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조금 말씀을 드리려고... 제게는 그저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수요일마다, 그리고 어쩌면 일요일에도, 일요일 예배 중 한 번은 목사님께 조금 쉬실 시간을 드리려고 합니다. 목사님은 충분히 그럴 만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을 택해서 살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했는데, 때로는 한 권을 일 년 동안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요한계시록을 꼬박 일 년 동안 공부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 그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그런 다음 돌아가서 다니엘서나 창세기나 출애굽기를 택해 한 장씩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성경 전체가 서로 연결됩니다. 아, 저는 그것을 참 좋아합니다.
조금 지나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주님께서 계속 복을 주셔서 우리가 계속해 나간다면, 이 안에서 정말 깊은 것들, 아주 깊은 것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성경의 이곳저곳을 살펴볼 것입니다. 저는 성경 구절을 다른 성경 구절과 대조하기를 좋아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 책에서는, 아, 구원과 신유와 기적과 긍휼과... 아, 모든 것을 다루게 됩니다. 그러다가 제가... 집회에 가야 할 때가 오면... 저는 언제 집회에 가게 될지, 집회에 부름을 받을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일을 하라는 인도를 느끼기 전에는 아무것도 정해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침이 되기 전에 캘리포니아나 메인주나 다른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갑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기간의 일정을 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사역은 그런 방식으로 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다릅니다.
지금은 잠깐 쉬려고 집에 왔습니다. 지난번 집회에서 체중이 20파운드나 줄었습니다. 조금 전에 머시어 형제님과 고드 형제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하시는 일을 보니 온 마음을 쏟으시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입니다. 가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맨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온 힘과 온 혼과 온 마음과 온 생각, 가진 모든 것을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냥 손대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가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과 모든 것을 말입니다. 방금 여기 있는 젊은 분을 보고 있었습니다. 번스 형제님, 저분이 형제님의 아내시지요? 저기서 연주하고 노래하던 젊은 부부 말입니다. 저건 피아노도 아니고 오르간도 아닌데, 어떤 악기입니다. 줄을 쓸어 내리고 뜯으면서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혼들을 얻으십시오. 무엇이든 하십시오.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휘파람을 부십시오. 그저 무엇이든 하십시오. 간증을 하든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무엇이든 하십시오. 가진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쓰십시오.
자, 너무 오래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시고 일찍 일어나셔야 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다람쥐 사냥을 나갑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그렇게 지냅니다. 조금 쉬려고 집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네 시쯤 일어나 숲으로 나가 조금 사냥하다가 잠을 잡니다. 빠졌던 체중도 좀 돌아오고 있으니, 주님께서 원하시면 얼마 후에는 푹 쉬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성경을 펴겠습니다... 가능하면 매일 저녁 성경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없는 분들 가운데 함께 읽고 싶은 분이 계시면 여기 몇 권 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분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형제님이... 닥, 이리 와서 이 성경들을 가져가 주겠어요? 거기 가까이 서 계시니까요. 번스 형제님도요. 번스가 맞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뭐라고요? 콘래드요. 제가 그분을... 네빌 형제님, 제가 조금 귀가 어두워지나 봅니다. 대체 번스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성경을 읽으려면 안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싫습니다. 얼마 전에는 눈이 멀어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샘을 만나러 갔습니다. 샘이 말했습니다. “빌, 나도 모르겠네. 전문의를 만날 수 있도록 예약을 잡아 주겠네.”
그래서 루이빌로 갔습니다. 주님의 뜻이었던 모양입니다. 유명한 전문의였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 책을 읽었다면서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다시 가시면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형제님이... 아프리카 사람들이 형제님을 사랑하더군요. 그 사람들은 미신을 몹시 믿는데, 특히 칼로 몸을 째는 일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삶의 여섯 달을 선교지에서 백내장 같은 것을 수술하는 데 바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서 형제님이 그분들의 신뢰를 얻어 주실 수 있다면... 백내장이나 눈에 수술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여섯 달 동안 무료로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에게 진료 예약을 잡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작은 방에 앉아 있었는데, 뒤쪽 어두운 방에 작은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거기 글자들이 있었고... 시력이 20/20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 눈으로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15/15로 바꾸어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10/10으로 바꾸어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눈에는 별문제가 없군요.”
그런 다음 작은 망원경 같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뒤쪽에 작은 장치를, 조그마한 것을 놓았습니다... 옛날에 쓰던 그 망원경 같은 기구를 아십니까?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보곤 했지요? 꼭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이것을 읽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읽어 보십시오.” 거기에는 이 정도 되는 문단 하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읽기 시작하자 그분이 그것을 점점 가까이 당겼습니다. 제가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이쯤 왔을 때 멈추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마흔이 넘으셨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한참 넘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셨습니까? 사람의 눈은 원래 마흔 살이 되면,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것처럼 안구가 평평해집니다. 오래 사시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것을 두 번째 시력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마흔 살쯤 된 사람은 실제로... 눈 자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저는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요... 하지만 가까이 가져오면... 그분이 말했습니다. “이제 성경을 읽으실 때 점점 멀리 밀어 놓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팔 길이가 모자라게 될 겁니다. 글씨가 보일 만큼 멀리 뻗을 수가 없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그분이 안경을 하나 맞춰 주었습니다. 아래쪽은... 책을 읽는 데 쓰는 부분입니다. 그분이 “강단에서는...” 하고 말했습니다. 저를 점잖게 서서 설교하는 그런 설교자 중 하나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위쪽은 그냥 보통 창유리, 보통 유리라고 했습니다. 아래쪽은 무언가 도수를 넣어서 이렇게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안경을 쓰기가 정말 싫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제 성경을 가르치면서... 오늘 저녁에는 신약성경을 가져왔습니다. 콜린스에서 나온 신약성경인데 글자가 제법 큽니다. 하지만 다른 성경으로 돌아가면 그 오래된 친구를, 안경을 찾아서 들여다보며 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아직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게 기쁩니다. 