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고, 우리가 경배하러 온 그분께 말씀드립시다. 복되신 주님, 오늘은 저희에게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주님께서 이날을 만드셨습니다. 저희가 기뻐하게 하옵소서. 성령을 통해 저희 마음에 넓게 부어 주신 그분의 은혜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는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저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저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므로 그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줄 압니다. 오늘 오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이것이 저희 마음과 생각을 붙드는 힘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마음에 복을 주옵소서. 여기 있는 모든 믿는 이에게 복을 주옵소서. 주님, 그분의 오심을 위해 저희를 준비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밖에 햇살이 참 아름답습니다. 한 주 내내 이런 날씨였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지만 주님은 저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정확히 아십니다. 저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정확히 아십니다. 우리 복되신 주님의 좋은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는 제게 여러모로 뜻깊었습니다. 이번 주에 대한 큰 추억 하나는 며칠 전 밤 성령께서 찾아오신 일일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감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 참으로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그런 일은 그 전에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우즈 형제님과 저, 그리고 그분의 형제가 강에 내려가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그 이야기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렇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 전날... 여기 제 친구 우즈 씨는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호와의 증인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분에게도 성령을 주시려 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분에게는 소아마비를 앓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사진에 찍힌 텍사스로 그분이 내려왔습니다. 저는 해외로 갔고 그분은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한 집회에서, 여기 이 건물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 성령께서 그분을 지목하여 부르시고 아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제는 어느 쪽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아이가 그토록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런데 우즈 씨와 그분의 가족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었기에... 그분의 형제가 내려왔습니다. 그분이 이 믿음을 받아들였다고 가족들이 그분을 집안에서 내쫓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한번은 그분의 형제가 만나러 내려왔는데, 제가 밖에서 잔디를 깎고 있을 때 마침 성령께서 바로 거기서 그 사람 속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안으로 들어와 그에게 밝혀 주셨고, 그러자 그가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내려가는 길에, 저희가 내려갔는데, 그가 “낚시하러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 나들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어떤 물고기를 누가 잡을지, 그것들이 어떠할지를 그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든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아주 낮게... 깊은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분은 “글쎄, 물고기를 잡기도 전에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꽤 대단한 것 같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며칠 뒤에, 회심한 그분의 형제 라일과 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저희는 켄터키호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라일, 우리가 올라가서 그 할머니에게 말씀드려야겠어.” 그 할머니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앤더슨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제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그들을 돌봐 주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 집안의 어린 소년들이었지만... “우리가 가서 그 할머니에게 구원받았다고 말씀드려야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저는 낚시하던 배 안에서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곧 작은 동물 하나가 부활할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보리라.’” 저는 ‘작은 동물이라고? 그게 어디서... 무슨 동물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튿날 저희는 다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피시를 좀 잡으려고 작은 만 안으로 배를 댔습니다. 여기 우즈 씨의 형제 라일이 이만한 작은 선피시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는 작은 브림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녀석이 낚싯바늘을 아주 깊이 삼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물고기를 붙잡고 그냥 당겼습니다. 커다란 바늘이 나오면서 위와 아가미까지 모두 뽑혀 나왔습니다. 그가 물고기를 물에 던졌습니다. 작은 물고기가 몇 번 파르르 떨었고,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은 녀석아, 너도 이제 끝이구나.” 작은 물고기는 물 위에 그렇게 떠 있었고, 바람에 밀려 작은 만 안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 삼십 분쯤 저는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골짜기를 타고 며칠 전 밤 여기 왔던 것 같은 큰 소리가 내려왔습니다. 햇살은 지금처럼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제가 있는 곳에 이르자 저는 일어나 작은 물고기를 불렀습니다. 무언가가 “그 죽은 물고기에게 말하여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물고기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생명을 돌려주셨다”라고 했습니다. 물고기는 옆으로 몸을 뒤집더니 있는 힘껏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나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소박하심을 보십시오.
마가복음 11장 24절과 25절에서 우리는 그분이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나 보여 주시려고 나무에 하나님의 그 큰 권능을 사용하신 것을 봅니다. 그분은 물고기에게도 그 권능을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주머니쥐 이야기며 여러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소박하시고 참으로 소박하게 일하시는데, 여러분은 마치 저 어딘가에 크고 고상한 송영이 있기라도 한 듯 그 위를 지나쳐 버리고 하나님을 놓칩니다. 소박한 가운데 그분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낮아져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시면,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움직이고 계십니다.
