저는 그저 옛날식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성령의 그 감미로움을 믿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이 저를 광신자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혼속에서는 그저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 제 삶속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아, 얼마나 편안한지요! 무더운 날 크고 오래된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이리저리 감싸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잠깐만 생각을 모아 보시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라고 믿습니까? 물론 믿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계십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실제로 계십니다... 여러분보다 더 실제로 계십니다. 결국 여러분은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영존하는 생명을 갈망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제 나이이거나 더 연세가 많은 여러분은 다시 젊어지기를 갈망합니다. 하루 이틀 안에 그 주제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돌아가는 길에 있다는 것을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그것을 갈망합니까? 이것은 그림자입니다. 이 땅의 장막이 해체되더라도, 이미 우리를 기다리는 장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젊음의 처소로 들어가 다시는, 다시는 늙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것이 우리로 부르게 합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릅니다. 저기에 있는 무언가가 우리로 갈망하게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기서 기다리는 그 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몸으로 옷 입기를 바라며 신음합니다. 그곳에서는 제가 여러분과 악수할 수 있고, 여러분은 결코 늙지 않을 것입니다. 도슨 형제님, 그곳에서는 휠체어에 앉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형제님, 그곳에서는 눈멀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이 실제가 되고, 생명이 참된 생명인 곳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초대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어느 날 우리가 순식간에 되돌아가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이제 긴 기도 줄을 부를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여기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에 한 여자가 제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제 어머니가 바로 밖에 계시는데 아프십니다.” 수백,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이대로는 그분께 갈 수 없습니다. 이 군중을 뚫고 갈 수 없습니다. 여기 제 손수건을 가져다가 그분 위에 놓으십시오.” 그런데 그 여자는 제가 가지 않는다고 저를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어머니가 치유받지 못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죠? 제가 여러분에게 주어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받아들이면 됩니다. 저는 그분을 증언할 뿐입니다. 저는 그분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그분께서 회중 가운데 서 계셨을 때, 회중을 바라보시면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연약함이 그분께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돌아서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회중을 둘러보시며 그 사람을 찾으신 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나무 아래 어디에 있었는지 아셨습니다. 자신에게 오는 사람의 이름을 아셨고, 그 아버지의 이름도, 그 사람의 개인 이름도 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면, 성경은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시는 대제사장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잠시 제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 그리스도께서 이 건물 안에 계십니다. 믿는 여러분, 바로 지금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요셉 안에 계셨습니다. 그로 인해 요셉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엘리야 안에 계셨고, 다윗 안에 계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하고 왕위에서 쫓겨나,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올리브산에 올라가 뒤돌아보며 울었습니다. 팔백 년 후에 다윗의 아들께서 같은 산에 앉아, 거절당하신 채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얼마나 자주 너를 모으려 하였더냐.” 보십시오.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실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고,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곳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제 앞에 있는 이 건물 안에서 제가 아는 분은 여기 앉아 계신 사랑하는 도슨 형제님 외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시는 대제사장”이시라면, 그 사실을 확증해 주신다면...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입증하셨고, 유대인들은, 참된 유대인들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교회는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믿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믿지 않습니다. 이른바 교회, 그 교회 조직 체계는 그분을 믿은 적이 없고, 지금도 믿지 않으며, 앞으로도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너무 무례하시군요”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저는 진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제가 오늘 밤 여기 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여러분이 아신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지켜 온 진리와 복음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정말 모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유지하려면 하나님께 정직하고 여러분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정직하지 않으려 한다면 하나님께도 정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에게 정직할 수 없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떻게 정직할 수 있겠습니까? 어젯밤 제가 여기 서 있을 때, 그 천사가 바로 이 모퉁이에서 움직이셨습니다. 모퉁이에 떠 있는 작고 노란 성스러운 빛을 보고, 제 생각에는 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미 다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했던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매서운 책망이 나왔습니다. 수백 명이 몰려 내려왔습니다. 아시겠죠?
