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소스만 형제님. 기도하는 동안 잠시 그대로 서 계시겠습니다. 복되신 아버지, 오늘 밤 우리가 여기 모인 일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흠모로 마음이 가득 차서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저녁마다 이곳에 기도를 부탁하는 손수건들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마치는 기도를 드릴 때 그것들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손수건을 통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저희도 기꺼이 그렇게 해 드립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을 놓치거든 인디애나주 제퍼슨빌로 편지를 보내 기도한 천을 요청하십시오. 무료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들을 보관해 둡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의 사도행전 19장 말씀 있는 곳에 그것들을 넣어 둡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용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손수건들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보내오는 간증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작은 증표에 불과하지만,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님은 미신을 믿는다”고 말한 일이 생각납니다. 하룻밤에 커다란 풀섬유 자루 여덟이나 아홉 개에 손수건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삼베 자루라고 부릅니다. 그 자루들이 모두 강단에 놓여 있었고, 기도를 받으려는 손수건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성경을 몰랐습니다. 제가 그 손수건들을 놓고 기도한다는 이유로 미신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신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일입니다.
지난... 아니, 오늘 아침에 이 도시의 사역자들과 아침 식사 모임에 오신 다른 지역의 사역자들과 함께 참으로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지금껏 참석한 작은 교제 모임 가운데 가장 좋았던 모임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습니다. 교파는 서로 달랐습니다. 침례교를 비롯해 여러 교파의 분들이 나가시면서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아침 호텔 방에서 그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을 때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와 함께해 주실 수 있었다면, 오늘 밤 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령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큰일들을 행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어떤 것을 깨뜨리려고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제가 대개 느끼게 되는 어떤 기운 말입니다... 이곳 박람회장은 훌륭한 장소입니다.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런 곳은 보통 경주나 로데오 같은 오락 행사에 사용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면 여러분은 저를 정말 미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이 그런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참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하는 집회보다 더 좋은 집회는 어디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몰아내기가, 그것을 대적하여 설교하고 물리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장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고맙고, 우리는 분명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기기를 조작해 주시는 훌륭한 분은 제가 약 십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도 이 일을 해 주셨던 분인 것 같습니다. 저 밖에서 만나 뵈었는데, 참 좋은 분입니다. 모든 분들이 아주 친절하게 해 주셨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내에서는 도박도 하고 온갖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운이 있는 것입니다. 오락 장소에 가면 그런 영을 느끼게 됩니다. 도박하는 곳에 가면 그런 영이 있습니다. 경배하는 곳에 가면 우리는 경배하고 싶고, 경배하는 영을 갖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기도로 저를 도와 온갖 무관심을 밀어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병든 분들 가운데 더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물러나기를 힘써 기다려 왔습니다. 그래야 아주 많은 병자들을 이 강단으로 차례로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리가 오늘 밤 그러는데, 오늘 오후에 기도 카드를 더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수 없는 까닭은, 카드를 나누어 주는 시간이 여섯 시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사람이 네댓 명쯤밖에 없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아주 적은 수였고, 그중에는 이미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누어 드릴 수 있는 만큼 나누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밤에는 그 기도 카드를 받으신 분들을 이 강단으로 모셔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은 그것인 것 같습니다. 왜 유대인이 되고 싶어 하시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의 관습입니다. 성경에서 이방인들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안수하는 것이지요... 이방인은 “저는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오심을 감당할 자격도 없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안수받기를 원하는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것이... 제 사역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 같은 분들 가운데서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른 지역에 가면...
아프리카에서는 단지 다섯 사람이 강단을 지나가는 동안 이슬람교도들 앞에서 그런 분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한꺼번에 이슬람교도 만 명이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심을 부인하던 사람들이 모두 합해서 삼만 명이나 나왔습니다. 그 작은 기적 하나가 일어난 것만으로 말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거의 이십만 명 전체를 위해 한꺼번에 기도했습니다. 그저 모두를 위한 한 번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F. F. 보스워스 박사님이... 보스워스 선생님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캐나다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나라를 다니셨지요. 이제 그분은 인생길의 끝에 이르고 계십니다. 아흔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제 더는 밖에 나가실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마치고 그분을 찾아뵈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노인입니다. 저도 F. F. 보스워스처럼 인생길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랑스럽고 경건하고 성결한 분입니다.
그분이 그곳에 서 계셨습니다. 이른바 전도 집회식 인원 계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보스워스 선생님은 무엇이든 부풀려 말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강단에서 한 사람이 치유받은 뒤 짧게 한 번 기도했을 때, 치유받은 사람이 이만 오천 명이라고 그분은 추산하셨습니다. 그 한 번의 기도 뒤에 사람들이 쓰던 목발, 휠체어, 들것, 몽둥이와 보행을 돕던 물건들을 커다란 트럭 일곱 대에 가득 싣고 그 구내에서 실어 냈습니다. 큰 가축 운반 트럭 일곱 대에 가득 실은 것입니다. 일곱 대 분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온갖 학교를 다 다녔고, 학교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참 딱하게도, 한 사람은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렸다고 하고, 또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렸다고 합니다. 불쌍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참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믿는 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우리는 믿는 체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사람들이 거기서 완전한 실패를 보게 되니 믿음이 꺼져 버립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아도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렇게 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실 수 없습니다. 한 시간쯤 전에 저는 기도하던 방에서 내다보며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오늘 밤 집회를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어린 딸아이가 달려왔습니다. 제가 방에서 기도하거나 예배를 준비할 때는 가족들이 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신이 나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빠, 어젯밤 강단에 섰던 눈먼 꼬마 있잖아요. 그 아이가 손에 요요를 들고 저기 길을 걸어가요.”