제가 그런 소리가 임하는 것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밤, 바로 이 강단에 서서 기도할 때 그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제가 이 도시를 떠나기 전에 전할 메시지는 하나 남았고, 그것은 오늘 밤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머지않아, 제 사역의 다음 단계가 바로 지금 다가오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사역을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제 사역이 처음 시작되어 제가 누군가에게 손을 얹던 때를 기억하시는 분이 여기 계십니까? 기억하십니까? 좋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제가 신실하면 사람들의 마음속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때 그 말씀이 선포된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셨습니까? 이제 또 다른 것이 바로 지금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층 더 클 것이며, 저는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그 모든 것은 여전히 함께 작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는 여러분의 주의를 몇 구절의 성경 말씀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주님이 복 주시기를 바라는 한 주제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 봉독을 위해 누가복음을 펴겠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읽어서... 문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아의 날들에 상황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니 노아가 방주로 들어간 날까지 그리하였고,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마찬가지로 롯의 날들에도 그와 같았으니 그들이... (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주목하십시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건축하였으나, 그날... 롯이 소돔에서 나간 바로 그날 불과 유황이 비같이 쏟아져, 불과 유황이...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이제 창세기로 가서, 그... 창세기에서, 제 생각에는 19장 22절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제 말씀을 택하고자 합니다. 너는 급히 거기로 도피하라. 네가 거기에 갈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이제 잠깐 기도하는 동안 주님께서 그분의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이제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주님의 이 말씀들을 취하셔서 오늘 오후 저희 눈과 마음에 빛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는 중대한 날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주님 자신을 저희에게 아주 뚜렷하게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늘 오후 제가 택한 주제는 “저리로 피하라, 속히 오라”입니다.
며칠 전 밤 저는 스푸트니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사흘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후로 미국 정부가... 아니, 육군이 스푸트니크 하나를 쏘아 올렸는데, 그것이 대략 백 분이나 이백 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고 있습니다. 지구 둘레를 선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일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눈을 뜨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할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므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교회가 갑옷을 단단히 갖춰 입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오늘입니다. 단 하루도 더 미루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여러분이 휴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 무엇이든 있다면, 지금 바로잡는 것이 좋습니다. 자리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는 복되신 주님이 속히 오시리라는 기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거든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느니라.” 하늘의 표적들, 무서운 광경들, 두려움으로 쇠약해지는 사람들의 마음, 바다의 울부짖음, 곧 해일, 큰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브래넘 형제님, 왜 계속 그런 것들을 그토록 강조하십니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는 바빌론과 벽에 쓰인 글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우리는 심판의 뜨거운 바람이 얼굴로 불어오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 끝에 이르렀습니다. 주 예수님의 오심 외에는 세상에 소망이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모든 군마다 아이젠하워를 한 사람씩 세워도 미국은 여전히 죄 가운데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큰 부흥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실상 부흥은 왔다가 지나갔는데 여러분이 몰랐던 것입니다. 늘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사탄은 계속 “이쪽에 더 큰 것이 있을 거야. 이쪽에 더 큰 것이 있을 거야” 하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여러분 곁을 지나가 버렸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이 땅에 왔을 때 의로운 사람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제자들도 “엘리사가 언제 옵니까?” 하고 묻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그가 이미 왔으나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부흥은 거의 끝났습니다. 더 큰 것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천국에서 가장 큰 것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세대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는 성령입니다. 더 이상 행해질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심판을 세상이 느끼고 있습니다. 신문들도... 저는 국방부에서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그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줄 수 있는 책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성경입니다. 여러분에게 할 일을 일러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곧 머리를 들고 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한 시간 안에 이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이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오후 러시아의 지도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보드카를 한 통 더 마시고 취해서, 온 세상을 궤도 밖으로 날려 보낼 단추를 누른다 한들 무엇이 막겠습니까? 