오늘 밤에는 이 건물 안의 느낌이 다릅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지 시험해 봅시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특히 제가 볼 수 있는 분들이, 기름부음이 조금 더 깊어지면 말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게 아무리 큰 은사를 주셨다 해도, 여러분이 그 은사를 믿지 않으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고 있었을 때에도, 그분께서 한 도시에 오시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여기서는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이렇다 할 교육도 받지 않았어. 어디서 이런 지식을 얻었지? 어느 학교에 다녔지?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들은 그분으로 인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강력한 일들을 많이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을 믿었을 때는, 그분께서 빌립에게 기적을 행하시고 그에게... 아니, 나다나엘에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씀하셨을 때는 말입니다... 우물가의 여자에게 기적을 행하시고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런 일을 하실 줄을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아, 그 여자는 가서... 그런데 그분께서는 그 도시에 들어가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떠난 뒤 빌립이 하도록 그 일을 남겨 두셨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말씀을 심으셨고, 빌립이 내려와 사마리아에서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여기 계십니다. 이제 모두 이쪽을 보십시오. 오늘 밤 그리스도께서 이 건물 안에서 세 증인을 통해 자신이 살아 계심을 입증하신다면...
이제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지요, 그분은 포도나무이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 줄기는 가지에 힘을 공급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바라보면서 “브래넘 형제님이 이렇다”, “존이 이렇다”, “아무개가 이렇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바라보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포도나무의 생명이시며 가지의 생명이십니다. 포도나무 안에 있는 똑같은 생명이 가지 안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가지라면, 포도나무 안에 있는 그와 똑같은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라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조금 전에 손을 드신 여러분,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 치유의 권능이 있다면 제 형제는 저 의자에 오 분도 더 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매일 밤 저분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저분을 알고 사랑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로 여기 주머니에는 제 비서에게서 온 편지가 있는데, “꼭 도슨 형제님을 만나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매일 밤 바로 제 앞에 앉아 계십니다.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게 치유의 권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분이 저렇게 앉아 있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 다른 누구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는 그것이 없고, 다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구백 년 전에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면서 값을 치르고 사 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말씀에서 그것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은사와 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오늘 밤 우리가 설교했듯이 셋은 증거입니다. 그분께서 이 회중 어디에서든 세 사람을 택하셔서, 이 땅에 계실 때 전하셨던 동일한 메시지를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동일한 표적으로 확증하신다면, 여러분은 오늘 밤 집으로 가는 길에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 글로바와 그의 친구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온종일 그분과 함께 걸었습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여러 해 동안 그렇게 해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분께서 그들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이 살아 계신 예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겁습니다. 참으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아주 경건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건물 안 어디에 계시든, 어느 곳에 있든 이쪽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브래넘 형제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갑니다. 저는 병들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밤 제게 무엇인가 말씀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아프지 않으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저 아래 있는 아무개를 압니다. 그 사람이 아픕니다. 그... 주 예수님,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포도나무라면... 우리가 주님의 가지라면, 오늘 밤 브래넘 형제님을 통해 말씀하셔서 이 사람에게 확증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믿겠습니다.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시는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검증하라. 주가 말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큰일입니다. 아, 형제님, 흉내 내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 가운데 가짜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된 분까지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계신 주 예수님, 실제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권능과 이적을 행하십니다. 제가 직접... 간접적으로 전 세계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에 온전히 기대게 됩니다. 그러면 심판 때 저는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에드먼턴에 온 것은 이곳으로 오라는 인도를 느꼈기 때문이며, 저는 여기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밤 세 사람을 허락해 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해 주십시오. 바로 지금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경건히 계십시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각자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무언가가 계시되면”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모두 타 언어로 말하면, 누군가 들어와 너희가 다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모두 타 언어로 말한다면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예언하여 마음의 은밀한 것을 드러내면, 그들은 엎드려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는구나’라고 말하리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은 모든 은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영을 성령의 다스림 아래 둡니다. 여러분이 보는 그 사진과 거기 나타난 빛, (저는 심판대에서 오늘 밤의 증인으로 설 것입니다.) 그 빛은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에서 이 피트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제 경건히 계십시오. 이것이 경배입니다. 여러분은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경배입니다. 부디 이해하십시오. 지금은 사랑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경배를 그리스도께 쏟아 드리는 때입니다.
