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잠시 머리를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제 저희가 주님의 종으로 자신을 드리며 주님의 거룩한 임재 앞으로 나아갑니다. 저희 마음도 열려 있고 생각도 열려 있습니다. 이제 이어질 이 예배에서 저희가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일을 성령께서 맡아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님, 성령께서 나타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알려지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죄인들이 나아오고, 뒤로 물러났던 이들이 다시 교제 가운데로 돌아오며, 병든 이들이 치유받게 하옵소서. 또 교회가 기뻐하며 한층 더 높은 영역에서, 주님께 더 가까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됩니다.
방금 빌리가 제게 부탁했습니다. 오늘 밤 기도 카드를 받으러 다시 오지 못하는 분들 가운데 카드를 받고 싶은 분들이 여기 계신지, 원하는 분이 몇 분인지 물어봐 달라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주시면, 제게 차를 타고 돌아가시라고 하고 자기는 남아서 원하는 분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어쩌면 오늘 밤 여섯 시 반이나 일곱 시에 기도 카드를 받을 시간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인 것 같습니다. 집회에 방해가 없도록 카드를 일찍 나누어 드립니다. 아니면 여기 레오나 진에게 카드를 좀 맡겨 나누어 주게 해도 되겠습니다. 기도 카드를 받고 싶지만, 오늘 밤 카드를 받으러 다시 오실 수 없는 분이 여기 계십니까? 그럼, 빌리... 이쪽에 한 자매님이 손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오늘 밤 나누어 드릴 카드 가운데 한 장을 저 자매님께 드리십시오. 바로 이쪽에 계신 자매님입니다. 그러면 제가 알기로는 오늘 밤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나누어 드리면 되겠습니다.
조금 전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목사님과 그 고운 사모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참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스위스 스테이크를 잔뜩 먹고 강단으로 걸어오면서 목사님께 오늘 오후에는 저 대신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아주 커다란 스테이크를 사 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 중요한 순서는 저녁 예배에 있습니다. 그때... 이제 저는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만약 내일 집회가 있다면, 내일 아침까지는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아침은 가볍게 먹고, 그다음에는 꽤 든든하게 점심을 먹는데, 대략... 제게는... 여러분은 점심을 ‘런치’라고 하시는 줄 압니다만, 저는 ‘디너’라고 합니다. 아직도 그 말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한 끼를 빼앗기는 셈입니다. 어디서 없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점심, 아침... 아니, 아침은 ‘브렉퍼스트’, 점심은 ‘디너’, 저녁은 ‘서퍼’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식사는 ‘디너’가 아니라 ‘서퍼’, 곧 주의 만찬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밤에 먹는 것을 ‘디너’라고 부르면, 제 ‘서퍼’는 어디로 가 버리는 것인지, 제가 조금 손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시겠죠? 늘 어디선가 한 끼를 잃어버립니다. 주님께도 유머 감각이 있으시니, 그분의 자녀들도 그런가 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얼마 전에 읽어 보니, 웃을 때보다 얼굴을 찡그릴 때 근육이 80퍼센트나 더 많이 쓰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찡그리는 것보다 웃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말씀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잠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찍 돌아가실 수 있도록, 아마 앞으로 45분 정도... 우리가 온 마음을 말씀에 쏟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뜻대로 다루시게 한다면, 그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저 뒤에 제 좋은 친구인 콜린스 형제님과 자매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참 반갑습니다. 콜린스 형제님과 콜린스 자매님은 제 좋은 친구들입니다. 형제님은 감리교 목사님이시고, 그 형제분도 목사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올라오셨습니까? 집에서 아주 멀리 오셨군요. 이 열대 지방 같은 날씨가 참 좋지요? 저는 이런 날씨가 좋습니다. 아, 이런 추위는 견딜 수 있지만, 더위는 못 견딥니다. 더위에는 맥을 못 춥니다. 저는 이런 날씨가 좋습니다. 눈에는, 특히 마른 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바퀴 밑에서 눈이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어릴 때 낡은 평판 마차를 몰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평판 마차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는 아내에게 오늘 오후에는 작업복을 입고 왔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처럼 농장에서 자란 분들과 어울리고 있으니까요. 아, 옷을 차려입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옷은 멜빵 작업복입니다. 저는 그 옷이 참 좋습니다. 그걸 입고 자랐으니까요.
어릴 때 수영하러 다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대략 5월부터 9월이 지나도록 셔츠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갤러스’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여기 북부에서는 ‘서스펜더’, 곧 멜빵이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여물을 묶는 노끈이 있었습니다. 여물 묶는 노끈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 노끈 말입니다. 여기에도 아직 시골 출신 분들이 계시는군요. 또 단추가 없어서 못을 단추 삼아 썼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셨습니까? 우즈 형제님, 손이 왜 그러십니까? 손을 드시는 것을 못 보았는데요. 우리는 개울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깃발 신호 보내기’ 놀이를 하려고 했지요. 먼저 들어간 사람이 물이 어떤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물이 차가우면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물이 따뜻하고 좋으면 손가락 둘을 들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벗을 것이 별로 없어서 대개 맨 먼저 들어갔습니다. 힘껏 달려가서 물가에 도착하자마자 그 못 하나만 뽑으면 준비 끝이었습니다. 제가 물속으로 뛰어들 때, 그 작은 작업복은 아직 공중에 그대로 서 있었지요. 그래서 오늘 오후에 저는 손가락 둘을 들겠습니다. 물이 좋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어린 시절, 그 황금 같은 날들에는 우리가 결코 잊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함께 읽기 원하시면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에 있는 이 아주 익숙한 말씀을 찾아 주십시오. 마태복음 17장입니다. 그중 일부를 읽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일찍 오셔서 좋은 자리를 잡으시고, 병들고 고통받는 분들을 모두 데려오십시오. 가능하면 병든 분들을 여기 앞쪽에 앉혀 주십시오. 그렇게 모셔서... 뒤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가로질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어렵습니다. 때로는 아주 뒤쪽에 있는 분에게 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디서든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저 뒤쪽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지나 그분에게 말을 하게 됩니다. 그분이 대답하지 않으면 그 빛이 그분에게서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게 됩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빨리 대답해 주십시오. 부르는 즉시 대답하십시오. 곧바로 응답하면 훨씬 더 잘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읽겠습니다. ...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니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 그분과 이야기하므로 그때에 베드로가 응답하여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 ...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게 하옵소서, 하더라.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는데, 보라, 그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므로 저는 마지막 세 단어를 본문으로 삼아 거기에 담긴 뜻을 조금 살펴보려고 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혼자 있으면서 자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제 첫 번째 성경은 자연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찾는 곳마다 그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하이오강 가에 삽니다. 여러 해 전에, 저희 집보다 강 상류 쪽에 살던 한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교회와 주일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누구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제가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엄마는 “나라면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주일학교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렴”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목사님께 가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물론 볼 수 없지.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분을 볼 수 없어.” 하지만 그 말로는 어린 소년의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늙은 어부 한 분을 따라 강을 거슬러 식스마일섬까지 가곤 했습니다. 그 늙은 어부는 나이가 많고 머리와 수염이 희었습니다. 어느 날 폭풍이 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부는 노를 젓고 있었고, 어린 소년은 배 뒤쪽, 고물에 앉아 있었습니다. 늙은 어부가 노를 젓고 있는데... 아, 이곳 인디애나는 비가 온 뒤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나뭇잎이 모두 깨끗이 씻기고, 아주 상쾌한 냄새가 납니다. 물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어서 노를 저어 당길 때마다 찰박거립니다. 노를 저어 본 사람은 누구나 그 배의 리듬을 압니다.
