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아버지, 오늘 밤 이 큰 도시 사우스벤드에 오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특권입니다. 그보다 더 큰 특권은 주님의 피로 사신 이 사람들과 오늘 밤 함께 모인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로 크게 찾아와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가 언제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하옵소서. 이 교회의 목사님과 일꾼들, 동역자들, 방문하신 분들과 오늘 밤 모인 모든 사람을 복 주옵소서. 병든 이들이 고침을 받고, 믿음에서 물러난 이들이 오늘 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게 하옵소서.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약 23년 전, 저는 이웃 도시인 미샤와카를 방문했다가 생전 처음 오순절 사람들을 접했습니다. 그곳의 어느 교회당에서였습니다. 저는 오랜 친구와 낚시를 하고 미시간주 도와지액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지요. 지나가다가 큰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들렀습니다. 많은 분이 제 삶 이야기를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그때 저는 젊은 침례교 목사에 불과했습니다. 오순절 집회에 들어가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온 바닥을 뛰어다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고, 교회에서 저게 무슨 예절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미처 몰랐던 겁니다. 손에 장갑이 꼭 맞듯 저도 그곳에 꼭 맞았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사람들이 저를 찾고 있었을 때, 그 흑인 청년이... 저는 그 집회에 참석한 목사들 중에서 두 번째로 어렸고, 그들과 함께한 지 하룻밤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흑인 청년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저를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티셔츠에 시어서커 천으로 된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공황 때였고, 제가 목사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 흑인 청년이 “그분이 누구인지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럼 가서 모셔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봐요, 제가 그 사람인데, 말하지는 마세요. 아시겠죠?”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 계십니다. 바로 여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설교한 본문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부자에 관한 “그가 지옥에서 눈을 들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제가 “그가 소리 지른 이유는, 그곳에는, 그러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 질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곳에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 질렀습니다. 그곳에는 설교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리 질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령 안에서 완전히 열이 올랐고, 그때 저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 와서 기쁩니다. 몇 주 전 저는 시카고의 아름다운 식당에... 아니, 식당이 아니라 마린 가든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존경하는 목사님 옆에 앉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목사님께 소개해 주었습니다. 전에 뵌 적은 있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목사님은 저더러 이곳에 와 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제 개인 비서인 무어 형제님이, 언젠가 목사님이 자기 있는 곳으로 내려오시면 저희가 이리 올라오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어 형제님이 섬럴 형제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면 제가 한번 찾아뵈어야겠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갈 곳이 워낙 많고 일정이 꽉 잡혀 있어서... 사흘 밤 정도라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얼마든지 좋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왔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여기 앉아 계셔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참으로 기쁘고, 왜 이곳에 이런 분위기가 있는지 알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러 사람에게 목사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목사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화환을 드리기보다 지금 작은 장미 한 송이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섬럴 형제님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정직함,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그날 아침 말씀을 들었으니 참된 설교자이신 줄 압니다. 내일 오후에는 사람들이 다 모일 겁니다. 이 부근에 있는 저희 쪽 사람들도 이 오후 집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들으러 모일 겁니다. 여러분도 이곳에 와서 말씀을 들으시면 분명 기쁘실 것입니다.
이제 저희는 저희의 작은 사역을 여러분의 사역과 함께 합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 해 전 주님은 병든 그분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누구든 들으실 수 있다면, 저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제가 사람들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요, 하나님은 이미 그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아들이 갈보리에서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을 때,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과거형입니다. 사람들은 신유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신유 외에는 치유가 없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치유입니다. 신유 외에는 다른 치유가 없습니다. 약이 병을 고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수술이 병을 고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수술은 도움이 되는 수단이고 약도 도움이 되는 수단입니다. 저희도 그것들을 좋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도움의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치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죠? 시편 103편 3절은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말씀이 한 곳에서 틀린다면 어디에서나 틀린 것입니다.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저는 그저 말씀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저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모두 원합니다. 전부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나님께서 말씀에 기록되지 않은 일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씀에서 나오는 것임을 아는 한, 모든 것이 옳다는 든든한 확신이 듭니다. 저는 그것이 참 좋습니다. 오늘 밤 주님께서 우리를 복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제 신유에 대해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의사를 대신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아닙니다. 제가 하러 온 일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의사의 환자이며 제 형제자매인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러 왔습니다. 제가 온 목적은 그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육신의 치유를 이야기할 때면 너무나 자주 이런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의 동기와 목적이 크게 혼란스럽고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내과 의사에게 가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저 외과 의사에게는 가지 마세요. 도살꾼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신을 갈기갈기 잘라 놓을 겁니다. 뼈나 써는 사람이지요.” 그러면 외과 의사는 내과 의사에게, 그 내과 의사를 두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설탕 알약이 아닙니다.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러고는 둘 다 “저 척추교정사는 상대하지 마세요. 그저 심리적인 것, 마음의 작용일 뿐입니다”라고 할 겁니다. 아시겠죠? 척추교정사는 정골요법 치료사를 두고 “당신은 뼈를 교정해야지, 근육을 문질러서는 안 됩니다”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설교자를 반대합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제 생각에는 그 동기와 목적이 옳지 않은 것입니다. 아시겠죠?
모든 것이 바르다면... 그것이 돈벌이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바르고 사람이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모두는 수술이 도움이 되고 약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척추교정이나 정골요법도 여러 경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저... 그것은 좋은 보조 수단이요, 도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손과 마음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 우리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걷고 있는 이 여정에서 삶을 조금 더 즐겁게 해 주고, 서로 돕고, 이 길을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삶을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바로 그 목적으로 여기 왔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여러분의 의사와 척추교정사와 외과 의사와 목사님과 이웃과 손을 잡고, 모두 함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어 보려고 왔습니다.
이 교회에 들어와 이토록 따뜻하게 맞아 주는 분위기를 느끼고, 들어오면서 이 목사 형제님들과 악수를 나눈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복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사흘 밤 동안 잠시 함께 모여 서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곳에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주님의 뜻이라면 날씨가 따뜻할 때 이 부근 어딘가에 큰 천막을 세우고 오랫동안 좋은 부흥회를 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새로운 형태의 사역을 가지고 와서 단 사흘 밤 만에 소개하려니 꽤 어렵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사람들이 그것이 말씀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는 소개만도 사흘 밤은 걸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거든”이라고 하셨으니 말씀은 옳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첫날 밤부터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려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저를 신뢰해 주십시오. 제가 실제로 다가가 손을 얹어 접촉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제 사역은 그런 사역이 아닙니다. 안수하는 것이 훌륭한 사역임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안수 사역은 유대인의 표적이었습니다. 야이로가 “오셔서 제 딸에게 안수하소서. 그러면 그녀가 살겠나이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로마 백부장은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아시겠죠? “말씀만 하옵소서.” 예수님은 돌아서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은 내가 발견한 적이 없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말씀만 하옵소서.” 왜냐하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것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로마 사람은 모든 병과 질병이 그분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깨달으시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모든 마귀와 모든 병과 모든 질병과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것을 똑같이 깨달으시면 말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대로, 그분이 제게 주신 이 사역에서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또... 저 자신을 설교자라고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여분의 타이어 같은 사람이지요.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역을 전하여 그들이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이제 우리가 높이려고 이곳에 온 그분을 높이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우리 모두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하나님의 말씀을 잠깐 읽고 싶습니다. 새로운 집회에 와서 시작하려니 조금 긴장이 됩니다. 글쎄요, 저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번 많은 집회를 했지만, 어떤 일을 앞에 대하면 그 거룩함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사탄은 어디든 흠을 찾아내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씀 위에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하면,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있으면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느껴집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이제 여러분이 그저... 제가 하는 일이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성경에 없는 것이 보이면 저희에게 알려 주십시오. 아시겠죠?
