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이곳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목사님께서 이렇게 훌륭하게 소개해 주신 말씀에 걸맞으려면 참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그러므로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모든 크신 치유의 권능과 긍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몇 가지 광고를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드 형제님과 로버슨 형제님… 저희가 안전하게 다녀오도록 기도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 나흘 반 정도 다녀온 것 같은데,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저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엄 스넬링 형제님의 부흥집회가 이 도시의 브리검 애비뉴 끝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번 수요일 저녁에는… 저는 잠시 후에 알려 드릴 분의 장례예배를 마친 뒤 내일 떠나려고 합니다. 수요일 저녁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레이엄 형제님이 그곳 집회를 마치기 전에 우리 모두 단체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할 수 있으면 온 교회가 함께 모여서 단체로 가서 만나… 그레이엄 형제님의 집회 한 번에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찰스타운의 장례식장에는 여러 해 전에 이 교회에 다니셨던 콜빈 부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일흔네 살이신 그분은 어제 이 세상을 떠나 주 예수님과 함께 계시러 가셨습니다. 장례 설교는 월요일에 맥키니 목사님께서 하실 예정입니다. 그분은 전에… 여러 해 동안 포트풀턴 감리교회의 목사로 계셨으며 그 가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셨습니다. 저는 월요일에, 아마 한 시 반일 겁니다, 인디애나주 찰스타운의 장례식장 예배실에서 그분을 도와드리기로 했습니다. 콜빈 가족을 아시는 여러분 모두가… 조금이나마 격려해 주시거나 손 한번 잡아 주시면 그 가족이 고마워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도 모두 그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 그분은 인디애나주 찰스타운의 장례식장 예배실에 안치되어 계십니다. 오늘 오후에 찾아가 주신다면 콜빈 가족이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 집안 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아직도 이 타버내클에 나오십니다. 저는 그 가족 거의 모두의 결혼식을 주례하고, 장례를 치르고,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바로 여기 우리 이웃에 살던 그레이슨 씨가 그곳 장의사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위대한 공부를 오늘 아침에 멈추는 곳에서부터 저녁에 이어 가려고 합니다. 제가 아는 광고는 이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요일 저녁에 그레이엄 형제님과 함께하려고 올라가는 일은 오늘 저녁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모든 방문객을 환영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함께해 주셔서 기쁩니다. 오늘 이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극히 풍성하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콕스 형제님이 방금 알려 주셨는데, 지금 방송 장비가 썩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날씨 때문에 스피커에 습기가 많이 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그리 좋은 장비가 아니니 그것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제가 아는 자매님이 보이는군요. 아르간브라이트 자매님입니다. 이런 것을 여쭙는 게 예의에 맞지는 않습니다만, 아르간브라이트 형제님이 건너가신 뒤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분의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분은 지금 스위스와 독일에서 토미 힉스 형제님과 폴 케인 형제님과 함께 집회를 하고 계십니다. 루스 자매님, 혹시 소식을 들으시면 가능한 한 빨리 제게 알려 주십시오.
이 작은 타버내클에는 교인 등록 제도는 없지만 교제는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신조가 없고, 사랑 외에 다른 법이 없고, 성경 외에 다른 책이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책이며,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모두 서로 교제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보니,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은 한 형제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분은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이곳에는 온갖 다양한 분이 오십니다. 조금 전에도 여기 앉아 계신 메노나이트 형제님과 악수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메노나이트든, 감리교든, 침례교든, 가톨릭이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오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함께 누리며 교제합니다. 이 자리에는 여호와의 증인도 계시고 여러 교파에서 오신 다양한 분도 계십니다.
저는 서부를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말과 소를 좋아합니다. 농장에서 자랐으니 그런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소 떼를 한데 모으곤 했는데, 저도 함께 갔습니다. 거기에는 소 떼의 이동을 막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동부에 사시는 여러분은 그런 울타리가 무엇인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를 숲에 풀어놓을 때, 소들이 이른바 떠돌아다니며 목장 쪽으로 다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입니다. 겨울 사료용 풀을 기르는 곳으로 내려오면 소들이 그 풀을 다 먹어 버릴 테니까요. 또 산 위에도 암소 몇 마리와 수소들을 따로 나누어 두는 그런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동 방지 울타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된 이동 방지 울타리에는 소들이 통과할 때 관리인이 서 있습니다.
저는 여러 날 그곳에서 말안장에 앉아 소들이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온갖 다른 낙인을 찍은 소들이 들어갔습니다.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도 있었고, ‘바 엑스’라고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우리 것은 ‘삼각대’였는데, 보이스카우트 표장과 비슷했습니다. 그 아래쪽에 사는 이웃의 것은 말에 찍은 칠면조 발자국 모양의 낙인이었습니다. 소들을 몰고 나올 때 자기 소를 알아볼 수 있도록 저마다 다른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은 어떤 낙인이 찍혀 있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살펴보는 것은… 관리인이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은 소의 귀에 붙은 표였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소는 어떤 낙인이 찍혀 있든 모두 순종 헤리퍼드여야 했습니다. 헤리퍼드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등록된 혈통의 가축이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에도 우리가 어떤 낙인을 달고 있는지는 살피지 않으시고, 우리가 모두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인지를 살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혈통입니다. 피를 검사하면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거기서 그렇게 지낼 것이라면 여기서도 그렇게 지내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우리는 여러 교회에서 오신 모든 분과의 교제를 소중히 여깁니다.
지금 우리는 이 복된 히브리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 형제님은 이 공부가 너무 좋아서 녹음테이프를 가져다가 강의집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이제 머지않아 11장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겨울 동안 그 11장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거기 나오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 전체를 함께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앞의 장들 가운데 일부는 부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함께 연결하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성경은 성경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순이 있다고, 성경 구절들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다른 성경 구절과 모순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모순이 있다면 아마 우리가 성경을 보는 방식과 모순되는 것이지, 성경 자체가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사역을 한 지 이제 26년이 되어 가지만, 성경에 기록된 다른 어떤 내용과도 모순되는 것을 성경에서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은 히브리서에서 가장 복된 장들 가운데 하나인 7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없는데 함께 본문을 따라 읽고 싶으신 분은 손만 들어 주시면 기꺼이 성경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장로님들 몇 분께 부탁하겠습니다… 누가 이리 오셔서 몇 권 가져다가… 뒤에 손을 든 분들이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성경이 필요하시면 손만 드십시오. 가져다드릴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파나 소속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어떤 사람의 사상에서 나온 신학 위에 놓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대체로, 아니 전적으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엄숙히 안식할 자리를 찾는 유일한 길은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듣고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확정됩니다. 무엇이 오고 가든 더 이상 어떤 것도 그것을 흔들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 믿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닻을 내렸고, 이제 현세에도 영원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닻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의 희생으로 거룩히 구별된 자들… 또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 곧 믿는 사람의 삶에서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아기나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 저 너머로 갔을 때, 진흙투성이 무덤 곁이나 관 앞에 서서도 굳센 독수리의 눈빛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그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높은 부르심의 푯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마련해 주시고 모든 사람에게 값없는 선물로 주신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파나 조직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교제하려고 함께 모인 사람들, 곧 믿는 이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여기 있는 사도 바울의 이 놀라운 가르침에서, 앞의 장들에 나온 배경을 보면 그는 특별히 주 예수님의 지고한 신성과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느끼고 만지고 교제할 수 있도록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 곧 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몸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라.”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내려오셔서 자신의 아들의 몸 안에 사심으로 만질 수 있는 분이 되셨고, 자신을 드러내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그리스도는 조금도 하나님보다 못한 분이 아니셨으며, 하나님도 조금도 그리스도보다 못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둘이 함께 육체로 신성을 이루셨으며, 고난받으실 수 있도록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습니다. 천사들은 고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이셨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7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막들과 번제… 희생물과 번제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손으로 만든 성막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교제하시며 장막을 치고, 곧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 장을, 아니 이 책을 마치는 대로 룻기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친족이 되셨는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다시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려고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구속자는 친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족이 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천사가 되셔서 사람의 친족이 되실 수는 없었습니다.
