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조셉 형제님. 서 계신 채로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이 자리에 와서, 굶주린 마음으로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니 참으로 좋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특권으로 저희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제 성령께서 저희에게 맡겨 돌보게 하신 양 떼를 먹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밤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치유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말씀을 많이 전하고 목소리를 무리하게 써서 목이 조금 쉬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에 지극히 풍성한 역사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시카고 대전도 집회의 시작입니다. 또 올해에는 주님께서 이제까지 저희에게 행하신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을 행하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이 단상에 훌륭한 형제님들, 복음 사역자들이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쁩니다. 제가 부족한 솜씨로나마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애쓰는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와 계신 여러분 모두도 제게는 가장 귀한 분들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섬기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듯 저는 그리 뛰어난 설교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전하기를 좋아합니다. 시간을 많이 빼앗지 않고 곧바로 치유 예배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주에 예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자,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우리가 죽을 몸으로 사는 때는 지금뿐입니다. 한 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때도 지금뿐입니다. 이번 주에 그 일을 합시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이번 주에 온 마음을 다해 한 혼이라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힘쓰신다면, 천국에 기쁨의 종이 울릴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십시오. 그들이 이곳에 와서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치유받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말씀을 들음에 의해 옵니다. 오늘 오후에는 “우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를 설교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하나님을 믿으라”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이번 주에는 “벽에 쓰인 글”, “교회는 환난기 전에 떠날 것인가?”라는 메시지들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 등에 관한 내용인데,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번 주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테이프를 즐겨 들으시고 구입하시는 여러분, 제 젊은 동료들, 저의 좋은 친구이자 형제인 레오 머서 형제님과 진 고드 형제님이 여기 와 있습니다. 이분들이 테이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녹음해서 아주 적은 이윤만 붙여 판매합니다. 저와 한 형제이며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테이프에서 큰 이익을 얻지 않습니다. 그저 취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할 정도입니다. 조금... 잊어버렸는데... 제 생각에는 3달러 얼마일 겁니다. 얼마 전 여기서 어느 전도자의 테이프를 하나 주문했는데, 같은 테이프를 받는 데 9달러가 들었습니다. 저희 것은 그 돈이면 거의 세 개를 살 수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일요일에 아무것도 팔지 않습니다. 월요일이나 그 주의 다른 날에 구입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원하시는 분은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판매대가 마련될 겁니다, 아니... 레오 형제님, 판매대가 어디에 있습니까? 네, 책도 몇 권 가져왔답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건물 앞쪽에 마련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읽는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마가복음 11장입니다. 오늘 밤에는 20절부터 조금 읽고, 때때로 원래 번역을 다시 인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아침에 그들이 지나갈 때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 버린 것을 보고 베드로가 기억이 나서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며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말하는 그것들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그가 무엇을 말하든지 다 받으리라. 이제 마지막 절을 원래 번역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에게 이르기를,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자기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제 주제는 “하나님을 믿으라”입니다. 하나님의 복된 말씀은 믿음이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아니, 말씀을 들음에 의해 온다고 가르칩니다. 또 믿음은 체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믿음은... 이전에 한 체험이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데도, 많은 사람이 믿음이 무엇인지 그 참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실체입니다. 믿음은 허구가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며, 증거입니다... 증거가 있으려면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바라던 것들의 증거입니다. 아직 받지 못한 것들의 증거이지만, 여러분에게는 그것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이 있습니다. 그것은 증거이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자신을 억지로 몰아붙여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집회에서 그런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믿으려고 애쓰면서 스스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믿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저 허공을 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없이 평온하고 확고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능히 지키시고, 하시겠다고 하신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마음에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반드시 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혹은 자신들의 손이... 아니, 어떤 전도자가 반드시 손을 얹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작용할 접점 등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되고 순수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 집회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치유하는 데 쓰라고 제게 조금 특별한 무언가를 주셨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누군가를 치유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치유는 오직 믿음으로 옵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 곧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 믿음으로 옵니다. 이런 경우와 아주 비슷합니다. 제가 굶주리고 있고, 빵 한 덩어리면 제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어느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굶주리는 저를 보시고 “브래넘 형제님, 배가 고프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저는 “빵을 좀 먹지 못하면 곧 죽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러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25센트를 주면서 “브래넘 형제님, 이 돈이면 빵 한 덩어리를 살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손을 내밀어 그 25센트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25센트를 받았다고 상상만 한다면, 저는 자신을 속이는 것뿐입니다. 