창밖을 내다보니, 제가 알아볼 수 있는 한 그 아이의 아버지가 흰색 정장 웃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인상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어린아이가 요요를 가지고 놀면서 길을 따라 교회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맞는지 궁금합니다. 맞다면 아버지께서 어디 계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길을 따라 가고 있었는데 무슨 거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쪽 어딘가입니다. 네, 오늘 밤 저 위 발코니에 계시는군요. 길을 걸으며 요요를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무척 행복했습니다. 형제님도 행복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아이의 시력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습니까? 많이 달라진 것이 보이십니까? 뭐라고요? 시력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아이는 보위 나이프인지, 작은 잭나이프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그런 칼에 찔려 눈을 잃었습니다. 무엇이 일어나야 합니까? 그곳에 창조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밤, 앞으로 있을 그 예배에서 아브라함과 믿음에 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밤에 하겠습니다. 자, 오늘 밤에는 바로 예배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 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모두 내일 밤에 꼭 나오십시오. 오늘 밤에 카드를 나누어 드리는 까닭은 내일 밤 설교가 끝난 뒤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 모두에게 안수하며 기도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가능하다면 한 분도 빠짐없이 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서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받으러 여기 오실 때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달라고 오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이곳에 오실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금 계신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셔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사역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저 호텐토트족이나 그곳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똑똑하고 교육받은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한 가지 방향으로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런 이유로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자기들 방식으로만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참된 뜻을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죽으실 때 모든 구원과 모든 치유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자기에게 여러분을 고칠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런 말을 결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는 정신적으로든 성경적으로든 분명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틀린 사람입니다. 어쩌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혼란스러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보았을지도... 그가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그에게 사람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면, 그가 그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천사는 성경이 부인하는 말을 그에게 한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고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다른 누구도 거기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그분이 갈보리에서 대신 받으신 고난을 믿는 여러분 각자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가장 분명한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제든 추기경이든 주교든 교황이든,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는 이미 용서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값을 치르고 마련해 주신 사면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복음임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님. 그러므로 제 손에는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다른 어느 사람의 손에도 누구를 고칠 능력이 없습니다. 그 권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있습니다. 거기에 권능이 있습니다. 자, 성경 말씀을 펴고 잠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시간을 보겠습니다. 제때에 마치게 되면 저기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 가운데 몇 분을 이 강단으로 불러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 믿음이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치유받을 수 있는 지점에 이르도록 해 보겠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여기 앞에 소아마비를 앓는 어린 소년이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함께 계신 분은 아마 어머니일 것입니다. 보조기를 찬 어린 소년이 둘 있습니다. 저기 앉은 어린 소년은 제 어린 조셉보다 조금 더 클 뿐입니다. 제 안에 그 아이를 고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곧장 내려가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만일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저지른 어떤 일이 원인이 되었다면... 어쩌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저지른 무슨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 아이들의 조부모의 죄일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자녀들의 불법을 삼사 대까지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는 제게 밝혀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고치는 일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제가 평생 사귄 가장 좋은 친구들 가운데 한 분인 도슨 형제님이 앉아 계십니다. 사역자이자 복음의 사역자이며,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입니다. 매일 밤 저는 이곳에 서서 몇 분마다 그분을 살펴봅니다. 계속 몸을 돌려 도슨 형제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보이는지 확인합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분을 휠체어에 앉게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것에 의문을 품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선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도슨 형제님은 정직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에드먼턴의 눈을 열기 위한 일이기를 바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잠시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한마음이 된다면... 오늘 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해 함께 뛰게 하기만 한다면, 지극히 풍성한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풍성히 먹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예배에 참여하고 경배에 참여하십시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으시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그저... 그것은 그리 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경배에 깊이 들어가십시오. “오, 예수님, 주님은 참으로 얼마나 사랑스러우신지요. 주님이 이토록 다정하신 줄 몰랐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사방에 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밤 읽을 성경 본문은 요한계시록 6장에서 택하고자 합니다. 6장의 일부를 읽겠습니다. 어린양께서 그 봉인들 중 하나를 여실 때에 내가 보았고... 또 내가 들으니 네 짐승 중 하나가 천둥소리 같은 소리로 이르되, 와서 보라, 하더라. 이에 내가 보니, 보라, 흰말이라.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왕관을 받으매 그가 나가서 정복하고 또 정복하려 하더라. 오늘 밤 제 설교 제목은 “위대한 정복자”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위대한 콘스탄티누스가 교회를 해방시키러 로마로 가던 길에 섰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교회는 여러 해 동안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그곳으로 가던 도중, 어느 날 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속에서 무언가가 그에게 말하며 군사들의 방패에 흰 십자가를 그리라고, 그것으로 승리하리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 모든 군사를 깨우고 그들의 방패에 흰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녹음 공백]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정복자가 되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 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박해 아래서도 줄곧 전진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강을 건너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산 안젤로 카타콤으로 내려갔습니다. 지하 묘지를 지나가면서 박해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묻혔던 무덤들을 보았습니다... 모퉁이마다 조그맣고 짧은 무덤들이 있었습니다. 아기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콜로세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녹음 공백]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한 다음 그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곤 했습니다.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결정하면 검투사들이 벽 너머로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아래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서로 싸웠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쓰러지면 살려 줄지 말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했고, 그들은 그 그리스도인을 죽였습니다.
그곳에 서 있으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검투사는 ‘엄지를 아래로’라고 했지만, 저는 ‘두 손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오 하나님, 마지막 날에 그들을 승리 가운데 일으켜 주옵소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 귀한 믿음, 성경은 그것을 “불로 단련한 순금”이라고 했습니다. 그 커다란 경기장 밑의 굴들을 열곤 했습니다. 관객들은 지금처럼 둘러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관람석이라고 부르는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래에는 드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말뚝에 묶어 불태워 죽였습니다. 굶주린 사자와 호랑이들을 가둔 문과 덧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짐승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무리에게 달려들어 몸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굳게 섰던 그 사람들의 믿음... 그 모든 일 속에서도 교회는 줄곧 힘차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와서 그들을 로마의 박해에서 해방시키고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합친 뒤에는... 거기서 처음 가톨릭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교회는 박해받는 동안 내내 얻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십 년 만에 잃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안락한 꽃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해를 충분히 받지 않습니다. 충분히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사슬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고리에서 가장 강합니다. 사람은 압박을 받을 때 자기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압박을 받으면 그 사람의 참된 성품이 나타납니다. 잔뜩 화나게 하고 들쑤셔 놓으면 진짜 그 사람이 나옵니다. 성질이 있다면 그것이 드러납니다. 온유하고 부드럽다면 그것이 드러납니다. 한번 압박을 가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 결함이 있는지 보시려고 시험하십니다.
얼마 전 경제 공황 때는 기도 모임에 나온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수 공장에서 일할 수 있고, 노동조합 덕분에 돈을 너무 많이 받아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되니, 거의 설득해서 집회에 데려와야 합니다. 그들은 온갖 것을 다... 사람들은 더는 설교를 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여기 올라와 광대 노릇을 하게 해 보십시오. 첫날 밤부터 이 강당이 꽉 찰 것입니다. 아니면 누군가 여기 올라와 이것저것 딸랑거리며 강단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몇 번 소리를 지르고, 한두 번 재주넘기를 하게 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복음이 아니라 오락을 원합니다. 형제님, 제가 복음 대신 다른 것을 내놓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성경을 덮고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권능 가운데 전하는데도 사람들이 이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텔레비전도 너무 많고 라디오 프로그램과 오락거리도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합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너무 많이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 설교를 오락으로 대신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원했던 옛 복음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밤에도 좋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자기 피로 간증을 확증한 사도 바울에게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똑같이 감격시킵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 결코 그 권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아, 안락함에 빠져서... 얼마 전, 몇 달 전에 저는 스위스에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무관심하던지요. 참으로 무관심했습니다. 교회가 들고일어나 박해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토요일 밤에 집회를 마쳤고, 저는 그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시작했습니다. 일요일 신문을 받아 보니,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그 사람을 조롱하는 꼴이 참으로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들은 “그가 와서는 평범한 호텔에 묵으려고 하지 않았다. 최고급 호텔이어야만 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런 도구를 써서 머리에 웨이브를 넣었다”고 했습니다. 또 “옷에는 주름 하나 없이, 강단으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멋진 옷 상자 속에라도 들어갈 사람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설교할 때는 요란한 미국인 비누 외판원처럼 손을 휘둘렀다”고 했습니다. 또한 “향수를 어찌나 뿌렸는지 십 피트 밖에서도 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았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피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츠빙글리의 교리가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 요셉의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거나, 아니면 세상에 있었던 가장 큰 사기꾼이셨을 것입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조금도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고한 신성을 설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다면, 제가 나섰을 때는 화가 미치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가니 얼마나 다르던지요. 그들은 전쟁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울고 간청하고 금식하던 그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 뒤 우리에게도 좀 어려움을 주셔야 할지 모릅니다. 원자폭탄 몇 개나 그와 같은 것으로 우리 정신이 들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분께는 그렇게 하실 방법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분은 민족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아들인 이스라엘이 그분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때도 봐주지 않으셨습니다. 심판을 보내셨습니다.