어젯밤에 저는 어머니를 막 여읜, 마음이 찢어지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인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빌 형제님, 오늘 밤 어머니는 천사가 되셨겠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얼. 어머니는 결코 천사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오늘 밤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여성이시고, 언제까지나 그러실 겁니다. 결코 천사가 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천사가 되도록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천사도 지으셨고 사람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천사가 되지 않으며, 천사도 결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것은, 사람이 타락하여 빠져 버린 저 광대한 저편에서 구속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그 불멸성이 추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우리의 친족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죽음을 짊어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공부할 때 들었던 예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도 이해하시도록 배경을 조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보리로 가시는 길에 죽음의 침이 그분을 겨누며 주위에서 윙윙거렸고, 마침내 그분을 쏘아 죽게 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자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자 달과 별들도 빛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침을 붙잡아 두시기 위해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죽지 않는 분으로 계셨다면, 신현체(theophany)로 계셨거나 영으로 계셨다면, 죽음은 거기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침을 받으실 수 있도록 육신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벌이나 침으로 쏘는 곤충이 한 번 깊이 쏘면 다시는 쏘지 못합니다. 그 침을 살 속에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 거하신 것은 자기 육신 안에 죽음의 침을 붙잡아 두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음이 십자가에 계신 그분에게서 물러났을 때, 그 침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제는 믿는 사람을 더 이상 쏠 수 없었습니다. 윙윙 소리를 내고, 붕붕거리며 위협할 수는 있지만 쏠 수는 없습니다. 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 죽음과 무덤이 모두 그 힘을 잃었기 때문이라.”
지난 일요일에는 “그리스도의 교리에 관한 기초 원리들을 떠나서”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6장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자”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날 브래넘 타버내클을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기초 원리들을 공부하는 데 너무 치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셨고, 누구의 아들이셨고 하면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완전함으로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먼저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내려놓자고 그는 말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 안수, 침례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그런 모든 죽은 조항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그런 것들만 좇습니다. “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우리는 물침례를 믿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안수도 믿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것들을 내려놓고 완전함으로 나아가자.”
교회는 조직을 통해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조직으로는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서로에게서도 멀어집니다. 우리는 장벽을 세우고 스스로 갈라서는데,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면 그런 작은 것들은 그다지 쓸모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관계 안으로 들어가며, 완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 다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지를 알게 됩니다. 물침례나 안수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오며, 그분의 고난을 통해 완전해집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습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집니다. 의무이기 때문이나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의 동료 시민이 되게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교파나 장벽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큰 몸입니다.
이제 잠시 후면 오늘 아침 공부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이 책 7장… 아니, 6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6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배경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에 더 큰 이를 두고 맹세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하나님은 더 큰 누구를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기에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이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잠깐 갈라디아서를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로 돌아가 3장 16절을 찾으십시오. 그분께서 무엇을 두고 맹세하셨는지 여기서 잠시 읽어 보겠습니다. 한편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이라.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듯, 씨들에게, 라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듯… 그 씨에게, 라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이것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지금 읽으실 때 주목하십시오.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단수) 약속들(복수)이 주어졌느니라.
“아브라함과 그의 씨.” 아브라함의 씨는 하나였고, 그 씨는 그리스도였습니다. 미리 보여 주는 모형으로는 이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많았습니다. 이삭을 얻기 전에도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라가 불신으로 잘못된 길에 빠진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라는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해서 한나가 아이를 낳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마련하시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사라는 한나… 아니, 자기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을 통해 아기를 낳게 해서 그 아이를 자기가 데려오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이스마엘이었고,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육체의 가시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육체의 가시입니다. 거기서 아랍인들이 나왔고, 그들은 언제나 그래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할 때마다, 그것은 그때부터 여러분의 육체에 가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면 바로 그 뜻입니다. 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어떤 것이 곁길로 돌리려고 “그 말씀은 사실 그런 뜻이 아닙니다”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말씀하신 그대로의 뜻입니다.