한 부인이 계속 제 앞에 보입니다. 여기, 바로 여기 계신 분입니다. 척추에 문제가 있군요. 척추에 무언가 이상이 있습니다. 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자분인데, 어머니이십니다. 정신적인 질환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평생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허드 부인, 마음을 다해 믿으시면 믿으시는 대로 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인의 성함이지요?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거기 부인,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군요.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셨지만, 빛은 저 부인 위에 있었습니다. 잠깐 저를 보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거기 두 번째 부인 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는 그저 한 분을 정해 놓고... 제가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거짓을 말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으시지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부인께서 이렇게 가까이 앉아 계시고, 천사께서 저 부인 곁에 서 계셨으니, 그냥 믿으십시오. 이제 그저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실 때까지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가 부인께 말씀드리는 동안 말입니다. 아마 그 정도 거리였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까? 거기 두 번째 부인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이지요? 부인 말입니다. 우리가 처음 보는 사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 그 부인에게 위장병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위장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우물가의 여자에게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내셨던 동일한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내셨습니다.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데, 남편분입니다. 남편은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저도 그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분의... 그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제게 드러내 주신다면, 남편의 치유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발진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부인의 성함도 말씀드릴까요? 윌슨 부인입니다. 맞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마음을 다해 믿기만 하십시오. 구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 부인은 어떻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으십니까?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으십니까? 제 말은... 우선 용서하십시오. 제 말은... 용서하십시오. ‘선지자’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종’이라고 하겠습니다. 부인은 척추 문제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까?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이제 그 병이 나았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은 믿으십니다.
마침 그 옆에 앉아 기도하고 계신 이 작은 부인도 그렇습니다. 부인,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흰옷을 입은 작은 부인 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 아니,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드러내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선 부인은 신경이 몹시 예민합니다. 또 척추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연달아 네댓 분쯤 되는군요.
부인의 머리 바로 뒤쪽에 한 부인이 온 힘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손을 들고 계십니다. 연세가 든 여자분, 중년쯤 되는 분입니다. 자매님,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인께서는... 예, 거기 부인의 머리 바로 위로 이쪽을 바라보고 계신 분 말입니다. 마음을 다해 믿으십니까?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제가 그렇게 묻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이 너를 믿도록 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그분으로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혹은 제가 전혀 모르는 어떤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마음을 다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이쪽을 보십시오. 회중이 그 부인에게 내려앉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요. 우선 저 부인은 어떤 일을 위해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눈 때문입니다. 시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것 때문에 기도받고 싶으셨지요? 여전히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으십니까? 안경을 쓰고 계시니, 다른 것을 알아봅시다. 다시 바로 여기 저를 보십시오. 부인은 안경을 쓰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물론이지. 저 사람은 부인이 안경 쓴 것을 볼 수 있었잖아”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쪽을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아십니다.
예, 이제 보입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짐은... 하나, 둘, 셋, 넷이 보입니다. 남자아이 네 명입니다. 그 아이들이 믿음에서 떠났고, 부인은 그들의 혼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아이는 부인의 어린 딸입니다.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 어린 소녀는 믿음에서 떠나 구원받지 못한 올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맞니, 얘야? 어린 소녀야, 맞으면 손을 들어 보렴. 좋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한 바로 그것을 주십니다. 믿으십니까?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그러나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것을 믿을 때에만 행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 여러분 자신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여기, 손에 손수건을 들고 서 있는 한 청년 위에 방금 빛이 보였습니다. 바로 여기 뒤쪽입니다. 청년, 바로 자네입니다. 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지요? 그분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자네에게 말하도록 저를 보내셨다고 믿습니까? 좋습니다. 우물가의 여자에게, 또는 찾아왔던 나다나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제게 드러내 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자네는 평생 신경과민으로 고생했습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온갖 거리낌과 걱정, 이런저런 것이 다 있습니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언제나 모든 일에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린 소년일 때의 모습이 보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작은 마찰과 일들 때문에 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계속해서 불안했습니다. 그렇지요? 맞지 않습니까? 맞으면 손을 들고 그 손수건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끝났습니다.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자네가 어릴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신 분께서는 틀림없이 앞날도 아십니다. 집에 가서 마음껏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바로 그 뒤에 작은 부인이 손을 입에 대고 앉아 기도하고 계십니다. 부인, 제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부인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제게 드러내 주신다면, 필요한 것을 예수님께서 공급해 주시도록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어... 좋습니다. 부인에게는 심장병이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입니다. 주로 음식을 먹고 누운 뒤에 그렇습니다. 때로는 심장 주위가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하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편해집니다. 심장의 신경성 증상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경성 심장 질환이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치유하신다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손을 드십시오. 