그 25센트를 실제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25센트가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25센트가 빵 한 덩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빵 한 덩어리를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 25센트를 받고 나면, 저는 빵 한 덩어리를 손에 들고 있을 때나 다름없이 그 25센트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25센트를 주실 때, 빵 한 덩어리를 주셨을 때와 똑같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빵 한 덩어리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고, 살 수 있는 빵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지금은 치유받지 못했더라도 하나님께 치유의 권능이 풍성하며, 그 치유를 제게 가져다줄 믿음이 제게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믿음만으로도, 여러분이 바로 그 순간 온전히 나아 건강해졌을 때와 똑같이 행복합니다. 이미 그것을 소유했으므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실체이지,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25센트를 가지고 빵 한 덩어리를 사려면 몇 마일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걷는 동안 점점 더 기운이 빠지겠지만, 저는 내내 기뻐합니다.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빵을 얻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덕을 넘고, 덤불을 헤치며 내려가고, 강을 건너고, 나무 그루터기를 넘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위에 경련까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기뻐합니다. 상태는 더 나빠지고, 더 약해지고, 더 배가 고파져도 저는 기뻐합니다. 그 빵을 살 수 있는 돈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지키신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참되게 하나님을 바라보면, 아무리 병이 심해지고 아무리 고통받더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프든, 기도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 믿음을 받았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기 좋아하는 옛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겁쟁이는 만 번 죽지만,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겁쟁이는 늘 겁을 먹습니다. 사소한 일만 생겨도 도망칩니다. 사냥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늘 놀라서 겁에 질려 있는 것입니다. 작은 그림자만 보아도 두려워합니다.
와서 믿음이 있다고 공언하면서도, 마귀가 앞에 세워 놓는 하찮은 허수아비 하나하나에 겁을 먹는 사람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아,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어. 어제보다 몸이 더 안 좋은 것 같아” 하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참된 믿음이 마음속에 있다면, 그 모든 아픔과 쑤심과 통증과 그림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믿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며, 아무것도 여러분에게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여러분이 구한 것을 능히 이루신다는 복된 확신입니다. 바로 거기에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이기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잘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이 산이 곧바로 바다에 던져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산이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기를 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네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아, 여러분. 산에 가서 “산아, 들려서 바다에 던져져라”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보더니 “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 내게 믿음이 없나 봐”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산아, 들려서 바다에 던져져라” 하고 말할 때, 여러분의 목적이 옳고 동기가 올바르다면, 그 산에서 조금도 달라진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했을 때 작은 모래알 하나만 움직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그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손을 들고 “저는 주님을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낫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고 말할 때, 몸에서는 이렇다고 가리킬 만한 변화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깊은 속에서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저 상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누가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성경에서 예로 들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한때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소집되었습니다. 전쟁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쪽이 이겼다가 다음에는 저쪽이 이기곤 했습니다. 한쪽이 이기면 그다음에는 다른 쪽이 이겼고, 여러 해 동안 서로에게 조공과 십일조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반대편 군대가 다시 일어나 이겼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전투에 소집되었을 때, 골리앗이라는 엄청나게 큰 선사 시대의 거인이 있었습니다. 손가락 길이가 14인치나 되었고, 베 짜는 바늘만큼 긴 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피트나 되는... 아, 이스라엘 사람 누구와 나란히 세워 놓아도, 상대편의 어느 사람과 나란히 세워 놓아도 그는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에 도전하며 제안했습니다. “너희 군대에서 한 사람을 뽑아 나와 싸우러 오게 하라. 내가 그를 이기면 너희가 우리를 섬기고, 그가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를 섬기겠다. 그러면 더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귀는 자기가 우세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이런 짓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이 큰 도전에 조금이라도 맞설 수 있는 체격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잘 훈련된 전사였습니다. 또 군대의 어느 사람보다도 어깨 위로 머리 하나만큼 더 컸습니다. 덩치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운동선수처럼 생긴 사람이었고, 잘 훈련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도전해야 했다면, 아니 그 도전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바로 사울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호박처럼 누렇게 질린 겁쟁이였습니다. 나가서 그 블레셋 사람과 창을 겨루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생 갑옷을 입어 본 적도 없는, 자그마하고 혈색 좋은 소년이 왔습니다. 양가죽 옷을 입은 어린 양치기였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형에게 보내는 건포도 파이를 가지고 그곳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거인이 또다시 도전장을 내민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 자그마하고 혈색 좋은 소년은 창을 다루는 훈련도, 군대와 싸우는 방법도 전혀 몰랐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맞서 싸우는 것을 보았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과 이전에 나누었던 그 생생한 체험이 그의 안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여러분이 옳은지 아닌지 알려면 자신의 목적을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보십시오. 우리가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은지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근거로 그분을 믿고,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 옳은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라고 약속하셨는지 보십시오.