며칠 전 밤 워털루에서, 제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날 밤 목회자 조찬 모임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완고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장로교와 루터교 등의 사람들이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완고했습니다. 저는 그 일로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주님께서 큰일들을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앉아 있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과 함께, 한곳에서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일이 몹시 어려워집니다.
제가 강단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비행기가 위로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베일 박사님을 돌아보았습니다. 박사님은 그 여자분이 파이프 오르간의 공기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기라도 한 줄 아셨답니다.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멀리서 우레가 울리며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빌리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는 여기 메르시에 형제님을 쳐다보았습니다. 녹음을 맡는 청년입니다. 그와 고드 형제님, 제 아들과 다른 이들이 기도 카드를 나눠 줍니다. 그는 자기가 뭔가 잘못한 줄 알았답니다. 제가 자기를 보는 것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건물 안으로 바람 같은 것이 곧장 들어왔습니다. 다만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바람처럼 우르릉거리는 소리였고, 진동하며 내려와 회중 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이 회중 위로 물결치듯 지나갈 때 사람들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치 오순절이 다시 일어나는 듯, 급하고 강력한 바람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떤 기운 같은 것이 그렇게 퍼져 나갔습니다. 저는 성경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력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니”라고 한 것을 주목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올바르십니다. 그래서 말씀과 대조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요한복음 12장을 펼쳤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한번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비판하는 사람들 곁에서 기도하실 때,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천둥이 쳤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천사가 말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은 나 때문에 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났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분은 언제나, 매번 성경에 맞게 행하십니다.
이제 그분의 복되고 거룩한 말씀을 읽고 잠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뒤,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밤이 함께 모여 서로 알아가는 밤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뒷받침해 주신다면, 그러면 우리는... 주님께서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고치시고 참으로 놀라운 집회를 갖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의 말씀입니다. 익숙한 짧은 본문입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매 그리고 설교 제목으로는 늘 쓰는 대전도 집회의 주제인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를 택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바탕으로 잠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혹은 세상이 창조주의 말씀에 의문을 품는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불신과 원수의 영들에 지배받아 믿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도 그분을 뵙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외국에서 설교하는 특권을 누렸고,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으러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평생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도 그분을 뵙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묘한 것이 있습니다. “보아야 믿는다”는 옛 미주리 구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각에 너무 많이 의존합니다. 오감이 몸을 다스리는데, 시각은 혼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개신교인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가톨릭은 성인들의 작은 조각상과 기념물 등을 통해 오래전에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눈, 혼으로 들어가는 문은...
이 그리스 사람들은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분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그들은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13장 8절이 참이라면, ‘만일’이 아닙니다. 참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분이 동일하신 이상 우리도 그들이 그때 보았던 것처럼 오늘 그분을 뵐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이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한다면, 그분은 원리에서도 동일하시고, 권능에서도 동일하시고, 행동에서도 동일하시고, 동기와 목적에서도 동일하셔야 합니다. 육체의 몸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동일하셔야 합니다.
그 육체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 몸은 속죄를 위해 갈보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 그 몸을 다시 살아나게 일으키셨고, 그 몸은 오늘 밤 영광 가운데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고백을 근거로 중보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할 때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갈보리에서 드리신 온전히 충분한 희생으로 그분이 행하신 것은 무엇이든, 그 속죄 가운데 행하신 것은 무엇이든,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할 수 있도록 그분께서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우리가 고백할 때 그것을 근거로 중보하시려고 아버지 앞에 계십니다.
‘고백하다’는 ‘같은 것을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라고 했다면, 그것을 고백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제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저는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육체의 몸으로 그분께서 바로... 앉으신 뒤에 성령께서 땅으로 다시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어떻게 교회 안으로 들어갑니까? 교단을 통해서도 아니고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아니라 영적 침례를 통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물침례가 아니라 영적 침례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영적 침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분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나무는 가지에 생명력을 공급할 뿐이고, 열매는 가지가 맺습니다. 교회는 열매를 맺도록 나무에 연결된 가지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가지는 나무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기 전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무 안에 어떤 생명이 있든지, 가지는 자기가 생명을 공급받는 그 근원에 맞는 종류의 열매를 맺습니다. 호박 덩굴이면 호박을 맺을 것이고, 수박 덩굴이면 수박을 맺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이면 포도를 맺을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를 닮은 영, 그리스도를 닮은 일들, 그리스도를 닮은 믿음을 맺을 것입니다. 제대로 연결되어 있다면, 잘리고 축 늘어지거나 시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튼튼하고 건강한 나무라면 말입니다. 참으로 튼튼하고 건강한 가지가 나무에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예수님은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세상의 체계’를 뜻했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너희’는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얼마나 오래요?]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나’, 곧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 안에서 생명력을 주시며,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지나간 모든 시대에 행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오늘 밤도 같은 일을 하시려고 그분의 교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가 선을 긋고 장벽을 세우고 온갖 작은 감정적 체험과 주의들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면...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유대인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에게 “어떤 이방인에게도 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방인들 앞에서, 혹은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보이시려고 나타내신 적이 없고, 그분의 교회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신 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있을 일이었습니다. 복음은 나중에 이방인들에게 전해질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거듭 거절당한 뒤 “보라, 우리는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노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려면, 그분이 나타내신 모습을 통해 오늘 어떤 분이신지 보려면... 그분이 어제와 오늘 동일하시다면 나타내시는 모습도 동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학파의 경향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도 하리라.” 요한복음, 제 생각에는 14장 7절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그도 하리라. 더 큰...” 올바른 번역은 ‘더 많은’입니다. 여러분이 더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질이 아니라 양에서 더 큰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일으키셨고 자연을 멈추셨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더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성령께서 온 세상에 있는 교회를 통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는 같은 일들을 더 많이 하리라. 그리고 내가 다시 와서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노라.”
공정한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오늘 밤 제가 장로교인 여러분에게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예, 믿습니다”라고 하실 겁니다. 감리교인, 오순절교인, 그 밖의 사람들도 각자 믿을 것입니다. 자기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어느 교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누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깎아내리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나 교단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경배할 이들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오순절교, 순복음교, 나사렛교, 필그림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그 밖의 교회들이 이것에 대해 참되고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돌아가 그분이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그러면 영원히 어떤 분이실지, 오늘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날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십시오.
이것을 따라가고 싶으시면 오늘 밤 성경을 펴서 읽으셔도 됩니다... 저는 인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저와 함께 확인하시면 됩니다. 먼저 요한복음으로 가서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성령께서 그분 위에 임하신 뒤에,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거하시며... 예수님은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분명히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일들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내 아버지시니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다만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그 일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거짓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먼저 무엇을 하라고 보여 주시지 않고는 단 한 번도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잘못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와 그분들이 고치고 싶은 곳이면 어디서나 고쳤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에는 결코 그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을 살펴보십시오. 갈멜산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모든 것을 차려 놓고 그는 “주님, 제가 주의 명령대로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며 무엇을 해야 할지 그분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성령을 자기 안에 받으신 뒤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분량에 따라 받습니다. 오늘 밤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은사는 그분의 위대한 영과 비교하면 아주 작습니다. 거대한 바다에서 떠낸 물 한 숟가락과 같습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물 한 숟가락을 떠서 실험실에 가져가 검사한다면, 바닷물에 있는 모든 화학 성분이 그 한 숟가락에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양은 그만큼 많지 않아도 같은 종류의 물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 계신 영도 그렇습니다. 같은 영이지만 그분께서 받으신 것처럼 충만하게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간질을 앓는 한 아이 앞에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그분은 그들에게 마귀들을 내쫓고 병든 자들을 고치며 죽은 자들을 일으킬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간질을 앓는 한 아이 앞에서 철저히 패배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이를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지만 그들이 고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 네가 믿으면 나는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그 큰 권능을 보았을 때, 그것이 제자들에게서 보았던 한 숟가락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 영은 패배했습니다. 그 영이 아이를 발작에 빠뜨려 땅바닥에서 뒹굴게 했습니다. 아마 아이가 겪은 가장 심한 발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일으켜 먹을 것을 주라. 이제 괜찮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1장을 보면 회심한 뒤 가서 자기 친구인, 자기 형제 베드로를 데려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드레였습니다. 베드로가 주 예수님께 왔을 때... 잘 따라오십시오. 요한복음 1장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은 그를 아셨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시몬이나 베드로라 불리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베드로를 아셨고 그의 이름을 아셨으며 그의 아버지 이름도 아셨습니다.