그렇게 되어도 성경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번 주에 본 이 모든 일, 준비된 장소에서 이런 집회가 열리는데도 사람들이 무관심한 것, 이 모든 것이 그 일이 눈앞에 와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러분처럼 신실하게 낮마다 밤마다 모여 나오는 작은 무리가 보입니다. 무언가가 여러분을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경고를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어쩌면 교육을 많이 받고 말을 아주 훌륭하고 명료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위대한 신학자가 이 도시에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아마 도시 안의 모든 교회가 전적으로 협력할 것입니다. 훌륭한 연설가일 수도 있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러 갈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영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찾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 곧 참된 믿는 이는 성령의 나타나심, 자기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 제가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주님의 인도를 따라 인도에 가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막 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제가 신문에서 기사를 하나 오렸는데, 그것이 오늘 밤... 아니, 오늘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사무실에 있습니다. 제 좋은 친구 토미 니컬스가 그것을 갖고 있으며, 그가 그 기사를 게재할 것입니다. 그 기사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큰 나라를 뒤흔든 지진이 일어나기 이틀쯤 전이었습니다. 여기 우리 쪽에서도 보도했던 그 지진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소들과, 굴뚝이나 큰 담 안에 둥지와 잠자리를 마련했던 모든 작은 새들이... 인도에는 그냥 울타리를 친 곳이 그리 많지 않고 큰 돌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주워다가 담을 쌓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고 살던 작은 새들이 모두 날아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저녁이면 담 주변에 모여 있던 소들도 나가서 목초지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지진을 나타내는 물리적인 징후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학자들도 다가오는 이 지진을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 저는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지진이 오는 것을 아셨고, 그분의 작은 피조물들을 그 담 주변에서 옮겨 주셨습니다. 그 담들이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으므로, 거기 있었더라면 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새도 본능에 따라... 새에게는 혼이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와 소도 죽지 않으려고 본능에 따라 담에서 멀리 피할 수 있었다면, 이 큰 심판이 다가오는 지금 교회는 얼마나 더 자기가 늘 머물던 옛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까? 박해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해도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새들에게 경고하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에게도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많은 사람이 거대한 대성당들과 사회복음을 떠나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광신자라 부르든, 원하는 대로 무엇이라 부르든, 그들은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이 다가오는 심판... 오, 이렇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며,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의 죄를 머지않아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부활시켜 그들에게 사과하셔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은 것을 거둘 것이며, 조금이라도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진실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 끝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 여러분이 그곳에 있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곳에 있도록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시는 모든 사람을 그분이 마지막 날들에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 시작하시며 이렇게 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분이 하신 말씀 중 몇 가지를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노아의 날에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혼이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미국입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이혼율이 높습니다.
롯의 날들에 어떠했는지에 관해 그분이 하신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롯의 날들에 그들이 먹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건축하고 심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건축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때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백 년 전의 사람을 보십시오. 육천 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약 백 년 전까지는 별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쓴 다음 달리는 사람을 보내야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리 오래전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화, 전보, 텔레비전입니다. 얼마나 빨리 온 세상에 전달되는지, 이 분도 안 되어 소식이 온 땅을 휩쓸 수 있습니다. 이백 년 전에는 달리는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 차이를 보십시오. 삼백오십 년 전에 한 프랑스 과학자는 사람이 시속 사십 마일이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면 중력이 그를 땅에서 들어 올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시속 천구백 마일로 가고 있으며, 지금은 스푸트니크로 시속 만 팔천 마일로 지구를 돌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일 년도 되기 전에 그 안에 사람이 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발전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두 배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이 온갖 대단한 것들을 갖지 못하는지 의아해합니다. 왜 우리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지 말입니다. 저는 이 땅의 높은 자리에 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높은 자리에 들고 싶습니다.
