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앉으십시오. 오늘 오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을 보니 무척 기쁩니다. 어느 저녁 집회에 못지않게 많이 오신 것 같습니다. 보통 일요일 오후 집회에는 사람이 그리 많이 오지 않습니다. 일요일 오후에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조용히 쉬는 시간을 좀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신 것을 보니, 관심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분들이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 기쁩니다. 조금 전에 여기 카볼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형제님이… 제가 올라와서 커튼 뒤에 있는 제 친구 라스무센 형제님과 이야기할 때 들으며 즐겼던 그 훌륭한 연주와 찬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집회는 화요일 저녁부터 계속됩니다. 카볼 형제님과 전도단이 그대로 이어서 집회를 인도합니다. 이 훌륭한 연주와 찬양에 더해 설교와 병자를 위한 기도 등이 계속될 것입니다. 집회 장소는 이미 광고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카볼 형제님. 그러니 여러분은 이 좋은 복들을 계속 누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있는 제 작은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친구가 거의 자기 편지보다 먼저 도착할 뻔했습니다. 편지가 팬들러 형제님보다 15분 먼저 도착했습니다. 여기 어딘가에 계십니다. 스위스 출신으로, 저와 아주, 아주 가까운 친구입니다.
우리는 그가 회심한 일과 주님께서 그를 불러내신 일, 그리고 그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한때는 꽤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일종의 속임수이거나 꾸며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사람 하나를 데려다가 기도 줄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온 그 작은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니, 어디 계십니까? 일어서거나 손을 좀 들어 보시겠습니까? 어니 팬들러 형제님이 여기 어딘가에 계십니다. 조금 수줍음을 타십니다. 네, 저 위쪽… 아, 저렇게 높은 곳에 계시니 누가 알아보겠습니까? 어니 형제님과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어린 아들입니다. 그분들이 위스콘신주 샤와노에 살 때 제가 댁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내려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여기 오려고 애써 보겠다고 했는데, 돌투성이 길이며 진흙탕 길을 2천 마일이나 어떻게 차를 몰고 왔는지… 이 예배에 참석하려고 애쓴 그분의 차를 보셨어야 합니다. 참 한결같은 마음이지요? 정말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다시 치유 집회가 있습니다. 오늘 밤에 그리스도께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역사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오후는 전도 집회로 정했습니다. 제가 곧바로 말씀을 전하면 여러분이 집에 가서 식사하시고 다시 돌아오실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주 바빴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아침 제가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환상을 보여 주시고 삶을 바로잡아 주시는 등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우리 모두 그분을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혹시 여기 캘거리에서 오신 분이 계시다면, 보내 주신 초청 등을 모두 받았으며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쩌면 겨울이 오기 전에 캘거리에 다시 가서 짧게 집회를 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스탬피드 행사장을 구할 수는 있지만 너무 추워진 뒤에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거기는… 겨울에 난방을 하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올가을에 아이다호에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올라가 그 주말을 캘거리 분들과 보내며 교제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목사님들이 정식으로 충분한 초청도 받지 못하셨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협력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 프레디 소스먼 형제님을 저는 사랑하는 귀한 형제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곳에 오셨습니다. 프레드 형제님은 목회자는 아니지만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십니다. 말씀드리지만, 프레드 소스먼 형제님처럼 좋은 분도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지금 여기 안 계시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정말 좋은 분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빌리가 형제님을 뒤쪽으로 모시고 가지 않았습니까? 프레드, 빌리가 저 커튼 뒤에서 형제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제가 전해 드려야 했는데, 저는 형제님이 강단에서 내려가신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가 우리를 찾아내고야 마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로 뒤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빌리가 강단 뒤에서 녹음테이프에 관한 일로 형제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리오, 어떤… 누군가 집회 전체를 녹음한 테이프인가 무엇인가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형제님이 가셨으니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분은 제게 참으로 진실한 형제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곳에 와서 최선을 다해 목사님들을 만나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후원 교단이 있으면, 후원하는 그 특정 교단 외의 다른 교단들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냥 오면… 제 의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내년 여름에 미국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캐나다에서도 한 차례 크게 힘을 쏟아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8천 명에서 1만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천막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 천막을 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흘이나 닷새, 혹은 일주일만 머무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4주나 5주 동안 머물며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러면 오후 시간 등을 활용해서 기초를 아주 탄탄하게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악한 영들이 나간 뒤에도, 많은 경우 그 점을 모릅니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모르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 병이 났습니다”라든가… 더 아파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가령 몸속에 종양이 있을 때 말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그 종양 자체가 아닙니다. 의사는 그것을 잘라 낼 때 그 종양을 다룹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것은 그 종양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다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을 생각해 보십시오. 암은 목숨을 앗아 가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암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과는 다른 생명입니다. 그것이 자라면서 퍼져 나갑니다. 성경은 그것을 마귀라고 부릅니다. ‘암’은 의학적인 명칭인데, 다리를 뻗어 사방으로 퍼지는 ‘게’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귀이며, 마귀는 괴롭히는 자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몸속에 자리 잡습니다. 보통은 손상을 입은 작은 세포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그 작은 세포가 타락하여 때로는 여러분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습니다. 침례교인 입에서 ‘타락한 자’라는 말이 나오다니, 대단한 말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마귀가 그 작은 세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타락한 세포 하나가 여러분 몸의 모든 세포를 교란하게 됩니다. 