다윗은 그때까지 군대라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았습니다. 저 들판의 푸른 초장 곁에서, 잔잔한 물가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몸소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목격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순수한 믿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런데 사울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 많은 교인과 같았습니다. 신학을 잘 배운 신학박사들이지만, 실제로 도전받는 상황에서 믿음을 발휘한 경험은 없습니다. 오늘날 강단에도 학교에도 훌륭하게 훈련받은 사역자들, 뛰어난 박사 등 잘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전에 나서는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참되신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하시는 것을 본 체험은 없습니다. 배운 것만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울은 오늘날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아니, 오늘날 교회가 사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가서 마귀와 그 악에 맞서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위대한 학교 선생, 헬라어 단어를 다 알고 성경의 위대한 교리들을 다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사울이 그랬듯이 반대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같이 작고 혈색 좋은 아이는 저 사람을 상대할 수 없다. 저 사람은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전사이고, 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울은 “이리 오너라. 내가 배운 신학을 좀 주마”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다윗에게 자기 갑옷을 입히고 자기 학위를 걸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예복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것을 벗겨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기를 원합니다. 어떤 거창한 신학교의 가르침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성령으로 채우시고 죄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주셨을 때 우리가 얻은 체험을 가지고 가기를 원합니다. 그런 믿음, 체험한 사람의 믿음을 가지고 갑시다. 오늘날 그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무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길모퉁이의 작고 보잘것없는 선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웅장한 대성당과 예배당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종이에 자기 이름조차 겨우 쓸 줄 아는 평범한 가정주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성경에서 한 구절도 읽지 못하는 평범한 소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체험이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걸고 마귀에게 결판을 내자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남자들과 여자들이 도전하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습니다. 집회에 앉아서 사람들이 “이분은 아무개 박사님입니다. 한동안 편찮으셨습니다” 하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앉아 있던 평범한 흑인 여성이, 어쩌면 알파벳조차 모르는 그 여성이 암에서 치유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네가 마음속으로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면, 네가 말하는 것을 받으리라.”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만난 뒤였습니다. 그는 일흔다섯 살이 된 뒤, 갈대아 땅 우르라는 도시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에야 아브라함은 없는 것들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뒤 그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어머니에게 온갖 교육을 받고, 이집트의 모든 지혜를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잊게 하려고 그를 광야 저편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겁이 많았으며, 자신이 육체적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적으로, 이 큰 백성의 군대를 이끌 만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떨기나무, 그 불, 타서 꺼진 그 불을 접한 뒤에야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5분이 지났을 때, 그는 80년 동안 교육받았을 때보다 그 일을 맡을 자격을 더 잘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남자와 여자,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학교를 갖추고 우리 자신을 세련되게 다듬는 일이 그토록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저는 투박하고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이 말을 자주 했지만,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신학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무릎학으로 압니다.” 투박하게 들려도 진실입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 믿을 때 그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빌립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가 가서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던 나다나엘을 찾아 말했습니다. “나다나엘, 와서 우리가 찾은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그 이스라엘 사람은 정통 신앙을 매우 굳게 지키는 사람이었고, 온갖 학문과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런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빌립에게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이전의 싸움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와서 보게”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도 그것입니다. “와서 잠시 앉아 보십시오.” 여러분 안에 생명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있을 때 그 생명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가 오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빌립은 이렇게 일러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걸세. 자네가 이 선지자 앞에 서면... 나는 자네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한번 확신이 들면 진리를 알게 될 사람이라는 것도 아네. 메시아가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성경이 말씀했는지 자네도 알고 있으니, 분명히 확신하게 될 걸세.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와 주게. 자네가 그분 앞에 서면 그분께서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신다 해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걸세. 며칠 전에 내가 보았네.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불리던 한 나이 든 어부가 그분 앞에 앉았는데, 그분께서 ‘네 이름은 시몬이다.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이며,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네. 그러니 그분께서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신다 해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걸세.” 그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체험이 있었습니다. 체험이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 계신 곳 가까이 다가오자, 그분께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는 틀림없이 ‘빌립이 말한 그대로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 고지식한 정통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권능을 보고 무릎을 꿇어 이 불멸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위대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본 뒤에야 그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직접 보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메시아께서 오실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은 메시아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체험을 한 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안에 믿음이 솟아났습니다.