제게 무엇이 있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이 든 흔적을 없애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나이 자체를 없애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저도 이 강단에 서 있던 예전의 어린 소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입니다. 마이크 형제님, 생각해 보십시오. 두 해만 더 지나면 쉰 살입니다. 세상에...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한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스무 살이 넘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거울을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렵지만, 거울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저 제 느낌으로는 살면서 어느 때 못지않게 몸 상태가 좋습니다. 그것도 감사합니다. 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 성경에서도 가장 깊고 풍성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정말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깊이 들어간다면, 금덩이를 발견하고 또 발견하다가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불분명한 말.] 이제 저는... 히브리서는 사실 성 바울이 썼다고 여겨지는 책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바울은 세상이 이제까지 본 가장 위대한 성경 해설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울은 구별하는... 바울은 참된 성경 교사였습니다. 구약성경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당시 성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록된 책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는 구약을 구분해 살피면서,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 또는 모형이라는 것을 히브리인들에게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대목에서 중심 주제를 잡아 그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도 석 달을 머무를 수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지금 성경을 펴 보면... 물론 우리는 히브리서 1장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2장을 펴면 그림자가 어떻게... 그것을 다시 완벽하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필을 가지고 성경 구절을 적으실 분들은... 요한계시록 11장을 보면, 밧모섬에 있던 요한이 하늘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머리에는 해가 있었고 발 아래에는 달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아이를 낳으려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붉은 용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키려고 서 있었는데, 아이는 하늘로 채여 올라갔고 여자는 광야로 달아나 한 때와 한 때와 반 때, 곧 한 때를 나눈 기간 동안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교회를 나타냈고, 여자가 낳은 아이는 그리스도였습니다. 발 아래의 달은 율법이었고 머리 위의 해는 은혜였습니다. 왕관에 있는 열두 별은 열두 사도였습니다. 바로 거기에... 열두 사도는 신약의 영광, 곧 신약의 왕관이었습니다. 아시겠죠?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아시겠죠? 그 기초, 곧 신약과 사도들과 사도들의 교리 등이 신약의 토대를 이루는 왕관입니다. 달은 해의 그림자입니다. 해가 지구 뒤편에 있을 때 그 빛이 반사되는 것입니다. 달은 밤에 걸어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춰 줍니다. 여기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 있습니까.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해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달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꼭 남편과 아내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교회는 그보다 작은 빛, 곧 복음을 반사합니다. 그것이 아들께서 다시 떠오르실 때까지 우리가 그 안에서 걸어가는 빛입니다. 그러고 나면 교회와 아들, 달과 해가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아시겠죠? 달은 해의 일부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교회는 그분의 빛을 반사합니다. 달이 빛나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서 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한, 그리스도께서는 어딘가에 살아 계십니다. 아멘!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은 은혜의 모형이었지만, 율법 자체에는 구원하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율법은 다만... 율법은 경찰관이었습니다. 경찰관은 여러분을 감옥에 넣습니다. 하지만 아시겠죠? 감옥에서 나오려면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 곧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 냅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 뿐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아시겠죠? “너는 잘못했고 유죄다”라고 말하는 경찰관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 율법을 범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꺼내 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회심하자마자 어떤 신학교와도 의논하지 않았고 어떤 목회자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셨습니까? 그는 아라비아로 내려가 그곳 아라비아에서 삼 년을 지냈습니다. 이제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이 배경을 알아야 그것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첫 수업에서는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그처럼 뛰어난 성경 교사였던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이름을 떨칠 만큼 위대하고 유명했던 가말리엘에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가말리엘은 당대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율법과 선지서의 위대한 교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것들을 잘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또 제가 바울의 이런 점을 좋아합니다. 이 위대한 계시, 마음이 정직했던 그는 살인자였고,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했으며, 스데반이 돌과 흙덩이에 맞아 죽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하늘들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바울의 마음이 움직였음에 틀림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데반은 “아버지,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하고 잠들었습니다. 그것을 보셨습니까?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습니다. 마치... 저는 그가 더 이상 돌에 맞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머니 품에서 아기가 잠들듯이, 스데반은 하나님의 팔에 안겨 잠들었습니다.
그 일이 바울의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죄를 깨닫고 찔림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아 내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그 이단자들을 모두 체포하겠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격한 광신자’ 같은 사람들, 큰 소란을 피우고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내려가서 그 일을 해결하겠습니다.” 그가 내려가던 길은 작고 낡은... 우리가 다니는 것 같은 넓은 도로가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길은 숲속의 소 길 같은 작은 오솔길이었습니다. 소와 양과 말과 나귀와 낙타가 언덕을 넘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던 어느 날 정오쯤, 큰 빛이 내려 비쳐 그를 땅에 쓰러뜨렸습니다. 바울 외에는 아무도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지금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배경을 설명하면서, 바로 그 동일한 예수님이... 그것을 여러분이 아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실 때에는 불기둥이셨고, 육신이 되셨다가 다시 그 동일한 불기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나셨을 때, 그분은 그 불기둥, 그 빛이셨습니다. 아시겠죠? 큰 빛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제가 핍박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 빛이십니다! 아, 그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에도 그분은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저기에 그분의 사진이 찍혔습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불기둥, 빛입니다! 그때와 똑같으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때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똑같이 증명해 줍니다.