마귀는 창조할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하신 것을 왜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죄는 의가 왜곡된 것입니다. 죄는 아무것도… 마귀는 죄조차 창조할 수 없었습니다. 의를 왜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창조주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가져다가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신의 아들딸이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여러분 안에 들어가 자기 방식대로 왜곡합니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암을 생각해 보십시오. 암에서 그 생명이 빠져나가면 암은 죽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종양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종양은 생명 없이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그만한 고깃덩어리가 여러분 몸속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옛 남부식으로 쉽게 말하자면, 몸속에서 썩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장이 뛰고, 뛸 때마다 피가 심장을 지나면서 혈액을 깨끗하게 하고, 그 암 덩어리에서 죽은 물질을 거두어 가기 때문에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전보다 더 아프게 됩니다. 그리고 아마… 처음 72시간 정도는 몸 상태가 좋아질 것입니다. 약 72시간이 지나면 시체는 부패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사슴이나 어떤 짐승을 쏘아서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잰 다음 사람들에게 “그 사슴은 무게가 얼마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다음 날 아침이면 몇 파운드나 줄어서 그 무게가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죽으면 장의사는 틀니나 의안 같은 것을 빼냅니다. 몸이 줄어들면서 그것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신을 며칠 동안 그대로 두면 그전보다 더 커집니다. 길에서 치여 죽은 작은 개나 작은 동물을 보십시오. 며칠이 지나면 부풀어 올라 더 커집니다. 여러분 몸속에 있는 암, 종양, 혹도 바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아파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 치유를 잃어버렸구나”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굳게 붙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아무것도, 빛조차도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저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셨으며, 그분의 말씀 자체가 하늘과 땅을 창조했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품으신 생각으로… 그것을 가지시려는 뜻을 품으시고 그저 “…있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의 말씀 자체가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앉아 계신 자리 아래의 땅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를 보십시오. 시장하셔서 나무에서 먹을 것을 찾아보셨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제부터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나무를 향해 소리를 지르신 적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도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중 한 사람이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그 나무는 말라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하셨고, 그대로 되리라는 데 한 점 의심도 없으셨기에 나무에서 생명이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젯밤 아브라함에 관해 말씀드리면서 제가 전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꼭 붙드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하겠다고 한 바로 그것을 창조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심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한 달쯤 머물면서 모든 목사님들과 모든 분들, 모든 교회가 협력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기도 모임을 열고 사람들이 기도를 받기 전에 두세 차례 예배에 와서 가르침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단에 나올 때는 치유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도시에서 참된 부흥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와서 급히 들어왔다가 급히 떠나는데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성령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시는지를 보고 알 수 있으니, 그렇게 한다면 큰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떠난 뒤에도 여기 카볼 형제님이 이 집회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 집회가 형제님이 지금까지 인도한 집회 가운데 가장 큰 집회 중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집회를 돕기 위해 협력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참으로 훌륭한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주님, 오늘 오후 저희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고, 이번 주간 저희 가운데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입증하셨음을 저희가 온전히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분이 여러 세대를 거슬러 2천 년 전에 계셨던 때와 똑같이 살아 계셔서 위대하고 능숙하게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 성경이 진리이며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저희 마음이 얼마나 기뻐하는지요. 주님께서는 자격 없는 자들인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위한 교회, 한 백성을 불러내시려고 이 마지막 날들에 저희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설교 예배의 다가오는 시간에 저희에게 놀랍게 기름을 부어 주셔서 저희 마음이 더 깊이 감동받고, 어느 때보다 주님의 사랑과 믿음 안에 더욱 굳게 뿌리내리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오후 이 박람회장을 떠날 때 저희 각 사람의 마음속에, 평생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을 섬기려는 더 굳은 결심이 있게 해 주시옵소서.
시간이 저물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머지않아 오실 것이니, 저희는 일할 수 있는 빛이 있는 동안 일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를 도와주셔서 모든 무거운 것과 저희를 너무 쉽게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저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내로 저희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말씀을 열어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는 입술을 거룩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셔서 주린 모든 마음에게 저희의 필요에 맞게 나누어 주시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하옵나이다. 아멘.
얼마 전에 “생각보다 시간이 늦었습니다”라는 짧은 표어가 있었습니다. 제게 영화 필름 한 통이 있습니다. 가져왔어야 하는데요. 바로 이곳이 그 영화를 보여 드리기에 아주 좋은 장소일 것입니다. 「자정 3분 전」입니다. 보신 분이 계십니까? 제가 그 영화를 가지고 있는데, 보고 나서 거의 다시 회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회심했다는 말을 그런 의미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혼이 그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알려면 달력을 보십시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를 알고 싶다면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여 주는 달력입니다. 그 영화는 저 아래 이란에서 유대인들이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룩」 잡지에서도 그 일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너무나 원시적인 생활을 해서 쇠로 된 보습을 단 쟁기조차 본 적이 없었습니다. 2천 년 전처럼 나무 막대기로 땅을 갈았습니다. 그 큰 비행기들이 내려와 유대인들을 태우고 팔레스타인으로 데려갔을 때, 그들이… 돌아올 때 독수리의 날개에 실려 돌아오리라고 선지자들이 한 말이 성취된 것입니다.