삼손이 한 번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 몸에 밀려드는 것을 느끼고 사자를 붙잡아 죽인 뒤에, 노새의 턱뼈를 들고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그토록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종이 한때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 곰이 와서 어린양 한 마리를 물고 갔습니다. 저는 뒤쫓아 가서 그 곰을 이겼습니다. 또 사자가 와서 어린 염소 한 마리를 물고 갔기에 물맷돌로 쓰러뜨렸습니다. 그 사자가 일어나 저를 덮치자, 저는 수염을 붙잡고 혼자 힘으로 죽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사자의 발톱과 곰에게서 저를 구출하신 하나님께서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에게서는 얼마나 더 잘 구출하시겠습니까?” 그에게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한 체험이었습니다.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알았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그 여인은 의사들에게 돈을 다 썼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이 무리를 헤치고 기어 들어갈 때, 그 작은 가슴속에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저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그 거룩한 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혈루증에서 치유받으리라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렇게 바랐습니다. 그곳까지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댔을 때, 그 바람이 채워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몸을 돌리셨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듣기만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그분께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자, 그분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기운이 빠졌다. 누군가 내게 손을 대었다.” 그 여인은 무리 뒤쪽에 서서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분의 크고 빛나는 푸른 눈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천 명 가운데 서 있는 그 여인을 찾아냈고, 그분께서 “내게 손을 댄 사람이 바로 너로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엎드려 그분이 누구신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우물가의 그 여자도 우리가 흔히 나쁜 여자라 부르는, 평판이 좋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성경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예루살렘에서 경배해야 하는지 산에서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해 그분과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메시아이신 분이 오실 것이며 그분께서 어떤 일들을 하실 것인지 잘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할 때 그 여자는 죄 있는 매춘부로 그곳에 서서 주님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여자를 보시며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이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때 사람들은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지자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것이 그분의 표적이 될 줄을 저희가 압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분께서 그런 방식으로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는 체험을 한 뒤에야, 그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며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한 뒤였습니다.
