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저는 이곳 인디애나에 계신 사랑하는 여러분을 만나려고 얼마 전부터 이 집회를 기다려 왔습니다. 오늘 저녁 이리로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인디애나에서 여는 집회가 이번이 네 번째쯤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마 인디애나폴리스였고, 그다음에는 에번즈빌, 해먼드, 그리고 이곳, 사우스벤드까지 하면 인디애나에서 다섯 번이 되겠군요. 물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도 인디애나 출신입니다. 켄터키주 루이빌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작은 도시, 제퍼슨빌에서 왔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는 일을 얼마 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이 지역에서 편지들을 받았고 워드 형제님에게서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로이 윔스 형제님이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니, 제가 그분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워드 형제님과 이곳 집회를 아주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오늘 밤 이 강단에 계신 훌륭한 형제님들, 이 집회를 후원하시는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오늘 저녁 들어오면서 빌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 들어 우리가 참석한 지난 다섯 번의 집회마다 그 도시에 눈보라를 몰고 왔다고 말입니다. 첫 번째는 시카고였고, 워털루, 사우스벤드, 그리고 이곳입니다. 가는 곳마다 눈보라가 쳤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빌리가 말해 주었는데, 아마 워드 형제님의 따님이 오늘 사고로 다쳤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도 끔찍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언덕을 올라가는데, 메노나이트 형제 한 분이 언덕 한쪽으로 마차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럭 운전자가 참지 못했는지 옆으로 휙 돌아 나왔고, 바로 그 순간 빌리와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뒤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때맞춰 길 한쪽으로 비켜섰고, 트럭은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 운전자는 술을 마셨거나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수는 하나님께서 하려고 하시는… 하실 모든 일을 언제나 뒤집어 놓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냥 행하십니다. 하지만 그러면 원수는 너무나 화가 나서, 울부짖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삼키려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주말이 우리 삶에서 참으로 좋은 시간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짤막하게 한 가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고치러 온 치유자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러 온 형제입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작은 표어 같은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의사의 환자이며 제 친구인 사람을 위해 기도하러 왔습니다.” 치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치유는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치유의 권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신유의 은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사역자로서의 은사를 가진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아주 잘 풀어 설명해서,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며 믿음을 얻도록 하는 성경 해설자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무엇이든 받는 본래의 길이자 첫 번째 길입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야이로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은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오심을 제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셨고, 저도 그것이 좋습니다. 그 로마 사람은 예수님께서 모든 질병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살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하게 여길 만한 그리스도인, 싸움 앞에서 위대하고 용맹한 군사로 우뚝 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내게는 자랑스러운 자녀가 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두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유를 전하는 사역자들은 대개, 적어도 제가 만나 본 분들은 모두 말씀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분들입니다. 그중에는 아주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외쳐 원수가 떠나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은사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받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그 일을 붙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오럴 로버츠, A. A. 앨런, 그리고 사역 현장에서 믿음으로 행하도록 성령의 큰 사역 은사를 받은 많은 분들을 존경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은혜로 제게 주신 작고 보잘것없는 은사는, 저는 설교를 잘하지 못합니다만, 저를 아시는 분은 누구나 그것을 아실 겁니다. 제 은사는 환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은사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작은 은사를 주셨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첫째는 사도들, 곧 선교사들입니다. 두 단어는 같은 말로,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왜 사도 대신 선교사로 불리기를 원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둘 다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같은 말입니다. 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 복음 전도자들, 목사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이들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교회에 주신 사역의 은사들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 교회에는 사람들에게 주신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아시는 것처럼 방언으로 말하는 것, 통역하는 것, 예언의 은사, 지혜, 지식 등이 있습니다. 그 사역의 은사들… 아니, 교회 안에 주어지는 그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지체에게는 어느 때든 그 은사 가운데 어느 것이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들을 주시고 자기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은사들은 모두 한 가지 목적,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함께 역사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오늘 밤 우리가 여기 모였습니다. 질서를 바로잡고, 곧 나타나실 우리의 복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인 교회를 본향으로 데려가시려고, 머지않아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시리라고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스푸트니크들이 하늘에 떠 있고, 현대판 바벨탑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달로 날아가고 그 밖의 여러 일들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고 믿습니다.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저는 이 강단에 계신 사역자들과 청중 가운데 계신 분들, 사랑하는 벗들과 함께 이곳에 있습니다. 일정 사이에 이 짧은 집회를 마련하여, 제가 아는 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원하시는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려는 것입니다. 제 사역을 이 형제님들의 사역에 더하는 것은 이 집회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역자들과 그들의 교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집회의 목적이며, 오직 그것만을 위해 마련했습니다. 똑같이 귀한 믿음을 지닌 형제님들을 만나면 제 마음은 참으로 벅차오릅니다. 저녁이 다가오고,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날이 이미 많이 저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분이 오시기 전에 언젠가 다시 와서 더 오래 집회를 열고 싶습니다. 이 도시에 온 지 세 시간쯤, 아니 조금 더 되었는데, 그동안 만난 분들은 사랑스럽고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 좋습니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도 아주 좋은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 오후에는 이곳의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작은 곳이 아니라, 크고 좋은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여자분이 돈을 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 손님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친절한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오늘 밤 강단에 올라와 좋은 영을 지닌 이 훌륭한 분들과 악수하게 되니, 아멘,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우리를 하나로 모아 앞으로 며칠 동안 큰 집회를 이루시리라고 믿게 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기억해 주십시오. 눈보라가 너무 심해 사람들이 모이는 데 지장을 주지만 않는다면, 아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텐데, 그분들도 꼭 알 수 있도록 말씀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치유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이래 천구백여 년 동안 이미 고침을 받은 상태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유일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죄인도 그만큼 오래전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것이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분께서는 돌아가실 때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질병 문제도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를 구속하여 얻게 하신 그 복에 대한 믿음은 우리 각자의 믿음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복을 받도록 세상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각자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믿는 순간 고침을 받습니다. 오늘 밤 제가 이곳에 서서 이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구백 년 전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고치셨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있는 복 가운데 먼저 고백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복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백의 대제사장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3장에서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영어의 ‘profess’와 ‘confess’는 같은 말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고백의 대제사장이시라면, 그분은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시려고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피로 대제사장의 일을 하시며, 우리의 고백에 따라 행하십니다. 우리가 그분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는 일, 곧 우리의 고백을 이루어 주시려고 아버지 앞에 서 계십니다.