어부는 자꾸 어깨너머로 돌아보았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니 무지개가 나타나 지평선을 가로질러 둥글게 걸렸습니다. 늙은 어부는 그 무지개를 보다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에서 흐른 눈물이 흰 수염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배 뒤쪽에 앉아 있던 어린 소년은 계속 어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마음이 몹시 벅차올라 배 한가운데로 달려와 어부의 무릎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엄마도, 주일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대답해 주지 못한 것을 하나 여쭤볼게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어부는 노를 거두어 무릎에 올려놓고 아이를 두 팔로 안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작은 마음을 복 주시기를 빈다. 지난 40년 동안 내가 본 것은 모두 하나님이었단다.” 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저 밖에서도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자신을 비추어 나타내실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자연을 무척 사랑합니다. 사냥, 저는 사냥을 참 좋아합니다. 산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저의 첫 번째 성경은 조그만 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꽃도 젊을 때가 있고, 중년일 때가 있고, 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리가 내리면... 서리를 맞으면 죽음이 찾아옵니다. 조그만 머리를 숙이고 꽃잎을 떨굽니다. 그 속에서 작은 검은 씨 하나가 떨어집니다. 꽃에게도 장례 행렬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모르셨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10월의 바람이 지나가고 가을비가 하늘에서 눈물처럼 쏟아져 내리며, 그 작은 씨를 땅속에 묻어 줍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매서운 겨울이 찾아와 꽃에서 떨어진 작은 꽃잎들을 얼려 버립니다. 작은 알뿌리는 말라 얼어 버렸습니다. 줄기도 없어지고 잎도 없어지고 꽃잎도 없어지고 꽃도 없어졌습니다. 씨는 부풀어 터지고 속에 있던 즙이 흘러나옵니다. 그 작은 꽃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흙을 파서 실험실로 가져가 조사해 보아도, 그 속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봄 햇살이 그 흙을 조금만 비추게 해 보십시오. 또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어떤 과학도 찾아낼 수 없는 생명의 씨눈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꽃 한 송이가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이 살 길은 얼마나 더 잘 마련하셨겠습니까? 의로우신 아들이 떠오르실 때,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들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저는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석양 속에서 그분을 바라보고, 자연 속에서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일이 있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사냥을 많이 하던 콜로라도에 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엘크를 사냥합니다. 그해에는 눈이 내려 엘크 떼를 아래로 몰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제가 알기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도 약 35마일 떨어진, 깊고 높은 산속에 있었습니다. 사냥감을 잡으려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단둘이 있고 싶었습니다. 이런 집회들을 치르면 신경이 몹시 곤두섭니다. 또 그 분별과 환상 때문에, 자신이 제정신을 잃어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데 시인이나 선지자 같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셨습니까? 윌리엄 쿠퍼의 유명한 찬송,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기초가 있네”를 들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윌리엄 쿠퍼가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 찬송을 쓰게 한 영감이 떠난 뒤, 자살하려고 강을 찾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까?
미국의 훌륭한 민요들을 지은 스티븐 포스터는 영감에서 벗어나면 술에 취하곤 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마침내 곡을 쓰던 영감에서 벗어나자, 가져다가... 하인을 부르고, 면도칼을 가져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요나에 대해 생각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요나가 예언을 전한 뒤 세인트루이스만큼이나 큰 도시가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영감이 떠나자 요나는 언덕에 올라가 자기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엘리사가 같은 날 하늘에서 불도 내려오게 하고 비도 내려오게 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리고 혼자서 제사장 400명을 죽이고 그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런데 영감이 떠나자 이세벨 왕비의 위협을 받고 도망쳤습니다. 40일 밤낮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동굴 속에 물러나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왜 그것이 사람을 쇠약하게 하는지 의아해하십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습니까? 영감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산속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엘크 떼는 아래로 내려옵니다. 제 친구인 목장 주인은 어쩌면 수 마일 떨어진 다른 산마루에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서쪽 비탈에서 엘크를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비가... 초가을에는 잠시 비가 내리다가 잠시 눈이 오고, 그러다가 멎고 잠깐 맑아집니다. 폭풍이 몰아쳐서 저는 쓰러진 나무들 근처의 나무 뒤에 서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폭풍이 잦아들자 바람이 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상록수들은 온통 얼어붙었고, 추위에 큰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하나님의 크고 신비로운 눈과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의 한가운데 있는 푸른 하늘이 그분의 푸른 눈 같았습니다. 그분께서 서쪽 바위틈 사이로 바라보시자, 골짜기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폭풍에 엘크 떼가 흩어졌습니다. 엘크들이 서로 나팔 같은 소리로 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서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골짜기 아래에서는 그 짝이 대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절반이 인디언 혈통입니다. 제가 회심했다고 해서 그 혈통까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윗이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라고 한 것과 같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제 혼 깊은 곳까지 전율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저 무지개 속에도 계십니다. 저 엘크 떼 속에도 주님이 계신 줄 알겠습니다. 저 회색 늑대의 울음에서도 주님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 이 높은 산속 어디에나 주님이 계십니다.” 저는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을 믿는 침례교인입니다. 총을 나무에 기대어 놓고,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누가 그곳에 왔다면 미친 사람이 하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있는 힘껏 나무 주위를 돌고 또 돌며 목청껏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멈춰 서서 두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오 위대하신 여호와여,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이곳에서 홀로 주님을 바라보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그런데 작은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만큼밖에 안 되는 조그만 녀석인데, 참 시끄럽습니다. 그 녀석이 제 건너편 그루터기에 뛰어올라서는, 제가 들어 본 중에서도 정말 요란하게 “재잘재잘, 재잘재잘, 재잘재잘” 떠들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작은 녀석이 왜 저렇게 흥분했을까? 나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 텐데. 하지만 내가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흥분했을지도 모르지.’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다. 나는 그저 우리를 지으신 분께 경배하고 있었단다.” 그러자 녀석은 작은 머리를 옆으로 갸웃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녀석은 저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독수리 한 마리가 폭풍 때문에 아래로 밀려 내려와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이 서로 겹친 곳, 그 나무들 밑에 있었습니다. 바람이 독수리를 몰아낸 것입니다. 엄청난 바람이 불었으니까요. 이 큰 독수리가 쓰러진 나무의 가지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러자 작은 다람쥐는 더욱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왜 장면을 바꾸셨습니까?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저 독수리에게 무슨 하나님을 닮은 점이 있어서... 저 새는 그저 썩은 것을 먹는 새 아닙니까.’