세계 여러 곳, 동서남북에서 배를 타고 온 그들이 그곳에서 내릴 때, 자기네 노인들, 연로한 어머니와 할머니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왔습니다. 그때 취재하던 사람이 다가와서 “왜 고국으로 돌아오십니까? 고국에서 죽어 묻히시려고 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뵈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너무 가볍게 넘기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유대인들이 국가로 선포된 것은 1946년 4월… 아니, 1946년 5월 6일이었고, 주님의 천사가 제게 나타난 것은 1946년 4월… 5월 7일이었습니다. 2천 년 넘게 내려져 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깃발인 다윗의 여섯 꼭짓점 별이 이제 다시 예루살렘 위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들어왔을 때 예수라는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도 노르웨이 분들과 스웨덴 분들이 많이 계신데, 스웨덴 스톡홀름의 필라델피아 교회가 그 유대인들에게 수천 권의 성경, 신약성경을 보내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성경을 읽으면서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분이 메시아라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분이 선지자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에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얼마 전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200마일 떨어진 곳까지 갔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때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집트 카이로에서 비행기에 있던 저를 불러내셨습니다. 저는 그 장소 뒤편으로 나가 기도했고, 그분은 “지금은 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할 날을 보고 싶습니다. “자, 그분이 선지자의 표적, 부활의 표적을 행하시면 정말 그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직접 가서 사람 몇 명을 골라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메시아이신지 봅시다.” 주님께서 여기서 행하시는 것처럼 행하시면,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을 보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로 향하시면 이방인의 날은 끝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으면 그들은 다시 세상을 부흥시킬 것입니다. 선교에는 참으로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직 3년 반이 남아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로 그때에 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갈 때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 오후에 읽을 말씀은… 제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계속 문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편 163편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가 일찍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내 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사모하오니 이것은 내가 성소에서 주를 뵈온 것같이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려 함이니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제가 오늘 오후에… 아니, 오늘 오후에는 「성경에서 가장 큰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늘 오후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중에 영생보다 더 큰 선물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생명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생명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선물입니다.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영생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오후 이 성경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선지자이자 사랑받는 시편 기자였던 다윗은 노래하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영감이 임하면 그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다윗이 시편에서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다윗을 인용하신 것을 종종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편도 예언인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오시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오늘날 구속의 이야기와 주님의 오심을 노래하는 이 위대하고 놀라운 찬송이… 사람들이 반주에 맞추어 부르곤 하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갈대숲 속의 어린 모세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두려움 없는 다윗과 그의 물매 이야기도 들으셨지요. 꿈꾸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셨고, 다니엘과 사자들에 관해서도 우리는 자주 노래합니다. 성경에는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를 만나고 싶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으뜸이 되실 것입니다. 공중에서 만나는 그 자리에서.
오, 저는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찬송은 영감을 받아 쓰인다고 믿습니다. 여기 다윗은 숲을 누비며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제 첫 번째 성경은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하늘의 큰 새들과 해 지는 광경을 얼마나 자주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산에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엘크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가을이었는데, 엘크 떼를 아래로 내려보낼 만큼 눈이 깊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마 사람 사는 곳에서 40, 50마일쯤 떨어진 곳에 홀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때로는 홀로 있고 싶습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와 함께. 홀로 그분께 내 모든 어려움을 아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저 높은 산으로 혼자 나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짐승을 잡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홀로 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곳에는 가을에 폭풍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잠시 비가 오다가 잠시 눈이 오고, 그러다가 해가 비칩니다. 산이 그렇게 높으니 날씨가 자꾸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짐을 실은 말을 산 아래쪽에 두고 수목 한계선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리저리 생각하며 엘크 발자국과 흔적을 찾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라보니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폭풍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조금 더 내려갔는데,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나무들 뒤에 몸을 피했습니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무들이 그 바람에 신음하며 삐걱거릴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나무들은 왜 저렇게 신음하며 삐걱거리고 요동할까?’ 하나님께서는 목적이 있어서 바람을 보내십니다. 바람은 뿌리를 흔들어 느슨하게 해서 더 깊이 파고들 여지를 만들어 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부흥을 일으키실 때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굳어진 것을 풀어 주시므로 더 깊이 자라고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흔들고 움직이실 때 우리는 굳어 있던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저는 작은 꽃 하나까지도 바라보며 놀라워했습니다. 그 꽃이 겨울에 어떻게 죽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아마 영하 70도까지 내려갔을 것입니다. 작은 알뿌리도 사라지고 꽃도 사라졌습니다. 작은 검은 씨앗이 떨어졌지만 그것도 죽고 속살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흙 어딘가에는 세상의 모든 과학자도 찾아낼 수 없는 생명의 씨눈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봄 햇살이 그 땅을 내리쬐기 시작하자마자 그 작은 꽃이 고개를 내밀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꽃이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면,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얼마나 더 확실히 마련하셨겠습니까.