얼마 전 저는 스위스에, 아니 스웨덴에 들어갔습니다. 핀란드에서 나온 길이었습니다. 어둠과 대낮만큼이나 달랐습니다. 핀란드는 전쟁으로 황폐해져 있었고, 그곳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에 충만하고 영적이었습니다. 노르웨이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 직후여서 시내에는 여자들만 무리 지어 다녔습니다. 남편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자들끼리 함께 걸어 다녔습니다. 과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에 들어가니 너무나 달랐습니다. 백삼십 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것입니다. 박해가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부르시던 옛 아일랜드 노래가 생각납니다. 다른 이들은 상을 얻으려 싸우며 피의 바다를 항해했는데, 나는 안락한 꽃침대에 실려 천국 본향에 가야 하는가? 아니, 다스리려면 나도 싸워야 하리. 주여, 내 용기를 더하소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정복자들입니다.
몇 달 전 저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작은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작은 책을 살펴보니 나폴레옹의 간략한 전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얼마나 프랑스 사람들을 미워했는지, 어떻게 그곳으로 갔는지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의 군대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위대한 정복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젊은 나이인 서른세 살에 당시 알려진 온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브뤼셀 바로 밖 워털루에는 그가 끝을 맞은 곳을 보여 주려고 옛 유물들을 모두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금주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눈이 바깥으로 돌아가고 초점마저 흐려진, 술에 절어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죽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세상을 정복했어도 실패자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위스의 위대한 아르놀트 폰 빈켈리트를 얼마나 자주, 너무도 자주 잊고 지냈습니까. 오래전에 독일 사람들 일부가 스위스로 쳐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던 작은 민족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산과 골짜기에 자그마한 집들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잘 훈련된 대군이 스위스를 침략했습니다. 작은 스위스 군대는 돌과 막대기, 조그만 낫, 그 밖에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농장의 물건들을 무엇이든 집어 들고 골짜기에 모여 다가오는 군대를 맞았습니다. 이 소수의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등지고 몰려서 건너편에서 오는 적들을 바라보니, 마치 벽돌담 같았습니다. 모든 병사가 발을 완벽하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큰 갑옷과 방패, 길고 긴 창을 갖추고 모두가 얼마나 정비와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꼭 벽돌담 같았습니다. 그런 군대에 비하면 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패배할 것을 알았습니다. 집은 불타고 아내들은 능욕당하며 아이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자기들의 작은 살림은 모두 사라질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사람이, 스위스가 있는 한 잊히지 않을 사람이 그 작은 군대 앞에 나섰습니다. 아르놀트 폰 빈켈리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사나이들이여, 오늘 나는 스위스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오늘 나는 정복할 것입니다. 저 언덕 너머에는 작고 하얀 집이 있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세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조금 있으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스위스를 위해 내 목숨을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르놀트 폰 빈켈리트,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는 다가오는 군대를 향해 돌아서서 전체를 살폈습니다. 창들이 가장 빽빽하게 모여 어두워 보이는 곳을 찾았습니다. 손에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던졌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십시오. 여러분에게 있는 무기로 온 힘을 다해 싸우십시오.” 그는 막대기를 던져 버리고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습니다. “자유를 위한 길을 내라! 자유를 위한 길을 내라!”
그가 그 거대한 창 무리를 향해 달려들자, 번쩍이는 창 백 개가 그를 꿰어 올리려고 뻗어 나왔습니다. 그 속으로 몸을 던지면서 그는 두 팔을 벌려 창들을 한아름 움켜잡아 자기 가슴에 찔러 넣고 외쳤습니다. “자유를 위한 길을 내라!” 그렇게 드러난 용맹함 앞에서 적군은 흐트러졌습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막대기와 몽둥이를 들고 따라붙어 그 군대를 자기 땅에서 몰아냈습니다. 그 뒤로 그들은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한 사람에게 정복자가 되려는 열정과 용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전 스위스 알프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그의 이름만 말하면 사람들의 뺨으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 위대하고 용맹한 아르놀트 폰 빈켈리트에게 그토록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용맹함에 견줄 만한 일은 거의 없었으며, 그것을 능가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아주 작은 일이 되게 한 어느 날이 왔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죽였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보내셨지만 돌로 쳤습니다... 마귀의 군대가 다가오며 아담의 자손들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소망도, 하나님도, 긍휼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병과 질병과 무지 속에서 그들에게는 소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무엇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한 분이 앞으로 나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제가 땅으로 가서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을 위해 제 생명을 바쳐야겠습니다.” 그분은 땅에 오셔서 서른세 해를 사셨습니다. 땅을 두루 살피시고 사람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알아내셨습니다.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분은 갈보리로 달려가 칼들을, 죽음의 칼들을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그분의 복을 받은 용사로서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나폴레옹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나폴레옹이 서른세 살에 이루지 못한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서른세 살에 정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정복자이십니다. 나폴레옹은 서른세 살 때 총과 총알과 대포와 칼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만 명의 매춘부가 그의 군대를 따라다녔다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온갖 죄와 증오와 악의뿐이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멸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른세 살 때 마귀들을 정복하셨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때가 되기 전에 왜 우리를 괴롭히러 오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장차 받을 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질병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분의 손이 닿자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서른세 살 때 그분은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한 여자가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말씀 듣는 것을 참 좋아해요. 하지만 선생님이 잘못하고 계시는 것이 하나 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잘못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고치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고한 신성을 믿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선지자, 그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알겠지만 저는 누구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종교를 두둔하거나 비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치유 같은 것은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메리 베이커와 그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가장 귀한 핵심이 모두 사라집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생명줄입니다. 잠시 멈추고 그것을 자세히 다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근본주의자라고 하셨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저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성경으로 그분이 한낱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드리면 어떡하시겠어요? 선생님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만들고 계세요.” 저는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셨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그분께 신성이 없었다는 것을 선생님의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한번 보여 주시지요. 성경이 그분을 한낱 사람이라고 했다면 저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여자는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요한복음 11장, 요한복음의 열한 번째 장을 펴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내려가실 때, 성경은 그분이 우셨다고 했어요. 브래넘 선생님, 어떻게 신성을 지니신 분이 우실 수 있겠어요? 신성을 지니셨다면 우실 수 없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그분이 누구셨는지를 보지 못하시는군요. 겉으로는 사람이셨지만, 속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실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몸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사람의 무덤 곁에 서서 그 작으신 몸을 곧추세우셨을 때... 성경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몸을 곧추세우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두 발로 서서 다시 살아났을 때, 그것은 사람 이상이었습니다.” 바로 그 위대한 정복자이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말씀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보다 더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셔서 배가 고파 무화과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으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배고프실 때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그것은 사람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작은 배 뒤편에 누워 계실 때 그분은 사람이셨습니다. 작은 배가 병마개처럼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바다의 마귀 만이 그날 밤 그분을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분은 피곤하셨습니다. 피곤한 사람이셨습니다. 배 뒤편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 앞으로 걸어가 배의 돛을 걷는 밧줄에 발을 올려놓으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잠잠히 있고 고요히 있으라” 하시자 바람과 파도가 순종했습니다. 거기서 말씀하신 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위대하고 강력하신 정복자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바람에게 말씀하시자, 바람은 사자를 본 강아지처럼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파도에게 말씀하시자, 파도는 바다의 가슴 위에서 두 손을 모으고 완전히 쉬었습니다. 그분은 사람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강력한 정복자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연을 정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셨고, 파도를 정복하셨으며, 공기를 정복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분 같은 분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흥분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압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냥 두십시오.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있고 싶습니다. 아, 그분이 누구신지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물론 그분은 십자가에서 사람처럼 긍휼을 구하며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는 로마의 봉인도, 그 돌도 그분을 붙들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봉인을 깨뜨리고 돌을 굴려 내고 위대한 정복자로 나오셨습니다. 아멘. 그분은 모든 시인과 선지자의 마음을 감격시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인물이었다면 누구나 그분을 그렇게 믿었습니다.