그러면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거기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밤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빛이 감옥으로 들어와 베드로를 건드리고, 안쪽 경비병과 바깥쪽 경비병을 그대로 지나 문과 큰 문과 성문을 통과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꿈을 꾸었나 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둘러보니 그 빛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영원히 영원히 빛나는 그 빛이십니다. 그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이제 내려가는 길에서... 또 한 가지 보십시오. 오늘 그것을 이야기하자니 방금 생각났습니다. 별을 따라온 박사들은 저 멀리 동방의 인도에서부터 계곡과 사막을 지나 몇 달 동안 왔고, 천문대들을 지나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별을 보고 밤 시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박사들 외에는 역사가든 누구든 그 별을 보았다고 기록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만 보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실재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회심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심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그 복을 흠뻑 받아 마시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깨닫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바울이 내려가는 길에서 이 위대한 체험을 했지만... 그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훌륭한 점입니다. 오늘 저녁 수업은 깊은 내용이 아닙니다. 얕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얕은 내용이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바울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일을 하기 전부터 성경 학자였습니다. 성경 학자는 결코 체험 위에 자기 교리를 세우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체험 위에 교리를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체험이야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메시지를 판별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저 율법이었습니다. 또 선지자, 꿈꾸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깊은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우림과 둠밈은 아론이 가슴에 달았던 흉패였습니다. 거기에는 벽옥, 홍보석, 석류석 등 열두 보석이 있었습니다. 흉패에 있는 큰 보석 열두 개는 그가 모든 지파,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제사장임을 나타냈습니다. 이 흉패는 교회 안 기둥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떤 선지자가 예언했는데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확실히 알고 싶으면,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이 우림과 둠밈 앞에 서서 자기가 본 꿈이나 환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그 거룩한 빛이... 아,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영역에 거하셨습니다. 한데 모여 있는 그 빛들은 이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그저 평범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보석들에 닿았을 때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면, 보석은 아무 반응 없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이면 그 빛들이 모두 함께 무지갯빛을 반사했습니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는 내 선지자다” 또는 “그 꿈은 내게서 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림과 둠밈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사울이 믿음에서 떠나 뒤로 물러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꿈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죽었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우림조차도 내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울이 우림 앞에 서도 그의 말은 생명 없이 툭툭 부딪힐 뿐이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그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이 우림과 둠밈은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론이 떠난 뒤에는 모세가... 그 흉패는 기둥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끝났습니다. 이제 율법과 은혜를 구분해서 볼 때, 우리에게도 여전히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우림과 둠밈은 죽지 않고 영원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무엇을 빼거나 더하면... “저는 이 책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있는 것은 모두 원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모든 것은 말씀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최근 제가 오순절 사람들 가운데서 인기를 잃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손에서 기름이 나오거나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성령을 받았다는 표적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아서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반드시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그저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이 위대한 체험을 증언하기 전에, 삼 년 동안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삼 년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 년 동안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다고 제가 믿는지 아십니까? 구약성경을 가지고 구약 전체를 살펴보아, 그분이 정말로 틀림없는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성경으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아멘. 아, 세상에! 그가 감옥에 있을 때를 보십시오. 바울의 삶에는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기간이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이 히브리서를 썼습니다. 아시겠죠? 그에게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저기 감옥에 따로 두셨고, 그는 교회들에 이 편지들을 썼습니다. 하나는 에베소 교회에 보냈습니다. 오순절 교회에도 하나를 썼습니다. 그 교회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어느 교회보다 오순절 교회 때문에 더 애를 먹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로 인해 감사했습니다.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들이 모이면 한 사람은 방언이 있고, 한 사람은 시가 있고, 한 사람은 감각이 있고, 한 사람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영원한 보장”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정”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기들이었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느끼거나 보거나, 자기 주위에서 묘한 느낌 같은 것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어떤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우리를 아들딸로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입양하셨다.” 그것을 보십시오. 아! 로마서 같은 곳으로 가서 그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그들은 다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그들도 방언을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들 가운데 성령의 다른 표적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교리로 삼거나 감각이나 작은 떨림이나 묘한 느낌에 치우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으로 극단으로 치닫는구나. 이제는 가르쳐야 할 터인데 여전히 아기들이어서 젖이 필요하구나.” 저는 언제나 이 태버내클이 아기들 무리가 되지 않도록 힘써 왔습니다. 다 자란 사람들이 됩시다. 그 길 위에 서십시오. 아,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기 체험이 하나님의 성경과 일치하는지 알아보려고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아, 오늘날 사람들이 다시 그렇게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체험을 하나님의 성경과 대조해 본다면 말입니다...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체험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림과 둠밈에서 빛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 빛이 나면, 아멘, 우리가 옳은 것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아 보이고 아무리 실제로 옳은 것 같아 보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림과 둠밈에서 그 빛들이 번쩍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체험을 얼마나 많이 했든, 그것이 얼마나 실제 같든, 얼마나 그럴듯하든, 얼마나 배움이 되는 것이든, 혼들을 얻는 데 얼마나 훌륭한 도구이든 상관없습니다. 말씀에서 빛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저는 길 한가운데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길은 많은 경우... 저는 나사렛 교회에 다니곤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귀한 분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들은 옛 방식대로 성결하게 된 감리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나사렛 교회, 순례자 성결교회, 그 밖에도 훌륭한 옛 성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웅장한 옛 큰길을 걸으며, 가는 곳마다 전합니다. 주님, 제가 아는 그 무엇이 되기보다 옛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렵니다. 좋습니다. 참 훌륭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거룩함의 큰길에 관해 말하곤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그것은 이사야 35장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거기에 큰길이 있고, 그리고 한 길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아시겠죠? 큰길... 거룩함의 큰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길이 있고, 그리고 한 길이 있으리니, 그 길은 거룩함의 길이라 불리리라.” 거룩함의 큰길이 아니라 “거룩함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도로의 길은 도로 한가운데입니다. 물이 쓰레기를 양옆으로 씻어 내려 도로를 깨끗하게 하도록 이렇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로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늘 물웅덩이가 고입니다. 그 길은 도로 한가운데입니다.
이쪽에서는 사람들이 회심하면 생각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둡니다. 그런데 조금 학식이 있으면서 계속 기도하는 삶을 지키지 않으면, 아주 차갑고 뻣뻣하고 형식적이며 무관심해집니다. 또 조금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반대쪽에서 과격하고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아시겠죠? 감각이나 그런 온갖 것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 교회는 아주 건전한 복음, 길 한가운데 있는 복음입니다. 차갑고 형식적이지도 않고 광신주의도 아닙니다. 참으로 좋고 따뜻한 옛 복음, 마음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길 한가운데를 곧장 걸으며 양쪽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러면 어떻게 그런 교회를 얻겠습니까? 바로 말씀에서, 우림과 둠밈에서 얻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길 한가운데 바로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성경을 삼 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 신약성경의 더 많은 부분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은 이방인의 시대가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신은 바울이 썼습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이제 이 배경을 살펴보기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이 모든 체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체험이 입증되었고, 이 서신은 그 내용을 푸는 핵심 서신입니다. 이것이 그의 핵심 서신입니다.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도 각각 제자리가 있지만, 이것은 핵심이 되는 서신입니다.