저는 거기에 서서 제 오랜 친구인 감리교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인디애나주 헨리빌에서 작은 접시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교제하고 있었는데,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보내는 짧은 농업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4-H 클럽에서 밭에서 기른 것과 똑같이 완벽한 옥수수 알갱이를 만들어 내는 기계를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밭에서 기른 옥수수가 든 자루에서 한 움큼, 기계로 만든 옥수수가 든 자루에서 한 움큼 꺼내 섞으면 다시는 둘을 구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똑같은 콘플레이크와 똑같은 옥수수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칼슘과 수분의 양도 같고, 가운데 있어야 할 자리에 씨눈이 있고, 바깥에는 껍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송에서 말하는 사람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에 묻는 것입니다. 기계로 만든 것은 썩어서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밭에서 자라게 하신 것은 그 안에 생명의 씨눈이 있어서 다시 살아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교회의 같은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둘 다 집사이거나 목사이거나, 무엇이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혹은 둘 다 평신도일 수 있습니다. 둘 다 교회에 다니고 둘 다 같은 메시지를 듣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서 안에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살게 됩니다.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그 생명의 영이 안에 없다면 여러분은 멸망할 것입니다. 영생은 오직 하나뿐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총을 나무에 기대 놓고 거기 서서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작은 소나무다람쥐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 캐나다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녀석인데, 아일랜드 사람의 올빼미처럼 시끄럽기만 하고 실속은 없었습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숲속의 모든 것을 몰아낼 기세였습니다. 재잘재잘, 재잘재잘. 저는 ‘내가 너를 흥분시켰나 보구나, 작은 녀석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건너편을 바라보니 산의 커다란 틈 뒤로 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상록수 가지에 물이 맺힌 곳으로 햇살이 비쳤는데, 그 높은 곳에 뒤따라 불어온 찬바람이 물을 얼려 놓았습니다. 고드름이 달려 있었고, 그것이 골짜기를 가로질러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께서 여기 계시는군요. 저 무지개 속에 계십니다.”
그때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수엘크 한 마리가 저 산비탈에서 나팔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그런 소리에는 제 혼에 불을 지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늑대 한 마리도 산비탈에서 울었고, 그 짝이 아래쪽에서 대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인디언 혈통이 절반입니다. 제게도 야외를 사랑할 만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 여기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엘크 떼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늑대의 울음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꽃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나무 속에서 하나님을 뵙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면 저 바깥에서도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작은 줄무늬다람쥐인지 다람쥐인지를 보고 ‘시끄러운 꼬마야, 내가 너를 흥분시켰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도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저는 너무나 흥분해서… 아니, 그런 표현보다는 영감을 받아서, 총을 나무에 기대 놓고 그 나무 주위를 돌고 또 돌고 또 돌았습니다. 있는 힘껏 달리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군가 그 숲으로 올라왔다면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셨습니다. 저는 제 안의 모든 것을 다해 그분을 찬양했습니다. 그분이 무지개 속에 계셨고, 숲을 통해 속삭이셨고, 늑대를 통해 제게 부르셨으며, 저쪽 엘크를 통해 대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잠자코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람쥐보다 더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로키산맥 깊숙한 저 높은 꼭대기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서 있는 동안 그 작은 녀석은 펄쩍펄쩍 뛰며 점점 더 큰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작은 녀석아, 너를 흥분시키려던 것은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니 녀석이 작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면서 아래를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녀석은… 폭풍 때문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쓰러진 나무들이 있는 이곳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 다람쥐가 무서워한 것은 바로 독수리였습니다. 큰 독수리는 통나무 위로 뛰어올라 벨벳처럼 부드러운 그 커다란 눈으로 저를 보고, 또 작은 다람쥐를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상하구나. 저 바깥 온 곳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있는데, 왜 이것이 나를 방해하는 것일까? 왜 나의 거룩한 경배가 방해를 받았을까? 주님,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저는 그 큰 독수리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저 독수리 속에도 계실 수 있습니까?” 보니 녀석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에게 두 날개를 주셨고, 독수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선물을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총을 집어 들기도 전에 자기는 숲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왜 녀석이 두려워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녀석은 계속 깃털을 움직이며 살펴보았습니다. 새들이 날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시지요. 모두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교회도 함께 모여 영적인 날개들이 모두 제대로 움직이게 한다면…
녀석은 계속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조금 지나 보니 저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재잘재잘하는 소리는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크게 한 번 뛰어올라 날개를 두세 번 퍼덕였습니다. 그러자 숲 위로 벗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보여 주시려는지 알았습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이 거대하고 큰 새는 이렇게 큰 날개를 펼쳤고, 다시는 한 번도 퍼덕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람의 물결에 날개를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더니 작은 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또 한바탕 기쁨이 터져 나오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감리교에 가입했다가 떠나서 침례교로 가고, 또 나사렛교회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에 믿음을 어떻게 맡겨 위로 들려 올라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물결을 타고 그림자 너머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게 하소서. 빛 가운데서 제가 그 샘과 저를 깨끗하게 하는 피를 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땅에 매인 그 작은 다람쥐를 뒤에 남겨 두었습니다. 다람쥐는 거기 앉아서 “기적의 시대는 지났어. 성령 같은 것은 없어. 네가 이런 병에 걸렸다면 나을 수 없어…” 하며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그저 날개를 펼쳐 놓고 그곳을 떠나 날아갔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독수리 같은 날개를 주시옵소서. “기적의 시대는 지났어. 신유 같은 것은 없어. 거룩하다며 뒹구는 광신자들일 뿐이야.” 여기서 재잘재잘, 저기서 재잘재잘. 철저하게 땅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소리가 지긋지긋해졌습니다. 저는 이 교회도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여러분의 큰 날개를 맡기십시오. 성령께서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여러분을 데려가시도록 하십시오. 마침내 그 소리가 그저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처럼 되도록 말입니다. 자연 속에, 하나님은 자연 속에 살아 계십니다. 다윗은 자연과 깊이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연을 살폈고,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우시면 물매로 곰을 죽이고 사자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이상한 부분은 이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이 성경 말씀의 문맥을 보셨습니까? “주의 인자하심이 제게는 생명보다 나으므로 제가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물이 없는 마른 땅에서 제 혼이 주를 갈망합니다.”