눈먼 노시인 패니 크로스비를 오늘 밤 이 자리에 부를 수 있다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고 싶습니다. 그 여자는 시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시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살아나셔서 값없이 영원히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다시 오시리니, 오, 영광의 날이여. 그것은 패니 크로스비가 아니라 에디 페로넷이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온유하신 구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나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시는 동안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내 모든 위로의 샘이시며, 내게 생명보다 귀하신 주여, 이 땅에 주님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천국에서도 주님 외에 누가 있으리요?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서 나를 사랑하시고, 죽어서 나를 구원하셨네. 묻히셔서 내 죄를 멀리 가져가셨네. 살아나셔서 값없이 영원히 나를 의롭게 하셨네. 언젠가 다시 오시리니, 오, 영광의 날이여.
위대한 정복자이신 그분은 땅에 증언하시고 선지자들에게 증언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서른세 살에 십자가를 정복하셨습니다. 수치를 정복하셨습니다. 모든 마귀를 정복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어 가실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분에게서 얼굴을 돌리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아 홀로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일 가운데서도 그분은 정복자보다 더한 분이셨습니다. 아멘. 아, 지금 제 안에 신앙의 뜨거움이 솟아오릅니다. 그분은 정복자보다 더한 분이셨습니다. 온갖 어려움과 죽음 자체를 마주하고 하나님께도 버림받으신 가운데, 그분은 정복자처럼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죽으시니 곁에 서 있던 사람들조차 그분이 누구신지를 증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땅이 흔들리며 기진하여 쓰러졌습니다. 수치심에 전율이 그 등을 훑었습니다. 땅의 창조주께서 그 땅을 구속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그 위에 떨어뜨리셔야 했던 것입니다. 달과 별들은 빛을 내기를 거부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나는 그분에 대한 책임에서 손을 씻겠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겼다”고 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것이 그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에덴동산 때부터 여자의 씨이신 그분에 관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모든 선지자와 모든 것이... 보십시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정복자께서 오셔서, 아담이 타락할 때 잃은 모든 것을 정복하실 그때를 내다보며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그것을 구속하여 사람에게 돌려주실 것입니다. 어떤 왕도, 군주도, 권력자도, 아무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정복자,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성경은 그분이 지옥으로 내려가셔서 감옥에 있는 혼들에게 선포하셨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 회개하지 않았던 혼들입니다. 그분께서 머리를 숙이시고 땅이 흔들린 뒤, 잃어버린 자들의 영역으로 내려가시는 모습이 제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문을 두드리십니다. 문들이 열립니다. 그 안에는 한껏 꾸미고 거리를 다니며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았던 젊은 여자들이 수만, 수백만 명 있습니다.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젊은 남자들, 등을 돌렸던 목이 뻣뻣한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에녹이 오리라고 말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했고,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나는 에녹이 오리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는 내 선지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아,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긍휼은 없습니다. 문은 닫혔습니다. 그분은 더 아래로, 이미 그분을 알아본 마귀들을 지나 지옥의 문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문들이 열렸습니다. 거기 사탄이 서 있었습니다. “오, 결국 왔군? 아벨을 죽였을 때 너를 잡은 줄 알았다. 약속된 그 씨를 잡은 줄 알았지.” 사탄은 언제나 그 씨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씨가 정복자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여기 지옥에 있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곳으로 가신 것은 한 설교자가 성령 아래서 예언하며 “내가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셨습니다. “또한 내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리라.” 그분은 사흘 안에 무덤에서 나오실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칠십이 시간이면 썩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포 하나도 썩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병조차 그분께 맡기기를 두려워합니다. 아, 이런! 직장 상사에게 그분에 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거리에서 증언하기를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합니다. 심판 날에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분을 보십시오. 마귀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잡았다.” 그분께서 마귀에게 걸어가 마귀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사탄아, 네가 오랫동안 권세를 부렸구나. 그러나 나는 처녀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 피가 아직 십자가에서 마르지 않았다. 내가 권세를 넘겨받으러 내려왔다.” 그분께서 사탄의 옆구리에 손을 뻗어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잡아떼어 자신의 옆구리에 거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사탄은 뒤로 밀려났고, 그분은 사탄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권세를 넘겨받으셨습니다. 지옥을 정복하셨습니다. 이제 나가십니다. 잠깐, 그분을 믿었던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멀리 낙원에는 아버지 앞에 들어갈 수 없는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번제, 곧 양과 염소를 드리고 암송아지의 재를 뿌리는 제사 아래서 갔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피로는 죄를 속할 수 없었으므로 아버지 앞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대용물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은 낙원이라고 불렸습니다.
날이 밝아 올 무렵입니다. 그분께서 그 문에 다가가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강대상을 두드리신다.] 사라가 말했습니다. “아브라함, 가서 문을 열고 누군지 보세요.” 아브라함이 나가 문을 엽니다. “여보, 이리 와 보시오. 여기 보시오. 여기 누가 서 계시는지 보시오. 그날 참나무 아래서 우리와 함께 식사하셨던 바로 그분이시오.” 바로 그때 다니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 그가 말했습니다. “저기 계십니다. 제가 산에서 깎여 나오는 것을 보았던 그 돌이십니다.” 에스겔이 말했습니다. “다니엘, 뭐라고 했는가? 오, 저기 계시는군. 저 높이 공중에서 돌던, 바퀴 한가운데 있는 그 바퀴이시네. 저기 계시는군.” 욥이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보았던 그분이십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저기 계십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저분이 누구신지 압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바라보고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아, 준비하여라. 우리가 여기를 떠난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제 책이... 저 천국에 있는 그분의 명부에 제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제 죄가 피 아래 있고, 그분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사면됨”이라는 서명이 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분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아멘”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어느 날 아침 그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리니 참으로 기쁩니다. 아브라함이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에는 거의 날이 밝았다. 기억하느냐? 셋째 날에 내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님, 잠시 들렀다 갈 수 있겠습니까? 사라와 저는 오래전부터 옛 땅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잠깐만 들러 갈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사십 일 동안 내 제자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너희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다.”