그러다가 독수리를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용감해 보였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닮은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를 쓰실 수 없습니다. 겁쟁이는 만 번이나 죽지만, 영웅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굳게 설 사람을 원하십니다. 저는 ‘그래, 저 독수리의 용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용기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봐, 내가 너를 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벨벳 같은 그 큰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작은 소나무다람쥐 쪽을 보았습니다. 저는 ‘무엇이 저 새를 저렇게 용감하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독수리는 새들이 흔히 그러듯 계속 날개를 움직이며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개가 여전히 괜찮은지, 아직 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그 날개를 믿고 의지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개를 주셨고, 제가 총을 손에 들기도 전에 나무들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 하나님, 바로 그것이군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강단에 오를 때 마귀가 허를 찌를까 봐 두렵지 않으십니까?” 저는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임재가 주위에 계심을 느낄 수 있는 한, 마귀에게는 무슨 일을 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임재가 계시는 한, 우리에게는 그것만 알면 됩니다. 얼마 뒤 독수리는 그 작은 소나무다람쥐의 소리를 듣는 데 싫증이 났습니다. 크게 한 번 뛰어오르더니 두어 번 날갯짓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날개를 퍼덕이지 않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저 날개를 어떻게 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기류가 올라오자 독수리는 그 기류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저는 지켜보았습니다. 바람이 한 차례씩 밀려올 때마다 날개를 그대로 편 채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더니, 마침내 작은 점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오 주님,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퍼덕퍼덕하면서 이번 주에는 감리교인이 되고, 다음 주에는 침례교인이 되고, 그다음 주에는 오순절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럴 로버츠의 치유 집회에서 윌리엄 브래넘의 집회로, 또 A. A. 앨런의 집회로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성령의 권능 안에서 어떻게 펼칠지 알고, 그것을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땅에 매인 채 여기서 “재잘재잘”, 저기서 “재잘재잘” 하는 소리는 두고 떠나십시오.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정신 감응이다.” 성령의 권능을 타고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올라가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십시오.
오늘 오후에 읽은 이 성경 본문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비범하십니다. 하나님은 비범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이 동일한 성경 구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편지를 한 통 쓴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제 친구이니 그 편지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는 여러분에게는 큰 의미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 편지는 그냥 버려질 것입니다. 또 한 번 읽고 나면 제가 전하려던 말을 모두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천 년 동안 사람들은 제가 오늘 오후에 읽은 이 동일한 본문을 읽었습니다.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 자신의 일부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보다 더 나은 분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말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여러분과 많은 일을 함께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그렇게 대하셔야 합니다. 제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제 가치는 제 말의 가치 이상이 아닙니다.
사업상의 거래에서도 여러분의 말은 보증입니다. 여러분의 간증은 참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말하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 날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오후 그리스도의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분을 반대하며 돌아다니고 그에 관한 것들을 부수고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지 않다면 그분도 옳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면 그분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알아 참 기쁩니다. 제가... 여러분은 저 성경의 어느 말씀에든 여러분의 혼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참되기 때문입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모두 참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제가 보기에 하나님을 위대하시게 하는 것은 그분의 지극한 겸손입니다. “나에게 함부로 손대지 마시오” 하는 사람을 만나 보셨습니까? 저는 살아오면서 위대한 사람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렸고, 왕궁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위대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은 오히려 여러분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 줍니다. 반면에 그저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온갖 거드름을 피우고 싶어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그런 척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앞서 말한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만나 주십니다. 한 번은 500명과 만나셨고, 또 한 번은 70명과, 또 열두 명과, 또 세 명과 만나셨습니다. 심지어 단 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도 만나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하나님이시게 합니다. 그분은 각 사람을 그토록 깊이 돌보시므로, 누구든 그분을 부르기만 하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요나를 만나러 고래 배 속으로 내려가시고, 엘리사를 만나러 산 위로 올라가시고, 다니엘과 함께 사자 굴 속으로 내려가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분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시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그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산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산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계신 성령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사람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거룩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거룩하신 영이 계십니다. 베드로가 이곳을 거룩한 산이라고 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산에서 그들을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모래땅이었습니다. 오늘 오후 여기서 잠시 멈추고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여러분 각자는 성령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셨던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자리를 기억합니다. 의심이 찾아오고 두려움이 일기 시작할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그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거룩한 모래땅을 밟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이야기했던 곳입니다. 두려움 같은 것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거룩한 모래땅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압니다.