그때 저는 다윗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선지자가 무슨 뜻으로 말한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무엇이 생명보다 더 낫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생명에는 분명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도박하고 방탕하게 돌아다니고 춤추는 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왜곡된 삶입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마귀가 그 삶을 왜곡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런 삶은 너무나 비참해집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비참해져서 권총을 들고 자기 머리를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일 수는 없습니다.
많은 젊은 여자들은 시내에 나가 돈을 모아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사 입고 잔뜩 꾸민 채 거리를 걸으면, 남자들이 자기를 향해 추파를 던지는 휘파람을 불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에는 껌을 한 덩이 물고서 “이게 사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자매님, 틀렸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성경은 “쾌락에 빠져 사는 여자는 살아 있어도 죽었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남자도 월급이 올라 더 좋은 차를 사고 좀 더 좋은 양복을 입게 되면 ‘야, 이제 살맛 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죽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곡된 삶입니다.
얼마 전 저는 이 놀랍고 아름다운, 하나님께서 주신 캐나다의 한 큰 도시에 있었습니다…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젊은이라면 캐나다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캐나다에는 누릴 것이 더 많습니다. 저는 캐나다가 좋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평생 밴프와 재스퍼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보지 못했습니다. 융프라우와 아이거로이와 몽케부데에도 가 보았고, 스위스 알프스와 독일 전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곳도 밴프와 재스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천년왕국 때 제가 그곳에 살게 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계신 그곳에서, 그때 우리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오, 참 아름답습니다.
저는 여러분 나라의 큰 도시 중 한 곳에 있었는데, 어느 친절한 형제님이 아주 커다란 호텔에 묵게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밤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4층이나 5층쯤 올라갔습니다. 거기에는 미국에서 온 미국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어떤 친목 단체 사람들이었는데, 그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친목 단체, 어느 특정 단체가 거기에서 축하 행사인지 대회인지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교회에 가기 전부터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돌아와 맨 위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더니, 제가 본 것 중 가장 끔찍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외모가 단정한 여자 둘이 복도로 오고 있었는데, 아마 스물다섯이나 서른 초반쯤 되어 보였습니다. 속옷만 입은 채 저마다 위스키 병을 들고 있었고, 남자들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그 여자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저는 그늘진 곳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두 여자 모두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건전한 놀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더러운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집에서 아기를 돌보며 아내가 좋은 사람들과 식사도 하고 가볍게 어울리는 자리에 갔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자리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술판으로 변한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제가 보니 어떤 나이 든 남자가, 그 젊은 여자보다 아마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남자가 여자의 몸에서 만져서는 안 될 곳을 움켜잡고 방 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온갖 추태가 벌어졌습니다. 저는 거기 서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 뒤 그들이 나왔는데, 그 나이 든 남자는 너무 취해서 여자도 제대로 붙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여자 하나가 거기 서서 남아 있던 옷마저 모두 벗었습니다. 그러고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다리를 번쩍 들더니 “야호! 야, 이게 사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뛰어나가 그 여자의 팔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부인, 이것은 죽음입니다. 삶이 아닙니다.” 그들은 위스키 병을 떨어뜨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물이 없는 마른 땅에서처럼 제 혼이 주를 사모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갈증을 느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본성이… 여러분은 갈증을 느끼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갈증이 나는 것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갈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갈증을 여러분 안에 두신 것은 마귀가 있는 곳들에 가게 하거나, 할리우드나 세상의 유행을 갈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갈증은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증을 느끼는 것 자체도 복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여러분이 다른 것을 생각하도록 애써 왔습니다. 그 갈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분을 갈망하라고 주신 그 복되고 거룩한 갈증을 어떻게 감히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하십니까?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술과 흥청대는 큰 잔치로 말입니다. 마귀는 자기 나름의 왜곡된 도구들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갈망하라고 여러분에게 주신 그 갈증을 가져다가 세상의 것들을 갈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갈망은 그분을 향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보다 성경을 더 잘 압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성경을 안다고 생명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가입한다고 생명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침례를 받는다고 생명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교리문답을 안다고 생명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목회자라고 생명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교리문답이나 교회 규칙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갈증을 교회에 쏟아붓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춤추는 곳으로 가게 하거나 술을 마시게 하거나 부도덕한 생활과 그런 일들을 하게 만들 수 없으면, 그 갈증을 왜곡하여 교회에 가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여전히 왜곡된 것입니다. 교회에 가입한다고 생명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갈증을 가지고 결코 마르지 않는 샘에서 마셔 그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그 아름다운 성령 말입니다. 생명을 찾는 길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의 책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목사를 만족시키려는 갈증이 아니라 주님을 만족시키려는 갈증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갈증입니다. 그 갈증이 여러분 안에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들로 그 갈증을 풀려고 하십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왜곡된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 크고 거룩한 갈증을 말입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것으로는 그것을 채울 수 없습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정욕으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숨지 말고 나와 죄를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십시오. “주의 인자하심이 제게는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또 시편 47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숲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갈망하듯 내 혼이 주를 갈망하나이다.” 수사슴이, 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찾기에 갈급하듯, 내 혼이 주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야외를 잘 아는데, 아프리카의 밀림과 이 책, 성경이 쓰인 동방 나라들에는 들개와 늑대의 큰 무리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동물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사슴 한 마리가 있을 때, 이 사나운 들개들이 사슴 떼로 달려들면… 그놈들은 송곳니가 깁니다. 그리고… 사슴을 잡을 때 노리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귀 뒤입니다. 거기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 자기 몸무게를 실어 홱 매달립니다. 그러면 사슴의 목이 찢어집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사슴은 즉시 쓰러집니다.