부활절 아침, 해가 막 비치려 할 때 새벽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의 돌들을 굴려 냈습니다. 성경은 땅의 티끌 속에 잠들었던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일어나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가야바가 돌아다니며 곁에 있는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자네는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나? 저기서 일어났다는 온갖 소문 말이야. 대낮이 어두워졌다지. 그게 무엇이었을까? 무슨 마술 같은 것이었나? 어떻게 생각하나?” 사라가 “아브라함, 저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가야바가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 젊은 남녀가 어쩐지 아는 사람 같은데.” “사라, 우리가 사람들 눈에 띄는군.”
그들은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약 사십 일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께서 저기 서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발 아래로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력이 더는 그분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아, 정복자라고 하셨습니까? 그분은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분은 구약 성도들을 데리고 올라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달을 지나, 별들을 지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넘어서 가셨습니다. 얼마 후 크고 아름다운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아, 그 찬란함이여.
주 예수님, 위대한 정복자께서 이끄시는 구약 성도들이... 그 구약 성도들이 하늘에 있는 그 큰 도시에 가까이 이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영존하는 문들아, 들릴지어다. 높이 들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시게 할지어다.” 문 뒤에 있던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구약 성도들이 말했습니다. “군대들의 주, 전투에 강력하신 분, 위대한 정복자이시로다.” 그들이 단추를 누르자 진주 문들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맨 앞에 서서 모든 구약 성도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도시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셨습니다.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이들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이겼고 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왕좌에 올라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모든 원수를 네 발 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앉아 있어라.”
그분은 위대한 정복자이십니다. 그분은 휘장을 둘로 찢으셨습니다. 그분과 같은 정복자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죽음과 지옥과 무덤과 두려움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오늘 밤 그 모든 것이 그분의 복된 섭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감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용맹을 찾고 있습니다. 맨 앞에 나설 사람, 자기 모습 그대로 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자기가 표방하는 그대로 살아가는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만일... 여러분이 죄인이라면 죄인이라고 말하십시오. 정직하게 인정하고 교회 뒤에, 교회의 옷자락 뒤에 숨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고백하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가지신 그 위대한 권능, 정복하는 그 사랑이 용감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북부 숲에서 사냥하곤 했습니다. 아, 저는 사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회심한 뒤에도 그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냥이 참 좋습니다. 저는 버트 콜이라는 사람과 사냥하려고 북부 숲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저와 함께 걸어 본 사람 가운데 가장 잘 걷는 축에 들었고, 발자국을 추적하는 데 능숙한 훌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악했습니다. 그는 저를 괴롭게 하려고 어린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법에 따르면 어린 사슴을 원하면 잡아도 됩니다. 그러나 열두 마리씩 잡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수렵 감시원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야생동물을 사랑합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버트는 그저 심술을 부리려고 어린 사슴들을 쏘았습니다. 그러고는 “이 겁쟁이 설교자 같으니”라고 하곤 했습니다. “빌리, 자네는... 숲에서는 능숙한 사람인데, 너무 마음이 약해.” 저는 말했습니다. “버트,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옳게 살고 싶네.” 사냥을 하든 거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싶습니다. 그는 “아, 자네는 그저 너무 마음이 약해”라고 했습니다.
어느 해 제가 그곳에 올라갔더니, 그가 조그만 호루라기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입에 물면 아기 사슴이 우는 것과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사슴처럼 말입니다. 그는 그런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버트, 그것을 쓰지는 않겠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 그만하게. 정신 좀 차려, 빌리. 당연히 쓸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설마 정말로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나절쯤 사냥했지만 발자국 하나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빈터에 이르렀습니다. 사냥철에는 사슴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낮에는 빈터로 나오지 않습니다. 버트가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곳에는 눈이 조금 있었는데, 바람에 쌓인 곳은 아마 무릎 깊이쯤 되었습니다. 그가 몸을 웅크리기에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그 작은 호루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아, 설마. 설마 그 짓을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호루라기를 불었고, 꼭 어린 새끼 사슴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곳에서 사십이나 오십 야드쯤 떨어진 곳에서 크고 아름다운 암사슴 한 마리가 일어섰습니다. 어미 사슴이었습니다. 그 우아한 모습, 얼굴에 굵게 드러난 핏줄, 크고 아름다운 갈색 눈과 커다란 귀가 보였습니다. 사슴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어미가 아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어미의 본능이 사슴으로 하여금 울게... 아니, 새끼의 부름에 응답하게 했습니다. 저는 ‘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저를 보며 멋쩍은 듯 씩 웃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가 그러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니 사슴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새끼의 소리를 들으려는 것입니다.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본성이 어미였습니다. 그때는 두려움도 사슴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았습니다. 아, 그 사슴이 어미였던 것만큼 우리가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슴이 몇 걸음 움직였습니다. 저는 ‘아, 이런’ 하고 생각했습니다. 버트가 소총을 낮추어 겨누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덤불 옆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슴은 곧장 빈터로 걸어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그 새끼가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슴의 본성이었습니다.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꾸며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본성이었습니다. 본성부터 어미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꾸며 내거나 믿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사슴은 그 빈터로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그 삼공육 소총의 노리쇠가 철컥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팔이 움직여 조준경의 십자선을 사슴의 심장에 맞추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아, 버트,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왜 그토록 악한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돌리기 직전에 그 팔을 보니, 그는 조준기를 수평으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면 그가 사슴의 심장을 완전히 날려 버리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끼를 찾고 있는 그 참된 어미를 말입니다. 심장을 어깨 반대편으로 완전히 날려 버릴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버트,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 격철이 떨어질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총이 발사되어 참되고 진실한 사랑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망가뜨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잠시 기다렸지만 총이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는데도 여전히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소총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총을 똑바로 붙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소총을 땅에 내던졌고,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가 제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빌리,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이제 이러는 것도 그만하겠네. 더는 견딜 수 없어.” 무엇이었습니까? 참되고 진실한 어미의 사랑과 용맹이 드러난 모습이 그 완고한 마음의 죄인을 정복한 것입니다. 형제님, 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해 확고하게 나설 진정한 용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우리의 온갖 화려한 설교나 교파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죄인을 정복할 것입니다. 그 암사슴이 어미였던 것만큼 여러분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밤 여러분이 그렇지 못하다면, 잠시 머리를 숙이는 동안 위대한 정복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길을 마련하시고 모든 족쇄를 부수셨으며,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고 죄와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정복하신 그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밤 그분은 여러분에게 와서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간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오르간 반주자가 조용히 곡을 연주해 주는 동안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그리스도 없이 이곳에 계시다면, 참되고 진실한 체험이 없다면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교인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척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 어미 사슴이 새끼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위해 굳게 설 수 있습니까?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걸어 들어갈 만한 사랑이 마음에 있습니까, 아니면 간증조차 하기 어렵습니까? 정말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오늘 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받아들이시려고 이 건물 안에 계시며,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지금 그분을 받아들이시지 않겠습니까?
자,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동안... 오늘 밤 이곳에서 저를 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릴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 제 마음속에서 저를... 저는 정복자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교인일 뿐입니다. 제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담배를 끊으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그만하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위선자 노릇을 그만하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닙니다. 어머니도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도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정복자이십니다. 위대한 정복자이십니다. 오늘 밤 그분의 사면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이시겠다면, 이 회중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분을 향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지금 제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제 마음을 채워 주셔서 제가 결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형제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도요. 저기 계신 형제님도요.
