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 우리가 요한계시록과 출애굽기와 창세기를 살펴보았던 것처럼, 저를 성경 이곳저곳으로 계속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지금 다람쥐 사냥을 하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게 전부입니다. 로이 형제님, 언제 가십니까? 내일요? 좋습니다. 저희는 해마다 이맘때 집에 오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좀 쉬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뵌 뒤로 체중이 20파운드나 줄었습니다. 이 집회를 떠날 때 저울에 올라갔더니 165파운드였는데, 돌아와서 달아 보니 145파운드였습니다. 그래서 옷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오늘 어떤 부인이, 사랑스러운 자매님 한 분이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브래넘 형제님, 저도 살이 빠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체격이 조금 좋으신 분이어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저와 함께 다니면서 열심히 설교해 보십시오.” 제가 아는 방법은 그 정도뿐입니다. 틀림없이 살이 빠질 겁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우리의 고난과 시련도 끝날 것입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제가 쉰 살입니다. 휴! 프랭키 웨버가 헌금을 넣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 두 살쯤 많습니다. 여기서 생일 감사헌금으로 25센트짜리 동전을 넣었는데, 제가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습니다. “이야, 프랭키 웨버가 스물다섯 살이라니. 백 년의 4분의 1이구나.” 이제는 절반이 되었습니다. 정말 얼마 안 걸리지요? 세월은 계속 흘러갑니다.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겠습니다. 오늘 아침 사랑하는 우리 형제님이 그 참으로 훌륭한 메시지를 전하실 때, 여러분 모두 은혜롭게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만, 형제님이 저기서 설교하시는 동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주님께서 그에 맞는 성경 말씀을 주시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그분께 하나님의 복된 말씀에서 몇 구절을 읽어 주시도록 했습니다. 이제 잠깐 말씀을 전한 뒤, 늘 하듯이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밤, 이번 수요일 밤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히브리서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히브리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일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밤에 계속하고, 그다음 수요일 밤에 또 이어 갈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성경을 계속 따라가 보려는 것입니다. 제가 오가면서 교회 안에 조금 가르쳐야겠다고 느낀 것들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금 약해진 듯한 부분들이지요. 히브리서에서 그런 것들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장이고, 읽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네빌 형제님,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내려오는 길에 그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 제게는 신약성경만 있습니다. 제가 읽는 것은 콜린스 성경입니다. 글자가 더 큽니다. 거의 쉰 살이 되고 보니, 이 어두운 조명에서는 아주 작은 글씨를 읽으려면 책을 너무 멀리 밀어 놓아야 합니다. 밖에 나가 햇빛 아래에서는 아직 읽을 수 있지만, 빛이 조금만 어두워지면 멀리 밀어 놓아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곧 돋보기를 써야 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눈이 나쁘냐고 물었더니 검사하고는 “아닙니다” 하시더군요. 시력이 10/10인데, 대단히 좋은 거랍니다. 20/20이 정상이요, 15/15은 더 좋고, 10/10은… 검사표에서 읽을 수 있는 게 거기까지였는데, 먼 거리에 놓으면 어디에 놓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뭔가를 내놓으시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가까이 가져올수록 제가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습니다. 이 정도쯤 가까워지자 더는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마흔이 넘으셨군요” 하셨습니다. 제가 “예”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안구가 납작해집니다. 이제 오래오래 사시면 노년에 다시 시력이 좋아질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시 읽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았구나. 조금만 더 있으면 되겠구나.” 토니 형제님, 서글픈 일이지요? 아닙니다.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복된 일입니다. 한쪽으로는 나이가 들지만 다른 쪽으로는 젊어지고 있습니다. 젊고 죽지 않는 그 복된 몸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형제님, 그곳에서는 어떤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때를 바라보며 삽니다.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을 읽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그분께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저희가 얼굴을 찌푸리며 슬퍼하도록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즐거운 마음은 약같이 좋은 일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주님의 복을 누리며 이렇게 함께 귀한 교제를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저희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로서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합니다. 저희가 여기 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단지 메시지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전하는 가운데 주님을 경배하며 주님과 교제하려고 왔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희를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시간에 저희에게 복 주실 줄 확신합니다. 주님, 훌륭하고 선한 우리 목사님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분과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그분이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고, “머지않아 고난과 시련도 끝나리”라는 찬송을 부르시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매님들이 나뭇가지로 지붕을 엮은 집회소와 야영 집회에서 그 찬송을 부르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언젠가는 정말 모든 고난과 시련이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안식에 들어가겠지요. 아버지, 이제 저희가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또 이미 읽은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오늘 밤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참으로 훌륭한 복음 전도 메시지를 들으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아시다시피 네빌 형제님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먹이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저 교회에 잠깐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교회에 드리는 짧은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한 구절 더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밤 제 주제는 “기념물… 세월의 시험을 견딘 하나님의 기념물”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광고를… 아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여기, 주님의 뜻이면 수요일 밤부터 히브리서 1장으로 집회를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 집회가… 제가 어느 곳에 있다가도 주님께서 다른 곳으로 부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부르시는 대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나 다른 분들처럼 2, 3년 앞서 집회 일정을 잡아 놓고 “그때 거기에 가겠습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 크고 건장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는 것입니다. 