주목하십시오. 태초에 두 소년, 카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왔을 때, 둘 다 교회를 세웠고 둘 다 제단을 쌓았으며 둘 다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둘 다 존경할 만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똑같은 생각을 품었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한 사람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근본 교리에 충실한 것만을 중히 여기신다면, 아벨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카인도 똑같이 받아들이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하신 분이 되셨을 것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아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아벨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이제 그 두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들이 자라 올라와 창세기에서 출애굽기까지 이어집니다. 거기에는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던 이스라엘이 있었습니다. 교파를 초월한 무리였습니다. 거기에는 그의 형제 모압이 있었고, 그에게는 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 형제들인 모압과 야곱은 둘 다 근본 교리로는 옳았습니다. 모압에게는 일곱 제단, 일곱 희생물, 일곱 수소와 일곱 숫양이 있었고,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래쪽 이스라엘의 장막에도 일곱 수소, 일곱 제단, 일곱 숫양이 있었습니다. 근본 교리로는 양쪽 다 옳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는... 모압에게는 아주 근본 교리에 충실하지만 딱딱하고 격식만 차리는 교회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압에게는 근본 교리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들 가운데 있는 초자연적인 표적, 불기둥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속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처럼 버림받은 백성을 저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여러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초자연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쪽 다 근본 교리로는 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습니다. 큰 표적들과 이적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이제 창세기에서 나온 이 두 가지가 자라서 어느 지점에 이르렀고, 둘 다 씨를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똑같은 모습으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처녀 탄생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습니다. 우리는 재림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진영 안에 함께 계심으로써 자신을 입증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분은 초자연적이시므로 초자연적일 수밖에 없고, 초자연적인 방식으로만 일하십니다. 아시겠죠? 오, 저는 그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제 카인의 계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카인은 종교적이었습니다. 아벨 못지않게 종교적이었습니다. 아벨 못지않게 진실했습니다. 아벨 못지않게 근본 교리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계시가 없었습니다. 줄곧 그것이 차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제 생각에는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인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어떤 이는 주께서 그 선지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러이러한 분이라고 하나이다.” 그분은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톨릭교회는 그 자리에서 그분이 베드로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개신교회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살펴보시면 양쪽 다 틀렸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 위에 세우신 것도 아니고, 베드로 위에 세우신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양쪽이 다 거쳐 온 어떤 신학교를 통해 그것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가 이것을 네게 계시하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네게 계시하셨느니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계시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언제나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벨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교회 그 자체가 바로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으로 여러분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영적 계시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카인의 후손들을 주목하십시오. 카인의 후손들은 똑똑한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카인의 후손들은 종교적이었고, 큰 교회, 큰 교회들이 있었고, 교육받은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학 분야에 종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속을 만들어 냈습니다. 집들을 지었습니다. 큰일을 이루는 위대한 건축자들이었습니다. 오늘을 보십시오. 저 다른 편이 얼마나 종교적인지 보십시오. 그러나 방주로 들어간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고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은... 지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반면, 하나님의 참된 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습니다. 기록된 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계시된 진리로 아는 것입니다. 아멘. 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면, 그 즉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으로 계시게 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딸입니다. “이 산에게 말하고 의심하지 말라. 그러면 그것이 옮겨지리라.” 이해하셨습니까? 지금이 그날입니다.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분은 백성을 심판을 피할 장소로 모아 들이고 계십니다.
이제 이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든 심판이 닥치기 전에 언제나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노아도, 그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천사가 나타났고, 선지자 에녹 등이 나타났습니다. 초자연적인 표적들이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녀들을 이끌어 내신 일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수백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요셉이 죽은 이후로 초자연적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이집트에 닥치기 직전,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이끌어 내실 때 메시지가 있었고, 선지자가 나타났으며, 천사들이 나타나고, 초자연적인 표적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나오기 전에 고센으로 인도되어 재앙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멸망이 닥치기 전에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붕에 있는 자는 내려오지 말고, 들에 있는 자는 자기 물건을 가지러 오지 말며, 도시에서 나가라.” 그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지금 그들은 이란 등지에 있는데, 돌아서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속이고 도둑질하고 그런 일을 하는 이 유대인들이 그 십사만 사천 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티투스가 성벽을 포위했을 때... 아니,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도망친, 저 아래 있는 참된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 큰 멸망을 겪었고, 예루살렘은 흩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해 아주 최근에 다시 모이기까지 함께 모이지 못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메시지 전달자가 올 때마다 교회는 언제나 그 전달자를 거부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확인해 보십시오. 어느 시대든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셨을 때 교회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마르틴 루터와 존 웨슬리를 보십시오. 