이제 아래층에 계신 분들, 이쪽의 형제님. 또 다른 분도 손을 들고 “하나님, 지금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씀드리십시오. 여기 앉은 젊은이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부인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직하십시오.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제 오른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제게 정말 필요한 그 체험을 주옵소서. 그 사랑을 주옵소서. 저는 영화 보러 다니는 것을 그만두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아,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 아닙니다. 성경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제 안에서 세상을 빼내 주옵소서.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기도 모임에 가지 않고 집에 머뭅니다. 아서 고드프리의 방송을 듣기 좋아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듣기 좋아합니다. ‘누가 수지를 사랑하는가’ 같은 프로그램 보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적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과 화평한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저를 끝까지 이끌어 줄 그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제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죄를 정복하신 분이 계십니다. 세상의 욕망을 정복하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은 위대한 정복자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제 죄들을 위한 화해 헌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저를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말씀드립니다.” 여기 계신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위에 계신 분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이쪽 오른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저 위에는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는 분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마음을 두드리시는데 여러분이 거절한다면, 이곳에 들어올 때보다 더 악한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뒤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손을 드시겠습니까? 정직하십시오. 하나님께 정직하십시오. 제 왼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손을 드시겠습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남자다운 행동입니다. 여기 있는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계십니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바로 여기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뒤에 있는 어린 친구,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앉아 계신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앉아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정직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을 하게 됩니까? 저 뒤에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보셨습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선택을 했고, 그에 따라 여러분이 손을 들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모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은 아래로 늘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있는 무언가가,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영이...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영이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저는 사람들이 손을 들면 그분들을 알아봐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제가 놓쳐도 그분은 보십니다. 손을 들고 “형제님,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늘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뜻을 이룰 때입니다. 다시 태어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그것이 무엇을 합니까? 마음속의 그 결정... 여러분의 영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러분의 몸, 육체는 중력 때문에 손이 아래로 내려가 있지만, 여러분의 영이 그 손을 창조주께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드리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아무리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러면 내게 오는 모든 자를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에게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기도하기 전에 또 계십니까? 저는 오늘 밤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자, 기도를 요청하신 분들, 믿으시는 분들은 잠시 일어나 함께 기도하시겠습니까? 이 건물 어디에 계시든 바로 일어서십시오. 손을 드셨고 이 기도에서 기억되기를 원하시는 분은 모두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발코니를 비롯해 모든 곳에서 일어서십시오. 그렇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일어서십시오. 손을 들었던 분은 모두 바로 일어서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증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 그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가장 큰 기적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일어서야 할 다른 분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자, 일어서 계신 동안,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전도자로서 이십오 년 동안 세계 각지의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순종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저를 만나게 되면, 때로는 제가 그들에게 가 보기도 전에 죽어 있습니다. 긍휼을 구하며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다가 아무 소망도,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을 만나러 떠나갑니다.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영이 항상 다투지는 아니하리라.” 죄인이여, 거기서 일어서십시오. 신앙에서 뒤로 물러난 사람이여, 그리스도인을 흉내 내는 사람이여, 마음속에 그 참된 것이 없는 사람이여. 여러분이 아무리 착해도... 여러분의 목사님이... 여러분의 이름이 교회에서는 아주 빛날지 모르지만, 영광 가운데서는 어떻습니까? 이 땅에서는 좋은 평판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참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미 사슴의 행동을 넘어설 만큼 여러분을 이끄는 진실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신 것이 아니라면, 일어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교회에 가입한 것으로 속지 마십시오. 이 땅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권능을 가진 교회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에게 있다고 고백하는 그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기도하기 직전에 일어서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십시오. 죽음을 맞는 시간에 이 메시지가 임종의 침상에서 거듭 울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일 그것이... 여러분은 여기 길 위에 누워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외칠 것입니다. “아, 저 설교자의 말을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저 제단에 갈 수만 있다면.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재난이 너희를 비웃을 뿐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지금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일어서십시오. 그 위대한 정복자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통해 여러분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하셨는데, 어떻게 일어나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계속 말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계속 일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어서십시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서십시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이웃이 내 곁에 앉아 있고, 목사님도 저 뒤에 앉아 계신데.”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주도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께서 마음에 말씀하고 계신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지금 속히 일어서십시오. 젊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습니다. 죽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까? 이것이 오늘 밤 거둘 수확입니까? 그렇다면 일어서 계신 분들은 잠시 머리를 숙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분의 대사로서 저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를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머리를 숙이고 서 계신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일어설 때 하나님께서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셨다면, 지옥의 모든 마귀를 다 모아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여러분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내 말들을 듣고” 제가 설교해 온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이것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자로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것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거기 서 계신 동안 제가 기도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십시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주님, 제가 사는 동안 참된 종이 되겠습니다.”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아래층에 계신 분들도 함께 기도합시다.
복되신 예수님, 오늘 밤 모임의 열매로 이렇게 많은 혼들이 왕국에 들어왔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정직했습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자임을 알았습니다. 표범이 자기 반점을 핥아 없앨 수 없듯이, 자신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강력하신 정복자께서 내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야, 어찌하여 그토록 지쳐 있느냐?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내게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이 있노라. 네가 나를 믿기만 하면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일으키리라.” 그들은 부름을 받고 일어섰습니다. 이제부터 애정을 주님께로 돌리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정했습니다. 주님, 저는 그들을 이 사역의 선물로, 이 메시지의 선물로, 또 오늘 밤 그들을 주님께 이끄신 성령의 선물로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내쫓지 않으시고 영생을 주시며 마지막 날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 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그날까지 주님의 성령으로 그들을 지켜 주옵소서. 그러면 우리는 영원한 모든 시대에 함께 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녹음 공백]
회개한 죄인 여러분이 앉으실 때, 곁에 있는 분들은 어디서든 그분들과 악수해 주십시오. 함께 “우리를 묶는 그 매임 복되도다”를 부르겠습니다. 우리 마음을 묶는 그 매임 복되도다, 그리스도인의... 여기 사역자가 계시다면, 여러분의 동네에 사는 분이 보이거든 지금 그분에게 가십시오. 손을 잡고 여러분의 교회로 초대하십시오. 아직 침례받지 않았다면 데리고 내려가 침례를 베푸십시오. 침례를 베푸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다가가서 악수하십시오. 여기 한 사람이 오랜 목회자인 도슨 형제님께 다가가 악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금 구원받은 사람이 다가가 그 사역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묶는 그 매임 복되도다. 한뜻을 품은 마음들의 교제는 저 위의 교제와 같도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 여러분, 저는 속을 깨끗이 씻어 내는 이 옛 복음이 참 좋습니다. 그 무엇도 이것을 대신하는 날을 여러분은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아, 저는 그분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이 노래를 부릅시다... 옛 찬송을 좋아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아하십니까? 좋습니다. 오르간 반주자 형제님, 참 훌륭하게 해 주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화, 평화, 놀라운 평화, 저 위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네”라는 노래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좋습니다. 평화, 평화! (하나님을 경배하며 우리 두 손을 듭시다.) 놀라운 평화, 저 위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네. 기도하오니, 내 영을 영원히 감싸 주소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 속에서. 이렇게 조용히 부릅시다. 평화! (이제 경배하십시오.) 놀라운 평화, 저 위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네. 기도하오니, 내 영을 영원히 감싸 주소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 속에서. [브래넘 형제님이 콧노래를 부르신다.] 그분의 아름다움에 흠뻑 잠기십시오. 메시지는 끝났습니다. 경배합시다. ...아버지께로부터... [브래넘 형제님이 콧노래를 부르신다.]