여기든 저기든 어디든, 그분이 보내실 때 곧 가야 합니다. 사역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 바로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제 이웃 청년과 이야기하다가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이러더군요. “어떤 목사님이 계신데, 참 좋은 분입니다. 아내와 제가 잠옷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밤 11시쯤 그분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며 ‘그냥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려고 들렀습니다’ 하시더군요. 그러고는 길 건너 다른 이웃집에 가셨습니다. 그 집도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는데, 거기서는 쿠키 하나를 드셨지요. 그렇게…” 그러더니 또 말했습니다. “그분이…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성경학교를 열었는데, 그분과 사모님에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아이들을 수용하려고 바깥에 천막까지 쳐야 했답니다.” 저는 돌아와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참 훌륭한 분이구나.” 여기 플리먼 형제님의 아들도 거기 다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위쪽에 있는 페이스 루터교회 말입니다. 그 목사님과 사모님은 참 훌륭한 분들입니다. 주님을 위해 큰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차를 씻다가 풀이 죽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이곳저곳을 다니며 아이들을 다 데리고 다니는 것 말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이 집 저 집,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 못할까 싶었습니다. 그때 제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그 일을 하도록 부름받지 않았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그대로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과 다른 분들처럼 앞장서서 믿음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칼을 든 여호수아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저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함께 하나의 큰 몸을 이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조금 전에는 낙심하여 마음이 상한 젊은 자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똑같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사람이 만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성과 여성 둘 다 지닌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육체로 나누어 서로 다르게 만드셨지만, 자녀를 기르는 일에서는 하나로 결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강건한 부분이고, 또 [불분명한 말]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함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누셨지만, 둘 다 바로 그 동일한 존재, 곧 사람, 영어로 m-a-n이었습니다. 여자를 wo-man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에게서 취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삶에서 육체로는 나뉘었고, 영으로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 연애하던 때처럼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언제나 여러분의 연인입니다. 물론입니다. 아내는 늘 그런 존재여야 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아, 그 달콤한 신혼이 끝나게 하지 마십시오. 천국에서는 그것이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곳에서는 완전히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이 대목에서는 자매님들 몇 분이 “아멘” 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앞으로 “형제님은 늘 여자들을 야단치고 그런 말씀만 하세요” 하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히커슨 자매님,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저 뒤에 다른 분은요? 하셨다고요? 감사합니다, 콕스 자매님. 아주 좋습니다. 콕스 형제님, 지금 어디에 계시든 이 말씀은 형제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는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연인으로 지내십시오. 결코 그것이 끝나게 하지 마십시오.
얼마 전에 가톨릭 신자인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헤어지려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 당신에게 오기가 참 미안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고 당신은 개신교 신자잖아요. 조금 전에 신부님이 저를 제 집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그게…” 하더니 사정을 말했습니다. “제가 술을 조금 마시거든요. 밤에는, 저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가 매일 밤 집에 돌아오면, 막 결혼하려는 사이처럼 입을 맞추고 안아 주고 그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벌써 결혼했고 아이들도 여럿인데요. 우리가… 그럴 때는…” 제가 말했습니다. “어, 잠깐만요. 그건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잘못이에요. 결혼하기 전과 똑같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언제나 기억해야…” 제가 말했습니다. “아내분이 지금 마흔 살이니, 남편의 관심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혼 재판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가서 아내분에게 전화하십시오. 제가 개신교 목사로 찾아가면 저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가 “아닙니다, 아내는 형제님을 좋아합니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냥 가서 아내분에게 전화해서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씀하십시오.” 다음 날 저는 판사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판사가 당신을 호되게 꾸짖을 그 법정 바로 아래층에 제가 앉아 있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내분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계단을 내려오는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서로 팔을 두르고 환하게 웃으며 내려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아, 안녕하세요”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뵌 지 좀 되었네요.” 그렇지요, 30분 되었지요. 아시겠죠? “뵌 지 좀 되었습니다.” 아내분도 말했습니다. “어머, 브래넘 목사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두 분이 꼭 연인 같으시네요”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우리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여보?” 아내분이 “그럼요, 여보” 하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언제 한번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했습니다. 두 사람이 지나간 뒤 그 친구가 돌아서서 이렇게 손을 흔들더군요. 둘 다 아주 행복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온갖 표적과 증거를 다 가지십시오. 저는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제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죽임당하신 사랑하는 어린양이여,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결코 그 권능을 잃지 않으리니,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온 교회가 구원받아 다시는 죄짓지 않을 때까지라. (아시겠죠?)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핏줄기를 믿음으로 바라본 그때부터, 구속의 사랑이 나의 주제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러하리라. (그렇습니다. 아, 놀랍습니다.)