1장 전체는 예수님을 높이며 그분을 선지자와 구별합니다. 지금 그 주제가 전부입니다.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주제는 신약을 구별하는... 1장은 예수님을 어떤 선지자나 어떤 율법 등과도 구별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줍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첫 단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여러 시대란 “저 멀리 옛날, 지난날”이라는 뜻입니다.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저 옛날에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방법은 바로 그분의 선지자를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이사야 같은 자신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주목해 보십시오. 온 세상의 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선지자를 배출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오늘날, 이 마지막 날에 찾아보십시오. 마지막 날에 교회에서 길러 낸 선지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보여 주십시오. 거기서 나온 사람 하나라도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선지자, 참된 하나님의 종을 세상의 교권 체제가 정죄하지 않은 때가 한 번이라도 있으면 보여 주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예레미야와 이사야를 비롯해 구약 전체에 걸쳐 그들은 선지자들을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희게 칠하면서, 그들을 거기에 집어넣는구나.” 그렇습니다! 교회는 계속 그렇게 합니다. 성 패트릭을 보십시오. 가톨릭 신자들은 그를 자기네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저만큼이나 가톨릭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를 자기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보십시오. 그도 자기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도 저만큼이나 가톨릭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잔 다르크를 보십시오. 그녀가 환상을 보고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녀라고 하며 기둥에 묶어 불태웠습니다. 기둥에 묶어 불태웠습니다! 그 여자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불태웠습니다. 한 백 년 뒤에야 그녀가 여선지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아, 물론 여러분은 대단한 처벌을 했습니다. 그 사제의 시신을 파내 강에 던져 버렸지요. “너희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면서 그들을 거기에 집어넣는구나.” 그렇습니다. 교권 체제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을 배출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없었고, 오늘날에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조직된 종교는 결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 교회는 가톨릭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루터, 그다음에는 츠빙글리, 츠빙글리 뒤에는 칼뱅, 칼뱅에서 성공회로 이어졌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이 받아들였고, 그 뒤 성공회가 나왔습니다. 헨리 8세가 항거했을 때와 같은 일들을 거쳐, 웨슬리의 감리교, 나사렛 교회, 순례자 성결교회로 내려왔고, 마지막은 오순절 교회입니다. 모두 조직되었습니다! 성경은 가톨릭 교회가 행실이 나쁜 여자이고, 개신교 교회들과 그 조직들은 그 여자의 딸들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요한계시록 17장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교회 안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룩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직으로 자기 백성을 부르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감리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개신교인이든 가톨릭 신자이든 무엇이든,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여러분을 아셨고 영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영원한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멸망하는 것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무한하신 분이므로 처음부터 끝을 아셔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려고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자비를...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고통스럽게 죽으면, 아마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자기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줄 아셨던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하는 자나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 않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 이 사람이 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나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내가 사랑하고 다른 하나는 미워하였다.’” 두 아이 가운데 누구도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협잡꾼이라는 것을 아셨고, 야곱은... 자기의 장자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 그렇게 알고 계셨던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 장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마지막 날들에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지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있을까요?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분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옛날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합시다.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일요일 성경학교와 같으니 이것을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시겠죠?
주목하십시오. 모세 안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을 살펴봅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습니다. 구약의 모든 인물은 십자가를 미리 보여 줍니다. 모세는 아름다운 아이로 태어났고, 갈대 사이에 숨겨졌고, 부모에게서 떨어졌으며,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 아니, 지도자였고, 율법을 주는 자였으며, 중보자이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모습이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형제들의 미움을 받았으며, 거의 은 삼십 개에 팔렸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고 죽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다시 꺼내졌습니다. 그가 박해받는 동안 술 맡은 자는 구원받고 도살자는 멸망했습니다. 십자가의 두 강도입니다. 그런 다음 그가 나왔을 때, 그 구덩이에서 올라와 파라오의 오른쪽에 앉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상업...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를 이긴 나라였습니다. 누구도 요셉을 통하지 않고는 파라오에게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며, 누구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 왕좌를 떠나 밖으로 나설 때면 사람들이 앞서 가면서 소리를 지르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을 울리며 “무릎을 꿇어라. 요셉이 오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도 나팔이 울리고 모든 무릎이 꿇으며 모든 혀가 시인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거기에 계셨습니다.
요셉은 죽으면서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념물을 남겼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그 오래된 관에 손을 얹어 보았습니다. 납으로 만든 관이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그대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뼈를... 그는 말했습니다. “나를 여기에 묻지 마십시오. 언젠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올라갈 때 내 뼈를 가져가십시오.” 거기서 등을 얻어맞아 피가 흐르는 늙은 히브리인이 그 관을 바라보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나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념물, 곧 빈 무덤을 남기셨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무덤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흙은 흙으로”라는 말을 들으며 작은 흙덩이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형제님, 우리는 바다 건너 빈 무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분이 오십니다. 모든 것이 모형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하고 자기 백성에게 왕좌에서 쫓겨났습니다. 예루살렘의 왕이었지만 자기 백성에게 예루살렘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올리브산을 올라가면서 뒤돌아보고 울었습니다. 그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로부터 팔백 년 뒤, 다윗의 아들이자 예루살렘의 왕께서 언덕에 앉아 거절당하셨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그것은 다윗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었습니다. 모두 십자가를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옛날 그 선지자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말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행동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선지자들과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를 비추는 모습일 뿐입니다. 옛날에는 율법 아래 서서, 보십시오. 이쪽에서는 은혜를 통해 반대 방향을 돌아보고 서 있습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장에서, 저는 종종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장,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아브라함에 관해 말할 때입니다. 믿음에 관한 위대한 장인데,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양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은 채 떠돌아다녔고 궁핍을 당하며 톱으로 잘렸습니다.” 그들은 갈 곳도 없이 떠돌며 미움받고 멸시받고 박해받았습니다. 이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이 서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뒤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이곳에 이릅니다. 훨씬 더 나은 계획입니다.