우리가 제단 앞으로 나와 밤새 기도하고, 돌아가 열흘 동안 금식한 뒤 다시 와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믿습니다.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하고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여전히 구원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여 그분을 받아들이면, 그분께서는 그 고백을 이루어 주시려고 아버지 앞에 서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백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고백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되는 말을 하지 말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셨을 때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어서야 약속된 것을 받았지만, 그 이십오 년 내내,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버렸습니다. 상황이 어떠해 보이든,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있는 것들을 없는 것처럼 불렀습니다. 사라의 태가 약하고 죽은 것이나 자기 몸이 죽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을 때 그는 일흔다섯 살이었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백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해지기는커녕 언제나 더 강해졌습니다. 기적은 더 커질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아기를 맞을 준비를 이미 모두 마쳤고, 그들은 이십오 년을 기다리면서 줄곧 더 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이며, 아브라함의 자녀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 안에 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없는 것처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잠깐 권면의 말씀을 드리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펴기 전에, 그리고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주의 사랑하시는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우리가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모이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우리와 만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며, 주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 삶에 기름부음을 주시는 것을 느끼는 특권을 누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복되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우리가 행하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한 것 가운데 주의 거룩한 뜻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용서해 주옵소서. 오 주 하나님, 저희가 잘못을 겸손히 고백하오니 주의 자녀의 피로 저희를 씻어 주옵소서. 오늘 밤 약속하신 그 영을 저희에게 부어 주옵소서. 이방인의 날들이 끝나고 복되신 주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면서,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이 정결해지기를 간구합니다. 말씀에 의한 물의 씻음으로 모든 불신에서 우리의 생각을 깨끗하게 하도록 말씀을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그림자를 거두어 주옵소서. 주 하나님, 오늘 밤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입게 하옵소서.
이 집회가 열리는 이 건물까지도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둥 옆과 좌석 옆, 이 건물에 앉을 모든 사람 주위에 자리를 잡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임재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하옵소서. 이 강단에서 사역하는 형제님들과, 강단에 자리하지 못해 저 아래에 계실지도 모르는 많은 사역자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번 집회가 주의 자녀들과 주의 목사들, 곧 양 떼의 목자들에게 크게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의 임재가 너무나 크고 강하여, 그들이 감동을 받아 더 가까이 나아가 새롭게 붙들고 양들을 훌륭하게 돌보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무익한 종인 저를 도와주옵소서. 모든 더러움에서 저를 깨끗하게 하시고, 제 삶에 저를 향한 주님의 뜻에 꼭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거두어 주옵소서, 오 하나님. 주의 거룩한 영이 우리 모두를 통해 움직이게 하옵소서. 오늘 밤 이곳을 떠나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는 길에,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 밤 워드 형제님의 따님을 위해 간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려고 집회에 오던 아이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이 배움의 자리로 이끌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요. 병든 자를 고치시는 주의 거룩한 은혜의 복음을 들으러 오는 길에, 원수는 그 아이가 짓눌리거나 어떻게든 차 안으로 내던져지게 하여 다치게 했습니다. 아마 지금 어디에선가 침상에 누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거룩한 임재로 그 아이를 덮어 주옵소서. 우리는 원수에게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서 손을 떼라. 주 예수님의 인자하심으로 그 아이에게 복을 주셔서, 이 일로 아무런 해도 남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허락해 주옵소서. 속히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게 하옵소서. 주님, 기다리는 다른 이들도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주님의 말씀에서 익숙한 본문을 하나 택하여 잠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멀리 운전해 가셔야 할 분들이 많을 텐데 길이 미끄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전화를 들어 병든 분들과 이웃들에게 연락하고, 그들을 데려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죄인인 친구들도 데려오십시오. 누구나 환영합니다. 죄인이어도 괜찮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들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이제 요한복음 12장 20절에서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매 저는 이 성경 말씀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처럼 영원하며, 하나님은 자기 말씀의 일부이십니다. 저는 제 말만큼 믿을 만하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말만큼 믿을 만하며, 하나님께서도 자기 말씀보다 더 믿을 만한 분이실 수는 없습니다. 시대를 내려오며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러면 작은 문맥… 아니, 본문으로, 이 대전도 집회의 주제인 히브리서 13장 8절을 택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저는 이 관점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그분을 뵐 수 없겠습니까? 저는 명절에 찾아온 이 그리스 사람들이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놀라운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뵙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오, 제 마음의 간절한 소망도 그분을 뵙는 것입니다. 제 삶의 동기이자 큰 목표는 언젠가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뵙는 것입니다. 그분을 한번 만져 볼 수만 있다면, 천 번의 삶을 바쳐 섬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삶들이 온통 고난으로 가득하다 해도 말입니다. 그분을 뵐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 그리스 사람이 올라와서 그분을 뵙기를 원했을 때… 눈여겨보셨습니까? 그들은 그분의 친구 한 사람에게 그분을 뵙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도 친구의 소개로 예수님을 뵙게 되었을 것입니다. 