이제 그 굳어진 마음을 여십시오. 그분께서 내려오셔서 이슬방울처럼 여러분 위에 조용히 머무시게 하십시오. 아내가 본향으로 떠난 뒤, 저는 왜 그분께서 아내를 데려가셨는지, 왜 저와 빌리는 남겨 두셨는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녁에 일을 마치면 묘지로 가곤 했습니다. 무덤 옆의 작은 나무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무덤을 내려다보며 ‘여보, 왜 떠났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몹시 울적해졌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와서 덤불에 앉곤 했습니다. 비둘기는 부드럽게 구구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비둘기에게 그 노래를 콧노래로 불러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무언가가 저를 감싸곤 했습니다. 거기 앉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평화, 평화, 놀라운 평화, 저 위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네. 기도하오니, 우리 영을 영원히 감싸 주소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 속에서. 그날 그곳에서 그분이 여러분을 맞아 주시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생의 끝에 강가에 이르러 친구들이 모두 떠난 듯할 때, 나를 위로하고 내 마음 기쁘게 하는 생각 하나,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으리. 그 한 가지를 나는 아네.
아내가 떠나려 할 때 제가 “호프, 이제 가는 거요?”라고 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네, 빌리. 여보, 당신은 이것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요. 아, 정말 놀라워요.” 저는 그 크고 검은 눈이 위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빌리, 이 메시지를 전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러겠소, 여보”라고 했습니다. “정말 가는 거요?” 아내는 말했습니다. “아, 너무나 놀라워요. 내 아이들이 여기저기 떠돌게 하지 마세요. 아이들을 돌봐 줄 착한 그리스도인 여자와 결혼하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호프,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침에 당신은 동쪽 문 곁에 서 있으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있는 힘껏 큰 소리로 ‘빌!’ 하고 외치시오. 나는 아이들을 모아서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겠소.” 아내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십팔 년 전입니다. 저는 오늘 밤에도 여전히 싸움의 최전선에 있으며, 조금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영광스러운 날 저는 떠날 것입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고, 마지막으로 제단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고, 마지막 병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제가 사랑받을 만하지 못했을 때 저를 사랑하셨던 그분께로 갈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제게 주시고, 세상의 어떤 유혹도 이 복된 자리에서 저를 끌어내지 못할 만큼 만족을 주신 그분께로 갈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 그리스도인 여러분과 함께 길을 가고 있어서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와 함께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우리 가운데 질병이 있습니다, 주님. 이 회중이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버지, 오늘 밤 그들을 고쳐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 밤 오셔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죽음 자체를 정복하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여 주옵소서.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엠마오에서 온 사람들, 아니 엠마오로 가던 사람들과 함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뒤로 문을 닫으시고, 한쪽 구석에 따로 자리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곧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왜 모임이 그렇게 빨리 끝났을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급히 돌아갔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적 견해를 논쟁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났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이곳을 떠날 때 우리도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녹음 공백]
자매님의 부인병은 떠나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매님이 기도하고 있는 그 여자아이, 심장병이 있는 따님도 자매님이 믿으시면 나을 것입니다. 또 입양한 아들이 있는데, 잘못된 길로 가고 있어서 그 아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그것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니까? 하나님을 향해 딱 한 번만 용감하게 행동해 보십시오.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기만 하십시오.
11번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듣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11번...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겠습니다. 11번이 들어오면 바로 강단으로 오시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어디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이십니까? 좋습니다. 좋습니다. 잘됐습니다. 지금 줄에 몇 분이나 계십니까? 자, 어떻게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보고, 그런 다음에. 모두들... 증언에는 세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지요? 증언에 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자매님이 한 증인이 되실 것입니다. 자매님이 구하던 것이 여러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중 가운데, 저기 계신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증언이 되도록 그분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휠체어에 계신 부인입니다. 아닙니다. 바로 뒤에 있는 남자분입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그분은 가슴에 문제가 있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 옆에 앉으신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허리 문제도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받아들이고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네. 좋습니다. 믿으시면 손을 드십시오. 거기 앉아 계신 두 분 모두요. 그렇습니다. 증언에 필요한 것은 세 사람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는 여러분의 삶을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조금 전에 받아들이셨던 죄인 여러분...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기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한 영으로 계시면서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다. 마음이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안에 무언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나머지 여러분도 바라보고 사십시오. 온 마음으로,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원하는 놀라운 것들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부인은 제가 아는 한... 기도 줄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저와 서로 모르는 사이인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기도 줄에 계신 분들 중 서로 모르는 분들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그분을 향해 손을 드십시오. 회중 가운데 저와 모르는 사이인 분들도 모두 손을 드십시오. 자, 앞으로 몇 분 동안 이쪽을 바라보시며 믿으십시오. “만일 내가 진리라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가운데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가 있어서 무엇을 말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든, 그의 말을 듣지 말라. 그는 거짓되기 때문이라. 그러나 그대로 이루어지거든, 내가 그를 통해 말한 줄 알라.”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바로 이곳에 살아 계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분의 영이 바로 이 건물 안에 계시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회중을 둘러보시고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며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아셨을 때와 똑같은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같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전에는 만난 적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지금 이 회중 앞에서 그분이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어디 봅시다. 남자와 여자이니,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주님께서 대화하셨던 것과 같겠군요. [녹음 공백]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기름부음이 자매님께 왔다가 물러갑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기에는 자매님을 해칠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도와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제게 알려 주시면, 그리스도를 자매님을 사면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렇지요? 첫째, 자매님은 죽음의 문턱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계십니다. 심장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위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들이 사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심장입니다. 신경이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자매님의 문제입니다. 자매님은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다른 지역에서 오셨습니다. 디보어드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집에 돌아가 건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러신다면 손을 들고 “이제 저는 그리스도를 저 개인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버지, 이 부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를 격려하시고 믿음을 더해 주시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방을 주옵소서. 아멘. 이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으면서 가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우리도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평생 만난 적이 없으며, 이번이 처음 만나는 때입니다. 이번에도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매님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렇습니다. 방금 떠나신 분과는 얼마나 다른 진동인지요. 제가 뜻하는 것은 파동입니다. 영의 생명이 접촉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밝혀 주시면, 그리스도께서 이곳에 계신 자매님의 치유자이심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부인, 믿는 분으로서 자매님도 의식하고 계십니다. 그곳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맞다면 손을 드십시오. 무언가가 자매님을 감싸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참으로 부드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환자에게는 제가 얼마나 달래며 권해야 했는지 보십시오.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있습니다. 네. 그것이 믿음의 차이입니다.