오늘 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때와 똑같을 것입니다. 텔레파시라든가 그런 것이라고 하겠지요. 그다음 몇 줄 아래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회심하자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 다른 사람, 곧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와 같은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산을 돌아가 빌립이라는 좋은 친구를... 아니, 나다나엘을 찾았습니다. 나다나엘을 찾은 것입니다. 그가 다가갔을 때 나다나엘은 나무 아래에 있었는데, 아마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났을 때, 나다나엘이 그에게... 아니,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우리가 찾은 분을 보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거기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참된 회심을 통해 실제인 것을 찾고 그것으로 돌아섰다면 혼자만 간직할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말해야 합니다.
빌립은 이 사람이 믿음에 있어 아주 정통을 고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가 정직한 사람임을 알았고,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와서 우리가 찾은 분을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선지자들이 말했던 그분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았네.” 이 정통 신앙인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가 일어나 무릎의 먼지를 털며 “자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라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저 광신자들 가운데 무슨 선한 것이 있겠어? 저런 무리에게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 생각에 빌립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와서 보게”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납득시키는 방법입니다. “와서 보게.”
산을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합니다. 빌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자네 아나? 베드로가 그분께 다가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분은 베드로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고 그의 아버지 이름도 말씀해 주셨네. 그러니 놀라지 말게. 자네에게도 똑같이 하실지 모르니까.”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잠깐만. 자네 대체 어디까지 빠져든 건가?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내가 그런 것을 믿으리라고 생각하나?” “나다나엘, 어서 가세. 직접 와서 보기나 하게.” 우리 주님은 줄에 서서 아마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때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의 눈길이 그에게 닿자마자 주님은 “보라, 속에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과 유대인은 모두 긴 옷에 수염과 샌들까지 같은 차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그가 유대인인 줄 아셨습니까? 어떻게 정직한 사람인 줄 아셨습니까? 그는 놀랐습니다. 그의 태도는 믿음을 가졌던 모든 유대 민족을 대표했습니다. 그는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저를 보신 적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어떻게 제가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인 줄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도 동일하시다면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물론 그때 믿지 않는 사람들도 곁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마가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그런데 빌립은, 아니, 나다나엘은 뭐라고 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내가 그것을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그러면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행해졌을 때 믿지 않는 사람은 뭐라고 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자기 입으로 드러내 말하기는 부끄러워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는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알세붑은 마귀들의 통치자로, 점쟁이 같은 존재였습니다. 점치는 일이 마귀에게 속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래서 그는 “그는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유대인 무리에게 그분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용서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잘 들으십시오. “성령이 오시면”, 다시 말해 같은 일을 하러 오시면, “그를 대적하는 한마디 말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사실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 밤도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은 불신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은 아십니다. 그것이 어제 예수님의 태도였다면 오늘도 같아야 하고, 영원히 같아야 합니다. 그분은... 그들은 그것으로 믿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그분은 바로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4장으로... 그것이 한 가지입니다. 잠시 4장으로 가 봅시다. 그분은 여리고로 내려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산 위에 있고 여리고는 골짜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위쪽 사마리아로 돌아가셨습니다. 왜입니까?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보내어 먹을 것을 사 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간 사이에, 틀림없이 용모가 아름다웠을 젊은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어쩌면 밤새 밖에 나가 있었거나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그 시간에야 나왔습니다. 그 작은 풍경은 아마 여기처럼 주위에 덩굴이 자라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벽에 기대앉아 계시다가 여자를 보셨습니다. 여러분이 동방에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우물에 오는지 보셨다면... 그분은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다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그런 것을 청하는 관례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것을 구하였으리라. 그러면 내가 네게 물을 주어 네가 여기로 길으러 오지 않게 하였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괜찮으시다면 제 말을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분은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여자가 있었지만 그분은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셨습니다. 그러고는 그 산에서 경배하는 일과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경배하는 일에 관해 대화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잠시 후 그분은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여자의 문제였습니다. 여자는 “선생님,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맞다. 네게는 다섯이 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잘 말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를 보십시오. 이 여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여자는 그분을 바라보며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실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메시아의 표적인 바로 그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 앞에서 그것을 행하셨을 때, 참된 유대인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자를 보십시오. 여자는 “우리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 일을 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도시로 달려가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메시아, 아니, 메시아의 표적이었다면 오늘도 메시아의 표적이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그 일은 이방인 앞에서는 단 한 번도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없었습니다. 지금이 이방인의 날입니다. 지금은 이방인 경륜의 끝입니다. 제가 경륜을 많이 논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성경은 이방인들이 그 끝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성경을 집어 들 필요조차 없습니다. 신문만 보거나 라디오만 켜 보십시오. 우리가 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는 곧 본향으로 가고 세상은 다시 티끌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그것이 지구를 뒤흔들어 저 태양 주위의 궤도에서 벗어나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궤도에서 멀어져 물로 멸망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불탈 것입니다. 우리는 끝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은 온갖 학위와 모든 것을 지니고 돌아다니며 대단한 사람인 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메시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지난 몇 년 동안, 30년 혹은 40년 동안 이방인 교회에 나타나셨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크게 충만하게 하시고, 온 세상을 휩쓴 부흥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땅에 계셨을 때와 동일한 분량과 권능과 영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떠나갑니다. 심판 외에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긍휼은 언제나 심판 전에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긍휼이 주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긍휼을 물리치면 심판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제의 메시아였습니다.