목사님이나 설교자, 복음 전도자, 그 밖에 누군가가 그분의 말씀을 전하여 여러분에게 주 예수님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제가 사는 곳의 강, 오하이오강에서 있었던 짤막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니 일요일 아침마다 일요일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주 열성적인 꼬마였고, 강가에 내려가서 자주 놀곤 했습니다. 누구든 주변을 둘러보며 나무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관목 속에 어떻게 살아 계시는지를 보면… 아시다시피 옛날에 관목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관목에서 불 가운데 계신 천사를 보았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관목을 보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의 수액을 뿌리로 내려보내 봄까지 머물게 했다가, 다시 위로 끌어 올리는 그 작은 관목 속에는 얼마나 놀라운 지성이 있습니까? 막대기에 물을 묻혀 보십시오. 그 물을 땅속으로 내려보냈다가 다시 막대기 속으로 끌어 올릴 지성이 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관목 속에 계십니다. 모든 꽃 속에 계십니다. 바라보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선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모두가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그 꼬마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아니,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엄마는 “목사님께 여쭤보렴”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일요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엄마는 이제 목사님께 여쭤보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목사님께 여쭤보았더니, 목사님은 “그럼, 볼 수 없지, 얘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강 상류에서 늙은 어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폭풍우가 나뭇잎의 먼지를 씻어 주어 잎들이 모두 깨끗해졌습니다. 강물이 다시 평소의 흐름으로 돌아오면서 작은 물결이 일었고, 그 작은 물결들이 노 위에서 춤추는 장단은 뱃사람만이 아는 것이었습니다… 노를 저어 가면서 그 노인은 자꾸 어깨너머로 돌아보았습니다. 얼마 뒤, 작은 노 젓는 배의 고물에 앉아 있던 소년은 노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 수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꼬마는 무척 마음이 끌려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무엇을 보고 계세요?” 노인이 말했습니다. “저 무지개란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하는 것 같은 질문을 하나 할게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듣자 늙은 어부는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그는 노를 무릎에 놓고 꼬마를 한 팔로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복을 받으렴, 꼬마 신사야. 지난 사십 년 동안 내가 본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단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그토록 가득하면 어디서나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그분께서 밖을 바라보실 때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분을 찾아 그 모습이 어떠한지 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천구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들을 선교지로 보내려고 얼마나 희생해 왔습니까? 젊은 여러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은 대공황 시절의 어려움을 압니다. 빵 한 조각을 서로 나누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썼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그저 철학입니까? 그저 철학이라면 이슬람교도 기독교만큼의 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불교도 기독교만큼 심리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오, 그들은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고, 또… 이슬람교도들은 손가락에 가시를 꿰었다 빼도 피가 나지 않게 하고, 턱에는 창을 꿰뚫습니다. 저는 그들이 흥분을 고조시켜 광란 상태에 빠진 채, 무언가를 마시고 칼로 몸을 찔러 등 뒤까지 관통시킨 뒤 몸을 통해 물을 쏟아 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든 심리적인 현상을 일으키고 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일어나셨으며 영원토록 살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철학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임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이며 유일한 종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살아 계셨던 것과 똑같이 오늘도 살아 계시니, 모두 기뻐해야 합니다. 그분의 모든 권능과 모든 것은 예전과 똑같이 충분하며, 그분은 예전과 똑같이 기꺼이 주십니다. 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더없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셨다면… 제가 “만일”이라고 하는 것은 불경한 뜻이 아니라, 한 가지를 짚어 보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살아 계신다면,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동일하시다면, 원칙에서도 동일하시고, 권능에서도 동일하시며, 자신을 나타내시는 데서도 동일하십니다.
그분께서 달라지셨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육신의 몸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의 육신의 몸은 아버지의 보좌 오른편에서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은 무엇이든, 그분의 속죄에 포함된 것은 무엇이든, 모든 믿는 자 각자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미 이루어진 일로 고백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교회를 가장 크게 가로막는 것은 두려움, 그저 한번 시도해 보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한번 해 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실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아마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자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나무가 맺는 열매의 종류로 그 나무를 압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 주 예수님의 일들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분께서는 요한복음 14장 7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교회가 포도나무의 열매, 같은 포도나무에서 나는 같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덩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들박 덩굴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조직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집사회를 조직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훌륭한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학식 있는 훌륭한 남녀를 둘 수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온 것이 아니라 권능과 성령의 나타나심… 아니, 실증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살아 계신 부활의 하나님께서 자기 몸의 지체들 가운데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호박 덩굴이라면 호박을 맺을 것입니다. 수박 덩굴이라면 수박이 열릴 것입니다. 포도나무라면 포도가 열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포도나무, 곧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면, 그분은 자기 안에 있는 가지들에게 힘을 주셔서 자신이 이 땅에 계실 때 맺으셨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보여 줍니다.