그러면 이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이곳에 믿음이 있는 누구에게든, 바라보고 믿어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화 속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분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믿지 않으십니까... 바로 저 뒤에 앉아 있는 남자분, 전립선 질환이 있는 분 말입니다. 머리 위에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진 채 저 뒤에 앉아 계십니다. 선생님, 지금 믿으시고 받아들이시면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문제로 기도하고 계시고, 밤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십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시면 구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또 누가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누가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손을 그대로 들고 계십시오.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이 장엄한 주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 저는 이 죄인들이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주님께서 분명 행하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을 비틀어 쥐는 대신 자기 마음을 쥐어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서 그저 마음을 쥐어짜며 “하나님, 주님을 믿습니다. 제게서 모든 두려움과 의심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하나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건물 곳곳의 모든 사람이 오늘 밤 치유받게 해 주십시오. 바로 지금 주님의 성령께서 오셔서 이 회중을 휩쓸고 지나가시며 병든 사람을 모두 치유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치유할 수 없으며 다른 어떤 사람도 치유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위해 이 일을 이루셨으며, 오늘 밤 살아 계신 채 이 건물 안에 오셔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에게 입증하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시며,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믿음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려 하십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치유받기에 충분한 믿음이 단단히 자리 잡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을 믿으십니까? 조금 전에 손을 드신 여러분, 잠깐 이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죄인들과 그런 분들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 앞으로 나오십시오. 좋습니다, 형제님. 바로 여기로 오십시오. 악수하고 싶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녹음이 끊김.] “연약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구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눈먼 어린 소년에게 시력을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접이식 칼이 아이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했습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고개를 들라고 말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마십시오. 제가 두 번 기도 줄을 불렀지만, 그 가운데 기적을 보여 줄 만한 경우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이...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지 아닐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분께 구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만 아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분임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이제 모두 눈을 내리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마음을 숙이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때때로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생각하시는 줄 압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실 때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셨던 것과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의 아버지가 지금 바로 여기 서 계십니다. 이 아이는 조금 전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걸어 나와 저와 악수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비틀거리며 옆쪽에 부딪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눈이 멀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예”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남자에게 물으니, 그가 “아버지가 말씀해 주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거기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접이식 칼로 아이의 눈을 찔러 멀게 한 것입니다. 이 아이는 아직 어려서 스스로 많은 믿음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눈을 찔려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 아이가 여러분의 아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해 주시리라고 신뢰합니다. 이 에드먼턴 사람들이 제가 거짓을 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도록 말입니다.
자, 얘야, 이렇게 머리를 내게 기대 보렴. 이제 주 예수님께 나아왔으니 착한 아이가 되겠니? 일요일 학교에 가서 그분을 경배하겠니? 하나님께서 시력을 주셔서 다시 다닐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말이다. 그러겠니? [소년이 “저는 갈 일요일 학교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갈 일요일 학교가 없다고? 이 나라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얘야, 네게 찾아와 주실 예수님이 계신단다. 고개를 숙입시다. 주님, 하늘들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영존하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여. 이 사랑스러운 어린 소년이 저 아래에서 그곳에 부딪치는 것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는 눈이 멀었습니다. 오 하나님, 이 가엾은 어린 소년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나님, 아이가 이대로 지내게 하지 마십시오. 주님만이 눈먼 자를 보게 하실 수 있습니다. 벌써 사 년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 아이에게 시력을 주옵소서.
저는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고 에드먼턴에 왔습니다. 오 하나님,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 이 교회 안에서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저희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오늘 밤 저희에게 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을 구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러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기적을 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연약하고 음란한 세대가 그런 것을 구한다”고 말씀하셨고, 주어질 기적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밤마다 그 기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 사람의 눈에 손을 대어 볼 수 있게 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눈멀게 하는 영이 그의 눈에서 떠났을 때, 귀먹게 하는 영이 그의 귀에서 떠났을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기도합니다. 칼에 찔려 못 쓰게 된 이 눈을 주님께서... 하늘들과 땅의 위대하신 창조주께서 어떻게든 여기서 기적을 행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말씀이 걸려 있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이 눈먼 어린 소년의 눈에 시력을 회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복이 지금 임하기를 구합니다.
모두 고개를 숙이십시오. 아무도 보지 마십시오. 제 말이 들리십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이제 얘야, 눈꺼풀은 감은 채 고개를 들어 보렴. 이제 나를 보렴. 내가 보이니? 내 손가락이 보이니? 내 손이 보이니? 내가... 내가 손가락을 들고 있었니? 내 코를 만질 수 있겠니? 내 코가 보이니? 손가락을 들어 내 코를 만질 수 있는지 해 보렴. 그렇지. 여기 위를 보고 저것이... 무엇처럼 보이니? 불빛 같니? 몇 개인지 셀 수 있겠니? 이제 여러분, 고개를 드십시오. 이 어린 소년의 눈에 시력이 돌아왔습니다. 얘야, 저 불빛들을 가리켜서 네가 저 불빛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렴. 이쪽을 가리키고, 여기 있는 불빛들도 보여 주렴. 저 반대편과 이 위쪽도 말이다. 아멘. 이제 여기를 보렴. 내 코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렴. 여기, 보여 주렴. 이쪽으로 손을 뻗어 만져 보렴. 우리 모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라고 합시다.