한 곳을 보면 어떤 여자가 있습니다. [불분명한 말] 많은 무리가, 그분께서 밤에 바다를 건너시며 폭풍을 멈추신 뒤였습니다. 여러 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바닷가로 살며시 내려갔습니다. 속으로 ‘그분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내가 나을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소리를 지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저, 조절하시는 분께서...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 여자는 참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헤치고 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무리 속으로 나갔습니다. 아마 이만한 규모의 군중이었을 것입니다. 여자가 무리 속으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멈춰 서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나무라며 “주님,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나는 내 기운이 빠진 것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혹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효능’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에게서 효능이 나갔습니다. 그것은 힘을 뜻하며, 그로 인해 그분의 기운이 빠졌습니다. “나는 내 기운이 빠진 것을 아노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그분은 둘러보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여자가 하나님께 손을 댔던 것입니다. 그분은 회중 속에 서 있거나 앉아 있던 여자를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고, 여자의 믿음이 여자를 낫게 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 예수님은 오늘 밤에도 살아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말씀,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신약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까?”라고 하십니다. 물론입니다. 신약 성경은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돌아보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분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가지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때는 중심이 되는 나무를 통해 일하셨듯이, 오늘은 가지들, 곧 그분의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 일을 맡기시려고 교회 안에 많은 큰 은사들을 질서 있게 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비밀들을 드러내시고 그분의 지혜를 내려 주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슬람교나 불교에서처럼 단지 어떤 신조를 선언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어 계시지 않고 오늘 밤 살아 계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갈릴리를 걸으셨을 때와 똑같이 살아 계시며, 그분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같은 방식으로 행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이 잘못된 것을 가진 것입니다. 성경이 “그분은 동일하시다. 그리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을 한 번 더 보십시오. 그분은 큰... 요한복음 5장, 다음 장에서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그분은 많은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이 기적이 행해진 직후였고 그분의 옷은 효능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마 오늘 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 사이를 걸으셨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믿었기에 아마 광신자라고 불렸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걸쳐 언제나 신유를 위한 어떤 방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분은 이 연못에 천사를 보내어 물을 휘젓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광신자로 여겨졌습니다. 역사가들은 물이 움직일 때 그 안에 들어가려다가 사람들이 서로를 찔렀다고 전합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 물에 들어가 보시오. 바람이 벽에 부딪쳐 물을 밀어내는 것뿐이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안으로 걸어 내려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연못이... 그 옛 장소는 아직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뿐이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천사였습니다. 성경도 천사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니 결국 그들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물에 들어가면, 믿음을 가지고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다리를 절고, 눈이 멀고, 걷지 못하고,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상태였습니다. 눈먼 늙은 어머니가 서서 “아, 누가 좀 저를 물에 넣어 주지 않겠습니까?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수두증으로 머리가 커다란 아기를 데리고 서 있었고, 늙은 아버지는 서서 도와 달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곁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들 누구에게도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찾으시는 그 사람을 발견하실 때까지 가셨습니다. 성경을 주의해 보셨습니까? “그가 그런 상태로 이미 오랫동안 있었음을 아시고”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노라.” 그분은 바닥 요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여러분 북부 사람들이 바닥 요라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데서 자랐습니다. 바닥 요가 뭔지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 켄터키 어디 출신이십니까? 바닥 요 말입니다. 아, 문간에서 낡은 짚 베개를 베고 눕던 것이지요. 여러분이 그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베갯잇에 짚을 가득 채우고 바닥 요에 눕는 겁니다.
이 사람은 바닥 요에 누워 있었습니다. 전립선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결핵을 앓았을 수도 있습니다. 병의 진행이 더뎠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그 병을 앓았습니다. 그 병으로 죽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눈이 먼 것도 아니었고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물로 가는 동안 누군가 먼저 도착합니다. 저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걸을 수 있었습니다. 볼 수 있었습니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그 모든 사람을 지나쳐 그에게 가셨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아, 그분은 그토록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노라.” 보십시오. 그분이 이 사람에게 “네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느냐?”라고 하셨을 때, 그는 “저를 물로 데려다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19절에서 그분은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유대인들에게 하신 대답이 여기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다만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그 일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맞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실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아버지께서 일하시고 나도 지금까지 일하노라.”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 주시지 않고서는 기적을 한 번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므로 잘못된 말씀을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여기서도 ‘나’는 대명사, 곧 인칭대명사입니다.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한 곳에서는 “세상의 끝까지 너희 안에까지 있겠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면... 때가...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시대를 거쳐서요”라고 하십니다. 맞습니다. 사도들의 시대 이후 역사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지금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마지막 마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을 거쳤고, 감리교 시대와 침례교 시대를 지나 오순절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것도 거의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이 시대의 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그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에게 해 주신 일을 우리에게는 해 주지 않으시는 것이 됩니다. 제가 자주 말했듯이, 이 세대의 사람들, 이 오만한 미국이, 우리 모두가 그 국민입니다만, 미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다면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일으켜 그들을 불태우신 것에 대해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정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자녀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십니다. 모두가 그분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이방인 시대의 끝입니다. 우리는 끝에 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때 행하셨던 그대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심을 입증하십니다. 죽어 계시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심을 입증하시며, 자신이 일하실 수 있는 그릇들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여기 강단에서 그분이 무엇을 하시든, 여러분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가려져 있다면... 그분이 이 강단에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빠져나갈 길을 찾을 겁니다. “아, 글쎄요” 하며, 그때 유대인들처럼 “아, 무슨 속임수겠지요. 아니면 텔레파시이거나, 영매나 그런 것이겠지요”라고 할 겁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은 데려가시지만 그분의 영은 결코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엘리야 위에 계셨던 영이 엘리사에게, 그리고... 침례자 요한에게 임하셨습니다. 여러 경우 주님의 그 영들은 그 영을 지닌 사람이 떠난 뒤에야 알려집니다.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잠시 지난날의 선지자들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여러분은 알아보십시오. 오, 하나님, 그들의 깨닫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침례자 요한이 죽어 묻힐 때까지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제자들조차 “왜 선지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이미 왔지만 너희가 그를 알지 못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그분께서 요한을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고 묻히셨다가 다시 일어나신 뒤에야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몰랐습니다. 성 패트릭이 죽어 묻힌 지 거의 200년이 되도록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 가톨릭 신자 여러분도, 환상을 보며 영적인 사람이었던 그 작은 여인 잔 다르크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자를 마녀처럼 말뚝에 묶어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200년 뒤에... 아니, 여러 해 뒤에 그 여자가 성인이었음을 깨닫고, 참회하려고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 오늘날 온 땅 위에서 움직이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분은 어떤 것을 밝히 알리려고 자기 영을 보내십니다. 우리는 뻣뻣하게 앉아 마음을 굳게 하고 무관심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심판 외에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그분의 말씀을 지킬 책임이 있으시지만, 그 말씀을 넘어서는 것에는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자기 말씀을 지킬 책임이 있으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매일 밤 너무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다나엘이 집회에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다는 것을 압니다. 맞습니까? 그들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는 것 등, 다른 여러 방법으로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언제나 초자연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은 언제나 말씀과 함께합니다. 오늘 밤 제가 이 강단에 서 있고, 뒤에는 제가 아는 참된 학자 두 분이, 세 분이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저 밖에도 그보다 더 많은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구약에는 선지자나 꿈꾸는 사람이 참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론의 가슴받이였다고 믿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할 때 그 빛들의 무리가 함께 작용하여 크고 영광스러운 빛을 내면 선지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작용하지 않으면 선지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제사장직은 끝났고 아론 계통의 제사장직은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새 제사장직이 있습니다. 새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진실을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 안에 있는 빛들이 그것이 진실임을 비추어 줍니다.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이었습니까? 초자연적인 반사였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그 여러 보석이 모두 무지갯빛을 내보낼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선지자가 예언할 때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거짓된 선지자라면 아무 반응 없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선지자라면 그것이 알아보고 초자연적인 표적을 내보내어, 사람들이 그 선지자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일을 예언하고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하신다면, 여러분, 그것이 우림과 둠밈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을 때입니다.
그분께서 오늘 밤 오신다면... 오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가 그분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시고, 사시고, 행동하시고, 하신다면,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여기서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분이 그렇게 하시면 진실임을 알겠습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실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훌륭합니다. 좋습니다.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어떤 입장인지 아시겠습니까? 다음에 행동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말씀은 사실이 아닌 것을 선언하는 것이고, 저는 거짓된 말씀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테이프 공백.]