오순절 날, 유대인 150명이 다락방에서 문을 닫고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증언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의 위협 때문에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들에게 체험을 주시고, 날름거리는 불의 혀들이 그들 위에 내려앉은 뒤에야, 그들은 거리로 뛰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에 거하는 너희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라”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는 체험을 한 뒤에야 그는 두려움 없이 증언하고,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의 피로 그 증언에 인칠 수 있었습니다. 체험을 한 뒤에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산을 믿음으로 옮기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그 일을 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자신의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권능으로 하실 수 있었던 온갖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나무를 지나시다가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어느 계절에도 아무도 네게서 먹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튿날 그곳을 지나가던 제자들은 그분의 권능이 작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으로 존재하게도 하시고 존재하지 않게도 하시는 권능을 가지셨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너희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하는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오늘 밤 이곳의 여러분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 건물 안에는 제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 이곳에서 예전과 똑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분께서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체험하고도 이 집회가 끝난 뒤에는 죄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떠나시기 전에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런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신다면, 오늘 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는데도 여러분이 여전히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이곳을 떠날 경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불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그분의 권능으로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구백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분께서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그 기적을 행하셨을 때와 똑같이 살아 계십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원자 시대가 닥치거나 여러분의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 그분 앞에 설 때, 여러분이 변명할 수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시대에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빛이 있기 전에도 주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늘이 있기 전에도 주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모든 빛이 다하고 별들이 더는 빛나지 않으며 태양계가 사라진 뒤에도,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작고 보잘것없는 저희 인간들이 머리로 이해하려 하거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의심하게 하려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갑니까? 분명히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주님께서는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는 사람을 부지런히 찾으십니다. 약속하신 위대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밤 그렇게 해 주옵소서. 주님은 주권자이시며, 저희가 믿지 않을 때조차 주님의 은혜는 저희의 불신을 넘어서십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밤 저희의 죄와 부족함, 모든 의심과 불신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주님의 크신 주권의 권능을 한 번 더 나타내 주옵소서. 그날에 사람들이 아무런 반대의 말도 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지금 그들은 믿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행하셨듯이, 이방인 시대가 저물어 가는 오늘 밤에도 그렇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거만하고 무관심하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 마음이 교만한 저희 이방인들이 주님의 말씀에 눈길만 돌려도, 주님, 저희가 누구이며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저희에게 은혜의 날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제 주님, 주님의 말씀을 이루시고 오늘 밤 이 작은 교회에 오셔서, 땅에 계셨을 때 나타내셨던 그 권능을 똑같이 나타내 주옵소서. 그러면 저희는 겸손히 고개를 숙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지금은 앞으로 나오시라는 초청을 하지 않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겠습니다. 단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제 마음에 심어 주신 믿음대로, 오늘 밤 그분께서 이곳에 나타나셔서 예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십시오. 나태하게 있지 말고 준비하십시오. 요즘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너무 많이 보아서 그것이 예사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해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쉬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관해 읽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바닷가에 가 보고 싶어.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짭짤한 바닷물 냄새를 맡고 싶어. 갈매기들이 울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싶어. 커다란 흰 물결이 솟아올라 기뻐 춤추는 모습도 보고 싶고, 성이 나서 해안을 향해 뛰어드는 모습도 보고 싶어. 하나님께서 달을 만드셔서 바다를 지켜보게 하시고, 바다가 넘지 못할 경계를 정하셨다는 것도 알고 싶어. 아, 바다가 보여 주는 모든 것을 보고 싶어.” 오늘 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모든 것을 얼마나 기꺼이, 또 간절히 보고 싶어 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가는 길에 바다에서 돌아오는 늙은 선원을 만났습니다. 선원이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오?” 그는 말했습니다. “바다가 보여 주는 모든 것을 보러 가고 있습니다. 파도와 짭짤한 물, 그리고 그 짠물에서 공중으로 터져 오르는 커다란 흰 물거품을 보러 갑니다.” 늙은 선원이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별로 볼 만한 게 없소. 나는 어릴 때부터 그 파도를 타고 다녔소. 소금 냄새를 하도 맡아서 내가 소금에 절여진 것 같을 지경이오.” 그는 또 말했습니다. “갈매기 우는 소리도 하도 들어서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소. 별로 볼 만한 게 없소.”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 사람은 바다를 너무 많이 보아서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 오순절 교인들과 순복음 교인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너무 많이 보아서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그 참된 권능과 영광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백성으로 불러냄을 받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앉아 그분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말입니다.
주 예수님, 나머지는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주님, 말씀에 물을 주옵소서. 그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게 하옵소서. 그 말씀이 이루려는 목적을 이루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제 마음의 목적을 아시며, 저도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 무엇을 뜻하셨는지 압니다. 이제 주님, 그 말씀을 확증해 주옵소서. 그러면 온전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빌리, 빌리 폴이 어디 있습니까? 진 고드도 잠깐 이리로 와 주었으면 합니다. 빌리는 여기 아래에 서고, 진은 이쪽에 서서 기도받은 분들이 자리를 옮기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죄송합니다. 제가... 뭐라고요...?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과 이야기한다.] 1번부터 100번까지요? 좋습니다. 뭐라고요? 기도 카드 A, 1번부터 100번까지입니다.