이제, “세월의 시험을 견딘 기념물”입니다. 오늘 아침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일요일학교에서 들은 복음 전도 메시지, 우리 형제님이 엘리야에 대해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려고 했던… 그 청년들, 선지자 학교의 사람들이 커다란 학교 같은 것을 짓고 싶어 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고, 저는 기념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기념물은 훌륭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념물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어떤 기념물인가를 뒤에 남기려고 애썼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무덤에 커다란 비석을 세우는 것이지요. 좋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그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큰 기념당을 지으려고도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기념물 하나가 오하이오주에 있습니다. 그곳에 불신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집에 모아 둔 자료 어디엔가 그 사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얼마나 완강히 반대했던지, 자기가 죽은 뒤에는 한 발로 성경을 밟고 이렇게 아래를 가리키며 “종교적 미신을 몰아내고 현대 과학을 높이자” 하는 기념상을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죽어 가면서는 “내가 틀렸다면 내 무덤에서 뱀들이 기어 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죽고 사람들이 아직 무덤에 흙을 퍼 넣고 있을 때, 커다란 독사 두세 마리를 죽였습니다. 오늘날 그 묘지에는…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사진을 찍어서 제게 보여 주려고 가져왔습니다. 그의 묘역을 둘러싼 쇠사슬 위에 뱀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묘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그의 봉분은 온통 뱀굴입니다. 심지어 가을과 겨울에도 여전히 그의 무덤에서 뱀들이 기어 나옵니다. 하나의 기념물이지요. 하나님께서 저나 여러분 중 누구도 그런 기념물을 갖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훌륭한 기념물들도 있습니다. 저는 용맹한 전사 여호수아를 생각합니다. 그 200만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모세의 무장을 이어받은 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선택받고 부름받아 어떤 사역을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서서 그런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고 미리 예정되고 세움받은 용맹한 전사, 이 선지자의 뒤를 이어 그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가 오기 4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오셔서 구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훌륭한 전사였습니다. 모세의 자리를 이어받아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세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너희가 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끊어지리라.” 그렇습니다.
이제 이 위대한 기념물을 생각해 봅시다. 여호수아가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 옷을 빨고, 따로 구별되며, 너희 아내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이다.” 아, 어느 일요일 저녁 예배 때에는 그 셋째 날에 대해 설교하면서 그 셋이라는 수에 어떤 권능이 있는지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기도에서도 말씀드렸지요. 성경의 뉴매틱스(pneumatics)에서는 누구에게나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제 “셋째 날에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했습니다. 그가… 그것은 자기가 하는 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날지 정확한 때까지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 있던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의 말이 참되어야 하는데, 눈앞에는 물이 불어난 요르단강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사람의 성품은 행위로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의 행위가 입증합니다. 얼마나 많이 간증하든, 무슨 말을 하든,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속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줍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 하나하나가 여러분을 드러냅니다. 사업하시는 여러분, 그저 임시로 대충 때우듯 일을 한다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반쯤 하다 만 일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제대로 할 수 없으면 아예 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올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어드리고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다면 아예 나오지 마십시오. 하지만 정말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분명하게 나서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입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여러분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행위로 여러분의 성품이 알려집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자기 말의 진실성이 걸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옛날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때 중에서 가장 나쁜 때를 고른 듯했습니다. 4월이었는데, 유대 지방의 눈이 녹아서 산을 타고 내려오는 때였습니다. 요르단강은 흙탕물이 되어 들판까지 완전히 넘쳐흘러, 요르단의 들판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수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보자면, 일 년 중 요르단강을 건너기에 가장 나쁜 때를 고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때를 택하여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먼저 궤를 메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 제사장들의 발이 요르단강에 닿자, 물살이 아무리 거세고 물이 아무리 불어났어도 그 강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말씀이 그 궤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자기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병든 분들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고백과 함께 두십시오. 여러분의 고백을 내놓고, 그것을 믿어 앞에 세우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부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끝까지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르단강에 닿자 강물이 양쪽으로 물러나 멈추었습니다. 그 세차게 흐르는 강이 20분만 막혀 있었어도, 지금 우리에게 있는 거대한 댐들, 저 콜로라도의 볼더댐만 한 물벽이 생겼을 거라는 것을 아십니까? 요르단강은 산에서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 내려와 골짜기들을 휩쓸며 흐릅니다. 걸어서 가는 남자 200만 명에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그곳을 통과하려면 아마 네다섯 시간이나 그 이상 걸렸을 텐데, 그 강물이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흐름을 멈추셨습니다. 아멘. 아, 저는 이 말씀이 좋습니다. 강물의 흐름을 멈추셨고, 그들이 다 건너갈 때까지 물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기념할 것을 만들자. 가서 각 지파에서 이스라엘 사람을 한 명씩 보내어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기념물을 세우라. 이 기념물은 너희 자녀들이 이 길을 지나가다가 ‘왜 이 돌들이 여기에 있습니까?’ 하고 물을 때를 위한 것이니, 너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요르단강을 멈추셨는지 이야기해 주어라.” 참으로 놀라운 기념입니다. 머지않아 언젠가, 지금도 기념물로 서 있다는 그 돌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것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다른 기념물을 생각합니다. 방금 그 기념물은 참으로 크고 복된 기념물이었지요. 이제 또 다른 기념물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녀는 물이 넉넉한 평지에 머무르지 않기로… 아니, 소돔과 고모라의 물이 넉넉한 평지에 머무르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당시의 다른 여자들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척박한 땅에 머물렀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했던 사라처럼 좋은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다정했으며, 남편을 자기 주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 두 천사와 함께 내려오셔서 장막에 있는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아주 세속적으로 변하여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우리도 너무 세상에 마음을 둘 수 있다는 것,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오늘날 교회 전체가 지나치게 세상에 마음을 두게 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롯의 아내도 그곳으로 내려갈 때부터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것뿐이야” 하고 생각했겠지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습관을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가더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다니엘처럼 가십시오. 그들은 무슨 일이 닥치든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뜻을 정했습니다. 교회의 나머지 사람들이 다 타락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들은 마음속으로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은 기념물입니다.