하지만 아, 저는 한 번에 50만 명 앞에서 그분께서 같은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했을 때, 3만 명의 철저한 이교도들이 자기 우상들을 땅에 깨뜨리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번의 제단 초청에 3만 명이었습니다. 손에 우상을 쥐고 있던, 표를 달아 확인한 철저한 이교도 3만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 사람들은 “글쎄, 저건 뭔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필립 존스 박사님이라든가, 아무튼 그분이... 아시잖아. 그분은 내게 이게 다 텔레파시라고 하시던데”라고 합니다. 아, 친구여, 마음을 여십시오. 저기 집회에 계신 여러분,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 제가 알게 해 주십시오. 이 마지막 날에 주님의 긍휼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쓴 글씨가 벽에 나타났습니다. 하늘에 있는 스푸트니크를 보십시오. 아시겠죠? 지금 세상이 참으로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에 표적들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자신을 나타낼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교회에는 긍휼 가운데, 그분을 거절한 세상에는 심판 가운데 계십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주님, 어쩐지 오늘 밤 저는 참된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 주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모든 마음이 열린다면 오늘 밤 이곳에서 얼마나 놀라운 일이 되겠습니까? 주님, 주님의 종은 너무나 부족하고 이 일을 맡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그들이 알게 하옵소서. 하지만 주님, 누가 자격이 있겠습니까? 어떤 죽을 인생이, 시간 속에 사는 어떤 피조물이 자격이 있겠습니까? 주님, 그 일들을 행하며 나타내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이실 것입니다. 주님, 오늘 밤 이 교회에 많은 이가 앉아 있습니다. 앉아... 이 강단에 서서, 위대한 사람들이 설교했고 위대한 목소리들이 이 마이크들을 통해 울려 퍼졌던 이곳에서, 많은 이가 이것이 올 이때를 미리 말했습니다. 주님, 오늘 밤 그토록 크게 부어 주심으로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오고, 걷지 못하던 이들이 걷고, 눈먼 이들이 보고, 병든 이들이 고침을 받아, 내일 이 도시 전체가 간증이 넘치는 큰 장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날에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에게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함께 있는 우리를 복 주옵소서. 이제 모든 불신을 차단하옵소서. 거스르는 모든 것을 몰아내옵소서. 원수의 영을 꺾으시고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매일 그들이 내려와 사람을 제 앞에 세우는 것은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저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믿으십니까? 성경은 교회에 첫째로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교사, 목사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역의 은사가 다섯 가지라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도자와 교사와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다음에는 몸 안으로 들어오는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방언을 통역하는 것, 지혜와 그 밖의 여러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그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오늘 밤에는 이 사람에게, 내일 밤에는 저 사람에게, 그다음 밤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건물 곳곳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지역의 몸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리 정하심으로... 우리는 ‘예정’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쓰기에는 좋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아심으로 예정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분은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 위에 있을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끝을 말씀하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미리 아심으로 그들이 어차피 멸망할 줄 아셨으므로,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제게로, 오늘 밤 이 앞으로 나오게 하여 기도 줄이 시작되는지 보려면... 매일 밤 이제, 저희는... 기도 카드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기도 카드는 번호가 적힌 작은 카드입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처음,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 여러 해 전, 약 10년 전에 제가 처음 시작한 때를 기억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여기 그런 분이 계십니까? 손들을 보십시오. 좋습니다. 그때 제가 사람들에게 하던 방식은 손을 잡고, 제게 어떤 말씀이 들려올 때까지 그대로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제가 신실하기만 하면 사람들의 마음속 비밀까지 알게 되리라고 그분이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제가 했던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같은 분들, 그 말을 들으셨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 일을 직접 보신 적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들으십시오. 이제 이것을 능가할 또 다른 역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곧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 위로 나아갑니다. 원수가 홍수같이 올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대적하여 군기를 들어 올리십니다. 그렇습니다.
믿기 위해 표적을 찾지는 마십시오. 예전에는 저희가, 저희에게는... 기도 카드가 없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저 “기도받고 싶은 분은 모두 일어나십시오”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주먹다짐이며 온갖 일이 벌어졌고, 서로를 쓰러뜨리고 밀어냈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영광의 본향으로 가신 보즈워스 형제님... F. F. 보즈워스를 아셨던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제가 아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성도였습니다. 며칠 전,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예수님을 만나러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밤 그분은 본향에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한 시간쯤 전에 혼수상태에 들어가셨다가 몸을 일으켜, 여러 해 전에 자신이 설교를 전했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악수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시면서 “여러 해 동안 뵙지 못했군요”라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은 모두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우리도 삶을 숭고하게 만들 수 있고, 떠나면서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 저의 마지막도 그와 같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집회를 경기장처럼 만들고 계십니다.”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역하는 내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세 차례를 머무른 뒤에야 기도해 주었지요. 세 차례 집회에서 가르침을 받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지요”라고 했습니다. 카드 몇백 장을 인쇄하고 “그곳으로 내려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곳에서 기도 카드를 나눠 주던 누군가가 카드를 팔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협력하는 목사님들께 각자 일정한 수의 기도 카드를 보내 드리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목사님이 자기 교인들을 먼저 들여보내셨고, 그 일로 목사님들 사이에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저희가 직접 내려가 기도 카드를 나눠 주겠습니다. 그러고는 사람을 하나...”라고 했습니다. 제 형제에게 함께 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형제를 내려보냈습니다. 그가 기도 카드를 나눠 주었는데, 그러다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불분명한 말] 제가 기도 카드 10장, 15장 정도밖에, 많아도 25장 이상은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카드 번호가 그보다 높으면 사람들은 “필요 없어요. 제 차례는 오지도 않을 테니까요” 하며 바닥에 던져 버리곤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도 카드를 보내서 하룻밤에 전부 나눠 주고, 그중에서 번호를 부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둘째 날 밤에 온 사람들은 강단에 올라올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도 안 됐습니다. 아, 이 일로 참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합시다. 기도 카드를 나눠 주고...”라고 했습니다. 기도 카드는 꼭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앞자리에 앉은 어린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이 앞에 서서 숫자를 세게 합시다. 그 아이가 세다가 멈추는 바로 그 번호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엄마가 아이에게 자기 번호에서 딱 멈추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안 됐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캐나다로 건너가다가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려가 매일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어라. 매일 나누어 주어라. 그러고 나서...” 그날 밤 나눠 주던 청년들은, 빌 형제님이 나눠 줄 수도 있고 레오나 진이나 제 아들 빌리 폴이 나눠 줄 수도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기도 카드를 나눠 줍니다.