이제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약속들이… 한쪽은 씨, 단수였고 다른 쪽은 약속들입니다. 약속은 하나 이상이며, 아브라함의 씨에 포함되는 사람도 한 사람 이상입니다. 아시겠죠, 씨는 하나이지만 그 씨에 속한 사람은 많습니다. 아브라함 혼자에게만, 혹은 이삭 혼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모든 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씨에서 나온 씨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약속들이 주어졌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되어 그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됩니다. 교회에 가입하거나 죽은 조항들을 만들어 놓거나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태어남으로써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그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면 조금 더 읽어 나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는 대목입니다. 이제 6장 17절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오, 이제 잠시 여기서 쉬어 갑시다. 하나님께서 더욱 기꺼이 하셨습니다. 꼭 그러셔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을 확실하게 하시려고 그러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으며, 세상에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간음 중에 붙잡힌 여자를 만나셨을 때 그분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병자들을 만나셨을 때에는 마땅히 하셔야 할 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므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있든, 죄가 얼마나 많든, 얼마나 뒤로 물러났든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이 기꺼이 와서 구하기만 하면 어쨌든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한 번 행하셨다면, 똑같은 상황이 다시 생길 때 두 번째에도 첫 번째와 똑같이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불의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아무리 죄에 깊이 빠져 있고 아무리 타락해 있어도, 그 타락한 여자에게 행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잘못 행하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그분의 인격입니다. 그분의 행동에 나타나는 모습이 그분의 인격을 드러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 행동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줍니다. 한두 차례 앞선 공부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감리교인들은 “환호하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단언하려 했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은 “방언을 말하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셰이커교도들은 “몸을 떨면 받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셰이커교도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모두 틀렸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여러분의 인격이 여러분이 누구인지 드러냅니다. 사람은 그 행위로 알려집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떻든… 이런 옛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당신의 삶이 너무 크게 말해서 당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실제 모습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이 여러분 안에 어떤 영이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잘못된 것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아니, 올바른 것을 흉내 낼 수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흉내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압박이 가해지는 때가 오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것입니다. 사슬이 견딜 수 있는 최대 힘은 가장 약한 고리가 견디는 만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났습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도 시험을 받으면 어떤 사람인지 입증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언제나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비춥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듣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떠는 자, 말하는 자,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니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입술로 고백하는 믿음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은 모든 사람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이렇게 행동하고 저렇게 해 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진짜 핵심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믿는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오늘 아침 그분이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여러분을 대신해 행하고 계시며, 여러분은 여기 아래에서 증인으로서 그분을 대신해 행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증인은 누군가를 대신해 행하며, 여러분을 위해 증인으로 서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증거가 어떠한지 여러분의 삶이 여기서 드러내는 대로, 그것은 저 위에도 비치고 여기에도 비칩니다. 그분은 저 위에 계시며, 여러분을 위해 계시는 그분의 모습은 그곳과 이곳 양쪽에 비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은 믿음으로, 오직 그것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니 감각이나 감정이나 느낌 같은 어떤 것도 거기에는 전혀 자리가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런 감정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것, 이 시대 사람들에게 철저히 가르치려는 것은 감정이 아닙니다. 마귀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친 듯이 몰아가며, 영원히 어디로 갈 것인지를 감정에 근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환호하고, 방언을 말하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데 근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그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여러분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입니다. 아시겠죠. 손에 피가 나타날 수도 있고, 방언을 말할 수도 있고, 병자를 고칠 수도 있고,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출생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새 출생을 이루시고 자신의 일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우리는 ‘영원한’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았습니다. ‘영원히’는 ‘일정한 시간’을 뜻합니다. 영원은 영원히, 영원히, 또 영원히 이어지지만 영원은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영생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어로 그 단어는 조에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의 일부를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이 되며, 하나님께서 영존하시는 것처럼 여러분도 영존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끝도, 멈추는 지점도 없습니다. 시작한 지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끝이 있으며, 시작이 없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귀한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리스도인은 한 번 성도들에게 전달된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여기저기로 흔들려 다니며 이 교회 저 교회에 가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기만 하다면 여러분이 어느 교회에 속하고 싶든 괜찮습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친족이 되신 것처럼 여러분을 하나님의 친족이 되게 하는 그 출생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일으키시려고 친족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을 일으키시기 전에 영생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친족이 되셔서 죽음을 겪으셔야 여러분을 일으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여러분도 부활에 참여하려면 그분의 친족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서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부, 곧 육신이 되신 것은, 여러분이 그분의 은혜로 그분의 일부가 되어 영생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오, 우리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꼭 그러셔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이 참으로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오래 참지 않으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 기쁨, 믿음, 화평, 오래 참음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참음은… 서로의 짐을 견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여러분이 되시고 죄가 되셨으며, 여러분의 죄를 취하셔서 여러분을 위해 짊어지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우리의 짐을 견뎌 주십니다.
또한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들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하면, 하나님은 선하셔서 그렇게도 해 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그 크신 사랑에 이끌려 때로는 자신을 낮추시면서까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갖게 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뒤의 도마를 보십시오. 도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 오늘날에도 그에게는 자녀가 많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내게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옆구리에 손을 넣고, 여기 그분의 손에 내 손가락을 대어 보아야 믿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때 그는 성경이 정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입증할 어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선하십니다. “자, 도마야. 네가 그것을 원한다면, 여기 있다. 네가 가질 수 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 저는 방언을 말해야겠습니다. 저는 환호해야겠습니다. 저는…”이라고 합니다. “그래, 하여라. 내가 그것을 허락하마.” 그분은 선하십니다. 그래서 도마는 그분의 옆구리에 손을 넣고 나서 “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야, 너는 보고 나서 믿는구나. 그러나 아무 증거도 없이 믿는 사람들의 보상이 얼마나 더 크겠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의 보상이 얼마나 더 크겠느냐!”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저는 믿는 자들에게 표적들이 따른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합시다. 이것 없이도 표적들은 가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사람들의 언어와 천사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믿음으로 산들을 옮길 수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비를 알 만큼 성경을 이해할 수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성령 없이 성령의 은사들을 가진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인내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들에 그 영을 통해 그런 것을 일으키십니다.
이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더욱 기꺼이… 보여 주시려고… 상속자들에게… (상속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되어 상속자들입니다.” 오, 마음에 와닿습니까? 우리는 맹세하신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더 큰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더 읽어 나가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분의 계획이 불변하다는 약속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불변’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동일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병자 한 사람을 고치셨다면, 그분은 결코 자신의 태도를 바꾸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한 사람, 매춘부 한 사람을 용서하셨다면, 결코 자신의 태도를 바꾸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불변성, 곧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 곳에서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라고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분은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로 저는 제 말을 거두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거두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요구하신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오, 세상에. “네가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그것뿐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다면!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불변하시므로 변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계속 읽어 내려갈 테니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던 두 개의 변경할 수 없는 것들로 말미암아… 불가능, 곧 불가능성과 불변성은 사실상 같은 말입니다. 변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고, 영원히 동일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뀔 수 없습니다. 불변성과 불가능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던 두 개의 변경할 수 없는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두 가지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첫째, 그분의 말씀이 그 일을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그 일을 하시겠다고 그분이 맹세로 서약하셨다는 것입니다. 오, 세상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왜 이리저리 흔들리고 돌아다니며 세상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 1957년형 최신식 기독교처럼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옛 방식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사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것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씨에게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불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고,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육신의 눈에는 그 약속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믿음이 약해져서 “어쩌면 신유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잘못 알았을지도 몰라. 그런 것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을지도 몰라”라고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한 가지를 보여 줍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우리는 이 장의 조금 앞부분을 마쳤습니다. “한 번 하늘의 선물과 그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다시 떨어져 나가 자신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며 범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씨가 그의 안에 머물러 있으므로 그가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희생은 이미 드려졌고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여러분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못을 행하더라도 고의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장 47절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그러나 일단 태어나고 나면 여러분에게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에 관한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진리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실재가 되었으며, 여러분은 현세에도 영원에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그는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맹세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받기를 원하셔서…”
이제 여기서 그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바울이 교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시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확고한 안위를 얻어야 하리라. (“침례교인들이 나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감리교로 가겠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기 위해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마지막 부분을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그 소망은 하나님께서 맹세로 서약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혼의 닻이 되어 확실하고 굳건하며,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는데, 휘장에 대해 잠시 이야기합시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이것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휘장 안에!” 휘장은 육신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휘장입니다. 오늘 아침 천사들이 좌석 곁 자기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휘장입니다. 휘장 때문에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휘장 뒤에 감추어져 있고, 그 휘장은 육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있느니라.”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나 휘장은 육신이며, 그것이 우리를 그분의 임재 밖에 있게 합니다. 하지만 혼을 통해, 영을 통해,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압니다. 그분은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지금 여기 계십니다.