베드로는 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 때 결코, 그저 아무렇게나 하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을 반드시 확증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 하나하나를 나타내신다는 사실이 오늘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헛된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말씀을 정확하게 하십니다. 이제 그분께서 이곳으로 올라가시는 것은 무언가를 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 여기 계신 여러 형제님들이 이 본문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하여 해석하시는 것을 압니다. 분명히 이 본문은 그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오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한 말씀 한 말씀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올라가실 때를 보십시오... 그분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이들을 소망과 믿음과 사랑으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야고보는 소망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입니다. 요한은 사랑, 곧 자애의 제자입니다. 소망과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땅에 속한 세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세 분도 있었습니다. 엘리사와 모세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려고 하십니다. “예수님도요?” 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여 주려 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마음으로 성경 속을 잠깐 거슬러 올라가 옛날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 오후 이 점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 가운데 몇몇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교회는, 특히 오순절교인들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영원히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그때는 이제 막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왕국 안에 인쳐 주었으니,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여러분의 상속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것은... 제 생각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초기 킹제임스 번역에 말입니다. 거기 요한복음 14장을 읽으면 “내 아버지 집에 큰 저택이 많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내 아버지의 집”, 작은 집 안에 큰 저택이 많이 있다니, 이상하게 들립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모팻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팻은 그보다 더 우스운 해석, 아니, 번역을 내놓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아파트 건물에는 아파트가 많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곳에 올라가 아파트를 세내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원문에는 “내 아버지의 왕국에는 궁전이 많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편이 더 잘 들립니다. 킹제임스는 왜 그렇게 번역했을까요? 구약 성경의 질서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왕이 ‘아버지’였습니다. 왕의 온 영토에 있는 이들은 그의 백성이었고, 그것이 그의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는 이처럼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의약에 쓰이는 말이 라틴어로 적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라틴어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자, “내 아버지 집에”라는 말을 보십시오. 그는 철저히 성경을 따른 것입니다. 구약 시대로 돌아가 보면, 한 아버지가 큰 왕국을 소유하고 그 왕국 안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직... 성품이 올바르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사람이었지만, 먼저 그 성품이 검증되어야 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실 것입니다. 아들을 그 지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이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사랑하는 이 귀한 아들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 자신에게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으므로, 자녀들을 맡을 가정교사, 곧 훈육자를 구했습니다. 아들의 교육과 장래가 어떤 훈련을 받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을 찾을 때까지 여러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정교사를 찾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셨습니다.
성령은 교회의 선생님이십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성령께서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신 교황과 주교와 온갖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가르치고, 기르고, 교육하시는 분입니다. “영의 인도를 받는 자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어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느니라.” 성령께서 교회를 가르치십니다. 이 선생님은 정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정직하게 말할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불순종하면, 그는 부끄러운 얼굴로 다가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인님, 이런 소식을 전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아드님이 너무 태만합니다. 아무 말도 듣지 않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900개도 넘는 서로 다른 교단으로 갈라져 있는 지금, 성령께서 교회의 성품을 기록한 보고서를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 그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이제 제가 드릴 말씀이 여러분의 속을 좀 메스껍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있는 것이기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베이컨의 껍질과 비계를 삶아서 기름을 얻고, 그 기름으로 옥수수빵을 만들었습니다. 동부콩도 먹었습니다. 기억하기로 토요일 밤마다 낡은 삼나무 통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는 피마자유를 듬뿍 먹이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싫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그 기름진 것을 커다란 숟가락으로 한 술 먹으려고 할 때마다 코를 막았습니다. “엄마, 도저히 못 먹겠어요. 속이 메스꺼워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속을 메스껍게 하지 않으면 몸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단다”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와 아주 비슷합니다. 여러분의 속을 조금 메스껍게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온갖 소란과 다툼을 말씀드리실 때 어떤 마음이실지 생각합니다. 그분의 마음이 어떠하실까요? 그러나 그분은 공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진실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교회 앞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분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거룩하고 경건하다고 고백하는 여자들이 반바지라는, 작고 보기 흉한 옷을 걸치고 뒷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여러분은 저를 미워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저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것은 수치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자들이 입는 그 옷을... 슬랙스라고 부릅니까? 성경에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는 것은 가증한 일이다”라고 하신 것을 아십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전에는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제가 오순절교인 여러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왜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는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성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나이 드신 한 목사 형제님이 이런 노래를 부르곤 하셨습니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빗장을 내렸네, 우리가 죄와 타협했네. 우리가 빗장을 내리니 양들은 나갔는데, 염소들은 어떻게 들어왔나?” 여러분이 빗장을 내렸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활동사진관, 곧 영화관에 가서 이런 세속적인 영화를 보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마귀는 영리한 자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그것을 여러분의 집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령께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전에는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매니... 그 물건을 바르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아시죠? 그게 무엇입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얼굴에 바르는 그 물건 말입니다. 이런, 아내가 이 말을 들으면 저를 나무라겠군요. 아내는 그것을 바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이 안 납니다. 화장품, 팬... 옥수수 전병인가, 뭐 그런 것입니다. 얼굴에 바르는 무슨 물건이지요. 그리고 그곳에 가는... 이런 모든 것이 전에는 잘못이었습니다. 자신의 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때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전에는 여자가 길을 걸어가면 걸음걸이와 행동만 보아도 그리스도인인 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두 똑같아 보입니다. 얼마 전에 한 여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런 옷 말고는 다른 옷을 팔지 않아요.” 아직 재봉틀은 있습니다.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빗장을 내렸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기 전에 이 말씀을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여자분이... 제게 화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는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 거리에서 입고 다니는 선정적으로 보이는 옷을 입었는데, 죄인이 여러분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이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면, 심판 때 그 죄인과 간음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입는다면 죄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그 사람 앞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찾아보시고 이것이 옳은지 확인하십시오.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백합처럼 순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대식 옷차림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한...
그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수요일 밤에 집에 남아 “누가 수지를 사랑했나”,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 아니면 그 엉뚱한 프로그램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런 극들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또 아서 갓프리 같은 이들의 이런 어리석은 프로그램을 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미국다운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또 “온통 뒤흔들렸어” 같은 노래로 로큰롤을 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도 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그것들을 갈망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가득 채우셨다면 더 이상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예 없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여자들만 나무라십니까?”라고 하시겠지요. 좋습니다. 남자분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아내가 담배를 피우고 반바지를 입도록 내버려 두는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냅니다. 그에게는 사내다운 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저는 여러분이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새로운 통치자가 생긴 모양이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성령께서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교회와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을 저런 지경으로 타락시켰다는 소식을 전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왜 미국에 부흥이 없는지 의아해합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썩은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거룩한 은사들을 맡기실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전에는, 그분이 교회에 오셔서 부흥을 일으키시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을 설교하는 일은 여기 형제님이 하실 일입니다. 계속하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이 거기 계십니다. 저는 그 옛날식의, 사사프라스 향이 나고 산골 냄새가 나며, 하늘처럼 푸르고 죄를 죽이는 신앙이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신앙이 여러분을 죄에서 구해 줄 것입니다.