기도 카드는 이렇게 합니다. 카드를 가져와 사람들 앞에서 모두 섞은 다음, 원하는 분이면 누구에게나 한 장씩 드립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런 다음 1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50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30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 밤 다른 번호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번호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1번 카드를 받고, 옆자리에 앉은 분은 50번을 받고, 저 뒤에 있는 분은 75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눠 드린 다음, 어느 번호부터인가 부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분, 저쪽에서 한 분, 뒤에서 한 분, 위층에서 한 분이 일어나 내려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접점을 마련하여 영께서 한 사람을 따로 대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되면, 복되신 우리 구주께서 하셨듯 제가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그분께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중 가운데서도...
성경, 곧 신약의 히브리서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분명히 그분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분을 접촉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 설명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그분께 손을 대었을 때, 그분께서는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말씀하시고, 그 여자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 그분께서 나다나엘에게 기적을 행하시자, 나다나엘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도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나자,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성경은 요한복음 14장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자신을 똑같이 나타내십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그분은 “아버지께서 먼저 무엇을 할지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분의 임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 안에 있는 약속대로 자신을 나타내시는데도 여러분이 의심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불신입니다.
오늘 밤은 첫날 밤이니 1번부터 시작합시다.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이 누구십니까? 이 건물 어딘가에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카드 1번이요? [테이프 공백.] 자... 오십시오, 부인. 여기 이 부인입니다. 모두 참으로 경건한 마음을 가져 주십시오. 그리고 회중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 줄에서든 집회에 오신 분 중에서든 적어도 세 분을 대할 때까지는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시면 저도 책임을 다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책임을 다하신 것입니다. 나머지는 오로지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제가 아는 한 이 땅에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다면 누가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경건한 마음으로 믿읍시다. 제가 아는 한 이 부인은...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지요? 좋습니다. 지금 여기 성경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저와 인종이 다른 여자가 여기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수님께서 자신과 인종이 다른 여자를 만나 “마실 물을 내게 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그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고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부도덕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여자가 곧바로 말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선생님이 선지자이심을 믿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행하실 줄을 저희가 압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그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달려가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알렸습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야 합니다.
부인, 저는 부인을 알지 못하고, 제가 아는 한 평생 부인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여기서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부인이 그분께 무엇을 구하는지 제게 알게 해 주신다면, 사마리아 여자가 “그 표적을 보고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압니다” 하고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다고요? 회중 여러분도 믿으시겠습니까? 이 부인과 저 둘 다 진실하다는 것을 아시도록, 여기 성경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이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맞습니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그분께서 행하신다면... 행하실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하시리라고 믿습니다. 행하시리라고 믿지만, 만일 그분께서 행하셔서 이 한 사례로 분명히 입증된다면, 그다음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집회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런 집회에 한 번도 오지 않으셨습니까? 제 집회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손을 드신 그분들 가운데, 이것이 성경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라는 것을 아는 분들은 다시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것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행하신다면, 이 부인도 여러분도 이것이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 능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빌립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바알세붑, 마귀다. 그는 강신술사이며 점쟁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행하실 때,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는 교회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 이방 민족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여기 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을 지나쳐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미래의 일로 돌려놓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죽을 때까지 그가 엘리야라는 것을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엘리사가 떠날 때까지 그가 누구인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이 누구인지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조차 그가 바로 그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왜 성경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는 이미 왔지만 너희가 그를 알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성 패트릭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가 자기네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것은 제가 가톨릭 신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 교회에 항거했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그랬습니다. 잔 다르크는 어떻습니까? 환상 등을 보던 영적인 여인이었는데, 가톨릭교회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러고는 수백 년 뒤에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지는 것으로 참회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성인입니다. 