어느 날 아침 도단에서 한 늙은 선지자가 군대에 포위되었습니다. 그의 종이 밖에 나갔다가 말했습니다. “오, 아버지여, 온 나라가 이방인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자들보다 더 많단다.” 그는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그의 눈을 열어 주시기 원합니다. 휘장을 거두어 주십시오.” 눈에서 휘장이 벗겨지자 그 늙은 선지자 주위에는 불 병거들이 있었고, 산에는 천사들과 병거들로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 그제야 게하시는 “이제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휘장이 벗겨진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단단히 붙드십시오. 휘장이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휘장이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자신을 가리셨고, 그 휘장은 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이 되셨고, 자신을 감추셨던 그 휘장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이 주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입증해 줍니다. 우리가 지금 감추어져 있는 이 휘장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이 휘장이 둘로 찢어지면, 저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내가 그분을 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이 휘장은 완전하게 되어 다시 일으켜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때, 저는 저의 구주이시며 저의 하나님이신 그분과 함께 걷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휘장이 완전해진 뒤에는 우리가 그 안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휘장 안에는 죄가 있습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그 영화로운 몸을 갖는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혼이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하듯이, 이 몸도 죽어야 합니다.
완전함에 있어서… 고기를 먹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해서 몸을 완전하게 하려 해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끊어야 하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또 이것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방식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그것을 이룹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모두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데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아멘. “달리는 자나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그것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조금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했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찬양은 그분께 돌아갑니다. 그분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분께서 이 확실한 소망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결코 잃어버린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맹세로 서약하셨습니다.
물론 잘못하면 매를 맞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며, 그 결과를 받습니다. 이제 밖에 나가 계속 죄를 지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고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적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여러분 안에 잘못을 행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는 그런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 곧 율법 시대에 해마다 끊임없이 드렸던 그 짐승들은 결코 죄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면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다. 죄는 여러분에게서 떠나갔습니다. 현세에도, 영원에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고의로 잘못을 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가서 어떤 일들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잃어버린 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징계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제 어린 아들도 여러 번… 제 아이들은 제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합니다. 여러분의 아이들도 그렇지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무엇을 당할지도 압니다. 매를 맞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호되게 맞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분의 자녀입니다! 물론입니다! 한 번 영생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주셨다가 다시 빼앗는 분이 아닙니다. “내 말들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마지막 날들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계속해서 “아, 그렇다면 그냥 이렇게 해도…”라고 한다면, 저는 언제나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잘못된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바로 그 생명, 바로 그 기초 때문입니다. 잘못을 행하고 싶다면, 여기 안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같은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감정이나 굉장해 보이는 무언가, 또 다른 느낌에 온통 얽매여 있었다면, 그것은 잊어버리십시오! 제단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의 옛 죄악된 생명을 없애 주시고, 저를 그런 상태로 만들어 주십시오. 저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없습니다.
물론 마귀가 여기저기서 그를 덫에 걸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마귀는 이따금 그를 덫에 걸리게 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주 예수님께도 덫을 놓으려 했습니다. 모세에게 덫을 놓아 그를 잡았습니다. 베드로에게도 덫을 놓아 그를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분을 부인하기까지 했지만,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을 때… 까마귀가 나가서 까악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까마귀도 분명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니 그 본성이 달랐습니다. 원하는 만큼 죽은 짐승의 시체를 실컷 먹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왜입니까? 애초부터 까마귀였기 때문입니다. 썩은 고기를 먹는 새였고, 좋지 않은 새였습니다. 까마귀는 위선자였고, 비둘기와 똑같이 어엿하게 횃대에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날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가 먹는 것처럼 좋은 먹이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비둘기는 먹지 못하는 썩은 먹이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구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어진 바가 다릅니다. 비둘기이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없어서 썩은 먹이를 소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비둘기가 됩니다. 그 본성과 그 변화와 그 구성이 그렇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까마귀 안에 비둘기의 영을 넣어 주면 그 까마귀는 결코 죽은 짐승의 시체 위에 앉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해서 내려앉더라도 틀림없이 얼른 떠날 것입니다.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 술집에 내려앉을 수는 있어도 곧바로 빠져나올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그를 유혹해서 돌아보게 할 수는 있어도,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릴 것입니다. 그곳에서 얼른 떠날 것입니다. 왜입니까? 비둘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를 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며 낯선 자는 따르지 아니하리라.” 그는 애초부터 비둘기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안에 실제로 닻을 내리는 무언가입니다.
이제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굳건하며, 휘장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데, 휘장…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자신을 가리신 채 내려오셨습니다. 무엇을 하시려고요? 자신을 보여 주시려고요.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으므로 그분은 자신을 감추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휘장 뒤에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 휘장은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라”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니라. 내가 일하고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며 나도 지금까지 일하느니라.” 여기 그분이 육신으로 자신을 가리신 채 걸어 다니십니다. 하나님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다.” 그분이 여기서 걸어 다니고 계십니다.
그분은 내려오셔서 거룩하게 하시는 일, 곧 방편을 마련하시거나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바쳐 죄의 값을 치르심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믿음은 휘장에 가려진 믿음… 아니, 휘장에 가려진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휘장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휘장은 교육을 받았고,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말들을 합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안에 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부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가리는 휘장입니다. 우리는 그 휘장 안에 있습니다. 언젠가 그분께서는 이 휘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망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악수할 수 있도록 휘장을 입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를 떠나면, 먹지도 마시지도 잠자지도 않고 영원히 깨어 있는 성막, 곧 신현체가 있습니다. 그저 사람의 형상입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단 아래서 기다리며 “주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시 내려오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악수하고 싶고, 앉아서 먹으며 서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실 때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서로 교제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위대하게 오실 때 준비된 사람들은 영원히 그렇게 있을 것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로, 그분의 모습과 같이 서 있을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우리의 치유자로 받아들임으로 구원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밖의 이 모든 보상은 보험 증서에 따라 지급되는 배당금입니다. 아멘. 보험 증서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정해진 보험금을 받게 될 때까지 배당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고, 우리는 지금 배당금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배당금을 받자마자 그 보상은 다시 쌓입니다.