이 가정교사가 아버지 앞에 어떻게 나아가는지 보십시오.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아이가 불순종했다면, 그는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버님, 이런 소식을 전해 드리기가 정말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너무 불순종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이 가정교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주인님, 아드님은 정말 주인님과 똑같습니다. 행동도 꼭 주인님처럼 합니다. 주인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인님이 농장을 운영하시는 방식대로 운영하기를 좋아합니다.” 아, 흔히 하는 말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주인님과 꼭 같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도 거룩하게 사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모든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은 그것에 ‘아멘’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은 그 말씀 하나하나를 다 믿고 똑같이 실천합니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 내 아들이야. 그렇고말고.” 그러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 아이, 그 아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 행실이 나빠서 아버지가 믿고 맡길 수 없는 아들이었다면 아무런 상속도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님들은 성경을 통해 그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아들이었다면,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아들을 공개된 장소로 데리고 나가 사람들 앞에, 높은 곳에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그에게 예복을 입히고 자신의 아들에게 가족 안에서 양자됨의 지위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이 그 지위에 세워지면, 수표에 쓴 아들의 이름도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이 효력을 지녔습니다. 검증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순종했고, 그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은 효력을 지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라.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먼저 행하지 않으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죽음을 선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자기 가족 안에서 양자됨의 지위에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분을 변화산으로, 사람들 앞에 있는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땅에서 증인 셋을 데려오셨습니다. 셋은 확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땅의 증인 셋과 하늘의 증인 셋을 두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그리스도께 옷을 입히시고 그분을 덮으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한낮의 해처럼 빛났습니다. 그분께 입히신 그 예복은 그 아들을 받아들이셨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는 일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그분께서 행하신 표적들과 이적들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확증하신 사람이시니라.”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께서 먼저 무엇을 하라고 보여 주시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셨습니다. 아, 오늘날 교회가 그런 상태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지께 순종하며 성령 안에서 경외하는 것입니다. 말하기가 두려운 곤란한 자리에서도, 신사답게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숙녀답게 자기 자리를 지키십시오. 세상 편에 서지 말고 그리스도 편에 서십시오.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십시오. 목사님들이 참석한 집회와 모임에서 초자연적인 일을 반대하고, 이것을 반대하며 “그것은 다른 시대에나 해당하는 일이었다”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의 입장을 굳게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존귀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 다윗이 언약궤 주위에서 춤을 추고 그의 아내가 그를 비웃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양쪽 편에 동시에 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사람의 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거기에 서 계실 때 하나님께서 덮으시고 불멸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그분을 받아들이셨음을 말씀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자, 보십시오. 다시 돌아가 봅시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지만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몹시 흥분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전에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서 예수님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증인들이었습니다. 이 땅을 걸었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곁에 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양자됨의 지위를 주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그분께, 그분의 손에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은 뒤에도 굳게 서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눈을 하늘로 향하며, 바지의 무릎 부분이 늘어날 만큼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따로 데려가 권능과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을 그 지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 지금 제 안에 신앙의 감격이 솟아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나는 방언을 말했습니다. 이제 다 얻었습니다”라고만 하면서 얼마나 크게 빗나갔습니까. 아, 여러분은 이제 막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일과 하나님의 일들을 그토록 반대하는 것은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살아야 할 그 영역에서 살았다면 이런 일들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덮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광경을 보자마자 몹시 흥분했습니다. 땅에 있는 교회가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이 조금만 일어나도 몹시 흥분합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장막 셋을 지읍시다. 이제 교단들을 좀 만들어 봅시다. 안식일과 절기와 율법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여기에 장막 하나를 세우겠습니다. 율법을 경배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장막을 세워, 하나의 교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선지자들을 경배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다른 장막을 세우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경배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장막을 세우겠습니다.”
오늘날과 똑같지 않습니까? 교단들이 형제애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또 이 사람은 “청량음료를 마시면 안 됩니다”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해야 합니다”, 또 저 사람은 “저것을 해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교단들, 가로막는 벽을 세우고 선을 긋습니다. 마음이 올바르면 나머지 일들도 올바르게 따라옵니다. 우리는 인디애나 사람들입니다. 이곳에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참나무들은 겨우내 잎을 그대로 달고 있었습니다. 봄이 왔다고 새잎이 나게 하려고 묵은 잎을 하나씩 따 줄 필요는 없습니다. 새 생명이 들어오게 하기만 하면 묵은 잎은 떨어집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새 생명뿐입니다. 여러분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새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여러분 안에는 잘못된 생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일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나타내며, 여러분이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그분을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에서 첫째가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적과 동기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도 채 마치기 전에... 보셨습니까? 그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모세에게서 고개를 돌려라.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과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서 돌려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공의에서 고개를 돌려라.” 모세는 율법을 나타냈습니다. 누구도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모든 행위는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는 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하든 자기 힘으로 한다면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은 꼭... 교회에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머리를 길게 기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고 싶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머지않아 다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시면 실제로 새 생명을 낳을 것입니다. 규칙을 지켜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이런 것들을 싹트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현대의 바빌론 건물들의 벽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어차피 그것들은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느낍니다.