잠깐 우리 주님의 삶을 살펴봅시다. 제가 아는 한 성경에서 우리에게 힘써 싸우라고 한 곳은 단 한 곳, 유다서입니다.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그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 하나가 아니라, 바로 그 믿음입니다. 여러 교파가 섞인 청중에게 말한다면, 감리교회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위해 싸웁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침례교회도 “그렇습니다”, 오순절교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나사렛교회도 “그렇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교회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만큼 성숙했다고 믿습니다. 옥수수 한 알이 밭에서 싹을 틔웠을 때는 작은 잎사귀 같은 어린 싹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옥수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옥수수가 조금 더 자라 수꽃이 되었습니다. 수꽃은 뒤를 돌아보고 말합니다. “잎아, 이제 너는 필요 없어. 나는 수꽃이야. 나는 달라.” 그리고 그것은 아마 첫 번째 싹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첫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 루터교회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나 웨슬리파가 부흥과 함께 나타났을 때,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루터교인들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잎 속에 있던 바로 그 생명이 수꽃을 만들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잎을 이용하지 않고는 더 자라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꽃가루가 있어서, 스스로 털려 잎 속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이삭을 맺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옥수수 이삭이 나왔고, 거기에는 낟알들이 달렸습니다. 그것이 오순절이었습니다. 은사들이 교회 안으로 돌아오는 회복이었습니다. 이삭은 뒤를 돌아보며 “수꽃아, 너도 필요 없고 잎도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삭이 되려면 잎도 수꽃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더 성숙해진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삭이 익었고, 마지막 때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이 이삭에 곰팡이가 많이 붙어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삭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저러한 문제들과 자잘한 주의들이 많이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말끔히 벗겨 내실 것입니다. 언젠가 그분께서는 완전한 옥수수 이삭을 얻으실 것입니다. 오순절에 내리셨던 바로 그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고 계십니다.
이 포도나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를 살펴본다면… 자, 돌아가 봅시다. 보통 집회에서는 기도 줄을 세우기 전에 사흘 밤은 가르쳐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특히 요즘에는, 지난 사십 년 동안 온 세상을 휩쓴 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담긴 깊은 것들을 배우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조금 비판적인 태도로 올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단 하룻밤에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주시는 일이 성령께 얼마나 큰 일이겠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이제 돌아가 봅시다… 오늘 밤 저는 요한복음을 읽었습니다.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다면, 오늘 어떤 분이신지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이 확실히 알도록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알 수 있다면, 그분께서 동일하시다면 오늘도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 요한복음을 보면,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에 거하신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를 만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의 어떤 권능도 사용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에게 무엇이든 말씀하실 수 있었는데도, 그분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기록된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자기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아니,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아시겠죠?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든, 어느 때든, 어떤 곳에서든 마귀를 물리칠 것입니다. 그분께서 마귀를 물리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은 그 약속을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그대로 보고 마음에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이 살아 있게 하실 것입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벽에 쓰인 글과 하늘의 스푸트니크에 관해 설교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브래넘 씨는… 이 세상이 멸망하리라고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씀하여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신 바로 그 말씀이, 말씀하여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께서 사신 삶을 살펴봅시다. 그런 다음 오늘 밤 우리가 그분을 찾을 수 있는지 봅시다. 여기서 그분께서 제자들을 부르기 시작하셨을 때, 시몬이라는 사람이 회심했습니다. 그는 어부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배우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통로로 삼고, 또 직접 빚어 가실 수 있는 마음을 찾으십니다. 이 어부가 형제 안드레와 함께 왔을 때, 성경에서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조금 늦었으니 직접 읽지는 않겠습니다. 집에 가시면 요한복음 1장을 읽어 보십시오.
시몬이 주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요나의 아들 시몬이다.” 그리고 그에게 “작은 돌”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려고 하셨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곁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시몬 베드로가 살던 같은 도시,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그는 산을 돌아가 나다나엘이라는 친구를 찾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옛 유대 교회의 매우 굳건한 정통 신자였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 그는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니, 아마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 나다나엘.” “빌립.”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붙잡고 악수하며, 옛 관습대로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오, 나다나엘, 정말 오랜만이네.” “그래, 나다나엘… 아니, 빌립, 몇 년 만인가.” “자네가 지금까지 들어 본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왔네.” “무슨 소식인가, 빌립? 왜 그렇게 얼굴이 환한가? 전혀 딴사람 같군.”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변합니다. “자네는 딴사람 같아.”
“오, 말해 주고 싶은 일이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네.” “무슨 일인가? 빌립, 더는 뜸 들이지 말고 소식을 전해 주게. 나는 좋은 소식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가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게.” “누구를 만났는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그러자 나다나엘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빌립, 잠깐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그런 작은 선교회 같은 곳에서 말입니까? “그런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저는 빌립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와서 보게. 그냥 와서 직접 보게”라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친구의 초대를 받고 기꺼이 가려 했습니다. 여러분이 팔레스타인에 가 보신다면, 산을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먼지 보십시오. 틀림없이 빌립은 가는 길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주겠네. 저기 벳새다에 사는 나이 든 어부 시몬이 왔는데, 그가 다가가자 그분께서는 그가 누군지 아시고 말씀까지 하셨다네. 그분께서 자네가 누군지도 아신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걸세.” “아, 이보게, 빌립. 뜨거운 햇볕에 정신이 좀 이상해진 모양이군. 대체 무슨 이단에 들어간 건가? 자네 어떻게 된 건가?” “자, 그냥 가세.”