그런데 사슴이… 들개가 우리가 경정맥이라고 부르는 이곳을 물지 못하면 또 다른 곳을 노립니다. 바로 옆구리입니다. 이렇게 이빨로 옆구리를 꽉 물고 자기 몸무게를 실어 홱 매달리면 사슴이 넘어집니다. 그러면 개들이 그 사슴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 버립니다. 그런데 들개가 사슴의 옆구리나 이 위쪽을 물었을 때, 너무 꽉 물고 있으면 종종… 때로는 사슴이 몸을 휘두르다가 살점이 뜯겨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짐승의 입에는 살점이 물려 있고, 다른 개들이 도망갈 길을 막고 있지 않으면 사슴은 때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 작은 사슴에게서 피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여기 사냥을 좀 아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사슴이 물에 닿을 수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 이르지 못하면 죽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혼이 주를 갈망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냥개들이 방금 달려들어 옆구리의 큰 살점 하나를 뜯어냈습니다. 피, 곧 생명이 흘러나가고 있습니다. 작은 사슴은 물을 찾으려고 코를 벌름거리며 서 있고, 사냥개들은 바로 뒤에 있습니다. 물을 찾지 못하면 죽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제 혼이 바로 그렇게 주님을 갈망합니다. 오 주님, 주님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멸망합니다.” 죄인 친구여, 여러분이 죄로 상하고 다쳐 있는데 지옥의 사냥개들이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그런 갈망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상태에 이르면 말입니다.
“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찾기에 갈급함같이. 제게는 그것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다쳤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저는 끝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그분을 얻지 못하면 멸망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고 그저 그분을 꼭 찾아야만 한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오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그 생명을 향한 갈증을 갖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은 오직 하나, 영생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는 것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뜻입니다.
몇 년 전 사막에서 길을 잃었던 인디언 안내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름은 팀 코이였는데, 아주 잘 알려진 안내인이었습니다. 그가 애리조나의 사막에서 길을 잃어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도… 길을 잃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길을 잃어 보았습니다. 모래가 끓어오르는 곳에서는 코가 헐고 피가 납니다. 혀가 너무 부어 말을 할 수 없고, 입술은 뒤집히며 온통 갈라집니다. 그러면 마귀가 신기루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물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 보면 물이 아닙니다. 마귀가 교인들과 죄인들에게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언가 좋아 보이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관광객들은 종종 길을 벗어나 꽃을 꺾으려고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사방이 다 똑같아 보여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들은 죽기 전에 그 신기루를 봅니다. 그곳으로 달려가 뛰어들어 자기 몸에 물을 끼얹는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머리에 뜨거운 모래를 끼얹고 있을 뿐입니다. 죽기 한참 전부터 커다란 대머리수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막에 누워 있는 그들의 눈알을 파먹습니다. 사람들, 죄인들과 교인들과 믿는 척하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요. 이런저런 옷을 입고 무리를 따라가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신기루를 마귀가 보여 줄 때, 육신이 죽기 훨씬 전부터 지옥의 대머리수리들이 복음을 보는 눈을 파먹습니다. 여러분은 집회에 가서 “나는 그런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지옥의 대머리수리들이 여러분의 눈을 파먹은 것입니다. 영적인 시력을 말입니다.
팀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아주 이름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말에서 내렸습니다. 물을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길을 잃었는데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들소인지 다른 짐승인지가 지나간 것 같은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 늙은 말의 이름은 베스였습니다. 그 말이 낮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올라타서 다시 타고 가 보려고 했지만, 말은 너무 쇠약해서 나를 태우고 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길을 따라 조금씩 걸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길이 물웅덩이로 이어진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가 말했습니다. “말을 타려고 했지만, 말은 너무 쇠약했습니다. 나는 잔뜩 흥분해서 그 길로 내려가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있었습니다. 너무 쇠약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끝장이었습니다. 다시 안장 위로 기어올라 출발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오른편으로 희미한 작은 길이 갈라져 나갔습니다. 내 늙은 말 베스가 그 길로 가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쪽으로 가지 마, 베스. 그 길로 가면 안 돼. 이쪽 길이야. 이쪽이 더 넓잖아. 더 좋은 길이야. 더 많은 짐승이 이쪽으로 갔어. 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말이 낮게 울며 다른 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톱니바퀴가 달린 박차를 차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을 그 넓은 길로 몰아가려고 이 박차로 온몸을 마구 찢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말이 움직이더니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말에서 뛰어내려 바라보았습니다. 말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서서 그 작은 길을 바라보며 낮게 울고 있었습니다. 박차로 찢어 놓은 양 옆구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잠시 거기 서서 ‘아, 이제 어떻게 하지? 형편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베스, 동물에게는 본능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 어쩌면 이 크고 넓은 길은 샘으로 가는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형제여, 제가 말씀드립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거기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며 그 길은 희미하나, 그것을 찾는 자들은 적으니라.” 무리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가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베스, 네가 이 사막을 지나도록 나를 태워 주었고, 우리는 함께 지낸 친구잖아. 네가 여기까지 나를 안전하게 데려왔으니, 남은 길도 너를 믿겠어.” 성령을 말과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형제여, 복되신 성령께서 이 모든 세월 동안 저를 지켜 주셨으니,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에서도 저는 그분을 신뢰할 것입니다. 제가 얻은 이 위대한 체험을 붙들고 앞으로도 나아가겠습니다.