얼마 전 제가 인도에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사흘 전에 지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나기 훨씬 전, 작은 새들이 모두 둥지에서 날아 나와 들판으로, 나무 위로 갔습니다. 커다란 돌담 주위에 서 있던 소들도 모두 담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나가 서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진동으로 담들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셔서 동물들의 생명을 보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벽에 쓰인 글을 보고 있으며, 종교적 행위와 교단들 속에 있는 교회가 가라앉고 실패한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새와 소와 말과 양과 개와 나귀에게 담이 무너지기 전에 떠나라고 경고하실 수 있다면... 그곳에서 나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분의 긍휼의 한가운데인 갈보리로 달려가 부르짖으십시오. 얼마나 오래 감리교인이나 오순절교인으로 지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온 존재가 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까지 갈보리로 달려가십시오. 아멘. 제가 제 말에 스스로 ‘아멘’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옳습니다. 우리에게도 적어도 새나 동물만큼의 분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본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제 계속해서 살펴보십시오. 율법은 경찰관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은혜가 없습니다. 율법은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잘못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여러분을 감옥에 넣는 경찰관이지만, 거기서 꺼내 줄 은혜는 없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표범은 어떻게든 자기 가죽의 반점을 핥아 없애려고 해도 없앨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감옥에 넣고, 은혜는 우리를 꺼내 줍니다. 저는 율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심판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결코 견뎌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은 그저 “너는 죄가 있으므로 죽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엘리야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냅니다. 그 엄격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 위에 서 있었습니다. 왕은 “내가 저 위에 사람을 보내 저 광신자를 데려오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0명을 올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올라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엘리야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종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희를 태워 버리기 원하노라.” 공의입니다! 그들은 밟아서는 안 될 땅을 밟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원하십니까? 물론 아닙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아마 폭풍이 지나갔나 보다. 그랬을 거야. 무슨 자연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또 50명을 보냈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50명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폭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그들이 밟을 권한이 없는 땅을 밟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잘 알려진 속담에 “천사들이 밟기 두려워하는 곳을 어리석은 자들은 징 박힌 구두를 신고 걸어 다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신문 기자들은 여러분을 광신자 무리라고 부르고, 무슨 신유 치유자라고 부르거나, 어떤 비방하는 이름을 붙이며 그런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것을 거스르는 말 한마디도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들이 밟기 두려워하는 곳을 어리석은 자들은 징 박힌 구두를 신고 걸어 다닙니다.” 여러분의 목사가 일어나 “그건 다 정신 감응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천사들이 밟기 두려워하는 곳을 어리석은 자들은 징 박힌 구두를 신고 걸어 다닙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이런 자들 중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느니 차라리 연자방아 맷돌이 네 목에 달린 채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네게 더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어떤 자리에 이르게 하시고, 그들을 세우시고 덮으시며 마땅히 있어야 할 지위에 두실 때,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공의를 원하십니까? 율법을 원하십니까?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저는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공의로 따지면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은혜로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분은 그들의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곳의 광경은 두려운 광경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직 말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죄들을 씻어 없애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책을 없애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취하여 의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친히 담당하시고 여러분이 지은 죄들을 지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분은 무엇을 나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그분의 율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공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긍휼을 원합니다. 저의 부르짖음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심판하지 마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제게 공의를 베풀지 마옵소서. 저는 정죄받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율법은 지나갔습니다. 돌아보십시오. 율법도 사라지고 공의도 사라졌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요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그분은 갈보리에 가셔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갈보리에 가셔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셨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보리로 가셨습니다. 대제사장은 그분을 조롱하면서 자신이 그분께 더없는 영예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 기적을 행하는 자를 좀 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눈을 헝겊으로 가렸고, 로마 병사가 막대기로 그분의 머리를 쳤습니다. “환상을 보는 너, 선지자인 너,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 마귀가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어떤 능력이 나가는 것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여인이 그분의 옷을 만졌을 때에는, 그분께서 돌아서서 여인을 찾아내셨고 여인은 자신이 구했던 것을 얻었습니다. 긍휼입니다. 물론입니다. 대제사장은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다른 사람들을 잃으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셨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도록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시인도...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말을 찾으려다가 그들은 제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런 시인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바다가 먹물이고, 땅의 모든 줄기가 깃펜이며, 온 하늘이 양피지라 해도, 높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적으려면 바다의 먹물이 다 말라 버리리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두루마리를 펼쳐도 그 사랑을 다 담을 수 없으리라.” 사랑입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도 아니고 세상을 향한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필리오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아가포 사랑입니다. 백만 마일이나 더 높은 사랑입니다. 아가포 사랑을 벗어난 모든 사랑은 왜곡된 사랑이며 끝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시작이 있었고 끝도 있습니다. 아, 복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에는 시작이 없었고 끝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바다가 눈물을 다 쏟아 사막이 되고, 세상이 죄로 가득하여 하늘마저 등을 돌리며, 세상이 집으로 돌아오는 술 취한 사람처럼 우주 공간을 비틀거리며 나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성도들과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로 말입니다.
남녀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형제로서 드리는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주의주장들과 감각적인 체험들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모든 은사를 갖기보다 그분의 사랑을 갖고 싶습니다. 제게 그분의 사랑을 주십시오. 오늘날 세상이 찾고 있는 것은 참된 사랑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 있으면 혼들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꾸며 낸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필리오 사랑을 아가포 사랑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제가 사냥하러 다니던 북쪽의 큰 숲에 버트 콜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함께 사냥해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냥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발자취를 추적하는 솜씨가 완벽했습니다. 또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끝까지 함께해 줄 사람이었습니다. 숲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사람 가운데 마음이 가장 잔인한 축에 들었습니다. 그저 제가 못마땅해하며 소리 지르게 하려고 어린 새끼 사슴들을 쏘곤 했습니다.
새끼 사슴을 쏘는 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법에서 새끼 사슴을 쏘아도 된다고 하면 괜찮습니다. 송아지를 잡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브라함은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하나님께 대접했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것은 괜찮지만, 그저 심술을 부리려고 잔뜩 죽이는 것은 안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태도와 목적과 동기가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어떤 상태인지도 그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목적과 동기가 올바르면, 하나님의 사랑이 샘물처럼 흘러내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 교회니까요. 내 도시에서 그것을 보고 싶습니다. 내...”라는 이유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 하나님의 사랑이여, 제 마음속에 들어오소서.” 그때 그분이 오십니다. 버트는 짓궂었습니다. 어느 해 제가 그곳에 갔더니 작은 호루라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작은 호루라기로 어미를 찾으며 우는 어린 새끼 사슴의 소리를 꼭 똑같이 낼 수 있었습니다. 새끼 사슴 말입니다. 그가 그 호루라기를 불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버트, 그걸 쓰지는 않을 거지?” 그는 “아, 겁 많은 설교자들 같으니라고. 자네는 마음이 너무 약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버트, 내가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자네가 잔인한 거야. 나는 자네라는 사람은 좋아하네. 좋은 친구이고 좋은 사냥 동료이며, 숲에서 함께 지내기에 정말 사내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떤 눈보라 속에서도 자네를 믿을 수 있어. 버트,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마음이 바르지 못해.” 그는 “자네가 너무 마음이 약한 거야. 나는 그놈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는 게 좋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 사냥을 나갈 때 버트는 그 작은 호루라기를 가져갔습니다. 우리는 아침 내내 사냥했지만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오 무렵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습니다. 흙이 드러나 있는 작은 빈터가 있었습니다. 버트는 손을 뻗어 호루라기를 꺼내려 했습니다. 눈은 지금 땅에 쌓인 것과 비슷했는데, 아마 이만큼 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작은 호루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아, 이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미를 찾는 어린 새끼 사슴처럼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를 내자, 바로 건너편 약 40야드 떨어진 곳... 아니, 그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큰 암사슴 한 마리, 어미 사슴이 일어섰습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아주 큰 귀와 커다란 갈색 눈, 얼굴에는 굵은 핏줄이 보였습니다. 저는 바로 그 사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새끼가 우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 사슴은 본래 어미였습니다.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미였습니다. 새끼가... 다른 때라면 일어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미는 어떻게 했습니까?