그들이 산을 돌아가자, 마침내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보였습니다. 아마 작은 기도 줄을 세워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과 함께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를 보셨습니다. 그분이 바라보시니 유대인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큰 정통 교회 사람들이 언짢은 얼굴로 거기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다나엘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때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긴 겉옷을 걸쳤으므로, 그가 그리스 사람인지 다른 어떤 민족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기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그 작은 유대인은 거의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랍비여”, 곧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다시 말해, “주님은 평생 저를 보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의롭고 정직하며, 참으로 이스라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사람을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특별한 백성으로 만드는 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들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래, 산을 돌아 칠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던 너를 내가 보았노라.”
그 사람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는 믿는 유대 민족을 대표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그 말을 하였으므로 나를 믿느냐? 너는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곁에 서 있던 유대인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보았을 때 말입니다… 바알세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 점쟁이, 마귀의 큰 힘”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 사람은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그것을 대적하여,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한 마디를 하면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때 그분을 대적하여 말하는 자는”, 이것은 이 말씀을 조금 더 살펴보면 나오겠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때 그 일을 대적하는 말 한 마디는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부정한 영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을 지경에 이른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 유대인은 어떻게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 민족 앞에 자신을 나타내셨고, 그들의 시대가 끝날 때 그런 방식으로 유대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면, 그것이 어제 유대인에게 임하신 예수님이었다면, 오늘 이방인에게 임하시는 분도 그 예수님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이방인 앞에서 그런 일을 한 번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라. 그들에게는 지금 그들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동일하시므로,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세 인종이 있음을 압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로,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그분께서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리고로 내려가시는 길이었는데, 둘러서 사마리아라는 다른 도시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셨고, 거기 우물 위에… 아니, 우물가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고 제자들이 떠나자… 아니, 오히려 여자가 나중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그분께 말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서로를 분리하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과 당신들 유대인들은 서로 교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 마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십니까?” 그분께서는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네가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그러면 내가 여기로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는 물을 네게 주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대화는 계속되어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조상 야곱이 우물을 팠다는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게 말하였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옳도다.” 여자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사람은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자는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우리는”, 곧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 압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하시는 이런 일들을 그분께서 하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누구신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자는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한번은 그분께서 무리 가운데로 지나가실 때, 몸집이 작은 한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자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그분도 그저 “이상한 사람”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그분의 옷에 손만 댈 수 있어도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나무라며 “선생님, 온 무리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내가 약해진 것을 느끼노라. 내게서 효능이, 힘이 나갔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고, 그 여자에게 드러내 보이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도 동일하시다면, 같은 일을 하시고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보여 주시며,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성경에 맞습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신약 히브리서는 그분께서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지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예전에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셨을 때 행하셨던 것과 똑같이 지금도 행하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동일하시다면 말입니다. “선생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합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가지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한 가지를 통해 아무리 많이 일하셔도, 자기의 모든 가지를 통해 일하십니다. 단 한 가지를 통해서만 일하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곳에서 무엇을 하실 수 있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청중이 그곳에 없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께 환상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잠깐 시간을 내어 며칠 뒤의 일을 살펴봅시다. 그분께서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습니다. 거기에는 다리를 저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십시오. 치유의 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신 채로, 다리를 저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십니다. 천사가 물을 휘저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 연못으로 계단을 내려오셨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몸의 치유를 위해 땅에 어떤 대리자, 곧 천사를 두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들을 광신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그저… 역사가들은 바람이 물을 휘돌면서 흔들어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시험해 보려고 물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기다리는 동안 예수님께서 그… 다리를 저는 사람들, 눈먼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 사이를 지나오셔서, 깔개 위에 누워 있는 한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깔개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는 그것 위에서 자랐습니다. 문간에 낡고 작은 이불을 깔아 놓은 것이 깔개입니다. 그분께서는 이 사람을 보시고, 그가 이런 상태로 삼십팔 년을 지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거나 걷지 못하거나 눈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몸에 병이 있었는데, 아마 결핵이나 전립선 질환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진행이 더딘 병이었습니다. 그 병이 그를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삼십팔 년 동안 그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모든 사람을 지나쳐 이 한 사람에게 가셔서 그를 고치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안식일에 자기 자리를 들고 가다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입니다. 여전히 요한복음입니다. 적어 두시려면 5장 19절, 5장 1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그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 무엇을 할지 먼저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모든 것이…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의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믿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져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아마 5절쯤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미리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었으며, 그분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여기서 마치고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까? 빌립… 아니,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그를 찾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곧 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다든지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틀림없이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금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신 방식도 같았습니다. 한 여자와 이야기하다가 그 여자의 문제를 아시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그것이… 메시아께서 그렇게 하실 것임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도시로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서는 치유 집회를 열지 않으셨다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오순절 직후에 다른 사람, 작은 집사 한 사람이 내려올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빌립이 그곳에서 참으로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면… 그분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려고 그렇게 하셨고, 이방인 앞에서는 그 일을 행하지 못하게 하셨다면, 바울이 이방인에게로 향한 것은 여러 해가 지난 뒤였으니까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방인의 경륜이 끝나 가는 때에,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시다면 자신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알리시기 위해 유대인 앞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이 이방인 앞에서도 자신을 나타내셔야 합니다. 