이제 아버님,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십시오. 이 집회가 끝날 때, 집회에 참석하시게 되면 아이를 여기 데려와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구주여,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에, 오,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방금 여기 있었던 어린 소년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저는 잠깐 기다렸습니다. 물론 아이가 이렇게 가까이 서 있고 그 위에 기름부음이 있는 동안에는, 그 눈은 반드시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무엇인가를 구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거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저는 이 어린 소년에게 시력이 계속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
여기는 가능하면 아홉 시 삼십 분에 마쳐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시간이 훨씬 지났습니다. 시간을 넘겨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분, 관리인들과 모든 관계자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밤 시간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제단에 회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여러분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그분을 경배합시다. 그분께 구하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분의 복된 임재 안으로 여러분을 받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이제 이 도시의 목회자들이 앞으로 나와, 회개하는 이 사람들 주위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 도시뿐 아니라 다른 도시의 목회자들도 이리로 와서,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들 주위에 서 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로 이들을 초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 속해 계시든, 이곳으로 나와 이 사람들이 여러분의 교회에 오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십시오. 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보시고, 여러분의 구역이나 가까운 곳에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정착할 교회를 갖기 원합니다. 아직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물로 침례를 주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3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이 명령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죄들을 용서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목회자 형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원하시면 이리로 나와 주십시오.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모두 고개를 숙입시다. 목회자 여러분, 그들이 거기 서 있는 동안 그들 위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잃어버린 혼들에게 관심을 가진 모든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밤 성령께서 일하시는 가운데 우리가 여기 오랫동안 있었지만, 오 하나님, 우리 앞에는 영원이 있습니다. 이들이 나아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말하자면 어느 날 저 바다를 건너갈 표를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밤 아버지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셨고, 많은 사람이 겸손히 이 앞으로 걸어 나와 제단 주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비밀들을 아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들을 사랑으로 주님의 품에 안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이들이 자기 힘으로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음을 저희는 압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이 없으면 몸은 완전히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영이 결단을 내렸고, 이제 그들은 그 결단을 고백하려고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택했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님께서 이들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이 메시지의 열매인 이들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께 드립니다. 영원하고 복되신 아버지, 이들을 완전한 평안 가운데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떠한 해나 위험도 이들에게 닥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병든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은 누구나 지금 그 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들이 죄들을 고백하고 지금 여기 계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영을 크게 나타내심으로 여기 계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의 모든 범법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에서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 있던 죄인들이 이제 주 예수님을 향해 깨어났습니다. 세상이 지어지기 전에 주님께서는 이들을 영생으로 미리 예정하셨고, 오늘 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나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지체하신다면, 언젠가 이들의 몸은 틀림없이 이 땅 어디엔가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천 년 동안 기다려 온 그 크고 주목할 만한 날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그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날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이들이 다윗처럼 말하게 해 주십시오.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고, 그분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 예수님께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일어나 그분의 모습으로 나올 것입니다. 주님, 이 믿음으로 이들을 완전한 평안 가운데 지켜 주십시오. 이들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중에는 이미 건너가신 분이 많고, 기도를 드리신 분들도 있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오늘 밤 이 일을 의식하고 알 수 있다면, 방황하던 자녀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천사들이 이것을 증언합니다. 오늘 밤 복음으로 지옥의 검은 깃발들이 패배했음을 우리는 압니다. 죄인들이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천국의 흰 깃발들과 천사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들이 영생을 얻도록 이제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를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제 여기 제단에 서 계신 여러분, 참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신다면 그분을 여러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며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증거로, 회중 쪽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회중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회중 여러분 모두,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교제의 손을 들어 주 예수님의 몸 안에서 이들을 교제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시간입니까! 이제 잠시 뒤, 집회가 끝나는 대로 이 목회자들과 악수하십시오. 정착할 좋은 교회를 찾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십시오. 잠시 뒤에 사람들이 와서 이분들과 악수하게 하겠습니다. 그 전에, 우리의 좋은 목사님이신 라스무센 형제님께 이 마이크 앞으로 나오셔서 이제 예배를 마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