자매님은 심장에 문제가 있고 신경이 몹시 예민합니다. 그 신경의 예민함이 심장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신경성 심장병입니다.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맞습니다. 신경 때문입니다. 저녁 늦게, 특히 해가 지기 전에 몹시 불안해지고, 이상한 느낌과 외롭고 우울한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접시 같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곳에서 오고 계셨습니다. 작업하던 무언가였습니다. 자매님은 이 나라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남쪽에서 이쪽으로 오셨습니다. 국경을 넘어오셨습니다. 미국인이십니다. 몬태나주에서 오셨습니다. 버니스 포터, 자매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집으로 가십시오. 건강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도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저는 피곤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연약할 때 강합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부디 그러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영이 접촉하는데, 여러분이 움직이면 그것이 방해받습니다. 몇 분 동안만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메시지를 들으셨다면 분명 그리스도의 말씀도 잠깐은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먼 거리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입니다. 동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자신을 위해 여기 오신 것이 아닙니다. 더 젊은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따님입니다. 따님은 신경 질환으로 병원에 있습니다. 저 멀리 소나무가 많은 넓은 고장, 온타리오에 있습니다. 따님은 구원받지 못했고, 자매님은 그 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따님은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있습니다.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다루고 계십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자매님이 손에 쥐고 계신 그 손수건... 이제 그것으로 눈물을 닦으신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따님의 치유를 위해 보내 주십시오.
자매님,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이 모든 설교 뒤에 여기 계신 것이 그분의 임재임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이것은 그분이 여기 계심을 공개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매님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자매님은 신경이 몹시 예민하고 종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종양은 목 안에 있는 갑상선종입니다. 신경성 갑상선종이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 나라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오셨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웨스트민스터라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슈메이커 부인이시고, 이름은 마거릿입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집에 돌아가 치유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곳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성경을 읽는 분들 가운데 그분이 땅에 계실 때 행하신 방식이 바로 이것임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잠시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제 우리는 필요가... 자,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바로 여기서 여러분이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기력을 앗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지금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제 손등을 보십시오. 제 안의 모든 근육이 풀려 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을 읽는 분이라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녹음 공백]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느끼십니까? 믿으십니까? 안수해 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 선생님을 아시는 분이 이곳에 계십니다. 제가 아니라 그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해지십시오. 아멘. 가십시오. 이제 그분을 믿으십시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암입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분께서 그것을 없애시고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잠시 손을 주십시오. 저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거룩한 여인의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살아 있게 하옵소서. 그를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믿으면서 가십시오. 어느 날 골고다를 올라갈 때, 오래되고 거친 십자가가 그것을 지신 분의 피 묻은 발자국 위로 끌려갔습니다. 그분의 작고 연약한 몸은 너무나 쇠약해져 더는 가실 수 없었고, 십자가의 무게 아래 쓰러지셨습니다. 그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 다가와 십자가를 들어 자기 어깨에 메었습니다. 시몬의 어깨에 놓인 그 십자가에는 주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가 자매님의 먼 조상이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그분의 딸 가운데 한 사람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피 속에 당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없애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여인의 치유를 위해 온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부인,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장병은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복되신 하나님, 이 자매를 이 병에서 고쳐 주옵소서. 오늘 밤 돌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아멘. 저기서 일어나셨을 때, 물론 저희는 눈이 나쁘신 것을 압니다. 평생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심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눈이 나쁜 것은 참고 지내시겠지만, 걱정하시는 것은 심장입니다. 맞다면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주 예수님, 이분에게 복을 주옵소서. 의사들은 쓸 안경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심장을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이분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시겠습니까, 주님? 큰 권능으로 그 안에 거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관절염은 형제님에게 장애를 입혀 평생 그 장애를 안고 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 저기 앉아서 결정을 내리려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기도 줄을 따라 나와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제게 안수받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잠깐 이리로 오십시오. 주 하나님, 우리 형제를 고쳐 주시고 원수의 이 힘을 그에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성경, 이 말씀이 마음에 복이 되어 그를 강하게 하고, 그를 위해 믿음의 기도가 드려졌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성경은 “그것은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형제님, 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십시오. 인슐린은 훌륭한 것입니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 형제님과 제가 갈보리로 가서 이 당뇨병 때문에 수혈을 받도록 합시다. 그러면 정말 건강해질 것입니다.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이분에게 복을 주시고 전립선 문제와 신경 질환을 거두어 주옵소서. 이 당뇨병을 거두어 주옵소서. 이제 믿음으로 이분을 갈보리 앞으로 데리고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구합니다. 아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리를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주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강단을 내려가십시오. 그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자매를 고쳐 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건강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매님도 같은 병이 있으셨으니, 계속 강단을 내려가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아멘.
회중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저기 회중 가운데 어디에 계시든 이쪽을 보십시오. 믿기만 하십시오. 병든 분들 가운데 몇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마음속으로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며 손을 드십시오. 어떤 식으로든 그분의 은총을 구해 보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저기 입을 닦고 계신 작은 부인, 심장병과 방광병이 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고쳐 건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리틀 로즈 자매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을 향해 이렇게 손을 드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아멘. 어떻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저 뒤에 앉아 계신 분,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선생님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아멘. 바로 뒤에 계신 저 부인은 어떻습니까... 귀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의 문제를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해지십시오. 아멘.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코에 종양들이 있는 부인은 어떻습니까? 초록색 모자를 쓰신 부인 말입니다. 네. 부인,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그 옆에 계신, 신경 질환으로 고통받는 부인은 어떻습니까? 부인,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손을 드십시오. 아멘. 이 회중은 그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분께서 이곳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위대한 정복자께서 여러분을 위해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복되신 주님, 주님의 종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여러분, 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자 제 안에 있는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주님께서 길을 마련하시고 오늘 밤 이곳에서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는 몹시 피곤합니다. 제 상태를 아십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건물을 두루 감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이 사람들이... 주님,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죄인들을 제단으로 이끄셨습니다. 마음의 비밀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치유를 선포하셨습니다. 큰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오 하나님, 이 손수건들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 어딘가에서 눈먼 늙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고, 어린 아기가 침대에 병들어 누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홍해가 이스라엘을 가로막아 약속의 땅에 가지 못하게 했다고 배웠습니다. 한 기록자는 하나님께서 그 불기둥을 통해 진노의 눈으로 내려다보셨다고 했습니다. 홍해는 그분이 불기둥 너머로 바라보시는 것을 보고 겁이 났고, 바닷물은 벽을 이루며 섰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신 눈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약속에 이르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은 마른 땅을 밟고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오 하나님, 성경은 사도 바울이 자기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왔고, 그것들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위에 놓였다고 가르칩니다. 악한 영들이 그들에게서 나갔고 질병이 나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도 바울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같은 예수님이심을 압니다. 하나님, 이 손수건들이 병든 사람들의 몸 위에 놓일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흘리신 피를 통해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기를 기도합니다. 마귀가 겁을 먹고 사람들을 떠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들이 건강과 힘이 있는 좋은 땅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여기 모인 이 사람들에게,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며 마귀에게 도전합니다. 사탄아, 너는 허세에 불과하다. 네가 사람들을 속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셨고 그것들을 교회에 주셨다. 그분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네게서 빼앗으셨다. 그분은 위대한 정복자이시며, 너는 네가 가졌던 모든 것을 빼앗겼다. 너는 허세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가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셨으며 지금 이곳에 계셔서 땅에 계실 때와 같은 기적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네 허세를 드러내고자 한다. 사탄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를 힘입어 네게 명한다. 이 회중에게서 나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서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