그분은 같은 주 예수님이시며,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살아 계셔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여기 종이에 담긴 그분의 사진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보셨습니다. 지금은 그것에 관해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 사진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어 왔습니다. 제게 그것은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한 그분이 로고스, 곧 언약의 천사이신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렇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셨고, 광야에 있던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불기둥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실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다시 같은 로고스로서 불기둥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빛은 너무나 밝아서 바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그런데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려는 사람들에게는 실제였지만, 곁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녹음 공백] …계시가 임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성전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론의 흉패인 우림과 둠밈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열두 보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언하거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그 빛들이 함께 어우러져 초자연적인… 하나님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빛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고,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응답하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알듯이,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빛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끝났을 때, 그 우림과 둠밈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른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선지자가 예언하거나, 설교자가 설교하거나, 복음 전도자가 말씀을 전하거나, 꿈을 이야기하거나, 그 무엇이든 말씀과 맞지 않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림과 둠밈입니다. 자신을 알리고 입증해 온 그 천사가 인간의 육신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면서, 자신이 이 땅에 계셨을 때와 같은 본성을 지니고 같은 영으로 같은 표적들을 행한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천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동일함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에서 아는 한,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영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포도나무와 가지들입니다. 포도나무 안에 있던 같은 생명이 그분의 가지들을 통해 나옵니다. 그분은 자신의 포도나무를 통해 가지에 양분을 주십니다. 그렇게 자신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함을 나타내십니다. 그분께서 “나는 포도나무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 곧 영의 모습으로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으로 여러분에게 힘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성경 시대에 하셨던 것처럼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것은 믿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니”, 믿는 자들입니다. “이는 내가”, ‘내가’라는 인칭 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너희가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표현을 그리스어 사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 큰”이라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이라는 뜻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연을 멈추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은 그…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더 많이 할 수는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가지들 안에 있듯, 그분께서 자신의 교회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온 세상 곳곳에서 같은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 그것을 생각하면, 또 그분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생각하면… 말해 보십시오. 옛날 그 유대인 앞에 그것이 나타났을 때, 그는 어디서 그것을 알았습니까? 그것이 메시아의 표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오늘날 믿는 자가 아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리는 그것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고, 권능은 다시 낟알로 돌아갔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도록, 자기 발로 일어서서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수만 명 앞에 서 보았습니다. 한 번에는 무려 오십만 명 앞에 서서,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코란을 들고 “둘 가운데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인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은 방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것이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모든 감독들과 그 가운데 많은 분들, 오순절 형제들과 여러 큰 교회의 분들이 그곳에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우리는 선교사로 이곳에 오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나라가 생기기 이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동양의 책입니다. 여러분 서양 사람들은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성경 교육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상당한 진실이 있습니다. 성경은 동양의 관습으로 기록된 동양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다시 살아 있게 하시려고 당신들 미국 사람들에게 그분의 영을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그날 밤, 그날 낮에 인도의 열일곱 가지 서로 다른 종교의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반대했습니다… 그날 밤 이슬람교도들과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입이 닫혔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긍휼로 이십 년 동안 눈이 멀었던 사람에게 시력을 주셨습니다. 그곳에 서서 그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이름은 발음조차 할 수 없어 철자를 하나씩 불러야 했고, 그 밖의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려고 치켜든 검은 손들이 수만 개는 되는 듯 보였습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었던 저의 마지막 집회에서는 강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백인들은 그 자리에 서서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무개 박사는 그것이 정신 감응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것이라고 하고, 또 다른 것,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불쌍한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거기 서 있었을 때…
F. F. 보즈워스 박사님을 기억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물론 기억하시겠지요. 보즈워스 형제님은 불과 몇 주 전에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그 연로하신 분이 거기 서 계실 때, 사람들은 강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릴 시간이 없지만, 저는 완전히 이교도로 살던 삼만 명이 자기 우상들을 땅에 내던져 깨뜨리고, 한 번의 제단 초청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 얼마나 그러고 싶은지요… 얼마 전 작은 모임에 앉아 있었는데, 거기서…
침례교회에서 제게 안수해 주신 데이비스 박사님은 제가 홀리롤러라는 무리와 어울려 다닌다고 정신이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데이비스 박사님, 박사님께서는 이것을 광신주의라고 부르시지만, 우리 침례교회는 그곳에 선교사들을 보내느라 수백만 달러를 썼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그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있었습니까? 목에는 표찰을 걸고 우상을 들고 다녔습니다.” 오, 그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모야가 실패하면, 이 우상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교회의 약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의 씨앗들이 그것을 나타내자 문제가 해결되었고, 우상들이 부서졌습니다. 이교도 삼만 명이… 침례교회가 백오십 년 동안 선교하여 얻은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 한 번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바로 그 시각, 그날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지금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입니다. 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었습니다. 기도합시다.
주 하나님, 오늘 밤 이곳에 있는 수백 명의 신자에게 주님의 크신 임재가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할 기회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 몸을 통해 움직이시며 주님의 일들을 행하시는 영이십니다. 교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주님의 임재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행하셨던 바로 그 일을 행해 주옵소서. 글로바와 그의 친구도 그렇게 하여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주님과 이야기했으면서도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어떤 일을 행하시자, 그런 방식으로 행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주님이셨고,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밤 여기 앉아 있는 혼들 가운데에는 어떤 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섬겨 온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밤 주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알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 주옵소서. 그들이 확고한 간증을 가지고 자기 교회로 돌아가, 목사님의 손을 잡고 “목사님, 저는 우리 주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제게 할 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하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행하는 목적과 동기가 옳은지 아닌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이 도시에 옛날과 같은 부흥이 임하여 수천의 혼들이 무릎을 꿇게 하옵소서. 아버지, 이 온 땅이 악한 사람들의 손에 가루가 되어 버리기 전에 허락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렇게 되도록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지 않는 세상이 그 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버지,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녹음 공백.]