그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의 복된 임재가 그냥 지나가게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바라보고 있는데... 마귀는 여러분의 눈길을 미래로 돌립니다. 그것이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부인, 제가 부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안다면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적인 은사로, 그분께서 허락하셔서 저희 같은 자격 없는 이방인들이 누리는 이 은사로, 부인이 그분께 무엇을 구하는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조금 전에 받아들이겠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영, 곧 하나님의 영원한 영을 통하는 것 외에는 부인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셨듯이 부인께 말을 걸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설교를 했습니다. 보통은 집회 책임자가 설교합니다. 그러면 저는 기름부음 가운데 들어오기만 하면 되므로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더 신속하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사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같은 영이시지만 두 가지 다른 나타나심입니다. 제 앞에 서 있는 이 여자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극심한 신경과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피가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출혈이 있는데, 몸 안에서 나는 출혈입니다. 맞습니다.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가셨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입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부인이 판단하십시오.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 여자에게 말해 주실 수 있었던 바로 그분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부인께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녹음을 듣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을 믿으십니까? 구하신 것을 받으십니까?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이십니까? 무엇을 구하셨든, 지금 그것을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마음속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십시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 여자 위에 하나님의 평안이 머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부인 위에 어둠의 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부인의 믿음이 부인을 치유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부인 자신의 믿음입니다. 이제 기뻐하며 가시고 행복하십시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모르므로, 누군가 제게 계시해 주지 않는 한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서 계신지 알아내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지금 임재하시는 그분입니다. 선생님도 지금 그분께서 계심을 느끼고 계십니다. 위대한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확증하신다면, 저희가 믿는 것처럼 그분께서 행하실 것을 믿으신다면, 구하시는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남자이며, 선생님보다 젊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혼인으로 맺어진 친척, 사위입니다. 그분은 이곳에 있지도 않습니다. 이 카운티에도, 이 도시에도, 이 주에도 없습니다. 큰 호수가 많은 주, 미시간주에 있습니다. 병원에 있으며, 정신적인 장애로 고생하고 관절염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도합시다.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새벽별이시며 샤론의 장미이시고 골짜기의 백합이신 하나님,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분에게 손을 얹으며 기도하오니, 이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선생님,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구하시는 것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부인을 알 수도 없고, 상태가 어떤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부인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분께서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계시해 주신다면... 예를 들어 부인에게 치유가 필요한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손을 얹고 “마귀들아, 떠나가라. 병아, 떠나가라” 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부인, 나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인은 그것을 의심할 만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계시해 주신다면, 부인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압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부인은 지쳐 계셔서 몹시 신경이 예민합니다. 그리고...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니, 통증입니다. 가슴 전체에 통증이 있습니다. 또 병원에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원인은 이것입니다. 얼마 전에 담낭 문제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곳에 계시며, 포도나무들을 통해... 아니, 말하자면 가지들을 통해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사랑이 부인에게 향하여 구하시는 것을 주려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전능하신 주 하나님, 이 여자에게 주님의 복을 나타내 주시고, 이 여자의 믿음대로 주시며 갚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자매님,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으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선생님과 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제가 아는 한 평생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다. 지금 느끼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 곁에 서 있기 때문에 얻는 느낌이 아닙니다. 그분의 임재입니다. 회중도 알 수 있도록, 주위에서 온화하고 겸손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주님의 영을 느끼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 남자에게는 물이나 바다 건너와 관련된 일이 있습니다. 또 그 곁에 여자가 보입니다. 환상 가운데 보이는데, 여자입니다. 작은 빨간 모자를 쓰고 바로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물이 보이고, 이 여자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친척입니다. 남자입니다. 이분의 남자 형제입니다. 그 남자는 가슴에 종양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지 않으면 죽을 만큼 병세가 위중합니다. 그는 이곳에 살지 않습니다. 바다 건너 노르웨이에 삽니다. 언덕과 둔덕이 아주 많은 나라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나님을 믿고 이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던져져라” 하고 말하십시오. 의심하지 말고 바로 지금 믿으신다면 무언가가 풀릴 것입니다. 이 남자는 바다 건너의 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있는 대상은 다른 사람입니다. 남자, 형제입니다. 그 형제는 병원에 있었는데, 의사들은 상태를 보고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흡 때문에 그런 것인지 심장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둘 다 아닙니다. 신경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온 마음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으신다면 구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아가씨, 저는 아가씨를 모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바로 여기 뒤에 앉아 있는 흑인 여자분, 그 빛이 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목의 질환이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말씀드리는지 아시도록 말씀드리면, 그분은 신앙에서 물러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무언가에 접촉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인은 그저 거기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대제사장께 접촉하셨습니다. 