한번은 보험 설계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보험에 가입하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저는 이미 들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자, 아내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보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험료를 내느라 가난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 저를 보며 “당신이 보험을 들었다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요”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빌리, 어떤 보험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복된 확신, 예수님은 나의 것! 오,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봄이여!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겼네. 그가 말했습니다. “아주 좋군요, 빌리. 하지만 그것으로는 여기 묘지에 묻히게 해 드릴 수는 없지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거기서 나오게 할 겁니다. 그게 중요한 일이지요.” 저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걱정이 아닙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걱정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저를 그분의 아들의 모습과 같이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맹세하신 확신이 있으므로, 저는 담대히 걸으며 안위와 혼의 닻을 가질 것입니다. 이 휘장 안에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저를 저편 영원한 반석에 닻으로 붙들어 매고 있습니다. 물결이 솟구치고 세차게 몰아쳐도 상관없습니다. 죽음이나 위험이나 그 어떤 것이 우리를 갈라놓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제 닻은 휘장 안에 굳게 걸려 있습니다! 홍수가 불어나고 물결이 들이치게 두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오게 두십시오. 다시 태어난 신자에게는 닻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이 휘장 너머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닻이 저편 영원한 반석에 굳게 걸려 있음을 압니다. 그분은 마지막 날에 저를 일으키시겠다고 맹세하신 약속이십니다.
그러니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노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곳으로 앞서 달려가신 분이… 오, 세상에. 우리는 오늘 공부할 본문까지 가지도 못하겠군요. 우리를 위해 앞서 달려가신 분께서 들어가신 곳으로… 앞서 달려가는 사람, 선구자입니다! 옛 서부 시대에 옛길들을 따라, 또 그 길들을 가로질러 앞서 달려가던 정찰병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차 행렬이 물이 없어 죽어 갈 때, 정찰병은 앞서 달려갔습니다. 인디언 부족들을 발견하면 피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샘물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급히 돌아와 마차 행렬의 대장에게 알렸습니다. “말들을 재촉하십시오. 모두 용기를 내십시오. 바로 저 산 너머에 큰 샘이 있습니다.” 그가 앞서 달려간 사람입니다.
여기에 그 선구자가 계십니다. 사람은 한때 마귀의 연속 사격에 꼼짝 못 하고 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기관총 진지를 점령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 우리보다 먼저 가셨습니다. 사탄은 그곳에서 기관총을 들고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속박되어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그 샘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거기서 쫓겨났기 때문에 그는 그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달려가신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그 진지를 점령하셨습니다. “내가 가고 있으니 요새를 지켜라”라는 옛 찬송을 들어 보셨습니까? 요새를 지키기는 뭘 지킵니까. 점령합시다. 우리는 더 이상 지키고만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요새를 점령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문이 열려 있습니다. 더러운 자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샘이 하나님의 집, 다윗의 도시에 열렸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 이미 우리를 위해 들어가셨습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저 너머에 결코 늙지 않는 곳이 있다.” 주름이 생기지 않고,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맥스 팩터 화장품을 쓸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 먼저 가셨습니다. 늙고 지치고 몸을 떠는 일이 있는 곳은 결코 없습니다. 결코 병들지 않고, 아기가 배앓이를 하지 않고, 여러분이 결코 틀니를… 아니, 이를 잃고 틀니를 해 넣을 필요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분께서 들어가셨으니, 언젠가 저곳에서 우리도 죽지 않고 그분의 모습과 같이 서서 별들과 해보다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이 우리보다 먼저 가셨습니다.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들어가셨느니라.
이 위대한 선구자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분은 영으로부터 오셨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무지개의 위대한 근원에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빛줄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빛줄기였으며, 주된 색인 빨간색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파란색이 뒤따랐습니다. 파란색은 진실함입니다. 그다음 다른 색들이 이어져 완전한 일곱 색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며, 그 위대한 근원… 아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위대한 다이아몬드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색들을 비추도록 깎인 그 위대한 다이아몬드, 곧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은사들과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우리 가운데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을 비추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커다란 무지개 전체가 사람 같은 형상으로 지어진 신현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육신이 없었습니다. 신현체였습니다.
모세가 “주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석 속에 숨기셨습니다. 그분께서 지나가며 등을 돌리셨을 때, 모세는 “사람의 등처럼 보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느 날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에 앉아 있을 때… 오늘 저녁에 그것을 다루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그에게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그분은…”이라고 하시겠지요. 우리는 여기서 그보다 앞서 멜기세덱의 계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시는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몸이었고,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브래넘 형제님, 왜 그분이 다시 오셔서 태어나셔야 했습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거하시는 몸이 창조되었을 뿐입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 곧 예루살렘 왕이며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계셨고, 날들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날들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되셨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멜기세덱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으며, 여러 해 뒤 아브라함의 장막 앞에서 그를 만나신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에게 등을 돌리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거기 서서 소돔 쪽을 바라보시던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기 휘장 안에 그 약속을 붙들고 있는 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감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큰 자석과 접촉했을 때, 그는 그것이 그 육신 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과 함께 조금 더 걸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아브라함에게 감추겠다고… 그가 세상의 상속자인 것을 보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러니 아브라함아,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네게 말하겠다.” 오늘 저녁에 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저기 소돔에서.” 그리고 그곳에서 하실 모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뒤 그분은 곧바로 다시 공간 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옷에 먼지가 묻은 채 그곳에 서 계셨던 한 사람, 사람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잡은 송아지의 고기를 드시고, 소에서 짠 젖을 마시고, 옥수수 부침빵, 곧 옥수수빵에 버터를 발라 드셨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신현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때 그것을 취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이나 저처럼 태어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역을 차지하시려면 육신으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창조된 몸이었습니다. 땅에서 칼슘과 칼륨을 끌어내셔서 이렇게 하시고 [브래넘 형제님이 입으로 바람을 부신다] 그 안으로 들어가신 몸이었습니다. 멜기세덱도 똑같았습니다. 그분은 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브라함 앞에 걸어 나가실 수 있는 몸, 휘장 아래로, 곧 자신이 창조하신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여자가 만들어 낸 휘장, 여자의 태를 거쳐 세포로 이루어진 휘장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 이것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들어가 나오셔서 멜기세덱의 계통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곧 예루살렘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군주였는데 (물론입니다),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태초의 그 위대한 사랑, 그 위대한 영이십니다.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화의 왕이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으며, 누구였습니까? 그분은 태어나신 적이 없고, 결코 죽지 않으실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입니다. 주 예수님을 미리 보여 주는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자를 통해 오신 그 방식으로 그분도 여자를 통해 오셔야 했습니다. 여러분을 자신에게로 다시 데려오시려면 여러분이 오신 그 길로 오셔야 했습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달콤한가, 나처럼 가난하고 눈먼 비참한 자를 구하셨네! 한때 잃어버린 자였으나 이제 찾으셨네, (그분의 은혜로) 눈멀었으나 이제는 보네.