그들은 기도 카드를 가져와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모두 뒤섞고, 곧장 회중 속으로 나가 “한 장 원하십니까? 한 장 원하십니까?” 하며 나눠 줍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카드가 다 떨어질 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분은 1번을 받고 저분은 50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들어오면 50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10번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어디서 시작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래서 보통 오후에 나눠 줍니다. 카드는 서로 바꿀 수 없고, 사람들은 가르치는 집회에 남아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드를 나눠 주기 전에 신유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청년들이 그곳에서 카드를 나눠 줍니다. 제가 5번부터 시작해서 5번에서 10번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날 밤에는 95번부터 시작해서 이쪽으로 거꾸로 올 수도 있습니다. 어디든, 제가 여기 서 있을 때 생각나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공정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는 일은 단지 사람들을 이 앞으로 나오게 하여 몇 사람을 줄 세우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고침을 받느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조금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성령께서 움직이시기 시작하게 하여 건물 안에서 의심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집회 전체로 곧장 나아가,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그들을 부르십니다. 마치... 여러분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죠? 그런 방식입니다. 최근에 제 집회에 오셨던 분은 누구나, 강단에 올라온 사람들에 비해 회중 속에서 지목되어 고침을 받는 사람이 열 배나 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최근 제 집회에 오셨던 분 중 그것이 사실임을 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열 대 일입니다. 기도 카드는 여러분의 치유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카드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여기로 불려 나오시는 것은 그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은사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여자는... 그분은 누가 자신에게 손을 대었는지 모르셨습니다.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 여자는 무엇을 했습니까? 여자가 그것을 작동시켰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사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것을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분의 눈을 헝겊으로 가리고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며 “자, 예언자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라고 한 로마 병사는 어떻습니까? 그는 아무 효능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그는 오늘 밤 고통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갔을 때를 보십시오. 마르다가 그분께 와서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겪고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분은 그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 계셨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여기 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께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께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무덤에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미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다만 곁에 서 있는 이들 때문에 내가 그것을 말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때는 기운이 빠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자에게 일어난 일보다 얼마나 더 큰 일이었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사를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아시겠죠? 이때는 여자가 그분의 은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일으킬 수도 전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긴장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 하나님, 저는 그것이 진실임을 온 마음으로 엄숙히 믿습니다. 저에게는 이러이러한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지 지켜보십시오. 여기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믿어 온 분을 압니다.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말씀하시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말을 테이프 등에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하나님의 어떤 거룩한 약속이든 그것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그 약속을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 곧 그 약속에 대해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시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카드들을 나눠 주었나요? J-1번부터 100번까지군요. 모두 줄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몇 분만 줄을 세우겠습니다. J 1번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J와 1번이 적힌 기도 카드입니다. 바로 저기 계신 여자분이군요. 자매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2번, 2번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3번은요?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곧장 내려오십시오. 4번은요? 저 뒤의 신사분이십니까? 5번, 5번은 누구십니까? 여자분이군요. 6번은요? 카드를 보십시오. 자매님이 6번이십니까? 보라색 옷을 입고 이쪽으로 오시는 여자분, 6번이십니까? 5번이군요. 6번, 6번을 가지신 분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1, 2, 3, 4, 5. 기도 카드 6번입니다. 혹시 어떤... 보십시오. 여기 휠체어에 여자분이,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카드를 확인해서 그 번호인지 보십시오. 6번입니다. J 6번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누군가가... 옆 사람을 보십시오. 누군가 귀가 들리지 않아 못 듣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카드 번호를 놓칩니다. 옆 사람의 카드를 봐 주십시오. 이 건물 안에서 기도 카드를 가지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50장 정도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여기 기도 카드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시기 원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건물 어디에 계시든, 누구시든 상관없습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이제 누가 먼저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의 약 80퍼센트가 기도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좋습니다. 1, 2, 3, 4, 5. 6번, 기도 카드 6번 계십니까? 옆 사람을 보시고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걷지 못하는 분인지도 보십시오. 그렇다면 누군가 도와 일으켜 주시고, 안내자를 불러 그분을 들어서 이 앞으로 모셔 오십시오. 6번 계십니까? 좋습니다. 7번입니다. 자매님이 7번이십니까? 7번입니다. 8번입니다. 8, 9, 10, 11번. 11번이십니까? 10, 11번. 저 뒤에 계시는군요. 12번, 12번. 손을 드신 건가요? 좋습니다. 13번, 14번. 건물 곳곳, 아무 데나 흩어져 있습니다. 청년들은 원하는 분 누구에게나 카드가 다 떨어질 때까지 나눠 줍니다. 이곳에 몇 장, 저곳에 몇 장, 곳곳에서 나누어 주어 모두 한곳으로 몰려들어 서두르지 않게 합니다. 좋습니다. 이제 15번 정도까지 된 것 같습니다. 형제님들, 몇 분입니까? 15명쯤 됩니까? 15명입니까? 좋습니다. 기도 줄을 시작해 봅시다. 그저... 우리가... 좋습니다. 잠시만요. 이분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그다음에...
여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 가운데 [불분명한 말]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주님, 오늘 밤 저는 주님을 믿겠습니다. 제 믿음을 주님께 두겠습니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 안에 계시다는 진실을 그가 설명한 것이라면, 그도 교회의 한 지체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형제자매이며 그저 교회의 지체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주님, 저는 엄숙한 믿음을 주님께 두겠습니다. 저 사람이 돌아서서 저를 부르고 제가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 말해 주게 하십시오. 어떤 것을 말해 주게 하십시오. 그분이 하시는 것처럼... 성경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하십시오.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손을 높이 들고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알 방법이 없습니다. 곳곳에 계십니다. 좋습니다. 이제 그저 믿으십시오. 그저 믿으십시오. 기도 카드가 없으시면... 물론 번호로 불려 나오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기도 카드가 있으시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자,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내일 오후 집회를 기억하십시오.
여기 제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신 적이 없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한 번도... 보십시오. 좋습니다. 저쪽 별도 좌석에까지 모두 계시군요. 좋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이나 여기 계신 분들처럼 말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제가 그 책은 잘 모를지 몰라도 그 책의 저자는 아주 잘 압니다.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분을 압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말한 것이... 바로 그때가 왔습니다. 오늘 밤 제가 한 말이 진실이고 말씀이라고 믿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것은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을 계속 가지시면 이 사흘 밤 동안 큰일들을 보실 것입니다. 분명히 보실 것입니다. 그 천사의 사진을 보신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한번... 텍사스에서 찍은 것입니다. 청년들이... 그 사진들을 여기 가져왔나요? 보십시오. 오늘 밤 제가 죽더라도 그 증언은 여전히 옳습니다. 할 수 있으면 내일 언제 한번 여러분께 그것을 [불분명한 말]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빛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불기둥을 따라갔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 불기둥이 그리스도, 로고스, 언약의 천사였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셨을 때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신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분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나셨을 때 다시 불기둥으로 돌아가 계셨으며, 바울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좋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제 제가 교회에 말씀드리려고 했던 그 영이... 제가 생후 18개월 된 아기였을 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막 말을 시작했을 때, 제 기억에 있는 최초의 일은 환상입니다. 그런 일이 수백 번, 수백 번, 또 수백 번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틀릴 수도 없습니다. 틀린다면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시므로 틀릴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인도 봄베이에서 한 번에 50만 명 앞에 섰고, 아프리카에서는 이교도를 비롯한 약 20만 명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에게 도전하면서 한 손에는 코란을,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이 둘 중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립니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게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형제님, 들으십시오. 심령적인 말도 좋습니다. 그저 말하고 설교하고... 하지만 들으십시오. 때가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때가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그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날마다 그분과 동행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들,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그의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온종일 그분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분의 부활의 날이었습니다. 사흘 전에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여기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서 눈을 닫으실 수도 열어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분명히 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밤 여러분의 눈을 열어 주시게 하십시오. 아시겠죠? 엠마오에 도착하신 뒤 그분은 더 가려는 것같이 하셨고, 그들 중 몇 사람이 들어오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방 안에 들이시고 문을 닫아, 오늘 밤 여기 있는 우리처럼 함께 들어앉게 하신 뒤에, 죽고 묻히시기 전에 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알아보았습니다. 눈이 열렸고, 줄곧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이 바로 그분이셨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에도 우리 마음이 그와 같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분께서 말씀을 성취하시려고 부활 전에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오늘 밤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권능을 보이시려고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권능을 보이시려고 병을 고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성취하시려고 병을 고치셔야 했습니다. 이제 경건하게 임하십시오. 이 사진은 실제로 찍힌 것입니다. 여기 있으니 원하시면 오늘 밤이나 내일 밤에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다음 날은 안 됩니다. 아시겠죠? 청년들이 테이프와 책 같은 것들을 여기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팔아 저희가 받는 돈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저희가 후원해야 할 라디오 프로그램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돈 때문에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들으셨지요...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26년 동안 목회자였지만 평생 헌금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후원을 받아야 하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열 명이 있는 교회에 가서 설교할 수도 있고 10만 명에게 가서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그분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저에게는 무슨 프로그램도 없고, 아무것도...