말이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500야드도 채 가지 않아서 큰 물줄기 속으로 뛰어들었고, 거기 앉아 물의 복을 누렸다고 했습니다. 그와 말이 함께 물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물을 끼얹으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그 늙은 말을 데리고 코도 씻어 주고 다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저… 너무나 큰 복이었습니다. 그 말이 그를 안전하게 물까지 데려다준 것입니다. 이 길이 좀 희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끝에는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습니다. 그와 말이 이렇게 기운을 되찾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돌아보니 술에 취한 남자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또 보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물에서 나오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물에서 나왔고, 그 남자는 그를 야영지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사슴고기를 익혀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인디언 안내인 팀 코이입니다. 여기서 며칠 동안 길을 잃고 있었는데, 내 말이 방금 나를 물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는 사슴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곳의 네 사람은 모두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이 7월 4일인 줄 알고 축하하고 있었소. 저기 시에라네바다산맥에 다녀왔소. 광맥을 찾아 채굴할 곳을 확보했고, 여기 금도 가지고 있소. 아주 많이 있소. 이제 돌아가면 부자가 될 거요.”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팀, 우리와 함께 축하합시다. 쇼티, 술병 가져와.” 그들은 위스키 병을 가져다가 마개를 뽑고 “팀, 한잔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가 “아, 술을 안 마신다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 술을 한 모금도 마셔 본 적이 없습니다. 사슴고기는 감사합니다만, 이제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7월 4일도 아닙니다.” 그 남자가 “한 번도 술을 안 마셔 봤단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생 마셔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이 인디언 안내인이 우리와 함께 생애 첫 술을 마시게 하세. 만세! 바로 그거야.” 그들은 그것이 사는 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다리가 휜 자그마한 카우보이 하나가 30-30 소총을 집어 들어 탄환 한 발을 장전하고,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말했습니다. “팀, 우리 사슴고기가 먹을 만했다면 우리 위스키도 마실 만하겠지. 위스키를 한잔 마시든지, 아니면 이 30-30 총구 끝에 든 독을 맛보든지 하시오.” 그들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어떤지 아시지요. 팀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위스키를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켄터키의 블루그래스 지방 출신입니다. 오래전, 낡고 작은 통나무집이 있었습니다. 집 구석에는 울타리 가로대로 만든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고, 옥수수 껍질을 깔개로 썼습니다.” 저도 그런 침대에서 태어났습니다. “작은 오두막의 맨바닥으로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비쳐 들 때, 한 어머니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겨우 다섯 살인 어린 맨발의 소년이 집 안을 아장아장 돌아다녔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 어머니가 창조주를 만나러 가려 할 때 그곳에 있던 사람은 그 아이뿐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침대로 불러 안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팀, 하나님께서 조만간 누군가를 너에게 보내 주실 거야. 엄마는 본향으로 간단다. 하지만 팀, 엄마에게 한 가지 약속해 주렴. 네 아버지는 제명에 죽지 못했단다. 술주정뱅이로 죽었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온 거란다. 하지만 팀, 엄마에게 약속해 다오.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숨이 끊어지고, 꼭 쥔 어머니의 손에서 내 작은 손을 빼냈습니다. 여러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위스키를 맛본 적이 없습니다.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 왔습니다. 이제 쏘고 싶다면 쏘십시오.”
바로 그때 권총 소리가 울렸고,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술병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바로 뒤쪽 협곡에서, 상처투성이에 온갖 풍파를 겪은 듯한 작은 사내가 걸어 나왔습니다. 두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두 자루의 권총을 앞으로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팀,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아오. 여기 있는 누구도 나를 모르지. 내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소. 나는 무법자요.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부터 당신들을 줄곧 따라왔고, 여기서 그 금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소. 당신들이 충분히 취하면 총알을 박아 넣는 대신 내려가서 모두 머리를 후려치고 금을 가져갈 생각이었소. 술에 취해 뻗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하지만 팀, 나도 켄터키의 블루그래스 지방 출신이오.”