버트는 저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소총의 노리쇠를 뒤로 당겨 .30-06 소총의 약실에 탄환 한 발을 밀어 넣었습니다. 아, 그는 명사수였습니다. 저는 그가 조준경을 낮추어 겨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십자선이 어미 사슴의 심장 한가운데 놓였습니다. 그런데 어미 사슴은 주위를 살피며 빈터로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경우라면 절대로 그 빈터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웠으니까요. 하지만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새끼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디 있지? 위험에 빠졌구나.’ 어미는 위험을 무릅쓰려 했습니다. 어미는 훤히 트인 곳으로 걸어 나왔고, 저는 그 사슴이 몸을 옆으로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트의 손이 흔들림 없이 총을 잡고 있는 것을 보자 ‘오 하나님, 저 사람이 저 일을 못 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트,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나? 저 어미는 새끼를 찾고 있는데, 자네는 그 심장을 쏘아 뚫으려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악할 수 있나?’ 그는 소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악할 수 있습니까?” 방아쇠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총알이 어미 사슴의 심장을 완전히 날려 버리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슴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어미는 사냥꾼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어미를 멈추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때였다면 탈출의 명수 후디니처럼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어미였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그 안에 목숨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새끼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어미는 새끼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총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소총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버트를 보니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총을 땅에 던지고 제 다리를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빌리, 이제 그만하겠네. 도저히 못 하겠어. 하나님, 제 악한 마음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바로 그 눈더미 속에서 저는 그 잔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지금 그는 참으로 다정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곳 숲을 다닙니다. 왜 그랬습니까? 제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참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도 아니고, 그런 척하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조금만 놀라도 달아납니다. 그러나 그 어미는 참되고 진실한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진짜 어미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남녀를 찾고 있습니다. 아,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저는 더 이상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 사랑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목숨보다 더 소중합니까?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여자들이 “당신은 구식이군요”라고 하든, 남자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들어온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나타내기 원하십니까? 그런 순간에 굳게 설 수 있습니까? 심판 날에 견디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큰 시련들이 닥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나타낼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 건물 안에 이런 분이 계신지 여쭤보겠습니다.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분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지내 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그런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직 성질을 부리고 악의와 질투가 있습니다. 이웃을 나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 교단에만 너무 치우쳐 있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제 삶이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을 원합니다. 저 어미 사슴 안에 있는 것이 새끼를 위해 굳게 서게 했듯이, 제 안에도 그리스도를 위해 굳게 서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사슴은 진짜였고, 어미였으니까요.” 그저 교회에 가입했거나 어떤 신앙 고백만 했을 뿐,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가 실제로 살아 계시는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없는데 그것을 원하신다면, 손을 들고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 자매님도요. 형제님도요. 자매님도요. 그리고 제 자매님, 저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이쪽의 자매님도요. 저 뒤에도, 네, 그렇습니다. 제 왼편에 계신 분도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좋습니다. 아기를 안고 계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여기 뒤에 계신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오 주님, 저를 만들어 주옵소서. 오 하나님...”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를 주님의 종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제게서 세상의 모든 것을 거두어 주옵소서. 주님, 저는 들어서는 안 될 것들을 들어 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할 때에 앉아서 잡지 같은 것을 읽었습니다. 서서 기도할 수 있었을 때에 시내에 나가 물건을 사며 돌아다녔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손을 들고 말씀드립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제게 무언가를 주옵소서.”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제게 무언가를 주옵소서.”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오 주님, 저 어미 사슴처럼 제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무언가를 주옵소서.” 그것은 어미 안에 있었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바로 그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꾸며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미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 들어갔습니다.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 젊은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기 젊은 어머니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여기 계신 자매님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분이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물론입니다. “오 주님, 저를 만들어 주옵소서. 지금 저를 받아 주님의 뜻대로 빚어 주옵소서. 오 주님, 저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그것은 참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처녀가 등잔 안에 가지고 있던 그것입니다. 저는 제게도 그것이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제 삶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담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서지 못합니다. 아직도 세상처럼 행동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사랑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하는 농담 같은 것을 즐겨 듣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은 아예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벨드사살이 오늘날 갓프리 같은 사람들처럼 농담이나 하는 할리우드식 인물이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이곳에서 여러분과 한 2주 동안 부흥회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점을 꺼내어 성경에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원하십니까? 친구 여러분, 정말로 그분을 원하십니까? 진실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얼마나 오래 신앙을 고백해 왔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께 정직하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밤에 여기 서 계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천사가 지금도 이곳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정직하십시오. 그저 “글쎄, 아마 나도 해야겠지” 하면서 손만 들지 마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서 참으로 진지하게 하나님을 대하십시오. 손을 드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무언가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주니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내 자녀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를 변화시키리라. 네 삶이 달라지리라.” 손을 드신 분들은 잠깐 기도할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손을 들지 않으셨던 분들도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나머지 분들은 계속 머리를 숙이고 계십시오. 이제 기도받기를 원하는 분들은 모두 잠깐 일어서 주십시오. ... 상하고 깨어진 심령 주님의 은혜로 저를 구원하소서. 구주여, 구주여... 일어서서 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더욱 닮으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은 아십니다. 저는 성질을 부렸습니다. 무관심했습니다. 질투했습니다. 이기적이었습니다. 주님, 이제 제게서 그것을 없애 주옵소서. 지금 주님을 믿겠습니다.” “저는 일어나 직장 상사에게 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에게 당당히 나서서, 당신이 잘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주님, 저 어미 사슴이 사슴으로서 굳게 섰듯, 그리스도인으로서 맡은 자리에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동물의 사랑이, 자기 새끼를 향한 동물의 사랑이 그러하다면! 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생각해 보십시오! 동물의 사랑이 새끼를 위해 죽음 앞에서도 서게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저 사슴처럼 서시겠습니까? 