저희에게는 『나의 삶 이야기』라는 책들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이곳의 녹음 테이프를 만들어 아주 빠듯한 가격으로 팝니다. 사진은 제가 직접 삽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사진으로 이곳 워싱턴 D.C.에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사진에 담긴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라고 적혀 있습니다. 신문에서도 촬영했지만, 이번 것은 그 협회가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것이 내려올 때, 기름부음을 줄 때, 다시 올라갈 때를 촬영했습니다. 스위스에서도 촬영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그 영의 열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어야 합니다. 이제 한 사람으로서... 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령께서 움직이시도록 우리가 은사에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다면, 그다음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주님의 영께서 움직이게 하옵소서. 마음들에 기름을 부어 믿게 하시고, 주님, 저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주님께서 이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제가 이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오,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기 앉아 계신 여자분을 저는 모릅니다. 아니, 여기 서 계신 분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시도록 말씀드립니다. 이 건물 안에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기도 줄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가 여러분을 모르고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줄에 계신 분들 말입니다. 아시겠죠? 저기 계신 분들 중 제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섬럴 형제님과 제 아들, 베일 박사님, 그리고 여기 매캘리스터 형제님이 계십니다. 조금 전에는 워털루 집회에 왔던 제 메노나이트 친구 한 분이 어딘가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동안 어디에 계셨는지 잊었습니다. 이 건물 어딘가에 계십니다. 메노나이트 형제님인데... 지난주 워털루 집회에 오셨던 분입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나가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여기 어딘가에 메노나이트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오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집에도 오셨고 함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 건물 어딘가에 계십니다. 메노나이트 성직자 외투를 입으셨으니 혹시 알아보시겠습니까? 아무도 모르시는군요. 그러니 이제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주님, 저는 그저 믿습니다. 그저 믿습니다”라고 하십시오.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임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주님을 대표하려고 이곳에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여자분과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늘 밤 첫 번째로 나오신 분입니다. 이 여자분이 제게 낯선 분이라면... 만약...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린 요한복음 4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그 여자,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은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실 때까지 잠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그것을 믿으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예수님은 여자의 문제를 아실 때까지 대화하셨습니다. 그분의 영이 오셔서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이 여자분의 문제를 알아내신다면, 온 마음으로 믿으며 “믿겠다고 약속합니다”라고 하실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먼저 손을 들고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따라 맹세는 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평생 이 여자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낯선... 자매님, 우리가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요? 자매님은 저를 보셨군요. 집회에 앉아 계셨습니까? 10년 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아드님과 함께 기도 줄을 지나오셨군요. 그렇다면 제가 이분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지 상상하실 수 있겠지요. 아시겠죠? 저는 한 번도... 그 후로 많은 사람, 수백만 명이나 만났습니다. 제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 줄에 계셨다면 어차피 제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저 뒤에 스미스 형제님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부의 잡지에 글을 쓰시는 분입니다. 텍사스인 것 같습니다... 아니, 오클라호마입니다. 스미스 형제님. 예, 형제님과 부인을 뵈니 반갑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 녹음 테이프를 듣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전해진 모든 말을 저희는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그분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아신다면... 제가 이 여자분에게 말한다면... 이분은 아플 수도 있고 아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여기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왔을 수도 있고 가정 문제로 왔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아시겠죠?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저 “자매님, 아프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자매님이 “예”라고 하실 겁니다. 제가 손을 얹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자매님은 나으실 겁니다. 할렐루야. 가셔서 그것을 믿으십시오”라고 한다면, 자매님에게는 그것을 의심할 권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의심하실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그런지 의문을 품을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자매님이 알고 계시는 삶의 지난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오래전에 하신 일이나 여기 오기 전에 먼저 하신 일, 혹은 어떤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맞는지 아닌지는 자매님이 판단하시게 하십시오. 저기 계신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과거의 일을 아신다면 앞으로 있을 일도 분명히 아시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것이 증거가 됩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여자분은 체격이 크고 튼튼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아프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여기 휠체어에 어린 소녀 한 명과 여자 두 분이 앉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휠체어에 계시며 걷지 못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압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기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분은 어떻습니까? 튼튼해 보입니다. 여기 여자분들과 남자분들, 혹은 저 밖에서 튼튼하고 건강해 보이는 분들은 어떻습니까? 바로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이제 아주 경건하게 임하십시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시간을 끌고 계시는군요”라고 하십니다. 압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분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제게 오시지 않으면, 저는 그저 기도로 집회를 마치거나 [불분명한 말] 하겠습니다.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매님, 괜찮으시면 “오직 믿으라”를 부탁합니다. 모두 아주 경건하게 임하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제 이 여자분과 잠시 이야기하는 동안 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자, 자매님... 그리고 마이크를 맡으신 분은 이제 주의해 주십시오.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 있게 되므로 자기가 얼마나 크게 또는 작게 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담당하시는 분... 음향 기사님, 환상이 시작되면, 시작될 경우에 소리가 잘 들리도록 높여 주십시오. 아, 여러 해 전에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강단에 서신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때는 참으로 놀라운 날들이었습니다. 기억합니다. 기억하기로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어느 날 오후에 3천 명이 기도 줄을 지나갔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동일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위대하십니다.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영은 성령께 복종합니다. 경건하게 임하십시오. 그분이 여기 계십니다. 저는 자매님을 알지 못합니다. 아프시더라도 제가 고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옷을 입고 여기 서 계신다고 해도, 자매님이 아프시면 그분은 자매님을 고치실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그분이 여기 계심을 자매님이 알게 해 주는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영의 모습으로 계시는 그분께서 같은 일을 위해 자기 종의 몸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자매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제가 성경에서 진실을 말씀드렸다고 믿으십니까? 엄숙히 믿으십니까?
지금 자매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다. 자매님의 형제인 제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이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저와 이 여자분 사이에서 그 빛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분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먼저 제가 이분을 봅니다... 방을 지나 제 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양옆을 문지르고 계십니다. 지금 의자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계십니다. 류머티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한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이분이 판단하시게 하십시오. 자매님, 맞았습니까?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여기 서 계신 이 여자분을 보시면, 그것이 무엇이었든 여러분은 그 음성을 들으셨지만 제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 둘 다 손을 들고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만나 본 적이 없고, 다만 자매님이 기도 줄을 지나오셨을 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이라면 아마 소 떼를 몰아가듯 사람들이 빠르게 줄을 지나가고 있었을 때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여기를 보십시오. 이제 이것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매님께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무엇이었든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자매님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언합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과 더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똑같은 일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문제를 알아내셨고, 그것이, 무엇이었든 그것이 진실이었습니다. 이분은 진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여자분이 손을 드십니다. 자매님, 진실입니까? 보십시오. 무엇이었든 사실입니다. 이 여자분과 더 이야기하면 더 많은 것이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아시겠죠? 이분이 여기 서 계시니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기를 여러분 모두 원하십니까? 그러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냥 줄을 지나가시게 할까요? 좋습니다. 이 여자분과 잠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경건하게 임하십시오. 자매님, 제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레오, 거기 녹음하고 있지요? 아시겠죠? 좋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입니다. 저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이제 다시 바라보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제가 자매님의 생각을 읽는 것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생각이 제게 전해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 여자분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이분의 영과 접촉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분은 그리스도인 여성입니다. 이분의 영이 반갑게 맞아 주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분일 수도 있지요. 아시겠죠? 하지만 이분은 그리스도인, 참된 신자입니다.