롯의 아내도 기념물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은혜의 메시지를 주셨을 때, 천사들을 그곳으로 보내어 몇 시간 안에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것이라고 알려 주셨을 때에도, 그녀는 사교 생활을 포기하고 사막으로 나가 사라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막에 나가서 평원에 사는 여자들처럼 수수하고 평범한 옷을 입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녀는 호화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그 도시에서 유력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재판관으로, 혹은 그 도시의 시장으로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호사를 원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그 도시를 나오면서도 그녀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울고 슬퍼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그런 죽음에서 자신을 분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기만 하는 자도 쟁기질할 자격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손에 쟁기를 잡고,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뒤를 돌아보기만 해도 쟁기질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아, 우리는 눈과 마음을 한곳에 두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교회가 무엇을 하든, 이웃이 무엇을 하든, 그 누구가 무엇을 하든, 여러분의 마음을 갈보리에 고정하십시오. 뒤를 돌아보려고 멈추지도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 여자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때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가 뒤를 돌아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기념물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곳에 서 있습니다. 들판에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왼쪽 어깨 너머로 들판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그 뒤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떠밀리듯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입니다. 세상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계속 미련을 두고 탐내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갑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 주는 참담한 기념물입니다.
이제 기념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시던 때, 유대인들은 기념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졌는지 예수님께 보여 드렸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전을 짓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전부 합하면 80년쯤 걸렸습니다. 40년 동안 세계 여러 곳에서 돌을 깎아 냈습니다. 그리고 톱질하는 소리도 망치질하는 소리도 없이 40년 동안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뒤에 이런 위대한 기념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리라.” 성전도 없어지고 기념물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말은 영원한 기념물이니라.”
그 궤도 오래전에 썩었고, 선지자들의 무덤도 무너져 내렸으며, 온갖 기념물이 쇠락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돌을 씻어 없앴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영원토록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말씀이 처음 선포되던 날과 똑같이, 오늘 밤 이 시대의 신자들에게도 살아 있고 생생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 형제님이 전하신 메시지에서, 사람들이 선지자들을 위한 큰 학교를 기념물로 세우려 했을 때 엘리사가 더 좋은 것을 택했던 것도 당연합니다. 떨어진 도구를 다시 떠오르게 하여 물 위에 뜨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밤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기념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떤 큰 기념물을 세우려는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들었을 때… 이탈리아에 있을 때 무솔리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체육을 기념하여 40여 피트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기념물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대한 폭탄에 맞아 가루가 되어 버렸더군요. 2, 3년쯤 전에 저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거대한 신전과 우상을 세웠던 자리에 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기념물이 서 있던 지면만 찾으려고 해도 땅 아래로 20피트를 파야 한다고 하더군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있던 곳, 헤롯들과 로마의 위인들이 있던 곳에도 서 보았습니다. 그가 궁전에서 나와 다니던 거리에도 가 보았는데, 지금 지면보다 약 25피트 아래에 있습니다. 그 기념물들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똑같이 남아 있고, 똑같이 귀합니다. 그것이 기념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말씀드립니다, 형제님. 여러분이 하는 일, 여러분이 하는 말, 이웃을 대하는 태도,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영원한 기념물로 남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남겨 줄 좋은 집이 있을 수도 있고, 자녀들의 생계에 보탬이 될 것을 남기려고 일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 주고 싶습니다. 그런 집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집을 남겨 주는 것은 좋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일들을 하면서 큰일을 하지 않은 채 남겨 두지는 마십시오. 아시겠죠? 말씀은… 집은 없어지고, 사람들도 그 집과 함께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들에 그들을 일으켜 다시 영원하고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유산,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남기려면… 오래전에 우리가 여기서 부르던 옛 찬송이 생각납니다. 세월은 쉴 새 없이 변하고, 땅 위의 모든 것은 흔들리리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라. 우리의 여정이 끝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했다면, 아름답고 밝은 영광의 우리 집을 기쁨에 넘친 우리 혼이 바라보리라. 몸속 혈관의 피가 식어 가고 자녀들이 침대 곁에 둘러서 있을 때, 저무는 해를 바라보면서 이런 기념물을 세워 두었다는 것을 아는 편이 얼마나 더 낫겠습니까? “얘야, 언젠가 아빠가 저편에서 너를 만날 거야.” 의사가 “빌리, 이제 더는 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저는 그런 기념물을 갖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죽는 것은 아니야. 쉬러 가는 거야.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이란다. 이 땅의 장막이 해체되더라도 나를 위해 이미 기다리는 장막이 있단다.” 얼마나 놀라운 기념물에 근거한 말입니까? 저는 자녀들을 마주 보며 “얘야, 너를 위해 이 은행에 백만 달러, 저 은행에 또 백만 달러를 두었단다”라고 말하기보다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간증을 남기고 싶습니다. 우리가 떠날 때 뒤에 남기리라, 세월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그 발자국을 어쩌면 또 다른 이가, 엄숙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버림받고 난파당한 형제가, 보고 다시 용기를 얻으리라. (물론입니다. 기념물로 그것을, 여러분의 간증을 남기십시오.)