여기 교회 앞에서 여러분의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하지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옆에 앉은 이 여자분이나 이 남자분과 함께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라고 하시겠지요. 여러분이 무엇을 했느냐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담대함이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는 일어나 이렇게 말하게 할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제 자리에 서겠습니다. 아내든 누구든, 제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보아도 좋습니다. 저는 올바르게 되고 싶습니다. 제 자리에 서겠습니다. 여기 서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제 잘못을 아십니다. 주님, 바로잡아 주옵소서. 이웃이 무슨 말을 하든, 다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교회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 주님의 영이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며 저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초청입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서 계신 분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목사님들과 그리스도인들, 서 계신 모든 분들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것은 무슨 요술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겉으로 꾸며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무엇이 여러분을 일어서게 했습니까? 여기 젊은 소녀들과 중년 여성들, 젊은 어머니들, 목사님들과 그리스도인들, 무엇이 여러분을 일어서게 했습니까?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오늘 이 건물에 앉아 있는 저 남자와 저 여자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어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자신을 드러내셨고,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날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무슨 잘못이든 지금 그분께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가 마땅히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주님, 저는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지 않았... 잘못된 일을 했습니다. 제게 죄가 있습니다. 오 주님, 오늘 제가 주님의 것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제 마음속에 창조하셔서, 오늘부터 주님의 종이 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제가 사람들 앞에 서서 주님께 약속드립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저를 시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기 서서 제 죄를 없애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흠 없이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달리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자분들, 잘못하셨다면, 잘못 살아 하나님이나 남편이나 가족에게 신실하지 못하셨다면 일어서십시오. 남자분들, 아내나 가족이나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셨다면 일어서십시오. 지금 고백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젠가 그것이 하늘의 화폭 위에 펼쳐질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일어서고 계십니다. 이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주 하나님 여호와여, 저희는 그 위대한 이름, 여호와이레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 잘못했음을 아는 이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벌떡 일어서서 그것을 버리려 합니다. 성내는 것, 이기심, 무관심, 태만을 버리려 합니다. 주님, 이들은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거두실 수 없고, 결코 거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온 땅과 하늘의 심판자께서 잘못된 말씀을 하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의 연약한 믿음을 용서하시고, 지금 곧 그 복된 자리로 올라가게 하옵소서. 저희가 어깨를 맞대고, 팔짱을 끼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서 있습니다.
주님, 저 자신도 여기 서 있는 이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주님,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께서 제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아왔습니다. 주님, 저도 이들과 함께 나아갑니다. 오 하나님, 저희의 간구를 들으소서. 저희의 간구를 들으소서. 저희의 범법들을 용서하시고, 저희가 마음속으로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주옵소서. 저희는 영원을 향해 가는 피조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취하셨던 그 흙을 향해 저희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언젠가 주님은 저희를 그 흙에서 일으켜 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주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저희 죄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오늘 이곳을 떠날 때 새로운 목적과 새로운 동기를 지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에 따르게 하옵소서. 굳고 확고한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웃에게 본이 되게 하셔서, 저희가 지나갈 때 여자들이 “하나님의 성도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기 가는 저 사람이야”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다정하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 말입니다. “저기 바닥을 가로질러 가는 저 남자가 성도야. 경건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 사람이야. 그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 내가 그 사람 이웃이거든.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야. 그 옆에 사는 것이 얼마나 영예로운지.” 하나님,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이제 주님, 저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는 데 부족한 것을 살피시고, 저희에게 없는 것을 저희 안에 채워 주옵소서. 필요 없는 것은 없애시고 필요한 것을 넣어 주셔서, 저 어미 동물이 새끼를 위해 보인 모습보다 백만 배나 더 뛰어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저희에게는 성별하시는 주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저희에게 주옵소서. 서서 기도하는 동안... 너무 서둘러 앉지 마십시오. 몇 분 동안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여러분을 일으켜 세웠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일어서게 했습니까? 무엇이었습니까?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여러분 곁에 서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서 계신 여러분, 일어설 때 여러분에게 있던 잘못된 것을 지금 그리스도께서 없애 주신다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이곳에서 떠날 때 달라진 사람이 되어, 남은 평생을 다정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스도께 충성하며 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무언가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면,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저는 그분의 것이 될 것을 진실로 믿습니다. 제게 있던 잘못된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와 함께 제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100퍼센트, 사방에서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분의 것입니다. 이제 모든 죄가 사라졌습니다.
참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어머니인 듯한 한 분이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러분은 계속 기도하고 계십시오. 그 곁에 작은 소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 아이의 작은 눈이 붉어졌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손을 들었습니다. 아, 성령께서 여기 계셔서 그런 작은 모습들을 포착하게 해 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참으로 실제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가셔서 참으로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담대한 혼에 안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지체하신다면, 언젠가 재가 재로, 티끌이 티끌로, 흙이 흙으로 돌아가는 때가 오더라도, 여러분은 오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이제 앉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속을 온통 말끔히 씻어 낸 듯한 기분입니다. 말씀은 그런 일을 하십니다. 우리 속을 샅샅이 씻어 내며 작은 약점들을 찾아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고백하고, 교회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교회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담대하게 사시고 맡은 자리에서 신실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그분은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믿으십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좋고 얼마나 다정합니까. 오늘 여러분의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 있는 무어 형제님의 교회는 제가 가 본 교회 가운데 가장 다정한 교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다정한 영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가 본 교회 가운데 그런 영을 그만큼 지닌 교회는 그곳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더없이 다정하고 온유한... 그저 참으로 준비된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말씀 위에 세워 주는 훌륭한 복음의 선생님이 뒤에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복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을 먹이십시오.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것이 참으로 튼튼한 양들을 만듭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면 참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집회를 이루어 가는 일은 전도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도 함께하십니다. 이제 사랑하는 서머럴 형제님이 이곳에 나오셔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카드는 오늘 오후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담대한 혼에 안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