여기 메노나이트 형제 여러분, 아미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메시지가 나오면 교회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라고 자라고 자라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 작은 남은 무리가 다시 씨의 형태로 자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우리는 끝에 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이... 밖을 내다보면 벽에 쓰인 글씨가 보입니다. 매번 나아간 그 전달자들은 사랑과 은혜와 구출의 메시지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심판 전에 구출을 알리는 메시지였습니다. 노아에게는 구출이 있었습니다. 롯에게도 구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출의 메시지였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그것은 긍휼과 구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롯의 날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래서 저는 어떤 미사일이 이 땅에 떨어져 땅을 폭파하기 전에 교회가 떠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많이 읽을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모형을 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모형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제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면 제 모습이 어떠할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목하셨습니까?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비 한 방울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했지만, 노아가 들어가기 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롯에게 “네가 이리로 올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불이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드리워진 그 유황은 롯이 나가기 전에는 단 한 방울도 소돔 위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이 땅에 심판으로 미사일 하나가 떨어질 수 있기 전에, 어느 날 밤이나 아침, 또는 어느 때에 교회가 본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심판이 오기 전에 교회는 본향으로 갈 것입니다. 심판이 너무나 가까이 드리워져 여러분이 그것을 볼 수 있을 정도라면, 벽이나 하늘에 쓰인 글씨가 보일 정도라면... 그들이 스푸트니크를 전혀 구할 수 없는 곳에서, 폭탄 두세 개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오늘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이 시각에 오셔서 그분의 교회를 데려가시는 일은 얼마나 더 가능하겠습니까? 그분의 오심 외에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글쎄, 그건... 글쎄, 전에도 들은 이야기야” 하는 듯이 앉아 있습니다. 보십시오,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롯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불로 태우실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지난번 소돔과 고모라에서 땅이 불타기 직전에 나타났던 그 천사의 성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도덕 상태를 살펴보고 미국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저 비교해서 보십시오. 이혼, 교육, 부도덕입니다. 아시겠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는 남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저 밖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이 그 무리였습니다. 보십시오. 천사들은 가서 롯에게, 그가 원하는 모든 것, 또는 그를 따라오게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소돔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곳을 불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밤새 거리를 다니며 자기 가족들에게도 가고, 곳곳으로 가서 있는 힘을 다해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성경은 그들이 롯을 농담하는 사람처럼 여기며 말했다고 했습니다. 오늘을 보십시오. 오늘날의 메시지를 두고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 지어낸 일이야. 조롱하는 거야. 당신은 흉내를 내려 하고 있어. 우리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려는 거야. 웃음거리야.” 그것은 성령인데, 여러분은 너무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성경적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감당하실 수 있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불타게 될 소돔에 오셨던 긍휼의 천사를 보십시오. 그분은 오늘도 그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앉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에게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같은 때쯤... 생명의 때쯤에 너를 찾아오리라.” 아브라함은 백 세였습니다. 사라는 구십 세였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해마다, 여러 해 동안 계속 그 약속을 기다려 왔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쇳조각이 자석에 끌리듯이 말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가까워졌습니다. 한 사람이 왔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는 다름 아닌 사람 안에 나타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자, 성경을 읽는 여러분, 들으십시오. 아브라함은 그분의 이름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주’라는 말을 살펴보고 그것이 엘로힘, 곧 전능하신 분, 사람의 옷을 입으신 여호와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분은 장막을 등지고 앉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라를 위해 생명의 때쯤에 내가 너를 찾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구십 세였습니다. 사라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장막 안에서, 그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있는데, 사라가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웃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장막 안에서, 그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있는데, 사라가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그 천사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
그것은 대체 어떤 정신감응이었습니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바로 그 긍휼의 천사가 밤마다 이 건물에 오셔서 똑같은 일을 행하십니다. 불과 멸망이 이 땅을 태우기 전입니다. “롯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분은 메시지를 가지고 오신 천사였으며, 등 뒤 장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별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라는 나와서 부인하려 했습니다. 그분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등을 돌리고 계셨고, 사라는 장막 안에서 마음속으로 웃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의 성품을 볼 수 없습니까? 바로 그 영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분이 주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그 몸 안에 계셨을 때도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바로 그분임을 입증하시려고 같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 여기 계시고, 오늘 밤에도 계시며, 온 땅에서 불과 멸망이 오기 전에 똑같은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조롱하고 있어. 당신은 적그리스도야. 우습게 만들려 하고 있어. 흉내를 내려 하고 있어. 다르게 보이고 싶은 거지. 정신감응이야. 그럴듯하게 꾸민 점쟁이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대적하여 한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 사람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메시지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때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노아의 때에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주 예수님의 날들에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심판 전에 경고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소돔 사람들이 일어나 나올 때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의로운 롯이 거리를 다녔는데... 여러분은 “의로운 롯이라고요?” 하고 묻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죄들이 그의 의로운 혼을 날마다 괴롭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의로웠습니다. 천사들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복음을 가지고 내보냈습니다.