오늘 밤 저는 저기 누워 이 세상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신 한 노인을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폴 레이더의 태버내클에서 자기 장례식 설교를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좋은 친구 F. F. 보스워스 형제님입니다. 경건한 성도 한 분이 자기를 지으신 분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그분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밤에 잠을 거의 못 잡니다.” 저는 에이미 맥퍼슨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훌륭한 여성분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흠도 보았고 이런저런 일들도 보았습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와 프라이스 박사, 그 밖의 많은 위대한 분들에게서도 흠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F. F. 보스워스 형제님에 대해서는 누구도 흠 하나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지막도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여 주는 기념물이 되게 해 주십시오.
얼마 전 여기 위쪽에 있던 E. 하워드 캐들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그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파리들이 입안에 알을 슬고 있었습니다. 저기 계신 그의 사랑하는 노모는 술주정뱅이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믿으며 하나님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는 간증과 기념물을 남겼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분 앞에 내놓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에 응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념물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그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시려고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얼마나 큰 선물을 주셨는지 생각하고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그분께서 치르셔야 했던 엄청난 대가를 생각해 보면… 요즘은 누구나 모든 것을 공짜로 얻으려 합니다. 모든 것을… 그것이 오늘날 미국의 생활 방식입니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전부 공짜로 받으려는 것이지요. 형제님, 값어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공짜로 얻지 못합니다. 얻는 것에는 값을 치릅니다. 그렇습니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도 큰 대가를 치릅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큰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어 오늘 밤 그를 행복하게 하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위해 살게 하시려고 그분의 독생자를 내주셔야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남겨 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구원보다 더 큰 유산은 남겨 줄 수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유산은 없습니다.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세월의 시험도 거쳐야 합니다. 세월의 시험을 견딘 기념물입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시험을 거친 유일한 기념물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아, 불신자들이 그것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만,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 기념물을 받았을 때 말입니다. “너는 그 여자 사라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는 25년 동안 온 마음으로 그 말씀을 믿고, 그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부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일어나 성경을 지워 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멈추게 하려면 먼저 시간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모든 무신론적 활동, 모든 무신론자, 모든 공산주의자, 그들이 누구든지, 모든 불교도, 모든 자이나교도, 모든 이슬람교도는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증언해야 합니다. 편지에 서명할 때마다, 아멘, 날짜를 적을 때마다, 1957년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형제님, 그것을 없애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얼마 전에 뉴욕에 갔을 때, 작은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해 전에 프랑스 정부가 미국에 선물한 것입니다. 손에는 횃불이 들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팔까지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창이 하나 있는데, 큰 빛이 비치는 그곳 가장자리를 내려다보니 작은 참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모두 죽어서 가장자리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저 참새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감전된 건가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아직 치우지 못했습니다. 어젯밤에 폭풍이 불었지요. 거센 폭풍이 이 만을 지나갔습니다.” 제가 “예, 알고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작은 새들이 폭풍을 만난 겁니다. 그러다가 이 빛 속으로 들어오자 빛을 없애려고 들이받았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유리에 부딪히고 또 부딪힌 겁니다. 그 빛을 따라 안전한 곳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빛을 없애려고 들이받았습니다.”
그때 제게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없애려고 드는 남녀들은 자기 머리만 박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 빛을 이용하여 안전한 곳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것을 부인하려고 자기 머리를 깨뜨리며 “기적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신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예부터 말해 온, 마음 깊이 체험하는 구원이나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말입니다. 그저 기둥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 저런 사람이라 주장하다가 실패하고 그렇게 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계속 나아갑니다. 교회는 올바른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저 아래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 왕실 아래 있는 저 큰 호주 말입니다. 남아프리카와 마찬가지이지요. 건너편에 호주가 있습니다. 저기 시드니에는 만을 둘러싸고 큰 도시가 있습니다. 빌러 형제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곳에서 북시드니와 남시드니를 잇는 다리를 놓으려고 했습니다. 전국에 연락하여 건축가들과 교량 건설자들에게 와서 그 다리를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맡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감히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다 밑바닥이 움직이는 모래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사층이어서 아무것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험도 하고 수심과 지반도 조사하다가 떠났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다리를 놓는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얼마 뒤 영국에서 젊은 건축가 한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유명한 사람이었고, 신망 있는 사람이었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아, 저는 그런 점이 좋습니다. 저는 신망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권력자보다 훨씬 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부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평판을 가지면 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평판을 드러냅니다. 여러분의 됨됨이가 여러분을 만들고, 그것이 여러분의 평판을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은 그 평판으로 여러분을 압니다.
이 사람은 아주 좋은 평판을 지닌 채 그곳에 내려왔습니다. 그는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며칠 동안 물가를 걸어 다녔습니다. 연구하고, 시험하고, 수심과 지반을 조사하고,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시장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그 일을 맡겠습니다.” 시장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생, 무슨 일을 맡으려는지 아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시장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건축가들, 미국의 건축가들과 세계 각지의 건축가들, 교량 건설자들이 이곳에 왔다가 그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님, 저는 그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교량 건설자로서 제 명성이 세계에 알려져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제 명성을 걸겠습니다. 저는 이 다리를 지을 수 있으니까요.”