저는 때때로 오늘날 기독교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생각합니다. 천막을 가지고 다니는 설교자는 반드시... 또는 새 교회나 새 임지에 가면서 자기를 선지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말합니다. “보수를 이만큼 준다면요. 제일 좋은 차를 탈 수 있다면요. 여섯 달마다 봉급을 올려 준다면요.”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염소 가죽과 양가죽을 입고 떠돌며 머리 둘 곳도 없이 사막에서 방황했던 그 사람들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누가 조금만 비웃어도 당장 교회를 그만두고 다시는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요구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때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오늘날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선지자의 말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들의 말씀입니다. 아,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다시 말해, 그림자나 사진의 음화를 보고 있다면 잘못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상된 사진입니다. 사진이 선명합니다. 그때는 선지자를 통해서였고, 지금은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입니다. 그때는 음화를 통해서였고, 지금은 양화를 통해서입니다. 아멘. 보이십니까? 빗나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입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아들을 상속자로, 아, 세상에,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무엇이었습니까? 임명이었습니다. 아, 들으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상속자로 임명되셨습니다. 아,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날 그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마귀가 거기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가 흙에서 나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약속된 씨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그 씨를 지켜보았습니다. 아벨이 태어나자 그는 “저기 있다. 저게 그 씨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의 아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아벨이 죽자마자 그는 “내가 그 씨를 잡았다”라고 했습니다. 그 씨를 죽인 것입니다. “잡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죽음은... 셋의 출생이 다시 부활이 되었습니다. 그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십시오.
셋의 계보는 겸손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이어졌고, 에녹을 거쳐 노아에게로, 홍수 이전 세상의 멸망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인의 계보를 보십시오. 영리한 사람들, 교육받은 사람들, 과학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자녀들이 왕국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날에도 가인의 편을 보십시오. 영리하고 교육받았으며 의심이 많고 아주 종교적입니다. 아시겠죠? 아주 종교적이지만 과학자들이고 건설자들이며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토머스 에디슨을 보십시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보십시오. 세상의 두뇌라고, 오늘날 소위 세상의 두뇌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뇌를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이 우리 안에 있게 하고, 이 말씀을 바라보며 그대로 옳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존경을 받을 만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회의론자나 불가지론자입니다. 오늘날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편, 가인의 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거기에 다시 여러분의 부활이 있습니다. 아,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 그를 모든 것의 상속자로 삼으셨으며 또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누가 세상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조금 더 읽어 봅시다. 그분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임재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누구의 영광의 광채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누구의 임재를 나타내는 정확한 형상입니까?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아, 저는 이 말씀이 좋습니다. ...아니,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며...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떠받치십니다. 과학은 그것을 깎아내리며 “그것은 오래된 책이다. 번역된 책이다”라고 하려 합니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쉰 주교도 “그 책은 네다섯 번이나 번역되어 별것이 없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해도 그 책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십니다. 아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말씀 안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친히 우리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여기를 보십시오.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
바울은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정확한 형상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이 장의 나머지 전체는 그분이 천사들보다, 모든 권세보다 얼마나 높으신지, 천사들이 그분께 경배했다는 것을 다룹니다. 바울은 그분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이상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나머지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저기에서, 가령 11장에서 세상에 대해 말하며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천사들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고 말씀하셨느냐?” 아시겠죠? 세상의 끝에...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며, 세상도 멸망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멸망할 것입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옷처럼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그것들은 낡고 바뀌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여전히 계십니다. 영원히 계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이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오른쪽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 오른손이 있고 그 위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른쪽은 “권능과 권위”를 뜻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권위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하늘과 땅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습니다.
이 위대한 분, 이 위대한 인물인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여기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삼위일체이지만, 세 인격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는 아닙니다. 한 하나님의 세 직분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 아버지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직분, 위대한 여호와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땅에 거하시면서 아들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교회 안에 거하시며 성령이라고 불리십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직분으로 계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서로 다른 세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인에게는 결코 이것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저것은... 그에게는 “나는 한 하나님이다”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침례를 줍니다. 아버지를 위해 한 번, 아들을 위해 한 번, 성령을 위해 한 번 침례를 줍니다. 사도신앙 선교회에서는 그분의 죽음에 연합한다면서 얼굴을 앞으로 향하게 하여 세 번 침례를 줍니다. 서해안... 아니, 동해안에서 순복음이라고 부르는 곳에서는 “그분의 장사되심에 연합하여” 뒤로 눕혀 세 번 침례를 줍니다. 한 사람은 “그분은 죽으셨을 때 앞으로 쓰러지셨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을 묻을 때에는 등을 바닥에 대고 묻습니다.” 사소한 형식상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둘 다 틀렸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둘 다 틀렸습니다. 이것이 우림과 둠밈입니다. 이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자, 오늘 저녁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어떤 모습인지 살펴봅시다. 보고 싶으시면 여기 있습니다. 저는 모두 합쳐 약 이십오 년 동안 목회자로 지냈습니다. 저는 이것을 연구했고, 교회 안에 있는 은사들이... 그 은사들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했습니다. 예언, 방언, 방언 통역, 하나님의 계시 등 말입니다.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옵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머리이십니다.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여러분은 큰 다이아몬드를 본 적이 있습니까? 제대로 깎아 놓은 아주 큰 다이아몬드 말입니다... 작은 조각들을 쪼아 내고 깎아 냅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다이아몬드를 만듭니다. 왜 조각들을 깎아 냅니까? 진짜 다이아몬드는 나올 때, 그것이 두들겨 맞았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가 나올 때에는... 저는 킴벌리에 가 보았습니다. 거리에서 다이아몬드를 주울 수 있다는 말을 들으신 분들이 많을 텐데, 사실입니다. 빌리와 저와 보즈워스 씨는...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의 사장이 그곳 집회에서 제 안내를 맡았는데, 우리를 그리로 데려갔습니다. 바로... 지하 한 1,700피트쯤 되는 곳에서 다이아몬드를 캡니다. 푸른 돌로 나옵니다. 이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푸른 돌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고 원주민들을 땅속 1,700피트 아래로 내려보내 캐게 합니다. 강가로 가 보면 수백 마일에 걸쳐 경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분 말로는 10갤런짜리 양동이 두 개를 가져가 모래를 가득 담아서 집에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 안에 다이아몬드가 워낙 많아서 수백만 달러를 가진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고 힘들여 광산에서 캐야 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나올 때 그저 커다랗고 매끈하고 둥근 유리 조각 같습니다. 푸른 다이아몬드도 있고 검은 다이아몬드도 있고 에메랄드도 있으며, 투명한 다이아몬드, 흰 다이아몬드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것을 가공하여 쓰려면 다이아몬드의 일부는 없어져야 합니다. 작은 조각들이 깎여 나가야 합니다. 조금씩 쪼아 내야 하는 것은 이렇게 빛을 직접 받았을 때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깎아 낸 면이 빛을 반짝이게 합니다. 어떻게 깎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르고 깎아 내면 빛이 반짝입니다. 한쪽에서는 초록빛이, 다른 쪽에서는 푸른빛이, 또 다른 쪽에서는 에메랄드빛이나 붉은빛이 나와 여러 빛이 무지갯빛처럼 퍼집니다. 그것을 다이아몬드의 불빛이라고 부릅니다. 그 빛 하나하나가 은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 다이아몬드이십니다. 그분이 오셔서 상하시고 상처를 입으시고 깎이신 것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비추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다이아몬드이십니다.