오, 형제님, 우리가 얼마나 중대한 날에 살고 있습니까. 성경은 이 시대에 관해,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리라 하시느니라.” 며칠 전 밤 제가 교회로 왔는데, 눈이 너무 많이 오고 날씨가 나빠서 여기 오기에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농구 경기가 열리자 수백 명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의 신은 농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은 무엇입니까? 공기를 잔뜩 불어 넣은 커다란 덩어리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부활하신 인격으로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참으로 살아 계신 창조주이심을 저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경기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들 안에 있는 영이 그런 것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영은 그를 그리스도께로 끌어당깁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사람이 어떻게 내게 올 수 있느냐?”
오, 그렇습니다. 형제님, 제가 말씀드립니다. 서두르십시오. 피하십시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저 낡은 교권의 담들이 머지않아 무너질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속히 달아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서 나오십시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심판의 뜨거운 숨결이 사방에 드리워진 것을 보실 때 말입니다. 지금 시속 천팔백 마일로 돌고... 아니, 시속 만 팔천 마일로 지구를 돌고 또 돌고 있습니다. 죄에 빠진 한 나라가 단추 위에 손을 얹고 있는데, 그 단추 하나면 오 분 안에 우리 모두를 가루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큰일이 오리라고, 큰 부흥이 오리라고 기다리지 마십시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십시오. 지금 준비하십시오. 마귀는 이런 것들에 대해 여러분의 눈을 멀게 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모든 세대를 통해 자신을 밝히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이름뿐인 교회는 앉아서 자고 있습니다. 영적인 교회는 깨어 있습니다. 잠자는 처녀는 잠들어 버렸고, 환난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등잔에 기름을 가진 처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저는 그 처녀의 비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쓰던 옛 석유등을 아시지요. 우리는 아주 최근까지 전깃불이 없었습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기름은 등잔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것을 빨아 올리는 심지가 있습니다. 그 심지는 특별히 만든 재료여야 합니다. 그리고 심지 끝에 불이 붙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거기에 파이프를 넣는다고 기름을 빨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쇠로 만든 것, 사람이 만든 것을 통해서는 올라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통해서만 올라옵니다. 그 심지는 믿음입니다. 성령을 끌어 올려 빛을 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 자신뿐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한쪽 끝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불타고, 다른 쪽 끝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에 잠겨 있을 때, 제가 이 강단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빛이 비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심지가 물 섞인 기름에 잠겨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될지 아십니까? 불꽃이 탁탁거리며 튈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등잔이 잘못된 이유가 그것입니다. 불꽃이 탁탁거리며 튀고 있습니다. 심지 위에 그을음이 끼므로 일어나 등잔을 손질해야 합니다. 등잔을 손질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서둘러 이리로 가라. 네가 거기로 올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그토록 가까이 와 있음을 우리가 본다면, 기억하십시오. 심판대에서 제가 여러분 앞에 설 때, 제가 말한 이 일들을 여러분이 보면... 그때까지 기다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매시간, 매일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제외하고는 땅 위를 걸으셨을 때와 같은 모든 모습으로 여기 나타나십니다. 그분은 마음의 비밀들을 드러내십니다. 며칠 전 밤 바로 여기 오백 명 앞에 오순절 날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하여 모두가 쳐다보았습니다. 큰 천둥 같은 소리가 여기로 와서 이 강단에 이르더니 건물 전체로 울려 퍼졌습니다. 바람이 분 것은 아니지만 급하게 몰아치는 바람 같은 소리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에 불이 붙어 온 동네에 불을 붙이기는커녕 “꽤 좋았어. 그래, 그 일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라고 했습니다. 오, 일어나 등잔을 손질하십시오. 여러분의 영에 기름이 너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아니, 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면 그을음이 생기고 여러분의 불은 꺼지며, 등잔의 유리갓이 연기에 그슬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와 있어도 여러분은 그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끝에 와 있습니다. 일어나 등잔을 손질하고 길을 나섭시다.