저는 그분이 무엇을 하셔야 했는지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되신 것은 제가 은혜로 그분께 속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죄를 취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의 의를 통해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제 본성은 죄인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세상에 나면서부터 거짓을 말했습니다.”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소망조차 없었습니다. 돼지에게 구정물을 먹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해 보시겠습니까? 얼마나 여러분의 말을 듣는지 보십시오. 까마귀에게 죽은 짐승의 시체를 먹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해 보고 무슨 대답을 하는지 보십시오. 말을 할 수 있다면 “당신 일이나 신경 쓰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이 본성을 바꾸시고 제게 소망하고 간절히 바라며 목말라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이 제게 생명보다 낫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을 사모합니다.” 다윗은 “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물 있는 시내를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혼이 주를 찾기에 목마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을 찾으려는 그 갈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의 부름에 따라 그것을 왜곡하고, 나가서 여자들과 쾌락과 세상 것들을 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도록 사람 안에 넣어 주신 그 거룩한 것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세상의 것들에 쏟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한번 변화되고 나면, 장구벌레가 있던 그 샘, 온갖 잘못된 것들로 가득했던 그 물 저장소가 깨끗이 청소되고 소독되어 하나님의 순수한 물이 그 안에 채워지면, 죄는 결코 그것에 손댈 수 없습니다. 아멘! 오,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분을 경배하는지! 나의 생명, 나의 햇빛, 나의 모든 것! 위대한 창조자께서 나의 구주 되셨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시네. 그분의 영광에서 내려오신, 영원히 살아 있는 이야기,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 오셨네, 예수님이 그 이름이라. 구유에 나셨으나 자기 백성에게 낯선 분, 슬픔과 눈물과 고통의 하나님. 오,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분을 경배하는지! 나의 호흡, 나의 햇빛, 나의 모든 것!
오, 하나님.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그것을 글로 써 보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를 먹물로 채우고, 땅 위의 모든 지푸라기를 펜으로 삼으며, 온 하늘을 양피지로 만들고, 모든 사람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해도, 저 위 하나님의 사랑을 쓰려면,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육신이 되시고 제 죄를 취하셨는지 말입니다. 저 위 하나님의 사랑을 쓰려면, 바다가 다 말라 버리리라. 또 두루마리가 그 모든 것을 담는다 해도, 하늘에서 하늘까지 펼친다 해도.
그리고 이 구원의 상속자들에게 확실한 소망을 주시려고, 그분은 마지막 날들에 우리를 일으키시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아멘! 기도합시다. 여러분은 그분의 사랑을 저버리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신 이 위대한 분, 그분의 복된 존재를 외면해 왔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인생에서 여기까지 이르러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있고, 그분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계속 살고 싶습니까? 사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의롭게 하시려고 그분을 일으키셨음을 믿는다면, 그 근거 위에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지금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오늘 아침 회개하고 싶은 뉘우치는 혼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저도 기억해 주십시오, 설교자 형제님. 저도 실패했습니다. 교회에는 가입했지만,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결코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 영으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제게 그것을 주시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또 다른 분 계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 그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젊은이.
이제 잠시만요. 바다를 먹물로 채우고, 하늘을 양피지로 만들며, 땅 위의 모든 줄기를 펜으로 삼고, 모든 사람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해도, 저 위 하나님의 사랑을 쓰려면, 바다가 다 말라 버리리라. 두루마리를 하늘에서 하늘까지 펼친다 해도, 그 모든 사랑을 담을 수 없으리라. 오,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풍성하고 순결한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고 강한가! 성도들과 천사들의 노래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이어지리라.
사랑하는 하나님, 참으로 이 가사를 쓴 시인은 주님을 믿는 다른 많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고 또 찾으려 했습니다. 성경에도 “또한 선포자가 지혜로우므로 많은 말들을 탐구하고 정리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 그것이 참으로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혀와 어휘를 갖기를 우리가 얼마나 바라는지요.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술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길 잃은 비참한 죄인들을 구원하셨는지, 온 영원이라 해도 그것을 다 드러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버지, 간구하오니, 오늘 아침 이 몇 마디 끊김 없는 말… 아니, 끊긴 말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이 말들을 통해 피난처로 도피해 온 누군가가 평안과 만족과 확고한 안위를 얻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약속에 그들의 혼이 닻을 내리게 하옵소서. 바로 여기 이 타버내클 안에서 여러 손이 올라갔습니다. 하나님, 지금 그들에게 그 굳건한 소망을 주옵소서. 영원한 반석에 닻을 내리게 하옵소서. 바다가 아무리 거세게 요동하고 그들의 작은 배가 아무리 솟구쳐도, 그들에게는 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들은 거기에 머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내 말들을 듣고” — 오늘 아침 제가 전하려고 애쓴 말씀입니다 — “나를 보내신 분, 여호와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오, 영원하신 분이여, 오늘 그들을 축복하옵소서. 여기 있는 사람 중 아직 그 피 아래 있지 않은 사람, 그 혼이 돌이킨 적이 없는 사람마다 지금 바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주님. 그 신비로운 일을 주님께서 행하옵소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께 맡겨졌습니다.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한 사람씩 그 골짜기로 내려갈 때, 저편 기슭에서 만나게 하옵소서. 다시는 “안녕”이라고 작별하지 않는 그곳에서 만나게 하옵소서. 언젠가 시간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그 강가에 서리라. 마지막 슬픔의 생각마저 사라졌을 때, 누군가 기다리며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리라.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되리라. 한 분… 누군가 기다리며, 내게 길을 보여 주시리라.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그 소망을 가진 분은 모두 이제 고개를 드시고 손을 드십시오. 나는…하지 않아도… 이제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메시지는 끝났습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셨…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여러분을 만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려 죽으셨네. 어둠을 내가…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침은 사라졌습니다… 그분이 나를 기다리시리니,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되리라. …때로 나는 버림받고 지쳐, 이제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친구들이 모두 떠난 것 같네. 그런 처지에 이르러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나를 위로하고… (그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 …내 마음을 기쁘게 하네,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이제 약속의 자녀들이여, 그분이 그렇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경배하십시오.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되리라.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려 죽으셨네. (이제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둠을 볼 때, 그분이 나를 기다리시리니,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되리라. 내가 그 강가에 이를 때… 여러분 모두 그곳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앞에는 커다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커다란 문입니다. 어느 날 여러분은 그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이 끝나기 전에, 어쩌면 오늘 아침 예배가 끝나기 전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그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심장이 뛸 때마다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둠을 볼 때, 그분이 거기서 기다리시리라.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나는 요르단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되리라.