아,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명성을 얻으려면 먼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아,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갈 수 있는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건물에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 건물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흘리신 피가 모든 죄를 씻어 없앴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지옥의 골목에서 데려다가 자신의 종으로 삼으셨으니,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모든 신자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고, 이 위대한 건축자, 이 위대한 설계자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그 일을 맡았을 때,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실히 하려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현장에 내려가서 말했습니다. “자, 이 다리를 짓기 전에 단단한 기초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반드시 내려가야 합니다.” 그는 그 모래 밑에 단단한 암반으로 된 땅의 속바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주 큰 펌프들을 가져와 그 안에 거대한 관들을 내려놓고, 펌프로 움직이는 모래를 불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한 암반까지 완전히 불어냈습니다. 암반에 도달하자 거대한 볼트들을 그곳에 고정하여 준비했습니다. 기초 자리마다 그렇게 모래를 불어냈습니다.
그다음에는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건축가들과 최고의 과학자들, 최고의 장비를 모았습니다. 먼 곳에 주문하여 다리에 쓸 강철을 가져왔습니다. 그때 그는 강철 한 조각도, 심지어 볼트 하나도 과학적으로 시험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속에 기공이 있는지, 주조 공장에서 만들고 틀에 부을 때 공기가 차 생긴 작은 구멍이 있는지, 제대로 시험을 거쳤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교량 건설자로서 그의 명성을 기리는 참으로 훌륭한 기념물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리의 안전을 확실히 하려고 그토록 수고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안전을 확실히 하시려고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분의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 합당하게 살려 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험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자신의 기념물로 삼으시려고 사람들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 너무 심한 시험을 겪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시험들로 인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십시오. 바울은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아들마다 먼저 시련과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험은 여러분에게 보배로운 금보다 더 달고 귀합니다. 지금은 시험하는 때입니다.
옛날 제련소가 생기기 전에는 금을 가지고 어떻게 순수한지 아닌지 알았을까요? 찌꺼기와 황철석, 곧 바보의 금이라고 부르는 것, 그 가짜 금이 모두 빠졌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금을 두드리는 사람이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뒤집어서 두드리고 또 뒤집기를 되풀이했습니다. 마침내 두드리는 자기 모습이 금에 비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교회를 그렇게 다루십니다. 시련에 시련, 시험에 시험, 시련에 시련, 시험에 시험을 거듭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의 삶에 비칠 때까지, 여러분이 평온하고, 신중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고, 겸손하고, 준비되어 있고, 순종하고, 기꺼이 따르는 사람이 될 때까지, 세상 것들에서 고개를 돌려 갈보리, 곧 여러분을 두드리고 계신 그분을 똑바로 바라볼 때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많은 경우 여러분은 불같은 시련이나 질병이나 핍박이 닥치는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여러분을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속의 더러움과 찌꺼기를 빼내고, 굼뜬 것을 없애고, 여러분을 깨워 바라보고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이 여러분 안에 비치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십니다.
그는 부품 하나하나를 시험했습니다. 마침내 볼트 하나를 끼우기 전에도 시험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부 완성했을 때… 비웃는 사람들이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저 다리는 버티지 못할 거야. 버틸 수 없어.”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이 성령 신앙 말이야, 얼마 못 가서 그 나무는 다 타 버릴 거야.” 하지만 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 그 불은 오히려 물을 주는 셈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줄 뿐입니다. 시련의 시험 하나하나가 오히려 더 강하게 합니다. 바람이 나무를 때려 이리저리,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뿌리가 느슨해져 더 깊이 내려가고 더 단단히 붙잡게 됩니다. 여러분의 집에 질병이 닥칠 때마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이웃이 여러분을 험담할 때마다, 그것은 여러분을 흔들고 느슨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 깊이 내려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원한 반석을 더욱 굳게 붙잡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을 시험하고, 입증하고, 흔들어 깨우며, 새롭게 붙잡게 하시려고 그 시련들을 보내십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가 그 모든 일을 마쳤을 때, 비판하는 사람들은 곁에서 “저건 안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건축가는 자기 다리가 버틸 줄 알았습니다. 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버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는 점이나 주름이 없는 교회를 가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그 교회는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자녀는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그 위대한 기념일에, 그들이 하려고 했던… 양쪽에서 시작한 두 부분이 만 한가운데서 서로 만났을 때, 다리를 지은 사람은 말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주위에 서 있던 건축가들은 모두 말했습니다. “저 다리는 진동이 생기기만 하면 곧장 무너져 내릴 겁니다. 위험할 것입니다.” 어떤 보험회사도 그에게 보험을 들어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험도 필요 없었습니다. “내 다리는 버틸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제 자기 명성이 걸려 있으니 다리를 시험해야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다리가 버텨 낸다면 하나의 기념물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부터 전해 온,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 깊이 체험하는 구원이 견뎌 낼 줄 압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명성이 걸려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세울 재료로 아무것이나 주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신학이나 어떤 학교에서의 경험 위에 세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말한 사람들이 설교자를 교육하려고 했던 것처럼 신학교를 세워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설교자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신학교,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세월의 시험을 견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버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신뢰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합니다. 그 다리는… 옛 시인이 말했습니다. “나의 닻은 휘장 안에 굳게 걸려 있네. 거세고 사나운 폭풍 속에서도, 나의 닻은 휘장 안에 굳게 걸려 있네.” 무엇이 붙들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무엇인가가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닻이 저기 항구에 내려져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구원의 밧줄이 있습니다. 한 번 다시 태어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은 지옥에서 나온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그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붙들고 있습니다. 흔들리게 두십시오. 요동치게 두십시오. 