제 목소리가 아직 들린다면... 예, 그 여자분이 보입니다. 무엇인가를 하고 계십니다. 예, 류머티즘입니다. 몸에 류머티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어떤 곳에서 속옷을 갈아입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분은 무슨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안에... 유방에 있습니다. 유방에 종양이 있습니다. 암입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또 이 여자분은 이 고장 사람도 아닙니다. 큰 호수 근처에 있는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과일이 많이 자라는 큰 고장입니다. 북쪽입니다. 이분은 미시간주 벤턴하버에서 오셨습니다. 성함은 맨스필드 부인입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자매님, 이제 믿으십니까? 그분이 무엇이라고 하셨든 진실이었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자매님이 “말씀마다 다요”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었든 기도합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이든, 자매님이... 구한 것을 받으실 수 있도록 저와 함께 이분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제 이분에게 큰 힘이 될 것은 여러분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의 자녀들이 믿고 있습니다. 오, 주님. 이 여자에게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든 지금 바로 이루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이 여자를... 무엇이든... 아프다면 고쳐 주옵소서. 다른 소원이 있다면 그것을 주옵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믿으며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믿으신 대로, 구하신 그대로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고 계십니까? 아주... 저기 계신 여러분, 참으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실 것입니다. 여기 기도 줄에 계신 분들도 잠시 계속 믿고 계십시오. 아, 지금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이제 그분이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영이 모두를 복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아,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저 믿으십시오. 자매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저희 집에 오셨군요. 제가 자매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수백 명, 수백 명, 또 수백 명이 그곳에 옵니다. 자, 봅시다. 저는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모릅니다. 전혀 짐작도 못합니다. 그 점은 자매님도 아십니다. 주님께서 자매님의 문제를 제게 밝혀 주시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회중도 믿으시겠습니까?
여기 제 손을 듭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여자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저희 집에 오셨다고 하시지만, 아, 그곳에 오신 분이 수백 명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제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자매님의 간구를 밝혀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그 손수건에 손을 대기를 원하십니다. 그 손수건은 자매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를 위한 것입니다. 인척이 되는 자매분입니다. 그분은 주립병원에 계십니다. 이 주가 아니라 오하이오주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주님. 아멘.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가셔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선생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여기 제가 뵌 적도 만난 적도 없는 남자분이 계십니다. 선생님, 회중 가운데 앉아 계셨던 적이 있습니까? 시카고 집회에 오셔서 강단에 선 저를 보셨답니다.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무엇인지, 누구인지, 그에 대해 아무것도 전혀 모릅니다. 아시겠죠?
사람들이 아는 것 때문에 이런 것들을 좀 삼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어디엔가 온 적이 있다고들 하셨습니다. 제가... 회중이 안다면...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은 처음이고, 저는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모릅니다. 선생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것을 알려면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밝혀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분을 믿으십니까? 방금 기도하고 계셨지요? 죽어 가는 상태입니다. 맞습니다. 암입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금 그분께 손을 대셨습니다. 그분께 손을 대셨고, 제게 손을 댄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불분명한 말] 그저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기 그 여자분 곁에 앉아 계신 분, 그분 쪽을 보셨군요.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그것을 아시지요? 머리에 문제가 있으십니다. [불분명한 말] 맞으면 이렇게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불분명한 말] 이제 그것이 떠났습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그분께 손을 댄 것입니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으시면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이끄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빛입니다. 저는 그저 빛이 이끄는 대로 따라갑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회중에게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린다면, 여기 이 남자분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어둠이 이분을 덮고 있으며, 이분은 방금 의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가 이 주변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선생님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대고 있습니다... 심장병입니다. 그것입니다. 심장병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들립니다. 좀 건장하게 보이는 남자인데, 다시 일하러 가려면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선생님께 말합니다. 맞습니다. 심장 발작을 여러 번 겪으셨습니다. 일곱 번입니다. 때로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물조차 위에 담아 두실 수 없습니다. 다시 토해 버리십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이 사람을 복 주옵소서. 그가 구한 것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아멘. 이제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선생님의 치유를 구합니다. 믿으며 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움직이지 마십시오. 이제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우리 주님은 놀랍지 않으십니까? 참 좋으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그분이 자매님의 문제들을 제게 밝혀 주시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처음이지요? 이쪽 방향에서 자꾸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저 방들 뒤쪽 어딘가인 것 같습니다. 계속 저를 그쪽으로 끌어당깁니다. 참으로 믿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매님의 문제를 제게 밝혀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시며, 그러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제 회중 가운데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아, 보십시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그 말씀을 지키셔야 한다면, 그분이 하신 다른 모든 말씀도 지키십니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병을 고치시는 것에 비해 지금 하시는 일이 얼마나 더 큰 일입니까? 그분은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분은 자기...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으십니다.
이 여자분은 자신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여기 서서 대신하고 있는 그 사람도 이곳에 없습니다. 어머니이셨습니까? 자매님이 기도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암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방금 자매님이 한 일이 있습니다. 달리 알지 못해서 하셨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자매님이 받은 이 기도 카드는 친구가 대신 받아 준 것입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집회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매님은 모르셨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자매님께 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빌리, 어떻게 된 거니? 어떻게 그것을 놓쳤니?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죄를 지으신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손에 들고 계신 그 작은 손수건을 가져가 어머니 위에 놓으십시오. 어머니 위에 놓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불분명한 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온 마음으로 믿읍시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거기 앉아 계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바로 여기, 고개를 이렇게 흔들고 계신 연세 드신 남자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불분명한 말]을 고치시고 선생님을 낫게 하실 줄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줄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줄 믿으시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렇다면 믿으셨으니 선생님의 믿음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까? 평생 만난 적이 없지요. 잠시만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저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아야 합니다. 좋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 끝에 계신 분도 등에 문제가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맞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기가 힘드십니까? 그 남자분이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선생님, 조금 전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온 마음으로 믿으려고 하셨지요? 그렇지요? 보십시오. 그것은 선생님의 믿음이 들어오는 것이었지만, 제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말입니다. 여기 있는 이 영이 그 여자분을 붙들고 있으려고 할 때, 같은 것이 서로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검은 줄기가 이쪽으로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저는 환상으로 그 여자분을 보았고, 제 앞에 남자 한 분도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여기 앉아 있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았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척추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로 생긴 것입니다. 코코모로 돌아가서 낫기를 원하십니까? 좋습니다. 코코모의 집으로 돌아가서 고침을 받으십시오. [불분명한 말]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성경은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저기 류머티즘으로 앉아 계신 분, 그것도 자동차 사고로 생긴 것입니다. 예, 참으로 믿고 계십니다. 아멘.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쪽에 앉아 계신 분은 탈장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선생님도 고쳐 주실 줄 믿으십니까? 지금 바로 믿으실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분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좋습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더 진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여러분 모두가 고침을 받을 때입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고 믿으십시오. 기도 줄에 계신 여러분 [불분명한 말]. 앞으로 나오셔도 저희는 같은 일을 할 뿐입니다. 그저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자, 보십시오. 이 기도가 끝나는 대로 모든 죄인은 이 제단 앞으로 서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의 임재가 여기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여기 계십니다.
예, 맞습니다. 거기 앉아 여성 질환을 앓고 계신 분, 사랑하는 자매님, 주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결핵이군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가셔서 고침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기서 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면 저기서 하는 기도도 들으십니다. 그분은 성경 시대에 행하셨던 바로 그 방식으로 행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제 건물 곳곳에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 오, 아직도 이 땅에서 믿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오, 어떤 큰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위대한 시간에... 믿는 백성, 그들은 주님께서 이 일들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믿습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에게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지금 허락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과 모든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그들이 의식하게 하옵소서. 지금 바로 성령께서 이 회중 위에 권능으로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어디든 의심의 그림자가 있다면...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졌다. 네 정체가 드러났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여기 계신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엄히 명하노니 여기서 떠나라. 모든 질병과 모든 고통은 떠나갈지어다. 내가 마귀에게 부탁...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쫓아낸다. 사탄아, 나와라. 이 사람들을 내버려 두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아멘. 일어서십시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여기 고통을 안고 앉아 계신 여러분, 손가락을 귀에 넣으십시오. 무엇이었든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이곳 위에 움직이시며 온 회중을 고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