이제 잠깐 기도합시다. 주 하나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다음은 주께서 하셔야 합니다, 오 영원하신 하나님. 조금 전 이 집회에 처음 오셨다는 수백 명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먼저 말씀을 전하여, 이것이 말씀이고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게 했습니다. 이제 아버지, 지난날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 밤 자신을 나타내 주옵소서. 그 큰 날에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게 하옵소서. 오 주님, 저를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자, 이 장비를 담당하는 기사분이 누구든… 환상이 올 때는 잠재의식의 상태를 통해 옵니다… 그것을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물론 알고 계십니다. 단 한 번의 환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약하게 했다는 것을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한 번의 환상 때문에 다니엘은 여러 날 동안 머릿속이 괴로웠습니다. 한 번의 환상 때문에 엘리야는 광야에서 사십 일을 헤매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것이 허락됩니다. 선생님, 이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베일 형제님, 여러분 모두 올라오셔서 줄을 따라 내려가 주십시오. 아주 경건한 태도로 계십시오. 움직이지 마십시오. 자리에 가만히 앉아 기도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누군가 “모두에게 들리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더 잘 들립니까? 제 말이 들리십니까? 강단에 있는 이유는… 이곳에는 저와 함께 다니는 일행만 있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압니다. 아시겠죠? 물론 제 주위에 사람들을 세워 놓아도 괜찮지만, 그렇게 하면… 힘들어질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는 순간 모든 마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설명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밤 그 사진을 본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보셨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FBI의 책임자인 조지 J. 레이시가, 지문과 문서를…
선생님,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 것 같군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오늘 밤 제가 읽었던 것과 꼭 맞는 사례가 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 두 사람, 나다나엘이 우리 주님 앞에 서 있던 경우입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이분이 아프다고 해 봅시다. 암이나 결핵, 혹은 어떤 병을 앓고 있다고 해 봅시다. 제가 다가가서 “형제님”, 그리고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형제님. ‘할렐루야, 당신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가서 주님을 믿으십시오’”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분은 이곳에 서 있지도 않을 수… 비판하러 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듯이 그분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신다면, 그분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것입니다. 자기 과거의 어디엔가 숨겨진 일이라면, 그분은 그것이 사실인지 알 것입니다. 다른 일에서는 저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알기 때문에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판단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그렇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것이지요? 아마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태어난 해도 여러 해 차이가 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여기서 만났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전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일 주 예수님, 곧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경에서 나다나엘과 빌립을 만나셨을 때처럼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이곳에서 몇 분이나 “저는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믿겠습니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손을 들고 “그분을 사랑하고 믿겠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이제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우물가에서 하셨듯이, 저는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하고 난 뒤에는… 짧은 집회는 어렵습니다. 아시겠죠? 며칠 밤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이것이 복음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 보이면, 그때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때는 제가 곧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베일 박사님이 설교하시고, 저는 그 뒤를 이어 들어와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설교도 하고 또 하려고 하면… 이것은 두 가지 다른… 같은 영이지만 서로 다른 두 은사이며, 같은 영이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주 예수님께서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밝혀 주신다면 믿으시겠지요. 병이 있다 해도 제가 고칠 수는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시다면 오 달러쯤 드릴 수는 있겠지만, 저는… 가정 문제라면 저는 모릅니다. 제가 모른다는 것을 선생님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신다면 선생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청중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청중에게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밝혀 주신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믿을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 믿으시겠지요. 성령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왜 시간을 끌고 계십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기름부음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이분도 모르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모릅니다. 저 아래 계신 여러분은 계속 믿으면서 “주님,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시지 않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병든 여러분에게 손을 얹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청중 여러분,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이분이 극심한 신경과민으로 고통받는 것이 보입니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합니다. 그것이 기도받기 원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손을 쓰는 문제, 왼손입니다. 그 손이 다쳤는데, 전동 톱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톱에 손을 베어 손의 신경들이 끊어졌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가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선생님의 문제는 모두 끝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기만 하십시오.
젊은 자매님, 우리도 처음 만나는 것 같군요? 제가 조금 전에 설교한 말씀이 진리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는군요. 저는 자매님에게 전혀 낯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꼭 그때처럼 밝혀 주신다면… 여기에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예수님과 우물가의 여자처럼,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과 그 여자도 그때 처음 만났지만, 그분은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또는 제가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도 아는 어떤 일을 제게 밝혀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도 신경이 몹시 예민하고, 온몸에 통증이 있습니다. 그 통증은 아래쪽 여성 생식샘 부위에서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고, 그 뒤로 줄곧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몸의 그 아래쪽 부위에 통증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이 도시에서 온 분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에서 오셨는데, 그 도시는 인디애나주 스코틀랜드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그러면 집에 가서 건강해지십시오.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들어 주옵소서.