오, 복되신 주님, 오늘 아침 우리의 마음이 가득 차 넘칩니다. 맥박이 멎어 가고 간호사가 머리 주위의 베개를 눌러 주는 때를 생각합니다. 더 이상 손을 움직일 수 없고, 손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습니다. 자녀들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저편의 그 큰 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분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그분께서 거기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곳을 홀로 건너지 않아도 됩니다. 강물의 물보라가 우리 얼굴에 튀기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구명정을 잡으시고 우리를 곧장 건너편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선지자 다윗은 “참으로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가 약속의 상속자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으며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받아들였기에, 오늘 우리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믿음의 인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인을 주셔서 우리 안의 믿음이 닻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여러 번 어두운 그늘을 지나고, 길에서 여러 번 비틀거리며 걸어도, 우리의 닻은 여전히 굳게 걸려 있습니다. 그 안에,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가 계속 인도하며 “계속 나아가라.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축복하옵소서.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언제나 신실하고 진실하게 지켜 주옵소서. 우리는 끝없는 시대를 통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땅 위에 설 때… 그분의 복되신 발은 아직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저기 공중에 서 계십니다. 모든 시대, 매 경점마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와 넷째와 다섯째와 여섯째와 일곱째에 이르기까지의 성도들과 구속받은 자들이 모두 그분의 의를 입고 거기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왕들의 왕, 주들의 주로 왕관을 씌워 드리며 그 구속의 이야기들을 노래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신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연약한 가슴이 떨릴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럽지 못한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구원받도록 죽으셨습니다. 아버지, 그것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오, 그분은 얼마나 실제적인 분이신지요. 어떻게든 두 팔로 그분을 꼭 안아 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그분께 기어가서 그 발을 만져 보고 싶지 않습니까? 예전에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제 집회에 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제 길이 그토록 어두워졌을 때에도 주님은 저를 사랑하셨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건너가기 전에 그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그저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거기 서 계신 것을 보면 저의 연약한 가슴이 떨릴 것입니다.
저는 종종 생각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아마 그때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음성을 제가 직접 듣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선하고 신실한 종아. 이제 너를 위해 예비된 주의 기쁨에 참여하라.” 언제부터 예비되었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은 때부터입니까?” 아닙니다, 형제님. “세상의 창건 때부터, 내가 너를 보고 미리 알며 영생에 이르도록 정했을 때부터이다.” 여러분은 그때 복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모두 부르셨다.” 맞습니까? “부르신 자들을 모두 의롭다 하셨다. 의롭다 하신 자들을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끝에 이미 그분과 함께 영화롭게 되어 우리의 보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물론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을 때 그분이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해 주셨으니까요.
“우리를 묶는 띠는 복되어라”를 부탁합니다, 거티 자매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리 마음을 묶는 띠 말입니다. 이제 이렇게 잠시 경배하며 교제를 나눈 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드신 분들은 경배할 곳을 찾으시고 그분을 섬기십시오. 이제 회중으로서 함께 그분을 경배합시다. 감리교,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성회, 장로교, 루터교, 가톨릭에 속한 여러분 모두 함께 노래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리 마음을 묶는 띠는 복되어라. 같은 생각을 품은 이들의 교제는, 저 하늘의 교제와 같네. 우리 아버지의 왕좌 앞에서, 우리는 뜨거운 기도를 쏟아 놓네. 우리의 두려움, 소망, 뜻도 하나이며, 우리의 위로와 염려도 하나라.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마음속에 아픔이 있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감리교인, 침례교인, 또 다른 모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마음이 좋지 않습니까? 다시 노래하는 동안 몸을 돌려 서로 악수합시다. …앞에서… 악수하십시오. 뒤에 계신 분이나 앞에 계신 분, 양옆에 계신 분과 말입니다.) …왕좌, 우리는 뜨거운 기도를 쏟아 놓네. 우리의 위로와 염려. 이제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까? …있네… 예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아시겠죠, 우리 마음이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아픔이,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한 분 안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여기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위대한 날에 만날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오늘 아침 우리의 경배를 받아 주시고, 이 말씀을 믿는 이들의 마음에 심어 주옵소서. 그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오늘은 올라갔다가 내일은 내려가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말씀들이 믿는 사람마다 그 마음속에 안식할 자리를 찾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맹세로 서약하셨으며, 변경할 수 없는 두 가지로 확증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불변성은 곧 그분이 거짓말하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상속자들이 굳건하고 확실한 이 강한 소망, 혼 안의 닻을 갖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맹세로 서약하시며 우리에게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는 그분이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 위에 더해진 그분의 맹세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고 영생을 주시겠다는 맹세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뒤에는, 그분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우리를 아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로 입양하시려고 우리를 미리 예정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그분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셨을 때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할 수 없으므로 그분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신 자들을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말씀은 이미 선포되었고, 우리는 그저 영광을 향해 가는 길에서 기뻐하며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옵소서.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작은 습관들과 그런 것들을 오늘 아침 확실하고 굳건한 혼의 닻인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떨쳐 버리게 하옵소서. 그들의 습관과 사소한 성질과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며칠 뒤에 살펴볼 말씀의 뒷부분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며,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짓지 않으셨느니라.” 그분이 시험받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그분은 유혹에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도록 유혹받지만 결코 그 유혹에 따르지는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영원히 우리가 갈 곳을 붙드는 닻이며, 우리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거룩하게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픈 사람이 많고…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오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로 지나갈 때… 그 귀한 말씀이 선포되었고, 성경이 증언하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가까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대하신 성령께서 말씀을 증언하시려고 여기 서 계십니다. 아버지, 오늘 아침 그들이 약속의 말씀 아래로 지나갈 때, 이곳을 떠나 건강해지게 하옵소서. 보조기를 벗고, 의자와 누워 있던 간이침대를 떠나 온전히 낫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다음에 올 수 있는 예배에, 아니면 자기 교회에 돌아가서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보여 주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일을 섬기오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는… 오늘 아침 7장을 다루겠다고 약속했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한 것을 사과해야겠습니다. 이제 기도 줄을 위해 시간을 조금 남겨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저녁에 7장을 살펴보면서 이 멜기세덱이 누구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고 싶은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오, 바로 그분에 이르기까지 들어가 그분이 정확히 누구신지 알아볼 것입니다. 성경이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 줍니다. 아시겠죠. 스코필드는 “그것은 제사장직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어떻게 제사장직일 수 있습니까? 아시겠죠, 제사장직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격체였습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는 성령이 하나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인칭대명사입니다. 인격체라는 말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인격체입니다. 분명합니다! 멜기세덱은 사람, 곧 날들의 시작도 햇수의 끝도 없는 사람이십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혈통도 없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오늘 저녁 말씀을 통해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겠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십니까? “오, 주의 말씀은 내 길과 내 발에 등불이니이다.” 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켄터키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새로 오신 분들이나 가톨릭 신자나 다른 분들 가운데 성경의 이 깊고 풍성한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저는 신유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맨발의 어린 소녀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 소녀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어린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기는 마비 증세가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자매님, 아기가 어디가 아픕니까?”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몸이 자꾸 움찔거려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비라는 말을,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가엾은 소녀는 아마 평생 신발 한 켤레 신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으며,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믿습니까?” 강철처럼 회색빛을 띤 그 작은 눈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녀가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물론 믿어요.” 저는 그 어린 아기를 안았습니다.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멎었고, 이어 나갔습니다.