그가 말했습니다. “나도 돌아가시는 어머니께 똑같이 약속했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맹세를 깨뜨리고 말았소. 그래도 내 권총 소리가 천국의 커다란 협곡들에 메아리칠 때 어머니도 분명히 들으셨을 거요. 나는 이제 서약하오. 팀, 이 시간부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소.” 이렇게 무법자들과 금을 찾던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팀은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인도했습니다. 형제여,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들은 그 생명의 샘을 받아들였습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죄인 친구여, 여러분도 약속한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아는 것을 통해 얻는 영생”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오늘 오후 여기 모인 이 많은 분들 가운데 죄인인 분들이 하나님께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렇게…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와 아내에게 언젠가 영광 가운데서 만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제 이름을 적어 주시도록 손을 들고 싶습니다. 손을 들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생명의 샘에서 마시고 싶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에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아래층에 또 계십니까? 저쪽에 계신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겠습니다. 그 샘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녹음 공백.]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씻네 (지금 바로 나오십시오. 나오기 원하는 분은 모두 나오십시오.) …얼룩을. 죄인들이 그 물결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네. 이 절을 들어 보십시오. 죽어 가던 강도는 기뻐했네, 그날 그 샘을 보고. 그처럼 악한 나도 거기서,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내 모든 죄를 씻으리. 그처럼 악한 나도 거기서,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녹음 공백.] 믿으십니까? [녹음 공백.] …제가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그 기도 카드와 관계가 있으신 분 아닙니까? 10년 전에 여기서 받으셨지요. 사실은 본인이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내분이 받으셨습니다. 저는 형제님도 그 기도 카드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형제님 머리 위로 그 기도 카드가 보였습니다. 지금 형제님은 위장병 같은 것을 고치러 오셨습니다. 시달리고 계신 그 신경 질환도 말입니다. 오셨으니 이제 받으셨습니다. 기도를 받으셨지만, 이제 오셔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 바로 그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왜 어젯밤에는 그 기도 카드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겠습니까? 그때는 때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기도 카드가 있습니다. 이번 주로 꼭 10년 전에 제가 이곳에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1947년 8월 7일, 바로 이 방에서 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렸고, 며칠 전 밤까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드의 주인이 며칠 전 저녁 기도 줄에서 안내위원인지 누군가에게 그것을 내밀었습니다. 그것이 빌리 폴에게 전달되었고, 빌리 폴이 제게 주었습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평생 본 적도 없었는데, 그 기도 카드가 바로 거기에 떠 있었습니다.
좋습니다, 형제님. 이제 구하신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형제님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였을 때 그분께서 형제님의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신경 질환 때문에 위장병이 생기고 속이 쓰리며 입에 신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건강해지실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놀라운 은혜」 반주를 좀 해 주십시오. 모두 함께 부릅시다. 이 위대한 찬송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목사님들은 여기로 오셔서 이 죄인 친구들 곁에 서 주십시오. 이제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나아와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목사님들은 이리로 나오셔서 이제 이분들을 각자의 교회로 인도해 주십시오. 목사님들은 누구든 나오십시오. 여기 있는 남녀와 소년소녀들을 여러분의 교회로 환영해 주십시오. 자, 모두 함께 부릅시다. 그곳에는… 놀라운 은혜! 얼마나 감미로운 소리인가,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한 은혜! 한때 길 잃었던 나를 이제는 찾으셨고, 눈멀었지만 이제 보네. 들어 보십시오. 은혜가 (우리 모두) 내 마음에 두려움을 가르쳤고, 은혜가 내 두려움을 풀어 주었네.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하게 보였던가, 내가 처음 믿던 그때에!
이제 다음 절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함께 부르십시오. 목청을 활짝 열어 하나님께 노래하십시오. 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 나는 이미 여기까지 왔네. 여기까지 안전하게 이끈 것은 은혜요, 앞으로도 이끌어 갈 것은 은혜라네. 오늘 오후 이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손을 든 채로 부릅시다. 자, 모두 함께 부릅시다. 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 나는 이미 여기까지 왔네. 여기까지 안전하게 이끈 것은 은혜요, 은혜가 나를 본향으로 데려가리. 이제 곁에 서 있는 이웃과 악수하며 “이웃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십시오. 감리교인도, 침례교인도, 장로교인도…
이제 제단 앞에서 회개하는 여러분, 지금 정말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단 앞에 있는 모든 분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몸을 돌려 회중과 여기 목사님들을 향해 서 주십시오. 제단 앞에 계신 여러분, 이쪽 회중을 향해 돌아서십시오. 이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회중을 향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그것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정죄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이분들을 왕국의 동료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맞아들이는 목사님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환영의 뜻으로 손을 들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제 제가 여기 계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희가 참으로 기쁩니다. 메시지가 열매를 맺어 죄인들이 제단 앞으로 나아왔고,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며, 그것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결코 그를 내쫓지 아니하리라. 그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이나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들은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이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제 안에 있는 다른 왕국 시민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했습니다. 그들 역시 오늘 오후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순례자요 나그네가 되었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주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금 주님께서 이들 앞에서 이런 기적을 행하신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쁩니다. 저 사람 위에 그 기도 카드가 보인 일 말입니다. 오, 복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이 시간을 기다리셨고, 이제 이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줄에 아픈 사람이 더 있다면 그들의 몸에서 모든 질병을 없애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혼을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의 몸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교회 모두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모두 함께 만날 그날까지 이들을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아 지켜 주시옵소서. 그날 저녁, 주의 만찬을 위해 그 큰 상에 앉을 때에 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먹을 때, 마실 때까지 나는 더 이상 포도나무 열매를 먹지 아니하리라.” 그 위대한 날 그 큰 상이 차려지고, 모든 시대에 걸쳐 구속받은 이들이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으면, 우리는 서로 악수할 것입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께로 인도한 수백만 명을 그곳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와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쁨의 눈물을 조금 흘리면, 아름다우신 왕께서 나오셔서 못 자국 난 손으로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울지 말아라, 얘들아. 이제 다 끝났단다.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여라.” 주님, 이들을 이곳 추수밭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