믿으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가씨는 얼음 위에서 넘어졌습니다. 바로 어제 이 얼음 위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왼팔과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머리를 빗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자,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가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낫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아가씨를 치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가씨? 방금 다른 여자분이 아가씨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아가씨는 기도하고 있고, 가정에 문제를 일으킬 지경인 끔찍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아가씨의 병은 간질입니다. 맞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약간 금발이나 붉은 머리처럼 보이는 아가씨, 저를 주님의 선지자 또는 종이라고 믿으십니까? 아가씨는 이 도시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이곳보다 더 동쪽에 있는 도시에서 왔습니다. 오하이오주에 있습니다.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이라는 곳입니다. 아가씨 곁에 앉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여자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얼굴에 무언가가 있는데, 치유받고 싶어 하는 피부 질환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영스타운이 아니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오셨습니다. 아가씨는 어머니를 방문하고 있었고, 두 분은 주님의 치유를 받으려고 이곳에 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믿으십시오. 믿으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 믿으십니까?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생님을 아십니다. 그분께서 선생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나 이전에 일어난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시면, 그분께서 기도를 들으셨거나 사정을 아신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선생님은 혹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 혹은 등에 있습니다. 또 이곳에 와 계신 아내를 위한 기도도 원하십니다. 아내분은 치과 치료인가 무엇인가 때문에 얼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눈에도 문제가 있고, 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한 가지 습관과 싸우고 있습니다. 담배도 끊고 싶으시지요? 끊으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구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으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입니다. 움직이면 방해가 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부인, 오십시오. 그 빈혈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이곳을 떠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요한 피를 주실 것입니다. 아멘. 선생님,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심장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셔서 온 힘을 다해 믿으십시오. 구하신 것을 받으실 것입니다. 부인, 오십시오. 신경과민 때문에 생겨 소화성 질환을 일으키는 그 위장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가셔서 음식을 드시고 믿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으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잠깐만요, 부인. 이제 계속 가십시오. 바로 여기 좌석 끝에 앉은 흑인 여자분입니다. 그분도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부인.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으시면 구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곁에 앉아 있는 관절염을 앓는 연세 드신 부인, 부인도 나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신 것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그분께서 저 의자 곁에 서셨을 때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치유하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셔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으십시오.
이 건물에 계신 모든 분들, 믿으십니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기 원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제가 받기 원합니다. 이제 믿습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바로 지금 일어서십시오. “복되신 성령께서 제게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 주 예수님의 임재 안에 앉아 있음을 믿습니다.” 죄인들 가운데 일어나 이렇게 말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이제 주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분의 권능이 역사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보고, 그분께서 이곳에 계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제 구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일어서십시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신조라는 형식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겼을지 모르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제 신조들을 내려놓고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받기 원합니다. 오늘 밤 이 건물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영께서 저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게 하기 원합니다.”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병들고 고통받는 여러분, 주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기 원하고 이제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이신다면, 지금이 바로 그분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계신 때입니다. 어쩌면 전에도 그분을 보았지만, 그 바닷물처럼 여러분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체험을 하셨고 그분께 치유받기 원하신다면, 일어서서 “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어디에 계시든 모두, 위층에 계신 분들도 일어나 지금 그분을 믿으십시오.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구하며 곁에 서 있는 분들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살아 계신 위대한 하나님께서는 단상 위에도, 회중 가운데도, 사방 어디에나 계시는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제 그분께 믿음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복되신 주님, 제 몸에 필요한 것을 위해 이제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면 손을 들어... [테이프 공백.]
오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태초에 계셨던 분, 욥에게 말씀하시며 “내가 세상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지를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던 분이시여, 바로 지금 이곳의 모든 마음을 넉넉한 믿음으로 채워 주옵소서. 그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게 하옵소서. 위대한 시인이 “말도 못 한 채 내몰리는 가축처럼 되지 말라”라고 했듯이, 먹이 앞으로 몰아가야 하고, 음식을 먹을 만큼 오래 붙잡아 두려고 목에 멍에를 씌워야 하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믿음과 부활의 권능으로 일어나, 오늘 밤 이 건물을 붙잡고 있는 의심의 영을 제가 내쫓을 때 지금 치유받고 구원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영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이제 사람들이 손을 들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구원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치유받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