믿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성경에 오리라고 예고된 그 큰 재앙이 이 세상에 닥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긍휼 가운데 그분의 교회를 세상에서 데리고 나가실 것입니다. 교회는 여기에 남아 환난을 조금이라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목하십시오. 노아가... 롯은 자기를 멸할 곳에서 나왔습니다. 노아는 자기를 지켜 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들을 함께... 함께 놓고 보십시오. 우리는 그대로 있으면 세상과 함께 멸망할 것이므로 세상에서 나와서,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노아는 들어갔고 롯은 나왔습니다. 롯은 세상에서 나왔고 소돔에서 나왔습니다. 노아는 심판 위에 떠 있는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형제님, 어느 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 큰 민족을 멸하셨을 때... 아니, 그런 큰일을 행하셨을 때, 먼저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거기서 데리고 나오지 않으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완전하다고 선언하신 교회에 어떻게 심판을 쏟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면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심판하셨는데 어떻게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표적들이 그들을 따르리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일들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스스로를 잘라 내고 어떤 조그만 교파의 벌레가 잘라... 자기를 파고들어 생명의 흐름을 끊도록 내버려 두는 가지는 시들고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튼튼하고 건강한 포도나무가... 아니, 가지가 포도나무와 이어져 생명이 흐르면, 그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있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복숭아나무 줄기라면 그것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복숭아를 맺을 것입니다. 포도나무라면 포도를 맺을 것입니다. 호박이라면 호박을 맺을 것입니다. 수박이라면 수박을 맺을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그것의 정체를 입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이 만든 어떤 조직에 앉아 있으면서 자신을... 제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나 어떤 시대에도 조직을 받아들이신 적이 없습니다. 역사에서 단 한 곳이라도 말씀해 보십시오. 최초로 조직된 교회는 가톨릭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7절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여자가 창녀였고 많은 딸을 두었다고 말합니다.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에서 나와서 곧바로 다시 조직을 만들고 울타리로 경계를 그으며 “우리는 이것만 믿고 다른 것은 믿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양들이 풀을 뜯을 자리는 남겨 두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조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남녀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를 가둬 놓고 ‘우리 집단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단은 하나님께서 알도록 허락하시는 것 이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리교인과 침례교인과 오순절교인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몸 전체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바라보는 비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휴거를 위해 준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제 기도는...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시고, 여러분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아십니다.
얼마 전 여왕이... 아니, 왕입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돌아가시기 전에 캐나다를 방문했습니다. 왕이 오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아이들이 나가서 작은 영국 국기를 받아 흔들며, 왕이 그곳에 와서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작은 깃발을 들고 거리에 모두 모여 있는데, 왕이 아름다운 왕비와 함께 거리를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왕이 지나갈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 깃발을 흔들며 기뻐했습니다. 아이들은 왕이 지나간 뒤 학교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 하나만 빼고 모두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거리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전신주 곁에 서서 작은 머리를 기둥에 기댄 채 목 놓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니? 왕께 깃발을 흔들어 드리지 못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왕께 깃발을 흔들었어요.”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가까이 갔었니?” “네, 가까이 갔었어요.” “그러면 왕을 보았니?” 아이는 “네, 왕을 보았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울고 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왕은 저를 못 보셨어요. 제가 너무 작아서 저를 보실 수 없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교육을 받았든, 입을 옷조차 변변히 없든, 여러분이 그분께로 조금이라도 몸을 돌릴 때마다 그분은 보시고 아십니다. 오늘 성령께서 여러분을 십자가에 더 가까이 이끄시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준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노아의 날들에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 우리는 모든 표적이 그분이 속히 나타나실 것을 입증하는 것을 봅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이것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집회를 마치는 기도를 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하오니, 그날에 그분이 저의 보잘것없는 일들과 제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을 보시고 그것을 제게 의로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곳곳에 계십니다. 발코니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제 왼쪽에도,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저 위 왼쪽 발코니에 계신 분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서두르십시오. 메시지는 언제나 긴급한 것이었습니다. 속히, 서두르십시오. 어떤 천사입니까? 여러분이 여기서 보는 바로 그 천사입니다. 머리를 숙인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밤마다 여기 오셔서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서둘러 여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커다란 교파의 담들에서 벗어나십시오. 여러분이 서성거리던 이 죄의 담들에서 벗어나십시오. 부도덕한 저 텔레비전의 온갖 장면들, 이 온갖 신문 기사들, 이 온갖 실화 잡지들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모든 회의적인 사람들 말입니다. “정신감응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것이 아닐까?” 서둘러 벗어나십시오. 나와서 그리스도의 긍휼 한가운데로 달려가십시오. 십자가에, 바로 그 샘에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악한 마지막 날들, 저희 복되신 왕의 오심을 그림자로 보여 주는 이 날들에, 주님께서 천사를 땅에 보내셔서 똑같은 일들을 나타내게 하셨음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악한 영이 사람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악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형제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의 눈이 “글쎄,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어. 