땅도 있기 전, 빛도 있기 전, 별도 있기 전, 아무것도 있기 전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영이 흘러나오는 커다란 샘이 있었습니다. 이 샘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랑 외에 다른 것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왜곡된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진수, 아주 조금만 우리 안에 들어와도 우리의 생각 전체가 달라집니다. 그다음 이 근원이 되는 샘, 이 다이아몬드에서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의라고 불렸습니다. 절대적인 의였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에 심판이 따르지 않으면 율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율법이 심판을 내려 죽음이 왔을 때... 그 형벌을 치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죽음의 형벌을 치르시고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커다란 빛들, 곧 영의 커다란 빛줄기들이 흘러나왔을 때, 사랑과 평강... 그것뿐이었습니다. 고통도 없었고 증오도 없었으며 악의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은 이 샘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학자들이 말하는 신의 현현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로고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로고스입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일부였습니다.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바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대목이라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로고스... 이 커다란 샘,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커다란 영의 샘, 이 위대한 영께서 창조 가운데 형체를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거기서 나온 로고스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영께서 가지신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형태였습니다. 그것은 신의 현현이었습니다. 그것은 몸을 뜻하며, 그 몸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바위 곁을 지나갈 때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뒷모습 같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죽을 때 받는 몸과 같은 종류의 몸입니다. “이 땅의 장막이 해체되면, 우리에게는 이미 기다리고 있는 장막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의 현현이었습니다. 그 아들, 그 로고스가 육신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 안에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신의 현현, 그 로고스가 여기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처소였습니다. 그 샘 전체가 그분 안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보이십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 안에...
여기를 보십시오. 잠깐 히브리서 7장을 펴 봅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은혜 가운데 잠깐 살펴봅시다. 여기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봅시다. 아브라함...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십 분 남았습니다. 좋습니다. 이것만 짚어 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면 다음 일요일에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고 있었는데...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살렘이 어디였는지 아시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통치자였는데,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들으십시오!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것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평화의 왕이라.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며...
한 왕이 살렘에서 내려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났습니다. 이 왕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만난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었으며, 시작하신 때도 없고 끝나실 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일한 살렘 왕은 오늘날에도 살아 계셔야 합니다. 보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신의 현현이었습니다! 어느 살렘입니까? 위에 있는 그 예루살렘입니다! 복을 받은 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건설하고 만드신 도시를 찾으려고 애쓰며 다녔습니다. 양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곳곳을 떠돌았습니다. 궁핍하고 떠돌아다니면서도 하나님께서 건설하고 만드신 도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렘의 왕이 내려오시는 것을 만나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분께 드렸습니다. 아멘! [불분명한 말.] 아, 그레이엄 형제님, 그분이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다시 보았습니다. 어느 날 장막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쪽을 바라보니 세 사람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언가가 있어서 영을 보면 알아봅니다. 그저 압니다. 거기에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됩니다. 아시겠죠? 예, 그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달려 나가서 말했습니다. “제 주여, 들어오십시오. 앉으십시오. 잠깐 머물러 주십시오. 빵 한 조각을 가져다가 손에 놓아 드리겠습니다. 발을 씻어 드리겠습니다. 저를 찾아오셨으니 쉬셨다가 다시 길을 떠나십시오.” 그는 메마른 땅에서 힘든 길, 주님과 함께 멸시받는 소수의 사람들이 걷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저 아래 조카 롯은 풍족하게 살고 있었지만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부유함이 대개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들을 모셔 놓고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잡으러 밖으로 뛰어나가 소 떼 가운데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죽였습니다. 하인에게 주어 손질하게 했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사라, 가루를 반죽하시오.” 반죽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것은, 말하자면... 저희 어머니는 가루 통 안에 쐐기처럼 생긴 낡은 것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체가 달린 그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안에 쐐기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가루를 긁었습니다. 가루가 이렇게 뭉치면 이렇게 긁어 내려 체를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쐐기로 그렇게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철망이 달린 작고 둥근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루를 떠서 이렇게 체질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리저리 두드리셨습니다. 그런 다음 쐐기를 가지고 이렇게 둘러 긁어 가루가 모두 아래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옛 방앗간에 가서 가루를 빻아 와야 했습니다. 커다란 옛 맷돌, 아시죠, 무거운 맷돌로 빻은 가루는 진짜 옥수수빵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온종일 통나무를 톱질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어서 가루를 좀 반죽하시오. 여기 화덕에서 옥수수 부침빵을 얼른 만드시오.” 그리고 소의 젖을 짜서 우유를 얻었습니다. 그것을 휘저어 버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가서 송아지를 잡아 고기를 얻고, 그 고기를 구웠습니다. 버터밀크와 옥수수빵을 마련하고, 뜨거운 옥수수 부침빵에 바를 버터도 가져왔습니다. 아, 정말 맛있습니다! 그것을 빵 위에 듬뿍 발랐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가지고 나가 세 사람 앞에 놓았습니다. 그들은 먹으면서 계속 소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제게 숨기지는 않으시겠지요.” “내가 하려는 일을 네게 숨길 수 없구나. 나는 저곳으로 내려가려 한다. 소돔의 죄가 내 귀에 들려왔다.” 이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옷에 온통 먼지가 묻은 채 거기 앉아 송아지 고기를 먹고, 소의 젖을 마시고, 옥수수 부침빵과 버터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 낯선 분은 누구입니까? 세 사람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옷에는 온통 먼지가 묻어 있었습니다. 아, 그렇지요.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예, 아주 먼 곳에서요!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자,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상속자이므로 내가 그에게 숨길 수 없구나.” 아멘! “나는 내 비밀을, [다시 말해] 땅의 상속자들에게 밝힌다.” 오늘날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받아서, 자신을 어떻게 처신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걷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땅의 상속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것을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아, 저건 온통 광신주의야”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게 두십시오. 땅의 상속자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녹음 공백.] ...그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요.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리시고 계시하십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세상 것들을 버리고, 이 현 세상에서 경건하게 걸으며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두십시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상속자이므로 내가 이 비밀을 그에게 숨길 수 없구나.”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소돔을 멸하러 내려가려 한다. 