아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버틸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시장이 걸어 나와 말했습니다. “선생, 저는 정말로 당신의 다리를 신뢰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 다리를 신뢰하신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좋습니다. 시험해 보자는 것입니다. 시장이 말했습니다. “정해진 날 아침에 제 차가 거기 있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철도회사에서도 전화를 걸어, 연락해서 말했습니다. “선생, 저희도 당신의 다리를 신뢰합니다. 저희가…” 그가 말했습니다. “제 다리를 신뢰하신다면, 온전한 기관차 네 대를 끌고 와서 다리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확신이 있으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다리가 시험을 거쳐 입증되었다고 믿는다면, 정말 믿는다면 저와 함께 가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의 용기를 보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바로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우유부단하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 가서 가끔 “아멘” 하고 외침도 조금 하며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은 뒤, 돌아가서는 마귀처럼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행위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입증합니다. 여러분의 성품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보여 주는 기념물로 당당히 설 용기가 있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리를 개통하던 날, 다른 사람들이 다시 와서 모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카메라를 준비하십시오. 저 다리가 무너질 테니까요.” 그 젊은이가 다리로 나가 자기 차를 세워 놓고 뒤를 돌아보니 기관차들이 모두 줄지어 있었습니다. 시장이 손을 흔드는 것도 보였습니다. 또 보니 수만 명이 뒤에서 자기와 함께 걸어갈 준비를 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악대는 연주를 시작하십시오.” 형제님, 악대가 연주하고 기적이 울리며 경적이 울려 퍼지자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리를 곧장 건너가는 동안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자기가 맨 앞에 섰습니다. 다리가 무너지면 자기도 함께 떨어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시려고 천국에서 영광으로, 영광에서 이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께서 교회에 사용하시는 재료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재료입니다. 여러분이 제단에 나와 신앙을 고백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여러분 속에 기공과 온갖 결함을, 세상이 구더기를 불어넣은 자리들을 발견하시면, 여러분은 견딜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저 여러분을 옆으로 던져 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교회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이었다가 내일은 타락하고, 들어왔다 나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두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시험을 견딘 교회가 있습니다. 시련과 상실과 질병과 슬픔과 죽음을 통과하고서도 여전히 간증하며 서 있는 교회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가난뱅이든, 거지든, 넝마주이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께서는 시험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재료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그 위대한 교회가… 과학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중력이 여러분을 땅에 붙들어 둘 텐데요…”라고 말할 때… 아, 이제 제 속에 신앙의 열기가 솟아납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월의 시험을 견딘 그 교회가 언젠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중 절반은 땅의 티끌 속에서 잠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재료를 모두 시험해 두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께서 앞장서시려고 오십니다. 할렐루야! 대기권과 성층권을 지나, 이 영역 저 영역을 지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그분께서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교회와 함께 가실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께 주시는 기념물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가 시험을 견뎌 내면 그분은 그를 다리에 넣어 단단히 조이고, 자리를 주어 거기에 고정하십니다. 길 끝까지 버틸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세월의 시험을 견딘 재료입니다. “이 반석 위에.” 어떤 광신주의의 바위 위가 아니고, 한바탕의 감정 위도 아니고, 교회의 온갖 신학 위도 아니고, 어떤 교단 위도 아닙니다. “이 단단한 반석 위에”, 곧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결코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 교회는 서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 앞에서 그분의 은혜를 보여 주는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천사들이 그분께 “왜 땅에 가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분께서는 돌아오셔서 흠도 없고 점도 없고 주름도 없는 그 교회를 내보이실 것입니다. 거기에 그 재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의 명성이 걸린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이루셔야 합니다. 그 교량 건설자가 다리를 지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성을 잃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가지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땅에 오셔서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의롭게 되도록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가 되신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그분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죄인인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자리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그분의 위엄 앞에 서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말씀들이 옳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그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며칠 전 밤에 인디언 소년 하나가 있었습니다. 생후 세… 3주인가 4주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아이였는데, 정상적으로 시력을 되찾고 단에서 걸어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혜를 보여 주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기념물이었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합니다. 세월의 시험, 시련, 고난, 흔들고 잡아당기는 일들입니다. 그것은 오직 여러분 속에 기공이 있는지 찾아내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흔들며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위대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유명한 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로마에서 그를 위한 축하 행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행렬에서 내 곁에 함께 타고 갈 사람, 합당한 사람 하나를 원한다. 이 축복을 나와 함께 나눌 사람을 원한다.” 그 소식이 온… 군영에 퍼졌습니다. 장교들은 모두 투구의 깃털 장식을 다듬고, 칼을 닦고, 갑옷을 번쩍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자기 왕에게 정해진 방식으로 경례하는 연습 등을 했습니다. 그가 보좌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커다란 갑옷을 입고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왔습니다. 장교 하나가 크고 멋진 깃털 장식을 가지런히 세우고 나와 경례했습니다. 카이사르가 고개를 저으니 그는 물러갔습니다. 또 한 사람이 나와 경례하자, 카이사르가 고개를 저었고 그도 물러갔습니다. 거듭거듭, 군인들이 한 사람씩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줄 맨 뒤쪽에서 보잘것없는 보병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에게는 닦을 방패도, 다듬을 깃털 장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제대로 경례하는 법조차 몰라 그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카이사르가 말했습니다. “잠깐, 너는 누구냐? 이리 돌아오너라.” 그가 앞으로 나오자 카이사르가 그를 살펴보았습니다. 얼굴은 온통 흉터투성이였고, 베이고 일그러지고 몸도 불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물었습니다. “그 흉터들은 어디서 얻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전장에서 제 주 카이사르를 위해 싸우다가 얻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말했습니다. “여기 올라와 내 곁에 앉아라. 네가 바로 시험을 거쳐 입증된 사람이구나.”