나는 큰 교회에 속해 있어”라고 생각함으로써 감겨 버렸습니까. 그들은 바로 그 영이 대제사장 가야바 위에도, 우리 주님 당시의 학식 있는 모든 학자 위에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람들, 의로운 사람들, 성경을 깊이 배운 사람들이었지만 계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똑똑하고 총명하며 위대한 사람들이었지만 성령의 소박하심과 역사하심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서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시각을 보게 하옵소서. 메시지가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올 것이 예고되어 있음을 보게 하옵소서. 심판이 닥치기 전에 그들이 긍휼을 얻게 하옵소서. 오늘 오후 손을 든 모든 사람의 몸과 마음과 삶과 가장 깊은 내면에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그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어 주옵소서. 그들의 눈이 열려 “왜 전에는 이것을 보지 못했을까?” 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눈앞에 닥친 이 중대한 시각에서 그들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의 화음을 잡아 주십시오. 손을 듭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를... 이제 노래하는 동안 뒤쪽과 옆쪽과 앞쪽으로 손을 뻗어 누군가와 악수하십시오.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 (박사님) 갈보리 십자가에서.
떠날 준비가 모두 되었다고 느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나팔이 울린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내려놓고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이 그분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의 영이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일어나리라고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시고 이루시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눈이 감겨서 그것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실 수 있습니다. 그들을 정죄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들이 보리라는 것을 아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이 미리 아신 모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으며,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미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책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심으로 그분을 받아들이리라고 아셨던 자들을 구속하러 오셨습니다. 아멘.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오후 우리가 바로 마지막 때에 있고, 이 모든 큰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보고 깨달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의로 가득하다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릇된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큰 학파가 극단으로 치우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아르미니우스 교리는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행위입니다. 반대쪽 칼뱅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나 바른 길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릇된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를 대할 때와 같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아내, 저는 꽤 자주 해외에 갑니다. 해외로 갈 때 아내를 지켜보다가 붙잡고 “브래넘 부인, 내가 없는 동안 다른 남편들을 두어서는 안 되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제 옷깃을 잡고 “이봐요, 젊은이, 다른 아내들은 안 돼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집안이면 참 대단하겠지요? 아닙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입 맞추며 작별을 고합니다. “여보, 나를 위해 기도해 줘요”라고 말합니다. 아내는 “빌리, 매시간 기도할게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다른 남편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제게 다른 아내가 생길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한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가 해외나 다른 곳에 가서 그릇된 일을 한다고 해 봅시다. 다른 여자와 애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그 일에 대해 저를 용서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서른일곱 살에 머리가 희어진 그 가엾은 사람은 저와 대중 사이에 서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하므로, 아내가 제 모든 것을 용서해 준다 해도, 그 무엇 때문에라도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는 한, 그 일에 관해서 아내에게는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한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고, 위스키를 마시지 않을 것이며, 어떤 그릇된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배와 술과 다른 모든 것을 끊고도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느니라.”
이제 여러분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부합한다면, 곧 그분이 말씀에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그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너희가 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산을 옮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데, 그것이 조에, 곧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생명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목적이 바르고 동기가 바르다면...
[테이프에 녹음이 끊긴 부분이 있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 안에 그것을 믿을 것이 전혀 없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그것을 믿기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저는 가짜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거짓된 것이 많이 있었고, 온갖 소란도 많았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종교개혁에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마르틴 루터가 어떻게 가톨릭교회를 대적하여 말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일에 따라붙은 온갖 광신주의 속에서도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은혜를 받았느냐였습니다. 모든 종교개혁 때마다 그랬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신유와 표적과 이적이라 불리면서 거기에 따라붙은 광신주의가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조 달러 하나는 무엇을 나타냅니까? 위조 달러는 어딘가에 진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았다는 것이 저는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밤 일곱 시 삼십 분에 “마음의 문 안에 있는 문”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리라고 기대하며 오십시오. 베일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