내려가서...” “선생님,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알고 보니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또 한 가지가 있다. 너는 내가 준 이 약속을 이십오 년 동안 기다렸다. 이십오 년 전에 이 아기를 위해 기저귀 천과 핀과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았다. 그러고도 줄곧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제 내가 생명의 때쯤에 너를 찾아오겠다. 생명의 때에 따라, 다음 달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사라는 뒤쪽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장막을 등지고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라가... [브래넘 형제님이 킥킥 웃는 모습을 흉내 낸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었느냐?” 어떻습니까? 대단한 텔레파시였지요? “사라가 왜 웃었느냐?” 사라가 말했습니다. “아,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아니다. 너는 웃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겁이 났습니다. 떨고 있었습니다. 장막 뒤쪽에서 사라가 무엇을 하는지 아신 그분은 누구였습니까?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시는 바로 그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아시겠죠? 다만 필요에 따라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무엇 때문에 웃느냐?” 보십시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계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계셨다.” 그런데 알고 계셨습니다. 사라가 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아오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낯선 분은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분은 바로 저 밖으로 걸어 나가시더니 사라지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그 위대한 샘, 그 신의 현현, 그 로고스셨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설교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정말로 그분이 하나님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성경이 ‘그분은 하나님, 엘로힘이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을 주시는 분,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아, 제 안에서 신앙의 감격이 솟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이제 그분이 누구신지 여기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누구신지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이름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시기 전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날 샘 곁에 서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마시고 있었습니다. “광야에 있던 물을 가지고”...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영에서... 광야에서 그들을 따라다니던 영적 반석에서 마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반석이다.”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6장입니다. 그들이 “뭐라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맞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안 되었습니다.” 물론 그분은 하시는 일 때문에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셨지만, 서른 살밖에 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쉰 살도 넘지 않은 사람인데, 죽은 지 팔백 년이나 구백 년 된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합니까?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인 줄 알겠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내가 있느니라” 하신 분은 누구셨습니까? 모든 세대에 이르는 영원한 이름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속의 그 불기둥이셨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분이 거기에 계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형체가 되신 그 신의 현현, 스스로 계신 분! 여호와이십니다!
도마가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하느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 나는 아들이라고 불리는 장막일 뿐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분이 그 일들을 하신다. 내가 아니다.” 이제 다시 저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모세는 그분을,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사람의 뒷모습 같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던 로고스입니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로고스에서 육신이 되신 이유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 분 전만 해도 그분은 로고스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저 손을 뻗으셔서...
우리 몸은 세상의 서로 다른 열여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칼륨 성분과 약간의 칼슘, 석유, 우주의 빛, 원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한데 묶여 이 몸을 이룹니다. 땅의 흙에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식을 먹습니다. 여러분이 먹는 음식은... 흙에서 변하여... 흙에서 와서 계속 그렇게 이어집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육체만 놓고 보면 말이나 소나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육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체를 얼마나 떠받드는지요. 하지만 형제님, 그 영에는 그 안에 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땅의 흙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육체는 동물 이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체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탐하고, 여자를 탐하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탐한다면 여전히 동물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여러분을 앞으로 인도하여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 주실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제 여기 서 계신 이 위대한 신의 현현... 그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그저 손을 뻗어 원자 한 줌을 잡으시고, 빛을 조금 가져다가 이렇게 부으시고는 “후!” 하셨습니다. 몸이 되었습니다! 그 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가브리엘, 이리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천사장입니다. “후! 그 안으로 들어가거라!” 하셨습니다. “미가엘, 이리 오너라!” 그분 오른쪽에 있는 천사입니다. “후!” 유대인을 위한 천사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거라!” 하나님과 두 천사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곳으로 걸어 내려와 소의 젖을 마시고, 우유로 만든 버터를 먹고, 옥수수빵을 먹고, 송아지 고기를 먹었습니다. 두 천사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면서 만났던 멜기세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기 히브리서 7장을 계속 읽어 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반열로 되셨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곧바로 밖으로 걸어 나가셔서... 그 흙을 다시 흙으로 바꾸신 다음, 다시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천사들도 롯과 롯의 아내를 구해 내자마자, 그녀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습니다만... 그분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받드는 이 위대한 믿음 안에 얼마나 큰 소망이 있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 불기둥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권능과 행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높이... 사람들이 그분의 사진을 찍게 하십니다. 동일한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고, 자신의 교회 안에 영원토록 거하십니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책에 우리 이름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어 그를 두고 맹세하실 수 없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 동일한 분께서 손을 뻗어 칼슘과 칼륨 성분 한 줌을 잡으시고 “후!” 하시면, 여러분이 다시 있는 것입니다. 제 이름이 그분의 책에 있습니다. 아! 제 어깨가 얼마나 굽어 가든 제가 얼마나 늙든 무슨 상관입니까? 전혀 상관없습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이크 형제님, 언젠가는... 형제님, 형제님의 마음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큰 나팔이 울리고, 그... 소리가 나며, 그 요셉이 앞으로 나오실 때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이 “얘들아! 후!”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의 모습대로 만들어져 있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젊을 것이며, 늙음은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질병과 어려움과 슬픔은 사라질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상은 바로 그분의 아들입니다!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부르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느껴 보았거나 그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어 보았다면, 부디 외면하지 마십시오.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저녁 이 히브리서의 첫머리에서 바울이 어떻게 곧장 복음서로 돌아갔는지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그는 그저 들은 이야기나 체험에 근거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복음서로, 또 구약으로,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 구약을 통해 모든 그림자와 모형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우리에게 이 위대한 히브리서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그것을 보고 사랑합니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이 책은 불태워지고 흩어졌으며 없애 버리려는 시도를 당했지만, 여전히 당당히 휘날립니다. 