형제님, 지금은 깃털 장식을 다듬을 때가 아니고, 교육을 내세울 때도 아닙니다. 세월의 시험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시험하여 힘겨운 시련과 싸움과 전투의 흉터를 찾으시는 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분 곁에 함께 타고 갈 것입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의 겉옷을 입기 전에 얼마나 시험을 받고 입증되어야 했습니까! 엘리사가 그 겉옷을 그의 어깨에 둘러 주었을 때, 그는 반드시 합당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가 밭에서 쟁기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저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다. 저 겉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다. 그가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그분의 눈이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 겉옷을 입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분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할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무장, 모든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갑옷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날에 책망받을 것이 없이 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께서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기념물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기에 내 종이 있다. 내가 그를 시험했고, 시련을 겪게 했고, 욥처럼 통과하게 했다. 그래도 그는 백 퍼센트 입증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세월의 시험을 견딘 기념물이 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복되신 아버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저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세월의 시험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희는 시련 하나하나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큰 시련의 때들을 지나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충분했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 한 분이 “놀라운 은혜”를 말씀하셨을 때, 회중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했습니까. 그리고 그 가사에 이르렀을 때 말입니다. “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 나는 이미 여기까지 왔네. 은혜가 나를 여기까지 안전하게 이끌었으니, 은혜가 앞으로도 나를 이끌리라.” 아,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감동시켰습니까. 그것이 오늘 밤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그것은 세월의 시험이었습니다. “위험과 수고와 올무를 지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신실하게 서 있었음을 아는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넘어지고 오르내리면서도 개의치 않고 방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싸웠다는 것을 보여 줄 전투의 흉터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밤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모든 기공과 약한 부분과 불량한 나사산을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다시 기계에 넣어 나사산을 새로 깎아 주십시오, 주님. 쓸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주십시오. 오 영원하고 복되신 아버지, 주님의 종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밤 여기 이런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 여러분이 맡은 자리에서 신실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셨다고 느끼는 분 말입니다… 논쟁이 일어나면 곧장 뛰어들어 거기에 끼어듭니까? 다툼이 생기고, 무관심이 생기고, 교회 안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분파나 파벌 같은 편에 섭니까? 거리에서나 여기저기서 떠도는 험담에 귀를 기울입니까? 그런 잘못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마귀가 불어넣은 바람에 속이 뚫려 버린 것입니다. 오늘 밤 다시 용광로로 돌아가 새롭게 녹아, 속에 그런 것이 없는 상태로 나옵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사산을 깎아 주시고, 이 위대한 다리가 휴거될 때를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시도록 합시다. 그런 분이 여기 계셔서 기도 가운데 기억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 죽지 않는 영원한 기념물이 서 있을 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에 따라 그분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내 말들을 듣고”, “내 학교에 다니는 자”가 아닙니다.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오늘 밤 여러분을 부르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들을 수 있고, 기도 가운데 기억되기를 원하신다면 손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올바른 재료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데리고 나오실 때 제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제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분께서 저를 교회 안에 꼭 맞게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형제님. 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저는…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님. “저는 올바른 재료가 되고 싶습니다.” 저 뒤에 있는 어린이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사랑하는 형제님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참된 재료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제 안에 있는 소망, 그 소망에 대해 간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가 손을 들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한 일입니다. 바로 거기서 중력의 모든 법칙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저 거기에 앉아 있는 밀랍 인형이라면 결코 손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 안에 영, 곧 하나의 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영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거스르고, 중력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입니다. 손을 들 수 있다는 것은 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죽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살아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더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수 없고 여러분의 손은 그대로 내려져 있을 것입니다. 죄와 범법 가운데 죽어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수 있고 여러분이 생명을 받는다면, 손을 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생명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손을 들면서 진심으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으로 저를 만들어 주십시오. 평생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날에 준비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저 뒤에 계신 사랑하는 형제님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 형제님. 저기 계신 형…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얘야. 좋습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여기 로이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를 합당하게 여겨 주십시오. 저를 합당하게 여겨 주십시오.” 저 맨 뒤에 계신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기뻐하십시오. 지금 기도 가운데 기억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또 계십니까? 저를 만들어… 좋습니다. 이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