안녕하십니까? 저기 좌석 끝에 앉아 계신 부인,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부인은 간절히 다가서려고 애쓰고 계셨습니다. 제가 부인을 불러 주기를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밝혀 주신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그러시겠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경련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사실이라면 손을 드십시오. 아이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이 여자가 바로 지금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자기 손은 아기에게 얹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아기에게 해를 끼치는 마귀를 정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이 떠나게 하옵소서. 아멘. 의심하지 마십시오. 부인은 무엇에 손을 대셨습니까? 저에게 손을 대신 것은 아니지요? 부인을 아시는 분,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대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부인. 주 하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밝혀 주신다면,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시겠습니까? 어떤 일 때문에 마음이 몹시 괴로우십니다. 두 손을 이렇게 한 채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커튼이 스쳐 지나가는 방을 지나가시는데, 오시기 전에 오늘 밤 이 기도 줄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종양들이 있습니다. 온몸에 종양들이 있습니다. 폐에도, 신장에도 있고, 압박을 가해서 체액이 심장을 누르기 때문에 심장 질환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그분께서 부인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불명확한 말]. 믿고 계십니까? 저기 청중 가운데 계신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나님께서… 믿으십니까? 주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밝혀 주신다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알 수도 없고, 선생님에 대해 아무것도 알 길이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위장병이 있습니다. 저 소년의 탈장이 나으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이 도시에서 온 분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오셨습니다. 인디애나주에 있는 곳인데, 이름은 [불명확]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입니다. 허버드 목사님, 그것이 선생님의 이름입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제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잠깐만요. 이 남자분은 이 안에 있는 누군가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기 한 여자분이 계십니다. 기도하는 분이 바로 부인이군요. 이분은 부인의 남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뇨병을 보시고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베드로를 아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코트니 씨 부부,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두 분 모두 줄에서 나오십시오 [불명확한 말]. 주님을 믿으십니까? 친구 여러분, 들으십시오. [불명확한 말] 그분이십니다. 이제 마음을 여십시오. 마음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신 것입니다.
거기 앉아 계신 분, 제가 허리의 병이 떠났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면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십시오… 심장병처럼 보이지만, 신경과민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치셨다고 믿으십니까?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시고, 온 마음으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위장병을 고치시고 건강하게 하셨다고 믿으십니까?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하게 되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은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저를 보고 계신 선생님, 저 검은 머리 부인 곁에 계신 분, 기도 카드가 있으십니까? 없으십니까? 제가 선생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정말 믿고 계시지요? 그렇습니다. 옆에 앉아 계신 분은 선생님의 아내입니다. 예. 부인은 목에 문제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탈장이 있습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그러면 가서 치유를 받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에 호소합니다. 믿으십시오. 여기, 여기입니다.
그분을 이리로 데려오십시오. 자매님, 제 손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저는 평생 자매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쪽을 보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그러니 정신 감응이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신다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여성 질환, 부인병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이라면 손을 드십시오. 있었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기뻐하며 가던 길을 가십시오. 그 심장병이 떠났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십시오. 보십시오, 자매님, 거기 앉아서 울고 계신 분, 그분께 그의 온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계신 분 말입니다. 거기 앉아서 울며 기도하고, 간절히 다가서려고 애쓰고 계시는데, 자매님은 그분께 손을 대셨습니다. 좋습니다.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자매님의 장 질환이 떠납니다. 집에 가서 건강해지십시오. 그것이 자매님의 문제였습니다.
잠깐만요. 같은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장 질환도 고치시고 건강하게 하셨다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이제 끝났습니다. 기뻐하며 가십시오. 기뻐하며 가십시오. 저 작은 부인이 [불명확한 말] 그 일에 대해 참 친절했습니다, 자매님.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 그분의 마이크. 앓고 계셨던 것은 척추 질환인데, 이제 없어졌다고 믿으십니까? 그러신다면… 좋습니다. 두 발로 일어서십시오.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고 건강해지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그 심장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떠나리라고 믿으십니까?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시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좋습니다, 선생님, 여기 잠깐 와 보십시오. 가서 식사하고 싶으십니까? 가서 햄버거를 하나 드십시오.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신경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십니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위에 소화성 궤양이 생겼습니다. 먹은 음식이 시어져서 도로 올라옵니다. 이제 그것이 떠났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며 가십시오.
관절염은 하나님께서 쉽게 고치실 수 있는 병입니다. 선생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저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시고,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온전하게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쳐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일어나 가던 길을 가며 기뻐하시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믿음에 호소합니다. 이쪽을 보며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분께서 달리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기도 카드 번호를 더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약속임을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잠시 고개를 숙이십시오. 이것이 어떤 능력에서 비롯된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분 시대의 유대인, 믿지 않는 정통파 신자가 그랬듯이 이것이 바알세붑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의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었다고 믿으면, 그분의 보상을 받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믿으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주 예수님의 영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 하나님, 지금 긍휼을 베푸셔서 이곳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임재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 가운데 여기 계시며, 주님의 말씀을 살아 있게 하고 계십니다. 모든 약속은 참됩니다. 그러므로 주님, 사람들이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의심뿐입니다. 지금 모든 의심을 거두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모든 마음에 힘차게 임하시고, 지금 그 임재를 그 안에 부어 주셔서, 주님께서 치유자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들을 모두 온전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고침을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치유를 받아들이십니까? 그분께서 달리 무슨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더 하실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고침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두 발로 일어서서 그분을 여러분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십시오. 믿기를 원하는 분들은 일어서십시오. 그분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드십시오.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십시오. 크신 의사 지금 여기 계시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말씀으로 낙심한 마음을 위로하시니,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 없도다. 그저 손을 들고 그분께 찬양을 돌리십시오. “주님, 저를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