주께서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회의론자는 “당신은 바울이 이것을 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울이 아니라 바울 안에 계셨던 하나님, 바울 안에 계셨던 창조주께서 쓰셨습니다. 다윗이 “내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않게 하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을 때 그 안에 계셨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그 선지자의 말을 붙드시고 지옥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장막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점도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이 위대한 우림과 둠밈으로 인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주님, 오늘 저녁 우리의 체험이 여기 이 성경에 비추어 빛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저녁 이 안에 이것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남자나 여자, 소년이나 소녀가 있다면... 그 안에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아, 그들은 “내게는 생명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쾌락에 빠져 사는 여자는 살아 있어도 죽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생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죽어 있습니다. 성경은 “네가 생명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죽어 있다. 네가 부자여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비참하고 가난하고 벌거벗고 눈먼 줄을 알지 못하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 저녁 교회들이 그런 상태입니다. 이 위대하고 귀한 것들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지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직 무엇을 통해서만 만들어 내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그 작은 물고기들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물고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시려면 먼저 물고기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부활에도 무언가를 이루려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물고기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익힌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빵도 구우셨습니다.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 주님, 그것은 그분의 손 안에 있었고 그분은 창조주셨습니다. 하지만 손 안에 무언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기며 이렇게 말하게 하소서. “오 하나님,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소서. 제 삶의 끝이 왔을 때, 제가 다시 태어났고 주님의 영께서 저와 함께 증언하시며 제 영과 더불어 제가 주님의 아들이나 딸임을 증언하셨다는 것을 알고, 제 안에 있는 이 소망을 품고 떠나게 하소서.” 마지막 날에 주께서 그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아버지, 허락하소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실 분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를 기억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저를 아시기를 원합니다. 제 이름을 불러 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젊은이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에게도, 그분에게도, 또 그 자매님에게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 계십니까? 손만 드십시오. “브래넘 형제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젊은 자매님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시는 동안, 제가 이 찬송 한 절을 부르겠습니다. 이 세상의 헛된 재물을 탐하지 마십시오, 그토록 빨리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이제 반주자가 연주하고 여러분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손을 들고 “예, 주님, 여기 제 손이 있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무엇이 됩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이 결단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님, 주님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린 소녀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손을 들겠습니다.” 여기 있는 어린 소녀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잘했어요, 얘야.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신단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라.” “하나님, 제 손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에도 주님의 손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제가 나오게 하소서.” 예, 나사로처럼 말입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여정이 끝날 때, 하나님께 신실했다면, 영광 가운데 아름답고 밝은 그대의 집을 기쁨에 찬 그대의 혼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저녁 이 작은 모임에서 여러 손이 올라갔습니다. 오늘 저녁 주님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손을 붙잡기 원하는 손들입니다. 주께 맡겨진 것은...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그들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리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일으키리라.” 결코 멸망할 수 없고, 결코 심판에 이를 수 없으며, 영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압니다. 영생은 오직 하나뿐이며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부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합니다. 의와 거룩함을 생각합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살아갑니다. 주님, 손을 든 모든 사람 안에 그런 생명이 들어가게 하소서. 손을 들어야 했는데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허락하소서. 여정이 끝나고 삶이 다할 때, 그날 그분과 함께 평안에 들어가게 하소서. 거기서는 결코 늙지 않고, 결코 병들지 않으며, 아무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지켜 주셔서 그분을 찬양하게 하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믿는 여러분 모두... 이제 손을 들고 이 후렴을 부릅시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이제 허밍으로 불러 봅시다.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으로 부른다.] 그렇게 하시는 동안 옆 사람에게... “이웃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십시오. 옆에 앉은 분과 악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양쪽 모두에게 하십시오. 양쪽 분들과 악수하십시오. “이웃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이 여정이 끝날 때, 언젠가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했다면, 그곳에서 수어드 형제님을 볼 것입니다. 영광 가운데 밝고 밝은 그대의 집을 기쁨에 찬 그대의 혼이 보게 될 것입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저는 메시지가 끝난 뒤 이렇게 경배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시간은 빠른 변화로 가득하고, 땅의 것은 아무것도 변함없이 서 있지 못하니,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붙드십시오... 그분을 바라봅시다.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말입니다. 이제 노래하면서 그분을 경배합시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십시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평강! 평강! 놀라운 평강, 그저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내려오네... 메시지는 끝났습니다. 경배하십시오. 내 영을 영원히 덮으소서, 간구하오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로. 그분 안에 흠뻑 잠기십시오. 평강! 평강! 놀라운 평강, ...부터 내려오네, 그 위대한 샘이 열리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내 영을 영원히 덮으소서, 간구하오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로. 마음에 무언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평강! 놀라운 평강, 위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네, 내 영을 영원히 덮으소서, 간구하오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로. 참으로 풍성하고 감미로운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까?
기름부음을 받고 기도받기 원하는 병든 분이 계십니까? 계시면 자리를 찾아 나오십시오. 저기 휠체어에 계신 부인입니까? 그대로 계시게 하십시오. 제가 가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실 필요 없습니다. 또 계십니까? 아, 여러분도 예배의 이 시간이 참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시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동일한... 여러분은 그렇게 느끼십니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한번 봅시다. 그저 무언가... 소리를 지르고만 싶은 그런 느낌입니다. 아시겠죠? 평강! 평강! 놀라운 평강, 위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네, 내 영을 영원히 덮으소서, 간구하오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물결로. 우리가 경배하는 동안 이제 병든 분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부인,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모두 그 찬송을 허밍으로 부르십시오. [브래넘 형제님이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