다음 날 저는 산비탈에서 다람쥐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고, 낡은 톱이 윙윙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며시 내려갔습니다. 다람쥐 사냥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앉아서 담배를 씹고 침을 뱉는데, 낙엽이 이렇게 날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전날 저녁 집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아기를 봤어. 오늘 아침 그 집에 들렀는데,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몸을 움찔거리지 않더군.” 아시겠죠. “정말이었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침을… 그들이 나무에 소총들을 기대 놓고 있었으므로, 제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에도 집안끼리의 원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형제님들.”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그 덩치 큰 사람이 입에 이렇게 담배를 씹고 있었습니다. 한쪽 볼이 이렇게 크게 불거져 있었고, 목도 길고 굵었습니다. 크고 낡은 모자를 얼굴 위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다가 저를 보자 손을 올려 모자를 잡아 홱 벗더니 이렇게 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흉내를 내신다.] 씹던 담배를 삼키고는 “목사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존중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걸 삼키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다시 갔을 때, 저와 조금 논쟁하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유를 믿지 않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집회하던 곳은 켄터키주 화이트힐의 감리교회였습니다. 그 사람이 밖에 서 있었고 손에는 등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말씀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그가 말했습니다. “예! 저도 몸이 아픈 사람입니다만,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디에 사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 너머 빅 레녹스에 삽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집에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걸어서 갈 겁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집이 보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몹시 어둡군요. 구름이 끼었어요.” 그가 “예”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집에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이 등불을 비추며 갑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등불이 집까지 전부 비추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가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등불을 따라 걸어갈 겁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등불의 빛이 있고, 이쪽으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 빛이 계속 앞을 비출 것입니다. 계속 걸어가기만 하면 그 빛도 계속 함께 갈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병이나 질환, 혹은 혼을 위해 중보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서 걸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빛 가운데 한 걸음을 내디디십시오. 빛이 여러분과 함께하면 그 빛은 완전한 낮에 이르기까지 비출 것입니다. 계속 여러분 앞의 길을 비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옛 큰길을 걸어가며, 내가 가는 곳마다 전하리라. 주님, 내가 아는 다른 어떤 것보다, 옛 신앙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네. (이 옛 찬송을 들어 보셨습니까?) 옛 신앙의 그리스도인만 한 것은 없네,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이. 우리는 이 위대한 옛 큰길을 걸으며, 가는 곳마다 전하네. 주님, 내가 아는 다른 어떤 것보다, 옛 신앙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네. (저는 이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잘못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병자는 이미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맞습니까? 여기 있는 모든 죄인, 혹시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기회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죽은 뒤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그제야 받아들이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지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피를 넘어가 버리면 여러분은 그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거기서 여러분은 스스로를 심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그러니 여러분을 고칠 수 있는 무언가가 제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도 여러분을 고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것처럼 오늘 아침 제단으로 나와 치유자로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위대한 표적들을 보여 주십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 온갖 사람이 바로 여기 타버내클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든 안 되든, 우리는 어쨌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일들은 여러 번 환상을 통해 일어납니다.
약 3주 전, 아니면 4주 전 일요일에 여기 계셨던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한 남자가 여기 들어왔는데, 눈도 멀고 몸도 마비되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평형 신경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기 전에 환상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섞여 가는 남자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예순 살쯤 되는 아름다운 여자일 것이다. 그 여자가 울면서 와서 부탁할 것이다…” 제게… “돌아와서 자기 남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저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내려와 여기 있는 형제님 몇 분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십시오.” 우리가 제단으로 내려갔을 때 다른 분들이 기도한 뒤였습니다. 제가 기도하러 갔을 때, 저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아내가 일어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걸었을 때…
알고 보니 인디애나주 버즈아이에 계신 애커먼 의사 선생님이 그분을 여기로 보내셨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가톨릭 신자이고, 아들은 세인트 마인라드에 있는 수도원의 사제입니다. 애커먼 선생님은 저와 함께 사냥하는 친구인데, 그분이 그 남자를 여기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보낼 검은 머리의 남자를 제게 보여 주셨지만, 저는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분이 애커먼 선생님이셨습니까?” 그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고 나서 그 남자는…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저는 내려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일어나십시오.” 그는 눈도 멀었고 할 수도… 평형 신경의 기능이 없어져서 몸을 이렇게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지냈고, 메이요 병원을 비롯해 온갖 곳에 다녀 보았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일으켜 세웠을 뿐입니다. 그러자 그가 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아, 보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는 정교회 신자였고 아내는 장로교인이었습니다. 장로교인과 정교회 신자는 환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소리 지르며 서로 껴안고 있었습니다. 돌아와 휠체어를 챙긴 뒤 다른 사람들처럼 걸어서 나가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보고 말하는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그에게서 편지가… 아니,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 콕스 형제님이 그에게 다녀오신 것 같은데, “눈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있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신경 때문입니다. 시신경이 자라고 다시 살아나 제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저주가 걷힌 것입니다.
자연의 작용을 그대로 두고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으면, 자연은 충분히 제 기능을 합니다. 팔에 띠를 둘러 혈액순환을 막으면 결국 손이 죽게 됩니다. 왜냐하면… 원래는 그냥 두기만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자연의 작용을 방해한 것입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의사가 그것을 알아낼 방법도 없습니다. 의사가 의지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보고 느끼는 것 말입니다. 그것을 볼 수 없다면 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걷어 내시고, 마귀를 쫓아 보내십니다. 그러면 정상으로 돌아오고 건강해지기 시작합니다. 건강해집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리라.” 맞습니까? 그것은 교회에 주신 약속입니다. 무엇에 대한 권능의 약속…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완전하게 되어 그분이 하신 것처럼 그런 일들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이 휘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우리 안에는 “오, 그렇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어떤 느낌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치유를 받아들일 때… 휘장이 무엇을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셨느냐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언제나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사라를 보십시오. 태가 죽었고 아흔 살이었습니다.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쯤부터 남편과 함께 살았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상황을 완전히 바꾸셔서 그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불렀습니다. 친구여, 오늘 아침 여러분도 그렇게 들어오십시오.
오늘 저녁에는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 함께해 주셔서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녁에도 이 도시에 계신다면 오늘 저녁에 오셔서 멜기세덱에 관한 이 집회의 나머지 부분도 함께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자기 교회가 있다면, 자기 교회에 가십시오. 그곳이 여러분의 맡은 자리입니다. 어떤 교회에 속해 있다면 그곳에 가십시오. 여기는 우리가 모여 서로 교제하는 작은 타버내클일 뿐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티 자매님이 “위대한 의사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네”를 연주해 주시겠습니다. 여기 기도받으실 분 계십니까? 그리스도께 믿음을 두고 기도 줄에 서고 싶은 분은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그러면 교회 이쪽에 줄을 서 주십시오. 형제님, 좌석을 조금만 아래쪽으로 옮겨 주시겠습니까? 여기에 공간을 조금 만들어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제 노래하는 동안 기도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장로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어느 교파나 교회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신유를 믿으신다면 이 단상에서 저와 함께 서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함께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어떤 교파에 속하든, 교파가 없든, 어떤 분이든 함께해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이제 기도하러 오셔서 제 곁에 서 주시겠습니까? 네빌 형제님, 기름을 가지고 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